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밤22.5.2 창4:2 ①선과 악, 아담의 중심문제 ②누구를 좋게, 가인의 자세문제 ③신앙과 예배의 원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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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밤22.5.2 창4:2 ①선과 악, 아담의 중심문제 ②누구를 좋게, 가인의 자세문제 ③신앙과 예배의 원칙론

교인 1 257 2022.05.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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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2 집회2 (월밤)

제목 : ①선과 악, 아담의 중심문제 ②누구를 좋게, 가인의 자세문제 ③신앙과 예배의 원칙론

본문 : 창세기 4장 2절 -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항상 두 길을 창조로부터 우리에게 세상 끝날 까지 내어 놓으시고 또 우리에게도 믿는 순간부터 항상 두 길을 우리 앞에 주시며 우리에게 주신 자유성, 원하고 원함으로 세상을 향할는지 천국을 향한 세상으로 살아갈는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는지 자기중심으로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살는지 우리는 자유성이 있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데, 금번에도 바쁜 모든 세상 일을 뒤로 두고 깊은 이 산속으로 들어와 하나님 중심과 자기중심을 놓고 아담이 어떤 길을 걸었으며 또 가인과 가인의 후손이 걸어 홍수의 심판과 오늘까지 인류 역사의 저주를 부어 놓은 우리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아가야 되는 구원의 길 구원의 성도가 되었는데, 우리의 마음은 오늘도 세상과 천국을 두고 자유 할 수 있고 우리의 말 우리의 행위는 자기중심으로 살아도 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도 되는 두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가 있사오니 항상 두 길을 주신 주님, 오가라는 것이 아니고 곁길이 아니라 항상 옳고 바른 길 복된 길을 걸어가도록 세상도 현실도 또 이 저녁 두 번째 예배 시간으로 불러 아담이 걸어가고 가인이 걸어간 길을 우리는 돌이켜 주님의 대속으로 아벨의 길을 걸어가는 소원의 이 밤이 되도록 마음 마음 붙들어 주시고 인도 해 주옵소서. 사람은 감추시고 전하고 듣는 저희들 사이에 성령의 역사만 앞에 서고 우리는 따라가게 인도 해 주옵소서. 부족한 강단에 영육을 긍휼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12페이지로 돌아옵니다. 잠깐 복습하고 넘어갑니다. 인류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던가? 옛날 역사인데, 지나간 역사하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요? 반복이 되니 문제입니다, 반복이 되니. 그래서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얼어 있는 강에 저리 가니까 빠져 죽겠구나.’ 따라가면 어떻게 되지요? 또 빠져 죽습니다. 백명 천 명이 가도 다 빠져 죽습니다. ‘아담이 저 길을 가더만 빠져 죽었구나.’ 그러면 우리는 아담의 길을 걷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오후에 아담을 먼저 살폈습니다.

12쪽 교재를 보겠습니다. 아담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그랬지요? 첫 번째 사람입니다. 순서로 첫 번째 사람인데 첫 사람 가는 걸 보니까 나머지는 다 뒤를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엄마가 개면 새끼는 망아지겠습니까, 강아지겠습니까? 엄마가 개면 새끼는 강아지 됩니다. 엄마가 말이면 망아지 됩니다. 아담이 범죄 했으므로 아담 밑으로 인간은 전부 다 죄지어 지옥입니다. 길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전부가 죄인이라 다 죽어 지옥 가야 되기 때문에 길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사람 되어 아야 원죄 없이 태어나 해결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구원의 길은 새로 열렸습니다. 아담뿐이었으면 아담도 지옥, 모든 인간은 전부 다 지옥 한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아담, 아담은 첫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아담은 첫 사람이다. 첫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은 전부 다 그 길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전 인류가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가 아니면 넌 너 멋대로 난 나 멋대로 가면 됩니다. 사람을 만들 때부터 아담을 대표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대표가 죄 지으면 전부가 죄인입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담 지가 죄 지어놓고 왜 내가 지옥을 갑니까? 하나님이 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나님께 항의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그따위로 정했냐고? 하나님이 정했으니까 할 말은 없습니다. 근데 불만스럽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둘째 아담으로 대신 죽고 날 구원을 해 버렸습니다. 나는 죄인인데 예수님이 대신 구원하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예수님 따라 믿는 사람은 전부 택자가 되고 전부 천국입니다. 지옥 갈 죄인이 천국 갈 택자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그냥 손해만 보지 않았다면 왜 병 주고 약 주냐고 또 한 번 해야 되겠지요. 근데 사람이 죄 짓지 않고 에덴동산에서만 살았다면 죽지 않고 에덴동산에서만 살게 되는데 죄를 지은 걸 구원을 해 놓았기 때문에 죄 짓기 전에 아담은 하나님이 만든 작품입니다. 멋있게 좋게 잘 만들어 놓은 아담인데 이게 죽은 걸 살리려면 만들어 가지고 안 되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대신 영원한 지옥의 고생을 해결을 해야 됩니다. 그냥 만든 것은 아담, 아담의 죄로 구원받은 아담과 우리는 하나님이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되어 33년 고난, 영원한 지옥의 고난까지 전부 대신 다 하시고 영원한 천국의 영광까지 대신 다 해 놓고 우리에게 입혔습니다. 죄 짓지 않고 아담이 에덴동산에 계속 살았다면 죄 없이 그냥 좋았을 터인데 죄를 짓고 원 위치로 구원받아 다시 천국 가게 된 우리는 죄 없는 무죄의 아담과 비교를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을 다 우리 안에 가졌습니다. 부모가 학비만 대준 학생, 부모가 교도소간 아들을 대신 부모가 들어가서 아들을 빼준 부모, 어느 부모가 수고가 더 크겠습니까? 신장병으로 죽어야 되는데 부모가 신장을 떼어 살려줬다면 부모의 수고와 사랑은 더 크겠지요. 아담은 첫 사람입니다.

12쪽, 첫 번째 사람이 가는 길은 전 인류가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냥 1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대표입니다. 그 대표 아담이 죄를 지은 것은 우리의 죄가 되어버렸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 때문에 대신 죽어 죄는 씻어버리고 우리가 살아가며 행할 모든 수고를 대신 다 해 주심으로 우리는 마음껏 잘 믿고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게 되었고 우리를 그냥 아담으로 만들어 준 것보다 날 위해서 죽고 부활까지 하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한 번 지은 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비교도 못 할 만큼 더 크게 받아 버렸습니다. 그 첫 번째 순서가 아담은 인류의 첫 사람이고 아담을 따라 모든 인간은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14쪽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인류의 대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라는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대표 축구를 해서 우리 대표 11명이 이기면 5천만 우리가 이긴 게 됩니다. 우리 팀이 지면 5천만 나는 구경만 했는데 우리나라가 진 것이 되어집니다. 이런 것을 대표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대표라는 것은 함부로 세우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나 좋아하는 사람, 뭐 잘해 준다는 사람, 군 의원, 시의원부터 대통령까지 뽑는 것은 내 마음인데 뽑아놓은 다음 대표가 한 것은 내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대표가 잘하면 내 것이 되고 대표가 못하면 내가 잘못한 것이 되어집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 아담 앞에는 두 길이 있었습니다.

14쪽, 선악과 먹고 죄 짓고 마음대로 살아도 되고 그걸 끊어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명과만 먹고 살아도 되는데 죄 짓지 않게 만들어 놓으면 죄는 안 짓는데 자유성이 없으면 기계입니다. 돌이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자라 우리를 돌처럼 만들 수도 있고, 로봇트처럼 기계로 만들 수도 있고, 성능 좋은 컴퓨터로 만들어도 되고, 우리를 천사처럼 만들어도 되고, 몇 가지인지 지금 헤아렸나요? 지금 시원이 헤아리고 있나요? 다시, 하나님이 우리를 돌처럼 만들어도 되고, 돌로 만들어 놓으면 고장이 안 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로봇트 기계로 만들어 놔도 됩니다. 로봇트는 돌보다 낫지요. 근데 고장이 납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컴퓨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계산은 잘 하겠지요. 근데 컴퓨터 데리고 이쁘다고 같이 다니겠습니까? 그 이쁘다고 업어주겠습니까? 이용만 하지.

하나님은 우리를 천사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같이 만들어 놨더라면 죄도 안 짓고 시공을 초월하여 로켓 타지 않고 마음대로 우주와 영계를 달릴 뻔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라는 것은 삼성 회장님 밑에 사장입니다. 직원입니다. 일은 잘하는데 재벌 회장님이 직원이 일 잘하면 자기 재산 물려주겠습니까? 나 같으면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돌같이 만들지 않으시고 돌처럼 만들었더라면 감기도 안 걸립니다. 코로나도 안 걸립니다. 이건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바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컴퓨터처럼 만들었으면 계산은 잘하는데 컴퓨터 데리고 살겠습니까, 놀러 가겠습니까, 이거는 그냥 기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처럼 만들었더라면 죄도 짓지 않고 영계 우주를 막 날라 다니는데 천사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종입니다. 삼성 회장님 밑에 이사입니다. 직원입니다. 자르면 잘립니다. 우리는 돌로 만들지 않으시고, 컴퓨터로 만들지도 않으시고, 천사로 만들었으면 좋을 뻔했습니까? 천사는 머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애도 먹이고, 감기도 걸리고, 말도 안 들을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세월 속에 자라면 누굴 닮지요? 아버지 닮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뭡니까? 자기 재산 다 물려주는 겁니다. 천사는 영원무궁토록 가도 머슴입니다. 지금은 우리보다 위대하지만은 영원히 가도 천사는 종이고 머슴입니다. 삼성재벌의 아들은 태어나면 대소변도 못 가립니다. 혼자 다니지도 못합니다. 근데 이게 스물이 되면, 이게 사십이 되면 아버지가 자기 자리에 앉혀버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돌로 만들었더라면 애 먹이지 않았습니다. 근데 항상 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로봇트처럼 만들어 놨으면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데 이 로봇트를 데리고는 말을 해야 재미가 없습니다. 늘 그대로입니다. 우리를 만약에 천사로 만들어 놨다면 애도 안 먹이고 영원토록 심부름은 잘하는데 늘 심부름꾼이지, 이건 날 닮아 내가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아들이 아닙니다. 아들은 자라면 아버지가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게 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돌로 만들지 않고,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천사로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영원무궁토록 실력 있는 머슴이 되면 좋겠습니까? 못 나도 아들은 자라갑니다. 못 나도 아들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자리에 앉습니다. 그렇다고 아들이 아버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아버지는 죽어야 되고 아들이 대신하지만은 하나님은 완전자 영원불변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것부터가 길러서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서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이 앉을 자리에 앉히고 싶습니다. 아버지 마음은 다 그렇습니까? 어머니 마음도 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부모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고장 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고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만들 때 죄 없는 세상을 만들어도 되고 처음부터 천국만 만들어도 되는데 변치 않는 천국은 따로 만들어 놓고, 죄 짓고 고장 난 세상을 따로 만들어 놓고, 이 죄 많은 세상에 우리를 살게 해 가지고 이게 죄를 짓고 고장을 내 가지고 엉망이 되는데 이 엉망된 걸 그냥 두면 영원한 지옥인데 엉망이 된 걸 고칠 수 있고 되돌릴 수가 있는 아버지는 완전자 실력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부러 세상을 고장 난 세상으로 만들고 고장 난 우리를 다시 고치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가 돌아와서 하나님을 알고 나면 이제는 하나님을 닮아 영원토록 자라가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래서 14쪽 제일 위에, 아담은 인류의 대표였습니다. 일부러 하나님이 대표로 만들어놓고 죄를 지어도 되고 하나님 순종을 해도 되는 두 길을 주셨는데 이 두 길이란, 하나님 없으면 어찌 되느냐 하나, 하나님께 붙들려 살면 어찌 되느냐, 둘. 요 둘입니다. 근데 이 자유성을 준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자유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을 닮은 우리,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우리를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이 어려운 길을 택했던 겁니다.

부모에게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죽는 날까지 품에 안기면 부모 좋은 줄을 모릅니다. 부모 품에 애를 떼서 부모 없는 아이를 만들면 뭐 그날부터 부모 찾을 때까지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리고 다시 찾으면 부모가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이걸 가장 잘 테스트를 하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됩니다. 어떤 부모도 부모 죽으면 아들은 바로 효자 됩니다. 그런데 살릴 수가 없으니 큰일입니다.

하나님이 완전자가 아니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성 주시고, 죄 지을 기회 주시고, 죄를 짓게 만들고, 그다음 죄로 죽게 만든 다음, 하나님이 대신 죽어 이걸 살려놓으니 ‘하나님 없으면 안 되겠구나, 하나님 없는 길은 절대 안 되겠구나!’ 부모 떨어져 1년 살아 보면 10년 부모 잊고 뒷골목의 고아로 억울하고 서럽게 살아보면 이건 부모 노래를 부릅니다. 근데 태어날 때부터 하나, 태어나서 부부가 안고 할머니 할아버지 4명, 5명이 안고 30년, 40년을 귀하다 귀하다 그러니 이게 부모 귀한 줄을 알겠습니까?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머리로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모 좋은 꼴만 보면 부모 좋은 줄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미아가 되어 가지고 ‘다시는 부모는 못 찾겠구나!’ 그러다가 찾으면 부모가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밥 맛 없는 분들, 맛있는 밥으로 계속해서 맛을 있게 하려면 전국의 맛집 다 돌아 댕겨도 질려서 못 먹습니다. 해외를 다녀야 됩니다. 요즘 다 해외 다녀보지 않습니까? 10번, 20번 다녀보시지요, 좋은 게 있는가.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은 한 끼 굶으면 다 맛있습니다. 3일 굶겨 놓으면 어떤 것도 다 맛있습니다. 그 이상 맛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굶길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적당한 금식은 모든 음식을 전부 최고의 맛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그런 하나님의 인도의 길이 있습니다. 부모가 있으니까 부모 좋은 줄을 모릅니다. 밥이 있으니까 밥 좋은 줄 모릅니다. 부모 없으면 애들은 단번에 생지옥인데 건강을 잃으면 건강만큼 좋은 게 없다고 단번에 돌아서는데 건강하니까 건강을 우습게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타락을 준 겁니다. 타락을 줘서 하나님 없는 꼴 살아보고 그리고 구원을 해놓았기 때문에 ‘아 하나님은 좋구나, 부모는 필요하구나, 하나님 없이는 절대 안 되겠구나.’ 이거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인간에게 타락을 준 겁니다. 아담에게 선택을 줬습니다.

14페이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래?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으라는 말입니다. 종? 내가 주인하고 싶은데. 세 살짜리가 가장되면 그 집 어떻게 되지요? 국가를 한 살짜리 돌 된 아이에게 맡겨 놓으면 그 나라 어떻게 되지요? 실력이 있고 결정을 해야 되는데 실력이 없는 게 결정하면 그다음부터는 재앙이 됩니다.

저는 차는 잘 탑니다. 제가 비행기 운전하면 여기 타실 분 계십니까? 초상 날 건데요. 차보다 비행기는 훨씬 좋으나 운전할 수 있으면 비행기가 차보다 나은데 운전 못하는 사람의 비행기는 바로 장례식입니다.

하나님만 완전자고 하나님을 따라간다는 말이 좋은데 완전자 따라가면 완전한 것이 다 오는데 이 좋은 걸 귀신이 ‘하나님도 하나님 마음대로 하지 않냐, 너도 네 마음대로 해라’ 하나님은 하나님 좋은 대로 하시고 선, 나는 내 마음대로 좋은 대로 하고 선. 그럼 하나님의 선, 하나님의 악이 있는데 나는 하나님이 선하면 선, 악하면 악. 이래 따라가면 좋을 건데 하나님이 선, 나는 내 멋대로 나 좋은 선이 따로 있습니다. 이게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좋으면 ‘선’ 하십시오, 싫으면 ‘악’ 하십시오. 전 저대로 선과 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라 하나님이 좋은 것은 좋습니다. 세 살짜리가 좋아하는 것은 면도칼, 다섯 살짜리가 좋아하는 거는 불장난, 열 살짜리가 아빠 차를 타고 고속도로 나가면 좋은 겁니까, 그거 초상 칩니까? 실력이 있어야 되는데 실력도 없는 완전자가 아닌 무지 무능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마음대로 하니 아담 너도 네 마음대로 하거라, 그거 좋지 않냐?’ 좋은 ‘선’자입니다. 나쁠 ‘악’자입니다. 선악과란, 좋고 나쁜 걸 결정하는 겁니다. 좋고 나쁜 것은 누가 결정해야 된다고요? 하나님. 내가 결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반들이 다 싫어 할 겁니다. 여반들이 선악을 결정하면 남반은 불편합니다. 사장이 선악을 결정하면 종업원은 죽을 판입니다. 종업원이 선악을 결정하면 사장이 회사 안 된다고 난리입니다. 완전자가 아닌 인간이 무지 무능한 인간이 나는 나 중심, 너는 너 중심, 너는 너 좋은 대로, 너는 너 좋은 대로, 그게 생지옥입니다. 하나님이 좋다면 좋다 하거라, 하나님이 안 좋다면 ‘예’ 그러 거라. 이렇게 살아라, 그게 선악과를 손대지 말아라. 선악과는 하나님의 것이니 먹지 말아라. 선악과를 먹는다는 말은 좋고 싫은 걸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아담이 자기 마음대로 선, 악, 좋다, 싫다. 그러니 하나님이 넌 너대로 선악으로 해라.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겁니다. 그걸 자기중심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첫 출발은 자기 부인, 자기중심을 부인하는 데서 기독교의 첫 출발을 합니다. 교인들에게 자기중심을 버리라는 말은 ‘목사 중심으로 사십시오.’ 라는 말이 아닙니다. 목사도, 교인도,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모든 인간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라, 자기중심으로 살지 말아라. 그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넘겨서,

16쪽 할 차례지요. 아담의 선택, 하나님 중심이 있고 자기중심이 있는데 아담은 악령이 와가지고 자기중심 ‘하나님도 하나님 마음대로 하니 너도 너 마음대로 해라.’ 좋지요? 아빠도 아빠 마음대로 하니 아들도 아들 마음대로 해라. 60 아버지가 아버지 원하는 대로 하고 40 아들이 아들 원하는 대로 하면 훌륭한 40이 시골 농사 짓는 60 아버지보다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40 아버지가 5살 아이에게 ‘네거리 가서 나가 네거리에서 놀면 차 사고 난다.’ 5살짜리 아이는 ‘사거리 신호등 보고 날 내게 왔다 갔다 하니까 재밌는데요.’ 40 아버지가 ‘한 번 잘못되면 너 중환자 사망 된다.’ 40 아버지가 ‘놀이터에서 놀아라.’ 5살 아이는 ‘저는 소신 있습니다, 저는 개성 있습니다, 저는 아동 인권이 있습니다, 네거리 나가서 놀랍니다.’ 어떻습니까, 학생들? 아동들? 아버지는 아버지의 세대가 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세대가 있고, 5살 유치원은 요즘 유치원 아이들의 노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냐? 네거리입니다. ‘야 이놈아 아동 인권이고 유치원에 아동이고 복지고 간에 그건 죽는 길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만들은 아담이 완전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담이 자라가는 거고 아담이 자꾸 자라가서 하나님 흉내를 내면 흉내 내는 것만큼 자유해도 하나님 노릇을 할 건데, 하나님 자녀답게 이제 막 만들어 놓은 아담에게 뱀이 와가지고 ‘하나님도 하나님 좋은 대로 하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 아니냐. 너는 너 좋은 대로 해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우리 우리 좋은 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금지했는데 ‘좋고 싫고 제가 결정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좋고 싫고 제가 결정합니다.’ 나 중심. 뭐 하나님 중심 나 중심이 다르니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줄 것이 없습니다. 선이 끊어졌으니 그러면 위에서 주는 은혜는 끊어져 더 이상 오지 않고 이미 받아놓은 거 가지고 6천 년 인간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니 위에서 더 이상 오는 것은 없고 이미 창조 때 받아 놓은 걸 가지고 75억이 살려니 땅 싸움, 권력 싸움, 재산 싸움, 머리싸움, 취직 싸움 벌어지는 겁니다. 위에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면 하늘에서 비를 주시면 이쪽 논 임자가 ‘아 우리 물 좀 쓰십시오.’ 밑에 논 임자는 ‘우리 물도 넘칩니다. 저 논 주십시오.’ 하늘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서로 주시라, 서로 가져가시라’ 이럴 건데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추가 은혜가 끊어지고, 받아 놓은 1차 창조 가지고 75억이 함께 살아가야 되니, 한 나라가 영토를 크게 만들면 한 나라는 식민지가 돼야 됩니다.

시골의 한 아이가 성공해서 회사를 만들면 다른 회사 하나는 망해야 됩니다. 제가 서울대 입학하면 다른 집 아이 하나는 떨어져야 됩니다. 이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하나님의 추가적인 은혜가 없으니까 있는 걸 가지고 나눠 먹어야 되고, 있는 걸 가지고 나눠 먹어야 되니 약육강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약한 거는 먹히고 강한 거는 먹습니다. 토끼가 ‘아 나는 호랑이에게 그냥 고생 안 시키고 먹히겠습니다.’ 그럼 호랑이는 고맙겠지. 토끼 가정은 고아 되겠지. 토끼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호랑이한테 안 잡혀야 됩니다. 호랑이는 못 먹으면 지가 굶어 죽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 중심으로 된 선악과의 결과입니다.

아담의 선택은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려면 16쪽 큰 1번,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면 ‘하나님이 주인공 우리는 종 되는 거 아닙니까?’ 종질하고 살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삼성그룹의 종질하는 10만 명 아십니까? 삼성전자의 10만 명 종질하는 거 아십니까? 배지 달고 댕깁니다. 나 삼성전자입니다. 연봉 1억입니다. 이건희 종 아닙니까? 근데 왜 배지 달고 그렇게 자랑하지요? 5평 김밥집 구멍가게 사장님은 ‘이건희 회장 너나 나나 같은 사장인데’ 왜 5평 김밥집 사장 안 하고 왜 삼성그룹 노예로 왜 머슴으로 들어갑니까? 왜 자랑합니까? 왜 결혼할 때 삼성 직원이라면 다 결혼 잘합니까? 삼성그룹 노예 되고 종질하고 머슴 되겠다고 30년 공부하고 시키는 대로 죄도 지으면서, 하나님이 ‘하나님 종하는 거 좋은 거다, 하나님은 착취 안 한다, 악용 안 한다, 하나님이 있는 천국을 주고 싶다.’ 근데 왜 주인이고 왜 종이라고 표현을 하느냐 넌 모르니까, 너는 모르니까. 네가 핸들 대 잡고 운전을 하면 망쳐버리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운전을 합니다. 미워서가 아니라 착취가 아니라. 그래서 주님이 주님이라 부르라 그럽니다. 완전자니 하나님이 결정해야 되고, 완전자니 하나님이 해결하고, 우리는 무지 무능하니 뒤에 붙어 앵겨 살아야 되고, 양육을 받아야 되고, 영원토록 하나님만 지도하시고 우리는 영원토록 종으로만 삽니까? 순종할 때마다 자꾸 크고 자라고 배워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기르는 게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여기 아버지 된 분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못난 나처럼 되지 말아라.’ 첫째는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잘난 부모가 있으면 ‘나 닮아라’ 아닙니까? ‘나 닮아라’ 내가 못 났으니까 나를 닮지 말라고 공부를 시키지 내가 잘났다면 ‘나 닮아라’ 아닙니까? 하나님이 못 났기 때문에 ‘나 닮지 말고 귀신 닮아라, 나 닮지 말고 저 아인슈타인 닮아라.’ 그러겠습니까?

완전자 하나님이 어린 우리를 만들어 놓고 ‘시키는 대로 해라’ 시키는 대로 하면 종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입니다. 왜 주종이지요? 모르니까, 어리니까, 없으니까. 그럼 늘 종질만 할까요? 한 번 순종할 때 한 번 자라고, 10번 순종하면 10번 자라고, 강해지고, 알아지고, 실력이 넘쳐서. 아버지가 볼 때 아들이 든든하여 맡길 만하면 아버지가 조선 왕들처럼 끝까지 버팁니까, 아니면 얼른 아들을 앉혀놓고 아들이 주인 노릇 잘하는 걸 보고 안심하고 싶습니까? 말씀대로 순종 잘하여 잘 배우고 은혜 받고 점점 아는 게 좋아지고 행위가 좋아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맡겨도 될 만하면, 누구한테 애굽 맡겼습니까? 요셉. 누구한테 바벨론을 맡겼습니까? 다니엘. 20세기, 21세기, 누구한테 세계를 맡겼습니까? 미국의 청교도들. 우리한테는 왜 세계를 안 맡깁니까? 왜 재벌을 안 맡깁니까? 왜 신학대학 하나를 왜 안 주십니까? 실력이 안 되니까. 제 아버지가 저한테 생일 선물로 F16 전투기를 선물한다면 타고 죽으라는 뜻이겠지. 전투기 제트기가 값이 없어 그렇습니까, 위험해 그렇습니까? 실력이 없으니까 못 맡기는 겁니다. 우리는 실력은 안 되는데 진리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사랑할 줄을 모르는데 재벌 만들어 주시고, 뭐 합격 다 시켜주시고, 뭔 좋은 거 다 주시고, 뭐 대통령도 시켜주시고, 시켜놓으면 헤롯 되려고, 빌라도 되려고? 너 같은 게 구멍가게를 해도 종업원 하나를 착취하면서 네가 10만 명 재벌이 되어 놓으면 10만 명을 들볶을 건데 그 10만 명이 하늘을 향해서 호소를 하면 세상에 아버지는 눌러주지만은,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도 호소가 들어오면 공의롭게 공정하게 살핍니다. 그래서 하나님입니다.

못 줘서 못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라고 쉽게 말하면 기다리는 겁니다. 어떻게 인간이 될까요? 거울 보면 말끔한 인간인데. ‘성경 진리에 맞는 인간 되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따르는 인간 되거라, 사활의 대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는 그 면으로 닮거라, 그런 면으로 사람이 되거라.’ 성경 공부하고 성령의 영감으로 살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걸어가다가 언제 취직하고 언제 돈 벌려고요? 요셉이 구멍가게 사업을 잘해서 총리까지 올라갔습니까? 비정규직 9급 동사무소 시다 하다가 정규직으로 바뀌어서 고시해서 출세 했습니까? 노예로서 순종, 교도소에서도 순종, 다니엘 포로 간 데에서도 포로 잡아간 원수의 나라의 황제에게 순종, 하나님 때문에. 그 하나님이 지켜보면서 원수의 나라에 포로가 되었으면 악을 쓰고 망하라고 기도를 할 건데, 여기 우리 심보 다 그렇지요?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 죽으라고 우리는 기도를 해도 그리 할 건데 애굽에 간 요셉은 노예로 갔습니다. 바벨론으로 간 다니엘은 포로 되어 갔습니다. 원수의 나라입니다.

원수라도 원수의 나라라도 죄 되지 않으면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밉지만은 인간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망케 한 바벨론 나라라 망해야 되겠지마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원수도 사랑한 겁니다. 바벨론에서 죄 지으란다고 죄는 안 지었습니다. 그건 안 되고. 죄 아닌 것은 목숨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그걸 내려 다 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학살하고 포로 잡아간 바벨론 속으로 미울 건데 하나님 때문에 미워하지 않고 느부갓네살 시키는 대로 일등 순종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친일파입니다. 다니엘은 한국 교계 기준으로 보면 친일파입니다. 이스라엘을 모조리 초토화를 시키고 전부 다 죽여 버리고 왕을 눈 빼고 개처럼 끌고 간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근데 다니엘은 원수의 나라 바벨론 원수의 대장 느부갓네살에게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죄 되는 것은 안 되고 변절입니까, 친일파가 됐습니까? 하나님이 보시면서 ‘원수의 나라의 원수지만은 하나님 때문에 느부갓네살 원수에게도 죄 되지 않는 것은 순종하는구나’ 겉으로는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하는데 안으로는 하나님 때문에 충성하는 걸 보고 바벨론을 다 맡겼습니다. 느부갓네살도 자리만 왕이지 속으로는 다니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애굽에 간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가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이렇습니다. 우리 중심은 내가 죄를 짓든 말든 무조건 나는 올라가고 남들은 전부 다 눌러 버려야 됩니다. 남들은 울어야 되고 나는 웃어야 되고. 100대 1 시험 치고 들어가는 공무원 시험에 남의 집 아이는 100명 떨어져서 울고 내 외동아들은 합격해야 좋은 것이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지켜볼 때 그 심보를 나 닮아서 이쁘다 그러시겠습니까? 10명 형제 중에 9명이 다 죽어 나가도 ‘나 하나 아버지 유산 다 받으니까 좋다.’ 그 아들놈을 부모 된 입장에서 ‘그놈 이쁘다, 실력 있다.’ 그러겠습니까? 얼마나 괘씸하겠습니까?

죄 되는 것은 부모 말도 못 듣습니다. 부부라도 안 됩니다. 죄 되는 것은 안 됩니다. 죄 되는 것 순종을 하면 부모가 망하고 부부가 망합니다. 그래서 죄 되는 것은 죄송하나 순종할 수 없고 죄 되지 않는 것은 부모의 말은 죽도록 충성입니다. 부모님 된 분들이야 기분 좋지요? 자녀들이 ‘죄 되지 않는 것은 부모의 말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그러면 부모 치고야 싫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목사한테 물어보지요. 교인들이 ‘죄 되지 않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하면 목사 치고 싫다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죄 되지 않는 것은 충성해라’ 다니엘을 바벨론 원수의 나라에 보내놓고 그렇게 길렀습니다. 요셉을 팔려간 애굽에서 그렇게 길렀습니다. 겉으로는 원수의 나라 도망가고 싶은 나라인데 하나님 때문에 충성하다가 ‘원수의 나라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때문에 충성하고 구별하고 순종하는구나.’ 겉으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충성하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하나님 때문에 충성하는 겁니다. 겉으로는 애굽의 바로 왕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하나님 때문에 충성하는 겁니다. 이걸 다 테스트하고 마지막에 ‘너는 원수의 나라 어디에 던져놔도 하나님 순종이지 인간에게 피동을 받지 않는구나!’ 아 사랑하는 부모한테야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원수한테 순종하기가 쉽습니까? 마음 있는 대로 다 해서, 싫지. 이스라엘을 초토화시키고 성전을 완전히 불 질러 버린 느부갓네살은 원수인데, 그 느부갓네살에게 충성하라 그러니 그게 어려운 거지. 인간적으로는 죽을 만큼 미운데, 노예로 팔려간 바로 왕이 미운데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까지 시험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다니엘이 가장 순종하기 싫은 사람, 원수의 나라, 이스라엘을 망친 느부갓네살이 원수인데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끝장을 보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래 다니엘 너는 느부갓네살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명령하면 원수에게라도 충성하는구나!’ 느부갓네살은 지한테 충성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가장 싫어하는 원수에게라도 죽도록 충성하는 걸 보니 ‘너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진짜구나!’ 느부갓네살 왕을 다니엘 부하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리는 느부갓네살이 왕이고 다니엘은 총리지만은 왕이 모를 때는 총리한테 물어봅니다. ‘어떻게 하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이 고민은 어떻게 하지?’ 누가 왕입니까? 왕이 물어보는 단 일명, 말만 떨어지면 왕이 무조건 순종하는 단 한 명이 다니엘이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도 그랬지요. 요셉은 노예로 왔습니다. 대국 제국의 바로 왕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아 그래. 저럴 때는 어떻게 하지? 응 그래.’ ‘아이 그냥 묻기도 싫다 나는 그냥 임금 자리만 놔두고 네 멋대로 다 하거라.’ 이름은 총리인데 왕 위의 왕이었습니다. 싫습니까? 시시합니까? 오늘 우리에게 다니엘처럼 오늘 우리에게 요셉처럼, 그렇게 너를 길러줄까? 못된 계모 밑에서 고생해 보라고 보내놨으면 통성기도 철야기도 하면서 계모 죽으라고 다 기도할 걸요. 느부갓네살 밑에 포로로 데려 갔다가는 저 느부갓네살 죽여 달라고 맨날 기도를 그리 했을 걸요. 이게 원수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 원수에게 죄를 더 지으라고 밀어주는 것 말고, 느부갓네살이 ‘기도하지 말라’ 느부갓네살, 다리오? 다리오가 ‘기도하지 말라’ 기도는 해야 됩니다. 죄 되는 건 안 됩니다. 죄 안 되는 것은 느부갓네살, 죄 안 되는 것은 다리오 왕.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순종했습니다.

공회는 한 40~50명 공부한 거고 요즘은 그런 공부가 좀 없었습니다. 옛날 남자가 막 부인들 쥐 박고 어머니를 쥐 박고 늘 그럴 때, 남자들은 교회 안 다니고 여반들만 교회 다닐 때 ‘죄 되지 않거든 남자한테 맞아 죽어도 순종해라’ 이게 공회 가르침입니다. 죄 되지 않으면. 저 여자는 나 시키면 뭐 그냥 죽어도 순종한다. 그런데 제사 섬기자 그러면 ‘날 죽여라 못 한다, 그건 안 된다.’ 주일날 나가서 ‘장사 좀 해라.’ ‘그건 굶어 죽여도 안 됩니다.’ 아니 다른 거는 죽도록 충성하는데 죄 되는 걸 시키면 ‘그거는 못 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합니다.’ 요즘이야 여반들이 사장이고 남반들이 다 종업원들인데 뭐 이런 얘기할 것도 없지요. 이제 반대로 말을 해야지.

아담의 선택이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입니까. 난 내 좋은 대로 살 겁니다.’ 나 중심. 그게 선악과를 먹은 겁니다. 선은 창세기 1장, 선은 좋은 겁니다. 악은 나쁜 겁니다. 선악의 정의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거는 좋은 거다. ‘예.’ 하나님이 이것은 나쁜 거다. ‘예.’ 5살짜리 아이한테 대로에서 놀면 차 밑에 들어간다, 안 된다. ‘예’ 해야 되겠습니까? 아니요. 아버님은 그리 생각합니까, 우리 5살짜리는 요즘 차 밑에 들어가는 것이 모험입니다. 그거 자랑입니까, 발전입니까, 아이슈타인 박사가 될 사람입니까, 콜롬버스 탐험할 애입니까, 초상 칠 애입니까.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어 아는 게 있고, 판단이 있고, 가치관이 있으면 되겠지마는 5살짜리가 ‘제 철학이 있습니다. 아동 철학. 유아의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4차선 대로에 노는 게 취미입니다.’ 그거는 아동을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죽이는 거지, 아동 학대지. 현재 이 나라의 아동학대가 아동 복지가 아동 복지로 가는지 아동학대로 가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선생님이 애들한테 사람 되라고 ‘너 숙제 안 해 오면 안 돼.’ 그랬다고 아이에게 눈을 부릅떴다. 정서 폭행이다, 폭행죄. 이게 나라입니까? 이게 세상입니까? 애들 싹수가 이게 될 싹수입니까? 제대로 기르려고 해도 어려운데 위에서 펄펄 끓는 물을 갖다 들이붓는데 그게 안 죽고 백이겠습니까? 옳은 것은 백 번을 말해도 한 마디 들을까 말까 그렇습니다. 나쁜 것은 안 가르쳐도 다 물고 와서 다 합니다. 어디 가서 배웠는지.

그래서 교육이란, 어떻게 이걸 옳은 대로 좀 가르쳐 볼까? 이 고민과 노력이 교육인데 공부하기 싫어? 안 하는 게 네 자유야. 나중에 직장은 누가 책임지지요? 제비 뽑아 들어가면 되지. 제비 뽑아들어 가는 것은 공정한 줄 알았는데 제비 뽑는 인간들이 보니까 저거 아들들은 전부 지금 다 해놨는데 요새 나오는 뉴스가 다 그거 아니던가요? 역사의 양심 말하는 사람, 저거 양심 지키는 사람 보셨습니까? 앞으로 큰소리치면 뒤로 문제가 더 많은 법이지. 통계가 그렇습니다. 사기꾼의 특색은 큰 소리를 칩니다. 학문을 거짓말을 구조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데 잘 모르시지요. 제가 그 학교 출신입니다. 서울 밑에 판교에 정보학교라는 데가 있습니다. 그 거짓말을 시키는 게 학교입니다. 거짓말 학문이 있습니다. 그 거짓말 가르치는 1번이 큰 소리로 말해라, 두 번 세 번 반복을 해라, 그러면 먹힌다. 그게 대한민국 정보 교육대의 거짓말 학문이 그렇습니다. 작은 거 말하면 의심한다, 세게 말을 해라, 한 번 말하면 헷갈린다, 두 번 세 번 끝까지 말을 해라. 사기꾼의 특색은 큰 소리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선보러 가 가지고, 여반들 ‘막 저하고 결혼만 하면 그냥 금방석을 앉혀 놓겠습니다.’ 그놈들이 좋은 여자는 다 데리고 갑니다. 따라가는 여자들 뒤꼭지에다 대고 속아도 싸고 당해도 싸지, 어떡합니까? 자유성이 있는데. 막 그냥 혓바닥으로 가지고 찰찰 챙겨넣으면 멀쩡한 여자들이 따라가는데 어떡하지요? 목숨을 걸고 여자를 지키고 벌어 먹일 남자는 ‘나 책임질 겁니까?’ ‘고민입니다.’ 양심이 있거든. 그때는 여자가 안 따라가는데 어떡합니까? 남자 편 드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첫 사람 아담입니다. 오늘의 아담은 누구라고요? 이게 문제입니다. 6천 년 전에 아담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는 해결이 됐습니다. 옛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믿고 나서 오늘 내 현실에 아담은 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대로 저는 제 마음대로입니다. 저 철학이 있고, 제 생각이 있고, 제 취향이 있고, 저희 집안에 족보가 있고, 저의 야망이 있고, 뭐 이 소리 저 소리 하는데 보니까 지도 잘 났습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있습니까? 제 현실은 제가 왕입니다. 저는 제가 중심입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잘났네? 끝까지 할 거야? 해봐.’ 택한 백성 천국 갈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무조건이지만은 절대적이지만은 이건 흔들리지 않지만은 내 마음, 내 생애, 내 생활, 나의 하루하루의 걸음은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좋게 타이릅니다. ‘하나님 중심이면 생명이다, 네 심보 그리 쓰면 그 심보는 천국 가지고 오지 못한다.’ 이런 심보, 저런 오기, 이런 감정, 이런 취미, 저런 장점, 단점, 별의별 것이 있는데 몇 가지나 챙겨서 천국 갈 때 가져갈 런지 이게 천국의 차이입니다.

16쪽, 아담의 선택입니다. ‘하나님 중심대로 살래? 선과 악은 하나님의 것이니 먹지 말아라, 네 걸로 삼지를 말아라.’ 선악과 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선, 악, 좋고 나쁜 것은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하나님이 좋고 나쁜 거를 결정합니다. ‘그래요? 저는 저대로 좋고 나쁜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하나님과 자기가 둘이 있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못 도와줍니다. 준 것은 그대로 있고 더 이상은 못 줍니다. 이게 타락한 오늘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결 공급선을 잘라버리는 겁니다. 아파트 30층에 사시는 분들 전기선 자르시고, 가스관 자르시고, 수도관 자르시고, 하수도관 자르시고, 예 다 자르고 살아보십시오. 하나님과의 연결이란 또 하나님과 끊어진다는 뜻은 바로 그런 겁니다.

18페이지입니다. 아담은 아담 좋은 대로 해보겠답니다. 아담 중심. 그래서 아담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없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에 바로 이어 아들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을 낳고 아우 아벨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직업은 죄 되지 않습니다. 농사의 직업과 목축 자체는 성경 전체적으로 죄 되는 게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은 신앙으로 보면 입장은 같은 입장입니다. 같다는 말은 둘 다 아담이 살아있는 아담 생전입니다. 아직까지 셋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아들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인 아벨 둘만의 문제입니다. 아담의 생전인데 가인과 아벨은 형제입니다. 그래서 입장이 같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인데 아버지가 같고 아버지가 살아 있고. 근데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보니까 가인은 제멋대로입니다. 자기 좋은 대로, 자기 좋은 대로. 아벨은 주님 위하여 주님 좋은 대로

창세기 4장 7절 봐 보시겠습니다. 가인이 제사가 거부되고 나니까 6절에서 화를 냈습니다. 분했습니다. 7절, 하나님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가인의 제사가 거부된 것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선은 무슨 뜻이라고요? 하나님 중심이 선입니다. 자기중심이 악입니다. 왜 하나님 중심을 선이라고 그러지요?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이면 좋다 그럽니다. 그래서 선. 나는 나 좋은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 좋아하는 게 있고 하나님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좋은 걸 하면 선,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1장을 다 적어놓고 하나님이 만들어놓고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는 것을 선이라고 그럽니다. 하늘을 만들어놓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땅을 만들어놓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랬는데 땅은 뭐라고 그럴까요? 우리 같으면. 누구는 하늘을 만들고 누구는 땅을 만들었냐고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 누구는 경복궁에 태어나서 왕이 되고, 나는 거지가 되고, 뭐냐?’ 안 그런 사람 있습니까? ‘왜 너는 해가 되고, 너는 달이 되고, 너는 별이 되고, 왜 나는 지렁이가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필요해서 좋아서 다 만들어 놓은 겁니다. 싫으면 우주 밖에 나가고. 우주 밖에 나가지를 못하니까 속으로 불만스럽습니다. 땅이 ‘저를 하늘 만들어 주시지 땅을 만들어 밟히게 했냐?’ 옛날 같으면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렇게 살았겠냐, 억울하다.’ 요즘 남자들은 ‘이런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가지고 이게 인간이냐’ 한 소리씩 다 합니다.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은 ‘넌 딱 남자로 태어나야 나한테 꼭 필요하겠다. 넌 누가 뭐라 하든지 딱 여자라야 나한테 좋겠다.’ 하나님은 하나님 좋은 대로 남자 여자 부자 뭐라도 다 만들어 놓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럽니다. 죄 짓기 전에는 만물이 합창을 하면서 맞습니다. 별은 별만큼, 해는 해만큼, 돌은 돌만큼, 하와는 하와대로 감사, 아담은 아담대로 감사인데 자기중심으로 바뀌고 나니까 아담은 ‘여자라고 저런 걸 만들어 가지고 말이지’ 하와는요? ‘저런 등신 같은 걸 만들어가지고’ 태양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늘의 계명성으로 만들어주지’ 달은? 태양만 보면 매일 2등급이고 늘 열등감에 못 견딥니다. 선악과를 먹고 나니까 전부 다 자기중심이 돼가지고 자기를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니까 10명이 모이면 10 소리, 100명이 모이면 100 소리. 고등학교 때 사회 과목을 배워본 분들 만인의 다 같이,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만 명이 만 명을 상대로 만 가지 전쟁을 벌이는 게 세상이다. 보기는 바로 봤습니다. 원인은 몰랐습니다. 원인은 어디지요? 선악과입니다.

그 아담이 살아있는데 아담 생전에 아담의 아들 둘이 똑같은 입장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보니까 가인은 자기 좋은 대로 아벨은 주님 위하여 주님 좋은 대로 그 말이 어디 있지요, 4장에? 7절에 있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는데 가인이 분하여 할 때 하나님께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아 가인의 제사는 악이었구나, 아벨의 제사는 선이었구나.’ 무엇이 선이지요?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교인들에게 좋겠느냐, 애들에게 좋겠느냐, 여자한테 좋겠느냐, 돈 많이 낼 부자한테 좋겠느냐, 하나님은 뭐라고 그러겠느냐? 구약의 제사 신약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제사를 좋아하시겠느냐, 여기에 맞춘 것이 선이고. ‘아이 주는 대로 먹지 뭐 이거 달라 저거 달라 그래’ 두루미를 불러다가 쟁반에 스프를 내주면서 ‘맛있는 것 드십시오.’ 또 여우를 불러다가 두루미는 또 뭐라 그랬다고요? 호리 꽃병에다 미꾸라지를 넣어놓고 ‘많이 드시지요.’ 안 믿는 사람도 자기중심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나는 대접을 하려고 있는 힘을 다 했습니다.’ 네 마음 말고. 너 좋은 대로 끼어 맞췄지 않냐. 남자 좋은 대로 살면 남자들이야 다 좋아하겠지요. 여자들은 다 싫어하겠지. 요즘 여자 살판이 나니까 남자들이 죽겠다고 난리겠지. 옛날에는 뭐 같고 죄를 지어도 어른 말이면 아이들이 다 따라갔습니다. 지금은 노인은 청년 청년은 소년 소년은 애 말을 들어야 그게 발전을 한답니다. 비겁하게, 조금만 계산해보면 절대 그러지 않지. 20살 때는 20이 정권을 잡아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10살은 내 말 듣고 50은 제 말 들으십시오. 그 20살짜리가 50 되면 뭐라 그러지요, 이번에는? 50의 기준을 맞춰서 또 다 끼어 맞춥니다. 그런 걸 자기중심이라 그럽니다. 끝이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인은 ‘드리는 대로 받아 가십시오.’ 일주일 동안 돈 벌고 토요일 날 여행 갔다가 주일날 부부가 교회 가는데 10시 예배를 봐요, 10시에? 어? 학교는 8시에 가고 학원은 7시에 가고 출장을 가라면 새벽 3시도 가지만은 교회를 갖다가 10시에 오라니 이런 놈의 교회가, 11시도 바쁜데. 저는 미국에 가서 처음 다니는 교회 주일 오전 예배가 오후 2시 반인가 3시입니다. 일주일 돈 벌고 주말에 놀 거 다 놀고 주일 아침에 10시, 11시, 12시까지 온 가족이 자다가 대충 씻고 먹고 그 다음 이제 교회 오려면 점심시간이 걸리니까 ‘1시에 예배를 봐? 이거 뭐 이단이야, 사이비야? 2시에 예배를 봐야 좋은 교회지.’ 세상에 살고 세상 즐기고 인간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다 하고 ‘남은 찌끄러기 이거 드십시오.’ ‘하나님은 이거 받고 복이나 주십시오.’ 자기한테 그러면 전부 화낼 거면서. 하나님은 찌끄러기 찌그러기 찌끄러기. 요즘은 그런 말도 안 나오던데. 한 30년 전에는 설교 때는 뭐 예만 들면 어 친정 부모가 오니까 뭔 10만 원짜리 A급 식사, 시부모가 오니까 뭐 3천 원짜리 국수를 사줬다나 뭐 그런 얘기들이 흔한 적이 있었습니다. 직장 갈 때는 학교 갈 때는 미팅할 때는 친구 만날 때는 제일 좋은 시간, 제일 좋은 회사, 제일 좋은 거 정성스럽게 해 가지고 나가고. 교회? 슬리퍼 끌고 가지, 반바지 입고 가지. 그 좀 공공장소인데 그래도, 아이 이거 율법주의 아니야? 이거, 율법주의. 그렇게 강제를 하면 요새 교회를 다니는가,

하나님까지 머슴으로 종놈으로 삼으려고. 교회 의자 전부 극장식 의자 아닙니까? 사장님들 아이고 예배당에 오셨으니 이 많은 사장님 앞에, 연보할 건데, 극장식으로 앉혀놓고 무대에서 연극 잘하면 돈 많이 나오고? 목사가 하나님이란 말이 아니라 목사든 교인이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고방식 방법이 이 따위로 되어 가지고 사돈집에서 그러고 있겠냐 인간들아. 여자 하나 데리고 오려면 요새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데. 일주일 돈 버는 데 제일 귀한 시간, 있는 노력, 다 갖다 바치고. 남는 거 촐촐 추려 주말에 온갖 데 다 돌아 댕기고. 피곤해서 넘어서 어떻게 교회를 갖다가 아침을 10시를 가? 학교는 8시 가면서. 아 학교 8시 가지면 교회 10시 너무 바쁜 거 아닌가? 우리 공회 교회들은 전부 다 10시, 조례교회만 아직까지 10시 반입니까? 동천 10시지요? 10시. 조례만 아직까지 10시 반. 조례교인들 죄송합니다. 조례 교인들은 너무 멀리서 오느라고 아마 그랬을 겁니다. 차 타고 1시간, 2시간 있는데서 까지 얼마나 멀리 오기 때문에 아마 안전 때문에 10시 반이지 마음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믿고, 공회교회 주일 오전 예배 10시입니다. ‘너희 직장 10시에 가 봐라.’ 아버지 사장도 아들놈한테 사장 안 물려줄 거다 망할까 봐서, 될 놈한테 물려주지. 삼성 이건희 회장 몇 째인지 아십니까? 큰형 둘째 형 다 제껴 버리고 동생한테 줬습니다. 위에 것들 딱 보니까 물려주면 다 해 먹겠습니다. 막내라도 될 거한테 주지. 세상 도둑놈 재벌도 될 사람보고 주지 안 될 사람한테 안 줍니다. 도둑놈도 게으른 도둑놈은 도둑질도 못합니다. 거지도 게으른 것들은 못 얻어 먹습니다. 부지런한 거지들은 곧 자영업으로 나옵니다. 부지런한 자영업은 중소기업 올라갑니다. 게으른 것은 나라 망쳐도 다 망합니다.

회사야 7시도 가지만은 교회는 11시도 너무 바쁜 거 아니야? 그래서 이제 교회 주일 오전 예배를 저 주일날 돈 벌러 갈 사람 아침 7시에 첫 예배 보시고, 일정이 바빠서 차리고 나가는데 9시 좋은 분들은 2부 예배 줄 테니까 2부 예배 오시고, 공회 안에서만 큰 분들은 뭔 소리인지 모르시지요? 다른 교회 다녔던 분들한테 여쭤보면 좀 알 겁니다. 3부에는 11시, 아침에 일어나서 3시간 성경 보다가 오느라고 늦겠지. 아이고 그래만 되었으면 야 하나님이 좋아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을 겁니다. 토요일 나갔다가 놀다가 1박 2일 하고 들어온 사람은 오후 점심 먹고 외식하고 이제 오후 2시, 3시에 4부 예배 보고 5부 예배 보고 이래서 1부 예배 보는 교회는 시시한 교회, 케케묵은 교회, 뭔 놈의 교회가 저렇게 후진적일까? 저렇게 발전이 없을까? 저러니 너 같은 것들이나 가지. 우리 교회는 2부, 우리 교회는 신식이라 3부, 우리 교회는 세계 최고 교회라 7부. ‘뷔페식으로 아무거나 골라 드십시오.’ 네가 학교 같으면 그러겠냐, 네가 직장 같으면 그러겠냐, 네가 사장이면 돈 주면서 종업원들한테 다 대고 ‘마음대로 하세요, 그냥 놀다 가십시오.’ 그러겠나. 하나님 알기를 갖다가 그냥 발바닥에 발톱보다 발톱에 때보다 못 여기면서, 이게 좋은 교회입니다. 네 중심으로 보면 그렇겠지. 네가 아주 하나님을 새로 만들어 가지고 차고 댕기거라. 그건 미신이다.

적어도 종교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종교란, 꼭대기를 가르친다 그 뜻입니다. 종교라는 뜻이 그렇습니다. 제일 꼭대기를 가르친다. 꼭대기 ‘종’ 가르칠 ‘교’자입니다. 잘 믿지는 못하지만은 그래도 교회 올 때는 좀 조심하겠습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얼마나 고와요. 전부 다 똑같이 최고를 원하는 거 아닙니다. 어린 사람 어리게, 나이 많은 사람 나이 많은, 불편한 사람 불편한 대로, 술 못 끊은 사람 술 한 잔 하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포도주 한 잔 하면 하나님이 천 벌 주실 걸요. 여기 계신 분들은 뭐 대부분 포도주 한 잔 정도야 하나님께서 건강에 괜찮다 노아도 먹었다 그럴 겁니다, 아마. 포도주 독에 짬뽕 들어 가 가지고 쩌려서 그냥 네 발로 기고 다니니까 문제가 되지. 노아 포도주 먹고 죄 됩니까? 한 3분의 1 완전히 다 멸망의 족속 만들었지.

가인이란 말은 ‘제가 하나님을 섬길 건데 내식으로 받으십시오.’ 21세기는 교인이 주는 대로 하나님이 받아가는 겁니다. 20세기는 하나님이 원하는 걸 갖다 드렸다면서 21세기는 교인이 주는 걸 하나님은 받아가는 겁니다. 타 가는 겁니다. 교인이 하나님 되고 하나님은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 공부도 소파식이 되면 피부 면적이 의자에 많이 접하면 학습에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돈이 있어도 학습에 좋도록 의자를 어느 정도 조절합니다. 예배당은 농담이나 하시라고 푸근하게 극장식을 만들어서 그냥 잠 오기 좋을 만큼 그렇게 한 교회가 더 좋은 교회랍니다. 그 놈의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나쁜 교회인지 교회 이름을 찍어 말하기는 곤란하지만은 학교라고 가는데 수학 필요 없다, 영어 필요 없다, 화학 뭐 할라고 그런 거 하냐? 놀고 먹어라. 그럼 놀이터를 만들어야지, 학교를 떼버리고, 말로라도 학교는 가르쳐야 학교지 가르치려면 모르는 걸 가르쳐야 학교지. 그럼 교회는 다 아냐? 공회 목사 100독을 해야 성경 아는데 100독 해 봐야 성경 100분의 1도 모릅니다. 단연코, 10년 전보다 지금 아는 게 제가 훨씬 많습니다. 하도 많고 모르는 게 많아 그렇습니다. 지금도 배웁니다. 이번에도 지금 설교하면서 또 배웁니다. 하나님을 오라 가라 주는 대로 드시라. 여우가 두루미를 갖다 초대해놓고 접시에 수프를 ‘드시라’ 그게 드시랍니까? 조롱이지. 그러니 여우는 불러다가 또 호리병에 다 대고 미꾸라지 넣고 ‘생선 드십시오.’ ‘하나님 내가 원하는 대로 받아 가십시오.’ 하나님이 빚쟁입니까, 거지입니까? 이만하면 3계명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했는데 이거는 망령 이상 아닙니까? 교인 욕하는 거 아닙니다. 다른 교단 욕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를 돌아보는 겁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어떤 식으로 믿는 것이 옳다고 봤느냐? 잘 믿지는 못해도 교회만은 신앙이라는 것은 잘 믿지는 못해도 그래도 교회라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은 좀 달라야 된다 이게 아벨의 제사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주님이 뭘 원하시는고? 주님이 좋은 대로. 가인과 아벨은 누가 두목이냐, 누가 머리냐, 누구 멋 대로냐? 하나님 중심 선. 인간 중심 악입니다. 이거는 생사 문제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가인과 아벨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의 문제입니다. 구약으로 말하면 제사 예배 드리는 방법, 신약으로 말하면 어떻게 믿는 방법이 옳을 것인가. 요즘 시내는 이리 안 믿습니다. 요즘 시내는 전부 교통사고 나서 다 죽었습니다. 같이 죽을 건가요? 좋은 거 따라가지. 요즘 10대들 교회 안 다닙니다. 요즘 애들한테 설교 해야 듣습니까? 그럼 놀이터를 해야지, 청소년 복지를 해야지. 목사도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죄송합니다. 첫 믿는 사람도 몰라서 죄송합니다. 또 잘 믿어보겠습니다. 결심해 봐야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말이라도 이래 해야 입이 이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못 나게 만들어놨습니까? 하나님이 좁게 못나게 만들어 놨으니까 못 난 것 적은 것은 탓하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딱 한 달란트만 원하십니다. 말하자면 목사는 다섯 달란트 아닙니까? 다섯 배입니다. 앞자리에 있는 분들은 두 달란트 받았지 않습니까? 여기 어떤 데인지 몰라서 처음 와 본 사람은 한 달란트 받았으니 듣고 계시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기특하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오늘의 예배입니다. 오늘의 예배. 달리 말하면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근본 방향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나? 종교를 갖다가 폐업을 해야 좋아하겠지. 요즘 사람들은 그럼 종교란 말을 떼버려야지. ‘하나님은 뭘 좋아하실까, 근데 나는 너무 이 부족해서 어떡하나?’ 이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로 받으십니다. 아벨은 목축하는 사람입니다. 왜 목축했을까요? 제사 드리는데 유리하니까. 벌어 먹고 사는 데는 목축은 유랑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렵고 미개합니다. 농사는 역사적으로 목축보다 발달을 해야 짓는 게 농사입니다. 세상 사는 데야 농사가 안정되지요, 예측 가능하지요, 저축이 있지요, 대비가 있지요, 그 다음 자본을 축적해 나갈 수 있지요,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지요. 목축은 옛날 목축은 그냥 양 데리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풀 있는 대로. 지금도 저 극지방 지금도 저 몽고 같은 데는 소떼 양떼 따라 양떼 따라 사방천지 돌아 댕긴다 그러지 않습니까?

세상 사는 데는 불리하나 하나님 섬기는 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할까? 직장을 잡아도 뭐 어지간하면 요즘은 먹고 사니까 주일 지키고 신앙생활 하는데 어떤 것이 더 유리할까? 그러다 보면 매출이 내려가겠지. 예배 신앙 다 3순위 4순위로 제쳐놓고 어디가 제일 돈을 주는고? 돈 순간적으로 제일 많이 버는 거 연예 아닌가요? 스포츠 아닌가요? 먹고 놀고 쓰는 것은 전부 다 주일입니다. 스포츠가 죄는 아닙니다. 그건 죄가 아닌데 신앙생활을 하려니 주말을 이용하지, 주말에 경기 있지.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그거 참 불리하구나.’ ‘직업의 귀천은 없으나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어떤 직장이 더 유리할까?’ 그러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신앙생활을 좀 하는 교단들은 그 매인 직장보다는 대개 다 노가다 아니면 장사입니다. 한국교회에 잘 믿는다고 명품이라고 소문난 교단은 고신인데 고신의 뜻이 인물이 없는 데입니다. 인물이 있으려면 대기업 해야 되고 학자 해야 되고 정치가를 해야 되는데 그건 주일을 못 지킵니다. 그 고신은 아야 합동 통합 이런 데하고 비교를 해보면 고신 스스로 지금 40년, 6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고신은 인물이 없다. 인물 없고 신앙이 있으면 못 쓰냐, 못 났냐, 모자라냐. 시작할 때는 그들은 이게 자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부족하다, 하나님 앞에 진리로는 유리하다. 이 자존심의 고신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들었었습니다.

근데 서울에 본부를 가진 총회 뭐 통합 이런 데는 자꾸 세상의 인물들이 나오니까 결국 고신도 신학교라도 서울로 가야 서울 사람을 잡고 우리도 발전하지 않을까? 서울까지 갈려다가 서울까지 못 간 게 천안입니다. 우리는 흉내도 못 내서 원래 시골 쥐야 시골 사는 게 마음 편하다고 원래 우리는 부산에 터 잡고 살다가 부산에도 없어서 지금 신풍에 터 잡고 살고 앉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이 바뀌어가지고 시골이 또 알아주는 또 명품 되어 가고 앉았습니다. 그랬던지 말았던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 결혼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 직장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에 전공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가는 데는 가정환경이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을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두고는 예배 시간이 어느 정도며 내용은 어떻게 되는 게 좋은가? 여기다 대고 전부 다 맞춘 것이 아벨의 제사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성경에 보니까 선하다 했습니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아벨의 제사는 선, 하나님 보실 때 ‘좋다.’ 가인의 제사를 물리치며 네 제사는 나쁘네. 나빠요? 나빠. 목축을 하는 목축을 하는 유목민은 역사적으로 미개합니다. 양 따라다니는 사슴 따라다니는 목축은 지금까지도 미개합니다. 농경이라는 것은 1년에 내년까지를 계산해야 되기 때문에 머리를 써야 됩니다. 저장이 있어야 되고 방법이 있어야 됩니다. 농법이 발달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전공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직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집은 교회와 멀수록 당번 안 나가도 되겠지, 예배당 주변에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교회에서 부르겠지, 안 불러도 바늘방석이겠지. 아야 멀리 떨어져 버려야 아이고 갈 건데 멀어서 못 갔습니다. 이렇게 애통 할 수가 말로 농사 다 하고 하나님께서 네놈 속을 다 알겠다 그러겠는데, 인간도 속을 다 아는데 하나님이 모를까 봐.

역사적으로 한국의 교회의 사택은 다 예배당 안에 있었습니다. 교인들이야 좋지. 언제든지 상담하고 언제든지 주의 종들이 교회에서 기도할 테니까. 70년대부터 돈이 솔솔 많아지니까 훌륭한 교회, 잘 나가는 교회부터 예배당에서 사택이 점점점 멀어지다가 공회도 백 목사님 돌아가실 때쯤 되니까 서울에 제일 좋은 교회는 목동까지 빠르면 30분 교통 정책 걸리면 한 시간 되는데 사택을 옮겨 놨습니다. 그래야 교회 자주 못 오지, 교인 상담 아예 못하지. 네 가족들하고 사는 데는 그게 좋을 거다. 하나님 섬기는 데는 하나님이 ‘못 됐다’ 그럴 거다. 목회자 그래놓고 교인들은 양심이 편할까요? 예배당에서 멀리 멀리 멀리 떨어진 데 집 얻어 놔야 교회에서 당번 오라 뭐 오라 아야 소리를 안 하지, 말로 인사 다 하지. 예배당 옆에 살다가는 시도 때도 없이 돈도 못 받고 사찰 노릇하게. 이렇게 하나씩 따지고 들어가면 저도 죄송 여러분들도 죄송 다 고개를 못 들면 또 너무 침체될까 봐 오늘 저녁 이 정도 하고, 항상 몇 길이라고요? 두 길 다 가도 됩니까? 오직 한 길만 내셨습니다. 선악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됩니다. 먹은 대신에 먹은 값은 받아야 됩니다.

가인, ‘내가 주는 대로 제사 받지 뭐 이거 달라 저거 달라 그래. 아 내가 오늘 그냥 예배 드리면 되지 왜 예배 시간 정해놓고 거기 맞추라 그래, 의자도 딱딱한데, 설교는 길고.’ 아이 찬송도 요즘 젊은 사람들 막 그냥 신나고 별의별 찬송이 다 있는데 200년 된 찬송 300년 된 찬송 지금 또 반복하고 앉았으니까 ‘이거 이단 아니야? 이거 사이비 아니야?’ 근데 왜 국가는 오래된 영국 같은 국가를 부러워하지요? 왜 로마 2천년 역사는 왜 부러워하지요? 좋은 게 뭔지는 다 알면서. 바꿔서 좋은 것은 언제든지 바꾸되, 바꿔서 더 나빠지는 것은 안 하는 게 본능 아닙니까? 그리고 애매할 때는 좀 신중한 게 좋지 않습니까? 유행가도 50년 전에 유행가는 요즘 복음성가보다 더 은혜로울 정도입니다. 유행가도 100년 전에 유행가는 철학이 담겼고 종교가 담기고 신앙이 담긴 정도입니다. 요즘에 한 잔 먹고 마약에 그냥 입이 그냥 이러는데 저거 지금 마약 검사 하면서 나오겠는데 싶을 만큼 이게 이제 유행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렇지 않냐. 코로나 다 걸리면 코로나 걸릴 겁니까? 교통사고 다 당하면 따라 당할 겁니까? 좋은 거는 따라가고 나쁜 건 못 따라가는 거지.

가인과 아벨 문제는 신앙의 방법, 방법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는 누가 주인이냐, 누가 중심이냐. 이게 잘못되면 연결이 끊어지고 생사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리기는 붙들렸는데 예배와 신앙의 방향이 어떤 식이 돼야 되는가,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할까? 약한 거는 상관이 없습니다, 적은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한 달란트 줬으니 하나면 됩니다. 두 달란트 받았으면 두 달란트 하면 됩니다. 저처럼 목회자라 다섯 달란트 받았으면 당연히 다섯 달란트 해야 됩니다. 받기는 한 달란트 받았는데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흉내 내면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연보한다고 약속했다가 둘 다 하루에 다 죽었습니다. 무리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은 자세는 주님 좋아하는 것이 뭘까? 적어도 이거는 신앙의 기본이지 않겠습니까? 근데 이 신앙의 가장 기본 되는 말을 했다가는 요즘 그런 교회 안 갑니다. 단 번에 나옵니다. 요즘도 그런 교회가 있습니까? 물어봅니다. 아주 박물관 되겠습니다. 그럴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이 방식이 50년 전, 100년 전에는 다 모든 교파들이 기본적으로 다 이렇게 신앙생활 했습니다. 근데 하나 떠나지, 둘 떠나지, 셋 떠나지, 넷 떠나지, 가을이 되어 다 떠나고 나니까 이제 철새들 다 떠나고 나니까 텃새 하나 남았다 할 만큼 그렇습니다. 그래도 옳은 것은 그대로, 하나님이 복 주는 방법은 그대로, 그대로.

두 번째 시간 진도는 못 나갔습니다. 교재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중심, 이거는 쉬운 겁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자세는 나 좋은 식으로 받을 겁니까? 하나님이 뭘 기뻐하실까, 말로라도 생각이라도 그리 되어야 되겠습니까? 아주 쉬운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저녁이 되면 산이 굉장히 추워집니다. 전기장판 없는 분들, 목회자들에게 말씀하시면 전기장판 충분하니까 전기를 한목에 갑자기 그 높여버리면 다운이 될 수 있으니까 서서히 올리시고 그 이불, 겨울용 이불로 따뜻하게 하시고 걱정되시는 분은 덕유산 여기가 해발 700m입니다. 건강으로 버텨서는 못 버티는 추위니까 모두들 따뜻하게 주무시고, 새벽 4시 30분 예배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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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22.05.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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