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21.5.4 마5:13 천국 복음의 사람으로 실제 사는 '자기'희생만 소금과 빛, 남의 희생 요구는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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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21.5.4 마5:13 천국 복음의 사람으로 실제 사는 '자기'희생만 소금과 빛, 남의 희생 요구는 율법

교인1 3 165 2021.05.0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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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21.5.4 마5:13 천국 복음의 사람으로 실제 사는 '자기'희생만 소금과 빛, 남의 희생 요구는 율법



* 천국을 가르친 8가지 복음의 사람이 '자기 헌신'을 할 때 비로소 소금과 빛이 됨
* 구원의 생명 운동을 위해 감정과 미움도 모든 노력도 의가 됨




설교요약

* 오늘의 복음 : 내가 가질 나의 복음

① 복음의 방향 : 산에서 천국복음을 가르침

② 팔복1 : 먼저 천국 일념의 나 자신으로 만들어
- 천국에 갈급과 애통이 세상 초월과 의에 매진을 가져오고

③ 팔복2 : 자기 주변까지 그리할 때, 고난을 초월
- 천국 향한 약함을 동정[5복]하여 동일한 노력으로[6복]
- 주님과 하나 만들고[7복] 세상의 고난을 초월[8복]

④ 복음의 실제 : 자기 실행, 자기 희생
- 천국 복음으로 실제 사는 자기 희생[소금]으로 비춰[빛]
- 구원의 생명운동[살인,노]을 위한 모든 노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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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타본이며 교정 후에 초타본 표시를 삭제 합니다.


210504 집회 4(화전)

제목 : 천국 복음의 사람으로 실제 사는 '자기'희생만 소금과 빛, 남의 희생 요구는 율법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늘을 향한 하나님을 향한 영원불변의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 목적 이 예택 인하여 대속으로 주의 자녀 되어졌고 잠깐의 세상의 매 순간을 영원히 보존되어 영원히 자라가는 끝없는 소망의 기회로 우리의 마음 우리의 행위 우리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귀하고 귀한 보배의 말씀 기회를 받았는데 이 일에 쓰라고 세상을 주셨으나 오히려 세상에 이 보배로운 말씀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렸고 세상은 우리의 생애와 마음에 가득 차 버렸고 믿는다 하지만은 우리의 매순간의 마음과 욕심과 우리의 내면은 세상이 넘실되어 인간이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어 주일과 예배를 통해 은혜를 구하다가 공회적으로 함께 모여 시대를 두고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역사가 공회적으로 함께 하고 그 여파로 가정과 한 사람 사람까지 이제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세상을 향한 발표가 아니라 하늘을 향한 방언의 새 역사 새 생활을 힘 있게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으니 인간이 인간을 만들겠나이까 자기가 자기를 만들겠나이까 우리 정성 다 하여 주님이 우리를 바꿔 주시기를 소망하고 이 시간도 주신 말씀으로 살펴보겠사오니 우리를 굽어 살펴 긍휼을 베풀어 신적 요소로 우리의 인적 모든 요소를 성화시켜 인도해 주옵소서 감당 못할 세상을 주신 주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면 감당 못 할 세상이 우리의 이용물이 되고 하늘을 열어가는 귀한 재료가 되겠사오니 말씀 속에 이시간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삼십 페이지입니다. 세 시간을 통해 팔복 여덟 가지 천국의 복음을 살펴봤습니다. 세상의 갈급 버리고 천국의 갈급으로 사모하는 애통하는 사람이 되자. 나만 천국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 되지 말고 내가 노력하면 도울 수 있는 주변의 사람을 주님 앞으로 신앙으로 천국으로 달려가게 도와주자.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라” 우리는 사람인데 2위 성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이런 영광의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세상에서 이런 보배로운 생활을 걸어가게 되면 이게 보배인줄 모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천국을 향한 우리를 그냥 두지는 아니합니다. 오해도 받고 손해도 보고 쥐어 박히기도 하고 그러면서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게으름, 내 죄, 내 잘못된 것으로 구박 받으면서 하늘에 상이 크다 이렇게 갖다 붙이지 말고 정말로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찾아 가다 보니까 손해보고 박해받고 욕 얻어먹는 것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 하늘의 사람이 되어 졌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리고 이제 삼십 쪽에 그런 팔복의 여덟 가지를 필연적으로 순서적으로 거치고 나면 천국의 사람이 되었으면 다른 사람도 천국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마태복음 5장 13절 삼십 쪽 위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니 소금이 짠 맛 그 맛을 잃으면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건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소금의 역할은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다. 방부(방부), 썩을 부(腐), (썩을 부) 막을 방(防), (막을 방) 음식이 썩으면 부패 한다 그럽니다. 그걸 막아내면 방부라 그럽니다. 소금이 들어가면 썩지 아니합니다. 썩는 것을 막아주는 방부제.

무엇이 썩는가? 음식이 썩으면 냉장고 넣고, 음식이 썩으면 여러 가지 조처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썩으면 무엇이라 그러지요? 교재 가운데, 신앙이 썩으면 속화라 그럽니다. 요때 속자가 세상 속(俗)자입니다. 신앙이 세상을 닮아 가면 속화라 그럽니다. 교회가 시민단체, 사회단체, 정당, 시청, 국가, 유엔, 환경운동 따라가면서 우리도 대표 있다, 우리도 총무 있다, 우리도 이사 있다, 우리도 총회 한다 이렇게 간판을 쭉 펼쳐 ‘우리도 조직 있다’ 그러면 그 세상을 많이 닮았구나, 시청 닮으면 세상 닮는 거 아닙니까? 유엔을 닮으면 세상 따라 간 거 아닙니까?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을 닮아 가면 뭐라고 한다고요? 명주선? 세상 따라가면? 속화. 세상 닮아 가면 속화, 세상 따라 가면 속화. 신앙이란 세상을 닮아 가면 그게 썩는 겁니다.

생선이 썩고, 사과가 썩고, 음식이 썩고 그건 소금 없이 냉장고를 넣어도 됩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고 신앙이 세상을 닮아 가면 발전인가? 드럼 세트 몇 백만 원짜리를 노래방에 놓고 막 치다 보니까 땀이 나고 신이 나고 그러다 보니까 ‘아이, 예배당 가서 뚜드리면 더 좋겠는데?’ 삼십년 전 쯤 되니까 도시 교회로부터 시골교회까지 드럼 세트가 들어가서 사십 년 전에는 도시 교회 드럼 처 대고 삼십년 전이 되니까 시골 교회까지 드럼 세트가 난리인데 교회가 노래방 따라가면 찬양입니까? 교회가 오케스트라 밴드 갖다 놓고 뚜드리면 교회의 찬송에 발전입니까? 그래서 신이 나면 그게 성령입니까? 다윗도 춤을 추지 않느냐? 예, 다윗도 춤을 추다가 옷을 벗어 버렸습니다. 왜 옷 벗고 춤을 추지? 따라가려면 제대로 따라 가든지 자기 좋아하는 것만 쏙 쏙 뽑아서 차려 놓고 항상 거뜩 먹으면 성경 말씀을 뽑아다가 차려 놓아도 자기중심으로 모아 놓으면 말씀을 악용하는 게 됩니다. 악용이란, 악이 무슨 악, 자 라구요? 자기중심. 내가 중심되고 내가 교인이 되어 말씀을 골라먹으면 성경도 악용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경 말씀 가지고 시험을 했습니다.

세상을 닮으면 다 같이 뭐라고 한다고요? 속화라 그럽니다. 속화는 것은 좋은 뜻인가요, 나쁜 뜻인가요? 나쁜 뜻입니다. 불교 믿는 중들도 세상 닮지 않으려고 산속으로 갔습니다. 세상이 더럽다고. 그래서 중들도 세상을 세속이라 그럽니다. 세속.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좀 멀어져 산 속에 가서 더러운 세상과 멀어져 볼까. 세상과 멀어져 봐야 그들에게는 천국이 없습니다.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다행인데, 불행 중 다행인데 구원이 없고 천국이 없으니 산속까지 밖에 못 갑니다. 구원받은 교회는, 구원받은 우리들은 세상과 좀 멀어지고 주님에게 배우러 어디로 올라갔더라구요? 마태복음 5장 1절, 산으로. 이렇게 산 위에만 오면 다 해결이 됩니까? 그러면 불교지. 땅위에 붙어 살던 인간들아 바다 속에 죄악의 방법으로 죄악을 건져먹던 이런 죄악의 낙을 즐기던 자더라, 산에만 오면 해결이 됩니까? 산도 세상인데.

“위의 것을 바라보라” 왜 산에서 가르쳤나? 위를 보라고. 위가 뭔데? 하늘입니다. 로켓타고도 요즘 하늘 우주 댕기는데 그 하늘 말고, 우주에 하늘 말고. 인간이 갈 수 없는 곳 세상이 아닌 곳.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집, 영계 천국을 가르치기 위해 천지를 창조할 때 하늘을 저 모습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멀지요? 끝도 없지요? 계산을 못하겠지요? 잡을 수도 없지요. 그게 뭔가? 어린 구약교회를 위하여 연결을 가르치려고 하늘을 만들었지 눈에 보이는 저 하늘도 크게 말하면 세상입니다. 세상을 닮으면 속화. 신앙이 썩어 버립니다. 교회가 죽어버립니다. 썩는 속화를 막는 것이 방부제입니다. 그게 소금입니다. 소금이 되라. “너희는 소금이니” 또 복음을 전파할 때 복음은 세상이 없어 무서워하는데, 싫어하는데, 꺼려하는데 먼저 믿는 천국 복음의 너희들이 세상 사람이 볼 때 신앙생활 하고 세상 살아갈까? 주일 지키며 먹고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데 먼저 믿는 사람들을 보니까 교회가 강할수록 신앙이 엄할수록 교회가 나라에 많아질수록 불신 국가까지 너무 발전이 되어 탈이지 기독교가 많고 들어간 나라치고 또 후진국이 없습니다. 그걸 보고 안 믿는 사람들이 ‘저쪽에 신은 진짜 신인가 보다 다른 쪽은 종교를 말하고 하늘을 말하는데 뒤로는 인간 수준인데 정말로 인간을 넘어서고 과학을 넘어서고 세상을 정말로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으니 저쪽은 참 하나님이 계시는가 보다 나도 믿어볼까’ 요런 맛, 요런 행위 고런 재미 그렇게 끌림을 주도록 하는 것을 가르쳐 조미료라 그럽니다.

소금 자체는 먹어 좋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밥을 맛있게, 국을 맛있게, 반찬을 맛있게 좋게 만들기 때문에 요런 것을 조미료라 그럽니다. 복음 전파를 돕는 역할. 이게 소금입니다. 어떻게 해서 속화를 막는 방부가 되고 어떻게 해서 복음을 전하는 좋은 조미료가 되어 질까 방법은 소금은 녹아 져야 됩니다. 엄마가 녹아져야 됩니까, 아이가 녹아 져야 됩니까, 남편이 녹아 져야 됩니까, 자기가 녹아 져야 됩니까? 다 같이요. (자기) 자기가 녹아 져야 소금입니다. 자기는 티끌 털끝 하나도 손해를 안 보고 ‘너 소금이 되라 너 소금이 되라’ 교회 출석해 가지고 온 교인들에게 ‘여러분 다 소금이 되십시오’ 그리고 그 소금되어 수고한 거 다 뽑아다가 훔쳐 가려고, 덕 보려고 귀신이 이런데도 다 따라와 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너는 소금이다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 중에 너가 소금이다 너부터 소금해라’ 내가 녹아 져야 남도 녹아지도록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여기 있는 목회자 저는 녹지 않고 딱 버티고 교회 돈 훔쳐다가 뒤에 단단하게 쌓아 놓고 교인들한테는 ‘돈을 초월하십시오, 물질을 벗어나십시오 뭔 그런데 갖다가 붙들려서 다 연보 하십시요’ 목사 계좌를 추적 해 보니까 그쪽에는 돈이 가득 쌓여 있고 목사는 소금되기 싫고 교인들에게 ‘소금 되십시오, 소금 되십시오’ 종교 사기꾼 말이지. 목사만 그렇습니까? 예전에는 교회 신앙 있는 사람들은 뭐 거의 여반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남반이 추월해서 이제는 남반이 신앙에 앞선 가정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은 발전이고 좋은 겁니다. 신앙에 앞선 남편이 아내한테다 대고 ‘마태복음 5장 13절 소금 되라 했지? 소금 되라 했지? 녹아 져라’ 뭐 아내는 또 할 말이 없나요? ‘당신 먼저 녹아지면 나 뒤따라 갈게’ 이래 가지고 또 둘이 싸우고 앉았으면 말씀 가지고 서로 검을 삼아 상대방 찌르기를 하는 겁니다. 말씀은 검인데, 말씀은 검인데, 칼인데 말씀의 칼로 자기는 도리지 않고, 자기는 수술하지 않고, 자기는 고치지 않고 남만 찔러대니 ‘넌 살인자다’ 소금이라 말은 ‘너 녹아져라’ 이 말씀을 전하는 저는, 저는 얼마나 녹아 졌을까? 그리고 함께 연구를 하는 겁니다.

자기가 녹아져야 그게 소금입니다. 어느 정도 녹아질까요? 오십 프로 녹아 졌으니까 이만하면 됐지? 국에 넣은 소금이 절반 녹고 절반 버티고 앉았으면 그거 고장입니다. 자기가 없어져야 됩니다. 녹아지라? 어느 정도까지요? 없어짐! 그 방법이 소금입니다. 불신자도 아는 이 좋은 방법 다 아는 상식. “빛과 소금이 되라” 그러는 사람들 그 말 뒷조사를 해 보십시오. 말하는 자기가 ‘나도 녹아 지니까 좋더라 녹아 져서 이 좋은 세계를 함께 갑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계시는지, 순서가 바뀌면 귀신의 가르침이 됩니다. 오신 주님을 십자가 못 박을 때 바리새인들이 성경 가지고 십자가 못 박아 버렸습니다.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악용하면 예수님 처치하고 천하를 악용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되라 말씀은 내가 녹아 져야 되겠구나, 아직도 녹아지지 않은 부분 남자들은 오기 자존심 그게 대개 끝까지 버팁니다. 남자라고. 오기 자존심까지 녹아지고 나면 또 문어처럼 흐물흐물 해 가지고 이건 또 줏대도 없어서 이것도 또 탈입니다. 사람이 착하면 자존감이 없어 탈, 자존감이 있어 제 위치와 할 일을 잘하는 지도력 있는 사람은 고 지도력 딱 옆에다 대고 자존심 오기가 붙어 가지고 자기가 중심되고 자기가 머리 되지 않으면 다 그냥 다 없애버립니다. 남자가 자존심까지 다 녹았느냐, 다 녹였느냐 그래서 다 없애 버렸느냐? 그러면서도 남자의 머리 된 지도력과 사명감은 펄펄 살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달려가고 있느냐? 남자의 숙제입니다.

여반의 숙제, 여반의 과제는 뭔가요? 결혼하고 나서도 이쁘게, 아 여자가 뭐 이쁘려는 것이야 뭐 본능인데, 그 결혼해 가지고 이쁘게, 퇴근하는 남편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출근하고 나면 이쁘게 차리고 시내를 기어 돌아 댕기면 지금 뭐 하자는 짓이지요 그게? 놀다가 와 가지고 이제 퇴근하는 남편한테는 하루 종일 놀다가 파김치가 돼 가지고 아무렇게나 뭐 ‘애 셋 낳은 나를, 아이 셋 낳아 놓은 나를 어째? 그게 들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1절, 뱀이 아담을 건드리지 않고 순서적으로 하와를 먼저 손댔습니다. 그 때 “뱀이 간교한지라“ 간교의 간 자가 여자 셋을 모아 놓은 간사할 간(姦)자 입니다. 그 한자는 안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놨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성경을 마치 깨달은 것처럼 그렇지요? 자연계시의 본능이라 아는 겁니다. 특별계시가 아닙니다. 남편 옆에 따라붙어 남자 부족한 거 가르쳐 주고 밀어 주고 그러라고.

남자의 가정교사 배후의 실세가 여자입니다. 그 여자의 위치가 나쁜 게 아닙니다. 그 2인자가 아닙니다. 남자 지도자지! 남자를 배후에서 밀어주고 집에서 교정해서 밖에 갖다 놓으면 흠도 점도 없는 좋은 남편 되도록 숨어서 ’네가 수고를 해라‘ 여자는 집에서 남자를 보면 틀린 게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거 저거 충신이 충언을 해야 되는데 그 뻑뻑하게 말하면 싸움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남자 틀린 걸 가르쳐주고 보충하고 그럴려면, 웃는 낯으로 좋게 말 하라고. 그래서 여자한테 미모를 주고, 재주를 주고, 아름다운 말을 주고, 상황 적응력을 줘 놨더마는 이게 아담이고 이게 하와인데 뱀이 아담을 먼저 치면 범죄 이전이라 이기기가 어렵고 하와 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문이 열려 버리니까, 그리고 하와의 장점은 남편 옆에 이말 저말 해서 설득을 하는 거니까, 설득을 해서 죄 지으러 가자고요? ’이게 주님이 더 기뻐 하시겠습니다 그런데 머리 되는 당신이 수고가 많겠습니다 제가 박수 치고 환영하며 뒤를 따를 테니 앞장서서 고생하시지요‘ 웃으며 이쁜 얼굴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팔짱 끼고 자꾸 남자를 옳고 바르게 만들으라고 여자한테 사교술 주고, 미모 주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줘 놨더니마는 이걸로 가지고 다른 남자한테 기어 돌아 댕기면 그게, 그게 정조 없는 일입니다. 이게 지금 천하를 다 어지럽게 만든 윈인입니다. 남자 책임 반, 여자 책임 반 앞서고 뒤서고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놨습니다. 남편도 자기 녹아질게 있고 어느 정도가 녹아져야 된다고요? 없어져야 됩니다.

여반은요? 여반도 녹아 져야 됩니다, 여반은 자존심 오기 녹이라면 웬만한 여자는 그런 거는 벌써 다 녹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자 노릇하지. 남자한테 간사를 녹여 없애십시오. 뭐 원래 태어날 때부터 없는데, 네가 남자냐? 앞서 수고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도력을 줬다. 지도력이라는 것은 자존심 오기가 안에 들어가 있기가 싶다. 자기중심인데. 지가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그거 부인해라. 죽는 날까지 그게 어렵습니다. 너는 여자냐? 오기 자존심은 좀 덜 하겠지. 그건 싸우면 이길 만하겠지. 간살, 간교로 가지고 자기 남자를 옳고 바르게 만드는데 쓰라. 요렇게 줘 놨더니마는 그 미모, 그 용모, 그 재주를 가지고 맨날 보는 남자는 지겹고 이 남자 저 남자 새 남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여성에게 준 모든 장점을 가지고 더러운 짓을 하는 그런 창기 됩니다. 요즘 뭐라 그래야 창기인가요? 요즘 단어로는? 그거 녹아져라. 녹여서 아예 없애 버려라. 내 남자 신앙으로 바르게 걸어가는 길에는 간도 쓸개도 없이 있는 힘 다 하겠다. 소금이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 달려가는 천국에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세상에는 온유하고 어떻게 해야 주변에 우리 식구들을 전부 천국에 갈급한 사람으로 만들어 볼까! 요런 하나님중심의 깨끗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가족까지 하나를 만드는 일에 불철 주야 앞장서면 옳은 남자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자존심도 오기도 남자의 모든 남성도 다 녹였고 없애 버렸으면 노년의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됩니다. 아브라함 사라도 초기에는 좋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역사에 부부싸움 제일 극심한 게 아브라함 사라 부부입니다. 믿음의 조상도 그렇습니다. 평생을 살고 마지막에 둘 다 성자 성녀가 되어 이삭이 구원의 계통으로 이어지지 출발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녹아 져라. 누가요? 나. 설교하는 목사 너도 너를 녹이거라. 목사는 녹고 뭐 교인은 안 녹고 버티면 되는가요? 너도 녹고 나도 녹고. 목사도 자기 성깔 고치는데 저렇게 어려우니 세상 사는 교인은 오죽 어렵겠냐! 나쁜 목회자를 보며 좋은 교인이 나오는 비법입니다. 막 유명한 설교를 해서 교인들을 전부 자기 부인하고 녹아지라고 했는데도 꿈쩍도 안 하니까 ‘어이 저 강팍한 것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녹으라는데도 버티고 있네’ 그러면서 ‘나도 목사 되기 전에 교인이었지’ 뭐 안수 받는 날 다 완전해 졌습니까? 속에 남아 있지.

녹아지지 않는 남을 보며 내속에 녹기를 거부하는 나를 발견해서 녹이고 그게 가장 좋은 사이가 부부입니다. 스물 네 시간 붙어 사니까 비밀이 없이 다 아니까 그 다음이 교회의 교인과 목회자 사이입니다. 부부가 되어 자기 부인해서 자기 녹이는 거 도와주고 연습하고, 교회 와서 목회자로 교인으로 교인과 교인으로 살아가며 ‘집사냐고 이름은 집사인데 하는 짓은 저래 가지고 말이지! 장로라고 세워 놨는데 하는 짓은 저렇고 목사는 더 하고!’ 그러면서 내 속은 어떤가, 서로서로 자기를 녹여 완전히 없애 버리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했는데 내속에 천국으로 가득 채우고 세상을 얼마나 비웠는고? 녹아집니까? 천국 때문에 애통하는 자기가 되야 되는데 세상으로는 억울하고 애통하지마는 천국 손해 때문에는 뭐 슬플 일도 없는데 뭐 그런가 뭔가 그렇지. 이런 자기를 보며 ‘녹을게 많구나 없앨 것이 많구나’ 여덟 가지 팔복의 순서를 헤아려가며 널 녹이고 죽이고 없애고 자기 투쟁이 끝이 없이 나가며 자기를 녹인 것만큼 소금 됩니다. 소금 된다고 소금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저녁 은혜 받고 ‘나 자기 다 정리했습니다’ 그런다고 귀신이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숨는 척 합니다. ‘저놈 철야하면서 은혜 받고 금식을 할 때 이때 나갔다가는 맞아 죽겠다 금식하고 한 삼 일 지나면 또 옛날 버릇 나오겠지 그때 목을 잡아야 끌려오지‘ 귀신도 싸울 때와 안 싸울 때를 다 압니다. 주일되면 귀신이 슬쩍 물러갔다가 월요일 날 출근길에 거머 져야 그게 따라오지 한 주간 죄 짓다가 주일날 예배당 갈 때는 여간 공들여도 참으려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귀신이 우리보다는 위엡니다. 하나님보다 밑에지.

녹는 종류, 소금의 종류. 녹아져야 됩니다.

교재 밑에, 녹아지다니?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 녹아지는 겁니다. 자기 속에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 버려야, 죽음, 그게 없어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 위하여 희생하고 마침내 내 속의 옛사람을 죽임, 죽여야 없어져 소금이 된 겁니다.

이렇게 ‘천국 복음을 위하여 녹아지고 세상을 향한 자기를 죽여 버리자.’ 이렇게 가르쳐 놓으니까 귀신들이 예배당 밖에서, 저 예배당 안에 교인들이 천국을 향하여 심령이 가난한 사람 되고 애통하는 사람이 되고 세상은 버리고 초월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었다가 귀신이 있을 곳이 없겠다 싶어 놓으니까, 소금을 가르치는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예배당 팔아서 불신자 온 동네 돈을 나눠주면 더 소금이 되는 것 아닐까?’ 그 말 듣고 실제 예배당을 팔아서 교인들한테 주민들한테 돈 나눠준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소금이 됐다 그럽니다. 귀신은 ‘잘한다. 예수까지 팔아 주거라.’ 예수도 팔면 은 30까지는 나옵니다. 요즘 은행은 감정 평가해가지고 은 30까지는 안 줄걸요? 2000년 전에 유대인 은행에서는 예수님 맡기니까 은 30을 줬습니다. 예수 팔아 은 30.

가룟유다는 자기 스승 자기 구주까지 넘겨줬으니까 더 소금이 됐습니까? 예수 팔고 싶은 자기를 죽여야지. ‘예배당 팔아 온 동네에 백만 원 씩 천만 원 씩 나눠주면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다 예수를 믿고 싶어질 겁니다.’ 그게 귀신이 던지는 미끼입니다. 그래서 예배당 팔아서 불신자들한테 돈을 나눠주고 나면 ‘천국 그거 팔아서 주면 우리가 더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팔아주면 더 좋겠습니다.’ 그러겠지.

예배당 팔아 공짜로 돈 가지고 싶은 도둑놈 심보를 회개하십시오, 이게 빛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구박을 당해도 복음을 외치겠습니다, 이게 소금되는 일입니다. 소금도 해석을 잘못 알고 빛도 해석을 잘못 해 놓으면 성경 읽고 엉뚱하게 거꾸로 가버립니다.

자기 속의 옛사람이 녹아지도록, 자기 속의 옛사람을 죽여 버리도록, 이게 소금 되는 건데, 녹아지고 없어지는 건데. 옛사람이 뭔데? 옛사람은 3가지를 합하면 옛사람이라고 그럽니다. 이주희? 이주희? 몇 가지라고요? 3가지. 우리 학생들만 다같이, 악령, 악성, 악습. 3가지를 합하면 옛사람입니다.

악령이라는 말은 예수님 믿고 나서는 악령이 내 영에게는 근처도 못 옵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는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강제로는 못 옵니다. 내 마음 문에 서가지고 ‘주일 저녁 낚시 가자! 엿새 동안 공부하는 것은 귀찮고, 컨닝해서 성적 올리자! 부모 모셔봐야 돈도 안 되는데 은행에 잡혀버리자!’ 마음에 슬금슬금 이렇게 노크를 할 때 ‘아,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데?’ 그리고 마음 문을 열면 악령이 마음에는 들어옵니다.

유월절 저녁, 주님이 성찬의 떡을 가룟유다에게 넣어주셨습니다. ‘주님 날 위하여 사람 되어 희생, 십자가에 몸을 찢어 구원의 고난의 길을 걸어가시는구나. 나도 내 몸을 불살라 내 몸을 찢어 이 길을 걸어가야 되겠다.’ 그러라고 성찬의 떡을 먹여줬더니만, 그 떡 먹고 힘을 얻어 예수님 팔러 달려갔습니다. 얼마나 뭐 차의 엔진에 기름이 빵빵하니까. 성찬의 떡을 먹어 힘이 나니까 예수 팔러 쫓아갔습니다. 주님의 대속을 가지고 장사할 수 있고, 주님의 대속을 팔아, 두고 갈 세상 돈벌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싶은 내 속의 옛사람, 중생된 사람이 아니라 중생되고 나서도 내 마음 내 생활 속에 악령으로 살고 싶은 그 요소. 옛사람은 악령, 자기중심으로 살자고 그러는 영입니다.

악령은 뭐 송장이 좋다, 시체가 좋다, 썩은 고기가 좋다, 그러고 돌아다니면 누가 악령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귀신은 수준이 낮은 귀신이고. 고급 귀신은 ‘빛과 소금이 되라, 그 말 참 좋다. 남편한테, 아내한테다 대고 여보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나한테. 그러면 내가 잘 믿겠습니다.’ 여자 고생시켜 여자 인생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 노릇하려고. 빛과 소금의 말씀으로 가지고 아내를 더 희생시키는, 성경 말씀인데 그 말씀으로 자기를 녹여야 되고 자기를 죽여야 되는데, 신앙 있는 남편한테 아내 행복하도록 돈 더 벌어 오시지요, 더 벌어 오시지요, 더 벌어오지요. 교통사고 나서 죽을 때까지 더 벌어 오십시오. 죽었네? 돈 많이 남기고 죽었으니까 그 돈 가지고 할 일이 많겠지요?

사랑을 위해서 녹아지고 없어지는 것은 성경의 소금 아닙니다. 춘향이 이 도령을 위해서 녹아지고 자기가 없어진 것은 성경의 소금과 빛은 아닙니다. 그것은 공자의 소금과 빛이지. 천국 복음을 위하여 내가 희생하고 내 속의 옛사람 죽이는 일에 녹아지고 없어지는 것이 소금입니다.

나 중심으로 살게 하는 것은 악령, 악령 때문에 중생된 후에도 우리 마음 우리 습관 우리 입 속에는 악성, 어떻게 하면 나 중심으로 사나? 그게 악성입니다. 그렇게 많이 살아본 습관이 제 2의 천성이 되어 악습이라 그럽니다. 악령, 악성, 악습.

불신자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생된 후에도 우리 마음속에 곳곳이 이것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그걸 얼마나 정리했느냐가 성화입니다. 그건 한꺼번에 되지 않고 매 현실마다 하나씩 꺾어 하나씩 자라가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그럽니다.

영은 해결이 되었는데, 영은 중생되고 나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데, 마음을 현실마다 하나씩 둘씩 가르치고 씻어가고 길러가려니까, 악령이 대문 밖에서 우리의 마음에게다 대고 ‘안 믿을 때처럼 놀자, 가자, 이러자 저러자.’ 계속해서 문 밖에서 유혹을 하니까, 좀 정신 차리고 공부하려고 공부방에 앉았는데 창문 밖에 담 밖에 옛날 놀던 친구가 ‘어디 가면 이렇다, 저렇다, 여기 가자, 저기 가자.’ 그러니까 마음잡고 공부하고 싶은데, 자꾸 엉덩이가 들썩 거립니다.

다리 밑의 거지가 부모를 찾아 자기 집에 돌아가게 된 것처럼, 중생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주님의 자녀로 중생이 되어 부모를 찾아 갖다 놨는데, 대문 밖에서 귀신이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21세기는 어린 아이에게도 인권이 있어 5살짜리도 부모가 노려보면 파출소 신고해버리면 경찰이 아버지 잡아간다. 이런 말을 들으니 귀가 솔깃해서.

악령, 악성, 악습의 요소가 중생된 후에도 마음과 생활에 남아있습니다. 이건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정리해도 된다. 정리 안 하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 그런데 그 차이는 천국에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지극히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 19절에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지요?

19절, 성경 보겠습니다. 앞뒤에 기록한 모든 말씀, “그러므로 누구든지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택한 백성, 중생된 사람은 그래도 천국을 갑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저 인간 중생된 성도는 성도라 하늘나라 오기는 왔는데, 이 땅 위에 살며 끝까지 제멋대로 산 인간이다. 예배도 제멋대로, 말씀도 제멋대로, 가족한테도 제멋대로, 옛사람을 꺾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온 사람이라. 천국은 들어오는데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 말씀대로 행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좋은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살 수가 있는데도, 심령이 가난하여 어떻게 좀 천국을 마련해볼까 이렇게 애써 세상을 초월하고 세상을 뒤돌아보지 아니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 달려간 저 분이다. 지극히 작은 말씀 하나에 직장을 걸고, 건강을 걸고, 목숨까지 걸고, 평생 자기 투쟁에 나섰던 사람이다. 소금이 되기 위하여 자기중심을 꺾었던 사람이다. 저렇게 작은 말씀 하나를 위해서도.

세상에서는 주변에서 눈치도 못 챘지마는, 하늘나라에서는 이게 활짝 드러나서 큰 계명, 중요한 계명이 아니라 잊어버릴 수 있고 지나갈 수 있는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를 위하여 그렇게 발버둥을 쳤던가? 평생에 자기를 꺾으려고 저렇게 기도하고 못 부림을 쳤던가? 주님이 봐라! 너희들이 시시하게 생각하는 너희들이 시시하게 생각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뭐 그것 가지고 지옥 갈까? 애통하는 자는 뭐 천국을 향하여 애통하는 마음 가졌다고 그게 그렇게 큰 계명인가? 십계명, 몇 가지가 십계명이지요? 10가지가 십계명입니다. 제 1계명 아시나요? 김혜인, 십계명의 1계명? 하나님만. 2계명,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3계명, 천지 만물 내 모든 현실은 하나님만. 4계명, 그러니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출발. 5계명, 하나님이 직접 오지 않고 주변의 선생님, 부모, 사람을 통해 너에게 부탁하니 보이는 사람 속에 하나님을 보거라, 5계명.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연결의 주력하거라, 6계명. 네게 준 사람, 옆으로 보고 엉뚱한 데 갖다 붙지 말아라. 8계명, 말씀 따라 열심히 살면 쌓이는 돈이 네 돈이다. 그 이상의 돈은 도둑질이다. 9계명, 너의 모든 발표는 구원의 도움 되도록 하라. 10계명, 각 사람에게 준 범위가 있으니 하나님 주신 자기 범위에 만족하라.

이게 10계명입니다. 이건 굵닥굵닥한 성경 전체의 대지요 핵심 되는 중요한 계명입니다. 여기 마태복음 5장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아 그거는 십계명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 뭐 속으로 애통했든지 말았든지 남이 알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 뭐 그런 계명은 좀 작지 않을까? “빛이 되라” 아 빛이 되면 좋지만 그건 십계명에 없지 않느냐? 그 밑에 보면, 22절입니다. “형제에게 노하지 마라라” 화내지 좀 말아라. 그 살다보면 성낼 수 있지, 뭐? 다윗도 그랬는데.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지 말아라” 라가라는 말은 욕입니다. 욕하지 말아라. “형제한테 미련한 놈이라” 아이 저것 시켜도 못 알아듣고, 맨날 가르쳐도 못 깨닫고, 이 미련한 것! 이것도 뭔 그렇게 큰 계명인가? 이런 것은 시시한 것 아닌가? 그리 생각하지 말아라. 네 눈에는 지극히 작게 보였지? 그래서 쉽게 생각했지. 굵닥굵닥굵닥한 것은 지키고. 순교하겠습니다. 선교 가겠습니다. 큰 계명은 지키고. 부부 둘이 밥 먹다가 화가 나서 ‘아이, 미련한 것이! 아이씨 이것도 못해?’ 뭐 그 정도야 뭐 살다보면 뭐 그럴 수 있지. 그건 작아 보이지? 그렇게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두고 고쳐볼려고 노력하고 너를 꺾으려고 노력한 걸, 부부끼리라도 알아줍니까? 부모의 속을 자녀가 알아줍니까? 목회자의 심정을 교인이 알아줍니까? 그러면 또 반대로 교인의 억울한 심정은 또 목회자가 압디까? 모르지, 서로. 혼자 속 썩은 것은 누가 알아줄까? 이게 마태복음 5장입니다. 혼자 말씀으로 살려고 속앓이 한 걸 누가 알아줄까? 근데 시시해 보이는 것을 시시하다고 덮어버렸느냐? 넌 시시한 걸 버린 것이 아니다. 네 천국은 텅텅 비었다. 천국 오기는 해라. 그러나 영광과 실력과 영생의 모습은 없다. 남들이 지극히 작은 거라 시시하게 생각한 걸 그걸 두고 너를 녹이느라고, 너를 죽이느라고, 소금 되느라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했는데 누가 알아주냐? 그러나 주님은 알아보시고 저렇게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 있는 힘을 다하니 행동록에 또박또박 행한 대로 갚으리라, 다 적어놓으셨다가 영원한 천국이 시작될 때 모든 택자들 모든 성도들이 쉽게 생각한 걸 있는 힘 다하여 필사적으로 믿고 온 이 사람을 보라 할 때에 그때서야 적은 게 적은 것이 아니구나. 시시한 게 시시한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 하늘나라가 펼쳐질 겁니다. 그 날을 두고 그걸 우습게 생각하고 시시하게 생각하는 옛사람 너 네 속에 잘못된 너를 자꾸 녹여버리거라. 수고하거라, 땀 흘리거라. 아예 죽여버리거라. 그럴 때에 소금이 되는 겁니다.

옛사람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요, 다 같이? 자기중심의 악령. 둘째는요? 자기중심으로 살고 싶은 성향, 악성. 세 번째는요?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세월. 없는 사람 없습니다. 이걸 녹이지 아니하고는 소금이 되지를 못합니다. 이걸 죽이지 아니하고는 소금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걸 쉽게 말하면 고집이라 그럽니다. 그걸 쉽게 말하면 주관이라 그럽니다. 고집이 없으면 의지가 없어 작심삼일도 안 가니, 이것도 탈. 한 번 결심하면 뭐 일 년 가고 십 년 가니까 참 훌륭한데, 이렇게 의지가 있고 인내가 있는 사람은 또 속에 고집의 주관이 세가지고 이것도 탈이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맨 밑에, 스스로 녹아지고 없애면 헌신이라 그럽니다. 헌신. 스스로 녹아지고 없어지는 걸 헌신이라 그럽니다. 자기는 헌신 안 하고, 너 선교가라. 너 참아라. 너 양보해라. 너 연보해라. 너는? 나는 할 일이 있으니까 뒤에 할게. 너는 소금해라 나는 너 소금 되면 덕 좀 볼게, 그 말입니다. 이게 반 복음입니다. 그게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게 적그리스도입니다. 뭐 적그리스도가 간판을 붙이고 다니나요?

스스로 고치고 스스로 녹아지지 아니하면, 헌신 안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녹이고 하나님이 없앱니다. 좋을 때 자기중심 꺾어라. 좋을 때 고집 꺾어라. 좋을 때 자존심 꺾어라. 안 꺾으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동원해가지고 꺾어버립니다. 아들이 죽는다 산다 하는데 뭐 안 꺾고 배깁니까? 부모가 버티면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자식을 손댑니다. 억센 사람은 병신을 만들려 해도, 병신을 만들어도 버티거든요. 병신이 되는데도 버티면 어떡합니까? 자녀를 손대지. 다윗은 전쟁의 피를 보고 산 용장이라, 아무리 두드려도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한 사람이라 낳아놓은 자녀를 손을 대버렸습니다. 회개 안 하고 버팁니까? 목회자 회개시킬 때는 교회를 칩니다. 부모 된 사람이 회개 안 하고 버티면 자녀를 칩니다.

사람은 할 수도 없고 끝을 볼 수도 없지마는, 하나님은 사랑하면 순서를 따라 좋게좋게 나가면서 하나하나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이건 하나님의 뜻이다 싶으면 그만 하나님 앞에는 고분고분한 것이 자녀도 좋고 나도 좋고 남들도 좋습니다.

훌륭한 사람, 위대한 지도자, 끈기 있는 사람, 위대한 사람, 인물들은 대개 그 속에 남다른 고집이 있고 주관이 있습니다. 강한 게 있습니다. 스스로 번제되어 헌신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녹이고 내가 나를 없애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안하고 버티면 환경을 동원해서 짜고 마지막에는 녹이고 거덜냅니다. 그러면 괴롭습니다.

스스로 녹아지고 없애면 뭐라고 한다고요? 헌신. 하나님이 녹이고 없애버리면 뭐라고 하지요? 치료라고 그럽니다. 치료를 하면 고난의 연단이 됩니다. 참 어렵습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지고.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그러도록 만듭니다. 그러기 전에 스스로 녹이면 헌신인데, 헌신을 하면 기쁨의 상급을 줍니다. 세상 말로 좋은 게 좋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나를 녹이고 말씀으로 옛사람을 스스로 부정하면 ‘그 수고한다.’ 상급을 줍니다. 상급을 받으니 기쁘지요. 남들은 아 자가기 먼저 실천을 하는구나, 헌신하는구나. 하나님이 상급을 주니까 기쁨이 옵니다. 보는 사람도 좋아 보이고, 자기도 좋고. 고칠 것 알면서 안 고치고 버티면 하나님이 꺾어버리면 자기도 죽는다고 곡하는 소리, 깨지는 소리,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니 남 보기도 애처롭고 자기도 죽을 판이고. 세상의 부모는 자녀를 고치다가 대충하다가 못 하는데, 하나님은 기어코 해버립니다. 하나님 당신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이렇게 큰 고난 들여 구원한 우리를 대충 건드리다가 맙니까? 사생아라 하나님이 데리고 온 자식처럼 그런 사람은 ‘천국만 오거라.’ 사명을 맡길 필요가 없는 사람은 ‘기본구원 받았으니까 됐다. 택자니까 천국만 오면 된다.’ 그러지마는, 남달리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목표가 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왔든, 궁금해 왔든, 휴가로 오셨든, 내계 공회 집회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난 뭐 그냥 대충 믿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뭔가 사명을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하나님 앞에 좋을 때 자기를 녹이고 꺾어 버리십시다. 그러면 주님이 ‘그 헌신하는구나. 땅을 기업으로 줘도 되겠구나.’ 은혜를 받고 나니 기쁘고, 내가 기쁘니까 남이 봐도 부럽고. 내 속에 꺾을 걸 뻔히 알면서 버티면, 그거 암수술 안하고 그거 멀쩡한 사람 죽겠는데? 아버지가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인데, 아들놈이 암수술하면 2기라 낫겠는데 버티면 사람 잡겠는데, 그만 수술하자. 안되는데요? 수술하자. 안되는데요? 그러면 자는데 마취시켜서 끌어가서라도 잡아 수술해버리겠지. 부모의 사랑으로 실력이 있다면. 하나님이 기대하고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이 대충 물러서지 않습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분은 잘 믿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남다른 목표와 사명을 주셨다 생각하시고 그냥 좋을 때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그리워 달리지를 못해 세상을 더 끌어오지를 못해 애통한 마음 다 초월하시고. 지금까지 살면서 천국이 너무 허무했다, 몰라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 가는 길은 알지마는 게을러 이러고 저러다가 세월을 보낸 분들, 얼른 얼른 수습하고 달려가시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주님이 착수하십니다. 그러지 마십시다.

32페이지. 소금이 되라. 잊어 먹을까봐, 연약할까봐, 알뜰살뜰 챙기느라고, 똑같은 말씀인데 이번에는 “빛이 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가 세상의 빛입니까? 백인들 얼굴 보면 뿌연 게 얼마나 환한데. 우리는 뭐 발라놔도 뭐 돌아서면 노란색 아닙니까? 흑인들은 어떻게 해야 빛이 될까요?

“너희들 세상의 빛이라” 빛이라니? 빛이라는 것은, 빛이 들어오면 알게 되어집니다. 알게 하는 것이 빛! 모르게 하는 것이 어두움입니다.

교회가 뭔지, 사회봉사단체인 줄 알고 환경운동단체인 줄 알고 구제단체인 줄 알고 ‘교회는 구제 잘하는 게 교회다.’ 그게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불교도 구제하는데, 복지부는 구제를 더 하는데. 기독교는 천국을 사모하는 심령이 가난한 것이 복인데, 이걸 몰랐는데 알게 하면 그게 빛입니다.

사람을 모르게 하는 것이 어두움,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 빛입니다. 어떻게 해야 알게 되지요? 내면의 자기를 태워야 빛이 되지요. 자기를 태우다니? 세상 살기에 부족함이 없이 배웠고 돈도 있고 집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나는 세상 살아가는 데 별로 아쉬운 게 없습니다. 그 사람 속에 보니까 천국이 빈약합니다. 천국은 없네? 아이 뭐 천국이야 없지마는, 부동산이 있습니다. 적금 있습니다. 보험 10개 들어놨습니다.

신풍 동네에서는 전화하면 5분 만에 경찰차 오지, 소방차 오지, 소방차 지휘본부 따라오지, 공무원 10명이 나타납디다. ‘동네 이상한 개가 돌아다니는데요.’ 전화 한 통화 하니까 파출소 순경 2명 경찰차 타고 5분 안에 도착, 불 끄는 소방대 8톤 트럭이 옵니다. 그거 왜 오지요? 그거 오고. 그다음 8톤 트럭에 개 잡는 소방수 3명, 지휘하려고 지휘본부차 따로 옵니다. 차 3대, 공무원 10명이 개 잡으러 다닙디다, 그물 가지고. 아이 이런데 뭐 기도하고 뭐. 요새 전화 한 통화면 그냥 모든 게 다 행복한데 뭔 철야하고 뭔 금식기도하고 뭔 방언하고 뭔 신유기도하고 뭐가 부족합니까? 신풍 시골이 그 정도이니까 도시는 더 빠르겠지. 더 낫겠지. 넉넉한데. 그 사이에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 이건 줄어들고, ‘세상은 의지할 데 없어 얼른 천국 가면 좋겠습니다.’ 천국은 없고. 주님은 없고. 요렇게 천국이 없어지고 주님이 없어지는 요런 세상에 고런 마음을 태워버리고 세상 살기는 참 좋게 되었는데, 천국은 너무 멀구나. 요대로 죽으면 하늘나라 가서 준비한 게 없는 빈털터리로 서겠구나. ‘세상 살기 좋습니다. 안심해도 됩니다. 걱정 없습니다.’하는 자기를 태워버리고, ‘세상은 살만하고 넘치지마는 천국이 없어 애가 터져 죽겠습니다.’ 요렇게 자기를 태우는 이게 빛입니다.

아이 저 사람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저렇게 난리지? 나보다 10배 잘 사는데, 왜 저 사람 걱정을 하지? 왜 애통하지? 왜 가난하다고 저 난리지? 아 천국이 없어서 저렇게 난리구나. 천국이 좋은 건가? 천국도 필요한가?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자기를 태우고 애통하는 이 사람을 보며 옆에 사람이 나보다 10배 잘 사는 사람도 저렇게 하는 걸 보니, 나보다 10배 잘 믿는 사람도 저러는 걸 보니 나도 세상을 향해 달려갈 생각 말고 천국을 향해서 정신 차려야 되겠다. 나를 태울 때 내가 나를 태울 때 외부의 행위로 나타남, 그게 빛입니다. 나를 태울 때 남에게는 빛이 되는 겁니다. 촛불이 자기는 태우지 않고 딱 버티고 빛이 되는 재주가 있습니까? 소금이 녹지 않고 짠 맛을 냅니까? 자기는 안 녹고 다른 사람한테 녹아져라, 자기는 태우지 않고 가족들에게 너를 태워 빛이 되라. 네가 타야 내가 밝아지고 혜택을 보지. 그게 착취입니다.

몇 되지 않는 공회 안에 결혼이 시급한 사람이 몇 명 쯤 된다더라고요? 90명. 명단을 프린트해서 제가 다니고 있습니다. 거짓말이라 그럴까 봐. 90명! 제 생각엔 한 3일이면 90명 다 결혼해도 될 것 같은데. 저도 공부 좀 한 사람입니다. 무식해서 막가는 게 아닙니다. 어느덧 좀 살아봤습니다. 아이, 결혼해서 애기 놓고 행복하게 살지, 뭐하려고 모두들 버티지? 자기를 위해서 생명을 태울 여자를 기다린답니다. 지는 안 태우고. 자기를 위해서 인생을 태워줄 남자를 찾고 있는 겁니다. 키 작은 게 타면 얼마나 타겠습니까? 커다란 게 타야 오래 타지. 그래서 뭐 남자는 1m80은 돼야 됩니다. 1m80 밑에는 저한테 통고도 하지 마십시오. 1m80도 안 되는 짜리몽땅한 걸 소개하면 모독한 줄 알고 제가 화를 낼 겁니다. 이러니 목사가 전도도 못하는데, 교인 교회 안 나올까 봐 예, 전봇대 같은 거 하나 찾아보지요, 뭐. 또 젓가락 같은 거 찾아보지요. 키 크고 멋쩍지 않은 거 없더라. 쉽게 말하면 키 큰 것들은 싱겁더라. 옛날 어른들은 그랬는데, 살아볼수록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마는. 키는 1m 80이 돼야 됩니다. 직장은 연봉 1억은 돼야 됩니다. 인물은 매끈해서 개 죽사발 핥아놓은 것 같이 밴들밴들 해야 됩니다. 공부는? 대학은 기본이고. 집안은? 양가 부모가 암 걸리지 않고 건강해야 아들도 죽는 날까지 날 위해서 자기를 태울테니까 건강 진단서 떼 주십시오. 이거 거짓말 같지요? 35년 전에 국세청에 세금 낸 영수증까지 떼 가지고 중매 선 기억이 있습니다. 35년 전에.

한 마디로 말하면 날 위해서 질기게 끈질기게 죽는 날까지 자기를 소금 되어 녹이고 자기를 태워 나를 밝게 해 줄 사람, 나는 하나도 나를 고치지 않고 녹지 않고 남자만 나를 위해서 녹아질 사람. 공부를 못하니 태워봐야 얼마나 타겠습니까? 건강이 없으니 태워봐야 얼마나 타겠습니까? 인물이 없으니 뭐 며칠이나 쳐다보겠습니까? 남자가 자기를 태워 훤하게 비추어주면 여자는 행복하게 자기부인 할 것 없고 자기 녹일 것 없이 혜택 보려고? 그런 걸 기생충이라 그럽니다. 기생충이란 혼자 먹고 사는 법이 없습니다. 먹고 사는 동물 속에 들어가서 영양분만 쏙쏙 빼먹지. 남자는 안 그런가요?

예전에는 남자가 여인의 평생을 빨아 먹고 살았고 대개. 이제 세월이 바뀌어서 하나님께서 위치를 바꿔 놨습니다. 이제 여자보고 남자 빨아 먹고 살거라. 시원찮거든 니가 남자 하거라. 이만하면 엉망진창 뒤죽박죽 생지옥이 된 거지요. 세상이 좋은데. 너한테는 오늘 세상이 좋아 보이느냐? 성경으로 보니까 오늘 세상은 새까만데.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이게 어두움입니다. 말씀으로 내 속의 옛사람을 꺾어버리고 나를 태워 버리면 다른 사람이 보며 아무리 세상을 그래도 저게 맞겠구나. 내가 나를 녹일 때 남들이 나를 보면서 그래도 저게 인간 도리구나. 저게 자연에 가깝겠구나. 저게 하나님의 원래 목적하시는 방향으로 맞겠구나. 이 말씀 하나만 깊이 제대로 깨 닫았으면 20되면 결혼하고 30되면 애가 3, 4이 되고 건강이 따라가면 5, 6도 되고 전도하러 골목 다닐 것도 없이 옛날 정도는 안 믿는 사람 데리러 다녔습니다. 생활 속에 온 5000만 명이 믿었던지 믿다가 요즘 주춤하든지 그렇지 정말 안 믿는 사람, 복음을 안 들은 사람은 지금은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은 동네 가서 전도하다 보면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한테 우리 교회 다녀라 그 말이 되어 집니다. 남의 집에 가서 예수 믿고 우리 교회 다니시지요. 느그 교회가 그리 좋냐? 느그 교회가 그리 좋거든 일찍 결혼해서 아이 많이 낳아서 느그 아이 느그 교회 다니게 하지. 그건 싫고. 남의 집에 남의 아들, 남의 딸, 남의 남자 여자는 우리 교회 좋으니까 와서 다닙시다. 예수 믿읍시다. 그러고 자기는? 자기를 통해 주는 아이는 안 낳을 건데 뭐 할라고 낳아요? 일찍 낳아요? 세상 즐기고 사는데 불편한데. 절의 중이 4월 초파일 날 번 돈으로 대웅전에서 불고기 지지먹고. 교도들한테는 사람이 죽으면 소가 됩니다. 소가 고생하다 보면 또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고기 먹지 마십시오. 그래 가르쳐서 돈 벌어 먹고 자기들은 뒤로 앉아서 고기 지지 먹고. 4월 초파일 날 기도 가다가 우연히 절 뒤에를 가보니까 뭐 교도들 가고 나니까 얼마나 지지 먹어 대는지 제가 본 이야기입니다.

중 얘기 합니까? 절 비판 합니까? 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는 다녀도 우리 아이들은 저 교회가 좋다. 저 교파가 좋다. 대충 믿는 저 나라의 저 교파 다니거라. 양심 없는 일이지. 내가 좋아서 다녔으면 내 아이들에게 이게 좋으니까 여기 다니자 그래야 되겠지. 비교해서 더 나은 데가 있으면 졸업하고 나 저쪽에 전학 갈련다. 진학 할란다. 너도 따라오거라. 그래야 양심이 있지. 그 사람이 다른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믿어보니 예수가 진짭니다. 예수 믿는 길이 많고 노선이 많은데 그래도 이 길이 더 나은 거 같습니다. 그래야 양심이 있지. 자기는 건강식이라고 한식이 좋다고 광고하면서 집에 가서는 양식 먹으면서 남들한테는 한식 강의 하고 양심 없는 짓이지요. 한식이 맛이 없어도 담백하여 건강식입니다. 라고 남한테 가르쳤다면 지부터 한식을 먹어야지. 세상은 그럽니까? 돈 버는 것이 재주지. 신앙도 남한테는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넌 너를 태웠냐? 넌 너를 녹였냐? 32쪽 가운데입니다. 무얼 태울까요? 절의 중들처럼 절 믿는 사람이 최종 마지막에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자기 몸을 태워 벌립니다. 그렇게 자기를 태울까요? 내 마음을 태우고 옳은 마음 말고 악성, 악습의 마음 내 몸의 행위를 태우고 그걸 줄여서 심신이라 그럽니다. 심신의 요소를 태우고 내게 온 세상을 향해 뛰어갈 기회를 태워버리고 내가진 소유를 태워버리고 천국에 심령이 가난한 자 돼어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라고 믿는 사람은 아야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은 잘 믿는지 못 믿든지 산 위에 동네로 위치를 올려 놔 가지고 잘 믿어도 잘 믿는 표시가 훤하게 주위에서 보게 해 놨고 것 잘못 믿으면 예수 믿는 것들 큰소리 쳐 놓고 뒤로 저 도둑질 하는 거 보라고 9시 뉴스에서 막 떠들도록 그리 해 놨습니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미워서 9시 뉴스에서 욕을 하지만은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이용해서 교회와 복음과 믿는 사람은 산 위에 동네다. 좋은 것도 잘 보인다. 잘못된 것도 잘 보인다. 믿는 사람이 친구하고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친구는 대충이고 나는 믿는 사람이라고 이렇게까지 비판을 받느냐? 억울해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코로나의 교회 때문에 번져 나가는 것은 뭐 1%, 2%도 안 되는데 교회가 미운 언론이 교회가 미운 정권이 처음에 그냥 막 교회만 코로나의 원인이라고 도배칠을 해서 1년동안 교회를 지근지근 짓 밟아서 인제 지겨울 때 되니까 인제는 교회에서 코로나 퍼져도 뉴스에 내지고 않습니다. 약발이 안 먹히니까 못된 것들. 그 정권, 고 인간, 그 언론 복 없습니다. 그렇지만은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를 산 위에 동네로 세워 불신자들이 술 먹고 흥청거리다가 코로나는 다 퍼졌는데 교회는 100의 1번인데 100의 1번 가지고 마구 선전을 해 되게 만들면서 불신자들하고 악감으로 싸우지 말고 교회는 돌아보며 늘 조심하거라. 그러는 겁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교회 그렇게 그러면 안 좋은 겁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양심적으로 산 위에 동네라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잘못을 했는데도 하나님이 10배, 100배 광고를 합니다. 다윗의 죄는 천하만방에다 대고 하나님께서 광고를 했습니다.산 위에 동네라니요? 만물이 보도록. 숨을 수 없도록.

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서 하늘을 알려주도록 산 위에 동네가 훤하니까 산 위에 동네를 보다가 산 위에 있는 하늘을 보도록 하나님을 보여 주는 위치가 산 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가르치려고 산으로 가서 산 위에 앉아서 가르쳤습니다. 보이는 산이 아니라 무슨 산? 하늘이 가까운 곳. 하늘을 향하도록 하나님을 보여주는 위치입니다. 맨 끝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넘겨서. 요렇게 가르친 다음.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아라. 구약의 율법을 누가 헤아려 보니까 한 600가지가 넘는답니다. 한 600가지가 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으니 인제 구약은 끝났고 율법도 끝이 났고 서로 사랑하라. 연애하라는 말이구나. 그러고 싶겠지만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마라. 구약은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 무슨 말이죠? 교재 밑입니다. 구약은 어린 시대입니다. 밑으로 내려가서 신약은요? 장성한 시대입니다. 구약은 어린 시대, 신약은요? 장성한 시대입니다. 10살 동생한테는 밥 잘 먹어라. 20살 형한테는 설거지도 하거라. 아니 왜 이랬다 저랬다 왜 그러죠? 너는 20살이니까. 동생은 왜 설거지 안 하죠? 10살이니까. 설거지 하란 말이 노예 착취하는 말입니까? 넌 인제 부모처럼 많이 컸구나. 훌륭하구나. 훌륭하다면 엄마처럼 너는 이제 설거지도 하게 됐구나. 축하한다. 그 말이 아닌가요? 노동 착취인가요? 그게? 구약의 율법에 구약은 어린 시대입니다.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주입식으로 가르칩니다. 따라해라 1, 따라해라 2, 따라해라 3, 따라해라 4 다 이게 율법입니다. 구약입니다. 낱낱이 적었습니다. 신약은 장성한 시대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따라 주입식으로 객관적으로 일괄적으로 인문적으로 다 배웠습니다. 이제 신양이 되었으면 장성 했으니까 컸으니까 서술식으로 주관식으로 개별적으로 인도을 합니다.

구구단은 모르는 아이한테 2x2=4, 2x3=6, 2x4=8, 3x3=9 따라만 하게 합니다. 따라만 하거라. 이것을 외어서 주입식으로 잘 따라하면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한테는 28x3은 뭐야? 아 구구단에 없던데요? 구구단을 가지고 28x3? 2x3=6 그 다음 8하고 3을 하면 3x8=24 이렇게 하면 응용을 하거라. 아이 골치 아프게 뭔 구구단이 좋았는데 구구단만 외우면 되지. 그러면 9x9=81만 계산하지. 한 달 월급 100만 원이다. 10번 받으면 얼마냐? 구구단 가지고 그거 계산 하겠습니까? 영원한 영생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대신한 하나님 아버지를 아들 노릇을 할라면 구약의 어린 교회는 반복식, 주입식입니다. 2x2=4, 2x3=6 이것도 틀려? 새로 해. 저것도 틀려? 고쳐. 이게 구약의 율법입니다. 신약에 오면 365x5 뭐냐? 아 하루 일당 5만 원이니까 365일을 일하면 얼마냐? 그 뜻이구나. 이래야 마구 세계의 돈을 거머대지. 마구 발전을 하지 구약은 일률적으로 똑같이 어리니까. 똑같이 하나하나 따라해라 그랬습니다. 신약은 인제는 장성했으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이루어졌으니까 성령이 우리 속에 영을 중생시키고 영 속에 성령이 주저앉아서 우리 마음에다 대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이것은 일반적인 말씀이라 그런데 너 넌 목사니까 너의 주일은 좀 다르지 않아야 되겠느냐? 넌 온 가족이 불신자니 교회 한 번 가는 것만 해도 고민이다. 신약의 주일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는 건강이 다르고 실력이 다르고 교회 거리가 다르고 교회 직분이 다르고 너의 장점. 단점이 다르니 넌 주일 날 화장실 청소해라. 넌 주일 날 주일학교 반사를 해라.넌 주일 날 찬송 인도를 해라. 넌 지금 장애자가 되었으니 건강한 청년이 업고 가거든 뭐 집에서 실시간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업혀가거라. 미안해도. 미안해도 업혀가거라. ㄱ그러면서 업혀가면서 이 청년 건강을 주옵소서. 아이 건강할 때 잘 믿고 남을 업고 다녔어야 하는데 혼자 교회 덜렁덜렁 가면서 뭐 지발로 교회가지 뭔 남한테 신세를 져. 그랬던 과거를 후회합니다. 이렇게 주일 지킬 사람도 있고 저렇게 주일 지킬 사람도 있고 구약은 뭐 똑같이 그냥 무조건 제사고 뭐고 똑같습니다. 신약은 한 사람도 같은 게 없습니다. 다 다릅니다. 심지어 한 집에 사는 부부도 주일 지키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아이 낳은 새댁과 그 집의 남편과 주일을 지키는 것이 똑같습니까? 신부와 신랑이 똑같겠습니까? 얼마나 다른데. 그래서 구약은 어린 시대라 주입식으로 객관적으로 일률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인제는 신약이 되었고 장성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의 형편 고려할 때 너의 주일은 어떤 주일이여야 되겠는가? 주님을 안식일에 따라가다 보니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밭 사이로 가다가 밀을 따서 그냥 비벼서 먹어 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밀밭에 가다가 이삭을 꺾었으니 추수 했네? 비볐으니 탈곡 정류소에 가서 탈곡 했네. 먹었더니 요리해서 먹었네. 이 죄인들. 주님 인도를 따라 피치 못하게 걸어가거든 먹어야 배우니 먹을 일이 있거든 먹어라. 그 말이지 구약에 안식일이 없기 때문에 신약은 죄 지어도 된다 그 말이 아닙니다. 주일 날 차를 타지 않고는 신앙에 더 도움이 되는 일에 지장이 되거든 차 타도 됩니다. 밥 해 먹어도 됩니다. 목사처럼 교인이 주는 월급 받아먹고 살면서 평일 날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데 굳이 주일 날 신약인데 뭐 은혜인데 뭐 율법시대인가? 요래 가면 악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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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1.05.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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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1 2021.05.12 14:04
그래서 구약의 율법이라는 말은 교재 가운데입니다. 반드시 지킬 말씀. 하나만 어겨도 멸망한 죄인이 되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구구단이라는 것은 모든 인류가 2x3=6이라지만은 저는 개성이 있어 2x3=7입니다. 그러면 틀린 겁니다. 그거 안 고치면 큰 일납니다. 전 인류가 3x3=9라 그러는데 그것은 구태입니다. 적폐입니다. 고리타분한 겁니다. 율법입니다. 3x3=9 전부 그렇게 법을 만들었는데 저는 3x3=10 할랍니다. 그러면 개성입니까? 발전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어린 사람을 기르는 어린 방법입니다. 신약이 되면 인제는 구약의 율법을 가지고 신약의 장성한 오늘은 그 말씀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작년에 배운 8월. 레위기 11장, 돼지는 먹지 말아라. 그래서 구약은 돼지를 안 먹으면 1차 통과입니다. 신약은 왜 돼지 먹지 말라 했지? 어 죄든 말든 먹으면 되지. 그게 돼지다. 왜 어린 구약 교회의 돼지 먹지 말라고 그랬느냐? 돼지고기만 안 먹으면 의인이라 그렇게 말한 거냐? 아닙니다. 어리니까 돼지 먹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왜 그걸 시켰지? 돼지는 뭐든지 다 먹어 버립니다. 상했든지 뭐 남의 것이든지 내 거든지 구별이 없습니다. 그것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시켰을까? 믿는 사람은 가질 것이 있고 가질 수 있는데 안 가질 것도 있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구약에는 돼지를 먹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약 너는? 돼지고기 먹을 사람은 먹고 안 먹을 사람은 먹지 말지만은 이것을 먹어도 되냐 안 되느냐? 그건 고민을 하거라. 너 건강, 너 체중, 너 당뇨, 너 혈압도 좋지 않은데 난 돼지고기 못 먹고는 삼겹살 못 먹고는 맛이 없어 못 먹겠다. 죽든 살든 먹고 볼란다. 그 사람은 신약에 다 먹어도 그 사람은 삼겹살 좀 끝어야 될 겁니다. 건강해서 저처럼 너무 이렇게 체중이 마른 사람은 지방도 체중조절 못 하는 사람한테 문제지 너는 지방을 좀 먹어야 살겠다. 좀 먹어라. 그럴 수 있습니다. 왜 구약에 돼지고기 먹지 말라 그랬지요? 교인은 가질 수 있어도 목사는 아무거나 가지면 아니된다. 그거 백 목사님이 저 부산에서 한 시간 거리에 기도원이 있었는데 거기 갔다 오다 보니까 제자 목사님 중에 한 분이 밭에 들어가서 뭘 따먹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께서 후배 목사한테 교인이 들어가서 따 먹는 거는 그럴 수 있다. 목사가 불신자 보는데 교인 보는데 그렇게 다 캐 먹고 앉았으면 목사로서는 문제가 좀 있다 목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데 그 말 끝도 있는 법이다. 

여기 지금 뭐 넥타이 없으면 못 올라옵니까? 티셔츠 입고는 설교 못 합니까? 빨간 난방 입고는 제가 설교 못 합니까? 할려면 해라. 그렇지만은 말씀을 가르치는데 강당을 바라보는 아이들 눈에 좀 조심스러운 모습이 좋겠느냐? 막 머리도 풀어 헤치고 옷도 풀어 헤치고 잘 나가는 그런 모습이 더 낫겠느냐? 니 마음대로 하거라. 어떤 옷을 입느냐? 교복은 없습니다. 좀 조심하거라. 구약의 율법은 이유 없이 지켜 놓고 봐야 합니다. 반드시 지킬 말씀. 안 지키면 멸망입니다. 죄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란 깨닫게 가르치는 걸 선지자라 그립니다. 모르니까. 그 예언대로 실행을 하면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구하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율법도 선지자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려서 보냈다. 선지자 중에 선지자, 율법 중에 율법 율법의 주인 주님이 오셨다. 인제는 주님이 산에 올라가 따르는 무리들, 제자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1계명 안 지켜도 됩니까? 지켜라. 1계명 지켰는데요? 1계명 지키며 심령이 가난한가는 생각하라. 2계명 지키며 심령이 가난했던가? 생각하거라. 3계명 지키며 심령이 가난했던가 생각하거라. 구약에 준 말씀의 율법 안에 복음을 넣어 하나 더 올라가 구약의 율법이 바라보던 소망을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실행하여 대속을 완성시켜 놓고 주님의 대속은 우리는 힘을 입어 인제는 순종 한 것만큼 실상을 이룹니다. 구약은 소망 속에 바라 봤고 우리는 소망 속에 바라보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것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36쪽입니다. 너희 의가. 의라는 말은 주의 뜻입니다. 뜻대로 행하는 겁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지요? 너희 의가. 주님 오셔서 말씀하시는 걸 순종해야 되는데 근데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구약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어떻하지요? 뭐 구약의 율법은 그럼 하나님이 주님이 해결했으니까 그러면 신약의 말씀만 지키면 되지. 뭐 그러면 원수를 사랑해라 했는데 원수사랑을 다 했습니까? 뒤에 보면 욕하지 말라 그랬는데 안 했습니까? 미련한 것이라고 하면 지옥불에 들어가리라. 했는데 그런 말 한 적이 없나요? 교재 위에입니다. 구약의 의.원래 의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법 안에 있는 뜻대로 실행하는 걸 의라고 그럽니다. 서기관이란 예수님을 빼 놓고 율법을 가르친 신학자를 말합니다. 율법을 배우다 보면 율법을 가르치다 보면 율법 속에 주님을 발견해야 하는데 율법만 가르쳤습니다. 구구단만 배웠지. 구구단을 활용해서 곱하기 하는 것은 가르치치를 않았습니다.배우지도 않았고. 학교만 오고갔지. 가서 공부는 안 하고. 주먹질만 배웠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들여다보면 율법 속에 주님을 봐야 되는데 주의 구원을 봐야 되는데 율법만 외우고 율법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빼놓고 예수님은 없이 율법을 가르친 신학자가 서기관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예수님 빼 놓고 율법을 실행한 사람입니다. 서기관은 가르친 사람, 바리새인은 실행을 한 사람입니다. 율법이 틀린 것이 아니라 율법 속에 주님을 배웠어야 하는데. 학교 가라니까 학교를 갔다가 365일 다녀서 개근상은 따고 공부한 것을 머리에 남지 않고. 초등학교 1학년 가니까 학교 선생님이 태풍이 와도 학교는 오는 거다. 그렇게 가르치고 아파도 오는 거다 가르쳐서 초등학교 개근상이 제가 6장입니다. 6년 개근. 중고등학교 개근상이 12장입니다. 안 믿는 학교를 옛날에 아이들 그리 가르쳤습니다. 코로나가 와도 교회는 가는거다 그렇게 가르쳐야 그게 종교 아닌가요? 코로나보다 더 억센 것이 와도 예배는 듣는 거다 그게 교회 아닌가요? 이게 신앙 아닌가요? 가르쳐 줘 거기 가르쳐 가보게 불신자 야쿠르트 만날 시간이 없어 겁이 나서 안 오는 거 아닌가요? 불신자야 그렇지만은. 신앙이 없어 겁이 나서 안 오는 걸 끌어다 올 수는 없지만은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이게 교회가 아닌가요? 말이라도. 학교 선생님 태풍이 와도 비바람이 쳐도 아파도 는 오는 거라 그래서 제가 그거 하나는 듣고 그거 하나는 12년을 개근했습니다.

그런데 우등상은 한 장도 없습니다. 학교는 부지런히 다녔는데 가서 장난질만 했지. 나쁜 짓만 했지. 컨닝이나 했지. 이게 구약의 율법입니다. 학교 오라 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오거라 그러면 왜 오라 그랬을까? 개근상 받으라고 그런 건가? 공부 하라는 건데. 공부는 빼 버리고 학교만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나 개근상 받았으니 훌륭한 학생이다 야 인간아 공부를 해야 훌륭한 학생이지. 율법이 틀린 것이 아니라 율법만 가르쳤고 율법만 실행을 했고 율법의 실상인 주님의 구원을 빼 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야단을 처 놓으니까 바리새인, 서기관을 욕을 하면서 율법을 주신 주님까지 빼 버렸습니다. 의인은 구약의 의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실행 하는 건데 서기관은 율법을 가르쳤고 바리새인은 율법을 신행을 했는데 주님이 오셔서 신약의 의, 신약의 의는 뭐가 의냐?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실행을 다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 다 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할 것도 없이 율법을 다 지켜 천국 갈 사람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천국 때문에 고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놓고는 예수님이 우리한테 천국 가는데 필요한 의는 예수님이 다 했으니 니 마음씨, 니 말투, 너 행동은 믿는 사람답게 살아라. 하늘나라 너한테 맞길 사명이 크다.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 내 행위는 내가 고치면 되느냐? 해 볼라하면 아니 된다. 할려고 하면 주님이 도와서 하게 해 주겠다. 이렇게까지 되기 때문에 알고보면 100% 은혜입니다. 예수님이란 우리 대신 모든 율법을 전부 실행을 하신 분입니다. 믿는 성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대신 실행을 해서 하나님의 의가 만들어졌으니 그 의를 공짜로 힘입어 천국 갈 백성이 되었고 구원은 해결이 되었는데 당연히 그런 사람은 현실 순종을 해야 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돈 벌러 간다고 바쁘지? 니가 불안하지? 니 마음이 이상하지? 그러지 말아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라. 주님이 천국백성 만들어 주셨고 먹을 것 입을 것 주님이 챙겨 주실 터이니 게을러서 돈 안 벌고 더러워서 돈 안 벌고 그건 잘못됐지만 신앙생활 하다가 보니까 못 번 것은 죽어도 살아도 굶어도 주님이 책임지실 일이니 주님께 맞겨 놓고 살아 보겠습니다. 요게 신약의 우리가 가질 우리의 의입니다. 천국 구원에 대한 의는 주님이 나기 전에 벌써 해결 다 해 놓으셨고 내 현실에 내가 싸우고 내가 투쟁하고 내가 노력할 의는 주님이 이리이리 해 놓고 도와주시겠다는 그 의로 내 마음 과 내 행위를 고쳐나가는 순종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는데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는데 뭐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복, 애통하는 복, 형제를 라가라 하고 미련하다가 욕하지 않을려고 싸우는 이런 실행을 하고 아니해서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천국은 어떤 천국인가? 나 자체가 들어가는 천국 문제가 아니라 내가 천국 들어 갈 때 나의 생애, 나의 마음, 나의 행위, 나의 심보 나의 심보

선지자 요나를 봐보십시오. 이게 선지자인데 우리보다 나은 선지자인데. 니느웨에 가 가지고 회개를 외쳤는데 회개를 하고 돌아서니까 하나님이 소돔처럼 때리지를 않으니까 이 심보가 요놈의 니느웨가 회개를 안 하고 불바다가 돼야 되는데 이것들이 회개하는 바람에 불바다가 되지 않으니까 심사가 그냥 이것들 망하는가 보자고 버텼습니다. 선지자 요나의 그 심보가 천국 가겠습니까? 그 심보는 빼놓고 가겠습니까? 다윗이 지은 그 죄의 마음을 천국 가지고 가겠습니까? 다윗이 천국 갈 때 우리아의 아내의 죄지은 그 미혹은 실수는 지옥에 버리고 가겠습니까?

어떤 행동도 어떤 존재도 한번 생겨지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택자 우리는 천국에 가지마는 우리의 심보, 우리의 말, 우리의 눈빛, 우리의 생각 하나 사상 하나 천국에 맞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도 맞지 않는 것은 다 지옥에 버려야 되는데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다. 지옥 불에 탄다. 그러니까 어 성경 말씀대로 100% 순종하지 않으면 지옥 갈까 봐 떨어버리는 사람들이 만든 교파가 감리교입니다. 감리교, 죽을 때 회개 못하면 지옥 갈 줄 압니다. 이분들은 감리교는 열심히 믿는 것은 장점인데 감리교라 말은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을 합해서 감리교라 그럽니다. 교리로는 같습니다.

그분들이 마태복음 5장을 읽어 보니까 19절 ‘지극히 작은 거 하나라도 잘못 가르치면’ 이거는 읽지 아니하고 20절 ‘바리새인 서기관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21절 22절 ‘형제에게 노하는 자 라가라고 욕하는 자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 이래 놨으니 욕 한마디 하면 지옥에 들어간다. 회개하면 되지. 욕을 했는데 욕하다가 심장마비로 회개도 못 하고 덜컥 죽어 버렸으면 그 사람은 지옥 간다. 이게 감리교 식입니다. 요걸 해결한 게 칼빈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천국과 지옥은 세상 만들기도 전에 우리 만들기도 전에 영원 전에 천국 갈 택자는 미리 정해놓고 무조건 천국 간다. 이건 염려하지 말아라. 이걸 가르치다 보니까 믿음 이후에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고 노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 문제의 천국과 지옥은 어떤 문제입니까? 이걸 가르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건 제자들이 가르쳐야 되는데 칼빈 후에 제자들이 가르쳤으면 우리가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500년 동안 이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칼빈이 너무 유명해서 칼빈 베끼기만 하다 보니까 500년이 지나도록 천주교 욕만 하고 앉았습니다.

천주교만 안 닮으면 개혁교고 천주교만 욕을 하면 WCC 아닌 줄 알고 100점 인줄 압니다. 바리새인 욕만 하면 다 된 줄 압니다. 그건 500년 전 이야기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21절 ‘살인치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 이거는 바로 심판 지옥을 말합니다. 22절에 기가 막힌 것은 구약의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 6계명만 말을 했는데 22절에 해석을 해 놨습니다.

주님은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형제에게 성만 내도 노하는 자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화가 너무너무 나면 마지막에는 살인으로 가는데 살인은 말할 것도 없고 화만 내도 심판을 받는다. 라가라고 욕 한마디만 해도 잡히게 된다. 미련하다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받고 공회에 가서 이 공회는 우리 공회가 아니라 하나님 앞의 심판의 공회입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다가 연보 가지고 예배를 드리러 가다가 형제한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거든 얼른 가서 사과해라.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 버렸으면 어떡하지요? 죽어 버렸으면 어떡하지요? 25절에 너한테 억울해서 주님 앞에 호소하는 자와 인생길 아직까지 기회 있을 때 급히 해결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저 인간이 나한테 미련하다 했습니다. 화를 냈습니다. 욕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은 밑에 관리에게 내어주고 지옥에 가둘까. 그러니 해결해라.

26절 단 한 개 호리라도 남김없이 갚기 전에는 결단코 지옥에서 나오는 일은 없다. 구약의 율법보다 더 무섭습니다. 요거 건설 구원의 성화 과정에 잘못된 문제로 해석하지 못하면 내가 남몰래 지은 죄가 있는데 요거 회개 못하면 지옥 가겠는데 이런 불안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감리교인들은 맨날 회개하고 통성기도에 외치고 있습니다. 장로 교인들은 택한 백성은 마지막 견인의 교리로 천국 간다 했으니까 천국은 가지 않겠느냐. 그래도 또 뭔가 또 수상쩍습니다.

내가 요즘 신앙이 식어지는 걸 보니까 가라지처럼 교회는 다녔는데 중생도 안되고 그냥 왔다 갔다 한 것이 혹시 아닐까? 불안해집니다. 그때는 뜨거운 은혜를 받아 분명히 믿는 사람이였는데 근데 요즘 한 5년 10년 그냥 대충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그때 믿었던 거는 환상인가? 그때는 젊은 날에 멋모르고 쫓아다녔는가? 뭐에 홀렸는가? 요즘 5년 요즘 10년 내가 나를 보니까 이거 중생 되었는지 말았는지 이거 이러다가 죽으면 어찌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자꾸 그러다 보니까 이제 사람 죽고 나면 무슨 식이라고 그러지요? 사람 죽고 천국 가라고 예배보는 거?

추도식! 추도식은 천주교식 미신입니다. 추도식을 하면서 구원의 확신이라? 죽는 순간 택자는 천국가 앉았는데 천국가 앉았는데 지옥으로 바뀔까 봐 추도식 예배를 하고 추도식 예배를 해놓고 저 천국에 야물게 계시겠지. 불안해서 또 1년 뒤에 또 추도식하고 또 추도식하고 하나씩 뒤지다 보면 문제가 많아집니다. 다 들춰 될 수가 없어서 하나씩 살피고 있는 겁니다.

36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건 몰라도 택자는 주님이 나 나기 전에 구원했고 내가 죽었을 때 구원해 놔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알아야 되는 것은 내 마음 내 요소 내 심신의 내 현실의 돌이켜야 되는 그 심보 그 기회를 바꾸지 않으면 그건 지옥에 버리고 내가 천국 가야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맨 밑에 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껍대기만 남아 있습니다. 겉만 남은 상태 뭐가 알맹이인데요? 예수님의 대속이 율법의 알맹이인데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님의 대속은 은혜로 오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것을 외식이라 그럽니다. 외식을 비판한 겁니다.

그래서 38페이지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율법입니다. 살인하면 심판을 받아 지옥 간다. 구약의 율법입니다.
그런데 살인이 뭐냐? 생명을 끊는 일이 살인이지요. 생명이 뭔데 하나님과의 연결이 생명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 교회 안 다니고 하나님 배신한 일 없나요? 목사 미워서 교회 안 다닌 사람이 한 명입니까? 열 명입니까? 인간인데 그건 살인이 아닙니까? 칼 들고 남 죽이면 살인이고 목사가 실수하는 걸 보고 시험 들어 교회 안 나오고 하나님과 연결 끊어지는 것은 살인이 아닌가요? 출애굽기 20장 13절 살인하지 말지니라. 신약의 우리들 에게는 주님이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이게 신약의 율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돌로 때렸는데 안 죽으면 살인죄가 아닙니다. 신약의 살인죄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 시켜야 되는데 그 사람을 미워했다면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연결을 했을 리가 없지. 그게 바로 살인이다. 다른 사람 신앙의 기회를 뺏든게 작은 살인입니다. 작은 살인 80년 사는 사람을 나 때문에 십년간 교회 다니지 않게 했으면 80년 짜리 생명은 뺏지를 않았는데 십년 기회는 뺏아 버렸습니다. 십년 교회 못 다니게 한 것은 십년 짜리 생명 아닌가요? 시간이 생명인데 100살 사는 사람은 100년 짜리 시간이 생명입니다. 스무살 살고 죽는 사람은 20년이 생명입니다. 남의 시간을 십년 뺏들고 5년 못 믿게 만들었으면 육의 목숨의 살인자는 아닌데 그 사람이 믿을수 있는 기회를 뺏은 그 만큼은 작은 살인입니다. 이거 적지않은 죄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 교재 38페이지 가운데인데 요한복음 15장 주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는 이에서 더 큰 사람이 없다. 친구 죄짓고 사형장에 가는데 내가 죄지었습니다. 해서 대신 죽으라는 말인가요? 다른 사람 하나님과의 연결시키는 생명 다른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는 그 생명이 목숨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친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다가 니가 죽어도 그건 사랑이다.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하여 살라. 이게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근데 미워하다니 안 죽여도 그 사람 죽인 거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라 했으니까 형제는 사촌을 말하는가? 이촌을 말하는가? 가족도 형제 주변 사람도 형제 내가 책임지는 모든 사람이 다 형제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라. 심판이라는 것은 마태복음 16장 27절에 가면 행하는 대로 갚으리라 했습니다. 구약이 아니라 신약입니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리라. 니가 다른 사람 죽일 일은 없지.
교인1 2021.05.12 14:04
그러나 너 때문에 다른 사람 교회 안 다니도록 많이 했지. 잘 믿는 사람 못믿게 만들었지. 그거는 상관이 없을까? 그건 살인죄가 아닐까? 주님은 그걸 살인죄로 볼걸? 그의 신앙이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것이 구원인데 그의 마음과 그의 행위와 그의 시간과 그의 정성과 그의 직장과 그의 마음을 하나님과 끊어놓은 것 니가 나쁜 습관 가르쳐 주일마다 밤낚시 가자 그래 가지고 주일마다 교회 안 가게 만든 것은 친구 십 년을 밤낚시 하다가 주일 안 가게 된 것은 살인죄가 아닐까? 경찰법원에서는 그런것은 살인죄가 아니다. 친구 사랑이다. 그렇겠지 하나님은 그 친구 십년의 신앙 하나님과 연결을 끊었으니 십년 짜리 살인이다. 그럴거다. 행한대로 갚읍니다. 레위기 24장에 보면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 그랬습니다. 구약은 육체를 죽인 자는 육체를 죽여버렸습니다. 신약 우리에게는 육체는 죽이지 말아라.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신앙을 끊으면 그 사람의 신앙은 하나님과 끊어져 있습니다. 죽이기도 전에 죽어 버렸습니다. 자기의 신앙의 건설은 없습니다. 영멸 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씀이라고요? 미워하지 말아라. 미워하지 말라니 뭐라고요?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거라. 그 말입니다. 40쪽입니다. 노 하지 말아라.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 라가라고 욕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된다.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

 살인을 안해도 뭔말이지요? 노하는 자는 이성을 버리고 감정에 붙들린 사람을 말합니다. 중간에 라가라 하는 자는 라가라고 하는 자는 욕을 라가라 하는 그런 욕이 있는데 남을 욕하는 자는 남을 비판하는 자는 남을 비판하는 자는 또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은 저건 소망이 없습니다. 그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 감정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 다른 사람을 포기하는 절망은 살인죄와 같습니다.

 아이가 나쁜 습관이 있어서 화를 냈는데 그 아이가 성경을 잘 아면 엄마 화내면 지옥 가는데요? 예수님도 화를 냈으니까 지옥인가요? 감정에 붙들려 감정의 사람 되지 말아라. 주님이 화낼 때는 구원을 위해 복음을 위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은 하지 말아라. 곱게 말을 해야 되겠는가. 채찍으로 마구 두드려 뒤엎어 버려야 이 사람들이 성전에서 죄를 짓지 않게 될 건가. 이성 비판으로 계산한 다음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지 말아라. 곱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상을 뒤집어엎고 채찍을 깔려 버렸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 이보다 더 큰 욕이 있습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이거는 욕이 아닌가요? 세상 사람이 말하는 욕 세상 사람이 말하는 절망 세상 사람이 말하는 감정 말고 다른 사람을 심령이 가난하게 애통하는 사람이 되어 주님을 모신 천국에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는데 그렇게 할려면 내 감정이 새 솟아오르면 벌써 실패입니다. 감정은 새 솟아올라 오지만은 눌러 놓고 모르니까 저러지. 어리니까 저러지. 이건 달래야 될까. 요건 어려도 달래서 안돼고 이제 좀 혼을 내는것이 좋을까. 사리판단 이성이 앞서가며 계산을 해서 이 아이에게 이 교인에게 이거는 좀 야단을 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그리고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은 욕하네. 그러는데 주님은 그 사랑스러운 좋은 설교를 했구나. 복 받아라. 그럽니다. 몽둥이를 휙 둘러도 그 몽둥이 아니고는 그 아이가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않을 상황이니 그 매는 매가 아니라 주님의 선물이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걸 핑계 들고 매로 가지고 목사가 화만 나면 막 그냥 휘둘러 대면 교인들의 마음이 알 거는 다 압니다. 아이구 우리 목사님도 성나면 뭐 그냥 이성을 잃어버리더라. 감정의 사람이 되어서 독하더라. 사람도 아는데 주님이 모르겠습니까?

구원이 중심이고 구원을 위하여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라. 미워하지 말아라. 아무리 안 된다. 안 된다. 해도 소망을 포기하지 말아라. 그게 미련한 놈이라 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미련하단 말은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다가 100번 가르쳐 앉으면 하. 그놈 미련한 놈 너 공부 치워버려라. 가서 일이나 해서 돈이나 벌어라. 그게 더 나을수 있습니다. 구원을 두고는 천 번 만 번을 가르쳐도 못 알아들으니 아이 지옥 가버리거라. 너는 이 진리 포기하거라. 주님이 그러면 우리를 쳐다 보면서 네 놈 고치느라고 참 내가 애 많이 썼는데 그러십니다.

오신 주님과 손잡고 돌아다닌 12제자도 주님을 못 알아 봤습니다. 부활한 주님과 40일을 돌아다니고도 주님을 몰라 봤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미련합니다. 미련하기도 미련하지만은 미련할 수 밖에 없는 게 천국을 어떻게 알며 하나님을 어떻게 알겁니까? 인간이 머리 좋다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미련할 수밖에 없지. 은혜 주시면 돌들도 소리를 질러 호산나 할 것이고 주님 은혜 주지 않으면 사도 바울같이 머리 좋음도 예수 제자 죽이느라고 해외 여권 비자 내고 돌아다녔습니다.

주님 은혜밖에 없나이다. 가르치다 가르치다 안 되면 ‘주여 저로서는 가르쳤나이다. 이제 주님이 열어 주옵소서’ 그러면 미련한 놈이라 하지 않은 겁니다. 소망이 있는 겁니다. ‘저로서는 했습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나이다.’ 저는 우리 공회 청년들에게 20살 결혼해서 복 받으십시오. 수십 년 저는 외쳤습니다. 그런데 수갑 채워서 그냥 소를 갔다가 한 짝 만들듯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들한테 말했다고 경찰 잡아가는 세상인데 저는 우리 공회 청년들에게 20세 결혼에 30살에 아이를 네 명 다섯 명 낳는 복을 받으십시오. 저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을 했습니다.

제 말발 제 설득력 제 인생 제 소원을 다해서 여기까지는 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는 분이 90명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노끈으로 두드려댈까요? 여기까지가 부족한 제가 하는 일이고 공회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펼쳐놓은 노선입니다. 그리고 이번 집회를 준비하면서 주여 아무리 말해도 돌한테 말한다고 돌이 알아듣겠습니까? 돌로 만든 사람을 벅수라고 그럽니다. 그럼 뭐 바울 같은 천재는 말하면 알아듣는가요?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인다고 돌아다녔는데 이 시대가 결혼을 안 하는 시대며 이 시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며 이 시대가 여자가 남자인 줄 다 남자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 가지고 여권을 부르짖는 시대에 말 한마디 했다가는 여성인권위에서 잡아가는 시대라 공회와 저는 여기까지 설명하고 애를 태웠습니다. 그리고나서 제 입에서 미련한 것들 그러면 너 그 말 고 자세는 지옥이다. 그 말 그 자세는 헛일이다 그럽니다. 저로서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주여 저 애미! 저 애비! 그 애미 애비를 나쁜 말이라 그러는데 성경에 어미 애비라 그랬습니다.

엄마부터 허영이 들어가 가지고 그 딸 그냥 뭐 텔레비 나온 사람하고 결혼시키려고 기다리고 앉았는데 딸은 더하지. 아버지가 지금 미스코리아 며느리 보려 그러는데 아들놈은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월드 미스코리아 구하려고 그러지. 눈을 하늘에 달고 있는데 어디 갔다가 결혼시키겠습니까? 눈을 낮춰도 안 되는데

제가 아들 넷 결혼시키면서 장애자 구했습니다. 목사가 장애자 며느리를 봐야 교인들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거 며느리는 공회 제일 좋은 것 다 갖다 놓고 교인들한테는 찌끄러기 가져오라고 그러고 앉았으니까 속에 욕이 안 나오겠습니까? 그럴까 봐서 우리 공회 아닌 권사님한테 전화 여러 차례 했습니다. 어디 좀 주변에 어중간한 장애자 있거든 우리 아이들은 아마 순종할 겁니다. 목회자 아들 넷이 장애자 하고 결혼을 해야 교인들 한테 말 안 해도 아 교인은 신앙을 위하여 저렇게 걸어가는 구나 이게 덕이 되지 이게 빛이 되지. 내가 녹아져야 빛이 될건데 뭐 그런 사연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데

목회자가 공회 딱 봐가지고 알짜배기 좋은 거 쏙쏙 골라 뽑으니까 공회 어느 집사님이 저한테 찾아 와가지고 목사님들은 공회 좋은 거 다 빼먹데요? 할 말 있습니까? 교인들한테는 낮아지십시오. 낮추십시오. 그러고 목회자들은 좋은거 다 가지고 오니까 적어도 그렇게는 안 했습니다. 하다 하다 길이 없어 그리되었습니다. 그리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복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 불신자 세상 텔레비 세상 오늘 젊은 것들 기준으로 부부, 남녀, 결혼, 육아, 출산 그거 노아 홍수 때 물바다가 될 죄입니다. 주님 오시면 불태워 버릴 잘못된 겁니다. 적어도 교회라면 복음이라면 신앙이라면 공회 교인은 공회 다니는 사람 안에서 찾겠습니다. 없으면 말고 아무리 낮아도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어떡합니까?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은데 상대방이 한다면 저는 노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공회 결혼의 1번입니다. 공회 안에서 결혼하겠습니다. 공회 안에서 이쁜 거 잘난 것 그건 공회 결혼 같은데 그건 세상 결혼입니다.

공회 결혼의 정의란 공회 안에 여자가 예스 하면 저는 누구든지 제 입으로는 노 하지 않겠습니다. 공회 안에 남자가 예스 하면 제 입으로는 노 안 하겠습니다. 그게 공회 결혼입니다. 공회 여자 공회 남자 다 훌쳤는데 한 명도 나하고 안 하겠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이제 00 불신 결혼 해야 되겠지요. 모세도 불신 결혼했습니다. 요셉도 불신 결혼했습니다. 애굽에 잘난 것 하고 결혼할려고 간 거 아닙니다. 자기 백성과 결혼하고 싶어도 길이 없어서 그래 됐습니다. 이거는 복음에 실상입니다. 비교적 쉬운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험이라는 것은 금방 드린 바로 이런 식입니다.

결혼 안한 분이 서너명일 때는 이런 말을 하면 날 찍어 저래 화가 나서 교회 안 나올까봐 이런 말씀을 못 드렸는데 한 90명 되니까 목소리를 높여도 나 빼고 저 사람 말하겠지. 저 사람 말하겠지. 그럴까봐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결혼이 바로 되어야 바로 살지. 바로 살아야 복된 아이들이 나오지. 복된 아이를 복되게 길러야 또 다시 복음에 운동이 생명의 운동으로 자라가지.

세상 들이다보지 말고 다른 교회 들이다보지 말고 우리는 우리 숙제만 풀어 보십시다. 마태복음 5장부터가 복음입니다. 복된 말씀입니다. 뭐가 복인데 미워하지 말아라. 뭐가 복음인데 미련하다 하지 말아라. 뭐가 복음인데 비판하지 말아라. 어려도 미련해도 주님이 마음을 열어주면 된다. 이번 집회를 한 6개월 전부터 준비했는데 말씀은 비교적 쉬워 보여 교제 마련하기는 쉬웠지마는 주여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면 이 말씀 아무리 가르쳐봐야 안 가르쳐도 다 아는데 뭐.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한 소원만 가지고 이 말씀 살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겠습니다.

복음 쉬운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원수를 사랑하라. 소금이 되라. 남한테 시키면 쉽습니다. 자기가 할려니까 어렵지. 무엇부터 해야 될 건가? 결혼 안 하는 분들은 결혼의 과제를 복음에 신약에 의 신약의 명령인줄 알고 고민해 주십시오. 나 하나 선교사도 가는데 아프리카 선교사도 가는데 아 저 정도 청년이면 내 이 아까운 아가씨의 좋은 상태를 몸 바쳐가며 선교 아닌가요? 남자가 훌룡합니까? 아프리카 선교도 하는데 그 정도 아가씨한테 결혼해서 사는데 뭔 선교만큼 고생이나 하겠습니까? 백분의 일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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