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밤21.8.2 잠4:3 마음은 몸의 주인, 마음의 결정에 신앙 승패, 몸을 붙든 품성이라야 신앙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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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으로 아끼고 조심해 주셨으면,
처음 오시는 분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신앙에 유익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월밤21.8.2 잠4:3 마음은 몸의 주인, 마음의 결정에 신앙 승패, 몸을 붙든 품성이라야 신앙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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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2 집회2(월밤)

제목 : 마음은 몸의 주인, 마음의 결정에 신앙 승패, 몸을 붙든 품성이라야 신앙 소망

본문 : 잠언 4:23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어렵게 주신 현실 아니고 어렵게 받아 가지는 현실도 아니요, 어려운데 완전 자 하나님의 전적 은혜, 전적 구원으로 받은 것도 몰랐다가 뒤에 알게 되는 것이 중생이며 중생을 깨달아 주의 자녀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부터는 주신 것 가지고 한 걸음씩 배우고 깨닫고 고치고 순종 하면 현실 속에 한 걸음이 지극히 큰 것을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의 장점 내게 주신 사명 매 현실마다 이루어 우리 전부에게 나누어 주신 분담을 하나로 모았을 때 주님을 머리로 삼은 교회, 한 몸 된 주님의 몸이 되는 이 영광 이 영생을 오늘도 단번으로 지나가는 현실 속에 담아 주신 주님. 우리의 몸이 세상을 접하고 선으로 도구 되고 또는 악으로 주고받는 일선의 기관이 온즉 이 몸을 붙들어 순종에 앞세울 수 있는 우리 되도록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 건강한 세월 건강함으로 주님께 감사하게 하시고, 불편한 가족 불편이 있는 교인이라면 바울처럼 야곱처럼 주의 능력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선물로 가져 어떻게 되었든 감사만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집회 두 번째 시간 이 몸을 붙들고 주님 앞에 순종해야 되는 우리의 마음. 만물보다 거짓된데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신 이 마음을 잘 살펴 순종의 마음, 믿음의 마음,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 인간의 마음인데 이 마음속에 주의 형상을 담아 집회 한 번 더할 때마다 본 교회 주일과 예배를 거듭할 때마다 하나씩 바꾸며 고쳐 주님 기뻐하는 저희들 되도록 여러 어려운 형편 속에도 감사하며, 둘째 시간 마음을 모두어 말씀을 따르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험한 산 속의 여러 많은 위험들 주님이 절대주권 능력으로 조절하시고 안보해 주시고 연단되며 은혜 되도록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 잠언 4장 23절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 4장 23절 914 페이지 성경 가운데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예.

교재 22페이지 보겠습니다. 23페이지로 넘어가면 화면 몇 개를 살핍니다. 첫 번째 시간 12 페이지로 넘어가서 몸을 먼저 살폈습니다. 불신자도 아는 몸. 말세에 건강이 차고 넘쳐서 탈이 난 때가 되었습니다. 100살을 쉽게 살며 80에 죄를 짓고 90에 죄를 짓기까지 건강하니 이 건강이 좋은 것인지 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우리가 여기 몸 건강을 살피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주님 중심의 선도 이 마음이 따라갈 때 의가 되어 집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결심하고 아무리 마음에 천국의 소망이 넘친다 해도 나의 걸음이 어디로 가느냐? 이 몸을 붙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악령은 사방천지 이 몸을 통해 세상으로 우리를 끌어가려고 이 몸이 최 일선의 전쟁터가 되어 있으니, 두고 갈 육체 불교인 유교인도 도 닦느라고 말  조심하고 몸조심 하는데 영생의 믿는 사람이 중생된 기독자가 이 몸 틀어쥐지 못하면 그 속의 마음 그 속의 신앙 볼 것도 없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좀 참을 수 있어야 되고 입. 들어 훗날 좋지 않은 세상 노래 조절 할 수 있어야 되고, 들어 나쁜 노래 딱 끊을 수도 있어야 되고, 친구들 따라 형편 따라 가는 걸음, 양심의 가책 될 때 뒷골목 가서 안 되는 곳 양심의 가책 되는 곳 눈이 보고 귀가 듣고 발이 걸어갈 때 눈 발 틀어쥐고 집으로 올 수도 있어야 됩니다. 첫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넘어와서 22절 몸은 삽자루처럼 망치처럼 연필처럼 말하자면 도구입니다. 어머니가 잘 쓰면 부엌칼, 강도가 들면 살인의 칼, 몸은 도구입니다. 이 도구되는 몸을 선하게 쓰느냐 내 중심에 악하게 쓰느냐 마음의 결정인데, 요 마음에 귀신이 들어와 슬그머니 이러고 저러고 이러고 저러고 이러니 그리고 마음을 흔들어 버리면 선악과도 따 먹습니다. 아담 하와의 마음이 흔들리니까 혼돈을 해버리니까 먹으면 죽는 선악과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마음이 그렇게 먹었으니 그 다음부터는 안 먹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몸도 우리가 이걸 틀어쥐느냐 몸 제멋대로 다니도록 풀어 놓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지마는 몸을 쥐고 있는 몸의 주동자 마음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 이 마음에 신앙의 성패가 결정이 됩니다.

교재 22페이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꼭 지켜 내야 되는 게 뭐가 있지요? 이메일 비번, 통장 비번, 어렵게 잡은 합격증, 면허증, 아파트 당첨권, 100억짜리 복권, 지켜 내야 되겠지요? 100억인데, 무릇 지킬 만한 것이 많다. 고 위에 무엇을 지키라고요? ‘마음을 지키라’ 내 마음 지킬까요? 남의 마음 지킬까요? ‘네 마음부터 지켜라’ 네가 엄마냐? 엄마가 엄마의 마음을 지켜야 가족의 마음을 지켜내지. 아빠냐? 아빠 제 마음은 사방천지 돌아다니도록 풀어 놓고, 아내 마음, 아들 마음, 딸 마음 단속 하느라고 정신없으면 귀신이 웃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지켜라’ 이 순간 나는 내 마음을 지키고 살아 왔는가? 아무나 오면 마음을 줘버리는 사람, 강아지는 강아지들이 오면 친구 됩니다. 닭은 닭끼리 친구 됩니다. 머리 비슷하게, 나이 비슷하게, 학교 비슷하게, 옷 입은 거 비슷하게, 시내 비슷한 사람들은 요즘 저리가 던데 이리 가던데, 이러든데 저러든데. 그 마음이 흔들흔들 그 마음에 영생 영원불변을 쌓을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 좋은 것이 사방에서 다 끌어 당겨도 이 마음은 내가 틀어쥐고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 다 줘도 이 마음은 지켜낸다. 이유는 뭔가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니, 마음 위에 영인데 왜 마음이 중요한가? 밑에 보시겠습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 영은 영물로 되어졌습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마음은 물질이고 영만 영물입니다. 세월이 오래 되어 예전에 잘 몰라서 마음을 영인 줄 오해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000년 1500년 전에는 구름을 몰라서 구름 고 위에 천국이 있지 않나? 그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거는 이단이 아니고 틀려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이 어려 그런 겁니다. 세 살짜리는 자기 어디서 나왔는 줄도 모르지 않습니까? 거 무식하다 이단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려 그렇다. 그러는 겁니다. 하늘나라, heaven입니다. 헤븐. 구름 고 위에 나라가 있다고 이렇게 망원경으로 찾으려고 그랬었습니다. 어리니까, 세월 속에 세상의 과학을 발달시켜서 구름 위에는 우주라 허공이지 뭔 천국이 없는 거다. 그럼 성경이 틀렸는가요? 그런 과학의 발전을 보며 ‘기독교는 거짓말이다’ 이런 참 불행한 인간들도 있고, 성경에 하늘나라가 구름 위가 아니라 영원불변의 물질계가 아니구나!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육안으로는 보는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깨닫는 사람도 있고, 과학 발달하기 전에도 성경만 가지고 벌써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영인 줄 알았습니다. 강아지는 마음 없나요? 고양이는 마음이 없습니까? 농사 지어 보는 사람들 소를 길러 봐 보면 1년 전에 실수 한데는 기억합니다. 기억. 제거 건드리면 떠받아 버립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개들이 주인 시킨 거 잘못 했을 때는 눈치를 봅니다. 개들 양심 있습니다. 추억이 있고 보복이 있고 사랑이 있고 애착이 있고 충성이 있고 인간보다 나은 지조가 있습니다. 개가 지조가 있어요? 전방의 철책에 갖다 놓은 개들은 내 주인 주는 거 아니면 굶어 죽어 버리지 먹을 것이 옆에 있어도 안 먹습니다. 개조차 지조가 있는데 인간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사상가 철학가 종교가들 휘청거리는데, 중생의 믿는 사람 우리의 마음이 한길을 가지 못한다면 문제가 많습니다. 마음은 영 아니라, 쉽게 그 말입니다.

영은 재료가 영물인데 영물이라는 것은 물질처럼 쪼개지를 못 합니다. 그래서 영의 성질은 단일성입니다. 마음은 물질입니다. 개도 가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물질입니다. 물질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은 종합체 종합성이다 그 말입니다. 몸은 뼈가 200개, 신경이 200개, 마음은 하나인 줄 아는데, 자기 마음 자기가 들여다보십시오. 그게 한 개인지? 화장실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다르지 않던가요? 설날에 며느리가 집에 오면 어 당연하고, 딸은 설날에 시댁 간다면 지금 세월이 어떤데 이런 게 있냐고 펄쩍 뛰고 그 두 마음 아닌가요? 영은 물질이 재료가 영물입니다. 재료가 다릅니다. 단일성입니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단일성을 본받아 하나입니다. 마음은 물질로 되어 졌는데 물질은 복합체 종합체입니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중생이 되는 것은 마음이 중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안에 영 우리가 모르는 영이 중생이 되는데 영은 중생이 되면 자체적으로 완전 영은 해결입니다. 한 번 중생되면 무조건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런데 영의 실력은 사도 바울의 영과 제 영의 실력은 차이가 많을 겁니다. 무슨 차이냐? 사도 바울은 자기 마음을 붙들면 100프로 붙들려졌습니다. 저는 이게 잡혔는가 싶었다가 돌아서면 또 도망 다니고 있고 그렇습니다. 영 자체는 완전 영은 해결입니다, 구원. 영의 실력은 육, 자기 마음과 자기 몸을 붙드는 실력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육을 붙든 만큼 실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은, 다 같이 재료가 뭐라고요? 물질. 그러니 단일성인가요? 종합성인가요? 종합성입니다. 근데 이 마음이 중요한 것은 마음은 선택권이 있습니다. 영은 죄를 짓고 싶어도 죄도 못 짓고 악령이 만질 수도 없다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근데 우리의 마음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성화와 악화, 성령을 따라 내 마음은 거룩하게 갈 수도 있고 성화. 악령 따라 악하게 갈 수도 있고 악화, 성화, 죄, 의, 마음은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 대신에 말씀으로 자기 마음을 바꿔 가면 성화라 그러는데 신앙건설 인데 그 결과는 생명입니다. 말씀이야 그러든 말든 난 내 맘대로 한다.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생사 성화와 악화 둘을 두고 결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몸은 이게 길들이기가 좀 까다로워 그렇지 결국은 끌어당기면 따라 옵니다. 마음은 아야 좌 우, 생 사, 죄 의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에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2페이지 중간입니다.

이제 앞에 몸을 살폈고 마음과 몸의 관계입니다. 마음이란 영이 주격이고 마음은 영의 소유격입니다. 주인 소유 아시지요? 마음은 영이 주인이니까 영의 소유격 이면서 자기 몸에게는 주격이 됩니다. 몸은 마음이 주인이니까 몸은 마음의 소유격, 그 대신에 만물에게 주인노릇을 합니다. 만물의 주인은 인간의 몸. 인간의 몸의 주인은 누구지요? 마음. 마음의 주인은 누구지요? 영. 영의 주인은 누구지요? 성령. 근데 성령과 우리 영 사이는 중생 되면 다시는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영이 우리 마음을 달래는 겁니다. 좋을 때 말아라. 기회는 한 번 뿐이니 세상 떨쳐버리고 잘 믿어라, 자꾸 마음을 달래고 끌어갑니다. 그 마음  속에 악령이 와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한번 뿐이니 즐겨봐야 될 거 아니냐? 이래서 우리 마음은 전쟁터입니다.

마음과 몸의 성화를 보면 마음은 영에게 순종하는 만큼 성화가 됩니다. 쉽게, 아이가 학교 가서 선생님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잘하면 공부 잘 할 거고 절반은 겉 듣고 절반은 들으면 절반 공부 할 거고 ‘저거 왜 학교를 왔는지?’ 선생님 시키는 대로 청개구리처럼 꼭 반대로만 하면 공부는 접어야 되겠지요? 우리의 마음은 영에게 순종하는 만큼 성화가 되어 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내 마음을 장악하는 만큼 요게 마음의 성화입니다. 담배 폐암에 안 좋단다, 끊자. 마음은 끊자 그러는데 몸은 담배 없이는 못 산다고 버티는데 결국은 몸을 못 꺾으면 마음의 성화, 마음의 실력이 적은 겁니다. 담배 못 끊었다고 지옥 가는 거 아닙니다. 한국의 선교한 선교사들 다 자기 고향에서 술 담배 하던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은 할 때 하고 안 할 때는 끊을 수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 선교를 해 보니까 이 인간들은 술 담배 손에만 데면 처자식을 다 팔아먹고도 가정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이거는 성경에 있는 말씀보다 기본적으로 더 중요하다 해가지고 세례 학습에 술 담배를 끊게 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할 때 우리의 마음은 마음 자체는 믿는 사람의 마음은 마음 자체는 천국을 가는데 그 마음에 성화 된 것만 담아 가지, 미움, 시기, 질투, 지 남자 놔두고 옆에 담 넘어 남자 욕심내던 그 마음 우리 천국 갈 때 가져 갈까요? 그거, 가능하겠습니까? 나쁜 짓만 골라 하던 고 나쁜 마음속의 요소들 다 걷어서 그건 버립니다.

다음 몸을 보겠습니다. 몸은 이러나저러나 마음이 주인이고 몸은 소유입니다. 마음이 먹을 거 많지?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적당하게 먹자. 마음이 몸에게 요 정도 먹고 이제 수저 놓자 할 때 수저를 놓으면 마음의 종입니다. 그 대신에 몸이 더 먹고 싶은데 마음 때문에 음식을 두고도 수저를 놓으면 이 음식의 주인은 몸이 됩니다. ‘밥상에 음식 맛있지 않나? 먹어보지?’ 유혹을 하니까 몸이 거침없이 먹는데 마음이 ‘너무 심하지 않냐? 과식이 아니냐?’ 그러든지 말든지 먹어 버리면 몸이 마음의 말을 듣느냐 안 듣느냐 이 문제가 큰 게 아니라 밥상이 주인, 몸이 밥상의 종, 마음은 몸의 종 거꾸로 됩니다. 이거 제대로 될 리는 없는 겁니다. 옳든 그르든 마음이 결정하면 몸이 따라가고 몸이 마음 따라가면 절제가라 그럽니다. 그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도 만물이 자기의 발아래입니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리 돼야 됩니다. 몸의 성화는 마음에게 순종한 것만큼. 당연하겠지요? 마음이 영에게 순종 하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은 마음이 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때 순종 하는 만큼이 몸의 성화가 됩니다. 그리고 만물이 뭐라든지 말든지 몸에게 순종하지, 만물에게 순종하지 않고 만물은 오히려 장악을 할 때 그게 몸의 실력이고 그게 성화입니다. 그리고 부활 때 마음도 몸도 자체는 택한 백성들은 천국 가져가는데 마음에 담아 갈 마음, 이 몸에 담아 갈 힘 실력은 각기 다릅니다. 자체는 천국 가는데 실력은 성화된 것만 가져갑니다. 말씀에 순종한 마음, 말씀에 순종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 순종한 몸의 고 실력, 몸의 그 기능, 몸의 그 습관은 가져 갈 거고, 말씀 어긴 마음, 말씀 비튼 마음, 욕한 마음, 마음이 옳게 시키는데도 거부한 고 몸의 실력은 버리고 가야 됩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천국에 온 우리의 마음과 몸의 실력은 다 다릅니다. 그 이 땅위의 믿고 난 후에 모든 노력은 천국 가냐 지옥 가냐 그 문제가 아니고 또 중생된 사람이야 성의껏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 당연한 것이 아니라 영은 중생되면 무조건 천국. 내가 천국 갈 때 내 마음과 내 몸에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가 이게 믿는 사람이 죽는 날까지의 자기 투쟁입니다. 자기 결정입니다. 세상이 더 좋거든 실컷 세상에 빠지시고 택자는 천국 갑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섰을 때 날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그 얼굴은 우리가 봐야 됩니다. 자랑스러울까요? 흐뭇할까요? 그날 땅을 치고 한 번만 더 기회 주시면 이번에는 잘하겠습니다. 그게 홍포 입은 부자와 나사로 말씀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두 번은 없습니다.

22페이지 제일 밑에 영의 구원은 해결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내 속에 있는 중생된 영과 악령 중에 누구를 선택하느냐 누구를 주인으로 선택하느냐 요게 마음의 성화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평생 매 현실마다 시험에 몇 점 받을까? 뭐 아파트를 여기 살까? 저기 살까? 그런 결정도 평생 하겠지마는 그것은 불신자도 하는 거고, 우리의 선택은 이번에 저 아파트 사면 두 배는 번다더라. 그런데 내게 준 경제의 범위가 두 배 아니라 열배를 벌지라도 내게 준 돈, 내게 준 기회가 아닌 거 같다. 그런 기회를 던져버리면 옆에 사람들은 2억짜리 잡아서 10억 벌 건데 왜 저러지? 그 사람들은 그게 성공과 실패고 우리는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면 저면 신앙양심으로 생각할 때 안 되겠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을까요? 부모가 오늘 내일 하는데 간병비가 몇 천만 원 나가겠는데 부모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부모 딱 잘라 버리고 아파트 사면 그냥 한 10억 벌겠는데, 한 2억에 부모 돌아가실 때까지 간병에 투자하면 부모님은 잘 보내 드리겠는데 한 번밖에 없는 아파트 10억 만들 이 기회는 놓칩니다. 5계명으로 생각하면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부모 죽는 거는 마찬가지니까 일찍 죽는 엄마도 나 아파트 10억짜리 사서 돈 버는 거 좋아할 거야 아마. 아들들은 다 그런가요? 딸들은 다 안 그렇지요? 그런지 바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2억은 쓸 수 있다. 어머니가 5,000에서 1억은 써야 될 것 같다.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근데 2억이면 10억짜리 만들 아파트 기회가 정보가 들어왔다. 어떡할 거냐? 믿는 사람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일이고 한 날 괴로움은 오늘에 족하니라. 오늘로써는 가는 어머니 위해서 감사하게 2억 가지고 있는 힘 다하고 그 다음에 10억을 주던 100억을 주던 거지로 살던 그건 하나님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밀하게 따져보면 우리의 대부분의 현실의 결정은 다 이런 식입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좀 애매한 것은 하나님께서 탓하지 않으십니다. 그건 실수해 가면서 배우고 운 좋게 성공해 가면서 배우는데 명확하게 이건 아니다 명확하게 기다 아니다 기다 요나처럼, 요나처럼 이거냐 저거냐 명확할 때 한번 꺾어 버리면 그러면 자기는 대폭 귀신에 말려 들어갑니다.


맨 밑에 마음이 악령의 유혹과 협박을 이기고, 그 유혹이 에덴동산 선악과는 쉬울 거 같은데 왜 하와는 그랬을까? 금방 아파트 10억짜리 문제 생기면 하와의 선악과보다 더 맛있게 생겼을 걸요? 요즘 뭐 20억짜리가 보통이라 그러니까 서울에 이삼십억 아파트 잡을 기회가 드디어 왔다. 탐스럽게도 할 것이고 먹음직스러울 것이고 안 먹을 사람 있을까요? 악령이 별별 유혹 협박을 할 때 이기고 영에 붙들려 순종하면서 몸한테다 데고 ‘이렇게 결정했다 따라와라’ 마음이 몸을 순종시키고 나가면 그러면 몸을 통해 만물을 상대합니다. 뭐 아파트하면 전부 정신도 없는데 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안 가질 수도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아파트에 흔들리는 오늘을 초월하는 것이고 만물을 초월하는 겁니다. 서울대 합격증 여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근데 면접시험을 주일날 보러 오라 그러면 주일 면접시험에 합격증 면접만 하면 되겠는데 우리 공회의 서부교회 서영호목사님 50년대 서울대 영문학과 들어 갈 때 토요일 필기시험 성적이 너무 잘 나왔답니다. 그런데 면접이 주일이랍니다. 안 가버렸습니다. 안 갔는데 서울대 영문학과에서 전화가 와가지고 필기시험이 출중한데 면접을 안 온 걸 봐서 뭔가 사연이 있나? 주일이라 안 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합격시켜 줬다고. 그분이 공회 신앙이 아니고 고려파 신앙입니다. 고신 고려파 이름이 붙으면 요 정도는 되어야 고려파입니다. 공회는 다 그런 거 아니야? 그 당연한 거 갖다가 뭐 그거 그랬다고 그렇게 대단해? 그럴 때에 공회입니다.

여기 아마 서울대 합격증 주면 부모 잡혀 먹고 그냥 예배당도 잡혀 먹을 분들 많을 걸요?  그럴 기회가 없으니까 그러지 않았지. 가룟유다 욕을 하다니요? 가룟유다는 예수님 팔아먹고 배가 터졌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열두 번 더 팔아먹고 배 터진 사람 들어 보셨습니까? 안 보이는 예수 팔아먹기는 쉬우니까 더 많이 잡혀 먹고, 가룟유다는 예수님 팔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배가 터졌습니다. 이게 불택자고 귀신이면 예수 팔고 돈 벌면 좋아서 또 누구 또 팔고 가지? 또 12제자 잡으러 다녔을 겁니다. 택자기 때문에 못 견디는 겁니다. 불택자가 예수 믿고 양심가책을 받나요? 불택자가 예수를 팔아먹어 제가 불국사를 팔아먹고 제가 해인사를 팔아먹을 수 있다면 좋아서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 중들 그 미신 다 깨고 돈 이만큼 벌고 행복하겠지. 겉으로 미안해서 안 됐는 척하면서 속으로 대한민국 절 100개 팔아먹고 돈을 100억 벌면 속으로 더 좋겠습니다. 절의 중들이 예수 팔고 절의 중들이 기독교 팔아먹고 양심 가책을 받아요? 그건 택자지. 그거 함부로 그렇게 가룟유다 욕하는 거 아닙니다. 적어도 가룟유다는 우리보다는 양심이 나은 사람입니다.

넘깁니다. 마음 문제를 두고는, 따라 합시다. 주관 가치 이 주관이라고 썼는데 한자가 맞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주관이란 말은 내가 틀어쥔다는 말입니다. 주관, 내가 주관한다. 이 행사를 누가 주관 했느냐? 교육청 시청 문공부 국방부 누가 주관을 하느냐? 올림픽 일본이 주관하고 200개 나라가 갔답니다. 누가 주관을 하느냐? 마음이라는 것은 주관에 가치가 있습니다. 오후에 몸은 무슨 가치가 있다 그랬죠, 첫 번째? 도구 가치라 그랬습니다. 도구, 삽자루입니다. 괭이자루입니다. 삽 없이 농사지어 보셨습니까? 솥 없이 밥 해 보셨습니까? 그게 도구입니다. 몸은 도구입니다. 마음은 결정을 하고 틀어쥐는 주관의 가치가 있습니다. 원하는 자기로 살 건지? 원치 아니하는 자기로 살 건지? 로마서 7장 19절입니다. ‘내가 원하는바’ 사도 바울이 ‘내가 원하는바’ 무얼 원한다고요?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좋겠다.’ 마음의 소원은 그런데 원치 않은바 원치 아니하는바 바울은 악을 원치 아니하는데 악을 행합니다. 이게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악령, 성령이 양쪽에서 마구 흔들어 되니까 그렇습니다. 시부모 고려장 하러 갈 때 아들이 지게 지고 가면서 며느리 때문에 지고 가지 속으로 기뻐 가겠습니까? 결혼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근데 둘이 오래 살다 보면 아들 놈이 먼저 가자 그럽니다. 우리 마음이 둘입니다.

밑에 보시겠습니다. 두 마음, 중생된 우리의 마음만 두 마음 있습니다. 불신자도 두 마음 있을 건데? 이럴까 저럴까 그런 두 마음을 말 하는 것이 아니고 죄와 의를 두고는 믿는 사람만 두 마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죄의 마음 하나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성경에서 두 마음이 있다고 했네요? 단일성 아닙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럼 불신자인가요? 택도 없는 소리. 믿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 마음 품지 말아라. 고 다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한 쪽에는 믿자 그러는데 한 쪽에는 걱정을 합니다. 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은바 악을 행하는 도다’ 앞에서 봤습니다. 믿는 사람 택자의 마음은 두 마음입니다.

마음만 둘이 아니라 이 두 마음 뒤에 배경을 보니까 두 자기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 절인데 믿기 전에 했던 짓을 구습이라 그럽니다. 요즘 방식이라도 안 믿는 사람 안 믿을 때 했던 거는 구습, 백년 천 년 전에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성경은 구습이라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마음도 둘 그 마음속에 보니까 두 자기가 들어 앉아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9절입니다. ‘거짓말을 말라 불신자들한테 하는 말인가요? 믿는 우리한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안 믿는 사람한테 거짓말 하지 말라 그러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라 모르는 사람입니다.

믿는 우리에게 9계명, ‘거짓말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새 사람을 입었으니’ 안 믿는 때는 옛사람이고 믿고 나면 새 사람이다. 새 사람은 거짓말 안 한다. 거짓말 안 했습니까? 그럼 거짓말하면 다 불택자 인가요? 영국 속담 중에 정치가 말을 믿느냐? 정치가 말을 믿느냐? 그러면서 따라 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 말하고 목사 말을 믿느냐? 천국가 보지도 않고 저것들끼리 천국을 팔아 가지고 사람들을 속인다고. 영국의 제일 거짓말 하는 두 종류가 정치가하고 목사랍니다. 우리나라도 이말 하면 불신자들은 다 맞다 그럴걸요? 그렇다고 목사 거짓말했다고 다 지옥 갈 불택자 인가요? 중생 안 돼서 거짓말하는가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중생된 사람이 새 사람인데 우리의 마음을 악령이 죽는 날까지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다윗이 방심하고 죄 한번 지었는데 그 죄로 끝이 안 났지요? 나이 많아서 인구 조사 하면서 또 한 번 속았습니다. 그만하면 말지. 노년에 밧세바 하고 있다가 밧세바가 아니지요? 누구지요? 마지막에? 다윗이 마지막에 왕위 문제 생길 때 아도니야가 왕 할 때 솔로몬 왕 시키는 걸 깜빡해 버렸습니다. 그냥 뒀더라면 또 실수할 뻔 했습니다. 다윗이 마지막 죽을 때까지도 악령이 늘 지켜봤습니다. 어디까지 일을 했던지 ‘안심 하지 말아라’ ‘방심하지 말아라’ 이게 성경입니다. 선택의 자유, 마음이라는 것은 두 마음이다. 두 마음 속을 보니까 두 자기 다. 중생된 영에게 순종하는 마음 요게 참자기입니다. 중생된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죄짓고 싶어서 나를 움직이는 요 자기가 자기는 자기인데 옛사람 자기. 불신자한테는 새사람 옛사람이 없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만 새사람 옛사람의 전쟁이 있습니다. 선택이 마음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마음.

갈라디아 2장 4절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무슨 자유? 진리자유, 영감자유, 잘 믿을 자유, 세상을 버릴 자유, 옛사람을 버릴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하는 악령의 유혹은 늘 우리를 따르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믿는 사람만 말씀을 따라 내 마음이 뭔 짓을 해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믿는 사람이라도 다윗이라도 솔로몬이라도 방심하면 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고 죄 지을 때 고 죄를 짓는 것은 다윗의 마음인데 죄를 지으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고 죄의 뒤에 악령이 다윗의 영이 아니고 다윗의 마음을 딱 붙들어 또 흔들어 뎁니다. 죄와 의 새 사람 옛사람 우리에게는 두 자기가 있으니 이걸 결정하는 것이 바로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

26페이지 넘겨서, 그러니 두 마음이 있고 두 자기가 있고 항상 두 전쟁이 벌어지고 생명과 사망이 내 마음에서 결정이 되니 따라 합시다.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예, 대적 마귀가 안 믿는 사람 죄 지으라고 유혹하고 다닙니까? 그건 잡아 놓은 종입니다. 불신자는 전부가 다 잡아놓은 죄의 종들이고 중생된 우리의 마음에 아직도 한 번 더 죄 짓게 유혹해 볼 수 있을까? 삼킬 수 있을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여기 너희는 사도 베드로가 믿는 우리에게 한 말이지, 사도 베드로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마귀하고 싸워라’ 말이 안 되지요?

‘근신하라 깨어라’ 믿는 우리의 대적은 마귀고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요즘 20대는 요즘 30대는 요즘 여성은 요즘 도시는 요즘 문화인들은 요즘 학생들은 요즘 10대들은 그 뒤에 고 말하는 고 뒤에 안 봐도 귀신이 앉아 가지고 뭐 하자는 말인가요? 천하의 10대가 다 그래도 난 그리 못 한다. 할 말이 있는 겁니다. 천하의 20대들이 다 남자를 이기고 살아도 난 여자로 이 땅위에 태어나게 해 주셨으니 난 여성답게 살란다. 그런 패배주의 그런 미개한 그런 구시대의 오염된, 그러든지 말든지 너희들은 그래라. 너들 그래라 너들 자유다. 난 내가 나를 보니까 여자다. 난 여자답게 살란다. 5,000만 명 중에 2,500만 명이 여자일터인데 2,500만 명 중에 난 여자라 자랑스럽다. 하나님이 주신 이 여성을 지킬란다고 똑똑하게 큰 소리 치는 사람이 한 명일 런지 두 명일 런지 모르겠지마는 여덟 명 넘을지 않을지 모릅니다. 여기 다 남자 이기고 살지 않나요? 이 자리에도, 이 정도 말을 하는데도 남자이긴 여자가 성공이라고 부추기는데 안 해요? 그러든지 말든지 너희들은 그리 하고, 난 내 양심으로 생각해 보니 믿는 게 좋고 말씀은 이렇고 난 이렇고 이게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찼는데 마귀가 여기 마귀라고 써 붙이고 돌아다니면, 호랑이가 호랑이라고 써 붙이고 마귀가 마귀라고 써 붙이고 다니면 마귀한테 잡혀갈 사람이 있겠느냐? 친구를 통해 오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오지, 문화를 통해 오지, 유행을 통해 오지, 요즘 흐름이 그러니까 이런 흐름을 통해 오지, 오니까 누가 원수 귀신인지도 모르고 젖어 들어가 버립니다.

중생된 영은, 요한일서 5장 18절입니다. ‘중생된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그걸 중생된 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중생된 사람은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영은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성령입니다. ‘우리 중생된 영을 지키시매 악한 자 악령이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래서 믿는 사람은, 천국은 두 번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이제 죄짓고 살자 이래 나가니까 여기 또 귀신이 거기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영은 안심해라, 거 안심 하고 놀으라고요? 마음이 문제다.

마음은 첫 시간에 물질로 된 어떤 존재라 그랬지요? 연약합니다. 어느 정도 연약하냐? 베드로가 마태복음 18장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손양원목사님은 한 번 용서해 줬다고 그렇게 유명한 겁니다. 70년. ‘예수께서 가라사대’ 몇 번 씩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우리의 마음은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죄를 짓고 넘어졌다 일어섭니다. 이게 중생이 안 돼서 그런가요? 여기 형제라 그랬는데 ‘너희 형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형제’ 베드로가 안 믿는 사람을 유대인이니까 전도해야 되니까 그 형제를  말하지 않았느냐? 베드로는 일흔 번씩 일곱 번 죄지은 인간 아닌가요? 성경에 베드로가 몇 번이나 죄 지었을 런지 한번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차분하게 한번 읽어 봐 보십시오. 이 인간 70번씩 7번이 아니라 하루에도 그러고 남을 사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그냥 두면 흔들면 100프로 흔들어 지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그 세 살짜리 유괴해 가려면 사탕 하나면 됩니다. 여섯 살짜리 만 원짜리 장난감이면 유괴하면 됩니다. 15살이 여자애들은 개 죽사발 핥아 먹은 것처럼 낯빤대기 매끄름 해 가지고 흔들면 따라갑니다. 그것들은 돈도 필요 없습니다. 친정집 팔아서 돈 가지고 올 걸요? 우리 마음이 그렇게 연약합니다. 왜 이렇게 연약하게 만들어 놨죠? 좀 강하게 만들지? 강하면 인간이 아닙니다. 강하면 배우지를 못 합니다. 약하니까 별의별 죄에 흔들리는데 그렇게 연하기 때문에 연두부 순두부처럼 약하기 때문에 성령이 살살 붙들고 이걸 감화와 감동으로 바로 기르기 위해서 원래 연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마음은 순종성이 있습니다. 원래부터, 왜 순종성을 있게 만들었느냐? 성령이 인도하면 잘 따라오라고 요렇게 순종성을 만들어 놨더니마는 악령이 습관을 시켜가지고 악령 잘 따라가는 요런 연약성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걸 되돌리는 것이 중생된 우리의 평생의 사명이고 전쟁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강하게 잘 붙들어 놓으면 주님이 너 그 실력 그러라고 내가 피 흘려 구원했다. 애썼다. 합격이다. 내가 내 마음 붙드는 그걸 보고 이걸 위해서 피 흘려 구원했다. 그래서 너를 죄지을 수 있는 이런 인간으로 만들었다. 중생된 뒤에도 마음이 연약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을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일흔 번씩 일곱 번 회개하고 돌아서고 원하고 원함으로 이제는 다시는 넘어지지 않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했다. 이게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어 놓은 이유입니다.

베드로가 참 어지간히 주님 애먹이고 죄라는 죄는 다 짓다가 마지막에 돌이켰고 돌이킨 다음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는 교회의 기록이 있는 정도입니다. 아시지요? 닭만 울면 울었답니다. 그때 주님과 함께 갔어야 되는데 그때 내가 대신 죽겠다고 그랬어야 되는데, 평생에 그 실수를 양식 삼아 성공했고, 그 이전까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 아니라 그 베드로는 좀 연구를 해보면 우리보다 더 강퍅하고 우리보다는 죄를 좀 더 잘 짓는 사람 같습니다. 요렇게 만들어 놓고 이런 인간도 이렇게 만들었는데 니들은 더 나을 거 아니냐? 그래서 우리를 형제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연약한 더 큰 이유 우리에게 주신 자유성 때문입니다. 컴퓨터 입력만 해 놓으면 컴퓨터는 1,000개든 10,000개든 주님 찬양합니다, 찬송합니다, 박수칩니다. 이번에 선거 뭐 조작했다는 거, 컴퓨터는 조작해 놓으면 싫은 사람 찬송 표시 천만 개도 만들어 냅니다. 기계니까 인쇄기로 찍어내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들어보고 악령 따라갈까 성령 따라갈까 고민도 해 보고,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악령 따라 죄를 많이 짓고, 죄 짓고 맞아 보고 깨보고 당해보고 그리고 나서는 다시는 성령으로 만 살랍니다. 또 그랬다가 또 실수해 보고 두 번 세 번 열 번 많이 해 보고 돌아 섭니다. 옛날식 전기밥솥 말고 옛날식 밥 한번 해 보고 밥 잘하는 사람 있겠습니까? 열 번 해보고도 안 될 걸요? 새댁들 밥하고 70의 할머니들 밥, 밥맛이 다르지 않습니까? 김장으로 갈까요? 간장 된장 맛으로 가 볼까요? 한번 보고 배웁니까? 많이 실패해 봤다 그 말입니다. 많이 실패해 보고 더 큰 죄인 되는 인간, 많이 실패해 보고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요걸 만들려고 우리에게 자유성을 주셨고 자유성 때문에 이게 흔들립니다. 누구든지 (부르면) 우리 마음이 흔들립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갓난아이 같이 중생이 되면 갓난아이입니다. 갓난아이 중생됐지 않습니까? 근데 갓난아이입니다. 이것이 세월 속에 신령한 젖 말씀을 먹고 실행하고 점점 자라게 되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아니 구원은 단 번인데 구원에 이르도록 점점점점 자라가면 감리교 아닌가요? 인간 노력으로 얻는 구원 아닌가요? 마음과 몸의 성화 면을 말하는 겁니다. 천국과 지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근신하라 깨어라 맨 위에 밑으로는 ‘대적함으로’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귀하고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근신하라 깨어라’ 맨 밑에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되고 그리고 대적함으로 무얼 대적 할까요? 중생은 되었는데 우리의 마음과 몸은 육체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죄 짓는 것은 죄악 세상의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즐겁습니다. 거짓말 도둑질 욕 컨닝 이런 것은 안 가르쳐 줘도 잘 하고 한번 가르치면 평생 안 잊어 먹습니다. 그냥 욕으로 할까요? 욕. 욕은 한 번 말하면 평생 안 잊어버려요. 그 머리가지고 영어 단어 외웠으면 1년 이면 다 영어 박사가 될 건데, 이놈의 영어는 뭐 그냥 100번 1,000번을 갖다 외우고 쓰고 외우고 합격했다 했는데 돌아서면 또 까먹습니다. 좋은 거 옳은 거 복된 거 하늘나라 가까운 것은 등신도 등신도 이런 등신 없고, 지옥 갈 거 죄지을 거 악령 좋아하는 거 지 몸에 안 좋은 거 남 욕하는 것은 뭐 한 시간 듣고 집에 와서 한 시간을 다 설명하고 앉았습니다. 그 정도 한 번 듣고 이야기를 구성할 것 같으면 교과서 한 번 읽으면 다 외워서 다 100점 맞겠는데 이게 타락한 6,000년 죄악 속에 담가 놓으니까 죄짓는 데는 뭐 다 선수지요 뭐?

이런 게 말씀 듣고 이제 중생 된 사람 흉내를 내자니 그렇게 어려운 겁니다. 그걸 한 번 두 번 넘어져 가며 걸음마를 배우는데, 아 이렇게 걸음마 배워가지고 언제 배우지요? 걸음마 배우는 아이들이 넘어질 때 보면 안쓰럽고 저 되겠는가 싶은데 그러다가 어느 날 그냥 뒤뚱 뒤뚱 그러다가 걸어 버립니다. 이게 죄악 세상 속에 익어 있는 것이 바뀌는 고 과정의 과도기입니다. 죄만 짓던 사람이 옳은 일을 처음 해 보려니까 그렇게 어렵고 어렵지, 한 번 세 번 열 번 하다 보면 늘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인제 의가 좋아지고 익어지고 쉬워지고 그 다음부터는 의가 많이 익어지면 저 정도 돼놓으면 욕하라고 가르쳐도 민망해서 이게 잘 안 움직여집니다. 이거 하루아침에 된 줄 아십니까? 입의 욕은 저희 집안 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그거 씻고 그거 닦아서 이젠 욕은 흉내를 내려 해도 이게 이상해서 자갈 십는 거 같아서 안 되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리는 겁니다. 한 번 두 번 해 보고 안 된다고 ‘아 이렇게 어려운 걸 율법주의 아니야?’ 은혜는 퍽 받아 천국 가는 건데, 고런 신앙을 도박신앙 복권신앙 모금신앙. 불신자가 천국 가는 중생은 우리 힘으로 노력으로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은 은혜고 단 번 이고, 내 마음을 바꾸고 내 몸을 바꾸고 내 습관을 바꾸는 것은 일부러 하나님이 우리한테 맡겨 놓고, 해 봐라 싸워 봐라 깨져 봐라 시행착오 겪어 봐라. 네가 해봐야 네 것이 되지. 옆에 친구가 열심히 영어회화하고 나는 지켜만 보면 내 입이 움직입니까? 내가 해봐야 내 입이 움직이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중생된 사람이 꼭 해야 되는 줄 아는데 하고 싶은데 이게 육체의 소욕이 끝까지 버티니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신앙 출발에 그런 겁니다. 첫 은혜 받으면 뭐 몇 달 몇 년 잘 믿는 것처럼 보이는데 귀신은 그때는 손을 안댑니다. 가만히 놔뒀다가 첫 은혜 받고 물불 안 가릴 때는 좀 놔뒀다가 조금 철들고 식어질 때 쯤 되면 슬슬 흔들면 저절로 알아서 죄 짓습니다.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28페이지 마음이 중요한데 마음이 생사를 결정하는데 마음이 성령 악령을 결정하는데 자세가 문제입니다. 자세. 에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에 비해서 위대한 인물입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었더라.’ 어느 들판 어느 야산 서울한복판에 던져 놓고 뉴욕에 풀어놔도 가서 제 할일 다 하고 잡아오고 한 가족 책임질 수 있는 사나이 대장부입니다.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은요? 엄마 옆에 불이나 떼다가 배고픈 형님 눈치 봐 가지고 흥정 잘해서 장자 명분 쏙 빼오는 사기꾼, 야곱의 이름이 꾀쟁이 사기꾼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은 나쁜 인간입니다. 에서는 어느 시험 어느 군대 어느 나라 어느 언어 어느 회사 어느 교회 어느 도시 풀어나도 다 1등하고 다 가져오고,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사냥.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아 아버지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 했더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데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믿음의 계통 목회자가 에서를 좋아했는데, 많이 가져오니까 좋아하지 않습니까? 연보 많이 하면 좋지, 전도 많이 하면 좋고, 그런데 익숙한 사냥꾼이라 사냥꾼은 상대방을 잡아야 됩니다. 상대방이 잡히려 그럽니까? 생존 문제가 달렸는데, ‘익숙한’ 세상에 능한, 회사 들어가면 계장 과장 아래 위 다 쳐내 버리고 승진하는 사람, 학교가면 30등이 일등까지 올라가느라고 전부 다 잡아버리고 올라가는 사람, ‘익숙한 사냥꾼’ 상대방을 잡는데, 세상에 능한 사람입니다. ‘들사람이라’ 들판이라는 것은 거친 세상을 말합니다. 들판은 거친 세상인데 들  사람이라는 거는 거친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 자유 하는 사람.

‘이삭의 사랑’ 이삭은 누군가요? 이삭은 누군가요? 아브라함의 계통입니다. 그리고 이삭이 사랑했으니까 복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에서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호적에 법에 저절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데, 문제는 에서의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계통 이 복이 얼마짜리인지를 몰랐습니다. 이게 얼마짜리인지, 금반지인지 구리반지 인지를 모르니까 천만 원짜리 다이아인지 천 원짜리 모조품인지를 모르니까 가치를 모르면 줘도 가지고 있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에서는 인간으로는 위대한데 망령된 사람입니다. 망령이라는 말은 볼까요? 히브리서 12장 66절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옛날 시골에 연세 많은 분들 어린아이처럼 대소변 벽에 바르고 입에 넣는 걸 망령이라 그럽니다. 에서는 장자 명분이라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돈) 많을 건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천국 영생의 구원의 계통에 서 있는 이 구원의 계통을 두고 갈 땅의 한 그릇 식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썩는 양식에 딱 걸려버렸습니다. 장정만 5,000명 한 2만 명 되는 사람이 예수님을 왜 따라 다녔지요? 3일간? 떡 얻어먹으려고, 먹고 어찌 되었지요? 먹고 죽는 썩는 양식 때문에, 그래서 요한복음 6장 이후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아라’ ‘에서 되지 말아라’ 아브라함 이삭, 아브라함 이삭 에서로 내려오는 구원의 계통 천국의 계통 그 계통은 너에게는 얼마짜리냐? 너의 주일 너의 이번 주일은 얼마짜리냐? 이번 집회는 너에게 얼마짜리냐? 가격대로 갈 겁니다. 100원이면 100원까지는 올 거고 주일이 1,000원이면 1,000원 손해 보고는 갈 거고 10,000원 손해 보고는 안 갈 거고 대학 등록금 400만 원을 내고 합격증을 받을 만한가? 계산해 보겠지요? 미국 유학비 한 6,000만원씩 합니까? 돈 계산 해보지 않겠습니까? 에서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근데 자기 위치 자기가 받은 구원의 계통이 얼마짜리인지를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 만원이면 사는 줄 알았습니다. 만원이면 성경책은 사는데 성경책 안에 들어 있는 진리는 만 원인지 천 원 인지 백만 원인지를 몰랐습니다.

부산의 보수동 중고 책 골목에 가면 성경도 팝니다. 백목사님 설교록도 많이 팝니다. 거기서 많이 우리 사 왔습니다. 보수동 책 골목에 백목사님 설교록 세트가 나오게 된 게 언젠지 혹시 아십니까? 백목사님 초상치고 나니까 줄줄이 나왔습니다. 죄송하지마는 남정교회 대구공회에서 다 나온 겁니다. 그래서 사이트에다 대고 커다랗게 백영희목사님 설교록 팔 사람은 보수동 책 골목 가시고 값 잘 쳐 드릴 테니까 신풍에 파십시오. 많이 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를 아는 분은 사신다면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총공회 최고의 교회 보관용 세트도 들어 왔습니다. 얼마인고? 그건 저 목욕탕에 땔감으로 가는 리어카 위에 실린 거 가지고 왔습니다. 서부교회 도장 찍힌 거. 조선시대 족보를 팔아먹지. 가룟유다 뭐 예수 팔아먹었는데 그까짓 설교록 안 팔아먹겠습니까? 가치를 모르면 못 가집니다. 못 지킵니다. 이게 얼마짜리냐?

결혼할 때 자기 남자 얼마짜리인지 계산해 보셨습니까? 정초연 선생님? 100만 원짜리면 200만 원 손해 볼 때는 놓겠지. 부인은 한 얼마짜리 되나요? 한 오억이면 시내 가서 저 정도면 안살까요? 집사 주면 교회 다 옮기지 않습니까? 장로 주면 교회 옮기지 않습니까? 공회도 목사를 하도 오랫동안 안 시키니까 목사 되는 교파에 갔다 와서 목사 받고 온 사람들도 계십니다. 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면 필연입니다. 이거 얼마짜리 인고? 100원 밖에 안 되는 걸 만 원 치면 또 바보지, 만원을 100원 치는 것도 바보지, 비싼 거는 비싼 대로 싼 거는 싼 거대로 주일은 주일만큼 밤 예배는 밤 예배만큼 새벽은 새벽만큼 가격의 차이는 있습니다. 주일, 걸 수만 있으면 목숨 겁니다. 밤 예배 목숨까지 걸 정도는 아니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이 목회자들 정도면 밤 예배도 목숨 걸어야 될 거고 교회 밥 얻어먹었으니까 흉내라도 내야지. 일반교인들은 가능하면 주일은 목숨 내던지십시오. 평일은 밤 예배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 어느 정도 가격을 메길건가? 자기 신앙 자기실력 잘 계산해서 자기에게 맞게끔 계산해서 연구해보니까 ‘아니 비싼데?’ 올리면 되는 거고, ‘아니 가격이 쎈데?’ 더 올리면 되는 거고, 너무 많이 올렸는데 씨와 양식을 구별해 가며 이렇게 따져 가며 깊이 생각을 많이 하면 뛰고 굴리고 흥분은 안 하지만은 조용한데 무섭습니다. 짖는 개는 안뭅니다. 물어도 긁히고 맙니다. 안 짖고 와서 물어 버리면 그건 목숨이 오고 갑니다. 조용히 얼마짜리 인고? 에서에게 아브라함 이삭의 계통은 밥 한 그릇이었습니다. 밥 두 그릇 줬으면 죽은 아브라함 파다가 같이 팔아먹을 인간입니다. 야곱은 에서 거 건드렸다가는 사냥감이 됩니다. 이 들사람이라 사냥 하는 사람이라 에서한테 뒤틀리면 난리 날줄 잘 압니다. 뱃속에서부터 싸워 봤으니까 이거 배고플 때 장자명분 빼오는 것은 오겠는데 오고 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그다음 죽은 목숨입니다. 죽어도 아브라함 이삭 내려오는 구원의 계통만큼은 이 땅위의 목숨과 모든 것 다 던져도 이거는 잡아야 된다. 야곱은 비겁한 사람입니다. 못난 사람입니다. 근데 구원의 가격은 알았습니다.

넘깁시다. 30페이지 야곱은 못난 사람입니다. 에서는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 위대한 사람 되려고 공부하고 뭔 신앙을 팔더라도 공부는 해야 되지 않나요? 주일 못 지켜도 회사는 가야 되지 않나요? 에서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야곱은 못난 사람입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요즘은 조용해야 문화인이고 안정된 발전된 사회에 큰 걸 얻어먹지마는 요즘은 조용해야, 이때는 들판에 설치고 다 휘저어서 와야 먹고 삽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라 ‘장막에 거하니’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근데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데 이삭이 사랑하고 다 부은 에서는 곁 나가고,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 오 는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사랑한 사람,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사랑한 사람으로 구원의 계통은 내려옵니다. 이게 웬일이지요?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찍었는데 이스마엘은 곁 나가고 사라가 붙든 이삭으로 내려옵니다. 이삭이 사랑한 에서는 곁으로 나가고 에서의 아내 리브가가 사랑하고 붙든 야곱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옵니다. 이게 여자한테 달린 겁니다. 그 여자라는 것은 배후의 실력자인데 남자 앞에 놓고 벌대로 설쳐 싸도 뒤는 여자의 결정이고 복인데 성경이 그런데 그거 싫다고 전부 남자하겠다니 이거 참. 심장이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면 사람은 죽습니다. 심장은 안에 있어야지, 너무 중요해서. 뇌는 머리 밖에 나오면 안 됩니다 이건 너무 중요해서 안에 있어야 되지, 철바가지 안에 있어야 되고, 철장 안에 있어야 됩니다. 너무 중요해서, 근데 여자들한테 집구석에 앉아 가지고 애 기르라고 야곱 만들고 이삭 만들고 그러라 했더니마는 지가 이스마엘 되겠다고 지가 에서 되겠다고 나와서 설치고 세상을 이렇게 지배 하겠다고 펄펄 뛰니, 아 에서하고 싶으면 에서 하십시오. 야곱 하고 싶은 사람은 야곱하고 세상이 볼 때에는 못난 사람인데 ‘종용한 사람이라’ 조용했다, 쪽발이 되고 만사를 살펴 구별하는 사람이었더라. 따져보고 따져보고 복습하는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 온 구원의 계통은 이건 내가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거다.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구원의 계통의 복을 알아 놨으니 그 다음부터는 야곱이 지켜보는 겁니다. 목숨 걸고,

에서는 에서 좋아하는 거 가져갖고 야곱은 야곱 하는 거 가져갖고 됐지요? 서로 자기 좋아하는 거 가져갔으니까 왜 뒷말이야? ‘야곱은 장막에 거하니’ 장막이란 보호를 받아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보처럼 보이는데 겸손한 사람입니다. 장막에 거했더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이 아니면 나는 못 산다. 에서는 장막 던져 버리고 팔아버리고 장막 치워버리고 장막 있어도 들판을 가로질러 세상을 휘집는 사람입니다. 내 보호를 받아라. 남자분들 옛날에 잘난 남자분들 내 주먹을 믿어라. 하나님이 아니고 내 주먹을 믿어라. 요즘은 내 머리를 믿어라. 그런가요? 여자는 뭐 내 인물을 믿어라. 그런가요? 에서는 들사람이라 사냥에 익숙한 사람이라 천하가 내 건데 ‘장막의 보호’ 필요 없습니다. 야곱은 보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 아니고는 못 삽니다. 이 몸 주님이 지켜 주지 않으면 순간도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뭐 죽는다고 예상한 사람만 죽나요? 장애자 나올 집만 장애자 나오나요? 예측이 되나요? 일부러 하나님께서 내게 주권이 있으니 겸손해라 경고 하는 겁니다. 잘나도 조심하고 못나면 더 조심 하고 이게 야곱의 길입니다. 리브가의 사랑 이삭의 사랑을 받은 에서는 멸망이 되었고 리브가의 사랑을 받은 야곱은 아브라함 이삭의 계통에 서 버렸습니다. 양육은 어머니가 했습니다. 씨는 종자는 신앙의 계통은 아브라함 이삭 계통이라야 됩니다. 다른 종자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걸 기르는 것은 어머니한테 달려 있습니다. 그 (한 명의) 남자는 남자대로 위대한 거고 그 위대한 여자의 머리니까 그게 위대한 거고, 이삭과 야곱을 뒤 바꿀 수 있으면 이 여자는 구원의 계통을 결정하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닌데 왜 천하가 미쳐 가지고 남자 여자를 다 흐트려 가지고 엉망을 만들어서 결혼도 안 하도록 이렇게 만들어 버렸나요? 그래서 이번 집회의 제목이 신앙결혼입니다. 남자냐? 남자 되고 여자냐? 여자 되라. 이걸 왜 교회에서 말을 합니까? 세상에서 다 말을 하는데 세상이 다 뒤 흔들어 놓으니까 세상만 뒤 흔들었나요? 역사를 살펴보면 남자 여자를 뒤흔들어 놓은 배후가 전부 교회입니다. 교회. 교회가 들어서 사랑 사랑을 갖다 대속의 사랑이 아니라 남녀 사랑으로 뒤흔들어 놓고 너무 불바다가 되니까 이제 와 가지고는 뭐 남녀구별 하자고 밉상이지요? 괘씸하지요? 덕유산 바닥에 공회 우리 내계 집회에서 만큼은 이 소리를 키울 수 있고 이 소리가 맞다 할 수 있고, 이 소리가 우리의 길이라 할 수 있다면 노아 홍수 때 홍수를 방주로 넘어 간 것처럼 오늘 이런 인류가 사라지는 때에 우리는 20살 결혼 할 것이고 30에 애 네댓 명 낳을 것이고 남들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그것만 해도 말세 최고의 교회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 이렇게까지 낮아졌습니다. 전부가 다 공부할 때는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될까 말까 했는데 전부 안 하니까 쬐끔만 해도 1등 하는 이런 놈의 세상이 됐습니다. 희한한 세상.

야곱은 못난 사람입니다. 지금 마음의 자세 하나에 어떻게 되었느냐? 아브라함 이삭으로 내려오는 계통을 에서는 마음에 시시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자세. 좀 정신 차려 봤더라면 야곱이 들고 가는데 넘겨주지는 않았을 터인데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삼키려고 오는데, 에서는 잘났기 때문에 방심했습니다. 그 뭐 그까짓 거 가면 전부 내 건데, 야곱은 못 났기 때문에 근데 구원의 계통이 소중했기 때문에 지켜봤고 새겨 봤고, 마음의 자세 마음의 생각 하나에 야곱은 야곱 되고 에서는 에서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마음의 결정 이 마음의 전쟁 이 마음의 갈등 이게 보통 전쟁입니까? 보통 중요하겠습니까? 야곱의 마음에 이 구원의 계통은 잡아야 되겠다. 목숨을 걸어도. 판단은 나왔는데 목숨이 생애 애착 욕이 있으니 마음이 아브라함 이삭 구원의 계통 이거 영생이니까 잡자 그럴 때에 몸이 아 에서 칼날이 무서운데 화살이 무서운데 끔찍한데 그럴 때에 마음이 몸에게 사람은 한번 죽는 거다. 주권은 하나님께 달려있고 예정되어 있다. 구원의 영생은 놓칠 수 없다. 한 번밖에 기회 없다. 잡자. 자꾸 마음이 몸을 달래니까 몸은 살고 싶은데 에서가 겁이 나는데 두려운데 자꾸 반복을 시키니까 몸이 그만 일냅시다. 그렇게 마음과 몸이 합작을 한 겁니다. 겉으로 보면 리브가 엄마하고 야곱이 둘이 짜가지고 눈먼 아버지하고 형님을 속여 먹었지마는 야곱의 마음 안에는 몸은 살고 싶고 편하고 싶고 에서한테 쫓기고 싶지 않고 마음은 아무리 계산을 빼 봐도 이거는 해 먹어야 되겠고 그런 많은 배후가 있고 마음의 자세와 마음의 판단이 있고 그 다음 몸이 따라 간 겁니다. 오늘도 우리 믿어 가는 길이 다 그렇습니다.

34 페이지로 옵니다. 우리의 마음 마음이란 몸하고 비교도 못할 만큼 탁월한 병기입니다. 마음은 에서하고 야곱하고 달리기 시키면 비교도 안 되지만은 에서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야곱의 마음은 새김질하고 구별하고 계산이 많습니다. 야곱의 마음은 에서를 탁월하게 앞섰습니다. 결국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자꾸 자꾸 생각하다 보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이라니요? 몸과 마음 둘이만 생각하는 생각입니다. 영은 빼버리고.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보면 믿는 사람한테 하신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술수 원수 맺는 거 분쟁 시기 분냄 믿는 사람은 이런 거 없나요?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쟁 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분쟁 없는 부부가 어디 있습니까? 다 있지. 믿는 사람 마음 안에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해 어 지옥 가네. 마음에 분쟁하는 마음 분쟁하는 부부 분쟁하는 교회는 다 지옥 가네요? 기본구원 건설구원 못 나누면 이러니까 교회가 헷갈리는 겁니다. 한 교회가 내분이 일어나면 한 교파가 쪼개지면 여기 보니까 당 짓는 것이지요? 분리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분 냈지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쪼개 지지 않고 갈라지지 않은 교회가 있나요? 역사에? 거 조금 생각해 보면 기본구원 건설 구원은 유치원은 몰라도 초등학교 과정 밖에 안 될 거 같은데, 영의 생각은 믿는 우리의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은 우리 영의 생각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늘 성령과 영은 하나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보니까 사랑 연애 사랑 말고 끼리끼리 또래끼리 놀러 다니는 우정 말고 구원의 사랑 말씀의 깨달음의 기쁨 희락 나는 손해 보기 싫은데 저 사람을 신앙으로 끌기 위해서 붙드는 화평, 말씀이 어려워도 오래 참음 지금 저녁 예배 한 시간 반이 다 돼 가는데 언제 끝이 날고? 그렇지만은 몸도 마음도 좀 붙들고 좀 더 참아보자. 이런 것은 성령의 마음입니다. 앞에 육신의 생각도 우리 안에 있고 영의 생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둘이 안에서 전쟁을 벌이는 겁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냐? 마음이 결정합니다. 그 마음의 결정에 따라 에서 되고 야곱 됩니다. 오늘도 에서 적이고 야곱 적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갑니다.

36페이지 넘어갑니다. 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그냥 사이좋게 가지는 못 합니다. 둘 중에 하나로 결정되지. 한 마음 속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성령의 법 육신의 소욕의 법 양쪽 법이 양쪽 마음이 늘 싸웁니다.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성령의 마음과 육신의 마음이 싸우다가 성령의 옳은 마음이 져버리면 죄의 마음이 붙들고 끌고 가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섬기면 좋을 텐데 한 여자가 남자 둘 데리고 살면 문제가 없을 건데 밥은 부잣집 남자한테 가서 먹고 잠은 이쁜 남자한테 가서 자고 요즘 흔하다면서요? 성령도 그렇게 하도록 그냥 지켜볼까? 자존심이 없어서 못나서. 성령은 딱 쪼개서 좋으면 좋고 말면 말아라. 성령 싫어하는 사람을 기어코 마음을 틀어쥐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성령 아니면 죄송하지만은 악령입니다. 믿는 사람 마음도. 그래서 마음을 뺏기 위한 전쟁이 얼마나 심각한지, 오늘 본문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너 무엇을 지키라고요? 왜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목숨은 생명이 아니라 영생이 여기서 결판나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자기의 정과 욕심을 사정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겁니다. 이걸 놔뒀다가는 믿는 내 마음이 악령에게 붙들려 맨날 죄 짓는 생각을 할 터이니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신앙 없는 아내가 집회 가느니 해외여행이나 가지? 신앙 없는 남편이 주일 51번 지켰으니 한번쯤은 놀러 가지? 인정 애정 가정의 사랑을 봐 가지고는 안 따라갈 수가 없는데 이때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느냐? 부부 싸움 할 자신 있냐? 그 말인데 요즘 부부싸움이야 여자가 이기니까 남자가 문제고 옛날 부부싸움은 남자가 다 이기니까 여자 문제지. 네가 불리할 때 어떡할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게 주님 가신 십자가를 뒤 따르는데 기본적인 겁니다. 믿는 사람은 좀 불편한 거고 좀 덜 먹는 것이지, 학생이 먹을 거 다 먹고 볼 거 다 보고 돌아다닐 데 다 보고 공부는 어떻게 합니까? 시험이 다가오면 명절 하루 공부도 하는 거지. 친구들 다 놀러 가도 부족하면 하루 공부할 수 있는 거지. 그게 이단입니까? 나쁜 놈입니까? 머리가 나쁘면 한 번 더 공부하는 거지. 아 예수 믿어 가면서 좀 불편 한 거지. 좀 어려운 거지. 신앙이 부족하니까, 잘 믿는 사람들이야 뭐 죄지어 가면서 믿어도 되지마는 우리가 그 정도 됩니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마지막으로 38페이지 요렇게 내 마음이 영과 성령과 악령 사이의 결정에 따라 이렇게 영생이 나의 마음과 몸에 모든 것이 달려있으니 마음이 말씀에 붙들리면 그러면 이 마음이 변화가 되어 집니다. 38절 성경에 있으니까 좀 찾아보시면 쉬워서 알 것이고 정리해 놓은 교재입니다. 마음이 말씀에 붙들리면 마음이 변화가 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마음이,

넘겨서 40페이지 말씀에 붙들리지 않으면 그 마음 어찌 되느냐? 불택자는 그 자체가 지옥이지마는 중생된 우리도 우리의 행위는 포기해야 됩니다. 로마서 1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사람이 아니라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나니’ 이거 불신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에 대한 겁니다. 믿는 나는 천국 가지마는 내 마음속에 경건치 않은 부분은 하나님의 진노가 태웁니다.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경건치 않다 말은 마음에 하나님 중심이 없고 행동이 말씀에 맞지 않을 때 경건치 않음 이럽니다. 불의라는 것은 자기 뜻 제 맘대로 하는 걸 불의라 그럽니다. 고런 행위 고런 마음은 하늘로 좇아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데 그래도 택자는 무조건 구원입니다. 그러나 택자의 행위는 행한 대로 보응합니다.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있는 거까지 뺏는 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썩어진 것을 거둔다 했습니다. 이거 다 믿는 사람을 향한 겁니다.

그래서 홍포 입은 부자의 고민이 이 불꽃 가운데 고민 하나이다. ‘이 땅위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서 잡혀 갈 때 베드로에게 너 제자지? 모르는데 맞는 거 같은데 아닌데 세 번이나 주님 앞에 주님 모른다고 부인 부인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 베드로 해당이 안 됩니까? 인자도 베드로가 영원무궁토록 부끄럽습니다. 저런 걸 낳고 미역국을 먹다니, 저런 걸 낳아 놓고 미역국을 먹다니, 주님이 베드로 저런 걸 구원하려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다니, 그런데도 택자라 천국은 데려 가지만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 한 고 부분은 부끄러운 겁니다. 거 자랑스러운 거 아닙니다. 영원무궁토록 부끄러운 겁니다. 아이 그때 그냥 죽을 요량하고 선생님입니다.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했더라면 이왕 죽을 것 죽어서 영원무궁토록 천국에서 베드로 봐라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을 때 다 도망갔는데 베드로는 내가 주님 대신 죽겠다고 뛰어든 베드로다. 영원무궁토록 이렇게 될 건데, 모릅니다 모르는데요 아닌데요 세 번이나 그 얼마나 그 때는 부끄럽겠습니까? 얼굴이 화닥 화닥 하겠습니까? 홍포 입은 부자 함부로 지옥 갔다고 해석 하면 이 땅에서 잘 믿으면 천국가고 잘못 믿으면 지옥 간다는 알미니안 감리교 이단이 되는데 조금 읽어 보면 사람 자체는 천국이나 내가 부끄러워한 행동 내가 하루를 위해서 먹고 즐긴 행동 이런 부분은 딱딱 분리, 어 구원과 분리 멸망이 있겠구나. 성경 전체는 이걸 가르칩니다. 성경은 불택자 불신자 전도용이 아닙니다. 성경은 전도지가 아닙니다. 성경은 믿은 우리 중생된 우리한테 믿어 가는 길을 안내 한 겁니다. 우리에게 전부 해당됩니다. 성경에 잘못된 거는 거의 전부 믿은 우리 안에 문제입니다. 이걸 불신자 거라고 자꾸 던지니까 믿지도 제대로 못 한 것들이 천사가 된 줄 알고 성경을 가지고 틀린 거 있으면 너 지옥 갈사람, 너 지옥 갈사람 그 말 하는 네 놈은 성경을 가지고 뒤져 볼 때 몇 개나 맞느냐? 100개 중에 한 개라도 맞느냐? 다 틀리는 것이.

예전에 시험 보면 시험지를 나눠 주는데 시험지 들고 옆에 애들한테 몇 점 몇 점 이것도 틀려 저것도 틀려? 한 반에 60명입니다. 59명 돌면서 보자 이것 틀려 이것 틀려 이것도 틀려  자식. 지 시험 문제는 다 틀려 놓고, 100점 맞은 놈이 그래도 밉상일 건데 빵점 맞은 게 몇 점 96점 왜 틀렸어 이거 틀렸어 이것도 틀렸어 이것도 틀렸어 이 성경을 들고 목사 다 찾아 다녀 보지요? 당신 이거 틀렸어 이거 맞어? 장로 너는? 집사 너는? 이러고도 중생된 사람이야? 그 말하는 네 놈은 성경에 몇 개나 맞냐? 다 틀리면서. 이렇게 틀렸는데도 택자라 천국은 갑니다. 낳아 났으니, 낳아 났으니 부모 자녀는 못 끊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허나 행동은 구별입니다. 생애는 구별합니다. 나는 천국 데려 가지만은 내 인생 잘못된 마음 잘못된 행위는 정확하게 구별해 가지고 다 분리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44절 각오 합시다. 사도 바울이 드디어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인도에 마음이 붙들려 심령에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는데도 무슨 일을 만날 런지 알지 못하지만은 담대하게 걸어가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제 마음은 갑니다. 제 마음이 간다면 제 몸은 제가 붙들고 가겠습니다. 심령의 메임을 받아 무슨 일을 당할 런지, 죽기는 죽겠는데 죽어도 요렇게까지 마음이 자기 몸을 틀어쥐면 몸과 마음이 완성입니다. 이게 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살아야 됩니다. 지금 죽으면 다 실패 아닌가요? 한 십점 오점 다 그렇지 않나요? 전 한 20점 될 런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죽으면. 그래서 이 몸 좀 더 건강하게 살아야 많은 세월 중에 몰랐던 거 빨리 배우고 빨리 좀 고치기 위해서. 좋은 세상 놀러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인생을 어떻게 그렇게 몰랐던고 평생을 가르쳤는데 돌아보면 평생 엉뚱한 거나 가르치고 잘못 가르치고 둘러 갔으니 통탄할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응급하게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좋은 세상 살게 해 주시라가 아니라. 참 잘못 살았습니다. 이 눈이 있고 좀 다녀야 (  ) 믿고 갈 터인데, 뭘 믿고 갈까요? 뭘 할까요? 마음이 바로 깨달아 이 몸을 틀어쥐고 한 번이라도 두 번이라도 좀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첫 시간 둘째 시간 몸과 마음에 대해서 중요성과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왜 내 몸은 건강해야 될까? 난 내 몸을 어느 정도 쥐고 있을까? 난 내 마음이 어디로 잘 끌리는가? 언제 잘 빼앗기는가? 몸과 마음을 연구하고 살펴보는 집회되도록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 하겠습니다.



교정 : 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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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08.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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