강단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 ■ 설교 발췌 모음3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강단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 ■ 설교 발췌 모음3

심방 28 416 09.16 13:05
(안내)
우리 교회 설교는 게시판 '다시보기'에서 전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설교 내용 중에 특별히 기억했으면 하는 부분을 '심방부'가 '설교 발췌 모음'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목록은 심방부가 맡고 있으나 추천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간단히 제목을 붙이고 누구든지 소개할 수 있습니다.

소개할 때는 분량을 조금 줄이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의 설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췌 모음1
http://pkist.iptime.org:8787/shinpoong/bbs/board.php?bo_table=st_mundab&wr_id=3555&sfl=wr_subject&stx=%EB%B0%9C%EC%B7%8C&sop=and


*발췌 모음2
http://pkist2.net:8787/shinpoong/bbs/board.php?bo_table=st_mundab&wr_id=3924&page=5

Comments

세상을 혼자서 다 쥐는 방법 09.16 13:06
주일이 바로 될 때 완전한 즐거움, 영원불변의 즐거움이 자라가기까지 합니다. 그 사람은 저절로 옆에 주변에 빛이 되고 그다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모든 복이 위에 있게 됐습니다. 오늘 신풍의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공부하고 취업해서 나아가는 것 뛰고 둘러봐야 한 걸음 더 올라 가기 어려울 것이나 주일 지키느라고 세끼 밥 먹기도 어렵다고 그러는 이 주일을 바로 잡으면 역사 이후에 모든 복된 교회, 복된 선지사도 우리 앞에 가셨던 위대한 종들의 그 기도와 그 은혜가 전부 다 우리 교회에 다 떨어집니다. 세상을 혼자서 다 쥐는 방법입니다. 이것까지 다 계산하고 그다음, 하나하나 부탁하는 겁니다. 적은 것이 아닙니다.

(220913화새)
기행 09.16 13:06
남편이 천하의 의인이라도 아내의 신앙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자기 신앙에 따라 자기는 성화가 되지만은 부부 둘을 합한 가정교회라는 그 면은 더 크고 더 중요한 이 분야는 성장이 중단 된 겁니다. 신앙 있는 남편의 더 낳은 더 큰 가정구원의 점수는 신앙 없는 아내의 수준에 맞춰 줍니다.

한 사람으로 말하면 경제면은 철저한데 사회면이 부실하다, 사회면은 철저한데 경제면이 부실하다, 사회면 경제면은 다 좋은데 건강이 부실하다, 한 사람 안에 장단점이 있을 때 단점을 버려도 난 돈 있으니까 돈으로 다 때우면 된다, 나는 이게 장점이니까 장점으로 다 하면 된다, 우선 보기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장점은 장점대로 자꾸 살려가며 동시에 자기단점, 부실한 점 고쳐 나가지 않으면 기형이 돼 버립니다. 부부도 가족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원만하게 자라갈순 없지만 파행적으로 하나가 앞서고 하나가 뒤서는 것은 할 수가 없지만 남편의 신앙이 자꾸만 좋아진다, 여자 신앙은 그냥 신앙이라 그럴 것도 없다, 이럴 때 이 남편의 목적은 목표는 이 아내 신앙을 어떻게 하면 1그램이라도 더 당겨 맞춰야 될까? 주력해야 됩니다.

(220914 수새)
약점이 보배인 이유 09.18 05:19
인간적인 '약점'은 세상 살아가며 약점은 약점이나,
볼 수 없는 '하나님'을 강하게 뜨겁게, 목회자도 교인도 함께 '모실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이것은 참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고 '보배'입니다.

(180406 금새)
쓴 약 09.18 05:26
만사, 주님은 복을 주지 화를 주지 않습니다.
내 생각에 좋은 것은 복이고 내 생각에 나쁜 것은 화인데, 믿는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것은 항상 '복'만 주십니다.
아이가 아프니 '쓴 약'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쓴 약이라고 우는데, 불행인데
부모에게 쓴 약은 아이에게 준 '꿀'이나 '쓴 약'이나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똑같이' 좋은 것입니다.

(180406 금새)
불완전한 율법의 의미 09.22 05:14
구약의 율법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완전자'인데 왜 불완전한 걸 주셨지요?

'다섯 달짜리' 아이에게 채운 기저귀는 아직 화장실을 못가니까 채워놓은 겁니다. '자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섯 달짜리가 기저귀가 이게 냄새나고 '불편'하다고 던지고 돌아 댕기면 온 집안이 '엉망'이 돼버립니다.
기저귀를 채우면 기저귀만 불편하지 '일단'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2살 3살 되면서 기저귀를 '떼 버리면' 이게 '완전'입니다.

다섯달 짜리한테 채운 '기저귀'는 죄가 아닙니다. 잘못된 게 아닙니다.
'기저귀 없으면' 온 집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기저귀를 준 겁니다.

(220918 주전)
받지 못한 구원을 주시려고 09.22 05:27
'구약'은 '안식일'을 통해 죄인에게 '구원의 방법'을 주셨는데, 놀기만 놀았지 안식일의 '핵심'이 뭔지를 몰라서 '실패'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주님도 안식일을 '먼저 지키며', 안식일 자체가 '틀린 것 아니다'를 가르친 것입니다.

주님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 '율법 자체'가 틀린 게 아니다.
율법과 안식일의 '내용' 주인이 예수님이다. '구원'이다.

'껍데기'로 율법만 지키고 행동으로 안식일만 지킨 것 같았는데,
안식일과 '율법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의 구원 '구원이 핵심'인데 이 주인 이 구원을 '몰랐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

주님이 오셔서 불완전한 기저귀를 '떼 버리는 것'처럼,
구약의 율법과 안식일을 통해서 '받지 못한 구원을 주시려고' 주님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므로, 주님이 구원을 만들어'서 그 다음 우리 '손에 쥐어주신 날'이 이게 '주일'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을 '주일'로 날짜를 '일부러' 바꿔버렸습니다.

(220918 주전)
예배란 09.25 23:09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

'신령'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은 '인간 내 힘 다하여'

하나님 앞에, 우리 힘 다하여. 이 '두 개가 합해졌을 때'에만 예배입니다.

(220925 주후)
예배 생활 09.25 23:11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살펴보니

예배는 하나님만 '혼자' 계시고
우리는 '눈치'를 보며 잘 듣고 잘 배우고 알아차렸으면,
이제 '그대로' 살면,

이게 한 주간 세상의 '생활 전부'가 알고 보면 '예배 생활'이어야, 이게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어집니다.

(220925 주후)
엉뚱한 예배 09.25 23:17
예배를 더 조심 더 조심 '발전'시킨다고 '천주교식 미사'가 되어버려도 탈이고

예배를 인간들 흥미롭게 인기 좋게 '유행'을 따라
마구 그냥 '뒤죽박죽' 만들어 놓으면,
예배가 '방종 방탕'이 되어 가지고 '쓰레기'가 되어 버립니다.

(220925 주후)
훈계를 오해 10.02 23:29
학교를 '가서' 공부를 '안 하니까' 학교를 '때려 치우라' 이런 것이지,
공부를 때려 치우라는 말은 '아닌데'

가방 들고 학교에 가서 '못된 것만 배우니까' 학교 때려 치워라, 책 다 불 싸질러라고 그러니까,
학교란 '나쁜' 거구나 배우면 '안 되는'구나 이렇게 삐져나갑니다.

공부하라 했더니만 '공부를 안 하니까' 나온 말입니다.

그러면, 학교 치워라 책 불 싸질러라 그러면,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하라는가보다! 이래야 '희망'이 있는데,

아! 학교가 필요 없구나. 율법주의구나. 주일을 지키면 안 되는구나. 계명을 지키면 지옥가는구나.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안식일을 잘못 지켜 문제가 생기니까, 그렇다면 '잘 지키는 게 도대체 뭐냐?' 이렇게 들어야 되는데,
잘못 지켰다고 야단을 치니까, 안식일이 '필요 없구나'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220918 주후)
변질의 이유 10.02 23:30
타락한 10지파 이스라엘이 불신자 아람하고 '연합'이 되어, 남쪽에 있는 유다를 '점령'하러 치러 들어왔습니다.
'칼싸움'이 생겼습니다.

다윗의 14대 자손 아하스 왕이,
    다윗 같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골리앗도 주님 이름으로 돌 하나로 해결을 했는데....

이러면
조상 다윗의 신앙을 '이어가는' 신앙이 될 터인데,

앞에 1절 2절에 보니까 이 아하스는 다윗과 '같지 않았더라'
다윗과 '방식'이 다릅니다.

(221002 주후)
악순환 10.03 06:41
다윗이 1대 솔로몬을 2대로 친다면, 여기 '아하스 왕'은 14대 왕입니다. 여기 왕이 된 아하스가 복 받는 '다윗의 길'을 걸어가면 참 좋겠는데,

2절, “다윗같이 정직히 행치 아니하였더라” 오히려 불신자들처럼 "이방인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더라"
믿는 사람이 딱 봐도,
믿는 사람으로 해서 안되는 세상 인간들 하나님 '진노'하신 일을 '골라서' 따라 가더라.

이리되면,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고칠래 말래?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버린 자식이면 버려 놓지만,
사랑할수록 이 매는 '강한' 법이요. 이 매는 저주가 아니라 '사랑의 매'입니다.

매를 들면 고쳐 버리면 될 것인데,

죄를 지어 우상 문제가 생겨서 하나님이 매를 드니까,
먼저 죄를 짓고 먼저 우상을 섬긴 이 이스라엘과 그 다음 안 믿는 아람 두 나라를 가지고 매를 삼아 아하스를 치니까
(돌이키지 않으니)
더 큰 세상, 더 강한 세상, 더 억센 죄인을 불러다가 해결을 합니다.

 (221003 월새)
끊어야 할 반복 10.03 06:49
얼른 '방향'을 딱 잡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원인이 무엇인지 얼른 '분석'하고 바로 '대처'하면
바로 한 걸음씩 대처하면 바로 신앙이 '빠르게' 좋아지는데,

역사적인 경험에, 큰 은혜 받은 사람이 '빠르게' 회개하고 빠르게 고치면, 
3달이면 모두를 넘어서고, 3년 바로 믿으면 역사적인 사람이 된다고 할만큼, 신앙은 이렇게 빠르게 자라가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죄 짓고 '버티고'
죄 짓고 '버티고' 계속 헛 돌게 되면,

여기 다윗의 자자손손 14대의 왕이면, 천하를 제패하고 세상이 천국이 된 것처럼 되어야 될 것인데,

바로 믿고 나면 '그 다음' 교만해서 넘어지고
또 회개하고 '올려' 놓으면 또 죄 짓고 '내려'가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이 반복이
40년 광야의 '반복'이고
열왕기상에서 열왕기하까지 '반복'이며

2천년 신약 교회사의 '반복'입니다.

(221003 월새)
건설은 어렵고 10.07 05:26
그런데 여기 보니까,
'다메섹'에서 설계도를 그려 왕이 도착하기 전에 보냈더니만은 이것이 도착하기도 전에 단을 '벌써' 다 만들었더라 했습니다.
 
타락은 '빠른 것'입니다.

좋은 것을 배우는 '세월'
그 좋은 것을 배워서 좋아진 '자기'
이것을 '망치는 것'을, 속화 타락이라 합니다.

죄 짓는 것은 '쉽고'
신앙으로 속화 타락은 참 쉽고 '간단'하나
'건설' 건축은 '어렵'습니다.

'기둥' 하나 빼버리면 집 무너지는 것은 간단하고,
하나님을 배워가며 알아가는 '세월'은 다윗의 평생과 같고 (오래 걸리나),

다윗의 준비로 세워놓은 솔로몬 성전
'뜯어'버리고
'옮겨'버리고
'휘젓어'버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는 것 아닙니다.


(221007 금새)
늦춰 멈추게 할 것 10.07 05:32
다윗처럼, 아들들이 잘못 되었을 때에

내가 '대신' 죽어야 된다고
'발버둥'을 치고,
죽지는 못하나 대신 죽는 그 '심정'이 있어야

그 '생명력'이 들어

불구된 마음, 또는 고장난 '나머지'를 살려내고,
다윗이 다윗이 되며 솔로몬으로 '이어'집니다.

강제는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은,
나는 '말려'죽고
나는 '쫄려'죽고
나는 '못 견뎌' 애 터져 죽는 '모습'이라도 가져야,

세상으로 기어 나가는 가족들이 '뒷덜미'가 붙들려
나 때문에 마음대로 세상을 못 나가고 '멈칫 멈칫' 하다가
매 맞고 돌아오던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새벽 교인들은 나 하나 때문에 온 집안 온 교인 온 식구들이, 적어도 세상으로 달려가는 길이
'멈춰져야' 합니다.
'늦춰져야' 합니다.


(221007 금새)
치워버린 놋단 10.08 05:43
'놋'이라는 말은

주의 '구원' 받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다보면
세상적 '어려움'이 많은데.

아무리 어려워도 '당연히'
신앙생활 하는데는 어려울 수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나는 '연단'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아갈 떄에 다가오는
'연단'과
'어려움'을 놋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바칠 때'에는 놋으로 만든 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놋이란 쇠를 불 속에 넣었다가 두들기는 '연단'을 말하는데,
주님 앞에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자기를 '바치려'다보면
주일 한번 제대로 지키려 하니까, (세상에서) 뒤쳐지는 등
한번씩 이런 어려움이 오는 이게, 

주님도 "그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더라"
주님도 이 땅 위에 날 위해서 걸어가는 '걸음걸음'이
그런 연단을 늘 '겪고' 걸어가셨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우리도 (당연히) 십자가고
우리도 놋단처럼 연단과 어려움은 '기본'이라야 합니다.

학교 공부하러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세상 어디든 들어가서는 다 어렵고

신앙 생활도
죄를 지어 '돌아'서려니,
'온전'하고 거룩하게 되려니
서툰 것들이 '더욱' 어려운 것인데. 뭐든지 다 그런 법인데.

그건 '다' 하면서

하나님 섬기면서 눈꼽만큼도
어려움이 '없어야' 된다는 것은

귀신이 넣어준 '유혹'입니다.


(221007 금밤)
앗수르의 제단 10.08 05:54
성전의 '여호와의 단'이란,

주님을 위해서는 다 바쳐도,
주님 '아닌' 세상을 위해서는
  세상을 '살라니까' 사는 것이지
  세상을 위해서는 다 바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법으로 군인으로 '오라니까' 가기는 가지만은,
'안 가도' 되는데 지원해서 목숨 걸고 지키겠다?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애국'이고
군대는 안 가면 잡아가니까 '이왕 갈 것'이면 열심히 가서 하는 것이지
그래서, 1년 반 갔다오는 것이지

직업 군인으로 삼아 이 목숨 이 생애를 '전부' 군인으로 살겠습니까?
믿는 사람은 '좋아서' 군인하고 경찰가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일반 국민'으로 살다가
세금 내라면 내고
군대 오라면 군대도 갔다오지만은,

'불신자'야 군인이든 경찰을 하든
무엇을 하든
'두고 갈' 이 세상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라며
그 일하다가 죽든 말든

그게 바로 '앗수르 단'입니다.


(221008 토새)
예배의 변질 10.08 06:35
(그래서) 성전의 제단은 '주'와 '주의 말씀'에 모든 것을 다하지, 그 외의 것은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이 그러하고 그 다음 예배 시간이 그런 것입니다.
  예배는 언제쯤 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실까?
  예배의 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찬송은 어떤 찬송을 '하나님'이 이 예배 시간에는 기뻐하실까?

수도 없는 노래 찬송 중에
'주님'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찾는 것이 '예배의 찬송'이고,

어떤 것이 신나고 즐거울까?
이것을 찾는 것은

'똑같은' 찬송을 해도, 앗수르 제단이 됩니다.


(221008 토새)
제단과 물두멍 10.09 23:35
말씀의 잘못된 것을 자꾸 고쳐버리는 것이,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뭐든지 죽이면 죽이고 없애버리면 '제단',
  그 다음,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면 '물두멍'입니다.


(221009 주후)
씻는 주일 10.09 23:38
세상을 살면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 짓지 않기는 '어려우나'

구약은,
  성전을 올 때 지은 죄를 '회개'하고 더러워진 것을 '씻고'
 
신약은,
  주일날에 좀 죄 짓는 것을 '줄이고'
  예배 시간에 말씀으로 죄 지은 것이 마음이 '아프'고
  말씀과 다른 내 성격과 말투를 자꾸 '씻어'버리고

그래서
 주일을 한 번 두 번 '지킬 때'마다,
 
 행동이 말씀으로 '깨끗'해지고
 생활과 경제와 모든 인격이 말씀으로 보니까 '깨끗'해지고,

예배를 드릴 때 설교가 '씻는 설교'이고
찬송이 '씻는 찬송',

이게 '예배'이고
이게 구약의 '성전'입니다.

(221009 주후)
교회의 깨끗 10.09 23:42
한 주간 놀았고,
퇴근하면서 노래방 갔고 소주방 갔고 술집에 가고
친구들하고 1차 2차 '온갖 짓' 다 하고,

학교도 옛날에는 공부만 하더니만,
이제는 이거 놀고 저거 놀고 온갖 것 '더러운 것' 다 가르쳐 놓고..

세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일날? 세상에.

주님의 날,
예배당 안에서,
예배 시간에도, 죄인도 사랑합니다 가서 죄를 더 지으십시오. 그게 용서입니까?

지은 죄인을 데려다가, 성경은 이런데 네가 친구를 쏴 죽인 것은 살인죄다. 이건 지옥 갈 죄다.
회개를 해야 천국이 있지 이대로는 너는 지옥이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거 데려다 놓은 거지.

용서해 줄 테니까 이 집 죽이고 저 집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라고
만약에 '풀어'놨으면,
사형당할 사람 살려서 더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살린 사람이 '책임'져야 됩니다.

불신자는 그런 걸 '사랑'이라 그러고,
교회는 말씀으로 그런 것은 '죽여야 된다' 그럽니다.

사람을 죽이라 말이 아니라 '행위'를 죽여야 됩니다.


(221009 주후)
깨끗의 일편단심1 10.10 00:12
그런데
 
이 '놋 바다'가 그릇은 '놋'인데
이 놋바다를 받치고 있는 것은 '소 12마리'가 뺑 돌아가면서 떠받치고 있습니다.

소란, 입 닥치고 묵묵하게 '끝까지' 걸어가는 것을 소라고 그럽니다.
나무로 만든 소도 아니고, '놋으로 된 소'라.

말씀을 읽고 회개하며 걸어가기에 '어려워도',
한 번 '출발하면' 쉬지 아니하고
또박또박 '끝까지' 걸어가는 놋으로 만든 소를
12마리 밑에 만들어놓고 그 위에다 대고 놋바다를 얹어놨습니다.

이게 '회개의 기본'입니다.

좋을 때도 슬플 때도
병들 때도 행복할 때도
돈이 잘 벌 때도 경제적으로 곤란할 때도,
코로나로 전국이 교회 가면 안 된다고 생난리를 '하거나 말거나',

주일과 예배는 우리가 '끝까지' 하루 하루 '지켜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소'라고 그럽니다.

그러려다보면 '힘'이 드는데, 그게 바로 놋으로 만든 소입니다.
그 위에 '놋 바다'를 올려놓고, 여기에서 '물'을 떠가는 겁니다.

이런 인내, 이런 회개, 이런 근본의 방향을
'바탕'으로 해서,
'구체적'으로, 나는 이번에는 무엇을 회개해야 되느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221009 주후)
깨끗의 일편단심2 10.10 00:13
세상은 놔두고, 신앙만큼은 '절대로' 못 변한다

예배당 비가 오면 '지붕'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조립식 지붕이 자꾸 탈을 내면 '콘크리트'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바꾸면 뭐라고 그러냐,
    지붕도 바꾸는데 '교리도 바꾸지' 그래요
    창문도 바꾸고 커튼도 바꾸는데, 주일도 바꾸면 안 됩니까? 예배도 바꾸면 안 됩니까? 라고 그럽니다.
 
머리는 지지고 볶고 바꿀 수 있는데, '심장'은 뗐다 붙였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신앙과 교회 운영에, 머리 모양처럼 '바꿔도 되는 게' 있고
신앙과 교회 운영에, 죽으면 죽었지 '못 바꾸는 것'도 있습니다.

심장 이놈은 뗐다 붙였다 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지켜내는 것이지,

이런 걸 '교리'라 그럽니다.
이런 걸 '계명'이라 그럽니다.
이런 걸 '신앙의 노선'이라 그럽니다.

무조건 안 바꾼다는 말이 아닙니다.


(221009 주후)
교회의 특별성 10.10 05:45
교회는 '특별'하다고 해서,
  이 땅 위에 '없는' 재료로.
  또, 그 도시 마을에서 가질 수 없는 '사회 예술품'으로 만들면,

우리는 성경을 '잘 모르는' 것으로 봅니다.
 
(왜냐) 그것은 천주교인데 천주교는 '무조건'
그 도시 그 마을에 한 번에 볼 때에 '완전히' 그냥 안 팎이 다 '달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신앙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크고 중하고 길이 아주 '다른 길'입니다.

원래 교회는 2천년 모두 우리처럼 이게 '옳다'고 내려 왔는데,
  '돈'이 조금 쌓이고
  '사람들'이 조금 모여지니까,

뭐 그냥 '여성들' 시내에 가서 남들이 다 자기만 쳐다보도록 이상한 것을 차고 옷을 입어서
자꾸 '눈에 띄려고' 생 난리를 하는 것처럼.
또 '장사'가 물건 팔 때에. 우리 가게 '물건을 팔려고'
별별 일을 다 하듯이,

교회도 자기 교회 쳐다보라고 마구 건물부터 노력하고 별별 프로그램 다 돌리지만은

(본래) 산 위에 동리로 등잔 위에 등불로 이렇게 켜는 것은,
  말씀을 '따라' 내가 걸어가다 보니,
    내 속에 '희생'이 있고
                '노력'이 있고
    내 속에 '태워지는 것'이 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표시'가 나는 것이지,

'속'은 모르겠고
'겉'만 표시내려고 세상 경쟁에 나서는 것은
교회론에 그것은 예배당이 뭔지도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또, 남들이 다 그리 나가니까이번에는 '반대로' 거꾸로
우리는 똑같은 것을 안한다고 '표시' 내는 것도'마찬가지'이고.

그냥 우리는
'살아온대로' 주어진 현실에 그렇게 '나갈 뿐'입니다.

(221010 월새)
지켜내는 담 10.10 05:56
신약에 성전의 담은
 예배당의 '벽'이 아니라
  내 '생활'의
  내 '마음'의 내 한 주간의 담
  내 '언행심사'의 담입니다.

말하자면, '주일'은 성전 담입니다. 그리고 6일은 성전 밖입니다.
평일이라도 '예배 시간'은 성전 담 안입니다.

예배 볼 때에는 교인이고, 예배 마치고 밖에 나가면 순 막가는 인간이라도, 어떡합니까? '죄악 세상'인데..

평소는 뭣 같은 인간이나, 예배당만 가면 순한 양이 되더라.
(그것을 보고) '외식'이다 가짜배기다. 저러니 '욕'을 먹는다고 그러지만은,
'달리' 생각하면,
저런 흉악한 인간이 '그래도' 예배 시간이라면 조심을 하니, 예배 시간이란 '좋은 것'인가보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좋은 것입니다.

예배 시간이라도 인간이 '조심'을 해야, 그래야 '자꾸 자꾸' 나아질 것이 아닙니까?

안 나아지던데? '다시' 물어봅니다.
  하루 아침에 나아질 수 있습니까?
  자기 집 아이들도 막바로 인간 되었습니까? 20년 지나야 사람 되지 않았습니까?
  또, 20살 짜리 덩치만 크지 그게 사람입니까? 60은 되어야 철이 들지.

죄악 세상에 막 가던 인간들이, 주일과 예배 시간이라도 좀 '정신'을 차리니
그게 '생명'의 도이고 좋은 것이고 좋은 '출발'이고,

박수치면서, 너는 참 예배당에서는 좋은 사람이더라.
월요일 화요일에도 점점 '노력'하고 좋아지면 더 좋겠다. 이렇게 '경쟁'하고 박수치고 '기다려'주면

그래도, 교회가면 좋아지지, 더 나빠지겠습니까?


(221010 월새)
구별의 한걸음으로 10.10 06:27
아무리 죄악 세상이라도, '성전만'은 구약 몇 천년 동안 지켜야 합니다. 
담이 무너지면 '큰 일'납니다. 

내가 아직까지는 '부족'하고
신앙생활이 '연약'하여 세상과 살아가는게 다르지 않으나
  주일만은 날 중에 '다른 날'이요 
  예배 시간만은 시간으로 '다른 시간'이요
  내 마음 속에 주님 모시고 신앙생활하는 이 중심 이 마음만은 늘 '조심'을 하자.

그러면 '생명의 끈'을 잡은 것입니다.
저수지와 부엌 사이에 수도관이 '연결'이 되었습니다. 이제 틀어서 잘 쓰면 '자꾸' 좋아집니다.

(그러니) 한 술에 배 부르려 하다가 또 쓰러져 '낙망'하고 뭐 죽니 사니 그러지 말고,
매 주일 매일 매일 '하나만' 생각하고 걸어가다 보면,
천리길을 가도, 한 걸음씩' 계속 이어지면 '천리길'도 이어지게 됩니다.

바로 그 한 걸음을 가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천리길을 주저 앉아서 '실패'하게 됩니다.

(221010 월새)
적어봅니다 10.20 07:18
성경을 읽으며 이 말씀은 내게 뭘 원하실까? 가장 쉽게 처음 읽을 때 창세기 1장을 읽으며 그 1장을 다 읽어놓고 읽기 전에 이 1장에서 내 눈에 특별히 띄는 부분은 몇 절인가, 그리고 1장을 1절부터 끝까지 쭉 읽으며 그중에 특별히 눈에 뜨이는 한 절만 적어봅니다.

또 2장을 쭉 읽으며 2장에 3절이 눈에 좀 뜨인다, 8절이 뜨인다, 다 읽고 하나만 체크되면 그것만 적고 두 개가 눈에 뜨이면 두 개를 적어놓고 둘 중에 하나를 잡으려면 어느 것이겠는가?

이걸 기본으로 깔고 그다음 두 번째는 성경을 새로 창세기 1장으로부터 읽으며 이 성경을 읽으며 내가 틀려서 내가 부끄러운 내 양심에 가책되는 거 하나, 이런 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읽고, 읽고, 읽다 보면 저절로 성경의 말씀 속에 성령이 내게 필요한 인도를 그 빛을 알려주시는 그런 모습을 느끼며 깨달아 가게 됩니다.


(221017월새)
부탁 10.20 07:22
우리 공회교인들 우리 신풍교인들 잠언 전도서만 읽을 리는 없겠지만 잠언 전도서에 어떤 말씀들이 있는지 일일이 외우지는 못하고 다 인용은 못해도 그 정신 그 방향 그 표현은 어느 정도 익어질 수 있도록 자꾸 좀 읽어보셔야 됩니다.

우리가 그 면이 특별히 선천적으로 부족하고 후천적으로 부족하고 또 공회의 설교의 본문에서 잠언 전도서적인 것은 좀 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당분간 잠언 전도서, 또 때때로 잠언 전도서를 자꾸 읽어서 우리의 부족 우리 교회의 온전한 인격 온전한 행위를 위하여 잠언 전도서 특별히 이 아침에 부탁합니다.

(22.1019수새)
Category
State
336,365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