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18.8.6 출25:10 말씀을 모시는 그릇, 속죄로 하나님의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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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18.8.6 출25:10 말씀을 모시는 그릇, 속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교인 1 130 2020.06.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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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7 화새 (성막 3)

제목 : 말씀을 모시는 그릇, 속죄로 하나님의 은혜를

본문 : 출애굽기 25장 10절 -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새 은혜, 새 출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실 때마다, 과거와의 정리, 단절, 큰 은혜를 인하여, 혼란 주시고, 어지러움을 주시나, 한 길 변치 않는, 구원의 복을 주기 위한 사랑의 역사이오니, 이번 집회도 새로운 사명을 주실 주님 앞에, 부족한 저들이, 창세기를 통해 모든 새로운 세계의 내용을 살펴보고, 세상에서 나와 하늘을 향하는, 우리 마음, 우리 신앙, 우리의 내면을 바로 잡아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우리,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주의 것이 되고. 주님을 향한 주의 것, 성장하는, 한 몸을 이루는 이 구원의 역사를 인하여, 우리 속에 모든 보배로운 것도, 허무한 것도, 죄악의 것도, 대속 받아 구원 받은 은혜도, 총 동원하여 살펴, 주님을 모시는 저희들이 되되, 말씀으로 시작하며, 말씀으로 붙드는 증거궤의, 이 새벽이 되도록 함께 해주옵소서. 깨어 주의 인도를 따르는 강단이 되고, 우리 모두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 복습

1. 자세

① 자유성
하나님을 모시고, 천국을 향하는 우리에게 첫 번째 원하는 것은, ‘자원함’이라. 원하고, 원하고, 원하는 자세. 교리적으로는 ‘자유성’이라고 그러고, 일반적으로 표현할 때에는, ‘좋아서’ ‘즐거워서’ ‘기뻐서’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지, 억지로, 인색함으로, 부득이함으로 하게 되면, 기다려줄 수는 있으나, 동행은 아니됩니다. 하나님이 완전자, 자유성의 하나님이라, 자유성이 아닌 것과는 동행을 못합니다.
② 분담성
그 다음, ‘분담성’이라, 내 몫, 내게 맡겨진 나의 것. 주님이 주인을 길러, 주님을 대신할 만물의 영물의 영원한 주인을 우리로 만드는데, 시작부터 ‘얻어먹는 거지’가 되어놓으면, 3살 버릇, 여든이 되도록 못 고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얻어먹는 거지 근성으로 시작을 해놓으면, 가면 갈수록 얻어먹는 것만 발달이 되어가지고, 그 쪽으로는 아무리 잘 되어 봐야, ‘착취자’가 되고, ‘구걸자’가 되고, ‘장애자’가 되지.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놓은 인격, 하나님을 닮은 신격의 모형인 인격은, 받는 것은 하나님께로만 받고, 어떤 존재, 어떤 형편,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 주님께 받은 이 은혜를 나누어, ‘저도 나와 같이 주의 것이 될까?’ 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주인! 영계와 우주의, 영원한 만물의 주인을 만들고, 주인의 손발을 만들지! 남 신세지고 사는, 이런 장애자나, 거지를 목적하고 길러본 적이 없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도움을 받고, 그 다음에 일어서는 것이고, 일어 서서는 이제는 신세도 갚고, 오히려 남을 업고 가는, 이 성장 과정에 신세도 지고, 짐도 되고 그러는 것이지. ‘목적’과 ‘기본자세’는, ‘자유성’, ‘분담성’의 주님의 뒤를 잇는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에게 보배도 주셨고, 우리에게 허무한 것도 주셨고, 우리에게 나쁜 것도 주셨고, 우리에게 대속의 귀한 보호도 주셨고. 주지 않은 것을, 가져 오라고 하지 아니합니다. 주신 것 중에, 맡긴 것 중에서, 부탁한 것 중에! 위에서 주어진 은혜 중에, ‘자유’로 ‘즐거워’ ‘네가 맡을 너의 분담을 찾아보라.’

2. 예물

이렇게 모은 크게 6종류, 좀 나누면 15가지. 더 나누면 한도 없는데, 내 속을 나눠보고, 따져보고, 뒤져보면, 무한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한 종류로, 무한히 쌓여 있는데! 주님 모시고, 주의 은혜로 받은 은혜 ‘길러’가고, ‘넓혀’가고, 자꾸 ‘퍼내면’! 양 몇 마리 맡긴 다윗이, 사자와 곰으로부터도 양을 지켜내고, 사울과 대군이 벌벌 떨던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은 천천이나, 다윗은 만만’이 되어질 때가 소년입니다. 이렇게 자꾸 받은 은혜로 ‘길러’가고, ‘키워’가고, ‘자라’가는 것이 근본의 ‘생명’이며, 하나님의 ‘목적’이며, 구원의 ‘속성’이기 때문에. 평소 주일마다 배우는 말씀으로 매일 매일을 살고, 1년에 1번씩 함께 모여, 한 주간 평소에 잊기 쉽고, 흐려지고 쉽고, 그러나 반드시 붙들고, 지켜내고, 길러가야 되는! 공회 전체의 사명, 우리 전체의 과제를 살펴보는 집회입니다.

■ 기구 1 – 증거궤

오늘 새벽에는, 하나님 모시는 집 전체가 ‘성막’이라면, 그 성막 안에, 제일 핵심, 제일 중심은, ‘증거궤’가 되어집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가구들을, 성막 안에 두는데, 가구라고 하면은, 가정집의 도구라. 여기 ‘기구’라고 했습니다.

[궤를 짓되]
첫 번째가, ‘증거궤’입니다. 궤라니요? ‘궤’에 한 글자를 더 붙이면 뭐라고 하나요? ‘궤짝’. 상자라는 뜻입니다. ‘증거궤라, 아 궤짝이구나.’ 두 번째는, ‘떡상’. 밥상입니다. 우리는 밥, 이스라엘 사람들은 떡. 밥상을 차려놓고, 올려놓고, 먹는 상이다. ‘밥상이로구나. 이스라엘이니까, 성경이니까, 떡상이구나.’ 이렇게 하나씩 바꾸어, 성경 그대로 읽으며, 마음 속에 그려보면 그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16페이지입니다. 교재. 모든 재료로, 모든 준비가 되었으면, 1번. “증거궤를 만들어라.” 한번 같이 성구를 읽어볼까요? 출애굽기 25장 10절만,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예. 가로 속에는 ‘이 규빗 반’ 이렇게 길면, 학생들이 외우기가 힘들 것 같아서, 2.5, 1.5 높이가 1.5 이렇게 딱 숫자로 줄여놨습니다. 이제부터 성막을 짓는데, 가로, 세로, 높이가 계속해서 많이 나옵니다.

[증거궤, 법궤, 언약궤]
먼저, ‘증거궤’라는 말은, 그 이름에 맞듯이 ‘전할 말씀’. 이럴 때에 ‘증거궤’라고 그럽니다. 증거궤와 꼭같이 성경에 쓰는 것, 제일 밑에 박스를 보시지요. 첫 번째로, 증거궤는, 금방 읽은 출애굽기 25장 22절에 보니까,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을 말씀을 넣는 상자,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궤짝이, ‘증거궤’라고 출애굽기에 쭉 나옵니다. 증거궤는 말씀은 말씀인데 어떤 말씀을 강조한다고요? ‘전할 말씀’. 그 다음, 맨 밑에 박스 가운데, ‘증거궤’는, 다른 말로 ‘법궤’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으시다가, ‘증거궤’ ‘법궤’가 나오면, 같은 말입니다. 사람, 인간, 같은 말이지요? 아이, 자녀, 같은 말이지요? 집, 주택, 같은 말이지요? 왜 같은 말에 여러 단어가 있을까요? 그 단어마다 강조하는 맛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전할 말씀’ 증거궤. ‘지킬 말씀’은요? ‘법궤’. 들어도 되고 말아도 되고,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전했으니, ‘증거궤’. 그 속의 말씀은 반드시 지킬 말씀이다. ‘법궤’. “성소에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레위기에서 보니까, ‘증거궤’를 ‘법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맨 밑의 줄, ‘언약궤’라. 증거궤, 법궤를 다른 말로 ‘언약궤’라 합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약속’.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될 약속으로, 도장을 찍을 때에는 ‘계약’이라고 그러지요? 약속, 계약, 언약, 같은 말입니다. 약속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계약’이라 하느냐? ‘한 마디 하고 잊어버리니, 도장 찍고 책임을 져라! 반드시 지켜라!’ 이럴 때에, ‘계약’이라 그럽니다. 세상이 계약 계약 그러니까, 성경에서는 계약을,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라고 그럽니다. 성경에서만 씁니다. 그래서, ‘증거궤’, ‘법궤’, ‘언약궤’는, 성경에 나올 때마다 같은 말씀이라. 왜? 이름이 3개인가?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이다!’ 다같이 뭐라고요? ‘증거궤’입니다. ‘하나님이 전하는 이 말씀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말씀이다!’ 무슨 궤라고요? 이것은 법궤라. 네 마음대로가 아니다. ‘이 말씀을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다! 하나님의 댓가가 있다! 소망을 가져라!’ 이럴 때에는 뭐라고요? ‘언약궤’라고 그럽니다.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넘겨서, 18페이지. 증거궤를 만들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상자, 증거궤를 만들 때에는, 조각목으로 만들어라. 출애굽기 본문 25장 10절을 보니까,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재료는 ‘조각목’이다. 참나무가 더 좋은 나무입니다. 그래서 참나무입니다. 들에 가면, 들판에 가면, 쉽게 얻는 ‘깨’는 ‘들깨’라고 그럽니까? 좋은 깨는요? ‘참깨’. 흔한 나무는 일반 나무, 나무 중에 진짜 나무는 참나무. 참나무, 소나무, 백향목. 좋은 인물, 좋은 자질 많지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는, 제일 제일 소중한 증거궤를 만들 때에, 조각목으로 만들어라. ‘못났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찌 배울까?’ 그러지는 못합니다. ‘머리가 이렇게 둔하니, 공부도 못하는데, 무슨 성경 말씀, 진리를 배울까?’ 그러지는 못하는겁니다. ‘나이가 이렇게 많아, 뉴스도 못 보고, 신문도 못 읽는데, 노인당 갈 수도 없는데, 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고 집회까지 가느냐?’ 그런 말씀은 못하는 겁니다. ‘조각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거라!’

세상 애굽 속에, 하나님의 백성을 쏙 빼서 지금 ‘가나안’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 200여 만명이 가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갈 군인이 60만이 넘었습니다. 그 60만명 12지파, 200만명이 진을 치고 가는데, 제일 가운데에 ‘성막’을 둡니다. 그 성막 안에 제일 안에가 ‘성소’고, 그 성소 안에가 ‘지성소’이고, 지성소 안에 제일 중심이 ‘증거궤짝’입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하나님의 말씀. 두 돌판을 담는, 말씀을 담는 ‘증거궤’, ‘궤짝’을 만들어라. 다 같이 뭘로 만들라고요? ‘조각목’으로 만들어라. 대단히 죄송한데, 잘났느냐? 세상에 나가 훌륭한 사람 되거라. 교회는 누구를 찾는다고요? 못난 사람을 찾는다. 잘난 사람이 교회 다니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요? ‘내가 왜 못난 사람인가?’ 자기 속에서 못남을 발견하고, 못남을 알아내면, 남들은 모르고, 위대하다고 보는데, 나는 나를, 내 정체를, 내 과거를, 내 속을 뒤집어 보니까, ‘참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이 때에! 말씀을 모시지. ‘저도 한 가닥합니다.’ ‘저 밥 좀 먹고 삽니다.’ ‘동네에 나가면, 나 한 소리합니다.’ ‘직장에서 나 없으면 안된답니다. 저 인재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말씀을 모시고, 말씀을 지켜내려고 해도, 말씀이 그 속을 ‘상대’를 안합니다. 건강한데, 의사가 필요하나요? 대학병원 외과 과장한테 와가지고, ‘건강합니다! 멀쩡합니다. 아주 씩씩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그러지요? ‘나가보시지요. 죽을 환자, 지금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이게 ‘박대’가 아닌 겁니다. 정상적으로 대우를 하는 것이지. 건강하면, 밖에 가시고! ‘배가 아픕니다. 이 병원 가도 안됩니다. 이 약을 먹어도 안됩니다.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애가 터져서 대학 병원, 외과 과장님을 섭외했습니다.’ 못나야 말씀이 붙들고, 희망이 없어야 말씀이 붙들고, 소망을 주시고. 죄와 악과, 틀리고 고장나고 엉망이라야, 말씀이 붙들고, 만들고, 다듬고, 고치고, 길러, 말씀이 만들어내는 사람! 말씀이 바꾸는 사람!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애굽에서 나온 200여만명의 이스라엘 12지파로, 동쪽 세 지파, 서쪽 세 지파, 남쪽, 북쪽의 세 지파. 12지파가 ‘성막’을 둘러, 사방으로 뺑 보호를 하고, 그 속에 레위 지파가 뺑 둘러, 성막을 보호하고. 성막의 ‘담장’ 안에 ‘성소’가 있고, 성소 안에 들어가야 ‘지성소’가 있고. 말하자면은 지성소는 ‘골방’입니다.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상자 하나 달랑 있는데, 이 상자 속에 담긴 말씀. 하나님의 주신 ‘증거궤’, 하나님이 주신 ‘말씀’. 이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을 따라 가다보면,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만들고, 가나안을 향하여 책임을 지시는데. 말씀을 담는, 말씀을 보호하는 ‘상자’가 ‘증거궤’입니다.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못난 사람’에게 말씀을 맡깁니다. ‘힘 없는 사람’에게 말씀을 맡깁니다. ‘부끄러운 사람’에게 말씀을 맡깁니다. ‘못났고, 부끄럽고, 죄 많고, 못된 것은 말씀이 해결한다!’ ‘너는 말씀을 모시거라.’ ‘말씀을 배우거라. 배워서 가지거라.’ ‘말씀을 배우고, 가지고, 모시고, 넣고, 말씀을 담는 그릇이 되라.’ 국은 국 그릇, 밥은 밥 그릇, 커피는 커피 잔. 말씀은 어디에 담나요? ‘증거궤’. 재료는 뭔가요? ‘조각목’. 나름대로 평생을 자신있게, 훌륭하게 살았다쳐도,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신앙 생활의 근본 자세는, 이때 만은 좀 부족해야 됩니다. 어디를 가도 훌륭해서, 어디 가도 당당해서, 어디 가도 큰 소리를 쳐도, 그것은 세상 가서는 그리하시고. 교회를 올 때에, 성경 가방을 들 때에는,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 의자를 찾을 때에는, 이렇게 함께 말씀을 살피며, 예배를 드릴 때에는, 전하는 제가 이 말씀 앞에 제일 죄송하고. 듣는 우리가 다 말씀 앞에 못난 우리는 조각목이라. 조각목은 못난 인간이지만, ‘조각목으로 궤를 지어라.’ 궤를 짓되. ‘말씀을 모실 그릇이 되라.’ 못났는데, 못난게 못난대로 살지, 뭐 이래라 저래라? 못났지만은! 못났으니까! 말씀이, 가로 얼마, 세로 얼마. ‘예’ 이럴 때에 말씀을 모십니다.

길이는 얼마라고요? 장? 이 규빗 반, 2.5입니다. 넓이는 얼마라고요? 일 규빗 반, 1.5 규빗입니다. ‘길이 됐고, 넓이 됐고, 높이는 또 뭐하려고?’ 못났지만은,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라! 얼마를요? 1.5. 한 규빗 반. ‘아 못난 것을 두고, 뭔 이래라 저래라?’ ‘훌륭한 분, 돈 많은 분, 지성인, 가정이 떳떳한 사람, 과거가 훌륭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맡겨, 목사 장로가 말씀을 맡고, 교인은 뭐 회비나 내고 앉았다가 은혜나 받고 가지, 뭔 주일학교 반사에게도 주일 오전 설교를 하라?’ 교회들마다 조금 다르겠지만은, 저희 교회도 제가 주일 오전에 혹 못 쓸 때에는, 장로님도 아니고, 집사님도 아니고, 주일학교 반사도 아니고, 남반도 아니고, 다른 진영 다니다가 들어온지 몇일도 안되는 여반도 세우고 그럽니다. ‘조각목’이면 되니까.

[광이 일 규빗 반]
아무리 못났지만은, 조각목이지만은, 넓이는? 1.5다. ‘한 규빗 그리고 반을 더한다.’ 넓이라니요?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이해의 폭을, 넓이라고 그럽니다. ‘이해성’. 부부 둘 한 몸이 되어서 산다며, 여기 남반들, 살아본 분들. 여자들 속 마음을 알겠던가요? 3년 살아본 분들은 좀 알겠던가요? 30년 살아보면 여자 속을 알겠던가요? 그놈의 속은 100년 살면 더 모를 것 같습니다. 또 여반들에게 물어보지요. 한 몸이라고 지 남자하고 살아보면, 남자 속을 다 알겠던가요? 그놈들? 그 인간? 둘을 하나로 만들어야, 그러면 여반에게는 남자 하나 맡겼습니다. 1규빗. 남반에게는, 몇이나 맡겼는가요? 여자 하나 달랑 맡겨놨습니다. 1규빗. 아이들에게는, 부모 10명, 100명 맡겨 놓은 것이 아니라, 딱 부모 하나 달랑 맡겨놨습니다. 그 부모가 이해가 되던가요?

남자로 결혼해서, 자기 여자 하나를 ‘품지’ 못하면, 자기 여자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애를 낳고 살자니 뭐, 속이 썩어도 할 수 없지.’ 마지 못해서! 인색함으로! 부득이함으로! ‘그냥 복잡한 일이 더 많아질 테니까, 참고 살지’ 이것은, 부득이함으로나, 인색함으로나, 억지가 되기 때문에. 살기는 살아도, 한날 함께 죽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너 둘은 부부가 아니다!’ 낙제입니다. ‘이 귀한 사람을 주다니! 이 사람을 내게 맡기다니?’ ‘이 한 사람은 내가 맡으면, 맡지 않을까? 맡길 수 있으니, 맡겼으니, 나 하나 희생하고, 나 하나 연구하고, 나 하나 말씀으로 살펴보면, 이해도 되고, 책임도 지고, 감당이 되겠지.’ 이렇게 한 단위를, 성경에서 1규빗이라고 그럽니다. 1규빗!

[1규빗]
1규빗. 앞에 저를 보시지요. 이게 1규빗입니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까지, 이게 1규빗. 그런데, 이것을 자를 재려면 재기가 어려우니까,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를, 1규빗이라고 그럽니다. 자기 팔 올려서 이렇게 하면, 이쪽에서 이쪽까지 딱 ‘한 폭’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없던 때, 미개하던 때, 어려운 때, 길이는 재야 되겠는데, 무엇으로 길이를 잴 것인가? 한 사람 팔을 이렇게 하면, 팔꿈치에서 여기까지. 또 아니면, 사람이 발로 걸어가는 것을, 미국 사람은 1 feet, 2 feet, feet라고 그럽니까? 그것 ‘발걸음’입니다. feet은 복수, 단수로는 foot인가요? foot이 영어로 뭔가요? 백은설 선생님? 발을 foot이라고 그러지요. 발로 걸어가며,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쟀습니다. 그 다음, 서보면 한 걸음, 한 단위를 압니다. 공사할 때에는, 이렇게 해보면, 얼른 얼른 몇 자 몇 자가 나옵니다. 이게 과학과 기술과 전문적인 고도의 문화가 발달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며, 여기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빈손으로 아무 것도 없이, 하늘나라를 향하여 걸어갈 때에, 하나님을 모시려면 성막을 만들어라. 성막의 재료는 네 속에 다 들어 있다. 있는 것만 가지고 와라.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가져가고, 적게 받은 사람은 조금만 가져와라. 집에 금은 많은데, 은이 없거든, 많은 금을 가져와라. 금도 은도 없지만은, 실이 많으면, 실을 찾아서 가져와라. 자기를 살펴, 재료를 가져오되,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 하나님을 모시면, 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몸이 되고, 하나님을 따라, 만물의 주인이 되니! 이 조금 들고 가서 주인이 되는 이런 횡재이니, 기쁜 마음으로 내 몫을 내가 감당을 해야지.

오른손이면, 오른손답게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왼손은? 오른손이 평생에 수고할 때에, 한번씩 장단만 맞추어 주면 됩니다. 눈은?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귀는? 듣기만 하면 됩니다. 눈썹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이게 모아져서, 한 몸. 이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대상인, 우리들입니다. 눈썹에게, 들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입에게, 걸어가라고 그러지는 아니합니다. 두 발에게, 짐을 지라고 그러지, 듣고, 말하고, 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내게 맡긴 내 몫.

말씀을 모시는데, ‘조각목’이면 된다. 아무리 못나도 상관이 없다. 못날수록 좋다! “약할 때 강함이니라” 잘난 것을 써놓으면, 자기 잘 나서 잘했다고, 하나님의 이름은 묻혀지고, 사울처럼 자기만 자꾸 높아집니다. 부모도 알아주지 않고, 양 몇 마리 겨우 먹이던 다윗을 왕 자리에 올려 놓으니까,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주의 은혜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만만은 하나님의 수이지, 제 수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장점, 다윗의 평생은, ‘겸손’이었습니다. 지 꼴이 뭔 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각목’입니다.  반대로 사울은요? “남보다 어깨 위나 더 하더라”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존심 상하고는, 못 견딥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야지, 자기 이름이 더러워지는 꼴은, 못 봅니다. 그러면 사울처럼 버림받는다.

[장이 이 규빗 반]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길이 ‘장’. 길이는 얼마라고요? 이 규빗 반, 2.5. 길이라니요? 장, 광, 고. 길이라니요? 계속성을 말합니다. 한번 맡기면, 그만 잊어버리도록 자기 몫을 감당해라. 이제 맡겼으니 1년 맡겼으니, 1년 끝났으니. 1년 찬양 책임자 맡겼으니, 1년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갈 때 쯤되었고, 집에 간 줄 알고 가니까 맡기면 1년이지만은, 제 자세는, ‘원하고 원함으로 1년 더 할 수 있습니다.’ 더 길게. 이게 2규빗 입니다. 사람이 예전에는 60년 산다고 치고, 60년 살 계획, 연금 시간 계획해서, ‘20년 배우고, 20년 벌고, 20년 누리고.’ 주님이 120년을 살게 해도, 120년 충성할 수 있는 사람처럼, ‘장구성’. 계속되는 길이를, ‘장’이라고 그럽니다. 주님이 얼마를 맡겨도, 어디까지 맡겨도, 그 맡긴 것을, 영원토록 이루어내고, 이어지고, 계속하는 인내성을 가져라.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광은, ‘넓이’입니다. 아내를 이해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는가? ‘함께 사는 아내 이해는 못하지만은, 동네 사람을 이해하고, 동장, 반장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극이고, 사기이고. ‘동네에서는 욕을 얻어먹지만은, 대통령을 시켜주면, 5천만을 책임을 지겠습니다’ 네 동네나 책임을 져라! ‘동네에서는 손가락질을 해서, 전도도 하러 다니지 못하지만은, 아프리카 선교는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선교하러 갔다가, 거기도 10년, 20년 살면, 그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이 될 껀데, 그 동네 사람들이 전부 선교사 욕을 하고 되돌아설 것이다! 선교, 나쁜 것 아닙니다.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훌륭하기 전에, 네 동네, 네 집안에 먼저 빛이 되어져라! 고모,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별의 별 사촌, 육촌, 팔촌 많은데, 그 많은 종류의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이해가 되고. 훌륭해지기 전에! 붙어 사는 부부. ‘네 남자에게나 인정 받아라’ ‘네 여자에게만은, 인정을 받아라’ 이게 ‘한 폭’입니다.

어리면, 부모만은 인정할 수 있는! ‘저 놈이 공부는 못하고, 못났고, 머리도 나쁘고, 다른 것은 다 그렇지만은, 믿음은 틀림이 없다.’ ‘저게, 아무리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은, 진실은 틀림이 없다!’ 어려서는 자기를 낳고, 자기에게 인생을 걸고 다 바치고 있는, 부모에게 인정은 받아야 됩니다. ‘한 폭’.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되면, 70억 인류에게는 손가락질을 받고, 인정을 못 받아도, 자기 여자 한명, 자기 남자 한명의 인정은 받아야 됩니다. 이게 ‘한 폭’입니다. 많이 맡기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함께 사는 24시간, 함께 사는 자기 남자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그 다음 그 사람의 ‘폭’은 한 명이 아니라, 온 가족에게 인정을 받을, 그 ‘한 규빗’이 넓어질 것입니다. ‘집 안 식구들이니까, 뭐 이해하겠지?’ 생각할지 몰라도, 시어머니 입장 다르지요? 사아버지 입장 다르지요? 친정집 입장 다르지요? 조카 입장 다르지요? 동서 입장 다르지요? 남이 볼 때에는, 똘똘 뭉쳐 한 가족 같은데, 속에 들어가면, 한 가족 안이 ‘천지 만엽’입니다. 한 남자, 한 여자에게 인정받는 그 인정이 ‘한 폭’, 더 넓혀, 이제는 한 가정 전체에게 인정 받는, 이런 ‘이해성’, 이런 ‘포용성’. 이런 넓이가 된다면, 말씀 붙들고만 되지, 말씀 안 붙들고는 못합니다. 친정과 시댁의 소원이 다른데? 딸 아이, 남자 아이의 성향이 다른데? 한 식구 안에 잘 사는 동서와 못 사는 동서의 입장이 다른데? 어떻게 처세술을 잘한다고, 각기 별의별 사람들을 함께 다 만족을 시키고 다 품겠습니까? 말씀을 모시고, 말씀으로 상대하면, 말씀이 들어, 자기에게 맡긴 ‘한 폭’, ‘한 단위’, ‘분담’은 책임집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한 가정을, 한 가정으로부터 한 교회와 자기 시대를 감당해서, 점점 넓혀나가되, 여기 말씀을 가장 작은 ‘한 폭’으로 주시면서, ‘절반’을 더해주셨습니다.

[0.5 규빗]
그런 말이 있지요? 똑같이, 설 날에 선물, 부모님 양가 선물을 두 개 사서, 가다가 남자 없을 때에, 친정 갈 것은, 시댁 갈 것에서 하나 더 해서, 빼서, 친정갈 때 하나 쑤셔 넣어서, 이 쪽은 조금 늘고, 이 쪽은 조금 줄여버린다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자원’, 그 ‘중심’, 그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졌는가?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밭을 팔아, 연보를 하려고 했다가, ‘인색함’으로 줄여버렸습니다. ‘부득이 함’으로 ‘억지로’ 하다보니까, 줄여버렸습니다. 이것은. 사망이다! 이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주님께 드릴 때에는, 주님께 바칠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없는 것은 못 바치지지만은, ‘이왕이면은 좀 더!’ 이게 ‘절반’입니다. ‘덤’입니다. ‘보태기’입니다. 하나만 드려도 되지만은, 소중한 부모님이니까 한 술 더! 부모님이 아이들 밥할 때에, 한 공기면 되지만은 혹시 싶어서, 또 한 술 더!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는, ‘한 단위에 절반을 더해라!’ ‘덤을 더해라’ 그래서 어제, 신앙의 기본자세, 첫 번째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아라. 반대로 어떻게 하라고요? 풍성하게 해라, 거기에다가 대고, 조금 더 더해라. 그리고, 이것이 이어지게 해라. 이런 뜻을 가르쳐, 구약의 이스랑레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밭을 주고 포도원을 줄 터인데, 나그네가 지나가다가, 네 포도원에 들어와서 포도를 따거든, 그릇에 담고, 가방에 담고 가는 것은 아니되나, 먹고 가는 것은 허락해라.’ 네 밭이 있는데, ‘밭에 추수를 할 때에, 밭 모퉁이까지 싹싹 다 거두고, 옆 집 주인이 없을 때에, 옆집 이삭 넘어온 것까지 다 짤라 버리고, 그러지 말아라.’ 너의 밭이, 이만큼이라도. 밭 모퉁이는 가난한 자,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남겨두라. 옆집을 향하여. 이 여유, 이 배려, 이 이해, 이 포용. 이런 면을 가르쳐, 성경에 ‘폭’이라고 그랬습니다.

[1규빗 + 1규빗 + 0.5규빗]
네가 안고가야 될. 네가 책임져야 될, 네가 맡아야 될, 너의 분담 하나. 이대로 꾸준히 한 단계, 네가 생각하는 그 인내의 한 단계를 더! 고난이 이어지면, 그 고난이 빨리 끝나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회에 온 6년의 고난. ‘오늘 그만 둘까? 내일 그쳐질까?’ 6년이 계속되다 보면은 하루가 급할 것인데, 앞으로 6년이 더 가더라도! 이게 2규빗입니다. 아이를 뱃 속에 10달을 넣고 고생하는 엄마들, ‘아이에게 지장만 없으면, 한 달이라도 빨리 나왔으면 싶을만큼’ 무거울 것인데, ‘이대로 2년을 더 고난을 주시더라도, 소중한 아이 나한테서 잘 길러가기를’ 이런 자세가 ‘두 규빗’입니다. 거기에다가 대고 ‘절반’을 더! 이 자세가 바로 ‘자원함’으로, ‘즐거워함’으로 내는 자입니다.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장, 광, 고. ‘높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하늘을 향하여! ‘소망성’을 말합니다. 자라가는 ‘향상’을 말합니다. 어떤 것을 맡기든! 누구를 맡기든! 말씀으로 자기를,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감당하고. 감당하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이어지고. 3일 춘향은 누구든지 다 한다고 그러지요? 3년을 하려니까 기가 막히지, 30년 평생을 이렇게 살라니, 이게 죽을 지경이지. 그것을, 한번 더 하라고 해도, ‘예!’ 거기에다가대고 ‘절반’은 내가 더 해버립니다. 이럴 때에 귀신은 항복을 하고, ‘저것은 건드려봐야 해당이 없다.’ 이런 우리가 되어집니다. 맡긴 ‘넓이’, ‘감당’, 이대로 이어지는 ‘자기 기간’, 그 기간을 ‘두 배’로 넒히고, ‘절반’을 더해도, 계속. ‘끊임없는 계속’을 말합니다. 그대로 위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라! 자라가라!

[0.5규빗 더함]
여기 규빗에 대해서 잠깐 구체적으로 적어놨는데, ‘약 45cm’ 그런 말 없습니다. 하도 다른 교회들이, 역사적으로 신학자들이 45cm 노래를 불러서, 상식으로 45cm라고 적어놨는데, 성경에서는, ‘발꿈치에서 손가락 끝’입니다. 키 작은 사람, 키 큰 사람, 자기의 팔, 균형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우리 여수 순천에 가면, ‘한 되’가 거창 ‘한 되’의 2배입니다. 거창의 소고기는 150g이지요? 여수 순천의 한 근은 300g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소도 적고, 소고기 구경도 못하니, 찔금 들고 한 근이라고 그럽니다. 여수 순천 들 넓지, 곡식 많지, 소 많지, 자주 먹지, 사람들 덩치 좋지, 한 가족 한 끼를 위해서 잘라도 2배가 나옵니다. 한 나라, 한 시대에 함께 살아도, 대두, 소두. 무게도 넓이도, 길이도 두배가 다른데, 몇 천년 전에 이스라엘의 한 규빗이 몇 cm였을까? 별의별 기준이 다 나오는데, 딱 접어버리고, 그냥 성경에서, ‘발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바로 자기 한 사람의 ‘폭’입니다. ‘내게 맡긴 내 분담, 내 범위로구나’ 그런데, 에스겔서 43장 13절에 보면, 성전의 하나님께 쓰는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다가 대고, 손바닥 넓이 하나를 더 해버립니다. 주님을 상대할 때에는. 여자분들, 친정갈 때에는 이왕이면 한줌 더! 한 몫 더! 한 되 더! 시댁 갈 때에는, 이 핑계, 저 핑계 어찌하든지 뒤로 빼고, 친정 갈 때에는 이 핑계, 저 핑계 어찌하든지 더 모아 주는 것처럼. 연세 많은 분들, 아들 똑같이 낳아놓고, 장남이라고 그러면은 이리 빼주고, 저리 빼주고, 어찌하든지 하나 더 주고 싶은 그 마음, 다 있지요? 인간 대 인간으로 살 때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은,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는, 옛날 어른들이 장남 챙기듯이! 요즘 사람들 딸 챙기듯이! 연애할 때에 상대방에게 눈이 삐져놓으면, 집에 있는 것을 훔쳐다가 막 밀어 넣듯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는, ‘발꿈치에서 손끝까지’가 ‘한 규빗’인데, 한 줌 더 갔다대어 ‘더 넓게’, ‘더 멀리’ 잡거라. 신앙의 기본입니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20페이지입니다. 이렇게 만든 증거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갈 것인가? 증거판, 돌로 만든 증거판이 들어가라. 히브리서 9장 4절에 보면,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언약궤는 뭘로 만든다고요? 못난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못난 조각목 그대로는 아니됩니다. 덮기는 뭘로 덮는다고요? ‘정금으로 싸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뒤에 들어갑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뒤에 들어갑니다. 처음부터 변치 않고 들어가야 하는 것은, 증거판에는, ‘언약의 비석들’입니다.

시내산에서 준 십계명 돌판. 하나님의 첫 말씀을 ‘십계명’으로 주면서, 왜 돌판에다가 기록했을까요? 나무 판대기에 기록하면 쉬울 것인데? 종이에 적으면, 시간도 짧고, 힘도 덜 들터인데? 알아보기도 좋을껀데요? 종이보다, 나무보다, 돌판에다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주셨습니다. 왜요? ‘잊지 말라’고. ‘변하지 말라’고, 세월 속에 ‘흐려지지 말라’고. 종이에 적으면, 적기는 쉬우나, 돌아서면 날아갈 수 있고, 찢어질 수 있고, 비 맞으면 번져질 수 있고. 나무에 기록해놓으면, 좀 더 오래가겠지만은, 불에 타버리면 헛 일이고. 옛날로 말하면, 돌에다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을 해놓으면, 흐려지지 않고, 번져지지 않고, 비 맞아도 상관없고, 불에 타도 상관 없고. 그래서 두 돌판에다대고,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겁니다.

증거궤의 궤 짝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십계명 돌판’에 담았는데, 십계명 돌판이란 첫 번째로,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법.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다. 이 법은 변하지 말아야 된다.’ 할머니 시대에는 옷을 길게 입었고, 아버지 시대는 옷을 좀 짧게 입고, 요즘 10대들은 다 벗고 다니고, 옷은 그래도, 옷은 그렇게 하셔도, 할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 손주의 말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말씀은 변할 수 없다! 그래서, 돌판에대고 박아놓은 겁니다. 미국 사람은 뻣뻣하게 서서, 눈만 찔금하고 인사합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합니다. 문화 따라, 인류 따라, 사회 따라, 음식과 인사법과 옷은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은 변하면 안된다고요? 말씀은 돌판에 새겨! 이것은, 어디 가도, 어느, 시대, 어느 가정, 누구에게도 변할 수 없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은, 돌판에 기록하여 변치 못하도록!

부족하면, ‘말씀은 이런데, 제가 부족합니다.’ 그러면은, 소망 속에서 나중에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데, ‘말씀은 높고, 나는 신앙이 없고, 실력이 없으니, 말씀을 끄잡아 내려버려라!’ 좋지를 못한 겁니다. 우리 밤 예배가 대개 7시인가요? 요즘은 노동 환경이 좋아져서 7시 지키기가 그래도 쉽지만은, 10년, 30년 전에 7시 지키려면,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저녁 7시에 맞추려니, 내 직장이 어려우니까 7시 반, 8시로 내 근무 환경을 따라, 고무줄처럼 늘렸다 좁혔다 해야 되겠는가? 내가 지각을 할찌라도, 내가 예배 마칠 때에나, 겨우 참석할찌라도, ‘예배 시간은 정성이 필요하고, 정성이 필요하면 7시가 맞고, 주일은 10시가 맞겠지!’ 정해놓고, 지각하며 미안하고, 지각하며, ‘앞으로는 지각하지 않은 직장과 그런 형편을 주셨으면 좋겠다.’ 소망으로 맞추는게 맞지! ‘나는 자고 일어나면 12시이가 좋습니다. 예배시간 12시로 미룹시다.’ 이러다보니까, 공회 교회 중에, 미국에 있는 교회 중에 하나는, 가니까 주일 오전 예배가 오후 2시입니다. 11시에 교회를 나와요? 5일 벌고, 토요일 밤 늦도록 놀고, 피곤한 몸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10시나 되는데? 점심 시간 있고. 공회 교회, 미국 교회는 오후 2시가 오전 예배인 교회도 있었습니다. 예배는 10시에 맞춰놓고, 10시에 못 맞춰서 11시에 예배를 드려도, ‘10시로 가는 것이 맞는데, 우리는 아직 신앙이 어리고, 개척 교회라 11시다. 언젠가 자라서, 10시에 맞추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법’으로, ‘법’은 ‘바꿀 수 없는 법’으로 만들어놓고, 소망을 가지고 맞추려고 노력을 해야 발전이 있지! 나태해진 나, 무능해진 나, 방종, 방탕한 나한테대고, 기준과 환경을 맞춰버리면, ‘소망’이 없어져버립니다.

좀 어려워도, 초등학교 6학년은 이정도 배워야 된다면, 그 정도를 맞춰놓고, 모자라는 방금, 과외를 하든, 방과 후를 하든 ‘소망’을 가지는게 맞지. ‘요즘 애들은 어렵게 가르치면, 못 따라오니까, 교과서의 수준을 확 낮춰버리자’ 낮추면, 더 내려갑니다. 더 낮추지요? 더 낮추면은 더 내려갑니다. 나중에는, “게으른 자는 손을 그릇을 넣고” 어떻게요? “그 음식을 입에 넣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여기까지 게을러지면 그 다음, 저절로 죽는 겁니다. 넘치게도 말고, 모자라게도 말고. 주님 주시는 십계명의 돌판, 말씀의 법을 변치 말고 지켜내거라!

[만나 항아리]
두 번째는, 증거판 안에는 ‘만나’가 들어갑니다. 만나는, 광야에 먹는 ‘하늘 양식’입니다. 생명의 양식. 만나는 양식. ‘양식’이라는 것은, 들어가면 삽니다. ‘생명’. 들어가면 움직입니다. ‘행위’. 그리고, 세월이 지나가면 자랍니다. 양식이 하는 3가지,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삽니다. 젖을 먹이면, 이게 움직입니다. ‘행동’. 그리고 지나가면, 자라 있습니다. 이런 것을 ‘양식’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말씀, 신령한 양식이 들어가야, 신앙의 생명이 유지가 되고, 신앙으로 바른 행위가 나오고, 그리고 신앙으로 자라갑니다. 만나 양식을 얻는데, 이 만나는 어디에서 내려지는가요? 다른 양식은, 땅을 파고, 땅을 뒹굴면서, 땅에서 거둬냅니다. 만나는, 비같이 하늘에서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하늘이 주는 것’.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닌 것이, 만나입니다. 이 몸으로 세상을 먹고 살고, 가족을 책임지는 것은, 땅을 밟고, 땅을 뒹굴면 먹고 사는 법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향한, 신앙의 양식, 신령한 양식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지, 인간이 노력하고, 가져오고, 붙든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 다음, 증거판 안에는, 처음에는 ‘돌판’, 그 다음에는 ‘만나’가 들어가고 , 세 번째는 ‘지팡이’가 들어갑니다. 지팡이.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숨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증거판, 증거궤 안에는 첫째가 ’말씀의 법‘, 두 번째가, ’하늘의 양식‘, ’신령한 양식‘, 은혜, 세 번째는, 걸어가는, 순종하는 걸음에 필요한 ’인도‘. 지팡이는 ’인도‘를 말합니다.

[증거궤 안의 세가지의 관계]
하늘나라를 향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첫 번째로 주신 것, 제일 중요한 것은요? ‘말씀’. ‘그대로 살지를 못해도, 이게 법인데, 지켜야 되는데! 못 지켜 죄송하다. 언젠가 은혜받고 지켰으면 좋겠다!’ 소망이라고 가집시다! 내가 잘 믿지 못한다고, 성경을 낮춰버리고, 휘어버리고, 내게 맞추면 그것은 성경이 안됩니다. 성경은, 말씀은 말씀대로 두고, 내가 부족하면, ‘부족하구나’ 은혜 받아서 자랐으면 좋겠다. 소망을 가져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말씀’

두 번째는, 이 말씀이 무엇이 되어야 하지요? ‘만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하늘의 은혜가, 신령한 양식으로 먹여집니다. 이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서, 걸어가다보면. 광야 세상에서는, 살아날 재주가 없습니다. 길이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에, ‘지팡이’가 인도를 합니다. ‘이 길이다!’ ‘이번에는 저 길이다!’ ‘이것은 더 이상 가면, 낭떠러지라 죽는 길이다.’ ‘이것은 좋아 보이나 넓은길이다. 그 끝이 사망이다.’ ‘이것은 어워보이나, 그 끝이 생명이다. 영생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 되고, 말씀을 지키다보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신령한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힘 있게 걸어가다가, ‘어디로 가야 될까?’ 인도를 주님이 하시니, 그게 ‘지팡이’입니다. 그 인도를 따라가는데, 위험할 때 보호하고, 안보해주시니. 지팡이는, 첫째로 ‘인도’, 두 번째는, ‘하나님의 보호의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 인도와 능력이라.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그 다음 넘겨서 22페이지. ‘조각목으로 말씀을 보관하는 그릇, 상자를 만들어라.’ ‘못나도 말씀을 모시거라, 말씀을 가지거라,’ 못나면 좋다, 못나야 더 좋다. 세상은 훌륭할수록 더 좋다. 교회는 못날수록, 희망이 있다! 세상은 잘나야 좋은 것이다. 교회는 못나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못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못 났느냐? 부족하냐? 희망이 있다. 소망이 있다. 말씀 붙드는데에는 더 유리하다! 네게 있는 준 ‘한 규빗’, ‘한 폭’, 그대로 하나가 아니라, 두 배로! 계속 이엊이라, 그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라! ‘광’. 그 다음 ‘장’. 그 다음 ‘높이’의 ‘고’ 늘 ‘절반’을 더하는 자세를 가져라.

그런데, 그 조각목으로 만든 증거궤를, 그냥 그대로는 안된다. 왜? 말씀은 전능이고, 너는 무능이니! 말씀은 완전이고 너는 불완전이니, 말씀을 깨끗한데, 너는 조각목이라, 몹쓸 더러운 너이니! 네 못난 것을 가지고 만들기는 만드는데, 이거 그대로는 안된다. 금으로 다 싸버려라! 표면은 뭐라고요? ‘정금’입니다.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바깥도 싸고, 안에도 싸라, 안팎을 다 싸버려라. 그리고, 윗가로 돌아가면서는 ‘금테’를 둘러라. “너는 정금으로 증거궤를 싸되” 하나님의 말씀은, 부족한 사람, 못난 사람이 ‘말씀 밖에 없나이다.’ ‘말씀 가자는 대로 가고, 말씀 시키는대로 하겠나이다. 저는 못났습니다.’ ‘뭐 지식도 세상 사는데에는 좀 지식이 있으나, 하늘나라 가는 지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나가면, 힘으로나 돈으로나, 한 소리 하지만은, 하늘나라 가는데에는 자본도 없고, 재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자세로 말씀을 모시고, 그 다음, “안 팎으로 금을 싸라”

금이라니요? 금이라니요? 우리는 늘 못났지만은, 우리 모든 것을 ‘불변성’으로 싸라. 집회 올 때에, 아이들은 물놀이 떄문에 옵니까? 친구들 만나 몇 일 노는 재미로 옵니까? 신앙의 사람이라면, ‘이번 집회 말씀 중에, 어떤 불변성을 배울까?’ 못난 조각목이 여기 왔는데, 싸기는 ‘불변성’으로 싸버렸습니다. 200곡 찬송 안에도 별의 별 찬송은 있습니다. 원래 공회 찬송에 맞는게 한 180곡. 한 20곡은 하도 다른 진영, 세상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울어싸니까, 한 20곡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을 좀 섞어 넣었습니다. 여유있게, 숨 좀 쉬라고, 200곡 안에서도, ‘그것 참 뭔 이런 찬송을 찬송이라고 부르는가?’ 그것만 빼다가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똑같은 200곡 안에서도, 조금 더 소망, 조금 더 신앙, 조금 더 진리, 조금 더 은혜로 들어오는 찬송도 있습니다. 찬송 한 곡을 드려도, 그 속에 ‘불변의 감사’, 찬송을 부르는 우리는, ‘조각목’입니다. 그래도 우리 안에, 찬송 목소리 좋은 분이 찬송 인도하고, 반주 좀 하는 분이 반주를 합니다만은, 다른 교회 세상 갔다 놓으면은, 뭐 반주 실력도 그냥 바닥이고, 조각목이고, 찬송 인도자도 조각목일 겁니다. 다른 교회 혹시 예배 드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훌륭하고, 성가의 그 솜씨가 굉장한가요? 우리는 조각목 솜씨이지만은, 찬송의 감사가! 찬송의 내용이! 찬송에 들어 있는 은혜가, 이것은 오늘도 변치 않고, 주님 오실 때까지도 변치 않고! 이 찬송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불려질 찬송일 것이라. 우리의 실력은 조각목이나, 찬송의 선택은 불변의 찬송으로! 은혜의 찬송으로! 진리의 찬송으로! 변치 않는 소망의 찬송으로! 이렇게 ‘포장’을 해버리면.

원래는 못난 나인데, 주님의 ‘불변의 보배성’으로 둘러 싸니까, 이 불변성이 나를 붙들고, 영원히 변치않고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상자, 다 같이 뭐라고요? ‘증거궤’입니다. 재료는 뭐라고요? ‘조각목’, 못난 우리이지만은, 못난 우리이지만은, 못난 이대로는 아니됩니다! 뭘로 싼다고요? ‘불변성’, 금으로 싸거라! 불변성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붙이를 전부 모아서, 녹여서 쌌습니다. 우리는 금반지, 금고리 필요없이, 마음의 불변. 진리의 불변, 소원의 불변.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그리고, 그 증거궤의 둘레를, 윗가를, 위쪽을 둘러가며, ‘금테’를 두르고, ‘테’는 다 아시지요? 테는 안에 답니까? 가운데에 답니까? 아니면, 제일 끝에 답니까? 제일 끝을 마무리하는 것을, ‘테’라고 그럽니다. ‘모든 일에, 모든 신앙에, 모든 말씀의 생활의 마무리는 더욱 철저히 해라!’ 집회 올 때에는, 정성과 열심히 오고, 집회 중간쯤 되면 좀 풀어지고, 집회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세상을 향하여 돌진하느니라고, 쓰레기도 버리고, 뭐 자기 자리 엉망으로 해놓고 가는 사람. 뒤끝이 좀 문제라. 뒤끝이 있는 사람, 뒤끝이 야문 사람. 가면 갈수록 엄한 사람. 이게 ‘테두리’입니다.

나무로 만든 ‘통’을 보면, 중간에도 ‘테’를 두르지만은, 제일 끝에, 제일 마지막을 딱 야물게 잡아 묶어야, 이게 튼튼해지지요? 말씀을 모신 상자, 말씀을 모신 너! 못난 조각목 같은 너! 불변의 소망과 불변의 신앙으로 너를 둘러 싸라! 말씀 생활을 하라! 모든 말씀 생활 마지막은, 말씀 생활 끝은, 반드시 ‘금테’를 둘러라. ‘더 불변성’으로! 결혼의 첫 날의 결심은 뜨겁습니다. 결혼의 중간의 마음은 그냥 사니까 삽니다. 결혼 황혼기가 되면, ‘이놈의 인간을 데리고 60이 되도록 살아? 요즘 세상이 달라졌으니, 황혼 이혼을 해버리지’ 뒤 끝이 물러지고 풀어지고,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말씀 모시는 생활에는 빵점입니다. 시작은 ‘적게’. 가면서 ‘더 긴장’! 마지막 살고 주님 앞에 설 때, ‘끝’을 더욱 조심스럽게. 여기 마무리 끝을 ‘금테’라고 그랬습니다.

모든 말씀 생활의, 마지막 마무리 끝을 늘 철저히 ‘금테’로 싸라. 뭐 축구니 올림픽이니 무슨 나라가 소란스러운 이런 몇 만명, 몇 십만명이 움직일 때를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 왔다가 간 자리, 아프리카 밀림, 정글정도 된답니다. 한국 사람, 천 명, 만 명 왔다가 나간 자리,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은, 아직도 그냥 별의별 것이 다 있답니다. 일본 사람 10만명 모였다가 일어선 자리, 먼지 하나도 없답니다. 일본 사람 욕하고 싶거든, 왜놈 욕하고 싶거든, 10만명 앉은 자리 먼지 하나 없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물로 청소까지 하고 오겠다!’ 이게 그 길이고, 이게 한 우리입니다. 전부 거꾸로 되어가지고, ‘그 놈들 미워만 하면, 애국자라, 나라를 다 맡겨도 된다.’ 그거 다 거꾸로 간 겁니다. 우리는 한 식구 하나, 사람 초상이 나면, 온 동네가 함께 울어줘야 됩니다. 생전에는 부모 쥐어박던 것이, 부모 죽으면 갑자기 뭐 의인이 되고 효자가 되어가지고, 통곡을 하고 생 난리가 납니다. 일본 쓰나미에 5만명 죽고, 10만명 죽었다는 말 나올 때, 한 동네 천 명에 500명 죽은 마을에, 울음 소리, 곡 소리 하나가 나오지 않더랍니다. ‘내 식구 죽었는데, 내 슬픔을 내가 딱 모아 내가 삼켜야지, 왜 내 죽은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슬픔을 왜 남한테다가대고 부담을 시켜?’ 안 믿는 사람입니다. 불신자입니다. 끝 마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 속도 뒤져보면, 염소도 뒤져보면, 해달도 뒤져보면, 쓸 부분이 있고, 보배가 있고 귀한게 다 있는 법입니다. 말씀 생활에, 제일 마지막 끝! 끝 마무리, 마지막을 더욱 철저하게 단속하라.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다음, 이 조각목으로 상자를 만들고, 1.5, 1.5, 2.5로 만들고, 그 다음, 금으로 싸고, 금테를 둘렀는데. 6번입니다. “네 귀퉁이에 고리를 달아라” 고리, 그 고리에, ‘목도채’. ‘나무로 채를 만들어 끼어라.’ 매고 다니도록.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금고리 몇을요? 넷을 부어 만들어라.’ ‘그 상자에 네 발을 달아라’ ‘이 편에 두 고리 저 편에 두 고리 나란히 평행으로 달아라’ ‘또 조각목으로 매고 다닐 수 있도록, 채를 만들어라. 그리고 조각목 채도 금으로 싸버려라’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고,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찌며’ 고리라니요? 말씀을 담은 증거궤, 말씀을 담은 증거궤, 궤짝 상자. ‘네 모퉁이에 고리를 달아라.’ ‘그리고 채를 꿰에서 매고 다녀라.’ 고리라니요? ‘이동’을 말합니다. ‘이동성’. 말씀을 모시고, 말씀을 따라,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어디든지! 그런데 고리는 만들 때에 ‘쳐서’ 만들지 말고, ‘부어’ 만들어라. 부어 만들면, 강해집니다. 어디로 인도하든지, 어디로 따라가든지, 강하게! 끊어지지 않게! 단단히 준비를 하거라.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왜 ‘네 쪽’인가? ‘사방 어디로 가든지!’ ‘양쪽을 나란히 하거라.’ ‘항상 균형을 맞추어.’ 참 중요한 말씀들이지요. 어느 교회든지, 교회는 여반이 많고, 남반이 적습니다. 옛날에는 아이가 많고, 어른은 적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적고, 어른이 많습니다. 옛날에도 아이가 많을 때, 어른이 많아야 좋은 것이지, 적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이가 적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 아이가 많아요 좋고, 많아야 소망이지, 그거 나쁜 것 아닙니다. 양쪽의 균형입니다. 모든 것은 만사로.

‘고리를 달아라,’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갈 수 있는 ‘이동’.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갈 수 있는 순종. 두 번째는 ‘순종성’을 여기 말합니다.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22페이지 했지요? 그 다음 24페이지. 이렇게 이제 증거궤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조각목으로. 2.5 1.5 1.5. 안 팎을 금으로 싸고, 마무리 제일 위에는 금테로 둘러 단단하게 묶고, 그 다음 고리 넷을 달아, 어디로 가든지 모시고, 이동하며 순종할 수 있게 하라. 모시는데 이동할 때에, 순종할 때에, 그 ‘채’도, 조각목의 금을 입혀라! 항상 불변의 자세로 이동이다. 집에 있을 때에도 불변, 집회 와서도 불변, 잘 때도 불변성, 식사 할 때도 불변성, 찬송할 때에도 불변성, 불변성으로 노래를 불러라. 말씀을 모시고.

[속죄소를 만들되]
그 위에다대고, ‘속죄소’. ‘속죄소’라는 것은, 높이는 없고 그냥 ‘판’입니다.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말씀은 았는데, 말씀은 가졌는데, 대속이 없으면! 속죄가 없으면! 예수님의 구원이 없으면! 말씀은 우리를 심판하며, 지옥 보내는 ‘율법의 정죄’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 예수님의 사활의 ‘속죄’가 있어야, 말씀이 내게 ‘복음’이 되고, 말씀에 내게 ‘은혜’가 되고,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니, 말씀이 ‘중심’이고, 말씀이 ‘전부’인데, 이 말씀과 하나님 사이에는 반드시, 주님의 대속의 속죄가 있어야 된다!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한 규빗 반이 되게 하라. 말씀 딱 그대로! 어떤 말씀이든지, 속죄, 주의 대속 벗어난 말씀은 없습니다. ‘딱 맞춰서’.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그리고, 속죄소를 그 말씀 궤 위에 얹어라. 하나님의 은혜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데, 죄 지은 우리에게는, 속죄, 대속 구원이 있고, 말씀이 있지. 불신자는 성경을 다 외우고, 그대로 다 살아도 지옥입니다. 더 무서운 지옥입니다. 그렇게 잘 알았으니!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속죄소의 재료도 ‘정금’입니다. 금이라니요? ‘불변’이다. 규격은요? 장이, 이 규빗 반(2.5)이다. ‘말씀을 모시는, 그 계속성, 연속성, 그 인내성과 같다’. 광은 1.5 규빗이다. 한 규빗 반이다. ‘주신 말씀, 말씀으로 내게 맡긴 내 분담, 내 책임, 한 몫은 해야 됩니다.’ 한 몫을 했다가 아니라, ‘한 몫 반’입니다. 학생들이 예배 마치고 나면, 쓰레기를 너 댓개를 만듭니다. 자기 쓰레기 자기가 가져가라, 4개 버린 사람, 4개면. 1규빗입니다. 1규빗 반은 뭔가요? 내가 버린 4에, 옆에 1-2개를 더 주워가면, 1규빗 반입니다. 속죄소도 1규빗 반. “증거궤에 딱 맞출 것” 대속과 말씀은 나란히 맞춰, 나란히 가지, 대속없는, 대속 벗어난, 대속과 상관 없는 말씀은, 전부 ‘율법’입니다. ‘정죄’입니다. 대속은 없고, 말씀이 없으면, 우리에게 있는 은혜는 다 없어져버립니다. 이 속죄소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증거궤 말씀 위에, 대속. 예수님의 대속. 예수님의 구원이 올라갑니다.

[금으로 그룹 둘을]
26페이지 넘깁니다. 증거궤 말씀 위에, 뭐라고요? ‘속죄’. 주님의 대속이, 말씀을 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천사’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천사’라는 말이 나오면, ‘하나님’으로 바꿔 읽으면 됩니다. ‘천사’는 하늘, 천사의 사는 심부름꾼, 사신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 하나님의 대사,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역사를, ‘천사’라고 그럽니다. 하나님 본체가 나타나면,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역사하고, 우리에게 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작게, 쉽게, 줄여서, 보낸 하나님의 역사가, ‘천사’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는, 곧 ‘하나님’. 그래서, 천사란, 하나님이 나타나야 될 자리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날 수가 없어서, 천사라는 하나님의 역사로 보여주시고, 우리를 길러가시는 것입니다.

수학 문제 그대로 다 풀어버리면, 아이들이 머리가 복잡하니까, 사탕 4개를 놓고. ‘사탕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는 몇 개냐?’ 사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식을 가르치는 겁니다. 얘들한테, 가감승제, 수식을 직접 말하면, 돌아서버리지, ‘사탕을 들고, 사탕 두 개에 두 개를 더하면 몇 개지?’ 네 개입니다. 아이는 사탕을 보는데, 사탕이 아니라, 그 속에 수와 식을 가르치는 것럼. 앞에는 천사라, 천사는 곧고, 훌륭하고, 만나고 싶고, 기쁨을 주니, 천사는 다 천사라 좋아하는데, 천사가 천사가 아니라! 천사에게는 늘 누가 함께 한다고요? 하나님입니다. 천사를 볼 때에는, 하나님.

말씀 위에, 주님의 대속, 주님의 대속 위에, 천사를 금으로 만들어라. 천사의 이름이 여기 ‘그룹’입니다. ‘그룹’이라는 것은 천사의 이름입니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천사.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 싸울 때에, 하나님이 힘 있게 보낼 때에는 대 장군, 미가엘 천사. 가브리엘 천사는 좋은 소식, 기쁜 소식, 힘 있는 승리의, 전쟁의 천사는 미가엘 천사. 여기 ‘그룹’이라는 것은, 천사의 이름입니다. 종류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증거궤 위에, 속죄소 위에 금으로 그룹 천사 둘을 만들어, 속죄소 이 끝 저 끝에 쳐서 만들어라.’ 한 덩어리를 때려서, 늘려서, 늘려서, 얇게 더 넓게, 더 넓게, 더 넓게, 쭈욱 위로 올라가서, 하나가 되게 만들어라. 기본적으로 신앙은, 자갈 무더기를 덤프 트럭으로 부어버리면, 쌓여지는 것은 ‘종합식’이라고 그러는데, 종합식이 아닙니다. 이것 저것 별의별 것 한 무더기 갔다가 많이 모아놓은 것을, 종합식이라고 그럽니다. 1만명 교회, 10만명 교회가 부럽고, 좋은 겁니다. 나쁜 것 아닙니다. 그런데, 1만명, 10만명이 모여진 이유를 보니까, 이런 욕심, 저런 인간, 자기를 회개도 안하고, 뚱뚱 뭉쳐, 위치가 좋고, 목이 좋으니까, 가득 모여진 것은, 아무리 많아 모아놔도, 그것은 종합식이라. 돌 무더기 같은 것은, 아무리 모여도 ‘생명’이 없습니다. ‘확장식’은, 마트처럼, 장사에 써먹는 것이지. 투표해서 당선되는, 정치가가 써먹는 것이, 생명이 자라가는 가정과 신앙의 세계는, 종합식은 안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확장식’이라는게 있습니다. 모탕이는 이만한데, 깃을 크게 만들어, 공작처럼. 참새가 날면 손바닥한만데, 잡아보면 똑, 요만합니다. 공작은 강단만큼 큰데, 잡아놓으면, 닭 밖에 안됩니다.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열이나 되는 것처럼! 둘 밖에 없는 것이, 천이나 되는 것처럼, 광고, 홍보, 확장하는 것을, ‘확장식’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뜨내기 모아놓은 ‘종합식’ 아니고, 작은 것을 큰 것처럼 광고하는 ‘확장식’ 아니고, 신앙은 다같이 뭐라고요? ‘성장식’이라 그럽니다.

부부 둘 만나, 1년 되니까, 울어쌌는 아이 하나가 생겨졌습니다. 짐입니다. 엄마는 아무대도 못가겠습니다. 이 인간 때문에. 그 짐덩이, 핏덩이, 조그만한 것이, 10년 지나니까, 아 이게 집회 올 때에 가방 들고 옵니다. 많이 자랐지요? 20살이 되니까, 부모를 업고, 병원에 가겠답니다. 아 이제 먹여놓은 값을 하지요? 30살이 되니까, 자녀들을 쭈욱 거느리고 와서, 염려말라고 그럽니다. 이렇게 작은 것이 자라서, 커서, 배우고, 길러지고, 성장하는 것을 신앙의 세계라고 그럽니다. 여기 뭐든지 금은 보면, 때려서, 쳐서, 늘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를 때려서, 넓혀 넓혀 멀리 멀리. 이 새벽에, 증거궤에 대해서, 이 자리에서 한 말씀 전하는데, 이 말씀이 전해지고, 각 교회에 전해지고, 생활 속에 전해지고, 이게 금을 쳐서 늘여지는 것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 때에 한 말씀 듣고, 까먹어버리는 것. 주일 오전 한 말씀 듣고, 월요일까지 늘여가는 것. 수요일까지 늘여가는 것. 토요일까지 쳐서 쭈욱 늘어지는 것. “쳐서 만들되” 금이니까 불변성이지요? 제작을 할 때에는, “쳐서 만들 때” 조금씩 조금씩 늘여가며, 자꾸 자꾸 늘여가며 만들어가는, 신령한 세계를 여기 말합니다.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어디에 둘 것인가? ‘속죄소와 한 덩어리로 이어지게 만들어라.’ 두 개는 떨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대속은 다른게 아닙니다. ‘이어져’ 있지. ‘속죄소 두 끝에 천사를 만들어라.’ 말씀 위에 속죄소, 속죄소 위에 하나님의 세계가 이 끝, 저 끝 양면에서 쳐다보는, 그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은혜가 있는 것이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래서, 천사의 형태는, ‘날개를 높이 펴서’. 날개라니요? 하늘을 나르는, 신령한 하늘의 세계, 무한한 세계, 무궁한 세계를 활동 무대를 영원히 끝없이 광활히 나가는, 하나님의 날개, 천사의 날개를 높이 펴라! 다 해봐야 이만큼이지만은, 이만한 날개를 보며, 저 창공을 활짝 펴는 천사의 그 무한한 세계, 영계의 시공을 초월한 끝 없는 세계, 영계 천국을 넘쳐, 하나님의 본체를 향하여 ?

Comments

- 2020.06.09 21:52
하나님의 본체를 향하여 끝없이 나가는 날개입니다.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속죄로, 다 죄악을 덮고, 죄악을 해결하고. 죄악 세상을 초월하여, 하늘의 은혜로!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양쪽 천사가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라.’ 속죄만! 속죄로만! 속죄를 통해서만! 속죄 안에서만! 말씀을 붙들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는 전부 책임지는 것이, 여기 기구의 증거궤, 위에 속죄소, 위에 그룹 천사까지 좀 진도를 나가봤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 마음 속에 새겨보다 보면, 조금 재미를 붙였으면 좋겠는데.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을 항하여 가는 우리들, 오늘 세상을 애굽으로 삼고, 믿음 생활을 광야 생활로 삼고,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우리의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영생으로 삼고, 믿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광야라 살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믿고는 세상을 못 삽니다. 직장 생활 못하게 되어 있고, 공부 못하게 되어 있고, 가정 생활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생활 제대로 하려면, 세상은 광야 같아서 못삽니다. 하나님을 모시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모시면, 구원의 주님의 대속 받은 우리가, 말씀을 모시고, 말씀으로 살면, 그 위에 하나님의 날개를 편 은혜의 무한한 천사의 은혜를 통해, 말씀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가 말씀으로 주님을 붙들면, 물 없는 광야를, 40년 사막 광야를! 노래 부르며, 애굽의 사람들은 ‘제대로 믿으면 저 교파 못 견뎌날껀데? 변치 않고 그대로 믿고 나가면, 저 교회 유지가 안될 것인데? 진짜 타협없이 끝까지 믿음으로 살면, 저 인간 세상 못살 것인데?’ 애굽에서는 광야로 들어갔으니, 살 리가 없다고 그러고, 광야에 40년 인간으로 살리는 없고, 조각목 같이 못난 우리이지만은, 말씀을 모시고, 말씀을 품고, 말씀으로 살면 사는 것이고, 이 말씀으로 살 수 있는 대속이 주어졌고, 덮혀졌고, 그 위에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니, 남들은 못 산다고 해도 우리는 살고, 말씀의 능력으로 살고, 살아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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