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하나님께 받았던 경험과 지식은 건설구원에 어느정도에 해당될까?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받았던 경험과 지식은 건설구원에 어느정도에 해당될까?

교인 1 119 2021.11.01 18:50
이번 주 말씀의 주제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의 감화감동의 역사와 지금 현재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통해 영감의 역사를 계속 체험하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궁금한게 생겨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원형은 하나님, 그대로 베낀 자녀인 우리의 영.
이 영이 얼마나 빈약한 데에 자리를 했냐면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키우시기 위해 세상과 겪으면서 살아갈 육체의 몸에 넣어서 사람을 만들어주셨는데,
이 몸이 빈약하니 마귀의 속삭임에 그냥 선악과 먹고 바로 영이 죽었습니다.

이때 질문이,
1. 아담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때 영육으로 세상 최고의 복을 다 쏟아부어주셨는데

2. 이게 사실 경험과 체험이 없는 지식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귀의 속삭임에 더 약했을까요?
물론 지금의 우리도 자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담이 받은 복이 사실 아담한테는 과분한 것이었는지요.
아담이 받은 복이 그냥 하나님이 던져 주신 복이라는 의미와
지금 우리가 살면서 체험하면서 얻은 복과의 차이가 있을런지요?

3. 애가 타지만 그러니 아담은 선악과 먹은 것의 회개한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양심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스스로 알겠지만 아담의 후회가 성경에 보이질 않습니다.
생략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 있을까요?
아담의 죄의 결과 가인이라는 죄악을 눈뜨고 봐야할 상황까지 왔는데 아담의 반응이 안보입니다.

4.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만들어 천국에만 살도록 만든게 아닌 것처럼,
사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육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세상(에덴)에 풀어 놓은게 자유성을 길러가는데 부족한 환경이라 생각하셨는지,
마귀와 전쟁을 벌이는 속에서도 죽은 나를 살리는 주님을 보면서 자원함으로 따라오겠냐는 성령의 감화감동의 역사 속에 건설구원을 이룩하시는 게 목적이시기에,
오히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가졌던 하나님이 일방으로 내려 주신 영육의 복은 사실 그대로는 건설구원에 부족했을까요?
뭐든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물질이라는 육에 영을 끼워넣어 시간과 공간이라는 속에서 구원을 이루도록 기어코 이상한 곳에 가둬두셨습니다.
배운바로는 자유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장소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아담이 에덴에서 가졌던 영육의 건설의 정도(타락 전)는 지금 우리보다 못한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은 오늘도 세상과 사투하며 성경 읽는데
아담은 눈 뜨니까 영육의 복을 받았다고 하니 분명 다를 듯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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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교인1 2021.11.01 19:11
* 범죄 전 인간의 상태
인간의 첫 창조 때 주어 진 복은 '죄'가 없다는 점에서 완전이지, 발전적으로 완전은 아닙니다.

* 인간에게 준 자유성
자유성이란 그 훗날은 귀하기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지만 자유성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악과를 먹고 타락을 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가장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태어 나는 아이가 사람이기 때문에 귀하기 말할 수 없으나 이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투자도 많아야 하고 탈도 많고 만 가지 불행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자유성이란 초기에는 과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온갖 과정을 통해 길러 가게 되면서 그 훗날에 돌아 보면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것이 자유성입니다.

* 아담의 회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뒤 회개하는 모습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죽 옷을 입히시고 또 일과 출산의 기회를 통해 돌아 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런 면은 아담이 노력하고 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 진 것이니 이런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가죽 옷을 입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에 착수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믿은 이후에 일어 나는 일처럼 아담도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세히 기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기록에 아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성경의 생략입니다. 기록할 필요가 없거나 기록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입장을 살펴 본다면 재 구성하는 것이 별 어렵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녀들이 형제 사이에 칼을 드는 모습을 봤습니다. 성경에 이런 기록을 통해 아담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에덴동산에도 부족함이?
그 때나 타락 후나 환경은 늘 넘치게 조성합니다. 항상 문제는 우리의 선택, 우리의 자유성,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만 에덴동산은 창조의 첫 순간이고 지금은 세상을 마무리 할 시점이니 그 때보다 모든 면으로 지금이 더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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