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교인의 설교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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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9 07:40
* 10월 8일 금요일 새벽, 김영예
예전처럼 은혜롭게 잘 했습니다. 최근 1년 안팎을 통해 선생님의 설교가 예전에 비해 은혜가 일반적이어서 여러 번 기다렸습니다.
이 번에는 설교를 부탁하기 전에 예전과 최근을 비교하며 은혜 면을 지적했습니다. 설교자 내면에 여러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제 새벽의 설교는 예전처럼 잘 진행이 되어 다행스럽습니다. 교회로서는 언제 맡겨도 좋을 분들이여러 명이라야 든든해 집니다.
* 10월 9일 토요일 새벽, 오혜진
평소 약간 빠르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오늘 새벽은 눈에 띄게 설교의 진행이 빨랐습니다. 찬송과 본문을 불러 줄 때부터였습니다.
교인 설교는 대예배의 경우 정시에서 50분까지, 새벽 예배는 4시 50분까지 끝내도록 부탁을 하는데 시간에 쫓긴 듯 보였습니다.
설교 내용이 많으면 쫓기는 마음이 되어 빨라 집니다. 좋은 속도로, 또한 정해진 시간에 마칠 수 있도록 내용 조절이 필요합니다.
* 교인들께 설교를 부탁하는 이유는
1. 우선 설교자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는 부목사나 교육전도사 등을 통해 교회의 설교와 운영을 분담합니다. 공회는 최대한 1명의 전담을 원칙으로 합니다.
교회 운영비를 아끼고 목회자는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그 대신 모든 교인이 최대한 목회자를 대신하거나 분담하라는 것입니다.
교인의 신앙이 제대로 자라는 것은 남을 챙기고 설교를 할 때입니다. 다른 분의 신앙을 위해 노력할 때 자기 자신부터 자랍니다.
2. 자기를 살핀 말씀으로
설교 준비는, 평소 듣는 말씀에 '이런 부분은 몰랐다' '이런 면이 참 부족했다' '앞으로 꼭 이렇게 해야겠다'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 중에 우리 교인들과 함께 다시 꼭 복습을 해야 하겠다는 설교를 적어 두셨다가 설교를 맡을 때 그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됩니다.
먼저 내가 그 말씀에 회개하거나 각오하는 감동이 강해야 하고, 모두와 함께 다시 새겨야 할 필요가 있는 말씀이 우선적입니다.
3. 설교 진행의 자세는
설교의 진행 모습은 평범한 것이 가장 좋으나 설교의 내용은 준비도 진행도 그 내용이 일일이 먼저 자기를 향해야 옳게 됩니다.
자기를 꾸짖고 혼을 내고 자기를 각오 시키며 설교를 진행해야 하지만 표시를 내면 듣는 교인들이 불편하니 자세만 그렇습니다.
설교를 부탁 받는 사람은 평소 늘 말씀 때문에 조심하고 말씀 때문에 진지해야 합니다. 설교를 맡을 때만 서둘면 외식이 됩니다.
4. 현재 우리 교회는
원래 남반들이 설교를 참 은혜롭게 잘 해 오셨는데 10여 년 전부터 남반들의 설교는 퇴색이 되고 여반들의 설교가 은혜롭습니다.
김영예 선생님은 수도권에서 믿었고 신풍에 와서도 시내 교회를 다녔으며 사람도 신앙도 다 좋으나 우리와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전국 총공회 목회자 중에는 외부에서 온 유명한 분들이 많은데 설교를 고친 분은 없었습니다. 잘 하던 분이 고치기는 어렵습니다.
박해수 조사님이 교인 시절 공회를 전혀 모르고 왔으나 우리 설교를 잘 감당했고 여반으로서는 김영예 선생님이 같은 경우입니다.
공회 설교는 웅변이나 재미 있는 이야기나 세상 예화를 최대한 배제하고 본문만 살핍니다. 이런 설교는 차분함이 먼저 필요합니다.
본문 내용이 어떤지 먼저 살피고, 그 말씀 앞에 자기를 먼저 살피고, 그리고 우리 교인들도 함께 살피면 좋겠다는 자세로 전합니다.
성경을 혼자 깨닫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나 성경의 다른 면을 생각하지 못하면 실수할 수 있어 발표는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회적으로 세월 속에 확정이 된 말씀을 먼저 살피며 하나씩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알아 가게 되면서 실수를 줄입니다.
일단 교인은 자기 교회의 평소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교회든 말씀 자체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남이 말하지 않은 것을 먼저 발표를 해야 창작자가 되고 특허를 인정 받고 독창적이라며 환호를 받습니다.
신앙은 틀린 것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른 것을 하나씩 전하면 그 생명이 씨앗으로 자라 갑니다.
생명이란 아무리 작아도 자라면 나무가 됩니다. 주님께 붙들려 자라면 어디까지 자랄지 사람은 예측하지 못합니다.
설교도 신앙도 목회자가 되는 것도 특별한 사람을 특별히 양성하는 것보다 각자 자기 현실에서 말씀 순종이 먼저고
말씀에 붙들려 사는 것이 주님과 연결인 생명이며 이 신앙의 생명이란 말씀을 바르게 살피는 것으로 출발을 합니다.
그래서 차분히 한 말씀 한 말씀을 잘 새기며 자기를 돌아 보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전하면 '생명'의 출발이 됩니다.
다른 교회가 보면 신학교도 신학적 교육도 없어 시시하게 볼 수 있으나 우리는 다윗의 매끄러운 돌을 소중히 봅니다.
최근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공회 곳곳의 교인들이 있어 우리 교인들과 함께 읽도록 모처럼 설교에 대해 적었습니다.
목회자로서 평생 한 번도 자기 설교를 만족한 때는 없습니다. 교인으로서는 더 어려운 짐이나 그러면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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