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후18.5.9 창1:1 창조의 1일부터 순서대로 살피고, 그 의미를

집회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설교 타이핑이 준비 중이면 제목 앞에 별(*)을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수후18.5.9 창1:1 창조의 1일부터 순서대로 살피고, 그 의미를

교인 1 134 2020.06.09 17:37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180509 수후

제목 : 창조의 1일부터 순서대로 살피고, 그 의미

본문 :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첫 창조의 순간을, 세밀히 기록하사, 오늘까지 매 현실, 모든 사건 모든 출발에, 과거와 내용과 향방을 알려 주신 주님, 자연 계시를 살펴도 맞고, 기록해 주신 특별 계시니, 이대로 믿는 복을 주시고, 살펴 구별하며, 어떤 현실이든, 주의 뜻 찾아 나가는, 이 시간 되며, 저희들 되도록, 앞서간 많은 조상들을, 역대상 1장으로 9장까지에, 낱낱이 기록해 주시고, 우리는 그 중에 어느 사람인지, 무엇을 조심하며,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연경할 수 있게 하심도 감사하나이다. 오후에도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매 현실이, 창세기 1장을 통해 미리 알고, 복되게만 걸어가는 저희들 되도록, 먼저 첫 날에 빛, 밝음을 주시고, 둘째날에 주신, 광활한 공간에 비춰주는 하늘도 주시고, 우리 현실에 펼쳐지는 땅과, 모든 바다까지, 그곳에 있는 우리의 배경까지, 헤아려 알고, 이제 우리를 접하는 식물도, 가까운 동물도, 우리가 다스리며, 우리가 앞서며,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저들을 책임져야 되는데, 이 일을 위해, 아담 하와 둘이 한 사람 되는, 이 시급한 일도 저희들은 부족한데, 메워 주신 많은 사명, 많은 일은, 측량도 못하겠나이다. 무지하며 부족한 저들을, 그 길로 인도하시려고 적고 인도하시니, 소망 속에 나가는 저희 되게 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32페이지입니다 오전에 잠깐 공부한, 전체의 요약입니다. 앞에는, 본문에 적힌 흐름을 봤고, 32페이지부터는, 그 내용을 들여다봅니다. “태초에” 그 어떤 것이든 시작을 시킨 하나님이, 시작을 주셨다. 시작 전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으니, 뭐든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오늘 이 내계 집회 장소에 펼쳐지는, 우리의 현실도 여기 해당되고, 집회 마치고 내일, 자기 생활 속으로 돌아간 그 생활도 여기, 1장 1절에, 예비 되었고, 준비 한대로 분화시켜가며, 내일도 빛을 주실 것이고, 내일도 하늘을 주실 것이고, 내일도 내 주변에 땅과 바다를 수평으로 늘려 주실 것이고, 매 현실 모든 것을 늘 그리 생각 해야되니, 창세기 1장이 머리 속에 잘,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일일이 다 그때마다 손 꼽지를 않아도, 현실에 보이는 것을 봐가며, 도움이 될 겁니다.

“태초에” 모든 것의 시작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니, 그 전은 뭔가?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이 계셨다.’ 이것을 알리는 겁니다. 어떤 존재를 봐도! 어떤 두려운 존재를 봐도! 참담한 참화를 당해도! 이것은 보이는 것이고, 이걸 만든, 이 전에 혼자 계신,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이 환란은 하나님이 만든 객체다. 만물 중에 하나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이게 머리 속에 확실할 때, 믿는 사람은 놀라지 않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놀라지 않으므로 사라의 딸이 되었다” 그 아들을 이삭으로 만드는, 또 그 아들을 다시 이삭으로 만들어 가는, 이 비결이, 사라도 처음에는 두려운 것, 놀라운 것, 참 생각도 하기 싫은, 그런 어려움들을 많이 겪었으나, 그때마다 ‘보이는 것은, 출발이 있고, 시작이 있는데, 이것을 출발시킨 분이 한분 하나님이다.’ 태초의 모든 것을 보며, 모든 시작을 보며, 보이는 만물을 보며, 그 이전에 아무 것도 없을 때, 하나님의 자존,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존. 늘 김 머시기를 봐도, 그 뒤에 있는 하나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랑하는 사람 뒤에, 없는 가운데 이것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보니까, 탈이 생기는데, 사랑하는 사람, 그 뒤에 없을 때, 이 사람을 만든 하나님을 겹쳐 보며,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것도, 그 뒤에 없을 때 이걸 만든 하나님을 보고, 이걸 보니, ‘필요해서 주셨고’
늘 만물 뒤에, 자존자의 자존의 세계를 알려 주기 위해, “태초에” 모든 것이 시작이라.

존재된 것은, 존재되지 않던 무 존재, ‘무의 시절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큰 고목 나무라도, 씨는 작지 않습니까? 이게 커진 겁니다. ‘네 조상은 이거다!’ 그게 땅의 것을 먹고 자랐습니다. ‘아무리 울창해도! 아무리 남들 앞에 탁월해도! 너는 없었다! 너는 땅의 것을 먹고 자란, 땅에 속한 거다. 그 이상은 아니다.’ 존재와 무 존재, 시작 전과 시작 후를 태초에서 늘 살펴, 출발을 통해, 늘 존재를 알고 파악할 때, 모든 존재는 우리에게 복만 되어집니다.

그 다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혼자 계셨던 분은, 자존자이고, 만들어 놓은 것은, 전부 다 자존자 한분이 만든 것들이고, 그래서 만물을 통해, 늘 자존자를 살펴야 되고, 그 이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만물을 보니까, 빛을 보고, 하늘, 땅, 식물, 물 속, 동물, 어떤 것을 보고, 만물을 다 봐도,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은 없고, 하나도 더 많아서 문제 생기는 것도 없고, 괜히 우리의 오해이지, 종류도 완전, 만들어 놓은 것도 완전, 거울에 우리 얼굴을 보며, 눈이 두 개라 불편해서, 한 개를 더 만든다면, 어디에 달겠습니까? 입이 가운데에 있어 불편하면, 어느 쪽으로 옮겨 보겠습니까? 손바닥만한 넓이에 70억을 그려놓았는데, 70억 얼굴이 다 틀립니다. 완전이라! 다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까, 구도도 완전, 조밀함도 완전, 구색도 완전, 기능도 완전. 감탄할 뿐입니다.

자존자가 계셨는데,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까, 이 분은 솜씨가 완전입니다. 완전자이구나! 이후 성경을 기록하며, 하나님이 ‘나는 완전자다’라고 말씀하지 않아도, 만든 만물을 보니까, 출발이 있었으니, 하나님은 자존자였고, 만들어 놓은 것을 들여다보니, 완전하여, 이 분의 솜씨는 완전이고, 솜씨가 완전이니, 그 분 자체가 완전이고, 그리고 만들었으니, 만든 그 세계는, 만든 분이 절대자입니다. 절대 주권, 절대 운영.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하신 이 하나님은, 자존자시며, 완전자시며, 우리에게 절대자라. 우리에게만 절대자인가? 자체가 절대인데, 우리와 비교해 볼 때, 우리와 관계성을 봐도, 절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 번째, “천지를”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우리가 모르는 것도 다 넣어, 모든 것, 눈에 보이는 유형의 모든 것, 무형의 모든 것, 물질도, 사건도, 우리가 아는 지구 뿐이 아니라, 우주 저 멀리, 끝도 없는, 한도 없는 그 전부, 여기까지는 물질계 세상인데, 창세기 1장에서, 보이는 세상만 만드시면서, 볼 수 없는 영계는, 기록을 안 했을 뿐이지, 만들기는 동시 창조입니다. 마태복음 25장, 성경 뒤쪽, 44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재림, 다시 올 때에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리니 모든 민족을 전부 불러 모아,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두고” 주님이 다시 올 때에는 33절, “임금으로, 왕으로, 영광과 권위로 모두를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놓고” 그 다음 34절. “그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이것은 언제 만들었지요? “창세로부터” “창세로부터 예비된”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 물질계를 만들었다고, 창세기 1장에 기록을 해놓으실 때에, 영계에서는 영계를 따로 만들어, 둘 동시 창조입니다. 영계와 우주를 동시에,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는데, 우주 이 세상은, 1장에 기록해주시고, 영계는 어려워, 우리가 어려서, 그것을 다 적으려면 한도 없기 때문에, 적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진 찍어 얼굴만 나오면, 증명 사진이라 그러는데, 그러면, 어깨 밑으로는, 그 사람은 없는가요? 얼굴만 찍으면, 구별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는 따라 다니기 때문에, 안 찍었을 뿐입니다. 손바닥만한 면적의 얼굴 보면, 그 인간 성격, 살아온 과거, 앞 날의 꼬라지까지 다 나오니까, 증명사진은 어깨까지만 찍습니다. 나머지는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창세기 1장은, 우리 사는, 우리 아는 것만 기록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었던가? 여기에, 그림에 나오지 않는 것은, 뒤에 새로 만드셨는가? 영계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뒤에 우리가 자라서 알 필요가 있을 때,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겁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 창세로부터” 천지를 창조 할 때로부터 예비된 나라, 영계 하늘나라를, “너희들이 상속하라” 이 마태복음에 와서 보니까, 창세기 1장에 미리 영계를 만들었는데 기록을 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이렇게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여기 만물은, 유형, 무형, 물질, 심지어 사건, 지구, 우주,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구체적으로 물질계, 우주만 기록했는데, 영계는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라, 어려서. 자라면 뒤에 알라고,

그 다음, “창조하시니라” 자존자가 창조하셨구나. 만물의 원인이구나. 만물의 원인은 한 분이구나. 그래서 일원론이라고 그럽니다. 학교에 아이가 30명 입학을 하면, 대부분 부모가 30명입니다. 호랑이가 있고, 사자가 있고, 동물원에 동물의 종류가 천 가지가 있으면, 그 어미들은 천 가지입니다. 만물은, 만 가지가 원인인가? 마지막으로 거듭 찾아 올라가 보니까, 한 분입니다. 그래서 자존자가 창조를 했고, 창조자가 한 분이니, 만물의 원인, 존재는 하나입니다. 일원!

그 창조자가 만들어 놓고, 그 창조자가 운영을 하고 계십니다. 주권자이니까, 주인이니까. 내가 집을 사면 내가 주인이고, 주인이면, 그 다음 창문을 바꾸던지 열든지 말든지, 주인이 사용하고, 주인이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창조자가 만든 소유자니, 마음대로 주인의 권리, 주권 행사를 합니다. 이게 만들어 놓은 만물이, 운영되는, 움직여지는, 돌아가는 행동도, 결국은 일원입니다. 존재도 한 분, 행동도 한 분.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운영한다.’ 내가  잘했을 때, 하나님이 잘 할 수 있도록, 운영이 은혜를 주신 겁니다. 내가 잘못된 행동 할 때, 하나님의 은혜 주지 않으니, 그리 되는 겁니다. 부러운 사람, 하나님이 부럽게 만들었고, 부럽게 되도록, 운영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보이고, 보이지 않는 운영까지를 보며, 전부 하나님의 향합니다. 그 주인, 주권자가 바로, 원인이니, 모든 것은 제일 밑줄, 로마서 11장 3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예배 때 장난쳐 놓으면, 나중에 제가 중매 설 때에, 골이 아파 죽을 지경이 됩니다. 자기 아들은 장난쳐 놓고, 좋은 아가씨를 소개하면, 그 아가씨 집회 때에, 장난친 얘기만 합니다. 그 인간 심보가 다 그런 모양입니다. 나중에 애 먹이지 말고, 연극이라도, 책 보고 열심히 공부 하십시다.

34절 넘어갑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절. 먼저 땅 있었는데, 이 땅은, 뒤에 9절에 나오는 육지, 땅과 다릅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이 땅과, 1절의 땅은, 그냥 단어는 땅이라 했지만은, 다른 땅입니다. 만물을, 빛, 하늘, 땅, 바다, 식물, 동물, 이렇게 만들기 전, 앞으로 만들려고, 재료를 먼저, 원소 창조하시고, 재료 창조, 원소. 그 재료 중에, 앞으로 땅이 될 부분, 땅이 될 재료, ‘땅’ 2절에, 앞으로 빛을 만들 것인데, 아직 빛이 되지 않은 상태, ‘흑암’. 둘. 그 다음, 앞으로, 하늘의 물, 아래의 물, 물이 될 ‘수면’. 이렇게 세가지로 먼저 재료를 나눠 놓으시고, 그 땅입니다. 2절의 땅. 앞으로 만물이, 만물의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종류대로 나타나기 전, 모습을 갖추기 전, 아직은 원소 상태에, 물질 재료로 있던 상태를, 여기 땅이라 했고,

그래서 “땅이 혼돈하고” 하나님이 처음 만들자 말자, 어지럽게, 복잡하게, 뒤죽박죽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깨끗하고, 완전자라, 그렇게 어지럽게 만들지를 않습니다. 재료 하나를, 3가지 재료로 나누시고, 첫 번째 재료가, 앞으로 땅을 만들 재료인데, 이게 아직까지 종류대로, 드러나지를 않은 상태라, “혼돈이라” 뒤죽박죽의 혼돈이 아니라, 아직 제 모습을 갖추기 전이라, 혼돈. 분화되기 전이라. “공허”라는 말은 텅텅 비어 있단 말인데, 재료로는 있고, 이 재료로, 종류, 종류, 종류대로 만들어야 되는데, 만들지를 않았으니까 아직까지, 사자도 없고, 나무도 없고, 인간도 없고, 앞으로 마지막 단계로 드러날 땅도 없고, “공허더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지, 하나님이 천지를 처음 만들었는데, 한 쪽은 텅텅 비어 좀 무섭고, 텅 비어 있으니까. 한쪽은 뒤죽박죽 엉망이라, 지저분하고, 그런 혼돈과 공허가 아니라는 것.

그 다음 9절에, ‘뭍’을 한번 보실까요? 9절의 뭍.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이면, 그 다음 뭍이 드러나는데, “그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이게 오늘까지 내려오는 땅입니다. 그 땅이, 땅으로 드러나기 전, 2절의 땅은, 그런 땅이었더라. 그 다음 11절에, 그 땅이 땅으로 드러난 땅이, 오늘 우리의 땅. 그 땅이 땅으로 드러나기 전이 바로, 오늘의 땅 더하기, 앞으로 땅에서 나올 동물들, 여러가지 요소들이, 뭉쳐있는 상태. 이것들은 만들기 위한, 준비의 상태가, 2절의 땅입니다.

그 다음,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34절 가운데입니다. 어두움. 흑암은, 앞으로 빛이 되어, 하늘에서 비출 모든 빛의 원인, 빛의 재료, 그 재료가 빛으로, 빛이 빛으로 나오기 전에, 준비만 되어 있으니, 오늘 우리 기준의 빛이 없어, 흑암입니다. 흑암이라는 것을 먼저 만든 것이 아니라, 빛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상태, 빛이 빛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 그런데 3절에 가면, 첫날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빛이 있으라. 이 빛은, 태양의 있기 전의 빛이기 때문에, 모든 이 땅 위의, 빛의 종류라는 모든 종류는 전부, 이 빛에 들어있는, 빛의 총칭을 말합니다. 그 빛을 만들기 전, 준비의 상태가 ‘어두움’. 자연의 어두움, 어두움의 총칭, 이것은 뒤에 첫날 나오는 것이고, 아직까지는 이것을 만들기 전, 준비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넷째날 태양을 만드시고, 그 다음 비취는 빛은, 이제 우리가 아는 이런 자연의 빛이고,

그 다음 2절 마지막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은, 두 글자로 줄이면, 다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성령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신, 성신, 좀 쉽게 표현하면, 성령.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나오고, 그래 2절에 바로 성령이 나오지요? 하나님, 성령, 다 나오지요?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이고” 이  말씀이라는 이름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이 분이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셨더라. 실은 여기에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도, 성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본체, 하나님 자체는, 볼 수 없고, 알 수가 없는데, 완전자,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인데,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이는 역할을 맡은 분,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왜 말씀이라고 이름을 했지요? 제 마음에 품은 걸, 말하지 않으면 남은 모릅니다. 그런데  입으로 말을 하니까, 상대방이 ‘화가 났구나, 저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계획이 있구나’ 말을 하니까, 제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 말씀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내면을, 밖으로 대고, 표시하는 그 방법을, 말! 하나님의 말이니까, ‘말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께서 사람되어 오기 전에, 예수님 속에, 이위 성자 하나님을, 그냥 순서로 보면, 성부, 성자, 성령. 1, 2, 3. 제 일위 성부, 제 이위 성자, 제 삼위 성령, 보통 이렇게 표시하는데, 이위 성자의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리는 이 면을 맡은 하나님, 이게 성자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알리는 방법이, 성경을 기록하고, 말씀을 해서도 알리지만은, 하늘의 태양을 만들어놓고,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하나님 마음 알겠지?’ 밤에 달을 공중에 띄어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알았느냐?’ 아버지가 회초리를, 벽에 걸어 놨습니다. 그거 아이들에게, 무슨 뜻이지요? ‘말 좀 잘 들어라, 저거 화나면 칠 수 있다.’ 경고입니다. 입으로 가지고 아이들한테, ‘죽인다 살린다.’ 펄펄 뛰면, ‘사랑하는 아버지가 뭐 죽인다 했지만, 죽일까?’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어른 말, 아버지의 말이 씨가 먹히지 않습니다. 권위 있게 가르치는 분들은, 말 한마디도 안 하지만은, 눈치 주고, 바로 처결을 해버리니까, 알아서 깁니다. 말을 해서 표현할 수도 있고, 말 안 하고도 표현 할 수도 있고, 회초리 걸어 놓고,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말이 되는 것 있고, 말도 안 하고 가르치지도 않지만은, 매를 걸어만 놔도, ‘조심해야 되겠구나. 아버지 마음 속이 요즘 저렇구나.’ 하늘의 태양, 바다, 식물, 잡아먹는 사자는 10년 겨우 살고, 잡아먹히는 사슴은 40년, 50년을 사니, 이렇게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지요? ‘상 따고 그리고, 막 잡아 죽일 것처럼, 그렇게 설치고 살아봐야, 사자들은 다 일찍 죽는다.’ ‘늘 먹히고 사는 듯해도, 저 넓은 아프리카의 초지는, 사슴으로 가득찼다.’ ‘주먹으로 늘 이기는 것 같아도, 늘 이기는 것은 아니다. 져도 지는 것도 아니다.’ 뭐 이런 여러 가지를, 글로 적으려면, 온 천하에 적어도 다 적지를 못하는데, 하늘, 별, 땅, 식물, 동물, 별별 인간 만들어 놓고, 사는 걸 만들어 놓고, 움직이면서, 우리에게 ‘말 안 해도 알겠지?’ ‘까부니까 뒤에 안 좋지?’ ‘좀 점잖은게 좀 낫지?’ ‘빨리 먹는다고, 그렇게까지 난리를 부려도, 그리 많이 먹는거 아니지?’ ‘젊을 때 모아 놓는게 중요하지?’ ‘공부할 때 공부하는게 중요하지?’ ‘화난다고 화를 다 퍼 붓다보면, 큰일 나는 거 봤지?’ 한도 없이,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을, 전부 만든 만물을 통해,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로마서 1장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 했습니다. 로마서 1장 한번 찾아볼까요? 로마서 1장 19절입니다. 신약 240페이지, 다 같이 읽습니다. 19절, 시작.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예. 안 믿는 사람에게도, 만물을 만들어,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보였고, 하나님의 능력도 분명히 보였고, ‘전도를 받지 못해, 하나님 모르고 살았습니다.’ 핑계치 말라!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식물, 동물, 인간 살아가는 것을 봤으면, 성경 모르고, 전도 받지 않고, 설교 듣지 않아도, 다 알지 않느냐? 몰랐다니? 젊어 돈 잘 번다고, 마음껏 한량없이 썼냐? 그렇게 퍼 써도, 돈이 마를 줄 알고 생각했느냐? 다 압니다. 모르는 건 없습니다. 괜히 억지로 몰랐다고 모두들, 펄쩍 뛰지. 세 살만 되면, 벌써 알 것, 거의 다 아는데, 그 눈치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보이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했기 때문에 핑계치 못할지니라” 만물을 만들어서, 볼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계를 다 알도록, 눈치 채도록 하셨으니, 이게 바로 이위 성자 하나님이 맡은 직책입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했고, 분담했고, 다 같이 동역했지만은, 주로 말을 하면, 이위 성자 하나님, 신인양성 일위의 신성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예수님이 못 박히셨으나, 성부 하나님은 남의 일로 보셨을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그거 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달래고 전도 할 때, 성부는 딴 일하고, 성자는 쉬고 계시고 그랬습니까? 삼위일체는 한 분이라, 떼어 놓을 수가 없는데도, 성부가 앞에 서나, 성자, 성령이 함께 하셨고, 성자가 먼저 나섰고, 성자만 우리는 보고 있으나, 성부, 성령이 함께 계시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므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리고 계시는 겁니다.

지금 몇 페이지 했지요? 33페이지, 34페이지 어느 부분인가요? 예? 아, 수면이요. 예. 2절에,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누구가요? 성령이, 하나님의 신, 성신, 옛날에는, 주로 유화시켜 요즘은 성령이라고 그럽니다. 성신, 성령, 삼위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이 해놓고, 2절에 하나님의 신, 성령의 역사를, 벌써 여기에 적고 계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말할 것 없이 앞에 서시고,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 수면은 앞으로, 하늘 위의 것, 하늘 밑의 것, 수직으로 아래 위가 될 것들을 지금 미리 재료로, 녹은 상태, 하나된 상태, 준비된 상태, 이게 6절의 물이 되면, 상하로 존재될 물이, 땅, 공중, 우주로 분화되어 가는 거지요. 그리고 9절에 “뭍이 드러나는” 한 곳으로 모여지는 물이, 오늘 우리가 아는 바닷물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그 물 안에는 앞으로 수생 생물이, 나올 것이니, 그것이 포함된 물의 상태입니다. 마지막 물이, 물에 사는 생명체를 만들어 내고야 그 물이 오늘까지, 내려오는 물입니다.

36페이지로 넘어 가서, 이런 창조의 모든 역사를 보면, 첫 번째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역사를 하시는구나. 유기적이란 말은, 생명과 생명의 연결을 유기적이라 그럽니다. 부속과 부속, 기계와 기계가 하나가 되어, 조립이 되어 움직일 때에, 기계식이라고 그럽니다. 기계식 조립. 오른팔과 몸, 몸과 왼팔이 붙어서 움직이는 것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이 연결이 되어, 둘이 붙기는 붙었는데, 어디까지가 팔인지? 어디까지가 몸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하나니까. 생명과 생명의 연결을 유기적이라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재료를 만드시고, 재료를 다시 세 종류로 나누시고, 세 종류의 재료로, 하늘, 하늘 위의 모든 만물, 그 다음 땅과 바다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마치 엄마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그 아이가 또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또 아이를 낳는 것처럼, 하나에서 둘로 나누고, 둘에서 땅을 만들고, 땅에게 식물은 네가 만들어라, 명령하시고, 땅이 순종할 때에, 땅이 만든 것이 아니라, 땅에게 만들어라 해놓고, 예 해놓고, 하나님이 뒤에서 소리 없이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게 유기적인 관계라고 그럽니다.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던져놓으면, 가다가 사고나서 죽으면 어떻게 하지요? 아이에게 시켜놓고, 아이는 자기의 힘으로 해결한다고, 먼 길을 떠나는데, 부모가, 따라가고 돕는 줄 알면, 아이가 실력이 안자라니까, 저 멀리 물건 사오라고, 갈 수 없는 길을 시켜놓고, 부모는 뒤를 밟으며 보이지 않게, 길이 영 위험하고 잘못될 때에는 경찰에게 전화를 해서, 우연히 지나가는 경찰이, ‘왜 이 길로 가냐? 너 어디로 가냐? 저 길로 가야지?’ 라고, 부모가 보이지 않게 살짝 도와줘서, 아이는,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하는 줄 알고, 있는 힘을 다하고, 뒤로는 보이지 않게 부모가,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은 도와주고, 할 수 있는 것은 싹 빠지면서,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적으로, 조화롭게, 땅이 식물을 내고, 땅이 동물을 내고, 물이 물고기를 내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물이 물고기를 낸 것 같은데, 실은 내라고 하는 분은 주님이요, 내려고 할 때에 물은 낼 수 없고, 물이 내려는 순종할 때에, 속에서는 보이지 않게 하나님이 다 만드셨습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재료를 통해, 하나씩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자세하게 만들어가는 분화 과정을 보니까,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유기적이구나.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유기적인 창조의 과정을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기록해놨습니다. 이유가 뭐지요? 이리 만드나, 저리 만드나, 만들면 되고, 우리는 6천년 전에 모르던 세계인데? 오늘 내가 사는 내 현실도, 하나님께서 유기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를 앞세워놓고, 던져 놓고, 하나님은 없는 듯 한데, 성경으로 양심으로, 주어진 현실, 여건을 보며, ‘이리 가는 것이 맞겠구나, 저렇게 말하는 것이 맞겠구나, 이제 중단하는 것이 맞겠구나, 어려워도 더 가는 것이 맞겠구나,’ 우리가 이렇게 연구하고 노력하고 애를 쓸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뒤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서, 안 믿는 사람이 보면,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처럼, 인간 노력으로 사는 것 같고, 살아보고, 생각해보니, 내가 한 것 같은데, 뒤에서 하나님이 다 하셨고, 매일 매일 주시는 새 날, 새 현실도 창세기 1장에 분화와 같이, 유기적인 관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혼자 계신 하나님, 재료만 만드신 하나님, 재료를 세가지로, 분리하고 따로 보관하신 하나님, 그 중에 어두움을 가지고, 빛과 어두움을 만들어, 낮과 밤을 만드신 하나님, 물을 가지고, 하늘 위와 하늘과 하늘 아래 땅으로 나누신 하나님, 땅과 물을 옆으로 분리하며, 만들어가신 하나님.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교회 개척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공회가 기도하고 개척을 하든지, 목회자가 하나님께 감동 받고, 이것은 반드시 내가 개척해야 되겠다고 결심하든지, 아니면 어느 지역의 교인들이, 목회자를 보내달라고, 우리 공회 교회를 출발하고 싶어서, 출발하든지, 그 속을 한번 더 들여다보면, 교인들끼리 모여서 공회 교회로, 목회자를 모시고, 교회를 시작해봤으면 좋겠다고, 세 사람이 생각했다면, 세 사람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을 넣은 분이,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넣었는데, 하도 몰래, 소리 없이, 생색내지 아니하고, 마음 속에 은밀하게 감동으로, 이 마음, 저 마음 이 마음을 주시니까, 이 세 사람은, 차 마시면서, 이래보자 저래보자 그러다가, 우리 교회는 그때 우리 세사람이 약속하고, 출발한 교회라고, 교회 역사에 기록을 떡 해놓는데, 남들이 물어봐 싸니까, 적기는 적지만은, 그때 내 마음 속을 주님이 그렇게 움직였지, 저 분 마음도 주님이 그렇게 움직였지, 뭐 차 한잔 마시고, 그냥 헤어질 모임에, 어떻게 했다가 그런 말이 나왔을까? 돌아보니, 하나님이 세 인간을 만들고, 한 자리에 끌어다놓고, 소리 없이 마음 마음 마음에 마음이 맞도록, 가랑비 옷 젖듯이 슬쩍 스며 그렇게 일을 하게 한 것은, 이 인간들 공로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최대한 보이지 않게, 숨어서 역사를 해야 인간이 자립심이 생겨지고, 충성을 하게 되고, 성의를 보이게 되고, 해보면 인간으로 안되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발버둥을 쳐서, 인간이 인간이 되기 때문에, 인간을 만들려고 하나님은 엄존하시고, 전부를 다 하시면서도, 최대한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사라져 버리십니다. 교회 이야기를 두고 말하면, 이런 것은 그렇겠다 싶으지요? 여기에 있는 부모님들, 자녀들을 그렇게 기르셨습니까? 아이가 옆집에 가서 맞고 오면, 온 집안 네 명, 열 명이 떼거리로 가서, 패싸움을 벌이면, 이게 옆집 뒷집 돌아다니면서, 아무데나 치고 다닙니다. 몰려오는 10명의 개떼 같은 배경이 있으니까, 이러다가 시내의 조폭 건드리면? 10대에 맞아 죽는 수도 있습니다. 옆집에 한 개 맞고 오는 것은 분하지만은, 요새는 아이 하나에 부모 둘이지, 부모 둘, 각각 할머니 할아버지 둘씩 넷이지, 이모, 고모, 할머니 그냥, 한 10명이 몰려갈 수 있지만은, 이게 남의 집에 가서, 함부로 까불다가, 이것은 도와주면 되지만은, 10명에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들이 떼로 몰려갈 수 없는, 먼데에서 어느 날 벌대로 까불다가 큰일나면 안되니까, 옆집에 한 대 두들겨 맞고 오는 것은, ‘큰 놈한테는 까불면 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모른척 해버리자, 내 아이를 사랑함으로, 맞고 왔으나 화도 나지만은, 이번에는 못 들은 척 해버려야 될 때도 있고, 이거 반복이 되면, 이 아이 평생이 삐뚤어지겠다 싶을 때에는, 뒤로 슬쩍 돌려, 그 가정에 말이 될만한 어른한테, ‘아이 싸움, 어른 싸움 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선물도 주고, 뇌물도 찔러 주고, 협박도 해서,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조절해 나가게 되면, 아이는 아이 제 힘으로 할 수 있는대로 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체험을 하면 이게 이제 제대로 길러지는 것이고, 실력이 있는 부모가 강하게 개입하면 그만큼 아이의 실력은 빠져버립니다. 부모가 돕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내던져 놓으면, 개 망나니가 되어버립니다. 어느 부모가 이것을 정확하게 잘 하겠습니까? 잘한다고 하는 것이 심하게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은 나를 기를 때에, 완벽하게, 완전하게, 꼭 필요할 때에는 움직였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유기적으로 기르기 위해서, 광야 40년 보십시오, ‘하나님 어디에 있느냐? 쌩고생 다 시키는 것을 보면’ 그런데 눈을 뜨고 보면, 매일 만나, 매일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불 기둥, 구름 기둥을 보니, 이는 하나님이 한번도 우리를 지켜보지 않은 적은 없다. 알면, 하나님이 환히 보이고, 그냥 보면, 아무리 눈을 닦고 봐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 광야 40년이고, 성경 역사고, 오늘 이곳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지키지 않으면, 우리 뒷꼭지 저 구례 지리산에서, 50마리 반달곰을 풀어놨답니다. 그게 벌써 저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되었답니다. 그 반달곰 하나가 오다가 왼쪽으로 틀면, 내계 골짝 들어올 수 있습니다. 들어오면 어느 인간부터 가서 한번 쳐버릴까요? 이것을 생각하니, ‘말 한마디 조심해야 되겠구나.’ ‘벌대로 까불다가, 하나님이 곰 한 마리 보내놓으면 어찌 될까?’ 엘리사에게 ‘대머리야 올라가라’ 그러다가, 암콤이 나와 다 찢어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창세기 1장에, 이때는 아담도 없고, 인간도 없었는데, 그냥 만들어놓고, 인간 만들면 어찌 되었는지 알 것도 없고 모르는데, 아담을 만들기도 전에, 일부러 하나님 한분이 하나, 분화, 다음 단계, 다음 단계,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부지런히 유기적으로, 직접 만들면 더 잘 만들 것인데, 땅에게 맡기고, 직접 만들면 더 쉽게 만들 것인데, 하늘에게 맡기고, 바다에게 맡겨가며, 이렇게 단계별로 질서를 따라, 정리해가며, 유기적으로 역사를 하시며, 그리고, 만들어놓은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는 주먹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감화로 다스리거라, 나도 너를 그러지 않느냐?’ 여반들은 다 듣기가 좋지요? 오늘의 여반들, 남자를 틀어 쥐고, 막 살라고 하지 마시고, 불쌍한 21세기 남자들 달래가며, 불쌍히 여겨가며 그리 가셔도, 하나님의 유기적인 인도에 맞지, 어긋나지 않습니다. 요즘 뭐 여자가 움직이면은 다 되는 세상이지만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 때에도, 유기적으로, 무생물, 물을 통해, 물고기를 만들 때에도, 직접 만드는게 더 나은데, 앞서 만든 것을 통해서 만들고, 달래며 만들고, 자유성으로 대화하며 만들었으니, 하물며 한 날 한 시에 부부로 똑같이 만났으니, 이게 대화로 설득으로, 기다려주며 뭐, 부부 둘이 평생 사는 것은, 평생 기다려줘야 인간이 될까 말까 그래서 그런데, 만나자 첫날에 그냥, 확 거머쥐어서, 제 마음에 100점짜리로 그냥, 입속의 혓바닥처럼 잡아 돌리려니, 옛날 멍청한 남자가 그런다고, 여자가 그리 될 것이며,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배운 것을 남자들이 그렇게 해주고 싶어도, 그게 쉽겠습니까? 엣날에는 그래도 어른이 무서워, 좀 참다 보니까 철이 드는데, 요즘은 뭐 애들이 그냥 어른이니까, 모두 사방천지 난장판이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 유기적인 관계라는 이 하나를 통해, 유기적이라는 말은 첫째는, 계통의 역사입니다. 1번. 할아버지를 통해 아버지를 은혜 주시고, 아버지를 통해 불편한 아버지를 건너고 그 다음, 아들 손주에게 내려가지, 역대상 족보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 현손, 증손, 손주까지 일일이 적었느냐? 생략한 것도 있지만은, 적으려면 다 적어야 되는데, 일부를 적으며, 이 답답한 할아버지를 통해, 할아버지가 다 자랄 때까지, 하나님이 참아주셨고, 그 할아버지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어른이 되어 손주를 낳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며, 얼마나 화가 나며, 얼마나 바쁘신데도, 하나님이시라도, 기다려가며, 할아버지, 아버지, 손주, 손손주가 되어야 될 일은 기다려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여기 예배 드리는 사람 중에, 성질 제일 급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지요? 할 수 없어 지금 참는 것, 억지로 누르고 있어서 그렇지, 성격 급한 것으로는, 둘째 안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볼 때에, 또 한번 더 늦어져도, 하나님도 그러셨으니, 유기적인 역사, 계통을 통해, 계통을 통해, 계통을 밟아서 역사를 하셨으니, 그래서 시설 책임자는 될 수 있으면 시설 책임자를 세우면, 왠만하면 시설 책임자가 시설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고, 내계 시설에 불편한 것 많지요? 예전에는 모덕 목사님께 맡겨서, 모덕 목사님이 시설을 만들고 운영할 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맡겼으니, 맡은 분이 잘 하시도록, 최대한 의견 슬쩍 드리다가, 그냥 좀 피하고 이렇지, 척척 지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은, 그렇게 지시를 많이 해버리면, 하나님도 계통을 통해, 계통을 통해 기다리며, 유기적으로 역사 하는데, 인간이 그러면 탈 납니다. 지금은 순천 조사님이 내계 모두를 다시 이제 정리 정돈하는데, 제가 하면은 더 잘 하겠다 싶어도, 조사님이 맡았으니, 조사님이 80점을 하는 것이 제가 직접해서 100점 하는 것보다, 뒤에 보면 하나님은 유기적인 관계라 그게 옳다. 조사님이, 화장실은 어느 분에게 맡겼으면, 조사님이 직접 해버리면은 90점이지만은, 저 놈의 인간한테 맡겨놓으니까 30점짜리는 만들었다 쳐도, 그 분에게 호소하고 달래가며, 30점이 40점으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유익하지, 해고해버리고, 내가 직접 만들어, 90점을 만들어놓으면, 건설업자들은 볼 때에 90점이 30점보다 낫다, 40점보다 낫다고 하지만은, 하나님께서는 ‘유기적인 관계의 계통을 밟아가는 원리를 모르는구나.’ 그리 되어집니다. 말이야 쉽지요. 저인들 계통을 잘 밟아, 참아가며, 기다려 드립디까? 저는 더 급한데, 저는 더 나서는데.

창세기 1장은 해답이며, 정답이며, 진리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기에 안 맞으면 나를 고쳐야 되지, ‘아니 직접 만들어버리지, 이렇게 복잡하게 성경 읽도록? 이해도 못하도록? 그 말이 그 말 같고.’ 성경이 옳고 맞으니, 여기에 맞지 않은 내 성격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고, 우리를 바꾸며, 창세기 1장을 읽으니, 공회의 운영법도 알겠고, 교회 운영법도 알겠고, 부부 가정, 운영, 구성, 발전 과정, 잘못되어서 생기는 파탄, 모든 것을 다 알지 않겠습니까? 유기적인 역사였습니다. 계통을 통해서 나갑니다. 하나님이시라도, 독주 독행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시라도, 하나님이 물고기 만드는 것은 독주해도 되고, 독행해도 되고, 혼자 다 해치워도 되는데, 재료 만드시고, 아랫물 만드시고, 땅을 분리해낸 다음, 나머지 물에게, 물고기는 네가 만들어라, 그리고 소리 없이 돕기는 당신이 다 도왔습니다. 초등학교 6년을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지각 3번이 되지 않을 때에, 6년 개근상을 받습니다. 굉장히 근면 성실하지 않습니까? 감기 걸릴 때도 있고, 태풍 올 때도 있고, 학교 가기 싫을 때도 있고, 별의별 일들이 다 있을 터인데, 6년 개근. 그 아이는 6년간 자기가 학교를 개근해서 개근상을 탄 줄 아는데, 부모가 볼 때에는 ‘야 이놈아, 도시락 해준다고 6년간 내가 욕 봤다. 학비 댄다고, 현장에서 노가다 한 내가 고생을 했지, 주는 밥을 먹고, 할 일 없어 학교가서, 앉아 있는 네 놈이 고생을 해?’ 이게 부모의 마음이나, 아이는 6년간, 비 바람 속에, 아픈 속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가서 개근상을 따왔다고, 자기 것인 줄 압니다. 아이는 그렇게 노력하고, 부모는 보이지 않게 도왔는데, 인간은 그러고 나면, 자기가 자기된 줄 알아서, 배신하고, 부모 자녀의 관계가 틀어져서 문제가 생기는데, 좋기는, 아이는 자기 실력으로 공부해놓고, ‘부모님 덕입니다.’ ‘야, 전 교생 중에 개근상이 하나인데, 그게 니 덕이지, 어찌 부모 덕이냐? 다른 애들도 부모가 있는데, 다른 애들은 그렇게 못하지 않냐?’ ‘그래도 이러고 저렇고, 이렇고 저래서, 이것은 어머니의 개근상이고, 아버지의 개근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낱낱이 쫑알쫑알 이렇게 갔다 댈 때에, 아이는, 부모를 넘어설 아이가 될 것이고,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요?’ 그러면 이놈은 앞으로 일을 낼 인간이고, 하나님도 계통을 통해 역사하면서, 불편하나, 사용의 원칙으로 운영해 가십니다.

그리고 이게, “목적의 성질”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 홀로 계시다가, 목적을 정하여, 목적대로 창조하고 운영하는 이유가, 하나님과 꼭 같은 나를 만드는 목적 때문에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나라는 것은, 기계는 아닙니다. 인형도 아닙니다. 노예도 아니고, 짐승도 아닙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성이 있고, 자기 중심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자기의 자유, 자기의 중심을 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바쳐놓고, 하나님께 낮아지는 것이 좋고, 하나님 중심이 좋고, 하나님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원하고 원하고 원하는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을 닮은 인격자, 인간. 이게 하나님의 목적이고, 이 목적 때문에 천지를 만들고, 대속을 하시고, 오늘도 이렇게 세월 속에 기다리고 계시니, 이런 자유성이 자유성으로 하나님을 닮게 만들려면, 재료로 재료를 분리하고, 분리된 재료로, 땅과 바다와 육지를 만드시고, 육지에게 짐승을 풀을, 바다에게 물고기를, 공중에게 새를 만드는, 이런 조성, 형성, 여건이 자유성이고, 유기적인 관계라야, 유기적인 이 여건 관계 속에, 유기적인 자유성을 가진, 하나님의 목적 대상인 인간이 만들어집니다. 나를 닮은 인형 하나를 만드는 것은, 재봉틀로 양복점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나를 닮은, 나를 닮은, 기계는, 기계 공장에서 깍아서 만들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를 닮은 인격, 나를 닮은 자유성, 나를 사모하여, 원하고 원하여, 나를 따르고 존경하고, 영광을 돌리고 싶은 이것을 만들려면, 이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여건 공장이, 자유성 있는 공장이 되어져야 합니다. 아이가 열 달 채우지 못하고, 예전에는 한 달, 뭐 두달, 이렇게 일찍 나오는 것은 해결을 했는데, 6개월 일찍 나와 버리면, 예전에는 죽지, 해결을 못하지 않습니까? 어른이 찌르는 링겔을 찌르고 해가지고는 못 사니까, 그런데 요즘은 석달, 넉달에 조산된 아이고, 석 달짜리, 엄마의 뱃속과 같은 공기, 뭐 별의별 것을 꼽아 가지고, 이것을 건강하게, 나중에, 만들어버립니다. 엄마 뱃속과 가장 닮은 환경이라야 이게 엄마를 닮은 아이로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적어주신 것은 로봇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인형을 만들기 위한 여건 조성 아니고, 노예를 만들려고 이렇게 복잡하게 펼쳐놓은 것 아니고, 완전자 하나님, 자유성을 가지고 원하고 원함으로,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베끼고, 하나님을 닮아, 나중에는 하나님과 같아지는 이 인간을 만들려면, 학교도 자유성의 학교, 땅도 바다도, 하늘도, 모든 존재도.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모든 창조의 과정과 관계와 분화와 분리와 모든 관계를 살펴보면 ‘참 유기적이구나. 계통을 따라 역사하시는구나. 만들어놓은 것을 사용해서, 그 다음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해서 그 다음으로 나가는구나. 건너뛰기가 없구나.’

좀 더 실무적으로, 아버지가 아들놈한테 할 말이 있고 싶을 때에나, 애비가 직접 말합니까? 엄마를 돌려 말해야 됩니까? 돈 벌고 왔는데 그냥 게임만 하고 앉았으니까, 막 그냥 그대로 한대 쥐어박으면은 당장에 말 알겠지, 그래가지고 해결될 것 같으면야, 뭔 걱정? 돈 벌고 왔는데, 그냥 못 볼 일을 벌이면, 몽둥이를 들고 쌩 개잡듯이 난리를 벌여야 되는데, 하나님도, 참고 계통을 통하니, 이 아이는 엄마를 통해 해결을 해야 되니, 속에 열 불이 나도, 표시 없이 꼭 참고, 엄마를 불러 둘이 앉아, 자기 마음을 다 전하고, 그 마음을 읽고, 그 방법을 배우고, 그 다음, 그 다음 날, 아빠 직장 가고 나면, 아이를 불러, 그 다음 엄마가 사랑으로, 대화로, 밀고 당기고, 그 아이들하고 그냥 비비고 살아야 되니까, 그래서 여자 피부가 고운 겁니다. 어린 애하고 비비고 살라고, 이것을 갔다가 전부 다 매끼칠을 해가지고, 죄 짓는데에다가 대고, 온갖 남의 남자가 다 쳐다보도록, 모두 다 뭔 짓을 하고? 그거 잘할수록 훌륭한 여자라고, 그래요? 창세기 1장이 정죄 합니다. 제 말이 험해서 이 정도가 아니고. 욕은 더 해버려야 될 일인데. 어린 것 보드러운 한 것을 데리고, 이것을 비비고, 슬금 슬금 만들어가야 되니까, 이것은 보드러워야 되고, 남자는 밖에 가서 사냥을 하고, 전쟁을 해서, 빼앗아 와서, 가족을 먹여 살리도록, 들이 부어야 되니까, 남자는 억쎄야 되고, 남자 피부 억쎈 사람들은, 일부러 벅벅 긁어서라도 억세야, 남자다운 겁니다. 전부 남자를 갔다가 기집년처럼 만들어놓고, 이것을 데리고 노는 연구를 하고 앉아 있으니까, 그 놈들이 남자일 리가 있나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창세기 1장에 다 있지 않습니까? 말이라도 아버지는 용감해야 되고, 투쟁적이라야 되고, 싸워서 빼앗아 와야 되고, 이게 죄악 세상에 가족 먹여 살리는 남자입니다. 그렇게 송금한 돈을 차고, 여자는 ‘이 고운 것, 이 엄마만 쳐다보는 것, 이거 한달 때부터 두 달 때부터 비벼가며, 이것을 세뇌 교육 시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인간답게, 고생하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것을 길러가야 되는데, 젖만 먹이면 이것은 아무 소리를 안하니까, 유모를 맡겨, 어디 갔다가 탁아소에 맡겨 버리고, 남자 벌어주는 돈만 가지고, 드라마만 쳐다보고 앉아 가지고,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만 갔다가 그리고 앉아 있으니까, 그 가정이 될 리가 있나요? 세계를 휩쓰는 드라마가 어느 나라 것이라고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외국 것은 재미있고, 우리 것은 시시해서, 보라고 해서 안 봤는데, 어느날 세계 드라마의 1등이 한류라고, 한국 것이랍니다. 중둥의 사우디고, 이란이고 어디를 가봐도, 전부 그것을 쳐다 보느니라고, 물건도 안 팔더랍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 짓을 하고, 우리는 돈 벌면 괜찮은데, 외국 사람이 그리 되기까지,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에 폭 빠져서, 중독이 되게 만들어놨으니까, 이게 수출이 되겠지요. 그 속에 가정 파괴가 대규모로 이루어져서, 원자탄이 떨어지면 잿 바닥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한류가 세계 유명한 드라마가 된 그 이전에, 그 드라마가 들어, 가정마다 그냥, 전부 다 원자탄으로 잿더미를 만들어, 가정다운 가정이 없고, 엄마다운 엄마가 없는, 이런 참 소돔과 고모라 이상이며, 노아 홍수 이상의 환란의 때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참 환란 때이고, 모르면 이렇게 좋은 세상은 6천년 역사에 없었다. 배 두드리고 살만큼 되었는데.

창세기 1장을 읽어보니, 전능자 하나님도, 다 만들어버리면 뚝딱 만드는 분인데, 재료 만들고, 재료 나누고, 하나 둘 만들어, 그것을 시켜서, 만들다 보니, 완전자요, 절대자로서는 답답하게 한량없지만은, 이리 만들어 놔야, 이 환경 속에, 앞으로 하나님을 닮을 아담이, 하와와 둘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고, 둘이 있는 힘을 다하여 충성하며, 하나님은 소리 없이 돕고, 만물이 아담과 하와를 찬송하면, 아담과 하와는 ‘아 무슨!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는 주먹만한 흙 한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아담도 이렇고, 하와도 이렇게 하라고 환경도 만들어놓고, 둘을 그리 만들어놨더니만은, 만물이 ‘아담 덕분입니다.’ 이러니까, 아담이 ‘언제 나도 하나님 노릇 해볼까?’ 시작 싹수부터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참 어렵지만은, 교회도, 목회자가 직접 해도 되지만은 집사님을 통해서 하는 것이 더 나은데, 가정은 이게 먹히는데, 교회는 직접 해도 되지만은, 집사님에게 시켜놓으면, 이게 좋은 목회자, 좋은 집사님 사이는, 직접 하셔도 잘되고, 더 잘할 것인데, 나를 기르려고 시켰고, 그 다음, 한발 뒤로 빠졌으니, 목회자 없는 교회라 치고, 내가 목회자가 된 것처럼 열심히 하면서, 이렇게 유기적이 되면, 10명 교인 교회면, 목사가 10명 있는 교회와 같고, 100명 교회는, 100명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와 같으면, 목사 하나 죽어도, 10명이 죽어도, 끄덕도 없을 것인데, 월급을 줬으니, 월급값을 하라고, 교인들은 전부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러, 회원으로 극장 갔다 왔다 하듯이 하고, 목사는 내가 왕인데, 하나님 대신 왕 노릇 다 해버리고, 이래서 교회는 이미, 교회답게 갈 희망도 보이지 않는 꼴이 생깁니다. 좋기는, 뭐 그냥, 목사가 예배당 청소하고, 교인이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그러면, ‘운동합니다. 목사가 그냥, 목사식 운동으로야 예배당 청소하는 것이 제일 멋지지요. 월급도 받는데, 연보하느니라고, 돈벌이 하고, 허리가 휘는데, 가서 쉬십시오.’ 이게 유기적으로 교인을 향한, 예를 들면 지도가 될 수가 있겠지요. 그렇게까지 말을 하면, 목회자에게서 그 말이 나오기까지 되었으니, ‘참 죄송하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러면 그 시간에, 성경이라도 열심히 보고,’ 말하자니, 이렇게 저렇게 나가다보니까, 모든 것이 유기적이고, 그 다음 사람을 통해, 그 다음 일을 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 대상.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기로 목적을 정한 것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 생각도 하기 전, 제 1순서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닮은 것을 만들겠다.’ 목적. 그러려면 순서는, 재료를 만들고, 재료를 분리하고, 재료를 통해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생물들을 만들고, 먼저 만든 엄마에게 그 다음 아들을 만들게 하고, 그래야 이 환경 속에, 이것들이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유기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자라겠지, 그리고 또 그러도록 진리의 영감의 인도를 주시고, 또 원하고 원함으로 대속하러 오신 주님도 원하고 원함으로 오셨지, 억지로 온 것 아닙니다. 지공 지성의 법이 내용이 그렇습니다. 원하고 원하고 원하여, 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치 취미이고, 못 죽으면 바늘 방석이고, 원하고 원함으로, 이게 유기적 역사입니다. 내용을 보니까, 자유의 역사입니다.

땅에게 식물을 내라 하니, 땅이 ‘좀 이제 막 좀 쉬고 싶은데, 또 시켜? 실력이 있는 당신이 하시지?’ 그러지 아니하고, 절대자 전능자가 만들면 더 쉬운데, 이 못난 땅에게 식물을 책임지라 하시니, 마치 내가 식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이나 하는 것처럼, 이렇게 영광스러운 기회를 잡았으니, 있는 힘을 다하여 하겠으나, 도우지 않으면 못합니다. 땅과 하나님의 관계는 유기적이 관계, 원하고 원하는 자유성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타락을 해서, 땅은 발언을 못하고, 무생물처럼 보이지, 돌들도 소리 지를 수 있습니다. 돌이 소리 지르는데 땅이, 공중이, 바다가, 자기 마음, 자기 의사가 없다고요? 우리 때문에 자유 의사를 밝히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눌러놔서 그렇지, 태평양이 ‘나를 건너는 저 상선들이, 죄를 실고 무역하니, 저것들을 다 삼켜야 되겠는데, 하나님께서 막으시니, 지금 참고 봅니다. 심판 날에 제가 소리를 지를 겁니다! 태평양을 이용하여, 죄가 오고간 이 상선들을 제가 기억합니다.’ 이러겠지요. 자유성의 세계, 그런데 그 만들어놓은 자유, 여기에 지금 한 200여명이, ‘각각 제 멋대로 다 해버리리라’ 하면, 엉망 진창이 될 것인데, 만든 만물에게 ‘자유를 하라’고 풀어 놓으니까, 전부가 ‘하나님 밖에 없고,’ 식물은 ‘땅이 제 은사 기관입니다. 땅 밖에 없습니다. 땅이 생명이요, 내 자유입니다.’ ‘뿌리 뽑고 해수욕 좀 가지?’ ‘아니요! 물고기는 해수욕을 가도, 저는 식물이라, 이 땅이 나를 만들었으니, 이 땅에 뿌리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피서며, 생명이며, 성장이며, 저의 영광입니다.’ ‘억지로 뿌리 박고 있는거 아니네?’ ‘예, 원하고 원함으로, 제 생명입니다.’ 이게 셈입니다. 셈. 함은, ‘뿌리 박고 10년간 꼼짝 못하니, 언제 나도 뿌리를 털고 한번 해수욕 갈까?’ 뽑힌 순간 죽는 건데, 인간은 해수욕을 가도, 식물은 해수욕을 가면은 죽는 것인데, 사망인데, 유기적인 역사의 내용을 보니까 자유의 원칙, 만물이 자유로 하는데 전부는 딱 완벽하게 조화되어, 하나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원래 만든 창세기 1장은 그리 만들면서, 그 속에 에덴을 만들고, 아담을 두시면서, 그래서 아담은, 아담 때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죄 없이 눈이 밝았기 때문에  그냥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보였습니다. 하늘을 보면 진리가 다 깨달아졌습니다. 예배당이 필요가 없고, 예배 시간이 따로 필요가 없고, 성경이 따로 필요가 없고, 집회가 따로 필요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을 때. 창세기 1장에 창조의 유기적인 은혜가, 그대로 움직이고 계시기 때문에, 그냥 주신 자연 환경, 자연 계시만 가지고도, 특별 계시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타락한 뒤에 특별 계시는 주어집니다. 좋은게 아니라, 타락의 결과입니다.

유기적인 역사다, 계통으로 역사 했으며, 2번, 자유의 원칙으로, 생명이 생명을 통하여, 원하고 원함으로 갔지, 억지, 강제,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하지 않았는데, 공회가 지 교회에게 억지로 한다면, 각 교회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억지 강제로 한다면, 기본적으로 이것은 교리에 있든지 없든지 간에, 하라고 해도, 해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이 목회자는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 목회자가 맞고, ;저것을 쥐어 박아버려야 되겠는데, 하나님이 저주할까봐서 욕은 못하겠고,; 이러고 앉았으면, 이미 그 관계는 평양의 김씨처럼 그런 관계입니다. 교회까지 그리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왜 교회를 먼저 예를 들지요? 부부, 가정이 문제니까 그렇습니다. ‘저것을 데리고 살려니까, 그냥 속이 터져서’ 그럼, 하나님은, ‘나는 너를 구원하고, 속이 터져 죽겠다.’ ‘네가 네 교회 때문에, 네 목사 때문에, 네가 네 식구 때문에 속이 열 번 터지냐? 널 위하여 대속의 피 흘린 나는 속이 천번 만번 더 터진다.’ 그 분을 생각하고 참지 못할 것을 참고, 안하고 싶은 것도 하고, 말이야 쉽지요. 제가 실수는 제일 많을 것 아닙니까? 앞에 있으니까, 남들이 보니까, 제 실수가 제일 많을 것인데, 창세기 1장이 기준이라, 이 기준에 제가 틀린게 10가지면, 무조건 고쳐야 됩니다. 창세기 1장이 기준인데, 교인이 2개 틀렸으면, 2개 그것도 고쳐야 됩니다. ‘네가 고치면 내가 고칠께’ 그게 아니라, 남이 고치는 것은 남 문제이고, 나는 무조건 고쳐야 됩니다. 창세기 1장의 유기적인 관계, 이래가지고 만들어놓으니까, 움직이는 역사 전부가 알고보니, 하나입니다. 일원. 하나님 혼자 모든 만물을 다 만들어놨는데, 모든 만물을 짚어서 거슬려 가니까, 겉으로도 마지막에는 하나님, 내용으로도 하나님, 성질로도 하나님, 알고 보니까 하나님 한분이 둔갑을 해서, 만물처럼 펼쳐 놓은 겁니다. 이거 조금 잘못 나가면, 하나님 본체의 쪼가리가 나와 가지고, 하늘이 되고, 인간이 되고 그랬다는 ‘만물 유출설’이라는 이단이 있습니다. 설교록에도 나오는 말, 하나님 본체는 본체 그대로, 영원 불변이고, 이탈이 없는 절대 불변이고, 그 분이 만들기를 당신 닮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당신 닮게 하기 위해서 세상도 자유성을 가진 유기적인 관계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 뺴다 닮게 만들어놨기 떄문에,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좀 흘러 나와 가지고, 다윗도 되고, 모세도 되고, 저 창공의 다함 없는 세계도, 하나님으로 흘러나와서 그리 된 것 같은데, 없는 가운데, 하나님의 새 창조입니다. 성질이 같고, 하나님께서 유기적인 계통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하나처럼 보이는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이지요. 하나인데, 하나님이 만물을 만 가지로 흩어놓고, 분리 시켜놨지요. 하나인데, 여럿이지요. 그 여럿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를 중심으로 먼저 앞서가고 우리가 된 것만큼 우리가 사용한 만물은 다 하나의 세계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모든 것을, 1장에 재료로 만드시고, 첫날 둘째날, 빛으로 낮과 밤을, 물에 허공을 만들어 창공 하나를, 그 다음 밑으로 물을 나누어 수평으로 땅과 바다를, 하늘의 별들을,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 속에, 유기적인 역사를 읽었으면 창세기 1장을 좀 보기 시작한 사람이고, 머리가 좋아서 외워서, 그냥 줄줄 하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 됩니다.

두 번째는, 36페이지 가운데, 전개 과정, 자료로 가지고는 환경을 먼저 만들 때, 낮 밤이라는 시간을, 궁창이라는 공간을, 물과 땅을 지성 분할을 시키며, 우리의 생활을, 그리고 공중의 해 달 별들을 우리의 배경으로 깔아 놓으시고, 동물, 식물을 종류대로 만들어, 세분 세분 세분하여, 한량없는 종류가 우리에게 다 필요하도록 만들었으니, 하나님이 만든 우주 이 세상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뱃속, 탯 속입니다. 아이 하나가, 아이 되는데, 어머니의 뱃속의 환경이 전부 필요한 것처럼, 재료로 환경을, 그 다음 작은 2번 밑에, 무생물을 먼저 만들고, 생물을 그 다음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생물도 식물을 먼저, 그 다음 어류, 조류, 육축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어놨으니, 이것만 딱 보고, 진화론자들이, ‘아무리 봐도 식물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이 물고기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이 물에서 파충류가 나오면서, 새들도 나오고, 개도 나오고, 사람도 어느날 나온 것 아니냐?’ 과학 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이 그렇게 맞다고 오해 할만큼 하나님이 창조 순서를 그렇게 만들어놓아서 그런겁니다. 진화론이 먼저 나오고, 창세기 1장이 뒤에 나왔으면, 합리화로 갔다 끌어 붙였다고 그러겠는데, 진화론이 나온 것은 불과 뭐 한 200년 밖에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이 성경은, 과학자 자기들이 분석해도 몇 천년 전에 만든겁니다. 적어도 3500년 전에, 진화론 나올 것을 상상이나 했나요? 이것을 보니,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기록한 것이지, 인간의 작품일리 없다. 또 하나 감사하고,

38페이지 넘겨서, 이제 하루 하루 단위로, 첫날. 낮과 밤이 나옵니다. 빛을 가지고, 빛이 먼저 있고, 빛을 쪼개어 빛과 어두움으로 나오고, 빛과 어두움으로 낮과 밤을 만들었는데, 낮이 먼저입니까? 밤이 먼저입니까? 한번 읽어볼까요? 4절.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그리고 나서 어떻게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녁 해질 때부터 날짜를 잡습니다. 그게 성경적으로 맞습니다. 밤이 먼저고, 낮이 뒤에 오더라, 이것도 하나 참고해놓으십니다.

그 다음 제 2일, 하늘을 만드십니다. 먼저 물을 준비하시고, 태평양의 그 물과 같은 물이 아닙니다. 물이란 재료로, 그 사이에 궁창을 만들어, 아랫물 윗물을 나누어 놓으시고, 왜 궁창 하늘을 만드셨을까? 왜 하필 하늘이란, 하늘로 만드셨을까? 하늘을 보면, 보려고 하면, 어디에서든지 보이는 것이 하늘입니다. 보이는데 끝이 없습니다. 계산을 못하겠습니다. 무궁합니다. 뭘 가르치시려고? 가야할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 영생의 나라를, 보이는 공간, 우주, 하늘을 보고, 가야 할 천국을 가기 전에 다 알아버리겠습니다. 그러라고, 공중을 만들었으니, 저 하늘은 우리의 늘 소망입니다. 오늘은 다 알 수 없으나, 내일은 나의 세계, 소망으로 주셨고, 그 첫날에 빛을 주었으니, 빛은 빛으로 알게 하지요. 보게 하지요. 지식, 옳고 바른 지식을 알게 하시고, 먼저 알게 하시고, 두 번째 소망을 주시고, 하늘.

세 번째, 물에서, 그 다음, 땅과, 그 다음 물에서, 물을 제쳐나고 남은 땅, 땅에서 풀과 채소와 나무 식물들을 나게 하시며, 우리의 가까운 현실을 쭉 펼쳐놓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서가, 매 사건, 매 새로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알게 하시고, 빛의 역사

Comments

교인 2020.06.09 18:08
세 번째, 물에서, 그 다음, 땅과, 그 다음 물에서, 물을 제쳐나고 남은 땅, 땅에서 풀과 채소와 나무 식물들을 나게 하시며, 우리의 가까운 현실을 쭉 펼쳐놓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서가, 매 사건, 매 새로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알게 하시고, 빛의 역사가 항상 먼저 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자. 가야 한다. 여기는 세상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를 저기다.’ 알게 하시고, ‘목표는 가나안이다.’ 하늘과 같은 소망을 주시고, 그 다음 출발하면, 걸음걸음, 걸어가는 길입니다. 현실을 구성하고, 현실의 기본 은혜를 쭉 우리 주변에 배열한 다음,

그 다음 제 4일, 하늘의 별과, 춘하추동, 사시와, 일자, 징조, 모든 연한을 다 펼쳐놓으시며, 현실을 순종할 때에, 현실의 순종을 통해,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넓은 세계, 어디 가도, 태양의 혜택을 보지 않는 경우는 없지요. 어디를 가도, 밤 하늘의 별 신세를지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어디를 가도, 춘하추동, 모든 징조, 모든 하나님의 내리시는 하늘의 은혜로, 우리가 소망 중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하늘에 우리가 이룰 소망을, 늘 목표를 해야 합니다. 발은 땅을 밟고, 눈은 하늘을 향하고, 오늘은 못난이고, 우리는 내일 소망 속에 자랄 만물의 경탄할, 찬양할 대상이고, 천사도 흠모할 우리이고, 발바닥은 땅을 밟게 만들어놨습니다. 눈은 위에 붙여놓고, 위를 보도록 만들어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 위엣 것 보고, 자라가고, 소망하라고, 눈을 위에 달아놨더니만, 전부 밑을 향해서, 두고 갈 땅의 것을 뭘 쓸어 담나? 이것도 인연해서 회개할 문제입니다.

40페이지 넘겨서, 물고기도 만들고, 하늘의 새도 만들어, 점점 우리와 가까운 것들을 만들어 가십니다. 마지막날, 우리가 치대고 사는 짐승, 육축까지 만들고, 제일 마지막에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멀리서부터 만들어,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매 현실, 매일 매일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이라야 내일을 아는데, 주님은, 내일을 미리 오늘부터 준비하셨고, 우리가 몰랐지, 내일에 필요한 환경 먼저 제공하셨고, 다 만들어놓고, 마지막에 아담 하나 딱 갔다 놓으면은, 다 맞아지도록, 이리 해놨는데, 아담이 하는 짓이, 지가 하나님인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 우리 현실을, 우리가 하나님처럼 살고 있습니다. 근본 회개 방향부터가 되어져야 될 일입니다. 다른 것은 다 계통 계통을 통해 만들었는데, 하나님을 열, 하나님을 본받을, 하나님이 될, 아담과 하와만큼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더라.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니, 목적이니, 그리고 아담에게 하와를 붙여, 아담과 하와 둘이 모였을 때에, 한 사람이지, 아담 혼자 기어 돌아다니면, 늘 반쪽입니다. 아담 떼어놓고, 하와 혼자 다녀도 반쪽입니다. 둘을 모아 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25절에 마지막 6일째 만든 사람이고, 그리고 제 7일 안식일, 평소에 주일을 통해 우리가 많이 배웠습니다.

창세기 1장, 아마 한 장을 가지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살펴보려면, 집회 한주간이 아니라, 평생을 연구해도, 만물이 만 가지인데, 평생 연구한다고, 만물을 다 압니까? 그 많은 양을, 1장에 모아주시고, 먼저 펼쳐주시며, 너희의 매일 매일이 하나님 앞에서는 창세기 1장의 새 창조적인 하루다! 변하는 모든 현실이, 새 창조적인 하루다! 라는 말씀을, 마음 속에 반복하며, 다 같이 기도하시다 자유하시겠습니다.

광고합니다. 연보는 따로 모으지 않습니다. 알아서 연보궤에 하시고, 그리고, 이번 집회에 30년만에 처음으로, 재독 반복하던 은혜의 세계를 이번 집회처럼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갈는지? 이것을 조금 더 했으면 좋을는지? 이렇게 순서를 반대로 했으면 좋을는지? 앞에 30분을 찬송으로만 했으면 좋겠는지? 이렇게 연경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는지? 모든 의견, 이번 집회 때에 완전 30년 만에 완전 다 바뀌었습니다. 어떤 의견이든지, 말은 곱게 하시고, 하시고 싶은 말씀은 꼬박 꼬박 많이 적어주시고, 빙빙 둘러 말하지 마시고, 이름 안 적어도 되니까, 그냥 핵심적인 필요한 말씀들을 많이 적어주시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Category
State
171,084 since 2005
163,968 since 202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