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22.5.3 창4:8 ①심판준비의 두 길, 노아 방주 ②가인의 회개거부, 멸망길 ③범죄, 계통가속 고도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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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3 집회4 (화전)

제목 : ①심판준비의 두 길, 노아 방주 ②가인의 회개거부, 멸망길 ③범죄, 계통가속 고도파멸

본문 : 창세기 4장 8절 -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기도 드리겠습니다.

항상 두 길, 우리 앞에 내어 놓으시고 생명의 길 복된 길 하나님 동행하고 세상을 초월하여 중생된 저희들의 남은 생애가 우리의 시간, 우리의 기회, 우리의 마음, 우리의 요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생활에 말 한마디까지 영원 영생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무한히 자라갈 수 있도록 만 가지 은혜를 베풀어 창조와 섭리와 역사의 세계로 오늘까지 인도하시고 이 좋은 5월에 첫 주간 생각 못한 이 산중에서 말씀을 통해 주의 뜻 오늘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살필 수 있게 기회를 주셨으니 이것이 이미 크나큰 은혜요 기울이고 집중하는 은혜를 더하사 우리 마음 열어주시고 주님은 친히 인도하시고 저희들은 따라가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남녀노소 모두를 불러주셨사오니 어린대로 또 연로한대로 또는 가정이나 건강이나 여러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종들이나 받은 은혜가 많아 실수하기 쉬운 좋은 때를 걸어가는 복 받은 교인들이나 말씀을 통한 주의 뜻을 살피는 이 시간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26페이지 교재를 펴시겠습니다. 오른쪽 지금까지는 일부 초기 인류, 인간의 첫 모습이 어떠했던가? 항상 두 길이었는데 자기중심으로 또 자기 좋은대로 그렇게 걸어온 아담과 가인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땅 위에 버려두고 가는 생애를 똑같이 태어나 어린 시절 결혼하고 아이를 길러가며 365년 직장 다녔고, 가정생활 했고, 모든 일반 생활은 그대로 하면서 그 속에 내용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이 땅위에 두고갈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특별히 에녹은 하나님이 그대로 하늘로 데려가시며, 오늘 우리에게 죄악의 이 땅위에서도 하나님의 동행은 전부 영생이다. 하나를 가르친 게 에녹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때에 모든 사람이 노아 홍수로 멸망 받을 그 때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만 구원 받은 24페이지를 잠깐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24쪽, 첫 번째가 아담 두 번째가 가인 세 번째가 에녹 그리고 네 번째 노아 홍수까지를 살핍니다. 노아 홍수는 120년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시험 칠 날짜를 많이 주면 여기 선생님들 많이 계시지요? 시험 날짜를 많이 주면 공부를 많이 합니까? 많이 놀아버립니까? 시험 날짜를 많이 주면 많이 공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인간이란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반대로 사용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죄악성입니다. 120년의 기회를 줬습니다. 이만하면 기말고사 이만하면 시험 준비 기간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120년 항상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도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만, 안 믿는 사람은 이러나 저러나 기회는 없습니다. 중생된 사람에게는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이 순간은 기회입니다. 기억하실 것은 기회가 주어지면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학교는 시험을 보려고 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취소하는 수도 있습니다. 시험지 유출이 되면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회주시고 불변의 하나님이 반드시 최후 심판을 하십니다. ‘보자. 살아 생전 믿었는가? 믿기는 믿었지만 어떻게 믿었는가?’ 기회가 많다고 심판이 늦어진다든지 없어진다든지 바뀌는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을 할 것인가? 노아 때에 모든 사람들이 일반 생활을 했습니다. 새벽에 에녹의 생활처럼,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아이 기르고, 900년 이상의 기회를 줬으니 마음껏 하나님 모시고 동행해도 되는데, 24쪽 위에 하나님 아들들이 불신자 중생되지 않는 사람은 수에 칠 가치도 없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좋아하는대로 결혼하고 잘 먹고, 잘 살더라. 이 홍수에 죽은 사람들은 전부 불택자인가? 중생되지 않아서 그런가? 믿는 사람은 중생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오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반 생활은 죄 되는 거 아닙니다. 에녹이 일반 생활하지 않고, 특수 생활, 수도원 생활,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게 아닙니다. 에녹의 직업이 목회자라서 구원을 받은게 아닙니다. 똑같은 일반 생활을 했는데, 내용이 하나님 동행이었더라. 노아 때 모든 사람이 일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부 멸망입니다. 멸망. 노아만 방주 마련을 했습니다. 노아의 길을 오직 방주 하나. 방주 마련 위해서 먹었고, 방주 마련 위해서 살았고, 방주 마련 위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 방주 마련 생활 하는 중에 셈과 함과 야벳이 태어난 걸 보니까, 성경을 간단하게 읽으면서 이런 것 살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신학으로 복잡하게 들어가려 하지 말고, 적어 주신 말씀 하나 둘 이리 저리 비교해 보면 쉽습니다.

성경 한 페이지를 넘겨, 창세기 5장 32절을 봐 보실까요? 노아 오백세, 노아 오백세, 오백세가 아니라 오백세 된 후 셈, 함, 야벳을 낳았더라. 셈과 함과 야벳의 출생은 노아 오백세 이후입니다. 노아 육백세에 홍수가 났는데, 노아에게 120년 기회를 줬습니다. 그러면 우리 학생들 다 같이? 노아 몇 살때 120년 후에 홍수 온다고 나왔지요? 480살입니다. 노아 480살에 120년 후에 홍수 심판한다고 되었습니다. 120년 동안 노아가 방주 준비를 했는데 480살부터 준비하면서 20년이 더 지난 뒤에 셈이 태어나고 함이 태어나고 야벳이 태어난 것을 보니까, 노아 120년 방주는, 방주 준비는 교회만 갔습니까? 찬송만 불렀습니까? 기도만 했습니까? 부부도 생활도 했습니까? 부부 생활 다 했습니다. 120년 안에 셈, 함, 야벳이 태어나니 노아는 방주 만들며 아내를 잘 돕지는 못했겠지만, 아내는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고 그 방주를 (만드는 것을) 돕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120년 노아 부부, 셈 함 야벳 세 아들 부부 합해서 8명이 120년 동안 망치 들고 대패 들고. 방주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에녹이 죽지 않고 영생한 것은 예배당에만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다. 예배만 들여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산 속에 기도원 만들어 놓고 여기서만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혼했고 아이 낳았고 길렀고 가정 책임 다했습니다. 현실 속에 신앙 속에 그런데 그때가 아담 때문에 타락한 이후입니다. 에덴 동산 안이 아닙니다. 범죄한 세상 속에 ‘하나님과 동행’이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겉은 일반 생활, 겉은 죄악 세상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왜 직장 가지요? 주님 주신 기회니까 왜 직장 갑니까? 벌어서 쓸 일이 있으니까. 왜 직장갑니까? 하나님이 맡긴 자녀를 책임 져야 하니까. 똑같이 직장을 가면서 벌기 위해서 가는 사람, 배운 걸 써먹기 위해서 가는 사람. 직장이 잘못된 거 아닙니다. 출근이 잘못된 거 아닙니다. 왜 가는데? 왜 공부하는데? 왜 결혼 하는데? 왜 아이를 기르는데? 둘이 좋아서 살다 보니까 아이가 나왔으니까 기르지. 이게 홍수 때 빠져 죽은, 에녹 때 에녹 아닌 사람들이 살아간 일반 사람의 생활이고, 에녹은 하나님이 주신 사람 한 몸되어 주님 모시고 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아이 말씀으로 잘 기르겠습니다. 그런다고 말 잘 듣습니까?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는데 나이 계산을 해 보며 홍수 때 죽었습니다. 에녹의 아들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다가 홍수 때 죽었습니다. 에녹 아들 완전자입니다. 므두셀라를 가르친 에녹이 완전 교육한 거 아닙니다. 하나님 동행함으로 할 만큼만 했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도 망나니입니다. 죄인입니다. 근데 사무엘의 두 아들의 탈선은 사무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엘리 아들 둘이 삐뚤어진 것은 엘리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엘 리가 아들 둘을 불러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어떡할거냐?’ 꾸지름하고 가르쳤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엘리를 보니까 솜방망입니다. 하나님 보라고 남들 보라고 아들들 불러다가 ‘네 놈들 성전 안에서 죄 지어 되겠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본다’ 할 말은 다 했는데 하나님이 보니까 아픔이 없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도 죄입니다. 사무엘은 두 아들의 탈선을 사무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노아 홍수에 모든 사람이 일반 생활을 하는데 그 일반 생활이란 하나님 없는 생활, 방주 마련 안하는 생활은 홍수에 전부 멸망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오직 방주만 준비했는데 배 만드는데만 120년 걸렸느냐? 아닙니다. 부부 생활했고, 방주를 만들다가 셈이 태어났고, 방주를 만들다가 함이 태어났고, 방주를 만들다가 야벳까지 태어난 걸 보니까 그리고 이 세 아들들을 결혼까지 시키는 걸 보니까 일반 생활을 하면서 120년 후에 심판이 온다. 그리고 한 말씀씩 또박 또박 걸어가면 준비를 했던 겁니다.

24쪽 중간입니다. 모든 생활이 일반 생활을 했는데, 그 일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기쁜 생활 즐거운 생활 행복한 생활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사람 사는 게 그거 아닙니까? 어떻게 살아야 슬플까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활을 기쁘게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입고 뒤에 마태복음 지난 5월 집회 때 살펴 본 말씀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마지막에 보면 그거입니다. 옷만 가지고? 옷을 입어 잘 입기도 하고, 옷 대신에 명예를 입는 사람 졸업장을 입는 사람 경력을 입는 사람 옷의 종류도 많습니다. 크게 말하면 먹고, 마시고 그다음 입는 생활. 먹다니? 음식을 먹는 것도 먹는 것이고, 지식을 먹는 것도 먹는 것이고, 넌 무엇을 먹느냐? 넌 무엇을 입느냐? ‘나는 이렇게 잘 나갑니다.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옷이 좋아서 좋지만, 명예를 입고, 경력을 입고, 남들의 존경을 입는 것도 입는 겁니다. 간단하게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마시며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해야 자기를 위해서 좋아질까? 자기를 위해서 어떻게 해 볼까? 이게 누가복음 16장에 오면 홍포 입은 부자의 생활입니다. ‘매일 먹고 매일 연락하였더라’ 좋은 옷 입고, 좋은 옷만 안 입으면 나사로 되어 천국 갑니까? 말이 됩니까? 솔로몬은 틀림없이 지옥 갔겠네요? 솔로몬만큼 좋은 옷 입은 사람이 없는데. 편하게 좋게 남 보기에 부럽게.

교회 옆에 학교 다녀도 성공할 사람은 다 성공 하더만. 교회도 없는 저 먼 곳 먼 곳까지 위험해도, 교회가 없어도, 신앙에 손해를 봐도. 학교 한 단계 더 좋은 데만 가면 그러면 좋은 학교를 입어 더 좋게 살지 않겠느냐? 이래 말하면 우리 다 양심의 가책이 되겠지요. 공회 청년들 공회 학생들은 왜 예배당 옆에 일반 학교를 다녔습니까? 공부를 못하니까 그렇지. 공부 잘하면 교회 옆에 다니겠습니까? 전부 줄줄이 다 멀리 가지. 그래서 머리도 좀 대충 만들어 주신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이쁘면 집안에 있습니까? 돌아다니지. 집안에 가둬 놓으면 끓는데? 파리 모기가 끓는데 어떻게 다 잡아 놓을 겁니까? 머리가 좋으면 좋은 머리 써 먹으러 돌아다닌 걸 어떻게 막을 겁니까? 무조건 오래 살아야 되고 장수, 무조건 건강해야 되고, 무조건 머리가 좋아야 되고, 성적이 좋아야 되고, 돈 잘 벌어야 되고, 우리는 계산을 그리 하는데, 우리보다 머리 좋은 하나님이 ‘너 그 건강 가지고도 믿을까 말까 하는데 더 건강해 놨으면 교회 다니겠느냐?’ ‘너 살아온 80년을 되돌아 봐도, 더럽게 살았는데 40년 80년 더 살면 의롭게 회개하고 살겠느냐? 죄만 더 많이 짓겠느냐?’ 하나님은 이걸 물어보며 히스기야에게 ‘그만 오거라’ 죽을 병을 주셨습니다. 이 히스기야가 목숨 걸고 금식 기도해서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15년 더 산 것 때문에 자기 자손들은 전부 바벨론 포로데려 갔습니다. 왕의 아들 왕은 눈 두 개를 빼고 데려갔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15년 덮어 놓고 더 살겠다는 히스기야의 값 때문에, 자손들은 처참해졌습니다. 그 자손들이 전부 택자라 천국 가서 히스기야 할아버지를 볼 건데. 할아버지 (혼자) 더 잘 살고, 15년 더 잘 살겠다고 우리 자손들을 이렇게 하셨습니까? 이럴 겁니다. 잘 살면 좋습니다.

잘 산 결과가 뭐냐? 기회는 주시는데 항상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 계산 해 놓고 먹을 거 먹고, 입을 거 입고,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까? 이렇게 연구를 해도 돌아온 것은 다윗처럼 솔로몬처럼 주체 못하도록 복이 들어올 건데. 기어코 아합처럼 또는 가인처럼 그렇게까지 생 바둥바둥하면서 먹고 살고, 자기와 자기 자손을 전부다 불행케 만든 것은 어떻게 할까?

노아 때 120년 노아도 먹고 살고 아이 낳고 기르면서 방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멸망의 그 시대 사람들은 생활을 기쁘게 결혼을 즐겁게.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 빼고, 신앙 제쳐놓고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취했다 그 말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인간의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피는 성경 우리가 적는 교재는 성경을 차분하게 다 읽어보면 성경 안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 밖에 것은 아예 적지를 않습니다. 아예 공부를 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한 것처럼 이렇게 경력은 나오는데, 우리는 그냥 성경만 들여다 봅니다. 이거 다 읽어도 백년 세월이 모자라는데, 성경보다 얼마나 좋은 신학서가 있어서 그거 들여다 봅니까? (성경이 최고다). 자기 여자가 좋으면 자기 여자만 평생 쳐다봐도 예쁜데, 뭐 옆에 쳐다 볼게 있습니까? 이게 예쁘지가 않으니까 옆을보는 거지. 눈을 바꿔야 되지. 눈이 잘못 박혀 놓으면 천하 제일 좋은 걸 다 갖다 줘도 다른 걸 봅니다. 이것은 막지를 못합니다.

재벌 아들들, 옛날의 부자 아들은 못났습니다. 머리가 나쁩니다 옛날은. 요즘 재벌 아들들은 인물 좋고, 머리까지 좋고, 성격까지 좋습니다. 왼쪽 여자들은 탤랜트 아닙니까? 근데 왜 판판이 다 깨지지요? 생각해 보셨습니까? 천하 만민이 못생겼다 해도 내 눈에 예쁘면 좋은 겁니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이걸 줄이면 ‘젖먹이가 자기 엄마만 제일 미인이랍니다’ 교육시켜 ‘너희 엄마는 중급이다. 너희 엄마는 못생겼다’ 그 교육을 시켜야 되겠습니까? 젖먹이가 엄마 좋아하면 좋은 겁니다. 잘 한 겁니다. 그래야 살지. 그거야 뭐 아이는 엄마가 나아 놓으니까 본능적으로 엄마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 부부는 본능적으로 끌리지 않는 건 줄 아십니까? 아이는 아무리 좋아도 성경에 한 몸이라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는 목숨은 바칠 수 있어도 성경은 부모와 아이는 한 몸이라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는 뭐같이 만나서 뭐같이 싸우고 살아도 하나님은 ‘사람이 감히 나뉘지 못할 한 몸이라’ 이렇게 못을 박아 놨습니다. 그래도 내 여자는 별로인데? 네 여자 인물이 잘못돼 그런 게 아니라 네 눈이 삐어서 그렇다. 안과에 가서 수술을 받아라. 주신 자기 여자가 하나님은 천하에 제일 이쁘다고 옆에 갖다 붙여 놨더니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말찌니라’ 이웃집에 아내도 포함이 되는 말씀입니다. 다른 여자를 쳐다보니 해결이 됩니까? 자기를 바꾸고 자기 생각을 바꾸고 자기 시각을 바꿔 버리면 이왕 결혼했고 평생 살고 애도 놓을 거니 이것만 예쁘면 그게 바로 복입니다. 남들은 미쳤다 그래도 ‘뭐 저런 걸 데리고 살아?’ 남들은 전부 미쳤다고 그래도 자기가 좋으면 하나님의 복이고 그게 정답입니다. 그리 생각하면 결혼이라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고 이 땅에 남자와 여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왕궁의 왕자와 다리 밑에 거지 처녀도 남자 여자면 결혼 대상 될 수 있다 절 가르친 스승이 죽는 날까지 그 소리 했습니다. 그 분 며느리들 똑똑한 분들이고 잘난 분들입니다. 다 봐도 하나님이 남자 여자로 만들어 놨으면 누구든지 부부 될 수 있다. 부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됩니다. 아무데나 붙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맞춰 놓은 짝이라는 것은 대학 시험 치듯이 그렇게 합격하는 거 아닙니다. 다른 시험은 다 어려워도 자기 짝 찾는 것은 저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아니라고 밀어 던지고 엉뚱한 데로 돌아다니까 이렇게 어렵지. 근처? 부근 찾아보면 그 중에 하나입니다. 둘도 아니고 하나. 안 주신 사람은 없습니다. 텔레비를 쳐다보고 엉뚱한 걸 쳐다보고 ‘저거 저거’ 그러고 앉았으니. 그걸 납치를 해서 붙여 보지요? 되는가? 삼성 이재용 회장이 결혼할 때 2등하고 했습니까? 3등하고 했습니까? 5천만 명 중에 1등 데리고 왔겠습니가? 눈을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혼할 생각이 나면 결혼할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서둘면 됩니다. 사람은 어디서 찾지요? 제일 가까운데서 찾으면 됩니다. 산 넘어, 태산넘어, 해외까지 가지 말고 부근에서 찾으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남의 것을 보니까 담 너머를 보니까 하나님이 자꾸 안주는 걸 보니까 무리가 되고, 고장이 나고, 짜매놔도 깨지고 터지고 난리가 벌어지는 겁니다. 부근에 있습니다. 나에게도 부근에 있을까? 하나님이 완전자인데 놓치겠습니까? 불택자, 불신자는 놔두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이 손 바닥에 새겨 놓고 계산하고 앉아 있습니다. 네 옆에 있다. 네 옆에 없으면 네 부모가 아는 그 주중 있다 그 중에 하나 꼽으면 됩니다. 자꾸 딴소리를 하니까 멀어지지 안보이지. 평생 사는 게 헛일 하지.

사업 망하는 사람의 특징이 돈 안 될 때 돈을 자꾸 투자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될 사람들은 벌이 되는 걸 하니까 되지. 공부하는 학생들 예를 들어 볼까요?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하면 한 학기 내내 쎄가 빠지게 공부하고 80점이 못 맞는데, 한 몇 시간 들여다보고 1등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지금 남 얘기 같습니까? 없는 얘기 만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체험을 말씀 드리는 것 같습니까? 신앙의 길은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그 말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 없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결실. 이게 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폭 뽑아서 데리고 가는 것. 이걸 호세아서에서는 몸 파는 여자, 음녀라 그랬습니다.

노아의 방주. 노아는 세상에 살았으나 세상을 떠나 살았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중에 간다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닙니다. 산 중까지도 세상이 따라 갑니다. ‘노아는 의인이었더라 하나님과 동행했다’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았는데 그 시대 하나님 없는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으니, 시대와 떨어져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만 순종하고 살았습니다.

25쪽 방주를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방주란 하나님이 심판을 합니다. 그 심판에 통과입니다. 그 심판은 말씀이고 말씀에 맞는 것이 방주 예비입니다. 방주를 준비했다니? 현실마다 하나씩.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오늘은 오늘의 주의 뜻에 집중하고 현실마다 하나씩 순종으로 끝까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120년 한 발자국 뭐가 어렵지요? 계속이 어렵습니다. 120년 하나씩 걸어가면 쉽습니다. 문제는 120년 인내의 계속이 어렵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 날까지. 망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더라. 그냥 간단하게 설교할 때는 ‘120년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120년 준비한 사람은 구원 받았습니다. 120년 준비 못한 사람은 멸망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들을 하는데, 셈 함 야벳은 노아 몇 살 때 태어났다고요? 500세 이후입니다. 홍수는 노아 600세입니다. 기회는 120년을 줬습니다. 노아 480살 때 방주를 준비할 때 셈 함 야벳은 없었습니다. 노아는 120년, 셈은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셈이 태어나고 100년 후에 홍수가 오는데, 태어날 때부터 방주 만드는데 심부름 했겠습니까? 1,20년은 못했겠지. 오히려 방주 만드는 부모님에게 울어서 불편을 줬겠지. 함은 동생이니까 야벳은 더 동생이니까 나이 터울은 나오지 않습니다. 즉 셈 함 야벳은 말하자면 50년 100년입니다. 노아는 120년이고 그리고 방주에 들어간 며느리들은, 120년 준비한 노아가 20년 준비하다가 셈이 태어났는데 그때부터 결혼시켰겠습니까?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에서부터 노아 때까지의 결혼 이야기가 세세하게 연도가 나옵니다. 빠르게 결혼해도 65세입니다. 에녹이 제일 빨리 결혼했는데 65세입니다. 므두셀라는 187에 결혼했습니다. 홍수가 100녀 남았을 때 셈이 출생하고, 65세이 결혼했으면 며느리는 35년 방주 거들고 구원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기회도 날짜도 주시는 대로 요구하지, 주지 않으신 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셈에게는 ‘아버지는 120년 준비해서 방주 구원받았다. 너는? 120년 후에 다시 보자’ 그러지 않았습니다. 홍수 심판 날은 같고, 노아는 다섯 달란트라 120년 준비했고, 셈은 100년 되지 않은 7,80년 그리고 며느리 셋은 불과 몇십년만 준비하고 방주 탔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 25페이지 위를 보면 여기에 해결을 적어주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사람들이 이 짓하다가 멸망 받았다. 120년을 노아와 같이 다 할 사람도 있고 며느리들처럼 몇 십년 수고하고 방주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날 하루 전날이라도 돌이켰다면 좋았을걸. 그리고 마태복음 24장 38절을 읽어보면 셈 함 야벳의 나이와 결부해서 참고가 될 겁니다.

노아의 아내의 이야기는 성경에 없습니다. 노아가 120년 계시를 받았을 때 아내는 그날부터 동행을 했겠는가? 아내에 대한 힌트는 있습니다. 므두셀라가 187에 아이를 낳았고 에녹은 65세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초산이 200년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근데 노아의 큰 아들 셈은 구원받은 첫 번째 셈이지 노아가 결혼해서 500세에 초산을 했고 그 이전에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성경을 그리 읽으면 곤란합니다.

창세기 3장에 아담이 나오고 4장에 가인과 아벨 이야기 바로 나옵니다. 그리고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욕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 둘이 있고 가인과 아벨 둘있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근데 가인이 내가 여호와를 떠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나를 동생 죽였다고 그냥 두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누구냐? 이 사람들은 원숭이가 진화가 된 사람들이냐? 하나님이 몰랐던 사람들이 있었느냐? 외계인들이 왔느냐? 그러고 앉았습니다. 한번 따라하십시다. ‘성경 최소 기록’ 성경을 다 적으려면 온 하늘에 온 우주에 온 세상에 쌓아도 쌓아 놓지를 못합니다. 간단하게 축소로 주셨습니다. 성경 안을 읽어 보며 적어 주지 않은 것은 적어 준 말씀 가지고 살펴 보면 살펴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셈 이전에도 노아의 자녀가 있었다면, ‘자기 자식들을 안 데리고 들어가?’ 120년 방주 생활에 동행하지 않았다면 자식이라도 데리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정상적으로 인륜적으로 보면 노아가 방주 들어갈 때, 아들 하나 데리고,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아들 하나와 아버지 하나와 둘 중에 하나만 데리고 들어가라 그러면 요즘 사람들은 아들 데리고 들어가겠지. 요즘 남자들은 여자 데리고 들어가겠지 애도 데리고 들어가지 않겠지. 인간적으로 보면 한명 살릴 수 있는데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으면 둘 중에 어는 것을 살리는 게 성경이고 인륜이겠습니까? 아버지 살리는 게 그게 옳은 겁니다. 돈은 안되도 그게 선순위입니다. 아들은 내가 낳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만들었기 때문에 은혜의 가격이 다릅니다. 므두셀라 나이를 계산해 보면 노아의 직계 할아버지입니다. 노아의 바로 할아버지 노아의 바로 아버지 라멕은 홍수 3년 전에 죽었고 므두셀라는 홍수 때 죽습니다. 할아버지 죽도록 그냥 둬서 되겠습니까? 내 할아버지라도 하나님 말씀 삐뚤어져 나가고 지옥 가도록 작정하면 못 말립니다. 못데리고 옵니다. 부부 조차도.

셈 함 야벳이 방주를 타는 걸 볼 때, 셈 앞에 500년 이전에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면 노아의 책임같습니까? 노아의 아내의 문제 같습니까? 아버지는 똑같은 아브라함인데 엄마는 하길과 엄마가 사라였습니다. 아버지가 똑같은데 아내가 다르니까 하갈 아내에게서 나온 이스마엘은 오늘의 중동 저 양반들이 되어가지고 저렇게 테러하고 난리입니다. 똑같은 아버지인데 사라의 자녀는 이삭 야곱으로 내려옵니다. 남자는 세상에 뭐라 해도 가정의 대표이고 두목입니다. 머리입니다.

문제는 자식은 아버지 시키는대로 안가고 엄마 시키는대로 만들어집니다. ‘의인의 아들이 의인 없고, 의인의 어머니의 아들은 의인이 나온다’ 이게 성경과 기독교의 통계입니다. 아브라함은 꼭같은 의인인데 사라가 의롭기 때문에 사라의 자녀 이삭은 바로 되고, 하갈은 애굽 여종입니다. 이스마엘이 되어 버립니다. 그다음 이삭은 리브가하고 둘만 살았습니다. 아내가 따로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배 속에 쌍둥이를 가졌는데 의인 이삭은 형 에서만 쳐다보고, 리브가는 둘째 야곱만 쳐다봤습니다. 구원의 계통이 어느 쪽으로 내려오지요? 리브가 아낀 야곱쪽으로 내려와 버립니다. 남자는 아내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남자의 할 일입니다. 아내는 아이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인 밑에 아이들이 잘못될 때는 위에 의인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이 의인이 아내를 사람을 못 만들었구나! 이렇게 보는 겁니다.

손양원 목사님 자녀 중에 신앙의 자녀가 별로 없습니다. 두 아들은 순교로 가버리고 나머지 자녀들은 평생이 엉망이었습니다. 두 아들 죽고 남은 셋째가 큰 아들인데 그 셋째 큰 아들인데 영도 다리 밑에서 삼일교회 초량 역앞에서 무당 굿하고 점쟁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손동장씨라고 손양원 목사님이 두고 간 큰 아들 손동장 부산에서 죽는 날까지 무당 굿했습니다. 사주 봤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아는 사람들은 아버지는 유명한데 들여다 보니까 ‘순 외식에 가짜배기이구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했고, 백목사님은 해석을 그렇게 합니다. ‘손양원은 의인이고 백점짜리 신앙가다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어머니쪽이 문제가 있을 거다’ 근데 그 사모님도 손양원 목사님 이상의 순교자입니다. 어떻게 되었지요? 남편에 동력은 했는데 남편이 자기 길을 갈 때, 아내가 가정 책임을 못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신앙의 투쟁으로 걸어간 게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입니다. 그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가 신풍교회라서 그렇게 잘 압니다. 한국 교회 다 아는 손양원보다 신풍 교인들이 아는 손양원 목사님이 더 많습니다. 그게 이런 내용입니다. ‘사모님은 손양원 목사님보다 신앙이 더 좋다’ 평생을 겪어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더 물어봤습니다 ‘가정 살림? 부엌살림?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 기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이 세상을 돌아다니느라고 아이를 볼 시간이 있습니까?’ 이게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달려가고, 사모는 낳아 놓은 아이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목회자만 그렇습니까? 여기 다 마찬가지입니다. ‘난 돈 벌어줬으니, 여자가 애를 잘 길러야지. 돈 벌어줬으니 잘 길러야지’ 그러면 사료 먹였다는 이야기인데, 사료 먹이면 짐승이 나오지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돈 벌어줬다? 남자 할 일 다 했습니까? 아내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남편은 한 몸인 아내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여기까지입니다. 아내는? 자녀에 대해서는 아내는 두 말 못합니다. ‘내 책임입니다’ 이게 1번 사역입니다. 목회를 나오면 온 교인이 자녀이기 때문에, 알면서도 손이 가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알면서도 손이 가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사택 아이들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그럴 때 교인의 책임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목회자가 아내 사랑하고, 목회자가 아내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아내는 전적 사택의 아이들을 신앙의 아이들로 만들면 되는데, 개척교회라 교인들을 살피다 보니까 부부 둘이 함께 교인들을 살피가 사모가 아이를 못 살피면 이 아이는 삐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들어서 목사 목회한 걸 두 배, 세 배 파먹게 되어 있습니다.

백목사님 평생에 목회한 게 이 만큼이면, 자녀들이 파먹은 게 이것보다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걸요? 이게 신문 방송에 나오기 전까지는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떠들어서 신문 방송에 나와 버렸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백 목사님이 만들어 놓은 거 자녀들이 거의 다 파먹었다 하면 거의 비슷할 만큼 그렇습니다. 여기서 복 없는 사람들은 ‘목사가 훌륭한데 사모가 별로네?’ 그 목사가 사모 하나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면 만들고도 남았을 건데, 교회를 위해서 부족했습니다. 아내 사랑이. 그 사모를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교인들이 ‘목회자가 날 위해서 이만큼 시간과 정성과 인생을 기울였으니, 저 목회자가 신앙의 사람을 만들 자기 아내에게 빈 점을 교인들이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사모의 신앙에 문제 생기면 하나님이 천국에서 교인들한테 물어 볼 겁니다 ‘너희 목사 너 착취하더냐?’ 그러면 말 할 것도 없고 ‘너희 목사 너한테 잘하더냐?’ 잘했습니다. ‘목회자가 자기 사모한테 신앙으로 열심히 못한 것 너희들이 기도라고 했느냐 마음이라도 그렇게 가졌느냐? 안타까워서 기도하는 자세를 가졌느냐?’ 그걸 물어볼 때

‘손양원 목사는 위대한데 사모는 어찌 그렇게 칠칠맞은지’ 욕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교회 이야기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애양원 교인들은 손양원 목사님 때문에 지금까지 1년에 관광객이 적으면 3만 명이고 보통 10만명입니다. 돈벌이 좋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위대합니다. 사모님은요? 말은 안합니다. 말은 안하니까 고맙기는 고맙지요. 그리고 뒤로 돌아앉아가지고 ‘손양원 목사님은 훌륭한데 사모는 귀신이라. 귀신이 신풍 교회를 개척해 놓으니 신풍교회는 안 봐도 이단이다’ 그 소리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양원 그 사람들한테 ‘손양원 생애를 나환자 여러분 위해서 다 바치고 목숨 걸고 갔으면, 그 사모님은 누가 기도하며 누가 애타게 노력했어야 됩니까? 당신들의 기도인데, 당신들은 손 목사님 생전에도 욕만 했지 조롱했지. 어렵게 개척하니까 개척 못하도록 이단이라고, 50년 70년 박해했지’ 손양원 때문에 받은 애양원의 복 하나님 앞에 가면 아마 10배는 물러내야 될걸요? 이게 오늘 인간이 아는 계산과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일입니다. 목회자는 목숨을 걸고 교회 위해서 충성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자기 약속이 그러니까 만약에 사모가 신앙이 있어 둘이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면 그 집 아이들을 위해서 교인들이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기도할 책임.

노아의 셋 아들들을 가지고 방주 120년으로 날짜 계산을 해 보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을 다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목회자 이야기를 했고, 사택 이야기를 하니까 여기 목회자들만 해당 됩니까?

가정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 가정의 목사는 누구입니까? 아버지입니다. 신부의 목회자는 누구인가요? 가정교회. 무식한 사람은 교회만 교회인줄 알고 신학을 좀 배운 사람은 세계 모든 교회도 교회, 우주 교회, 우리 교회도 교회, 가정 교회도 교회 나 한사람도 교회라고 배웠을 겁니다. 개인 교회, 결혼하면 가정 교회, 이렇게 모이면 보통 교회라 그럽니다. 신부의 교회는 목회자가 신랑입니다. 옛날에는 식모로 데려갔습니다. 목회자가 아니라. 고용주이고 착취자고 독재자이겠지요. 옛날 무식할 때도, 옛날 여자를 막 부려 먹을 때도,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딸인데 제가 맡겼으니 제가 머리되고 제가 목회자가 되어 이 신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 말을 똑 떼가지고 신부들은 ‘너 날 위해서 목숨 바쳐’ 그것은 남자가 할 말이고 시댁에서 할 말이지. 여자가 그 말하면 망발 됩니다. 노망 됩니다. 남편과 시댁에게는 ‘신랑은 신부의 목사입니다. 목자입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 바쳐야 됩니다. 당신 교회 목사가 교인들 착취하고 사택 놀러나 다니고 교회 돈 쓰면 마음 아프고 그러겠지요? 가정 교회에 당신이 목사인데 당신이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목사 노릇했습니까? 주님처럼 목숨 바쳤습니까?’ 에베소 5장 그렇습니다. 다 부족하지 않습니까? 남 욕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말했고, 남편 말했고

이제 순서는 여자 쪽으로 가야되겠지요. 여자는 하나님이 ‘신랑이 네 머리다. 신랑이 네 주인이다’ 주님이 아내에게 직접 오지 않습니다. 남편을 통해서 들어가지 그래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말하고 순종을 했습니다. 신앙 없는 사라가 비겁한 아브라함 등신 같은 아브람, 아브라함이 얼마나 등신 같고 비겁한지 공부한 교회는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애굽 갔다가 애굽의 바로 왕이 아브라함 아내가 이뻐서 욕심을 내니까 아내 갖다 바치고 돈 얻어먹은 인간입니다. 지 여자 맡기고 애굽의 왕에게 먹을 것 구하고 양떼 소떼 재산 가지고 나온게 아브라함입니다. 비겁한 남자입니다. 못난 남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계통 때문에 계획을 해서 막았지. 아브라함 아비멜렉에게 갔을 때도 그랬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원래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세가 좋고 출발이 발랐지 많은 문제가 있는데 가면 갈수록 하나 고치고 둘 고치고 점점 좋아졌습니다. 아브라함을 창세기 12장부터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사라는 그런 아브라함의 짝이니 수준이 비슷했지만 어떻게 이삭을 가졌던가? 신약에 와서 해석을 해 놨습니다. ‘사라는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했다’ ‘여보’ 여보가 뭔 뜻인지 아십니까? 여기를 보세요. 여기 봐라, 여보 같은 말입니다. 종 부리듯이. ‘오빠’ ‘자기야’. 사라는 주여 그렇게 불렀답니다. 남들 조롱하도록 하지 말고 둘이 있을 때는 자기 남자한테는 여보 위에 주여 하고 부르면 탈 납니까? 성경이 가르치는데. 남들 보는데서 말 들릴까 그러지 마시고.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 부르면 하나님께서 ‘아이고 못난 년, 식모를 데려다 놓으니까 남자한테 주여 그러네?’ 그렇게 보겠습니까? ‘못난 내 아들을 네가 나 때문에 주여 그런 자세로 부르면 그 자세 참 이쁘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겠습니까? 이게 교리입니까? 어렵습니까? 철학입니까? 수학 문제입니까? 생각해 보면 뻔한 거 아닙니까? 그러면 부부 살면서 문제 생길 것 없겠네요. 남자면 여자 만날 수 있고, 남자면 여자면 결혼할 수 있고, 남자 여자가 결혼하면 부부고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대로 여자대로 얼마든지 복을 산더미처럼 퍼 주어 줄건데. 뻣뻣해가지고 온갖 죄만 짓고 망할 짓만 하니까.

거라사인 지방에 주님이 가니까 미친 남자 하나가 돌을 들고 한다는 짓은 제 몸은 찍고 앉아 있습니다. 그 거라사인의 광인이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잘한다고 하는 짓이 전부 지 망할 짓만 합니다. 생각도, 말도, 사업도, 공부도, 행동도, 투자도, 부부 관계도, 자녀 교육도. 우리는 모두 잘한다고 합니다. 거라사인 지방에 가니까 미친 사람이 무덤 사이에 삽니다. 자기 딴에는 산다는데 주님이 보니까 사망 속에 삽니다. 하나님은 없고. 하는 짓은 돌 들고 제 몸을 치고 있습니다. 누가 막겠습니까? 잘 살라고 공부했고, 잘 살라고 취직했고 잘 살라고 결혼했고 잘 살라고 아이들을 위해서 온갖 투자를 다 했는데, 주님이 보실 때는 ‘어지간히 망할 짓 많이 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망할 짓만 평생하면 주님도 버려두십니다.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피 흘려 구원했기 때문에 천국은 데려온다. 네 인생과 너의 기회와 너의 말투와 너의 심보는 다 가지고 오지 못 온다’ 일일이 조사합니다. 이게 노아 홍수입니다.

그리고 27페이지 가인의 후손이 이번의 집회의 주 주제입니다. 앞에까지는 교회에서도 평소에 많이 살폈는데 이어가느라고 살폈습니다. 가인의 후손. 오늘 우리가 가인의 후손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가인이란 1번 27페이지입니다. 범죄 후의 행동이 문제입니다. 아담도 죄 지었고, 가인도 죄 지었고, 예수님도 열두 제자 베드로부터 다 죄인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스스로 죄인 중에 괴수라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라 그러니까 어떤 분은 회개하기 전, 믿기 전을 말한다 그러는데 그거 해석 잘못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 신앙의 눈이 밟아지면 하나님 앞에 죄송한 게 많아집니다. 효자한테 물어보면 효자라는 말 합니까? 안합니까? 요즘 효자 없어서 구경도 못하시지요? 진짜 효자는 부모 앞에 늘 죄송합니다. 망할 놈은 부모 앞에 떳떳합니다. ‘이 잘난 아들을 이따위로 하느냐’고 큰 소리를 합니다. 바리새인을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보니까 칠일에 이틀 금식합니다. 십일조 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큰 소리 쳤습니다. 회개할 게 없다고. 주님이 ‘그 놈 죄인 중에 괴수다’ 내버렸습니다. 죄인 중에 제일 유명한 죄인이 세리. 동족의 세를 거둬가서 로마주고 자기가 먹는 세리가 제일 죄인인데, 세리 죄인은 주님 앞에 와 가지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땅을 보며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은 ‘저 놈 얼마나 죄를 지어서 저런가’ 했습니다.

죄인이 죄인인줄 알면 이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대속으로 어떤 죄인이든지 죄인이 죄인인줄 알면 이제는 회개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의인인줄 아는 순간 약이 없습니다. 가인의 특색은 죄를 지었을 때, 우리가 죄 짓는 것은 피할 수가 없는데 죄 지었을 때 행동이 문제입니다. 넘겨보시겠습니다. 28쪽입니다. 가인의 후손은 홍수 때 한명도 남김없이 다 없어집니다. 살아봐야 헛일입니다. 그게 가인의 후손 멸망의 길입니다. 오늘 내가 가인의 후손처럼 뿍뿍 걸어가면, 오늘 이후의 시간과 살아간 노력은 전부다 가인 따라가야 됩니다. 가인을 보통 불택자인줄 아는데, 나는 가인과 같은 요소가 하나도 없느냐? 없습니까? 불택자 문제는 성경에서 아예 적지를 않습니다. 성경에 창세기로 계시록까지는 믿는 성경을 읽는 우리한테 하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죄는 지을 수밖에 없는데 가인의 죄 지을 때 자세를 보니까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어디 돌아다니다가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죄는 지었는데 벌 받기가 싫답니다. 죄를 지었는데 벌 받기 싫다는 것을 어려운 말로 ‘면책’ 이라 그럽니다. 죄는 지었습니다. 죄 값은 싫습니다. 지옥 가는 책임을 없애고 천국 보내는 것은 예수님의 면책입니다. 그것은 은혜로 다 해결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믿은 이후에 살아가며 다시 죄를 짓는 것은 두 번 다시 씻어주지 않습니다. 가인은 죄를 지어 놓고 면책만 노력했습니다. 면책을 노력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 빠져나갈까? 이것보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어떻게 해결을 하나? 남의 돈을 빌려 실수를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갚나? 이래야 앞날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빌렸어? 내가 언제 빌렸어? 요즘 그런 사람 없으니까 비법을 하나 알려드릴께요. 내가 언제 빌렸어? 딱 잡아떼면 서툰 사람은 영수증을 가져옵니다. 요즘 영수증은 A4 용지인데 옛날 영수증 보신 분 계십니까? 미릉지라고 하도 얇아서 이렇게 투명해서 밖이 보입니다. 이걸로 복사를 해서 영수증을 만듭니다. 내가 언제 빌렸는데? 펄쩍 뛰면 영수증 이렇게 들이밉니다. 그다음 어떻게 하지요? 빼앗아서 입에 넣고 씹어 먹어 버립니다. 끝!. 이렇게까지 악하면 빌린 돈은 먹고 입 닦고 증거 없으니까 됐는데 하나님이 그 놈 머리를 보면서 자자손손 그냥 두시겠습니까? 하늘 무서운지 모르니까 그런 짓까지 합니다. 가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죄를 안지었는데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죄 짓고 도망을 갔지. 죄 지은 것은 인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가니까 ‘여자 저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핑계를 댔지 ‘나 죄 짓지 않았습니다. 죄 값은 못 받겠습니다’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담 밑에는 아벨을 줬고 아벨로 대신하여 셋을 통해 구원의 계통이 내려옵니다.

가인은 살펴봅니다. 가인은, 가인이 노력한 걸 봅시다. 죄는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 이후에 인간은 죄 안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에녹 같은 특수한 사람은 따로 만드셨으니까 따로 놔두고, 가인의 노력은 죄는 지어 놓고 죄를 안 지었다고 딱 잡아 떼버립니다. ‘범죄 부인’ 이게 재주인줄 아는데. 이게 죄를 짓고 희망 없는 낭떠러지로 뛰어 내린 꼴입니다. 범죄를 부인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상이라고요? 인정을 해야 시작이 되는데. 창세기 4장 9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앞에서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왜 저한테 물어보지요? 아담 이후의 인간은 중생된 우리도 죄는 짓습니다. 못 피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또 실수를 했구나! 어떻게 하지?’ 이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가 시작이 되는데, ‘요즘 이런 것은 보통입니다. 컨닝 안하는 교수 아들있나요?’ 그 말 전에 ‘안했는데요?’ 딱 잡아떼고 들키면 ‘죄 없는 사람 있나요? 다 죄 짓지. 검사 너는 죄 안지어?’ 그러고 사는 걸 세상이라 그럽니다. 세상 욕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아 또 죄를 지었구나!’ 인정하고

두 번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네가 죽인 동생의 피가 땅에서 호소를 한다. 들켰으니까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형량을 낮춰주소서. 첫째는 ‘죄 안 지었습니다’ 딱 잘라서 부인하고 두 번째는요? 들키니까 처벌 좀 내려주시라고 필사적으로 대들고 있습니다. 경찰 법원에 가서 그러라는 말은 아닙니다. 경찰 법원은 세상이니까 세상은 세상대로. 하나님 앞에서만 말을 하는 겁니다. 정말 신앙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죄 지었을 때 경찰 가서 자수하는 게 좋고 최대한 처벌해 달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그 정도 실력은 안 되니까, 세상은 알아서 적당하게 사시고. 하나님 앞에 죄는 ‘죄가 맞습니다’ 그래야 소망이 시작됩니다.그 죄를 지었으니 어떻게 지고 나갈까? 이래야 되는데. 가인을 보니까 (첫번 째)범죄 부인, 두 번째 처벌을 줄입니다. 축소.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깎아주면 좋은가요? 깎아주면 어디 갑니까? 다른게 오는데. 믿는 사람은 죄를 지었을 때는 인정으로 시작하고, 벌은? 자청해서 자청해서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겠나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성의를 보이는 겁니다. 죄 값은 우리가 갚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말이라도 자세라도. (첫번 째)죄 인정하고 두 번째는 처벌을 자청하고 나서는 게 맞습니다.

오른쪽으로 와서 세 번째입니다. 위에는 가인 밑에는 신앙인데 가인은 반대로 했습니다. 1번 부인, 2번 축소 그다음 더 큰 문제가 따릅니다. 죄 안 지었는데요? 들키니까 ‘좀 줄여주십시오’ 줄여 주니까, “가인이 성을 쌓고” 가인이 성을 쌓고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사람한테 죽을까봐 복수를 당할까봐, 성을 쌓고 자랑스럽게 자기 아들 이름이 에녹입니다. 죽지 않고 천국에 간 아벨, 셋 계통의 에녹 말고, 가인의 바로 아들의 이름이 에녹입니다. 성경에는 같은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가인이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붙여 에녹 성이라고 이름을 붙여놨습니다. 죽을 죄인이 죽지 않고 빠져 나와서 오래 살면 그 뒤가 좋으면 좋겠는데 가면 갈수록 자자손손 하나님은 자녀를 많이 벌려 놓고 한꺼번에 다 정리를 해 버립니다.


그래서 4번에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줄 알았는데, 죄 지은 죄를 단절하고 끊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겁니다. ‘단절의 기회’를 놓치고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너 죄 지었는데 다니다가 죽을까 겁나냐?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이 동생 죽이고 죽을 죄인이고 사람들이 못 죽이도록 막아 놓으니까, 지금 이게 복 인줄 아십니까?

죽을 인간이 죽지 않고,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고 나니까 천명이 죽고 만 명이 죽는 것이 아니라 수 백만명이 초토화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은 눈 두 개가 빠져서 바벨론까지 끌려갑니다. 거리는 재 보지 않았는데, 여기서 아마 북경까지 될 겁니다. 왕이 눈 두 개 빠져서 개처럼 끌려 갔습니다. ‘아버지가 15년 더 사는 바람에 우리가 이 꼴 당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나는 천국에 왔으니 괜찮다’ 그렇고 있겠습니까? 오늘 믿는 사람의 죄는 그 죄 때문에 지옥 가는 일은 없습니다만 하늘나라에서 ‘그때 왜 내가 그랬던가?’ 그건 기억을 지우지 못합니다. 천국은 찬송만 한다고요?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할수록 저는 부끄럽습니다. 3등 하던 학생을 1등 만들어주면 고마워하겠지요. 10등을 1등 만들어주면 더 고맙다 그러겠지요. 50등 꼴등을 1등 만들어주면 더 찬양하겠지요. 이게 찬양의 상대적인 차이입니다. 주님의 완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어떤 죄인이며 중생 이후에도 알면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는 만큼 주님의 찬양은 더 올라갑니다. 더 커지고 더 많아집니다. 내 마음은 고통입니다. 죄송합니다. 날 위해서 구원하신 주님을 내가 또 십자가에 못을 또 박아 버린 겁니다. 이게 믿는 사람의 매일의 살면서 짓는 죄입니다. 예수 잡아다가 또 못 박고 또 못 박고. 육체로 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2천년 전에 한번이지만 오늘 우리는 믿는 사람이 또 죄를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대못을 박는 행위가 되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에 가서 평생을 다 돌아보면 그게 천국이 되겠느냐?

다윗도 작은 죄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울과 다윗을 차분하게 읽어보면 사울보다 다윗의 죄가 더 괘씸하고 아주 나쁜 죄입니다. 근데 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 다윗은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제가 죄인이 맞습니다. 나 때문이니 이 아이 대신에 저를 죽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죄는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쳐다볼 때 ‘나는 저런 죄를 지었으면 가인처럼 딱 입 닦고, 안 그랬다고 쏙 빠졌을 건데 들키면 죽여 달라고 그랬을 건데’ 다윗은 임금이라 덮어도 되고, 선지자를 죽이는 것이 많은 이스라엘에서 그 놈의 선지자 죽이고 안했다고 딱 잡아 뗄건데 우리 같으면, 다윗은 ‘내가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띄웠더라. 다윗을 죄 안 지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럴 수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까지 했을까?’ 이게 부러워 다윗의 죄는 죄 지었다는 사실을 기억에서 없어지지 않는데 그 기억 때문에 더 존경을 받고 더 다윗이 되어집니다. 그걸 회개라 그럽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것은 만병통치입니다. 또 죄를 지어가는 만병통치가 아니라 죄 값은 사망이고 이것은 해결을 못하는데,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는데, 앞 날의 죄를 안 짓도록 해주고 지난 죄를 해결해 주는데 어떻게 해결해 주느냐?

가인은 죄 짓고 부인했습니다. 벌은 또 깎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풀어 놓으니까 성을 쌓고 이제는 남에게 침해당하지 않으려고 자구행위, 혼자 자력행위 잘하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자손손 자기 자녀의 이름을 붙여 넘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 됩니다. 지은 죄는 ‘마음 속으로 죄송합니다. 죄를 이리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이런 건강을 주시고 아이를 통해 이런 고통을 주시고 이런 불편을 주시고, 코로나 2년에 누구 욕 누구 욕 다하고 있지만, 코로나 2년을 통해 전도의 기회, 예배의 기회를 이렇게 줄여 버리시니 과거에 마음껏 교회가고 마음껏 믿을 수 있는 기회에 그때 전도하고 마음껏 예배 볼 수 있을 때에, 그 자유로 예배를 자유롭게 보지 않으니 이렇게 원해도 안되는구나!’ 이걸 회개해야 좋은 앞날을 열어 주실 건데. 저 사람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으면 더 큰 벌 받습니다.

100년 전에 선교사들이 시골에 와서 시어머니 세례 주려고 ‘주님은 누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죠?’ 며느리 저 죄 때문에 죽었답니다. 우리의 심보가 그렇습니다. 며느리도 죄인입니다. 시어미 저는 죄인 아닙니까? 저도 며느리 때는 똑같았을건데. 며느리 어설픈걸 보고 마음 안 드는걸 보며 ‘나도 그랬는데 부모님이 기회를 봐 주셔서 오늘까지 이렇게 왔다. 나는 더 잘해 보겠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어머니가 내 실수를 안아주고 기회주면 친정 어머니처럼 그렇게 봐줬더라면 얼마나 더 나은 내가 되었을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으나 그렇기 때문에 그 값까지 다 해서 나의 며느리에게는 엄청나게 잘해 보겠다’ 이게 가인의 반대입니다.

가인은? 주님이 죽은 건 며느리 저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가인 심보입니다. 자기 죄는 감춰버리고 들키면 깎아버리고 이제는 아무도 안 죽일테니까 살아가거라 풀어주니까 하나님이 약속을 지킬는지 안 지킬는지 의심이 되니까 성을 쌓고, 성이라는 것은 1차 기능이 보호입니다. 원수로부터 보호. 하나님이 못 죽이도록 해 놨으면 그만하면 죽을 염려는 하지 말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 되겠다 이러면 좋을 건데. 한 걸음 한걸음 하는 짓이 해결되지 않는 짓으로 끝까지 가면 망해야 되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원하면 원하는대로 소원대로 해줘야 하나님이지. 결국 가인은 자자손손 구원의 자녀로 바꿀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자기의 죄를 단절을 할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제가 지은 죄가 맞습니다. 제가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죽여 주옵소서’ 죽이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면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살리는 게 목적이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그렇게 적어 놓으셨지 않습니까?

30페이지 넘깁니다. 이건 교리 문제까지 있어 어렵게 하려면 한도 없는데 아주 간단하게 넘어갑니다. 가인의 죄 가인 선에서 해결을 했어야 했는데, 가인이 가인의 죄를 자기 선에서 해결하지 않고 슬쩍 지나보내 버리니까. 범죄는 어떤 특성이 있다고요? 계통을 따라 내려갑니다. 계통을 따라 내려갑니다. 자자손손 내려갑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36페이지를 보겠습니다. 그냥 내려가는 게 아니고 가면 갈수록 속도가 붙습니다. 가속이 되어집니다. 죄 짓는게 빨라지고 죄 짓는 게 마구 넘쳐 버립니다. 40페이지 넘어갑니다. 세 번째는 죄를 끊어버리고 단절해 버리지 안흥면 우선 벌 받기 싫다고 슬쩍 패스 시켜 버리면 (첫 번째) 우선 자자손손 계통을 따라 내려가고, 두 번째는요? 속도가 붙어 가속이 되어지고 세 번째는 그 죄의 죄악성이 고도로 발달합니다. 괘씸하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죄가 간 곳은 전부다 파멸로 끝이 납니다. (네 번째는 적었어야 됐는데 이번에 편집한 분들이, 교재 제일 끝에 봐보실까요? 교재 제일 끝에 보니까 설교는 제가 합니다. 편집은 김선행, 김희락, 옥미영, 이영종, 장현주 다섯 분을 적어놨는데 이 다섯 분이) 30페이지로 다시 와 가지고 가인이 죄를 지었는데 죄를 짓고 나서 죄를 감추고 죄를 줄이려고 노력을 하니까 첫째는 범죄는 계통성이 있어 자자손손 내려가고 31쪽 박스 안입니다. 범죄라는 것은 가속도, 계통으로 내려가면서 가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강해지고 세 번째는 그냥 빨라지고 그냥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악성이 차원이 높아지면 ‘저렇게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범죄라는 것은 파멸로 끝장을 내버리는데 범죄 후 행동은 1번 2번 3번 4번까지 있어야 되는데 오늘 보니까 4번이 없습니다. (편집하는 분들 그런 걸 좀 살펴 봐 달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살펴보면 이런 것이 쉽습니다)

30페이지 첫 번째 범죄는 혼자로 끝이 안납니다. 아버지가 죄 지어 놓고 입 닦고 모른 체 하면 나는 모른 척하는데 이게 밑으로 내려갑니다. 30페이지 위에 박스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어떡합니까? 그렇다면 손주나 증손자까지만 가고 끝이 나겠구나! 복 없는 인간들은 그것도 계산을 그리 합니다. 아비 죄가 아들 손주 손손주 까지 갑니다. 아비 죄로 아들은 아비 죄를 받아, 아들 죄를 짓고 아비 죄하고 두개가 합해집니다. 두배로 손주로 갑니다. 손주는 할아버지 죄, 아버지 죄, 자기 죄 삼배로 더해집니다. 아버지 죄는 삼대 사대가면 없어지는데 그 다음의 아들 죄가 그 다음 그다음으로 내려가니까 가면 갈수록 점점 늘어납니다.

지리산 꼭대기에서 낙동강이 시작되고 섬진강이 시작 될 때는 손가락만큼 물줄기로 시작합니다. 십리 오십리 가다보니까 개울이 됩니다. 이것 저것 합하면서 백리 밑에 가니까 강이 되고 이백리 밑에 가니까 바다가 돼 버립니다.

나로 시작한 죄는 내 선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이고 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옵니다. 좋은 것은 다 물리치고 빠지고 미꾸라지처럼 안 좋은 것만 차곡 차곡 쌓아가면 ‘중생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온다. 근데 그 심보, 그 행동, 그 눈빛, 그 말버릇은 니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아버지의 말버릇이 그런 식으로 가면 아들도 그 말버릇 닮는다 따라간다. 손주로 가면 더 한다. 가면 갈수록 더해진다’ 옆집으로는 안 갑니다. 직통으로 내려갑니다. 범죄는 계통성으로 내려갑니다. 첫째 혼자 끝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생명은 자기 복제가 있어서 이어져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옆집 것을 가지고 나옵니까? 엄마 아빠 것을 가지고 나옵니까? 엄마 아빠 것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시작부터 들어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 복제가 되기 때문에, 1세대 2세대 3세대 아무리 내려가도 연속입니다. 그래서 ‘씨는 속일수가 없다’ 그럽니다.

다른 성씨 말하면 삐꿔서 교회 안나올 거고, 안 삐꾸는 한 분만 말 할게요. 저는 최씨가 제일 뿔뚝한 줄 알았습니다. 최뿔뚝이라고. 최씨는 누구든지 똑같습니다. 그래서 최씨 상대할때는 말 조심합니다. 신풍에 가니까 최씨? 안, 강, 최라 그럽니다. 안. 강. 최. 안씨가 제일 뿔뚝이라 그럽니다. 안응규 선생님은 안 그러는데. 안응규 선생은 안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찬양 인도하는 분. 뿔뚝 없는 줄 알았습니다. 최씨 열 갖다 놓은 것보다 뿔뚝은 더 나옵니다. 그래서 이쪽 안씨, 저쪽 안씨 충정도 안씨까지 가보니까 그쪽도 똑같습니다. ‘씨는 절대로 훔쳐오지 못하고, 못 속인다’고 그러더니 그런 말이구나! 불신자가 쳐다봐도 씨는 못 속이더라! 안씨가 10대 20대 내려오는데, 김씨 이씨 박씨 여자는 다른 씨에서 갔는데 이게다 흐려져야 되는데 왜 안씨 그 계통은 끝까지 가지요? 이게 씨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밭에 참깨를 심으면 참깨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밭이 좋으면 밭이 더 좋은 콩이 나지 밭이 좋다고 콩이 심는데 팥나고 그러지 않습니다. 들깨 심었는데 참깨가 나옵니까? 씨는 씨대로 갑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거기다 대고 은혜와 복을 만들고 사람을 만드는 거지. 아무리 욕을 해도 남자로 내려갑니다.

가인의 죄는 10대를 내려가도 홍수 심판에 다 미지가 나도, 가인의 죄, 가인의 죄 내려가면서 점점 커집니다. 화가 나서 아벨은 죽였지만, 가인은 아니까 창세 초기니까, 가인이 ‘분하여 죄를 지었나이다’ 그랬으면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힌 것처럼 구원의 손길이 갔을 터인데. 가인의 죄가 아무리 커도 아담 죄와 비교를 하겠습니까? 아담 죄는 인류 전부를 지옥에 갖다 놓은 죄입니다. 가인의 죄는 자기 하나와 자기 자손입니다. 아담이 죄 짓고도 ‘죄 안지었는데요?’ 죄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에게 가죽 옷 입혔지 않습니까? 그 가죽옷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가인은 아담 죄 정도도 아닌 작은 죄인데 안죽였는데요? 딱 잡아 떼 버렸습니다. 가인 욕하는 겁니까? 오늘 우리를 보는 겁니다. ‘네가 네 선에서 죄를 딱 잘라버리면 쉽다.’ 체면 때문에, 안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슬쩍 모른 척하고, 네가 지은 죄를 밑으로 흘려 보내면, 그게 그냥 내려가지 않는다 네 자손으로 내려가면서 새끼를 치고 양을 많게 하여 가속이 붙어 버린다. 양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고약하게 되어진다.

왜 아비의 죄가 자녀에게로 내려가며 이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놨을까요? 학습을 했기 때문에 그럽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 봤고 어머니 봤으니 부모 죄 짓는 걸 열심히 봤으니, 부부가 밖에 나가서는 아닌 것처럼 하지만 둘이 집안에서는 모른 척 하겠습니까? 부모는 죄 지으면서 도둑질해 가면서 아이들한테는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 말 따라 아이가 좋아지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엄마의 말 따라 배우지 않고 엄마 부모의 행동을 따라갑니다. 봤으니까 본 대로 하지. 보고 듣고 익힌 것에 영향이 갑니다. 그래서 계통과 윗물은 바꾸지를 못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그다음 세 번째로 아담은 전 인류의 계약의 첫 번째 대표지만, 가인은 그 계약의 대표와 같은 성격대로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인류의 대표고,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정했지만, 가인은 아담과 다르지만 또 아담은 아담대로 자기의 대표성이 있습니다. 남자가 죄 지을 때는, 아버지가 죄 지을 때는, 처자식과 나 다 합해서 우리 가족단위로 죄 짓는다. 알고 죄를 지으시기 바랍니다. 엄마가 죄 지을 때는 남자는 별 상관없는데 내 자식은 반드시 내 죄로 내려간다 알고 죄 지으십시오. 아가씨때야 까불고 다니지만 아이가 업었으면 그리고 까불다가 넘어지면 나 같으면 짚고 다치지 않지만 아이 업고 까불다가 넘어지면 아이가 어찌 됩니까? 애 때문에 할 수 없이 철이 들고 조심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남자가 주먹이 세니까 두목인 줄 압니다. 그러면 조폭이지 맹수지. 그 맹수는 아프리카 가도 다 멸종입니다. 지리산에 호랑이 있습니까? 억세면 우선은 잡아 는데, 많이 잡아 먹다 보면 나중에 멸종 당합니다. 하늘이 그렇게 만듭니다. 남자가 주먹 세다고 두목 노릇 몇 천년하다보니까 지금 이 나라의 남자들은 쥐구멍에 들어가서 도망가느라고 정신도 없지. 당해도 싸지. 하나님 앞에 ‘아담은 하나님 앞에 대표다. 가인은 가인의 후손에게 대표다.’


나의 죄는 나의 죄입니다. 동시에 나의 죄는 온 가족의 죄가 되니 처자식이 불쌍해서라도 내가 그럴 수 있나! 적어도 인간 같으면, 요즘 면사무소에서 동사무소에서 뭐하려고 귀찮게 돈 벌러 나갑니까? 코로나 지원금 계속 나오는데, 나 혼자 같으면 개기고 그냥 텔레비나 보고 놀고먹고 그러겠지만, 처자식을 봐서 이런 못난 남자가 될 수 있나! 처자식 때문에 가기 싫은 직장 한번 더 가고, 과장 계장 잔소리 그냥 확 뒤집고 엎고 쉽지만, 처자식이 직장 가는 아버지라고 지켜보고 있으니, 처자식 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하고 직장가서 그렇고 그러다 보면 처자식 때문에 사람 되고, 날 위해서 사람되고 서로 좋은데. 혼자 살면 막 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자식을 붙여 놓은 겁니다. 나 혼자 같으면 이판사판가지만 날 바라보는 아내가 있고 나를 최고인줄 아는 아이들이 있고 이들의 앞날이 있으니 그래서 하루 더 나가보자 힘들어도 참아보자 억울해도 견뎌보자.

목사가 사람되는 것은 교인들에게는 목사가 위대해서 목사 짓을 하는 줄 아는데, 신학교 천년을 해 봐야 이론 가지고는 사람이 안됩니다. 이제 목사를 하다 보니, (교인들이) 의인인줄 아니까 천사인줄 아니까 펴놓고 죄를 지을 수 없어 하나 둘 그러다보니까 좀 나아지지. 목사가 양심을 뭉개 놓으면 교인들 보다는데 펼쳐 놓고 죄 짓기 시작하면 막가기를 말도 못합니다. 안 봐도 목사 중에 제일 큰 죄인들은 장로님 목사님들이 함께 여행가서 죄 짓기 시작하면 그 교단은 이미 희망없습니다. 10년 전에 고려파 부산에 간부들이 장로님 목사님들이 일본까지 가서 술을 먹었다고 들켜버렸습니다. 신문에 나온 겁니다. 목사끼리 모여서 술 먹는 거야 루터 부인이 맥주 회사 사장입니다. 루터 부인이 맥주 술 공장해 가지고 종교 개혁했습니다. 술은 죄가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한국 남자들을 보니까 이 인간들은 술만 들어가면 개가 되니까 ‘술 먹는 것들은 아예 세례도 못 받는다’고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에만 만들었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워낙 술에 끝장을 내니까. 중국은 노름하느라고 여자를 팔아 먹으니까 중국에 가 가지고는 ‘노름하면 안된다’ 한국에 와 가지고는 ‘술 먹으면 안된다’ 성경에다 대고 하나씩 더한 겁니다. 잘못 더했습니까? 좋게 더한 겁니까? 남들이 와서 우리를 바로 본 겁니다. ‘한국 남자는 술 안 들어가면 쓸만한데, 술 들어가면 끝장나더라’ 그래서 한국 교회만 술을 금지 해 놓은 겁니다. 목사는 그런 걸 잘 아니까 교인 없는데 가서 목사끼리야 취하든 말든지 시험 들겁니까? 똑같은데. 장로님까지 끼고 가서 목사들이 술판을 벌였으니 이제 양심이 다 없어진 겁니다. 그 중에 하나 양심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 와 가지고 고백을 해 버렸습니다. 같이 먹은 사람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걸작은 그때부터입니다. ‘일본에 가서 여행을 하다가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한잔 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술을 싸가지고 갔답니다. 술 먹다 죄인으로 목사가 되었는데 관광지에 가서 교인 안 보니까, 마음이 풀어지면서 한잔했다. 아 그것도 죄지만 그것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술 짝을 싸가지고 갔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술을 사갔습니다’ ‘아닙니다. 현지에서 막걸리를 보는 바람에 반가워서 샀습니다’ 이걸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싸우는데 옳다 그르다 하면 똑같은 사람들 됩니다. ‘아이고 술 드시고 믿으십시오’ ‘우리는 술 먹으면 간이 안 좋아서라도 안 먹겠습니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 술이 안 좋아 안 먹겠습니다. 애들 보는데 가르칠게 없어 술 가르치겠습니까? 드실 분들은 드시고 우리는 안 먹겠습니다.’ 조용하게 우리만 우리 길 가면 됩니다.

가인의 죄. 지어놓고 자녀로 밑으로 흘려보내 버렸습니다. 슬쩍 밑으로 갔는데 이게 가면 갈수록 커져 버렸습니다. 그게 창세기 4장의 가인의 후손의 이야기고, 이번 집회의 주제입니다. 죄 없는 사람 있습니까? 알고 죄는 짓지 않지만 실수로 짓는 거야 할 수 없이, 실수로 짓는 죄가 큰 것 같습니까? 알고 짓는 죄가 큰 것 같습니까? 알고 짓는 죄는 크게 못 짓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주먹으로 때립니다. 실수로 짓는 죄는 35층 아파트에서 재떨이를 창문 밖으로 휙 던지며 ‘어 사람이 지나갔어?’ 알고 짓는 죄는 양심이 찔러대니까 죄를 지어봐야 몰래 짓고 숨어 짓고 그렇게 많이 짓지를 못합니다.

실수로 짓는 죄는, 김일성이 온 민족 다 죽으라고 공산주의 했겠습니까? 실수로 그게 좋은 줄 알고 공산주의를 잡았지, 그게 민족을 살릴 줄 알고 잡았지, 이것만 들어가면 북쪽 2천만명이 다 굶어 죽으니 한번 해보자 그랬겠습니까? 실수로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 엉겹결에 잡는 바람에 북한 알지도 모르고 70년 저 꼴 당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큰 죄입니다. 통일교는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닙니다. 통일교 문선명이 자기가 예수 아닌 것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돈벌이 하려고 그런거지. 그래서 통일교 죄는 지어봐야 그만 그만 그런 죄 밖에 안 짓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정말로 천국이 없다고 확신하고 (죄) 짓기 때문에 150년 순교자를 내가면서 끝장을 봅니다. 문선명이 자기 하나님이 아닌 줄은 자기가 더 잘 아는데 측근들이 더 잘 아는데 돈벌이 위해서 짜고 거짓말하는 거니까 돈 벌고 재벌되니까 끝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실수로 이단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걸 주님 오실 때까지 끝장을 봅니다. 주님 오시고 세상을 다 불태울 때, 번식 인종, 불택자 중에 번식 인종 하나를 남겨 놨다가 마지막 정리를 할 건데 그 번식인종이 누굴까? 어떤 사람들은 천주교인들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아닐까? 믿기는 믿는데, 이것들은 거짓말 믿고 돈벌이 하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진짜 옳은 줄 알고 믿으니 이것들을 번식 인종으로 쓰지 않을까 이런 추론들이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알아야 됩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큰 죄, 괘씸한 것은 알고 짓는 죄가 더 괘씸합니다. 고범죄입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탈을 내는 것은, 일을 내는 것은 ‘실수로 그랬습니다’ 실수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이 실수로 어떤 결과가 올지 모르니 배워야 되겠다. 실수로 죄를 지었으니 알아야 되겠다 배워야 되겠다’ 이래야 됩니다.

범죄는 계통으로 내려갑니다. 32절 그래서 가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자기 선에서 끝내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죄는 빨리 끝낼수록 쉽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집니다. 죄의 형벌도 그렇고 죄의 성향도 다 그렇습니다. (교재 밑으로 내려와서) 2번 죄가 길어지면 내려가면 심판도 커집니다. 심판은 행위 하나 하나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구원 받을 기회를 상실합니다. 구원의 기회는 한번이므로 기회를 죄와 죄의 심판은 의로 돌아서는 구원의 기회를 빼앗아 버립니다. 의의 기회를 빼앗아 버립니다. 한번 죄냐 의냐 둘 중에 하나인데,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을 때 해야 될 (바로) 의의 (기회)를 빼앗겨 버립니다. 그리고 죄인의 가인의 길 의인의 길은 점점 갈수록 심화가 되어집니다. 가면 갈수록 가속이 됩니다. 훗날 돌아올 길이 너무 많아지고 손해를 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옆 동네 나갔으면 급할 때 돌아오기나 쉬운데, 소식도 없고 연락도 모르는 멀고 먼 나라로 갔기 때문에 돼지 막까지 가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훔쳐 먹다가 돌아 올 때 다 털어 버리고 돌아왔습니다.

34페이지 내가 죄를 해결하면 쉽고 간단한데 주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슬쩍 자손에게 밑으로 내려버리면 모른척하면 자녀에게 죄를 이어줄 책임을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는 아담 욕만 합니다. ‘그 인간이 죄를 지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다’ 오늘 나의 죄를 내가 끊지 못하면, 내 습관을 내가 끊지 못하면, 내 자자손손 내려가는 것은 이어준 내 책임이 됩니다. 자손의 죄에 기여를 한 겁니다. 내려 보낸 죄.

부모가 죄를 내려 보냈으니까 ‘내가 죄를 지었지’ 너는 행위의 죄다. 죄 지은 행위는 행위의 죄. 부모는 내려 보낸 죄. 자녀가 술 먹으면 너는 술 먹은 죄, 자녀에게 술 먹는 걸 보여주고 가르친 것은 부모의 죄. 둘이 합했으니까 무럭 무럭 잘 자랄 겁니다.

자기도 회개를 못했으니, 자손 때 회개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기가 죄를 회개하고,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는 것이 제일 쉽고 간단합니다. 지나가고 나면 어렵습니다. 자녀에게로 넘어가고 나면 거의 회개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을 보면, 롯만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 빼냈지 민족적으로 전부 멸망입니다. 그 책임을 어떻게 할 겁니까?

3번에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왜? 죄는 화재와 같습니다. 실수로 불 질러도 얼른 끄면 쉬운데 아차 하면 강원도 이번 산불꼴 됩니다. 또 죄라는 것은 건강으로 말하면 질병하고 같습니다. 안 좋을 때 얼른 치료하면 되는데, 키워서 간암 4기 말기가 되면 어떡합니까? 죽어야지. 기계로 말하면 고장 났을 때 얼른 고치면 좋을건데 놔두면 마모가 심해지면 내버려야 됩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첫 번째 뭐와 죄가 같다고요? 화재와 같습니다. 뭐와 죄가 같다고요? 질병과 같습니다. 기계로 말하면 뭣과 같습니까? 기계 고장과 같습니다. 소리가 이상하면 얼른 보면 돈도 안 들건데 놔뒀다가 나중에 차를 다 버리는 꼴이 됩니다. 지금 지은 죄를 차단을 해 버리면, 맨 마지막에, 이번 죄, 한번 죄, 이미 지은 죄, 이걸 가지고 싸우고 이걸 차단하면 앞으로 지을 모든 죄를 방어할 수 있는 비법이 되어집니다.

여기 간호사들이 많은가요? 그걸 무슨 주사라 그러지요? 한방 맞고 많은 병을 다 이기는 것. 예방 주사라 그럽니다. 코로나 같은 것은 맞고 고생하나 안 맞고 고생하나 별 차이가 없던데. 소아마비 같은 것은 주사 한방에 두 다리 멀쩡하게 평생 살고, 소아마비 주사 하나 맞지 않아 소아마비 걸려 놓으면 어떻할겁니까? 우리나라 한 해에 6천명 정도가 소아마비 걸렸었습니다. 소아 마비 주사 한방으로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주사 맞기 싫으냐? 그러면 예방 주사 맞지 말고, 천연두 하시고 학질 하시고 소아마비 걸리시고 걸리십시오. 태어난 아이 주사 바늘 열 개도 더 꼽습니다. 예방 주사 때문에,

죄 하나 지었을 때, 그 죄하고 싸워버리면 이후에 수도 없는 죄를 막아버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개인의 죄도, 단체의 죄도, 어떤 죄도 현 단계에서 대처하는 것이 화재를 봐도, 건강을 봐도, 기계를 봐도, 모든 걸 봐도 그게 지혜롭습니다. 그런데 120년 뒤에 홍수 난다는데? 119년 놀고, 저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들, 고등학교 딱 입학하면 공부하는 애들 있습니다. 공부 안하는 것들은 ‘1학년은 놀고 2학년때부터’ 그 놈들치고 2학년때 다시 공부하는 것들은 못 봤습니다. 2학년 되면 또 뭐라 그러지요? ‘3학년때 벼락치기 하면 된다’ 그것들 또 3학년 올라가면 뭐라고 그러지요? ‘ 3월 춘삼월은 보내고 5월 1일부터 여름방학 끝나고’, 120년을 줘도 끝까지 그러다가 전부다 홍수입니다. ‘아이고 기회를 더 주시지’ 우리 마음 그런데, 하나님은 ‘야 이놈의 네 심보를 안다. 기회를 많이 주면 많이 준만큼 나중에 찾을게 많으니까 알아서 적당하게 주겠다’

죄는 빨리 꺾고, 미리 해결하는 게 내 건강에 좋고 내 몸에 좋고 내 인생에 좋고 나한테 좋고 그 다음 몹쓸 죄와 싸워 이기는데 지금 싸워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38쪽입니다. 죄만 그러느냐? 의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죄도 의도 없어지지 아니 하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속도가 붙습니다. 한 번의 죄 그냥 두면 다음 죄를 끌어 옵니다. 그래서 앞에 죄 더하기 끌어 온 다음 죄가 합해 가지고 또 죄를 만듭니다. 앞의 것에 뒤의 것이 더해지며, 역사의 모든 죄가 역사적으로 더해집니다. 내 죄 하나를 회개 안하면 이게 다음 넘어가면서 다음 죄와 이번 죄가 더해지면서 역사 모든 죄가 ‘여기 죄가 있다’ 하면서 개떼처럼 갖다 붙습니다. 한 사람 회개하고 귀신을 좇아냈는데 다니다가 쉴 곳을 얻지 못하여 와 보니,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더라’ 이 귀신이 들어오면서 몇 명의 더 더러운 더 악한 귀신을 데려왔더라고요?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왔더라’ 한 죄와 싸우는 것이 경제적이고 전술적이고 전략적이고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작은 죄 밀어 넣어 놓고 ‘작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것만 넘어가면 천하에 모든 죄를 다 집어 넣어 버립니다. 진주성이, 동래성이, 옛날에 산성이 다 무너져서 집니까? 한군데가 뚫리면 끝나 버립니까? 한 군데만 뚫리면 그리로 다 들어와 버립니다. 성이라 도망도 못가고 독안에 든 쥐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3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자유성이 죄를 점점 더 죄에 죄를 더하며 한 죄 한 죄 단순 토막처럼 보이는데 자유성으로 지은 죄이기 때문에 이건 버려도 연습으로도 죄와 의는 가속이 되는데 죄를 그대로 두고 슬금 슬금 패스시키고 늘려나가면 감당을 못합니다. 이렇게 죄악이 세상에 홍수처럼 넘치니까 홍수를 보내서 다 쓸어 버린 겁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무지한 유한히 행한 인생인데 땅에서 지은 죄는 영원한 영계까지 이어집니다. 지옥 가는 죄는 예수님이 무조건 해결 그다음 우리에게 맡겨 놓은 내 심신의 기회는 내가 무궁토록 가지고 가야 됩니다. 죄가 점점 가속이 되는 이유 반복이 되니까 반복이 되면 숙달이 됩니다. (저는) 술은 안마셔봤지만 한번 마신 사람보다 10년 마신 사람이 다 잘 마실걸요? 담배는 한번 제가 피워봤습니다. 3학년 때 다리 밑에서 몰래 피워봤더니 얼마나 맵던지 매워서 그냥 말았습니다. 뒤에 군대 가서 담배 시작한 애들 보니까 매운데 시켜서 두 번, 세 번 하니까 그다음부터는 담배 없이는 못 살던데요? 이게 반복이 가속이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끝까지 계속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40페이지 범죄란 계통으로 내려가며 가속도가 붙는데 죄 하나 하나를 보면 이제는 죄악성이 아주 굉장히 아주 못되게 바뀌어 버립니다. 죄악이 고도의 죄악이 됩니다. “예로부터 아합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더라” 다른 죄인들은 죄를 짓다보니까 지었고, 어쩌다가 보니까 지었는데, 무서워서 죄를 지었는데, 실수로 죄를 지었는데, 죄를 짓고 회개를 못해서 죄한테 붙들렸는데. ‘아합 이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더라’ 그래서 아합의 죄악이 성경에 제일 큰 죄가 됩니다. 분량도 첫 번째, 두번째 악성도, 세 번째 고도화의 문제까지도 죄의 발전성이 있어 그렇습니다.

42페이지 넘깁니다. 죄를 지은 다음 처벌을 할 때 아담은 군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 하와의 처벌이 훨씬 무거웠습니다. 근데 이의 반발이 없었습니다. 수월했습니다. 벌 주는대로 ‘예’ 하와가 ‘앞으로 그러면 제가 낳아 고생하겠습니다’ 아담은 ‘제가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고생하겠습니다’ 반발 없이 수용했기 때문에 가죽 옷을 받았습니다. 그 가죽 옷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가인은 처벌이 심하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그 태도가 훗날의 문제까지, 아벨을 죽였는데 지금은 멀쩡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이게 문제가 되어서 훗날 보복을 당할까, 훗날 문제까지 하나님께 미리 막아달라고 사전에 담보까지 요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벌을 축소하는 바람에, 자녀에게 죄의 값을 죄의 역량을 쌓아 놨습니다. 그러니 4번에 가인의 죄는 자녀로 누적이 돼 버립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 이 라멕은 가인의 자손입니다. “칠십 칠배이리로다” 가인의 죄 하나 죽인 죄입니다. 가인을 죽이면 칠배의 죄로 못 죽이게 하고 하나님이 벌을 주셨습니다. 그 밑에 자손에게 내려오니까 칠십 칠배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가인은 칠배인데 가인의 죄는 엄연한 죄인데, 죄의 성격이 7배나 더한 죄고, 죄를 피함으로 누적이 급증이 되다보니까 라멕때 가니까 77배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보다 가인의 죄가 크고, 가인의 죄보다 라멕의 죄가 더 크고. 기하급수적으로 대대로 이어가는 이런 불행을 막으려면 죄는 시작할 때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실수로 죄를 지어도 어떡하다 죄를 지어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노력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지켜봅니다.

44페이지입니다. 아담과 가인을 잠깐 비교합니다. 아담은 범죄를 인정했습니다. 가인은 범죄를 숨겼습니다. 아담은 죄를 지어 놓고 변명만 했습니다. 가인은 반항을 했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이 회개, 돌아서는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할 때 아담은 처벌을 수용했습니다. 가인은 처벌에 불만이었습니다. ‘죽여 주소서’ 자청을 해야 자비가 오는데, 자비가 와야 해결이 되고 시작이 되는데. 창세기 3장 17절에 보면 하나님 죄 지은 아담에게 ‘너는 죽을 때까지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가인은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하나님) ‘죽지 말아라 죽지 말아라 보호해 줄게’ 그러므로 자자손손 감당 못하는 죄로 나아갔습니다. 어떤 결과의 차이가 있느냐? 아담은 가죽 옷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가인은 죽임을 면했습니다. 죄인이 회개하지 않고 죽임은 면하니까 계속 죄를 뿌리고 죄를 더 해 버렸습니다. 그 마지막에 홍수 심판에서 전부 전멸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오늘 가인을 좀 살펴봤습니다. 나는 오늘 가인이 되지 말자! 그럽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오늘은 가인이 하나가 아니라 천하 만민이 가인 정도 됩니다. 교회 안에도 가인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문제는 나인데, 내가 내 속을 들여다봐도, 지난날을 서로가 다 알지 않습니까? 죄는 짓고 벌은 피하고 싶어 감추고 숨기고 ‘죄는 지었지만, 이거 너무 심합니다’ 좀 봐주시라고 우리는 다 그런 식으로 가인적인 요소, 가인적인 신앙으로 왔습니다. ‘복이나 주옵소서. 하나님은 축복이나 하옵소서. 복이나 주옵소서’ 이게 믿는 신앙의 공통이 되었습니다. 복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 손에서 이것만은 막아볼까? 이것만은 해결해 볼까? 이것만은 더 이상은 진행되지 않도록 해 볼까?’ 이 한 고민의 소망을 담아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1차교정-J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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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05.0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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