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18.5.9 창1:1 결론: 창조 첫 순간으로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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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새18.5.9 창1:1 결론: 창조 첫 순간으로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시대를

교인 0 59 2020.06.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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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0 목새

결론: 창조 첫 순간으로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는 시대를 

본문 : 창세기 1장 31절 -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한량없는 은혜를, 만세 전에, 목적 가운데 두시고, 예정대로 창세기 1장의 창조를 통해, 첫 현실을 인류에게 주시고, 끊임없이 모든 택자, 모든 중생된 우리의 신앙에 맞게끔, 매일 매 현실, 항상 새 창조의 원리로, 분화 시켜나가며, 계통을 통해, 자유성이 호응하는, 이런 만물, 이런 우리 주변까지, 펼쳐 놓으시고, 중생된 우리 영을 따라, 우리 마음이 원하고 원함으로,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고, 앞서 가신 그 길 따라, 심신의 모든 배울 것, 고칠 것, 자라갈 것, 하나님의 형상을 향하여, 끝까지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시고, 이 일에 더욱 큰 은혜 받도록, 금번에도 5월의 집회, 개최의 은혜 주시고, 또 시간 시간, 소망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해야 되는 방향을, 알려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남북과 국제의 정세도, 새 창조의 이 원리에 따라, 분화 시켜,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될지는 저희가 모르나, 구원의 유익, 목적을 위한 예정의 순서인줄은 알고 있사오니, 참 예사롭지 않은 현실을 보며, 역사에 인도하신 지역과 인물과, 또 교리에 발전의 단계를 볼 때에, 한량없이 부족하고, 한량없이 큰 사명이 마주치고 있사오니, 자기를 완전 부인하는 것만 우리 할 일이요, 주의 인도, 주의 뜻 찾는 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요, 확정되는 주의 인도에는, 순종만이 저희의 믿음이 되겠사오니, 이 시간도 함께 하사, 주의 뜻을 살피는 시간되게 하시고, 각자의 마음 속에, 앞으로 주실 사명에 인도를 허락해주시고, 그대로 이어지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5월의 집회를 기억하고 모이는 곳곳마다, 주의 은혜로 함께 하시되, 우리에게 함께 주신 사명이 예사롭지 않음을, 모든 공회들이, 절감할 수 있게 하시고, 자기의 위치를 찾아,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 우리로 인하여, 우리가 우리되고, 성령의 우리된 우리로 말세를 감당케 해주옵소서. 신앙의 자유가 없는, 70년 흑암의 북쪽에, 기본 구원의 복음을 다시 전할 기회 주시고, 많은 교회들이, 향할 것인데, 먼저 믿는 저들에게 옳고 바르게 믿는 길을 알리는, 우리의 사명, 우리의 준비도 만전을 기하게 하시고, 때를 따라 주의 역사에, 단계가 있사오니, 지금은 준비할 때요, 또 전하기를 노력할 때인줄 알고, 주의 섭리, 깨어 눈동자를 자게 하고 쉬게 하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이 시간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준비의 재료를 창조하시고, 재료를 세가지로 방향을 나눠 놓으시고, 첫날에 빛을 주사, 알리시고, 알게 하시고, 밝히시고, 얼마나 감사한지? 둘째날, 하늘을 만드시며, 바라볼 소망을 주시고, 우리의 공간, 우리의 환경에 첫 순서를 주시고, 셋째날, 옆으로, 바다로, 땅으로 나누어, 우리의 경계를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때에 필요한 가장 저변의 식물들을 나게 하시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과 그들의 작동으로, 사시 주야, 모든 연한, 일시 시기를, 우리에게 주사, 필요하여 추위도 주시고, 필요하여 더위도 주시고, 필요하여 낮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밤도 주시고, 밤이 타락 후에 온 것이 아니라, 타락 전에, 밤이 필요하여, 어두움도 함께 만들어놨습니다. 타락 후에는 어두움을 통해, 도둑질을 하고, 남 모르는 짓을 하지만은, 원래 어두움은, 빛이 필요한만큼, 쐬어야 되는, 하나님 앞에 동행을 해야 되는, 어두움도 필요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 하나님만 품으라’ 밤도 절반.

모신 하나님, 붙든 하나님, 긴장을 놓치지 말고, 만물을 다스려야 되는 낮도 필요하고, 하나에서 셋을, 셋에서 여럿을, 하나님께서 끝없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류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만드셨고, 그 종류의 개체들도, 숫자까지 헤아려가며, 이런 천지 창조, 매일 매일을 만드시고, 보시기 좋았더라. 마지막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 하나님이 만들었으면, 완전자의 조성이니, 당연히 좋았겠지? 인간도 제가 해놓고, 저 스스로 흐뭇한데? 완전자가 완전하게 만들었으니, 심히 좋았더라는 왜 적었을까? 아담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설마? 천지 창조를 보며, 에덴동산의 주인이, 죄 없던 때에, 왜 그것을 몰랐을까? 첫 날은 심히 좋았더라, 감사하고, 둘째날에는 감사가 좀 줄어들고, 셋째날에는 원망이 될, 섭섭함이 솔솔 묻어나오고, 빈틈을 보고, 사탄이 말 한마디 던지니까 덜렁 따먹고, 가출해버린 것이, 아담이었고, 이게 창세기 1장 2장에 에덴동산, 3장에 바로 탈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렇게 급했는데, 천지 창조의 이 첫 순간을 자세하게 기록해주시면서, 문제는, 매 현실이 이런 방식으로, 이런 내용으로, 이런 반복으로, 계속 진행이 될 것이니, 남북의 극단적인,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굉장한 희망, 굉장한 재앙, 어느 쪽으로 가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과연 그리 될까?

한 사람의 잠깐의 착오로,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인류 역사 최악의 재앙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을 때, 그것도 그렇게 심히 좋았더라 할 수 있겠는가? 형 10이 똘똘 뭉쳐, 죽이려다가, 팔아 먹어버린, 이런 재앙이, 서른살이 되어, 다시 돌아보니, 심히 좋았더라! 배 다른 형, 열이 아니고야 그 짓 했겠습니까? 그 열 안에는, 세겜성을 도륙한, 레위와 유다(시므온)이 있었습니다. 팔려간 곳이, 하필이면 일반 가정이면, 탈출이라도 하겠는데, 강대국 애굽 나라 왕의 목숨을 지키는, 시위 대장. 그 집 안으로 갔으니, 이것은 죽은 목숨입니다. 그 안에서도, 또 인정을 받았으나, 그 다음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만 가는 감옥을 갔으니, 최악의 최악의 최악으로만 치닫고 있는데, 앞을 모르고 보니까, 절망에 절망이 더해지나, 시공을 초월하여, 목적을 향하여, 순서를 두고, 인도하시는 주님은, 더 가까이, 더 영광으로, 더 능력으로, 마지막 영광의 그 날, 권능의 그 날을 향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으니, 알고보면 소망의 소망이, 점점 가까워지고, 인간으로써는 절망의 절망으로만 달려갔습니다.

현재 남북의, 뭐 평화니 뭐니 하는 소리가 우리에게는 지금, 꿈도 꾸지 못할, 새로운 현실로 하나님이 쭉 펼쳐놓았는데, 벌써 재료는 만드셨고, 외국을 향한 방향은 벌써 오래 전부터, 공작해오셨고, 남북 안쪽도 그리 만들어가셨고, 대통령 하나도 아니라, 둘이, 그것도 혁명했던 대통령도 아니라, 선거 했던 대통령 둘을 교도소에 한꺼번에 집어넣을 줄이야, 좌파인들 알았겠습니까? 우파인들 알았겠습니까? 들어간 대통령인들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는데. 언뜻 언뜻 들리는 소식을 이어봐도, 본인도 모르고, 된 사람도 모르고, 들어간 사람도 모르고, 늦는 사람도 모르고, 그런데 뭔가 극단적으로 이렇게 남한 안에도, 북한 안 쪽에도,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첫 시간부터 우리가 살펴본, 아담으로부터 에녹의 천년. 노아가 갈때까지 또 천년. 아브라함이 나올 때까지, 또 천년.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또 천년. 날짜까지 천년 단위로 딱딱 이어가며, 4천년 구약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고, 이 구원을 펼쳐가는 길! 66권 성경을 완성해주시고, 성경이 완성이 되자, 바로 ‘구원의 하나님이 누구신가?’ 이단들은, 악령은, 구원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기를 위해서 시비를 했는데, 되돌아 알고보니까, 완성된 주님의 구원, 성경으로 우리의 실상을 만들 일, 길을 잡았는데, 그 첫 순서가, 너희들의 구원을 만든 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한번 더 확정을 시켜줬던 역사가 되었고, 신성, 하나님이 확정이 되고 나니까, ‘인간은 아니라’고 또 시비가 먼저 들어왔는데, 그 시비를 하고 끝을 내고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구나, 나 같은 사람이! 이 죄인 괴수가!’ 죄는 없으시니라, 그 외에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사람이면 사람이지, 하나님과 사람이 정말로 한 분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게 가능한가? 그럴 수가 있는가?’ 우리의 구원을 단절 시켜 뺏기 위해서, 악령은 끊임없이 흔들어댔지만은, 그것과 싸우고, 성경을 통해 밝히고 보니, ‘하나님이 사람되어, 날 구원하셨는데,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한 분으로 계셨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잡지 못하지만은, 하나님이 사람되신 사람은, 우리가 잡을 수 있고, 이 사람을 통해, 한분된 하나님으로 향하여, 끝없이 갈 수 있는, 이 목적의 세계가 있구나!’ 이것을 알려주고, 심어주고, 확정시켜 버린 것이, 귀신은 망하게 하려고, 흔들었는데, 마지막에 결론을 보고 나니까, 그 귀신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더 쌓아보고,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 신인양성이면 양성이지, 그게 한분이면 한분이지, 정말로 하나가 되었다면, 제 3의 존재가 되거나, 변질이 되거나, 섞여 버렸겠지, 또 이렇게 교회를 흔들어, 전부 혼동스러웠으나, 성경을 돌아오고, 따져보고 살펴보니까, 학자들이 한 것 같아도, 살펴보면, 귀한 깨달음은 늘 구별하고, 구별하는 거룩을 통해, 하나 밖에 없는 진리를 주셨으니, 그 진리를 찾아, 잡았을 때에는 놓치지 않는 거룩하고 진실한 다윗의 열쇠!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신인이 양성 두 분인데, 변함도 없으시고, 혼동, 변질도 없으시고, 떨어지지도 않는, 영원한 한분! 그래서 우리는 인간으로 시작하나, 신인양성 일위, 주님의 인성을 본받아 하나되고, 그 인성을 통해, 그 인성과 하나된, 신성과 하나되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려오신 그 수고, 역으로 우리는 사람인데, 주님의 인성, 그 인성 위에 신성과 하나되고, 끝없이 영원히 하나님의 삼위일체 본체를 향하여 닮아가는, 꿈을 꿀 수도 없는 이 세계를, 받기는 받았으나, 그게 그렇게 귀한줄 몰랐는데, 빼앗아가고, 삐뚤어지게 만들려는 악령 때문에, 바른 길을 알게 되고, 더 강하게 잡게 되고, 상식으로까지 가져!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아가는 성경의 길을, 완성하고 받게 되고, 신인양성 일위의 주님을 알게 되자, 또 ‘내 노력으로, 그 은혜를 받는 것이라’ 이렇게 헛일을 시킬 것을, 천년의 천주교 끝에, ‘전적 구원은, 은혜다!’ 기본 구원이 확정되고 500년 혼동 속에, ‘받은 구원! 틀림이 없으나, 천국의 실력과 자기의 영생의 모습은, 심신의 배우고, 고치고, 자라가는데에 있으니, 심은데로 거두리라. 알아서 하라’

교재 50페이지 가운데, 갈라디아서 6장 7절. “심은대로 거두리라” 안 믿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에게, 믿은 이후에도, 심신 원하는 육체대로 살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둘 것이고, 지옥에 다 뿌리고 갈 것이라. 믿은 이후, 영 안에까지 들어오신 성령, 내 영 안에 좌정하신 성령, 나의 주인 영과, 성령의 전능의 능력이 힘을 합해 내 마음 안으로 밀고 들어올 때에, 내 마음, 내 주관, 내 생각 하나만 내 손으로 꺽어버리면, 바꾸어버리면, 이 모든 역사에, 교리에 담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가 내 마음 속에 콸콸 쏟아져버리는데, 저수지는 완공되었고, 저수지의 물은 무한히 찼고, 내 손으로 수문을 열면, 논밭에 물을 마음껏 끌어다 쓰면, 되어지는데, 수문 하나 열기가 싫어서, 틀어쥐고 녹이 쓸게 만들고,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도 세상 속에 기어 들어가면, 주님도 ‘말아라! 너 원하는대로 영원히 그리 살아라.’ 자유의 목적을 주셨기 때문에, 그 자유를 마지막 그리 쓰면, 그리 두십니다.

전능이라, 못하는 것이 없는데, 그 전능이 스스로 하지 않겠다고, 하나만 작정을 했으니, 그게 우리의 자유성입니다. 아들놈은 패서 가르치고, 노예로 만들고, 기계로 만들고, 코를 꿰어 소처럼 끌면, 아들이 아들되지를 못합니다. 노예는 그러면 되는데, 아들은 달래고, 대화를 해서, 이게 원하고 원함으로 아버지와 하나되고, 아버지를 따라와야, 아버지 자리에 앉혀 대대로 이어가는, 이 원리 때문에, 임금님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귀향 보내고, 죽여 버리고 3대를 멸할 수가 있으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놈은, 임금님 수염을 잡아 끌어도, 웃어주며, 달래주며, 기다려야 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입니다. 이렇게까지 사랑으로, 참고 기다려주는데, 임금될 다음 왕자가, 왕이 될 그 순간까지 놀고 먹고 배우지 않다가, 무식한 왕이 되어놓으면, 그 나라 전체는 무식한 왕의 무식한 값은 받아야 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왕자라, 왕은 될텐데 왕이 되는 날까지, 마음껏 놀고 나쁜 짓만 해도 되는데, 스스로 배우고 조심해서, 실력 있는 자기를 만들면, 실력 있는 자기를 만든 만큼, 자기가 왕이 되었을 때에, 자기 책임진 만물과 영계의 영물을 향하셔 실력 있게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제공해줄 수 있으니, 그것은 자유성이 있어, 자유성을 가져야,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으니, ‘네 심신을 네가 알아서 준비하고 만들어보거라.’ 여기까지 오는 건설구원의 2천여년이 다 소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알고 보니, 사마리아가 이방인처럼 취급을 받았으나, 강도 만나, 사탄에게 맞아, 희망이 없던 이것을 구해주시고, 데나리온 둘을 주시며, 데나리온 하나가 일당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데나리온 둘을 주셨으니, 2천년 기간을 주시며, ‘돌아온다’하고 맡겨놓고 길을 떠났습니다. 돌아는 올터인데, 돌아왔을 때에 두 달란트, 2천년으로 신약 교회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치료비가 더 들면, 부비가 더 들면, 돌아와서 해결하리라.” 이 말씀 때문에, 신약의 2천년에 주님은 돌아올 것이나, 조금 늦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 2천년 약속이 넘어가니까, 얼른 갔다 끼운 합리화가 아니라, 그 말씀 제가 들은게 1976년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벌써 나온 말씀입니다. 현재 2018년. 2천년을 조금 지나가고 있지만은, 한량없이 지나가지는 않습니다. 주의 사랑, 주의 너그러움, 주의 배려가 부족한 우리를 기다리며, 정해놓은 시간은 그대로 올 것이고, 애가 타서 발을 굴리고 있고, 우리는 좋은 세상! 휴가차 와서 여기 즐길 수도 있고, 더 좋은 곳으로 놀러갈 수도 있고, 더 좋은 세상을 준비하느니라고 오늘도 공부할 수 있고, 외부로는 다 그러하나, 내적으로는 오 실 날은 점점 더 가깝고, 그 날은 멀지 않으니, 돈 안 벌어도 세상이 먹여주는 이런 시대에, 돈을 향해서 달려갈 것인가?

학교 가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휴대폰 안에 세계의 지식이 다 쏟아져 넘치지, 굳이 그렇게 배울 것이 있는가? 생각을 바꾸고, 있는 힘을 다하여, 창조의 그 원리, 그 은혜, 그 역사가, 오늘도 새 현실에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 지역적으로, 이스라엘로, 먼 아시아로, 로마로, 점점 멀리 멀리 보내셨다가, 영 아주, 땅 끝에서 떨어져, 우리하고는 상관도 없을줄 알았는데, 둥글게 만들고 뒤쪽으로 끌어다가, 일곱 번째 지역 중심으로, 한국을 정해주셨으니, 이것도 참 기가 막히고, 감사할 일이고, 한국 안에서도 38 이북만 교회가 번성했고, 이남은 황무지였는데, 딱 절반을 짤라서 북쪽은 한명도 남기지 않고, 싹 없애버리고, 남쪽으로 모아서, 한국 교회에 초기의 지도자들은 전부 북쪽입니다. 박윤선할 것도 없이, 모조리 북쪽이고, 남한에 신앙이 있던 주기철 목사님 하나도, 북쪽으로 끌어가버렸고, 이쪽이 시장이니까, 중심이니까, 남쪽에는 뭐, 한상동이니, 주남선, 뭔 손양원 이런 이름을 우리가 지금은 헤아리고 있으나, 일제 때 초기에는 이 분들은 한국 교회적으로는 이름도 없는, 다 조무래기들이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시시한 사람, 거물급들은 전부 북쪽이었는데, 왜 북쪽은 세계 최악의, 최 장기의, 제일 극단적인, 이런 공산당을 갔다가 하나 남겨, 세계의 구경거리, 조롱거리, 웃음거리를 만들고, 새까맣게 만들어놓고, 얼마나 검게 만들었는지, 인공위성에서 사진을 찍어도 북쪽은 새까맣고, 남쪽은 전깃불이 밝아, 밤에도 대낮처럼 사진이 나옵니다. 이게 전기가 많아서 그렇고, 전기가 없어서 그런가? 신앙의 자유가 이렇게 없고, 남한의 신앙의 자유는 한량도 없어서, 원래 5월 집회는, 고등학생까지 20살 밑으로, 학생들은 오지 않았던 집회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열어놨던지, 초등학생까지, 중고등학생까지, 5월 집회는 채울 수 있도록, 이렇게까지 밝혀놓은 것이 왜 그럴까?

지역으로 봐도 2천년 교리의 역사가, 이렇게 딱 한 곳을 향하고 있으니, 이 한국 안에, 그 중에서도 38이남, 남쪽 안에, 그 어떤 2천년의 지역의 역사와 교리의 역사가 이렇게도 맞아질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불신 사회도, 국제적으로 남북 간에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모든 것이 초점으로 모여질 수가 있을까? 우리가 따뜻하게 받는 태양 빛을 이만한 돋보기로 통과시키면, 이쪽으로 온 햇빛도 이리, 이쪽으로 온 햇빛도 이쪽으로, 모두가 한 쪽으로 햇빛이 따듯한 햇빛이 다 모여지면, 이것을 초점이라고 그럽니다. 지역 중심, 교리 중심, 불신 사회, 국제 관계, 별의별 것을 특이하게 다 주셨는데, 이것이 한 곳을 모아, 한 곳에 햇빛이 초점으로 쬐이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요? 학생들? 불이 납니다. 이렇게 그냥 따뜻한 햇빛이 불을 질러버립니다. 이게 모여지는 초점의 역사입니다.

있는대로 모든 것을 다 끌어, 여기에다가 대고 갔다놨는데,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만든 것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전부 탄식을 했는데, 한국에서 만든 것이, 세계를 향하는 이 꼴을 보라’ 더러운 드라마, 노래, 춤추는 것, 이상한 짓만 지금 펼쳐 보이면서, 한국 안에 있는 좋은 복음이, 만약에 그런 식으로 퍼쳐 나간다면, 혹시 그것을 생각하며, 한류가 뭐 세계적으로 향해서, 머시기가 말 춤을 추는데, 그것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이런 더러운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춤을 개발하고, 그런 춤을 추려고 노력하십니까? 아니면 미친놈들 미친 짓한다고 그러고 계십니까? 이 한국의 모든 것이 낙후되고, 모든 것이 참 미개했는데, 여기에서 시작한 것이, 여기저기로 노래고 춤이고, 드라마로 이렇게 세계 경쟁력이 있다고 쭉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이 나라에 우리에게 준, 우리가 가진 이 시시한 복음이, 공회 안에서도 그것은 이제 접으라고, 30년 전에 다 접은 사람, 우리는 끝까지 전하고 싶었는데, 강제로 틀어 막아, 지금 틀어 막히게 되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쫓아내버린 것처럼, 쳐내버린 것처럼, 필요 없다고, 그리고 그들은 유대교가 되어버렸고, 먼 터키 쪽으로 간 아시아 복음을 차 내버리고, 그들은 이슬람교가 되어서, 지금도 테러를 하고 앉아 있고, 차 내버린 로마가 붙든 복음, 그 다음 로마는 이것을 천주교로 바꿔 돈 벌이 하고, 세상의 더러운 권력 향유하느니라고, 천년 썩어버렸고, 할 수 없이 이것이 유럽으로 망명을 갔고, 그 유럽이 그 좋은 복음, 500년 전에 종교 개혁을 했으면 지금까지, 늘 교회를 개혁하며, 새 것으로 새 것으로, 발전을 하고 앞서 나가면, 우리는 따라만 가며, 신세만 지면 되는데 이들이 개혁은 해놓고, 그 다음 유럽이 한 짓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네 멋대로, 열명이면 열명 멋대로, 천명이면 천명 멋대로! 입에 담기도 괴로운 죄악도, 그것도 권리가 있으니, 마음껏 하라고 법으로 밀어주는, 이런 개판의 유럽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 제일 더러운 것은, 전부 유럽이 시작을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데, 골수 분자, 영국으로 간 복음, 이 복음을 세계에 전하라고, 영국에게 세계의 항해를 주시고, 지배력을 주셨더니만은, 복음은 빼내버리고, 세계를 거머쥐고, 아편 전쟁을 해서라도, 돈벌이만 하면 되는, 제국 교회가 되어버렸고, 미국은 좋은 복음으로, 전해보니, 좋다고 좋은 것, 좋은 것 그러다가, 복지 운동 하는 나라. 구호하고 복지 운동 하고, 좋은게 좋은, 미국이 되어, 복음의 순서는 잊어버렸고, 그대로 베끼고 한국이 마지막 오게 된. 이런 지역의 중심을 봐도, 세계적으로 최빈국이, 최강국이 된 것을 봐도, 딱 시점이 지금 몰아진 것을 봐도, 교리적인 발전을 봐도, 하필이면, 죽는 날까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재독의 반복을 통해 은혜가 쏟아져 그냥, 늘 편하게, 이 집회하면서 이번에는 제가 달랐지만은, 이전까지는 놀면서 와도 틀면 은혜가 쏟아지지, 졸면서 들어도 은혜가 쏟아지지, 소낙비 속에, 물을 담기라, 참 기가 막히게 은혜 받고 복된 것이라, 너무 좋았는데, 이게 끊어질 줄, 이게 우리가 원치 않게 이게 중단이 될 줄, 꿈엔들 알았습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또 끊어놓은 것이 어느 인간입니까? 원수입니까? 평양입니까? 왜놈들입니까? 불교인들입니까? 이것을 만든 집안에서 이것을 갔다가 잠가버리고, 이런 것 틀지 말라고, 펄펄 뛰며 6년을 저러고 앉아 있으니, 참 기이하고 기이한 일 밖에 없어, 기이하다.

이 기이한 것이 기이하고 괴팍한 것인데, 하나님이 마지막에 하나로 몰아, 목적을 향한 결말을 짓게 되면, 참 기묘자구나! 오묘하구나! 기묘하고 오묘하구나, 이 목적, 이 단계를 향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지, 인간은 뭣 모르고, 그러는 것이고. 우리는 몰라서 궁금하고, 때때로는 답답하고, 인간적인 감정으로 말을 하면, 그렇게 막는다면 ‘치워라, 너나 해라’ 하고 그냥 삐져서, 가버리겠는데, 이게 삐져서 갈 복음이 아니라! 마음을 돌려,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역사와, 지역과, 세계와 국제와 남북과 교계는 물론, 공회 안에까지, 우리 안에까지, 모든 것을 이렇게 했는데, 힘은 별로이 없어도, 건강은 평소 겁이 많아서, 조심하다보니까 병원의 검사 열가지, 백가지를 받아도, 깨긋하고 늘 좋았습니다. 세상에, 여기에 문제 생길줄 알았습니까? 그게 2월달입니다. 이번 새로 출발한 집회, 석달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스위치를 한번 껐다 켜시면서, ‘또 꺼버릴 수 있다.’하고 보이는 바람에, 집회 아니라도, 2월부터는 매일 매일이 아니라, 순간 순간 어찌될까봐, 떨고 조심하고 있는 상황에, 집회 준비가 되니, 저절로 집회 준비야, 그 정도가 되면, 잘 했겠지요. 순간 어찌 될지 모르니까, 저절로 조심했을 것이고, 또 집회 준비 잘하라고, 사방 천지를 뒤 흔들어 놓으셨고,

금번에 주신 말씀이 창세기 1장을 통해, 1장으로 시작하는, 새 현실, 그 현실을 두고 생각해보니, 그 현실을 받아 내려온 아담이, 내려가는 족보가 역대상 1장에서 9장까지였고, 중간까지 공부를 했는데, 야곱이 평생을 다 솔빡 바친 라헬, 데려가니까, 라헬이 남겨놓은 요셉에게 다 바쳤는데, 역대상 공부를 하고 보니, 하나님은 레아 아들, 레위와 유다를 통해, 모든 복음 운동의 복은 거기에 다 쏟아주셨고, 야곱은 눈이 삐어, 레아의 아들, 레위와 유다를 통해 온갖 복을 다 폭포수처럼 쏟아줄 것인데, 믿음의 조상 야곱은, 엉뚱하게, 라헬 낯판데기만 쳐다보고 앉아서, ‘그것 참 이쁜데’ 빠지고 앉았으니, 참 하나님도 속 터져 죽을 일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오는 믿음의 조상들도 그러했으니, 우리야 세상, 여기 저기, 온갖 것에 빠져, 엉뚱한 것을 쳐다보느니라고, 이 아까운 세월이 지나가니, 주님의 답답한 마음을, “하루가 천년 같고” 이 하루에 심고, 이 하루에 고치지 않으면 못 고치는데, 영원히 못 고치는데, 이런 현실을 주셔놓고, 시간 가기 전에, 빨리 배우고, 빨리 고치라고 마음이 급한데, 우리는 놀고 앉았고, 야곱처럼 라헬 얼굴 쳐다보고 앉아서, ‘이 졸업장이면, 이 자격증이면, 이번에 이사 한번만 바로 되면, 내 평생을!’ 그러고 앉았으니, 천년이 하루처럼 빨리 지나가고, 또 고쳐야 되는데, 시간이 빨리 갈 때에는, 하루가 천년 같고, 이런 극단적인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사실을 베드로전서 3장에 기록해놓고, 오늘 집회의 우리들에게, 집회 후에 급박하게 환경의 변동이 생길 때마다, 그 어떤 환경이 생길찌라도, 창세기 1장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변화가 될 환경을 지켜보면, 우리 갈길, 환하게 보일 겁니다.

역대상 1장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족보들, 그 수없는 사람 중에 우리가 하나인데, 야곱이 잊어버린 사람, 그 속에 한 없이 역사가 있었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역사에 굉장한 위대한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그랬으나, 그 후손들은 이름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 그 모세, 그 여호수아 시기에, 애 먹이던 원수들이, 뒤에 보니까 복음의 역사는 전부 다 맡아 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은, 우리는 전하고 말고, 우리는 그냥 허무하게 끝나고, 이것을 전달받은 그 어느 교파, 그 어느 인물, 그 어느 민족이, 마지막에 주님 오실 때에, 마지막에 영광의 그런 교회가 될는지? 아니면 우리를 통해, 요셉처럼 이어줄는지, 내일 일은 모르니, 맡겨놓고, 오늘은 우리에게 집회 후, 시작될 자기 현실에서, 창세기 1장적인, 모든 이치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따져보며, 현실을 맞아 나가십시다.

역대상 공부를 통해, 나는 내려온 계통에서, 내가 되었고,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할지 모르고, 내 눈에 꽂은 사람은 하나님이 돌려버리시고, 생각 안한 사람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늘 겸손하고 조심해야 되고, 어떤 원수라도 이 원수를 회개시켜 내 은혜의 기관을 삼을지? 요셉 팔아 먹을 때에, 유다도 가담했습니다. 요셉 팔아 먹을 때에, 레위도 가담 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할 때에는 레위 지파의 모세와 아론을 통해, 요셉 지파의 자손들을 끌고 나오셨습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에 살려준 것은 요셉인데, 애굽에서 나올 때 살려준 것은, 레위 형의 아들들이 살려줬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살리나, 내일은 그 원수가 나를 살릴지 모르기 때문에,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알고보면 그것은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요셉이 레위와 유다 형님들을 용서하고, 울면서 ‘그리 마소서, 그리 생각하지 마소서, 하나님의 역사고 저는 쓰였고, 형님들은 그리 된 것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레위와 유다를 요셉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철저하게 회개는 끝까지 회개를 시켜버렸고, 그때는 집요하고 잔인하다고 보였는데, 그 심정은 사랑이었고, 형들의 죄를 회개 시키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고, 마지막에 회개 시켜놓은 이 형들의 자손 때문에, 요셉의 자기 자손들이 뒤에 덕을 볼 줄이야 알았습니까? 꿈에도 몰랐지.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순종만 할 우리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역대상 공부, 창세기 1장 공부, 그리고 창세기 1장으로부터 내려온 역사의 공부 3가지를 통해, 하나인데,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예사롭지 않은 자리에 우리는 함께 서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다는 그 자체가, 역사적인 인물들입니다. ‘강단에 있는 분을 통해 역사하시겠지,’ ‘아니면은 사회 본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겠지.’ ‘아니면 집회를 주관한 우리 조사님을 통해 역사하겠지.’ 사람 눈에는 그리 보이는데, 하나님은 그리 하실지, 저리 하실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축소 시켜, 내동댕이치지 마십시다. ‘나야 뭐 머리도 이만큼이고, 신앙도 이만큼이고, 오라고 해서 그냥 따라왔을 뿐인데’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드실지? 어떻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창세기 1장에 뭘 어떻게 만드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소망 중에, 순종하고, 창세기 1장 내려가는 역대상의 족보, 오늘까지 이어진 공회의 역사, 이 전부가, 매 현실 현실, 새로 인도하시는 주님이 나 하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지켜보시는 주님 앞에, 그것만을 소망으로, 또 출발하십시다.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창세기 1장을 통해, 역사의 소망까지 담아 우리 현실을 살아가도록, 촉구하시니 감사합니다. 역대상 조상들을 통하여, 누구도 절망할 것 없고, 누구도 방심할 수 없음을 똑똑이 기억하고, 한자 한자 이름을 눈에 담고, 오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흘러온 세월 속에, 지역적으로, 교리적으로, 또 오늘의 단면을 볼 때에, 일어나는 안팎의 만사가, 분명히 말세 주님의 한 목적을 향하여, 모든 것을 초점에 모으고 계심은 분명하오니, 두려워 떨므로, 소망 속에 담대함과 온유함을 가지고, 이미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쥐어주신 귀하고 귀한 복음은 틀림이 없사오니, 각자 우리 있는 힘 다하여, 이 복음을 배우고, 자기를 고치고, 이 복음으로 자기 심신을 길러가는 우리 되게 하시고, 내가 받아 복된 복음, 기회를 주시는대로, 내 주변, 내게 맡긴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데 일편단심 쏟게 해주옵소서. 내일 일은 주님이 소망 속에 인도하시고, 예정 가운데 이루실 것이고, 오늘 주신 현실 속에 우리는, 지사 충성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게 해주옵소서. 천번 만번 생각해도 부족하고 악한 저들인데, 다윗의 열쇠, 구별하여 따져보고, 따져보고, 하나 밖에 없는 옳은 것을 잡았을 때에는 진실로 걸어가면, 나머지는 전부 열린 문을 주신다고 했으니, 이 한 말씀으로 담대하게 자기 현실 속에 순종으로 이어지게 해주옵소서. 돌아가는 길 지켜주옵소서. 공회의 모든 교회, 해외까지 인도하시고, 은혜 주옵소서. 8월을 준비하는 은혜도 주시고,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복음으로 번창하는 우리의 앞날을 주시되, 우리가 부족하여 촛대를 옮길 때에는 따라가며, 배우며, 순종하는 이런 우리도 되게 해주옵소서. 남북의 국제 정세 전부를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결정한다고 난리이지만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목적을 둔 주님의 인도 하나의 결론 밖에 없사오니, 듣되 참고하고, 우리의 목적을 향한 사명만 불태우게 해주옵소서.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이남에게 이북을 붙여주시고, 신앙의 자유를 없앤 이북을 이남에 붙여, 복음의 운동이 급박한데, 긍휼을 베풀어 불행을 피하게 해주옵소서. 신앙의 자유 없는 중국을, 미국 사회에 붙여주시고, 아무리 썩고 타락을 해도, 청교도와 우리를 살려준 저 귀한 미국 사회에게 중국을 붙여, 그래도 복음의 자유를 허락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부족함으로 구하오니, 그리 해주옵소서. 늘 함께 해주옵소서, 이곳의 어린 학생들, 앞날이 있으면 저들을 통해, 더 크게, 더 온전히, 더 영광 받으시는 역사를 허락해주옵소서. 예수님의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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