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17 주새 말씀 중 '막달라 마리아'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22.4.17 주새 말씀 중 '막달라 마리아'

옥미영 1 115 04.18 23:16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억센 남자적 신앙은 필요가 없고, 순종하며 소망하며 부족하여 보이나, 이 죄 많은 막달라 마리아 돌에 맞아 죽을 그 위기에 주님이 살려주신 죄인. 죄 없는 사람은 없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남이 봐도 죄인이고 자기도 죄인입니다. 그런 줄 알면 좋겠는데, 주님 앞에 자기가 의인되어 내놓을게 있으면 자신감이 있으면 그만큼은 주님이 채워주지를 못합니다...” (22.4.17 주새 신풍설교 중)

 

22.4.17 주새 재독(18.12.23 주새) 신풍교회 말씀 중에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를 돌에 맞아 죽을 그 위기에 주님이 살려 주신 죄인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혹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라는 말씀인지요?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6:1, 9)

 

4복음서에 기록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28:1, 16:1,9, 25:10, 20:1,18)는 예수님이 7귀신을 쫓아낸 그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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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영인 04.19 13:52
늘 조심한다는 것이 돌아 보면 실수가 곳곳에 있습니다. 정확히 지적해 주셔서 저도 다시 기억을 새롭게 다듬고 또 다른 문제에 반복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반복이 될 것이니 누구든 성경과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지적해 줄수록 서로에게 좋습니다. 아직 몇 가지 되지 않아서 한 곳에 모으지 않았으나 분량이 좀 쌓이면 게시판을 따로 만들고 모아 보겠습니다. 한 곳에 모으다 보면 사람에 따라 실수나 잘못도 하나의 흐름이 있어 저 자신부터 고치기에 좋고 또 이 곳을 이용하는 분들에게도 참고가 됩니다.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
* 성경으로 확인 되는 것은
부활 후 첫 목격은 막달라 마리아이며 일곱 귀신 들렸던 마리아가 맞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했던 마리아들 중에는 요12:1 막14:1 이하에서 베다니의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 형제;의 마리아가 예루살렘 주변에 살며 십자가를 앞두고 늘 들렀으며 십자가를 예비했다는 면에서 십자가의 마리아일 수 있고, 막달라 마리아는 당연히 포함합니다.

* 요8:3의 여인
간음 중에 잡한 여자의 경우 이름이 나오지 않고 십자가의 사활에 주님과 함께 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 성경의 오류는 혈전처럼 조심할 일
마리아가 여러 명이 있어 한 번씩 혼선을 빚습니다. 정확히 잘 짚어 주셨는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우리 주변에 하나의 상식이 되면 잘못 굳어지면 그 말씀에 대한 잘못에 더하여 우리 전체가 성경에 대해 동맥경화로 진행 되고, 이런 하나의 문제는 뇌경색을 일으키고 심장 마비를 가져 오는 혈전 하나와 같은데 잘못 가서 막히면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이단으로 가거나 엉뚱하게 큰 문제를 일으킬 혈전적 진행은 없을 것으로 보나 인체의 혈관에 혈전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현대인이 암보다 더 조심할 사안입니다.
 

(성경 인용에 실수가 있는 경우)
동방 박사는 '박사들'로만 나오고 예물이 3가지로만 나오지 3명이라는 명문은 없는데 '박사들의 예물이 3가지'다 보니 '3명의 박사들의 3가지 예물'이 성경 명문처럼 되어 버렸고 찬송가 가사에도 그렇습니다. 아니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 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이런 경우는 많으나 성경의 명문은 아니나 해석적으로 또는 교회 안에 성경 외적으로 내려 오는 이야기 정도에서 성경에 틀렸다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사용해 왔습니다. 누가 묻는다면 성경에는 없고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설교나 해석 정도다, 이렇게 안내할 수는 있습니다. 성경의 곳곳에 그런 내용은 많으나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사과를 먹다가 목에 걸렸다는 정도로 말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려워 할까 싶어 그렇게 말을 한다는데 이 것은 금지 사항입니다.

백 목사님의 경우 요8:3에 여인을 향해 8절에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리고 나서 지웠다고 꼭 하시는데 예수님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성경 전체를 강조하다 이 대목이 꼭 구체화합니다. 명문은 없습니다. 지웠다고 보기도 사실은 곤란합니다. 이 대목은 지웠다는 명문은 없고 그럴 가능성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우나 '예수님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성경신학적인 하나의 흐름 안에서 해석을 덧붙인다는 정도로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설교록 81.6.15.월새의 제일 끝에 보면,
... 죄 없는 자부터 돌로 쳐라 이래 다 갔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그 말은 이제 이것으로 끝나버렸다. 너는 희망이 있다 끝나버렸다. 나도 너를 끝난 것으로 하지 않고 네가 돌이켜 회개하면 얼마든지 앞으로 건설 있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해가지고 가는 것이 막달라 마리아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를 바로 알면 나갈 길이 있습니다. 이걸 바로 모르면 엉뚱한 길을 가 가지고는 헛일이라 그거요...

이런 설교가 있습니다. 부활 후의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일곱이 들었던 '더러운' 마리아이고 요8장의 여인은 간음 중 잡힌 '더러운' 여인인데 더러운 여인에게 새로 출발하도록 소망을 주셨다는 이 소망을 강조하다 보니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많은 성구 중에 더러운 여인이 애매하게 바뀌어 기억 되면서 발음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다 보니 성경으로 일일이 따져 봤어야 하는데 제 머리에 동방 박사는 세 사람이 성경에 있는 듯이 그냥 설교하다 그런 말을 했던 것처럼 된 듯합니다. 사복음서의 십자가 전후는 일반 교인들도 특별히 기억할 장면들이 많고 그 중에서도 제일 끝장에 있는 부활의 첫 순간은 누구든 기억할 만한 대목입니다. 정작 일반인이 잘 모르는 부분까지 자꾸 알아 나가다 보면 일반인조차 확실히 아는 대목을 오히려 실수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보일 때 바로 표시를 내어 수정을 해야 출발하는 학생이나 첫 신앙에게도 조심을 시키고 반복하지 않게 되고 저나 우리 공회 내에 애매하게 돌출 되는 곳곳의 버그를 평소 하나씩 해결해야 더 맑고 좋은 상태로 말씀의 고도화로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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