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후22.5.2 창2:17 ①집회 5년 요약 ②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③나는 오늘의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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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22.5.2 창2:17 ①집회 5년 요약 ②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③나는 오늘의 아담

서기 1 364 2022.05.0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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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khr)

*주제: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①항상
-6천년 첫사람 아담부터
-오늘날 아담인 나에게까지
-매 순간

②두 길
-모든 중생된 택자에게는
-항상 살 길 복된 길만이 아니라, 죽을 길 사망의 길을 양자 제시하여
-자유성을 가지고 자기 선택케 하셨으니

③오직
-첫 사람 아담부터 선택과 결과
-그 성공과 실패를 성경을 통해 깨닫고
-하나님의 목적으로 기르기 위한 완전자의 절대 섭리를 바르게 체감할 때

④한 길
-다른 길로 가라도 옆에서 아무리 떠밀어도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길로 갈래야 갈 수가 없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유일한 길
-이 단일 불변 소망의 길을 배우기 위하여
-모인 것이 이번 22년 5월 집회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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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2 월후 (집회1)

제목 : ①집회 5년 요약 ②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③나는 오늘의 아담

찬송 : 77장 (어지러운 세상 중에)

본문 : 창세기 2장 17절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복잡한 세상, 세상을 향하여 바쁜 세상, 말세를 향하여 우리에게 펼쳐 주시고 복잡한 지난 2년의 어려움을 깨끗하게 정리 하시며 영원전 목적을 정하신 예정을 따라 금번에도 마련하신 귀한 기회, 하늘도 땅도 자연도 만물도 우리의 생활도 5월의 집회로 소망을 가지고 모이며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자연과 세상을 볼 때마다 볼 수없는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보는 이 집회 되고 평소에 저희들 되도록, 사활의 대속으로 중생을 주시고 진리의 길에 성령의 인도까지 주시니, 만사를 감사하며 지난날의 감사와 함께 또 앞으로 각오할 일을 금번 준비한 말씀으로 주님은 앞에서 인도하시고 우리는 한 말씀씩 따라가는 이 시간 되도록, 어려도 연로한 종들이라도 많은 세월 주님을 향하여 헌신을 했을지라도 다 함께 겸손히 주의 말씀 자기 속을 들여다 보고 생각하나 마음 하나 고쳐 나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고, 부족한 우리의 정성을 보시고 마음 문을 열어 변화의 역사로 천하를 맞서며 주님과 동행하는 저들 되도록 인도 해 주옵소서. 5월의 집회를 기억하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되, 재독으로 함께하는 곳에 더욱 크신 은혜로 동행하시고 더욱 부족하여 오늘의 걸어갈 길을 찾는 이 자리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오가는 길 산속의 모든 안전 위험 주권 가운데 은혜 되도록만 인도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세상을 처음 만들었던 에덴동산, 죄 짓기 전에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만 금지하고 하나만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그 말은 선악과를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따라 하십시다.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이번 집회의 주제를 항상 두 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는 길, 먹지 않고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두 길이 주어졌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매일매일 생활 속에 좌냐, 우냐,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나님이 금하는데도 갈래, 말씀 따라 순종 할래, 항상 두 길을 주십니다. 믿는 우리에게만 두 길입니다. 안 믿는 사람의 두 길은 항상 사망 안에 두 길, 세 길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만 항상 두 길을 주십니다. 중생된 우리에게만.

교재를 3페이지로 넘겨 서문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또 성경을 읽을 때도 늘 역사를 잠깐 살펴가며 말씀을 집중하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공회 집회는 60여년 전 백영희 목사님이 30년 정도 인도하시고 가셨고 가신 이후 1989년부터 약 30년간 그 설교가 너무 어렵고 너무 귀하여 우리는 늘 복습을 했습니다. 복습을 더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겨서 5년 전, 2018년부터는 오늘에 필요한 말씀을 살피고 있습니다. 30년 복습을 하다니, ‘아 머리가 얼마나 나빠서 30년간 지나간 것을 들여다 봤을까’ 기초가 튼튼하고 과거를 제대로 살펴보면 앞을 향하여 나아갈 때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복습이 잘 되면 학습은 굉장해지는 법입니다. 그냥 무식하고 몰라서 복습한 것이 아닙니다.

앞줄의 학생들 연필 들었습니까? 읽을 때 특별히 생각나는 부분은 줄을 좀 그어 두시면 좋습니다. 문제는 설교를 잘하고 은혜를 크게 끼치는 시대의 종도 있고 그냥 저희처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런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같은 이런 경우를 ‘강단이 부족하다’ 그럽니다. 강단이 부족하면 교인들이 집중을 더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더해 버리면, 오늘의 필요한 은혜와 말씀은 하나님이 똑같이 주십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강하게 끌면 따라가면 되고 지도가 부족할 때는 한 교인 교인에게 ‘너 집중해라, 너 기도 더 해라’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산해 보면 손해가 없습니다. 중간입니다.

금번에 마련하고 준비한 이 교재는 따라 합시다. ‘노아 때와 같다.’ 언제가 노아 때와 같다고요? 오늘. 오늘이 노아 때와 같습니다. 노아 때란 말세입니다. 노아 때도 말세고 오늘도 말세입니다. 모든 상황이 예사롭지는 않습니다. 심각합니다. 아이 뭐 좋은 날 2년 코로나에 막혔다가 완전히 풀린 5월의 첫 주, 갈 때 많고 먹을 것 많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 이 덕유산 산속까지 와 가지고 그 뭐 말세라 극심한 현실이라 이런 복잡한 말을 하는가, 심각한 세상입니다.

지금 저를 대학 병원 가서 엑스레이로 찍어 보면 의사선생님들이 ‘여기저기 문제가 많겠는데요’ 라고 할 겁니다. 스무 살은 건강해서 대학병원 종합 검진을 다 넣어도 ‘멀쩡합니다.’ 그럴 겁니다. 그런데 멀쩡한 스무 살 안을 들여다보면 조심 안 하면 큰일 나겠는데, 요즘에는 스물에도 암이 걸립니다. 건강해도 조심해야 됩니다. 오늘은 심각한 때입니다. 많이 산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보냈으나 어린 사람들 여기 있는 청년들은 살 날이 많아야 되는데, 세상이 좋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살 세상이 심각하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주선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면 해결이 됩니까?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참석한 우리 학생들 어려워도 여러분들의 살 날, 앞날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천하가 다 무너져도 살 길을 인도 해 주실 겁니다.

‘노아 때와 같다’ 하신 말세 상황이 심각한 오늘입니다. 모든 면으로 세상조차도 이렇게까지 좋을 줄 세상도 모르고 발전을 해 왔습니다. 기대 하지도 못 한 세상이 펼쳐졌는데 너무 발전하고 너무 좋아지다 보니까 세상까지도 ‘아 이거 이래서 되겠나’ 할 만큼 위험한 일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눈이 밝은 사람은 ‘아 이 좋은 것이 재앙이 아닌가’ 세상도 스스로 오늘을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데, 우선 좋으니까 즐기기는 즐깁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상 왜 이렇게 만들으셨는지, 금번 창세기 2장, 3장, 4장의 말씀으로 살펴 영육의 넘치게 좋게 주신 세상 속의 복된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이번 집회 교재의 방향입니다.

제일 밑에 줄입니다. 예전에는 불편했습니다. 오늘은 만사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만을 정말로 바라보는 교인이라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편리하거나 어려웠을 때도 늘 우리에게는 현실뿐입니다. 따라 하십시다. ‘현실 인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고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떤 현실이든지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 속에서 말씀과 천국 소망에만 매진하면 이 짙어져 가는 세상 마지막이 우리에게는 더 보배가 될 것이라서 오늘 세상을 살피며 오늘의 필요한 자세를 살피기로 했습니다.

5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금번에는 크게 세 가지를 살핍니다. 항상 두 길인데 인류 초기에 선악과를 먹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흘러 왔는가 잠깐 살핍니다. 그 중에서 우리 다 함께 기억할 이름 ‘가인.’ 아벨이 되고 싶은데 아벨이 되고 싶거든 가인을 기억해야 됩니다. 대낮이 얼마나 좋은지 알려면 밤을 겪어봐야 낮이 고마운 것을 알게 됩니다. 다 건강하니까 오늘 집회까지 오셨지 않습니까, 이 건강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싶거든 병원 가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아 봐야 ‘그 참 건강이 좋구나!’ 깨닫습니다.

인류초기의 역사 중에 그동안 잘 공부를 하지 않았던 가인을 공부합니다. 가인의 후손들. 가인과 가인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던가? 사람이 죄는 지을 수 있는데 죄를 짓고 죄를 발전시키고 죄악으로 달려가면 결국은 홍수 심판으로 하나님이 청소를 하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신앙이 없고 아무리 사람이 막가도 하나님이 천벌을 내려 홍수 심판으로 쓸어 버리는 데까지는 나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걸어가게 된 가인의 후손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 가인의 후손들은 어떤 길을 걸어갔던가? 3부인데, 성 쌓기를 좋아했습니다. 축성이라 그럽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도시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도시 만들기. 대부분 도시 사시지요? 도심이 얼마나 좋은 줄 아시지요? 몰려 들지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여 들면 모여 드는 만큼 하나님은 줄어 들고 하나님은 희미해지고 인간만 복작복작복작 모여져서 발전을 하다 보면 성 쌓기가 되는데, 그리되면 산업이 발전합니다. 먹고 사는 산업이 발전하면 놀고 즐기는 문화 예술이 발전을 합니다. 그때쯤 되면 정밀가공 기술까지 더 해지면서 그곳이 바로 생지옥이 되어버립니다. 노아 홍수 때도 그리 되었다가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정리했고, 오늘은 말씀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를 항상 두 길인데 오직 한 길로 오늘의 어려움도 벗어나고 복된 길을 찾아 가고 싶어 이 주제를 삼았습니다.

6페이지 넘어 옵니다. 이번 금번 집회까지 오기 위해서 지난 몇 번의 집회를 잠깐 이어 연결합니다. 한 줄이 한 번의 집회의 주제의 제목입니다. 2018년, 5년 전에 5월 집회에 창세기 1장, 하나님이 천지를 처음 만든 1장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도 신앙으로 새 출발 할 때마다 창세기 1장처럼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1번, 제일 오른쪽에 빈 곳에 새 출발이라고 적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매일 새 출발, 결혼의 새 출발, 학교 1학년 입학하면 새 출발, 취직하면 새 출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 하실 때 군데군데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새것을 주실 때 어떻게 주시느냐, 알고 받으면 복입니다.

그 다음 2018년 8월 집회 때는 성막 공부를 했습니다. 출발은 잘했는데 출발 만 잘 하면 다 좋은가, 하나님 모시고 가야지. 이게 성막 공부라, 성막 공부는 ‘하나님 동행’, 하나님 동행이라고 적어 볼까요, 학생들? 모든 새 출발은 1번, 하나님 모시고 다녀야 되지 아무리 좋은 출발이라도 하나님 떼어 놓고 가면 큰일 납니다. 성막은 하나님 동행.

아 하나님 모셨으면 되느냐? 중생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니 다 됐는데 하나님이 끌고 가니까 끌려 다니느냐? ‘아이 또 주일이네’ 끌려가고, ‘아 또 밤 예배네’ 끌려가고, 뭔 또 이번에는 또 5월 집회라 또 산속까지 끌려가고.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 모신 동행이 생명인데 이 큰 복을 ‘참 귀하다’ 귀한 마음으로 원하고 원하는 자유성, 자유성이라고 3번을 적어 보실까요? 자유성. ‘넌 교회를 궁금해서 다니느냐’ 굉장히 좋은 신앙입니다. ‘좋아서 다니느냐’ 훌륭한 신앙입니다. ‘뭐 그냥 부모님 때문에 끌려 다니느냐’ 안 가는 것 보다는 낫지만은 끌려서 다니는 신앙은 종의 신앙이라 그렇습니다. 조상 때부터 노예들, 머슴들, 종으로 내려온 집안의 특징은 뭐든지 시키니까 합니다, 내 것이 아니니까. 가난하고 못 나도 양반 사대부 왕족 귀족이 조상인 집의 아이들은 못 나도 나 잘난 대로, 내가 하고 싶어야 하는 거지, 하기 싫은데 끌려 다니는 것은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출발의 기회, 하나님 모시고 동행하면 생명이고 복인데 이 좋은 기회를 끌려 다닐래, 좋아서 다닐래? 원하고 원함으로 하나님 동행하는 사람이 되라. 생활의 자세를 출애굽기 21장 구약의 여러 가지 생활 속에서 살펴 봤습니다.

3번의 굵은 글씨 지우고 자세라고 바꿔 주십시오. 신앙은 자유성이 중요합니다. 모든 새 출발, 하루의 출발마다 두 번째 어떻게 하자고요? 하나님 동행, 하나님 마음속에 모시고. ‘아이 하나님 눈치 보고 또 하루를 사나’ 그래도 하루인데 ‘천하에 제일 귀한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좋다.’ 원하는 자유성의 마음으로 사는 습관. 학교도, 결혼도, 직장도, 신앙생활도, 근본 자세를 늘 돌아보면 이왕 가는 길이 복된 길 귀한 길이 되어지고 좋은 길은 좋은 길인데 주님의 십자가 마지못해 지고 간 그런 사람처럼 원치 않는 십자가를 지면 피차 고생입니다.

네 번째로 그 원하여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좋은데 그 원하여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이냐, 구약은 제사입니다. 신약이 되면 헌신이라 그럽니다. 오른쪽 끝에 ‘헌신.’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신다, 있는 것을 원하신다. 고린도후서 8장 12절이지요? 없는 거는 놔두고 주신 것은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 것 다하여’ 근데 우리가 살다 보니까 어느 날 말세 마지막이 되어 계시록의 성경으로 천하를 흔들어 버린 신천지의 그런 일도 지나갔고 신천지가 계시록으로 흔들어 놓으니까 계시록만 부인하고 안 보면 또 잘 믿는 줄 압니다. 잘 못 해석을 했으니 바로 해석을 하는 게 중요한데 말세는 말세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때라, 오늘. 5번 계시록에서 오늘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이 오늘 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은 어떠해야 될까? 깨끗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결, 레위기 11장 이후에 먹는 것 조심, 입는 것 조심, 씻는 것 조심, 나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러워 남을 더럽히지 않도록 말조심, 마음 조심하라. 이런 말씀 배웠습니다.

그리고 작년 5월, 코로나로 모두들 바쁘고 힘들 때 그동안 배운 모든 말씀이 말씀으로 그대로 있으면 책입니다. 지식입니다. 복음이란, 말씀으로 실행 할 때만 복음입니다.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라고 말하는데 신약의 복음의 말씀도 구경만 하고 말만하지 실행 안 하면 율법 됩니다. 모든 말씀은 그냥 두면 율법, 실행 해 보면 전부 복음이 되어집니다. 실행을 배웠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입니다. 실행, 실행할 것이 굉장히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세상이 남녀 이성문제로 혼탁하여 그 결혼하지 않고 자기를 깨끗하게 실행하기는 참 어렵겠다 해서 좋을 때 결혼하시라.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가정의 복, 부부의 복 만큼 이 땅 위에 큰 복은 없는데 그 왜 모르고 계시냐, 눈이 높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데 산 너머 산 너머 산 너머 무지개 잡으러 다니니 결혼이 될 수가 있습니까? 결혼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지. 이 보다 더 큰 재앙이 있겠는가. 많은 실행, 복음의 말씀도 있지만은 세상이 험악하여 가정을 살폈고, 쉽게 말하면 ‘좋을 때 결혼하시라.’ 그냥 제 보기에는 우리 공회 보기에는 몇 십 년의 통계로 보니까 ‘아 스물에 결혼이 제일 좋지 않겠는가’ 인체도 의사들이 건강 적으로 분명히 스물이 제일 좋다 그럴 겁니다. 스무 살 넘으면 노화됩니다. 감이 너무 익으면 떨어져요, 곯아서 못 씁니다, 좋을 때 따 먹지.

세계가 부럽게 쳐다보는 미국, 세계가 부러워서 전부 욕을 해도 닮고 가는 것이 미국인데 그 미국을 오늘의 미국으로 만들어 세계가 부러워서 따라가도록 만든 그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의 결혼 나이를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청교도 말은 귀에 딱 가리가 앉도록 하는데 청교도 결혼의 나이는 제가 들어 보지를 못 했습니다. 스물 안팎입니다. 열여덟, 스물이면 결혼 합니다. 그들을 청교도라 그럽니다. 그래서 생활이 지켜지고 가정이 지켜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모든 복을 일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결혼, 서른에 했으면 미국은 몇 백년 전에 더러워서 거름이 되었을 겁니다. 빨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기회 주지 않으면 성급하게 할 수 없는 거고 아무렇게는 할 수 없는 거나 고요히 자기를 들여다보며 냉정하게 살펴보자. 작년 8월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집회 말씀은 항상 두 길이나 우리 걸어 갈 길은 몇 길이라고요?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하나님은 그런 길을 내 주지 않았습니다, 저 길은 망합니다, 후회합니다. 아 이 생명의 길, 좋은 길이 있는데 왜 아무 길, 망할 길 가겠습니까? 길은 항상 두 길입니다. 우리가 갈 길은 한 길입니다. 어느 길인가? 금번에 이 길을 살펴 보려 합니다. 한 10년 전에 대동 조사님이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을 적어주셔서, 아이 시급하게 살펴야 되겠는데 그 바쁜 일정 때문에 한 10여년 늦어졌다가 더 이상 늦어져 안 되겠다 해서 금번 집회는 일찍 준비는,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로 정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넘겨서 9페이지입니다. 항상 두 길, 아담이 선악과 먹고 죽는 길도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을 건데. 가인이 하나님 기뻐하는 제사를 드렸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의 길을 계속 걸어가니까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환경이 밀려오기 때문에 살펴보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시간은 인류초기를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서론이라 말씀은 복잡고 어렵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적어 가면 집중이 될 겁니다. 말씀은 어렵지 않으니 평소에 들은 분, 아는 분들은 ‘아는데, 아는데, 밥상 차려 놓은 거 아는데’ 안 먹으면? 밥상 차려 놨는데 아는데 안 먹으면? 밥상 아닙니다. 나는 아는 이 말씀과 나를 비교해 볼 때 같으냐, 다르냐.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살펴봅니다.

12페이지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으로부터 인류를 처음 열었던 순간입니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안 먹고 사는 길을 하나 주셨습니다. ‘먹을래?’ 먹으면 죽는 길도 내 주셨습니다. 항상 두 길에 아담이 처음 두 길을 만났고 그 아담이 걸어간 길을 잠깐 살펴봅니다. 1번 아담. 아담이란, 따라하십시다. 첫 사람. 인류 역사에 살다간 수 없는 사람 중에 첫 번째 사람입니다. 순서로 첫 사람입니다. 역사 모든 인간 중에 첫 번째가 아담입니다. 나는 아담이 아닌데, 나는 아담이 아닌데, 아담이 첫 사람이지 나는 아담이 아닌데, 첫 사람이 아닌데, 아닙니까? 나란 사람은 오늘 이후에 나에게서 태어날 모든 사람에게 첫 사람이 됩니다. 전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오늘 인류 전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 아담을 욕하지 않을 사람 없고, 이 아담이 원망스럽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아담 이 인간 때문에 숙제를 해야 되고, 시험을 쳐야 되고, 병원을 가야 되고, 화가 나고, 모든 불편한 일은 아담 하나가 다 들이 부어 그렇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란 그런 겁니다. 아담은 지나갔습니다.

근데 믿는 우리는 생명을 다시 주신 중생된 우리는 어떤 특징이 있느냐? 중생된 순간 나는 이제부터 나 이후에 나의 자손들, 나의 후배들, 나의 가족들에게는 내가 아담처럼 첫 사람 됩니다. ‘아담 그 인간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당하다니’ 억울하십니까? 내 자녀가, 내 손주가, 내 후배가, 내 가족이 아담 때문에 인류가 이렇지만은 ‘우리 가족은 너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을 들어 되겠습니까? 아담을 살피는 이유는, 아담 때문에 전 인류가 당한 고난, 내가 잘못 선택하면 항상 두 길인데 아담처럼 우선 좋다고 선악과 먹고 잘못된 길을 걸으면 나 뒤로 걸어가는 모든 나의 후손들, 나하고 관계된 사람들은 나 때문에 꼼짝 없이 죄악에 들어 가 버립니다. 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면을 금번에 집중적으로 살펴볼 겁니다. 아담은 첫 번째로 첫 사람입니다.

그 다음 넘겨서 두 번째 보십시다. 아담은 순서적으로 첫 번째 사람인데 첫 번째 사람이란 무슨 뜻을 가진 다고요? 인류의 대표가 됩니다. 순서로 1번, 그 1번은 그 이후에 걸어갈 모든 사람의 대표가 되어집니다. 머리 하나 대표 하나 잘못 되어 지면 많은 사람이 애를 먹습니다. 머리가 잘못된 길로 가면 몸은 빠져 나가지 못하고 머리 따라 가야 됩니다. 머리가 어디로 가느냐? 머리가, 우리 가정의 머리가. 세상 말로 말하면 두목인데 두목. 머리 두자입니다. 두목 잘 만나면 깡패도 살만하고 두목 잘못 만나면 구약 이스라엘이 3년 솥 안에 사망이 되었습니다. 나의 머리는 방향이 어디인가? 아담은 잘못된 길 걸었습니다. 왜 아담을 잘못 된 길 걷게 하셨느냐, 중생된 우리에게 ‘넌 중생이후에 모든 길 아담처럼 걷지 말라.’ 그래서 아담을 적었고 자세하게 살펴보는 겁니다.

첫 번째로 아담이란, 순서적으로 첫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교재 12쪽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첫 사람 아담은” 구약에는 아담을 그냥 적어주셨는데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아담은 순서로 첫 사람이었다. 왜 첫 번째라고 순서를 적어 주셨을까? 그리고 하나님이 산 영, 하나님과 연결된 영, 하나님이 붙든 사람인데.

밑으로 내려옵니다. 순서로 첫 번째 사람이란, 역사 모든 인간의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나 이후에 첫 번째입니다. 앞의 대통령 욕해 놓고 그 이번에 대통령 되면 ‘그럼 너는?’ 그건 생각이 없고, 나만 잘 먹으면 되니까. 일제 36년 억울하게 산 것은 그렇게 욕을 해 놓고 오늘은 식민지 되지 않을 길을 걷고 있느냐, 오늘도 또 식민지 될 길을 걷고 있느냐? 아담 하와가 항상 두 길인데 선악과를 먹고 온 인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리고 오늘 우리는 자기에게 묻는 겁니다. ‘너는 아담의 선악과를 먹는 길이냐’ 아니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싶은데 딱 끊어 버리고 ‘난 생명과실만 먹겠다.’ 너는 오늘 현실에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두 길을 가집니다. 중생 안 된 사람은 두 길이 없습니다. 중생 안 된 사람은 말씀을 지키든 말든 무조건 지옥입니다. 중생된 사람에게만 말씀으로 살래, 말래? 말씀으로 사는 것만큼 오늘 이 현실을, 오늘 이 지식을, 오늘 이 행위를, 오늘 내 마음을 씻어서 깨끗하게 하나씩 살려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나는 나 이후에 첫 번째입니다.

아담은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2번, 전인류가 피하지 못하고 따라갔습니다. 아담이 선악과 먹었는데 나는 상관없다, 몰랐다, 나는 내 길 간다가 없습니다. 무조건 그 밑에 다 들어갑니다. 아담이 걸어간 길이 인류의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 영향을 받아 나면서 원죄로 다 죽어 버렸습니다. 몸은 살아있는데 영이 죽어 하나님과 끊어져 버렸습니다. 영 없는, 영이 죽은, 몸과 마음만 짐승처럼 설치고 다닙니다.

마음을 영이라 그러는데 강아지도 마음 있습니다. 고양이 보복성 있습니다. 고양이 잘못 건드리면 쥐 잡아다가 신발장에 집어 넣는 것 한 번씩 구경 하셨습니까? 요즘 쥐가 잘 없어 모르시지요? 고양이, 호랑이 이 고양이 과들은 보복심이 대단합니다. 강아지야 요즘 집집마다 뭐 손주 보다 아들보다 더 이쁘게 기르니까 더 잘 아시겠지요? ‘개에게 마음이 없다?’ 그거 추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진노가 있고, 삐끼기도 하고, 그거 시기 질투 다 합니다. 짐승도 몸과 마음으로 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이 죽어도 몸과 마음으로는 삽니다. 근데 그 마음과 몸은 죄 짓기만 합니다, 하나님 없이. 중생된 우리에게만 중생된 영이 마음에게 ‘안 믿을 때처럼 살래? 이제는 말씀으로 살래?’ 항상 두 길입니다. 악령은 밖에서 마음에게 옛날처럼, 중생된 영은 우리 마음에게 이제는 말씀으로, 항상 두 길입니다.

아담이 첫 번째 첫 사람이기 때문에 아담의 걸어가는 길은 전 인류의 길이 됐고 아담의 모든 선택은 인류의 모든 선택은 아담의 영향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선택에 영향이 전부 다 가 버립니다. 중생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중생을 시켜 버렸기 때문에 원죄로부터 일단 벗어난 거지, 오늘도 그렇습니다. 나는 나 이후에 모든 사람에게 나 밑에 내 가족, 내 후배, 내 신앙의 식구들에게 나는 첫 번째입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한 사람 사람은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지옥은 가지 않는데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사람의 생활과 그 사람의 말투와 행위가 죄 짓는데 앞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향을 다 끼쳐버립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습니까? 그게 아니라 윗물이 흐리면 어찌됩니까? 못 버팁니다. 내가 죄와 의의 사이에 흔들리다가 꺾여지면 나 이후에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이후에 나를 보고 따라 올 내 자녀, 내 신앙의 식구들, 나의 죄의 영향에서 못 벗어납니다. 나를 위하여 말씀으로 살아야 되겠고 내가 맡은 사람을 위해서 어려워도 힘들어도 말씀으로 살아야 됩니다. 요즘같이 먹고 살 만하면 3끼 밥 먹는 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자녀들의 앞날을 생각하니 좀 더 벌어야 되겠다 그거 아닙니까? 왜 자녀들의 먹고 살 앞날을 위해서는 더 벌어야 되겠다는 이런 결심이 있고, 노력이 있고, 내가 하나님과 끊어지고 나를 통한 이 죄의 저주가 나 밑으로 나 뒤로 오는 가족들에게 끼쳐지는 영향은 그 왜 생각이 없습니까? 나란히 놓고 생각을 해야지.

맨 밑에 세 번째입니다. ‘아담은 첫 번째 사람이므로’ 전 인류가 뒤를 따라 가듯이 우리 뒤에도 따라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 그 인류의 대표성이란, 나 뒤에 오는 모든 사람을 모든 사람을 내가 대신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행동한 것 아들을 대신해서 행동한 게 됩니다. 아버지가 주택매매에 계약 도장을 찍으면 아버지가 찍었는데 온 가족이 찍은 게 됩니다. 대신 찍은 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맡은 사람의 대표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 우리는 나의 식구에게 대표가 된다, 대표. 대표가 뭔지 대신 하는 책임이 뭔지를 알면 사람이 신중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생각하니까 벌대로 해 버리지.

넘겨서 14쪽입니다. 아담은 순서적으로 첫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두 번째는 아담은 첫 사람이기 때문에 인류의 대표였다 했습니다, 대표. 로마서 5장 12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누구지요? 아담입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와 버렸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뒤따라 들어왔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못 피합니다. 문제는 아담 하나가 죄를 지었는데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아담 혼자 죄를 지었는데 알고 보니까 아담은 전 인류의 대표였습니다.

국가의 대통령이 일본의 대통령 하고 대표로 도장 찍어 버리면 5천만 명이 함께 도장 찍는 것이 되어집니다. 구한 말, 조선 왕 고종이 도장 찍어 줘 버리니까 식민지 된 겁니다. 나라 팔아 먹기는 고종이 팔아 먹었는데, 대한민국에 전주 이 씨들이 한 5백만 명, 6백만 명이 되어서 그런지 겁이 나서 아무도 말 하는 말을 못 듣겠습니다. 왕이 나라 팔아 먹었지 밑에 신하가 팔아 먹었습니까? 이완용이가 팔아 먹었다는데? 이완용이 도장 천 번을 팔아도 고종이 ‘내 도장 훔쳐 갔다.’ 한 마디만 하면 국제법에 무효입니다. 고종이 죽는 날까지 ‘내 도장 도망 갔다, 훔쳐 갔다, 나 안 찍었다.’ 말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누가 대표지요? 왕 네가 대표지. 지금 고종 욕하고 있습니까?

나의 행동은 내 식구 전부를 대신해서 대표로 도장 찍는 겁니다. 아버지가 ‘난 술 마신다, 여자는 술 마시면 안 된다, 애기들 때문에’ ‘애들 어린 것들이 술을 마셔? 공부를 해야지.’ 아버지가 혼자 술 마셨습니다. 그 술이 아버지의 입으로만 들어갔는데 그 술 먹은 영향은 처자식 전부에게 쏟아집니다, 술꾼 집안이라. 아버지 술 먹고 도장 벌대로 찍었는데 처자식이 고생 안 합니까? 아버지 술 먹고 간이 안 좋은데 처자식은 멀쩡하니까 괜찮습니까? 한 몸인데. 아담 하나의 죄로 전 인류가 죄를 뒤집어 썼습니다.

왜 자꾸 이 얘기를 백번 하지요? 나 하나의 선택, 항상 몇 길이라고요? 두 길입니다, 자유입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놀아도 자유, 불 질러도 자유, 싸워도 자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 때부터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두 길이다. 두 길 중에 너는 어느 길을 택했느냐, 살 길? 생명. 죽을 길? 원해서 죽을 길을 택했으니 죽어야 싸지. 항상 두 길. 길은 죽을 길을 택했는데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거짓말쟁이지, 미신이지. 돌부처는 돈 많이 가져오면 봐 주기도 하고 모른 척 하기도 하지만은 하나님이 돌부처 입니까? 인간도 책임이 있으면 뒤를 보고 계산을 하는데. 완전자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항상 두 길이다.’

여기 우리 10대 학생들, 이번에도 한 80명 되나요? 열 살, 열댓 살이 미쳤다고 어른들하고 앉아 가지고 성경 보고 앉았어, 나가 놀지. 저 저수지가면 지금 다이빙도 할 수 있는데 얼마나 좋은데. 가도 자유, 안 가도 자유. 가면 책임은 져야 됩니다. 밥은 내가 먹고 배는 네가 부르고, 술은 내가 먹고 간은 아내 간이 나빠지고, 난 그러고 싶겠지.

하나님이 항상 두 길이다. 선악과냐, 죄는 못 피한다. 죄면 사망이 뒤따라가지 생명과 축복이 따라가지는 못한다.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입니다. 아담은 전 인류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두 길을 주셨습니다. 선악과 먹고 죽어도 자유, ‘너 만은 아니다, 너는 대표기 때문에 네 가족, 전 인류가 네 후손이니까 전부 선악과 함께 먹은 것이 된다.’ ‘아니요 저만 먹었고 자녀들은 별개입니다.’ 떼 놓지를 못합니다, 한 몸입니다, 한 길입니다. 인류의 대표에게 두 길을 주셨습니다. 1번.

왜 두 길을 주셨느냐? 2번. 자유성 때문에 주셨습니다. 한 길만 주면 타락을 합니까, 죄를 짓습니까? 죄 안 지으면 안 죽는데. ‘선악과를 만들지를 마시지.’ 이런 생각은 해 보신 분이 없습니까? 좀 머리가 있고 따져가며 믿는 사람들은 꼭 교회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찾아 와 가지고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전능자고 전지자인데 왜 선악과를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인류를 애를 먹이느냐고. 에덴동산에 생명과일만 있고 선악과만 있으면 자유성이 없습니다, 기계입니다. 기계야 죄짓습니까? 사람이 돌리는 대로 따라가지. 하나님이 로봇트로 만들면 좋겠다는 분들 손들고 로봇트 해 보십시오. 로봇트는 고장이라도 나는데 돌은 바위는 고장도 안 납니다. 바위 하십시오. 이 덕유산에 좋은 바위. 죄 안 짓습니다, 고장도 안 납니다, 귀찮게 먹을 것도 없고 화장실 갈 것 없습니다, 코로나에도 안 걸립니다. 근데 사람이 욕을 할 때 좀 점잖은 욕할 때 벅수 같은 놈이라 그럽니다. 벅수 아시는 분들 계십니까? 돌로 만든 사람을 벅수라 그럽니다. ‘야 이 벅수야, 야 이 돌 같은 놈아’ 그 자랑 아닙니까? 고장도 안 났는데 밥도 안 먹어도 되는데 학교 안 가도 됩니다. 벅수 하십시오. 돌로 만들어 놓으면 공부도 안 해도 됩니다. 하기 싫어도 사람이 낫지. 사람이 사람인 이유, 사람 속에 뭘 넣어서 사람이 사람이라 그랬지요? 자유성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중에 가장 핵심이 자유성입니다. 그 자유성이란 항상 두 길 중에 한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길을 주신 이유는 자유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유는 따라합시다, 선택. 뭐 선택이야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 선택은 책임이 따릅니다. 선택은 책임, 책임. 일반적으로 책임 하면 그냥 무겁다 정도지요? 무거운 것이 아니라 죽을래, 살래? 선택해라, 아담부터. 오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완전 대속으로 우리는 무조건 천국은 가지만은 미운 마음 가진 그 미운 마음 마음씨, 미운 마음 씨 이건 천국 가지고 못 갑니다. 이건 빼 놓고 가야지. 아내 몰래 나쁜 짓한 그 날 그 행동 이거 몰래 천국 가지고 못 갑니다. 난 천국 갈 때 그 행동 그 마음씨는 다 빼서 내 버려야 됩니다. 어디 내 버리겠습니까, 그거 다 지옥에 내 버려야 됩니다. 불택자는 통째로 지옥. 믿는 우리도 중생 후에 죄지은 마음씨, 죄 짓는 눈길,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말투. 아 믿는 사람이 갈 때는 다 가져 가겠지. 미운 마음, 시기, 질투 이거 천국에 풀어 놓으면 천국이 천국 되겠습니까, 천국이 지옥 되겠습니까?

중생된 영, 그리고 중생된 영에게 순종한 마음, 행위 이게 천국입니다. 중생된 영은 똑 같은데 얼마만큼 순종했느냐, 칼빈과 제가 같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과 제가 중생은 같고 천국은 같이 가겠지만 제 마음씨가 손양원 목사님만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보다시피. 그분이 가져갈 마음씨, 그분이 가져갈 희생, 그분이 가져갈 인내, 그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산더미 만할 것이고, 저도 있기는 좀 있을 겁니다. 이만큼. 이걸 한 개 더 늘려 나가기 위해 이번 집회도 또 말씀을 들여다 보며 이 교재로 지금 살펴보고 있는 겁니다.

인류의 대표 아담 두 길을 주셨습니다. 왜 두 길을 주셨느냐, 양면을 알으라고, 양면. 서지는 안 적는 것 같은데, 금방 ‘양면을 알고’ 할 때 적어야 지금 따라 온다는 뜻인데. 왜 두 길을 주셨다고요? 양면을 알으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한 혜택도 보고, 공부 안 하고 놀다가 무식해서 억울하게 당한 꼴도 보고 양쪽을 다 아는 사람하고, 공부 잘해서 좋은 가정에서 착하게 살아 훌륭하게 살다가 훌륭하게 죽는 사람하고,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가정에 좋게 태어나 좋게 살다가 좋게 죽는 걸 전부 복이라 그러는데, 그 하나님이 버린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항상 두 길.

하나님 없으면 어찌 되는지 볼래? 이게 선악과입니다. 그리고 끝났더라면 전부 다 지옥일 터인데 하나님 없으면 하나님 말씀 어기고 선악과 먹으면 어찌되는지 볼래? 그리고 하나님께 붙들려 중생의 새 길을 걸으면 어찌 되는지 비교해 볼래? 죽는 길은 아담이 선택했으나 중생은 아담이 선택을 못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그 죄 값을 다 지시고 아담에게 그리고 오늘까지 믿는 중생된 우리들에게 하나님 없는 구경, 하나님 모신 구경, 양면을 함께 알도록 하는 겁니다. 두 길을 주심은 양면을 알라고. 이면 저면 양면 알아 어디 쓰지요? 전부를 알게 하기 위해. 여기 양면은 동쪽 서쪽만 알고 남쪽 북쪽은 빠지고 그 말이 아닙니다. 양면이란 전부를 말합니다.

역사에 제일 나쁜 죄를 지었다가 제일 의인이 된 사람 이름을 성 프란시스라고들 보통 그럽니다. 온갖 죄, 온갖 죄를 다 지어 봤기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은혜가 얼마나 좋은지, 신앙이 얼마나 좋은지, 역사에 성 프란시스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 사람이 없다 그럽니다. 그 사람 죄악 속의 구경을 많이 해서 알게 된 겁니다. 물에 빠져 들으면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다신 안 빠져 죽겠지, 빠져 죽어 버리면 끝이 나는데. 빠져 죽어서 영 죽게 된 걸 구할 수만 있으면 물에 한 번씩 집어 넣었다가 빼면 두 번 다시 물가에 안 갈 겁니다. 술 먹고 간암 4기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그리고 100% 살려 낼 수 있으면 두 번 다시 술 안 마실 겁니다. 우리에게 두 길을 주시고 두 길을 주신 것은 양면을 알도록 두 길을 주셨고, 양면은 양면이 아니라 전부를 알려 주시려고. 하나님 없는 것도 알고 하나님 모시고도 살고, 교회에 안 다니고 실컷 세상에 마음대로 살아보기도 하고 그리고 신앙생활도 해 보고. 안 믿는 사람이 믿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하나님 없이 살아 봤기 때문에 중생 후 신앙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나 놓으면 어릴 때부터 엄마 뱃속에서 교회를 다녔으니 교회 가는 게 예사인줄 압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가는 게 왜 가는지를 모릅니다. 저도 어머니 뱃속에서 집회 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회만 보면 화가 나고 ‘아이 저거 안 다니면 좀 어때’ 속에서 거부감이 더 당하지. 그러다가 하나님 없이 살다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한 번 구경을 해야 ‘죽어도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배가 고파 봐야 밥 좋은 줄을 알지 그 말입니다. 뱃속에서 죽는 날까지 음식이 넘치는데 어떻게 음식 맛을 압니까, 요즘. 한 끼만 굶기면 단번에 밥은 밥맛은 단번에 돌아옵니다. 인류의 대표 두 길을 주셨고 그리고 자유성 때문에 두 길을 주신 겁니다.

자유란, 선택을 말하고 선택은 책임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두 길이나 반드시 생명의 한 길을 찾아 가야 됩니다. 그럼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까? 하나님 닮도록 하기 위해, 목표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사 만큼 만들고저 목적 했으면 굳이 타락을 주시고 복잡 게 만들 것 없이 처음부터 천국만 만들었다면 복잡한 게 하나도 없을 뻔했습니다. 우리를 천사만큼 만들고 끝내려고 했다면 타락과 구원은 필요 없이 그냥 천국만 만들면 됩니다. 근데 우리를 만드는 목적이 인간 위에 천사 위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같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목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려면 피조물은 죄를 한번 거쳐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아 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입니다. 목표가 하나님, 그렇게 적어야 되겠지요. 하나님이 목표라니 하나님은 한분인데,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말합니다. 또 한 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온전. “너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라”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맨 밑에 박스입니다. 하나님은 대게 우리를 인도하는 순서가 죄를 짓고 실수를 먼저 주시고, 기독교 역사에 항상 이단이 먼저 나오고, 이단이 나와 가지고 교계를 흔들어 놓으면 성경은 그렇지 않을 건데 그리고 성경에서 정통교리가 나온 게 역사 이후에 모든 교리 발전은 한 번도 빠짐없이 성경 66권 교리가 제일 먼저 나오는데 성경 66권 교리 앞에 먼저 나온 것이 ‘구약은 성경 아니다, 신약의 4복음 외에 성경 아니다.’ 66권이 아니라는 이단들이 천하를 흔들고 66권 교리가 뒤에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더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냐.’ 이단이 나오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왔다’가 두 번째 나왔습니다. 삼위일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라는 소리가 세계 믿는 사람 거의 전부가 그렇게 갈 때, 성경에 보니까 삼위일체인데. 항상 이단이 먼저 나오고 정통이 뒤에 나옵니다. 창세기 1장, 낮이 되고 밤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 그렇게 적혔던가요? 밤이 되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 그렇던가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째 날, 오늘은 과학의 세상이라 오전 오후 저녁으로 가지만은 성경은 저녁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합니다, 모든 하루가. 왜 그랬을까? 타락 전의 저녁 타락 전의 어두움은 죄악의 잘못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렇게 만드시고 적어 놨습니다. 양면을 알아야, 선택을 해야, 선택을 잘못 했을 때 책임을 져 봐야, 그래야 점점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죄를 짓고 실수를 먼저 하게 하시고 그리고 의를 주시고 실력을 뒤에 주면서 길러갑니다. 저처럼 믿는 가정에 태어나면 부모 때문에 죄도 모르고 죄 지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지금은 신앙 아닙니다. 어머니가 업고 주일날 교회 가는데 제가 주일 지킨 겁니까? 그건 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이 뭐 교회 안 가면 안 돼?’ 이제 이런 마음이 한번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야 되는데 반대로 한 번 가 봤습니다. 연보 돈 가지고 만화가게를 한 번 가봤습니다. 어 연보 돈 가지고 만화가게 가면 얼마나 좋은데. 막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해야 되는데, 근데 왜 양심에 난리가 나지요? 죄를 구경하고, 그 다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그때 비로소 은혜가 은혜 되는 겁니다. 부모에게 얹혀 다니고 형제에게 끌려 다닐 때는 그냥 지금 오고 가는 겁니다. 신앙의 앞날을 위한 준비입니다.

죄와 실수를 먼저 주시고 아담에게 그리고 의와 실력을 뒤에 주시며 길러 갑니다. 그래서 소망이라고 그럽니다, 소망. 이 사실을 모르면 세상을 분주복잡하게 살게 됩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으려고 실수 한 번도 안 하려고 어쩌다가 죄나 실수를 하게 되면 괴로워서 자꾸 절망 절망 속에 들어가는 데. 죄를 잘 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와 실수는 잘못 된 겁니다. 값은 받습니다. 그런데 길러 가는 단계로 하나님께서 순서를 주시니 신앙이 없어 몰라서 그저 죄나 실수가 있었느냐, 그때는 ‘이제 소망을 가지고 다시 출발한다.’ 이렇게 나가면 복이 됩니다. 하나님이 죄와 실수를 먼저 주시고 뒤에 길러 가는 걸 모르면 세상은 분주 복잡하게 되고 교회나 믿는 사람을 자꾸 오해를 합니다. ‘어 믿는 사람들도 죄 짓네, 교회는 더 엉망이네, 교회가 시커머네.’ 교회가 시커머지고 타락을 해야 거기에서 회개를 하고 제대로 빛으로 나가게 되지요. 이런 면을 보면서 지혜를 얻는 겁니다. 넘어져 보고 실수를 해보고 돌아서면서 소망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그런 것을 보면서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부터 역사를 처음부터 살피는 이유는 오늘도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이 되기 때문에 아담 때문에 아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아담 공부를 한다고요? 나 때문에. 아담은 6천 년 전에 인류의 조상, 나는 오늘의 아담입니다. ‘아담 너 때문에 내가 이 모양으로 고생한다.’ 그 마음을 나에게로 돌려 ‘나 때문에 자녀가 또 죄의 물들고 저주의 고통 받게 하지는 말아야 되겠다.’ 날 봐서는 이리 사나 저리 사나 막살이를 할지라도 토끼 새끼 같이 쳐다보는 눈동자의 아이를 보며 또 나 같은 걸 갖다가 또 쳐다보고 시집온 아내 때문에, 아내 때문에, 아이 때문에,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 때문에, ‘어 내가 이래서 안 되겠다.’ 이럴 때에 내 힘 더하기 책임의 힘이 더 해 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너 대속을 아는 구나’ ‘대속을 아는 구나’ 대속이란 자기 죄 값이 아닙니다. 죄는 내가 지웠는데 하나님이 대신 값을 낼 때 다 같이 뭐라고 한다고요? 대속이라 그럽니다. 내가 먹은 외상을 아버지가 대신 갚아 줄 때 대속이라 그럽니다. 아담을 보며 내가 날 위해서라도 죄는 짓지 않아야 되겠다. 내가 날 보고는 ‘에이 이판사판 그냥 살자 뭐, 이렇게 다 사는 걸’ 그럴지라도. 나를 따라 오는 자녀 자녀 자자손손 가족을 보면서 ‘나 하나는 이렇게 살지만은 내 가족까지 전부 나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을 당해서 되겠느냐? 나 때문에도 그렇지만은 가족 때문에는 게으를 수 없다. 이건 미룰 수가 없다.’ 이럴 때에 주님은 우리를 보며 무엇을 안다고 봐 주신다고요? ‘어 이 친구가 대속을 아네, 대속을 아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주님이 대신 고난당하고 해결한 걸 대속이라 그럽니다.

이 대속의 원리가 목사가 제 혼자 같으면 뒤로 오만 짓을 다 할 건데, 목사가 오만 짓을 해 놓으면 하나님은 몰래 온 교회에 목사 한 저주를 다 뿌려 버립니다. 전국의 총회장이 교단의 총회장이 몇 천 교회의 총회장이 우리나라는 많은데, 총회장이 몰래 일본까지 뭔 술을 가지고, 한국 술이 맛있다고 부산에서 막걸리 사서 일본까지 가서 먹었다나요, 노회장이. 일반 목사도 아니고 건전한 교단의 노회장님 간부들이 일본 가면서 한국 술 맛있다고 일본 가면 못 사온다고 한국에서부터 술을 사 가지고 갔다가 그 중에 양심 있는 사람이 돌아와서 밝히는 바람에 터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안 밝혔으면 모두 맛있게 놀다 왔을 건데.

하나님이 눈먼 심봉사인가요? 절의 돌부처 인가요? 하나님이? 교회 간부 놈들이 일본까지 몰래 숨어 가서 술 쳐 먹고 와? 너희들은 몰래 갔다 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지은 못 된 죄, 숨겨 놓고 한 죄 때문에 하나님은 왕궁 지붕 위에다 펼쳐 놓고 ‘천하 만민들아 봐라’ 하고 펼쳐 버렸습니다, 돌부처 인줄 알고. 교회 책임자 네가 몰래 그 짓을 해? 누가 밝혀서 창피 당하는 게 그래도 낫고, 그걸 감춰 놓고 몰래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너 배우고 너 따르는 너에 속한 교인 전부에게 죄의 저주를 다 뿌려 버립니다. 그래서 한 교단의 총회장이란 그 교단의 머리인데 머리가 동쪽 가는데 몸이 서쪽 갈 수 있습니까? 소 머리가 서쪽 가는 데 소 꼬리가 동쪽으로 여행갈 수 있습니까? 뒤 따라가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지막에는 꼬리는 머리 따라 갑니다.

지금 남의 교단 간부 욕하는 겁니까? 아담 욕하는 겁니까? 오늘 이 자리에 내가 항상 두 길 중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그 뭐 말씀으로 살라니까 살면 살겠지마는 이것도 말아라, 저것도 말아라. ‘에이 몰래 좀 해 보지.’ 몰래 하면 너 아담 꼴 난다, 너도 고생하고. 더하여 누가 고생한다고요? 내 식구, 나 하고 관계된 내 밑으로 줄줄이 전부 나 때문에 고생합니다. 애비 하나 잘못 만나 온 식구들이 고생고생 하는 가족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요즘은 별로 없지요? 예전에는 이 동네 저 동네 아버지 하나 술 먹고, 노름하고, 아버지 하나 잘못 만나서 여자 생고생 다하고, 아이 낳고, 여자 나가서 돈 벌어주고, 애 낳고, 애 기르고, 식모 살고, 구박 당하고. 더러운 남자 하나 잘못 만나가지고 온 처자식 고생고생 생고생 다하는 거 이 나라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든지 참 그렇게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이 자연계시인데. ‘여자 네 눈에 남자 말 한마디 낯 반대기보고 결혼해서 남자 하나 잘못 만나 놓으면 저 가정에 저 모양 저 꼴이 된다.’ 이게 많아 놓으니까 좀 덜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으니까 모두들 벌대로 그냥 설치고 나서요? 나 하나 잘못 살아 나 하나 고생 당하는 것은 죄 값이다마는 나 때문에 딸린 식구들, 후배들, 교인들, 줄줄이 전부 그 고생을 다 시켜? 몰래 감추면 될 건데 하나님이 다 따라가면서 위에 다 대고 죄를 뒤 집어 씌웁니다.

너 WCC 좋아하는 총회지? WCC 재앙 적인 것은 ‘다 갖다 먹어라’ 못 피합니다. 너는 일제식 교회냐? 일제식 저주는 다 받아야 됩니다. 넌 조선식이냐? 조선에는 다 깨끗합니까? 조선에도 나쁜 거 있지. 조선식 신앙은 ‘다 가거라’ 이리 됩니다. 참 말하기 어려운 뭐 요즘은 말하기 어려운 진실이라 그러던가요? 한국 교회에 벗어나기 어려운 잿더미 하나. 한국 교회는 3.1운동 한 걸 다 자랑스럽게 압니다. 3.1운동은 조선사람 일본사람 둘 싸운 겁니다. 하나님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의 하나님이면 일본에 선교를 가지를 말아야지. 하나님이 조선의 하나님이면 중국에 선교를 가지를 말아야지. 하나님은 한국 사람의 하나님, 중국 사람의 하나님, 일본 사람의 하나님, 만 인류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면 큰아들 편들고 둘째 아들 귀향 보내겠습니까, 둘째 아들 편들어서 첫째 아들 제거하겠습니까?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지. 한국 교회가 3.1운동 한 것은 한국교회 전부 자랑인줄 압니다. 3.1운동이란, ‘주여 일본 놈들은 전부 죽여 주시고 지옥 보내 주시옵소서.’ ‘왜놈이 천국 오면 그런 천국은 싫습니다.’ 이게 3.1운동입니다. 불신자들은 애국적으로 해야 됩니다. 교회는 생각 좀 해 봐야 됩니다.

이게 어디까지 가느냐? 우리를 전도한 미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의 청교도들이 집에서는 노예 부린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들의 말버릇 중에 하나 이런 게 있습니다. ‘천국 가면 흑인은 없을 건데, 어 저 시커먼 것들이 천국 오면 그게 천국이야? 흑인이 구원을 받다니?’ 흑인이 뭐 원숭이하고 비슷한 정도인데. 그 미국에서도 북쪽 보단 남쪽이 독하게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남쪽이 노예 해방 못 한다고 몇 백만 명 죽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 가지고 선교해서 한국 교회가 한국 되었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노예 부리면서 노예를 부려 먹고 팔고 때리고 마음대로 다 하면서 교회 와 가지고는 ‘원수를 사랑하라?’ 그들이 청교도입니다. 그들이 개혁교회를 부르짖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이분들이 100년 전에 한국에 와 가지고 우리들한테는 ‘양반, 쌍놈, 남자, 여자, 가리지 말고 주님 앞에는 똑같이 교회 나와야 된다.’ 또 그렇게 선교를 했습니다. 그분들 때문에 미신의 이 나라가 믿었기 때문에 미국의 청교도 선교한 분들에게는 감사가 끝이 없는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한국 와 가지고는 ‘백정이니, 양반이니, 남자니, 여자니, 가리지 말고 주님 앞에는 똑같아야 됩니다. 일본 사람 미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래 가르쳐 놓고 ‘당신들은 왜 고국에서 흑인들 노예로 잡아 가지고 팔고 마음대로 다 그랬습니까?’ 할 말 없을 걸요. 아 이렇게 쉬운 거 간단한 걸 왜 한국의 신학자들이 박사들이 신학 박사가 만 명도 넘는데, 왜 이런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지요? 그 사람들 선생님들이 미국 사람이라 놓으니까 선생한테 찍히면 학위를 못 받습니다. 지도 교수 눈 밖에 나가면 학위를 못 받습니다. 우리처럼 신학 대학을 안 가고 학위를 안 가지니까 큰소리치지. ‘내가 너 것들한테 박사 받으려고 뭐 아쉬운 소리 할 거냐?’ ‘전도 해 줘서 고맙습니다. 가르쳐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세계 제일 좋은 기독교를 전해 주셔서 제일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 집에 노예는 왜 팔아 먹었지요? 사람을 팔면 됩니까? 이게 구약도 아닌데, 원수를 사랑하라면서요? 우리한테 와 가지고 양반 쌍놈 구별도 하지 말라면서 당신들은 노예를 부려 먹다니요, 팔다니요, 채찍질을 하다니요?’ 미국의 불신자들이 그랬겠지. 미국에 다 교인들입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잘못된 신앙가들이 그랬겠지. 그거는 100년 밖에 안 됐습니다. 200년, 300년 전에는 전부 신앙이 좋았습니다. 죄 없는 사람 없는 겁니다. 우리 공회는 단점 없습니까? 제가 단점 말하면 제일 많이 말할 건데, 백목사님 욕을 하려면 저 만큼 욕 할 게 많은 사람 없을 건데요.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1번, 2번, 3번 적어가며 제가 제일 많이 할 건데요. 감사한 것은 감사하고 틀린 것은 본받으면 안 되고.

아담의 잘못으로 전 인류가 죄의 저주를 받아 이 모양 이 꼴로 살면서 우리가 그 말을 하면서 나 하나 때문에 내 가족과 내 교인과 내 식구가 어찌 되는지 저와 우리는 고민을 해 봐야 됩니다. 아담 욕하자고 이 본문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 있는 사람 계십니까? 요즘은 거짓말 탐지기 대면 100% 다 나옵니다. 거짓말 탐지기 대 놓고 하나님 앞에 자신 있다 그러겠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천하의 제일 깨끗한 바리새인이 성전에 가서 목을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 아버지 제 죄를 찾아 보시라고 그랬습니다. 매주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 다 바칩니다, 죄가 없습니다. 그 사람 거짓말 한 게 아닙니다. 더 이상 고칠게 없으면 의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으로 죄가 없고 실수가 없으면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 됩니다. 바리새인이 잘 믿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은 잘 믿었는데 이거는 잘 했는데 더 이상 고칠 게 없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칠게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끊어집니다. 죽는 날까지 잘 믿어도 아직도 살아 있다면 하나 더 배울 게 있고 하나 더 고칠 것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 앞에 칠일에 이틀 금식하고, 십일조 다 했다고 큰소리 칠 때 이걸 보고 자유주의 쪽에서는 ‘그러니 십일조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 금식기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마음껏 살아라.’ 또 이래 끄잡아 냅니다. 바리새인이 잘 믿은 것은 잘 믿은 겁니다. 문제는 잘 믿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이제 고칠게 없는 줄 압니다. 매일 매일 씻고 닦을 것이 나오는 법인데. ‘몸을 씻은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 중생된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몸을 다 씻은 자에게는 중생된 자에게는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는 늘 부족이 있고 배우고 자라가야 되는 게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지난 날 보니까 너무 잘 믿었습니다, 흐뭇합니다, 지난 날 잘 믿은 것은 잘한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배울 게 없고 고칠 게 없답니다. 여기서 끝나 버리는 겁니다. 그 다음 하나님과 나눠 서는 겁니다. 지난 날 잘 믿고, 지난 날 잘 믿고 보니 앞날에 잘 믿을 고민이 생기고, 지난 날 믿은 것이 부족하니 앞으로 더 잘 믿어야 되겠고. 아담을 살폈습니다. 아담을 살핀 이유는 한 가지 오늘의 나를 살폈습니다.

16페이지만 살피고 마칩니다. 이 아담은 항상 두 길인데, 아담 앞에 하나님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래?’ 두 번째 ‘네 멋대로 네 중심으로 살래?’ 이게 선악과입니다. 선이란 좋다, 악이란 나쁘다 뜻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창세기 1장,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어 놓고 ‘다 보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아 성경에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창세기 1장 첫 날, 둘째 날, 엿새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첫 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마지막 날,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이 좋았더라” 그리고 신약에 오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매” ‘아 성경에 선이란 좋다라는 뜻이구나!’ 이렇게 간단한데 뭔 히브리어 헬라어 보느라고 뭔 모두들 연구를 해 쌓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안에 해석이 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선. 하나님 보시기에 안 좋다 그게 악입니다. 귀신은 반대로 하나님이 좋다면 귀신 안 좋은데, 하나님이 안 좋으면 귀신은 좋은데. 넌 하나님 중심으로 갈래, 너 중심으로 갈래?

“선악을” 어 16페이지 제일 위에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줄이면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라니? 뭐 사과 먹다가 걸리고 뭐 복숭아 먹다가 걸리고 그런 귀신 소리 아야 듣지 마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만 결정한다, 하나님만 결정한다. 아담 너는 먹지 말아라. 선악을 결정하는 걸 먹고 내 것을 삼으면, ‘하나님은 예배 보는 걸 좋아합니까? 나 놀러 가는 거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좋아 하십니까? 나는 평일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 내는 걸 좋아합니까? 나는 천국을 다 팔아 다가 세상에 놀러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좋다 나쁘다가 선, 악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아라.’ 좋다 나쁘다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좋으면 너도 좋다, 하나님이 싫다면 싫다, 이게 신앙입니다. 아담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면 아담은 하나님의 종이라야 되고 그게 신본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밀쳐내고 나는 내가 중심입니다. 내가 주인입니다. 그럼 아담은 자기가 독존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 할래, 하나님을 종 삼고 네 멋대로 하는 네가 주인 할래, 주인을 누구로 할래? ‘내가 주인하고 하나님은 내 종 하시고 나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아담 사이는 끊어져 버립니다. 이 끊어진 걸 사망이라고 그럽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먹고 죽었습니까? 아담이 선악과 먹고 죽었습니까, 900년을 더 살았는데.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완전, 하나님은 완전입니다. 우리는 불완전입니다. 완전을 따라 가는 게 불완전이지. 그건 필연의 길이지 그래야 되지. 학생이 선생님 시키면 ‘예예’ 따라가면 선생님만큼 알 건데, 선생님이 ‘삼삼은 구다.’ ‘선생님은 그리 생각합니까, 저는 삼삼은 십입니다.’ 이게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이 선, ‘예, 선.’ 하나님이 싫다, ‘싫습니다.’ 하나님이 좋다, ‘좋습니다.’ 이렇게 따라가야 연결이고 생명입니다. 이 연결을 생명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제 마음대로 합니다.’ 그러면 둘이 끊어지는 겁니다. 끊어지는 걸 성경은 사망이라 그럽니다. 하나님과 연결은 생명, 다 같이 끊어지면 뭐라고요? 사망.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자기를 위해서라도 선악과는 먹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맞는 것인데 맞는 것인데, 하나님 중심이라야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오는 것인데 그래야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인도가 있고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걸어가는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연결이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오고 그러면 아담은 에덴동산 만물의 주인이 됩니다. 그런데 귀신이 이것만 탁 틀어버린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 아담 너는 네 중심으로 살지. 하나님에게 철학이 있냐? 아담 너도 철학 가져라. 하나님이 좋은 게 있냐 너도 좋은 것 있다 그래라. 아담은 자기가 주인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불완전한 아담은 완전자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완전 되는 건데 불완전한 아담이 불완전한 아담 자유로 마음대로 사니까 불완전은 깨지는 겁니다. 이게 불완전의 불행입니다. 세 살짜리가 제 마음대로 여행 다니고 세 살짜리가 네 마음대로 오만데 다 돌아 다니면 그거야 깨지고 죽는 거지 좋을 거 있겠습니까? 세 살짜리야 엄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행복이겠지. 그런데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면 엄마의 걸음이 있고 나 살아가는 걸음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할 때가 있는데 아담은 아직까지 어릴 때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중심에서 떠나 버리니까 만물과 전쟁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식으로 만들어 놨는데 아담이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을 해 버리니까 혼자 좌충우돌 다 전쟁이 생겨 버립니다. 당연히 하나님과 단절,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 끊어지는 것을 사망이라 그럽니다. 전기선이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끊어지니까 그 다음 좋은 것은 없고 오는 것은 전부가 다 저주입니다. 저주.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 추가 제공이 금지입니다. 단절이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연결이 없고 하나님과 끊어져 추가가 없으니 그 다음 아담의 실력은 영원한 멸망, 영멸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위에서 오는 은혜는 없고 이미 받아 놓은 것 가지고 아담, 하와 둘이 살다가 자녀들이 생겨지니까 머리 숫자가 많아지는 것만큼 협조가 아니라 협력이 아니라 머리 숫자가 많아지는 것만큼 서로 먹기 위해서 전쟁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자기가 주인이 되는 건데 하나님은 실력이 있기 때문에 주인을 해도 행복하지만은 불완전한 인간이 자기가 자기 주인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오는 것이 없으니까 이게 불완전의 불행입니다. 만물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혼자 따로 움직이니까 만물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과 단절, 끊어지니까 사망이고, 이미 받아 놓은 것은 저주를 받고, 더 이상은 하나님이 끊어지니까 주지 않아서 추가 제공은 금지가 되고, 인간의 자기 실력은 망하는 실력, 영원한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들 죽으려고 더 가지려고 싸우다 보니까 생존의 전쟁, 보통 생존 경쟁이라 그러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생존 전쟁입니다.

이기면 남들이 증오 하지요, 지면 부끄러우니까 치욕적이지요. 이기면 남들이 증오, 미워하고, 시기 내고, 지면 치욕스럽고, 이 모든 것이 자기중심이 되고 자기가 주인이 되니까 완전자가 아닌 불완전자가 자기중심으로 살면, 두 살짜리가 부모 없이 제 중심대로 제 마음대로 살면 그거는 불완전의 불행이 되어집니다. 혼자 살 실력이 있는 스무 살이 독립을 하는 것은 자유인데 두 살짜리가 부모와 끊고 자유로 나가면 자유가 아니라 그 자유는 멸망이겠지요. 아담이 자기중심으로 돌아선 것은 하나님과 끊어지는 순간 내 마음대로니까 자유 아니냐, 그 자유는 불완전의 불행이며 만물과 전쟁이고, 이미 받아 놓은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고, 추가로 오는 것은 단절이 되었으니 끊어지고 금지가 되고, 받아 놓은 것을 가지고 서로 더 먹기 위해서 싸워야 되니 만물과 만물의 전쟁을 벌이게 된 겁니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 그런 뭐 세상 말이 있던가요? 다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겁니다.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 것은 아담이 선악과 먹고 하나님과 끊어져 버리니까 받아 놓은 것만 가지고 살아야 되니까 더 가지고 와야 내가 좋으니 저 꺼 더 가져오고, 안 뺏기려고 그러고, 부부끼리도. 한 몸 안에서도. 이게 이제 세상 교과서에 가면 뭐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이 생지옥이 지옥 가기 전에 세상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오늘 첫 시간 여기까지입니다.

첫 시간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항상 두 길. 학생들 공부 안 해도 자유입니다. 책상에 앉아서도 공부할 마음 없으면 안 해도 됩니다. 항상 두 길. 죄 짓는 것 자유입니다. 하나님 욕하는 것 자유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 하나님의 인도의 길은, 따라 하십시다. 오직 한 길. 사람에게만 항상 두 길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는 사람 중생된 사람에게만 항상 두 길입니다.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됩니다. 자유하십시오. 대신에 하나님과 맞서고 곁길 가면 곁길 간 잘못은 자기가 먹어야 됩니다.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산 자기의 생애, 자기의 기능, 자기의 준비, 자기의 마련, 자기의 영광, 자기의 기회는 전부 다 내버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겁니다.

80년 뭐하다 왔지? 주님의 대속으로 천국은 왔습니다. 믿고 나서 80년 뭐했지? 세상 구경했습니다. 세상 구경한 것 어디 있지? 지옥에 다 버리고 왔습니다. 왜 버리고 왔지? 죄 짓는 것, 노름 하는 것, 남 잘못 되는 것, 쌔벼 먹기, 새치기, 사이 치기, 오만 것 밖에 못 했습니다. 그건 다 지옥에 버리고 와야 됩니다. 택자가 천국 갈 때에도 사기 기술, 노름기술, 거짓말 혓바닥, 남 욕하기, 미워하기, 시기하기, 이런 것은 쏙 뽑아다가 지옥에 버리고 천국 가지 믿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라고 소매치기, 컨닝, 도둑질, 양심불량 이거 가지고 슬금슬금 천국 갈 때 가지고 들어가지 못 합니다. 천국 들어갈 때 전부 다 걸러서 내 버립니다. 이 땅 위에 산 것,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전부 다 가져갔을 거고,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한 80%, 90% 가지고 갔을 거고, 어릴 때부터 믿었으니까. 백목사님은 26에 믿었으니까 26년 산 것은 전부 다 지옥에 버리고 믿고 난 것만 겨우 가져 갔을 것이고. 우리는 택자고 중생이 되면 하나님 앞에 가기는 무조건 갈 건데 어제 부부싸움 한 것은 천국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할 걸요. 이래야 더 잘 믿냐, 저래야 더 잘 믿냐, 토론한 것은 가지고 가지만은 두고 갈 땅의 것 때문에 부부가 더 잘 먹겠다고, 상대방 악용 하겠다고, 이용하겠다고, 이래 가지고 부부싸움 한 것은 그 싸움 기술은 천국 가 가지고 천국에서도 부부싸움 한 기억이 있고 부부싸움이 연장되고 그러지를 못 할걸요. 천국 문에서 다 가로막히고 다 색출해서 분리수거해서 지옥에 다 태워 버립니다.

말씀으로 산 것, 말씀으로 가진 마음, 신앙의 마음, 옳은 마음, 깨끗한 마음, 깨끗한 생애만 추려서 천국에 설 건데 똑같이 80년, 90년을 살고 하나님 앞에 갈 때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가져갈게 많고 저 같은 사람은 10분의 1이나, 100분의 1이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하나님과 자기의 1대 1의 문제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두 길을 우리 앞에 두셨습니다. 항상 두 길입니다. 내 맘대로 살아도 자유입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은 꼭 데리고 가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씨, 내가 잘못 산 행동까지 다 가지고 가지는 못 합니다. 이 마음, 저 말투, 이 심보, 젊을 때 잘 못 산 세월, 다 지옥에 버리고 가니 천국 갈 때 가지고 갈게 모두가 다 차이가 많을 겁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어지러운 세상 복잡한 2년의 코로나 상황에서도 또 금번 연년이 계속 되는 집회로 이 산속까지 불러 주신 주님, 항상 두 길을 우리 앞에 두시고 아담이 자기중심 되어 하나님 없이 인류를 생지옥으로 만든 첫 길을 걸어간 아담의 결정은 그에게 불행 자자손손 오늘 우리에게까지 모든 불행은 전부 아담의 선택이었는데 그 아담을 원망하며 오늘의 아담인 자기 현실의 자기는 또 자기중심의 죄를 지어 자기도 불행, 자기를 이어 가는 자기의 식구들, 신앙의 식구, 가정의 식구에게 불행을 끼치는 오늘 현실에 잘못된 아담 되지 않도록 나를 위하여 가족과 신앙의 식구들을 위하여 주님 날 위하여 대속의 길을 걸으심처럼 나도 대속의 이 십자가의 걸음을 걸어 나의 한 충성으로 의로 순종으로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식구들이 주님의 구원의 복음의 복된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처럼 걸을 수 있도록 이번 집회 기간 늘 항상 두 길을 마음속에 두고 항상 한 길을 복되게 찾아가는 모든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깊은 산속까지 오가는 안전 늘 지켜 주시고 밤중의 위험이나 모든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보 해 주사 복음의 복된 한 길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 변화의 능력을 안고 가는 이 기회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예배 마쳤습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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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22.05.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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