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의 새벽 예배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의 새벽 예배

사회 0 123 01.20 11:43
(신앙의 자기 책임)
최근 주일학교의 상황을 모두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시대적 상황에 교계적인 추세에 겹쳤다고 말을 하면 위로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선은 애초부터 역사까지를 포함해서 전 인류가 어떠하든 진리의 길은 모든 상황에 상관치 않고, 자신만 문제라고 했습니다.


(주교 부장의 새벽)
코로나 2년이 지나는 시점에 지난 2020년과 2021년을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이 현관에서 방역 대처를 새벽까지 완벽하게 해 왔습니다.
방역 책임 때문에 새벽예배도 늘 현관에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예배를 나오지 않은 일수가 많이 되었습니다. 현관에 숨은 셈입니다.

공회는 주교 반사도 새벽 예배 출석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반사는 신앙과 실력이 되지 않아도 기회를 드리는 사례도 늘 있습니다.
그런데 주교 부장이라는 자리, 개척 교회도 아니고 임시도 아닌 우리 교회의 주교 부장이 새벽예배를 계속해서 빠져 왔다면 사건입니다.



(부장과 학생의 새벽)
비록 전체는 아니지만 공회는 태어 나면 주교생이 되고 유치원을 가기 전부터 매일 새벽 예배 생활이 기본입니다. 어릴수록 잘 나옵니다.
초등 6학년까지는 대개 별 문제가 없고 중학생이 되면 학생에 따라 달라 지겠지만 주교 부장이 지도하는 학생들이 새벽예배를 나옵니다.
주교 부장은 장년반의 자기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이어 지는 주교 새벽예배를 인도해야 할 자리인데 그 예배는 다른 분이 맡고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 편하고 * 권한은 많고 * 이름은 더 높아지는 것은 세상에서도 망하는 조직의 특징이고 사람에게는 성인병이라 합니다.

공회가 목회자에게 매 2년 시무투표를 통해 조건 없이 사직을 하게 만든 것은 가장 위에 있으니 가장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주일학교는?
주일학교는 공회 교회가 가지고 있는 유일 기관입니다. 타 교단은 교회 내 기관이 수없이 많으나 우리는 주교가 전부이며 하나뿐입니다.
타 교단, 타 조직, 일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공회의 주교 부장은 그 교회의 2인자이며 하나뿐인 부목입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배도 조용하고 예배당에도 안팎에 표시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교의 부장에 대해 따로 중요성을 강조해 오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피난 가고 적장에게 빌고, 장군은 후방에 있고 일반 병사는 전선에서 피흘리며 싸우는 나라.. 조선이 그랬습니다.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나라는 대통령이 가장 호전적이고 장군은 피흘리며 전선을 거쳐 본 사람이어서 병사가 위를 보며 본을 받습니다.
공회의 교리는 교회 운영이 소리나 표시가 나지 않도록 부탁하고 또 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간절히 원하지만 공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읽고, 예배당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하며, 교인을 가장 많이 전도했고, 그들을 위해 가장 많이 희생한 사람이 누군가?

타 교단은 목회자 밑에 일반 기둥 교인들이 그렇게 헌신을 하고 목회자는 회장님처럼 시장님처럼 보기 좋게 다니는 경우를 좋아 합니다.
공회는 그 반대입니다. 목회자는 이런 기준을 가지고 시무 신임을 2년마다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주교의 부장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주교 부장은 교회의 여러 청년 중에 강단에서 아이를 가르치면 되는 교사 중 하나 정도일까요? 주교는 그 자체가 교회 내의 교회입니다.
학교 교사는 늘 가르치며 잘 아는 것을 평생 반복합니다. 자다가 가르쳐도 놀다가 가르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주교 부장도 그럴까요?

주교 부장이 가르치는 공과와 인도하는 주교 예배란, 학교의 학습이나 학원의 강의가 아니라 자기가 살아 본 생활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학교 교사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잠그라고 가르치고 채점을 할 때 점수를 매겨도 됩니다. 교회의 주교도 그럴까요?
부장은 새벽 예배를 빠져도 반사는 새벽 예배를 나오고, 반사는 새벽 예배를 빠져도 주일학생은 매일 출석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오는 것..
일반 반사는 신앙과 형편에 여러 형편과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반사에 그칩니다. 우리 교회 부장만은 그렇게 세우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직책이란)
귀신이 교회를 손 대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으나 제일 앞에 선 사람 하나만 끌고 가면 나머지는 손을 댈 것도 없이 다 마귀의 것이 됩니다.
타 교단은 이런 것을 몰라서 교회들을 자꾸 조직화를 하고 교회 위에 더 높은 자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공회는 최대한 자리를 없앴습니다.
현재 주일 오전 출석 190명이 넘어도 교회가 직접 임명한 집사가 20명이 되지 않습니다. 직책이 사람을 살리고 직책이 교회를 삼킵니다.
직책을 맡겨서 얻는 수입과 직책으로 망하는 결과를 계산해햐 합니다. 새로 모시고 자라 나오는 교인이 많으면 직책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새 교인을 모시기 어렵고 오래 된 교인만 많아 지면서 자라 나오는 사람조차 적으면 교회의 직책은 과거와 반대로 최소화로 돌아 섭니다.
80년대까지의 공회는 교회를 첫 출석해도 반사로 임명했습니다. 중학생도 반사로 임명했습니다. 세계 최대 주일학교가 되던 비결입니다.
이제는 교회 다니는 사람을 지켜 보며 스스로 교회 선택을 고민하는 때입니다. 교회가 직책 임명을 더 신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풍교회 주교 부장?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먼저 부장을 거친 분들은 어느 교회로 가도 괜찮을 목회자가 되거나 탁월할 분들이었습니다.


(과거의 사례)
그런데도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주교 부장의 직책을 기준으로 볼 때 새벽예배 등의 기본 생활에 빈틈이 보였고 이 때문에 교체했습니다.
다른 교회의 주교 부장 임명은 별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공회의 주교 부장은 공회 교회의 성향 때문에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에 목회직이나 목회직의 성격을 가진 직책만은 그 사람의 신앙 생명을 걸고 조심했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고 일이 사람을 만듭니다. 행정적인 일과 달리 목회적인 직책은 그 사람의 신앙의 전반을 살리기도 하고 뿌리를 뽑습니다.

한 사람에게 부장을 맡겨 그 사람은 좋아 진다 해도 다른 반사들과 학생 전체에 손해가 너무 많으면 그 때는 직책을 맡겨 놓지 못합니다.
애매하면 최대한 현재 맡은 사람을 붙들고 갑니다. 온 교회가 불편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붙듭니다.
그러나 새벽예배철럼 학생 앞에 신앙 생활의 기본이 되는 생활 문제가 있고 그 기간이 오래 가면 그 때는 이것저것을 가릴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이렇게 적을 기회가 없어 설명 없이 부장을 교체했습니다. 이제 편하게 적을 수 있고 모두가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적어 봅니다.


(부장은 목회직)
교인은 새벽예배를 출석하고 그 교회 목사는 새벽예배를 당연히 출석하지 않는 교회? 다른 교회들은 그런 일이 흔해도 공회는 아닙니다.
교인은 세상 돈을 벌어 교회 운영에 연보하고 목사는 그런 돈을 교인보다 더 아낄 수 있고 교인의 심정을 모르면, 공회 목회는 못합니다.
학생은 새벽예배를 출석하는데 주교 부장은 사업이나 가정에 바빠 새벽을 못 온다면 학생들에게 공부에 바쁘면 오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일반 반사 10명은 더 나은 분들이 많으나 주교 부장 1명만 실력으로 감당할 분을 모셔 놓고 나머지 반사에게는 기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장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반사 10명과 비교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비교를 하면 모두를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부장만은 반사의 원래 평균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반사가 부장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나아 가야 할 목표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부장이 현재 반사처럼 되면, 현재 반사들은 현재 주교생처럼 되고, 현재 주교생들은 타 교단처럼 세상을 향해 사방으로 흩어 지게 됩니다.
신앙의 원리와 현상과 결과가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쉬고 싶어도 온 교회에 미칠 영향을 계산해서 쓰러질 때까지 버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 목회자가 무리한다 싶으면 목회자의 건강 흐름을 아는 분들이 미리 쉬라고 합니다. 모두가 알 만큼 되기까지는 쉬지 못합니다.
미리 쉬면 교인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목회자가 몸 조심을 지나 치게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기억과 이런 모습은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십자가에는 미리 쉬어 피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알면서도 때를 놓치고 결국 몸이 망가 져 아주 큰 불편을 겪게 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가 쉴 때 다 쉬고 아플까 싶어 미리 조심을 다 하게 되면, 전체 교인들에게는 신앙으로 아주 흐트러지게 합니다.


공회는 역사적으로 충성하던 좋은 목회자들이 젊어서 일찍 죽은 경우들이 많은데 모두 이런 경우입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목회자가 자기 가정과 자기 건강을 일반 교인처럼 적당하게 잘 가꾸고 있으면 그 교회는 보지 않아도 에스겔 34:2이 될 수가 있습니다.
목회자 하나가 이런 문제 때문에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반 교인은 목회자의 수고를 지켜 보며 참고하면 됩니다.
주교 부장은 목회자가 아니며 목회 전임자도 아닙니다. 목회자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일반 교인의 수준은 지켜야 합니다.



(직책에 가장 중요한 사항)
일을 맡은 사람이 일을 잘하면 좋은 것이고 일을 더 잘 하면 더 좋은 것이지만 맡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계속성입니다.
한 때 잘하는 사람, 아무리 잘 해도 잘 하다가 어느 날 사라지거나 어떻게 되어 버리면 그 동안 잘 한 것이 오히려 이상해 지게 됩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 납니다. 연말 연초의 특별한 기간에는 생활이 흔들릴 수 있지만 그 것이 계속 되면 생활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일찍 잘 수 없게 된 원인을 해결하기 바랍니다. 혹시 그 해결에 돈이 필요하면 우리 교회는 주교 부장에게 사례를 지출할 수 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면 더 낫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받지 않는다고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게시물은 서기님에 의해 2022-06-02 17:32:11 문답 / 발언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서기님에 의해 2022-06-02 18:29:26 문답 구자료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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