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밤20.5.4 계2:1 일곱 교회 별 특징에서 자기 내면의 신앙 문제를 살펴 말세적 성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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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밤20.5.4 계2:1 일곱 교회 별 특징에서 자기 내면의 신앙 문제를 살펴 말세적 성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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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 교회 : 처음 사랑으로 살고
* 서머나 교회 : 주님과 하나 되어 끝까지 나아가고
* 버가모 교회 : 순교를 하지 못하면 순교를 부러워 하고
* 두아디라 교회 : 사업주의로 이탈 되지 않도록 하고
* 사데 교회 : 주변과 비교하여 잘 믿는 줄로 착각하지 말고
* 빌라델비아 : 거룩과 진실로만 나아 가고
* 라오디게아 : 열심을 내어 나갈 것


    설교요약

① 월후 : 종말
 - 현실은 한 번뿐이니 종말이며 말세이므로 예수와 그리스도의 구원 기회로 매 순간을

② 월밤 : 일곱 교회
  - 처음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끝까지 나아가며 순교를 두려워 말고,
    사업주의와 스스로 잘 믿는 줄 아는 곁길로 이탈하지 말고
    거룩과 진실의 쉬지않는 열심으로만 끝까지 나아갈 것




200504 집회 2 (월밤)

제목 : 일곱 교회 별 특징에서 자기 내면의 신앙 문제를 살펴 말세적 성공할 것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절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년년이 개최의 은혜를 주셨는데 당연히 받을 줄 알고 개최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소홀했던 우리를 재촉하시려고 천하를 소동시켜 먹는 것도 은혜요 물 한 모금도 은혜요 하룻밤 평안도 하늘의 크신 은혜임을 알려주시려고 공기 전파를 통해 천하를 한번 경고시켜 주신 주님, 크게는 오실 날이 가깝다는 뜻이고 매 현실이 주의 은혜로만 감당해야함을 절감하게 해주셨으니 이 저녁 함께 모인 저희들 천의 하나 만의 하나 불러 귀한 이 길을 부족한 저들에게 열어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눈으로, 만물도 만 인간도 천하의 운동과 모든 현상들도 주시는 기본구원의 예수님을 찾아내고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자라가는 건설의 신앙의 요소와 훈련과 실상을 능력으로 만드는 매 기회 기회가 우리의 있는 힘 다 기울여 주력해야 될 이런 가치 하늘의 가치 지고의 가치임을 재촉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이 시간되게 하시고, 말세를 주시며 에베소 교회를 우리에게 먼저 주시고 서머나를 주시며 일곱 교회를 통해 내면을 정확하게 복합적으로 확실히 살펴 무식해도 못나도 어려도 환하게 알아 갈 수 있도록 계시로 적어주신 주님, 성령으로 이 시간 친히 각자의 마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계시록은 22장까지 있습니다. 오후 첫 시간 서론으로 1장을 먼저 살펴봤습니다. 1장은 크게 내용이 3가지였습니다. 계시. 두번째는요? 하나님. 세번째는 교회. 말세를 기록한 계시록.

안 믿는 사람도 눈으로 오시는 주님을 보면 세상은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는 주님을 함부로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눈으로 보면 좋겠다가 문제가 아니라 불신자도 눈으로 보는 날에는 역사의 기회는 없어집니다. 역사적 종말. 오늘 우리의 심령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주님을 현실마다 오실 때에 오시면 재림, 보여주는데 보면 계시. 이 일을 위하여 주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마련하여 교회로 보고 교회를 만들도록 계시를 주셨으니까 첫 시간의 마지막 요한이 철 없을 때의 주님은 눈으로 봤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다시 보며 요한은 실력이 많이 자랐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고 이제 주님을 잘 안다고 생각을 하고 평생을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마지막 주일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는 현실에 내 몰린 다음. 뒤에서 나는 성령의 음성을 나팔소리처럼 환하게 듣고 오늘까지 잘 믿어 온 자신의 걸음이 만족하고 잘된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보니 새로 보이는 주님은 지난 날에 본 주님과 차원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을 우리에게 기록해주기 위하여 요한이 절정으로 본 주님을 1장 12절부터 20절까지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본 요한은 엎드러져서 죽지는 않았으나 죽은 자가 되버렸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안다고 안다고 안다고 생각한 주님은 다시 볼 때에 요한의 눈이 어두워 잘 못봤던 주님입니다. 요한이 새로 본 주님, 그 주님이 일곱 촛대와 일곱 별을 붙들고 촛대는 교회, 별은 교회를 책임진 종들. 그 둘의 관계에서 비밀로, 비밀은 비결입니다. 비결로 우리에게 오늘 저녁의 첫 말씀.

에베소 교회를 일곱 교회의 종류 중에 첫 번째 종류로 주셨습니다. 일곱 교회는 한번 다 같이 읽어보면서 기억하십시다. 22페이지 위에입니다. 에베소 시작.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7교회를 보았다. 그때도 7교회가 넘었고 지금도 교회는 몇 개인지 모릅니다. 좁히면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믿는 가정 한 가정 가정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교회도 교회입니다. 얼마나 많겠습니까? 너무 많으면 알기가 어려워 일곱가지 종류로 딱 추려서 첫 번째가 에베소이다. 두 번째가 서머나이다. 순서대로 적으셨으나, 어떤 사람은 에베소적인 장점이 있는데 서머나 교회 장점이 없는 사람도 있고 일곱 교회 중에 다섯 교회의 장점은 가졌으나 두 개의 단점만 가진 사람도 있고 이렇게 복합적인데 일곱교회로 가르쳤으니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를 한번 보고 살펴보십시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 2장 4절에 보면,  교재 22페이지 중간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한번 따라해보십시다. 처음 사랑. 아이를 놓고 아기 엄마가 고생하며 낳은 아이를 보며 내가 너의 평생을 책임지겠다. 이런 각오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뜨거운 결실이 남녀 이성이 처음 만나 첫눈에 빠져버린 처음 사랑 근처는 가지를 못합니다. 오래가는 것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지마는 뜨겁기로 말하면 남자 여자가 어느 날 첫사랑으로 만나놓으면 이게 그렇게 뜨겁습니다. 여기 처음 사랑을 두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에베소 교회에 찾아오신 주님. 1장에서 봤다.

주님이 요한을 찾아 오셨고 요한은 되돌아보며 주님을 봤었습니다. 어떤 주님인가? 찾아오신 주님.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별이라는 것은 1장 20절 마지막에 교회의 사자, 교회의 책임자, 교회의 인도자, 가정 교회의 신앙의 인도자도 일곱별. 또 구역의 신앙으로 앞서는 사람도 별.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모든 교회의 앞세운 사람은 사람이 앞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셨구나. 하나님이 붙들어 앞세웠구나. 그러니 앞선 신앙자들은 겸손해야 되겠구나 자기 실력이 아니라 주님이 치켜 올렸고 붙들고 계시니까. 누구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라” 촛대라는 것은 촛불을 올려놓는 등대를 말한다. 그 등대. 이 등대가 바로 교회라. 1장 20절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지난 번에 배운 성막 공부에 성전은 지성소가 있고 성소가 있는데 성소의 일곱 금촛대를 만듭니다. 불을 밝히도록 불을 올려놓는 등대. 등잔.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를 모르는 세상에 이게 하나님이다, 이게 천국이다, 이게 신앙의 길이다, 이게 틀렸다, 이것은 옳다 이렇게 밝혀주고 보여주는 위치, 역할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보니까 천국이 보이면 교회입니다. 교회를 보니까 돈벌이가 보이면 등대가 아니고 교회가 아닙니다. 기업이지. 교회를 보니까 부부의 사랑은 넘치는데 주님 사랑이 빠져버리면 가정 상담소가 되지 교회는 아닙니다. 빛이 없어 볼 수 없는 세상에 옳다 틀렸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모든 것을 환하게 보여주는 역할, 위치를 불이 그렇게 밝히는데 그 불의 위치,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금 촛대의 금이란 변치 않고 영원토록.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로. 이 땅위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 이 땅위의 모든 교회들은 전부 주님이 오른손으로 주의 종들을 붙들고 교회마다 그 사이를 돌아보며 관리하며 직접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만 주님이 붙드는 것이 아니라 교인도 교회도 그 사이사이를 주님이 다 돌아보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가 보이는데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이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에 다니시는 이가.

교재 24페이지입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성경에 2장 2절을 함께 보십시다. 손꼽아 가며 읽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예. 몇가지를 헤아려봤습니까? 혜인이 헤아려봤나요? 금방. 한번 볼까요? 교재를 봅시다. 다같이 손꼽아서. 첫번째는 뭐라고요? 행위. 두번째는요? 수고. 세번째는? 인내. 네번째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하고. 다섯번째는요? 악한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말, 거짓된 것을 밝혀버렸습니다. 그 다음 여섯번째는요? 인내로 참았습니다. 참음. 참음은 인내입니다. 일곱번째.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게으리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여기 행위라는 것은 신앙에 좋은 실행입니다. 신앙 생활에 깨끗하고 훌륭하고 하나님이 볼 때에 옳다. 그 네가 다른데에는 지각해도 주일 예배 시간에는 지각 안하려고 노력하는 것 시시하게 보여도 옳은 행위입니다. 너만 와도 되는데 옆집에 한 사람 챙겨오느라고 얼마나 귀찮았을까? 이것도 행위입니다. 옳은 행위, 좋은 행위. 많은 행위 중에 힘이 덜 들어가는 것도 있고 힘이 더 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행위, 두번째는 뭐라고요? 수고. 행위들 중에 노력이 무척 들어가는게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참석합니다. 집회는 여기까지 오려니까 보통 수고가 아닙니다. 오신 것 잘못 된 건 아닙니다. 주일 참석도, 새벽예배 참석도, 집회 참석도 하나님이 다 칭찬하는 좋은 행위입니다. 그런데 집회까지 참석하려니까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별한 수고. 이렇게 힘들여 옳은 행동을 하다보면 한번은 하고 두 번은 하는데 이어지고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 이 교인들은 첫 번째는 옳은 행위, 많은 행위들 중에 힘이 드는 수고의 행위도 하고 그 수고, 힘이 들어가는 것은 계속하기가 어려운데 인내로 계속했고 세 번째, 그렇게 힘들여 잘하는 것 뿐이 아니라 교회 안에 악한 자기 중심이 들어오면 적은 누룩이 모든 신앙을 다 상하게 하는데 자기 중심의 악한 자들은 골라내고 이것은 틀렸다. 옳은 행위, 특별한 수고, 계속되는 인내에다대고 섞여 들어오는 잘못된 것은 또 골라 내버리고 네 번째, 그냥 용납하지 않는 것은 쉽지만은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 살펴서 이유와 원인을 알아야 아는 가운데 자랍니다.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다섯 번째, 이렇게 계속하여 견디는 것이 어려워도 지나가는 것이 참음입니다.

여섯 번째, 거기다가대고 주님의 이름, 구원의 주님의 역사를 감당하고 견디고. 이렇게까지 모든 것은 잘하다보면 신앙으로 굉장히 앞선 사람이 됩니다. 또 신앙에 익숙해져서 노련해진다. 잘 믿고 오래 믿고 신앙에 앞서게 되면 그만 방심하다가 게을러집니다. 처음 믿을 때에는 처음이니 열심내기가 쉽습니다. 또 목회자가 끌어주는 교인들은 보는 눈이 있어서 게을르려다가도 챙기니까 열심 내기가 쉽습니다. 목사가 되어놓으면 어느 귀신이 노리고 있는가? 감독이 없으니까. 보이는 감독은 눈먼 감독이고 안 보이는 하나님의 눈은 불꽃과 같은 눈동자인데 믿은지 오래되고 목회에 실력자가 되고 어른이 되어놓으면 그만 어른이 되어가지고 충성이 부족하고 게을러지기 쉽다. 우리 노선을 연 백 목사님은 80세에 가셨는데 1989년의 남자 80은 요즘 100살정도 되는 연세입니다. 가는 날까지 주일 새벽기도까지 인도하다가 가셨습니다. 적어도 게으르지는 않았다. 주님을 보니까 못 그러는 것이다. 건강을 조절하기 위해서 정말로 더 충성을 하기 위해서 한번을 쉬는 것인가? 그 핑계를 대어 어른이 되어 주저 앉는가?

에베소 교회는 이런 8가지의 모든 행위가 전부 다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칭찬하셨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렇게 에베소 교회에 주님이 오셔서 평가를 하시고 7-8가지로 칭찬하셨는데 4절에 그러나 이렇게 훌륭하고 많은 좋은 일을 한 에베소 교회에 책망할 것이 있나니. 따라합시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8가지나 잘했으니까 처음 사랑은 깜빡 잊을 수도 있지? 그런데 계시록 1장에 가니까 계시록 1장의 주님이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님을 보여주고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고 그래서 예수님을 닮고 그리스도가 되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가 되어 주님 앞에 서야 될 터인데 이 일을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주님은 사활의 대속으로 하나님인데 피 흘려. 피는 생명이라 했습니다. 생명을 바쳤다라는 말은 주님의 모든 것을 다 쏟아, 신인양성 일위의 전부를 다 바쳐. 우리를 구원한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떼어내버리고 에베소 교회가 교회 일찍 가는 행위, 멀리서도 오는 수고, 그 수고를 계속하는 인내, 교회 악한 자들을 골라내고 교회를 깨끗이 하는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 이런 저런 별의별 훌륭한 행동이 많았는데 주님은 좋은 것은 좋다, 잘한 것은 잘했다만은 무엇이 빠지면 안된다고요? 사랑이 빠지면 안된다.

아내가 돈도 잘 벌고 아내가 살림도 잘 살고 아내가 아이들 공부도 잘 시키고 100점인데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이 식어지고 없어지고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아내이면 이것은 부부 사이에 파탄이 난 것입니다. 이것은 직장 여성이고 이것은 교육에 훌륭한 여성이지 아내로서의 여자로서는 고장이 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신앙생활, 연보생활, 집회생활, 모금생활, 헌신, 봉사, 전도, 기도. 이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를 위하여 수도 없는 그런 헌신., 나쁜 게 아닙니다. 다 좋고 훌륭하고 마땅하게 우리가 부러워해야 되는데 만약에 이 좋은 행위에 주님 사랑, 사랑을 떼어내버리면 그러면 이 행위는 나쁜 행위가 됩니다. 직장에 열심히 다니는 아내가 열심히 다녀 맞벌이 해서 아이 기르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데 이게 알고보니까 남편 사랑은 상관이 없고 직장 좋은 남자보러 열심히 다니 면 돈 벌어주는게 이쁠까요? 고마울까요? 훌륭할까요? 맞벌이니까 괜찮습니까? 이거는 벌어주는 돈이 다 괘씸하고, 더럽고 큰일날 일이지. 그런데 남자가 못났으면 어떡합니까? 여자가 몸 팔아서라도 벌어오는 돈가지고 먹고 살아야지. 못나면 그리됩니다. 모르는 척하고, 못 본척하고 자구 물어보면 서로 미안할테니깐 그냥 대충 알아서 벌어왔겠지 하면서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게됩니다. 남자가 못났으니깐. 주님도 못난 주님이라 교인만 많이 전도해오면 ‘주님 날 구원하기 위하여 다 바쳤으니 나도 이 구원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전도해야 되겠다’ 그 전도가 바른 전도 옳은 전도인데 주님 날 구원한 처음 사랑, 첫 사랑, 대속의 사랑은 상관이 없고 ‘너희 교회는 100명에서 200명갔냐? 우리교회는 100명인데 500명 전도했다. 우리 교회가 훨씬 크다’ 이 교회 저 교회의 성장 경쟁 때문에 회원 모집할 수도 있고. 회원이 많아지면 사택 살기가 편해지니까 이게 좋을 수도 있고. 인간 심리의 별의별 것이 다 들어갈 수 있는데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사람되어 죄인 나를 구원하느리고 다 바친 것이 사랑이고 이 첫사랑으로 우리를 살려놨는데, 하나님이 날 대신 죽어 날 구원하셨다 이게 감격이고, 이게 좋고, 이것을 잊지 못하여 이 행위 저 행위 하는 것은 전부 주님이 곱게 보시고 귀하게 보시는데 주님과의 사랑은 빠져버리고 월급을 받으니 월급 만큼은 이래야 되지 않겟냐? 남들이 보니까 종교인으로써 이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 그래도 공회 중심 교인들인데 내가 집회 오지않으면 남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겠느냐. 의리 때문에. 눈치 때문에. 내 몫을 감당하려고. 이런 저런 별별 것이 동기가 되어지면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것은 주님과 원수되는일이요 주님을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그런 죄가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 번째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렇게 에베소 교회를 하나 하나 공부할 때에는 많은 면을 샆펴야 되지만은 행위도 살펴야되고, 수고도 연구해야 될 일이 있고, 인내도 왜 인내를 해야 되는지 하루 잘하는 것이야 누가 못합니까? 1년 첫날이 되면 3일 작심은 왠만하면 합니다. 삼일이 안가니까 문제이지. 전부가 중요하지만은 에베소 교회라할 때에는 가장 중요하게 기억할 것. 처음 사랑을 잊지 말자.

2002년 9월달에 여기 기도원 구입했습니다. 그때는 2002년 9월 그 때는 공회의 목회자들 교인들 전부가 여기 저기 떠돌이로 집회가지 아니하고 우리 땅 한평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일편단심이었습니다. 네가 수고하든 내가 수고하든.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 없는곳, 고요한 곳. 시대가 그러니 건축할 수 있는 곳. 차로 들어올 수 있는 곳. 전기가 있으면 재독해서 복습 좀 하겠다. 또 때가 되면 조용하게 우리의 문제를 우리 말씀으로 살펴보겠다. 그 한 소원을 가지고 누가 연보를 많이 했느냐? 어느 교회가 누가 수고 더 했느냐 없이 전부가 한 몸이었습니다.  1년 3년 5년 가다보니까 이 골짜기 2만평에 노력하려면 굉장히 어려운데 시골을 모르고,  건축을 모르고, 토목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오고가지 땅을 좀 아는 사람들은 여기 좀 와보고 깜짝 놀랍니다. ‘몇 되지 않은 교회, 몇 되지 않는 교인들이 이렇게 큰 것을 유지한다고?’ 그런데 세월 속에 ‘나는 고생했는데 왜 너는 고생 안하느냐?’ ‘우리 교회 기여도는 많은데 왜 그 쪽교회는 연보가 적으냐?’ 부부 처음만날때는 오로지 사랑으로 만났는데 ‘맞벌이하는데 왜 나만 설거지 하냐?’ 함께 하면 되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식어졌고 무엇이 없어져버렸습니까? 처음 사랑이 있을 때에는 남자는 방 안에 앉아서 계시기만해라. 돈도 내가 벌어오고 돈 없으면 친정가서 빼오기라도 하겠다. 이렇게 하다가 맞벌이에 왜 나만 설거지하냐 이 말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 사랑의 뜨거움이 식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니깐 이제 계산이 나오고 별의별 것이 다 나옵니다. 주님은 부족하신가? 전능하신 주님이라 부족이 없습니다. 행위? 주님이 전능잡니다. 수고? 완전자입니다. 인내? 영원 불변의 주님입니다.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했다? 전지자가 다 골라냅니다.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 절대자라 영원 무궁토록 수고해도 피곤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아쉬운 것은 나는 너를 사랑했다. 주님이 내가 마음에 들었답니다. 키 때문에 마음 들었겠습니까? 안경을 안 껴서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한국 사람라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전적 사랑함으로, 그냥 사랑함으로 조건 없고, 댓가가 없고, 따지지 않고 사랑할 때에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남자 잡으면 돈이 얼마짜릴까? 이건 동업입니다. 앵벌입니다. 이 여자는 아일을 낳으면 여자처럼 키가 크겠다. 지금 종돈이다. 종돈 아십니까? 종자 구하고 앉았는겁니다.  또 이뻐야 데리고 놀지. 너는 가정과 결혼을 아예 놀이터로 아는구나. 장난감으로 아는구나. 너 네 인생 전부를 다 장난질 하겠구나.

사랑을 보시는 주님. 제가 또는 공회에서 중매 설 때 오만 것 다 따지지요? 뭐 잘하지는 못하지마는 그런데 왜 설교 시간에는 사랑만 전부라 그럽니까? 주님은 완전자라 사랑 하나만 보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다른 조건은 없다. 못난 것? 주님이 잘났습니다. 없는 것 주님이 있는 분입니다. 무식한 것? 주님이 전지자입니다. 다른 것은 주님으로 다 됩니다. 주님을 다 바친 이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 때문에 주님 앞에 감사합니다. 요 한마디를 듣고 싶은 주님.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의 첫 사랑을 그런 흉내를 좀 내게 만들어 놨습니다. 순수한 첫 사랑은 미쳐버립니다. 정신도 없습니다. 계산도 없고. 그런데 둘 다 무지 무능한 것들이 하나님 사랑을 흉내 내면 첫사랑에 그때는 좋고 그다음 몇일 지나면 누가 돈 벌어 오고? 건강은 어찌 되고? 집은 어찌 되고?

그래서 인간은 첫사랑에 미쳐 둘이 시작을 하면 반드시 싸우고 후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사랑 하나를 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란 조건이 없고 댓가가 없고, 조건을 붙이면 이것은 영업이고 동업이고 거래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두 도둑이 만났으니까 갈라 먹기를 약속하고 만나야지. 두 업자가 만났으니까 지분을 의논을 해야지. 아니면 털어야지. 하나는 인물을 봤고 하나는 돈을 봤으니까 인물이나 돈에 문제가 생기면 깨져야 당연하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대충한다고 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인간의 사랑의 부부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을 살펴봅니다. 완전자 하나님이 전부를 바쳐 나를 구원했는데 에베소 교회에는 그렇게 구원하셨고 다른 교회는 그런 문제가 없었느냐? 에베소 교회의 많은 장점을 두고 처음 사랑 잊은 그 하나를 딱 짚으며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전부에게 너 부부는 처음 사랑을 기억하느냐?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그것도 좀 돌아보셔야 됩니다.

사람이 입으로 말 한마디를 했으면 자기가 한 자기 말에 자기가 책임을 안지면 그 인간 앞으로 어떡할 겁니까? 그런데 또 말을 책임진다고 인간이 책임이 져집니까? 주님과 우리 사이로 옮겨 주님은 하나님인데 날 위하여 다 바치며 조건이 없었고 거래가 없었고 댓가를 보지 않으며 감사한대로 다른 사람 사랑 하거라. 하나님이 널 위하여 다 바쳤으니 너도 너 주변에 너가 노력하면 신앙에 도움 될 사람 하나 찾아 보거라.

그 사람의 신앙에 도움 된다면 하나님이 다 바침처럼 너도 다 바쳤으면 좋겠다. 그럴 힘이 없으면 그럴 실력을 키우거라. 아직 때가 되지 않으면 기도하고 기다리거라. 적어도 마음만은 그런 마음이라야 처음 사랑을 버렸다 말씀은 하지를 않을 겁니다. 가정 문제 해결하는 방법, 교회가 해결되는 방법, 인생이 해결되는 방법, 근본적으로 신앙의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이런 길을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경고! 회개치 아니하면, 무엇을 회개치 아니하면? 행위를 잘하고 수고를 잘하고 인내를 잘하고 대한민국 오천만이 저 교회를 본받으라고 전부 플래카드를 걸고 박수를 쳐대도 주님의 구원의 사랑 때문에 너는 그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회개해라. 한국 교회의 어려울 때 구제금을 제일 많이 푸는 교단. 한국 배고픈 사람들이 있을 때 밥을 제일 많이 먹여준 그런 지도자들 불신자도 다른 종교인들도 전부가 그 행위가 고맙다 수고가 대단하다 끝까지 계속 가니까 인내가 대단하다 그러시는데 주님은, 지옥 갈사람 천국으로 돌려놓기 위해 그 수고를 하고 있느냐? 주님 널 위하여 다 바친 그 사랑이 감사해서 너도 이웃을 살피고 있느냐? 남들이 잘하니까 인기 때문에 하느냐? 남들이 안하는 틈새시장 공략하고 앉았냐? 불신자들이 본 받아라는 교회가 되고 싶어 그러고 앉았느냐? 이것은 뭐 교회하고는 천길 만길 먼 엉뚱한 길입니다. 에베소 교회.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 주님의 사랑 잊어버리고 주님의 사랑 없이도 활동하는 교회는 교회 간판의 제일 뒤에 교회 자는 떼버려야 됩니다. 신풍교회라, 신풍 지역의 안 믿는 사람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좀 수고하여 저 사람들 믿게 해볼까? 그러면 신풍교회입니다. 마음만 가져도 신풍교회입니다. 신풍교회가 천명 만명이 되어져도 거기 가면 복지 센터 오픈을 시켜서 먹고 사는데 도움 된다더라 해서 천명이 모여들면 신풍 복지 연합회가 됩니다. ‘순복음 교회 가면 기도 한방에 불치병이 낫는다더라.’ 80년대 서울 바닥에 80만 명이 모였습니다. 만약에 그 교회에 ‘예수의 이름 예수의 구원에 필요하여 병 낫는 거다. 그 병 나아봐야 하룻밤 나그네 얼마나 더 살겠느냐’ 이리 가르쳤으면 순복음교회가 교회 맞고, ‘병이 나았지 않냐?’ 그러고 앉았으면 순복음 종합 병원이 됩니다. 순복음 종합 병원에서 치료한 환자보다 서울대 대학병원에서 치료한 환자가 백배 천배 만배 많을 걸요. 요즘 왼만하면 대학병원만 들어가면 살려내지 않습니까 요즘. 에베소교회 회개하라.

주님으로 시작했는데 주님을 잊지 않아야 되는데 우리 공회 목회자들은 목회 출발할 때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기억하든지 말든지 몰랐든지 뭐 상관 없습니다. ‘이 길, 이 노선, 변치 말자! 이것 전하자!’ 이 노선 빼면 한국의 교회가 많아서 불신자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그럽니다. 거기다대고 또 우리가 교회를 해야 되느냐? 하지 말자 그랬습니다. 이 길, 이렇게 믿는 것을 찾아보자. 이렇게 믿는 교회가 있거든 그곳에는 개척하지 말자. 있는데 왜? 없다면 시작하자. 혼자라도. 한 가정이라도 가자. 이런 게 우리 공회의 처음 사랑입니다.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의 교회는 떼버립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은 잘했다. 니골라당의 행위라는 것은 뒤에 가면 발람이라는 뜻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믿는 속을 들여다보니까 세상이 가득 찼습니다. “이기면 낙원이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처음 사랑을 잊지 말아라 에베소교회. 에베소교회라는 이름은 잊을지라도 신앙생활에 처음 사랑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날 위하여 다 바치셨다. 이 감사가 전부다 이 감사 빼고는 할 일이 없다. 서머나 교회. 어떤 주님이 오셨느냐?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 계시록 1장에 보니까 사도 요한의 눈이 밝아졌을 때 다시 본 주님. 그 주님이 보니까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이셨습니다. 영원 전 그 주님 그대로. 영원 후 그대로 가실 주님 우리가 바뀌지, 그 분이 날 위하여 죽고 사신 사활의 대속으로 서머나 교회를 찾아오셔서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간관, “죽었다가 살아나신” 생사관,  9절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고락관, 그다음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무엇이 부자며 무엇이 가난한가? 빈부에 대한 관. 4가지에 대하여 서머나 교회는 주님과 같다. 사대관. 4가지를 보는 눈. 시간을 보고, 생사을 보고, 고락을 보고, 빈부를 보는 것. 불신자가 부자라면 믿는 사람도 부자, 불신자들이 가난하다면 믿는 사람도 가난뱅이 십일조는 적은데 믿음의 부자도 있고, 십일조가 많은데 믿음의 부자도 있고, 십일조는 더 많은데 믿음의 가난뱅이도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 하는데 우리가 볼 때에는 산 게 있고, 안 믿는 사람들은 살았다 하는데 우리가 보면 죽은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죽은 사람이다. 송장! 우리는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죽은 사람이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산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신앙생활 하는 거 보니까 죽은 사람 같이 되어져버렸다. 누구의 눈으로? 주님의 눈으로. 시간관,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 4가지가 서머나 교회 교인은 주님과 같았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훼방을 하는 데 “그런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이름은 잘 믿는데 정통인데 알고 보니까 그 속에 복음을 훼방하는 자들이라.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주님과 4가지가 같게 되면 주님과 시간, 생사, 고락, 빈부관이 같게 되면 이 땅 위에서는 고난 박해는 받게 됩니다. “앞으로 올 고난 박해를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10일의 환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인간의 범위 내에서 환란을 주시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환란은 오지 않습니다. 이번 방역 코로나 사태에 앞으로 집회 하는 5월에 어찌 될지 모르니까 미리 장사 문 닫아버리는 교회, 5월 4일 그 날 풀릴지 안 풀릴지 5월 3일까지 지켜보다가 하나님이 꼭 못하게 막으면 막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막는데 뚫고 나가지는 못합니다.

내가 손해 보고 믿는 것은 죽어도 순교라 그럽니다. 그런데 남을 죽이고 내가 잘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방역에 예배당 문을 닫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런 거 아니고 교회 가다가 손해 볼까 싶어 못 가는 게 아니고 내가 믿으러 가고 내가 예배당 가는데 나 손해 보는 것은 손해를 많이 볼수록 복이 많고 신앙입니다. 내 실력이 없어서 못하지. 그런데 나의 그 길에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거는 남의 복음이지 자기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신이 죽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베드로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살인이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자기 십자가라 이거는 예수님의 제자고 순교입니다. 베드로 자기는 빠지고 자기 죽을 자리에 남 집어넣으면 그거는 살인입니다. 주일날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주일날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숨 생명 생존에 관한 것은 구약에도 허락을 했습니다.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염소가 구덩이에 빠지면 아 부자야 50만원 손해 보면 됩니다. 그것을 끄집어내려면 일이 되니까. 네가 재벌이라도 너 강아지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생명이 위험하면 그것은 돈하고 상관없다 건져라. 주일날 불이 나면 주일날 다치면 주일날 생존에 관계 되는 응급의 관계되는 것은 원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평소에 준비하면 막을 수 있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은 주일날 못합니다. 그래서 방역이라는 것이 나는 가도 되고 나는 가다가 죽어도 되지만은 내가 오가다가 나하고 상관없고 신앙 없는 사람에게 병을 넘겨주는 것은 그것은 남을 공격하는 것이라 그래서 그것은 자제할 수 있는 겁니다. 식당에는 소복하게 가서 앉았고, 학원은 소복하게 앉았고, 방역 단속하는 공무원들은 빽빽하게 앉아가지고 밥 먹고, 예배당만 밥 먹지 말아라. 교회 가지 말아라. 그것은 종교탄압이지. 불교도 기독교도 학교도 공무원도 전부 똑같이 조처가 내리면 그것은 왕에게 충성하라는 로마서 13장 베드로전서 2장 디모데전서 2장 뭐 아무리 미워도 “위하여 평안을 빌라” “기도하라” 여기에 해당됩니다. “장차 받을 고난을”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시험은 “10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네가 갈 수 있는 데까지지 네가 할 수 없는 넘어서는 환란은 주님이 피할 길을 내시든지 아니면 그것은 상관 안하십니다.

그 다음 서머나교회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10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따라합시다. 죽도록 충성하라! 아 죽을 만큼은 충성할 정도의 신앙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만큼은 죽은 겁니다. 목숨까지 다 바치는 손양원의 순교도 있고 장애자까지 되는 것은 됩니다. 그것도 작은 순교고. 학원은 바칠 수 있습니다. 하루 순교도 있고, 각 사람에 따라 10일의 양과 범위는 다 다릅니다. 신앙 없는 사람이 남 따라 위대한 순교 할려다 보면 남은 순교를 하는데 그것은 명예욕으로 죽은 그것은 개죽음이 됩니다. 평소에 준비하는 것만큼 10일 환란이 오고 10일의 환란 온 것만큼 주님 앞에 연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실력이 됩니다. 코로나 정도는 교회갈 수 있겠다. 그렇지만은 6.25점령에는 갈 자신이 없다. 주님이 그 정도를 다 알고 계십니다. 1달란트 주시고 2달란트 찾는 주님 아닙니다. 1달란트 주고 5달란트 받는 그런 억지의 주님도 아닙니다. 5달란트 준 자에게는 5달란트를, 하나 준 자에게는 1달란트를. 얼마 줬는지 언제 아느냐? 평소에 보면 압니다. 환란이 없을 때 평소에 보니까 주님은 저 만큼 주셨는데 그러면 그 만큼은 내 놔야 되겠는데 이런 계산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슨 교회요? 에베소 교회! 무엇이 문제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두 번째 교회는? 서머나 교회입니다. 너에게 준만큼, 가진 만큼 할 수 있는 것만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10일 동안의 환란입니다. 자기에게 맞게금 맞춰서 주님이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아낌없이 바칠 수 있어야 됩니다.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입니다. 죽는 것은 못하겠는데? 죽는 것까지 해야 되는 신앙도 있고 코로나 정도에 교회를 나오면 그것만 해도 주님이 너는 최선을 다했다 죽을 요량을 하고 나왔구나 죽도록 충성한 것으로 인정해줄게 그런 신앙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세 번째는 버가모교회. 버가모교회는 2장 13절입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요 위라는 말은 그냥 위가 아니라 위치라는 뜻입니다. 위치도 그냥 위치가 아니라 제일 위의 임금의 위치, 주도의 위치, 버가모는 사탄이 왕이 되어 사탄이 쥐고 있는 곳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북한 정도까지는 안가고 중국 정도입니다.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 타협하지 아니하고 받은 신앙의 길로 충성되게 걸어가려는 버가모 교회의 앞서가는 종이 안디바입니다. 그런데 이 안디바는 버가모교회의 지도자고 버가모교회의 제일 앞선 사자인데 그가 양보하지 않고 충성되게 걸어가니까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사단의 나라이니까 사단이 이곳의 주인이니까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안디바는 순교를 당했는데 그렇게 안디바가 순교를 당할 때에도 이 버가모교회의 교인들이 순교한 안디바처럼 나도 순교했으면 좋겠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10장 40절이하의 이 말씀에 따라서 순교자를 영접하는 자, 순교자가 부러운 자, 순교자가 사모되는 자는 순교를 안했는데도 무슨 상을 받는다고요? 순교자의 상은 받을 것이라.

순교자는 되지 않아도 순교자의 상은 받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는 되지 못해도 목회자의 상은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교인들도. 아이를 낳은 엄마의 산고는 남자들이 못 가지지만은 얼마나 애를 쓰고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그 고통에 마음을 함께 하면 산고의 상은 받으리라. 이렇게 마음만 가져도 주는 복이 있으니까 직접 거치면 직접 거쳐서 받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마음으로 동행하여 상을 받고, 핑계를 대지 못합니다.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 나온 교회입니다. 안디바! 위대한 순교자. 위대한 순교자이니까 순교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안디바가 문제가 아니라 일반 교인들이 안디바의 순교에 마음으로 함께하고 동참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순교자가 되면 가장 좋겠고 그런데 우리의 살아온 지난 날을 보니까 순교는 근방에도 가지 못하겠고 순교하기 전 평소에 순생의 생애가 있어야 순교의 기회를 주고 그 순교만 순교입니다. 순교 전에 순생 없이 순교당한 것은 명예의 개죽음이든지 뭔가 있지 그건 좀 연구를 해봐야 됩니다. 지난날 우리가 순생으로 살아오지를 못했잖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순생으로 살아 순교한 분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참 부럽다. 물 한 그릇이라도 떠줄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버가모교회입니다. 버가모교회 복은 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어려운 복은 어떻게 받느냐? 그것은 망령입니다. 

28절. 버가모 교회에 찾아오신 분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주님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형편은 “사단의 위가 있는 대라” 위라니? 왕권을 가지고 주권 하는 지역입니다. 여기 버가모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아” 지도자 안디바가 순교할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안디바 되는 것은 어렵고 안디바 되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보니까 참 거리가 멉니다. 버가모 교회 교인되는 것은 어렵지를 않습니다. 선지자 되는 것은 어려워도 선지자 물 한 그릇은 줄 수 있는 교회가 버가모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2장 14절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 좋은 버가모 교회에 세상 물질주의가 들어와 가지고 세상으로 신앙을 슬금슬금 데리고 나가버렸습니다. 그게 발람의 교훈입니다. 물질 때문에 신앙 포기하는 것 니골라당의 교훈도 내나 같습니다. 회개해라 권면. “회개치 않으면 내 입의 검으로 싸우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2절 “좌우에 날선 검이라” 복음의 복된 말씀을 나를 수술하고 나를 찔러 쪼개는 칼로 맞지 않도록 하십시다. 버가모 교회의 이기면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만나는 신령한 양식, 먹어본 사람만 아는 양식. 주일 한 번 지키고 주일 한번 지킴으로 신앙의 양심에 양식을 먹어본 사람은 남이 모르는 그 양식 맛에 나중에는 주일 때문에 아낌없이 목숨까지 바칠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흰 돌을 주고” 흰 돌이라는 것은 주님이 주님을 머릿돌 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돌로 지어져 가고 주님을 광야에서 따르던 반석이라 했습니다. 광야의 반석이 그리스도라. 그러니까 주님을 돌이라 반석이라 마태복음 16장에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는 반석이라. 크면 반석 작으면 돌. 하나님의 형상, 참 사람의 인격을 돌이라고 그럽니다. “그 돌 위에 새 이름 기록하리라” 이것은 순교자다 이것은 순교자가 되지 못했으나 순교를 기뻐하고 환영하고 부러워했다. 그 이름을 가져야 됩니다.

네 번째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2장 20절입니다. 2장 18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가라사대 두아디아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두아디라 교회는 신앙의 행위를 보니까 사업이 있고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고 섬김이 있고 인내가 있고 5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사업이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업주의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일을 했다 저런 복음운동을 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교회의 운동은 많고 교회의 단체 활동은 많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했는데 하다보니까 교회가 사업주의가 되어버렸습니다.

직장 없는 사람이 직장을 찾아 직장이 안정 되니까 가정이 안정되고 가정이 안정되니까 교회 신앙생활에 주력을 하고 그래서 직장 때문에 신앙생활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직장을 마련해줬다면 목적은 사랑이고 구원이고 믿음이고 방편은 직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구원 신앙 믿음 교회는 옆으로 치워버리고 사업만 남아버렸습니다. 여기는 산속이니까 어느 교회를 찍으면 표시도 안날 건데 어느 교회 뭐 태안반도 기름띠 난리가 나니까 절도 가고 단체도 가고 학교도 가고 교회도 몇 백 교회 우르르 가고. 코로나 방역(?)에 보니까 뭐 교회가 그냥 예배당 비워서 병상 내 주고 통일 기금도 마련하고 등산객 쓰레기도 청소해 주고 등산객 쓰레기 청소를 해 주면서 전도하려고 등산로에 들어갔으면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산이 깨끗해야 세상이 좋고 세상이 좋아야 좋은 세상이 되지. 예수는 어디가고? 예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고. 이게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한국이 적화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야 뭐 변절하면 됩니다. 주인 바뀌면 머슴이 또 주인 바꾸면 되지. 삼성 다니다가 짤리면 현대가고 현대 짤리면 삼성가고 중소기업 짤리면 대기업 경력사원 들어가고 대기업 살다가 짤리면 중소기업 창업하면 되고. 뭔 직장을 그렇게 춘향이처럼 일편단심 하나만 다닐 겁니까? 적화가 되면 뭐 대통령 바뀌었는데 뭐 이 대통령이나 저 대통령이나. 일본이 우리나라 점령하면 아이 또 천황 또 받들면 되지.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은 철 따라 환경 따라 정치 따라 적응하면 됩니다. 믿는 사람은 주인이 바뀌든 국가가 바뀌든 정권이 바뀌든 하나님을 바꿀 수 없으니 적화가 되면 교회는 북한식 교회라는 것은 없는 교회나 같으니까 그래서 적화가 될까봐 믿는 사람이 불안해하는 것은 본능이고 잘 믿는 겁니다 잘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교회 간판 가지고 목사이름 가지고 반공 운동하러 가면 예수는 반공에 써 먹는 게 아닌데? 예수는 자본주의에 쓰는 것도 아닙니다 공산주의에 쓰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 왕을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 항일 운동하는데 쓰는 것도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님 때문에 교도소 갔는데 왜놈들하고 싸웠다고 지금 뭐 함안에다 대고 몇십억짜리 기념관 세워놓고 난리입니다. 항일 투사 손양원 기념관 이래 되어 있습니다. 모독이지요. 손양원 목사님은 창씨 개명한 분입니다. 대촌양원으로. 조상이 준 손씨를 갖다가 일본식 이름 대촌양원으로 호적에 바꾼 분입니다 그만하면 친일파 아닌가요? 친일과 항일이 문제가 아니다 예수가 문제다. 이게 손양원 신앙입니다. 그게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그게 에베소 교회고 그게 서머나 교회고 그게 순교자를 낸 버가모 교회고. 한국 교회는 항일 운동하는 독립 애국집단이냐? 사업주의입니다. 친미주의냐? 그것도 사업주의입니다. 공산당이 정권 잡으면 교회는 미지나고 어린 신앙들은 전부 박살난다. 그것까지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점령하면 안 시켜도 다 철야할걸요 안 시켜도 다 뭐 눈물로 기도할 걸요? 종교 자유가 70년이 오다보니까 박해가 없다보니까 자진해서 다 그냥 신앙 없애버리지 않습니까? 어느게 옳고 좋은지 사실은 모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발은 주석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가 있었는데 사업을 일번으로 왜 적어놨을까? 주님 위해서 이런 일 저런 일 했는데 하다보니까 사업만 남고 주님은 빠져 버렸습니다. 에베소 교회 처음 사랑을 잊은 것처럼. 사업주의란 사업이 주님보다 앞서니까 문제지 주님 때문에 농사짓고 주님 때문에 장사하고 주님 때문에 결혼도 하고 주님 때문에 직장도 가지고 그건 죄 되는 거 아닙니다. 2장 20절. 2장 20절 맞습니까? 이세벨. “두아디아 교회에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이세벨이란 안 믿는데 이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택자인데 인물이 그냥 혹 마음이 다 뺏겨버립니다. 아합이 원래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역사에 아합 왕처럼 나쁜 임금은 없지만은 또 아합의 신앙을 보면 중간 이상은 갑니다. 그런데 이세벨의 용모가 들어서 그냥 이 아합을 역사에 없는 죄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요즘 여자 얼굴은 뭐 병원 가고 미장원 가면 똑같이 다 이쁘다 그러니까 그건 뭐 칠 것도 없고. 요즘 공주 아닌 여자 있고 왕자 아닌 남자 있습니까 다 이쁘지. 아나운서정도 되면 이제 이세벨 정도 될까요 그 정도 용모? 대학 교수 금융회사 뭐 부장 여성 이정도 되면 이세벨이 될까요? 아합 때 이세벨은 인물이 좋아 이세벨입니다 말을 잘해 이세벨입니다. 오늘은 경력직 여성이라 전부가 탐낼만한 그런 인물뿐이 아니라 그런 실력 그런 위치 그런 인기 할 것 없이 신앙은 빠졌는데 신앙은 맹탕인데 속에는 세상인데 세상 사람이 매력을 느낄 그게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이 있든지 없든지 안 쳐다보면 되는데,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함이라. 끌어들여버렸습니다 받아드려 버렸습니다. 끌어 들이고 받아 드렸다가 그 다음 이세벨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다 죽여 하니까 다 죽여 버렸습니다. 뭐 그냥 데리고 살지 뭐 이세벨 시킨다고 내가 죄를 지어? 여우를 닭장 속에 넣고 사료 주고 사이좋게 살으라 그러면 살겠지 뭐 주인 없을 때 설마 여우가 닭을 잡아먹어? 여우의 본능은 주인 없으면 닭 다 잡아먹습니다. 끌어들이지를 말아야지.

이래서 두아디라 교회는 어떤 징계가 있느냐? 침상에 던져버릴 것이라. 신앙이 전부 잠든 신앙이 됩니다. 안 믿으면 죽은 신앙인데 믿는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신앙행위가 끝이 나니까 침상에 던짐. 신앙은 끝났고. 큰 환란 가운데 던집니다. 잘 믿으려면 신앙 때문에 환란을 당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앙을 없애버리면 환란을 안 당하느냐? 필요 없는 환란 당합니다 더 큰 환란 당합니다. 아이들이 우선 공부 안 하고 시험 안 치고 놀면 시험 안 치니까 살맛이 난다 그러는데 학교공부 안 하고 시험 안 치고 논 것만큼 나중에 사회생활하면서 당해야 합니다. 두 개를 비교해 보면 차라리 공부하는 고생이 뒤에 무식해서 당하는 서러움보다 낫기 때문에 경험해 본 부모가 어려운줄 알면서도 공부해라 그러는 겁니다. 신앙으로 당하는 환란은 주님이 지키십니다 정도를 보십니다 조절을 하십니다 피할 길도 내십니다. 이세벨에 빠져놓으면 집 나간 둘째 아들처럼 없는 기근을 보내시고 돼지 먹는 열매를 훔쳐 먹게까지 만들어버립니다.

“그의 자녀를 죽일 것” 두아디라 교회 신앙이 되어놓으면, 두아디아 교회 신앙식의 믿는 사람 뒤에 믿는 사람, 그 후세대 3세대 4세대 믿는 사람들도 전부 이세벨에게 당해. 물질주의 신앙 두아디라식 교회가 되어 집니다.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주님을 두아디아 교회를 보며 조심하십시다. 32p 넘어갑니다. 2장 24절에 보니까 두아디아에 남아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잘못된 그 교훈을 피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 안에도 바로 믿는 올바른 교인들. 그들에게 이세벨 교훈을 받지 않은 자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너희에게 있는 것 그 어려움 중에 네가 놓지 않고 붙든 그 신앙 굳게 잡아라. 굳게 잡으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나쁜 교회 엉망인 교회 속화된 교회에 일반교인에게 이런 만국을 다스리는 신앙을 이런 권세를 왜 줄까요? 이세벨이 왕이 되어 있고 이세벨 앞잡이가 되어 있는 아합과 같은 이런 두아디라 교회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만국을 다스리고도 남을 신앙입니다. 철장으로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그런 능력의 새벽별을 받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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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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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19 13:28
다섯 번째 사데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 성령과 일곱별을 가진 이. 성령과 하나님의 종들을 붙드신 주님이, 사대교회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우리의 신앙이 집회까지 오니까 남들이 보면 잘 믿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 같습니다. 남들이 살아있는 신앙처럼 봐 주는데 하나님이 볼 때에도 살아 있는 신앙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들은 신앙이 있는 줄 알고 주님이 볼 때 속에는 죽었다. 이게 고민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이게 사데교회입니다. 살았다 죽었다 무엇이 기준이냐?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 주변 교회와 비교해 보니까 이만하면 잘 믿었지. 인간끼리 산 교회입니다. 저 집사님보다 내가 잘 믿으니까 살아있는 신앙이지, 인간 볼 때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그것 말고 주님이 볼 때.

“어떻게 받았으면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34p. 실은 죽었는데 산줄 알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일깨지 않으면, 도적같이 오리니. 예수님 재림이 언제인데 앞으로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그 기회마다 그 주님이 오십니다. 도적 같이 말 것이라. 어느 시에 임할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데교회 죽은 신앙, 주님이 볼 때 죽은 신앙인데 그 안에도 자기의 행위를 더럽히지 아니한 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명이 있어 흰 옷을 입고. 흰 옷은 하나님이 볼 때 깨끗한 행위 말씀대로의 행위입니다.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 “이기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 시인하리라” 7교회 중에 첫 번째가 어느 교회이지요? 에베소. 첫사랑을 잊지 맙시다. 두 번째는요? 서머나 교회. 주님과 함께 가다가 죽으면 어떡할까? 내게 필요한 만큼 주시지 내 실력 넘게 주지는 않으니 끝까지 견디라. 끝까지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세 번째는요? 두아디라 교회, 버가모 교회. 순교자가 되라. 되지 못하거든 순교자를 부러워해라. 부러워라도 해라. 네 번째는요? 두아디라 교회. 잘하려고 사업을 했는데 복음 때문에 사업을 했는데 하다보니까 사업주의 교회가 되어버리면 큰일 납니다. 신앙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대 교회는 사람이 볼 때는 잘 믿는 줄 아는데 특별히 공회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보다는 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교회처럼 보이기가 딱 쉬운데 문제는 옆에 교회와 비교가 아니라 불꽃 같은 눈동자로 보시는 주님이, 주님이 보실 때가 문제입니다.

여섯 번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주님” 거룩하고 진실이라는 말은 거룩은 따져보는 겁니다. 따져보고 비교를 하다가 옳은게 나오면 옳은 거 하나를 딱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이게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만 있으면 적은 능력을 가지고고도,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아무리 능력이 적고 못나고 인간적으로는 시시해도 구별하고 진실만 가지면 열린 문을 주신다. 아무도 막지를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넘겨서 38p.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이 오셔서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미지근하여” 미지근하여. 차라리 죄를 지으면 두드려 맞고 회개라도 할 건데. 둘째 아들처럼 다 털어먹으면 기어 들어올 건데. 그것도 아니고. 아버지 밑에 있으려면 아버지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아버지니까 주님께 맡겨놓고 전부 충성하겠습니다 그래 버리면 좋을 건데. 아버지 밑에 있으니까 신앙이 있는 줄 알았디만은 알고 보니까 속으로는 섭섭함이 가득 찼습니다. 뜨거운 줄 알았는데 뜨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둘째 아들처럼 나간 것도 아닙니다. 나간 둘째 아들은 다 팔아먹고 돌아와서 첫째 아들보다 앞서버렸습니다. 첫째 아들은 차가운 아들입니다 다윗은 뜨거운 아들입니다. 둘 아들 중에 큰 아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아들입니다. 그러면 둘째아들처럼 나갔다 와야겠습니까? 시행착오 그러지 말고 은혜주실 때 감사하고 충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일곱 교회입니다. 첫 번째가 어느 교회지요? 에베소. 두 번째는?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일곱 종류의 교회는 오늘 우리의 신앙의 종류가 7가지입니다. 너는 라오디게아 너는 사데가 아니라 한 사람 속에 에베소가 있다가 서머나가 있다가 에베소 서머나가 같이 들어 있다가. 어제는 에베소 교회였는데 오늘은 빌라델비아 교회로 되어 있다가 내일은 라오디게아 교회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일곱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을 수도 있고, 욕심은 깨끗하게 주님 앞에 바쳐 욕심은 서머나 교회인데 또 인내는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못나도 참 거룩하고 진실하여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인내인데, 양심이 두아디라 같을 수도 있고 양심이 라오디게아 교회 같을 수도 있습니다. 7교회는 어느 교회 어느 교회는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는 게 아니고, 누구는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7교회 장점이 우리 속에 들여다보면 다 있고 7교회 단점이 우리 속에 다 있고 7교회적인 요소가 어느 교회든지 다 있습니다. 신풍교회 안에 어떤 면은 라오디게아 교회 같고 어떤 면은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면도 좀 있고 섞여 있지 100% 한 쪽만 있는 그런 사람 그런 교회는 없다 생각하면 맞습니다.

오늘 첫 시간 둘째 시간 합해서, 주님의 재림. 눈으로 보이게 주님이 오시면 세상은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매 순간 오시는 주님을 재림의 주님으로 맞이하고 어떤 걸 보든지 예수와 그리스도의 눈으로 봅시다. 장사꾼은 동창회를 가도 돈 눈으로 봅니다. 장사꾼은 결혼을 해도 처갓집에 또는 시갓집에 돈 쳐다봅니다. 장사꾼은 지나가다가 인사해 놓고도 명함주고 비즈니스 합니다. 장사꾼은 돈 눈으로 봅니다. 믿는 우리는? 예수로 보고 그리스도로 보고. 저건 좀 전도해볼까? 저건 좀 선지자적인 말씀 생활을 만들어볼까? 돌을 봐도 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요소를 뽑아내고 더러운 도둑을 보면서도 주님 떠나면 저렇지 회개해야 소망이 있지 하늘나라는 도적이 못 들어가는 나라인데. 무얼 봐도 그 속에 예수와 그리스도를 뽑아낼 수 있어야 되고, 무얼 봐도 내 눈이 예수 눈과 그리스도의 눈으로 쳐다봐야 되고. 그게 매순간 지나가는 게 신약의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고치고 여기에서 바로 자라가도록 교회를 주시고 우리를 주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를 들고 교회의 제도를 통하여 교회의 종류를 통하여 교회의 모습과 장단점을 통하여 우리 속을 들여다보고 기회가 많지 않다. 사건적으로 현실적으로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모든 것은 단번으로 지나가니, 주님의 계시로. 복된 현실을 맞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교정 : phb, oea, typed by 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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