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20.8.5 레17:1 하나님 연결의 생명을 아끼고, 모든 인인관계의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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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20.8.5 레17:1 하나님 연결의 생명을 아끼고, 모든 인인관계의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성결

교인 2 298 2020.08.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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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20.8.5 레17:1 하나님 연결의 생명을 아끼고, 모든 인인관계의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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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핑, 교정완료)
* 교재는 pkists.net/초기화면/자료실/연경자료 3631번에  올려 놓았습니다.



200805 집회 8 (수전)

제목 : 하나님 연결의 생명을 아끼고, 모든 인인관계의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성결

찬송 : 51장, 43장, 60장

본문 : 레위기 17장 1절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깨끗하신 주님을 사모함으로 우리 자신 하나하나 음식과 출산과 접촉과 유출을 통하여 깨끗하게 자기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지고 자기를 깨끗하게 만든 하나님의 귀한 이 생명, 이 귀한 신앙으로 맡겨 주시면 주변에 식구들 신앙의 사람들 범위를 넓혀가며 점점 깨끗하게 나가는 우리는 현실에 대제사장 되어 어디에 두셨든지 주변을 생명과 깨끗으로 넓혀가는 복음 운동에 번제의 제단 위에 제물이 되어 주님 생존의 기간을 얼마든지 주셔도 복이 되도록 사용하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어두워질수록 밝아지며 험할수록 주님 앞에 더욱 순진한, 순전한 신앙이 됨으로 말세를 넉넉하게 맡길 수 있고 우리는 받을 수 있는 말세의 상도 귀한 이 시간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천하와 한반도 안팎과 우리 주변과 우리의 모든 생활까지가 정신없이 복잡하게 질주하고 있는데 금방 이곳 깊은 산골에서 주님한테 받은 말씀으로 남은 때 우리는 한 걸음씩 든든한 주님을 바라보고 온유하게 나아가는 앞날이 되므로 말씀을 통해 오는 복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각자의 생활 속속들이 마음, 생활, 말, 행동, 자세까지 깨끗하게 바르게 복되도록 변화의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또 한 번 정리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금번에 배우는 말씀은 레위기입니다. 나를 깨끗하게, 우리를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깨끗하게 만들어놓으면 복은 저절로 위에서 쏟아지고 담겨지고 넘쳐흐릅니다. 함께 따라하십시다. 깨끗한 성결. 그리 살면 위생도 좋고, 가정도 좋고, 사업도 든든하고 좋고,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깨끗하게 개인 성결, 나를 깨끗하게 만들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나 주변 가정, 나 주변 사회를 깨끗하게 나아가는 겁니다. 나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순서가 있었던가요? 4가지였습니다. 음식. 깨끗한 것을 먹어야 깨끗한 사람이 된다. 두 번째 출산이었습니다. 깨끗한 걸 먹어 깨끗한 생명을 가져야 된다. 세 번째 접촉을 조심하라. 깨끗하게 먹어 것을 깨끗한 새 생명을 하나님 앞에 만들어놓았는데 이게 살아가다가 더러운 걸 접하게 되면 큰일 나니까 접촉, 친구, 주변, 환경, 모든 접촉을 깨끗하게 구별하고 길러갑시다. 나도 그렇게 기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길러야 됩니다. 그 다음 네 번째는 유출을 조심하라. 내 속에 가두고 있어야 될 것이 날 통해 내 밖으로 나가면 자타가 다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먹고 깨끗하게 낳아 곧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전도하여 새 신앙 만드는 것도 출산. 내 속에 새사람, 새로운 신앙을 또 한 번 만드는 것도 출산입니다. 늘 접촉을 조심하고 안에 가두어둘 것은 잘 보관해야 되지 밖에 벌대로 내 놓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깨끗해지면 이제 주변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출발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나를 깨끗하게 먼저 대제사장 아론 자기를 먼저 깨끗하게 만들고 내게 맡긴 백성들을 수송아지, 수양 두 마리로 씻어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 다음. 이번 6번에서는 집회 교재 전체에서, 94페이지입니다. 6번의 제목은 짐승을 잡으면 뭐라고 한다고요? 제목? 도살이라 그럽니다. 도살장. 소 잡는 데. 도살장. 짐승을 잡을 때에 조심해라. 이렇게 해야 깨끗하다. 왜 짐승 잡는 것으로 주변과 환경과 자기 식구들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주셨을까? 내가 깨끗하게 나를 씻고, 그 다음 이스라엘의 도살법, 짐승을 잡는 법은 반드시 살아 있는 짐승을 잡아야 되지 죽은 걸 잡아먹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소는 먹을 수 있는데 살아 있는 소를 죽여서 먹지. 산 소가 아닌 돌아다니다가 혼자 죽은 소, 병들어 죽은 소, 맹수에게 잡혀서 찢겨 죽은 소는 소라도 못 먹게 되어 있습니다. 산 짐승을 먹어라. 죽어 있는 짐승은 먹지 말라. 왜 산 짐승을 먹으라고 그랬을까요? 생명을 가져라. 찢겨 죽은 소, 병들어 혼자 죽어버린 소, 그 소는 죽은 소. 사망을 가지지 말아라. 하나님과의 연결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94페이지 교재 위를 봅니다. 도살이란 말은 생명법입니다. 짐승을 죽이든 어떤 종류의 기회를 박탈하든 생사에 관한 것은 꼭 이 말씀을 먼저 지켜야 됩니다. 이게 도살법의 순서입니다. 무릇 이스라엘 집에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든지, 잡으면 소를 잡거나 양을 잡거나 염소를 잡거나, 이번 집회 교재의 제일 첫 번째 음식에서 육지의 동물을, 육지의 짐승, 육지의 생물을 먹을 수 있다. 무엇 무엇을 먹을 수 있지요? 소나 양이나 염소는 쪽발을 가졌고 새김질하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여기 6번 도살에서도 이스라엘 집에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신앙의 사람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먹을 수 있다. 저절로 죽고 혼자 죽은 것은 안 됩니다. 죽은 것은 사망이니까. 산 소를 잡아먹어라. 살아있는 소라니요? 살아있는 양이라니요? 생명 가진 것을 가져라. 이미 죽어 생명이 없어 사망 밖에 없는 것은 소도 안 되고, 양도 안 되고, 염소도 안 됩니다. 지금 생명을 가지고 있는 소, 지금 살아 있는 양, 지금 생명을 가지고 살아서 움직이는 염소, 그 속에 생명이 들어 있는 것은 먹어도 된다. 생명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소를 먹을 수 있는데 소가 그만 혼자 죽어버렸습니다. 맹수에게 잡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소는 먹을 수가 있는데 죽은 소 속에는 생명이 없고 사망이 들어 있습니다. 사망은 가지고 오지를 말아라. 이게 순서입니다.

다시 보십시다. 무릇 이스라엘 집,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일학생이든지 오래 믿은 사람이든지, 급하든지 아니면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소, 양, 염소는 먹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소, 양, 염소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을 가지면 생명을 가지는 거다. 소, 양, 염소는 똑바로 걸어간다 그랬습니다. 살아가며 옳은지 틀렸는지 하나님이 기뻐하는지 귀신이 좋아하는지 죄인지 의인지 늘 2가지로 쪼개어 나누어 구별하며 걸어가고. 그리고 뭘 보든지 뭘 생각하든지 한번 생각 두 번 생각 세 번 비교, 네 번 따져보고, 따져보고 살펴보고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도 망하는 길이니까 가지 말아야 되겠다. 이거는 모든 사람이 가는데 옳은 길이 나도 가야 되겠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하고 따져보고 연구하고  살아가는 짐승 걸어가는 짐승 일하는 짐승을 가르쳐서 소, 양,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신앙생활 하는 범위 안에서 이것을 잡아먹든지, 신앙생활 하는 바깥세상에서 잡든지. 먼저 1차로 회막 문으로 끌어 오너라. 소, 양, 염소를 잡아먹을 수 잇는데 잡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회막, 성막, 성전 문으로 끌어다가 회막 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장막 성전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먼저 드리고. 그리고 먹어야 되는데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먹는 자는 생명 있는 소를 잡아도 피 흘린 자, 생명을 죽인 자로 여길 것이라. 그래서 살아 있는 소, 양, 염소를 잡을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로 그대로 가지고 와서 먼저 예물로 드리고. 그리고 나서 이제 소를 잡고, 양을 잡고 자기 가족과 자기 주변이 모두 먹을 수가 있는 겁니다.

가운데를 보시겠습니다. 짐승을 잡는 것을 도살. 어떤 도살이든지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린 후에 잡아라. 먹어라. 그리고 계십니까? 어떤 좋은 것도 어떤 생활도. 예전에 학교 간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 전에 예배당에 잠깐 들러 오늘도 주님 동행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간다면 하나님 앞에 자기의 하루의 생명을 예물로 드리고 출발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거지요? 결혼식을 하면서 예배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은 가정 교회가 출발합니다. 우리 부부 하나님 앞에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저희들을 받아주옵소서. 그게 예배당 결혼식입니다. 목사, 교인 있는데서 결혼식하면 멋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 가정을. 뭐든지 그렇습니다. 도살. 어떤 도살이든지 하나님 앞에 먼저 예물을 드린 후에. 월급 받으면 먼저 십일조를 떼는 것이 십분의 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분의 구는 내 것인가요? 열의 열 전부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시로 십분의 일은 뗍니다. 그래서 나머지 십분의 구도 하나님이 맡긴 줄 알고 쓰겠습니다. 이게 믿는 사람의 모든 정신입니다 자세입니다.

예물을 드리다니요? 예물은 화목제 예물을 말합니다. 본문 5절을 볼까요? 성경.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맡겨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양을 잡을 때, 짐승을 잡을 때, 잡아먹을 때에 먼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하나님하고 나하고 한편이 된 다음에 도살하라. 직장을 가라. 하나님과 나하고 한편이 된 다음 아이를 낳아 길러라. 새로 출근하며 하나님과 나하고 한편이 되어 직장을 출발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든든하겠습니까?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식 하는 날 교복 입고 선생님이 누군가? 친구가 누굴까? 쫓아가기 전에 하나님과 나하고 한편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학교를 가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해외여행도, 결혼도, 직장도, 등교도, 중요한 시험 치러 가는 날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함께 가면 좋을 겁니다. 화목이라는 것은 하나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하고 한편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예물, 화목제 예물을 말합니다. 누구와 한편이 되는 거라고요? 하나님과 한편이 되라. 그러면 뭐 세상은 든든한 겁니다.

그 다음 도살의 역사, 양, 소를 잡는 역사는 어떻게 시작이 되느냐면 원래 에덴동산에서는 채식만 하게 하셨습니다. 채소와 과일만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 이후에 소나 양을 먹는 육식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육식은 허락을 하는데 육식을 해라 허락하는데, 다만 피는 먹지 말아라. 왜 피를 못 먹게 했느냐? 사람과 짐승의 생명이 피니까, 피가 빠지면 생명이 없으니까 피는 생명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짐승 중에 짐승 안에 있는 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그거 맛있는데 영양가도 있는데. 맛이 있고, 영양가 있어도 피는 손대지 못하게 함으로 너희들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이걸 인식을 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피는 금지를 시켰습니다. 피를 금지시킴으로 생명이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니 생명은 손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라. 생명이란 하나님과의 연결을 생명이라 그럽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생명만은 하나님의 것이지 내가 줬다가 빼었다가 맡겼다가 찾아왔다가 가졌다가 말다가 그런 것이 아니라. 도살의 역사입니다.

그 다음 3번 94페이지 밑입니다. 육식이라는 것은 소, 양, 염소 이런 짐승을 잡아먹는 걸 육식이라 그러는데 레위기 11장에는 음식을 가르치면서 육식을 주셨습니다. 아무거나 먹지 말고 깨끗한 것을 먹어라. 물고기를 먹을 때에는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는 걸 먹어라. 어떤 죄악 세상을 살아도 방향을 옳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이걸 지느러미라고 그러고. 하나님의 보호 없이는 세상을 못산다. 하나님의 보호로 하루하루 살아라. 물속에 있는 물고기도 먹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이런 생명, 이런 생활을 하라. 이런 것들 가르친 것이 레위기 11장입니다. 왜 먹는 음식을 가르쳤느냐? 먹는 대로 인격이 형성되니까. 더러운 걸 먹으면 더러운 짐승, 깨끗한 걸 먹으면 깨끗한 사람, 깨끗한 공부하면 깨끗한 지식이 들어갈 것이고, 도둑질 배워 도둑질 공부하면 도둑놈 될 것이고.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 자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고 복을 주는 깨끗한 것을 먹어라. 그래야 인격이 형성되니까 깨끗하게. 그런데 왜 짐승을 먹으라고 주셨느냐? 짐승 먹고 짐승처럼 살지만은, 살지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잊지 말아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입장을 표시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육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채식만 주셨습니다. 채식, 채소만 먹고 살다보면 사람들이 마음이 든든해지고 평안해지고 차분해집니다. 고기를 많이 먹고,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성격이 좀 빠르게 되어 있고 욱하게 되어 있고 그 다음 다른 사람을 쥐어박는데 날쌔게 되어 있습니다. 음식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데 이런 음식을 가지고 천지 창조 이후 노아 때까지는 채식으로 노아 홍수 이후에는 동물 육식을 주면서 이제 세상이 바쁘게 돌아갈 거다. 세상이 흉악하게 돌아갈 거다. 세상이 막 그냥 엉망이 되어질 거다. 그러나 육식을 하되 깨끗한 육식을 하고 그 다음 죄악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맡기는 사명, 위치에서 감당 하거라. 그래서 죄악 세상을 더 험하게 만들면서 그 죄악 세상 속에서 자기 가질 위치와 자기 가질 사명 때문에 육식을 더하여 주신 겁니다.

96페이지 넘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나 양을 먹으려거든 먼저 하나님 앞에 와서 잡아라. 예물로 드리고 나서 먹으라, 잡아라. 그리고 사용을 하라. 하나님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화목제라 그랬습니다. 17장 6절입니다. 짐승을 잡기 전에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려고 가져오거든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짐승의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옛날에는 믿기 전에 불신자들처럼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사람인데 하나님을 모르니까 무엇을 하나님인줄 알고 섬겼느냐? 수염소를 섬겼습니다. 수염소가 귀신이 되고, 신이 되어, 수염소는 어떤 짐승입니까? 음란한 짐승, 시기 많은 짐승, 고집불통의 짐승 이런 것을 신이라고 섬겨놨으니 누구를 닮을 것이며 누구처럼 되어질 겁니까? 수염소를 섬겼으니 수염소같은 인간이 되고 말 터인데 이제 그런 짓을 하지 말고 그런데 다시 제사를 드리지 말고, 8절입니다. 믿는 사람 너는, 너희들은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번제나 희생을 드리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관리 안에 있는 사람 내가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 화목제의 법에 해당이 됩니다.

밑에 교재 가운데 봅니다. 피를 단에 뿌리다니요? 예수님의 대속, 예수님의 피를 성경에 이 피라고 하는 겁니다. 원래 피는 생명인데 죄를 지어 우리는 죽을 목숨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나 죄 때문에 대신 죽었으니 늘 주님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 주님이 목숨을 날 위하여 바치셨다. 감사함으로 소도 먹고, 양도 잡고 그러거라.  예수님의 대속에 의지하여. 안 믿는 사람은 소 잡아먹고 양 잡아먹고 힘 있게 세상을 살아야 이기지. 즐겁게 살지. 그래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 살아가는 힘을 얻지만은 믿는 사람은 그런 안 믿을 때의 생활은 접어버리고 주님 날 대신 죽음으로 나를 살려두셨나이다. 그래서 내 생명, 내 생활은 주님 소원대로 구원의 복되게 살아야 되겠나이다. 나를 깨끗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고 길러가기 위하여 나의 시간, 나의 생명 바쳐 살겠나이다. 목숨을 바쳐 순교할 정도의 신앙이 되지 않으면 작은 목숨, 작은 생명이라도 바치자 그랬습니다. 큰 생명을 바치는 것은 손양원 목사님처럼 목숨 받쳐 순교하는 걸 말하고 우리는 순교할 만한 형편도 아니고 실력도 되지 않지 않습니까? 이런 우리들은 작은 생명이라도, 작은 생명이라도 받쳐 살자. 작은 생명은 새벽에 무엇이 작은 생명이라 그랬던가요? 시간이 작은 생명입니다. 100살 살다갈 사람이 1년을 하나님 앞에 기울였다면 1년짜리 생명을 바친 사람입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80살 살고 죽는 사람은 80년 시간을 다 썼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10살 아이가 죽는 것은 10년짜리 시간만 받았기 때문에 10년 시간을 다 쓰고 나면 가야 됩니다. 안타깝지만은. 반대로 말하면 나의 1시간을 주님 위하여 사용하면 1시간짜리 작은 생명은 하나님께 받친 사람입니다. 큰 순교자, 위대한 순교자는 되지 못해도 1시간짜리 순교자라도 되거라. 작은 순교자, 뽀시래기 순교자, 모래알 같은 작은 순교 하나 하나를 쌓아 가다보면 순생의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지켜보다가 너는 지난 날 매일 매일 매 시간 시간을 주께 붙들려 주로 살았구나. 작은 순교를 적금했고 저축했구나. 그 정성을 보니까 너에게는 마지막에 죽는 순간을 순교의 기회로 줘야 되겠구나. 이렇게 주시지. 여기 있는 저나 우리처럼 대충 살고, 뭐 그냥 그저 그만큼 산 우리한테는 순교할 그런 기회를 주지를 않으십니다.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사람한테 고등학생 시험 문제를 내면 시험 문제를 낸 선생님이 틀렸지. 고등학교 3학년쯤 공부하고 준비가 된 학생에게 고등학교 시험문제를 내지.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유치원 수준, 중학교 수준, 초등학교 수준 밖에 되지 않는데 대학 졸업 시험처럼 어려운 순교를 쳐봐라 이렇게 주지를 않으십니다. 순교 당할까 겁내지 마십시오. 저도 순교 당할까 겁나지를 않는 이유가 평소 산 것이 순교 당할 만큼 준비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 순교할래? 이렇게 물어볼까요? 매일 매일을 들여다볼 때에 참 알뜰하게 시간 시간을 주를 위해서 받치는구나. 청년 때도 그랬구나. 화날 때도 너를 잡았구나. 평안할 때도 하나님 앞에 조심하는구나. 시간 시간 시간이 하나님 앞에 바쳐서 귀하게 자기 옛사람을 딱딱 죽여 사는 사람을 지켜보시다가, 너는 49년을 주님 앞에 깨끗하게 바쳐 살았으니 49살에 순교로 오거라. 49에 순교로 하나님 앞에 가신 분 이름을 아십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49에 갔습니다. 그 지난 날 49년을 하나님이 내려다보실 때에, 어려울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바쁠 때도, 좋을 때도, 건강할 때도, 병들 때도 너는 너의 시간을 꼬박 꼬박 순생으로 주님 앞에 작은 순교로 바쳐 쌓아놓은 걸 보니까 너무 많아서 됐다. 그러면 마지막까지 순교로 오거라. 이렇게 데려가시지. 우리처럼 놀 거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요즘은 시골도 심방가려면 차 가지고 심방가지 자전거 타고는 심방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차가 위험해서. 자전거 타고 갈 길이 없어서 차를 타고 심방을 가야 되니 자가용 타고 심방 가는 네가 하나님 앞에 바친 정성은 너무 적다. 예전에는 전도가고 심방가려면 걸어가야 되고, 잘 해야 멀리 갈 때 자전거 타고 갔습니다. 얼마나 뻘뻘 땀 흘려 수고를 했는지. 그런 정성을 보시고 순교의 기회를 주지. 요즘처럼 먹을 것 좋은 것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 이런 때는 순교의 기회를 주지도 않으시니까 순교 당할까 겁내지 마시고. 그 좋은 거는 좋은 건데, 순교 당할 만큼 그렇게 시대가 그렇지 않으니까 우리는 방향을 어디에다가 대고 쏟아야 될까? 오늘 하루를 바쳐 작은 순교라도 하자. 그건 하면 하는 겁니다. 이 좋은 8월 첫 주간 휴가철 화요일, 수요일 날 사방 천지를 돌아다녀도 되는데 산 속에 예배 말씀 1번 들어 또 다시 나를 고쳐야 되겠다.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한 시간, 여기 있는 두 시간, 여기 있는 세 시간. 이것은 딱 하나님께 이렇게 바쳤으면 한 시간 두 시간 작은 순교는 되는 겁니다. 이렇게 10원, 100원 1,000원 10,000원을 또박또박 적금하고, 저금을 하면 나중에 돈이 많이 쌓여서 부자가 되는 겁니다.

피를 단에 뿌려라. 예수님의 대속에 의지하여 살아라. 그리고 짐승을 잡으면 짐승 속에 기름이 있는데 이것은 작년 8월에, 5월입니까? 8월에, 5월에. 오대 제사 때에 배웠습니다. 기름은 귀한 겁니다. 요즘은 하도 부자가 되고 하도 잘 먹어서 기름기 없는 갈 먹으려고 생난리인데 이건 역사에 없던 때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자연 환경은 짐승 먹기가 어렵고 어떻게 하다가 짐승을 먹게 되면 고기도 맛있지만은 그 고기 속에 있는 기름이라는 것은 얼마나 배고픈 사람, 말라빠진 사람들한테 소중한 건데. 그 옛날 시절의 기름은 좋은 겁니다. 좋은 선물. 좋은 기름을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성경에 기름이 나올 때는 늘 무엇을 생각하자 그랬지요? 성령의 역사는 기름으로 표시를 합니다. 물은, 씻는 것은 말씀으로, 진리로 씻고, 기름은 성령의 역사, 성령에 따라 개별 개별 한 사람 사람이 해야 될 사명을 맡아가고.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를 버려라. 수염소란 말은 특별히 사욕을 말합니다. 양을 길러본 분들이 양들을 길러보면 어른 양은 새끼 양 생각하고, 청년 양은 나이 많은 양을 생각하고, 먹을 것이 많은데 내가 먹고 나면 다른 양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서 먹을 수 있는 풀을 먹으면서 밟지 않고 그렇게 신기하게 그렇게 다닌답니다. 염소는 좋은 것 먼저 뜯어먹고 나머지는 다 밟아버린답니다. 남들 먹을까봐. 사촌 논 사면 배 아플까봐. 먹고 나서 남들 따라 먹을까봐 그냥 뭘 휘적거려 놔버립니다. 이런 우리 속의 심사를 염소라, 염소 중에서도 수염소라. 자기중심의 사욕. 또 자기중심으로 살다보니까 부딪히면 떠받고, 부딪히면 분쟁이 일어납니다. 따라합시다. 사욕과 분쟁. 짐승 중에 어떤 짐승이 그렇다고요? 염소가 그렇습니다. 특별히 염소 중에 무슨 염소요? 수컷 염소. 남반을 말합니까? 여반을 말합니까? 특별히 우리 남반들은 염소 중에서도 나는 수염소 될라. 어디든지 떠받아 놓고 보는. 그런데 아이는 좀 안고 살아야 될 건데, 아이도 떠받아버리면 왜? 자기중심으로 살려니까 애들을 희생시키지. 부부 간에도 자기 아내인데, 자기 여자인데 남편이 자기 편 안 들어, 자기 사욕대로 살려니까 하나 밖에 없는 아내도 떠받아버리지. 많은 남자분들 우리 부모님 시대들 남자로 태어났다고 자기 아내, 우리의 어머니들 많이 부려먹었습니다. 오랜 세월 많이 부려먹어 놓으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여자 세상을 만들어서 당해봐라. 요즘 남반들 억울하시지요? 요즘 남자로 태어나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억울한 게 많습니다. 억울할 때마다 조상 대대로 남자로 태어났다고 하도 여자를 착취를 해놓으니까 당해봐라, 회개하라, 그러라고 주셨으니까 원망하지 마시고. 조상 대대로 남자 되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딸들을 착취를 해놓으니까 우리에게 이런 때를 주셨구나. 그리고 회개하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될 겁니다.

사울 왕 때에 여호수아가 약속했기 때문에 죽여서 안 되는 사람들을 사울이 죽였습니다. 사울이 잘못 죽였으면 사울 시대에 하나님이 때려야 되는데 사울은 못 갚는 사람이니까 놔뒀다가 다윗이 왕이 되고 나니까 사울 때 잘못 죽인 것을 다윗 때 흉년을 주면서 빚을 갚으라 그랬습니다. 왜 사울이 잘못된 걸 다윗에게 빚을 갚으라고 그러지요? 사울은 상종 못할 인간이니까. 알아듣지를 못할 인간이니까. 사울이 왕인데 다윗이 그 다음 왕이 되었으니까 그 나라이니까 다윗에게 책임을 맡겼고 다윗은 신앙으로 사울 시대까지 책임 져야 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맡긴 겁니다.

오늘 남반들에게 불리한 세상이 됐는데 ‘아이 조상 대대로 그냥 남자 분들 아버지들이 잘못해가지고 내가 고생한다’ 이러지 마시고 아버지 할아버지 조상대대로 옛날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 하나님께서 가만히 놔뒀다가 오늘 우리는 신앙이 있고 말이 통하니까 우리한테다 데고 남자로 태어나 여자를 쥐 박은 값을 오늘 우리에게 갚으라고 청구를 하시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역사 이후에 남자들이 남자 노릇 못한 것을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에 위대한 사람이 되어지는 좋은 일입니다.

96페이지 밑에 입니다. 다른 제사는 아니 된다. 내국인이든 외국이이든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는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릴 수 있다. 그래서 결혼할 때 믿는 결혼이 중요한 겁니다. 나 혼자 살 때는 나만 예배드리면 되는데 내가 결혼하고 나면 가정 교회가 되어 우리 식구 전체 안에서 믿든 안 믿든, 잘 믿든 못 믿든 이방 신은 아니 된다. 한 몸이 되었으니까 그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제사도 하나님께만 드리지 제사는 하나님 외에 수염소도 안 된다. 어떤 것도 아니 된다 이렇게 막아놨습니다.

98페이지입니다. 생명을 두고는 피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시 94페이지로 돌아옵니다. 도살은 무엇을 도살이라 한다고요? 짐승을 죽이는 것을 도살이라 그럽니다. 죽일 때에 순서가 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그 다음 96페이지 넘어와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요?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하고 한편이 되어 그 다음 세 번째로 98페이지 넘어와 가지고 생명은 피의 법칙 생명의 법칙이 있다. 생명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라. 1번 피라는 것은 무슨 표시라고요? 생명을 뜻합니다. 생명 표시입니다. 생명이란 다 같이 ‘하나님과 연결’ 처음 연결 될 때는 연결이고 그게 쭉 이어지면 동행이라 그럽니다. 하나님과 연결, 연결이 계속 가면 동행. 하나님과 연결 하나님과 동행 늘 기억합시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 살아 있는 사람, 직장은 가는데 바빠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직장 가면 생명은 떼 내 버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생명 떼 내 버리고 직장 다녀 본 분들 많지요? 시험 칠 때 하나님 떼 내 버리고 시험 치느라고 정신없었던 사람 많지요?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님과 끊어지면 죽었다. 신앙이 죽었다. 물에 갔다가 저 간 떼 놓고 갔던 게 누구지요? 우리 전지효인가요? 저 수영하러 갔다가 간 떼 놓고 간 애가 누구지요? 개? 토끼? 토끼가 거북이 따라 저 잠수하고 수영하러 갔는데 간을 떼 놓고 갔답니다. 간 떼 놓고 돌아다닐 수 있나요? 생명을 떼 놓고 직장 가는 사람, 생명  떼 놓고 학교 가는 사람, 생명 떼 놓고 진급하는 사람, 생명 떼 놓고 여행하는 사람, 생명  떼 놓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맛있게 외식하는 사람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 행복한데 좋은 세상을 사는데 하나님이 볼 때는 아무리 빠쁘다고 생명을 떼 놓고 가고 아무리 식구들이 사랑하고 외식을 간다고 생명까지 떼놔. 그러지 마십시다.

피의 법칙, 피란 다 같이 무슨 뜻이라고요? 생명. 생명은 무슨 뜻이라고요? 하나님과의 연결, 연결이 계속 되면 뭐라고요? 하나님과 동행. 이게 생명이며 이 동행이 하나님이 나와 한편이 되어 나를 지켜주니 이게 실력이고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떼 놓고 살면서 ‘주여 능력을 주옵소서!’ 하나님이 저 같아도 안주겠는데 하나님이 주겠습니까? 손을 위로 치켜들고 능력을 주옵소서. 축복 주옵소서. 아무리 설쳐도 주면 너 망할까봐 못 주겠다. 하나님은 걱정하고 쳐다봅니다. 15살 남자 아이가 용돈 백만원 주십시오. 야 이놈아 돈이 있어도 못주겠다. 백만원 줘 놓으면 백만원 나쁜데 쓰다가 너 버려서 못쓴다. 돈 백만원도 아깝지마는 백만원 가지고 나쁜짓을 하면 백만원치 나쁜 아이가 될 것인데 줄 수가 있습니까? 요것은 천원을 줘 봐도 아끼고 이천원을 줘 봐도 저금 하고 오천원을 줘 봐도 참 잘 귀하게 써서 부모가 볼 때 참 어떻게 저렇게 저금할 것 저금하고 살 거는 사고 어떻게 잘 쓸까? 이런 아이에게 돈이 있으면 백만원이라도 주고 싶지. 백억이라도 주고 싶지. 돈이 있으면. 다 그런 우리 학생들이 돼 있나요? 너는 돈 있어도 못 주겠다. 너한테 돈 줘 놓으면 돈 내버려서 돈 아깝고, 그 돈 쓰느라고 너 나쁜 사람 되고, 너 나쁜 사람 되라고 돈을 줘? 사람도 다른 사람한테 맡길 때 그럴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기뻐하는 생활 하면서 기도하지 아니해도 하나님이 먼저 알고 주신다 그랬습니다.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아시느니라’ ‘구하지 아니해도 먼저 아시느니라’ 행동은 틀렸고 복 받기는 어렵고 하나님이 건강 주면 약한 것 쥐 박고 싶고, 하나님께서 돈 주시면 막 부자라고 뻐기고 가난한 자들을 갖다가 마구 질근 질근 짓밟고 싶은 사람한테 하나님께서 부자를 만들어 주면 전국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저 부자를 욕할 때 저 부자를 만든 하나님을 욕할 건데 하나님이 그런 욕을 얻어먹으려고 만들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짐승의 피, 생명을 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동행이기 때문에 비록 짐승의 피라도 피를 마시거나 피를 잘못 흘리면 하나님은 사망의 법으로 처리를 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그래서 피의 법칙 생명의 법칙을 잘못하면 사망으로 처리합니다. 그래서 사냥할 때도 잡으면 피를 빼어 흙으로 덮어라. 왜?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 것으로 내가 가지고 내가 먹을 수 없고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 그 뜻입니다. 죽은 짐승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은 짐승은 먹지 말아라. 짐승이 죽어버리면 피가 짐승 고기에 뻗쳐져 버립니다. 피를 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죽은 짐승은 먹지 못합니다. 부정합니다. 반드시 살아 있는 짐승을 잡아서 먹어라. 병이 걸려 저절로 죽었던지 또는 맹수에게 잡혀서 죽은 짐승은 생명이 없고 죽어버렸으니 그 짐승을 내가 가지고 내가 먹는 것은 사망을 가지는 것이니까 그리 하지 말아라. 사냥법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18장 넘어갑니다. 남녀 이성의 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말씀의 위치를 보고 계시지요? 레위기 11장에서 15장까지는 나 개인을 깨끗하게, 16장으로 오면 주변 내 식구들을 깨끗하게, 식구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깨끗하게, 그리고 17장에서는 내 식구들을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귀하게 만들어 가려면 생명의 법을 조심해라. 생명을 아끼거라. 생명을 전하거라. 그래서 깨끗한 생명이 되면 깨끗한 생명은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는데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이 따로 만들어 남자에게 준 위치가 있고 사명이 있고, 여자는 여자에게만 맡겨 놓은 일이 있고 사명이 있고 각각 있으니, 남자는 여자 쪽으로 가서 서지 말고 여자는 남자 쪽에 가서 서지 말아라. 그러기 위해서 예배드리는데 이렇게 가운데를 나눠놓고 남반은 오른쪽 여반은 왼쪽 이렇게 나눠 앉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눠 놔 봐야 마음이 도망 다니면 어떻게 잡겠습니까? 마음이 남반에서 여만으로 도망 다니고 찾으러 다녀도 마음 다니는 것을 막지를 못하는데도 무식하게 남반 여반 이렇게 나누어 앉혀 놓은 것은 남반 자리에 앉아 가지고 여반 얼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양심이 찔리게 되어 있거든요. 예배당에 남반 여반을 구별해 놨으니 교회에서는 그래도 남자 여자 나눠 앉아야 되지 않겠냐? 요래 놓으니까 남자 마음이 여반을 기웃거리고 싶어도 자기 양심에 찔려서 조심하라는 뜻이지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이렇게 막을 가운데 해놓은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18장 남자와 여자 둘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둘이 다르기 때문에 이성이라고 그럽니다. 한번 기억해 볼까요? ‘남자, 여자, 이성.’ ‘남성, 여성, 이성.’ 둘이니까 이성인데 그냥 둘이 아니라 아예 너무 달라 버리니까 너무 너무 다르니까 다를 이자 이성입니다.

8장. 한번 성경을 먼저 보십시다. 성경 본문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신앙의 지도자에게 먼저 말씀을 하십니다. 내 속에 신앙 있는 자기 신앙 있는 부분을 먼저 붙들고 하나님이 일을 해나가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는 네 안에 너 내면을 잘 들여다 보거라. 너 가족들을 잘 살펴 보거라. 교인도 살펴보고 집안도 살펴보고 주변도 두루두루 살펴보고 말하거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잘 들어라. 약속이다. 계약이다. 잘못 들으면 큰일 난다 그 말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절입니다. 3절은 교재로 와서 100페이지 위에입니다. 교재 100페이지 위에 남녀의 이성의 원칙은 3절에 너희는 그 거하던 옛날에 살던, 애굽 땅의 풍속을 쫓지 말아라.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애굽 나라에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애굽 나라에서 듣고 보고 살던 그 풍속을 쫓지 말아라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하던 일이다. 오늘 우리들은 믿기 전에 살았던 방식으로 살지 말아라. 지금은 다 믿고 있습니까?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 위의 풍속을 쫓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인도할 하나님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인데 그 가나안에 들어가면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 안 믿던 가나안 사람들의 그 땅에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아라. 그런 것 본받지 말아라. 옛날 사람 애굽 사람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사람 이 땅 위에 세상 사람들의 풍속 그들의 법칙 그들의 규례는 쫓지 말아라. 행하지 말아라. 내버려라.

4절입니다. 믿는 사람 너희들은 나의 법도를 하나님의 법도를 쫓아라. 나의 규례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또 한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규례!’ 많은 법도 많은 규례 중에 하나님이 내신 남자 여자의 이성의 원칙 이성의 법칙은 뭘까? 그것을 지금 배우는 겁니다.

교재 1번입니다. 애굽 풍속이란 지난 날, 지난 날 우리가 살았던 세상 속에 살았던 그런  세상 방식을 버려라. 한 30년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설교를 해도 아직도 유교 교인들이십니다. 아직도 유교교인, 참 어지간히 목사 설교를 못 하길래. 손양원 목사님은 한번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이렇게 변화가 되어 버리고 백영희목사님은 한번 설교하면 사람이 확 바뀌어버리는데 30년 설교를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공자 제자가 아닙니다. 유교 제자가 아닙니다. 30년 말해봐야 아직도 그러거나 말거나 공자식대로, 공자식대로. 참 그렇게 바꾸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그게 옛사람 악령 악성 따라하십시다. ‘악습!’ 악습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바꾸면 바꾸어질까 인간이 애타게 노력하면 수십 년 설득 시켜봐야 아예 뭐 그냥 흔적도 없습니다. 악습. 쌓이고 쌓이고 쌓이기를 아담으로부터 자자손손 쌓였지, 설교 듣기 전에 평생 유교의 공자 식으로 살아서 쌓였지 이래 놓으니 씻고 닦아 봐야 뭐 그냥 흔적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공자 방식 조선 시대 유교방식 아닙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방식이 지난날의 방식이라면 한국의 사는 우리는 옛날 중국 섬기고 살던 공자 제자로 살던 방식이 애굽 방식 지난 날의 방식입니다. 씻어버려야 됩니다. 유교 중국 방식 속에서도 좋은 것은 가지고 잘못된 것만 버리면 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 그거는 좋은 겁니다. 성경에도 있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죽은 조상 죽고 나서 걱정이 되니까 제사를 지내라. 아무리 제사를 지내봐야 못 받아 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책망 듣습니다. 그러니 제사 방식은 떼버리고 또 유교 제도에서는 남자가 가정을 책임지라. 그거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원래 자연의 방식에도 맞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 하나님의 말씀에도 맞으니까 유교 방식을 말씀과 비교해 봐 가지고 맞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맞기 때문에 그것은 채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는 틀려도 남자냐? 남자는 거꾸로 가도 머리니까 여자가 따라가야 되느냐? 공자의 방식은 남자가 틀렸든지 망하든지 죽든지 나쁜 짓을 하든지 남자는 앞에 가고 여자는 뒤따라가라 그게 유교입니다. 기독교는 남자는 옳은 일 할 때 머리다. 옳은 일 할 때 앞서간다. 만약에 남자가 옳은 일을 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여자가 따라갈 것이냐? 못 따라 간다. 못 따라 가면 끊어버릴 것이냐? 욕할 것이냐? 하나님 앞에 이 남자가 옳은 방향의 머리 되어 앞에 가야 되는데 지금 방향을 잃고 꺼꾸로 가고 있습니다. 따라가지도 못하겠습니다. 이 남자를 깨닫게 하여 옳은 방향에 앞세워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그런 사람이 되라. 이게 기독교 방식입니다. 유교와 기독교 방식의 차이를 아셨습니까? 그래봐야 또 돌아가면 또 유교방식, 내가 남자인데 그래도 내가 호주인데. 옳을 때 호주고 옳은 데 앞서라고 남자입니다. 남자라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 아닙니다. 그리 말하시고 그러고 싶으면 죽은 조상한테 제사 지내고 공자 따라 저 공자 섬기는 데를 뭐라고 그러지요? 향교! 향교 가셔야 됩니다. 여기는 교회입니다. 옳은 일에 남자가 앞서가고 옳은 데로 앞서가는 남자를 뒤따라가는 여자, 이게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이성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옳은 일에 앞서 갈 줄을 모르면 주여 이 남자 옳은데 앞서가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그런 사람이 되라고 호소하고 그러다가 남자가 옳은 일에 앞서면 마구 열심히 따라가고. 옳은 게 앞서가고 남자가 뒤따라가고 여자가 뒤따라가라고 만들어놨지 무조건 남자가 정권 잡았으니까 휑포부리는 것은 공산당이나 저 유교 믿으러 가셔야 됩니다. 남자를 만들어 남자에게 맡긴 위치가 있다. 여자도 여자를 만들어 여자에게 맡기는 위치가 있다. 사명이 있다. 이거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자유성을 준 다음부터는 그 자유성을 강제로 꺽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자유를 꺽지 않는데 인간이 인간의 자유를 꺽으면 하나님한테 싸우는 꼴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유성이 없으니까 부모가 결정해 줍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생각이 있고 아이가 자기의 장단점이 생기면 부모라도 아이와 대화를 해서 너 학교 가도 자유 안 가도 자유다. 그런데 학교가야 되는데 안가고 놀러 다니면 나중에 너 후회한다. 잘 설명한 다음 ‘예 후회해도 좋으니 나 학교 가기 싫습니다’ 그러는데 이게 여섯 살짜리면 잡아가다 가면 되지마는 16살 고등학교 1학년이 학교 죽어도 못가겠습니다 하면 쇠사슬로 묶어서 가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한 다음 알아서 해라. 16살이 죽어도 못 하겠습니다 하면 납치하고 묶어서 끌고 가지는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나를 강제하지 않는데 내가 부모라고 머리 굵은 아이를 강제하다니요? 하물며 어른이 되어 부부가 되었는데 호적의 남자라고 호적의 여자인 아내를 갖다가 무조건 제 마음대로 휘적거려요? 하나님도 강제하지 않는데 달랠 수 있고 부탁할 수 있고 설득할 수는 있지마는 강제는 안 됩니다. 강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설득하고 서로 대화를 하는 건데  밥상 위에 김치를 여기 놔라 저기 놔라, 여게 놔라 저게 놔라. 이것은 하나님이 여자에게 맡겼습니까, 남자에게 맡겼습니까? 남반들만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밥상에 김치가 왼쪽에 가냐, 오른쪽에 가냐? 이걸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여자한테 맡긴 것 같습니까, 남자한테 맡긴 권리 같습니까? 이런 것은 여자한테 맡겨놓은 겁니다. 아이 김치가 앞에 있으면 좋겠는데 뒤에 있으면 좋겠는데 한번 정도는 말할 수 있지마는 예. 앞에 가는 게 좋고 뒤에 가는 게 좋으나 이 밥상이 이렇고 저래서 나는 밥상을 알고 이렇게 차렸습니다 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말아야지. 신 김치 새 김치, 앞에 갔냐 뒤에 갔냐, 간장 종지기가 크냐 작냐, 이것 가지고 열 번 스무번 삼십번 대화하는 것은 남자가 아내와 더불어 대화하는 겁니까, 억지입니까? 그것은 쥐 박는 겁니다. 빨래를 해서 빨래를 속옷을 여기에 놓고 흰옷은 저기에 놓는데 남편 생각에 수건이 이래 가고 속옷이 이래가면 좋겠습니다. 한번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 그거 알지마는 이러고 저래서 요게는 수건 요게는 속옷 요게는 이런 옷을 뒀습니다 그러면 ‘아 알고 생각했으면 됐습니다.’ 한번 정도 말하고 말아야 되는데 수건 이쪽 여자는 저쪽, 이쪽저쪽 이쪽저쪽 안 싸우고 말로 백번 하면 사이좋게 대화하는 부부입니까, 남자가 먹통에 남자가 벽창호 같은 인간입니까? 살림, 빨래, 밥, 옷 이거는 기본적으로 여자에게 맡겨놓은 여자의 위치 여자의 사명입니다. 건의는 할 수 있고 의견은 낼 수 있지마는 여자가 한번 결정하면 그러면 ‘나는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말일입니다. 그다음 반대로 남자가 마당을 쓸로 나가 가지고 저 담 밑에서부터 쓰는 사람, 섬돌부터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가 여기서 쓸어도 되고 저기서 쓸어도 되지마는 이왕이면 섬돌부터 쓸어서 저 담 쪽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한번 말하고 한번 말했는데 지네가 있고 쥐똥이 있고 그래서 섬돌이 아니라 저 마당 저 뒤에 담장부터 쓰는 겁니다. 설명을 하면 ‘아 그렇습니까?’ 한두번 말하고 말아야 되지. 이쪽에서 쓸어도 되고 저쪽에서 쓸어도 되는데 마당을 청소하는 것은 남편의 위치고 사명인데 남편이 생각이 있어 하는 걸 여자가 앞에서 쓸어라 뒤에서 쓸어라 이것을 가지고 백번 말하고 천번 말할 시간도 없지마는 그것을 말하는 것은 바가지라 그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맡겨 놓은 것 같다. 이런 것은 한두 번 말한 다음 맡겨놓고 좀 기다리는 게 맞고, 이거는 여자에게 맡겼다 싶은 것은 남자가 맡겨 놓고 한두 번 말한 뒤에 좀 기다려 주는 이런 여유와 배려가 있는 것이 이게 남녀 이성의 근본의 정신입니다.

뭐 집을 사야 되는 것처럼 이 전세에서 이제 전세 값이 올라간다니까 집을 사야 되는데 돈이 얼마냐?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빚을 가져와야 되고, 갚을 수 있느냐? 이것은 전세보다 집을 사는 게 좋겠는데 5천만원을 빌리면 한 달에 생활비가 지금 백만원인데 10만원을 깍아야 되는데 10만원 깍으면 당신이 살 수 있느냐? 이런 것은 부부가 서로 의논해 보고 맞춰 봐야 되고 계산을 많이 해 봐야 될 겁니다. 중요하니까. 두고두고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테니까. 뭔 빨래 개 놓은 것을 가지고 밑에 놔야 된다 위에 놔야 된다. 그리고 남자가 하루에 백번을 이야기를 하면 자상한 남자입니까, 바가지 긁는 남자입니까? 여자가 바가지 긁는 것은 바가지 긁을만 하니까 바가지 긁고, 남자가 바가지 긁고 앉았으면 이것은 뭐 그냥 참 문제가 많은 겁니다. 이 집회에 바쁜 일정에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동안 하시는지 눈치를 채셨습니까? 앉아있는 사람 중에 그런 걸 가지고 그냥 열 번 백번 이야기를 하고 앉았으니까 이것을 갖다가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가지고 유아원부터 새로 입학을 시켜야 되는가? 나이는 서른인데 나이는 사십인데 아니 수건을 갖다가 세탁을 한다음에 흰수건을 밑에 놓고 빨간 수건을 위에 놔야 되는데 우리 집 여자는 거꾸로 놓습니다. 한 번 말하고 그 정도는 여자한테 맡겨야 되는데 이것을 가지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하고 네 번 말하고 열 번 말하고 스무 번 말하고 앉았으니 대화하는 부부입니까, 고장 난 부부입니까? 고장 난 아내입니까, 고장 난 남편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여자한테 맡겨놓은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위치와 사명입니다. 그쪽으로 남자가 손을 뻗히면 이성의 남성 여성 둘로 나눈 다음에 가운데 벽을 두시고 이것은 여자의 선이다. 이것은 남자의 영역이다. 이것은 여자의 사명이다. 이것은 남자의 할 일이다. 이렇게 뚝 떼서 맡긴 것은 건너다 보며 ‘여보 아무리 남자의 사명이지마는 남자의 결정이지마는 이것은 한번 더 생각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한두 번 말한 다음에 그냥 그 정도하고 마셔야 그 정도 하고 마셔야 말을 많이 하면 말 빨이 안 먹힙니다. 그래서 목사가 교인은 가르쳐도 여자는 못 가르치고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칩니다. 왜 그럴까요? 교인들한테는 가끔 한번씩 말하지마는 사택에 가서 처자식한테는 하루 종일 설교를 하고 앉았으니 귀에 들리겠습니까? 화가 나지. 아무리 필요한 말이라도 말을 많이 하면 말의 칼날이 무뎌집니다.

한 34년 되었을까요? 공회 안에 하도 뭐 같은 목회자들이 계셔서 목사님께 가 가지고 ‘아이 목사님 저런 목사들은 좀 야단을 치시지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낫으로 파릇파릇 올라오는 여린 풀을 쳐보면’ 낫은 쇠 아닙니까? 면도칼입니다. 풀이 파릇파릇 올라올 때는 여립니다. ‘낫으로 여린 풀을 쳐보면 낫에 날이 나간다’ 날이 세다고 자꾸 치다 보면 낫의 날이 나간다. 낫이 무뎌진다. 면도칼이 무뎌진다. ‘낫을 가졌다고 함부로 치면 낫을 못 쓰게 된다.’ 그냥 그 말씀을 하셔서 그냥 말은 막혔습니다마는 살아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설교의 말, 성경의 말씀 진리는 칼입니다. 이게 칼이라고 자주 써버리면 칼날이 무뎌져서 먹히지를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건의하고 아내가 남편을 옳은 데로 앞서도록 할 말이 많은데 남자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이 말하고 저 말하고 ‘아이 뺀지를 먼저 요러십시오. 칼날을 이러십시오. 뺀지를 요리 돌리십시오 저리 돌리십시오’ 그러면 나중에 정말 필요한 말을 할 때는 저놈의 여자는 할 말이 없어서 맨날 쓸데없는 말만한다 해 가지고 정말 중요한 말을 할 때에는 말을 막아버리고 안 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남자에게 할 말도 핵심적인 것 중요한 것을 좀 출일 줄 알아야 되고, 남자도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할 때 맡겨도 될 만한 것 아예 간섭도 안해야 될 것, 간섭을 한다 해도 그것은 지나친 것은 절제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저는 절제를 잘할 것 같습니까, 절제를 잘 못한 사람 같습니까? 저처럼 말을 이래 하는 사람은 자기도 말을 절제를 못하고 말을 많이 해 가지고 탈난 사람입니다. 진리는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남성 여성 하나님이 둘로 나누어두셨습니다. 아예 다르게, 왜 다른가? 생긴 모양이 달라 다른 것이 아니라 위치가 다르고 할 일이 달라서 남성 여성으로 떼 놓았으니까 남자가 남자의 위치와 할 일을 알 때에 여자의 위치와 여자의 할 일을 잘 보존해주고 밀어줄 수 있고 이 둘이 잘 짝이 맞을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가정 교회 한 교회의 출발이 되어집니다.

100페이지 가운데, 2번. 세상 풍속을 버리라. 무엇이 세상 풍속이냐? 참 눈으로 담기 어렵고 말하기가 괴로워서, 사회 서시는 목사님이 이것은 교독도 못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너희 식구끼리 그말입니다. 그 하체를 범치 말아라. 남자 여자는 결혼하는 부부로만 하나 될 수 있다. 결혼하는 부부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가족이 아니라 가족 아닌 사람 중에 하나를 데리고 와라. 서로 다른 데서 커서 서로 달라야 둘이 만나면 틀린 것도 발견할 수 있고 고칠 것도 있고 서로 서로 봐주지.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안 믿는 사람들은 가질만 하면 뭐든지 가지고, 구별도 없이 제 멋대로 하지마는 믿는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그러면 아니 된다. 단 예외가 있습니다. 아담처럼 첫 인간을 만들 때는 사람의 머리 숫자가 필요하여 아담 하와의 자녀들은 형제끼리 결혼했습니다. 그때는 사람 수가 없으니까. 또 노아 홍수 뒤에는 노아 할아버지 밑에 삼형제 밖에 없으니까 그 밑의 아이들은 다 사촌들입니다. 아담 때에는 형제끼리 노아 때는 사촌끼리 결혼을 해서 사람 숫자를 만들어 갔습니다.

또 야곱 12지파도 출발할 때 그랬습니다. 그러나 교재를 보실까요. 1, 가족이 골육지친입니다. 아담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시작 할 때는 한 가족이 아이를 만듭니다. 그런데 숫자가 많아지면 가까운 근친은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여기 우리 보실까요? 우리 예배 드리는 우리 공회, 전부 사돈 팔촌 집안 다 되지요? 이럴 때에는 신앙이 같은 사람끼리 결혼 하다보니까 신앙 있는 집사님, 신앙 있는 장로님 신앙 있는 식구들끼리 결혼하고 결혼하니까 전부 사돈 팔촌에 이렇게 가까워집니다. 그러다가 식구들이 점점 많아지거든, 한 신앙 한 노선 안에서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위치와 살아가는 장단점이 다른 사람을 찾아야 비로소 서로 배울 게 있고 서로 가르칠 게 있어지는 겁니다. 뭐든지 시작할 때는 한 가족이 아이를 만들지마는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 가까운 것끼리 똘똘 뭉치면 똑같은 것끼리 한편이니까 가르칠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고 똘똘 뭉쳐서 더 이상 배우고 더 이상 고칠 게 없으면 하나님 앞에 구원으로는 빵점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참 복 될 때가 있었는데 1년 2년 3년 차 되면 전국의 목사님들을 교회를 서로 바꿔버립니다. 시골 있던 목사님을 도시 보내고 도시 있던 목사님을 시골 보내놓으면 도시 목사님들이야 뭐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잘 아는데 세상을. 설교만 하면 세상일을 교회 일을 교인들이 척척 잘 알아서 하다가 도시 목사님이 시골에 오면 글 쓰는 것 하나도 목사님들이 다 써줘야 되지 우편 붙이는 것도 대신 써줘야 되지. 이것까지 다 해야 되다 보니까 도시 목회하다가 시골목회를 하면 사람 살아가는 어려운 형편을 알고. 또 시골서 목회하는 사람은 목사가 설교도 하고 가정살이도 다 봐주다가 도시에 가니까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잘 아니까 여기서는 기도하고 설교만 해야되겠다. 큰 교회 거치고 작은 교회 거치고 개척 교회도 하고 기성교회도 하고 여러 교회를 이렇게 거쳐가면서 한 목사님이 도시 목회도 할 줄 알고 시골 목회도 할 줄 알고 한 사람 들고 개척교회도 할 줄 알고 몇 백명 기성교회 가서도 눈치를 채고 이러다보니까 백 목사님 생전에 교회를 많이 옮겨 다니다 보니까 목사님 생전의 목사님들은 실력이 전부다 출중합니다. 실력이 있는데 잘 못써서 그렇지 실력은 그렇게 자라는 겁니다. 저처럼 우리 목사님들은 한 교회에 가가지고 10년 아니라 20년 아니라 30년 한 교회만 있으니까 한 쪽은 잘 알고 다른 쪽은 모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남녀 이성은 다른 걸 만들어 한 몸을 만들어 왜 다른지 다르면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쪽이 옳으며 어떻게 해야 이것이 하나로 잘 자라갈는지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평생 죽을 때까지 연구하거라 그게 남녀 이성인데.

세상 풍속은 제일 가까운 것 싸울 것도 없는 것 가까운데서 데리고 살면 되지 뭐 왕궁의 공주들 왕자들끼리 결혼하면 전부 왕족들끼리니까 좋지 뭐 그러면 속으로 다 썩어버립니다. 숫자가 많아지면 근친은 금지입니다 달라야 서로 배우고 고쳐갈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게 좋은데 저 사람은 왜 저게 좋다고 그러지? 그러고 그날부터 서로 싸울것이 아니라 나는 이게 좋은데 왜 저 사람은 저게 좋지 왜 좋지? 잘못 좋아하는가? 옳은걸 좋아하는가? 맞는가? 이런가 저런가? 다를 때에 다르기 때문에 맞춰보면 배우는 겁니다 달라야 서로 배우고 고쳐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 풍속은 더러운데 입에 담기도 괴로운 이런 일들이 요즘 뉴스에 그냥 꽉 찼지요? 결국은 그리 되기 때문에 조심을 시키는 겁니다 부모는 손대면 안된다 상하를 변경시키지 말아라 계모는 남이지만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상하를 대신 하게 만들었으니 대신도 손대면 아니된다 형제 손대지 말아라 부모를 통해 간접적으로도 아니된다 손주도 안된다 한배를 건너가도 아니된다 이모도 안된다 고모도 이복동생도 안된다 백숙모도 안된다 큰엄마 작은엄마 작은집 큰집 전부 가까운데는 전부 금지다 왜? 한몸이니까 하나니까 똑같으니까 똑같으니까 똑같은 것들끼리 똘똘 뭉쳐놓으면 고칠게 있습니까?

교단운영을 두고 목사님들끼리 모이면 우리 월급 좀 올립시다 반대할 사람 있을까요? 또 장로님들끼리만 회의를 하면 요즘 같은 좋은세상에 목사들이 잘 먹어서 체중조절 한다고 난리니까 사례 좀 깍읍시다 하면 반대할 장로님이 있겠습니까? 여반들끼리 모여앉아가지고 남반들한테 좀 인사를 시킵시다 반대할 여자가 있을까요? 남반들끼리 모여가지고 여자들을 조선시대처럼 전부 다 쥐 틀어버립시다 하면 남반들이야 다 찬성하겠지 끼리끼리 똑같은 것들끼리 모여놓으면 새로 배우는게 없고 새로 고치는게 없고 새로 배우고 새로 고치는게 없으면 새로 자라가는게 없고 하나님을 향해서 끝없이 배우고 고쳐야 되는데 이걸 막는것이 근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근친은 다 막아놨습니다. 남녀 이성은 남을 찾아라 가까운데서는 아니된다 참 골치 아프지요.

넘깁니다. 102페이지입니다. 남은 안되고 타인 관계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아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낸 족속들이 이런 짓을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 썩어빠진 가나안을 전부 치워버리게 됬다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다 사람이 더러워지면 뭐도 따라서 더러워진다고요? 그들이 사는 땅도 더러워짐으로 요즘 왜 천재지변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시는지 이제 눈치 좀 채셨습니까? 이 땅에 사는 인간이 더러워지면 비도 더러워지고 지진도 더러워지고 전염병도 더러워지고 전부 다 미쳐서 난리를 부립니다. 산과 들과 바다가 미쳐서 설칠 때는 산과 들과 바다에 사는 인간들이 이게 제정신이 아니니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갑다 이렇게 좀 조심을 해야 됩니다. 하늘에 무슨 뭐 오존층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암이 걸린다 북쪽에 빙하가 녹아서 지구에 자연환경이 난리가 났다 그래서 이제 석유를 안 써야 북극 남극의 얼음이 다시 생긴다 안 믿는 과학자들은 그것만 맞추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늘이 주신 지구 하나님이 주신 2020년을 사는 75억의 인류가 더러워지기를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하나님께서 지구와 우주를 전부 다 뒤집어가지고 에이 더러운 놈들, 돼지 같은 놈들은 비단이불에 갖다가 잠을 자야되겠습니까 돼지막에 던져버려야 되겠습니까? 인간이 돼지처럼 더럽고 아무거나 막 먹고 아무데나 구르고 앉았으니까 지구를 환경을 돼지막을 만들어서 더러운데 살아라 이렇게까지 간겁니다. 돼지가 돼지막에 가서 깨끗하게 청소하면 안방이 됩니까? 또 돼지막 되지. 돼지같은 나를 깨끗한 소로 양으로 바꾸어 순종의 사람 사명의 사람으로 만들면 돼지막에 가서 살아도 결국은 돼지막이 깨끗한 우리로 바뀔 겁니다. 깨끗하게 살림 사는 여자 분이 어지러운 집에 시집을 가면 어지러운 집을 다 질서를 맞추고 깨끗하게 결국은 맞추게 되고 깨끗한 집인데 더러운 여자가 시집을 가놓으면 결국은 그 집이 질서도 뭐도 엄한것도 지저분하게 될 수밖에 없잖습니까 내가 깨끗하여 환경을 깨끗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도록 하라.

좀 복잡해서 간추려놨습니다. 남녀이성의 관계는 하나님이 남자 여자로 나누어놨습니다 남자냐? 너는 남반자리에 가서 앉아라 너 여자냐? 여반자리에 가서 앉아라 너는 아가씨냐? 결혼하기 전이니까 아가씨답게 살아라 그게 너의 위치며 너의 사명이다 너는 아이를 낳아 아줌마가 되었냐? 아이를 쥐고 사는 아줌마가 되었냐? 아줌마는 아이 때문에 아줌마의 위치에서 아줌마답게 살아라. 애를 가진 애를 가진 아줌마들이 아가씨처럼 옷을 쫄아 입으니 애가 어디 엄마한테 붙어있을 때가 있어야지 이게 낭떠러지가 되서 미끌미끌 해가지고 이래놓으니 애가 무슨 정을 가질 것이며 무얼 배울 것이며 어디다대고 의지를 하겠습니까? 엄마의 넉넉한 품에 좀 구르고 이래야 아이가 좀 아이답게 살껀데 엄마가 그냥 아가씨처럼 해놓으니까 맹송맹송 냉정하고 그냥 쌀쌀맞고 이게 면백처럼 되버리니까 애가 비빌때가 없어놓으니까 이게 정서 불안이 걸리지요. 애가 엄마 때문에 정서불안이 되니까 이게 청소년이 되고 이게 청년이 되니까 세상에 이 모양 이따위로 만들었지 아이 낳은 엄마가 아가씨때 생각하고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은 또 다른 남자를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아기 낳은 엄마가 아이가 내 품에 좀 푸근하게 젖 먹고 푸근하게 놀 ?

Comments

" 2020.08.05 11:49
교인 2020.08.16 23:20
좀 복잡해서 간추려놨습니다. 남녀이성의 관계는 하나님이 남자 여자로 나누어놨습니다 남자냐? 너는 남반자리에 가서 앉아라 너 여자냐? 여반자리에 가서 앉아라 너는 아가씨냐? 결혼하기 전이니까 아가씨답게 살아라 그게 너의 위치며 너의 사명이다 너는 아이를 낳아 아줌마가 되었냐? 아이를 쥐고 사는 아줌마가 되었냐? 아줌마는 아이 때문에 아줌마의 위치에서 아줌마답게 살아라. 애를 가진 애를 가진 아줌마들이 아가씨처럼 옷을 쫄아 입으니 애가 어디 엄마한테 붙어있을 때가 있어야지 이게 낭떠러지가 되서 미끌미끌 해가지고 이래놓으니 애가 무슨 정을 가질 것이며 무얼 배울 것이며 어디다대고 의지를 하겠습니까? 엄마의 넉넉한 품에 좀 구르고 이래야 아이가 좀 아이답게 살껀데 엄마가 그냥 아가씨처럼 해놓으니까 맹송맹송 냉정하고 그냥 쌀쌀맞고 이게 면백처럼 되버리니까 애가 비빌때가 없어놓으니까 이게 정서 불안이 걸리지요. 애가 엄마 때문에 정서불안이 되니까 이게 청소년이 되고 이게 청년이 되니까 세상에 이 모양 이따위로 만들었지 아이 낳은 엄마가 아가씨때 생각하고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은 또 다른 남자를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아기 낳은 엄마가 아이가 내 품에 좀 푸근하게 젖 먹고 푸근하게 놀 수 있는 엄마가 되야되는데 이걸 빡빡하게 그냥 팥쥐 엄마처럼 계모처럼 쌀쌀맞게 만들어놓으니까 천하가 이런 세상이 되어져버렸습니다. 오늘 더러워진 세상의 원인이 무엇이며 고치는 처방이 뭔지 레위기 18장에 이성의 말씀을 가지고 보니까 보입니까? 그래도 안보입니까 아니면 애매합니까? 제가 억지 소리를 합니까? 맞을걸요?

여자냐? 여자자리에 가서 좀 앉아라 여자자리가 어딘데? 남자자리 반대편이지 네가 남자냐? 네 자리에 가서 앉아라 남자자리가 어딘데? 여자 반대쪽이지 그리고 남자 여자가 서로 연구를 해보면 내가 못났지만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조심해야 그게 남자답겠구나 여자를 보고 앉았으면 연구가 나올겁니다 여자 하는 일이 뭐죠? 다듬고 돈 쓰는게 여자 할 일이지 애 때문에 돈 쓰는게 여자 할 일이지 여자를 쳐다보고 앉았으니까 내가 남자라 돈은 벌어다 줘야되겠구나 아 여자라고 만나서 여자하고 24시간 쳐다보고 살아보면 여자는 돈 쓰는 일만 하는 게 여자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부 돈 드는 일밖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맡겨놓은 이 여자를 연구해보니까 몰랐는데 함께 살아보니까 이거는 돈만 쓰네 그런데 그 돈 쓰는 것이 옳게 써도 돈을 쓰는 것이니 나는 그러면 밖에 가서 사냥을 해오고 돈을 벌어와야 되겠구나 돈을 벌어서 여자한테 줘놓고 남자가 남자 말을 하고 말 행동을 해야지 돈도 안 벌어놓고 남자짓만 하려고? 도둑놈들 모두들. 요즘 기준으로 월 500은 줘놓고 그다음 아끼라 말아라 이래라 저래라 출근할 때 구두를 닦아라 한 500은 주고 그러면 밉기나 덜하지 돈도 못 벌어주고 남자 자세부터 할라고, 이게 이성에 대한 18장의 말씀입니다 이걸 뭉개버리고 대충 비비고 그냥 비빔밥을 만들어 살면 좋지 않겠느냐 그게 오늘 이 세상입니다 뉴스 보기가 더럽고 뉴스 보기가 힘이 들어서 듣고 보지도 못하겠지요? 뭐 어느 동네에 어느 나라에 어떤 사람이 이랬단다 저랬단다 옛날에는 이 동네 청년이 저 동네에 가서 쥐박았단다 이런데 누가 누구를 쥐어박고 누가 누구를 건드리고 어떻게 했다는 소식인지 듣기도 민망하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보기도 민망한 것 밖에 없잖습니까? 호적을 옮기다보니 가족이 되었고 실은 부모를 보면 남남이라 그래도 그럴 수 있느냐 이랬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입니까? 입에서 말 옮기는 것조차 미안해서 말을 못 담을 정도가 되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끔 하나 있는데 뉴스에 나온 것 같습니까? 부지기수인데 그 중에 하나가 뉴스가 나온 것 같습니까? 뉴스에 하나 나올때는 뉴스에 안 나오는 일은 열배가 넘고 백배가 넘는 법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깨끗에 대한 레위기 11장에 대한 말씀을 금번에 특별히 고민스럽게 큰 시대적인 과제며 이 우리 공회 안에까지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에? 그래도 지금까지 공회는 30년간 버티고 버티느라고 부족하지만은 적지만은 남자는 남반 가서 앉아 여자냐? 여반 가서 앉아 네가 아가씨냐 아가씨답게 살아 네가 청년이냐 청년이면 남자답게 살아야지 남자자식들이 그냥 기집애처럼 머리를 볶고 그래? 그래서 머리를 다 안볶은줄 알았더만은 제가 머리 볶은 남자 머리를 몰라놓으니깐은 머리 볶은걸 보면서도 볶은걸 몰랐습니다 남자가 머리를 볶아? 아 뭐 탈모증이 있고 뭐가 있으면 또 그럴 수도 있겠지 남자냐? 남자답게 여자냐? 여자답게. 하나님이 남성 여성을 만들 때는 하나 둘 셋 넷의 둘이 아니라 둘인데 둘이 너무 달라서 아예 반대라서 다를 이, 이성입니다. 남자가 여자 자리에 앉아서 둘이 비슷하면 안된다 여자가 남자 자리에 앉아가지고 남자가 비슷해버리고 같아져버리면 안된다 그거는 동성이다 이렇게까지 성경에 몇 천년전에 3500년 전에 가르쳐놨는데 남자가 남자 자리를 떠나서 여자자리에 앉아가지고 여자하고 생긴 것도 같지 화장도 같지 사진 찍어도 같지 그래가지고 둘이 뒹굴고 돌아다니까 개성이라 자유라? 개성 자유를 갔다가 죄지는 개성 죄짓는 자유를 주셨습니까? 죄 짓지 않는 개성, 죄 짓지 않는 자유를 주셨는데 자유라는 말만 똑 따가지고 죄를 짓는 자유 망할 자유 하나님 욕할 자유 개성이 민주주의고 발전한 줄 알고  이 모두 뒤를 파보면 교회가 들어서 이 짓을 다 먼저 했습니다. 교회가 들어서 세상 더러운 짓을 먼저 가르쳐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더러운 짓을 가르쳐놔도 적당하게 했는데 교회가 더러운 짓을 세상에게 가르쳐놓으니까 세상은 밑도 끝도 없이 달려가니까 요즘 교회가 세상한테 나가가지고 동성 이런 문제 법 만들면 안된다고 데모하고 벌벌 뛰는데 그 목사님들이 그 교단들이 그 교회들이 안 믿는 세상은 남성 여성을 조심했는데 교회가 들어가지고 남녀를 다 뒤섞어 놨습니다, 세상을 불 질러 놓고 세상을 더럽게 만들어놓고 너무 더러워지니까 너무 지나치면 안된다 그러는데 불이라는 것은 한번 붙여놓으면 불 붙이는 것은 자유인데 불은 한번 붙여놓으면 밑도 끝도 없이 세상을 다 태우고 끝내지 중간쯤 가다가 아이고 힘들다 많이 태웠으니까 그만하자 불은 그렇게 중간에 끝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남녀이성의 문제를 불장난이라고 하는 이유는 불장난을 해보시고 산에 가서 불 질러 보셨습니까? 집에 불 질러 보셨습니까? 불장난을 해보고 남녀이성의 문제를 봐보면 남녀이성의 문제는 불장난입니다. 이건 처음에 절제하고 막아야지 이거는 한번 풀기 시작하면 적당하게 신사적으로 민주적으로 은혜 있게 어느 정도하다가 거기에서 말아라? 돈은 몰라도 예술은 몰라도 다른 것은 몰라도 남녀이성의 불이라는 것은 한번 붙여놓으면 이거는 자동으로 끝까지 다 태워버리지 중간쯤은 없습니다. 건전하게 교제하는 것은 재미도 있고 서로 좋지 않겠냐? 좋습니다 야곱도 교제했습니다 성경에도 다 교제 시켰습니다 중매결혼도 있지만은 연애결혼도 많습니다 그러나 남녀 이성교제를 건전하게 하라 해놓으면 이게 어디까지 가서 건전하게 되느냐? 시작할 땐 여기까지 건전하게 한다 하는데 그다음에 보면 한 걸음 더 한 걸음 더 무저갱으로 나가버립니다. 아예 좀 박하다 싶을 만큼 좀 죄어 놓고 막아놓는 것이 일이 덜 나지, 신사적으로 지성적으로 양심적으로 적당하게 하십시오 하면 천하는 어디가지 불바다가 되느냐 요즘같이 이렇게 되어집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여자를 다 휘 집고 이제는 남자가 남자끼리 여기에서 끝납니까? 짐승한테까지 넘어갑니다 이미 집집마다 기르고 있는 강아지는 사람이 됐잖습니까? 옛날 강아지는 데리고 살다가 급하면 음식입니다 요즘 강아지는 가족 죽은데는 울지를 않아도 강아지 죽은데는 통곡을 합니다 이 정도가 되었으면 애완용 개를 너무 사랑했다 여기서 그쳤을까? 그 이상으로 기어 나가고 있을까? 이건 괴물입니다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애완용 개 고양이 기르는 것은 좋습니다만은 내 사랑을 줄 때 적당하게 주십시오 아무리 네가 이뻐도 너는 개다 너는 짐승이다 급하면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된다. 미운놈이 밉다고 잡아먹지는 못합니다 저 김정일을 갔다가 잡아 먹을수야 있겠습니까? 아무리 미워도. 개 너는 고양이 너는 아무리 내가 사랑을 주고 가족처럼 안고 자도 너는 짐승이고 나는 사람이다 급하면 나는 너를 잡아먹을 수 있다 팔아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선을 해놓고 이쁘게 데리고 사는 것은 생활 속에 할 수가 있는 일입니다 이런 구별 이성구별부터 이런 것 좀 살펴봐야 됩니다.

102페이지입니다. 안 믿는 애굽나라 안 믿는 가나안나라 안에는 무슨 일이 생겼느냐? 남녀 이성을 넘어서서 근친으로 들어와가지고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래서 더러워지기 때문에 땅도 더러워졌고 땅이 더러워지니까 땅이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게워내 버렸습니다. 위의 본문 25절을 다시 볼까요? 24절에서 가나안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 더러워지니까 이성으로 더러워지니까 한계도 없이 더러워지니까 25절 가나안 땅도 더러워졌고 가나안 땅도 더러워지고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악을 인하여 벌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벌을 줄 때 그 땅도 스스로 가나안 백성 거기 살던 백성들이 더럽다고 가나안 땅이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게워 내버렸습니다 토 해내버렸습니다 얼마나 더러운지. 왜 이리되느냐? 남녀 이성은 결합이고 한 사람이 되는건데 하나가 되는 순간에 한명으로 하나님은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더러우면 나도 더럽고 이거는 함께 가는 것이라 몸 안의 죄라 자기 사람의 불결, 나의부부의 상대방의 불결은 그 사람하고 나하고 결혼하는 순간에 나의 불결이 되버립니다 도적하고 손 잡으면 나도 도적됩니다 타인의 사람 하나님이 내게 주지 않은 남인데 타인의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잡아버리면 자기가 타인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은 내게 줬는데 그 사람을 내가 잡는 순간에 그 사람의 더러운 것도 내가 됩니다 한 몸이니까. 하나님이 이 사람은 하나님이 여동생은 남한테 준건데 나한테 준 것이 아니라 남한테 준건데 이걸 잡으면 이거는 남한테 준 남의 것인데 이걸 잡으면 내가 남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나를 팔아먹은 꼴이 되어집니다 계산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자녀를 몰래 귀신에게 주지 말아라 자녀를 몰래 귀신에게 주면 자기 플러스 자녀 플러스 귀신이 되어진다 무서운 말입니다.

밑에 동성금지, 남자애는 남자애끼리 놀아야 됩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놀아야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싶으면 그때 남자는 자기 여자를 찾고 그때 여자는 자기 남자를 찾아 둘이 하나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아이가 남자아이하고 놀다가 때가 되어 여자아이하고 결혼을 해야 되는데 여자가 없으니까 어떡합니까? 뺑뺑 돌아서 남자한테서 찾아버리지, 고장이 난겁니다. 남녀 이성으로 만날 상대를 이성으로 만나지 않고 남자가 남자 여자가 여자로 만나면 어떤 문제가 되느냐 자기 남성 여성을 바꿔버린 것이 됩니다 이 죄가 더 큰 죄가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야되는데 여자가 여자를 만나버리면 이 여자는 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기를 바꿔버렸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은 것이 천국의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이 죄의 출발 원죄의 이게 시작입니다. 동성이라는 문제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취사선택의 취향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체를 내버리는 것이고 남한테 던져버리는 자기 부정입니다 심지어 짐승하고 하나가 되면 이거는 자기가 짐승이 되는 겁니다. 데리고 온 여자를 왕비로 모시면 나는 왕이 됩니다 데리고 온 남자를 왕처럼 떠받아 모시면 나는 여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왕비가 되는 겁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모시고 온 남자를 도둑놈으로 취급을 하면 나는 도둑년이 됩니다 모시고 온 여자를 선녀처럼 모시면 나는 신선이 됩니다 이게 남녀이성은 한몸이라 이런 원칙이 있습니다.

여자가 여자를 잡고 산다 그러면 여자가 자기 여자를 내버린게 됩니다 자기 부인입니다 짐승을 잡으면 자기가 짐승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오천만명 중에 인간이 몇 명이며 짐승이 몇 마리인지 한번 헤아려볼 때 쯤 되었습니다. 현재 지금 남녀동성도 지금 허용하자고 법을 갔다가 밀어붙이고 대한민국의 3분의 2 80프로가 잘한다고 박수를 치고 앉았는데 대한민국의 80프로는 인간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나가는 겁니다. 이만하면 동물의 왕국이지 이만하면 동물원에 가가지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거고 맹수굴에 들어간 게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오전은 여기까지입니다.

참 이런 말씀은 옛날에 읽을 것도 없이 다 아는데 뭐하려고 적었을까 유교 믿던 선비들은 기독교를 다니면 십계명을 읽어보면서 내 부모를 공경하라 아잇 나만큼 공경하는 사람이 없는데 5계명은 안 가르쳐도 유교 믿던 사람들은 100점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른을 모르고 효도를 모르니까 이 말씀이 이렇게 귀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세상이 참 굉장히 타락하고 미개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남자 여자라는 것은 태어나면 20살 때면 눈치있고 네댓살 되면 다 아는 건데 20살도 모르고 40살도 모르고 50살도 모르고 정권 잡은 국회의원도 몰라가지고 남녀 뒤섞자고 하고 앉았으니까 이게 미개한 지금 고대사회가 되버렸지 발전한 진보의 사회가 된 일인가요? 사회적인 문제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좀 과하게 막는 것이 훗날에 보면 유리할 겁니다. 요즘 고속도로는 차 좋지 도로가 좋아서 시속 150킬로를 달려도 안전합니다 만은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 시속 100킬로 80킬로로 줄이는 것이 좋지 차 좋지 고속도로 좋지 시속 150킬로 달려도 안전하다고 자꾸 밟다가 한방에 뻥가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서 차에 속도라는 것은 조금 줄이면 지혜롭다 좀 빨리 밟으면 부뚜막에 올려놓은 애처럼 참 큰일났다 그럽니다. 남녀 이성 문제라는 것은 무슨 장난하고 같다고요? 이거는 아예 불장난입니다 불 없으면 못 삽니다 불 없으면 얼어 죽습니다 그러나 불이 아궁이 속을 떠나가면 자기를 태워버리는 화재의 멸망의 세상을 만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7장 남녀 이성의 문제.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새명은 우리에게 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연결이 될 때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의 생명을 삼는다 그 생명 때문에 짐승을 죽일 때에는 늘 생명을 조심합시다. 18장 남녀 이성 문제 심각하게 조심하고 좋을 때 고나리하는 것이 복되게 좋게 살 수 있는 은혜의 방법입니다.




교정: Jina. Oea, A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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