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출석과 중생과 신앙의 발전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교회의 출석과 중생과 신앙의 발전

서기 0 123 2022.02.28 16:55

어제 주일에 처음 교회를 출석하신 분을 전도하며 교회에 간곡히 부탁하신 동생 분을 위해 217번 글을 이어 보겠습니다. 

자기 가족을 교회에 인도를 하면서 특별히 그 마음이 뜨겁고 간절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 마음을 설명해 봅니다. 



(신앙의 첫 출발)
믿지 않던 분이 교회를 출석하는 경우, 본인의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먼저 다니는 분들의 전도로 시작을 합니다.

교회를 원래 모습으로 운영하면 안 믿는 사람이 교회를 출석해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절이나 다른 곳은 그냥 가 봐도 교회는 다릅니다.

다른 종교나 미신이나 이단에 속한 곳은 넓게 보면 세상이기 때문에 비록 낯설고 불편해도 가 보겠다면 가 볼 수가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람 마음 속에 소리 없이 역사하는 세상의 영이 집요하고 철저하게 막기 때문에 한 번 방문하는 것도 주저하게 됩니다.



(교회의 운영 방법)
우리가 교회를 세상적으로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따뜻한 방법을 다 배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생 되지 않은 사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중생이 된 사람은 처음 출발할 때 비록 불편해도 교회가 교회답게 운영이 되어도 별 문제가 없으나 중생 되지 않은 사람은 어렵습니다.

교회의 교인 숫자는 손해를 봐도 최소한 중생이 된 사람은 계속 다닐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니는 것이 어려운 구조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교회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선 교인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의 운영을 누구나 와 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본인을 포함해서 누구도 처음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태어 난 아이가 자기를 사람으로 태어 났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식입니다.

또 먼저 믿은 사람이라 해도 상대방의 마음 속에 실제 중생으로 신앙을 출발한 것인지 그냥 와 보는 것인지 알아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

중생은 요한복음 3:8에서 바람이 불어도 바람 자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흔들림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어쨌든 교회는 어떤 경우라도 열심히 전도합니다. 다만 중생이 문제이고 중생은 사람이 알 수 없고 또 노력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공회는 전도를 할 때 다른 교회의 '사영리'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 시키는 노력을 최소화 하고 그냥 '예수 구원'만 간단히 전하고 있으며

교회를 출석하겠다는 분이 있으면 교회가 신앙만 주력하고 인간적이거나 생활에 도움 될 면이 전혀 없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게 됩니다.

중생 때문에 신앙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도 좋으면 좋지만 신앙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장애가 되지 않고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른 마음으로 교회를 가 보려는 분들은 숨이 막혀 따라 나서지 못하거나 한두 번 출석하면 포기를 합니다.


이 것이 공회가 전도는 열심히 하되 중생 문제를 두고 교리적으로 또 교회 현장의 중생에 대한 과제를 가장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고

이렇게 해야 이미 교회를 잘 다니는 분들이 신앙의 침체기나 다른 호기심이 생겨서 교회를 세상으로 움직이려 하는 것을 막게 됩니다. 

신앙의 출발만 돕고 이미 신앙 생활을 잘 하는 분들에게는 교회가 속화 되지 않도록 막는 양 면을 다 고려했고 역사적으로 좋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가 친구를 맺고 여가를 활용하고 다양하게 취향을 맞추어 주면 중생이 없고 신앙을 피해서라도 다닐 수 있게 됩니다.


현재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가 불신자에게 종교답지 않다고 비판을 받고, 또 교회가 자신의 역사와 비교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답게 운영하는 원칙을 알지만 교인들을 확보하고 또 주변 다른 교회와 비교가 되는 면을 고려해서 좋은 인상을 심으려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 교회는 세상을 향해 지나 치게 변해 가지만 그래도 중생의 본능을 가진 분들은 자기 식구를 전도할 때 중생이 가장 중합니다.

그냥 오가는 교인이 아니라 주님을 구주로 꼭 모시게 되어 천국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애타게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출발과 주변의 노력)

본인이 직접 마음을 먹고 믿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주변 가족과 친구가 애타는 마음으로 전도하여 교회를 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주력해도 중생이란 인간의 노력으로 주어 지지 않기 때문에 중생 된 교인의 신앙 건설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다른 교회는 처음 믿는 중생의 체험에 주력하는 것이 우리보다 장점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나 그 노력을 참고합니다.

본인 노력이 없다 해도 가족과 주변에서 기도하고 애를 태우면, 그런 면을 보시고 주님이 믿기 싫은 분의 마음을 움직여 믿게 합니다.


본인의 노력보다 주변 노력으로 믿게 되는 분이 많은 이유는 한 몸이 기계적 하나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과 가족의 노력은 믿게 하도록 기도하고 설득하고 애를 쓸 때 사람의 이 노력 자체가 중생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니고 

이 노력을 보시는 주님이 주변의 노력을 보시면서 중생의 기회를 주십니다. 겉으로는 사람 노력으로, 실제로는 주님이 중생을 줍니다. 

우리는 양면을 알기 때문에 전도를 위해 노력은 하나 중생 자체는 주님이 주셔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늘 지켜 보며 애를 태웁니다. 


  


(중생에 주력하는 분들)
전도와 함께 중생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교회 교인들을 접할 때, 그 분들의 노력을 늘 부러워 해야 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리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어도 평소 사람이 성경 공부를 시키고 열심히 끌어 보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은혜 생활을 크게 하는데 

바로 이런 경험 때문에 중생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그 간절은 본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노력에 부족한 점이 있는지 돌아 봐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런 면을 포함해서 신앙의 갈 길을 인도합니다.


주일을 점점 잘 지키게 하고, 성경 읽기를 점점 잘 하게 해 드리고, 기도 생활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드리면 양 면이 함께 됩니다. 

중생 되지 않은 사람은 우리의 이런 노력을 보시는 주님이 중생의 기회를 주시고, 이미 중생 된 분들은 신앙의 건설에 좋습니다. 

중생과 신앙의 건설은 이론적으로 둘로 나눌 수 있으나 실제로는 섞여 있습니다. 교리에 밝은 분들 때문에 모처럼 한 번 적습니다.

새로 출발하는 분들, 우리는 늘 양면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새로 출발하는 분들 주변에 애타는 분들이 계실 때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서기님에 의해 2022-06-02 17:32:31 문답 / 발언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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