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본 '결혼의 통계' - 잘 사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분들

문답 / 발언

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모든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돌아 본 '결혼의 통계' - 잘 사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분들

사회 1 422 2021.02.12 12:07
통계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다. 그런데 전체가 흘러 가는 방향을 보여 준다.
한 경우를 가지고 전체가 그렇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전체의 통계가 참고는 된다. 통계에 해당이 되지 않아도 알면 참고가 된다.
결혼을 주선한 일이 많았다. 지켜 볼 기회도 많았다. 오랜 세월 많은 경우를 지켜 보면서 내게 확신을 주는 통계가 있다. 참고하면 좋겠다.
다음 사례는 이 글을 읽는 우리 교인과 공회 교인과 총공회 전체 교인이라면 한 사람을 통해 알아 보면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경우다.


▪ 고를수록 손해 본다.
① 1970년 경이다.
공회 교인은 대략 짐작 할 만한 분이 집안으로 아저씨가 된다. 결혼을 하게 되어 집안 어른들이 둘러 앉아 하도 말을 해서 기억에 남는다.
집안의 신앙이 모두 좋고 사람도 모두 좋다. 이 분은 실력도 좋았다. 키는 작고 얼굴이 검었다. 그런데 인물을 고른다고 결혼이 늦어 졌다.
당시는 20세면 결혼을 했으나 고르느라고 10년은 늦어 졌다.어른들 말이 '그렇게 그렇게 고르고 고르더니 결국 그렇게 골랐네...'라 했다.
어린 내게 이 장면은 평생에 과제가 되었다. 고를수록 나은 것을 가지는 것이 통계인데 왜 반대로 말을 할까? 결혼만은 이 푸념이 맞았다.
그 분의 결혼도 시내 알 만한 분들에게는 화제였다. 이 일 후에 내가 유심히 지켜 본 결혼들이 항상 그러했다. 어른 말은 들어 볼 만했다.

② 1980년대 초였다.
주일학생의 형님이 2금융권 직원인데 군에서 믿게 되었고 서부교회를 출석했다. 고생한 부모님 때문에 결혼해도 부모님을 모신다고 했다.
서부교회는 이 정도 직장을 가진 남성이 거의 없다. 성실하고 직장까지 좋다 보니 선이 줄을 이었다. 30곳 정도 선을 봤다는 말을 들었다.
서부교회는 교인이 많고 선 보는 절차가 간단하다. 이 분은 누구와 선을 봐도 좋다고 했다. 아가씨들은 선을 보고 나면 안한다고 돌아 선다.
만나서 대화가 진행 되면 아가씨들은 모두가 좋아 했지만 이 분은 마지막 말은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되면 끝이 났다.
마지막 선 본 분도 그러했으나 공회 목회자인 아버지의 입장 때문에 고민을 하다 결혼을 했다. 두 분은 평생 참 잘 살고 있다. 늘 생각한다.
신부는 30명이 모두 고개를 돌리는데 아버지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신랑은 어떤 여성이라도 부모만 모신다면 무조건 결혼을 한다 했다.

③ 1980년대 후반이다.
20곳 이상을 선 보고 전부 거절한 분이 있었다. 앞에 말한 분과 결혼을 두고 자세가 반대였다. 신앙도 좋고 직장도 좋아서 대상은 많았다.
이 분의 형제들은 서부교회와 공회에서 신앙 집안으로 알려 졌다. 그 많은 아가씨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남자가 거절했다.
이 분은 여성의 얼굴도 보지만 여성의 인격과 행동도 살폈다. 사과를 깎아 보게 하면서 품성과 살림 살 손까지도 세심히 살피는 분이다.
선을 보고 나면 여성은 모두 결혼을 하겠다는데 이 분이 모두 거절했다. 마지막 본 사람이 20명째라는 말도 있고 30명째라는 말도 있다.
드디어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그 결혼의 처음을 알고 중간을 알고 마지막을 안다. 그렇게까지 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런 정도로 얽히고 깨어 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뢰밭'이라고 한다. 철원에서 근무할 때 주변에 지뢰밭이 많았다. 방법이 없다.

④ 2000년대가 되었다.
선 보러 가면 신부에게 총공회 노선 교육을 시키는 분이 있었다. 나는 신앙이 좋은데 조금 지나 쳐서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과시였다.
한 번은 다른 공회지만 가정의 내력과 아가씨의 20년 넘는 신앙 생활이 우리 공회 누구보다 낫고 이 남자보다 훨씬 나은 사람을 소개했다.
선을 보면서 총공회 노선을 문답해 가며 가르치고 왔다.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그냥 거절하면 되는데 신앙과 노선을 거론했단다.
이 사람의 신앙과 이 사람의 노선이 괜찮다면 최소한 자기 모순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결혼을 했다지만 교회 내에 결혼 사실도 감추웠다.
부인은 타 교단이다. 서로 평생 교회를 달리 다닌다. 이 분은 교회는 한 몸이니 공회 교회들조차 교회 별 재산을 나누면 안 된다고 외쳤다.
이 분의 이런 행동 때문이 아니라 이성을 초월했다는 언행이 많아서 사람을 고르는 것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알고 보니 상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선 본 것은 전도 강연이었나? 상대방은 뭐가 되나! 많은 사람을 추천했었다. 가정과 신앙, 둘 중에 하나는 최소한 파탄이었다.

⑤ 2010년대였을 듯하다.
공회 결혼을 한다는 분이 계셨다. 공회 아가씨와만 결혼을 한다고 했다. 아가씨를 소개하면 아가씨로서 거절하는 분은 보지 못했다.
공회 내에 조금이라도 가능할 만한 분은 전부 다 주선을 해 드렸다. 이래서 저래서 안 된다는데 구구절절 모두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결혼한 분은 공회 외부 분이었다. 신부의 얼굴을 본 분들이 내게 말을 한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며 얼굴이었다 한다.
그 분에게 제시한 공회 여성 중에는 마지막에 결혼한 분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나는 억울하다. 그 분도 분명히 억울할 듯하다.
바로 앞에 예를 든 분도 억울해 할 듯하다. 그런데 나 주변에 알 만한 분은 모두가 내게 너무 순진해서 어떻게 목회를 하느냐고 충고한다.
어떤 분은 내게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며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변 분들은 내게 '남자의 마음조차 알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사람이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계를 통해 방향 정도는 자연 계시 차원에서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회 결혼'을 내 앞에서 외치는 분들은 그 누구의 말이든지 다 믿는다. 믿어 진다. 믿어 지도록 나는 내 마음과 생각을 맞춰 버린다.
이런 나의 자세를 다른 분들은 '공회'만을 앞세우면 순박하고 속는다며 어떤 사람은 나를 활용하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 내게 조심을 한다.
그런데 나대로 계산이 있다. 공회 때문에 생활비를 받는다. 그러니 밥값을 해야 한다. '공회' 말이 나오면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
세월이 지나면 결혼에 나선 이들이 '공회 결혼'이었는지, 아니면 '공회 결혼'을 미끼로 삼고 낚시를 했는지 열매를 통해 나무를 알게 된다.
나대로 결산을 해 본다. 결혼을 두고 까다롭게 추진한 사람은 결혼 중 많은 고통을 받는다. 딴 마음을 먹었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갚는다. 




▪ 다른 자세로 결혼을 하면

한 사람은 그냥 하나님의 인도만 믿고 신앙의 결혼 원칙에 따라 자기를 마치 내 버리듯 결혼에 나서고 부부 중 한 사람은 그 반대였다면?
한 부부로 함께 살지만 신앙의 원칙에 따라 자기를 내 던진 사람은 남이 알도록 표시를 하시든 혼자만 알게 해 주시든 결과를 보여 주신다.
공회 결혼을 앞 세워 놓고 뒤로는 치밀하게 두고 갈 세상 기준으로 상대방을 고르고 따지고 살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누가 봐도 공회 때문에 좋은 사람을 가진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본인은 좋은 사람을 고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참 적다.
문제는 우리는 서로 오판도 하고 오해도 하지만 지켜 보는 주님은 한 행동 한 생각 한 결정을 일일이 지켜 본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짧게 보면 누구는 억울하고 누구는 횡재 한 것처럼 보인다. 횡재 한 사람일수록 자세와 표현은 감사와 거리가 멀고 억울한 모습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의 결혼을 위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세상의 일반적인 조건을 쉽게 버린 사람은 다시 2가지 종류로 나뉘어 진다.
한 사람은 세상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 기준으로 주님 주신 현실을 따라 순종했으니 억울해 할 것 없이 결혼 생활에 성실한 분이 있다.
다른 사람은 신앙 기준으로 순종하면 뭔가 큰 복이 바로 올 줄 알았는데 덪에 걸려 고생한다며 얼굴이 어두운 경우도 있는데 대개 이렇다.
그러나 잘 따져 보면 주님은 하우하박이 없으시다. 공평의 하나님이다.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신다. 많은 결혼, 많은 가정을 보며 느낀다.



▪ 성경을 살펴 본다.
① 꾀가 많고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
신약에서는 사라에 대한 결론을 극찬했다. 벧전3:6, 히11:11, 롬9:9 등을 통해 일관적으로 사라를 위대하게 적었다. 창세기는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과 20장에서 두 번이나 아내를 남에게 넘겼다. 아이가 없어 양자를 들였고 하갈 때문에 흔한 질투 싸움도 있었다.
아브라함은 급할 때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동원했고 특단의 '조처'를 취했다. 그로 인해 참으로 많은 일들을 만들었다. 아브라함도.

손주가 되는 야곱의 결혼 생활은 성경 전체를 통해 가장 자세히 적어 주셨다. 별별 말을 했고 별별 마음을 가졌고 별별 조처를 다 취했다.
그대신 야곱의 평생은 자기 스스로 가시밭을 헤집고 다니는 짐승처럼 죽을 고생을 했다. 130세까지 죽을 위기 그 이상을 수 없이 겪었다.
아들이 되는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달랐다. 주님의 주권에 맡기고 만사를 차분히 처리했다. 심지어 아내와 야곱에게 속기도 했었다.

② 하나님은 돌부처가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자주 적어 놓았다. 우리를 기르기 위해 우리에게 자유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급하면 하나님을 찾고,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교인이 돌부처를 찾듯 우리는 하나님께 중언부언을 한다. 마6:7에서 이는 미신이 된다.
하나님이 최대한 지켜 보시니 우리는 하나님을 심지어 돌부처 정도로 취급을 한다. 마음대로 사용하다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되는 줄 안다.
하나님을 쥐어 박아도 하나님은 아프다 하지 않으신다. 쥐어 박은 것도 우리의 착각이지만 아프지 않다 하지 않으신다. 모두 계산을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중간 결산을 좀 일찍 해 주신다.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아주 버린 사람에게는 그냥 놔 두신다. 아주 망하라고.



▪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① 하나님의 역사는 때가 있다.
장마철에는 물이 흔하다. 그러나 이 때 모아 두지 않으면 갈수기가 온다. 늘 장마철일까? 그렇지 않다. 종류 별로 철이 있다. 기회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공회 우리를 돌아 보자. 어떤 때는 새 직장의 기회를 대거 주셨다. 어떤 때는 학생들의 진학의 기회가 너무 쏟아 졌다.
우리가 원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쟁취한 것도 아니다. 밤이 되니 어둠을 가지는 것이 쉽고 낮을 주시니 빛을 찾는 것이 쉬운 것처럼 그랬다.

② 결혼의 때도 따로 있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가정이 있다. 공회적으로 지금 결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몰아 주시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 정도는 그 반대였다. 또 그 앞에 5년도 결혼의 기회가 쏟아 졌었다. 가을에는 먹을 것이 너무 넘친다. 그리고 겨울은 굶어 죽는다.
가을이 되면 먹을 것이 많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이 있다면 곧 사라 질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잘 모아 둬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가을처럼 먹을 것이 많을 때 슬슬 즐기고 다니면 겨울에 굶어 죽어야 한다. 굶어 죽지 않도록 하라고 이 글을 적는 것이다. 곰은 준비하다.

③ 교회가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
느긋하게 웃을 때, 여유가 만만할 때, 만사 잘 나갈 때... 늘 그럴까? 아니다. 만사가 잘 나가면 지금이 산 꼭대기다. 이제 내리막이 닥친다.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힘이 들어 더 이상 나아 가지 못할 때.... 늘 그럴까? 아니다. 이제 곧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찰나다.
현재 결혼을 서둘지 않고 느긋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5년에서 그치지 않고 10년 또는 20년을 애 터져야 할 수 있다. 아예 놓칠 수도 있다.
아이의 출산도 그렇다. 언제든지 내가 마음 먹으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조절하다가 어느 날 아이를 원하는데도 주지 않게 될 수 있다.

공회는 세상의 여러 추세가 한 세대 늦게 온다. 세상과 좀 떨어 져 살기 때문에 세상에게 받는 영향이 더디다. 그렇다고 면제 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 나고 있는 현상들.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길이 다 막혀 버리는 상황이 세상에는 이미 들이 닥쳤다.
공회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 때문에 공회 남자들이 느긋하게 암산을 해 가면서 마음만 먹으면 공회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다른 계산을 하는 것은 세상 기준이다. 나중에 마음 먹으면 결혼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공회 결혼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비겁하지 않은가? 세상 기준으로 지금 결혼을 속셈하고 있다면 뒤에 공회 결혼을 구명줄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질 마음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가 교인에게 섭섭했다 해서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늘 최선을 다한다. 바로 이런 노력을 슬쩍 감을 잡고 활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내면을 살피며 따로 개입을 하신다. 교회가 어떻게 해 주기 위해 몸부림을 쳐도 하나님이 막으면 별 도리가 없게 된다.

그래서 지금 잘 나갈 때, 지금 느긋할 때, 지금 뭔가 자기 속셈으로 계산을 할 때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자 한다.
또 지난 날 형편이 좋을 때 자기의 권리를 자유롭게 사용했다가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는지 돌아 보자.
그리고 기회를 놓친 뒤 히12:17에서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기회를 얻지 못한 에서가 되지 않도록 부탁한다.

이 좋은 연휴에
정신을 차리도록 부탁을 한다.

이런 글이 잦을 때는 겨울이 바로 들이 닥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이런 글이라도 발표해 달라 해도 하지 않게 된다.

[이 게시물은 서기님에 의해 2022-06-02 17:31:26 문답 / 발언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서기님에 의해 2022-06-02 18:28:34 문답 구자료에서 이동 됨]

Comments

교인 2021.02.14 20:58
불신 가정의 먼 예로 오늘 사례로 참고로 읽어 보시면 됩니다. 형제들이 많다 보니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아직도 중년을 넘어 환갑이 되도록 혼자 사는 식구들도 있습니다. 첫째는 20대 초반에 정식적인 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가 조금 켜서야 식을 올리고 사는 모습이 둘째는 여러 선보다가 군필이 안되어 어떻게 소개로 결혼은 잘 했지만 여자가 힘들어 집을 나가 아들 둘만 데리고 사는 모습을 세째는 청년의 때 중매가 들어 와도 본인이 마다하니 지금은 60으로 형제중에 돈은 가장 많으나 매일 고추와 된장만 먹고 산다고 하는 처량한 모습을 네째는 어뚱한 곳에서 만나 다시 헤어진 후 다시 결혼하여 그러저럭 아들 딸 둘 낳고 살고 다섯째도 중매의 요청이 여러건 있었으나 본인이 마다하니 지금은 외롭게 애완견 데리고 살고 있고 여섯째는 유일하게 공회 결혼을 순종으로 하다보니 지금은 제일 형제들중에서는 자녀가 제일 많고 그럭저럭 가정 모양새가 있게 살고 있답니다.

결혼의 출발은 제일 좋기는 사회자의 안내 처럼 어른이 하라고 할때가 가장 좋고 어지간하면 세월을 훨씬 살아온 부모나 신앙선배들의 충고를 단마음으로 순종 할 때에 오는 복이란 이루 말할수 없도록 부어주시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초중고는 제때 가면서 결혼은 제때 못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초중고는 제때 못가면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결혼은 제때 못가면 이상하게 보지 않는가? 다 부모의 교육이 제대로 못되어 한없는 부족을 깊이 회개하는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누군가의 큰 수고로 봇물 터지듯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얼른 주어 담기만 하면 참 별것? 아닌데 기회가 지난후 아무리 가질려고 해도 갖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을 누구에게 원망하려고 해도 정작 자신이 최고의 강한 원수라는 사실을 뒷늦게 안들 무엇하겠습니다.

초중고 학창시절은 공부를 조금 못해도 인생 사는데에는 큰 영향 큰 불편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 시작의 출발과 생활은 인생 사는데에는 큰 막대한 영향이 큽니다.
기회가 지난후 더 좋은 것이 오겠지? 이런 유혹적인 뱀의 지식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위에서는 단단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지혜롭게 오늘에 단마음으로 복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좋은게 좋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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