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후20.5.4 계1:1 계시록서론: 현실은 개별재림, 예수와 X의 구원 실상, 교회로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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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20.5.4 계1:1 계시록서론: 현실은 개별재림, 예수와 X의 구원 실상, 교회로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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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2월후(계시록)

계시록 구도 :  22장의 전체 목록의 연결 흐름

재림의 성격 : 역사적 종말과 함께 믿는 우리에게 현실마다 오시는 신령한 재림

계시록 내용 : 구원의 예수님과 성화로 자라 가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렇게 자라 가도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매 현실

예수님 실상 : 다시 본 주님을 통해 교회와 신앙을 실상적으로 만들어 가도록 촛대와 별의 비밀을 비결로 우리에게 주심

* 첫 시간
세상환경까지 종말적으로 만들며 이 번 집회를 맞았고 우리의 공부가 계시록이니 우주적 종말과 함께 매 현실적 종말을 실감하고
나의 눈을 예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3가지 성화로 바꾸고 내가 접하는 모든 현실에서도 예수와 그리스도를 찾는 긴장으로 살되
매 현실마다 성령으로 새로운 주님을 모시고 우리에게 맡긴 여러 종류의 교회라는 신앙 단위를 통해 후회없는 매현실을 통과할것


    설교요약

① 월후 : 종말
 - 현실은 한 번뿐이니 종말이며 말세이므로 예수와 그리스도의 구원 기회로 매 순간을



200504 집회 1

제목 : 계시록서론: 현실은 개별재림, 예수와 X의 구원 실상, 교회로 구현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크신 은혜 베풀어 사활의 대속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되었고 순종으로 이 목적을 향하여 오늘이 복되며 인생이 소망 속에 마음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인도해주시고 능력으로 보호까지 해주셨으니, 연연이 집회의 개최의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데 예사로 참석한 줄 아는 저들에게 금번에 천하를 진동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번 모이는 것도 인간의 자유와 능력이 아님을 알려 소란 속에 계시록의 말씀을 살펴 임박한 주의 재림과 우리 속에 늘 오시는 마음 속의 재림을 계시록의 말씀으로 잘 살펴 세상이 천국을 준비하는 복이 되고 말씀이 책이 아니라 능력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게 하시며 우리는 마음껏 고쳐 주의 형상 닮는 이 기회가 되고 주일이 되고 평일이 되며 한 주간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복되게 반복할 수 있도록 금번에도 특별한 기회로 모였사오니,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 속한 우리 속의 요소를 먼저 제거하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만 구함으로 안전도 보호받고 은혜도 받으며 이 시간 주님이 원하는 뜻을 찾아 앞 날도 부족한데 감당하는 저들 되게 해주옵소서. 심히 부족함으로 모일 수 없는 금번에도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 부족하여 받은 은혜인 줄 알고 주님은 더욱 주시고 우리는 더욱 겸손하여 주님과의 동행이 이어지는 집회되게 인도해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집회 교재를 먼저 함께 보십니다. 금번 집회는 요한 계시록입니다. 성경의 제일 뒷편에 두셨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66권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술 좋아 한권 묶었지만은 원래는 66권으로 따로 있었습니다. 표지를 넘겨서 서문을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신앙생활의 역사도 늘 기억합시다 짧게. 공회 우리의 집회는 1957년부터 백영희 목사님이 30년을 인도하셨습니다. 89년에 돌아가셨고 그 후 30년간 생전 30여년 집회를 복습했었습니다. 2018년 이후에 많이 배운 과거를 가지고 너무 많이 바뀌어버린 오늘, 공회에 주신 그 말씀 그 때는 생각도 못하는 세상이 펼쳐져 버렸습니다. 우리 앞에. 그래서 오늘의 필요한 말씀을 2년 전부터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재 공회 전체적으로 강단을 감당할만한 분들이 계시지 않아서 제가 사회 보고 또 오늘 강단을 맡고 있습니다. 강단의 은혜라는 것은 듣는 교인들이 집중하고 기도하면 은혜를 받게 되어집니다. 집중하고 기도하는 교인의 자기 마음에 성령이 은혜를 주시고, 전하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말, 세상의 강의는 강의력이 좋아야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셔야 은혜를 받습니다. 아무리 은혜 있는 강단이라도 듣는 교인의 기도와 자세가 잘못되면 설득력 가지고는 은혜를 끼칠 수가 없습니다. 강단이 부족하니까 더 준비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은혜 받도록 함께 노력하십시다.

이번에 계시록의 교재는 ‘말세’를 담았습니다. 오늘이 말세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말세가 맞습니다. 이번에 배울 계시록 16장 16에 “아마겟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아는 단어입니다. 인류 최고 최악의 전쟁. 그 아마겟돈 전쟁도 닥쳐 오겠지만은 매일 매일이 알고보면 아마겟돈 전쟁의 이런 전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오늘을 공부하고 우리 모두 자기 현실 자기 세상을 통해 천국만 마련하라, 이게 요한계시록의 말세의 말씀입니다. 

지난 2년 간 4번의 설교 집회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 천지창조를 먼저 살폈습니다. 천지를 창조할 때에도 또 오늘도 새로운 천지를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통해 항상 새롭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폈고, 2018년 8월 두 번째 ‘성막’ 공부를 통해 하나님이 새로 만들어주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모실 것인가? 성막이란 하나님을 모시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창조하여 주시는 매일의 새 생활, 주님을 모신 성막의 동행의 생활은 학교에서 가정에서 교회생활 모든 생활을 통해 무엇을 조심해야 되는가? 믿는 사람은 자유이라 어떤 현실에서도 자유인의 신분을 잊지 말아라. 노예로 살지 말라는 말씀인데 살다보면 어느날 세상에 노예가 되고 종이 되어 살았지 진리의 자유, 성령의 자유, 대속의 자유의 사람으로 산 적이 별로이 없습니다. 자유인의 신분을 기억하라 하나님과의 연결의 생명을 아껴라 남의 신앙을 상해하지 말아라 이런 생활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집회 마지막으로 레위기 1장부터 5장까지 ‘5대 제사’,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현실, 창조의 세상 속에 주님을 모신 성막의 동행의 생활을 하며 모든 생활 속에 조심할 것을 배웠고,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내면이 하나님께 바친 번제로 하나님과 동행의 모든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모든 종류의 제사들을 살폈습니다. 

(차례)
넘겨서 차례입니다. 한 페이지 더 넘깁니다. 금번 5월 집회는 계시록입니다. 주님이 다시 올 때에 어떤 일이 있겠는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몸으로 오신 것을 따라합시다. ‘예수님의 초림’ 가신 후에 다시 오면 ‘재림’입니다. 재림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세상이 언제 끝이 날까? 제자들도 자기들 생전에 세상이 끝날 줄 알고 조심하고 계시록을 읽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2천년 동안 예수님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2천년 간 오지 않았고 오신다는 약속은 틀림이 없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할 기회가 제자들보다 2천년 더 짧아졌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 전부가 없어지는 예수님의 재림이 너무 가까웠다고 더 조심하고 복이 없는 사람은 온다는 약속이 2천년 지났는데 무슨 또 같은 소리인가? 이리되면 복이 없는 사람이 된다. 하늘의 비가 아무리 와도 뚜껑을 막아버리든지 아니면 물통을 비워버리면 아무리 비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뚜껑을 열고 물통을 잘 지키고 있으면 결로현상으로라도 물방울을 맺힙니다. 하늘의 은혜는 받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세상을 마지막에 없애고 오시는 재림도 재림이고, 오늘 2020년 5월 4일, 오늘도 오늘이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없습니다. 이것도 재림입니다. 양면의 재림으로 공부하셔야 되는데, 

(개론)
계시록은 22장인데 2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장은 서론에 ‘예수님의 재림’. 주님은 오신다. 주님이 오시는데 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교회의 종류’를 먼저 2-3장에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1장에 ‘주님은 다시 오신다’ 오늘도 오셨습니다. 아예 세상을 없애고 올 때도 있습니다. 1장에 예수님의 재림, 주님은 오시는데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7가지로 종류를 가르쳤습니다. 주님이 오시는데, 교회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영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갈 천국은 어떤가? 원래 영계 천국은 이런 모습인데, 4장. 성경이 전개될 때에 어떻게 순종하고 준비했느냐에 따라 마지막 영생의 모습이 달라지는 22장까지의 기록이 이렇게 순서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적기는 순서적으로 적고 계시는데 한 목에 복합적으로 닥치기도 하고 나뉘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부터 교회의 종류, 모든 모습들은 매 현실 바로바로 닥치기 때문에 이번에 22장까지의 성경 전체를 좀 살피면서 이 말씀 중에 나는 몇 장에 해당 되는가?

최근 코로나 때문에 세계와 한국 우리 역사상 학교 문을 다 닫아버리고 이렇게 몇 달째 이렇게 세상 비행기 모든 교통까지 막아버린 경우는 역사상 최초인데, 여기 6장의 ‘여섯 인’을 뗄 때의 말씀. 8장 9장의 ‘나팔 재앙’의 말씀, 16장의 ‘대접 재앙’의 말씀을 읽어보면 2천년 전에 미리 기록을 하셨구나 실제 그렇게 되는구나. 똑똑한데 덜 똑똑한 사람들은 계시록의 재앙들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미개한 사람을 협박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삼분의 일이 다칠 리가 있느냐 이랬습니다. 금번에 세상 삼분의 일이 다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까 예전에도 삼분의 일씩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눈이 어둡고 몰라서 성경대로 되어가는 세상을 몰랐을 뿐입니다. 금번의 계시록을 작년 말부터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대도 계시록대로 너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도 신앙의 준비가 바쁘고. 그래서 계시록을 준비하던 중에 지난 몇 달간 세상이 이렇게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말씀대로 세상을 정말로 눈에 보이게 운영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이 현실과 말씀을 놓고 특별히 금번 집회 조심스럽게 모두들 살펴보십시다.

(암기)
한번 차례 넘어가기 전에, 잠깐 내용을 외우고 넘어갑니다. 외워지지 않는 분은 보시면서 또 애매한 분들은 보면서 눈을 떼면서 외워가시고 외워지는 분들은 제가 앞에서 설명할 테니까 보지 말고 자꾸 머리 속에 담아 보십시다. 계시록은 전체 몇장이라고요? 스물 두장, 22장입니다. 1장은 서론인데 내용이 뭐라 했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2장과 3장에는 무엇을 기록했다고? 교회의 종류입니다.  예수님은 오시는데 내 신앙 교회는 어떠한가? 첫 번째가 ‘예수님의 재림’, 두 번째가 ‘교회의 종류’. 그런데 이 교회가 갈 영계는 어떤 모습인가? 세 번째가 ‘영계의 모습’입니다. 세가지 한번 해보실까요? 보지 말고, 시작. ‘예수님의 재림’, ‘교회의 종류’, ‘영계의 모습’. 무조건 외우시면 쉽게 잊어버리고 생활 속에 사용을 못합니다. 흐름을 좀 보십시다. 예수님은 오시는데, 뭐라고요? 예수님의 재림. 교회는 어떤 모양인가? 교회 종류입니다. 가야할 천국은 저런데, 영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영계의 모습이 성경 말씀대로 전개가 됩니다. 영계에서 나온 성경, 말씀대로 세상에 펼쳐지니까 네 번째는 ‘성경의 전개’가 있고 성경 말씀대로 세상은 운영되고 변화되고 부인을 하든지 도망가든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안다면 신앙의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의 신앙’이 다섯 번째입니다. 다섯 번째까지 다시, 주님이 오시니 예수님의 재림. 마이크로 좀 살펴주지요. 주님이 오시니 예수님의 재림, 신앙의 형편은요? 교회의 종류, 가야할 천국은 영계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영계의 모습이 영계에서 나온 말씀으로 세상에 펼쳐집니다. ‘성경의 전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준비의 신앙’으로, 준비의 신앙이 되면 ‘승리의 신앙’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말세가 정리되고 그대로 ‘영생’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도 매 현실도 그렇고 인류 역사 6천년이 그러합니다. 

넘겨서 9페이지입니다. 교재를 넘겨서 9페이지, 계시록 22장 중에 제1장 예수님의 재림. 주님 오십니다. 언제 오실 것인가? 매 현실마다 오고 계십니다. 세상을 전부 불태워 없애버리는 최종의 재림이 언제인가 이것만 기다리다보면 오늘의 재림 내일의 재림 작년의 재림은 전부 놓쳐 버립니다. 매일의 재림을 가져야 마지막의 재림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1장은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을 가르치는데, 1장은 크게 내용이 3가지입니다. 한번 기억해주시지요, ‘계시’, ‘하나님’, ‘교회’. 3가지를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 쳤는가요? 1장 예수의 재림 첫째는 내용이 뭐가 있다고요? 계시, 둘째는요? 하나님. 세 번째는요? 교회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교재 10페이지, 본문을 살펴보시겠습니다. 교재 10페이지 요한 계시록 1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가 무슨 말인고?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본문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요? “보이시려고” 계시는 ‘보이시려고’라는 단어입니다. 보여주면 뭐라고요? 그게 계시입니다. 성경 전부가 하나님이 보여주셨으니 계시입니다. 문서 계시. 믿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 계시라고도 합니다. 자연을 통해서도 보여주십니다. 자연 계시. 믿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면 특별계시, 믿는 사람에게 보여주시는데 성경에 적어 보여주면 문서 계시, 우리 양심에 감화와 감동으로 보여주시면 영감계시 자연계시 특별계시 문서계시 영감계시 할 것없이, 보여주면 뭐라고요? 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 1절을 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를 보여주고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예수를 봤고 그리스도를 봤으면 계시를 본 것입니다. 계시는 봤는데 예수가 없고 그리스도가 빠져버리면 미신 되고 귀신되고 주관의 착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는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보여주는 것을 계시라 한다. 2절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뭘 봤따고요? 요한은? 말씀을 봤고 그리스도의 증거를 봤으니 본 것이 계시입니다. 봤으면 계시고 계시는 본 것이니까 봤으면 반드시 봤다고 말을 해야 됩니다. 그것을 “증거”라고 그럽니다. 또 한번 기억하십시다. “증거 하였느니라” 위험한 것을 봤는데 혼자 보고 피하고 다른 사람은 위험에 빠지게 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책임을 묻습니다. 예수라는 복을 받고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가졌는데 남들에게는 말 안하고 혼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혼자 그 복을 가지고 천국 가면 가족들에는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왜? 혼자 보고 혼자 복을 받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이게 1절에서 3절입니다. 

본문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교재 10페이지, 중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님의 이름을 주시면서 예수는 구원이다 이렇게 이름을 적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1절에 태어날 예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주시면서 구원이라는 뜻을 천사를 통해 가르쳐준 것을 아는 사람은 계시록 1장 1절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는 구원이니까 구원을 위한 계시로구나 구원을 보여주는구나. 예수의 그림 사진을 본 것이 아니라 구원을 보여주고 구원을 가르쳐주는 구나. 이렇게 해석을 하기 때문에 계시록은 65권을 아는 사람은 쉽고 65권을 모르는 사람은 계시록을 해석해내기도 어렵지만은, 해석하다가 엉뚱한데로 삐끌어져 버립니다. 삐뚤어지면 죄가 된다.

그래 가지고 이번에 방역 문제로 대구 쪽에 난리난 교회 이름이 신천지인데 천하가 신천지를 욕을 해도 여기에 있는 우리는 신천지를 함부로 욕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 열심은 없습니다. 아무리 원수라도 열심은 배워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계시록만 가지고 10년 20년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만큼 공부도 안하고 모르면서 욕부터 하면 남 욕할 때에 따라서 욕하면 짐승들 중에 강아지이라 그럽니다. 모이면 개떼이라 그럽니다. 하나 짖으면 다 따라 짖습니다. 신천지 그 사람들이 계시록 아닌 성경을 몰라가지고 지금 삐둘어졌고 계시록을 잘 알아서 탈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예배당 문까지 다 닫으라는 이런 문제가 생긴게 신천지 때문인데 그러다보니까 신천지 욕을 하는데 그 욕을 하다가 죄 위의 죄를 짓습니다. 계시록 공부는 좋다 열심도 좋다 그런데 열심이 삐뚤어지니까 안되는구나. 계시록은 좋은데 다른 성경은 모르고 계시록만 보니까 계시록에서 삐뚤어지는구나. 우리는 65권 알았습니까? 우리는 계시록 보며 삐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 분들을 보면서 열심은 그렇게 하고 바로 배우고 바로 깨달아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돌리면 나쁜 것을 보고도 복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마태복음 1장 21절에 예수란 구원이라 적어 놓으셨으니 계시록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의 계시라 자꾸 계시록을 공부하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라 예수의 계시라 그러다가 사진과 그림에 나오는 예수가 꿈에 나타나니까 예수를 봤다고 이러는데 이 분이 나한테 이러더라 저러더라 그러는데 이 미신 이 귀신에게 붙들려 가는 이유가 마태복음 1장 21절에 예수는 구원이다. 그러면 계시록에 예수의 계시다 아 구원이 계시구나 구원의 계시 구원이 계시.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장 41절에 보면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 하는 이를 만났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라고 적어놨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야,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 그리스도. 이렇게 누가복음 2장 11절, 요한복음 1장 41절에 그리스도,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예수니라” 아, 그리스도는 구주인데 그리스도를 메시야라고 그러는구나. 그러면 예수는 구원, 그리스도는 메시야인데 메시야라고 하는 그 어려운 단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구주,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이름이로구나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하나 잡게 됩니다. 

예수도 구원이고 그리스도도 구원인데 왜 둘로 썼는가?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할 때에는 예수. 기본 구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도 구원은 구원인데 그리스도를 쓴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에 제사장이 죄를 해결하는데 그 제사장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선지자를 세울 때에도 기름을 붓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 때에 인도하고 보호하는 왕을 세울 때에도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 붓다라는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이고 메시야입니다. 차가 굴러 떨어질 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것은 중도 살아날 수 있고 불신자도 살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만 구원하는 구원은 지옥갈 사람을 사활의 대속으로 예수님이 구원, 천국갈 사람으로 구원은 받았는데 나의 죄, 나의 말씀생활 나를 보호하는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세가지 면으로 나를 점점 살려가는 이름이 그리스도로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를 그 밑에 하나님이 주셨구나.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계시를 주셨구나.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우리는 모를 뻔했는데, 11페이지로 넘어옵니다. 

누가 전달을 했는가 하나님의 종 천사를 통해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일일이 지시 하셨으니 “하나님이 천사를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그래서 요한은 알았으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이것을 봤는데 봤으니까 계시고 “본 것을 계시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천사를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그리고 세 번째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를 봤으니까 본대로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증거했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앞에 설명한대로 예수의 계시란, 구원의 계시입니다. 그리스도의 계시란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는 계시이다. 우리에게 구원의 예수를 가르치고 우리에게 죄를 지으면 안되고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고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살 때에 보호하시는 제사장, 선지자, 왕. 3가지 면으로 우리에게 말세를 우리에게 오늘을 우리에게 신약 내내를 보여주고 계시는데 제일 밑에 마지막

“이 모든 일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직접 오시는 일만 속히 될 일인가? 그 일도 2천년이 지났으니 속히 될 가까운 일이고, 오늘도 우리에게는 이 순간에 주님이 오시는데 마음 문을 닫아 거부하는 사람, 집회 첫 시간에 오신 주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연도 오늘 한국과 세계의 어지러운 것도 또 계시록의 성경 말씀도 내 마음 속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전부는 하나님이 구원을 보여주는 구원의 역사이니 이 모든 것을 예수로 보고 구원으로 보게되어 감사합니다. 눈을 예수의 눈과 그리스도의 눈으로 눈 자체를 바꿔버려야 됩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성경은 읽고 계시록은 외우고 계시록 1장 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은 읽고 알았는데, 예수의 눈으로 볼 수 없고 그리스도를 봐서 보이지 않으면 소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빨간색 안경을 끼면 전부는 빨간색입니다. 안경을 파란색으로 끼면 세상은 파란색으로만 깔려 파란색으로만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무슨 안경을 쓰고 보자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눈, 예수 그리스도의 안경으로 돈을 봐도 돈 속에 구원을 보시고 사랑하는 아내를 쳐다봐도 그리스도의 눈으로, 그 이 아내 속에 죄는 뭔가 이 아내 습관 속에 죄가 어떤 것이 좀 해결이 되어져야 되는가 직장을 가도 이 직장 속에 말씀으로 살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이 생각, 이 자세로 걸어간다면 직장이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되어집니다.
 
1978년 1월 경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한 절만 가지고 한 한달 설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성경은 어느 성경이든지 마찬가지이지만은 특별히 계시록은 한 절 한 자만 가지고도 집회 1주일을 해도 모자라는 그런 깊은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왜 이 덕유산을 만들었는가? 넓은 덕유산 속에 왜 하필이면 내계를 6천년 전에 만드셨을가? 내가 구원을 받아 천국 준비할 때에 말씀 재독하라고. 말씀 연구하라고 말씀으로 지난 날을 돌아보는 좋은 휴가 기간 환경이 되라고 만들었다. 그리고 이 덕유산을 보면 내계 골짝을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산골짝에 돈 없는 공회에서 장소 잘 마련해서  한 주간 놀러가네 놀고가면 좋겠네 그러고 이 골짝을 보면 그 눈은 하나님이 소경이라고 그럴 것겁니다. 눈은 떴는데 보지 못하면 당달 봉사라고 그럽니다. 눈은 있는데 못 보는 사람 보고도 못 보는 사람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거저 있느니라” 내계 골짝도 부부 둘이 낳아놓은 큰 아이를 보면서도 둘째 아이를 보면서도 남편의 나쁜 말투를 보면서도 아내의 희생과 수고하는 그 좋은 모습을 보면서도 감기 하나에 오천만명이 벌벌 ᄄᅠᆯ고 난리나는 이 꼴을 보면서도 참 죄는 지어놓고 어지간히 죽기는 싫은갑다 그러면 예수의 눈으로 이 오늘을 보는 겁니다.

평양에서 핵 폭탄을 30개 100개를 만들어놓고 죽인다 살린다 협박을 하는데도 꿈짝도 안 하던 사람들이 감기 걸려 죽을까봐 5천만명이 벌벌 떨고 앉았으니. 왜 이렇게 세상을 묘하게 만들어서 우리한테 보여주고 계실까? 죄를 지어서 본능으로 겁은 나는가보다 그러면 나에게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는 있는가?? 북한에서 핵으로 때린다고 협박을 하면 감기보다 천 배 만 배 벌벌 떨어야 되는데 그건 전부 다 웃고 앉았고. 죽지도 않는 감기에는 전부 다 생 난리고 한 해에 감기 폐렴으로 죽는 사람이 2만 명 2천명 된답니다. 2천명이 아니라 2만명, 매 해. 이번 코로나 감기에 죽은 사람이 2천명됩니까? 200명인데. 200명에 벌벌 떨었으면 2만명에는 10배 떨어야 될 것이고 100배 떨어야 될 것이고, 핵 앞에는 천 배 만 배 떨어야 되는데 이게 뭔가? 지금 좌팔 정권 욕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1계명의 죄는 지어놓고 주일마다 4계명의 죄는 예사로 지으면서 핵 앞에 떨고 코로나 앞에 떨고 교통사고에 떨어 죽을까봐 그러고 앉았으면 네 놈은 천년을 살아도 말씀의 죄 하나에 영원한 지옥이다 주님은 그러실 것이니 감기도 조심해야 되겠고 집회에 마스크 끼고 코로나도 조심해야 되겠고. 핵 때문에 더 떨어야 되겠고 그러면서 영원한 지옥의 유황불의 형벌은 더 걱정을 해야 그게 양심이 아니겠습니까? 핵 폭팔의 그 위험 그 처참함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의 유황 불구덩이가 바로 그 모습입니다. 역사에 핵폭탄이 두 번 떨어졌습니다. 1945년 일본에 히로시마, 나카사키 하나씩 떨어진 것이 전부입니다. 떨어졌는데 그 다음 해에 쑥이 나더랍니다. 1년 뒤에 쑥이. 그래서 아 쑥 저 놈이 저렇게 독하구나 지금은 그 도시 다 행복한 도시로 바뀌어 있습니다. 지옥의 유황불은 한번 떨어지고 한번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년 10년 핵 여진으로 고생하는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핵 폭탄이 영원 무궁토록 진행되는 곳 그렇게 기억하시면 됩니다. 핵 폭탄이 있기 전에는 성경에 유황 불구덩이라고 그랬습니다. 유황 구렁텅이, 그 유황으로 만드는 것이 폭탄입니다. 몇 천년 전에는 유황 불비 제일 뜨거운 것, 성냥 끝이 유황불비입니다. 200년 300년 전에는 유황으로 폭탄을 만들어 아이고 지옥불이 저렇게 뜨겁겠구나. 1945년 핵이 발명되면서 복 있는 사람은 불화살이 폭탄이 되고 핵 폭탄이 되고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믿었던 분은 지옥불이 영원 유황 불구렁텅이구나 얼마나 뜨거울까? 폭격의 폭탄이 발명되면서부터는 영원히 지옥불이 저게 계속되면 대단하겠구나. 핵이 발견된 소식을 들을 때에 복 있는 사람은 죄 한 번에 불의 한번에 하나님과 원수된 그 순간 1계명을 어기고 2계명을 어기고 몰래 4계명을 한번 어긴 그 죄의 값이 유황불이 아니라 핵 폭탄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계속 되겠구나. 그리고 세상의 죄를 보고 세상의 전쟁을 보고 세상의 핵 폭탄을 보고 그리고 조심을 하면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우리의 눈은 예수의 눈 그리스도의 눈이 되어 그 보여지는 역사도 정치도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나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주님과 속에서 맞고 밖에서 맞고 현실에 맞고 진리에 맞고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맞아지는 세계 이것을 위해서 기록해준 것이 요한계시록 22장의 첫 말씀입니다. 

11페이지 중간입니다.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 자연도 오늘도 이 나라의 모든 환경도 따뜻한 부부의 행복한 가정도 밥상도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상이 당해도 이렇게 예배를 드려도 전부는 안 믿는 사람 믿으라는 구원을 보여주는구나 예수의 계시. 믿은 사람은 제사장 선지자 왕 3가지 면으로 자꾸 자꾸 씻고 깨끗해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라고 보여주는 구나 응원하시는구나 길을 내주셨구나 이번 집회 첫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구나. 계시란, 다같이 읽어볼까요 제일 밑에, 계시란 시작. ‘열어 보이심’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열어 젖히면 ‘계’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눈 앞에다대고 들이 밀어주면 보일 ‘시’ 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이렇게 보라고 끄집어내어 눈 앞에 펼쳐주는데 끝까지 눈을 감고 있으면 보통 일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반드시 속히 될 일”입니다. 속히 된다니? 전쟁이 난다 난다 그러고 수십년이 지난 것처럼 예수님 온다고 2천년이 지낫는데 그리 생각하면 복 없다고 그랬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내 현실에 오셨습니다 내가 못 봐서 그렇지. 왜 못 봤습니까? 예수님이 옷을 입고 사람처럼 이렇게 오면 누구든지 보겠는데 그렇게 오실 때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으로 다시 보니 가정 속에 오신 예수님을 봐야 되고 지난 몇 달간 세계의 뉴스를 보면서 예수님이 좀 희미하게라도 보였여야 됩니다.

그래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그랬습니다. 왜 구름인가요? 왜 하필 구름을 타고 오십니까? 중동 사람들은 양탄자를 타고 다닙니다. 동양 사람들은 신선이 구름타고 다닌답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온다고 그러니까 전부 미신같다고 웃지만은 그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라 등신들입니다. 복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구름을 타고 오시는가? 없는 가운데 구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니까 만들어놓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야 마음 먹으면 구름 타고 오시겠지요. 왜 하필 구름인가?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워지면 눈에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늦습니다. 신앙 어린 사람은 교회를 안 다니면 뭔가 찝찝하고 안 믿는다고 뭔가 술 먹어보면 뭔가 좀 괴롭고 또 교회를 다니려다보면 좀 귀찮고 이런 것이 좀 애매한 거싱 안개이고 그런 것이 구름입니다. 주님은 또렷하게 늘 찾아오시는데 내 마음이 어둡고 내 심령이 희미하여 주님은 매 현실 재림의 주님으로 찾아오시는데, 어제 내 양심을 건드린 것이 주님인가? 아니면 공연히 나 혼자 그냥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그리 되었을까? 주님은 또렷하게 명백하게 매 현실 재림으로 오십니다. 또렷하게 보이면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우리를 기르기 위하여 일부러 구름 타고 오십니다. 믿을 사람 믿고 미신이라고 웃을 사람 웃고 오늘 자유롭게 해라 주님은 구름 아니라 안개타고도 오신다 없이도 오신다. 오면 세상은 끝이 납니다. 왜 하필 구름인가? 우리의 심령이 어두침침하여 오시는 주님은 실존이고 실상인데 나의 눈 나의 심령이 흐려 실존의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이게 탄식이다 이런 면도 좀 살펴보십시다.

12페이지를 넘깁니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나님이 주셔서 반드시 속히될 일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종이라는 것은 따라간다. 순종하는 것을 종이라 그럽니다. 순종, 복종, 맹종. 문유영인가요? 무슨 글자가 공통적으로 금방 들어갔나요? 다시 엄재현? 순종, 복종, 맹종. 어느 글자가 공통으로 들어갔나요? ‘종’ 자가 들어갔지요? 좋아서 순종도 종, 억지로 해도 복종의 종. 뭔지 모르고 해도 종은 종. 종이란 따른다는 말입니다. 쫓아간다는 말입니다. 알고 따르면 제일 좋고. 싫은데도 겁이 나서 어찌될까봐 주일 지키면 복종입니다. 그래도 종은 종입니다. 좋고, 하다 못해 업어다 놓으니까 멋 모르고 와도 맹종.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있고, 똑똑하고 잘 나서, 주님은 이리 생각합니까? 나는 이리 생각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그것은 종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는 끊어집니다. 배운게 많고 똑똑하면 알고 따르면 순종이 됩니다. 아직까지 익어지지 않아서 힘든데 따라가면 복종입니다. 그래도 종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한 살짜리 갖다 놓으면 이것은 맹종입니다. 뭣도 모르니까 그런데 알게 모르게 번져 들어갑니다. 한번 기억해보실까요? 순종, 복종, 맹종. 알고 보니까 좋아서 오면 뭐라고요? 순종, 할수 없이 따라오면요? 복종, 한 살짜리 갖다 놓으면 오듯이 그리 오는 것은요? 맹종이라 그럽니다. 그래도 종은 종입니다. 왜? 따라갔으니까 쫓아갔으니까 시키는대로 했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의 복 그리스도의 복 예수의 구원 그리스도의 완전의 이 복을, 따르는 자에게 보여주시려고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예언의 말씀을” 3절입니다. 본문. “이 예언의 말씀을” 바로 이 계시가 이 예언의 말씀입니다.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이라, 앞으로 일어날 일, 무슨 일이 앞으로 일어날 것인데? 예수님이 앞으로 올 겁니다. 몇 년 뒤에 올 것인데? 이 순간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속히. 오신다는 예수님이 2천년 지나도록 안 오셨는데? 속히 될 일이야? 네 눈이 멀어서 그렇다. 네 시력이 없어서 몰라봐서 그렇다. 눈을 제대로 뜨고 다시 보니 신인양성 일위의 볼 수 없는 부활의 주님이 네 마음에 매 현실 찾아오시는데 저만 모른다 저만 안 보인다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끝에 “세상 끝날까지 항상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한다. 오늘의 주님 오늘에 오시고 내일의 주님 내일에 오시는데 우리는 어제도 예수님 안왔다고 그러고 오늘도 안왔다고 그러고 10년 전에도 안왔다고 그러니, 내년에도 올까? 천 년 뒤에는 몰라도 뭐 몇 년 안에는 오실까? 안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매 현실마다 오시는 주님. 매 현실마다 예수의 구원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화를 위하여 현실도 주시고 말씀도 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시니 “이것을 읽어내는 자가 복이 있다. 읽는 자입니다” 성령의 음성으로 영감으로 신앙의 양심의 귀로 들어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켜 순종하는 자,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깝다는 말을 임박이라 그럽니다. 임박. 내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두 발 세 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매 현실 문고리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내 문고리를 잡고 있다 나만 열어주면 바로 들어오신다 와 계십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멀리 했지. 인간의 과학이 아직까지는 인간의 종말이 아직까지는 지구의 종말이 100년은 더 남은 것 같다 자꾸 주님을 밀어내는데. 재림은 아직까지 좀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지구의 멸망이 그렇게 뭐 몇 년 안에 올 것 같지는 않다 세계의 모든 과학이 그러고 앉았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는 것이고 믿는 우리는 없는 가운데 뚝딱 만든 주님이 오늘 오시면 오는 것이지 천체 물리학의 계산법에 따라 주님이 맞춰오고 그러지 않습니다. 천지 물리학은 주인이고 주님은 종인가? 없는 가운데 만드신 창조주가 주인이라 천체 물리학의 예측을 따라 오실 수도 있고 무시하고 올 수도 있고, 볼 수 없는 주님으로는 실제 신인양성 일위로 지금 늘 우리 속에 오고 계시는데. 교재 13페이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자 다시 한번 앞을 봐주십시오. 계시록은 몇 장? 22장, 서론은 몇 장이라고요? 1장, 1장 서론의 제목을 한 줄로 잡으면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라니? 예수님의 재림의 내용을 첫 번째로는 계시. 예수를 보고 그리스도를 보면 계시를 본 사람입니다. 예수의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만사를 보고 살면 계시의 사람입니다. 이 예수는 누구의 계시 누가 주신 것이라고요? 13페이지 제목을 보니까 하나님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 천하를 만드시고 영계를 만들어놓으시고 계시를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에 첫 번째 계시를 살폈고 이 계시의 주인 삼위일체 하나님. 한번 기억하십시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운영할 때에는 마치 아버지와 같다고 해서 성부 하나님. 이 땅 위에 오셔서 전부 해결을 하신 하나님을 성자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해결해놓은 것을 오셔서 수습하고 전부 마무리하는 최종의 역사를 성령 하나님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인데

4절에 보니까 성경을 봐보실까요 본문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그때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이고, 이스라엘 부근을 아시아라고 그럽니다. 오늘도 이 말씀과 가까운 모든 사람이 아시아입니다. 일곱 교회는 하나, 둘, 일곱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일곱이라 그럽니다. 어렵게 일곱이라 그러지 말고 모든 교회라 그러지 왜 일곱이라 그랬을까? 쉽게 가르치려고. 더 어려운데? 조금 더 연구해보면 압니다. 왜 7인지.

그 다음 4절 뒤입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 그 다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영이 하나 둘 셋 일곱인가? 금방 7, 일곱은 무슨 뜻이라고요? 모두라고 그랬습니다. 빠진 것이 없으니까 모두면 완전입니다. 성령은 모르는게 없기 때문에 일곱 영이라고 그럽니다. 성령이 일곱 영, 여기 일곱 영은 성령 하나님. 일곱 영. 그리고 5절부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람되어 오셨으니 충성된 증인이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으니 먼저 나시고 우리도 뒤를 따라갈 수 있도록 그리고 “땅의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왕 위의 왕 왕 중의 모든 왕들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자 하나님. 성자 성령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주님이 우리가 지은 죄는 지옥갈 죄인데 그 지옥갈 죄에서 우리를 풀어놓으시고 해방하시고. 6절입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성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성부. 오신 예수님은 성자, 일곱 영은 성령.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을 또렷하게 구별하지 않고 그냥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은헤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삼위일체 하나님 때문에 은혜와 평강을 우리는 빌 수가 있습니다. 또 한번 기억해볼까요? 은혜와 평강. 저 앞에 김영우인가요? 금방 뭐라고? 은혜와 평강. 새로 주면 은혜. 받은 것을 잘 보관하면 뭐라고 할까요? 평강이라 합니다. 아버지가 준 것 말고 국가에서 코로나 때문에 두 달 돈 못 벌었다고 100만원씩 주는 것 말고 하늘의 하나님이 새로 주면 뭐라고요? 은혜.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내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뭐라고요? 평강.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주신 것. 지금 읽고 있는 이 말씀은 문학가의 작품이 아닙니다. 인쇄소에서 찍어서 나온 글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도를 통해 적어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이런 것은 은혜이고. 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그러지. 집에 있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어머니는요? 어머니 속에 구원의 예수님을 보고 어머니 속에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점점 자라가는 면으로 보면 어머니 속에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읽어내고 그러는 줄 알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깨달음이니 하나님이 직접 준 것 새로준 것은 은혜. 이것을 놓치지 않고 붙들고 살면 그게 평강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때문에 모든 믿는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몇 달간 세상이 돈 못번다고 난리가 나고 죽을까봐 난리가 날 때에 믿는 사람은 죽어도 천국에 가니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참 믿기를 잘했다 그러면 예수의 계시로 상대하는 사람입니다. 이 전염병에 몇 만명이 만약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면 전도할 기회가 없으니 미리 전도할 걸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보는 사람입니다. 안 좋은게 없습니다. 아닌게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주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오셔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4절 이후의 모든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라니요? 페이지 넘겨보니까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이었다 오셔서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충성의 증인이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으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셨고”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 1차로 먼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따라 2차 3차 4차 순서대로 전부 살아생전 영생을 향하는 우리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가정의 아빠들은 가정의 왕들입니다. 직장 사장님들은 직장 임금들입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반마다 담임이 임금님이고 왕입니다. 나라에도 왕 가정에도 왕 직장에도 왕,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울어버리면 아이가 그 가정의 왕입니다 잠깐동안. 이 땅위에 별의별 왕들이 다 있지만은 그 왕 위의 왕 만왕의 왕은 우리 주님이라. 이 주님에게, 그 다음 6절입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에게 “주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영원무궁토록 해야 될 찬송입니다. 감사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인사이고 누구를 만나든지 은혜를 바랍니다 평강을 바랍니다 평안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말을 이리저리 하든 상관없이 저 가정이 하나님께 새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인사입니다. 말로 하면 더 좋고 말할 기회가 없어도 내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 마태복음 10장 12절 전도를 가는 제자들에게 어디를 가든지 시골을 가든지 도시를 가든지 어느 집을 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빌라” 세상의 평안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늘의 은혜를 받는 이 가정이 되었으면 그 은혜가 이어졌으면, 이게 평안을 비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끼리도, 부부가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 첫 얼굴을 보며 이 사람도 오늘의 하나님의 새 은혜를 받았으면 돈 잘 벌고 건강하고 뭐 매일 놀고 먹는 요즘같은 세상에 허구헌날에, 이게 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럴찌라도 오늘도 놀러가는 저 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동행했으면 그 은혜가 좋은데 가다가 구경하다가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받으면 은혜, 유지되면 평강입니다. 

여기 지금 6절은 찬송입니다. “주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인데 날 위하여 죽었으니, 이게 영광입니다. 하나님인데 사람되어 사활의 대속으로 대속을 이루었으니 이 대속으로 믿는 택자 전부를 살리고 영원히 주님처럼 만들게 되어집니다. 이게 능력입니다. “세세토록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것은 영원히 갑니다. 내가 거기에 함께 하기를 원하나이다 그말입니다. 주의 영광이 나의 영광되고 주님의 영광 때문에 내가 믿는 사람이 되어 나도 그 영광 중에 들어가고, 사활의 대속으로 나를 구원하신 그 능력이 나에게 와서 나도 내 식구를 내 주변의 사람을 믿는 사람 만들고 이미 믿은 사람은 더 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주님을 축복한다고 주님이 더 잘되고 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가 그 영광의 일부가 되고 그 영광으로 나도 그런 영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하시고” 주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말을 피라 그랬습니다. 피는 생명이니까 생명을 바쳤으면 생명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갔으니까. 말씀에 삐뚤어진 것이 죄이고 죄가 있으면 죄에게 영원토록 붙들리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신인양성 일위가 전부를 다 투자해서 이 죄에 붙들린 것을 풀어버렸습니다. 이 자격 이 길 이 기회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열면 됩니다. 안 열면 필요 없고. 쌀독에 쌀을 가득 채워놨습니다. 밥 해먹으면 배부를 것이고 쌀독에 쌀은 넘치는데 해 먹기 싫으면 굶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무조건 천국을 갑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생각 내 젊은 날의 기회, 내 눈으로 하나 보는 것 내 발로 여기 갈까 저기 갈까 손가락을 반복함으로 타자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운전을 배우고 인터넷을 해서 세상을 내 마음대로 사느냐? 그래도 자유. 그 기술로 가지고 신앙으로 연결 지어도 자유. 죄만 지어도 자유. 믿는 사람은 주님이 쌀독에 쌀은 넘치도록 채워놨습니다. 밥 해 먹어도 자유 썩여놔도 자유. 그것은 주님이 대신해주지를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집회를 여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지옥갈까봐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요리법을 배워야 좋게 요리를 해서 맛잇게 먹고 많이 다른 사람을 많이 먹여주지요.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하시고” 주님이 주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고 끊어놓으시고, 왜? 등산 가라고? 어쨌든지 천국은 가게 되어 있으니 공부 잘하라고? 보고 행복하게 아이들 크는 모습을 보라고? 주먹이 세니 천하를 점령하고 다니라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의 나라, 주님은 통치하시고 나는 주님을 모시고 믿는 사람, 이 관계가 나라입니다. 주님은 왕이 되시고 나는 나라가 되고, 주님이 왕이 되고 내가 나라가 되면 손해입니까? 주의 나라가 되면 제가 바로 천국 왕국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 여기에 이루어집니다. 이 시간.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님 날 씻으신 이대로 내가 내게 맡겨진 내 주변을 씻어나가는 이런 나를 만들어놓으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게 6절입니다.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님에게 그 영광과 그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나도 주의 일부가 되고 이 영광과 이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 되게 해주옵소서 제가 그렇게 해보겠나이다 도와주옵소서.

7절입니다. “아멘,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거기 내용이라 되어 있는데 14페이지 제일 밑에 모습입니다. 심판의 모습.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왜 하필 구름 타고 오실까? 주님이 오시는데 지금도. 내 심령이 어두우면 오시는 주님에게 모든 것이 심판 받아 끝날 때까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보면 보이는데.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한 명 한명 개별적으로 심판이 있을 겁니다.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전체 심판입니다. 주님 오시면 전체는 심판이고 개인적으로 주님을 찌른 자 한번 찌른 자 두 번 찌른 자, 그 주님을 대신하여 한번 동참한 자 두 번 배신한 자 일일이 개별 심판은 “그를 찌른 자들”.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a입니다. 그리스 단어로는 알파인데 영어로는 a입니다. “오메가라” 영어 맨 마지막의 x y z의 z를 오메가라 그럽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러면 계시록 1장은 서론이고 전체는 예수의 재림인데, 예수님의 재림의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말씀하셨고 둘째는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을 말씀 하셨고. 하나님이 보여준 계시로 우리의 신앙 교회는 어떻게 되어져야 되는가?

16페이지입니다. 계시란, 주일을 지키다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 예수의 증거, 둘. 주신 말씀으로 예수의 구원을 전하다보면 밧모라 하는 섬에 쫓겨갑니다. 밧모라는 섬에 쫓겨갈 것이 없이 말씀과 예수 구원 때문에 손해본 생활, 그 생활이 밧모입니다. 위축된 그 말이 밧모입니다. 왕따를 당했으면 그 왕따를 세상은 왕따라 그러는데 주님은 네가 밧모섬에서 고생을 하는구나 복 받아라 그러십니다. 세상이 볼 때에는 귀향 보내는 나쁜 곳을 밧모라고 하고 주님이 볼 때에는 혼자 복을 받아라.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6페이지 제일 위에 10절 세절은 다 그어야 됩니다. 20절이라 잘못 인쇄가 되었습니다. 밧모라는 섬에 있었더니 밧모섬은 요한, 오늘의 요한은 내가 요한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누군가? 2천년 전의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 요한이고 오늘은 내 현실의 요한은 내가 이 요한이 되어져야 되겠지요? 그래서 일부러 요한이 형제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별 것 없다 나도 너희와 같다. 너도 한 줌의 흙, 요한도 한줌의 흙. 요한도 한 개 더 먹으려고 열 두 제자와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요? 요한도 성격이 좀 급한 사람입니다. 다 우리 성질 급하지요? 그런 못난 요한인데 은혜 받으니까 사도 요한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니까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도 적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적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우리도 요한과 동급입니다 형제입니다.  앞서고 뒷서서 그렇지. 형제 요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했더라” 예수님이 환란 당할 때에 요한은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이래라 저래라할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견디라 할 때에 못 견뎠습니다 그때는. 그런데 예수님 부활 승천하고 나서 신인양성 일위의 주님으로 오셨을 때에 요한은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했습니다. 우리도 지난날에 예수의 환란, 구원의 고난, 주의 인도를 순종하는 나라, 이어지는 참음에 실패한 적이 많았고 대부분 우리가 그렇게 실패하다가 왔습니다. 그러나 요한도 한번 시험보고 떨어져 재수 두 번 떨어져 재수. 베드로도 1번 2번 3번 배신하고 도망갔던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 받고 돌이킨 다음 그 다음부터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이제는 동참하고 앞으로는 다시는 변치 않아야 되겠다. 그렇게 나아가십시다.

그런데 이 요한이 계시를 받았는데, 어느날 받았느냐? “주의 날에” 주의 날을 두글자로 줄이면 뭐라고 줄일까요? 주일입니다. 주일날에. 7일 중에 주일은 하루인데, 7일 중에 주일은 하루인데 주일을 실패하면 6일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일을 노래 부르는 것입니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주일날 성령에 붙들려야 한 주간이 살아나지 주일에 성령에 붙들리지 않으면 안 믿는 사람 한 주간이나 믿는 사람 한 주간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쉽게 말을 하면 주일 잘못 지켰으면 한 주간 마음대로 사셔도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일이 잘못되어도 또 6일을 바로 살아야 되는 이유는 다시 6일 바로 준비하면 다음 주일을 바로 살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1주일. 주일 받은 은혜로 다시 사는 일주일 그러면서 다음 주일을 준비하는 일주일.

“주일날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요한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앞을 보며 잘 산다고 살았는데 이게 맞다 이리 가야 맞다 열심히 살았는데 역사에 사도 요한이 계시록 적을 때에는 나이가 90살 100살 이렇게 많이 되었답니다. 주님 가신 다음 평생에 요한이 앞만 보고 바로 살았는데 바로 산 줄 알았는데, 주일날 성령이 앞에서 부르지 않고 뒤에서 불렀습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것을 돌이켜 다시 살아보자. 초등 6년을 훌륭하게 공부했으면 중학교 와서 공부할 것이 없습니까? 초등학교 6년 우등상 받고 개근상 받고 모범생이 되었으면 잘했다 그러나 중학 공부는 새롭다. 초등학교 6년 잘한 것은 잊어버려라 새 출발하자. 말하자면 그런 말이 된다. 오늘까지 살아온 것 훌륭하게 살아온 것 열심히 살아온 것 그 차원을 뛰어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살았고 밧모라는 섬에 좇겨났고 외로워졌고, 다시 만난 주일날 성령이 부르기를 앞에서 부르지 않고 뒤에서 불렀습니다. 요한 네가 살아온 것 잘 살았다 어릴 때에는 그렇게 사는게 맞다 전도도 그리 하는게 맞다 잘했다 그러나, 네가 오늘까지 알았던 예수 오늘까지 알았던 신앙과 다른 세계를 보여주마. 밧모라는 섬에서 주일날 성령이 요한을 돌려 세웠습니다. 다시 한번 새 출발을 하자. 죄 짓던 사람이 돌아서도 새 출발입니다. 죄 안 짓고 평생 충성하는 사람도 충성은 했으나 그런 시시한 충성 초급 단계 낮은 충성말고

그리고 12절부터 주님이 보였습니다. 주일날 밧모섬에 성령이 뒤에서 불러 돌아서니까 몸을 돌이키니까, 뭔고? 돌이키니까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아 이게 교회로구나. 교회란 금 촛대였구나. 교회는 금 촛대라고 가르쳤지만은 다시 보니까 아 이게 금촛대로구나.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요한은 예수님 무릎에 드러 누워서 어리광 부리던 요한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잘 압니다. 예수님 가신 뒤에도 예수님 동행해서 평생 살았습니다. 주일날 성령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며 또 다시 은혜 받고 주님을 새로 보니까 주님이 새로 보였습니다. 10살 아이가 자기 엄마를 몰라볼 리는 없지요? 1살도 아니고. 10살 여자아이가 자기는 엄마를 잘 안다고 큰 소리를 쳐도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아보니까 그때서야 아 엄마는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구나 엄마는 이런 엄마였구나.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반들은 이해가 되십니까? 10살 여자 아이가 자기 엄마 모를리가 있나요? 시집가서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아 엄마는 이런 엄마였구나 이 고생을 다 했구나 그리고 새로 본 엄마는 그 엄마의 얼굴이 그 엄마의 인격이 그 엄마의 존재가 달라보여야 그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를 정말 안다고 생각을 했데 자기가 낳아놓은 딸이 온갖 애를 다 먹여서 속을 썩일 때에 나이가 40되고 50이 되었을 때에 자기 낳아놓은 딸이 온갖 애를 다 먹일 때에 그때서야 아 아이를 낳았을 때에 엄마를 보고 나는 엄마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엄마는 엄마의 절반도 아니었구나. 내 딸년이 내 애를 먹이고 나니까 이제 엄마를 정말 알겠구나. 10살 때 알던 그 엄마, 시집가서 첫 아이를 낳았을 때에 친정 엄마 안다고 생각했던 그 엄마. 그리고 그 후에 알게 된 엄마는 똑같은 엄마인데 차원이 달라집니다.

남자로 말하면, 10살 때 알던 아빠와 직장가서 첫 월급 받았을 때에 아 그 날 먹여살린 아침밥이 등록금이 노름해서 따온 돈이 아니었구나. 한 달 일해서 남의 주머니에서 월급 가져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엄마도 고생했지만 아버지도 돈 버느니라고 애 먹었구나. 그리고 자기가 낳아놓은 아들 놈이 자기한테대고 애비 노릇 잘하라고 손가락질을 할 때에, 그때에 이제 맨날 아버지한테 대들었던 자리를 생각하면서 나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러는 겁니다. 인간도 어릴 때의 부모, 부모의 위치에 올라가봤을 때의 부모. 그 부모 위의 부모가 되었을 때에 완전히 달라지는데 주님의 세계는 사도 요한이 주님을 안다고 따라다닐 때 주님과 성령을 받고 평생의 주를 위하여 살 때의 요한과 노년에 밧모섬에 와서 주일날 성령이 불러 돌이켜 다시 본 주님, 그 주님 앞에 요한은 꼬꾸라져서 죽어버렸다. 주님을 제대로 보고 나니까 “죽은 자같이 되었더라” 어떤 주님인데? 일곱 금촛대가 보였다. 내가 교회를 개척하고 내가 교회에서 설교했던 그 교회가 일곱 금 촛대였구나. 그 일곱교회 교회 사이에 주님이 다니면서 목회를 하셨구나 내가 목회를 한 것이 아니었구나.

18페이지 넘깁니다. 그 주님을 보니까 그 주님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교회를 돌보셨는데 그 주님은 마음대로 다니셔도 되는데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조심하셨구나 그 분이 다 하셨구나 내가 한 줄 알았는데. “그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중심 그 중앙에 불변의 그 능력을 두르고 계셨구나. 주님의 머리를 보니까 “흰 양털 같고 눈같이 희었더라” 주님에게 속한 것은 어떤 것 하나도 성결 아닌 것이 없었구나. 양털 같다? 뭐 그랬으면 됐는데 왜 또 눈과 같다? 눈은 밖에서 와서 덮는 것이 흰 것입니다. 양털은 솟구치며 나오는 것이 흰 양털입니다. 안에서 자라 나온 것도 하늘에서 주셔서 덮었던 것도 안 팎이 전부 다 성결이었구나.

Comments

" 2020.05.0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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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14 13:35
그리고 주님의 눈을 보니까 “불꽃과 같은 눈동자다” 다 아셨는데 말씀 안하셨구나. 네댓살 꼬마들이 숨바꼭질을 하면 기둥 뒤에 눈 두 개 감춰놓고 자기 찾으라고 그럽니다. 숨었다고 그럽니다. 우리가 주님의 눈을 그렇게 보고 주님 없을 때에 죄를 좀 짓고 또 주님 볼 때에는 조심하고 주일날은 죄를 덜 짓고 평일은 죄를 더 짓고 다른 사람이 볼 떄에는 죄를 덜 짓고 다른 사람이 안 볼 때에는 죄를 짓고, 우리가 그러고 앉았었습니다. 남들이 봐주면 열심히 충성하고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모든 것을 보고 계셨는데, 그 주님의 발을 보니까 “빛난 주석 같더라” 하나님이신데 이 땅 위의 사활의 대속의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입에서 마구 책망이 나와야 되는데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주님의 오른손을 보니까 일곱별을 붙들고 계셨다. 어느 가정 어느 교회 어느 시대이든지 주의 종들은 주님이 붙들고 계셨구나. 주님 때문에 주의 종들을 조심하는 겁니다. 주님 입에서 검이 나오는데 양날의 칼이 나오는데 에베소 1장 17절에 보니까 “성령의 검” 말씀의 검. 주의 말씀 한마디 마디가 양날의 검이었구나 성령의 검이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주의 말씀 우습게 알았었습니다. 주의 얼굴을 보니까 “해가 비취는 것 같더라” 해는 성경에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 예수님 다 아는데? 요한이 예수님을 얼굴로 본 사람입니다. 그 예수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이 기억하고 요한이 직접 본 그 얼굴, 하나님이셨는데 예수님의 얼굴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이셨는데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얼굴로만 봤습니다. 밧모라는 섬, 주일에 성령의 감동이 들어 다시 보니까 주님이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이렇게 모르고 삽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인데 마음 들지 않으면 교회 욕도 해버리지 않습니까? 교회 발로 한번 차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부모는 가정에 온 하나님인데 부모 쥐어박지 않습니까? 욕도 하지 않습니까? 부모 없는데로 도망도 가보지 않습니까? 오신 예수님만 하나님입니까? 부모 얼굴 속에 하나님이 계셨는데 아내는 하나님의 딸이라 딸 정도가 아니라 보니까 그 아내 얼굴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는데, 힘 없다고 옛날에는 쥐어 박았지요? 요즘 이쁘다고 데리고 노느데 또 정신도 없지요? 그 아내 얼굴 속에 하나님은 나를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는데 보이는 사람만 봤지, 사람 뒤에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19페이지 제일 위에 요한은 주님을 바로 보고 알아차렸습니다. “그 발 앞에 죽은 자 같이 되었더라” 죽을 죄를 지었구나 이럴 수가 있는가? “주님이 오른 손을 요한에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말라” 네가 몰랐을 때에도 나는 그 주님입니다. 네가 알았을 때에 그 주님이다. 너 나기 전에도 그 주님이다. 천지 창조할 때에도 그 주님이다. 영원무궁토록 나는 변치 않고 그 주님이다 네가 몰라서 주님을 우습게 알았고 이제 좀 알았다고 주님을 안 것 같으나 주님은 영원불변이었다. “엎드려져서 죽은 자 같이 되매” 충격 받은 요한처럼 우리는 이렇게 마음에 좀 충격을 받아야 됩니다.

“오른손 얹고 두려워 말라” 주님의 위로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한 말씀을 덧붙인다. 봤느냐? 네가 주님을 봤느냐? 알았느냐? 알아 모셨느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를 기억하라” 교회란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종들이 있다. 일곱 별 일곱 교회의 사자다. 가정에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낸다. 남편에게는 아내. 아내에게는 남편이다. 좋을 때에는 좋다고 너무 난리이고 조금 싫으면 또 안 본다고 난리이고 그러지 말고 그 속에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일곱 별과 일곱 교회 촛대.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교회는 일곱교회의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종들이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시록 1장만 잠깐 살펴봤습니다. 저녁에는 일곱교회를 살펴보고 될 수 있으면 진도는 다 나갈 수 있지 싶습니다. 1장은 서론이라 좀 길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부터는 시간이 좀 짧아질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계시록 전체와 1장의 서론을 마음 속에 정리하십시다. 성경은 전체 몇 권이라고요? 66권. 65권의 결론은요? 계시록 65의 종합은요? 계시록, 65권의 중심은요? 계시록. 계시록을 알면 다 알고 다 알면 계시록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22장의 첫 번째가 서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는 계시. 뭘 보시라고요? 예수를 봅시다. 무엇도 함께 보여야 된다고요? 그리스도도 보여야 됩니다. 돈을 보며 구원이 보여야 되고 전염병을 보며 그 전염병을 통해 내가 자꾸 고쳐가는 그리스도가 보여야 되고 뭘 봐도 예수와 그리스도로 봐야 되고 무엇 속에도 예수와 그리스도가 깔려 있습니다. 예수 빠지고 그리스도 빠지면 불신자입니다. 그것 촐촐 추려 유황불보다 총, 폭탄보다 핵 폭탄보다 더 뜨겁고 더 참혹한 영원한 지옥을 한 곳에 두시고 너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 몰라 거기 내버리는 일을 하지 말아라. 너 마음씨도 너 시간도 너 눈빛도 너 말투 하나도 너 하루의 생애도 너 젊음도 너의 어제도 오늘도 너의 식사도 너의 예배도 너의 세상생활도 전부 그 속에 예수를 보고 그리스도를 보고 예수를 만들고 그리스도를 만들어가라.

방심하다가 놓쳐 버리면 곧 오시는 것이 아니라 와 버린 주님에게 재림의 소박을 당해버린다 한번 지나가면 그 현실은 두 번 오지는 아니한다 긴장하고 조심함으로 만사 모든 것을 예수로 보고 그리스도로 보고 예수를 캐내고 그리스도를 캐내고 예수로 나를 만들고 그리스도로 나를 만들어 가자는 집회입니다. 


기도 드립시다.

세상 끝에 저희들을 두시고 역사에 한번도 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현실을 우리 앞에 이렇게까지 펼쳐 놓으시고 금번의 집회를 계시록으로 준비를 미리 시켜주신 주님. 예수로 만사를 보고 그리스도로 만사를 찾아 내 마음과 내 생활 속에 예수만 자라가고 그리스도만 자꾸 넘쳐가는 순간 순간이 되도록 우리의 인식 우리의 생활 우리의 신앙 우리의 매 순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결론을 맺는 열매 맺는 전부를 삼는 한 길만 가게 인도해주옵소서. 1년 속에 근심 속에 불안 속에 집회를 마련하시고 한 줄기 빛과 길을 주사 신앙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온 몇 사람을 여기 불러 먼저 이 말씀을 새기게 하셨으니 우리로 그치지 말고 주변으로 남은 평생 열심히 전하여 금번 기회로 오실 주님을 더욱 심각하게 깨달아 다시는 나태하거나 방심하다가 후회로 이어지지 않도록 인도해주옵소서. 안전을 주시고 은혜 주시고 능력 주사 금번 집회가 예수와 그리스도의 계시만이 남고 닮고 자라가는 기회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정 : khr
교인 2020.06.29 14:57
제목 '예수와 X의 구원실상'에서 X는 무슨 뜻인지요?
교인 1 2020.06.30 08:52
그리스도입니다.
서기 2020.06.30 21:15
영어로는 christ
헬라어는 xrist
그래서 Ch => X
          Christmas => X-mas, X마스
이렇게 표시합니다.
원래 이런 표시는 저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제 때 선교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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