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후18.8.7 출25:1 성막에 대한 '자세-자유성' '분담-주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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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18.8.7 출25:1 성막에 대한 '자세-자유성' '분담-주인성''

교인 0 144 2020.06.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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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6 월후 (성막 1)

제목 : 성막에 대한 '자세-자유성' '분담-주인성''

본문 : 출애굽기 25장 1절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어두운 세상을 주신 주님. 밝은 진리의 빛을 사모하도록 어두움을 주심이니, 어두울수록 말씀의 빛을 사모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만가지 어려운 말세를 우리에게 주신 주님. 만가지 은혜로 하늘을 향한 주님의 구원, 주의 인도만을 소망하는 저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환경과 말세와 주변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중생으로 주신 대속의 은혜, 내 말의 등이며, 내 길의 빛이 되는 영생 진리만을 향한, 이번 집회 첫 출발이 되게 하시고, 시대마다 큰 은혜로 인도하실 때에, 10가지 재앙으로 복잡하게 만드시며, 우리를 고치고 배우며 인도하시는 주님. 복잡할수록 어려울수록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 자리가 되어, 인간은 돌아봐도 미약하고 쓸데없는 인생인 줄 깨닫고. 주와 말씀으로 천국의 소망을 향하는 이번 집회 되게 해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되, 8월의 집회를 기억하는 공회의 모든 집회 위에 우리 모두 옛사람은 벗고, 새 사람으로 더욱 은혜받는 집회들 되게 하시고, 부족하여 복습하는 집회들 위에 더욱 크신 은혜로 함께 하시되, 또 한 걸음 출발하는 저들은, 더욱 부족하고 연약함으로 주의 갑절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 자리 되게 해주옵소서. 연일 쏟아지는 폭염 속에, 저희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시려고 이 자리를 주셨으니, 오가는 교통, 이 속에 앉은 산속의 사나운 짐승, 우리의 마음, 우리 속의 옛사람 전부를 섭리하사, 배우며 만들어가는 복된 예배시간 되게 해주옵소서. 부족한 강단 위하여 기도하고, 집중함으로 주의 은혜를 직접 받는 어린 학생, 모든 교인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 안내

[집회 자세]
교재 제일 앞에 서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공회 집회는 1957년부터 백영희 목사님의 30년 인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부터 30년 간, 우리를 복습을 했었습니다. 이제 올해부터 복습할 수가 없어, 강단 이 자리가 부족하니, 마음을 기울이는 집중. 또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 ‘집중’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시면, 강단이 아니라 성령이 자기 마음을 붙들고, 필요한 은혜를 직접 주실 겁니다.

[성막 서문]
그 다음, 서문의 가운데를 보십시다. 학생들은 줄을 그으시고, 필요한 부분에. 이 교재는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까지의 성막을 연구하는 교재입니다. 교재는 부족해도, 학생들 때문에, 또 평소에 성경 읽기가 잘 되지 않는 분들 때문에 교잴르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훗날을 위해서 좋은 교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교재에 조금이라도 의견이 있으면 적어두셨다가 꼭 말씀해주십시오.

출애굽기 25장의 성막이란, 광야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집입니다. 이동하며, 움직이는 집입니다. 요즘 말로 텐트입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하늘나라를 향할 때, 하나님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나님을 모시고, 천국을 걸어가는 신앙을 ‘성막’으로 가르쳤습니다. 이제 본문 하나 하나 살펴 볼 때에, ‘내게 원하는 것이 뭔가?’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 장 넘겨서 차례입니다. 한 장을 넘겨서.

[전체 개괄]
출애굽기 25장의 출발은, 하나님을 모시는 ‘준비’. 어떤 자세, 어떤 예물이 필요한가? 둘을 먼저 말씀하셨고, 그 다음, 하나님을 모시려면, ‘증거궤’라는 말씀을 담아야 됩니다. 말씀을 담는 상자가 증거궤입니다. 그 말씀을 먹는 것이 떡상입니다. 기구의 두 번째. 말씀을 담아, 말씀을 먹고 나면, 말씀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면, 빛이 나오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등대가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25장에서 말씀을 담는, 뭐라고요? ‘증거궤.’ 말씀을 먹는, 뭐라고요? ‘떡상.’ 말씀을 먹고나면 우리가 뭐가 된다고요? ‘등대’가 되어지는 3가지를, ‘성막의 기구들’이라고 그럽니다. 이 말씀을 담고, 먹고,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는, 위에다가 대고 ‘천막’, 위에다대고 ‘성막’을 씌웁니다. 지붕으로. 첫째는 ‘덮개’가 필요하고, 그 다음 이 덮개를 위해서 널판이 받쳐줍니다. 두 번째. 그리고 드나드는 문이 있습니다. 몇가지이지요? 3가지. 덮개란, 세상으로부터 말씀을 ‘보호’하는 지붕입니다. 보호. 널판이란 세상으로부터 말씀을 보호하고 모시는 덮개를, 받쳐주고, 막아주는 기둥과 벽을 말합니다. 그 다음, 지붕이 있고 벽이 있으면, 들어와서 말씀을 먹고 세상으로 나가야 되기 때문에,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 필요해서, 3번째는 문을 26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25장, ‘성전 안의 기구’. 그 다음 26장, 말씀을 모신 ‘지붕’, ‘널판’, ‘문’.

그 다음 세 번째는 ‘제단’이 필요하여, 27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단이라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피 흘린 ‘제사의 피’를 말합니다. 신앙이란 피로 시작합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오면 먼저 짐승을 잡습니다. 주님이 우리 위하여 죽어주신 사활의 대속, 피 공로가 제단입니다. 그 제단 안에 ‘뜰’이 있습니다. 마당. 믿는 사람이 놀고, 믿는 사람이 생활하고, 믿는 사람이 활동하는 것은 피 안이라야 되기 때문에, 입구에 제단이 있고, 그 다음 뜰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을 밝히는 ‘등유’. 성령으로 밝히는 생활이 그 다음 27장에 있습니다. 이번 집회 여기까지는 나갈 듯 하고,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못하면, 공회에서는 함께 공부하고, 또 각 교회에서 나머지를 공부해가며, 함께 할 것이 ‘공회’ 각 교회별로 해야 되는 것이 ‘개 교회’ 이렇게 맞춰나가게 됩니다.

■ 성막 준비-자세

6페이지 넘겨주십시오. 출애굽기 25장 2절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신앙 생활은, 세상을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예물을 가져오는데,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은 받고, 속에 즐거운 마음이 없는 것은 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에는 ‘즐거운 마음’, 밖에는 ‘예물’ 이게 하나님을 모시는 첫 출발의 자세입니다.

1. 예물과 제물을 가져오라
교재 제일 밑에 보면 6페이지, ‘제물’과 ‘예물’이 있습니다. 여기 본문에, 출애굽기 25장 2절이, 어떤 성경은 “예물”, 어떤 성경은 “제물”로 되어 있습니다. 예물과 제물은 같은 말입니다. ‘희생’을 강조하면, 희생이 강조가 되면 예물일까요? 제물일까요? 제물이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 감사함으로 바치면, 제물일까요? 예물일까요? 예물이라고 그럽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희생하는 그 희생을, 겉을 보면 예물 속을 보면 제물. 그래서 예물, 제물은 성경 본문에 같이 사용합니다. 예물과 제물.

구약에 먼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데, 예물 속을 들여다보니까 ‘희생’이 들었습니다. 제물. 이것을 신약에 오면 ‘연보’라고 그럽니다. 그 연보가 발전을 하면, 자기를 바치는 ‘헌신’이라고 그럽니다. 예물이 제물되고, 제물이 신약의 첫 생활의 연보가 되고, 연보를 넘어서서, 헌신의 신앙 생활이 쭈욱 이어지면, 그 마지막은 십자가의 길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구약의 출애굽기 25장에, 예물로 제물로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의 준비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신앙, 하나님을 모시는 방법, 하나님을 모시려면, 구약은 무엇을 만들라고요? ‘성막’. 성막을 만드는 그 ‘방법’, 그 ‘내용’을 보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모실 수가 있는가?

① 자유성
첫 번째로, 여기 ‘예물’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자유성’을 원하십니다. 자유성. 내 마음의 자유로 주님을 따르는. 속에 자유성이 있는 신앙은 신앙이고, ‘억지’라든지, ‘인색함’으로든지, ‘부득이함’으로 걸어가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신앙으로 받지를 아니하십니다. 여기 본문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예물을 가져오라”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예물이라? 즐거운 마음이라? 첫 번째는 무엇을 말한다고요? ‘자유성’을 말합니다. 자유성.

자유성이라는 말은, 그 속에 ‘인색함’이 없을 때. 고린도후서 9장에서 가르쳤습니다. 인색함이 없을 때. 두 번째는, ‘억지’가 아닐 때. 세 번째는, ‘부득이함’이 아닐 때. 3가지를 버리고, 3가지를 없앤 것이 ‘자유’라고 그럽니다. 자유성. ‘어떻게 하면 좀 적게 드릴 수가 있을까?’ 인색이라고 그럽니다. 그 속에는 자유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가족이 집회를 가니까, 나는 원치 않는데 친구들 눈치가 보여서, 나는 별로이 마음에 없는데 자녀들이 원하니까. 그 속에 자기 자유가 아니라, 억지가 들었을 때에, 자유가 없어져버립니다. 줄이고 싶은 인색, 자기 마음이 없는 억지, 그 다음 할 수 없이 하는 부득이함. 이 3가지가 들어가면 자유성이 없다 그럽니다. 이 3가지를 뺄 때에 자유성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을 모시려는 자세는, 첫 번째로, 인색함. 그 다음 2번째로는 억지, 세 번째로는 부득이함, 3가지를 빼버릴 때, 그 다음 주님은 ‘자유성’으로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 다음, ‘어떻게 하면 좀 더? 풍성하게, 풍성함으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더하여? 보태여, 더하게.’ 그 다음 3번째로는 ‘원하고,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이게 누가복음 22장에 주님의 십자가의 자세입니다. ‘원하고 원함으로’, 인색함, 억지, 부득이함은 버리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면 좀 풍성하게? 넉넉하게, 풍성하게 드렸는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더할까? 마지막으로 원하고 원함으로 걸어가는. 이런 자세, 이런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주님은 자유로 보십시다. 자유성. 이 자유성이라는 것이 있을 때에 교회이고, 신앙이고, 이게 집회이고, 이게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되어집니다.

오늘 첫 말씀, ‘원하는 자만 오라!’ ‘소원이 없으면, 소원하고 원하고 싶은 사람도 오라!’ 원해서 오라. 원하는 마음이라도 가져라. 둘. ‘왜?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저렇게 갈까? 궁금해서 알아보고 싶거든, 알아보러 오라!’ 비판을 하고 싶거든! 거부를 하고 싶거든! 알고 거부하는 것이 복이 있으니,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걸어가는가?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사는가? 왜 이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원하고 원함으로 살아가는가? 비판하고 싶거든! 알고 비판하라. 와서 살펴보고 따져보고 뒤져보고, 그 다음 비판을 하든지, 그 다음 와서 살펴보고, 이 길이 옳구나. 어쨌든 신앙의 세계란, 교회의 운영이란, 여기 집회란, 가정 생활이란, 믿는 사람의 평생에, 하나님을 모시고 걸어가려거든. 1번이, 네 마음 속에 자유가 있느냐? 자유성이 있느냐?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냐? 그러면 신앙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할 수가 있다. 억지, 부득이함, 인색함은 믿어가려는 노력은 되더라도, 하나님은 함께 하지는 못합니다. 지켜보시기는 하셔도, 하나님이 동행하지는 못합니다.

오늘 첫 시간, 우리는 원하는 마음으로 집회를 준비 하셨는가? 우리는 원하고 원함으로 집회를 참석했는가?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 바라보는 마음이 얼마나 내 속에 있었는가? 그냥 생각 없이 오셨다면, 제물만 가져오지 말고, 예물만 가져오지 말고, 네 마음 속에 ‘즐거운 마음’을 가져오라. 원하고 원하는 ‘자유성’을 담아 오라! 자유성이 담겨 있는 예물. 마음의 원하고 원하는 소원이 들어가 있는 예배. 그런 시간, 그런 희생, 그런 헌신, 그런 연보, 그런 전도, 그런 신앙의 걸음을 걸어가라! 이것을 2절에 간단하게 줄여, “내게 제물을 가져오고 에물을 가져오는 자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만 받을찌니라.” 제물을 예물로 기록하시고, 그 다음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라. 이렇게 말씀하신 1번은 바로 ‘자유성’입니다.

② 분담성
그 다음 2번째로는, 왜 즐거운 마음으로 내라? 내라니요? 내라는 말은 ‘분담’을 말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너희는 받을찌니라.” 네 몫을 해라! 네 몫을 해라! 왜? 너는 주인이니까. 거지입니까? 남에게 받게? 주님은 만물의 주인, 만유의 주인, 오늘과 내일의 영원한 주인, 주님을 본받은,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자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기를 때에 ‘주’로 기르십니다. 만물의 주인으로. 주님은 만물의 주인인데, 우리는 만물의 거지로 기르는가? 사장 아버지는, 아들을 낳아 사장으로 기르지, 종업원으로 기르지 아니합니다. 뒤에 실패할찌라도. 부자 아버지는 아들을 부자로 만들고 싶지, 거지로 만들고 싶지를 아니하니다. 뒤에 실패할지라도, 마음의 소원은 부자는 부자를, 사장은 사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물의 주인! 영물의 주인! 우주와 영계의 영원한 주인으로 우리를 기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고, 주님을 닮은 영계와 우주의 작은 주인이 큰 주인, 큰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 되도록, 주님은 우리를 주인으로 길러가십니다. 그 1번이, ‘자유성’을 가지고. 2번째는 ‘네 몫은 네가 해라.’

세상 사람들은 남이 내고, 나는 덕보고 싶습니다. 이게 성공한 것이고, 이게 높은 사람된 것이고, 이게 출세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받는 것은 하나님께로만 받고, 만 인간, 만물에게는 주기만 하는 자가 되라.’ 주님이 우리를 주인으로 길러가는 근본 방향이, ‘완전자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 한분에게만 받고, 그 외에 만물, 영계, 물질계 모든 사람, 만물에게 주는 자가 되라!’ 근본 우리를 만드시기를, 주님 닮은 작은 주인이 큰 주인으로, 큰 주인이 영원한 주인으로. 끊임없이 자라다가 나중에는, 주님은 뒤로 한 발 앉으시고, 우리를 앞에 세워, 영계와 우주를 통일시켜, 영원히 주님 대신에 만인 존재에게 주기만 하는 존재. 그 출발이 바로 오늘 이 순간입니다. 지금은 실력이 없어 많이 줄 수 없는, 부족한 우리가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세는, 하나라도 줄 수 있는 나를 만드는 것이, 나의 본질이며, 나의 목적이며, 나의 성공이며, 나의 앞날이다! 한 살짜리 아이가, 먹고 입고, 대 소변 보는 것까지 전부 부모에게 받고 신세를 지나, 한 살이라 오늘은 신세를 지나, 2살이 되고 5살이 되고 10살이 되면, 받는 것을 하나씩 줄여나가고, 이제는 대해 드리는 것을 하나씩 늘여나가다가, 어느 날 기회를 주시고, 실력이 되고, 준비가 되면, 몇 년 받은 부모에게, 평생을 바치고, 평생을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 이게 인간의 본능이라야 됩니다. 어릴 때에는 어려서 받고, 학생 때에는 공부하니까 아직도 받고, 20대는 취직을 못해서 아직도 받고, 30대, 40대에는 기반을 잡지 못해서 아직도 받고! 50대, 60대가 되어서, 남은 유산, 상속이라도 다 긁어서 하나라도 더 받고! 이것은 유산을, 상속을 많이 받아 복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 본질로 보면, 거지를 길러놓은 겁니다. 받는 것은 주님에게서만 받고, 주님 외에 만물, 만인 존재, 만 인간에게 나는, 적어도 내 몫은 하는 사람! 집회에 밥 그릇 하나를 닦아도 내 몫은 하는 사람. 집회의 내 밥그릇 하나를 닦아도 내 몫을 하는 사람. 집회의 내 밥 그릇 하나를 닦으려다가 넘어져서 더 큰 짐이 될까봐, 그릇 하나를 닦는 이 수고를 못한다면, 기도라도 하는 사람. 첫째는 ‘내 몫은 내가 합니다! 내 몫은 내가 하고.’ ‘준비가 되고, 힘이 자라고, 실력이 자라면, 내 몫을 늘려 나갑니다. 두배로!’ ‘신앙과 받은 은혜가 많으면, 두 배가 아니라 열 배로 내 몫을 늘입니다!’ 내 것을 주면 세상은 손해라고 그럽니다. 세상은 남의 것을 거둬오고 빼앗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거지이며 강도입니다. 믿는 사람은 말씀으로 주의 뜻으로 살다보니, 주님이 주는 것은, 주님에게만 받고. 만물과 만 인간과 다른 존재와 접하면서는, 나는 하나라도 주는 사람! 적어도 내 몫은 하는 사람. 이게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분담’입니다. 어려도 가정에서, ‘내 몫은 내가 하는 것’을 교육합니다. 3살? 배게라도 들 수 있습니다. 5살? (이불은) 못 개워도, (이불) 개우는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 10살? 아침 지게 한번 지고 학교 가는 것이, 훌륭했던 선배들이고 옛날입니다. 요즘은 30살에도 부모에게 손을 내밉니다. 이것은 거지가 자라는 것이고, 장애자가 자라는 것이고, 병.신이 지금 인격을 버리고, 악령을 닮아나가는 자기 중심입니다. 가정의 밥상, 가정의 이불 개우는 것 하나, 집회 때에 그릇 하나, 쓰레기는 내가 버리고, 치우는 것은 남이 치우고. 이게 왕자가 되고, 높은 사람이 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거지 연습’하는 겁니다. 구걸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길입니다. 남에게 짐이 되고, 남에게 부담이 되고, 남에게 신세를 지고, 마지막에는 그 사람을 이용하고 활용하다가 악용하고. 몇 명을 악용하고 몇 명을 활용하고, 몇 명을 밟고 그 위에 가마 타고, 이동하느냐? 이것을 세상은 출세와 성공이라 합니다. 우리는, 내 몫은 내가 합니다. 왜? 나는 주님의 ‘작은 주인’입니다. 주님이 만들고자 하는 장차의 주인. 오늘은 작은 주인. 주인이니까, 남 신세지지 않습니다. 주인이기 때문에, 내 것을 내가 하지. 내 것을 남이 내게 하지를 아니합니다. 이게 주님의 지체입니다.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의 오른 팔이며, 주님의 왼팔입니다. 주님은 만유이시고, 만물을 만들고, 만물을 베푸시고 운영하는 영광의 주님입니다. 그 주님을 따라, 그 주님을 본받아, 그 주님으로 닮아가고, 그 주님으로 자라가고, 그 주님을 10/1, 그 주님을 절반, 그 주님을 80프로, 90프로 점점 닮아가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가나안 천국을 향할 때, 오늘 우리는 믿은 이후,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성막’을. 우리는 오늘 여기, 먼저 성막을 만들 ‘자세’와 ‘예물’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 속의 자유성.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이게 하나 들었으면 하나 신앙이고, 이게 둘 들었으면 둘 신앙이고. 외부는 크든 많든 귀하든 천하든 상관 없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니가 원하고 원하고 원하는 것이 몇 프로냐? 어느 것이냐?’ 이게 ‘자유성’입니다. 두 번째는 ‘분담’입니다. 분담이라니요? ‘내는 자에게 받아라, 착취하지 말아라, 거두지 말아라, 수금하지 말아라! 빼앗아 오지 말아라!’ 신앙의 세계란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두 번째는, 자기 몫을 하는 사람. ‘왜 내 몫은 내가 해야 되는가?’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이기 때문에! 주인이기 때문에! ‘누구의 주인인가?’ 만물의 주인이기 때문에! 만 존재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필요한 전부를 다 줘야 되는데, 다 주지는 못해도, 내 몫은 내가 한다. 자라가면 내 몫을 늘려간다. 자라가면 내 몫을 더 늘려간다! 주인이니까, 주님의 몸이니까. 이 ‘자유성’과 이 ‘분담성’이 바로, 여기 하나님을 모시는 성막의 재료를 가지고 올 때에, 기본 자세입니다.

여기 집회 참석한 우리들, 제가 여쭤봅니다. 여기 주인으로 오셨습니까? 객으로 오셨습니까? 여기, 주인으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지나가는 나그네가 잠깐 구경하러, 방문차 오셨습니까? 방문 차 오신 분은 구경하고 가시면 됩니다. 한 시간을 참석하고, 1분을 참석하고 가셔도, 주님 내게 주신 범위와 주님 내게 주신 은혜 때문에 1분만 왔다가도, 나는 주님의 피 흘려 구원하신, 주님이 만들고 길러가는 만물의 주인이 될 사람이면, 주인으로 오시는 것이 맞습니다. 자기 몫을 잘 찾아, 잠자리도 어느 정도 공간을 내가 가지는 것이, 내 몫일까? 한 평이면 충분하나, 10평, 20평을 만드는 것을 세상은 성공이라고 그럽니다. 세상은 남의 것을 가져오고, 안되면 얻어오고, 안되면 훔쳐오고, 안되면 빼앗아오고. 내 것은 밖으로 적게 나가고, 남의 것은 내 것으로 많이 가져오고. 세상의 성공 방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줄여서, ‘구걸이다!’ 아니면, ‘절도다!’ 아니면, ‘강도다!’ 아니면, ‘착취다!’ ‘타락한 악령을 닮은, 만물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말씀으로 살며, 주께 받아라!’ 말씀으로 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받은 것으로 네가 줘야 될 사람, 네가 맡아야 될 사람, 네가 네 몫을 하고 네가 네 몫을 늘려가고 길러가고.’ 이 집회 모든 사람이, 전부 조례 조사님 한분의 수고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시설 운영에 관해서는 몇 백명, 400-500명 전부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라, 그만큼 실력이 자란 겁니다.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각자 한 면 한 면을 다 맡겨주셨습니다. 자세.

■ 성막 준비-예물

그 다음 넘깁니다. 8페이지의 ‘예물’입니다. 예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첫 번째는, ‘쇠’를 가지고 와라. 학생들만 다같이, ‘쇠’를 뭐라고 그러나요? ‘금속’이라고 하면, 공부를 좀 한 사람입니다. 금속을, 공부 안한 사람들은, 여학생들 뭐라고 그런다고요? 고물상 쇠붙이! 하나님을 모시려거든, 첫째로 쇠를 가져와라. 금속. 어떤 쇠를요? ‘금’ 금도 쇠입니다. ‘은’ 은도 금속입니다. ‘놋.’ “금, 은, 놋. 3가지의 금속을 먼저 가져와라.” 두 번째로는, 한번 손 꼽아 볼까요? 청색실. 두 글자로 줄이면요? “청실, 자실, 홍실, 베실. 염소털을 깍아 실로 짜고 만들어, 염소털까지, 전부 가져와라.” 쇠가 필요할 때에는 쇠로. 실이 필요할 때에는 실로. 가죽이 필요할 때에는 가죽으로. ‘짐승을 벗겨 가지고 와라.’ 어느 짐승이요?

다시 한번요. ‘쇠’라는 것은 대개 ‘돌’을 때리고 부셔서, 녹여서 뽑아냅니다. 이왕이면 뭘 뽑아오라고요? ‘금’. 이왕이면, 돌을, 잡석을. 누가 잡석인가요? 여기 온 우리가 잡석이지요. 여기 온 우리의 수준이 잡석입니다. 길에 흔한 인간. 동네에 흔한 인간. 뒤죽박죽 싸우며 굴러먹는 우리의 인격들, 이것을 잡석이라고 그럽니다. 그 잡석들을 깨고 녹여서, 첫 번째는 무엇을 뽑아내라고요? 금. 우리 속에도 금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금이란, 자연 상태에서 금으로 있지 않습니다. 금이 섞인 금광석을 깨고, 녹여서, 뽑아내야 그 다음 금이 됩니다. 생겨 먹은 이대로! 집회 온 이대로! 학교 가는 그대로! 세상 살아가는 직장, 세상 살아가는 이런 저런, 이 모습 이대로는 잡석입니다. 그 잡석 속에서 무엇을 뽑아내라고요? 금! ‘불변의 금이 네게도 있다!’ 두 번째는 뭘요? 은! 세 번째는? 놋! 이런 것은 잡석 같은 우리 인격, 우리들을 깨고, 녹여서, 연단하고, 두드리면, 우리 속에 금, 은, 놋이 나와서,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는 재료가 나올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실털.’ 청실, 자실, 홍실, 베실, 염소털을 깍아, 비벼서, 묶어내면, 염소털로도 실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먼지’입니다. 흩날리는 먼지를 잘 말아서 이어가면, 가는 실이 나옵니다. 이것을 옆으로 앞으로 자꾸 묶다보면 ‘천’을 만듭니다. 누가 ‘먼지’이지요? ‘한 줌의 흙으로 만든 니들이 먼지라!’ 성경에 ‘흙’은 ‘먼지’로 같이 씁니다. 먼지 같은 너희들을, 말아서, 비벼서, 하루, 일주일, 결심이 1년, 결심이 10년 계속 이어지면, ‘실’이 되어진다!

세 번째, ‘가죽’이라니요? 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겉’을 벗겨버리면, ‘가죽’이 됩니다. 이 짐승 누구지요? 여기 우리 짐승보다 나은 인격자들 계십니까? 제가 강아지보다는 나아보입니까? 저를 지금 강아지보다 못하다고 욕하는 사람 적지 않을껄요? 사람이 동물, 짐승 정도만 되어도, 그래도 세상은 이 정도는 되지 않을 겁니다. 지금 현저하게 짐승보다 더 멀리 나가고 있지요? 더 악해지고 있지요? 더 험해지고 있지요? 짐승 같은 너를 둘러싼 가죽을 벗겨, 그것도 가져와라! 가죽!

나무는 무슨 나무라고요? 조각목. 조각목은 아카시아 계통의 나무입니다. 이것은 목공에도 못 쓰고, 불 떼기도 그렇고, 기둥으로도 못 쓰고. 남을 찔러나 쌌고, 나무는 나무인데, 나무를 나무답게 쓰기에 가장 못난 것, 가장 몹쓸 것. 인간치고 인간으로 쓰지 못할 참 못난 인간, 몹쓸 인간을 성경에 ‘조각목’이라고 그럽니다. 여기 우리가 조각목보다 좋은 참나무, 소나무도 계십니까? ‘내 인격은 참나무라, 내 성격은 오동나무라! 변치 않는다.’ 자신 있는가요? 조각목도 가져와라. 많은 나무 중에, 다른 나무, 잘난 나무, 좋은 나무 전부 두고, 조각목만 가져와라. 말씀을 모시는 증거궤도, 떡상을 만드는 상도, 나중에 전부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실과 털도 그렇습니다. 가죽도 그렇습니다.

1. 금속
금속은, 첫째가 뭐가 있다고요? 남학생들? ‘광택’. 남학생들 저 좀 볼까요? 눈 좀 볼까요? 어떤 광택을 가지고 계시나요? (쳐다보는) 눈에서 ‘금 색깔’이 나오나요? 여기 제 눈에서는 ‘은혜 색깔’이 나오나요? 깨끗하게? 연세 많은 우리 집사님들 눈에서는, 눈빛에서 그 얼굴에서는, 세월 속에서 연단, 고난 받은 ‘노쇠의 광채’가 나오나요? 예배 마치고, 나갈 때에 서로 얼굴을 보십시다. 눈빛을 보십시다. 걸음걸이를 보십시다. 똑같은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나, ‘말씀’과 ‘대속’으로 자기 속의 ‘금’을 뽑아내어, 변치 않는 인격을 만들었다면 금입니다. 집사님들, 금과 은은 몰라도, 놋으로는 충분할 것입니다. 놋도 가지고 와라! 10대 20대의 정금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금도 가지고 와라! 세상이 더러운데, 내 인격, 내 이성, 내 경제, 내 주일, 나를 세상의 더러운데 담그지 않고, 깨끗한데 지켰으면 은이 되는 겁니다. ‘금도, 은도, 놋도 가지고 와라!’ 금은 금의 색깔, 은은 은의 새깔, 놋은 놋의 색깔이 있습니다. 나는 거울 앞에 나를 볼 때에, 나는 지나간 20년, 50년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에, 어떤 광택이 내게서 나는가? 새벽 강단을 변치 않고 지켜온 60년! 참, 정금같이 귀한 걸음이다. 미국 같은, 서울 같은 죄악이 넘치는 죄악이 넘치는 도시에 살아도, 자기의 생활, 자기의 생각을 깨끗하게 지켜낸 사람! 성결의 ‘은’과 같은 신앙이다. 많은 고난, 험악한 가정, 지난 날의 세월 속에, 그 정도면 부러지고 도망가고, 넘어졌을 터인데, 지켜내는 신앙은 놋의 연단의 신앙이라. 금속은 ‘자기 광택’이 있습니다.

그 금속의 종류를 따라, 넓게 쓸 때, 길게 쓸 때, 가늘게 쓸 때. 열을 가하고 두드리면, 마음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금속입니다. 주님 원하는대로. ‘너는 너무 굵다! 네 자존심은 너무 굵다!’ 얇게 쓰려면은 어떻게 하지요? 용광로에 넣어, 망치로 두들기면, 얇아집니다. ‘그 자존심은 좀 줄이거라!’ 자존심이 완전히 없어지면, 사람이 문어, 오징어가 됩니다. 지렁이가 됩니다. 흉해서 되겠는가요? ‘너를 지키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지조는 가져라! 정조는 지켜라!’ ‘인내와 꿋꿋함도 가져라.’ ‘너무 굵은 것은 못 쓰겠다. 너무 두꺼워도 안되겠다. 너무 얇아도 안되겠다.’ 이렇게 쓰는 것들이 전부 금속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면, 내가 받은 대속,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내가 받은 은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내가 깨달은 깨달음,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열과 전기와 뭐든지 받으면 전하는 것을, 금, 은, 놋. 금속이라고 그럽니다. 나무는 이쪽에서 받아봐야, 타면 타지, 옆으로 열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실도 그렇습니다. 돌도 그렇습니다. 많은 종류의 보석 돌들도 있는데, 이 돌들은 전기를 받으면 전기를 가지고 있지, 옆으로 전달을 안합니다. 열도 그렇습니다. ‘금도, 은도, 놋도 필요하다.’ ‘가는 실, 연약하나 길게 이어지는 실도 필요하다.’ ‘나를 보호하느라고 뒤집어 쓴, 자기 보호도 벗겨서 주님 앞에 바치라’ 그래서 예물의 종류가 많습니다.

① 금
첫째로, 금을 보십시다. 많은 재료 중에, 먼저 금속. 금속의 종류가? 성질이 몇가지이지요? 3가지. 금, 은, 놋입니다. 첫 번째가 ‘금’이라. 금. 성경에 금이 나오면, ‘불변성’을 말합니다. 10년가도 안 변하는 사람! 나무는 10년 가면, 10미터, 20미터 자라야 됩니다. 금은 100년 1000년가도 그대로입니다.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지 아니하고! 씨를 심었는데, 집회 10년을 다니니까, 신앙이 ‘물씬’ 자라버렸고, 20년 자라니까 목회자가 되었고. 이런 면은 ‘나무’입니다.

여기 첫 번째로, 금을 가져와라. ‘네 집을 뒤져, 네 물품을 뒤져, 네가 가진 이삿짐을 뒤져,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받아 나온 것, 묻어 나온 것, 원래 묻어 나온 것, 원래 감춰놓은 것, 네 속을 털어보고 뒤져봐라!’ 뭐가 있다고요? ‘반드시 금은 있을 것이다.’ 금이라니요? ‘네 속에 변치 않는 불변성을 찾아봐라.’ 주님 없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은, 쇠로 된 금은 있어도, 인격의 불변, 사상의 불변, 인생의 불변은 없습니다. 믿는 우리들만! 믿는 우리들만! 주님이 피 흘려 구원한 믿는 우리 속에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속에 ‘중생된 영’이 있는데, 이 중생된 영의 중생은, ‘불변’입니다. 이것은 ‘영원 불변’입니다. 그 영원 불변의 영이, 내 마음을 붙들고, 옳고 바르게 인도하여, 하루 계속, 한 달 계속, 1년 계속, 추워도 더워도.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병들 때나, 강건할 때나. 희로애락, 춘하추동, 어떤 현실 속에서도 내 마음 속에, 변치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내 속에 넣어두신 ‘금’입니다. 변치 않는 것. 아무리 세월이 가도! 어떤 환경이 되어도, 어떤 친구를 만나도, 어떤 직장을 가져도! 시청 공무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가져지는 자세가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사장이 되면, 죄송하지만은 ‘교만’이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가난해지면 ‘비굴’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본능이 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많으면 고생합니다. 길러놓고 나면 든든해집니다. 하나 낳아놓으면 기르기는 좋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추워집니다. 건강하면 ‘용감’해집니다. 천하 없어도 병들면 약해집니다. 변하는 것이 사람인데, 병들 때에도 ‘주님’. 강건할 때에도 ‘주님’. 천하 재벌이 되어, 아브라함이 되었는데도, 변치 않고 ‘주님’. 거지 나사로가 되어 빈털터리인데도, ‘주님’. 변치 않았다면, 두 글자로 뭐라고요? ‘불변’이라고 그럽니다.

불변이면? 두 번째 가로. 이것을 ‘보배’라고 그럽니다. 금이 몇 돈이냐? 다이아몬드가 몇 캐럿이냐? 저금 통장에 적금이 얼마냐? 아파트가 몇 평이냐? 세상의 보배는 이게 보배입니다. 어느 학교 졸업장이냐? 자격증이 뭐냐?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몇 명이 너를 위하여 표를 몰아주느냐? 이게 세상의 보배입니다. 우리의 보배는, 가난해도 변치 않는 것. 부자가 되어도 변치 않는 것. 건강해도 변치 않는 것. 병들어도 변치 않는 것. 배고프면 시대적으로 부부가 가까워진다고 그러지요? 부자가 되어 그 가정에 경제가 마구 쏟아지면 부부가 멀어진다고 그러지요? 천하가 뒤 흔들어도, 변치 않는 부부가 있는가? 춘향이 같은 이야기겠지요. 성경이 그것을 ‘불변’이라고 그럽니까? ‘주님 때문에’ 변치 않는 불변.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여’ 변할 수 없는 그 인격. ‘피 흘려, 지은 죄 씻어 주셨으니, 피 흘려, 말씀을 지켜내겠나이다.’ 사죄의 변치 않는 불변이 보배입니다. ‘내 멋대로 살았으나, 주의 뜻, 주의 뜻으로만 살겠나이다.’ 가난해도, 형편이 좋아도, 행복해도, 불안해도, 근심이 많아도. 어떤 형편,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 마구 몰아쳐도, 주의 뜻 하나만 찾는 이 불변만, 금으로 표시한 불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동행. 장사가 손님이 많으면, 주님 동행이 되겠습니까? 정신이 없을 것인데? 장사가 손님이 없으면, 성경 읽고 기도합니까? 원망하지. 주님과의 연결, 변치 않는 동행. 하늘에 대한 소망, 세상을 사는 사람이 하늘이 보입니까? 어떤 세상 속에 던져놔도, 하늘의 소망만 넘쳐나는! ‘사죄’의 불변, ‘칭의’의 불변, ‘화친’의 불변, ‘소망’의 불변! 아이들 교회 잘 다니고, 다 취직 잘하고, 건강하고, 결혼 잘하고, 자기 건강하고, 존경 받고, 그런데 사죄로 살고, 칭의로 살지 뭐? 욥과 같이. 자녀 10명 다 데려가버리고,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 다 없애보고, 그래도? 변치 않는 감사냐? 그래도? 사죄냐? 그래도? 칭의냐? 그래도? 하나님 동행이냐? 그래도? 천국의 소망이냐? 하나님을 욕을 하고 죽어라. 부인이 마구 옆에서 쏟아 붓는데도, “적신으로 왔으니, 적신으로 가올찌라” “주시는 분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 이렇게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이 변치 않았다면, 학생들 두 글자로 뭐라고요? ‘불변’ 그 불변이 다른 말로 뭐라고 한다고요? 그게 ‘보배’입니다. 그게 보배. 

사람을 볼 때, 교회를 볼 때, 가정을 볼 때, 청년을 볼 때, ‘참 사죄에 변치 않는 그 학생’. ‘청년이 되어서도, 그 사죄 변치 않는 그 청년’. ‘아, 결혼하고 그렇게 아이를 기르는데도, 사죄의 변치 않는 그 장년.’ ‘노년,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을 줄여서, ‘금’으로 주셨습니다. 요즘 결혼의 반지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아직도 금반지가 좋습니다. 왜? ‘첫 약속, 죽을 때까지 변치 않겠다.’ 뭐라고요? 금! 뭐라고요? 불변! 내가 약속했으니, 내가 좋아 내가 약속했으니, 내가 변치 않는 것이 나의 인격이라. 안 믿는 사람들이 그래서, 금을 압니다. 우리는, 주님 주신 주의 딸이니, 주님 주신 주의 딸 내게 맡겼는데, 변해요? 주님이 자기 아들을 나에게 맡겨놓고, 모시라 했는데, 변해요? 주님이 변해야 변하지? 가난한 가정, 주님이 주셨는데 집어 던져요? 왕궁의 왕자로 태어나게 하신 분이 주님인데, 남들이 욕한다고 왕자 사표 내요? 높은 사람 욕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속으로는, 높은 사람 되고 싶으면서. 재벌집 아들인데, 재벌을 물리치고, 월급 받는 종업원이 되었다면, ‘아이고, 저런 의인이 있다.’ 대통령 아들인데, 거지처럼 살면, ‘아이고, 존경스럽다.’ 성경으로는, ‘하나님이 너를 왕자로 태어나게 했으면, 그 왕자 버리면 아니된다! 변치 않고 지켜라.’ ‘하나님이 너를 거지로 태어나게 했으면, 거지가 너의 복이다. 변치 말아라!’ ‘하나님이 바꿔주기 전까지는 변치 말아라!’ ‘주님’ 때문에 불변.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말씀’ 때문에 불변. ‘칭의’ 때문에 불변. ‘하나님의 동행’이 불변.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변! (이엇을 중심으로?) 30년 복습했습니다. 40년 전에, 80년대의 설교의 내용이, 한국의 80년대에, ‘미국처럼 부자가 되면,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답니다.’ 이런 말을 우리는 듣고, 복습했습니다. 오늘 한국은 천국보다 나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천국이 눈에 보이십니까? 배고플 때에는 천국을 소망했습니다. 가난할 때에는 천국을 소망했습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에는 천국 가겠다고 준비를 했습니다. 개도 먹을 것이 넘치는 좋은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개 때리면 감옥가지요?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되고 나니까, 무엇이 없어졌나요? ‘천국’이, 눈에서 보이지를 않습니다! 80년 70년대 미국이, 천국이 보이지를 않더랍니다. 세상이 좋으니까. 그때에 우리는 배가 고프니까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세상 좋지요? 산에 나무하러 가서, 미국에 있는 딸하고 전화합니다 얼굴을 보면서. 논 물을 보러 간 할아버지가, 일본에 여행간 손주하고 휴대폰으로 얼굴을 보면서 공짜로 전화를 합니다. 천국이지요? 감기만 걸려도 입원하지요? 일당 나오지요? 돈 없으면 무료이지요? 세상이 좋은만큼, 천국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눈에 보이지를 않습니다. 변해버렸습니다. 교회가 변했고, 교리가 변했고, 교단이 변했고, 신앙의 노선이 변해서. 이 땅 위의 복지, 나누어주기? 이웃 사랑하기? 세상의 복지 단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죽어도, 하늘나라! 변치않고, 천국! 이 천국에 내 소망 전부를 다 걸고, 나는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변치 않는다! 이게 속에 들어 있으면, 불변의 금! 정금 같은 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보배’를, 우리는 가진 사람입니다.

주례 할 때마다, 또 우리가 결혼 때에 축하할 때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 떄나, 강건할 때에도 변치 아니하겠느뇨?’ 남자들에게 물어봅니다. 또 신부들에게 물어봅니다. 기쁠 때야 좋지요? 슬플 때야 집어 치워버리지. 강건해서, 건강해서 뛰어 돌아다닐 때에야 좋지요? (그런데) 한 쪽이 드러누웠는데? 10년 가도 못 고치겠는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 때에, 불신자들도 약속하는 불변. 우리는 주님 때문에, 피 흘려 구원하신 주님의 사죄 때문에! 변치 않는 나라가 천국이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변하는 세상을 주셨는데,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고, 변하는 세상에서 흔들려져 버리면, 불변의 보배는 줘봐야 담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켜 내지를 못합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천국을 향하는 광야길, 오늘 믿는 여기 우리들, 주님이, ‘하나님 모시고, 가나안을 가고 싶으냐? 준비하고 싶으냐? 네 속에 불변을 마련하라! 불변을 찾아내라! 불변을 지켜내라! 네 속에 불변이 있는지 뒤져봐라!’ 이런 세상이 되면 이렇게 날쌔게, 저런 세상이 되면, 저렇게 날쌔게. 이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거기.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저기. IT가 좋으면 IT로, 공고가 취직하기 좋으면 공업학교로, 상고가 은행갈 때에는 상고로. 세상은 먹고 살기 위해서, 바람을 잘 타고, 눈치를 잘보고, 줄을 잘 서고, 기웃거리기를 잘하는 것을 ‘처세술’이라 그럽니다. 그래야 먹고 삽니다. 주님 앞에서는, 처세술 좋고, 줄 잘 서면, 주님과는 끊어진지 옛날입니다.

‘불변의 너를 가져오거라!’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불변의 너를 가져오거라!’ ‘억지가 아니고, 인색함이 아니고, 부득이 함이 아니라.’ 공회 교회는 잘 변하지 않는다니까, 잘 변하지 않도록 운영하자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변치 않는 것을 원하시면, 천하가 변해도 변치 않을 것인가?’ 이게 공회의 불변이 ‘보배’입니다. ‘요즘은 대세가 이런데? 요즘은 추세가 이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는 먹히지를 않는데?’ ‘20년 세대마다 변하다가, 5년 세대마다 변하다가, 요즘은 1년 단위로 변한다는데?’ 천 번 변하고, 만 번 변해도! 예배당의 지붕은 초가집이 기와집되고, 기와집이 슬레이트되고, 슬레이트가 양철되고, 양철이 슬라브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지붕의 재질이 변하면서, 신앙도 변했느냐? 소망도 변했느냐? 천국도 변했느냐? 옳고 바른 교리도 변했느냐? 주님 때문에, 변치 않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영원성을,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마련하라. 가져와라. 네게 준 것은 네가 내라! 남에게 준 것은 남이 내라! 많이 준 자는 많이, 적게 준 자는 적게, 없는 자는 빈손으로 오라! 예물의 자세입니다.

② 은
첫 번째가 ‘금’입니다. 두 번째는 ‘은’입니다. 금? 불변의 보배. 은? 은은 ‘깨끗’입니다. 금속 중에, 쇠 중에 ‘깨끗’하면 뭐라고요? ‘은’. ‘불변’이면요? ‘금’. 깨끗하면 은. 그래서 음식 그릇에, 그래서, 의료 기구 치료하는데에는 전부 은의 깨끗함이 쓰여집니다. 무엇이 깨끗인가요? 죄가 들어가면 더러워집니다. 죄 들어간 것은 전부 변질! 더러운 것. 죄를 떼내어 버리고, 제가 입은 검정 양복은, 흰 밀가루 푸대에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진 겁니까? 더러워진 겁니까? 검은 옷은 검해야 깨끗이다! 흰옷은 희어야 깨끗이다! 앞의 학생들, 어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 깨끗하다고요? 어려야 깨끗입니다. 어린 것이 어른이 되어가지고, 어른을 호통치면, 이것은 실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되바라져서 못 쓰는 더러운 인격이 된 겁니다. 어른은 어른이라야 깨끗이지요? 남자는? 남자다워야 깨끗입니다. 유치원 가서는, 밖에 가서는 배꼽 인사하든지 말든지! 남자는 가정을 지켜, 원수와 싸워, 가족을 보호하라고, 강하게 힘을 맡겨놨는데, 어릴 때부터 전부 여자애들을 만들어버려요? 그거야 뭐 교육의 추세의 유행이라 하지만은, 남자는 남자다워야 깨끗. 여자는 여자다워야 깨끗. 어린 것은 어려야 깨끗. 어른은? 지혜가 있고, 지도를 해야 깨끗. 검은색은 검해야 깨끗. 흰색은 희어야 깨끗.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다워야 깨끗! 중들은 고기를 안 먹어야, 깨끗! 나무는 다 피서가도, 뿌리를 흙에 박고, 변치 않아야 깨끗! 개는, 짖고 물어야 깨끗! 고양이는 쥐를 잡아야 깨끗! 고양이 쥐 상자에 집어 넣으면은, 같이 놉니다. 쥐 잡으라고 쥐 들어간 상자에, 고양이를 집어 던져놓으면, 둘이 같이 놉니다. 이것은 고양의 성격, 고양이의 품성, 고양이의 본성이 더러워져서 그런겁니다. 쥐는! 훔쳐 먹어야 쥐답지! 우리는 우리다워야 깨끗.

피 흘려 구원했으니, 주의 피 생각하여 나를 꺽고, 나를 잡고, 내 옛사람을 뽑고, 주님 피 흘려, 아버지의 뜻대로 살 길을 열어놨으니, 이래도 주의 뜻! 저래도 주의 뜻!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을 주셨으니, 이래도 소망, 저래도 소망. 이게 깨끗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놓은 것이, 바뀌지 않을 때. 변색, 변질, 변종, 전부 바뀌고, 더러워지는 것을 좋아하는 현실 속에, 여름은 여름다운 것이 여름. 여기 학생들 신앙 어린 분들 때문에 지금 에어컨을 켜대고 있지만은, 여름은 땀 흘려가며, 더운 것이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여름입니다. 겨울은 좀 추운 것이 깨끗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웠다면, 여름이 이렇게 폭염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그러지요? 수 백년 세상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발명했다고 큰 소리 쳤다가, 요즘이야, 겨울을 겨울답게가 아니라, 겨울을 여름답게 따뜻하게 기술로 만들어놨더니만, 이게 이산화탄소의 핵폭탄이 되어가지고, 지금 폭염에 죽어난답니다. 인간 잘나고, 인간 잘했다는 것이 훗날 되돌아보면 전부 죽을 짓, 망할 짓, 안할 짓. 그래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씩씩하게 용감하게 성공을 했느냐가 아니라, 눈만 깜짝 깜짝, ‘주님이 뭘 원하시는고?’ ‘성경의 말씀은 어느 길인고?’ 늦어도, 더뎌도, 답답해도, 한 발자국, 한 걸음, 한번씩. 이렇게 가면, 차근차근 자라가고, 쌓여가고. 세상처럼 더 빨리? 우리는 좀 느리게. 세상은 더 많게? 우리를 좀 줄이고. 세상은 더 멀리?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세상은 더 높이?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하게.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이 속에서 우리는 깨끗을 준비하는, 은의 신앙입니다.

은은 깨끗이 은입니다. 줄여서 한 마디로 말을 하면, 구원이 ‘깨끗’입니다. 구원! 피 흘려 구원하신 구원.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소망’이,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깨끗’입니다. 하루종일 먼지에 뒤범벅이 되어서, 농사 짓고, 노동을 해도, ‘깨끗한 돈을 벌라는 주의 뜻을 따라, 남들은 편한 직장 가지만, 저는 먼지 구더기 뒤집어썼습니다.’ 남이 볼 때에는 더러워도, 그 돈이 깨끗하다! 사죄적이다! 그것 참 칭의적이다. 깨끗의 구원.

③ 놋
세 번째는 ‘놋’입니다. 쇠붙이 중에, 특별하게 ‘놋’이라고 할 때에는, 불 속에 많이 들어가야 되고, 망치로 많이 얻어맞아야 놋이 되어진답니다. 때릴수록 빛나고, 때릴수록 깨끗하고, 때릴수록 좋아지는 금속. 놋! ‘고난’을 말합니다. 고난. 계시록 1장에,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같고” 그 ‘주석’이 여기 바로 ‘놋’과 같은 말입니다. ‘빛난 주석 같다.’ 고난의 주님. 하나님이 사람된 것부터가 고난, 33년이 고난, 십자가에 죽음이 고난. 세계 2천년 기독교의 고난은 여기까지만 대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고난, 33년 사신 고난! 십자가에 마지막에 우주적인 고난에 죽은 고난까지가, ‘절반’입니다. 부활로, 인간의 몸으로, 다시 출발하신 주님의 수고는, 십자가의 고난까지의 모든 고난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크면 컸지, 적지를 아니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고난’, ‘부활의 고난’을 합해서, ‘사활의 고난’이라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이 고난 속에 빛난 주석같고, 그런 발걸음, 그런 걸음 걸음을 걸어갔고, 여기 애굽에서 나온 우리들에게, ‘가나안을 가고 싶으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가고 싶으냐?’ 오늘 우리에게 ‘천국의 불변의 영원한 소망 속에 살고 싶으냐?’ 불변을 찾아라! 대속으로 주신 깨끗을 지켜내라!

이리 살아가려면, 욕은 몇 번 얻어먹을 연구 해야지, 친구 열이 다 칭찬하는 그 속에 금과 은이라는 것은 벌써 버렸지, 그게 지켜질 리는 없다! 우리의 잘못으로 욕 얻어먹는 것이 99프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앞에 내 잘못으로 욕을 얻어먹지 않는다치면, 그러면 세상이, 잘 믿는 사람을 칭찬할까? ‘다 좋은데, 저거 종교만 옳다니, 참 유아독존이다!’ ‘아, 불교도 천국가고, 유교도 천국가고, 기독교도 천국간다고 하면 좋을 것을, 저거 기독교만 구원 얻는다고 하니, 그거 너무 매세운 얘기! 너무 야박한 소리! 그거 너무 남의 마음에 상처를 많이 내는 말이 아니냐?’ 다른 종교가 종교가 아니니까, 이 종교 저 정교 어울려 살 수 있지만은, 하나님이 한 분, 그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하나로만 내놓았으니, 하나라고 해야되지, 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100가정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 퇴근하는 아저씨가,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요? 그게 좋은 겁니까? 그게 화합이며, 그게 원만한 겁니까? ‘아파트에 천 체 만 체가 있어도, 퇴근한 뒤에 내 집은, 이 현관 하나 밖에 없다!’ 그래야 그게 가장이지요? 종교가 종교답게 되려면, ‘이 종교는 맞고, 다른 종교는 다 틀렸다!’ 해야 그게 옳은 겁니다. 장사야 뭐, 옷 장사로 살든, 음식 장사로 살든, 돈만 벌면 되기 때문에, 이것만 옳은 장사다 이것은 없지요. 종교가 종교답게 되려면, ‘아무리 계산해도 이 종교만 옳다!’ 할 때에, 그때에 비로소 종교입니다. 아니면 미신입니다. 아니면 철학입니다. 아니면 도덕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들은 다 어울려, 친구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창시자들이 고안을 했으니까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울려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구원의 한 길만 주신 기독교는, 할 수 없이 이 길만 구원이라는 말을 아니 할 수가 없어서,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도, 예수만 구원입니다!’ 이러면, 모든 종교인들이 야박하다고 그럴껍니다. ‘생사화복은 하나님만 주십니다! 그 외에는 다 우상입니다.’ 그것 너무 말이 심하지 않느냐? 극단적이지 않느냐? 자기 것만 옳다는, 아주 고집이 아니냐?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만 하나님! 하나님만 복을! 하나님의 주권, 3계명! 주일 은혜로 다 받고! 중간에 쓰신 하나님의 오른팔, 왼팔 기관을 존중하여,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상대하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믿어가려면, 말로 쥐어 박히고, 눈총에 맞고, 돌리고, 어렵고, 힘들게 되어 있는데, 그 과정이 바로 ‘놋’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놋은 불구덩이에 놓고, 두들겨야 됩니다. 두들길수록 빛이 좋아지고, 색깔이 좋아지고, 좋은 놋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놋은 ‘고난’입니다. ‘원하고, 원하고, 원하고 원하여, 주님 때문에 고난을 사모하고, 담대하게 나가려면, 놋을 가져오너라!’ 믿어, 칭찬은 받고, 믿어, 잘먹고 잘사는 것은 좋으나, 믿어, 욕 얻어 먹고 살기가 어려운 것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놋은 빼고! 놋은 빼고! 세상 따라, 좀 변해야 되겠습니다? 금 빼고! 주신 (돈) 지켜야 되겠습니다? 은은 빼고! 금 빼고, 은 빼고, 놋 빼고! 잡철로? 잡철로? 잡철로만 만들면, 잡신은 섬기겠지, 잡신은 오겠지! 부처도 오겠지! 공자도 오겠지! 죽은 조상님들도 오겠지! 금, 은, 놋! 주님으로 불변, 구원의 깨끗, 그대로 살다보니 오는 고난. 셋이 아니고는, 하나님은 모시지를 못합니다. 오지를 않으십니다. 금, 은, 놋으로 만들어 모시지 않으면, 내 주관에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지, 하나님은 근방에도 오지를 않으십니다.

‘금부터 마련하거라!’ 그 금도, 억지는 안되느니라! 인색함으로도 안되느니라! ‘주님으로 변치 않는 이 인격, 이 사상, 이 생활에 만유주 하나님이 오신다니? 이런 횡재! 이런 감사! 이런 영광! 이런 복이 있다니?’ 원하고 원한다면 가주마! 어떤 고난, 어떤 박해, 어떤 어려움, 어떤 환란, 어떤 환경의 극심한 많은 희생이 있을찌라도, ‘하나님 사람되어, 이 먼지 같은 나를! 주님이 만유의 주님이 되듯이, 나를 영원무궁토록 주님 대신 만물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신다니? 순종하겠나이다.’ ‘그 순종에 제게 주신 제 몫을 내라 하시니, 반갑게 얼른 바치겠나이다.’ 시간도, 인격도, 내 성격도, 뒤에 가면 ‘염소털도 바쳐라’ 우리 누구지요?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앞에 설교하는 저를, 솔직히 옛날부터 아는 분들은 제가 양 같습니까? 염소 같습니까? 몸 한번 떠받히면, 가서 10번 떠받는 사람이지, 염소이지, 양 축에 못 들어갑니다. 저는 염소이고, 여러분들은 다 양인가요? 제가 봐도 다 염소인데. 염소에 돋아난 ‘시기’, 염소에 돋아난 그 모든 ‘난폭’, ‘완패’, ‘완악’. 싹 깍아버려! 그것도 바치거라. 네 성질로 말을 하면, 앉아 있지 못하는 성질로 꺽어 바치거라! ‘10분을 듣지, 설교를 30분을 들어?’ 그 참지 못하는 성격도 꺽어버리고, 짤라버리고, 주님을 모시는데 내놓거라. 원하고 원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도 바칠 기회를 주시다니?’ 내놓는 사람은, 제 몫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 몫을 하는 사람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남이 내 몫을 대신 내게 하면, 나는 거지라는 말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늘나라가 내 것인데, 왜 내가 하늘나라의 손님이 되고? 왜 내가 주의 몸에 몸된 지체가 아니라, 남의 몸이 되고? ‘주의 몸이 되라고 하는 뜻으로 분담을 부탁하셨으니, 감사.’ ‘주님 따라 주가 되라니, 만물의 주인이 되라니, 감사.’ 눈꼽만큼 내고, 만물의 주인이 된다니?

인간이 가진 것 다 바쳐봐야 주의 것인데, 내 것도 없는데, 종이 한 장 차이인데, 5분 숨 못쉬면 송장만 남는데, 금을 가져오라시니, 은을 가져오라시니, 놋을 가져오라 하시니. 말씀 때문에 수고를 좀 하라고 하시니. 천하가 변해도, 변치 않는 깨끗을 가지라 하시니. 세월 속에 변치않는 불변을 찾으라 하시니, 이것을 갖으라 하시니, 이것을 가져오면, 주님의 제자, 주님을 따르는 만물의 주인이 된다니, 이런 횡재, 이런 다행, 천군천사가 영원히 흠모하는 그 영광의 목적의 대상이 나라니? 5천만 백성 중에 한 명을 왕이 정하여, ‘후계자 좀 하십시오.’ 영광인가요? 수치인가요?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그게 분담입니다. 그게 동참입니다. 금, 은, 놋을 가져오라. 나머지는 저녁 시간에 계속하십시다.

잠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세상 애굽에 살다가, 모세가 불러내는 바람에,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믿고 보니, 천국이 목적지가 되었고, 우리의 남은 세상은 광야 세상이 되어졌습니다. 하나님 모시고 걸어가잡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답니다. 그 대신에, 네 속의 금은, 우리 속의 은은, 우리 생활 속에 놋은, 즐거운 마음으로 분담하라. 네게 맡긴 네 몫은 네가 하라! 너도 주님의 제자. 너도 주님을 따라, 주님 대신 주님이 되어져라. 감사한 마음, 참 다행스러운 마음. 기쁜 마음, 원하는 마음, 신앙의 기본 믿는 사람의 평생은, 감사, 감사, 감사로 금, 은, 놋을 손꼽아 가며,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십시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 사람 혼자 살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만유주 하나님, 사랑의 전능의 하나님, 광야 40년 책임지시듯, 우리 평생을 꼭 우리 붙들고 책임지시며 동행하시겠다고,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맡긴 제 몫을, 자원함으로 금, 은, 놋의 3대 생활을 부탁하셨으니, 말세 천하가 어떻게 요동쳐도, 주님 앞에 불변의 보배만 마련하는 저들 되게 하시고, 세상이 변질, 변형, 변색, 어떻게 나갈찌라도, 주신 대속의 깨끗함만 지켜내고. 금과 은으로 살아가는 길에, 오는 고난, 어떤 고난이든, 감사함으로 살아, 금, 은, 놋으로 주님 모시고, 주로 사는 능력의 저희들이 되도록, 집회 기간 먼저 실천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만 가지 기도할 보호, 은혜, 인도는 주님께 맡기고, 말씀 새기며, 주님 바라보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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