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후18.5.8 창1:1 교리 7단계의 단계별 의미와 연결되며 진행된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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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후18.5.8 창1:1 교리 7단계의 단계별 의미와 연결되며 진행된 향방

교인 0 210 2020.06.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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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는 누구인가? : 백영희 노선)

  첫째 시간 : 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위치

  둘째 시간 : 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사명
 
  셋째 시간 : 우리에게 이어진 계통이란, 어떤 것인가?
 
  넷째 시간 : 우리가 받은 교리란, 어떤 것인가? 
    - 정통과 이단의 7단계 교리 발전 역사를 통해

  다섯째 시간 : 건설 구원 교리는,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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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기도드리겠습니다.
영원 전 영원의 후를 전지로 단 번에 예정하시고 전능으로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집행하고 건설하며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저들도 그 목적에 우리 속에 포함을 시켜 이렇게 소망 중에 우리의 부족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큰 영광스러운 우리의 앞날을 소망하고 이번 집회를 통해 역사의 연대를 배우며 옛날에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펼쳐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정리하며 살펴보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주님이 붙드시면 모세의 지팡이 보다는 우리가 나아야 될 터인데 보이는 것으로 우리를 보며 겸손이 지나쳐 낙망이 되고 낙망을 지나쳐 절망의 죄에 이르면 4가지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된다고 소망주시고 믿음 독촉하시며 눈에 담기 어렵고 마음에 기억하기 민망한 귀한 종들의 걸어온 모든 길을 우리의 길로 우리 위에 쏟아 부어지는 한량없는 은혜로 헤아리고 있사오니 잘 살펴 오늘과 내일과 주님이 주시면 앞날에 걸어갈 길을 변치 않고 세상 어떤 것이든 포기하고 나아갈 수 있는 출발의 더욱 귀한 기회되게 성령이 친히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 한마디 때문에 예수님이 구원이니 구원의 예수님을 막아서기 위해 구약 4천년동안 오실 예수님을 오지 못하게 막아선 것이 구약의 역사고 아담으로부터 모든 내려오는 고비 고비, 가인과 셋, 에녹과 시대, 노아와 그 시대, 아브라함과 롯. 하나하나 갈림길을 대표적으로 몇 개만 살펴봤는데 구원의 길에서 쪼금 벗어나 엉뚱한데 가게 하려고 요게 악령의 에덴동산부터의 노력이며 요 노력은 쉬지는 않습니다. 중단도 없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구약 4천년은 오실 예수님을 막아서는 노력. 그런데도 계통을 이어 예수님이 다윗의 계통,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그 계통에서 오셨는데 그 이름이 구원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와 버리셨으니 이제 그 다음 왔다 가신 예수님은 다시 반복할 수 없고 그 제자들을 죽이며 내쫓으며 성경자체를 막으려고 성경자체를 흐리려고 그러나 제자들은 복음도 전했고 자기가 듣고 보고 배운 것을 27권 신약성경으로 기록하고 모두들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66권이 주님가신 후 주후 약 백여년 쯤 될 때 66권은 완료가 되고 완성이 되어져버렸습니다. 신앙 없는 이들은 그 뒤에도 “성경이 더 있다, 좀 빼라” 그랬지만 그건 어린사람 뭣 모르는 사람들이고 주후 백년쯤에 성경은 신구약 66권 요게 신약의 교리발전의 제1순서입니다. 성경을 확보했고. 그리고 나니까 귀신이 “그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냐?” 당연한 말, 상식적인 말. 그런데 그 속에 아담을 선악과 먹게 할 때처럼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밝아졌습니다. 밝아진 눈가지고 그 다음 죽을 길로 달려갔습니다. 뒤는 말하지 않고 앞만 말한 겁니다.

성경을 막다가 못 막으니까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사람이다 당연하다. 근데 왜 사람이라고 강조하느냐?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이 아닌 예수는 믿어봐야 헛일입니다. 이래서 첫 번째가 성경 두 번째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누구신고? 구주 구원의 주님은 어떤 분이신고? 의심할 것 없이 하나님이시다. 이걸로 325년쯤까지 흘러갔는데 “예수님은 사람이다” 이 말은 알아듣기가 쉽고 귀에 쏙쏙 들어가고 “사람으로 오신 주님이 원래 하나님이셨다” 이건 너무 어렵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전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으로 구원을 막아버리는 운동이 325년까지 마구 천하의 교회를 다 잡을 만큼 갔지마는 서른살 정도의 아다나시우스라는 청년, 부목이였습니다. 선생님을 모시는 부목. 이 분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게 니케아 공회에서 결정한 교리입니다. 그래 한 번 결정했고 기도했으면 교리란 영원불변의 진리니까 끝이 나야되는데 그 이후에 죽을 때까지 5번이나 제명당하고 쫓겨나는 이런 반복 이런 일을 거치고 죽은 후 아다나시우스가 죽은 후 약 8년 뒤에 주후 381년에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회가 다시는 니케아 공회가 결정한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한 분이다” 두 번 다시 여기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확정을 지어 변동 없이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은 아다나시우스 죽고 나서 묘지에다나 적어놓을 일이였고 살아생전은 다섯차례나 이렇게 번복하며 밀려다닌 것이 신약교회에 성경을 받은 후 그 성경을 말하는 주님을 하나님이라고 확정짓기까지에 들어간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하고 나니까 이게 바뀌지 않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확실히 하나님이면 사람은 아니였겠네? 확실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 높으신 하나님, 그 크신 완전자 자존자가 어떻게 육체의 더러운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한 분이 되겠느냐?” 뭐 주님을 떠밀어주고 위하는 척, 주님을 더 높이기 위하여 “우리 주님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높여놓고는 예수님이 참 사람은 아니라고 사람 아닌 예수를 만들어버리면 구원의 자격이 없어지니까,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공회 381년에 누구였지요? 콘스탄티노플 회의에 디오도로스라는 분이 아폴리나리스라는 이단자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데 참 사람이다 두 개가 함께 가지 않으면 예수님이 아니다” 이게 디오도로스의 교리였고 아폴리나리스라는 사람은 아다나시우스와 친구가 되어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걸 강조하다가 사람은 아니다 그러다가 디오도로스에게 이단으로 정죄된 것이 주후 353년인가요? 주후 381년인데 여기 기록이 잘못됐습니다. 16p, 성경관, 그 다음 예수님의 신성 325년. 인성이 381년이고 그 다음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라면 두 개의 존재 두 분이 아니겠는가? 두 분이 동행하며 동업하지 않았겠는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듯이. 2위 성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과 한 짝이 되어 모든 일을 하지 않았는가?” 요런 또 유혹이 생겨 참 하나님 참 예수님 두 분이 신인양성 두 분인데 일위 한 분으로 구원운동을 하셨다. “안에 하나님은 무한이시고 밖에 예수님 인성은 참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신하여 인간이 지은 죄를 인간으로 100% 영원무궁한 형별을 다 받고 그 수고를 무한하신 하나님이 한 분으로 동참하고 겪었기 때문에 택자들의 숫자에 상관없이 그들의 영원무궁까지의 모든 죄의 값과 의의 앞날은 다 해결이 되어졌다” 이게 신인 양성. 그 바뀌었습니다. 5번이 4번으로 가고 4번이 5번으로 가야 되는데, 양성 두 분은 일위다. 일위라는 말은 한 분이다 그 말입니다. 좀 넘겨서 22p로 넘어옵니다. 22p가 정확한데.

그래서 예수님은 신성 인성 둘이 한분으로 역사하신분이다. 이게 에베소 공회 주후 431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의 신성 인성 둘은 둘이지 한분이 아니라고 한 쪽은 네스토리우스고 신성 인성 두 분이 한 분으로 모여졌고 한 분이 되어져 버렸다 이게 씨릴이라는 분이 중심이 되고 이런 분들이 주장을 해서 그 교리가 431년에 서 졌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또 지나가다보니까 이번에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은 하나님 맞다, 예수님의 외부는 인간 참 인간이 맞다, 참 사람 참 하나님이 한 분된 것도 맞다, 근데 정말로 한 분이 되다보니까 섞여버려서 빨간물감 파란물감이 섞여버리면 보라색 물감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제3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섞여버렸다”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 사람은 영원히 사람으로 둘은 혼돈이 없다” 이게, 이게 4번째 칼세돈 공회 주후 452년에 있었던 어거스틴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 인간은 영원히 인간으로 계셨다, 둘이 섞여버리고 혼동된 적이 없었다. 이 두 분이 가다가 위치를 바꾼다든지 변함도 없다, 혼동 없고 변함없고”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 사람은 사람으로 가다보니까 둘 사이에 간격이 있겠는가? 떨어져버리는 경우가 있겠는가? “절대로 한 분이지 둘은 나뉘지 못하고 분리되지 못하는 참 하나님 참 사람이,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두 분이 한 분이 된 분이 구주 우리의 예수님이시다” 이게 주후 451년경에 확정이 되어짐으로 이제 성경66권 기초 놓고. 그 성경으로 신인양성일위의 구주 예수님을 확정하고 둘. 구원의 주님을 이제 바로 알고, 그러면 이 분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은 구원을 받는 것은 얼마를 내야 되느냐? 따라다녀야 되느냐? 시키는대로 다 해야되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경이 가르쳐주신 구주 신인양성일위의 주님. 그 주님이 가진 구원 이룬 구원 인간이 받아가질 때 주면 받아가지느냐? 가서 달라고 해서 챙겨야 되느냐? 요 구원 얻는 방법을 두고 인제 그 다음 24p.

천주교로 바뀌는 것이 정확하게 한 592년. 590년. 592년. 요정도의 시기인데. 이때부터 한편으로 교회는 교황이 천하교회의 최고다 마음대로다. 세상나라에는 황제가 있어 황제 마음대로 하듯이 교회 안에는 교회황제 줄여서 교황이 천하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된 것을 다 결정하는 최고의 권리를 가진다. 이게 주후 592년쯤 이게 시작되는데 고것도 큰 문제지마는, 교황이 천하교회를 운영하는 결정권을 딱 쥐고나서 하는 말이 “교황 시키는대로 해야 구주 예수님이 마련한 구원이 니 것이 된다. 그래서 니가 구원을 얻는다” 구원 얻는 방법을 교황이 정하고 나온 것이 이게 중세 천년간 교황제도가 교회의 제도적으로는 교황이 모든 걸 다 결정하는 것이 틀렸고 하나님 대신, 내용적으로 들어가면 “교황 시키는 대로 해야 구원을 얻는다” 성경도 그대로 신인양성일위의 주님도 그대로 이걸 움직이지 못하니까 이걸 나두고 구원 얻는 방법은 베드로의 제자 베드로의 직계로 내려오는 교황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마태복음 16장으로 잠깐 넘어가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 베드로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베드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이 내 교회를 세우리니 19절. 천국열쇠를 베드로 반석 너에게 주리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러니 베드로 제자에게 천국 문을 닫고 지옥을 보내는 천국과 지옥을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겨버렸지 않느냐?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지옥이다” 이게 간단하게 천주교의 가장 잘못된 교리입니다. 그리고 그 교리가 그렇게 나갈 수 있게 된 게 교황이 다 틀어지고 마음대로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가버렸습니다. 그러면 인제 하나님도 성경도 예수님도 다 치워버리고 교황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어질까? 마태복음 7장으로 돌아와서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 믿으면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느냐?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순종하는 자. 실행하는 자. 근데 아버지의 뜻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게 감추어져있고 어려우니 누가 쉽게 가르쳐주고 알기 쉽게 딱딱 가르쳐준다고요? 교황이. “인제 믿는 너들이 하늘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 일반 지교회 전도사 목사 수준에 성경도 다 모르는데 어떻게 다 알겠느냐? 천하교회에 제일 어른 교황은 베드로의 직계니까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고 그 열쇠가 내려오고 있으니까 교황이 하나님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 이런 시대 저런 시대 한국의 천주교 신부들이 처음 전도하러 갔으니 그 한국교회 천주교인들은 이래라 저래라 이런 것까지 교황이 말해주는 고대로만 하면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교황이 알아서 교회에 지도자로 척척 가르치고 인도를 하는데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은 없다. 열쇠를 가졌으니까” 요렇게 인제 이어지니까 지금처럼 성경을 한사람이 하나씩 다가지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 시대는 글 못 배워 봐도 못 읽는 사람이 대부분. 글은 읽는데 성경 한 권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비싼지 개인이 가지기도 어려워서 읽을 기회도 없지. 교황이 잘못 읽고 이단 될까봐 잘못 읽다가 이단이 될까봐 “신인양성일위 이런 교리의 논쟁 때 성경 잘못 읽고 이단이 되는 걸 봤지 않느냐?” 글을 읽고 성경을 가지고 있어도 뭣 모르고 성경 읽다가 이단이 될까봐 함부로 성경 읽지도 못하도록 다 막아버렸습니다. 읽을 기회도 없고 글도 모르고 읽고 싶어도 읽는 것도 막아버리고. “이 많은 성경의 어려운걸 교황이 딱 읽어서 이 교회 저 시대 이런 일 저런 일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교황이 딱딱 가르쳐 주면 너들은 열심히 순종하면 전부 천국 간다. 핵심은 시키는대로 잘 실행. 행동. 옳고 좋은 일을 잘해야 천국가지 무조건 천국가는 일은 없다” 이게 천주교 교리가 되어 한 천년간 천주교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막아버리고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전하는 일도 막아버리고 아야 라틴어라는 어려운 언어를 가지고 자기들끼리만 주문 외우듯이 외우고 교인들은 외국어를 몰라서 성경을 번역도 못하게 하니까 글을 읽어도 라틴어를 몰라서 성경을 모르고 요렇게까지 천년간 교인들의 눈을 막고 귀를 막고 교황 원하는 것만 시키면 교인들은 무조건 연보내고 죽잣고 줄줄 따라다니게 하니까 천하 모든 교회와 교인들을 한 손에 틀어지니 교항으로서야 해 볼만 하겠지마는 교황 밑에 신부들은 세상 부럽지 않는 귀족보다 위에사람들이 되었지마는 1천년간 교회의 공식적인 행동으로는 구원과 상관없는 귀신노릇을 해 온 것이 바로 여기 6번에 구원론. 구원은 어떻게 얻느냐?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의 구원을 전적 은혜로 믿을 사람은 때가되면 중생시켜 무조건 믿게 하시니까 믿어지는 전적 은혜냐? 교황이 시키는대로 열가지 백가지 죽는 날까지 열심히 실행하고 회개하고 맨날 이렇게 하는 것이 구원이냐?

그 루터라는 분이 성격도 강하고 똑 부러지게 잘 믿어보려고 노력을 하다보니까 회개해라 해서 회개하니까 천국 갈 거 같고 돌아서니까 또 마음에 죄가 들어오고 또 금식기도하고 나니까 인제 또 죄가 다 씻어진 거 같고 돌아서니까 또 죄에 물든 자기를 발견하고 돌로 된 계단에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 정강이가 다 까져버리는데 그렇게 피를 철철 흘리면서 올라가면서 회개하라 해서 그래도 해보고 시키는 거 별야별 걸 다 해봐도 천국 갈 자신이 없을 때 이분은 성경이 기록된 라틴어를 아니까 배운 분이니까 신부니까 교황이 뭔 소리했던 말았던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꼼꼼하게 읽다보니까 한번 펴볼까요? 로마서 8장 1절. 로마서 8장 1절 다 같이 시작.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중생된 자.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건 뭐지? 천주교에서는 요런 거는 쏙쏙 다 빼놓고 가르칩니다. 성경 제일 뒤쪽. 요한1서 5장. 요한계시록 바로 앞입니다. 394p. 요한1서 5장 18절 다 같이 시작.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악령이 손도 못 대는, 절대로 범죄지 않는, 믿으면 이렇게까지 중생되고 이렇게까지 무조건 천국 가는 길이 있는데 교황 시키는대로 해야 천국을 가다니? 이게 맞는 말인가? 당연히 의문이 생겼지요? 그러다가 로마서 공부를 하면서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가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느니라. 로마서 3장 펴보십시다. 로마서 3장. 27절. 243p.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따라합시다.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 믿음의 법.

28절.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0절.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교황의 하나님 따로 있고? 우리 하나님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데. 로마서를 읽으면서 전적 은혜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전적은혜로. 하나님이 죽은 영을 중생을 시켜버리면 안 믿을 수가 없고 중생을 시켜놓으면 그 다음 믿어지고. 그 믿음을 들고 천국은 무조건 해결되어 결코 정죄함이 없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여기서 독일의 루터가 1천년간 교황 제도가 썩었고 못할 짓을 많이 한 것은 알았는데 여기서 발견하고 그 다음 옛날 천년 전 어거스틴의 기록. 이런 글들을 읽는 사람이니까 읽어보니까 원래 예수님의 구원은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의 구원은 전적 은혜인데 어거스틴의 평생이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다 인간의 노력이란 못 쓰는 거다. 이것만 가르친게 어거스틴인데 그 어거스틴을 천주교가 써먹기는 써먹으면서 그런 구원의 전적은혜라는 것은 어떻게 다 피해갔는지? 그 읽으면서도 다 빠져나가버렸는지? 눈뜨고 천년간 그 합리적이고 계산 잘하고 철학이 발달한 서양 모든 교회들이 교황 시키는대로 해야 천국 들어간다고 그렇게 세월을 다 보내버렸습니다.

루터가 믿음으로 구원 얻지 행위로 가지고 구원 얻는 것은 아니다 이걸 중심으로 천주교 교황 제도의 틀린 95가지를 조목조목 적어서 예배당 들어가는 대문에다대고 교황은 이렇게 틀렸고 천주교는 이렇게 다 썩어 버렸다. 그 전부 틀렸다 죄다 잘못이다 성경은 이렇다 95개를 갔다가 그냥 갔다 발라 붙였습니다. 그 그렇게 과격해가지고야 루터를 따라 돌아올 사람들이 반발심이 생겨 튀어나가지 않을까? 뭐 요즘 우리가 우리를 보면 그렇지요? “말은 옳은데 성을 내면서 말을 하니까 성낸 얼굴이 싫어서 나는 저 인간 가는데 하고 반대로 가겠다” 이게 일반적으로 사람은 감정에 피동을 먼저 받기 때문에 그런데. 루터 초상화가 나가있는데 루터 이마빡, 코 뭐 보면 그냥 울퉁불퉁 완전히 막되먹은 깡패얼굴입니다. 막가는 사람이니까 천년 천주교와 싸워 천주교를 끄잡아 내렸지 곱디 고운 사람이 곱게 곱게 말했으면 말 꺼내기도 전에 죽어버렸을 겁니다. 루터는 강한 사람입니다. 억센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하나님 앞에 두려워 벌벌 떨다가 천둥소리에 골짝에 그냥 또랑에 처박히는 이런 못난 모습도 함께 가진 루터였습니다. 하나님 하면 두려워서 벌벌 떨었고, 교황 인간 천년의 역사 제도 그러면 죽기를 각오하고 그냥 싸워. 루터가 1517년 지금부터 오백년 전입니다. 작년이 오백년 되던 해인데, 1517년 교황제도가 592년부터 시작됐으니까 약 천년간 내려온 천주교를 “구원은 은혜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신인양성일위가 되어 죄 값은 다 감당하셨고 부활 후 우리의 영생의 모든 자본을 마련하셨다. 그 모든 은혜는 공짜로 은혜다” 내 마음으로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착각입니다. 믿는 노력은 노력이 아닌가요? 공부하는 애들이 주는 밥 먹고 책상에만 앉아있는데 밖에 가서 현장에 꼭갱이 파는 사람하고 비교하면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보면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은 놀고 먹는 거 같은데 책상에 앉아 고시를 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말라 죽어버립니다. 마음이 믿겠다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행동입니다. 몸으로 행동하는 것으로는 구원이 안된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행동하는 믿음은 마음의 행동인도 마음이 믿으려고 노력해서 믿으면 그건 공짜 아니냐? 그건 공짜인가요? 그것도 행동인데. 사람 몸에 피를 뇌 혼자서 3분의 1을 쓴답니다. 멀쩡한 사람이 골치아픈 일을 만나면 잘 먹어도 빌빌하지 않습니까? 우선은 육체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이 힘든 거 같지마는 그것도 힘들고 육체노동 못지않게 정신노동도 무시 못합니다. 지금까지 5백년 믿음의 구원이란 말이 대게 몸으로 뛰어 다니고 회개를 하고 전도를 하고 그 행위로 구원을 얻느냐? 그런 행위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쉽게 그냥 믿습니다. 쉽지 않느냐? 그 공짜 아니냐? 마음이 믿습니다 라는 생각, 마음의 노력으로 가지고 구원 얻는 줄 아는데 아닙니다.

영이 죽었으니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근데 우리 영이 죽었기 때문에 이 영을 살려 놔버리면 산 영이 마음을 흔들어 안 믿을려고 하는데 자꾸 흔들어대니까 마음이 믿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말은 육체의 행위 말고 마음이 믿으려고 노력하면 마음의 믿음으로 구원을 가져오는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이 신인양성일위 예수님의 구원으로 우리의 영을 일방적으로 무조건 살려 놓으면 살아난 영이 마음한테다 대고 이제 날 따르라 날 따르라 자꾸 마음을 흔드니까 마음이 안 믿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도 자꾸 밀려오니까 나중에는 그만 믿게 되어지는 겁니다. 중생된 영. 영을 중생시킨 이거는 우리가 알기도 전에 느끼기도 전에 죽은 영을 하나님이 바로 살릴 때 우리에게 의논한적 없고 따라오라 한적도 없이 은혜입니다.

전적은혜로 구원얻는 것이라. 독일에 루터 1517년 그리고 이어진 스위스의 칼빈이 1536년경 “구원이란 영원 전 하나님이 천국 갈 사람은 미리 다 정해 놓았다 아야 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에 영원 전에 정해진 인간은 안 믿을 수도 없다. 영원 전에 예정으로 택자되고 천국 갈 구원 얻을 사람은 미리 정해졌기 때문에 때가 되면 무조건 중생시키고 때가 되면 이 사람들이 믿음의 행위를 하게 되는 거다” 루터의 깨달음을 칼빈이 정리하고 잘 적어서 루터의 말을 듣고는 좀 헷갈리는 게 있었는데 칼빈의 책까지를 읽어보니까 이게 바로 성경이라. 그래서 천주교 천년 교황중심의 인간세력이 문을 닫고 뭐 그래도 아직까지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천주교 교인들 교회 다니는거 보셨습니까? 절 다니는 사람들 이름 올려놓고 일 있을 때 한 번 갔다 오면 불교인처럼 천주교인 이름만 걸쳐놓으면 천주교인이고 회비만 내면 되고. 또 그중에서도 열심내는 사람도 있기는 있습니다. 기독교가 열심내서 하도 잘되니까 기독교 흉내를 내서 뭐 구역제도도 만들고 하기는 한다 그러지마는 근본적으로 바뀔 수는 없는 사람들이고. 루터와 칼빈으로 오늘 우리의 교회가 초대교회를 이어 중세 천년 잠들었고 문을 닫았다가 새출발이 되었습니다. 루터 칼빈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하기 전 영원 전 하나님이 택한 백성 정해놓고 때가 되면 구원을 해버린다. 전적은혜로 택한 백성이 되면 어떤 우여곡절을 지내더라도 성령이 끝가지 견인하여 끌어다가 마지막에 천국까지 인도하신다. 이게 인제 천주교 떠나 바로 기독교가 새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7번. 건설구원.

믿은 이후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한 500여년 내려오면서. 훼방입니다. 천주교회에서 개혁하여 재출발한 일반교회 개혁교회가 “구원은 전적 은혜다. 그면 믿고 나서는 할 일이 없네?” 헷갈립니다. 앞으로 갈 길을 열어줘야 자꾸 발전을 하는데 아이들이 그 다음 할 일이 있고 그 다음 할 일이 있고 그 다음 할 일이 있으면 할 일을 하다가 나쁜 일할 시간이 없어지는데. 학교 안댕겨도 직장 안가도 니 인생 니 마음대로 살도록 전부 국가에서 보장했으니까 놀고 먹어라, 즐겁게 살아라 해 놓으면 할 일을 없애버리면 할 일에 바쁘지 않으면 할 일에 좀 눌리지를 않으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 할일 못쓸 일 잘못된 것만 골라서 하게 됩니다. 루터와 칼빈의 말이 맞으면 믿는 사람 우리는 구원 받았고 교회 다닐 필요가 없는 겁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녀야 구원 얻느냐? 그건 천주교 소리고. 그거 틀렸다고 출발한 것이 개혁교회 오백년 기독교인데. 교리를 제대로 알고 보니까 중생이 확신, 확신이 되고 나면 “이제 툴툴 털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나는 천국이다 이리가나 저리가나 천국가면 같으니까” 교회가 탈선하고 방동하고 엉망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천국가기는 갑니다. 천국에 차이가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천국 들어가는 것은 은혜고 확정이 되었으나 천국의 영원한 기쁨은 영원한 실력은 영원한 영생의 내 모습은 어떻게 되어질까? 천국을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죄송해서 또 세상에서 미리 준비를 해야되는데 세상에서 죄만 짓다가오니 그래도 천국은 들어왔는데 죄 짓는 훈련 죄 짓는 실력은 있고 옳은 일하는 실력은 전혀 없으니까 죄 짓던 실력은 지옥에 버려야 되고 천국은 들어왔고 아는 것은 없고 나쁜 것은 못하는 천국이고 천국에는 들어왔으나 좋은 천국은 구경하고 실력 있는 분들이 수고해준 은혜를 받아 누리기는 하는데 자기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천국의 무능자 천국에 할 일이 없는 사람. 지난날의 세상이 부끄러운 사람. 어느정도 부끄러우냐? 지옥적인 고통은 없고 지옥적인 후회는 없는데 밝은 빛으로 모두가 사랑하며 도와주며 인도해주니 은혜는 받되 참 바늘방석이 되어집니다.

이 천국의 차이는 믿은 이후에 자기의 심신을 어떻게 말씀으로 다스리고 인도했느냐는 고 충성 고 실력 고 노력에 달려있는데. 천국 들어가는 자체를 노력으로 해결할려고 했으니 천주교 천년은 틀렸고 천국 들어가는 것은 공짜인데 은혜인데. 천국 들어가면 똑같으니까 들어가면 무조건 같으니까 요것만 알아버리니 이걸 가르쳐준 루터와 칼빈에게 배워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옮기고 천국을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인제 그 제자들이 앞으로의 충성은 천국에 하나님이 맡긴 자기의 영생의 모습이니 인도 따라 열심히 자기 천국을 건설해 나갑시다. 건설구원. 요렇게 가르쳤더라면 기본구원 오백년 전에 해결 고다음 제자들이 건설구원의 길로 열어줬으면 천주교에서 나온 기독교가 천주교로 다시 돌아가거나 본받지 아니하고 아니면 사방천지 흩어지지 아니하고 앞길을 향해서 쭉 잡고 발전을 해서 우리가 이 말할 것도 없이 오백년 선배들의 노력과 도움을 따라 뭐 그냥 달려가는데 정신도 없어야 될 터인데. 이 건설구원의 교리가 칼빈 이후에 한 사백년 오백년 동안 혼동스러워서 교파 중에 장로교 이름을 붙인 교회는 한국에서만 만치 미국에서는 구경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미국에서는 침례교회들이 제일 많고 감리교회 그 다음 많고 말하자면 장로교는 몇 개 되지도 않습니다. 미국 가서도 한국 사람들은 또 장로교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많으니까 장로교 이름이 붙으면 칼빈주의라는 뜻입니다. 내가 생기기 전 세상 만들기 전 영원 전에 하나님이 나를 천국 갈 사람으로 택해 놨다 미리 정해 놨다 때가 되면 나는 중생된다. 알 것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이 택한 백성은 때가 되면 중생된다. 그리고 죽으면 천국 간다. 이게 장로교입니다. 그러니 장로교는 할 일이 알고 보면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는 세월 속에 다 잠들고 까라 앉고 빌빌 하다가 그냥 교회 취급도 미국 사회에서는 못 받습니다. 미국에 열심히 믿는 남부에 제대로 된 근본주의자들 강한 신앙가들을 만나면 장로교 하면 교인 취급도 안합니다. 이런 장로교가 한국에 와가지고 한국에 대부분이 장로교가 돼버리고 큰 교회는 다 장로교가 될 만큼 이렇게 돼가지고 특별히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장로교는 장로 이름 빼버리고 그냥 “교회” 이렇게 붙이고 신풍교회 붙이고 감리교회는 신풍 감리교회 순천 감리교회 대구 감리교회 감리교회는 감리라는 말을 붙여야 간판이 되고 장로교회는 대구 서문교회 부산 제일교회 북부교회 이만큼 장로교회가 대세를 이룬 것도 기이한 일입니다. 장로교회가 성경 그대로 죽어도 잘 믿겠다고 이렇게 정통 보수로 가는 경우도 적고, 그것도 적고 그 다음 장로교가 한 교계에 대세가 되는 것도 희귀한 일인데 한국에서만 장로교가 절대다수고 장로교가 열심도 최고고 욕을 얻어먹든지 말든지. 죽잣고 열심히 믿는, 이게 참으로 기이하고 기이한 일들만 이렇게 다 모여져 있습니다.

감리교는 하나님이 절반 힘쓰시면 인간이 절반 힘써서 둘이 협조해가면서 천국 가는거라 하나님 혼자도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지 않는다. 우리 혼자도 천국 못 간다.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둘이 동업해서 천국 가는게 감리교다. 감리교 교리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천국 갈려고 노력은 하고 열심은 내는데 자기 양심으로 자기를 돌아보면 천국 갈만큼 깨끗한 감리교 목사님, 목사 위에 제일 높은 분이 감독인데 감독님이 계실까요? 돈 먹는다고 정신도 없는데 전부 교도소 들락날락하는데. 내나 뺑 돌아서 천주교 시절입니다.

장로교를 믿으면 영원 전 천국 가도록 결정이 되었다 나는 아무 노력도 할거 없이 때가 되면 천국 갈 백성으로 중생이 된다. 그리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베풀다가 신선노름하다가 천국 간다. 믿고 나서 할 일이 있나요? 저절로 다 잘된다는데? 신사참배가 와가지고 한국에 장로교 잘 믿는 사람들이 전부 신사참배를 하고나니까 “그 사람들은 원래 중생이 안되가지고 죄를 지은 거지. 진짜 중생이 되었더라면 신사참배 할 리가 있는가?” 아들놈이 아들노릇 안하면 개인가요? 돼지인가요? 옆집 자식인가요? 아들놈이 아들노릇을 못해도 아들은 아들이고 천국은 가야 됩니다. 못된 것이 회개하고 좋은 아들이 되면 더 좋은 거지. 요게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관계인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누구신고 450여년동안 헷갈렸다가 신인 양성일위의 주님 450여년만에 확정하고 나니까 그 주님이 주는 구원은 교황 시키는 대로 이래가지고 천년을 귀신이 훔쳐가 버렸습니다.

“구원은 신인양성일위의 초대교회에 확인된 구주 예수님 전적 은혜로 천국 가는거라” 요걸 루터 칼빈이 천년만에 문을 다시 열고 재출발을 시켰으면 고 제자들이 “우리 구원은 무조건이다 천국은 무조건이다 인제 앞으로 수고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자기 위치 자기 사명 자기 영생의 모습을 위하여 각자 수고하는 거다” 이러면 천국 갈 안심은 되고 확정은 되고 그 다음 내가 내 할 일에 부족해서 늘 노력하고 요러면 딱 맞고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교회는 발전을 했을 터인데 천주교로부터 해방은 시켰으나 택한 백성은 천국이다 중생되면 무조건 천국이다 이러니까 첫 은혜받고 막 신앙이 폭발할 때는 나는 중생 100% 됐다 천국이다 자신을 했는데 열심히 잘 신앙생활 했는데 1년 3년 가다가 신앙이 시들해지고 의심도 생기고 내가 나를 봐도 좀 죄를 짓고 그러면 뭐라고 해석을 하느냐? 칼빈의 제자들이 오백년간 지금도 해석을 하는게 “니가 중생이 됐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고 니가 뒤에 죄를 많이 짓는 걸 보니까 그때 중생 됐다는 것은 착각이였다, 오해였다 중생은 안됐는데 중생이 됐다고 니가 잘못 알았던 거다” 이게 반복되면서 가다보니까 열심히 믿는 사람은 열심히 믿고도 천국 갈련지 아닌지 늘 의심스럽고 대충 믿는 사람은 택함받아 천국 공짜로 가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지옥이 없으면 더 다행이고 그냥 거지 밥 주는 구호단체로 구제단체로 건전하게 살고 웃고 살고 남을 사랑하면서 살고 좋게 좋게 살아가는 것이 교인들이 세상에서 하는 빛과 소금이다. 교회를 도덕의 종교로 교회를 세상 봉사단체로 구호단체로 복지부 산하의 센터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를. “예수밖에는 전부 지옥이다” 그 말은 사람들이 싫어할꺼라 입에 내지도 못합니다. “예수만 천국이다” 미쳤다 할까봐서 말이 안 나옵니다. 교회는 뭔고? 웃으며 불행이 닥쳐도 잘 돼겠지라고 희망을 가지고 그 희망을 가지다보니까 잘될 수가 있으니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온 분이 예수다. 천국은 어디갔지? 구원은 어디갔고? 왜 역사이후로 모든 의인들이 순교해가며 복음을 전하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던가? 문명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신사숙녀를 만들기 위해서? 절에 부처처럼 동글동글 생겨가지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그냥 좋게 좋게 그러다가 가는 것이 기독교가 돼버렸습니다. 아니면 천주교로 돌아가서 모두 천주교 흉내를 내는 것 절반. 사방 천지 흩어져서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된게 절반. 그래도 세계교회에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예수천국이라고 발버둥을 쳤는데 이 한국에 조차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잘 먹고 잘 살게 해 놓으니까 내나 미국교회 닮고 아니면 천주교 닮고 아니면 유럽교회 닮아서 너는 니 멋대로 나는 내 멋대로 니 사상대로 내 사상대로 이 죄를 짓든 저 죄를 짓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잡탕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66권 죽어도 그대로 신인양성일위 주님 죽어도 그대로. 그 구원밖에 없고. 내가 모를 때 전적은혜로 구원받았고 믿은 후 나 할 일은 천국은 확정이 되었으니, 대학 합격증은 받아 놨으니, 대학을 들어가면 영어가 중요하다는데 미리 많이 영어를 해 두면 훨씬 수월하니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요게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총공회의 교리의 의미입니다. 잠깐 앞으로 도표로 돌아와서 14p 도표입니다. 14p 도표의 왼쪽에 보면 구약 4천년 아담 아벨 에녹 노아 모세 다윗 예수님 한 분을 준비하기 위해서 4천년 구약교회가 수고해서 예수님의 구원이 완성되었고 오른쪽으로 와서 이 예수님의 완성된 구원을 사도들이 전하면서 성경으로 길을 열어 놓았고 그 성경으로 66권 열어놓은 길을 구원의 주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신성이다. 날 대신하여 오신 인간 인성을 입고 오셨다. 그 참 하나님 참 사람은 한 분이다. 일위. 그 한 분은 그 한 분 안에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고 그 안에 사람은 영원히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 참 사람이 영원히 사람이라야 우리 사람이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사람이 가다가 보면 섞이거나 나뉘거나 변질이 되거나 갈라지는 수가 있느냐? 절대불변 그런 일 없다. 신인양성일위의 주님 까지를 초대교회가 한 오백여년 지나면서 확정을 해놨는데 그 주님의 구원을 받아 이제는 건설해 나가면 되는데 그 주님의 구원을 교황 시키는 대로 천년. 천주교 천년 날아가 버렸고. 루터와 칼빈이 전적은혜다 해서 구원은 다시 찾아줬는데 찾은 구원을 가지고 그 다음 할 일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니 오백년 또 방황입니다.

집나간 아들을 집에까지 찾아줬는데 이 녀석이 부모가 아직도 저 길에 어디 있는지 돌아 댕기면 제 부모 찾아봐야 제 부모 찾은 해택은 못 봅니다. 제 부모를 찾게 되었으면 “부모가 돈 대줄거고 모든 것은 다 제공할테니 인제 부모가 대신 못해주는 공부만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다” 이래버리면 부모가 밀어주고 자기는 자기할 공부만 하면 엄청 좋아질건데. 하도 속아보니까 부모라고 찾아주니까 이게 진짜부모인지 가짜부모인지 연극인지 몰라서 앞에서는 예예 하면서 밥 얻어먹으면서 뒤로는 “내 부모는 어디에 있을까” 이러고 남은 인생을 헤매고 다녔으면 부모 찾으나 안 찾으나 같습니다. 택자는 천주교 안에 있어도 구원 얻습니다. 절에 앉아있어도 구원 얻습니다. 교회 안에 있어도 구원 얻습니다. 교회 안다녀도 택자는 구원 얻습니다. 루터가 전직이 뭐라고요? 천주교 신부입니다. 천주교 교인입니다. 천주교 교인, 신부 시절에 95개 틀렸다고 외쳤으니 천주교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천주교가 안내하고 줘서 받은 것이 아니라 천주교 안에서 구원받아 천주교가 틀렸다고 깨트린 사람입니다. 칼빈도 천주교 안에 신학자였습니다. 오늘도 천주교 안에 천주교인으로 살면서 “성경을 읽어보니 이거 틀렸네” 그 사람은 천주교의 안에 천주교의 교리와 지도를 따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가 틀린 줄 아는 순간 이 사람은 구원받은 표시가 나오는 겁니다. 이 도표에 앞에 오백여년 초대교회 성경과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을 세웠고 천주교 천년간 뭍쳤던 구원을 천년이 지나며 루터 칼빈이 기본구원 전적 은혜라 교회에 찾아 주셨고. 제자들은 “무조건 천국이니 열심히 내 할 일만 하면 되겠구나” 하면 될걸 가르치지 않아서 오백년간 기독교가 앞으로 갈 길을 열지를 않으니까 사방 천지 흩어진 겁니다.

칼빈주의 장로교가 건설구원을 일찍 개척해 나왔더라면 침례교 감리교 순복음교회 어지럽게 나눠지고 쪼개질거 없이 대세를 이루어 오늘까지 왔을터인데. 천국 갈 사람은 미리 예정이 되어있다 미리 정해져있다 힘쓰지 않아도 무조건 천국이다 요 말만 하고 다른 걸 가르치지 않으니까 장로교 다니는 사람은 처음은 좋았다가 뒤에 보면 예배당에 가서 다 졸고 앉았습니다. 장로교의 진짜 특징. 강의도 조용조용하게 강의하고 교인들은 다 졸고 앉았는 게 장로교니까 그 꼴을 보면서 받은 은혜로 못 견디는 마음으로 좀 열심을 내야되는데 해가지고 마구 솟 굳치는 마음으로 달려나간 게 말하자면 감리교. 그 감리교조차 가다가 흐지부지 되니까 불바다라 하는 순복음 교회가 나온 것도 바른 교회가 바로 갈 길을 마련하면 달려가느라고 격 길로 안 갈건데 가는 길을 앞을 고장난 버스가 가로 막으니 옆으로 세고 뒤로 달려가고 사방 천지 천하가 교회 때문에 두통거리가 되게 한 것이 칼빈 문제가 아니라 칼빈 제자들이 칼빈 다음의 건설구원을 열어놓지 안았다가 이게 오백여년만에 1960년 경 백목사님이 열어놓으니까 칼빈제자들이 한명도 빠지지 않고 이단. 칼빈이 가르친 것만 가르쳐야 되는데 칼빈 가르친 그 다음을 가르치니 킬빈보다 앞서가면 전부 교통위반 범죄자. 그러다가 지금은 칼빈제자들 한국의 장로교 골수들 속으로는 벌써 공회교리 다 눈치 챘고 그중에 제일 극단적인 것이 자살하면 지옥입니다. 천주교부터. 왜? 자살이란 살인죄지요? 남을 죽인사람은 천명을 죽여도 회개를 하면 구원을 받는 길이 있는데 자기가 자기를 죽여 버렸으면 살인죄를 짓는 순간 회개도 못하고 죽어버리니 이 사람은 택자일 리가 없다 불택자였을 것이다. 천주교나 감리교 쪽에서는 “회개를 해야 천국 가는데 자살을 해버렸으니 자기를 죽이는 살인죄를 짓자 말자 죽어버렸으니 회개를 못했으니 이 사람은 천국 못 간다” 그래서 세계교회 2천년의 역사에 “자살하면 전부 지옥이다” 이게 대세지 “자살해도 천국이다” 이 소리 담대하게 외친 곳이 없습니다. 우리 공회만 큰소리쳤지. 이러니까 공회 안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졌던가요? 내가 날 죽이면 천국에 내가 갖추고 내가 준비할 것은 끝이나니 오히려 자살하는 사람이 공회는 더 적지. 지금은 고려신학교 유명한 교수도 합동 총신 교단 유명한 교수도 여기저기에서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우리가 옛날에 그리 말을 했다 그러나 그건 아닌 거 같다 그 좀 지나친 거 같다 이제 이런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데 옛날에 이런 논문 나왔으면  전부 이단으로 못이 박혔는데 지금은 한쪽에서는 그 말을 하고 한쪽에서는 뭐 그것도 그럴 거 같다 너는 니 말하고 나는 내 말하고 받아주는 정도가 됐다는 것도 완전 돌변입니다.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설교록 속에 기본구원 건설구원이 여기저기 사방에 흩어져 가문대지에 먼지만 폴폴나는 땅이 갈라진 가문 대지에 이슬비가 오면 알게 모르게 전부가 다 젖어 지나놓고 나면 풀이 돋고 풀이 돋으면 동물이 살고 다시 생명운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요런 때가 되었으니까 인제 모든 공회 교회들이 잘 단결해서 예전에는 설교록을 전하고 이런 말을 하면 이단이라 이 오해 때문에 분쟁이 많아서 전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 전했는데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관심을 갖고 살펴봐주고 들을려 해주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공회교회가 옛날처럼 단결하고 부지런히 내어보냈으면 정말로 잘 믿는 길들이 쫙 열려버려 쿠덴베르그의 인쇄기가 나오고 인쇄기가 많이 보급된 다음에 칼빈책이 나오니까 일시에 유럽을 뒤집어엎은 것처럼, 이런 세계적인 분위기 속에 이 설교록이 나가고 번역도 되고 공회교회 교인들만 열심히 전해도 이미 눈치는 챘고 안에서는 전하고 이리되면 그만 박자가 맞아 폭발이 일어날듯한데 귀신이 밖은 준비가 됐는데 밖은 존경을 하는데 밖은 배우고 싶은데 밖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정작 파종할 농부 집에 대판싸움이 나가지고 깨지고 서로 죽인다고서로 생난리를 부리다가 30년 세월 다 보내버렸습니다. 참 귀신이 부지런하기도 하지요? 4천년간 오는 예수님 대를 끊을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예수님이 오니까 이제는 66권 성경을 막을려고 발버둥을 백년 치다가 성경이 완성이 돼버리니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래가지고 또 구원을 막으려다가 이리 막다가 저리 막다가 신인양성일위의 구원의 역사를 막다가 안되니까, 천주교 천년을 통해 교황님 따라 천국가거라 하니까 택한 백성은 이러나 저러나 천국은 가겠지마는 천국의 준비는 천년간 전부다 황무지가 돼버렸습니다. 이 감옥을 이 족새를 깨트리고 신앙의 자유로 마음껏 천국을 향해 달려가라고 길을 열어놓으니까 길을 열어놓은 루터 칼빈은 죽어버렸고 길을 연 그 뒤에 제자들이 달려갈 길이 저쪽이라 방향만 주면 달려갈 건데 이거라 저거라 사방천지 흩어지는 바람에 그만 오백년 다 허사했고 주님 오실 제일 마지막 이제 공회의 교리로 6천년을 정리하고 2천년 신약의 교리사를 딱 요렇게 어떻게 요렇게 맞아지도록 되었을까요? 왜 성경이 먼저 확정되고 신인양성일위가 요렇게 딱딱 결정이 되고 천주교에서 개혁교회 개혁이 다른것이 아니라 기본구원. 믿음인 믿음이 구원이라 고 교리가 나오고 그 다음 믿은 이후에 믿음생활은 건설이라. 신앙의 건설이라.

한번 몇 곤데 좀 찾아볼까요? 마태복음. 마태복음 5장 19절. 마태복음 5장 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지옥인가요? 천국은 들어간다. 그러나 천국에서 위대하지는 못할거다, 중간도 아닐거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 왜 그때 꺼꾸로 가르쳤던가? 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 말씀 저 말씀 다 내버렸던가? 그 때가서는 돌아오지 못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지극히 작은 자로 살 것이라 천국에 지극히 작은 자가 있습니다. 19절. 하반절.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한 계명이라도 그대로 살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어떻게 된다고요? 크다 했는데 앞에 지극히가 나왔으니까 반복을 줄이기 위해서 뺀 겁니다. 한 말씀 지극히 작은 것 빼면 지극히 작다 일컫을 것이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가르치면 지극히 크다 일컫을 것이라. 천국에 큰 자 작은 자가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꼼꼼히 적어가며 대보며 읽어보면 실수도 하고 좌로 우로 치우치지마는 결국은 옳고 바른 길로 갈건데 용감해서 한 번 툭 튀나갔다가 틀린 줄 알면서 “창피하게 인간 오기가 있지 어찌 돌아와?” 간 김에 내친 김에 끝가지 가버리고 “아니 뭐 대충 믿으면 되지 멀 꼼꼼하게 그냥 대가며 믿어? 골치 아프게” 이러고 저러는 통에 성경을 줘도 모두 성경을 못 읽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거 하나라도 버리고 어기고 죄 지으면 또 고따위로 가르치면 지옥인가요? 절대로 천국이라 단 천국에서 자랑스럽지는 못할 것이라. 부끄러울 것이라. 아 천국에도 부끄러움이 있나요? 고린도전서 3장으로 가볼까요? 천국에도 부끄러움이 있으면 그게 천국인가 지옥이지.

고린도전서 3장 15절. 266p. 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구원은 얻되 구원은 얻되. 불 가운데서 다 태워버리고 벌거벗은 자가 되어 부끄럽게 되겟지. 그래서 그 위에 10절에 보면 바울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나는 터를 닦으니까 다른 사도는 그 위에 세우고 모두들 자기 할 일을 자기 맡은 일을 건설해 나가는데 11절. 어쨌든지 터는 예수그리스도만 구원이요 터요 이것만 근거요. 여기 떠나면 구원은 없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라 단정을 해놓고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구원 이 터 위에 금으로? 두 번째는요? 은으로? 세 번째는? 보석으로 집을 지어도 되고 금 은 보석이 비싸서 풀 사고 짚 사서 재우면 나무나 풀과 짚을 대신사면 보석으로 주먹만큼 지을 집을 나무 풀 짚을 사면 내게 2만평의 집을 지을 겁니다. 금 은 보석으로 그리스도예수 구원 위에 자기 건설을 해도 된다. 금 같은 신앙 은 같은 신앙 보석 같은 귀한 말씀으로 순종하고 자기 신앙생활을 해도 되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그냥 막 그냥 남 보기에 커단하고 쉽게 쉽게 쉽게 믿어도 잘 믿고 교회가 부흥이 되는데 그렇게 해도 자유입니다. 그런데 13절. 수고한 공력 수고한 건설 수고한 건축물을 시험을 할 건데 그 날 마지막 날 공력을 밝히리니. 불을 싸질러버립니다.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라. 불을 싸질러보니까 풀 짚 나무로 지은 사람은 단기간에 초대형 교회가 되고 남들이 다 부러워할만한 굉장한 건설이 되고 금 같은 신앙 은 같은 교리 보석 같은 인격을 만든 사람은 철야 하니라고  어디가서 세수도 못하고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막만하게 믿은 거 같고 공회교회는 열심히들 믿는다 해도 공회교회 2백 교회 어디를 가도 열 명 아니면 스무 명 앉아있습니다. 목사 가족 친구 친척 몇 명. 안면 때문에 못가는 사람. 공회 이백 개 교회 한 백오십 개가 열 명. 아니면 스무 명입니다. 이백 개 교회 중에 크다하면 오십 명에서 칠십 명입니다. 그런 교회 이삼십 개. 백 명 좀 넘는 교회 한 열 개밖에 안될걸요? 서부교회 교인 다 털어먹고 지금 몇 명 안 남았습니다? 새벽예배 남반이 뭐 열 명이라던가? 서부교회 월급 받는 직원이 목사님 생전처럼 숫자를 다 유지하고 있답니다. 육십 명이 넘습니다. 서부교회 월급 받는 사람들만 새벽예배 나와도 남반 직원들만 나와도 그 자리 다 채울텐데 이게 공회교회가 돼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이 슬금슬금 강단에서 율동하고 재미있게 좋게 좋게 하니까 그냥 쉽게 믿고도 만 명 교회 십만 명 교회 쉽게 만드는데 공회 교회 잘 믿는다 참 뭐 일반교인이 일 년에 성경 열독 스무독을 읽어서 삼백독 했다 칠백독 했다 그런 교인들이 있는데 앉은 교인 숫자는 열 명 스무 명 커봐야 오십 명. 작아도 금은 금이지요. 작아도. 그 정도 교회를 좋게 쉽게 만들어 놓으니까 십만 명이 모이니까 짚으로 나무로 풀로 세계 최고의 교회를 만들어 놨는데 문제는 불을 싸질러보면 공회교회들은 공회가 서로 달라도 공회교회들은 불 싸질러보면 그래도 몇 명 아니라도 불 가운데 타지 않을 신앙들이 더러 많을걸요? 그래도.

만 명 교회 십만 명 교회에 주일 지키는 교인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 제 짐작은 그렇습니다. 왜? 그 교회 목사님이 주일을 안 지키니까. 그 교회 목사가 주일이 없는데 그 교회 장로가 주일을 지킬리가 있는가요? 목사가 순교한다 해도 장로님은 순교는 못해도 주일만 지키겠습니다 이리되고 장로가 주일은 지킵니다 해야 집사가 술은 안 먹겠습니다 이정도가 되는건데, 목사가 주일이 없는데 목사가 주일이 없는데 밑에서는 주일을 지켜요? 목숨을 걸어요? 그걸 리가 없지요. 그래도 있다면 천주교 안에 루터 칼빈이 나오는 거처럼 그런 귀한 인물은 숨겨놓은 의인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공식적으로 드러난 정도로 가지고 말하면 없을 것이라 공회교회는 대구공회 넓다고 제가 맨날 욕을 해대지마는 그 안에 30년 설교록을 보지 않고도 30년 전에 받은 은혜로 오늘도 촛불 켜고 혼자 그대로 꼿꼿하게 나가는 분들 있습니다. 많지는 못해도 금처럼 은처럼 보석처럼 금 은 보석은 산떠미처럼 쌓아놓지는 못합니다. 그냥 이리저리 주워서 요만하지. 금 하나 살돈으로 짚을 사면 8톤 트럭만큼 성탄트리를 만들지 문제는 마지막에 불을 질러보면 흔들어 보면 말씀으로 되어졌냐? 안되어졌냐? 꼼꼼하게 안을 살펴서 사죄에 맞고 칭의에 맞고 화친에 맞고 영생의 소망에 맞은 것은 한 개라도 천국 두 개라도 천국 안 맞는 것은 기독교 노벨상. 기독교 노벨상도 있더랍니다. 그걸 받아도 거기 안 맞는 것은 전부 불질러버릴 것이니.

14절.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천국의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타면 지옥 가느냐? 구원은 얻되. 구원을 얻되 천국은 함께 갑니다. 서로 상대방 속에 있는 보배로운 신앙이 뭔지를 몰라서 함부로 비교를 못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순복음교회는 전부 욕을 하고 우리도 욕을 하는데 순복음 교회가 기도에 목숨 걸고 기도에 전력한 고 보석 같은 신앙은 아무리 불 질러도 남아 있을 겁니다. 근데 그 보석이 우리 교리 보석보다 더 크면 어떻하지요? 함부로 판단은 못합니다. 다만 2천년 교리의 역사의 계통 때문에 우리는 못났지마는 4천년 구약과 신약 2천년 교리의 마지막 단계에 주님이 우리를 세워 놓으셨다. 우리가 잘났고 우리가 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또 섯는데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위치는 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근데 노릇을 우리가 잘못해서 이게 한탄이지 다른 분들은 위대하고 실력은 있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아서 길을 잘못 들어서 근데 그 길 잘못든 속에 특별은혜를 받아 우리교리를 받지 않았는데도 우리 교리를 스스로 깨닫고 믿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인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볼 때는 우리는 배우고도 낙제점이라면 안배우고도 우리를 앞 설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계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기 때문에 이 안에 더 보배로운 게 있고 이 안에 것이라야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가기 때문에 이번 다섯 시간을 구원계통 총공회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우리 선자리가 예사 자리가 아닙니다.

국제 정치학자 중에 뛰어난 유명한 학자들 중에 굉장한 학자들 중에 “중국은 굉장히 강대국이 될 요소는 있지마는 민족이 오십 개라 공산 독재가 아직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잘못되면 오십 쪼가리로 나뉠 수 있다 약소국으로. 한국은 남북이 너무 차이가 나서 북쪽이 저러다가 스스로 꿇어 앉아버리면 남한에 먹힐 수 있고 남북이 힘을 합한 상태에서 중국이 쪼개지고 나뉘면 남한이 북한을 잡고 남한이 북한위에 만주를 잡고 몽고까지 잡아 세계역사의 한국이 몇손꼽지 않을까? 그날이 실제 온다고 나는 본다” 이런 학자도 있습니다. 이 복음이 세계로 향할려면 이 복음을 가진 남한을 북한에 붙이지 마시라고 백목사님이 평생 기도했습니다. 북한을 남한에 붙이시고 남한을 북한에 붙이지 말아주소서 의인이 기도하고 갔습니다. 현재 북한이 나오는 저 궁색이 저 형색이 자신 있으면 저러나요? 앉아 있다가 저절로 중립. 이판사판 그런듯 합니다. 아니면 정말 속에 뭘 감췄다가 한방에 또 6 25처럼 또 일을 저질는지 이거든지 저거든지 예사롭게 끝나지 않는데 아무도 예측을 못합니다. 인간세상이라.

한 사람의 생각하나 잘못되면 불바다 될 수도 있고 6 25처럼 뭐 여수까지 오고 부산까지 오는데 석달  거리려니 그런게 아니라 스위치만 누르면 잿더미가 될 수가 있고 자다가 악몽을 꾸어 자기도 모르게 눌러버리면 저 나라는 망할 짓도 하는 나라입니다. 그리될 확률도 반. 이미 속으로 다 망해서 저절로 쓰러질 거 같으니까 손을 내민 확률도 반. 그래서 남한이 북한을 먹고 남북이 이 복음을 더 퍼트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팽창을 주시면 중국 절반은 남한이 먹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이런 국제학자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리될 수도 있고 잿더미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북한이 남한을 다 먹어 중국처럼 교회 믿어라 말은 했는데 공산단식 예수를 믿고 예수식 예수는 지금도 중국은 탄압합니다. 베트남도 그렇습니다. 요런식으로 남한을 걸고 들어오면 목숨 걸고 지킬 교단은 공회밖에 없는데 공회 교회 지난날을 보니까 목숨 걸고 지킬 사람은 하나나 될까 열이나 될까 몰라도 그리 많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우리가 약하니까. “이북을 이남에 붙여주시고 이남을 이북에 붙여주지 마소서” 기도한 이 기도가 소망입니다. 그 소망대로 지금 북쪽이 때가 되어 저절로 주저앉아버리고 남한이 북쪽으로 들어가면 이 복음도 들어가겠지요? 그러면 지금 올해가 약 70년입니다. 북쪽에 공산정권 들어선지 약 70년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약 70년입니다. 지금 북한이 더 이상은 못 견더 인제 중국처럼 베트남처럼 개방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리되면 조금씩 이 복음은 들어갈 건데 70년 만에 북한이 이 복음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어질까?

70년 배부른 남한 교회는 우리처럼 이 복음은 가졌으나 부자가 되가지고 신사적으로 믿고 있고 북쪽은 70년 얼마나 굶겨놨는지 옛날 한국교회가 쫄쫄 굶을 때 목숨 걸고 잘 믿은 것처럼 북쪽에서 한 사람씩 예수 믿는 사람들이 소식이 들리면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들립니다. 지금 북쪽이 주저앉아버리고 남한이 북쪽을 먹게 되면 다른 거는 전부다 남의 일이고 이 복음이 들어가면 북쪽에 원래 남한보다 잘 믿었던 교인들의 후손들이 다시 옛날처럼 배고픈 속에 복음을 받고 새로 출발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 속에 이 복음이 들어간다면 우리의 30년 전 우리의 60년 전 신앙이 북쪽 교회를 통해 다시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거 다른 때는 먼 꿈이였는데 지금은 그리될 확률이 5대 5가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지요. 준비할 때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마음껏 전하던 걸 전하는데 1등 앞에 나서야 될 분들이 다 막고 감옥 보낸다고 생난리가 나고 앉았으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 예사롭지 않지요? 뭔가 이러다가 하나님께서 생각도 못할 큰 변화를 주시면서 말세를 향해서 마지막 달려갈 길을 열지 않을까? 그럴 때에 복음을 마음껏 전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기본구원이 뭔 소리요? 건설구원이 뭔 소리요? 물을 때 여기 다 영어 벙어리 아닙니까? 저도 더듬지 애들 옹아리 정도 영어하지 유창하지는 못합니다. 이 뭐 꿀 먹은 벙어리라 속에는 있는데 말을 할 줄 알아야 전도를 하지요? 말하는 사람은 전부 입 닫고 앉았는데 돈 벌고 앉았는데 그 뭐 이렇게 이렇게 모든 걸 응축시키고 모든 걸 끌어 모아 하나님께서 딱 폭발 일보직전의 상황을 만들었을까? 세상은 트럼프가 미친척하면서 북한 먹살을 잡았고 북한 김정은이 미친놈인데 더 미친놈을 만나서 할 수 없이 지금 끌려 나오고 문 머시기는 부드럽게 슬슬 하다보니까 내가 지금 수가 먹힌다 그러고 별야별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뉴스는 돼있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준 이 4천년 이 2천년 역사에 이 복음이 우리만 먹고 우리만 알고 우리만 믿다가 갈 복음이 아니라 이건 천하교회가 한 번 들어 믿는 방향을 잡아야 되는데 이게 전해지지 않았는데 이걸 마지막으로 전할 요런 계기를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정치와 군사와 국제와 남북과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딱 맞춰놓고 마지막 성냥불을 들지 않으실까? 기이한 일들만 요즘 다 벌여지지요? 그럴리가 없는 일들만 세상이 아니라 교계가 아니라 우리 안에도 기이한일 그럴리가 없는 일들만 지금 다 모여 있습니다. 이럴 때 지난날로부터 쭉 훌투며 우리 선 자리가 뭐가 되든지 그냥 예사롭지는 않겠다. 교도소의 절망 가운데 요셉도 포기할 정도의 순간에 바로 궁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 것처럼. 그 역사를 역사적으로 보니까 우리가 준비해야 될 때고 기도 할 때고 우리는 자격도 실력도 빵점인데 상황이 주의 섭리 인도가 그러하다.

여기까지 다섯 시간 총공회 역사를 간단하게 살폈고 저녁시간부터는 창세기 1장 1절. 하나님이 세상을 첫 날 무얼 만들며 둘째 날 무얼 만드셨는가를 가지고 새 출발의 우리의 첫 순서 둘째 순서를 보면 보이게 되어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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