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8.10 전3:14 불택과 타락은 하나님의 잔인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자 만드는 대속의 극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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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8.10 전3:14 불택과 타락은 하나님의 잔인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자 만드는 대속의 극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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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0 집회10 (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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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정동진
 ① 월후 : 인간의 자유는 원함으로 순종하는 자유
 ② 월밤 : 주권론, 하나님만 완전자, 절대자
 ③ 화새 : 절대주권, 만사 하나님의 뜻대로만
 ④ 화전 : 만사 믿음으로 순종, 목격으로만 따를 뿐 
 ⑤ 화후 : 빈 곳이 없으니 순종, 따르면 만물이 도움
 ⑥ 화밤 : 주권과 순종의 모순은 차원의 문제, 우리는 충성
 ⑦ 수새 : 유기적 자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동참과 목격
 ⑧ 수전 : 깨닫는 순종의 감사, 우리 할 일은 목격과 감탄
 ⑨ 수후 : 인간은 오로지 찬송, 죄와 의는 하나님만 기준 
 ⑩ 수밤 : 택자가 우선이고 불택자는 만물과 이후에 창조 
            - 죄, 이로 인한 예수님의 희생 모두 토기장이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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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택과 타락은 하나님의 잔인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자 만드는 대속의 극진한 사랑
 
220810 집회10 (수밤)
 
본문 : 전도서 3장 14절 -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세상이 만들어지고 오늘까지 운영이 되어졌으며 우리 각자가 태어나고 오늘까지 살아온 것도 우리 생각에는 운으로 살았고 우연히 살았고 내 뜻대로 살았으며 또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도 섞여있어 복잡한 줄 알았는데 완전자 하나님을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과 섭리를 공부해 볼수록 머리털 하나까지도 참새 한 마리의 움직임까지도 주님이 결정하시고 우리는 목격하며 동참하며 복되게 쓰이는 것은 우리의 상급이 되고 우리가 잘못된 것은 영원히 지옥에 버림으로 우리가 받는 고통 우리가 잘못된 것도 영원 영생의 온전을 위하여 귀하게 쓰여지다가 버려지는 것이오니 만사 하나님 앞에 감사할 일이오. 깊이깊이 느껴 감탄으로만 살아갈 영원한 찬송과 감사와 영광의 세계를 오늘 현실에 미리 당겨 하나님 중심 찾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가정과 교회 되도록 어두운 세상 속에 밝은 빛 하나로 걸어가는 주권의 믿음 하나만을 가진 각오가 되고 금번 집회가 되어 더욱 발달하며 교회와 신앙을 삼켜버릴 말세의 문화 속에 끝까지 빛을 들고 항상 두 길 그러나 한 길로만 걸어가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배운 말씀 어렵고 전하는 것이 서툴러 우리 많은 학생들 각 숙소에 흩어져 따로 복습하고 있사오니 인도하는 선생님들에게 밝은 지혜를 주시고 학생들의 마음 마음 세상이 아니라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열려 세상을 향하던 그 마음 그 발길이 하늘의 소망으로 돌아서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솔로몬이 드디어 알았고 깨달아 하나님께 붙들려 성경에 기록을 남겼고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도서 3장 14절 여러 번 반복을 했으니 잊지 말고 마음속에 기억하여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불변이다.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이 정확무오하게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니 그런 줄 알고 그만 순종하고 감사하고 자꾸 배우고 나가다 보면 미개하여 설득된 것이 아니라 아닌데 그렇다고 치고 합리화가 된 것이 아니라 오묘한 이치의 비밀을 열어 옳다 맞다 감사하다 이 땅 위에서 찬송하고 그 찬송을 영원히 하늘로 가져갈 겁니다.

한 100여 명 넘는 학생들은 지금 선생님하고 각 숙소에서 따로 재독 또 복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교재 82쪽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잔인하신가? 이게 지금까지 배우고 나니까 결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잔인하신가? 노아 홍수에 모든 인류를 다 쓸어버린 하나님 아무리 봐도 잔인한 하나님이 아닌가? 그 좀 살려주시고 용서해 주시지 우리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자비로운 마음속에 악령이 슬쩍 유혹을 시켜 ‘아이 뭐 좀 죄를 지어도 천국으로 옮겨가 주시고 부족해도 천국에 들려 보내 주시지.’ 완전한 천국 안에 부족하고 잘못된 게 들어가면 완전한 천국이 무너져 버립니다. 완전의 천국이 무너지고 불완전한 깨진 나라가 되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탁 우리의 호소를 알지마는 인간은 감정에 피동이 되어 불쌍하면 그냥 넘어가 주는 수가 있지마는 하나님은 사랑도 크시나 결국 우리에게 불리하고 우리가 후회할 일은 단호하게 딱 잘라버립니다. 외과 의사 선생님들이 가족은 수술을 못 한답니다. 남의 배는 사정없이 딱 잘라서 잘라내고 살려버리는데 제 가족이 되면 이게 수술이 잘 되지를 않는답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의 잘못이라도 손볼 때는 사랑함으로 딱 잘라버립니다. 수술 안 하고 슬금슬금 돌아가다가 뒤탈 나 놓으면 더 큰 후회를 합니다. 이런 걸 합리적인 사랑이라 지혜로운 사랑이라 사랑보다 더 넓은 참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우리 마음 같아서야 놀고도 출세하고 죄짓고도 용서받아 더 잘 되고 싶습니다. 나 하나는 그리되면 웃는데 내가 잘못되고 내가 자꾸 올라가면 나 때문에 만민이 불편해집니다. 만민을 불행하게 짓밟고 나 혼자 웃어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억울하고 모든 사람이 짓밟히는데 나 하나 웃는 것이 그게 진정한 사랑이고 나한테는 좋겠는가? 만물이 불편하면 결국은 불편함이 나한테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걸 잘 보여주시려고 역사의 제왕들 독재자들이 다 없어졌는데 우리 머리 꼭대기 위에 평양은 아직까지도 김 뭐시기가 자기 혼자는 좋아서 죽겠습니다. 몇 천만 명은 죽겠다고 난린데. 그리고 10년 50년 삼대를 해먹다 보니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는 좋아서 죽겠는데 몇 천만 명이 설설 기다 보니까 이거는 이제 자기가 생각해도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코너에 몰려버렸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저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금 덜먹고 좀 오래가기를 원했겠지.
 
하나님은 잔인하신가? 82쪽. 왜 이런 제목을 달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택자 우리는 천국 가도록 정해 놓으시고 우리 위해서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 중에 불택자를 만들어 지옥으로 다 쓸어 넣었습니다. 똑같이 생겼는데 택함을 받지 못하고 지옥 간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나는 다행이다. 나는 다행인데 지옥 간 저 불택자들은 어떻게 하나 나야 택자 되고 나야 믿는 사람 되고 나야 천국을 가니까 됐는데 내 형제 내 동포 내 친구 내 이웃 중에 택함을 못 받은 사람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타야 되는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아이 저이들도 좀 살려주시지. 저이들도 택하여 천국에 불러주시지. 왜 나만 택하여 천국 가게 되었는고? 나는 택함을 받으니 다행인데 불택자가 되어 지옥 가는 사람을 볼 때 그 하나님도 좀 잔인하시다. 지옥을 만들지를 말지. 아예 시험 문제를 내지를 말지. 시험 문제가 없었으면 낙제도 없을 것이고 시험공부도 안 할 것이고’ 이리 말하면 학교를 만들지 말지. 갈 것도 없으니까 더 좋지. 학교가 없으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배울 걸 못 배우면 무식해서 평생 또 불편합니다. 이것까지 전부 다 계산해서 돈을 들여 학교를 세우는 겁니다. 무식해서 불편한 것보다는 배우느라고 좀 고생하는 것이 낫다. 부모의 사랑과 국가의 교육 정책이 많이 생각해 보고 학교가 돈 버는 데입니까? 돈 투자하는 데지. 많은 돈을 들여서 많은 교사들의 평생을 보장하고 배우는 거 불편하고 시험 치는 거 골치 아프겠지마는 ‘배워야 더 낫기 때문에 배워보거라.’ 이게 부모고 이게 세상입니다. 세상에 이런 걸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니 이해를 하거라.’ 그러시는 겁니다. 자연 계시로. 인간 생각으로 봐서야 지옥이 없는 것이 낫겠지. 인간 생각으로 보면 홍수 심판도 없고 지옥도 없고 지옥 가는 불택자들이 없으면 좋겠지. 우리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 하나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느니라. 우리도 아는데 하나님이 몰라서 실수로 지옥을 만들어 놓고 밀어붙이겠습니까?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천국이 천국 되려면 지옥이 없어서 안 되기 때문에 지옥을 일부러 만들어 놨습니다. 빛이 좋은 줄 알려면 어두움을 구경을 해야 빛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천지 창조의 제1. 1일이 빛과 어두움의 낮밤을 만든 겁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전능의 능력으로 영원무궁 불변의 완전의 계산을 다 해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려면 감사를 알아야 되고 감사를 가르치려면 하나님 없는 세계를 구경을 해가지고 죄를 짓고 타락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보다가 하나님 없는 죄악 세상을 겪어본 다음 ‘아무래도 하나님 아니고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 가르쳐야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온전하게 만들고 영원한 불변의 천국을 주시기 위해 일부러 지옥과 불택자와 죄를 만들어 우리에게 죄의 경험을 주신 겁니다. 그냥 하나님도 좋게 좋게 나가면 되는데 더 좋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죄와 지옥과 불택자를 만든 겁니다. 여기까지 계산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택자만 천국만 만든 것보다 불택자와 지옥과 타락까지 만든 하나님의 사랑은 더 큽니다. 잔인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지옥을 만들고 불택자를 만든다는 게 말이 쉬워 그렇지 지옥과 불택자를 만들고 죄 지어 지옥의 영원히 불에 타는 그 고난을 만든 다음 하나님은 구경만 하셨던가? 그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내 죄를 다 걸머지고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지옥의 영원한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당신이 다 겪었습니다. 그래서 잔인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로마서 9장 19절. 죄송합니다. 82쪽입니다. 빌립보서 2장 7절 예수님은 이위 성자 하나님인데 성자 하나님이 오히려 자기를 비워 성자 하나님 하나님의 위치를 포기하고 종의 형체 인간이 되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불택자를 만들지 않고 지옥을 만들지 않고 죄와 타락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셨더라면 하나님이 사람 되고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고 하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겪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좋은 것만 알지 하나님 없는 세계와 하나님 있는 세계를 비교해서 감사하는 그 감사를 못 느낍니다. 배불러 본 사람의 배부름과 배고파 본 사람의 배부름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겠습니까?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까? 태어나서 부모 품에 살다가 부모 품에 죽어본 사람의 부모와 어릴 때 부모를 놓쳐 부모 없는 서러움을 겪다가 10년 20년 만에 드디어 부모를 찾아 상봉을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태어나 부모 품 안만 아니까 부모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나 그 부모인데. 이게 열 살 때 한 5년 부모 없이 떠돌다가 열다섯 살에 다시 부모를 찾았는데 그 부모가 재벌이든지 그 부모가 왕이 된다면 부모 없는 5년과 부모를 되찾았는데 이 부모가 실력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품 안에 늘 그 부모 안에서 살던 때와 없이 살다가 다시 되찾은 그 기쁨을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짐작은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배가 고파 본 사람의 한 그릇 밥과 배고파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밥 한 그릇은 맛이 다르고 감사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인데 하나님도 못 하는 게 있기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아들을 만들어 놓고 이 아들을 기계적으로는 못 만듭니다. 하나님을 닮은 아들을 만들었으면 하나님을 닮은 이 아들은 이해를 시켜야 되고 설득을 시켜야 되고 이해가 되어서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되어집니다. 기계는 그냥 기계로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컴퓨터는 프로그램 깔아버리면 됩니다. 인간을 기계처럼 조각하거나 인간을 프로그램으로 깔아버리면 이게 컴퓨터처럼 재주가 있고 기계처럼 강하기는 한데 대화가 안 되고 느낌이 없고 재미가 없습니다. 컴퓨터를 아들 삼아 밤새도록 게임하고 나니까 보람이 되겠습니까? 고생하고 낳아 논 아이하고 밤새도록 노는 게 낫겠습니까? 돌로 인형을 만들어 놓고 우리 남편이다 그러시고 살아보시고 그리고 좋은 남편하고 대화하며 살아보십시오.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완전자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돌로 만들 줄도 아시고 기계로 만들 줄도 아시고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만들 줄도 아시는데 돌과 기계와 컴퓨터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이 이거 데리고는 재미가 없어 살 필요가 없습니다. 만들지를 안 하지. 하나님이 하나님 닮은 걸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하나님 아들과 대화하고 심부름 시키고 칭찬하고 아들은 감사하고 이게 하나님의 즐거움이고 이게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이 목적을 이루려면 이 아들이 하나님 없는 시절을 겪어봐야 됩니다. 하나님 없이 죄악 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와야 이게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게 죄악 속에 한 번 들어간 걸 다시 끄집어내려면 그때는 말로 안 되고 그냥 데리고 오지를 못합니다. 죄로 죽은 우리를 되살리려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 그 죄를 걸머지고 지옥의 형벌을 다 당해야 됩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잘 만드시려고 타락을 허락했으니 그것 때문에 불택자가 있고 그것 때문에 지옥이 있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짓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에 우리가 죄짓고 시행착오하는 걸 하나님이 지켜보고 ‘아 하나님은 잔인하시다.’ 우리의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이걸 제자리에 돌려놓느라고 이게 잔인입니까? 극단적인 사랑이지. 이거는 하나님 완전자 아니고는 이런 계획을 만들 수도 없고 이런 사랑을 베풀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짧은 눈으로 보면 ‘뭔 지옥도 만들고 불택자도 만들고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고 뭐 오신다 가신다 이렇게 복잡하게 하느냐?’ 완전자라도 완전자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은 돈으로 안 되고 주먹으로 안 되고 공업기계로 깎아서 못 만들고 컴퓨터로도 못 만듭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컴퓨터로 세계 돈 다 벌어도 아들놈은 삼성전자 공장에 들어갔다 나오면 하나 되고 둘되고 그렇게 못 만듭니다. 삼성전자의 컴퓨터는 천 대 만 대 억만 대가 만들어져도 그거는 아들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에서 만드는 컴퓨터가 이건희 회장 아들보다 머리가 좋을걸요? 기억도 잘 할걸요? 계산도 잘 할걸요? 또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늙지도 않고 예쁠걸요? 아이 컴퓨터 회사 사장님이 컴퓨터 아들로 삼아 살지 뭐 하려고 결혼해서 애를 낳고 그 애하고 시루고 앉았습니까? 회사를 만들고 회사 돈 다 벌어서 그 아들 주고 싶고 그 아들이 자기를 닮고 그 아들이 자기처럼 사장 노릇 하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비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려면 이건 기계로 안 되고 이거는 말로 안 되고 이건 지옥이 있고 죄가 있고 불택자가 있고 이거는 우리도 죄를 짓고 이걸 다시 구하기 위해서 주님이 하나님인데 오셔서 모든 고생을 다 해야 됩니다. 우리 하나 사람 만들려고 완전자 하나님이 영원한 지옥의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잔인하다니요. 잔인하다니 정말로 조금 생각이 있고 따져보면 지옥을 만들고 불택자를 만들고 타락을 만들고 우리가 죄지어 안 믿은 시절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사랑한 사랑이 측량도 못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1. 죄를 통해서 만드는 것이 완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자라. 죄를 통해서 완전자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 자체적으로 완전인데 하나님이 만들어 낸 아들은 이건 하나님 없는 시절을 갖지 아니하고는 이거는 온전해지지를 못합니다. 죄를 지어보지 않고 착하게만 큰 사람은 착한 사람은 지도를 하는데 죄짓는 죄인들을 지도할 때 좀 어려워집니다. 또 죄를 많이 지어본 사람은 죄짓는 방법은 가르쳐주고 죄인들은 데리고 오는데 또 착한 사람 가르칠 줄을 모릅니다. 두 가지를 다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알고 하나님께 거역했다가 혼나 본 것도 알고 지 힘으로 잘 되다가 망해도 봤고 하나님 은혜로 잘 돼 보기도 했고 이면 저면 두루두루 모든 면을 다 아는 아들을 만들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주시고 죄를 통해 만드는 것이 우리의 완전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이 목적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 있는데 그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겁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이 목적을 두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예술가보다 미술가보다는 더 이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를 저보다 훨씬 이쁘게 만들고 여러분들을 더 이쁘게 만들 줄 아는데 이쁜 걸로만 가지고는 이게 안 되기 때문에 이쁜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별의별 게 다 있어야 이쁜데 꼴값하는 것도 있고 미운 것이 출세하기도 하고 이쁜 것이 마음까지 고운 것도 있고 미운 것이 행실까지 미운 것도 있고 별의별 것이 다 있을 때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손발이 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별의별 걸 다 만드신 겁니다. 사람을 하나님이 자기 목적에 두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습니다. 그 희생입니다. 알고 보면 어렵지 않은데 그 참 그렇게 그게 어려운가 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으면 축하를 해야 될 일입니까? 미안해 죽어야 될 일입니까? 인간이야 죽은 것이 부활하면 출세를 했지만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다가 하나님이 사람을 내버리고 다시 하나님으로 올라가면 홀가분하게 좋은데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죽었다가 그 사람을 다시 찾아 입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영원히 다시는 사람을 못 벗습니다. 완전자 하나님이 인간을 입고 있으면 편리하겠습니까? 불편하겠습니까? 지렁이야 우리 같은 사람이 되면 출세겠지마는 우리가 지렁이가 되면 출세겠습니까? 희생이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그 몸을 내버리고 하나님으로 돌아가면 완전자 하나님 불편 없는 하나님이 될 터인데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는 희생, 삼일 후에 그 몸을 다시 찾아 입고 영원토록 이 인간의 몸을 벗지 않겠다. 사람 되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도 희생이고 사랑이나 부활의 몸을 찾아 입은 그 사랑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위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33년 고생했습니다. 부활의 몸을 찾아 입고는 영원무궁토록 다시는 사람을 버리지 않겠다고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게 우리는 미안해 죽어야 됩니다.
 
내가 교도소 10년 관리를 했는데 요즘 교도소는 그렇지 않으나 고대 사회의 감옥은 내가 10년 교도소 갈 일인데 형님이나 아버지가 ‘내가 대신 가겠습니다.’ 그러면 바꿔치기를 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내가 10년 교도소 가야 되는데 아버지가 ‘제가 잘못 가르쳤습니다. 젊은 놈이 정신 차렸습니다. 제가 대신 교도소로 가겠습니다.’ 아버지가 10년 들어갔고 아들이 풀려나왔으면 좋다 잘 됐다 마음껏 살아보자 이래야 되겠습니까? 교도소 앞에 엎드러져 죽어버려야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날 대신 들어오다니 죽어도 안 됩니다. 내가 무기징역을 살겠습니다.’ 이래야 말이라도 인간답지. 날 대신해 아버지가 들어와 준다. ‘아이 고맙습니다. 놀러 가겠습니다. 친구 만나야 되겠습니다.’ 이걸 욕을 안 하고 배기겠습니까? 강단이라도? 그런 걸 갖다가 막 그냥 욕을 해버려야 되겠는데 하도 강단에서 단어가 억새다 그래서 그냥 욕도 못 하겠습니다. 강아지만도 못한 것들이지.
 
내가 죄를 지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습니다. 죄만 해결하려면 죽기만 하면 됩니다. 내 죄만 해결하려면 오셔서 죽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죄를 해결한 다음 내가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고 영원히 자라 가려면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으로 낮아져 있어야 됩니다. 대가를 내놔야 되니까. 영원한 하나님이 영원의 사람으로 낮아지는 만큼 이 사람이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하나님도 공짜 없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라 공짜로 가도 되지마는 하나님도 값을 내고 우리를 살렸고 값을 내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히 닮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닮아 올라가는 만큼 예수님은 영원히 부활한 몸을 입고 고생하십니다. 뭐 쥐 박히는 고생이 아니라 완전자 하나님이 부활한 몸이나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편한 겁니다. 불편.

우리 마음 같아서야 뭐 우리 집 안방 거지한테 우리 집 안방 내주면 거지는 좋아하겠지. 이렇게 좋은 우리 집 안방에 재벌 회장님을 모시고 ‘이 안방 좋습니다. 여기 사십시오.’ 그 재벌 회장이 불편해서 들어오겠습니까? ‘너한테는 니 안방이 좋지마는 나는 5성급 호텔 스위트룸 하루에 900만 원짜리 살아야 나는 직성이 풀린다. 니 안방 더러워서 못 간다.’ 주님이 이위 성자인데 인간의 몸을 부활한 몸까지 입고 영원히 인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몸은 우리가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닮아갈수록 예수님의 고난은 영원히 우리 위하여 소리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옥도 타락도 불택자도 홍수 심판도 만든 걸 들여다보면 ‘하나님도 참 잔인하다. 모질 막다.’ 그러지마는 넓게 넓게 넓게 영원무궁을 계산해 보면 ‘참 사랑이시다. 참 사랑이다. 어찌 형용 못할 사랑이다.’ 그런 겁니다.

부산에 사시는 분은 부산의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장사해 보셨습니까? 저는 한 3년 해봤습니다. 여수 서시장에 장사하는 분들은 해보지는 못해도 지나가면서 구경을 합니다. 여수 서시장 큰 빌딩 사이에 채소 파는 할머니들 그 골바람이 쳐서 겨울에는 쌩쌩 불면 손가락이 얼어붙습니다. 그래서 생선 몇 마리 채소 몇 개 갖다 놓고 백원 벌고 천원 벌어서 열심히 벌어서 서울 아들 공부하는데 학원비 주고 재수비 주고 등록금 주고 원룸 돈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 돈을 받을 받고 있는 아들놈이 ‘이 돈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가 여수 서시장에서 지나가는 새댁들한테 내 거 사주시라 내 거 사주리라’ 오백 원 천 원 벌어다가 송금해 준다 이걸 느낀다면 그 돈 함부로 못 씁니다. 나쁜 말입니까? 잔인한 말입니까? 당연한 말입니까? 아버지가 노름에서 딴 돈을 송금했다면 그 돈 가지고 술 먹으러 가도 되고 춤추러 가도 괜찮습니다. 노름에서 딴 돈인데. 복권으로 딴 돈이면 마음껏 써도 되지마는 여수 서시장에 부산의 자갈치시장에 그 험악한 데 천원 이천 원 벌어다가 그래도 아들은 공부하는데 따뜻하게 하라고 원룸 80만 원 100만 원 보내주는데 그 돈 가지고 연애질이나 하고 맥주는 싸구려라고 뭔 포도주 마시고 부자들한테 같이 놀아 대고 ‘네놈 쓰는 그 돈이 너 부모 어떤 피 판 돈인 줄 아냐?’ 그 돈 생각하고 쓰는 겁니다. 돈 생각하고.
 
저는 별로 가난하게 살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서울에 가니까 봄에 강의를 하는데 오늘 다 빼먹고 도망가자고 전부 다 도망가서 지금도 고무신이지마는 그때도 고무신 신고 살았습니다. 고무신을 제가 책상 위에 딱 올려놓고 가난해서 고무신 신고 사는 학생들은 강의 듣고 부자들은 다 가고 혼자 딱 버티고 있었습니다. 친구 놈들 다 빼먹고 우리 뭐 3월달 4월달 흥청망청하는데 부잣집 아들들은 가고 난 고무신 신고 대학 다니니까 나는 가난해서 놀러 못 가고 돈도 없고 등록금 깎아줄 리도 없고 많이 배워서 가져가는 것이 돈을 아끼는 거니까 나는 좀 배워야 되겠다. 아 그때부터는 이제 철이 들어 그렇습니다.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철들었으면 장학금 받고 들어갈 건데. 뒤 철이 들어서. 교수가 오는데 학생 하나 있고 다 도망갔으니 이거 A+주겠습니까? 안 주겠습니까? 대학 제 성적 전부 A+입니다. 그 이걸 보고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착한 줄 압니다. 초등학교부터 전부 엉망입니다. 뒤 철이 들어서 뒤늦게라도 열심히 해야지 놀았으니까. ‘부잣집 아들 다 가거라 난 가난해서 공부라도 배워 가야 되겠다.’ 이게 훌륭한 겁니까? 그게 정상입니까? 당연한 겁니까? 학생들 뭔 말인지 알아들으셨습니까? 잘난 거는 이런 게 잘난 겁니다. ‘다 가거라 난 배워야 되겠다.’ 다 가는데 찍힐까 봐 왕따 당할까 봐 실금실금 뒤따라가면 잘난 게 아니고 못나 그렇습니다. 못나도 잘난 척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하나님이 완전자인데 그냥 우리를 완전자 만드시지 하나님은 그러면 됩니다. 그림으로 그려서 완전한 제품, 조각으로 해서 완전한 인형, 손도 댈 수 없는 완전한 인형, 기계도 만들고 컴퓨터로 우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걸 인간이 아니면 하나님이 데리고 재미가 없어 못 봅니다. 예쁜 인형 며칠 델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컴퓨터 가지고는 시간이나 보내지 그거 데리고 앉아서 부부 하겠습니까? 자녀하겠습니까? 손주 하겠습니까? 애를 먹여도 속을 썩여도 날 닮은 거 이쁜 거 자라가는 재미에 그걸 보고 거기다 대고 돈을 다 때려 넣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죄를 짓고라도 정신 차려서 날 닮겠다는 너를 만들고 싶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할 때부터 방향을 이렇게 딱 잡았습니다. 그래서 지옥도 만들고 그래서 불택자도 만들고 그래서 택자 우리에게 죄를 짓게 만들고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살게 풀어놨다가 때가 되니까 ‘와’ 중생을 시켜 무조건 ‘와’ 중생이 되니까 안 올 수가 없고 안 믿을 수가 없어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난 널 위해서 대신 죽었다.’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널 위해서 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고난 내가 다 끌어안았다.’ ‘그렇게까지 투자를 하셨습니까?’ ‘영원한 지옥의 고난만 다 받은 것이 아니라 니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 비용 그 희생을 내가 영원히 인간이 되어 이위 성자 하나님이 영원히 인간으로 살기로 작정을 했다.’ 이보다 더 큰 복음이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자비가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꾸밀 이야기가 있습니까?

이런 하나님한테다 대고 ‘아이 뭐 불택자를 만들어 지옥을 보내고 말고 하나님 너무 그 잔인하신 거 아닙니까?’ 아주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아이 뭐 노아 홍수 한 번 봐주시지 그렇게까지 다 대청소를 해버리시고 히틀러보다 더 하시네.’ 아주 하나님한테다 대고 가르치려 듭니다. 그래 뭐 모르면 그러는 겁니다. 세 살 다섯 살이 모르니까 애미한테 대들지. ‘옆집은 장난감 사주는데 엄마는 장난감 사줬어요? 사줬어? 팥쥐 엄마 아니야? 유전자 검사해 봐야 되겠네.’ 아이 다섯 살짜리도 어디 가서 배웠는지 유전자 검사도 알고 뭐도 알고 나쁜 거는 전부 다 알고 앉았습니다. 배울 것은 안 배우고 인간 될 것은 흔적도 없고 어디서 못된 거 잘못된 거 더러운 것만 가득가득 요즘 애들 똑똑한 것은 죄짓는 데 똑똑하고 나빠지는 데 천재고 옳은 거 하는 데는 전부 등신입니다. 요즘 아가씨들 어른들한테 인사하는 거 보셨나요. 눈만 깜빡합니다. 눈썹 한 번 깜빡하면 큰 인사 한 겁니다. 옛날 신부들은 이만큼씩 하던데 미개하니까 인사를 이만큼 하지 지성인들은 고개만 까딱해도 인사다. 그게 발전인지 그게 후퇴인지 그게 지성인으로 가는 건지 그게 미개하게 가는 건지 선택을 주셨으니 알아서 하십시오마는 완전자 하나님이 그렇게 잔인하시고 우리가 평할 만한 그런 하나님 아닙니다.
 
사람을 목적에 두시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희생을 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거쳐서 온전하게 되는데 사람이 죄를 지어 온전하게 되는 이 온전한 것이 사랑 중에 더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고생할 요량하고 우리를 이렇게 죄짓는 경험을 주신 겁니다.
 
2번. 성자 하나님 하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정확하게 똑같은 하나님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도성 인신하여 빌립보서 2장입니다. 주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날 위해서 날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기록했다고 오해를 해가지고 예수님의 고생은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으니까 십자가 딱 죽을 때까지만 고생했지 그 이후로는 고생이 없다 그럽니다.

아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부모가 고생했지 그다음부터는 제 돈 벌고 제가 직장 다니는데 뭔 부모가 고생을 해? 부모님 되신 분들 대학 졸업하고 직장 들어가면 이제 아들 다 길렀고 이제 마음고생 안 하십니까? 그놈 직장에서 까불다가 잘릴까 봐 그놈 엉뚱한 거 만나가지고 영 배운 거 다 엉망이 될까 봐 좋은 사람 만나야 되는데 애간장은 더 녹습니다. 어릴 때는 어려서 고통 커서는 커서 고통 제 나이쯤 되면 구십 되는 부모들은 걱정 안 하실 것 같습니까? 나이 많은 부모보다 젊은 아들이 먼저 죽을까 봐 이것도 이제 또 환장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부터 데려가시고 구십 아버지가 육십 아들 초상 치게는 해주지 마시라고 또 이거 기도하느라고 애간장이 녹는데 아들 이놈은 제멋대로 사는 줄 압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순간 부모라는 것은 이 아들 죽는 날까지 마음 한 번 편하게 못 사는 겁니다. 먼저 죽어 천국 가 놓으면 더 애터지고 기도합니다. 더 많이 아니까.
 
홍포 입은 부자 그 인간 보십시오. 못되게 나쁘게 다 살다가 죽어 가서 보니까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는데 이거 이렇게 했으면 큰일 나겠다. 어째 좀 바꿔주시고 해결해 달라니까 큰 구렁이 있어 한 번 죽으면 해결이 안 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그러면 나사로를 살려 우리 집에 보내면 내 동생 다섯 놈이 딱 나같이 이 짓하고 있습니다. 거기 보내가지고 느그 형님 보니까 음부에서 고생하더라. 살아생전 얼른 회개하거라. 나사로를 심부름 보내면 동생 다섯이 나처럼은 살지 않고 회개 안 하겠습니까? 허락했습니까? 한 번 죽으면 죽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래도 나사로가 부활하여 가서 전하면 듣지 않겠습니까? 나사로보다 나은 모세가 느그 동생 다섯 집에 다 가가지고 지금 전도하고 있다. 나사로가 살아가도 말 안 듣게 돼 있다. 그리고 알고 보니 홍포 입은 부잣집에도 모세가 들어갔었습니다. 어느 모세가 들어갔지요? 홍포 입은 부잣집에 거지 나사로가 홍포 입은 부자에게는 모세였습니다. 그때 듣지. 거지가 자기 집에 있을 때 그때 안방에 모셔놓고 전도 받고 설교 듣지. 그 거지라고 자기 집 개들하고 같이 던져 버렸습니다. 죽고 나니까 이제 다 알겠습니다. 죽고 나니까 바꾸지를 못합니다.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이걸 누가복음 16장에 기록해 놓고 살아 있냐? 지금은 바꿀 수 있다. 지금은 고칠 수 있다. 지금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한 번 죽으면 절대 두 번은 없다. 이렇게 애터지게 이 밤도 우리에게 빌립보서 2장 8절 하나님이 사람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쇠가 풀무에 갖다 들어갔다 나오면 쇠가 용광로를 풀무라 그럽니다. 쇠가 용광로 풀무에 들어갔다 나오면 단련이 됩니다. 노예가 고생을 하고 숙련을 하면 실력이 나아집니다. 풀무의 쇠와 노에의 숙련은 채찍으로 때리면서 일을 또 시키고 또 시키면 숙련공이 됩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쇠는 불에 넣고 두드려야 좋은 쇠가 됩니다. 길이 없습니다. 노예는 채찍으로 패 대면서 또 시키고 또 시키고 또 시키다 보면 기술자가 됩니다. 인간은 노예도 아니고 쇠붙이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오냐오냐 해놓으면 엉망이 되니까 아까운데 할 수 없이 고생을 시킵니다. 학교도 보내고. 학교가 서 안 되면 학원도 보내고. 학원 가서 안 되면 과외 불러다가 또 한 번 더 시키고 눈치 주고 쥐 박아서라도 어쨌든지 인간을 단련시킵니다. 인간의 단련은 주님의 대속의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죄를 주시고 주님이 대속으로 해결하신 것은 극단적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지을 때 혼내면 하나님은 좋고 쉽고 우리는 아프니까 어렵고 그렇습니까? 자식 말 안 들을 때 주먹이 날아갈 때 회초리 맞는 애가 아픕니까? 회초리를 치는 부모의 마음이 더 아픕니까? 이 뭐 때려본 사람이라 말 때려본 분이라야 물어볼 건데. 정성출 집사님은 혹시 아이들 회초리 들어보셨습니까? 안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박 장로님은 혹시 회초리 들어보셨습니까? 아 뭐 그림 같은 이런 아들이야 뭐 야단 쳐보셨겠습니까? 아들을 회초리 들 때 그리고 칠 때 아들놈은 ‘아이 부모는 치니까 재밌겠다. 맞는 나는 억울하겠다.’ 아이 뚜드려 맞으면서 그런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인간도 이 안에 하나 있습니다. 둘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 초등학교 때 얼마나 선생님이 하고 싶은지 나도 숙제를 진득 내줘가지고 지놈들 전부 고생하고 나도 한번 선생님 해봤으면 좋겠다. 공부도 못해도 마음이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회초리를 드는 순간 부모 마음은 산산조각 갈기갈기 더 찢어집니다. 우리를 만들려고 가난도 주시고 우리를 만들려고 병도 주시고 우리를 만들려고 가정에 어려움도 주시는데 ‘아이 하나님이 잔인하게 좋은 거나 주지 왜 이렇게 야단을 치고 그래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더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우리의 잘못을 해결하러 오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말도 못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한테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달래는 성령은 더 애가 타 죽을 지경입니다. 이런 세계는 결혼 안 하고 아이를 길러보지 않고는 천재 박사라도 모릅니다. 등신이라도 결혼해서 지 닮은 아이를 낳아보면 이건 다 이해합니다. 공부를 못 해도 글을 못 읽어도 아이를 낳아 보면 어른은 됩니다. 아이를 가져보지 않으면 천재 박사라도 그런 거는 책을 읽고 외우기는 하고 논문은 적어도 느낌은 못 없습니다.
 
우리에게 죄를 주시고 하나님은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나님은 더 애가 터집니다. 죄 때문에 당하는 우리의 연단 우리의 고난보다 주님의 고난은 비교도 못하게 더 큽니다. 이래가지고라도 마지막에 우리를 사람 만들려고 ‘아 죄는 안 되겠구나. 하나님하고 멀어지는 거는 천만금을 줘도 안 해야 되겠구나.’ 이런 우리의 마음 자세 하나를 만들려니까 이거는 하나님이라도 뚝딱 만들지는 못합니다. 우주와 영계는 말씀 한마디로 뚝딱 만드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은 6천 년이 돼야 되고 60년짜리 인간 60년 기다려야 되고 백 살에 철드는 인간은 백 년을 시다야 되지 우주와 영계와 천사는 말씀 한마디로 뚝딱 만드는데 택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 우리 안에 마음씨는 모세 하나 만드는 데 몇 년쯤 걸렸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80년 걸렸습니다. 모세 하나 인간 만드는 데 80년.
 
우리에게 죄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큰 투자 하나님 자체가 다 쏟아붓는 이런 극단적인 사랑을 하시는데 그것만 가지고 되지 않고 죄지은 우리를 구원하면서 같은 죄를 지었는데 구원 못 받은 불택자를 옆에 놔둬야 비교가 되면서 우리가 잘 배우기 때문에 그래서 불택자를 만든 겁니다. 억울합니까? 잔인합니까? 약 중에 다른 약을 먹으면 응급실에서 토해버리면 낫는데 제초제라는 약은 이건 먹으면 해독이 안 됩니다. 농사를 지으려니 제초제는 있어야 되고 외동아들이 제초제 마셔 놓으면 큰일 나겠고 이럴 때 이제 지혜로운 아버지는 외동아들을 데려다가 고양이한테 미안하지마는 고양이한테 제초제를 섞어서 먹여서 켁 죽는 걸 보고 ‘어떠냐?’ ‘아이고 무서워 죽겠습니다. 저거 먹으면 큰일 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끝. 고양이 죽는 걸 보고 ‘어 재밌네’ 고양이로 안 되면 이번에 이제 개를 또 먹입니다. 개 죽는 거 보고 깜짝 놀라면 이제 거기서 마칠 건데 고양이 죽고 개 죽는데도 이게 영향이 끼치지 않으면 송아지한테 제초제를 먹여서 송아지가 나가떨어지는 걸 보고 ‘어떠냐?’ ‘이 약은 큰일 나겠네요.’ 벌벌 떨면 그때 아버지가 고양이 한 마리 희생 강아지 한 마리 희생 송아지까지 잡아가며 이 아이에게 ‘제초제라는 것은 농사에는 필수적이나 인간이 마시면 큰일 난다 알았지?’ 이 아이에게 이 지식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송아지를 잡는다면 잔인한 아버지입니까? 사랑의 아버지입니까? 송아지 몇백만 원짜리를 죽여서라도 아들을 사랑한 사랑의 아버지냐? 아이 즈그 아들 살리려고 고양이를 죽이고 개를 죽이고 송아지를 죽이다니 동물 애호가들은 와서 대모를 할 겁니다. ‘느그 아들 놈 그러면 그래봐라’ 즈그 아들은 안 그러겠지.
 
이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하셨고 이 하나님이 지옥과 불택자를 만든 것은 택한 백성 우리가 죄를 지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택자 불택자가 죄는 같이 지었습니다. 내 아들하고 친구 아들하고 둘이 공범으로 마트에서 훔치다가 교도소를 같이 들어갔는데 끗발 좋은 아버지가 변호사를 데리고 우리 아들은 빼내고 빽없는 친구는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못 빼내니까 교도소입니다. 이때 이 아들이 ‘와 아버지 잘 만났구나. 이 아버지 아니었으면 나도 저리 될 건데’ 하나 죄지은 거 하나 빼내는 것보다 똑같이 죄지은 둘 중에 하나 빼내오고 하나는 놔두면 비교가 되면서 가슴이 철렁하면서 ‘아버지 잘 만났구나. 아버지 덕분이구나.’ 이렇게 아들에게 느낌을 주려고 불택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참 죄송한데 택자와 불택자는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천하의 불택자들에게는 참 죄송한데 택자와 불택자는 원리적으로 처음부터 아예 하나님이 만들기를 용도가 다릅니다. 택자는 아들 불택자는 이 아들 때문에 필요해서 하나 들러리 갖다 놓은 겁니다. 제초제가 무섭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 고양이를 강아지를 송아지를 희생시키며 아들을 하나 바로 가르치는 아버지가 고양이나 사람이나 같습니까? 개하고 외동아들하고 같습니까? 여러분들의 외동아들과 여러분의 강아지가 같습니까? 달리 방법이 없고 고양이 개 송아지가 죽어 나가야 우리 아들이 정말 정신 차린다면 그리고 돈이 있다면 가차 없이 고양이 개 송아지를 희생시키고 외동아들 내 아들이 조심하고 잘 사는 아들을 만든다면 그 아들이 택자고 그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고 개 고양이 송아지는 하나님이 원래 이거는 시장에서 사 올 때부터 아들 교육용으로 사 온 겁니다. 교육용으로 사 온 고양이하고 외동아들라고 같다니요? 얼마나 소경이 되고 얼마나 인간이 어두워졌길래 택자와 불택자가 같은 줄 압니다.
 
택자는 불택자도 있기 전에 세상도 있기 전에 천사도 있기 전에 하나님 홀로 계실 때 처음 만든 것은 우리 택자고 이 택자를 위해서 천국이 필요해서 천국 만들고 지옥이 필요해서 지옥 만들고 이 택자를 위해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까 불택자도 나온 겁니다. 불택자들이 들어놨으면 막 그냥 난리 난리를 할 겁니다마는 우리 맞아 죽을까 봐 하나님께서 택자 불택자는 표시를 해두지 않았습니다. 불택자 이마에 빨간 칠해 놓고 택자 이름에 파란 칠 해놨으면 우리가 전도할 때 파란 것만 전도하면 되겠지 얼마나 수월할까? 불택자들이 왜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빨간 게 찍힌 줄 뒤에 보니까 ‘아니 나는 지옥 가도록 만들었네.’ 이래놨으면 교회를 그냥 두겠습니까? 우리를 그냥 두겠습니까? 난리가 나겠지. 택자와 불택자는 DNA 검사를 해도 혈액 검사를 해도 병원에 넣어도 둘이 똑같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적으로 인류적으로는 구별이 안 됩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만 딱 아십니다. 택자 불택자 택자는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 아들을 위해서 불택자는 들러리로 갖다 세워놓은 겁니다. 이거 죽든지 말든지 우리가 왜 간섭하지요? 왜 개입하지요? 왜 난리지요?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니 철없는 날 가르치려고 고양이 한 마리를 제초제로 죽였으니 고양이한테 미안해야 되겠습니까? 뻔뻔스러워야 되겠습니까? ‘고양이는 억울하냐? 너도 그러면 아버지 아들 해라.’ 이거보다는 ‘못난 아들 나를 가르치려고 이 이쁜 고양이를 사랑하는 고양이를 아버지가 할 수 없이 제초제로 죽는 걸 구경시켰구나. 나는 알게 되어 감사하나 이 고양이한테 참 미안하구나. 내가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이걸 이렇게 하지 않았을 터인데.’ 이리 가야 하나님이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이게 설명이 잘 됐으면 별로 어렵지 않고 이해가 되셔야 됩니다. 이게 만약에 이해가 되면 기독교 6천 년에 늘 돌고 도는 제일 난제 중의 난제가 해결이 됩니다.

3번입니다. 토기에게는 도자기를 토기라 그럽니다. 도자기 토기를 영어로 말하면 뭐라고 그럽니까? 미국 보낸다고 지금 공부 시키고 있는 분들 두 분이 안 계시는데 토기 도자기를 영어로 뭐라 그럽니까? 세라믹이라고 그럽니다. 세라믹. 문자를 쓰면 세라믹이 토기 도자기입니다. 흙을 굽어서 도자기 만드는 사람을 토기장이라 그럽니다. 유식하게 말하면 도공입니다. 도공. 도자기 토기에게는 흙으로 만들었다고 토기입니다. 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사람을 토기장이라 그럽니다. 아니 흙으로 토기 만드는 사람이 큰 걸 만들든 적게 만들든 요강을 만들든 꽃병을 만들든 만들었으면 만든 줄 알지 오전에 말씀 오후에 말씀드렸습니까? ‘아이 꽃병이 필요해서’ ‘왜 꽃병이 필요합니까?’ 하도 여자가 꽃병 노래를 부르니까 ‘그래 아니오 너 좋아하는 대로 하나 꽃병 사자.’ 또 꽃병 만들어서 두 개 세 개 갖다 놓고 근데 밤에 자다가 급할 때는 요강도 있어야 되겠다. 아버님 위해서 아이 위해서 호랑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위험하니까 요강도 하나 있고 꽃병도 여러 개 만들어 놨습니다. 요강이 ‘왜 나는 꽃병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요강은 그런 말 안 합니다. 아무 소리 안 하고 ‘예’ 그러지. 인간만 하나님한테 대들고 따집니다. 입이 있다고 입이 있다고 입을 찢어놓으니까 아무 말이나 해댑니다. 토기에게는 토기장이 그릇을 만든 주인의 뜻만이 전부입니다. 소는 풀을 뜯어 먹습니다. 풀과 소의 관계처럼 토기와 주인의 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풀과 소의 관계가 아니라 토기와 주인의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불택자 만들었다고 불택자는 화를 내도 택자는 화내면 안 되는 겁니다. ‘아이 불택자도 같이 천국 가게 해 주옵소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닙니다. 그건 주인의 뜻입니다. 불택자들이 화가 나면 어떡할까나요? 불택자들은 모릅니다. 알아도 믿지도 안 합니다.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순 거짓말이라고 그러는데 뭔 걱정을 뭔 사서 그까짓 고생을 하고 앉았습니까? 우리의 인간은 원래 한 줌의 흙입니다 한 줌의 적고 낮은 존재입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토기로 비교를 한 겁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로 그릇을 만들지 않냐?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토기입니다. 인간은 전부 다 흙으로 굽어놓은 토기입니다. 그릇입니다. 주인이 큰 그릇, 작은 그릇, 좁은 그릇, 넓은 그릇 필요해서 별의별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주인의 넓고 지고한 뜻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광대하고 굉장히 높은 그런 뜻이 있어 만들었으니 하나님에게 그런 뜻이 있으면 우리는 그걸 소망으로 가지는 겁니다. ‘나는 한 줌의 흙인데 완전자가 나를 기막히게 좋게 만들려고 뜻을 세웠단다.’ 그 뜻이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완전자가 작정하고 시작했으니 보통은 아닐 겁니다. 높은 자가 만들고 손을 댔으니 우리가 그냥 보통 올라가다가 말지는 않을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천국 문만 들어가면 된다 그랬는데 역사의 모든 신학이 천국 문 열고만 들어가면 된다 여기까지만 가르쳤습니다. 천국 들어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이걸 가르친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천국 들어가면 노래나 부르고 먹고 놀고 자면 된다. 먹고 놀고 주무셔 보셨습니까? 한 열흘 하면 허리가 그냥 허리가 내려앉아서 못 견딥니다. 일이 있어야 재미있지 하고 싶은 일, 해서 좋은 일, 보람된 일만큼 더 좋은 노는 게 없습니다.60에 퇴직하고 예전에 60에 공무원 60에 교사 퇴직하고 집에 가면 한 1, 2년 만에 폭삭 늙고 그다음 초상을 쳐버립니다. 애들을 가르치는 게 이게 살맛이 나는데 할 일이 있고 해서 좋은 일 하기 싫은 일을 하니까 이게 죽을 고생이지. 하기는 했는데 결과가 안 좋으니까 죽을 일이지. 하고 싶은 일 하고 나니까 좋은 일 하고 나니까 고맙다고 하는 일 하고 나니까 보람된 일은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겁니다. 남의 밑의 노예 생활은 은퇴하고 퇴직하면 좋겠지. 교도소는 얼른 나오면 좋겠지. 취미 생활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맞는 생활이라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일이 들어서 사람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100세 노인 100세 노인 이야기들을 요즘 상식적으로 많이 듣는데 공통점을 다 들고 다 듣고 알고 계시지요? 100살이 되어서도 앞뒤 돌아댕기면서 텃밭도 가꾸고 리어카도 끌고 그러더라. ‘하이 100살 돼서 고생하시는데 그냥 안방에 편안하게 누워 계십시오.’ 눕혀 놓으면 가버립니다. 효도가 아니라 그거 고려장입니다. 생매장입니다. 지나친 일 말고 하기 싫은 일 말고 하고 싶은 일 좋은 일 적당한 일 적당한 일을 주는 것보다 노인 연세 많은 사람에게 더 행복은 없습니다. 이걸 뺏들다니요. 큰일 날일이지. 천국 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전부 다 하도 고생만 해놓으니까 천국 문 들어가기만 하면 가기만 하면 노래를 부르는데 눈치 있는 사람은 들어가서 어찌 되느냐? 천년만년 영원무궁토록 천국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있냐? 침대에 누워 있냐? 노래만 부르냐? 그림은 없냐? 할 일은 없냐?
 
손양원 목사님의 위대한 점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점 손양원 목사님은 천국에 들어가면 끝나느냐 그게 아니다. 천국 들어가는 순간 영원무궁토록 이제 주님을 따라 할 일이 있다. 뭐 할 일이 있냐? 천국의 영원한 영계의 만물을 상대로 주님 심부름을 하게 된다. 그 참 굉장한 걸 깨달은 분입니다. 이런 것은 전해주지 않고 뭐 그냥 원수를 사랑하니 원수를 사랑하니 공산당도 원수 사랑합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도둑놈도 원수를 사랑해서 함께 도둑질하러 댕깁니다. 조폭도 싸우다가 서로 또 한 잔 먹고 또 친구 합니다. 조폭은 사랑이 없는 줄 압니까?여당 야당 서로 용서하고 당 합하는 거 못 보셨습니까? 3당 합당 이런 거 못 들어보셨습니까? 죽기로 싸우고 원수라고 그러다가 그냥 당 하나 만들어 가지고 또 대통령 가져오고 안 그럽디까? 정권을 위해서 야욕을 위해서 회사 두 개가 합했다 떨어졌다 다 합니다. 돈벌이도 그러고 조폭도 그러고 정치가도 그러고 ‘뭐 원수 사랑하는 것이 일반적이 아니라고?’ 눈치 빠른 것들은 이합집산 부지런히 하면서 못 하는 짓 없습니다. 그걸 중국에서는 합종연횡이라 그럽니다. 들어보셨죠? 합종연횡. 일곱 나라가 요리조리 맨날 동맹 원수 동맹 원수 유리하면 원수 되고 유리하면 또 동맹하고 그 사람들 원수사랑 잘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원수사랑은 그런 사랑 아닙니다. ‘저 신앙 없는 것 그냥 두면 지옥인데 사형당하면 지옥인데 저걸 살려내면 전도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일편단심 그 목적 하나 외에는 없었습니다. 원수 사랑이라니요. 원수를 무조건 사랑하려면 왜놈들이 신사 참배하라 할 때 신사 참배를 해야 원수 사랑이지. 왜놈들이 신사 참배하라는데 그걸 시키는 대로 해야 원수 사랑이지 왜놈은 원수 아닙니까? 신사 참배하라는 거는 기독교의 적이 아닙니까? 그것들이 신사 참배 하라 하는 대로 신사 참배해 버리면 원수 사랑인데 목숨 걸고 안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요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사랑할 것은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을 것은 딱 잘라버리고 귀신은 그냥 대충대충 버무려가지고 비빔밥으로 썩 넘어갔고 믿는 사람은 말씀으로 따져보고 생각해 보고 구별해 보고 ‘이건 내가 죽어도 희생해야 되겠구나.’ 그때 죽는 겁니다. 함부로 죽으면 개죽음입니다. 이건 정말로 옆집에 밥 한 그릇 갖다 줘서 신앙에 정말로 도움이 되겠느냐 그때는 줍니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줬다가 이 장애자가 얻어먹는 습관이 많아져서 나중에 영구 장애가 되겠다. 그럴 때는 딱 잘라서 ‘니가 얻어먹어라. 니가 돈 벌어먹으라.’ 그래서 이 사람이 오기가 나서 일을 다니고 일을 다녀서 나중에 부자가 돼가지고 ‘니가 밥 한 그릇 안 줘서 내가 오기로 그냥 막 일을 당겨서 이제 건강해졌다.’ 그러면 잘한 겁니까? 못 한 겁니까?
 
발 다친 사람들한테 400만 원짜리 공짜 전동차를 사회복지연대인가 그쪽에서 줍니다. 발 다쳤는데 400만 원짜리 전동 휠체어로 마트도 가고 지하철도 가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계속 돌아다니니까 국가가 좋아서 400만 원짜리 휠체어가 공짜라 이렇게 통행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 다리 다친 사람이 눈물을 이빨을 악물고 눈물을 머금고 걸어 다녀야 재활이 되고 그래야 자기 다리를 찾는데 400만 원짜리 전동 휠체어 다 줘버리니까 걸어 다닐 것들 영 앉은뱅이를 만들어 버립니다. 정말로 필요하면 4천만 원짜리라도 줘야 되고 자활 재활 운동을 해야 될 사람들한테는 전동 휠체어를 줘? 넘어지더라도 던져놔야 울어가며 일어서며 그다음 남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무조건 사랑이라 아닙니다. 구별 사랑입니다.

85쪽 넘어갑니다. 제1부에서 하나님은 절대 주권이다. 2부에서 우리는 만사 순종만 하면 된다. 3부에서 아이 하나님 주권과 우리가 자유면 충돌이 아니냐 모순이 아니냐 알고 보니까 비밀이고 알고 보니까 주님이 우리를 앞세워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를 길러 가는 모순이 아니라 오묘한 이치였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제4부 왜 이번 집회를 이 말씀으로 잡았냐? 오늘은 오늘의 신앙의 환경은 이 세상이 너무 좋아지면서 어디까지 좋아졌느냐? 하나님을 욕을 하고 성경을 욕을 하면서 과학은 정확무오합니다. 성경은 틀린 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못하는 걸 대학병원이 다 합니다. 대학이 다 합니다. 기술이 다 합니다. 예수님은 물 위에 걸어가셨습니까? 현대 과학은 로케트로 달나라도 갑니다. 이러면서 과학과 기술이 교회와 신앙과 예수 믿는 사람들을 뒤흔들어서 믿는 사람이 교회는 다녀도 속으로는 과학은 틀림이 없다. 성경은 틀림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모르겠다.
 
대한민국이 세계 신학계에서는 제일 엄하고 정통이 많은데 신학교 교수들이 겉으로는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고함질러놓고 학자들끼리 만나면 이것도 틀렸고 이것도 틀렸고 뭐 틀린 거 다 서로 아는데 그러고 앉았습니다. 교인들은 멋모르고 신학자가 강의할 때 막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떠들어대면 ‘아이고 저분은 성경을 진짜 믿는구나.’ 따라다니는데 그 학자들 뒤로 모임에 가면 성경은 정확무오하다는 소리 헛버서라도 입 밖에 내지를 않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틀린 데가 많은데 오자가 얼마나 많은데. 모세 장인의 이름이 여기서는 호밥이라 그랬다가 저기서는 누구지요? 호밥 또 하나는 르우엘? 이드로? 모세의 장인이 여기의 이름은 이렇고 저기의 이름은 이렇고 죽은 숫자도 다르고 예수님의 족보부터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따져봐 보면 다 틀립니다. 신학자들끼리 모이면 성경은 뭐 엉망진창인데 근데 돈 벌어먹어야 되니까 성경은 틀렸다는 쪽은 적고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고함을 질러 쌓으니까 큰 소리 세게 하는 신학교에 순수한 사람들이 몰려가는데 자기들 신학자는 정말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줄 아는데 뒤로 모여 놓으면 육갑 다 하고 앉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게 6천 년이다. 제가 아는 신학교 중에서는 그 소리 하는데 없습니다. 진화론과 과학이 지구가 30억 년 됐다 40억 년 됐다 사진으로 분석해가지고 딱딱 들이밀고 앉았는데 맨 정신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은 6천 년이다. 엿새 만에 다 만들었다. 턱도 없는 소리. 무식한 신학생들이나 무식한 목사들이나 그 말 하지. 예전에는 과학이 엉망진창이니까 성경이 마음껏 큰 소리를 쳤는데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고학이 나오면서 유전공학이 나오면서 물리 분석 화학 분석이 나오면서 ‘봐라 과학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다. 물리의 법칙이란 수학이란 정확하게 그대로다 성경은 대충대충 그렇지 않냐 성경을 잘 읽어보면 전부 다 모순이 많지 않냐?’ 많이 배울수록 점잖게 교회는 가는데 마음속으로 죽어도 이 복음밖에 없다는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무식한 시골 노인네들이나 죽어도 이대로다 그러지. 무식한 교인이 많은 공회나 죽어도 이대로다 그러지. 지성인들이 많은 교단들은 과학과 자연과 학문과 기술 때문에 벌써 신앙 다 팔아먹어버렸습니다. 그냥 교회 가서 좋게 좋게 박수 치고 율동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공회 교회는 그런 거 안 했는데 제일 그대로 그대로 간다는 교회 인터넷에 보니까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뺑뺑. 내 여자가 이 남자고 사랑합니다. 사랑 나 같으면 그 교회에 안 보내겠습니다. 내가 데리고 살려고 결혼했는데 이 남자보고 사랑합니다. 저 남자보고 사랑합니다. ‘아이 뭐 교회에서 인사하는데’ 불장난이 인사로 끝납니까? 쳐다만 봐도 벌써 일이 생기는데 이렇게 나눠 놔도 뒷짓을 다 하고 앉았는데 불을 막아도 불이 자꾸 나는데 불을 질러 쌌는데 그게 화재가 나지 그게 그냥 있겠습니까?

결국 교회가 우리도 환경 운동합니다. 우리도 통일 운동합니다. 우리도 복지 운동합니다. 복지부가 교회보다 거지 더 많이 먹입니다. 절에는 안 먹입니까? 교회가 환경운동 복지운동 거지 밥 먹이려면 교회 간판 내려버리면 됩니다. 예배당 다 복지부에 주면 복지부가 더 잘 먹입니다. 지난달 제 월급이 세무서에서 85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시골교회 월급 작다고. 매달 85만 원이 들어옵니다. 세상에. 신풍 교인들은 80만 원밖에 안 줍니다. 그것도 또 월세는 떼 갑니다. 교회보다 세상 세무서가 돈을 더 많이 줍니다. 고무신 하나 가지고 10년을 사니까 교회에서 월세 달라 해가지고 80만 원 월급 주고 30만 원 월세 받아 갑니다. 교회보다 세무서가 돈을 두 배 더 줍니다. 거지 밥 먹이고 거짓 옷 입히고 가난한 애들 교복 입혀서 학교 보내는 것은 교회보다 불신 세상이 훨씬 잘합니다. 교회 문 닫아 버려야 됩니다. 어느 짝에 쓸라고. 거지 밥 먹이는 것은 복지부가 하고 옷 입히는 것은 여성부가 하고 목사 월급 잡은 적은 것은 세무서에서 돈을 줄 수 있으나 천국 가는 길은 말씀대로 사는 길은 세무서 복지부 절 다 달려들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 전하고 말씀 가르치는 것만 전문해야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지만 복지관도 있습니다. 밥도 줍니다. 거지 호강도 시킵니다. 그건 교회의 자랑이 아닙니다. 하도 가난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을 때 교회가 밥도 주고 전도도 했지마는 지금은 많이 먹어서 성인병에 걸려서 전부 다 난린데 더 먹여? 많이 배워서 부모를 치고 사는데 더 배워? 옷이 많아서 쓰레기통에 성한 옷을 버리는데 옷 사줘? 그건 나라에 맡겨도 나라가 잘합니다. 나라가 하는 것은 나라에 맡기고. 학교도 병원도 고아원도 밥 주는 것도 교회 아니라도 세상이 잘 살고 잘하니까 이런 거는 세금 내고 세상에게 맡겨놓고 교회는 그냥 말씀 교회는 주님이 뭘 원하시는고 나를 왜 만들으셨는고 이것만 집중하면 좋겠는데 교회가 뭔 복지가 교회인 줄 알고 환경운동이 교회인 줄 알고 민주화가 교회인 줄 알고 교회가 데모하는 게 교회인 줄 알고 전 뭐시기 목사님은 광화문에 가서 박근혜 지지하고 또 저쪽 목사님은 또 문 뭐시기 또 지지하고 교회끼리 광화문에 백만 명씩 싸움 박재기를 하고 앉았습니다. 그 교회하는 일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느냐?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되었느냐? 과학이 자꾸 발달하면서 과학과 기술이 과학과 기술은 정확무오하다. 틀림이 없다. 성경은 틀린 데가 많지 않냐? 자꾸 이렇게 들쑤셔 놓으니까 하기야 성경을 읽다 보니까 뭐 모순도 있고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습관이 돼서 교회는 나가면서 천국은 슬슬 흐려지지 믿음은 슬슬 흐려지지 그러다 보니까 이왕 만났는데 교회에서 그냥 노래나 부르고 좋게 좋게 그러다가 그냥 다 그리되는 겁니다.

세상이 이리되다 보니까 아무리 연구를 해도 제4부 오늘의 신앙 환경을 보니까 아무래도 주권 교리 하나님만 절대 주권 하신다 세상이 뭔 소리 하든지 흔들리지 말아라 이 주제로 이번 집회를 집중해야 될 필요성을 그렇게 강하게 몇 달 동안 가졌습니다. 세상의 과학과 기술이 하나님이 돼버렸고 세상이 지상낙원이 돼 버렸습니다. 뭐 천국 갈 거나 있습니까? 세상이 이만하면 지상낙원인데 정말 그런가? 세상이 잘 나갈수록 우리는 그럴수록 하나님의 주권밖에 없다. 과학이 발달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 발달시키니까 발달되었고 세상이 좋아진 것도 하나님이 좋아지게 했으니까 좋아졌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붕괴시켜 버리면 한꺼번에 노아 홍수 때처럼 내려앉을 수가 있다. 절대 주권만 믿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되는 학생들 청소년들 우리 교인들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너무 심각하니까 이게 위기라 절대 주권을 교제에 요약했습니다.
 
내일은 결론으로 간단하게 86쪽까지만 이번 집회는 마칩니다. 나머지는 교회에서 이어질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이다. 우리는 자유인데 그 자유는 순종하는 자유만 자유다. 그리고 순종하다 보면 나머지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은혜로 해결이 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깨달아지면 알고 좋아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천하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한 명 그 한 명이 말세에 빛이 되니 많이 모이면 더 좋지마는 한 명이라도 빛으로 바로 믿는 사람이 되도록 자기를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 교정 msa.

Comments

서기 08.13 14:26
22.8월 집회10 타이핑-등재완료
교인 08.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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