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후21.5.3 마5:3 바다와 땅에 속한 무리에게, 산에서 '천국'을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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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21.5.3 마5:3 바다와 땅에 속한 무리에게, 산에서 '천국'을 가르침

교인1 2 242 2021.05.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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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21.5.3 마5:3 바다와 땅에 속한 무리에게, 산에서 '천국'을 가르침


본문 마5:1 이전에 4장 18절부터 바다를 무대로 살던 제자들과 사방의 땅에 속해 살던 이들에게 '산으로' 데려가 '천국을 가르침
생활과 인식과 가치관과 사고방식 자체를 전환하게 하심. 이 배경과 방향에서 5장 8복과 여러 말씀들을 살피는 것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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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타본으로 교정을 거친 후에 초타본 표시를 삭제합니다.



210503 집회1 (월후)

제목 : 바다와 땅에 속한 무리에게, 산에서 '천국'을 가르침

본문 : 마태복음 5장 1절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강한 자와 약한 자를 땅에 두시고 우리를 주님 없으면 약한 자로 부족하고 못난 자로 죄 아래 악령과 세상과 모든 땅의 세력 아래 두사 사망만 가지고 영생에 속한 것은 하나도 가질 수 없도록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시고 이 땅 위에 강한 것을 말세지말에 마구 번성시켜 둘러봐도 돌아봐도 내면을 살펴봐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의 은혜만을 구할 수 밖에 없어 60년 넘게 준비해주신 5월의 집회를 다시 한번 사모하고 모였사오니, 잘 믿어온 것이 아니라 부족함으로 주의 은혜를 한번 더 구하고자 왓사오니 이 자세 이 정성 긍휼히 보시고 우리는 전하고 듣기를 노력하되 주님이 직접 우리의 마음을 열어 강하게 만들어놓은 말세에 모든 번창을 모든 어지러움을 모든 세상의 강함을 부족한 저들도 주님 인하여 넉넉히 천국을 향한 재료로 쓰고 훈련으로 사용하며 땅에서 풀어 하늘이 풀리고 열리는 귀한 성회가 되도록 오가는 안전 지켜주시고 마음 마음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남을 보기 전에 자기와 지난 날을 돌아보아 앞날에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실상의 은혜를 구하는 기회되게 해주옵소서. 우리 안에 악령 악성 악습의 옛사람을 몰아내야 되겠는데 이 많은 무리를 우리가 칠 수 없고 우리가 이길 수 없사오나 주님이 긍휼히 여기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하셨고 그리 해주시려고 부족한 저들을 위하여 오늘을 향한 이 노선의 길과 말씀을 열어두셨으니, 남녀노소 첫 시간부터 주의 은혜를 구하고 주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시간되게 해주옵소서. 오늘을 기억하며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되 재독으로 함께 하는 도평의 집회 위에 더욱 크신 은혜로 함께 하시고, 여기 우리는 더욱 부족함으로 주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 서론

* 집회 집중

교재 3페이지 서문을 펼쳐주시고 우리 공회 집회는 위에서 네 번째 줄, 학생들은 빈칸이 없을 때에는 연필로 선을 그어가며 머리 속에 담아보십시다. 공회 집회는 집중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느 예배 어느 말씀에 집중이 필요 없고 기도 필요 없는 곳이 없겠지만은, 말씀에 집중을 하다보면 말씀에 집중하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이 붙들어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말씀은 우리가 보는데 마음은 우리가 집중을 하는데 집중하고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이 지켜보시다가, 그거 됐다 그거 충성한다. 그 사람의 신앙과 그 형편을 보며 개인별로 성령이 따로 마음을 열어 주시면, 어두운 밤에 샛별이 뜨고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면 그 다음부터 그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 속에 하나님을 향한 길이 열려버립니다.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성경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한번 따라하십시다.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집중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주의한다고 그럽니다. 성경 말씀에.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 성령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기록이라, 성령이 마음을 열어주기를 소망하며 집중하고 기도할 때에 마음을 열어주시면 주일 학생도 마음이 열리면 사무엘이 되고, 수십년을 가르치는 저 같은 사람도 성령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이 자리에 앉아서 엘리가 되는데 시간이 걸리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열어주시면 되고. 사람의 노력과 연구와 사람이 쟁취하는 길이 아닙니다.

* 집회 서문

금번 집회의 이 교재는, 서문입니다. 중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살피려고 작년부터 준비했습니다. 최근에 우리 집회는 2018년에 창세기 1장, 천지 창조를 공부했습니다. 천지가 시작될 때, 오늘 우리에게는 만사 모든 일이 새롭게 시작이 될 때 그때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말씀으로 운영이 됩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새해 새 날. 하나님을 모시고 출발하는 것이 성막입니다. 한 페이지 넘겨서 4페이지입니다. 2018년 5월달에 백 목사님 배운 말씀으로 30년 복습을 하다가 외부에서 막아서 막혀서 설교로 돌렸습니다. 첫 번째 말씀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 일에 창세기 1장, 창조라는 것은 모든 신앙 모든 현실의 출발 때마다 기억할 말씀입니다. 출발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데, 하나님을 빼버리고 나 혼자 가버리면 이것이 사망입니다. 열어 주시는 새 현실에 하나님 모시고 가라 이게 성막입니다. 출애굽기 25장.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집이 성막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 모시고 동행하라.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하는 우리의 현실에는 ‘억지로 강제로 습관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좋아서 깨달음으로 걸어가라’ 그게 신앙의 자유성인데, 신명기 1장 출애굽기 21장부터 자유의 신앙 신앙의 자유, 자유인이 되라! 남 무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열어준 새 현실, 매일 매일이 새 현실입니다. 성막을 지어라. 하나님을 모시고 매 현실을 걸어가라. 그 현실을 걸어갈 때에, 신앙의 감사 깨닫고 원하고 원함으로 걸어가라 자유성의 신앙이 되라. 끌려가지 말고 마지 못해서 가지 말아라 그게 구약의 종된 사람이다.

그 다음 네 번째 집회가 레위기 1장의 5대 제사를 살펴봤습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모든 제사는 자신을 불태울 때에 제사입니다. 주님이 열어주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결혼 직장 진학 어떤 현실이든지 새로운 현실이 펼쳐질 때에 하나님 모시고 동행해라. 하나님 모시는 동행이 자유성에 원하는 마음이 자세가 되어지거라 자세가 되어지거라. 그 다음, 그렇게 자유성으로 믿어가는 길에 잘못된 너가 있거든, 가차없이 불살라버려라. 그 일에 바칠 것이 있으면 감사함으로 소제로 갈아버리고 번제로 태워버리고 믿고 걸어가라.

그리고 작년 5월에는, 말세가 너무 심각하여 먼 훗날에 올 말세가 아니라 우리 사는 오늘이면 말세지말이 되었고 주님은 이미 오셨고 오신 주님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라. 계시록을 공부했었습니다. 주님 오시고 우주를 불태우는 마지막의 말세도 말세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주님이 매 현실마다 오시는데 내 개인적 현실의 말세인데, 말세 중에서도 지금의 말세는 극단적인 말세라. 계시록 공부로 살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 제사에 이어서, ‘제물의 생활’ 헌신하고 바치는 생활이 되려면, 예배당에 와서 신앙생활은 헌신은 하는데 부부 자녀 가족 직장 학교, 일반 세상생활에서는 너는 제물의 제사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에는 헌신하고, 일상생활의 너는 어떠하냐? 이게 레위기 11장의 음식에부터 21장 22장 23장까지 작년 8월에 살핀 말씀들입니다. 쪽발과 새김질하는 양과 소는 먹을 수 있다. 가질 수 있다. 그런 인격이 되어지라. 쪽발이라니? 만사를 좌우, 좁은길 넓은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아니면 나 좋은 길이냐? 구별하고 한 걸음 구별하고 한 걸음 매 현실에 걸어가는 그런 인격이 되어져라. 그게 쪽발 가진 동물입니다. 그리고 뭐든지 말씀은 뭐든지 주의 뜻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 새기고 새기고 새김으로 양식이 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리고 한 걸음씩 구별하고 걸어가는, 새김질과 쪽발의 두 가지를 가진 동물, 소나 양을 말합니다. 그런 것은 가져도 된다. 그런 인격이 되라. 그런 신앙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되라. 그런 가정이 되고 그런 교회가 되라. 레위기 11장의 음식이 그렇습니다. 돼지는 아니된다. 걸리면 다 먹어버립니다. 못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고 봅니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많아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원하는대로 하다가 1차 심판 노아 홍수에 전부 전멸했다. 그 당시가 돼지같은 인격들 밖에 없습니다. 걸리는대로 다 먹고 놀고 싶은대로 다 놀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다가 홍수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은 끝장난다 그러지 말아라. 그리고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 그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다” 그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먹을 것이 넘치지요? 휴가가 넘치지요? 너무너무 오래 살아 지겹지요? 80에 살면 나무만큼 산다고 부러워했는데 무병장수를 그렇게 인류가 수천년동안 소망을 했는데 어떤 병이든지 대학병원만 가면 다 나아버립니다. 죽지를 못해서 90, 100살 넘기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잘 먹고 무병장수의 이 땅 위의 좋은 것이 넘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노아의 때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마음껏 가지고 마음껏 즐기더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 현재 우리 사는 이 시점 직전까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점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불신자나 믿는 사람이나 원도 한도없이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가지고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역사에 이런 때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한 말세가 바로 들이닥쳤구나 개인적로는 가정적으로는 이미 들이닥쳤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다 불태운 가정, 집은 멀쩡한데 그 집 아이는 신앙을 불태웠고 소망을 불태웠고, 사람은 살아 있는데 살아 있을 존재의 이유가 없는 이런 때가 되어져버렸습니다. 이런 때에, 이런 때에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 이번 집회 주제

이번 집회의 주제입니다. 4페이지 제일 밑에. 복음이라, 신약이 시작되면 마태복음 5장부터 주님이 설교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준비였고 5장부터 복음의 말씀을 시작합니다. 성경은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전부가 다 복음입니다. 특별히 5장에 복음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은 복된 소리이니 불신자도 좋고 누구든지 다 좋은 소리입니다. 듣기는 좋은데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쓰게 되더라” 이대로 실행을 하려면, 이 말씀으로 내 뼈가 되고 살이 되도록 말씀으로 나를 바꾸려면 이게 어렵습니다. 세상이 어렵고 이리 살기가 어렵고 내 속의 이런 각오가 생길 수 없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아니? 부자되려고 교회 다녔는데?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아니? 억울한 것을 풀려고 교회를 왔는데? 가난이 싫고 애통함이 싫어 주님을 찾아왔는데 가난이 복이다 애통이 복이다? 그런 것은 남이나 하고, 나는 있는대로 끌어모아야 되겠고 더 모아야 되겠고 더 모아야 되겠고, 자자손손 있는대로 모아야 되겠고. 나는 억울한게 없어야 되고 애통함이 없어야 되고 나는 웃어야 되겠고, 세상에 그 길이 없어서 교회를 찾아 가난이 없고 애통함이 없는 복을 받으려고 왔는데,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도 복이 있다” 남들에게는 그런 말씀으로 위로를 하나 나는 그런 말씀이 맞지 않을 것입니다. 실행이 어려운 말씀입니다.

실행이 어려운 말씀을 왜 주셨는가? 한번 따라하십시다. ‘하나님의 주권’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 없는 가난은 억울한 것이다 서러운 것이다. 하나님 없는 애통은 참 서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지켜보니 심령이 가난한 복은 복이 된다. 심령의 가난을 가진 그 애통으로 나아가면 복이 된다. 주권의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지켜보시니 인도하시니 복되도록 만들 것이니 맡겨놓고 따라오라. 외부적으로는 좋은 말,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실상으로 만들려면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고는 그거 끔찍한 말씀이라. 남 주지 내가 가지지 못할 말씀입니다. “오른 뺨 때리면 왼뺨 돌려대라” 이 말씀입니다. 뒤에 나옵니다.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내주라” 그런 일이 있다니요? 남의 것을 빼앗아 와야 되는데? 남의 것을 뺏는데 더 빨리가야 되는데 이게 복인데 이게 성공인데. “오른뺨 때리는 사람에게 왼뺨 돌려대라” 남들은 그래도 저는 그러지 못하겠습니다. 실행이 어려운 겁니다. 말은 좋은데 실행이 어려운데, 부탁하신 주님이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 인도하시고 부탁을 하시는 말씀이니 주님 믿음으로 순종을 하면 복이구나 과연 복이구나. 그래서, 집회의 제목은, 표지입니다. ‘오늘의 복음’ 어제의 복음 말고 내일의 복음 말고, 오늘 현실의 복음은 무엇이 복음인가? 남에게 주는 복음 말고 남에게 전하는 복음 말고 내가 가질 나의 복음은 뭔가?

3년 간, 창세기 1장, 출애굽기 25장 성막, 출 21장의 자유성의 원리, 레위기 1장부터의 5대 제사, 레위기 11장부터의 성결법 생활법은 일반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본문들입니다. 밖에서는 대개 찾아보기가 어려운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번에 마태복음 5장 공부는 불신자도 어느 교회도 알고 한번 들어보면 잊지 않을 쉬운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복음으로 가져야 되겠는데, 복음으로 가지려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는 가질 수 있어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고는 구경만 하지 가지지 못할 말씀이 되어, 이번에 쉬워보이나 쉽지 않은 말씀. 남에게 줄 수 있으나 내가 가지기 어려운 복음으로 공부합니다.

■ 진행

5페이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먼저 8가지 팔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게 천국이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세상을 주면 좋아하고 천국을 주면 뭔지 모르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살핍니다. 빈칸이 없는 학생들 연필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요? 줄을 그어가며 따라오는 겁니다. 그 다음 팔복이 지나면 5장 13절부터는 빛이 되라, 소금이 되라. 그거 쉬워보입니다. 그렇게 되어져야 복음의 실상, 실상의 복음이 되어집니다. 그 다음 5장 33절부터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주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 상식 (6p)

6페이지 넘깁니다. 간단하게 상식을 좀 배우고 넘어가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전환기.

학생들만 다 같이 좀 크게, 지금 마태복음 5장, 마태복음은 구약인가요? 신약인가요? 신약의 뒤쪽인가요? 앞 쪽인가요?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 있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바뀌는 순간, 수천년 수고한 구약의 수고와 준비가 신약이 되어 복음의 실상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마태복음을 잘 잡으면 살아보지 않은 구약의 성도의 구약의 교회의 모든 수고가 마태복음 1장부터 살피는 나의 복음 나의 복이 되어집니다. 신약이 시작된다는 말은 구약의 많은 수고와 준비가 추수가 되어, 신약에 믿는 우리들은 마태복음을 펼칠 때부터 이것도 추수 저것도 추수 추수만 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시작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오셔서 출발하는 모습입니다. 구약이 준비한 구원의 실상,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되어 예수의 구원을 준비한 분입니다.

마태복음 구성

마태복음 크게 한 7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장 앞에 4장까지는 예수님의 출발,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출발. 그 다음 오늘부터 공부하는 5장에서 7장은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구원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도 말씀 뒤에도 말씀인데 특별히 말씀이라 할 때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의 복을 받으라고. 이 복을 받아 하나씩 둘씩 다 가지라고. 그 다음 8장 9장으로 보면 가르친 말씀으로 예수님이 실제 여러 가지 능력의 역사를 보여주십니다.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 뒤에 말씀의 역사가 있고, 그리고 10장으로 13장까지는 말씀을 배운 제자, 주님의 능력을 구경한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들도 예수님처럼 걸어가라, 봤으니까. 그렇게 걸어가려면 14장부터 20장까지는 주변과의 분쟁 많은 오해 갈등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란, 가정이란 한 아이가 태어나서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그 어떤 누구도 분쟁 투쟁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일부러 분쟁 투쟁을 시험으로 주셔서 길러 가십니다. 싸움이 좋아서가 아니라, 피할 수가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두셨습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복잡한 투쟁을 들여다보면 하늘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천국이 꼭 있어야 되겠구나, 천국을 더 가질 수 있는 세상의 교육을 위하여 훈련을 위하여, 우리의 성장을 위하여 주시는 그런 교회의 분쟁을 기록한 것이 14장에서 20장까지입니다. 제일 많은 분량입니다. 그리고 21장에서 25장까지는 천국을 준비하라. 그리고 26장에서 28장까지는 주님이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 손에 천국을 구원을 쥐어주셧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을 천국을 남의 복이 아니라 나의 복으로 지금 읽게 되어집니다.

* (7p)

7페이지입니다. 마태복음 5-7장까지, 첫 번째 5장 1절에서부터 8가지 복,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늘을 약속한 말씀들입니다. 한번 기억해보십시다. 팔복. 몇가지면 팔복인가요? 8가지면 팔복입니다.

첫 번째는 가난한 복. 7페이지입니다. 뭔 가난이 복인가? 가난도 복이라면 복인줄 알고 고운 마음으로 읽으면. 다이어트 하면 좋다고 요즘 모두들 덜 먹는다고 난리 아닌가요? 한 때는 공부 많이 하라고 늘 몰아치더니만은 지금은 좀 놀기도 하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한 때는 뭐 잔업하라고 휴일까지 마구 밀어붙이다가 지금은 노동권에 휴가를 갖다가 마음껏 내줘서 5월 집회에 이렇게 휴가내고 집회를 모일 때가 있나요? 가난한 복. 세상은 더 가지고 싶어도, 주님은 천국을 향한 가난은 좋은 것이다 가난의 복, 애통하는 복. 온유한 복, 갈급한 복, 남을 긍휼히 여기는 복, 마음이 청결한 복, 마음이 청결해서 언제 돈을 벌려고? 마음이 청결하면 컨닝도 못 하는데 시험 점수 언제 올리려고? 세상 사람은 이런 복을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여 깨끗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니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 봐서 손해 볼 것이 있겠습니까? 완전자인데 절대자이신데 복의 근원이신데. 세상은 가난 애통 이런 것을 복이라 그러지 않고 끔찍하다 그럴 것이고 우리는 주님 주신 복음으로 손꼽아 헤아리는 것입니다.

학생들 기억을 하도록 한번 따라하십시다. 가난의 복, 애통의 복, 온유의 복, 갈급의 복, 긍휼의 복, 청결의 복, 화평의 복, 핍박 받는 복. 남을 쥐어박아야 행복하고 금메달을 따지 쥐어박히는 것이 무슨 복인가? 힘이 약해서 당하는 것 말고, 가난해서 당하는 것 말고 주님 때문에 만약에 손해를 본다면, 너 나 때문에 수고를 하는구나 지켜보는 주님이 그냥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으면 쥐어박고 시작을 해야 되고, 전능의 사랑의 영생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 때문에 당하는 박해면 핍박도 복입니다. 이것을 이해를 하는 마음을 ‘심령’이라 그럽니다. 무슨 마음? 심령이라 그럽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불신자도 가진 마음을 말하고 믿는 사람만 가진 마음, 신앙의 마음을 심령이라 그럽니다. 아, 가난도 복이 될 수 있구나. 이 마음을 가지면 심령으로 바뀌었습니다. 내 마음이

오늘부터 3시간 정도, 지금 오후, 저녁, 내일 새벽까지 8가지 복된 심령을 살펴봐보십시다.
8페이지 넘어갑니다.

* (8p)


■ 복음의 배경

주님이 오셔서 첫 번째로 주신 말씀, 천국 하늘을 약속하셨습니다. 왜? 천국 하늘을 가르치게 되었는가? 앞에 4장에 나옵니다. 예배 직전에 4장 17절, 성경 본문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17절까지는 주님이 오신 기록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온다고. 2천년 전에 오신 기록을 오늘 왜 우리가 읽어야 되지요? 2천년 전에 오셨듯이 오늘도 내 마음 속에 이렇게 오시기 때문에 읽어야 됩니다. 4장 18절 오신 주님이 천국이 가까웠다 전파하시면서 갈릴리 해변을 다녔습니다. 갈릴리 바닷가를 다녔습니다. 해변은 바닷물과 육지의 사이입니다. 갈릴리 해변은 주님이 계시고 사시던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우리의 현실, 2021년 5월. 학생의 학교 어른들의 직장 여반들의 가정 살림, 멀리 갈 것 없이 갈릴리 해변 주님의 해변.

오늘 우리의 해변에 다니시다가 형제 두 명이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누구지요? 베드로, 하나는 안드레.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바다는 성경에 죄악 세상을 말합니다. 빠지면 다 죽습니다. 죄로만 되어 있습니다. 빠지면 다 죽습니다. 인간치고 죄악의 바다에 빠져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없이 살면 세상이 죄악의 바다입니다. 그 속에 들어가 그물로 물고기 걷어내듯이, 세상 속에 졸업장 하나 걷어내서 먹고 살고 죄악의 바다 갈릴리 바다 속에 직장 합격 통지서 하나 그거 걷어내서 먹고 살고 갈릴리 바다 죄악 세상에 내 마음에 드는 이쁜 아가씨 이쁜 좋은 남자 하나 걸쳐서 아파트 하나 마련해서 먹고 살고 웃고 살고 있는 모습을 베드로와 안드레가 해변에서 보니까 바다에 그물을 던져 먹고 사는 어부더라. 어부란 바다에 그물을 던져 바다 속에 있는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없으면, 죄악 속에 노니는 고기를 그물이라는 수단으로 잡아먹고 팔아사는 사람입니다. 어느 학원이 공부를 잘 가르친다 어느 전공이 좋다 무슨 자격증이 요즘은 뜬다 어느 직장이 지금은 평생을 보장한다 거기를 들어가려면 말은 어떻게 해야 된다 머리를 어떻게 깍아야 면접에 인정을 받는다 이게 다 그물입니다. 죄악 바다 죄악 세상에 건져서 하나를 가지고 둘을 가지며 하룻밤 나그네 먹고사는 방법입니다.

그 두 형제에게 주님이, 19절에 “나를 따라 오너라” 누가 이 말씀을 하셨지요?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 따라오너라. 예수의 이름이 구원이라는 이름입니다. 죄악 세상 죄악의 바다 속에 한 달 월급으로 먹고 살고,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하여 그물 준비하고. 이런 수단 저런 방법 이런 기술 이런 노력으로 주님없이 죄악 세상을 살고 있는 인생들아,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 따라오너라.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뭐라고요? 구원, 예수의 구원은 죄를 없애주신 사죄, 의롭게 만들어주신 칭의, 하나님과 하나된 화친, 천국을 향한 영생의 소망. 또 오랜만에 한번 따라 기억하십시다. 사죄, 칭의, 화친, 소망. 이게 예수의 구원 속에 들어 있는 구원의 내용입니다. 겉에는 구원, 속에는 사죄, 칭의, 화친, 소망. 그 분이 나를 따라오너라. 사죄를 따라 오너라 칭의를 따라 오너라 하나님과 하나된 화평을 따라가거라. 공부는 언제하고요? 공부하면서 공부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거라. 이 공부는 주일날 특강이라 주일날 안 가면 못하는데요? 주님 동행에 불편한 공부거든 치워버려라. 월요일 공부는 가서 하거라 공부 속에 주님과 하나가 되거라. 죄를 구경하고 죄를 이기는 공부를 하거라. 세상 공부 속에 주의 뜻을 살펴보거라. 안 믿는 세상 교과서 속에 주의 뜻이 있습니까? 각 교회에서 평소에 많이 공부했을 줄 알고 간단하게 줄이면, 과학시간 우주를 공부하니까 빛의 속도로 1억년을 가는 별도 있다더라. 아 우리 하나님이 말씀 한마디로 그렇게 멀고 그렇게 넓은 우주를 만들었어 주님은 위대하시구나. 불신자 과학 시간에 별과 별의 사이가 빛의 속도로 1억년을 가야 된답니다라는 말을 하나 들을 때에 믿는 사람은 말씀의 능력은 어마어마하구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삼아야 되겠구나 그러면 그게 사죄입니다. 불신의 세상에서 벗어나지요. 그런 넓은 우주를 왜 만들었을까? 순간 순간 말씀 하나를 순종함으로 의를 하나씩 둘씩 내 마음에 쌓아가면 성화의 능력과 실력이 엄청나겠구나. 세계 지배가 아니라 신 대륙 지배가 아니라 야욕이 아니라, 말씀 속에 주신 영원한 이 소망을 잡아야 되겠구나. 내 마음이 세상을 향하다가 이렇게 바뀌어버리면 이게 사죄의 구원의 마음이고 칭의의 구원의 마음이고 화친의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 마음입니다. 천국가는 영의 중생은 벌써 확정되어있고 예정 가운데 이것은 이미 끝이났고 내 마음 속에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애매한 마음 흐린 마음 세상을 향한 야욕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도 있는데. 제자들도 주님 만나 구원 받고나서 별별 짓 다 했는데, 믿은 후에 우리 속에도 별의별 마음 다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말씀 하나를 가지고 내 마음 속에 잘못된 것을 하나씩 둘씩 고쳐가는 이런 우리가 되어지면, 영의 사죄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죄에 휘둘리는 욕심, 속의 죄를 씻어버리고 그 욕심을 성령의 소욕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마음 속의 욕심까지 사죄로 칭의로 성화를 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19절, “말씀하시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를 따라오라고요? 예수님을 따라 오너라. 예수님을 따라오다니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무엇을 쫓아가고 무엇을 따라가는 것이지요? 사죄를. 말씀이 금지한 것은 하지 말아라. 너를 향하여 주님이 원하는 뜻을 찾아가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거라. 살기는 세상을 사나 천국을 소망하는, 소망을 가지거라. 이게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 때문에 아프리카 안 믿는 사람 믿는 사람 선교하는 것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고 아프리카로 남미로 중국으로 세계로 찾아가는데, 당연히 가야 됩니다. 그런데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는 500년 1,000년 3,000년 전에 벌써 복음은 들어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스바 여왕”이 에디오피아 여왕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3천년 전에 벌써 예루살렘까지 와서 복음을 듣고 간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에도 안 믿는 사람이 있거든, 오늘 2021년 한국에 살며 죄악 세상 속에, 이거 건져 먹을까? 집 한 채 마련할까? 아이들 행복하도록 어떻게 돈을 저금을 할까? 어떻게 해야 나 여러 곳을 다녀볼까? 이런 것이 갈릴리 바다에 그물 던져서 고기를 잡아 먹는 예수님 없는 생활인데, “나를 따라오너라 구원의 사람이 되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예수님이 가는데 베드로와 안드레가 따라다니면서 안 믿는 사람 전도하는 것도 사람 낚는 어부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프리카 가서 선교하는 것도 사람 낚는 어부입니다. 더 급한 사람은 어디에 있지요? 죄악 세상에 죄악의 낙을 누리려고 정신없는 사람, 아프리카에만 있습니까? 예배당 옆에는 없습니까? 예배당 옆 골목에만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 집안 안에는 없습니까? 내 속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까? 내가 내 마음 내가 내 인격을 들여다보면 100점짜리 깨끗하십니까? 부끄러운 욕심 없습니까? 부끄러운 감정 없습니까? 죄송한 내 습관 없습니까? 내 속에 있는 이 인격은 버려두고 아프리카 선교만 다닐겁니까? 거기 갈 사람은 거기까지 가고 내 속에 버려두고 남겨두고 몰라보고 살아왔던 내 속의 옛사람 내 속의 못난 사람 내 속에 강팍한 사람 내 속에 억장이 무너질 주님과의 원수 같은 사람 많습니다.

마태복음 16장까지 가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여론으로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예레미야 선지자 정도 된다고 그럽니다. 아 뭐 엘리야 정도 된다고 그럽니다. 세례 요한이 아닌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뭐라 하느냐? 남들 말고 너는 뭐라고 하느냐?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신 이위 성자 하나님입니다. 베드로의 그 신앙 그 깨달음은, 너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갈릴리 서당에 배운 것도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가르쳐 깨달은 것이다. 그 베드로에게 그 자리에서 “사단아 물러 가라” 했습니다. 베드로 속에 주님이 구원의 하나님이구나 그런 베드로의 마음도 있고, 그 주님이 없으면 나 어떻게 살지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마십시오 말리고 싶은 인정도 있고, 이 마음도 있고 저 인격도 있고 별의별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자기 속에는 구원해야 될, 달래야 되고 고쳐야 될 인격이 없습니까? 그런 습관 없습니까?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시다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제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자로 삼으시고 기록을 해두셨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오늘도 안 믿는 사람 전도가야 됩니다. 해야 됩니다. 동시에 내 속에 아직도 제대로 믿지 않고 버티고 있는 별별 인격도 하나씩 둘씩 말씀으로 바꿔놔야 됩니다. 무슨 말씀으로? 5장 2절,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맞습니까? 우리 그렇게 살아오셨습니까? 심령의 가난이 복이다 가난 중에 서럽고 나쁜 가난도 있다 그러나, 복된 가난도 있다. 복음의 가난을 전하면, 저 사람 주시지요. 너는 뭐할래? 두고 갈 세상 돈 듬뿍 주면 좋겠습니다. 순 복음 교회 한 예배당에 80만명이 들이닥친 것이 저기 가면 병이 낫는다 아닙니까? 저기 가면 부도난 사업이 부자가 된다 아닌가요? 부산입니까? 대구입니까? 대한민국 제일 똑똑하고 잘 사는 서울 바닥에 80만명이 한 예배당에 모인 것이, 그 교회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병 들었느냐? 병 낫게 한다. 가난하냐? 부자된다. 슬프냐? 웃고 살게 해주마. 그 말씀에 80만명이 한 예배당에 들이 닥쳤습니다. 그 교회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또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 시작하는 것이지. 한 쪽은 그리 가고, 또 우리들은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가난이 복이라니 이 가난은 무슨 복인가? 이 가난은 뭔가? 이 성경 말씀은 지워버릴 겁니까? 이것도 말씀인데? 가난이 복이다.

주님이 갈릴리 바다 지나가다가 물고기 못 잡은 베드로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잡아봐야 부자 되어봐야 먹어봐야, 갈릴리 바다에 물고기 잡아 아파트 사 봐야 하룻밤 나그네다. 그 돈 가지고는 천국 건설은 없다. 조금 더 가다보니까, 21절입니다. 4장 21절 베드로 안드레를 불렀습니다. 둘이 그물을 잡는데 형제가, 21절에는 베드로 야고보를 만난 자리에서 조금 더 가니까 “거기서 더 가시다보니까” 이제 더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물고기 혼자 잡는 것과 두 사람이 공동으로 잡는 것과 그물을 양쪽에서 모으면 더 많은 고기를 잡겠지요? 이런 것을 ‘쌍끌이’라고 그럽니다. 고깃배 하나가 긁어가는 것하고 고깃배 두 개가 그물로 다 훑어버리는 것하고 죄악 세상에 혼자 사는 것과 부부가 역할 부담을 해서 돈을 모은 것과 동업을 하는 것과 회사와 회사가 연대해서 하는 것과 국제 연합과 동맹을 만들어서 버티는 것과, 나으니까 자꾸 그리되는데.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 둘입니다. 21절에 거기서 더 가니까 이제는 두 형제의,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부친 세배대까지 붙어서 셋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둘보다 아버지까지 합한 셋이니까 더 효과가 있겠지요? 선배까지 왔으니까 스승까지 함께 했으니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바다에 그물 던지는데 아버지까지 붙어 셋은 “배에서 그물깁는 것을 보시고” 배까지 있고 그물 수선까지 하며 이 번에 마련하고 이번에 대출 받은 돈으로 이쪽으로 가야 한 목에 큰 것을 거둬오지 않겠느냐? 이쪽은 기업이 훨씬 큽니다. 수단이 훨씬 도수가 높습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 살다보니까 믿는 우리까지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을까? 거기다다가 선배 후배 고향 본토 친척 동문 끌어 모아서 중소기업보다는 대 기업을 점점 이렇게 확장을 해야 생존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나가는데, 다 치워버려라 다 버려라 날 따라오너라. “그리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렇게 좇아보니까, 23절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모으고 갈릴리부터 시작해가지고 두루 다니며 여기저기 회당에서 가르치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데, 23절 세상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데, 천국 복음을 가르치려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모이면 백성입니다. 그 별의별 사람이 이런 병, 병은 없는데 이런 약점 단점 아쉬운 점, 고장난 것은 병, 약한 것은 약점, 약한 것.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사방천지에서 전부 다, 25절 따라합시다. “허다한 무리가 쫓으니라” 예수는 모든 병을 다 낫게 해버리더라. 약점 단점을 다 보강해버리더라. 별의별 사람들을 다 도와주시더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리하게 해주더라 뛰어나게 해주더라 그러니 교회를 가야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

일본에게 빼앗긴 식민지가 독립을 하는데는 예배당이 삼일 운동 앞장서서 좋은 예수 아니더냐? 6.25때 큰일날 뻔 했는데 기독교 선교국의 나라 미군이 와가지고 막아줘서 이렇게 발전을 했으니 기독교는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가는데 얼마나 유리하냐? 이러니 기독교 예수 교회를 욕하지 말아라 거지같은 나라가 식민지 나라가 망할 나라가 남북을 비교해봐라 예수가 얼마나 복이냐? 그러니 복음이 아니냐? 두고 갈 땅에 돈 잘 벌게 한다? 두고 갈 땅에 죽을 수명을 평균 나이 50도 안되는 나라가 80,90 이제는 100살 사는 사람 몇만명이 되게 한다? 그거 예수 좋네 그 구원 괜찮네 교회 예배당이 좋네. 이런 것을 땅의 복음이라 그럽니다. 또 한번 기억하십시다. 땅의 복음, 천국 복음.

23절에 보니까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까? 땅의 복음을 전했습니까? 천국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 땅 위에 병든 자 약한 자 별별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고쳐줬더니만은 병 낫고 강해지면 천국 복음에 달리게 하려고 치료를 시켜놨더니만은, 세상 살기 바빠서 주님 따를 필요 없는 사람이 되면 땅의 복음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잘 사는데에는 예수가 제일이라더라 기독교를 받아드려야 발전이 된다더라. 두고갈 세상을 위한 기독교, 땅에서 잘 사는데 필요한 교회, 부부와 가족과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가는데 필요한 예배 은혜 말씀 찬양, 그거 전부 다 땅의 복음입니다. 이 땅의 복음을 찾는. 25절에 수많은 무리들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를 좇으니라”

이게 교재 8페이지의 제일 위에 1번, 왜 천국을 가르치고 계시느냐? 천국을 가르치게 된 배경입니다. 주님은 4장 17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세상을 향해서 달리던 인간들아 돌아서라 천국으로 바꾸거라 이렇게 오셨는데, 병든 것 약한 것을 고쳐준 것은 힘을 얻어 건강함으로 천국을 향하여 달려가라고 고쳐놨는데, 땅의 복음을 바라보고 “허다한 무리가 따르니라” 그 심보 그 배경 그 속셈 그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인격과 야망을 다 아시고, 예수께서 5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4장에 주님 따라다니는 무리를 보시고. 이 무리들을 끌어다가 어디로 올라가셨지요? 주님이 산으로 가니까 주님을 따라가야 병이 나으니까 산으로 줄줄 따라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땅의 복음 땅의 먹고 사는데 복 받아보려고 따라오는 허다한 무리들을, 죄악 바다에 가까운 바닷가 해변에서 가르치지 않으시고. 고치고 도와주시고 기적을 베푸니까 막 예수님을 따라 허다한 무리가 사방에서 줄줄 다 따라다니니까, 허다한 무리를 보시고 주님이 조용히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으로 올라가니까 멋 모르고 산으로 따라 올라갑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시니” 온 무리들이 따라서 산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 앉으시니. 꼭대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높은데 앉으시니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배우고 싶은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이게 팔복의 복을 가르친 배경입니다.


* (8p)

교재 8페이지 보십시다. 본문 5장 1절, 4장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형제들이 죄악 바다 세상에서 주님 없이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잘 살까 노력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도하면서 병자를 치료하니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모두들 땅의 것을 소망하고 따르는 허다한 무리가 4장에 있었습니다.

교재 8페이지 제일 위에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이 무리들을 데리고 바다로 가야 되겠습니까? 산으로 가야 되겠습니까?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냥 가르치다보니까 산에서 가르치더라 해서 산에서 가르쳤고 산에서라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고 일점일횎도 필요 없이 적는 수는 없습니다. 왜 산일까? 산에 갔으니까 산이지? 다 기록하려면 온 천하에 쌓아둬도 쌓을 수가 없는데 줄이고 줄여서, 4장에 무리를 보시고 5장에서 산에 올라가서 앉았다. 왜 산에 앉으셨을까?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땅의 것 얻어먹으려고 무병 장수하려고 병 안걸리고 오래 살고 돈 잘 벌고 자녀 많고. 금방 몇가지 말씀 드렸나요? 이름이? 금방 몇 가지? 오래 살고, 건강하고, 자녀 많고 원래 아들만 자녀였습니다. 네 번째는요? 돈 많이 벌고, 연세 많은 분들만 뭐가 빠졌지요? 치아, 이빨이 건강하고 이것을 오복이라고 그럽니다. 무병장수, 자녀의 재물 복, 치아 건강. 5가지 복, 한국 사람들은 5가지 중에 아무리 봐도 하나도 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복 오복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요즘은 뭐 임플란트 치과 많으니까 오복에 다섯째 필요 없고, 아들 많은 것 귀찮으니까 딸 있으면 되고 없으면 되고 무병장수야 너무 오래 살아서 고민이고. 돈이야 놀고 먹어도 체중 조절하도록 공짜로 주고. 코로나 핑계대고 돈을 몇 십만원씩 또 주고 또 주고 또 퍼부어주고. 오복이 달성된 세상입니다. 그만하면 천국 공부에 매진하지 거기에다대고 또 뭘 더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갔을까? 오늘 우리를 보면서 이 말씀을 보는 겁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게 이번 집회의 첫 말씀이다.

그 다음 줄 보십시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라고 했는데 예수란 무슨 이름이라고요? 이서지, 예수는 무슨 이름? 구원의 이름.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구원의 주님이 따라오는 무리를 보시고, 아무나 봅니까? 믿는 모든 사람을 무리고 그럽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미안하지만은 여기에 해당 없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 믿는다는 말은 주일학교 때에 뭐라고 배웠나요? 따르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정한다 다른 말로 따라간다 다른 말로 순종한다. 그러니까 믿음은 순종, 따라가는 것. 주님이 산으로 가시니 주님을 따라가면 믿는 사람입니다. 그때는 주님한테 뭔 신세지려고 허다한 무리가 따라 다녔고, 오늘 우리에게는 주님을 순종하고 따라가는 믿는 사람이 여기입니다. 집회 오는 것도 주님을 따라오셨을 것이고 주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참고 끊는 것도 이게 다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내려다보시며, 주님이 보시고. 주님이 보면 누가 공부를 잘할 것 같은고? 그것을 보나요? 누가 돈을 더 잘 벌 실력이 있는고 그것을 보나요? 어느 여자애가 얼굴이 이뻐서 막 남자 애들이 세상에 따라 다닐란고 그것을 보나요? 중매쟁이는 그것을 보겠지. 중매쟁이는 매너 있고 돈 잘 버는 남자를 딱 알아 보겠지. 중매쟁이 눈에는 그것을 잘 보겠지. 사업가 눈에는 어디 가서 돈을 벌까 이게 보이겠지, 선생님 눈에는 저것 딱 보니까 공부할 애 이것은 딱보니까 공부 못할 애 이게 보이겠지. 예수님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시고요? 구원의 눈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아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구원에는 목적의 눈으로 보십니다. 구원이 목적인데 구원이 영생인데 그것 때문에 오셨는데 그 주님이 보고 계시는데, 팔 고쳐주시라 다리 고쳐 주시라 소경 눈 띄워 주시라 달리기를 못해서 돈 벌러 못가니 달리기 잘 하게 해주시라 성적 좀 올려주시라 아파트 전세값이 자꾸 올라가지 투자를 잘해서 나도 아파트 주인 한번 되게 해주시라, 아무리 쳐다봐야 주님은 그 사람 안 쳐다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구원의 주님은 누구를 본다고요? 학생 말고 병자 말고 중매쟁이의 눈도 아니고 구원의 눈으로, 구원의 하나님이 구원의 주님으로 오셔서 구원의 눈으로 무리를 보면서, 이것들 전부 다 날 따라오는게 다리 고치고 싶고 귀 고치고 싶고 눈 고치고 싶고 돈 벌고 싶고 결혼하고 싶고 아파트 사고 싶고, 아이 세상만 가득찬 이렇게 뭐 그냥, 욕이 나와도 되겠지요? “화 있을진저” 이게 욕입니다. 마태복음 23장, 예수님 평생에 욕 제일 많이 모아놓은 곳이 마태복음 23장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마구 저주를 받아라 소돔같은 불 벼락을 받아라. 예수님이라고 뭐 욕을 안한 줄 아십니까?

‘따르는 무리를 예수께서 굽어보시며“ 무리를 보시며, 하늘의 구원 영생의 복을 가지고 가르치고 주시려는데, 따라온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돈 어떻게 해야 건강 어떻게 해야 가정 행복 어떻게 해야 아파트 어떻게 해야 자녀들의 취직, 비 정규직 언제 정규직으로 바뀌나? 집회 한번 갔다오면 축복을 받아서 직장의 사장님이 자르려고 하다가 그 집회를 가는 것을 보니까 신실한 사람 종교성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내 회계 장부를 맡아서 나하고 평생을 함께 합시다. 같이 돈 해먹자는 말인데 그러면 아 출세하겠다, 교회 가니까 그런 복이라고 여기더라 다 이야기가 그리 돌아가지 않나요? 역사 이후에 불교인도 고기 먹으면 지옥갈까봐 금식했습니다. 지금 중들은 고기 못 먹어서 난리입니다. 이게 뭐 불교 욕입니까? 역사 이후에 기독교와 역사 이후의 교인이란 세상은 더러워서 쳐다보지 않겠다 하늘나라만 쳐다보자 말로라도 그리했습니다. 귀신이 기독교 이길 방법이 없자 마지막이 되니까 세상에다대고 돈, 건강, 무병 장수 학문을 갖다가 소복하게 쌓아 가지고 예수 아니라도 돈이 이렇게 많은데 금식기도 안 해도 이렇게 오래 사는데, 안수 기도 안 받아도 대학 병원가면 다 죽을 사람이 낫는데 뭔 굳이 복음이니 말씀이니 주일이니 교회니. 온 세상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은 것으로 가득 가득 채워 세상이 홍수가 나버렸습니다. 이 홍수가 노아홍수보다 쉬운 홍수인 줄 알면 벌써 잠겨 죽었습니다. 4천년 전에는 노아 홍수 때에는 하늘의 비를 끌어다가 땅에서 물 샘을 터뜨려서 가지고 물로 뒤덮었고 그 물은 다시 그러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무지개를 띄워서. 오늘은 돈을 태평양 바다만큼 풀어놨고 건강을 구름만큼 쌓아놨고, 장수, 무병, 돈, 음식, 여행, 지식, 상식, 텔레비, 역사에 인간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천하의 귀신들이 마구 발전시켜서 얼마나 소복하게 쌓아놨던지 하나님은 심판인데 귀신은 복 받으라고 이렇게 많이 해놓으니까, 과거 주일은 굶어가면서 지켰는데 지금 주일은 놀러 다니느니라고 바빠서 주일을 못 지킵니다. 이것은 심판이 아닌가요? 이것은 홍수 심판보다 덜 한 것인가요? 이것은 좋은 건가요?

이러는 무리들을 어디서 가르쳐야 좋을까? 어떤 때에는 주님이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해변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어떤 때에는 들판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어떤 때에는 집 안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어떤 때에는 일부러 산에 가서 가르칠 때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천국은 일부러 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가르쳤습니다. 왜 하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을까?

교재 8쪽 가운데, 산이란, 천국과 가까우면 산인가요? 멀면 산인가요? 산이란 바다보다 땅보다 들판보다 하늘이 더 점점 가까운 곳을 산이라 합니다. 산이 높아봐야 하늘하고 얼마나 높으려고? 예. 산이 높아봐야 하늘 끝까지는 못 갑니다만은 그래도 한 걸음이라도 천국을 향한 소망 시선 발걸음을 가지거라. 그 뜻을 담아서 일부러 세상 복음 땅의 복음에 사무친 사람들을 천국과 가까운 곳으로 데리고 올라간 곳이 산입니다. 천국 소망하라 이것들아. 천국 좀 소망하거라 이것들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말을 하면 실례가 되고 각자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자기에게 이 말을 합시다. 이것들아 이제 그만 천국 좀 소망하자. 자기가 자기에게 그 말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욕을 해도 그건 아무 말 안합니다. 제가 여기 강단 높은데 앉아서 여기 낮은데 계신 분들한테 이것들아 천국 좀 소망해라 이러면 요즘은 모독죄로 경찰에 불려갈 겁니다. 그 말이 아니라 저도 제 속을 들여다보면서 신풍교인들이 다 부자자가 되고 전부 수석 졸업하고 막 시장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어가지고 교인들이 막 사방 천지에서 한 만 명이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목사가 그 소망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소망이 있으면 주님이 그 소망을 들여다보면서 그거 천국 소망이냐? 두고 갈 땅의 좋은 것이라 그러냐? 네 속에는 천국 소망이 없냐? 죽는 날까지 풀을 뽑듯이 죽는 날까지 자기 속을 일구지 않으면 잘못하면 돋아 올라버립니다. 세상 소망은. 죄와 사망과 악령에 속한 것은 뿌리지도 않았고 비료도 안 줬는데 깜빡 자고 나면 그냥 마구 돋아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따라오는 무리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고요? 데리고 간게 아니라 주님 가니까 혜택 보려고 저절로 모두들 산으로 모였습니다. 천국 좀 바라보거라 좀 높은 데 좀 쳐다보거라 땅만 쳐다보지 말고.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할머니 이렇게 교회 다니느리고 정신 없었는데 손주되는 내가 공부 안해도 1등하고 합격하고 삼성전자 좋은 회사에 가서 간부도 하고 아 그래야 빛이 되어서 교인들이 전도가 될 것인데, 다 줄이면 그 말 아닙니까? 좋은 회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주님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사방 천지에서 다 왔는데, 앉은뱅이 일으켜 세우더라 소경을 눈 띄우더라. 요즘은 안과에서 소경 눈 다 띄워버려서 소경이 없습니다. 귀머거리 전부 보청기를 씌워가지고 요즘은 이삭같은 그런 귀머거리 없습니다. 이삭은 장애자 아니었나요? 아 귀가 아니고 눈이었지요. 요즘 이삭 같은 그런 소경들은 안과 가면 다 눈을 띄웁니다. 야곱도 죽을 때에는 또 눈병이 나가지고 불편했지.

천국 좀 바라보거라 땅만 쳐다보고 땅만 마음 속에 소복하게 쌓고 살다가, 예수님이 오니까 드디어 우리 민족에게 복이 왔다. 땅의 복음을 구원인 줄 아는 불쌍한 구약 백성들아, 오늘 집회에 온 우리는 해당이 없을까요? 막 결혼했는데 남자가 알고보니까 남자가 아파트를 5채 감춰놨더라 이래놨으면 뭐 신부들이 막 얼마나 웃음이 입가에서 피어날까? 공회 결혼 좋더라고 막 그냥 결혼이 얼마나 많이 될까? 지금 제가 안 가지고 나왔는데 제 요즘 가지고 다니는 명단에 우리 공회 안에만 결혼할 급한 사람만 90명입니다. 90명. 결혼 급한 사람 명단만 제가 들고다니는 명단에 90명입니다. 20살이면 결혼을 다 시켜서 30살이면 애가 3명 4명라 결혼 걱정도 안했는데, 깜빡 하다보니까 어느날 결혼 급한 사람이 90명입니다. 한 건 두 건 잘하면 뭐 그냥 공회 결혼 다 하느라 정신없이 다해서 걱정도 안될 것인데 뭔가요? 내 속에 천국 소망에 갈급한가요? 나의 속 마음은 입으로는 천국 천국 하지만은 내 속 마음에 두고 갈 땅의 남들이 모르는 그런 비법 그런 보배 보물 다 그런 것을 원하는지요?

주님이 일부러 산 위로 가셨다 다 따라 오도록, 말씀은 한 마디도 안하지만은 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다 산으로 따라옵니다. 주님은 무언, 말없이 무엇을 가르치지요? 위를 좀 쳐다보라. 어? 주님이 산에 갔으니까 위를 봐야 주님이 있고 주님이 병 낫게 해주지 그거 가르치려고? 세상에서 천국을 바라보거라 인간만 보고 사는 인간들아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좀 우러러 보거라. 천국과 가까운 곳이 산입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세상을 좀 초월하라고 땅에서 좀 멀어지라고 올라가라고.

여기 집회하는 이 장소는 높은 곳입니다. 서서히 올라와서 모를지 몰라도 덕유산 600고지입니다. 여수 순천에서 넘어올 때에 지리산 고갯길이 400미터 밖에 안됩니다. 높은 곳입니다. 우리가 두고 온 학교 집 직장 저 밑에 있습니다. 여기는 조금 높습니다. 선선하고 좋으데? 돈 벌고 공부하다가 머리 복잡하고 가정생활하느니라고 찌들었는데 한 주간 뭐 대충 말씀도 듣고, 휴가 삼아 반반, 그런 산인가요? 오골 오골 얽혀붙어 거기서 뒹굴고 살던 생애를 좀 숲 속에 산 속에 와서, 뭐하다가 살았는고? 뭐하다가 벌써 스무살이 되었는고? 뭐하다가 벌써 내 나이가 벌써 서른이 넘어버렸는고? 아 뭐하다가 벌써 내 나이가 팔십이 되었는고? 공회 집회가 5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에 여학생으로 집회 참석하시던 분들이 여기 지금 할머니 증조 할머니가 되어가지고 앉으셨습니다. 노장이 되어가지고. 옛날 같으면 고려장 했을 겁니다. 오늘 밤이라도 삐걱하면 바로 그냥 아마 요양원 가실 겁니다. 저보다 10배 100배 은혜로운 말씀 50년대부터 받아, 뭐하다가 지금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고? 나이 많은 사람은 회상하고, 청년들은 학생들은 뭐 회상할 것도 없나요?

일부러 산으로 끌고 올라가셨습니다. 저 밑을 내려다보거라. 저 땅 위에 붙어사는 사람들 땅에 뒹굴고 사는 사람들, 저 흙먼지에 난리 땅 한번 더 차지하겠다고 달리기 잘하겠다고, 집 평수 높다고 동네 몇 명 알아준다고, 여기에다가 인생을 바치는 저 인간들을 좀 굽어보거라. 그 중에서도 야고보 요한 베드로 안드레 이 제자 넷을 먼저 기록한 것은 이 인간들은 땅도 아니고 바다 안에 들어가가지고 그물로 가지고 죄악 세상에 죄악의 수단으로 죄악의 그런 혜택을 받는 것들이다. 뭐 굳이 말하자면 공무원은 이 땅 위에 사는 일반 직장이라면 조폭이니 술집이니 뭐 다방하는 직장은 바닷가에 그물로 가지고 고기 잡는 집안이고, 아주 소주 회사로 재벌이 된 사람은 세베대가 아들 둘과 그물을 깁고 배를 마련해서 원양어선으로 큰 재벌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빠지면 죽는 죄악 바다에 뭔가 하나를 건져먹고 살려는 인생. 우리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못나서. 바다 생애는 아니나 육지 생애 안전한데 든든한데 그래봐야 흙 먼지인데 두고 갈 땅인데 흙에서 나서 흙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 산으로 하늘을 향하여 좀 소망, 마음을 좀 바꿀 수가 없냐? 이 말씀을 가르치시려고 가르치는 배경에 바다에서 땅에서 산으로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산이란, 천국과 어떤 곳이라고요? 가까운 곳. 뭐하고는 먼곳이라고요? 세상하고는 먼 곳. 그리고 제자들이 제일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많은 무리들 중에,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니까 또 천국? 또 복음? 다음에 내려오면 뭐 고치지 그리고 저 멀리서 주막집에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제자들은 제일 가깝이 다가왔습니다. 그 제자들은 왜 그렇게 산꼭대기까지 따라갔을까요? 갈급하니까. 무엇이 갈급했겠습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라. 말씀을 배우고 싶고 천국을 배우고 싶으면 마음 중에서도 심령이라 그럽니다. 무엇이 갈급이냐? 천국을. 천국이 뭔데?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 세상은 어떻게 하고요? 세상은 가져도 멸망 안 가져도 멸망. 세상은 영멸하니까. 지금까지 세상에 살았고 세상을 가졌고 세상에서 유리했고 불리했고 세상을 가지고 자랑했고 이것을 되돌아 생각을 해보니까 원통한 마음입니다. 원통한 마음. 주님이 따라 오라고 해서 따라 다녔는데 병을 낫게 하니까 신기해서 따라다녔는데 산으로 가다보니까 생각하다보니까 그렇지, 믿는 사람이 천국을 생각하고 하늘을 사모하는 것이 맞는데 내가 어쩌다가 세상 사람이 됐냐? 그게 제자들입니다.

바쁜 일이 많은데도 집회 생각하고 이 자리까지 오셔씅면 허다한 무리 중에 우리는 그래도 제자 축에 들어가는 겁니다. 제자 되면 안됩니까? 제자가 아니라 스승이 되어되는데 제자가 되어야 스승이 되지요. 그 제자들에게 8페이지 밑입니다. “주님이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4장까지는 주님이 오셔서 활동을 했고 5장부터 “입을 열어 가르쳐” 주님의 첫 설교입니다. 주님의 첫 설교 첫 말씀. 세상 복을 받아라가 아닙니다. 한 100살 살거라 자녀들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손주가 욕을 하든지 말든지 120살을 살아라. 요양병원 의사 선생님들이야 좋아하겠지. 한 120살 살아 놓으면 며느리가 아니라 딸조차도 이제 가시지요 그럴걸요? 며느리면 조금 오래 사는 것은 몰라도 많이 오래 사는 것은 좀 그럴 것이고 딸이라도 100살 120살 살면은 이제 가시지요 할걸요? 주님의 첫 말씀은 이 땅 위에 잘 먹고 잘 살아라 땅의 복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의 첫 설교. 그 말씀이 바로 진리의 말씀인데, 주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비밀인데 하늘의 복인데.

“심령이 가난한 자는” 가난해라 그게 아니라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아 천국 부자가 되라는 말이구나 영원 부자가 되라는 말이구나 하룻밤 부자가 아니라, 알고보면 좋은데 알고보면 감사한데 우리가 너무 세상에 찌들려 선입관이 있어서 교회라고 그러면 아 또 돈이나 모으자 그말이겠지. 이런 선입관을 가지고 자꾸 반발심으로 살아왔는데 “주님이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제부터 이번 집회 배울 말씀, 팔복이 주님의 첫 설교입니다. 첫 설교는 뭐 더 중요하고 둘째 설교는 덜 중요하고 1등 2등 아닙니다. 우리 속에 세상 밖에 없으니까 먼저 수술하기 위해서 천국의 사람이 되라. 배를 잘라야 맹장 수술 하든지 말든지 하지, 배를 안 자르고 어떻게 맹장 수술을 합니까? 주님의 첫 말씀, 진리의 하늘의 비밀의 하나님의 비밀 영원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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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1.05.0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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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1 2021.05.12 13:59
* (9p)

9쪽입니다. 영원한 복이 뭔데? 한번 적어볼까요 학생들. 첫 번째 복이 무슨 복? 가난이 복이랍니다. 가난이 복이면 목사 너나 가난하거라 그러겠지요? 뭔지는 뒤에 보시고. 두 번째 복은 뭔가요? 애통이 복입니다. 애통이 복. 세 번째 복은요? 온유가 복입니다. 네 번째는요? 갈급한 것이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줄이면 갈급입니다. 갈급이 복입니다. 다섯 번째는요? 긍휼이 복입니다. 나는 믿고 부모는 지옥 가든지 말든지 우리시대까지는 잘 믿고 새벽기도도 다니고 아들 세대는 뭐 잘 믿고 잘 사니까 새벽기도 안 다녀도 상관 없고 잔인한 것 아닙니까? 부모님들? 왜 부모는 새벽기도 다니고 아이들은 왜 새벽기도 못 다니게 합니까? 못 다니게 하기야 했겠습니까? 그냥 놔뒀지. 자기에게도 좋으면 자녀에게도 좋은 것을 가르쳐야지. 여섯째 복은요? 청결이 복입니다. 일곱째 복은요? 화평이 복입니다. 남북 화평 그런 화평 말고, 신인양성 일위의 화평의 하나된 그 주님과 우리가 신인양성 일행으로 화평, 이렇게 믿고 살려다보면 세상이 귀찮다고 우리를 오해하고 쥐어박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환란은 기본입니다. 핍박이 복입니다. 게을러 당하는 핍박 도둑질 하다가 당하는 핍박 그런 것 말고 1번에서 7번까지 복다운 복의 길을 걸어가려다보면 핍박은 피하지를 못합니다 세상에서는.

주님의 말씀은 천국으로 시작하여 천국으로 마쳤습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이 아니라 건설구원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본구원으로 보니까 탈이 생기지요. 5장 3절로 보십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반대로 말하면요?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그말입니다. 베드로가 부활 후 주님을 보고도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을 평생 따라다닌 수제자 베드로 속에 천국은 없었습니다. 그 디베랴가 내나 갈릴리 바다입니다. 갈릴리 바다 죄악 세상 먹고 살던 것을 데려다 놨더니만은 부활한 주님을 보고도 또 돌아갔습니다. 베드로 속을 보니까 주님 따라다녔는데도 그 마음에 세상 밖에 없습니다. 그때 죽었으면 베드로가 지옥갑니까? 영은 중생이 되어 영원불변 천국 갈 예정이 확정되었으나, 베드로의 마음 속에 세상을 향한 미련 가족을 향한 염려, 베드로는 아내가 잇었습니다. 나는 이대로 살아도 되는데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아내는 어찌 되나 말하자면. 순교자들도 의인들도, 신사참배 6년 교도소를 끝까지 버티다가 해방되기 불과 몇 달 전에 밖에 고생하는 처 자식 때문에 자진해서 나온 사람도 계십니다. 배교했으니 지옥입니까? 베드로 속에도 바울 속에도 누구 속에도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 속에 아직도 모자라는데가 있고 아직도 배워야 될 때가 있는 법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 성경 말씀에 의해서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아 그러면 믿는 사람은 택한 백성이라 무조건 성령의 견인으로 천국을 간다고 칼빈 5대 교리에 못을 박아 놨는데 어찌 되지? 박형룡 박사 박윤선 박사 대한민국 최고의 성경학자 교리학자 두 분이 신사참배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해방 전에 만약에 그 분들 죽었으면 지옥 가는가요? 그 분들의 마음 속에 성경만 보고 신학만 보고 이론만 가지고 있다보니까 실행의 고난을 견디는 것이 좀 약했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영어가 좀 약한 것처럼 영어 선생님은 영어만 하다보니까 한글 문법이 좀 약할 수가 있는 것처럼. 신학자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많이 연구하다 보니까 교리는 탁월한데 기도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것처럼 신학자는 기도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것을 머리 속에 넣다보면 눈 감아도 신학 이론만 오고가지 주님이 잘 안 보여요. 아이가 많아서 아이들을 잘 기르려다보면 새색시가 남편 안에 깨끗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보여주기가 어려운 겁니다. 남편이 아내가 연애할 때처럼 죽는 날처럼 늘 생생하게 이쁜 모습으로 살고 싶거든 애 안 낳으라고 하면 됩니다. 늘그막에 후회할걸요? 사람이 완전자가 아니라 이게 있으면 이게 좀 불편하고 그런 겁니다. 믿고 난 뒤에 우리가 자라가는 노력하는 힘을 쓰는 이유, 바로 건설구원입니다.

산상보훈

지금 이 서론의 모든 말씀이 산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공회 사람들만 그냥 모르고 우리 그냥 넘어가는데 우리 공회 교회 밖에 다른 교회 분들은, 따라합시다. 산상보훈. 이 단어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회 분들이 아무리 잘 믿어도 산상보훈이라는 그 단어를 모르면, 이단이라고 또 오해를 받을까봐 교재에 적어놓은 것입니다. 산상보훈. 산 위에서 보배롭게 가르친 말씀이다 그 뜻입니다. 그러면 산 밑에서 가르친 예수님의 말씀은 보배가 뭐 아닌가요? 어떤 말씀은 보배면 어떤 말씀은 덜 보배인가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진실 많이 적었을 때에는 그 말씀은 더 진실이다 더 진짜다라는 그 말이 아니라 말씀은 똑같은데 이 인간이 이 말씀은 참 믿지를 않을 것이라 우리가 강팍해서 진실로 진실로를 더 적는 겁니다. 진실로를 안 적었다고 대충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 보훈이란 산에서 하신 보배로운 말씀이라. 우리가 배울 것은 아니고 신학의 상식을 잠깐 적었습니다.

산이라니요? “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팔복을 왜 산에서 가르쳤는가? 말씀을 가르치는 환경, 왜 하필 산에서 천국을 가르쳤을까? 앞에서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섞이지 좀 말아라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좀 배워보거라. 이 집회 산 속에서 와서 이 말씀을 배우면서, 두고 온 사업체 계약이 잘못되면 한 몇백만원 날라가는데 어떡하지? 흔드는 바람에 그만 보배로운 말씀이 함께 날라갈 수 있ㅅ브니다.

* (10p)

10페이지입니다. 가르친 배경은 죄악 바다에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 땅 위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세상을 가르치다가 산으로 끌고 올라와가지고 위엣 것을 바라보라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아라 천국 좀 바로 잡아라 어떤 방향으로 가르치느냐? 세상에서 천국을. 지금 주님도 지금 배우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습니다. 살기는 세상에 사나, 소망은 어디를요? 천국을. 세상의 생활을 가지고 천국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발을 고쳐주면서 발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좀 또박또박 잘 걸어가라 이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소경 눈을 띄워주면서 진리의 눈을 좀 뜨거라.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소경이라 봉사라 눈이 고장나면 텔레비보고 휴대폰 보고 인터넷보고 죄는 덜 지을 것인데, 눈이 뜨여져 놨으니 휴대폰에 별별 죄 인터넷의 별별 죄 대로가에 간판에 여자 훌떡 벗은 사진에 안 볼 수 없으니 짓는 죄, 인간이 안 지을 수 있나요? 그렇다고 눈을 일부러 감을 수도 없고 눈을 뜨면 죄가 안 보일 수도 없고.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봤냐? 뭘? 돈이 보였겠지. 세상이 보였겠지. 천국을 좀 보라 그리고 육체의 눈을 띄워주는 겁니다. 아 육체의 눈 뜨워주니까 이렇게 좋네, 그래야 봐야 세상 밖에 안 보이는데. 이제는 하늘을 보는 하늘의 눈이 뜨여져야 되겠다 하늘의 눈은 어떻게 뜨여집니까? 성경 말씀을 보면 하늘이 보이니까 이제 말씀으로 천국을 봐야 되겠다 그러라고 병자 고쳐놨더니만은 아무리 가르쳐도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생활을 가지고 천국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천국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재 중간입니다. 살기는 겉으로는 세상을 살아야 됩니다. 속으로는 무엇을 배워야 되지요? 천국을. 겉으로는 세상을 속으로는 천국을. 배우기도 하고 고치고 자라가야 됩니다. 문제를 딱 보면 아 이게 정답이겠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는 사지선택 객관식 칠 때 모르겠거든 긴게 답이다 설명 긴게 그게 답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문제를 딱 보면 이게 답이다 그 눈을 가지고는 학교가고 돈 벌이에 좋고 그 눈을 가지고는 천국은 못 간다. 아 예수님이 산으로 가셨구나 산은 생활과 좀 멀어지라는 말이구나 소망을 좀 위로 가지라는 말이구나. 그게 보여야 그게 천국을 향한 배우고 고치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다음 중간 밑으로는 상식인데, 교파적으로 교단적으로, 세상도 중요하다 세상도 중요하다 그러다보니까 세상만 남은 교회가 구약 교회입니다. 구약 교회도 천국을 압니다. 바리새인들이 천국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부활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세상도 중요하다 중요하다 그러다보니까 바리새 교파 구약 교회는 어느날 세상 되어버렸습니다. 신약교회는 처음부터 천국을 가르칩니다. 신약교회 안에서도 안식교라는데, 안식교 분들이 세상을 좀 강조합니다. 위생병원 삼육학교 삼육두유 동물성 단백질 먹고 성인병 걸리지 말고 식물성 단백질 먹으면 건강에 좋아서 깨끗한 몸으로 살면 얼마나 좋으냐? 삼육두유, 더러운 것 가르치지 말고 삼육학교 삼육대학교 삼육 초중학교 오면 좋은 것 가르쳐줄게 삼육학교. 여기 영어 관심 있는 분들 삼육 학교에서 하는 영어 학원 이름이 뭔가요? SDA. 우리는 영어도 깨끗하게 잘 가르쳐줄게 싼 값으로, 영어도 깨끗하게 순수하게 학교도 순수하게 병원도 위생병원. 돼지고기 먹으면 일찍 죽으니까 돼지고기 먹지 말아라 이상구 박사가 30년 전에 대한민국 돼지농사를 갔다가 돼지 기르는 사람들 다 망하게 할만큼 돼지만 안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안식교 선교사였습니다. 건강강좌를 얼마나 잘했던지 이상구 박사 돼지고기 안 먹으면 암 안 걸리고 오래 삽니다 그러니까 전국의 돼지 양돈업자 다 망해버렸습니다. 그 분이 몇 년 전에 기독교로 다시 돌아섰습니다. 건강해봐야 죽을 것 건강 강좌는 했는데 이제 천국 소망하겠습니다 이렇게 바뀌었답니다. 참 반갑지요 수십년동안 속은 사람은 어떻게 하고? 그 분 말 듣고 수십년 속은 사람 어떻게 하고? 돌아왔으니 반갑기야 반갑지요. 우리나라 대통령들 보면서 머리만 안깍았지 중이라고 소문난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입니다. 지독한 불교 신자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지금 병상에서 회개하고 방언하고 그런다면서요 막 예수 밖에 없다고 그러면서요. 아무리 노태우가 미워도 회개했다면 그거 좋아해야 됩니다 기독교인은. 노태우 저놈의 자식은 미우니까 천국가면 안된다 그놈은 지옥이다 안됩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전 대통령이 미워도 회개하면 기독교인은 반갑다고 해야 그게 기독교인입니다. 전 대통령 아들이 장신대라고 우리나라 제일 큰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그런다고 그러지요? 아들이 목사되면 그 개척교회 제가 교인할랍니다 그랬다고 몇 달 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지독한 불교 대통령도 기독교 탄압 참 많이 했는데 아 90에 회개하니까 반갑기야 반갑지요. 그런데 이제 하나 물어보는 겁니다. 아니 좀 일찍 회개하시지 이 나라에 수 많은 사람들 절로 갔다 놓은 죄는 어떻게 할까? 모를 때이니까 할 수가 없고. 그래서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겁니다. 자신있게 말을 했는데 이 일이 옳다 이 일이 영생이다 자신있게 말을 했는데 나중에 가가지고 아 실수입니다 착오입니다 남의 인생 어떻게 하지요 그러면?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고 따져보고 살펴보고 좀 늦어도 좀 답답해도 우리는 그리 믿는 겁니다.

교파들 중에 구약 교회는 세상 중심입니다. 신약교회는 천국입니다. 안식교라는데가 대표적으로 세상을 말합니다. 이단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우리보다 더 천국을 노래하는 교파가 아미쉬라는 교파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지금 400년 전의 찬송가 지금도 그대로 부릅니다. 400년 전의 것. 전기도 안 씁니다. 전화기도 안 씁니다. 예수 믿는데 불편하다고. 천국 소망이 전부지 세상 이것 저것 하다보면 복잡해서 안된다. 그 다음 요즘 말로 말을 하면 세상이 좀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런 쪽을 순복음 쪽이라고 그럽니다. 그 분들이 천국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가르치다보니까 세상을 좀 강조하게 됩니다. 그 다음 체질적으로 아무래도 천국이 더 중요하지 않냐 이것을 장로교라고 그럽니다. 장로교 안에서도 개혁주의라고 그럽니다. 장로교 개혁주의 안에서도 그래도 천국이 아니냐 그것을 청교도라고 그럽니다. 깨끗할 청. 아무리봐도 성경은 깨끗하게 천국을 가르치더라 세상과 좀 떨어져서 살아보자. 그래서 우리 집회가 이렇게 좀 멀리 온 겁니다. 공회 교회들이 그래도 좀 노력을 하기는 할 겁니다 아마.

* (12p)

교재 넘깁니다. 12페이지, 이 땅위에 와서 바다 죄악 수입 보는 사람, 땅 바닥에 뒹굴고 사는 사람.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해결해주다가 산으로 살살 달래서 데리고 와가지고, 무엇을 가르쳤지요? 12페이지 제일 위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가난이 복이 있다고요? 가난이란 안 좋은 것인데. 복이 있는 가난도 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어떻게 해야 천국이 내 것이 되겠느냐? 비결은, 심령이 가난하면 된다. 무조건 거지면 천국간다 그 말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심령이 뭔데? 가난이 뭔데? 천국이 뭔데?

* (14p)

넘깁니다. 14페이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노름하러 가가지고 돈을 다 내버렸는데 복권하다가 집을 다 팔아버렸는데 수술하다가 가족이 장애자가 되었는데 슬프지 애통인데? 그러면 그게 좋은 건가 그게? 그런 애통 말고. 주님의 위로를 받아 천국이 나의 것이 되는 그런 가난 그런 애통도 있다.

저녁에 계속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천국을 준비하고 천국을 마련하라고 하룻밤 잠깐의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죄악 속에 있는 것까지 걷어내어 물고기 잡아 살던 베드로처럼 두고갈 땅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세상을 가지고자 정신없이 살았던 우리의 부족 우리의 미련 우리의 못난 점을 굽어 살펴주사 창세기의 공부 성막의 공부 신앙의 자유성으로 얼마든지 번제되어 주를 향하여 깨끗하게 살아가는 성결 청결의 기회를 배웠고 받았으나, 돌아볼 때에 또 앞날을 짐작해볼 때에 세상에서 천국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천국을 마련하는 일편단심은 흐려지고 가까운 세상 속에 세상으로만 점점 자기를 묻어둘 이런 우리인줄 아시고 금번에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집회의 개최에 기회를 주시고 첫 시간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여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인간이 전하고 인간이 노력한다고 깨달아 쟁취하는 천국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주셔야 전하기도 하고 주님이 열어주셔야 천국의 복음을 마음 속에 열어 천국의 복음으로 받겠사오니 지난날에 묻혀 살았던 세상을 씻어버리고 앞으로는 더욱 더 차고 넘치는 세상의 발전과 복잡함 속에 어디에 던져놔도 심령이 가난한 자 하늘을 향한 애통한 마음만 가지고 살기는 세상 생활 속에 살아도 우리의 마음 우리의 소망 우리의 의지 우리의 순종은 늘 하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 되고 특별히 각자 마음 속에 세상에 붙들려 있는 단점들을 약점들을 병든 점들을 하나씩 고쳐, 집회 때부터 일어나고 걷기 시작하며 앞날의 강건한 신앙으로 다가올 모든 흑암의 세상을 헤쳐 나가는 저희들 되도록 어린 심령 하나까지 붙들어 주시고 노년의 종들도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이 산 속의 집회의 기간 내내 모든 안전 모든 안보를 친히 이끌어 주옵소서 친히 동행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학생들은 배운 말씀 적은 것 선생님하고 확인도 해보시고 또 세상 속에 묻어 있던 나, 죄악 세상 속의 것을 걷어 먹고 살던 베드로 다 우리들입니다. 착하게 살아도 세상, 악하게 살아도 세상. 지난 날 어떻게 하다가 오늘날 이 나이가 되었는가? 지난 날 어떻게 하다가 이 좋은 세상 마음껏 믿으라고 주셨는데 정말로 제대로 믿고 살았던가? 자기 생활을 들여다보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십시다. 남을 낚으려고 하지 말고 나부터 좀 여유있게 좀 챙겨봐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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