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21.8.3. 엡5:31 신앙 결혼의 신앙 부부라야 이성의 혼탁한 말세 대처. 부부의 성경 의미는 주님과 하나가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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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처음 오시는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화전21.8.3. 엡5:31 신앙 결혼의 신앙 부부라야 이성의 혼탁한 말세 대처. 부부의 성경 의미는 주님과 하나가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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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3 집회 4 (화전)

제목 : 신앙 결혼의 신앙 부부라야 이성의 혼탁한 말세 대처. 부부의 성경 의미는 주님과 하나가 원형

본문 : 에베소서 5장 31절 -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주님을 모시고 천국을 향해 잠깐 준비의 어두운 세상을 거친 들을 통하며 걸어가야 되는 저희들 말씀의 검 말씀의 좌우의 검으로 밤의 어둠 속에 오는 원수 막아내며 가야 되겠는데, 주님 모신 육십 용사의 솔로몬의 연을 둘러싼 용사들처럼. 죄악이 넘치되 살기가 어려워 넘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좋아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여 먹고 마시며 스스로 신앙을 버렸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다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신앙 포기에 기가 막힌 때가 되었나이다. 더욱 부족한 저들이야 수에 칠 가치도 없겠는데 좋은 길 좋은 소속을 주셔서 소망을 보게 하니 감사합니다. 실력으로 불렀다면 이 자리에 올 수 없는 저들인데 은혜로 부르셨고 험악한 시대에 금번에도 집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은혜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세상을 향하는 무리들 속에 먹어 주를 향하고 마시므로 더욱 주를 향하고 결혼으로 신앙 가정을 만들어 세상이 남자도 여자도 다 무너트려 버리는 혼돈의 때에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주님 주신 사명에 눈을 뜨고 밤의 두려움 속에 말씀의 검을 차고 솔로몬의 연을 옹위하는 육십의 용사처럼 걸어가는 오전 예배 저들이 되도록 전하고 듣는 저들 사이에 말씀을 깨닫는 은혜 주시고 변화의 능력을 허락하여 어둠을 빛으로 세상 속에 헤쳐 나가는 노아의 신앙의 가정처럼 우리 각자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집회로 오고 가는 모든 길 늘 안전을 지켜 주시고, 산 속의 험악한 짐승들, 볼 수 없는 병균 하나까지 주권 능력으로 조절 하시되, 어떤 불편 고난 속에서도 하늘을 향하는 우리의 정성, 소망은 변치 않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건강하게 자랐으면, 첫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과 인격이 바로 되었으면, 둘째 시간의 마음 문제였습니다. 오늘 새벽 세 번째 시간에, 주신 건강 주신 생각이 바로 되었다면. 한 스무 살이면 몸도 마음도 준비는 된 겁니다. 그 속에 신앙이 있으면 살았고, 아무리 좋은 몸 아무리 좋은 인격자라도 속에 신앙 없으면 송장입니다. 이건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빼앗아 오지도 못하고 이건 주입을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어주셔야 ‘믿어 봐야 되겠다. 신앙이 중요하구나.’ 하나님이 열면 저항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세계가 신앙의 세계입니다.

몸도 중요하다 했습니다. 요즘은 다 건강한데, 주변을 돌아보면 ‘아, 지켜주셔야 되겠구나.’ 요렇게만 느끼면 됩니다. 너무 좋을 때라 방심만 안하면 됐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몸이 부러지면 야곱처럼 바울처럼 죽는 날까지 불편한 몸을 가지고 늘 주님만을 더 바라보면 보배입니다.

그다음 마음이라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천국과 지옥, 성령과 악령, 죄와 의.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래? 바른 마음 좋은 마음 복된 마음 가지도록. 우리 열 살 밑으로만, 바른 마음 좋은 마음 고운 마음, 좋은 것 같습니까, 나쁜 것 같습니까? 좋은 겁니다. 그 나쁜 것 아닙니다. 그다음 10살에서 20살까지, 좋은 마음 좋은 생각 좋은 자세, 그렇게 나쁜가요, 이게? 아, 이왕이면 복된 마음 가지지, 남이 봐도 원수가 봐도.

원수라 쥐어박으면서도 ‘거 참 생각은 맞다. 자세가 좋다.’ 그렇게 제 마음을 좋게 만들어 남 줍니까? 손해 봅니까? 예전에는 돈이 없고 밥이 없어 먹고 살기는 어려워도 마음씨는 정상이고 대개는 좀 괜찮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마음씨 자세가 희귀합니다. 이런 때에 바른 마음 좋은 자세 가지면 그것만 가지고도 세상의 보배가 됐고 그 어떤 자격증보다 나을 겁니다.

이 두 가지를 가져야 되는 이유는 생명의 신앙이 마음을 붙들고, 생명의 신앙이 마음을 붙들고 움직일 때에 몸을 붙들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서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첫 시간에 몸, 도구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장 기계입니다. 요즘 기계가 좋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기계가 좋으니까 얼마나 효율적입니까? KTX 타 보셨습니까? 서울서 부산 열흘을 걸어가던 시절에 눈 깜빡할 사이에 안전하고 빠르고 좋게 갖다 놓습니다. 이런 게 연장입니다. 기계입니다. 좋은 몸, 기도하고 가져야 됩니다. 고장 난 기계라면 몸이 부러졌다면 죽는 날까지 늘 불편한 그 몸을 돌아보며 ‘주님 잊지 말아야 되겠다.’ 그게 첫 시간입니다.

둘째 시간은 마음. 내 마음이 소속을 결정합니다. 하나님 편 할 거냐, 귀신 편 할 거냐? 네 멋대로 살 거냐, 좀 바르게 살아볼 거냐?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에 결정권을 쥔 이 마음이 이게 관건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

그리고 지난 시간 신앙이란 생사문제라 그랬습니다. 이건 은혜만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 가지고 안 되니까.

그다음 이렇게 몸 마음 여기다 대고 신앙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몸과 마음만 건전해 가지고는 서른 안에 결혼이 어려운 때가 되어 버렸습니다. 좋은 몸을 가지고 좋은 생각으로 세상을 앞서 가며 훌륭하게 가는 사람들도 ‘뭔 20대에 결혼을 하나?’ 상식입니다.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눈을 떠서 주님이 만든 세상 주님이 주신 가정 주님이 주신 나라는 사람을 여자로 남자로 만들었다면, 이게 스물이 넘었는데 혼자 돌아다녀야 되겠는가? 아 그건 아니겠다. 신앙의 눈이 떨어지면 성경을 읽고 깨달아지면, 준비도 안 됐는데 불편한데 잘나지를 못해 상대방도 못 찾지마는 마음이라도 결혼하는 것이 낫겠다.

남자니까. 남자 아닌 사람은 평생 살아도 여자가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잘난 겁니까, 고장이 난 겁니까? 한 스물이 되면 남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저 남자 생각 안 난답니다. 그건 자랑이 아니라 고장난겁니다. 아니면 양심불량이든지.

하나님은 남자 여자 만들어 한 스물 되면, 둘이 합해 놓으면 둘이 합하면 1+1은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1+1이 되면 1.5가 된답니다. 무슨 뜻인지 다 아시지요? 남자가 서른까지 돈 벌고 여자가 서른까지 돈 벌어 서른 너머 겨우 하나 될 건데, 미리 결혼하면 인물 어떡하라고? 직장 어떡하라고? 내 일정 어떡하라고? 애나 생겨놓으면 꼼짝도 못하고 어떻게 하냐고? 1, 1을 더하면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물에 1더하기1 결혼을 해 놓으면 1.5가 되든지 1이 돼버린다 이럽니다.

하나님은 남자 1 여자 1 둘을 더하면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1+1은 100이 되고 천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한 길로 주셨는데, 그 성경 몰랐으면 전들 알겠습니까? 안 배웠으면 전들 알겠습니까? 정상적인 인간으로는 모르는 길입니다.

좋은 몸 주셔 잘사는 시대가 됐고 정신머리는 전부 다 거꾸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이 자리까지 따라오셨으면 앉았으면 억지로 오셨어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만하면. 100점은 아니나 그 정도면 괜찮지. 어느 미친 인간이 이런데 와가지고 이렇게 앉아있습니까? 부모 때문에 형제 때문에 집안에 화평을 위해서 주변에 걱정을 해 싸니까 오는 척이라도 했다면 그 정도의 마음과 자세라면 굉장히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은혜를 하나 더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가정의 은혜.

65 페이지를 보겠습니다. 몸과 마음과 신앙이 들어갔다면, 몸과 마음이 정상이 되고 신앙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가정의 은혜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 1장, 65페이지입니다. 결혼. 결혼하고 해결 하는 게 맞지, 미뤄놓고 안 하고 해결하는 법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결혼이야 하면 하지마는 돈벌이 돈 누가 벌건가? 어떡할 건가? 불신자도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 그러는데 지난 5월에 배운 복음의 마태복음 5장 6장 7장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직장 좋아서 그것들이 먹고 입고 그럽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 너희들일까 보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니요! 선으로 결혼해놓고 먹고 사는 거 어떻게 하려고요?’ 삼성 재벌 아들 흉내를 내려니까 돈이 없겠지. 평생을 벌어 이제 자리 잡은 50대 60대 흉내를 스무 살짜리가 다 내려니까 돈이 없겠지. 아, 스물이면 스물답게 세 끼 밥 먹으면 됐지. “먹을 거 입을 거 있은즉 족한 줄 알지니라.”

경제를 제대로 돌아보면 세상 살아가는 게 편해집니다. 그게 후퇴적이고 패배주의적이고 그게 세상을 회피하고 기피하는 그런 염세주의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세상과 경제를 신앙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믿는 사람은 잘 믿지는 못 해도 경제는 넘어서야 됩니다. 경제 염려는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놀고먹어도 국가에서 밥 차려 주는 때가 되어버렸습니다. 6,000년 인류역사에 먹는 걱정 안 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를 않았습니다. 먹어야 생존을 하는데 생존을 위해서 별 별 일을 다 했는데 오늘은 너무 오래 살아 집집마다 골치가 아프지 않습니까? 90이 넘고 백 살이 가까운데 본인도 안 죽으니 참 죽겠고 주변에서도 저 정도면 이제 가셔도 되는데 안 죽는데 어떡합니까? 이렇게까지 몸과 건강과 수명을 확보해 주셨는데 좀 맡겨 놓으면 안 되겠습니까? 경제 문제입니다.

그다음 밑으로 세 번째, 결혼해서 가정 가지면, 경제는 잠깐 생각해보면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나면 이제 사람 노릇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충직. 아주 충성스러운 사람 말고 한 사람이 한 사람 자기 몫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 불신자도 10살 되면 제 밥벌이는 했습니다. 서른에 제 밥벌이 못하는 사람 많지요? 엄청나지요? 40에도 부모 신세지는 사람 많습니다. 결혼하여 신앙가정 가지고 경제는 어떡할까? 성경으로 신앙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경제 방법 배워보시고, 그러면 한 가정 한 사람이 이제 자라서 가정가지고 경제문제 벗어나서 적어도 ‘남에게 신세는 지지 아니한다.’ 이렇게 되면 그러면 3부의 사명의 사람으로 그다음에 나가는 겁니다.

앞에 3시간은 자라가는 과정. 네 번째 시간 가정의 은혜 결혼을 두고 살피기 전에, 금번 집회에 코로나에 어지러움도 너무 많았고, 또 첫날 오늘 새벽까지 비도 너무, 화면 준비하십시오. 앞에 불 끄시고. 모두 폭우 때문에 걱정도 너무 많이 하셨고 이렇게까지 불편한데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모처럼 화면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한 번 살펴봐 보십시오. 앞에 화면 봐보십시오.

19세기 1800년대 미국입니다. 저때는 미국 나라가 잘 나가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전부 통나무 베 가지고 통나무 앉아서 숲 속에 있습니다. 숲속에 저래 있으면 화장실 문제 어떡할까요? 화장실 문제 어떡할까요? 시내에서 떠났고 교회 떠났고 저 들판에 저 야산에 저렇게 있으면 물은 어떻게 하지요? 화장실 어떻게 하지요? 먹어야 되는데 밥솥 들고 가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미국나라가 처음에 식민지로 시작했다가 독립을 하고 선진국은 아니지마는 이제 좀 먹고 살만하지 않느냐 이럴 때에 신앙이 침체가 되고 자유주의로 삐뚤어질 때, 정신 차리자 이래서 안 된다 그래 가지고 시내를 두고 집을 두고 교회를 두고 일부러 야산으로 몰려가서 ‘하나님 은혜 아니고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게 공회 산 집회 우리의 집회, 미국은 150년 200여 년 전에 저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편리 찾지 않았습니다. 고생해도 어려워도 힘들어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되겠다 그 일념으로 저렇게 몰려갔을 때 ‘이 나라한테 세계를 맡겨야 되겠구나.’ 그 하나님이 볼 때 그렇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험한 땐데. 여기다 대고 비 와 놓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주변 시설 봐 보십시오. 저 비 와 놓으면 판자때기 강단 위에도 비 쏟아질 거고. 마이크가 없을 땝니다. 1시간 설교하면 목이 나가버릴 때입니다. 근데 모인 사람 왜 저렇게 많지요? 놀러 갔습니까? 사은품 줍니까? 춤춥니까? 율동합니까? 전자 오르간으로 분위기 맞춰줍니까? 오직 말씀 하나!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느냐? 선조들은 영국에서 잘 믿겠다고 왔는데 먹고 살만하니 벌써 이렇게 돼서 되겠느냐? 정신 차리자! 이 각성, 이 각오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 큰일 나겠다.’ 그 마음으로 저렇게 곳곳마다 모였을 때 하나님이 ‘세계를 맡겨야 되겠구나.’ 그리 되어진 겁니다.

그다음 사진입니다. 이렇게 노천에 한 번 두 번 이어지다 보니까 자꾸 비가 쏟아지니까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천막은 비닐 고무가 없어서 비 오면 맞비는 맞지 않는데 새는 비는 맞아야 될 때입니다. 여전히 화장실 문제, 씻는 문제, 식사문제. 생각 좀 해 봐 보십시오,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이 천막 짐 들고 나르려면 차 없던 시절이라, 뭔 저런 고생을 하는 고? 예배당이 있는데! 집에 앉아서 방송 틀면 되는데 뭐하려고 산중에까지 저렇게 가는고? 학교는 왜 갑니까? 집에 놀지? 배워놓으면 쓸데가 있으니까. 옆에 학교 가지 뭐 하려고 서울까지 학교 갑니까, 미쳤습니까? 서울까지 가서 배우면 좀 나으니까. 미국까지 왜 갑니까? 뭔가 있으니까. 아 집 팔아 미국도 가고 서울도 먼데도 가면서, 살던 동네 벗어나 세상 보이지 않는 야산에 말씀만 사모하는 그 중심보고 주님은 ‘참 됐다. 편하면 더 편할 건데 좋으면 더 좋아질 건데.’ 이 유목민족들이라 미국 사람들은 항해의 유목민족들이라 어디 한 곳에 저런데 처박히지를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주의 은혜라야 된다고 저렇게 숲 속까지 왔느냐? 하나님이 감동으로 하사 복을 부어 주지 않을 수가 없는 자세입니다.

그다음 사진 보시지요. 이제는 계속 주의 은혜 인도가 있으니까, 가운데 천막이 지금 좀 큰 천막입니다. 개인숙소 쭉 치고 가족 숙소 치고 가운데 예배당 천막 치고. 저 비 오는 비 오면 비가 아직도 새는 천막입니다. 이 천막의 형태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텐트들을 이렇게 텐트들을 나란히 두는 것이 옛날에는 전쟁을 하면 군인들이 저랬습니다. 로마군 2000년 전에 모습도 저렇습니다. 거기서 나온 게 'camp' 'camping' 'campus'라 말이 바로 저런 말입니다.
은혜 하나 바라보고 노천에서 시작했다가, 개인 천막은 쳤는데 강단은 아직도 판자때기였다가, 이제 예배당도 천막을 마련했습니다. 이때가 100년 전 19세기 1800년대 진행이 되는 겁니다.

넘겨서, 집회를 온 가족들이, 봐 보십시오. 젖먹이 아이도 있고 초등학생도 있고 중학생도 있고 결혼한 부부도 있고. 멋있지 않습니까? 술집에 가서 뛰고 굴리고 생난리를 해야 ‘아이고 놀아서 기분이 좋다.’ 어떻게 죄악의 낙에 빠져놓으면 그렇습니다. 담배 피우는 재미, 술 먹는 재미, 뚜드려 패는 재미 그런 악취미도 있는데 부모가 온 아이들 손주까지 집회 와서 오전예배 마치고, 사진기가 나온 거 보니까 한 150년이나 되는 거 같습니다. 이게 가정입니다. 어떤 가정? 하나님이 굽어보며 그 신앙의 가정 이 복을 줘야 되는 가정이겠구나.

그다음 사진입니다. 차 모습을 보니까 한 백 년 전에 사진입니다. 초기 차량입니다, 천막 사이에 보이지요? 편리해져서 차는 타고 왔으나 여전히 숙소는 비가 오면 문제가 되는 숙소입니다. 바람 불면 비바람 치는 데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는 편리해지고 편해지고 좋아진 시내, 좋아진 문명, 교회, 집이 있는데도 일부로 여기까지 와 가지고, 지금 요때만 해도 미국이 주일을 그대로 지켰던 때입니다.

그다음 사진 볼까요? 이제는 의자를 놓고 더 편리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숫자가 줄어 버렸습니다. 좋아지는 게 나쁜 것은 아닌데, 숙소 천막 예배당 오가는 차량 좋은 게 좋아지면서 신앙을 위해 은혜를 위해 좋아지는 것은 좋은데, 시설은 좋아지고 외부는 좋아지는데 속에 신앙과 말씀이 줄어들면 교인 수가 줄어버렸습니다.

그다음 사진 볼까요? 이제는 형광등이 나와 좋은 집에 야외에 멋있게 모였는데, 교인들 몇 명이나 되는 것 같습니까? 그 안에 교인들 나이가 좀 보입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 몇이 모여서, 옛날에는 노천에서 예배 봤는데 천막 치고 봤는데 옛날에 구름떼같이 모였는데 옛날에는 좋았는데, 옛날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어떠냐?
이 분들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기르지를 못 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분들은 어릴 때 부모 따라 천막에 예배 보고 텐트 예배 보고 노천에 예배를 봤던 분들입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했으니까 나이가 많은데도 지금도 옛날 집회 은혜 생각하고 모였지마는, 아들들이 어디 갔지요? 시내. 손주들은 어디 갔지요? 미쳤습니까, 이런데 따라오게? 아들 떼버리고 손주 떼버리고 천국은 자기들만 가려고? 우리 때는 신앙이 있었는데 고생을 했는데, 이 요새 애들은 말을 안 들어. 누가 말을 안 듣도록 길렀지요? 자기들이 길렀지요. 이때의 은혜로 자기들은 천막 예배 텐트 예배 큰 은혜 받아 놓고, 받은 은혜로 세상에 다 보내버렸습니다. 이건 발전이 아닙니다. 이건 속화가 되는 거지.

그다음 사진 넘겨볼까요?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80이나 됐는지 90이나 됐는지, 설교에 은혜가 빠져 버리니까 지금 팔을 턱 걸치고 ‘뭐라고 연설하는고?’ 관광 왔습니다, 옛날 생각하며. 이러니까 숫자가 안 오니까 숫자가 적고 젊은 사람이 안 오니까 ‘어떻게 해야 젊은 것들도 오게 할까? 옛날로 돌아가서 불편해도 말씀에 은혜 중심으로 모이자.’ 이러면 좋을 건데.

처방이 어떤 처방이 나오느냐면, 그다음에 사진 볼까요? 기타를 치고 북을 두들이고 막 그냥 발광을 하면 젊은 것들이 올 거 아닌가? 뭐하려고 예배당 와서 이 짓 할 겁니까? 밤무대를 가지. 세상 가면 더 잘하는데.

그다음 사진 볼까요? 이제 멀리 갈 것도 없고, 이런 차들은 뭐 한 대에 1억 하는 그런 좋은 차들입니다. 호텔보다 좋은 차에 끌고 와서, 이렇게 와서 숙식은 해도 말씀의 은혜에는 100년 전의 초창기의 은혜를 붙들면 되겠는데, 말씀은 옛날에 다 잊어버렸고 말씀의 은혜는 상관도 없고 행사로 와서 ‘옛날에 8월마다 집회를 했는데.’ ‘5월마다 집회를 했는데.’ ‘우리가 여름에는 저 숲속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습관이 되어 가지고 오기는 왔지마는 나이 많은 이들만 있든지 아니면 젊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려니까.

11번 사진 넘겨볼까요? 막 손을 들고 젊은 사람들이 꽉 모여서 난리 났습니다. 순복음 식이라야 모이지.
폴짝폴짝 뛰고 예배인지 말씀은 없고 그냥 율동에 찬양에 CCM에 난리를 하니까 방역당국에서 ‘이래놓으니까 이거 코로나가 난리가 나겠구나.’ 그래서 전부 막아 버린 겁니다. 국가에서 지금 방역이라고 예배당만 다 뚜드려 막는 이유가 교회라는 교회는 교회가면 뛰고 굴리고 발광을 하니까 이게 마구 터져 나가니까 전부 다 ‘통성기도도 하지 말아라. 예배당에 모이지도 말아라.’ 발버둥을 치니까. 미국 교회 100년 전에 처음 예배드릴 때처럼 그리 예배드리면 ‘조금 떼어놔 앉으시지요.’ 그랬을 겁니다. 공회에서 자라서 공회 예배만 아는 사람들은 뭔 소린지 모르시죠? 공회 밖에 저렇게 신나는 예배당 다녀본 분들은 뭔 말인지 저보다 더 잘 아시지요? 이렇게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에 하나님이 미국에 주신 은혜를 걷어버린 겁니다.

넘겨볼까요? 미국은 150년 전 약 200년 전 19세기에 통나무에서 저렇게 시작했다가 그다음 좋아지면서 마무리 할 때, 60년 전에 사진입니다. 1964년, 현재 우리 집회 장소에서 저쪽을 건너다보면 높은 산이 있습니다. 그 산 다음 산이 삼봉산입니다. 삼봉산에 집회 할 때, 사진 제일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백 목사님입니다. 그 다음 그 사진 중에 제일 오른쪽에 계신 분, 그 뒤에 보면 애매한 천막 있습니다. 그 천막 하나에 예배드리고. 그리고 강사 목사님 1인용 천막 하나, 김봉태 집사님이라고 부자 집사님 천막 하나, 한두 개 외에는 전부 다 천막 안에 들어갔든지 노천에서 예배 드렸습니다. 그때가 한 30명 40명 시작했던 때입니다. 삼사십 명 시작했다가 ‘이렇게 사는 게 맞겠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이제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데리고 조금씩 많아졌을 때입니다. 지금 이때 사진이 한 100명, 120~30명 될 때 사진입니다. 이때 집회 참석한 분 이 자리에 딱 한 분 계십니다. 저희들은 이럴 때에 ‘애들 오는 거 아니다. 오지 마라.’ 해서 못 갔습니다. 뭐 어른들은 그냥 어디 가더라, 그것만 들었지.

그다음 사진입니다. 우리 이 집회 장소 너머 저 삼봉산에서 집회 할 때, 부산에 식물원 동네 식물원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칠십인 바위라고 있습니다. 그 바위 위에 옆에 축대를 쌓아가지고 거기서 집회를 했고, 강사 목사님은 바위 밑에 커튼 하나 치고 바위 밑이 강사실이었습니다. 축대 위에 보이는 그 천막이 군인 24명 들어가는 소대 천막입니다. 그거 한두 개 가지고 전부 노천에 그렇게 예배 봤습니다. 1960년대 전부 다 그랬습니다. 그분들이 기도하고 그분들이 ‘우리는 이렇게 믿어본다.’ 그걸 보고 하나님께서 부어 준 게 그다음 사진입니다.

예전처럼 늘 말씀과 말씀 은혜는 그대로 진행이 되면서 비 맞지 않도록 지붕만 올려놓은 겁니다. 이렇게 모였을 때가 1989년까지 계속 되면서, 왼쪽 사진은 5월에 오천 명, 그다음 오른쪽 작은 사진은 만 오천 명 모인 자리입니다. 우리 집회 장소 오다가 중간에 있습니다. 만 오천 명. 만 오천 명의 20%면 거창군이 ‘20%만 들어오라, 정원의 20%.’ 그러는데 삼천 명 들어가도 됩니다. 군청에 가서 조사를 해봐도 ‘만 오천 명 모였는데 20%만 오십시오.’ 삼천 명 들일 수가 있습니다. 뭔 문제가 있나요? 우리 공회의 역사입니다.

넘겨서, 다리를 건너 저 산에 보면 천막 치느라고 다 벗겨졌는데 그 다 천막들입니다. 대로에서 한 20분을 걸어가야 됩니다, 이고 지고. 현재 우리 집회는 현관에 차에 짐 싣고 숙소 앞에 차 짐 내리고.

어제 밤도 폭우가 많아서 뭔 비가 많으냐, 질척거리냐, 왜 이러냐, 원망하고 불만을 하려면 죽는 날까지 욕을 해도 될 만큼 하나님께서 자꾸 욕 할 거리를 줍니다. 미국 교회가 150년 전에 산속에서 비 오면 오는 비 맞아 가며 저렇게 예배를 드렸는데, 아니 뭐 이정도면 호텔이죠 뭐. 말씀 배워 내 마음이 바뀌고 세상으로 달려가는 이 몸을 좀 붙드는 게 중요하지. 들어보자, 배워보자. 이렇게 마음먹으면 형광등 감사, 방수 감사, 냉난방 감사, 마이크 감사.
여러분 앉아 계신 그 의자가 서부교회 본당 의자입니다. 목욕탕에 화목으로 실려 가는 걸 제가 가져왔습니다. 목욕탕 화목으로 들어가니 우리 쓰겠다고. 저 같으면 이거 오래 되면 박물관에 돈 받겠던데? 가치를 모르면 목욕탕 화목으로 그냥 가져가라 그러고, 가치를 알면 빼다가 여기에 갖다 놓는 겁니다. 누가 지혜로울지는 길고 짧은 거는 대보면 알겠지요. 전 안 대봐도 그냥 딱 보면 알겠습니다. 공부는 못 해도 눈치는 좀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도로에서 좀 약한 사람은 30분, 잘 걷는 사람도 20분을 이고 지고 저렇게, 이러다가 여기 지금 비 쏟아지면 어떡하지요? 아 비 오면 맞지 뭐. 농사짓다가도 비 오고, 학교 갔다가 소나기 쏟아지면 비 맞는 것이고, 그러면서 믿는 거지. 뭐 이건희 회장 외동아들입니까? 당연한 거지. 이게 신앙입니다. 군인이 비를 무서워합니까? 학교 가는데 비 온다고 안 갈 겁니까? 요즘은 뭐 코로나 때문에 안 간다면서요? 그러면 학교가 아니지요? 근데 이 콘크리트 다리가 있기 전에, 이 콘크리트 다리를 놓은 이유가 원래 다리가 좀 약했는데 홍수에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다음 사진, 강사 목사님을 지게에 지고 날랐습니다. 또 그 옆에 보면 다른 분들도 지게를 지고 지금 나이 많은 사람, 아이들을 지고 나르고. 전부가 이렇게 이 냇가를 지고 나르고 이렇게 집회를 봤습니다. 이게 공회 정신입니다. 이게 공회 신앙입니다. 당연히 그러는 거지요.
일부러 고생할 것은 없지만 주님이 어려움 주시고 고생을 할 기회를 주시면 아 훈련 받고 연단 받고 좋은 거지. 주님 날 위해서 여기까지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도 죽었는데, 아 이 정도를 안 해? 서울대 의대 입학한 학생이 등록금 비싸다고 안 가! 뭔 놈의 돈을 달라 그래? 못 가! 그런 사람 보셨습니까? 가치가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넘깁니다. 오천 명, 만 오천 명에 우물이 하나 밖에 없어서 쌀 씻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애들 데리고 간 사람은 빨래도 하고, 미안하고 좀 경우를 아는 사람들은 뭐 안 씻고 일주일 버티고. 이렇게 오글거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집회 주최하는 저희들은 이왕이면 조금 편리하도록 우리는 노력하고. 교인들은 옛날을 생각하며 위험하지 않다면, 견딜 만 하다면, 조금 조심할 만 하다면 더 이상 더 좋게 만들면 안 되겠습니다. 신앙은 야성입니다, 신앙은 야생입니다, 신앙은 광야입니다. 40년 광야를 갔는데. 미국 교회, 총공회 다 은혜 받던 시작은 당연히 저렇게 했는데. 아 학교 좋다고 서울까지 가는데 미국까지도 가는데, 아 이 정도야 당연하지요. 교인은 좀 불편한 걸 당연하고 나 실력자라는 데 좋은 거다 생각하시고, 저희들은 돈을 맡아서 쓰는 사람들이니까 돈 낸 사람 위해서 저희들은 좀 노력하고. 그렇게 한다고 해 본 것이 현재 우리 내계 집회입니다.

그다음 사진, 이렇게 박작 거리는 사람들 다 칼잠 자고 잤던 그런 때입니다. 이게 공회 집회였고.

그다음 넘깁니다. 그렇게 오천 명, 만 오천 명 모일 때에 우리 지금 조립식 숙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부 천막들입니다. 왼쪽 천막은 비가 새는 천막입니다. 맞비는 피하는데 새는 비는 못 피합니다. 오른쪽 사진에 녹색 지붕 이게 고무 코팅이 돼서 비가 안 새는 첫 천막입니다. 이거 나오자 백 목사님 가시고 공회가 깨지고 흩어졌습니다.

그다음 사진. 오천 명, 만 오천 명 모일 때도 늘 지붕 하나에 벽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천 명이, 21번에, 이렇게 모여 놨으니 보통 일이겠습니까?

현재 우리 내계 이만 평에는 만 오천 명이 집회 하던 데 보다 여기가 여건이 더 좋습니다. 우리 마음은 여기 우리만 예배드리기가 죄송해서 전 공회가 다 여기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말했더니만, 저 인간들이 전국 200개 교회 착취하려고 한다더라 이렇게 소문을 내고 삐라를 뿌려서 또 오던 분들도 못 오시고 그러는데, 그런 말 듣고 또 못 올 분들은 안 오셔도 할 수가 없고, 그러던지 말든지 우리는 우리 길 갑니다.

22번, 서부교회에서 오천 명이 집회 갈 때 관광버스를 한 100대를 냈었습니다. 학생만 이천 명, 4~50대. 현재 이 사진은 5월 집회 갈 때 서부교회 한 천 오백 명, 이천 명이 움직이면 부산역에서 기차 12칸 전체를 전세 내가지고,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집회 가는 교인들입니다.

5월에, 옛날 그 때는 연차 없었고, 월차 없었고, 집회 한 번 갔다 오면 전부 다 직장 대부분 다 잘렸습니다. 좋은 직장 가진 분들은 집회를 못 오셨고 근데 좋은 직장 가진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몇 명 안 되니까. 그래서 대부분 교인들이 국제시장 보따리 장사하고 노가다 했습니다. 집회 가기 위해서. 집회? 일가다 안 가면 되니까. 갔다 와서 또 일 찾으면 되니까. 그런 걸 광야 신앙, 광야 교회, 그런 신앙을 보고 ‘그 이것들은 좀 복을 줘야 되겠구나.’ 하나님은 늘 그런 사람 찾습니다.

그다음 넘깁니다. 백 목사님 돌아가시고 산산조각 날 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옛날처럼 그대로 이어 가겠다 해서 신풍 뒷산의 중턱입니다. 이 마당이 한 10평, 15평, 10평 될 겁니다. 그 가운데 작은 건물이 화장실 한 개입니다. 여기 한 3~4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사진, 마당에 그냥 차양 하나 치고 이렇게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제일 오른쪽에 앉은 분이 오정옥 씨라고 우리 저 지이은 신부 시어머니입니다. 그 시집 좋은데 간 겁니다, 그거. 이 집회가 몹쓸 집회면 잘못 갔고. 공회 집회 제일 처음 시작할 때 차양 막 아래, 이 분은 직장이 괜찮아요. 그래도 여기 이렇게 제일 앞자리 앉았으면 좋은데 아닌가요? 그 가운데 지금 얼굴 크게 보이는 분이 조례 교회 오영미 집사님입니다. 딸들 어디 갔지요, 지금? 10대 때는 스물 되면 결혼 한다고 사람 맞춰 놓고 맨날 사람 통해서 연락 들어오더니만 스물 딱 돼버리니까 지금 얼굴 보이지도 않습니다. 원지 있나요? 원실이 있나요? 좋을 때 결혼 하시지요! 원지, 원실이 전부 다 제가 이름 지은 이름입니다, 에덴동산 되라고.

그다음 사진 보실까요? 집회 참석하는 전부가 이 식당 지금 옆도 없고 위에 밖에 없는 식당에 솥 걸어 놨지요? 산중턱까지 오영근 장로님하고 동천 교회 최종성 씨 아버지, 지게에 가스통 지고 오르내렸습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천막이 이렇게 다 했는데 여기는 비가 오면 질퍽거려서 미끄러지고 위험한 데입니다.

그다음 사진, 그 부엌 뒤에 샘물이 하나 있어서 여기에 물통 갖다 놓고 여기서 씻고 밥 해 먹고 다 여기서 해결 했습니다. 그때 공회 집회는 잘 나갈 때입니다. 잘 나가는 거 우리가 압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가면 본부 차지할 사람들인데 ‘신앙은 이런 거 아니다. 그렇다고 싸울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명 가는 거고, 옳으면 몇 명 가는 거고. 옳으면 가는 거지.’ 그러다보니까 한 오십 명, 육십 명, 한 백 명까지 올라가 버리니까 마당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그 마당 바로 밑에 철골을 해가지고.

그다음 사진, 천막으로 뒤집어씌운 것이 신풍에서 드린 마지막 집회가 1998년 5월 모습입니다. 동천교회 목사님 여기에서 목사 안수 받으시고 그 옆에 목사님이 모덕 목사님입니다. 안수 받을 때는 그냥 안수가 아닙니다. ‘순종 하겠습니다.’ 서약입니다, 결혼 서약처럼.

이 남자 내 남자로 머리로 삼겠습니다. 그게 결혼 서약입니다. 여반들 자기 남편을 머리 삼고 있나요? 화나면 머리 쳐 내버리고 그냥 바꿔 버리고 안 그러나요? 내가 한 약속은 내가 지켜야지. 머리 지가 도망가는 것은 할 수가 없지만 몸이 머리를 잘라서 제명을 시키고 발로 차 버리고 축구공처럼 말이 되나요, 이게? 부부서약, 예, 예, 예. 신혼여행 가느라고 바쁘니 모두 깨지지. 이거 내 머리로 삼아야 될까? 남자는, 이거 내 몸으로 삼아야 될까? 내 몸이 되면 못 떼 내버립니다. 이거 지고 살아야 됩니다. 생각 좀 해보고 예 해야 됩니다.

목사 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목사 안수할 때마다 우리 약속 받는 것은 주와 ‘복음 위하여 가족과 자기를 다 집어 던지겠느냐?’ 지금까지 번 돈 다 내놔라 그 소리입니다. ‘연보하고 죽는 날까지 저금 안 할 것이며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보내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전부 다 검정고시 해서 공부 하든지 말든지 자신 있냐?’ 그 서약입니다. 말은 쉬운데 그렇게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 120명까지 모여지다 보니까 더 이상 감당이 안돼서 현재 우리 집회 장소 오기 전에 한 20리 밑에 폐교가 있어서 폐교를 빌려서. 왼쪽은 2층 교사입니다, 여기는 숙소로 삼고. 오른쪽은 강당입니다. 이 강당이 일제 때부터 내려오는 강당이라. 그다음 사진,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집회가 여서 한 200명까지 되어졌습니다. 근데 이 집회 장소 폐교가 한 3년 잘 예배를 드렸는데, 임대료도 싸고, 안전하고 좋았는데 뒤에 보니까 백 개 교회를 가진 대구공회에서 이걸 구입을 했습니다. 돈 주고 산다니까 세 들어 사는 우리는 나오게 됐고.

그래서 현재 여기 집회 장소를 2002년도에 구입을 했을 때 원래 모습입니다. 가운데 집 보이는 것은 사슴 기르는 축사입니다. 그걸 지금처럼 시설을 해서 마지막에 지금은 남들이 보면 하꼬방 같지마는 52개 동을 만들어 오다가, 이렇게 하려다 보니까 돈이 있으면 건축비로 잘 짓겠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땜빵 땜빵 하다 보니까 국가가 보면 불법 시설입니다. 근데 말 안 하면 그냥 이대로 갈 건데 함께 집회 보던 분 중에 화가 한 분이 나가지고 성이 나가지고, 왜 화가 났냐? 교인 돈을 저한테다 대고 뺏어 달랍니다. 목사가 교인 돈 뺏어다 남 줄 수 있습니까? 못 한다니까 고발을 하는 바람에 그냥.

그다음 사진 보시지요. 현재 우리 집회 장소 안에는 막대기 하나도 전부 합법적으로 건축 허가 다 받아 가지고 해놓은 겁니다. 어제 코로나에 또 누가 고발을 해서 여기 조사 온 공무원들이 네 명이나 왔다는데, 뭐 마스크 썼지, 다 이렇게 흠 잡을 것이 없으면 불법 건물 있나 해 가지고 이걸로 불법 종교단체네 그러는 겁니다. 근데 미리 고발하느라고 법적으로 다 완비가 돼있는 바람에 뭐 뒤지고 다녀도 하나도 잡힐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고발한 사람들한테 진심을 기울여 감사합니다. 미리 고발 안 해줬더라면 예배는 마스크 쓰고 이렇게 띄어 앉으니까 됐는데 이것도 불법, 이것도 불법, 이것도 불법 그래가지고 수습이 되겠습니까? 감사할 일이지요.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 오기 전에 35번 볼까요. 그다음, 그다음. 예 다 허가 받고 지금 번호 붙인 겁니다.

그다음, 이게 이제 이번 코로나 오기 전에 집회 모습입니다. 이렇게 다시 내년부터는 집회를 드릴 수 있도록 소망하고.

작년, 올해 4번은 마스크 쓰고 이렇게 가림막 한 거 불편해도 불편 속에서 또 은혜에 기울이면 되고. 미국 교회, 공회 교회 처음 시작할 때 생각하면 이 뭐 가림막이고 마스크고 행복에 겨워 난리지, 뭔 이런 것 때문에 불편해서 이렇다 저렇다 그럴 것이 없습니다. 감사를 하려면 끝없이 감사 할 수 있고, 원망을 하려면 에덴동산을 줘도 하나님 자리 내 놔 그러고 선악과 따 먹은 게 인간입니다.

그다음 36, 이게 코로나 오기 전에 식당 식사하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사진이 요즘 사진이고.

예. 감사하자는 뜻으로 어제 오늘 비가 많아서 질척거려 꿉꿉해서 습기 때문에 불편한 분들 ‘아 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한도 없이 그리 나가면 현재 공회의 역량은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원하는 대로 다 맞추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에서 그치고, 이 정도 불편은 훈련으로 연습으로 ‘아 학교를 가도 그러는데, 뭐.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로 나가 버리면 끝없는 감사가 펼쳐집니다.

66페이지 보겠습니다. 이번 집회에 제일 주제입니다. 가정의 은혜, 따라합시다. 가정의 은혜!

몸도 결혼할 정도의 몸은 되어져야 되겠고, 남한테 맡기지 못할 몸을 남이 맡아준다면야 감사하지마는 남에게 못 맡길 몸을 내가 맡아 주시라 그러지는 못 하는 겁니다. 내게 장애가 있으면 날 맡아 주라, 복 받을 거다 그 말은 못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 이 불편한 장애인데 제가 모시고 살겠습니다.’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원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고 실력이 있다면 그 감사하고 신앙이 있는 겁니다.

몸도 준비해야 되겠고, 성격도 좀 돼야 되겠고. 결혼해서 왜 모두 파탄 나고 왜 모두 난리인가요? 성격, 인격, 생각, 생각하는 사고방식, 선 볼 땐 요래 생겼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요래 생겼네? 치워버려, 반납! 차도 반납, 우편 주문 물품도 반납, 파는 사람이 많이 팔려고 ‘반납을 받아줍니다, 반송을 해 줍니다.’ 해 놓으니까 결혼해서 반납, 반송. 그거는 신앙에 앞서 인격의 문제고 생각의 문제입니다.

가정의 은혜, 가정이란 자손으로 이어지는 특색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정이란 신앙으로 앞선 책임이 있습니다. 살펴볼까요?

가정이 이어지다니? 부모가 자녀 낳고, 자녀 낳으니까 이어지는 거 아니야? 그 말이 아니고. 따라합시다, 죄를 갚되 3-4대까지. 출애굽기 20장 2계명에 우상의 죄를 두고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로 갚되 3대, 4대까지 이어집니다. 3대, 4대까지. 아버지가 그 짓 하더니만 결국은 아들도 손주도 그러는구나.

이걸 끊으려면 내가 내 몸을 틀어쥐고 내가 내 마음에 소속을 바로 잡아 10대, 20대 내려왔을지라도 내 선에서 잘라 버려야 됩니다. 아버지 술독에 빠져 처자식 엉망을 만들더니만, 그 꼴 보고 ‘난 술 안 마시겠다. 안 마시겠다.’ 해 놓고 결국 그 놈도 또 술독에 빠졌구나. 3대, 4대 내려갑니다. 나는 혀를 깨물어도 술은 끊어 버리겠다. 내가 죄를 끊어버려야 내려오던 죄와 악과 저주가 내 선에서 끊어집니다. 이거 끊는 방법 뭐지요, 첫 시간에? 몸을 틀어쥐셔야 됩니다. 마음먹으면 됩니다.
여자 패는 남자, 예전에는. 지금은 남자 줘 패대는 여자. 애들이 보고 잘 배우겠습니다. 교육 잘 하고 앉았습니다. 그래야 되겠습니까? 나는 부부 싸움 안 하겠다 각오 해놓고, 보고 배운 게 그거니까 화만 나면 또 그 짓 합니다. 이제 내 선에서 이 몸을, 이 입을, 이 주먹을 틀어쥐고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이 악습을 내 대에서는 반드시 끊겠다. 믿는 사람은 끊을 수 있습니다, 도우심이 있어서. 그러라고 3대, 4대 이어주는 겁니다.

그 대신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의를 말하는데,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옳은 것, 복된 걸 내가 잡으면 이 은혜는 천 대를 내려갑니다. 그 말은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하늘나라까지.

죄와 악은 내가 끊으면 끊어집니다. 내가 끊지 않으면 내려갑니다. 3대, 4대 내려가고, 그럼 4대 가서 저절로 끊어지느냐?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주, 3~4가 모여지면 그 다음 5대손, 6대손에게는 더 큰 일이 떨어져 버립니다.
 
가정은 이어집니다. 죄도 이어지고 의도 이어집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내가 끊을 수 있게 했습니다. 끊으라고 3~4대 이어놓은 겁니다. 안 그러면 방심할 테니까. 네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들더냐, 네 할아버지가 마음에 안 들더냐? 할아버지의 잘못, 아버지의 잘못이 악습이 되어 저주로 내려왔느냐? 네가 끊어버려라 끊어진다. 끊어버립시다. 가정의 은혜, 결혼과 부부의, 자녀의, 이런 가정에 이게 내려가서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야 둘이 힘을 합해서 가정적으로 내려오던 이 저주를 이 잘못을 끊어 버릴까? 둘이 합하면 더 잘 끊어지기 때문에 둘을 모아 놓은 겁니다. 그리고 옳고 바른 걸 잡으면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결혼할 만하지 않습니까? 나 혼자 못 끊은 걸 부부가 노력하면 끊도록 해 주십니다. 그리고 새 은혜를 출발시켜 주십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좋을까? 이게 제 1순위일 건데.

회사가 사원을 모집할 때는 ‘어느 놈을 데리고 와야 돈을 잘 벌어줄 것인고?’ 그거 아닌가요? 그런데 돈은 잘 벌어줬는데 배신을 해서 국세청에 고발해버리면 큰일 나니까 누가 배신을 안 할 것인고? 돈을 많이 벌어줄 직원, 배신 안 할 직원. 70년대 저희 때 삼성이 직원을 선택하면 마지막이 이병철 아버지 회장이 반드시 마지막 면접을 봅니다. 그 면접 볼 때 사주 관상 보는 사람 옆에 놓고 면접 무슨 시험, 무슨 시험, 아무리 좋아도 관상쟁이가 ‘배신할 사람입니다.’ 그러면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관상쟁이 앉혀 놓고 봤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역사적으로 내부 배신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첫째는 돈 벌어 줄 사람, 둘째는 배신 안 할 사람. 회사가 되려면 그래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는 말썽 안 지기고 공부 잘할 애, 그다음 진학 잘해서 학교 진학률 올려줄 학생, 선발할 때 다 그거 보지 않나요?

여러분은 결혼할 때, 여러분은 아들 며느리 사위 볼 때 기준이 뭡니까? 키? 인물? 졸업장? 주먹? 연봉?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보실까? 이세벨 데리고 가는 집구석은 요절난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합은 이세벨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역사 이후에 가장 망한 사례였습니다.

선발할 때 가정의 은혜, 가정이란 자손으로 이어집니다. 죄의 저주도 이어지고, 의의 복도 이어집니다. 의의 복은 영원토록 갑니다, 천 대까지. 죄의 저주도 이어집니다. 다만 3대, 4대만. 왜 3대 4대일까? 내가 끊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겁니다. 내가 끊지 않으면 3~4대, 3~4대 이어가며 계속 누적이 됩니다.

우리 집은 역사적으로 말이 험하고 욕을 잘하니 어떻게 아내는 좀 말 좀 고운 사람 데리고 오면 낫지 않겠느냐, 마음이라도 그래 먹으면 하나님께서 ‘그 참 고운 사람이다.’ 그러지 않을까요? 우리 집은 뭐 돈은 옛날부터 어디 가든 잘 번다. 돈은 잘 버는데, 글공부가 안 돼가지고 성경을 못 읽으니 글 좀 읽은 사람 좀, 글 좀 읽는 사람 좀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렇게 말을 하면 그 마음이 곱지 않습니까? 복 받을 마음 아닐까요? 우리 집안 남자들은 ‘교회는 여자나 가는 거다. 어디 남자가 그런 데 가냐?’ 이런 집안인데, 부부 둘이 손잡고 교회 갈 수 있다면 뭐 다른 것 하나도 안 보겠습니다. 내가 먹여 살리겠습니다. 아, 이런 마음 좀 먹어 보면 안 좋습니까? 그러라고 저주는 3~4대, 복은 천 대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에게 신앙이 앞선 책임을 맡겼습니다. 무슨 책임이냐?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믿는 사람이 교회 바쁘다고, 믿는 사람이 목회한다고, 믿는 사람이 선교 간다고, 믿는 사람이 교회 건축한다고 건축 연보 다 하다가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건축 연보는 했는데, 십일조는 했는데, 선교도 하고 목사도 했는데, 교회 간부도 했는데, 하나님은 “넌 믿음을 배반한 자요.” 근본, 기본의 낙제입니다.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넌 가서 가족을 돌보는 법을 먼저 배우고 나서 교회 와. 그렇다고 안 다닐 수는 없고. 교회를 다니며 마음속에 ‘난 가족을 돌보지 않아 참 죄송하다.’ 그 숙제를 먼저 풀어야 됩니다. 십일조도 하시고 주일도 지키시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믿음을 배반한 자다. 모래 위의 집입니다. 주일도 지키고 십일조도 하시고 신앙생활도 하시되 늘 마음속에 ‘난 내 가족을 돌봤던가?’

왜 이렇게 가정을 교회보다 신앙보다 더 위에 갖다 놨지요? 지구가 없으면 집회 못 합니다. 이 몸이 살아있지 못하면 성경 못 읽습니다. 지구가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하고 몸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주를 주시고 지구를 주시고 몸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왜? 이걸 기본으로 깔아놓고 여기다 대고 신앙의 출발을 시키고 할 일이 있어 그렇습니다. 믿지 말고 가족과 놀러 다니라 그 말이 아니라,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다. 집회까지 오는 정도 되면 일반 신앙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간 분들인데, 집회까지 오신 분들이면 늘 마음속에 ‘나는 가족을 돌아봤던가? 돌볼 수 있는데도 돌보지 않았던가?’ 과제로 생각해봐야 됩니다.

68페이지입니다. 가정교회, 가정신앙, 가정이란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둘이 놀고 행복한 가정되어 ‘아, 이렇게 참 부부가 좋으니까 좋구나.’ 그 비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게 비밀입니다. 부부 둘 신앙생활이 바로 되면 주님과 나의 천국에 영생이 바로 되어집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그럴까? 뭐 부부 둘 좋으면 사는 거 아냐? 이 둘이, 이 둘이, 앞에는 본문은 “그 둘이” 그랬습니다. “남자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육체가 될지니” 둘이라니요? 부모님이 둘이지요. 남편과 아내를 부모라 그럽니다. 그다음 줄에 보면 아내라 그랬는데, 잘못됐습니다, 부부입니다. 부부란 남편과 아내.

맞습니까? 학교에서 이래 안 가르칠걸요? 남자, 남자 둘도 부부된다. 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치고 앉았으니 이만하면 말세입니다, 더 갈 것도 없이. 유치원 애들한테다 대고 ‘여자, 여자, 남편 아내 부부 될 수 있다. 그걸 잘못됐다 하면 잡아간다.’ 이렇게 가르치도록 지침을 만들어 놓고 앉았습니다. 더러워도 이렇게 더러워질 수 있을까! 이걸 법으로 만들어 그런 사람 욕하면 잡아간다? 그것은 세상이 알았고 세상에서 배웠고 교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는데, 예전에 교회에서는 ‘남편 아내가 부부 됩니다. 부부가 한 몸입니다. 왜 이런 제도를 주셨느냐? 주님이 우리와 하나 되겠다고 알기 쉽게 주신 겁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달려갈 건데, 요즘은 ‘부모가 남편 아내입니다. 부부는 남편 아내입니다.’ 이래 가르치면 뭔 말이지? 남자 남자들도 부부 된다던데? 여자, 여자 둘이 결혼해서 부부된다던데? 이게 물밀 듯이 밀려오고 앉았으니 물밀 듯이 밀려들고 앉았으니 노아 홍수는 이미 시작이 된 겁니다. 이제 큰일 났다고 방주 만든다고 생난리인데, 못 만듭니다. 지금 동성 관련 법 막는다고 기독교 단체들이 총궐기를 하는데 못 막습니다. 이렇게 만든 게 누가 만들었는데?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불은 저것들이 질러놓고 또 불 끈다고 난리고.

남녀 연애가 되면 재미는 있습니다. 그 대신에 연애하다가 부부 되어놓으면 부부가 돼도 별로 좋을 게 안 보일 겁니다. 연애를 안 해보고 결혼을 해야 ‘부부가 이렇게 재미있는구나!’ 알지. 밥 먹기 전에 부엌에서 미리 찍어 먹고 많이 먹어놓으면 밥상에 앉아가지고 먹는 연습이나 하지, 체나 하지, 맛있을 리가 있습니까? 굶어야 맛이 있지. 부부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공회에는 결혼해서 죽는 날까지 둘이 행복하게 살라고 그래서 연애 금지시킨 겁니다. 더 좋은 맛 좀 보라고. 미리 찍어 먹으면 맛이 없어집니다. 맛 버려버려요.

이래 가르치는 공회가 좀 나을 듯한데, 이단이라고 욕을 하고 자기들은 남녀 섞어 앉더마는 남녀 섞어 앉으니까 줄줄이 다 속도위반하지요. 그래도 뭐 잘 살지 않냐? 더 좋은 재미, 더 새로운 재미를 자꾸 찾다 보니까 이 재미, 저 재미 나오다가 나중에는 안 할 재미에 나아가는 겁니다. 담배가 담배에서 그치면 덜한데 담배에 손을 대면 그다음 마약으로 넘어갑니다. 마약도 더 센 걸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아예 담배부터 끊어버리는 게 낫지.
맥주 한 잔 틀렸습니까, 포도주 한 잔 잘못됐습니까? 150년 전에 이 나라의 선교 온 선교사들 맥주 포도주 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을 보니까 이놈의 인간들은 한 잔 먹으면 술독에 빠져 버리니까 본국에서는 술 먹던 선교사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고 얘들 보는데 술 한 잔 했다가는 전부 다 술 독아지에 빠질까 봐 자기들도 술 끊고 술 먹는 사람 앞으로 세례 못 준다. 이래 놓은 겁니다. 이게 우리의 약점입니다, 우리의 특성이고.

선교사들은 전부 다 연애결혼 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은 연애결혼을 해도 선이 있고 절제가 있고 앞뒤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교사들이 연애하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흉내를 냈습니다. 흉내를 내놓으니까 이건 뭐 그냥 엉망진창입니다. 술 담배를 끊었듯이 선교사들이 ‘연애도 안 됩니다.’ 이래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교사 목사님, 당신은 연애 해놓고 왜 나는 못 하게 합니까? 예, 우리나라는 자기 절제가 있고 순서가 있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고장이 생기지 않아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절제가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가르쳐 놨더라면 동성 문제 생기지도 않습니다. 미리 맛봤지? 결혼하고 나니까 별맛 없지? 그러니 좌우 사방천지 돌아다니지, 많이 돌아다녀도 처음에는 괜찮은데 나중에 그게 맛이 없어지니까 그다음 남자가 남자, 여자가 여자로 나가는거지.

안 믿어도 한국 사회는 연애 안 했습니다, 공자 때문에. 안 믿는 사람도 한국 사회에는 중매 결혼했습니다. 이걸 깬 게 선교사들과 교회가 깨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믿는 사람들끼리 교제는 사랑의 교제다, 좋다. 불신자들은 공자한테 배워서 부끄러워 연애를 못 했는데, 선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연애해서 결혼을 시켜 놓으니까 결국은 이게 좋아보이고 이게 부러워서 한국 사회가 이렇게 남녀 문제가 다 엉망이 되어 버린 겁니다. 교회가 이렇게 만들어놓고 동성하지 말라고, 동성하지 말라는 데모를 하면서 남녀는 연애해라 그러고 앉았으니까 해결이 되겠습니까? 소주는 마시지 말아라. 포도주는 마셔라. 건강을 위해 포도주는 마시고 소주를 안 마시는 사람은 말이 먹히겠지. 포도주 맛을 보면 소주로, 그다음부터 정종으로 술독에 빠질 사람한테는 술 근처도 가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쳤어야 되는데. 민족적인 우리들의 한계고, 우리들의 단점입니다.

가정의 구성, 성경은 남편 아내, 남자 여자, 이렇게 부부로 만들고 부모를 만들어 놓습니다. 왜? 그리스도와 교회, 주님과 내가 하나 될 걸 가르치기 위해 이래 놓은 겁니다. 여자 무시가 아니라 남자 무시가 아니라, 주님과 우리는 영 별개인데, 남자 여자는 집안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뭐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르고 원래 사람 사람도 그렇지만 남자 여자란 더 다른데 결혼으로 하나 되어 머리 되고 몸이 되어 하나 되고 보면 좋아지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는 천길만길 다른데 피 흘려 구원하여 주님은 머리 되고 우리는 몸을 만들어 놓고 하나씩 가르치고 하나씩 고치다 보니까, 부부 둘이 영 딴 판인데 살다보니까 하나가 되어가지고 오래 살면 얼굴도 같아지는데 혹시 아십니까? 같이 화내고 같이 웃고 그러다보니까 근육 주름살이 같아지니까, 먹는 것 같지, 계속 같아져 버리면 나중에 얼굴도 같아집니다. 신혼 때는 이것 때문에 남자는 좋아하고 여자는 싸우다가 청년들 부부끼리 싸우면 남자끼리 싸우면 여자들이 와서 말리고 이러는데, 나이가 많아 놓으면 부부 패싸움을 합니다, 한 편 돼가지고. 뭐 부부 잘 된 겁니다. 근데 옳은 걸로 패싸움을 해야지, 우리 편이니까 그냥.

왜 남자 여자는 그렇게 다르게 그렇게 이상하게 따로 만들어 놨을까? 이게 하나 되려니까 얼마나 어렵습니까? 대화도 해야 되고, 불편하고 그러면서 하나 되고 나면 기가 막히게 좋듯이, 주님과 우리 사이는 더 거리가 먼데 피 흘려 구원하신 이 은혜로 머리되고 몸이 되고 남자 여자가 하나 되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이 비밀이 끝없는 비밀을 가르치기 위해 조금 다른 남자 여자를 부부 만듭니다. 그 일을 겪어보고 그 일을 체험해본 경험을 가지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이 비밀을 가르쳤구나.’

디모데전서 5장 8절, 교재 밑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부부 제도를 주셨으니 남자는 가족을, 여자도 가족을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신한 자요, 배반한 자요. 구원 못 이룹니다. 가족이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 닮은 나 만들기 위해서 가족을 1차적으로 주셨습니다, 1차 구성. 남자 여자를 부부로 한 몸으로 1차 주셔서 이걸로 끝나는 것 아닙니다. 둘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 초상 쳤다더라. 슬픈 이야기입니다. 실패한 부부입니다. 둘이 만나 우여곡절 속에 드디어 이제 두 사람이 다 잘 한 사람 되었다더라. 1차 성공입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지요? 주님과 복음 때문에 이제는 가정이 주님 모신 하나가 되어져야 비로소 성공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가족을 주셨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 가족 사랑하는 것과 믿는 사람의 가족사랑은 천지차이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 닮은 날 만드려고 부부 둘을 하나 만드는 가정을 주셔서 연습을 시키는 것이니 이 일 때문에 가정은 소중한 겁니다. 주님과 복음 때문에 평소에 가족 책임 1차 책임입니다, 1차 책임.

만약에 주님과 복음 때문에 정말로 가족을 돌볼 수 없는 때가 되어지면 정말로 그런 때가 되어지면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정말로 주님과 복음 때문에 할 수 없을 때는 집도 형제도 자매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식까지도 전토까지도 아파트까지도 버릴 수는 있습니다마는, 돈 벌기 싫으니까 돈 안 벌고, 노름하려고 아파트 팔아먹고, 노름하려고 아파트 팔면 먹히지 않으니까 교회 건축 연보하는데 아파트 팔아 연보 합니다. 아주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아파트 팔아서 일부는 연보하고 일부는 노름 돈 하려고 가지고 나가려고 이렇게까지 머리를 쓰고 앉았으면 하나님은 ‘네놈이 연보를 해? 네놈이 교회 연보를 해? 선교를 해? 네 여자 꼴 보기 싫으니까 지금 선교 핑계대고 아프리카 간 거 아니야?’ 이렇게까지 될 수가 있습니다.

제 부모처럼 가깝고 그렇게 훌륭한 분, 참 총각 때 신앙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다 보니까 부모 때문에 그냥 못난 분하고 결혼이 되어 버렸습니다. 못생긴 사모님 떼 내버리려고 그때는 교인입니다, 목회 안 나왔을 때, 사모님 떼버리려고 뭐 얼마나 노력을 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려고 목회 나왔다 말도 있습니다. 목사 된다 하면 설마 이혼하고 가지 않겠냐 라고까지. 그분의 신앙 어릴 때 얘기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럴 수 있습니다.

너! 특히 여반들, 왜 금요일 철야기도 가지? 남자 꼴 뵈기 싫어서. 이놈의 남자 오늘밤에 아이 꼴뵈기 싫어서. 교회 가면 끼리끼리 모여 밤새도록 찬양하고 좋으니까. 집회는 왜 왔지요? 설거지에, 애들에, 남편에, 시부모에, 공회 교인들은 ‘집회 갑니다.’하면 포기하고 보내주니까 놀기 위해서 집회 온 거 아냐? 돈 벌기 어렵고 가족 책임지기 어렵고 살림살이 어렵고 밥해주는 집회, 앉아 먹고 집회, 혹시 그 속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그런 배경이 없는가? 고민해보셔야 됩니다.

넘기겠습니다. 결혼. 가정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바로 되고 가정이 바로 되어야 내가 바로 되고 가정이 바로 되어야 둘이 정말 바로 되는데, 그 말은 결혼을 안 하시면 장애자입니다. 선천적 장애 있지 않습니까? 태어났는데 눈 하나 못 볼 수 있는 겁니다. 태어났는데 못 걸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남녀 둘을 짜매 놓고 결혼할 때 한 명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결혼하기 전에는 반쪽가리로 봅니다. 결혼 안하신 분들, 자기는 지금 반쪼가리 가지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사람이 절반 가지고 돌아다니면 그만하면 장애지. 귀 하나 고장 나도 장애, 눈 하나 고장 나도 장애, 손가락 몇 개 없어도 장애인데, 절반 쪼가리 내고 혼자 돌아다니면 장애입니다.

결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남자는 순서상 앞에 서야 됩니다. 잠자다가 부시럭해서 도둑놈 들어오면 요즘은 여자들이 간이 커서 도둑 잡으러 먼저 나가고 그러나요? 뭐 어릴 때부터 유치원 때부터 기가 살아서 남자를 패고 초등학교 중학교 회사 생활까지 해놓으니까 밤에 부시럭 하면 여자가 먼저 나가가지고 싸운다고 그러면 그 용감한 여자가 아니라 고장 난 여자입니다. 또 남자는 유치원 때부터 배꼽인사 시켰지 뭐 얼마나 예절에 여자를 만들어놨는지 이건 남자가 남자 근처에도 못 가니까 여자 치마 밑에 숨어서 이게 남자입니까, 이게 여자입니까? 남자는 아무리 못 나도 순서의 앞에 서야 됩니다. 전쟁에, 화제에, 도둑 잡는데, 못 나도 말이라도. 실력 없는 게 앞에 나섰다가 큰일 나면 어떡하지요? 준비해야 되겠지요. 남자는 머리입니다. 앞에 서셔야 됩니다.

단, 앞에 설 준비를 해라. 실력을 갖추고. 호적에 남자라고 남자 노릇하려고 애만 쓰고 앉았으니까 난리가 나지요. 남자냐? 남자다운 남자가 되거라.
남자가 남자다운 남자가 되려니까 실력이 없으면 어떡하지요? 하나님께 ‘절 남자로 만들었지 않습니까? 앞에 서라고 했지 않습니까? 가족을 책임지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능력 주옵소서. 실력 주옵소서.’ 이게 기도의 제목입니다. 스물이라 결혼은 해야 되겠는데, 공회는 뭐 스무 살 아가씨들도 있다 그러는데, 데려와서 제가 미안합니다. 뭐 집도 없지, 직장도 없지, 가진 것도 없지. 미리 준비를 했었어야지요. 이제라도 준비하면 되지요. 모자라는 것은 기도하고. 남자니 결혼해야 되겠고, 상대방에게 머리 될 준비가 안됐습니다. 앞장 설 만큼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해를 하시고 기다려주면 1년, 5년, 10년, 이제부터라도 재수하고 열심히 해서 당신 앞에 설날을 각오하고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뭐 그 정도면 좋지 않나요? 내 머리 될 만큼 실력 갖추고 준비된 사람은 공회 교회를 왜 다니겠습니까? 다른 교회 다니지. 실력이 없으니까 여기 다니지.

남자란 적어도 제 여자 앞에는 서야 됩니다. 자기 여자, 자기 가족 앞에 서기 위해서 실력을 준비해야 됩니다, 갖춰야 됩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한테 ‘너 스무 살 되면 널 보고 한 여자가 인생을 맡기고 올 때 그때 생각하고 지금 공부하기 싫어도 그 때를 생각하고 하는 데까지는 해 봐라. 참 나중에 남의 여자 데리고 와서 미안하게 된다. 너 하나님이 머리를 주지 않아서 타고난 머리가 없어 공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을 진다. 머리가 있는데 하기 싫어 접은 것은 하나님께서 너한테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이게 가정교육 아닌가요? 이 부모가 20년 세뇌교육 시킬 기간이 있지 않습니까? 평양에 김 씨들은 스무 살 될 때까지 얼마나 세뇌교육을 잘 시켰는지 ‘어버이 수령님’ 이러는데, 안 낳은 인간한테도 ‘어버이 수령님’ 그러는데, 제가 낳고 제가 20년 밥 먹이고 제가 품에 안고 그걸 갖다 세뇌교육을 못시켜요, 그걸. 부모자격 있습니까?

방심했던 겁니다. 뱃속에 열 달 날 먹고 살았으니까 1년간 내 젖을 먹었으니까 이게 나만 보고 해실해실 웃지 남은 안보겠다고 울었으니까 끝까지 내편 되는 줄 압니다. 젖 얻어먹으려고 그렇게 가짜배기로 연극을 했는데. 크기만 커봐라, 부모 말 듣나! 내 말대로 살지. 지금은 젖 얻어먹어야 되니까 웃고 한 번 방긋 웃으니까 1년 얻어먹고 삽니다. 그게 생명 가진 타락한 존재의 생애 본능입니다. 생존을 해야 되니까 웃음을 팔고 안주면 울어버리고. 엄마는 속아서 ‘이것이 나 아니면 울고, 나면 좋아서 행복하니까 이거는 내편이라.’ 내편? 자기는 어릴 때 자기 부모가 안 그랬나요? 자기는 시집갈 때 제멋대로 했지, 뭐 부모 말 들었나요? 다 마찬가지지. 자기가 자기를 생각해 보면 이놈이 지금 웃고 울고 난린데 요게 지금 세 살, 다섯 살이니까 그렇지 한 예닐곱 살 유치원 되면 슬슬 멀어질 건데 그걸 앉아서 연구를 하고, 그걸 앉아서 공부를 하고, 그걸 앉아서 배우고, 자꾸 노력하다 보면 남은 못 가르쳐줘도 제 자식은 가르쳐 내야 됩니다.

이 의무는 남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리브가에게 줬지. 사라에게 줬지, 요게벳에게 줬지. 남자는 아무리 등신에 아무리 강퍅해도 여자가 정신 차리면 내 자식만큼은 의인을 만들어 놓습니다. 남자 덕 하나도 못 보고, 남자 돈벌이 하나도 덕 못보고, 신앙도 없는데 나 혼자 생고생해서 요게벳이 모세를 만들었으면 억울합니까? 모세 엄마 된 이게 시시합니까? 야곱의 엄마 되고 이삭의 엄마 된 게 이게 시시합니까? 이게 여인의 실패입니까?

남자는 앞에 서야 됩니다. 실력을 갖추시고 앞에 서야 됩니다. 여자는? 준비 된 게 없으니까 여자가 앞서 돈 벌고, 우선 남자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를 자기 앞에 세우기까지, 앞에 설 남자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든지 10년도 20년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여자 돈 버니까 나는 돈 벌 필요 없겠다.' 배 깔고 누워서 뒹구는 남자를 만들란 말이 아니라 '지금은 내가 돈을 벌지만은 이 남자는 내 앞에 설 남자고, 이 남자는 날 끌 남자고, 이 남자는 제 몫을 하기는 할 남자다.' 얼마든지 기다려주고 얼마든지 돈 벌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남자가 앞에 설 때는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모습입니까? 그러면 결혼 할 수 있지 않나요?

"부모를 떠나" 독립이라는 말입니다. 둘이 잘 둘이 자립할 수 있을 때가 독립입니다. 자립의 기준이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가 기준인가?

꼭 30년 전에 대한민국 몇 손가락 꼽는 좋은 도시에 저희가 개척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개척을 하니까 개척교회 회계집사님이 '우리 자립할 때 돕지요?' 그래요. 예, 자립할 때 까지 돕습니다. 제 머리 속에 자립이라는 것은 교인들의 광고 없이 교인들의 일반연보로 가지고 목회자 세 끼 밥 먹으면 자립입니다, 저희 개념은. 그런데 그 회계집사님의 자립 개념은 그 비싼 도시에 예배당 사서 예배당 지어서 예배당에 부채 한 푼도 없이 되고 그 다음 십일조를 가지고 교회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을 때까지가 자립이랍니다. 신풍교회의 팔아 넣어도 안 되는 그 비싼데서. 그러니까 우리 교회보다 매출이 많아지는데도 계속 도와달랍니다. 그래서 제 자립의 기준과 여러분들의 자립의 기준이 틀리는군요.

언제가 자립입니까? 유대인들은 13살이면 어른으로 봅니다. 유대인의 13살은 이만하면 세상 어디 던져놔도 그 세계를 점령한다, 13살이면. 우리나라는요? 대통령을 뽑을 때는 ‘20살도 많다.’ 열아홉, 열여덟 끄잡아 내려놓고. 그 다음 자립은요? 서른 안에 자립을 어떻게? 자기가 스스로 유아를 만들어 버리니까 어른인데 유아가 되면 퇴행성이라 그럽니다.

부모를 떠나 둘이 자립할 수 있을 때. 자립이 너무 빠르면 사고 납니다. 자립이 너무 늦으면 장애입니다. 어떤 사람은 열여덟, 어떤 사람은 스물, 어떤 사람은 스물다섯, 어떤 사람은 서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서른에 결혼했습니다. 스물에 결혼을 하도록 생 평생에 난리를 다해놓고, 그 옛날에 자기는 서른에 결혼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안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고. 모세도 결혼이 늦어졌습니다. 사십 넘어 했습니다. 사람을 고르느라고 늦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형편마다 다 다릅니다. 늦으면 장애입니다. 빠르면 사고 납니다.

자연적으로 볼 때, 눈으로 보이는 육체 성장이 끝날 즈음, 안 봐도 그 속에 마음과 생각과 인격이 이제는 그만큼 되어졌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 그건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도, 몸이 컸으면 마음도 그 정도 되어야 됩니다. 예전에는 열대여섯 살에도 벌써 어른 노릇을 했습니다, 열대여섯 살에도. 스물이면 너무 늦은 겁니다. 각자 알아서 하시고. 하나님이 육체, 정신, 실력은 거의 같게 해놨습니다. 젖먹이는 안 봐도 생각이 젖먹이입니다. 아직까지 솜털밖에 안 났으면 생각도 아직까지 솜방망입니다. 이젠 목소리가 굵어지면 그리고 남자로 터 잡고, 여성으로 터를 잡았으면, 그 속에 생각도 실력도 이미 부모를 떠나 독립할 때가 되었습니다.

참새를 길러보면 새를 길러보면 요것들은 덩치 되자 알아서 합니다. 개도 그렇습니다. 호랑이도 그렇습니다. 만물의 영장 인간만 서른, 사십, 오십 되도록 ‘젖 줘! 밥 줘!’ 이게 발전입니까, 이게? 괴물들이지! 장애지!
천하가 다 그래도 난 나를 괴물 만들지 않겠다, 난 나를 엽기적으로 만들지 않겠다, 잘나지는 못해도 나는 나를 하나님 앞에 귀한 나로 만들어보겠다, 그러시면 귀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립할 수 있을 때. 언제가 자립이냐? 육체의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제 키도 더 이상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어디 내놓아도 그만하면 남자로 보고, 어디 내놓아도 여자로 보겠다.’ 됐으면 준비는 끝난 겁니다. 나머지 준비는 결혼해서 살면서 갖춰도 됩니다.

“아내와 연합하여” “아내와 연합하여” 자기의 아내는 정해져있습니다. 지 여자는 정해져 있는데 찾으려 다니면, 찾으러 다니면, 문제가 생깁니다. 물건을 사고 싶은 물건, 아닌 물건을 뒤적거려도 되지만은, 사람은 제 사람 붙들고 말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원래 한사람을 쪼개서 둘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찾다보면 자기 사람은 원래 하나로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 결혼이야 바로 되지마는 하나답게 하나가 되려면 평생이 걸립니다. 하나다운 하나가 되려면 평생이 걸립니다. 그 평생에 하나 되는 과정에 수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결혼했는데 그 날부터 신부 마음을 100% 만족을 시키니까 결혼 잘했다, 하나가 됐다? 택도 없는 소리! 그 가정은 살아가면서 고생 많이 할 가정입니다. 서로가 많이 다른데 여러 가지 환경 보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람 같다 그러면 하나를 맞추어 가다보면 또 좋아지고 또 좋아지고 또 좋아지고 죽는 날까지 좋아질 수 있고, 좋은 것 다 맞춰서 눈에 탁 드는 거 붙들어 놓으면 죽는 날까지 안 좋은 데로 내려갑니다. 오르막 있으면 내리막 있고, 내리막 있으면 오르막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팍 드는 사람 붙들고 그 사람 속을 물어봐 보십시오. 죽는 날까지 실망하지. ‘뭐 그만 그만한데 하나님이 주신 형편과 시간과 사람이니까 이정도로 시작합니다.’ 아 결혼에 새 신랑, 새 신부에 굉장한 그런 기쁨 없이 저렇게 뭐 대수롭지 않게 하니 슬픈 거 아니냐? 슬픈지 안 슬픈지는 살아가면서 보셔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경험가지고 말씀드리는 거 같지요? 저 하나한테만 해당되고 다른 사람에게 해당 안 되면 이 소리 하겠습니까? 이분도 저분도 이분도 저분도. 공회결혼 오랜 세월 많은 부부들의 내면 사정을 다 들여다보면서, 이게 안 맞고 저게 안 맞지마는 형편과 시간과 상대와 여러 가지가 이만하면 나머지는 뒤에 두고 출발하면서 하나 둘 하나 둘 맞추다 보면 생각 못한 기쁨이 또 나오고 생각 못한 보람이 또 나오고. 뭐 사니까 살지 그냥 그랬는데 세월이 달라지면서 가면 갈수록 더 좋은 부부, 단연코 신혼의 결혼의 그 설렘과 그 좋았던 것과 10년 살고 50년 살고 훗날에 되돌아보면 신혼의 그때의 기쁨과 그때의 기대와 그때의 흥분은 비교도 못한다. 지금은 아득히 위에 있다.

이 땅 위에 두고 갈 기쁨이지만 결혼과 가정이 워낙 중요해서 결혼의 방법을 결혼의 과정을 결혼의 절차를 제대로 밟으면 말도 못하게 좋은 게 많은데, 안 믿는 사람 세상 식으로 결혼하면 우선 좋은 것도 잘 오지 않겠지마는 우선 좋은 걸 탁 잡았으면 그건 이제 안 봐도 내리막입니다. 가면 갈수록 내리막의 좋은 가면 갈수록 올라가는 그런 결혼의 행복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71쪽 입니다. 결혼은 남녀 이성입니다. 남성 여성 달라야 이성입니다. 여자 여자는 아무리 갖다 놔도 그것은 한 성입니다. 동성입니다. 동성끼리는 만나서 대통령을 해도 노벨상을 타와도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부부의 하나는 못 만듭니다.

남녀 이성이란 세상 말로 애정입니다. 남자와 여자기 때문에 좋아하는 애정, 남녀 이성 사이에는 애정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게 있어야 시작이 되고 그게 있어야 유지가 되기 때문에 일단 만들어 주신 겁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 남자 여자 둘이 결혼해서 뭐 둘이 ‘에이, 징그러워. 에이, 뭐 칙칙하게.’ 그래서 또 탈! 때도 안 됐는데 막 그냥 사방천지를 갖다가 난리를 내서 그것도 탈! ‘아 뭐 남자 여자가 그냥 부부다 이 정도 해놓지, 뭐 둘이 손을 잡는다? 키스를 한다? 에이 추접게 더럽게.’ 그게 깨끗한 겁니까, 천삽니까? 장애자입니다, 그거. 과속도 탈, 늦은 것도 탈! 때가 되어 남녀 부부에게는 애정을 주셨습니다. 그 애정으로 혼인하고 동침하는 것은 귀한 겁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해라” 물로 씻어 깨끗해라 그 말이 아닙니다. 자기 부부 자기 남자 자기 여자 한 몸 되거라. 다른 데로 돌아다니는 음행과 하나님이 금하는 선을 넘어가는 간음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켜보며 매 들고 그만큼 값을 갚습니다.

혼인을 귀히 여기라니요? 결혼 무시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아직 때가 안됐는데! 뒤에 하면 되지! 넌 혼인을 무시하는 자다. 결혼을 무시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마련하고 둘을 붙여 놨는데 ‘안 됐는데요? 아닌데요? 싫은데요!’ 하나님이 주신 자기 사람을 멸시 하지 말아라. 아브라함한테는 사라입니다. 이삭한테는 리브가입니다. 야곱한테는 누군가요? 라헬이 아니고 레아입니다.

그런데 레아는 못생겼습니다. 눈이 못생겼습니다. 다른 데가 못생기면 마스크로 막아버리겠는데 눈이 못생겼으니 색안경도 없고 옛날은, 어떡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레아를 밀어 넣는데 야곱은 레아 싫다고 그냥 펄펄 뜁니다. 야곱의 평생의 고생은 레아 싫어하다가 당한 고생입니다. 하나님이 ‘레아가 용모는 빠지지만은 이게 너다 너 반쪽이다 이거 괜찮다 이 안에 레위 지파의 하나님과의 사죄가 있고, 이 안에 다윗계통의 구원의 왕직의 그리스도가 들어있느니라.’ 그러면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왕통, 이스라엘 구원의 레위계통 제사 계통이 다 들어있으면 ‘아이쿠 보배입니다.’ 그러고 말지. 보석이 들었는데, 보석이 들었는데 금덩어리가 들었는데 헝겊때기로 포장해서 선물하면 차 내버릴 건가요, 욕할 건가요? 금으로 만든 항아리에 금덩어리를 넣어주면 보물이고 금덩이인데 헝겊때기면 걸레로 쌌으면 내버릴 건가요? 이게 걸레냐 이게 금박이냐 이것만 보지, 속에는 귀신인지 오물인지 보배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젊을 때는 모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누가 알아보느냐? 옆에서 보면 딱 알아봅니다. 남은 잘 아니까. 남의 눈에 티끌은 다 봅니다. 제 눈에는 들보가 앉아 가지고. 내 눈에 맞는 사람 결혼한다 그러면 참 평생 고생 많이 하겠다 점치면 그 점이 맞습니다. 점이 점이 아니라. 제 눈에 들보를 못 뽑겠으니.

뭐 안 맞는 게 많지마는 ‘이정도면 감사합니다. 아 뭐 야산에서도 예배 봤는데 천막 하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지만, 에덴동산을 주어도 ‘하나님만 하나님이네요. 나도 하나님 되고 싶은데.’ 그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내쫒아 버립니다.  내 눈에 딱 맞는 거 내 눈에 귀가 막히는 것 좋은 것 찾고 앉았으면 평생 고생합니다.

“혼인을 귀히 여기라” 하나님이 주는 자기 사람을 멸시하지 말아라. 내가 먼저 보고, 내 눈에 좋은 게 내 사람입니다. 그건 네 말이고 하나님은 네 여자를 네 남자를 어디 감추어 놨는지 넌 모른다. 모르는데 있기는 있다. 보물찾기입니다.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라.” 음행 안 됩니다. 내게 준 자기 사람, 내 사람 아닌 사람과 관계는 전부 음행입니다. 근데 상대방에게 임자가 있는데도 가져오면 그때는 간음입니다. 이거든 저거든 마찬가지입니다. 내 사람이 있는데 자기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만들어 똑 같이 지금 주었는데 왜 밖으로 다닐 겁니까? 내 집 찾아가지, 내 밥 먹지.

첫째로 깨끗하고 귀한 부부 되라 그 말입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덩치가 커졌는데, 하나님은 자기 사람 주변에 놔두셨는데, 자꾸 밖으로 돌고 자꾸 남을 들여다보고 자꾸 그러고 있으면 깨끗이 아니라 더러워집니다. 귀한 부부가 아니라 천한 부부로 이어집니다.

음행의 연고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시려면 옷은 세탁하면 되고 옷은 옷장 안에 넣으면 되는데, 인격은 신앙은 가정은 부부는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것이 더러움의 뜻입니다. 그래서 얼른 자기 사람 잡는 게 깨끗해지는 것이지, 자기 사람 놔두고 나는 남을 봐도 안 더러워진다, 그건 장애입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가 하나로 살다가 부부가 떨어져 타락을 했기 때문에 애정을 주어서라도 둘이 짜매놓은 겁니다. 애정 안주면 더 돌아다닐 테니까. 타락 전에는 애정 없이 갈비뼈로 만드는 분식법, 타락 후에는 육체의 정욕, 애정을 주셔서 출산법으로라도 둘을 하나로 묶어놨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떨어져 살 테니까.

자기 아내를 자기 남편을, 먼저 남자니까 자기 아내를 연약한줄 알면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자가 나보다 연봉이 두 배 많은데, 그래도 연약합니다. 돈은 두 배를 받아도 연약합니다. 남자는 초등학교를 나오고 여자는 대학교를 나왔다면 어떻게 되지요? 그래도 여자는 아내는 연약합니다. 나한테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연약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내가 연약한줄 알면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강한 줄 알면 또 교만합니다. 결혼하는 것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남자마다 여자마다,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라.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자도 여자도  차별이 없습니다. 어떤 남자도 어떤 여자도 동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나를 출산시켜 내 보낼 때부터 이미 내 사람은 있습니다. 둘이 함께 자라갑니다. 몰라서 그렇지. 결혼할 때가 되어지면 나는 나를 알겠는데 나의 아내, 나의 남자는 어디쯤 있을까? 서울까지 갈 것 없고 해외 갈 것 없고 현미경으로 찾을 거 없고 주변 잠깐 둘러보면 주변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어렵게 갖다 놓지를 않았습니다. 오후에 계속하시겠습니다.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좋은 때 주셔서 이렇게 건강하게 이렇게 오래 오래 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체의 건강이 차고 넘치는 때에 이 건강을 가지고 죄악의 낙으로 달려가면 소돔보다 더하고 노아 때보다 더한 우리가 되었을 터인데, 귀한 길 귀한 교훈 주셔서 육체의 건강도 주의 은혜 아니면 안 됨을 깨닫고, 그러나 이 넘치는 건강 넘치는 수명을 바로 된 인격 바로 된 생각 주님이 기뻐하는 생각 주님이 기뻐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세상이 험하여 몸은 넘치고 마음 인격 생각은 엉망이 되어버린 이런 때 바로 된 신앙이 참으로 희귀한 이런 때에 집회까지 오게 하셨으니 몸도 마음도 기본이 바로 된 우리가 되었나이다. 주님, 때를 주실 때 가정을 이루는 가정적 복을 가져 남녀관계로 험악하여 정신 차릴 수 없고 결혼을 했든 안했든 도무지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이런 때에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을 찾고, 이미 주신 자기 아내 자기 남편에게서 행복을 찾고 주님과 하나 되는 신앙의 새 길을 열어 부부 가정을 통해 어두워진 세상에 노아의 홍수를 이긴 노아의 가정처럼 남녀 이성의 문제없는 우리공회 교인들 되도록 어린 학생들에게도 소망을 주시고, 결혼할 청년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늦어진 사람들에게는 갈 길을 재촉하게 하시고, 먼저 결혼한 이들에게는 내게 준 천국과 교회를 잘 만들어 이 비밀이 크다 하신 주님을 모신 가정 되도록 금번 집회 이 주제에 특별한 은혜로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교정 : P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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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08.0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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