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1.5.4 마5:10 내가 천국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만들게 되면 세상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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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1.5.4 마5:10 내가 천국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만들게 되면 세상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음

교인1 2 176 2021.05.0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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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1.5.4 마5:10 내가 천국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만들게 되면 세상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음


설교요약

* 오늘의 복음 : 내가 가질 나의 복음

① 복음의 방향 : 천국 복음
- 바다[죄악세상]와 땅[허무인생]에 속한 무리에게
- 산에서 천국[방향 전환]을 가르침

② 1-4복 : 먼저 천국 일념의 나 자신으로 만들어
- 천국에 갈급[1복]과 애통[2복]이
- 세상 초월[3복]과 의에 매진[4복]을 가져오고

③ 5-8복 : 고난을 받으며, 자기 주변까지 그리할 때
- 천국을 향한 나약함을 동정케[5복] 되어
- 동일한 노력으로[6복] 주님과 하나 만들고[7복]
- 그 과정에 세상의 고난을 받음[8복]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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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타본이며 교정을 거친 후에 초타본 표시를 삭제 합니다.




210504 집회 3(화새)

제목 : 내가 천국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만들게 되면 세상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음

본문 : 마태복음 5장 5절 – 9절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광야 40년의 세월을 출애굽 백성들에게도 주시고 오늘 우리의 인생도 이 시대도 광야 40년처럼 주셨는데 광야가 아니라 살판난 세상으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불신자들과 섞여 살며 그들처럼 먹고 풍족히 마심으로 흡족하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모든 쾌락과 육체의 기쁨을 위하여 달려가는 홍수 속에 함께 빠졌던 저들을 연연히 불러 5월의 집회로 깨우쳐 주시고 올해도 복잡한 세상 속에 잠시 불러 세상을 광야 40년으로 사는 것이 옳다 하심을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주님께 간구하나이다. 세상은 넘칠 대로 너무 많이 넘쳐 있고 그만큼 천국은 사라지며 희귀하게 되어 교회 안에서도 천국의 소망의 갈급이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세상만 물밀듯이 넘치지 않았는지 시간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말씀하신 첫 말씀 천국이 가까웠다 말씀하신 이 말씀으로 새겨보고 집회를 통하여 우링 마음속에 천국을 더욱 불일 듯 일으켜 다시 주시는 현실 속 세상 어떤 풍요 속에 내던져져도 세상은 초월하고 심령의 갈급으로만 달려가는 우리 학생들 청년들 마지막 한 호흡까지 노년의 종들의 충성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이 길에서 주님을 뵈올 때까지 개인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역사 마지막을 맞서 등불을 켤 수 있는 각자의 신앙 되도록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이 깊은 산중에 모든 안보 기후 세상이 복잡게 생각하는 모든 전염병까지 주님의 주권 통제 섭리 아래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조절하시고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봄으로 주의 은혜 받아 무난히 이 시기를 복되게 걸어가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부족하여 주님만을 바라보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20쪽입니다. 첫 시간부터 심령이 가난한 복. 천국을 사모하는, 천국이 사무치는 복. 세상은 돈 되지 않는다고 외면하나 우리는 그 날 영원을 바라보며 천국에 갈급한 우리가 되십시다. 천국에 갈급한 자기가 되고 나면, 아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 알게 모르게 세상은 내 마음과 내 소원에 가득 찼고 그만큼 천국은 점점 멀어졌고 희미해졌고 이게 애통이 되어져야 애통하는 자가 되어집니다. 천국이 애모가 되고 그렇지 못하는 내가 애통이 되어지면 주님이 긍휼히 보시고 내 마음 속에 천국을 자꾸만 채워 주시고, 천국이 채워지는 만큼 이제는 세상에 초월하게 되어 온유한 자가 되어집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있으면 족하지. 아 먹을 거 입을 것이 없어 난리인데. 그들에게는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새는 새의 생애법칙, 풀은 풀의 생애법칙만 지키면 먹을 거 입을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느냐?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 너희일까 보냐? 그러면 세상을 두고는 염려근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역사 6천년을 통하여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거 입을 것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불안해서 세상으로 향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읽는 2021년의 오늘 우리들에게는 먹을 거 입을 것이 넘쳐 강아지도 미장원 갔다 오고, 강아지한테도 옷을 입히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고양이도 너무 많이 먹어 가지고 비만증에 걸린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시는데 먹을 거 입을 것이 있은 줄 족한 줄 알라. 이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의 말씀 무시는 하나님 무시가 됩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알면 좋지 않은 일이 많아집니다. 잘 믿지를 못해도 우리의 이름이 교인입니다,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이 시대만은 먹을 거 입을 것이 넘치니 온유한 마음 가져 세상에 대해서는 절박함 없고 세상에 대해서는 애통하고 원통한 마음 초월해 버려 온유한 마음 가집시다.

세상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고 포기를 해 버리고 온유한 마음이 되어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주님 내게 무엇을 원하시나? 이게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한 가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세상은 전부 세상 차지하느라고 정신없고 천국 가는 길은 훤히 텅텅 비어 있고. 천국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마음껏 달려도. 연휴의 귀성길에 서울에서 지방 오는 차는 밀려서 주차장이 되고 반대편 차선은 텅텅 비어있고. 세상을 향해서는 전부 달려가느라고 빽빽하게 난리가 났고 반대로 천국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은 훤해서 아무도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마음껏 달려가면 경쟁자도 없지 견제자도 없지 얼마나 좋은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달려가는 그 길에 배부를 것임이요. 그 사람에게,

교재 20쪽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하시고 다섯 번째 긍휼을 말씀하셨는가? 긍휼이라는 말은 가난한 자의 형편을 동정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그 형편을 동정하는 사람. 거지가 이 추운데 떨고 있으니 얼마나 추울까? 나는 따뜻한데 추운 사람의 형편을 동정하는 사람. 동정이라 말은 그 마음을 함께 한다 그 말입니다. 나는 배가 부른데 배고픈 사람 그 배고픔이 얼마나 어려울까? 이게 동정입니다. 그게 긍휼이라 그럽니다.

천국에 갈급한 마음, 천국을 향하여 애통하는 마음, 이제는 세상을 돌아보지 않으니 세상에 대해서는 초월하여 온유한 마음. 세상을 미련을 끊었으니 주의 뜻 찾아 살아 보려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니까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나는 신앙에 열심, 주일의 열심, 예배의 열심, 기도의 열심, 나는 천국에 열심인데 아내는 어떡하지요? 아내는 돈 밖에 없는데. 나는 천국에 열심이라 정신이 없는데 아 이 남자는 돈 밖에 없으니 이거 어떡하지요? 던져 놓고 아이 낳고 함께 살까요? 부부는 한 몸이니 이 남자는 세상 밖에 없고 이 남자는 출세밖에 없고 이 남자는 자기가 세상을 자기 무대로 삼아 더 넓히고 설치고 돌아다니는데. 그 돈 벌어주는 거 먹고 살며 나는 천국에 갈급하고 남자는 세상에 갈급하고. 그렇게 둘이 붙어 살아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차는 고장이 나면 AS가서 부속품을 바꿔 버리면 되지마는 이 남자 바꿔치워 되겠습니까? 쥐 박아 고치겠습니까? 이 여자 말 안 듣는데 싸워 해결이 되겠습니까? 한 사람은 세상에 절박하고 세상이 원통하고 세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한 사람은 천국이 간절하고 천국이 원통하고 천국으로 달려가기 위해서 세상을 초월하고. 그러면 둘 중에 부딪히는 게 있고 해결이 되어져야 됩니다.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 어찌 좀 더 잘 믿어볼까? 이 마음이 자꾸 생겨지면 세상을 향하여 절박하여 쫓아가는 부부 상대방을 바라보며, 저 사람도 내가 가진 이 절박, 천국의 소망에 하나 되면 좋겠다, 이게 동정입니다. 이 남자 부자인데? 이 남자 계장 과장 부장 쭉쭉 올라가고 벌써 40대에 대기업의 이사가 됐는데, 모자라는 게 없는데, 추운 게 없고 배고픔이 없고 세상을 향하여 앞날이 창창한데 뭘 동정해? 못 먹어 동정이 아니고 추워 동정이 아니고 저 인간 이대로 하늘나라 갔다 놓으면 무얼 입을까? 하늘나라는 진리의 세계인데 진리 모르면 뭘 알까? 남편의 아내의 의가 주리고 의가 목말라야 되는데 세상만 주리고 세상만 목말라 저렇게 세상을 향하고 있으니 이게 안타까워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동정했고,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의 동지를 만들었습니다. 롯은 의인이라 그랬습니다, 신약에서. 소돔으로 간 롯은 의인입니다. 아내가 문제입니다. 아내는 세상밖에 없습니다. 딸 둘의 결혼과 앞날밖에 없습니다. 롯이 롯의 처 아내에게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천국의 갈망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롯은 끝까지 천국의 소망은 있었고 아내는 세상만 가득 찼고. 둘이 아이 낳아 함께 살며 아내는 세상, 결국은 아내를 돌려 세우지 못했습니다. 아내에 대한 긍휼이 없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하나는 귀신, 둘이 부부로 붙어 사니 거기서 나온 아이가 인간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롯의 딸인데 롯의 아내를 돌려세우지 못하니까 엄마 닮은 딸이 되어 큰 딸 작은 딸 둘이 낳아 놓은 것이 모압과 암몬의 족속이라. 두고두고 하나님 바로 믿고 싶은 교회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민족을 쥐어박고 원수 되는 그런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애굽 사람은 3대가 지나면 하나님 앞에 들어올 수 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영원히 가도 아니 된다. 이렇게까지 롯의 아내의 길은 아니 된다 라고 해 놓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모압과 암몬을 저주할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여반들, 나를 인하여 이 땅 위에 태어나고 자라갈 우리의 아이들이 롯의 딸들처럼 되면 아니 되겠다. 남자는요? 내 아내를 롯의 처로 만들 수는 없다. 안 만들면 어떡할 겁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롯은 롯의 아내를 롯과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어야 됩니다. 난 뭐 집회도 오고 난 철야기도도 하고 난 말씀에 달려 나가니까 내 신앙 넘치는 것만 좀 나눠먹어도 뭐 아내야 나 따라 대충 믿어도 되지 않겠느냐? 안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가난한 자의 형편을 동정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무슨 가난? 천국의 가난. 말씀의 갈급.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 세상을 어떻게 살 건가?

이번 코로나로 한 2년을 천하를 뒤흔들고 계시는데, 계시록 13장 4절에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 죄악 세상을 말합니다. 일곱 머리 열 뿔이라. 일곱 머리라는 것은, 칠을 하나님의 숫자. 죄악 세상에서 나온 죄악의 세상의 두뇌가, 과학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하나님과 맞서겠답니다. 이게 일곱 머리입니다. “그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세상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낫다고 잘 나가다가 코로나로 한 번 휘청하니까, 어따 이거 과학가지고 다 되는 거 아니구나. 눈 깜박할 사이에 이번 코로나가 정말로 좀 무서운 것이었다면 백신 발견하느라고 1년 사이에 다 죽어버렸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과학이 이렇게 완벽하게 완전하게 간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 이거 다는 아니구나, 허점은 있구나. 이게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영 죽어버렸으면 겁을 먹을 건데. 인간이 다는 아니다, 과학이 다는 아니다. 이렇게 좀 꺾일 건데 1년 만에 드디어 백신이 나와 가지고 뭐 그냥 한 방 맞으면 안 걸린다, 이러니까 “머리 중에 하나가 죽게 된 것 같더니 상하여 죽게 된 머리가 나으매 온 세상이 짐승을 따르며” 봐라, 역시 과학은 전능이다. 21세기의 과학은 기술은 미신 같은 미개할 때 믿던 종교적인 그런 맹신 필요 없다. 백신 나오는 바람에 더 큰소리를 치는데, 지혜롭고 복된 사람은, 역시 인간은 인간이구나. 불완전한 것이 완전을 만들 수는 없구나. 어느 날 하나님이 하나만 뒤집어 놓으면 그걸로 끝나는 구나. 이번 코로나 1년을 통해 하나님 앞에 겁을 먹고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되겠나이다, 이렇게 꺾여지고 겸손해지면 희망이 있고, 어떤 죄인이라도 이렇게 꺾여지고 이런 걸 깨달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의인이다 그럽니다. 과거에 죄를 짓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겁을 먹고 겸손할 수 있으면 그 자세가 의인이고 이 사람한테는 하나님이 못 해줄게 없습니다.

지난 날 영육 간에 잘 믿고 잘 살아 흠 없이 온전한 사람이라도 상식으로 건강 조심하고, 인류의 역량을 모아 대처하고 이렇게 나부닥 거리지 않고 정중하게 대처하면 다 뭐 사람 살 길이 있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데. 이렇게 배짱 있게 여유 있게 품위 있게 하나님의 이런 징계를 맞서면 그 인간 꺾어지도록 더 센 걸 갖다가 뒤엎어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는 맞서는 것은 지혜롭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뻣대면 매만 자꾸 커지고 올라갑니다. 기침 소리 하나에도 껌쩍 놀래서, 세상에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는 숨 쉬는 거 하나도 두려워 떠는 사람이 잘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향해서는 큰 소리 치고 하나님 앞에서는 바짝 얼어붙고.

좋은 아이들은 못난 부모라도 부모 앞에서는 벌벌 매고. 우리 학생들 다 그런가요? 엄마 말 한마디 아빠 부탁하나면 그 앞에서는 벌벌 매고 집 밖에 나가서는 대통령? 뭐? 너도 잘났어? 나도 잘 났다. 부모 앞에서는 꺾여지고 밖에 나가서는 잘난 사람이 그게 정상입니다. 골목 밖에 나가면 강아지가 무서워서 옹그라들고 골목 밖에 나가면 천하사람 앞에 못난 사람이 되어 쪼그라 들면서 집에 오면 대문 뻥 차고 안방 열어젖히고 부모한테는 눈을 부릅뜨고. 막 부모한테는 말로도 이기고, 눈빛으로 꺾어버리고, 출근하면 말단 직원한테도 잘못 보일까봐 고분고분고분, 이거 못난 인간입니다. 그런 걸 구들막 장군이라 그럽니다. 안방 장군이라 그럽니다. 집에 들어오면 안방에서는 대장이요 영웅이요. 밖에 나가면 강아지 하나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인간. 잘난 사람은 교회 와서는 바보처럼, 집에 와서는 등신처럼, 부모 앞에서는 죄인처럼, 밖에 나가서는 자유하고 마음대로 큰 소리치고 살 수 있는 사람. 방향을 그리 잡아야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난 심령이 가난하여 복, 애통하는 복, 온유한 복, 의를 향하여 마구 달려가는 이런 사람인데, 나는 그런데 아내는 어떤가? 남편의 신앙은 어떤가? 내 주변 교회를 함께 다니는 우리 교인들의 신앙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복을 받아 이렇게 5천만명이 잘 믿는 나라가 되었는데 옆에 일본은 어떤가? 아예 미신이 뭐 한 6백만개 된다 그럽니다, 일본은. 헤아리지도 못하지마는. 일본에 귀신이 누가 헤아려 보니까 한 6백만 귀신이 있답니다. 세상으로는 아득하게 잘 사는데. 그래도 옆집인데, 미워도 옆집인데. 저 인간들 6백만 귀신에 저러고 사니 저 어떡하나? 이럴 때에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신앙 어린 자를 돕는 마음.

주님은 범죄한 인간, 사람, 범죄한 우리 위하여 2위 하나님 2위 성자인데도 우리 위해 오셨습니다. 이게 긍휼입니다. 긍휼은 가난한 자를 동정하는 겁니다. 신앙 어린 사람을 돕는 마음입니다. 사업하는 사장님 장로님 세상은 훌륭하게 사는데, 이름도 좋은데 속에 간절함이 없으니 이 장로님 어떻게 하나? 그 사모님이 애절하게 기도해야 되겠지요. 그게 동정입니다. 잘난 남자를 동정해? 잘난 남자의 세상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났으니 신앙이 황폐하여 신앙 어린 걸 동정하는 겁니다. 2위 성자 하나님. 범죄한 한 사람 우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게 긍휼입니다.

첫째는 나의 신앙이 심령 가난,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복된 마음. 내가 잘 믿고, 내가 잘 믿고. 잘못된 거 아닙니다. 내가 잘 믿고 내가 살아야지. 여기서 나만 잘 믿고 가족은 상관없고? 너 잘 믿고 네가 믿음으로 가족도 잘 믿는데 도움 되고. 그러라고 부부로 짜매 놨습니다. 아무리 신앙 있는 남자와 아무리 롯의 처 같은 여자도 서로 들여다보면 서로 도울 게 있습니다, 서로 고칠게 있고. 롯의 처가 죄인인데 악인인데, 롯의 처가 롯을 보면 흠이 없겠습니까? 나름대로 다 할 말 있지. 자타의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사는 것이 긍휼의 신앙입니다. 심령 가난, 애통, 온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여기까지는 내가 잘 믿고. 이렇게 열심히 믿는 마음으로 가지고 그 다음 옆을 보며 이 사람도 심령이 가난했으면 좋겠다. 천국이 없어 애통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좀 세상을 초월하면 좋겠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이런 나와 함께 달려갔으면 좋겠다. 둘이 달리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마태복음 18장 33절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풀어줬습니다. 집에 돌아가다가 자기한테 빚진 사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 만나니까 목을 잡아 눌러 놓고 갚아라. 조금만 시간 주십시오. 교도소 가서 해결해라,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괘씸한지, 그 놈 다시 불러 들여라. 네가 네 통관, 네 동무 친구 하나를 봐 주지 못한다면 내가 왜 너를 봐 줄 거냐? 이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사 모든 면으로 내가 잘 믿으면 그 다음 너 옆에 너 친구 너 가족, 네가 손 뻗으면 되는 그 사람들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걸 물어보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까지 오셔서 널 구원했는데 넌 너만 살면 되냐? 물에 빠진 너를 구출해 놨는데 너는 다른 사람 물에 빠져 죽든지 말든지 집에 돌아가면 되겠느냐? 119 신고라도 해 줘야지. 뭔 줄 하나라도 던져서 살려보려고 애를 써야지. 그래야 너를 살린 사람이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뭐 살았으면 됐고 나 천국 갔으면 됐지? 천국 입성으로 전부가 아니다, 이 인간아. 영원한 영생의 모습이 있다, 영광의 차이가 있다. 영원한 나라에 하나님이 맡길 사명이 있다. 기본 구원 받아 천국 가게 됐으니 입 닦아버리고 나야 이제 죄 좀 대충 짓고 뭐 어떻게 살아도 마지막 천국에 들어갈 테니 난 해결 났다. 이리되어지면 자살골 먹는 겁니다.

긍휼을 받는 복. 마태복음 6장 교재 가운데입니다.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어떤 죄는 내가 해결하면 해결이 되는 죄도 있습니다. 어떤 죄는 씻어 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죄도 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 인터넷 중독이라 그럽니까? 옛날에는 제 나이 이상분들은 화투 놀음 습관 들여놓으면 화투를 못 끊어 집안이 망하니까 나중에 손목을 잘라버리니까 젓가락을 고무줄로 매가지고 또 놀음하러 가더랍니다. 술은 끊으면 끊는답니다. 담배는 끊고 싶어도 못 끊는답니다. 술 담배는 끊어도 마약은 못 끊는답니다. 술 담배 마약은 끊어도 인터넷 중독은 못 끊는다 그러지요? 내가 해결하면 해결되는 죄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해결하는데 나는 이 죄 이 단점을 해결을 못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어떡할까요? 그게 정말로 중요한데. 다른 사람의 약점, 다른 사람의 단점, 다른 사람의 고장을 고쳐 주려고 자기는 안 고쳐 놓고 남 고치는 거 말고. 심령의 가난, 애통하는 복, 온유한 복, 의에 주리고 목 마른 복. 내가 믿어보고 내가 정상적으로 달려 보니까 너무 좋으니 이렇게 좋은 이 길에 저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오지 않을까 그냥 놔둘까 그래서 긍휼한 마음으로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서 ‘그리 살지 말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옳겠다.’ 그 사람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고 그 사람을 주님이 내려다 보면서 ‘아직도 해결 못한 너의 문제 너의 과제 내가 해결해 주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나한테 죄짓는 사람한테 그냥 가서 죄 더 지으라고 풀어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해결하면 해결이 되는 그 사람의 죄, 내가 도와주면 그 사람이 죄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그 죄를 내가 기도하고 내가 애를 써서 회개하고 돌아서게 만들어 주면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죄의 사슬을 주님이 끊어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나의 단점을 해결하고 나의 난제를 해결하고 ‘내 인생 문제에 주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은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강한 방법은 주변에 있는 내가 노력하면 되는 사람을 회개 시키고 그 사람의 신앙을 바른 길로 가도록 돕는 길입니다. 이게 사죄입니다.

그다음 칭의를 살펴보십시다. 마태복음 10장 41절에 보면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의인까지 가지 못하는데 ‘아 저 사람은 바로 믿는 사람이다. 참 부럽다.’ 박수라도 치면 나는 의인이 아니나 의인의 상은 주십니다. 우리는 순교할 정도는 되지 않은데 ‘순교한 손 목사님 참 귀하다. 강단에서 외치다가 오는 칼을 보며 맞고 순교한 그 목사님 참 부럽다. 나도 언젠가 저런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인을, 순교자를 박수 치고 환영하고 마음속으로 지지를 하면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임이요” 이 원칙, 이 법칙으로 우리를 살펴 주고 계십니다. 이 원칙에 의하여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신명기 19장 19절 교재 밑엡니다. “형제에게” 형제에게 무얼 하려고 했느냐?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덧을 놓았으면 덧을 놓은대로, 혐의를 뒤집어 씌웠으면 뒤집어 씌운대로.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도모한 그대로, 연구한 그대로, 마음 먹은 그대로 그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 이게 구약입니다. 그래야 그 짓을 안 하니까. 그 사람 쥐어박아 ‘고소하다’ 보복심을 길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그 사람이 그런 죄를 다시는 짓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야고보서 2장 13절 제일 밑엡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다른 사람은 잘 믿든지 말든지 집어 던져 놓고 ‘나 잘 믿으면 되지 뭐’. “긍휼 없는 자에게는 주님도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제가 이렇게 부족합니다.’ ‘널 부족하게 만든게 나다. 부족한데도 있는 힘 가지고 할 만큼은 했지 않냐 그러면 충성이다 그러면 그게 의다.’ 이렇게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이 평가가 중요한 것이 ‘그러니 내가 은혜를 베풀겠다’.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를 다하여 다른 사람 신앙을 위하여 애탈 때, 힘쓸 때, 하나 가지고 못하는 다섯과 열을 하나님이 더하여 다섯과 열 되는 사람으로 올려버립니다. 다섯이 되고 열이 된 실력으로 또 다른 사람을 다섯 열 다하여 도와주면 다섯이 있으니 다섯으로 돕고 열이 되니 열로는 돕지만은 백이라야 돕는 사람은 도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너희는 다섯, 네가 가진 열을 다하여 다른 사람의 신앙을 도왔으니 백이라야 되는 이런 산을 뽑아다가 옮길만한 홍해 바다를 열어버리는 이런 일도 하게끔 도와주마’. 못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다 보니까 잘난 사람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원래 잘난 사람이 잠재력이 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못났는데 못난 것이 긍휼로 가지고 긍휼을 받아 잘난 사람 되고, 잘난 걸로 또 돕다 보니까 더 잘난 사람으로 또 좋아지고 자꾸 좋아지는데 한 두세번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남들이 보면 ‘와 저 사람은 집안이 어떻길래 저렇게 위대할까?’ 그럽니다.

제가 배운 백 목사님이 하도 위대해서 그분 생전에는 배우기도 바빠서 뒷조사를 못 했고, 그분 장례 치르자마자 그날부터 뒷조사를 한 4, 5년 샅샅이 했습니다. 그분 다닌 학교, 그분 자녀 일곱, 초등학교부터 전부 뒷조사 생활기록부 다 떼 보고 다 뒤져봤습니다. 사촌 육촌 팔촌 집안까지. 집안이 원래 위대해서 백 목사님이 위대하면 저한테야 그림의 떡이라 하늘의 별이라 쳐다나 보지 흉내 내겠습니까? 족보 집안 자세하게 다 훑어보니까 ‘아니 뭐 그만 그만하네. 아 이 정도면 따라가겠네. 아 근데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위대하게 되었을까?’. 하나 배우면 하나 실행해보고, 둘 은혜 주시면 둘 실행해보고, 다섯 은혜 주시면 다섯 실행하여 다른 사람도 다섯이 되도록 애를 썼고. 우리 집회 장소 저 넘어 산 넘어 분입니다. 지게 지고 하나씩 둘씩 실행하다 보니까 세계적인 신학자, 역사적인 신학자와 맞먹을 만큼 그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되어진 것이, ‘타고난 천재가 아니구나. 긍휼히 여기니까 은혜 주시고 나아지니까 더 긍휼히 여기니까 더 은혜로 되어진 거구나. 아 그러면 연구하고 따라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원하고 좋고 비교하고 판단해서 가는 겁니다. 자기편 좋다고 선전하는 거 아니고. 연세대 나온 사람은 죽는 날까지 ‘연세대가 고대보다 좋다’ 고대 나온 사람은 ‘죽는 날까지 고대가 최고다’. 지꺼는 뭐라도 좋다고 자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 불변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따져보고 비교해서 정말로 객관적으로 정말로 사실적으로 맞는거냐 옳은거냐 진리의 길이 맞는건가? 여기 있는 우리끼리는 좋고 남과 비교하면 정체가 탄로날까봐 정보 차단을 하지, 공개를 못 하지. 벌써 고장은 난 겁니다. 공회는 시작할 때부터 ‘우리 못났다. 모르는게 너무 많다. 배우고 싶다.’ 모르는 걸 활짝 펼쳐 놓고 비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배울 것은 배우고. 그리고 나가다 보니까 감출 것 없습니다. 다 털어놓고 ‘우리는 이렇게 못났습니다. 분쟁도 합니다. 엉망입니다’. 알아야 고치지, 병을 광고를 해야 고치지. 죽을 병 덮어 놓으면 더 빨리 죽겠지.

마음이 청결한 자는, 죄송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22페이지로 넘어옵니다. ‘다른 사람도 신앙의 사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 더러운 마음입니까 깨끗한 마음입니까? 무엇이 더러운 마음이며 무엇이 깨끗한 마음인가? ‘나는 잘 할려고 했다’ 그걸 착한 마음이라 그럽니다. 아닙니다. 난 막 이렇게 애 쓸려고 했고 의리를 지키려고 했고 뭐 이랬고 저랬고 전부 주관의 소리 다 덮어 놓고. 안 그런 사람 어디 있습니까. 도둑도 ‘불쌍한 집은 털지 않으려 했다’고 그렇게 자기 깨끗한 것 자랑하고 앉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니.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만 모셔야되는 곳입니다. 영은? 중생될 때부터 하나님이 영원 불변적으로 앉아 계십니다. 악한 자가 손도 못댑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올 수도 있고 악령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란 악령도 들어올 수 있는 마음, 하나님도 들어올 수 있는 마음 둘 중에 선택이 있습니다. 악령이 못 들어오게 막고, 하나님만 모시려고 노력하는 곳이 마음입니다. 그래야 마음다운 마음입니다. 하나님만 모실 곳, 그런데 악령도 노리고 있는 곳이 마음입니다. 청결이란, 악령을 몰아내버리면 마음이 청결한 겁니다. 나의 눈을 가려버리는, 눈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 죈데, 죄를 씻어버린 마음 씻은 상태가 청결입니다. 옷에 묻은 때를 씻어버리면 깨끗한 옷 청결한 옷, 눈에 먼지가 묻었는데 물로 씻어버리면 맑은 깨끗한 눈, 내 마음의 악령을 몰아내고 내 마음의 하나님만 모시면 그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 때문에 어두워져 보지 못하는데, 죄를 씻어버리면 내 눈을 가리는 죄를 씻으면 청결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내 마음이 정리가 잘된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죠? 앞에서 연결을 해 보면, ‘난 잘 믿으니까 됐고, 남편이 너무 잘 믿으면 돈 벌어오는 것이 줄면 불편할까봐 남편은 적당하게 죄를 지으며 돈 많이 벌어오게 하고 난 열심히 믿고’. 하나님이 속에 중심을 다 읽어 보고 계실걸요? ‘넌 죄 지으면 큰일날까봐 깨끗하게 살고, 남자까지 신앙으로 깨끗하게 살면 수입이 줄어들어 불편할까봐 남자는 적절하게 죄 지어 큰 돈 벌어 주고 너는 그 돈 가지고 깨끗하게 살고.’ 그걸 자기중심이라 그럽니다. 그 자기중심을 성경에 다 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성경에 ‘악’. 성경에 악의 증인은 자기중심입니다. 죄와 악은 좀 다릅니다. 죄는 말씀을 어긴 것. 악은 말씀을 어겼든지 말았든지 자기중심이 되면 그걸 악이라고 그럽니다. 이 악이 더 무섭습니다.

나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상대방은요? 내버려두고.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겠느냐? ‘내가 열심히 믿어 이렇게 좋은데 내 가족은, 내 아이는, 내 아내는, 내가 참 좋아하는 저 친구는 저대로 버려둬서 될까?’ 긍휼히 여기는 사람, 그 마음 그 자세가 바로 청결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이 보입니다. ‘저는 열심히 믿었습니다. 잘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믿든지 말든지 모르겠고. 신앙생활까지도 자기중심이 되면 ‘네 심보로는 하나님을 볼 연구는 하지 말아라.’ 우리 학생들도 좀 생각을 해봐 볼까요? 형제들이 많은데, 부모님 어디 멀리 1박 2일, 3박 4일 가시고 큰 것이 자기만 먹고 싹 치워 버리고 동생은 먹든지 말든지 던져두면 그거 엄마 마음을 볼 양심이 생길까요? 돌아오는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모르지만은 하나님은 눈이 밝은 하나님입니다. ‘넌 열심히 믿고 느그 교회 교인은?’ ‘그 사람들이야 먹든지 말든지 남이니까 알아서 천국에 오겠지. 내가 하나님인가? 나 하나 믿기도 벅찬데’. 하나님이 왜 뭐 때문에 이 땅 위에까지 오셨어야 되느냐. 죄인 널 위하여 하나님이 땅 위에까지 오셨으면 넌 옆집 좀 가서 수고해볼 수 있지 않느냐. 그 사람이 마다하면 몰라도 너로써는 애가 타야 되지 않겠느냐. 네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럴 때에 그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고 그 마음이 되면 하나님과 통해버립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왜? 완전자시니까. 완전이란 무형입니다. 형체가 있으면 형체에 갇혀버립니다. 하나님은 완전자, 완전자이므로 하나님은 무형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바람은 눈으로 못 보는 것처럼, 그런데 지나가고 나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며 바람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8절 교재 가운뎁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의 본체는 속성으로만 계시기 때문에 완전자기 때문에 못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느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내 가족도 내 아이도 흔히들 과거부터 잘 믿는 사람들의 좀 공통적인 것 중에 하나입니다. ‘난 열심히 믿었다. 아이들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잘 믿었다가는 세상에 낙오자 될라.’ 부모는 일편단심 열심히 믿고, 아이들은 너무 잘 믿으면 세상 살아가는데 불편할까봐 안쓰러워서 ‘적당하게 믿고 열심히 세상 살아라.’ 그게 청결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지를 못합니다. ‘내가 믿어 좋은 예수 내 아들도 믿어야 되겠다. 믿어보니 더 열심히 믿어야 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내 아이도 더 열심히 믿어야 되겠다’. 그런데 강제로는 못 합니다. 억지로는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나처럼 열심히 믿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되겠는데. 이거는 부모의 심정으로 되진 않는데. 주먹으로 되진 않는데. 어떻게 하나. 믿어보니 좋고 열심이 좋고 이 좋은 걸 이 아이에게도 주시면 좋겠나이다.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나이까?’ 울어야 될까 사정을 해야 될까 달래야 될까 화난 척 해야 될까? 할 수 있는대로 하면서 ‘주님이 열어주셔야 되겠나이다.’ 그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고 지금 하나님을 보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 말씀으로 보는 것이 영안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보고, 하나님의 속성이라니요? 우리 주일학생들만 하나님의 속성 다 같이 몇 가지요? 엄재연? 하나님의 속성 몇 가지요? 12가지? 첫째는? 자존성. 고건 둘째는? 완전성. 김유찬? 세번째는? 자존, 완전, 영원불변. 또 우리 혜인이 네 번째는요? 엄마 보지 말고 이쪽. 그다음 유리? 하나님은 자존, 완전, 영원불변, 단일. 하나님은 여기 가서 이 소리하고 저기 가서 저 소리 하지 않습니다. 영원무궁토록 단일입니다. 이게 보이면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구나. 과학도 불완전하구나. 완전이란 하나님밖에 없구나. 어떻게 해야 내가 좀 이 불변, 이 변덕, 이 변덕스러운 마음을 자꾸 완전으로 닮아갈까? 내가 나를 잘 믿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다른 사람도 완전성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도와주고 함께 노력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보는 사람이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2년 차를 두고 과학이 너무 큰소리치고 믿는 사람까지 과학적인 신앙으로 다 바뀌어 버리니까 과학을 통째로 한번 흔들어 ‘과학이 완전 아니다. 과학이 만능 아니다. 하나님만 전능이며 만능이다.’ ‘아 그걸 보이시기 위해서 코로나로 한번 천하를 뒤흔들었구나.’ 코로나 2년에 이거 본 사람 느낀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완전이구나’ 하나님의 속성을 본 사람입니다. ‘세상에게 너희들은 완전이 아니다. 그걸 보여 주셨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입니다. ‘그 모든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 운동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 그 눈이 복 있는 눈인데 하나님의 주권 운영 하나님의 주권 운영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보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잘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이 됩니다. 목적이 달성되면 기쁘지요. 완전의 목적이 달성되면 기쁨도 완전의 기쁨이 되어 세상이 뺏어갈 수 없는 기쁨이 되어집니다.

24페이지, 그리고 나면 화평의 심령이 됩니다. 화평이란 하나되는 걸 화평이라 그럽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까? 예수님은 제1 아들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닮아가는 두 번째 아들, 주님은 첫 열매 우리는 두 번째 열매, 주님은 적자 친아들 우리는 양자. 주님을 닮으니, 주님이 무슨 일을 했지요? 화평케 했지요. 누구하고 누구하고?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였는데 당신이 대신 죽어 죄를 없애버리니까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가 다시 하나가 되어졌습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 멀어졌는데 그 사람 죄를 씻도록 도와줘서 죄가 해결이 되니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하나가 되어졌습니다. 이거는 예수님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해놓은 일, 예수님이 하라고 맡겨놓은 일 하나씩 둘씩 해나가며 하나님의 아들 흉내를 내며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가고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다른 사람도 잘 믿도록 긍휼히 여겨서 다른 사람을 잘 믿게 만들었으니 긍휼의 사람이 되었고, 그 마음은 하나님을 보는 청결한 마음이 되어졌고 그 결과를 보니까 화평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북 전쟁하지 말고 남한에 군대를 없애자. 남한에 무기를 없애자. 그러면 웃고 평화로울 것 아니냐?’ 강도가 더 좋아하지. 그런 거짓말 화평 말고, 세상 화평 말고. 성경에 화평이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위치에서, 아내는 아내의 위치에서 그래야 화평이 됩니다. 아내의 위치에서 하나님과 남편을 가깝게 만들 때 화평입니다. 여자가 남자 머리가 되어 남자를 장악하고 점령군이 되어 ‘너 하나님 안 믿으면 죽여버린다?’ 협박을 하니까 억센 여자 때문에 남자가 겁을 먹어서 교회를 나오면, 겉보기는 화평인데 속으로는 ‘저놈에 여자가 악하고 독해서 밤에 뭔 짓을 할지 몰라 교회 안 나가주다가는 독살 당할라’ 싶어서 교회를 나가게 되면 겉보기는 아내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데 속으로는 ‘그놈에 예수를 갖다가 그놈에 하나님을 갖다가 그냥’ 속으로는 하나님과 더 멀어집니다. 자기 위치에서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러면서 하나님과 남편을 가깝게 만들 때 화평입니다. 남편은 머리 되어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심처럼 아내를 위하여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혀 남자의 생애를 다 아내를 위해서 내어주며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울며 남편이 자기 생애을 다 불살라 아내에게 부탁하면 남자 부탁대로 잘 믿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금반지보다 못한 은반지보다 못한 백금 반지 하나에 백년전에 한국의 여자들은 정조도 팔았다는데. 뭐 웬만하면 지금은 다이아 반지 다 해주는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자기 위치에서, 자기 위치에서 조화롭게 되는 것, 모든 주변과 조화롭게 되는 것이 화평입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사장은 사장 노릇 하면서 종업원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그게 화평이지, 사장이 회사 팔아 종업원들한테 주식 나눠주고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요래 놓으면 종업원들이 이번에는 삼성 재벌한테 가가지고 ‘너도 주식 팔아 종업원들한테 다 나눠 주라. 아니면 뒤집어 엎을거다.’ 더 큰 악인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장은 사장 노릇 잘하면서, 종업원들이 사장을 보니까 ‘돈에 대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사장이 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지키면서도 사장이 되는구나. 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사장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서도 사장이 되는구나. 회사가 잘 되는구나. 아 저럴 수도 있구나.’ 그걸 지켜보며 종업원들이 출세와 사장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려야 된다 그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으로 살면서 사장되고 잘 되는 길이 있구나. 아 그거 그것이 옳겠구나.’ 사장이 사장 위치에서 종업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조화롭게 다르게 하나 되는 걸 보여 줬으면 이게 성경이 말하는 화평입니다. 간도 쓸개도 다 내주고 남자 하자는대로 여자가 정조도 다 내주고 도둑놈 하자는대로 집 팔아 도둑놈 놀음꾼 도박빚 다 갚아주고 그러니 ‘교회를 치면 돈이 나오는구나. 교회를 더 치면 돈이 더 나오는구나.’ 악인을 더 악인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로 만드는 일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잘한 것이 너무 많지마는 아들 죽인 원수를 양자 삼은 것은 잘했는지 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 목사님은 공산당이 아들 둘 죽였고 처형당하면 지옥 갈까봐 전도하려고 용서를 했는데 여수 순천 사방에 소문이 나 가지고 원수 죽인 아들을 양자 삼았단다, 아 그 참 좋겠다. 막 옆집을 마구 죽이면 나 양자 삼겠구나. 삼성 재벌 손주를 납치 해다 죽이면 삼성 재벌이 나 양자 삼아 회장 되겠구나. 이런 죄인을 만들어 놨다면 하나님과 원수 만든 겁니까, 하나님과 화평케 한 겁니까? 계산을 좀 해 봐야 됩니다. 남들이야 오해를 하든 말든 손 목사님은 신풍 1번지에서 고요하게 아들 둘 죽인 원수를 계산을 해 보며, 저 놈 처형당하면 지옥인데. 저걸 좀 구명을 해서 전도하면 어떨까? 손 목사님은 순수하게 전도하려고 돌려세웠습니다. 그 분은 복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귀신이, 아 이거 바로 나갔다가는 천하가 복음화 되겠다, 뒤집어야 되겠다. 뒤집는 방법은 원수를 사랑해라, 손 목사 봐라. 앞으로 내가 너희 집 도둑질하러 가거든 집 팔아 나 주거라. 종업원이 데모하거든 사장이 주식 팔아 다 주거라. 그게 원수 사랑하는 거다. 이렇게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상대방 신앙에 도움이 되든지 말든지 죄인을 교도소에서 풀어주면 아이고 사랑의 사도다. 남한을 다 없애 버리려고 내려온 김 씨를 용서해주라 그러면 아이고 더 큰 사랑이다. 그러니 평양의 김 씨가 저 미국까지 핵폭탄으로 때려 놓으면 나를 우주의 왕으로 삼겠구나. 이런 작은 죄인을 큰 죄인 만드는데 써 먹어버렸습니다. 여기에 교회가 모두들 박수를 쳤고. 손 목사님은 구원 일념으로 용서했는데 귀신은 세상의 야욕을 달성하고 세상의 죄 짓는 방법으로, 도둑놈이 도둑질하고 들키지 않는 방법은 하수들이고,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고 나서 들키면 원수를 사랑하라 했지 않냐 이 놈아. 아들 죽인 원수도 양자 삼는데 도둑놈을 고발을 해? 교회가? 교회가 고발을 해? 목사 아들놈이 교회 연보 도둑질하다 들키면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예배당을 팔아서 목사 아들한테 넘겨주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헷갈려 버립니다.

한부선 선교사는 고신을 전도한 사람입니다. 한부선 선교사님은 동료 목사님 아들이 선교사 자전거를 훔쳐 팔아먹으니까 아버지한테 말하면 로비 들어올까 봐 미안할까봐 파출소 바로 고발해 버렸습니다. 목사 아들 이놈 잡아가라고. 자전거 하나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으면 뒤에 공부하면 알겠지만 죄입니다. 목사 아들놈이 선교사 자전거 팔아먹으면 설마 선교사가 인정을 보나 사정을 보나 진리 운동의 동지를 보나 고발하겠나? 선교사 자전거 팔아먹으면 뒷탈 나지 않겠지. 그 놈 죄를 짓고 더 큰 죄를 짓는 고약한 마음인줄 간파하고 이 놈은 파출소에 고발해 버리는 것이 그 놈의 죄를 꺾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하는 것이라, 이렇게 읽었습니다. 한부선 목사님의 사랑은 자전거 훔친, 그 목사님 이름 다 아시지요? 예전에는 이름 말해도 되는데 요즘 이름 말하면 명예훼손으로 들어올까 봐 이름을 말도 못 하겠습니다. 한국에 손꼽는 유명한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사형수를 양자 삼아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내 목숨이라도 바치는 것이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자전거를 커녕 내 연필 하나 훔친 것도 갖다가 고발을 해야 그 사람이, 아따,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죄를 함부로 짓지 말아야 되겠다. 죄와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만들었으면 그게 화평케 하는 겁니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 주변에 모든 사람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 하나님과. 자기 사명에 충성하면 결과적으로 화평이 되어집니다. 10원짜리 엉뚱한 세상의 싸구려 동정, 용서, 이런데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인류의 타락은 천사의 타락으로 시작합니다. 가운데. 타락한 천사, 사탄이 어떻게 시작을 했느냐? 자기 위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천사 대장인데, 대장이면 아무리 높아도 천사의 대장인데 그 이상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봤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있으라 한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 이게 사탄입니다. 여기서부터 영계의 타락이 있었고 그 천사가 사탄이 되어 에덴동산에 와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이끌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에덴을 다스리며 지키게 했는데, 에덴을 다스리며 지키게 했는데 에덴을 관리하게 했는데 관리자인데, 이 참에 그냥 하나님 자리를 노려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게 만들어서 죄를 지었습니다. 영계의 천사가 지위를 지키지 않고 타락했고 내려와서 에덴동산에 만물지상 아담에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게 해서 또 타락을 시켰고. 귀신은 올라가라 그래 가지고 떨어버리는 것이 귀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자리가 천국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을 봅니다. 그 자리에서 주변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자기 자리에 찾아 놓는 것이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여자냐? 여자답게 살아라. 남자냐? 아무리 못나도 남자답게 살아라. 그게 하나님을 보는 자리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엉망진창이 된 세상에 주님이 오셔서, 남자는 남자 자리에서 믿어라. 여자는 여자 자리에서 믿어라. 교회를 처음 다니는 사람은 첫 교인답게 배워라. 목사면 부족함이 많지만은 할 수 없이 강단에서 설교도 하더라. 자기 위치 자기 지위를 떠나지 말아라. 다른 사람, 자기가 자기 위치를 먼저 찾고, 내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자는, 온유한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기의 신앙이 되어 나처럼 친구도 집안도 다른 사람도 긍휼이 여겨 나처럼 믿음에 매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심보 그 사람의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가 자기 지위, 위치를 바로 잡고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 자기 위치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자녀를 가족을 다른 사람도 천국을 사모하게 만드는 것이 내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첫 번째 하신 분이 주님. 두 번째 따라가는 것이 예수의 제자, 우리. 하나님의 아들은 제2위 성자 주님인데 우리를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24쪽 제일 밑에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라고요, 다 같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몇 번째라고요? 제2위 성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2위 예수님입니까? 우리의 노력을 보니 예수님이 노력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모습을 보니 꼭 예수 닮았다, 그 말입니다. 원래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입니다. 하나님 자체입니다. 우리는 신인양성일위가 아니고 신인양성일행입니다. 예수님은 본체 자체가 하나님과 일위 한 분이요, 우리는 하나님과 손잡고 동행하기 때문에 신인양성일행이라 그럽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는 일이 뭐지요? 타락해서 우리 위치가 완전히 엉망이 되었는데 원상복귀를 시켰습니다. 한 번 따라하실까요? 원상복귀. 주신 위치, 에덴동산 다스리라 했으면 천하의 제일인데 하나님 자리 되려고 기어 올라가다가, 이것도 탈. 인간의 위치까지 지키지 못하고 떨어져 지옥으로 엉망이 된 걸 하나님 모신 하나님의 자녀로 원래 위치로 갖다 놓은 원상복귀가 주님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까 됐고, 가족이야 되던지 말든지. 부모야 믿던지 말든지. 뭐 아들이야 공부 잘 해서 직장 잘 다니면 됐고, 교회 너무 열심히 다니면 직장에서 짤릴까 봐 대충 믿어라. 그러면 긍휼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지요. 그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못 볼 겁니다.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아들은 하나님과 대충 적절하게, 불가근불가원이라. 하나님과 너무 가까우면 세상 살기 어려우니까, 또 하나님과 너무 멀어지면 하나님 앞에 매 맞을라, 십일조는 해라. 안 바쁠 때는 주일날 한 번씩 가라. 보험 넣든지 믿어라. 쉽게 말하면 그 말인데. 예수님 믿기를 보험 넣듯 대충 믿어도 요즘은 대충 집사가 된답니다. 하나님과 손잡고 화평이 될까요? 하나님도 그렇게 달래고 속이면 넘어갈까요? 중심을 보시는데. 주님은 우리를 타락 전 원상복귀를 시켰습니다. 우리를 원래의 목적의 자리에 앉히시려고 주님이 내려앉았습니다. 주님이 내려온 것만큼 우리가 올라갑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가까이 하게 노력하는 만큼 나는 낮아져야 됩니다, 내려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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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1.05.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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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1 2021.05.12 14:00
마지막 8번째입니다. 26쪽. 심령이 가난하게 살려면, 애통하는 사람이 되려면, 세상을 초월하여 온유하게 살려면,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 달려가려면, 다섯 번째 다른 사람도 나처럼 천국으로 달려가게 하려면, 여섯 번째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긍휼히 여겨 주님과 화평한 사람으로 만들고 살려고 노력을 하다 보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서 세상이 귀찮아서 쥐어박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 7가지 전부가 의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다 보면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는 만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학교 간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만큼 친구는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친구 다 사귀고 언제 공부합니까?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면 친구와 멀어지지. 친구들이 옆에서 쥐 박기도 하겠지. 대충대충 놀아주면 안 그럴 건데. 남편이 열심히 돈을 벌어보려고 하면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이 없어지겠지. 그러면 친구들이 눈치를 주겠지. 너 결혼하고 나서 여자한테 빠졌네? 넌 벗어나지도 못하네. 공처가네, 뭐네. 이런 말들이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던지 말든지. 결혼한 남자가 친구가 좋으면 여자하고는 멀어질 겁니다. 안 그런가요? 남자만 그렇습니까? 결혼한 아내가 동창회 뭔회 다 쫓아다니면 그 만큼 남자와는 멀어지겠지.

의를 위하여 천국에 갈급한 심령. 어떻게 해야 저 사람도 잘 믿게 하나?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좀 되는데 내가 노력을 하나? 일편단심 이 길로 걸어가다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받는 만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주님의 이 말씀, 복음의 이 말씀, 주님 때문에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까지 동원해 가지고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틀림없이 하늘에 너희의 상이 큼이라. 앞서간 선진 사도들도 다 이같이 핍박을 받았느니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세상이 그냥 두지를 아니했다. 게을러 당한 것 말고, 성깔이 못 돼서 남하고 싸운 것 말고, 시기하다가 쥐어 박힌 것 말고, 두고 갈 세상을 점령하느라고 서로 뒤엉켜 싸우다가 얻어먹은 욕 그런 것 말고, 정말로 심령이 가난하게 살고, 애통하며 살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 살고, 다른 사람 신앙의 긍휼을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하여 내게 준 사명을 나의 위치에서 달려가다가 그러다가 이런저런 핍박 이런저런 욕 이런저런 어려움을 당하거든, 교재 위에입니다, 의를 위하여. 의는 주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을 의라고 그럽니다. 주님의 뜻을 정말로 따라가고 순종하다가 핍박을 받은 것만 말합니다.

게을러 공부도 안 하고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도 안 하고 부모 말 안 듣고 청개구리처럼 나쁜 짓만 하다가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까, 아이 예수를 믿고 살다보니까 돈도 못 벌고, 돈 못 번다고 여자가 구박하고, 처갓집에서 눈치하고 말이지. 아 이렇게 핍박을 당하니 나는 천국의 복이 많을 것 같습니다. 네 놈은 말씀가지고 네 죄를 갖다가 가리고 앉았으니 너는 회개할 약도 없다. 조심해야 됩니다. 성깔이 못 되서 교회 오면 이 사람 쥐어박고 저 사람 쥐어박고 여기저기 다 싸움을 하다가 온 교인들이 싫어하니까, 아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더라, 용서가 없더라, 손양원 목사님은 원수도 사랑했는데. 그런 못된 성깔을 온 교인이 쥐어뜯어가지고, 아 교회에서는 재주로 못된 성깔로 그러면 안 받아주는 것도 있구나. 그래야 고칠 것 아닙니까? 또 그러기만 해 놓으면 똑같은 인간 될 거 아닌가요?

이렇게 못난 우리들이 모인 데를 교회라 그럽니다. 공회 교회 해 놓으면 제가 공회 교회도 아닌데 공회 욕하는 분들은 공회 간판 끝까지 달고 마구 그냥 인터넷에다 대고 공회 자랑을 해 놓으니까 저한테만 욕을 해 쌓습니다. 공회교회는 사랑이 없더라, 싸우더라, 지지고 볶더라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이 목사고 12제자가 교인이던데 찢고 삣고 싸우고 난리던데? 12제자 중에 하나는 예수 팔아먹던데? 인신매매 아닌가? 수제자 베드로 그 놈은 3번 배신하던데? 베드로 안드레 형제가 되어가지고 또 야고보 요한 형제가 되어가지고 집안 싸움하던데? 예수님 교회도 집안 본토 친척 갈리리파 엉망진창이던데? 교회란 일부로 죄인 악인 세리 세상에서 쓰지 못할 것들만 다 모아놓은 데가 원래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원래 고장도 많고 싸움도 많은 곳입니다. 병원에 건강한 사람들만 있으면 병원인가요? 말기 암 환자, 장애자, 응급환자, 중환자실 별의별게 다 있어야 그게 병원이지. 많이 오니까 종합병원이지. 전국에서 제일 해결 못할 인간들만 다 오니까 서울대병원이고 아산병원이겠지. 세상을 살다가 악에 받쳐 독에 받쳐 알아주지 않으니까 집에 가서 가족하나 인정을 못 하니까 어느 교회 가서 설치겠습니까? 다른 교회 가면 다 입회원서도 안 주고 쫓아낼 건데, 재판에서 쫓아낼 건데, 야단을 칠 건데, 공회나 오지. 저부터 시작해서 공회 교인들은 출처를 연구해 보면 못난 사람, 독한 사람,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 그 원래 좀 그렇게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당시에서도 제일 골치 아픈 사람들만 주님 제자들로 모여졌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보고도 베드로는 과반수 제자 데리고 디베랴 바다로 또 도망갔습니다. 우리보다 더 하지요.

그 죄 지어도 괜찮다 말이 아니라 그런 줄 알고 나 고치는 게 문제지, 교회에 사랑이 없더라, 용서가 없더라, 이렇더라 저렇더라, 그 사람 회개 못할 사람입니다. 남의 잘못을 보며 내 속에 저런 죄가 들어 앉아있을 테니 이거 고치자면 참 큰일 났다. 남의 죄 남의 단점을 보며 날 고쳐야지, 이게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나가려다 보면, 주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비판도 듣습니다. 본문에서 욕을 들었다 그 말입니다. 손해도 볼 수 있습니다. 핍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거짓말로 가지고 충돌도 일어납니다. 거짓으로 거스렸다 그 말입니다. 억울한 말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말을 할 때라는 말이 이 말입니다. 억울한 말. 참 억울한 말. 역사를 통해 주님이 억울한 말 제일 많이 들었고, 제일 많이 들었고, 그 뒤에가 사도바울이고, 그 뒤에가 선지사도 순교자들이고, 정말로 말씀으로 제대로 살아가려다 보면 억울한 말, 손해 보는 것, 온갖 거짓으로 충돌 당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려다 보면 떨어진 옷을 깁지도 못하게 되어 있고, 잠도 못 자게 되어 있고, 설날에 모이지도 못해서 집안의 욕도 얻어먹는 것이고, 친구가 없어 서러운 것이고, 왕따도 당하는 것이고, 그 놈의 세상 공부 하나를 하려고 해도, 세상의 아파트 하나를 사려고 해도, 건강을 좀 조심하려고 그래도 밥상에 음식 가려가며 먹어야 됩니다. 그 어떤 것 하나라도 도모를 하려면은 그런 겁니다. 하물며 이 땅 위의 죄악의 세상에서 천국을 쌓아가려고 노력하다보면 죄악 세상에 이런 저런 거 당연히 당하는 겁니다. 불신자들한테 칭찬받고 천국이 좋아지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는 말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에게 욕 얻어먹으면 잘 믿는다 말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건 문제가 많은 겁니다.

칼빈도 살아생전에 많은 사람을 사형선고 했다고 죽였다고 욕 되배기로 얻어먹고 있습니다. 칼빈 욕은 어느 교파에서 제일 많이 하는지, 윤영삼 선생님, 아시나요? 침례교가 그냥 칼빈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갑니다. 장로교 침례교는 친구가 안 되는 겁니다, 그거는 원래부터. 침례교는 천주교보다 장로교를 욕을 더 합니다. 침례교도들을 갔다가 그냥 다 사냥을 하고 토벌을 해 놨으니까. 역사를 알기는 알아야 됩니다, 제대로 믿어보려고 하면.

비판도 듣는 것이고, 손해도 보는 것이고, 거짓말에 충돌도 되는 것이고, 억울한 말도 듣는 것이고. 뭐 교회 갔더니마는 날 이렇게 좀 이상하게 보더라, 수군거리더라. 그래서 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 사람 해결해 줄 도리는 없습니다. 내 마음도 아침 다르고 저녁이 다른데. 나도 내 마음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데 어느 인간이 그 마음을 다 보듬고 앉고 죽는 날까지 가겠습니까? 그래도 어린 교인 감싸 앉고 전도하고 가려고 노력을 합니다마는, 여기 온도를 25도 맞춰 놨다 치고, 아이 더워서 교회에 산속에 이렇게 찜질방을 만들다니, 내가 한 연보를 이런데다 대고 쓰냐? 그래서 또 20도로 낮춰놓으면, 이렇게 추워서 쌀쌀 맞은데 그 돈 아껴가지고 뭐 목사 집 사려고? 평소에 많이 먹어 고혈압 걸려 죽을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뜨끈뜨끈하고 저처럼 다이어트 해서 말라빠진 사람은 뜨끈뜨끈한데 가도 추워서 떨고 앉았는데 몇백명 모인 자리에 몇백개 에어컨을 한 개씩 머리에 따라 갖다 놔 드릴까요? 한전에서 자연환경 사랑하지 않는다고 데모하러 올 건데? 자기중심이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그러니 뭐 마음이 상했다, 뭐 누가 째려보는데 마음이 아프다, 우리 교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 뭐더라. 해결의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땅 위에는. 그 마음을 바꿔야지. 그 자기중심을 바꿔 뜯어 고쳐버려야 되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교재 중간 밑입니다. 핍박을 당했느냐? 좋은 일이다, 기뻐하라. 핍박을 당했느냐? 즐거운 일이라, 즐거워해라. 승리의 결과로 그리 되는 거다. 승리의 결과니 하늘의 상이 크다. 과거의 선지자들도 다 그랬다, 당연한 일이다. 공부 열심히 하려면 친구를 언제 사귀냐? 돈 벌려면 어떻게 친구들한테 가 가지고 기 많이 쓰고 돈 척척 내 보냐? 믿는 사람이 당연히 세상에서는 그런 거지. 다만 안당해도 될 일을 내 성질이 잘못되고, 내 수준이 잘못되고, 내 준비가 잘못되어 당하는 것은 여기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게을러 당하는 것은 게으름을 회개를 해야 되고, 내 말투가 잘못된 것은 말투를 회개해야 되고.

이 집회장소가 경남거창입니다. 집회장소 오면서 산 강 구경을 하셨습니까? 대한민국에 경남 거창이라 하면 경남 거창 사람들 외에는 거창군 이름도 제대로 못 들어본 분들이 많습니다. 근데 집회하는 경남 거창, 공회가 출발하는 경남 거창에 특징하나는 전국에 돌 중에 제일 센 돌, 제일 강한 못된 화강암은 거창에서 나오는 돌이 제일 강합니다. 강한 화강암 위에서 먹고 살다 보니까 안 봐도 이 동네 사람들은 좀 성질과 강팍이 강할 겁니다. 그러다보니 목사가 되어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도 부드럽게 말을 한다고 했는데 설교 끝나고 나면 집사님들이 그 설교는 알아듣겠는데 말이 너무 강해서. 저야 알아듣겠지마는 모르는 사람들은 목사가 할 말이 없어 교회에서 악을 쓰고 욕을 해서 그 은혜 받겠느냐고 그러는데, 듣고 보니까 그렇습니다. 고칠 거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화강암 전국에 제일 강한 돌 위에서 농사짓고 살다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 강하고, 동네 사람이 강하다니까 말이 강하고, 행동이 억센데서 살다보니까 강하고 억센 걸 못 느껴서 아무나따나 자꾸 강하게 강하게 말하다보니까 필요 없이 강한 말에 상처받은 사람한테, 목사 설교하면 은혜나 받지 뭔 말투가지고 시비해? 목사 설교를 핍박하고, 거짓으로 거스려 악한 말을 할 때는 즐거워하라 그러고 제가 즐거워하면 회개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잘못된 거, 제 잘못으로 잘못된 거, 그걸 쥐어박을 때는, 아멘 옳습니다. 뚜드려 패서라도 고치겠습니다, 그래야 되고. 아무리 따지고 아무리 따지고 아무리 따져도 세상은 먹을 것이 너무 많고 천국은 멀어지니 우리 천국을 가까이 하고 세상을 좀 멀리합시다, 이 말을 한다고 화가 나서, 아니 돈 많이 벌으라고 축복을 해도 모자를 판에 세상이 너무 많다고 뺏아갑니까? 그 설교 회개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들어올 때는 어떡하겠습니까? 세상이 그러니 그런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주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이런 박해를 말하는 겁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 천국이 좋은 일이니 기뻐하라. 좋은 천국을 세상이 모르니 박해하고 욕을 하는 것이고 거짓으로 거슬리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4장 1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시련은 쇠를 녹이는 겁니다. 시련하려고. 불 심판을 주시니 오는 불 심판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철광석을 녹여서 순철을 만들고 금광석을 녹여서 순금을 뽑아내려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된다. “시련하려고 오는 어려운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 정말로 옳고 바르게 믿고 보면 이 땅 위에서는 어렵게 사는 거다.

베드로전서 5장 9절입니다. 그렇게도 믿음을 굳게 하여 세상을 대적하라 귀신을 대적하라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안 믿는 사람들도 세상을 살다보면 고난은 당하는 거다. 믿는 사람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거다. 교회만 안 다녔으면 욕 얻어먹지 않고 살았을 건데. 뭐 박근혜 대통령은 교회 다니다가 욕 얻어먹었습니까? 또 박근혜 대통령 반대 문재인 대통령은 교회 다닌다고 지금 욕 얻어먹습니까? 안 믿는 사람이 여당하면 여당이라고 욕 얻어먹고 안 믿는 사람이 야당하면 야당이라고 욕 얻어먹고, 안 믿는 사람이 공무원 하면 끝발 부린다고 욕 얻어먹고, 안 믿는 사람이 회사 다니면 회사 다닌다고 욕 얻어먹고, 가난하면 거지라고 욕하고, 부자라면 돈 많다고 욕을 하고. 안 믿어도 박해와 욕 얻어먹는 것은 못 피합니다. 이왕이면 천국을 향하여 잘 믿으려하다가 오는 그 박해는 천국의 복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오전에 30페이지 교재로 나가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8가지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너무 세상을 향했습니다. 너무 세상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나 세상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천국의 가난을 향하여 찾아갑시다. 애통합시다. 세상을 향해서는 온유하게 초월해 버립시다. 주의 뜻 의를 향하여 갈급하게 달려가십시다. 그러면서 자기 주변을 좀 살펴보십시다. 세상에 흠뻑 빠져 천국은 관심없는 가족을 긍휼히 여깁시다. 저걸 어떻게 하나, 나처럼 어떻게 하나?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하나를 만들어 가집니다. 그러다보면 손해를 보는 겁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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