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18.8.6 출25:23 말씀으로 사는 떡상, 빛으로 나타나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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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18.8.6 출25:23 말씀으로 사는 떡상, 빛으로 나타나는 등대

교인 1 245 2020.06.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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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7 화전 (성막 4)

제목 : 말씀으로 사는 떡상, 빛으로 나타나는 등대 

본문 : 출애굽기 25장 23절 -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광야 40년 애굽을 떠나, 사람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물 없는 곳, 먹을 것 없는 곳, 생명이 살 수 없는 곳, 천국을 향하는 믿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붙여 살며, 만족하며, 먹고 살며, 행복해 하겠나이까,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에게 광야 40년처럼, 천국을 향하는 하룻밤 나그네 저희들에게, 하나님 한분 모시면 전부이고, 하나님 한분 없으면, 도무지 살 수 없는 환경을, 주님이 마련해주시며, 성막의 재료와 자세로, 새벽에 증거궤를 만들어, 말씀을 모시고, 말씀을 살며, 이제 오전에 떡상으로 양식 먹어, 하늘 양식 배불러, 등대의 빛으로 영육의 영광의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금번에도 집회를 허락해주셨으니, 끝까지 동행해주시고, 인간이 전하고, 인간이 들어, 인간으로 끝나는 인간의 잔치가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고, 자기 양심 속에 성령으로 들어, 성령이 주시는 새 생명의, 새 사명의, 새 앞날의 소망만이 넘치는 이 자리가 되게 해주옵소서. 어린 심령 하나까지도 붙들어, 먼저 살펴본 저 아이와 같이, 금과 은의 보배성은 주셨는데, 세파 속에 놋으로 빛난 주석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여기 학생들 되게 하시고, 세상에 휩쓸려 받은 금과 은의 보배를, 잃어버리고, 잊혀지는 저희들 되지 않도록, 주님이 친히 붙들고 역사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 복습

[성막 자세]
첫날의 첫 시간, 하나님을 모시는 자세. 하나님을 모시는 일에, 내가 물러날 수 없고, 빠질 수가 없어, 주님을 닮은 만물의 주인! 영계의 영원한 주인될 우리의 몫, 나의 몫, 나의 분담. ‘원하고 원함으로’ 동참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증거궤]
하나님을 모시는 나. 하나님을 모신 나. 내가 ‘성전’입니다. 광야 40년은, ‘성전’을 ‘성막’이라고 그럽니다. 내 속에, 어떤 인격을 만들어야 될까? 첫 번째로는, 새벽에. ‘말씀을 모시는 그릇이 되라.’ ‘말씀을 모시는 사람이 되어지라.’ 못난 조각목, 몹쓸 조각목, 이 땅 위에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형편 없는 나이지만은, 명령을 따라 말씀을 담는, ‘넓이’ ‘길이’ ‘높이’를 맞추고, ‘변치 않는 순종’, 변치 않는 순종만이, 변치 않는 믿음이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바로 ‘불변’입니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 변치 않는 것은 못 만듭니다. 주님 인도를 따라가는, 순종. 믿음이 참 순종, 참 ‘바른 믿음’이 되어질 때, 그 믿음, 그 순종이 바로 ‘불변’입니다.

[금으로 안 팎을 싸서]
‘말씀을 모시라! 말씀을 모시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첫 방법이니라.’ 무엇으로 말씀을 모실 것인가? 이 말씀이 뭐라고 하든, 어디로 인도하든 따라가는 순종하는. ‘못난 조각목이지만은, 순종 하나로 모시겠나이다.’ 이 때에, 조각목이 불변의 금으로 안 팎을 싸고, 순종하고  나가는 ‘증거궤’를 새벽에 살펴봤습니다.

■ 떡상

오전에는 2번째. ‘떡상’을 만들어라. ‘증거궤’라는 것은, ‘궤짝’ 상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상자입니다. 23절에, ‘떡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밥상’을 말합니다. 떡을 먹는 이스라엘은 ‘떡상’, 밥을 먹는 우리들은 ‘밥상’. ‘하나님을 모시려거든, 밥상을 만들어라. 떡상을 만들어라.’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어라. ‘말씀을 모시는 증거궤도, 못난 조각목 같은 너이지만은, 모실 수 있다.’ ‘말씀을 먹어 힘을 삼는 신앙의 양식, 떡상도 조각목으로 만들면 된다.’ 28페이지 제일 위에, 한번 성구를 읽어가며 적어보십시다. 다같이 시작.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진설병]
이게 ‘떡상’입니다. 증거궤는 상자니까, 속에 증거의 말씀이 들어가야 되겠지요? 떡상은 떡을 놓는 상이니까, 떡상을 만들면, 떡상 위에 떡이 올라가야 되겠지요? 그 올라가는 떡을 ‘진설병’이라고 합니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항상 하나님 앞에 떡을 놓아둘찌니라. 이게 ‘진설병’입니다. ‘항상 두는 떡’. 다같이 뭐라고요? 진설병이라고 그럽니다. 항상 두는 떡, 언제든지 먹도록. 늘 먹어야 되는 말씀. 아침 한 끼 먹으면, 내일 아침은 안 먹나요? 오늘 세끼 먹었으면, 내년에는 밥을 안 먹어도 되나요? 죽는 날까지 아침. 죽는 날까지 점심. 죽는 날까지 저녁. 아침 먹고 돌아서서, 점심, 저녁. 다음날 자고나면 또 아침, 점심, 저녁. 생명이 유지가 되려면, 생명이 자라가려면, 생명이 활동을 하려면, 밥이라는 것은 한번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늘 먹는 것이라! 다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이것을? ‘진설병’이라.

그래서, 증거궤 안에 ‘말씀’을 담아두고, 그 다음, 두 번째는 ‘떡상’을 만들어, ‘늘 먹을 수 있도록.’ ‘늘 먹는 사람이 되라.’ 언제라도 먹도록, 항상 먹도록. ‘안 먹으면 아니된다!’ 안 먹으면, 일도 못합니다. 그래서, 진설병은 항상 두는 떡. 돈 많은 사람은, 또 요즘은 다 경제가 좋으니까, 먹을 것이 넘쳐, 먹지를 못해서 다 음식이 미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떡상 위에 떡을 늘 올려놓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먹을 것은 넘칩니다. 그런 육체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괄호 속에, ‘신앙의 양식’.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니까 떡상을 만들고, 떡을 만들어 진설병을 올려놓습니다. 신약의 우리들은, 떡상, 밥상 필요없고, 항상 신령한 양식으로. ‘언제든지 신앙의 양식을 먹고, 신앙의 양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

무엇이 신앙의 양식인가?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구약은 떡으로 살았기 떄문에, 떡상 위에 진설병, 떡을 올려 놓았습니다. 신약에 주님이 오셔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이 양식이었구나! 말씀을 가르치려고, 구약에 떡 상을 마련하라고 하고, 떡을 올려놓으라고 그랬구나! 성전 안에 항상 떡 상이 있고, 떡 상 위에 항상 떡이 있었는데, 그 떡을 올려놓으라는 것은 그 떡이 아니라, 신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늘 먹고, 말씀을 늘 양식을 삼고 살아라, 이것을 가르치려고 그러하셨구나! ‘신앙의 양식’이, 바로 진설병입니다. 구약은 조각목으로 증거궤 상자를 만들어야, 하나님이 함께 하고. 오늘은,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모시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구약은 조각목으로, 떡상을 만들어, 떡을 올려놓으면,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광야를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오늘 세상 속에 믿고 가는 우리들은, 말씀을 양식 삼아.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새벽에 배운 말씀, ‘우리는 조각목이라’ 조각목은 오늘 비슷하게 말하면, 무슨 나무와 같다고요? 아카시아 나무와 같습니다. 가시나 많고, 이파리 뜯어 토끼풀이나 주면 줄까, 사람이 열매를 먹을까? 아름다워 구경을 할까? 베어다가 땔감을 할까? 만들어 가구를 만들까? 뭐 그냥, 천하 몹쓸 나무라 하면, 아카시아입니다. 베어서 없애느니라고 정신도 없는 나무. 누가 조각목인가? ‘못난 우리’. 세상에서는 아무리 잘나고, 하나님 앞에, 복음 앞에, 말씀 앞에는, ‘참 몹쓸, 못난 저입니다’ 할 때에, 자기가 조각목이 되는데. 여기 떡상을 만드는 것도 바로 ‘조각목’입니다. ‘재료는 조각목으로 만들어라’ 조각목이라니요, 어떤 자기라고요? 못난 자기. 학교 갈 때에는 어깨 펴고 가십시오. 직장갈 때에는 자랑스럽게 가십시오. 월급 값을 하시고, 한달을 열심히 일했으면, 당당하게 월급 받아야 됩니다. 대통령 투표하러 오라면, 당당하게 가서 한 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는 훌륭할 수 있고, 훌륭한 것이 좋으나, 하나님 앞으로 올 때에는, 교회로 걸어갈 때에는, 신앙 생활을 할 때에는, 성경을 펴서 말씀을 읽을 때에는, 말씀 앞에 ‘참 죄송합니다. 참 부족합니다. 참 저는 못난 저입니다.’ 이래야 말씀을 모실 수 있고, 이래야 말씀이 ‘양식’이 될 수가 있습니다. ‘조각목으로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떡상을 만들거라.’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이번에는 ‘규격’입니다. 말씀을 담는 ‘증거궤’는, 넓이가 얼마였지요? 1.5 규빗입니다. 길이는 얼마였던가요? 2.5 규빗이었습니다. 높이는 1.5 규빗이었습니다. 말씀을 담는 증거궤는, ‘한 단위에 절반을 더하고’ 한 단위 한 단위로 이어지며, 끝없이 주님 모시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길에, 끝없이 가다가 절반을 더했습니다. 보탰습니다. 떡상은 넓이 1, 길이 2. 딱 짤라버렸습니다.

말씀을 모시고 살던. 노아 좀 볼까요? 120년 홍수를 준비하며 이어지는 120년이, 1규빗의 길이었습니다. 홍수 후에,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을 1규빗을 가야 되는데, 포도주에 취하여, 세 자녀 중에 하나는 완전히 망쳐버렸고, 하나는 신앙을 망쳐버렸고, 셈 하나만 영육 간에 성공했습니다. 천하의 노아도, 자식 농사 셋 지어, 절반 날아가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이어가는 의인! ‘당대의 완전한 자라, 의인이요.’ 말씀을 따라 120년 한 토막을 그대로 살았는데, ‘길이’가 1규빗이었습니다. 홍수 후에 1규빗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때에 토막이 나버렸습니다. 요셉이 17살까지가, 아버지 밑에 순종하던 한 토막, 1규빗. 노예 팔려, 애굽 13년을 살았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말씀의 순종의 생활. 아버지에게 말씀 배워, 아버지 밑에 17년을 살 때에도, 그 말씀으로 계속 이어갔고. 그 다음 노예로 살며, 감옥에 들어가서도 말씀을 붙들고 이어지며, 계속 갔는데, 그 마지막 순간, 과거 17년, 또 13년. 30년을 충성했고, 30년을 말씀 하나로 이어졌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빛이 오지를 않으니까, 요셉과 같은 분도, 감옥의 마지막 순간, 떡 맡은 관원장, 술 맡은 관원장 둘이 들어 올 때에, 그리고 두 사람이 하룻 저녁 꿈을 꾸고 나갈 때에, 살아나가는 술 맡은 관원장을 붙들고 사정을 해버렸습니다. 한 토막 이어졌고, 2 규빗, 두 단위가 이어졌는데, 이 정도면 이제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해방을 주시고 자유를 주셔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주지 않으니까, 마지막 2규빗 끝나기 전에 그만,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 나가는 길에, 나를 좀 빼내어달라고 ‘청탁’을 해버렸습니다. 아버지 밑에 17년, 한 토막. 팔려가 고난의 객지생활 한 토막. ‘두 토막’을 잘 말씀 모시고 걸어갔는데, 여기에 ‘반 토막’을 더 더하여, 예비하고 준비를 했더라면! 술 맡은 관원장이 들어왔을 때에, 청탁하지 아니했을 걸.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주의 은혜가 오지 않으니까 그만, 요셉도 인내로 더 기다리지 못하고,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몇 년 고생을 더 했지요? 만 2년을 고생을 더 했습니다.  이게 1규빗, 2규빗에 ‘반 규빗’을 더해야 되는, 이런 ‘여유’입니다. 10년만 고생하면 주님이 은혜주지 않겠느냐? ‘절반’을 더하는 것이, 복된 사람입니다. 10년, 10년, 20년 충성했으니, 20년 끝에는 주님이 은혜와 해방을 주지 않겠느냐? 더 이어져도 순종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게, 가로, 세로에 ‘절반’을 더할 때에, 늘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① 장 2규빗, 광 1규빗
여기 떡상에는 길이가 ‘2규빗’. 주님 인도하는데로 끝없이 양식 먹고, 충성하는 이런 양식의 생활. 또 내게 맡긴 분담, 내가 맡을 나의 몫을 해내야 하는 1규빗. 남이 맡을 것은 남이 맡고, 내가 맡을 것은 내가 맡고. 내가 내 몫을 맡았는데, 내 범위를 넓혀주면 자꾸 넓어지지만은, 그래서 사람마다, 이 1규빗이라는 넓이가 다 다른겁니다. 3살짜리는 배게 하나만 갔다놓아도, 1규빗. 그거 장하지요? 10살이면 밥 먹고, 어머니 설거지하는데, 그릇 서너개 닦아주면 1규빗. 같은 1 규빗이 조금 넓어졌지요? 이제 10대가 넘어서면, ‘제 몫은 제가 합니다.’ 1규빗이 더 넓어졌습니다. ‘용돈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는 용돈을 드리겠습니다.’ 결혼을 하면,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1 규빗을 더 넓혀, ‘주님 주신 이 사람까지 제가 책임을 지겠나이다’ 1규빗이 2배나 늘어나버렸습니다. 장은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발 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 사람의 키와 사람의 체격과, 자라가는 과정에 따라, 높이와 넓이가 다 다릅니다.

② 고 1.5규빗
여기에 말씀을 먹고, 순종하는 ‘떡상’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순종하는 것’은 ‘2규빗’이다. ‘주님이 주신 자기 몫’은 ‘1규빗’이다. 이대로 올라가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향상은, ‘1규빗에 반을 더하거라.’ 원래 성전 안에 성소가 있고, 성소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더 깨끗한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할 때에는, ‘하나 더 하나 더, 좀 더 조심’으로 나아가는 이것이 지혜이고, 이것이 복입니다.

[정금으로 싸고]
그 다음, 떡상의 특징은, 4번. 떡상에는 ‘테’가 있습니다. 24절. ‘떡상을 정금으로 싸라’ 앞에 증거궤 때에도, 너는 조각목이라, 못났지만은, 불편의 믿음으로, 대속의 깨끗함으로, 순종하고 걸어가는 길에 오는 고난으로 놋을 삼아, 이렇게 금, 은, 놋. 보배들을 가져야 되는데, 말씀을 모시는 생활은 특별히 순종 하나로 불변으로 싸거라. 24절. ‘떡상도 정금으로 싸라.’ 같습니다.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리고, ‘떡상의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테라는 것은 ‘마무리’. 테라는 것은 ‘끝 부분’입니다. 모두 옷을 봐보시지요. 옷의 제일 끝에는 하나를 더 대어, 이렇게 ‘테’를 만듭니다. 이쪽에도 그렇지요? 어디든지 보면, 마지막을 ‘테’로 만들어, 마무리를 야물게 ‘단속’을 합니다. 살아가는 평생이 귀하지만은. 마지막 죽을 때 더 조심하고, 깨끗하게 죽을 때. 마무리 ‘테’가 ‘금테’로 끝이나야 되고, 공무원 60살까지 잘 근무하고, 충성하다가 60은퇴하던 해에 그만 실수 한번 해 놓으면, 끝 마무리가 다 풀려버립니다. 그동안 수고한 것은, 다 헛일해버리지요. 아이를 가지고 길러서, 훌륭하게 사회에 내보냈는데, 우리공회 출신 멀리가신 목사님 한분. 아이를 20년, 모든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아이로, 참 훌륭하게, 잘 길렀는데. 미국에 손 꼽는 대학 입학을 해가지고 차 사고, 학교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어 버렸습니다. 잘 길러, 잘 가르쳐, 잘 만들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시대의 인재, 신앙의 귀한 인물이 되었는데, 20살 입학식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어버렸으니, 이 끝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끝이 풀어지면,  안으로 다 풀어져버리지요? 그래서, 뭐든지 만들 때, 마지막 끝 마무리를 야물게 단속하는 것이 테입니다. ‘불변의 금으로, 금테를 만들어, 말씀으로 양심 삼는 신앙의 생활에 힘을 삼거라.’ 테입니다. 마무리.

그 다음 밑에는, ‘턱’입니다. 앞에 강단 보시지요, 턱이 보입니까? 이게 지금 떡상입니다. 이게 떡상인데, 여기에 떡을 놓고, 여기에 잔을 놓으면, 넘어져 흘러 내립니다. 그래서, 상 주변에 이렇게 지금, 이 넓이를 보시지요, 꼭 손바닥 넓이만큼 이렇게, 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떨어지지 말라고. ‘방지용’입니다. 금테 ‘테’는 끝 마무리. ‘턱’은 ‘방지용’입니다.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말씀 먹고 말씀으로 양식 삼아, 말씀이 주는 힘은 능력이니! 광야 40년을 살아가는 능력이니! 하늘 양식이니! 신령한 능력,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데, 하나 넘어지고, 둘 빼버리고, 셋 새어 나가버리고, 하나 둘 뽑다보니까, 나중에 다 흐려지고, 뭉개지고, 없어져버렸습니다. 굉장히 큰 성이라도, 댐이라도, 밑에 돌 하나 뽑아버리면, 그 옆에 돌 따라 하나 빠져버리고, 둘 빠지면 셋 빠지고, 넷 빠지고. 어디에서 샜는지 흔적도 없이, 다 빠져버리는. 이런 ‘허실’, 이런 ‘낭비’, 이런 것을 ‘턱을 둘러 막아라.’ 떡상을 만들 때에, ‘끝을 마무리를 단단히 하라.’ 끝 마무리, 테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대고, 흐르지 않도록, 도망가지 못하도록, ‘턱을 만들어 잘 방지를 하거라.’

말씀이 양식이면, 말씀을 먹고, 말씀의 생활을 할 때에, 무엇이 ‘마무리’이며, ‘테’며, 무엇이 ‘턱’일까? 설교의 요약이 된다면, 1시간 설교를 듣고, 한시간 반 듣고, 그냥 설교 듣고, 마치고 그대로 가버리면, 뭐가 없다고요? ‘마무리’ 테가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전반부는 이 말씀이구나, 중간은 이 말씀이구나.’ 그때마다 마무리, 마무리를 하다가, ‘오늘 새벽 말씀이 마칠 때에, 말씀을 모시는 조각목의 생활을 해야 되겠구나! 오늘 새벽의 말씀은, 이 뜻이구나.’ 마무리를 할 때에, 그게 막바로 ‘금테’가 되어집니다. 설교의 요약도 마무리가 되겠지요? 말씀으로 힘을 삼는, 말씀의 생활의 ‘교리’ 같은 것이, 다 금테가 되겠지요? 변치 않고, 틀리지 않는 교리는 ‘금테’입니다. 주일학생으로 말하면, 지난 주, 교회의 장년반 설교를, 간단하게 한 페이지로 몇 자로 딱 줄이면 공과가 됩니다. ‘그 공과 중에서도 요절 한절만은 반드시 외워야 되겠다.’  그래서, 주일학교 공과에 제목 요절을 암송합니다. 한 주간 장년반 선생님들이 배운 것, 주일학교 그 날에 배운 말씀, 마지막에 요절 하나가, 요약된 절수, 요절이 끝 마무리입니다. 딱 틀어쥐면, 마무리가 되겠지요? 성경 전체로 보면, 십계명 같은 것이, 그냥 성경 중에 10계명, 그 중에 든 것이 아니라, 신약과 구약을 전부 다 요약하고 마무리하고, 딱 틀어쥐면 10계명으로 다 모여집니다. 10계명 같은 것이, 바로 성경 전체의 ‘금테’가 되겠지요. 변할 수 없는! 변하지 않는! ‘많은 말씀의 마지막을, 마무리 하는’

성경(?-구약)이 끝나고, 초대 교회 2천년 역사가 시작될 때 쯤, 교회가 200년 400년 500년 흘러가면서, 66권 성경을 가지고, 실제 살아가다가 보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마무리, 이 요약을 빼고는, 교회는 되지 않겠더라.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것을 빼고는 아니 되겠더라.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지금 제가 뭘 외우고 있지요? 남학생들? 사도신경인가요? 66권을 10계명으로 요약하니까, 66권의 끝 마무리, 금테가 ‘십계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초대교회가, 사도신경을 만드는 그 사도신경이, 초대교회의 교리의 요약이 되어져, 사도신경만 외우면, 이단을 물리치고, 바로 믿는 힘이 솟구쳐, 그 사도신경을 수백년 외우고 왔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상식이라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지만은, 필요 없어서 안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마무리, 오늘 우리의 요약은 무엇일까?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가리라.’ 백 목사님 30년 설교하고, 30년 집회하고 마지막 가기 전에 던진 한마디입니다. ‘나는 독립으로’ 나 없어도 혼자 믿을 수가 있겠는가? 공회 모든 200개 교회들이 함께 믿으며 믿지만은, 너 한 교회라도 끝까지 믿겠느냐? 너 교회 교인 전부가, 천지만엽 다 갈라져도, 너는 독립으로! 말 없는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가겠는가? 이런게, 신앙의 결심의 ‘마무리’가 되어졌었지요. 이런 것을, 떡상의 금테라고 그럽니다. 금테, 끝 마무리. 마지막을 요약하고, 마지막을 딱 틀어 쥐도록. 고 3까지 12년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수능시험 보기 1달 전에 빌빌하다가 그냥 시험 실패한 사람, 뭐가 되지 않았다고요? 마지막에 테두리, 금테가 없어서 그냥 12년 수고가 헛일 되는 겁니다. 12년 공부가 좀 서툴고, 아쉬운데가 많을찌라도, 12년 마지막 고3 시험을 앞두고, 한달 간 요약하고, 복습하고, 열심히 집중하니까, 무엇이 만들어졌지요? ‘테두리’가, 마지막이, 매무새가 야무지면, 안의 것을 담는 겁니다.

떡상은, 말씀을 담은 ‘증거궤’의 말씀을 모시기만 하지 말고, 말씀을 받았으면, 말씀을 가졌으면, 말씀을 붙들었으면, 증거궤가 되었으면!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라, 말씀으로 실제 살아보거라! 살아봐야, 말씀이 주는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보지! 정말 생명이 살 수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말씀 하나 붙들고, 걸어가면 걸어갈 길이 나오더냐? ‘금테’로 단단히 두르고,

[턱을 만들고]
그 다음. 손바닥한 ‘턱’을 만들어라. 턱이라니요? ‘받은 말씀 흘리지 않도록’, 받은 깨달음 주신 깨달음, 각오, 여기저기 ‘흩어지지 아니하도록’. 한 시간 예배 잘 드리고, 말씀 요약 잘하고, 마무리까지 했는데, 종 치고 나가면서, ‘오늘 반찬이 뭘까? 간식이 뭘까? 물놀이 누가 1등할까?’ 그러다보니까, 받은 말씀 다 내버렸습니다. 어디갔는지, 흔적이 없습니다. ‘턱을 둘러, 받은 말씀 도망가지 않도록 붙들어 메거라!’ 그래서, 예배 후에 학생들 2명, 3명 선생님과 둘러 앉아, ‘오늘 받은 말씀이 뭐더라? 뭐더라?’ 이런 것이, ‘테두리’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방지턱’이 되겠지요. 턱을 만들어라.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25절, ‘사면 전부에’.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앞에도, 뒤에도, 사면 전부를 뺑 둘러, 손바닥 넓이만한. 손바닥 넓이만한, 턱이 이만큼이면, 더 좋지 않나요? 턱이 천장까지 닿으면. 더 철저하지 않나요? ‘네 손을 펴면, 네 손을 거두면, 네 손으로 막아 거두면, 거두워질 수 있는!’ 이만큼 우리를 보시고, 그만큼만 턱을 만들어라. 우리는 예배 마시고, 통성기도가 서툰 공회인데, 서툰 공회인데, 원래 설교 뒤에 통성 기도는, 이 시간에 받은 말씀, 이 시간의 각오 흐려지지 아니하도록, 못을 박아버리는 겁니다. 도망가지 않도록, 짜매버리는 겁니다. 용접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못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살 것입니다. 도와주소서. 이제는 출발합니다.’ 설교가 마치고, 마지막에 통성 기도로, 용접을 하고 땜빵을 하고, 마무리를 하고, 받은 말씀 각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짜매 버리는 것인데, 아무리 말씀을 받아도, 많이 받아도, 마무리가 없고, 조인이 없으니까, 그냥 끝이 풀여져 버립니다. 말씀을 잘 거두고 만들었으나, ‘턱’을 세우지 않으니까, 사방으로 흘려 버립니다. ‘허실 말하라. 흘리지 말아라.’ 신앙의 양식을 허실하지 않도록.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그 다음, 그 떡상을 위해, 떡상 네 모퉁이에 ‘금 고리 넷’을 만들어, 떡 상 ‘네 귀퉁이’에 ‘네 발로’ 땅에서 떨어지게 해야 하는데. 증거궤도 발을 달아 땅에서 떨어지고, 떡상도 발을 달아 땅에서 떨어지고. 말씀은 땅에서 역사하지만, 땅에 뒤집어지고, 땅에 뒤섞이고, 땅 화되는 것은 금지입니다. 땅에 있으나, 땅이 아닌 말씀. 땅에 있으나, 땅 위에서 땅을 호령하는 말씀, 가르치는 말씀. 교회가 세상 속에 전도하고, 세상 속에 심방하지만은,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섞여서 사는 것 같지만은, 말씀은 차원이, 안 믿는 사람, 우리 인간을 넘어서고, 땅에서 떨어져, 위에서 가르치는 말씀. ‘떡상도 발 네 개를 달아서, 땅에서 띄우거라.’ 말씀 실행은, 땅에서 실행하고, 현실에서 실행하지만은, 인간이 발로 밟고 사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되 턱 곁에 달라]
‘그 발 네 귀퉁이 위에다대고 금고리를 달아라’ 고리는, 사방으로 움직이는 이동을 말했습니다. 이동성. ‘증거궤는 말씀을 모시고, 말씀이 어디로 가든지, 고리 넷으로 사방으로 순종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라.’ 떡상에 고리 넷을 단 것은, 말씀으로 실행하고, 말씀으로 힘을 삼아, 말씀으로 활동할 때에, 어디든지 어디로든지, 어디까지든지 갈 수 있는, 이런 ‘이동성’, ‘순종성’을 말합니다.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그 다음 28절입니다. 지금 떡상, 금테, 또 손바닥만한 턱, 그 다음 이동의 순종하는 고리, 또 채를 만들고. 전부 다 어깨에 매게 되는데, ‘모시고’ 그말입니다. 28절, ‘또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라’ 채를 만들다니요? 증거궤도 떡상도 전부, 막대기를 만들어가지고, 어깨에 매게 되어 있습니다. ‘매라! 모셔라! 너 있는 힘을 다하여, 말씀이라 모시는 것이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말씀 생활은, 네가 모시는 것이다!’ 학교가는 학생, 학교 가기 싫을 때에 가방 질질 끌고 가는 학생 혹시 보셨습니까? ‘이놈의 공부를 또 해야 되나? 오늘도 또 가야 되나? 이 책을 오늘도 가서, 들여다봐야 되나?’ 공부가 하기 싫으면, 책가방을 질질 끌고 가다가 그냥 놓쳐버리면, 다리 밑에 떨어져서 혼도 나고 그럽니다. 누구 이야기 하는지 혹시 아시겠습니까? 하기 싫은 공부, 가기 싫은 학교, 마지 못해서 가다가 그냥, 다리 밑에 떨어져 가방이 떨여져, 도망을 가는, 이런 자세 말고! 어떻게요? ‘말씀은 어깨에 메는 것이다.’ ‘말씀은 모시는 것이다.’ ‘말씀의 실행의 자세는, 모시는 것이다.’ 네가 말씀을 활용을 하고, 네가 말씀을 써먹는다고 알게 쉽게 말을 하지만은, 내용적으로는 ‘말씀이 나를 붙들고 실행하니, 나는 순종합니다.’

여기 증거궤도, 여기 떡상도, 모든 것은 전부가 다 성전의 기구들은, ‘고리’를 달고, ‘채’를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옮기는 채, ‘불변의 순종의 금으로 싸라.’ 왜 하필 고리에 채가 들어가느냐? ‘모시는 것이다!’ 제단도 모시거라. 떡상도 모시거라, 향단도 모시거라, 증거궤도 모시거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은 전부 모시는 것이다!’ 120년 순종하고 이어지던 노아가, 그 다음에 1규빗, 한 단위 더 가야 되는 것이 남아 있는데, 포도주에 취하여 실수했을 때, 둘째 아들 함은 와가지고, ‘천하의 의인, 아버지도 실수하네?’ ‘천하에 완전한 아버지도 부끄러운게 있네?’ 그게 자기 뿌리인데, 자기의 생명인데,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며 자랑을 하고 떠들어버렸습니다. 그 자세가, 흑인의 자손, 영원히 영육 간에 불행한 사람이다. 셈은, 아버지의 실수, 아버지의 허점을 들을 때에, ‘아버지의 잘못은 내 머리 위에 쏟아지니, 이것을 어떻게 고치며? 어떻게 좋게 만들어볼까?’ 겉옷을, 외투 겉옷을 가지고, 아버지를 잘 감싸야 되겠는데, 셈과 야벳이 아버지 옷을 가져갈 때에, 질질 끌고 갔던가요? 둘이 휘익 저으며 갔던가요? 아버지 옷 하나를, 아들 둘이 가져가며, 둘이 어깨에 메고 갔습니다. 무거워서? 커서? 많아서? 아버지 옷 하나인데, 두 아들이 앞에서, 뒤에서, 어깨에 메고. 이게 복 받을 셈이며, 복 받을 야벳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잘못이지, 아버지의 잘못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잘못은 뿌리니, 내게 영향을 미칠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잘 고쳐, 좋게 만들어 볼까? 그 자세, 그 정성, 그 접근이 보니까, 아들 둘이 옷 하나를, 어깨를 메고 갔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어깨에 메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떡상은 말씀의 실행, 말씀의 능력의 생활인데, 이것은 우리가 모시고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29절입니다. 떡상은 밥 먹는 상이니까, 따라합시다. ‘대접’, ‘숟가락’, ‘병’, ‘잔’ 여학생들 몇가지인가요? 첫째는, 대접. 둘째는 숟가락. 셋째는 병, 넷째는 잔. 4가지. 그러면, 먹는 것이 몇가지로 나뉘어졌나요?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대접’과 ‘숟가락’은, 떡을 먹을 때. ‘병’과 ‘잔’은 음료수를 마실 때, ‘떡’과 ‘잔’입니다.

왜 성전 안에 떡상 위에, 떡을 차려놓고, 왜 포도주 병을 놓고, 주전자를 놓고, 이렇게 따르는 잔이 있었는지? 구약 때에는 몰랐습니다. 왜? 십계명을 돌판에다가 기록했는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뒤에 생각해보니까, ‘아! 세월 속에 잊지 말라는 말이구나.’ 뒤에 알았습니다. 떡상에 떡을 차리고, 포도주 병과 잔이 있으니까, 떡을 먹고, 포도주 잔을 마시는 것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이, 배가 고프니까. ‘광야 40년 걸어가는데 배가 고프니까, 하나님도 말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가려니까, 데리고 가려니까, 하나님도 밥을 먹고, 잔을 마셔야, 이 200만명을 업고 지고 가시겠구나.’ 그래서, 성전, 성막 안에 떡상에, 떡이 있고, 잔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언제 그렇게 알았더라고요? 3천 500년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에, 성막 안에, 떡상에 차려놓는 ‘떡’과 ‘잔’을 보면서, ‘하나님도 우리 몰래 이 떡을 드시는가? 그래야 배가 고프지 않는가?’ ‘목이 마르니, 이 잔을 마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그리 알았습니다. 그리고 1000년 1500년이 지나, 어린 양 주님이 오셔서, ‘내 살과, 내 피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지 않는 자는,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 그리고, 십자가에 살을 찢고,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야, 제자들이, ‘구약의 성전 안에, 떡상 위에 떡이 주님의 몸이었구나!’ ‘내 죄를 대신 찢는, 주님의 희생이었구나!’ ‘주님 날 위하여 그 몸을 찢으셨으니, 나 죄 짓고는 살 수 없는 힘을 삼아야 되겠구나!’ ‘주님 날 위하여, 죄 때문에 피를 흘리신, 그 피를 생각하니, 내가 죽고, 내가 피를 흘리지.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되겠구나!’

떡상에 떡이 있고, 포도주를 마시는 병과 잔이 있습니다. 오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살 찢을 몸이, 우리의 신앙의 양식이며, 이게 힘이며, 증거궤 안에 들어있는 말씀으로 살려니까, 그 말씀대로 연약한 우리가, 아무리 살아봐야 율법이고, 아무리 살아봐야 죄인 밖에 되지를 아니하는데. 증거궤 안에 있는 말씀으로 우리가 살 때에, 잘못된 것, 부족한 것, 정죄 받을 모든 것은 주님이 살 찢고, 피 흘려, 전부 다 해결을 하셨으니! 떡상 위에 이 살 찢고, 피 흘린 주님의 이 몸과 피. 흘리신 이 사활의 대속이, 말씀을 말씀으로 살게 하고! 대속이 힘을 주어서! 광야 40년을 살아가게 합니다.

[대접과]
떡상 위에 첫째는 뭐가 있다고요? ‘대접’. 접시 중에 어떤 접시가 대접인가요? 큰 접시가 대접이겠지요. 큰 그릇이라니요? ‘말씀을 많이 담는’ 그릇. ‘말씀의 양식이 넘치는’ 그릇. 이런 사경회 집회는, 큰 그릇이겠지요? 각 교회의 새벽예배는, 좀 작은 그릇이겠지요? 홀로이 산에 가서 기도하며, 성경을 읽을 때에는, 더 작은 그릇이 되겠지요? 목회자들이, 공부하는 양성원 과정은, 큰 그릇이겠지요? 엄청. 큰 그릇이라. 이런 집회, 이런 사경회, ‘성경 한 독을 한 주간에 온 교인들이 함께 읽어봅시다’ 통독 주간 이런 것은, 큰 그릇이 되겠지요? 그러면, 매일 매일 3장, 2장 읽어가는 주일학생들의, 그런 말씀의 그릇은, 조금 작은 그릇이겠지요? 큰 그릇도 필요하고

[숟가락]
그 다음은, 숟가락도 있습니다. 숟가락이라니요? ‘말씀을 떠 먹는’ 도구를 말합니다. 집회니까, 많은 말씀으로, 많이 차려놓은 큰 그릇인데, 대접인데. 들어봐야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으나, 말씀 마치고, 일대일로 ‘이게 이런 뜻이다. 이게 저런 뜻이다.’ 예배 후에, 적은 것을 선생님들이 봐주고, 살펴 주고, 복습하는 이것을 통해서, 한 입, 한 입 들어간다면은, 그것은 또 ‘숟가락’이 되겠지요?

[병과 잔]
그 다음, ‘병’이라는 것은, 떡이 아니라, 포도주를 담는, 음료수를 담는 그릇입니다. 성경에 포도주라는 것은, ‘술’인데, 맨 정신의 사람이 술이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돈만 알고, 공부만 알고, 세상 놀러 다닐 줄만 알던 사람이, 세상에 멀쩡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설교가 들어가고, 말씀이 들어가고, 신앙이 들어가고 나니까, 돈도, 공부도, 세상 생활도, 좋은 놀러가는 것도 다 버리고 미쳐서, 산 중에 집회를 가면, 이것은 미쳤지, 이것은 맨 정신은 아닙니다. 뭐가 들어가서 이런가요? ‘포도주’에 취해버렸습니다. 인간이 옳고 바르게 살아야 되는데, 나쁜 사람으로 취해버릴 때에는 ‘음행의 포도주’라고 그러고, 세상 밖에 모르고, 세상만을 향하던 사람을, 하늘나라를 향하여,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데, 완전히 정신 빠지고, 다 쏟아져버리면, 이것은 ‘주의 피에 팔린’, ‘주의 피에 취한’, ‘주님 대속에 사무쳐, 나도 그 걸음을 걸어가리라.’ 이게, 성막 안에 있는 ‘진설병’을 올려놓는 떡 상 위에, 진설병과 옆에 나란히 놓아둔, 병 안에 들어간 ‘포도주’입니다.

세상 밖에 모르던 사람이, 주님의 대속의 피에 취하여, ‘지옥 갈 나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 받을 나를, 하나님이 사람되어, 피 흘려, 피 쏟아, 한 방울까지 다 쏟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으니, 내가 이리 살아서는 안되겠다!’ 지금까지는 남이 땀 흘리고, 나는 선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임금님이요, 양반이요, 훌륭한 줄 알았는데, ‘하늘의 하나님이 선선한데, 천국에 계시지, 왜? 무더운 팔레스타인 가나안에 오셨을까? 뜨끈뜨끈 천국에 계시지, 하나님이 왜 추운 이 땅 위에 오셔서, 헐벗고 사셨을까?’ ‘날 위하여 고난 당하셨으니, 나도 내게 맡긴 사람을 위하여, 내가 수고하면, 그 사람의 신앙에,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나도 앞서가신 주님처럼, 수고해야 되겠다! 내가 땀 흘려, 누가 신앙으로 도움이 되고, 누가 구원에 유익이 될까?’ 그런 생각이 기어 들어갔으면, 이게 스며 들어갔으면, 이게 적셨으면, 주님의 대속의 피에 취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담으면 ‘병’입니다. 따라서 쉽게 먹을 수 있으면, ‘잔’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희생의 정신을, 잘 요약하고, 잘 담고 있는 ‘교리’가 병이라면, 이것을 간단한 ‘소책자’로, 이것을 간단한 테잎 하나로 전해진다면, 그것은 ‘잔’이 될 수가 있겠지요. 우리 지나간 30년 동안 복습을 했습니다. 연구소에 몇 만개 쌓아놓은 그 자료 전체가 ‘병’이라면, 이번 집회는 이 말씀, 다음 집회는 이 재독. 이번에는 이런 교재. 간단한 교재에 몇 자를 담아 봤습니다. 이 번 집회 때에, 잠깐 먹기 좋도록. 이런 것을 ‘잔’이라고 합니다. 이 교회가 나온, 십만 페이지의 테이프, 십만 페이지의 말씀의 분량은 ‘병’이 되겠지요. ‘사상’면, ‘지식’면, 사람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이런 사상과 지식면은 ‘잔’이라고 그럽니다. ‘포도주’라고 그럽니다. 먹고 힘을 얻어서, 열심히 순종하는 것은 ‘떡’이라고 그럽니다.
■ 등대

32페이지로 넘어갑니다. 31절. 자 지금까지, 첫 번째는 말씀을 모시는, 다같이 뭐요? ‘증거궤’ 상자입니다. 그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말씀으로 실행하는 두 번째는 무슨상? 떡상. 세 번째는, 말씀을 모신 증거궤를, 그 말씀을 먹고 떡상으로 힘을 얻고, 삼아 움직이면. 그러면, ‘등대의 빛’은 나오는 겁니다. 전기가 연결이 되었는데, 스위치를 켜면 전등이 나오는 것처럼, 히터를 커면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을 모신 증거궤, 말씀으로 실행하고, 힘을 삼아 움직이는 떡상! 그러면, 그 결과로 저절로 이제 빛이 비추어져서, ‘이게 옳다. 이게 맞다. 이것은 이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밝혀버리는, 빛을 맡은 것이 ‘등대’입니다. 31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32페이지 제일 위를 보시지요. 등대를 만들 때에 첫 번째는 무엇이 필요하다고요? ‘밑판’이 있어야 된다. 밑판이 든든해야 된다. 불 켜는 등대가 밑판이 든든하지 않아서, 넘어지면, 쓰러져 버리면, 아무데나 불이나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곱 등잔을 버틸, 일곱 가지를 버텨낼. 첫째로, 든든한 밑판이 필요하다. 밑판. 밑판 하나로부터, 그 다음 무엇이 돋아 나오고, 자라 나오지요? ‘줄기’들이 나와야 됩니다. 줄기 제일 끝에는, 무엇이 제일 올라 앉아야 될까요? 불을 켤 수 있는 ‘잔’이 올라 앉아야 됩니다. 그 잔 밑에 ‘꽃 받침’과 ‘꽃’을, 무늬를 놓아 만들거라. 꽃은 아름답지요? 꽃은 보기 좋지요? 꽃은 ‘영광’을 말합니다. 영광스러운, 영광스러운 아들의 출세 뒤에는, ‘꽃받침’은 누구인가요? 아빠인가요? 엄마인가요? 보통? 시골에 용이 났습니다. 별 것 없는 집안에, 위대한 인재가 태어났습니다. 이게 ‘꽃’입니다. 그 꽃을 위하여, 꽃을 받쳐주는 ‘헌신’, 밑받침이 ‘꽃 받침’입니다.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한번 헤아려 볼까요? 첫째는, 밑판. 둘째는, 줄기. 세번째는, 잔. 네 번째는, 꽃받침 위에 꽃을. 끊어진 것을, 이어라? 용접해라? 붙여라? 조립해라? 쌓아두거라가 아니라, ‘이어지게’ ‘한 덩어리로 연하게 이어지게 하거라.’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밑판으로 쳐서, 가지 일곱이 나오게 하거라.’ 가운데 한 가지. 양쪽으로 세 가지. 그래서, 가지가 ‘여섯’이, 등대 곁으로 나오게 됩니다. 세 가지는 이편, 세 가지는 저편. 가운데 줄기 하나가 있어서, 총 7가지가 돋아납니다.

[등대 : 진리의 빛]
등대는 1번. 뭐하는데 쓴다고요? 불을 밝힙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죄인지? 사망인지? 생명인지? 천국가는 길인지? 지옥가는 길인지? 짧은지? 불을 밝히도록, 세상에 두신 기관, 단체를, 다같이 뭐라고 그러나요? ‘교회’라고 그럽니다. 교회를 보니까! 교회의 운영을 보니까! 교회 안에 가르치는 내용을 들으니까, 믿는 교인들의 행동을 보니까! ‘술은 별로 안 좋은갑다.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갑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이 있는가보다. 세상이 전부는 아니구나.’ 교회는, 세상의 불을 밝혀, 옳고 그른 구원과 멸망, 천국과 지옥, 하나님과 인생을 보여주고, 비춰주는 것을 교회라고 그럽니다. 교회의 사명. 이것이 ‘등대’입니다. ‘저 교단은, 회원이 천 개 교회가 있는데, 청소를 잘 하더라.’ 그것은 불교도 잘합니다. 시청 청소부들은 청소 더 잘합니다. 그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은, 교회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모르는 것! 세상이 못 하는 것!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 알 수 없는 것!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주로 오셨으니, 예수님이 메시야다!’ 절에 없습니다. 교과서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없습니다. 부잣집에 없습니다. 학자에게도 없습니다. 교회만 가졌습니다. 교회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었구나! 내 죄를 해결했구나! 여기 구원의 길이 있구나!’ 세상이 모르는 것. 세상에게 밝히는, 교회의 사명을 ‘등대’라고 그럽니다. 무엇을 밝힐 것인가?

따라합시다. ‘진리의 빛.’ 어떤 것이 구원인가? 어떤 것이 멸망인가? 어떤 것이 영생인가? 어디로 가야 천국인가? 진리의 빛을 비추고, 알려주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을, ‘등대’라고 그러니, 등대는 바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사명을 말합니다. 교회의 사명이란, ‘진리의 빛’을 말합니다.

뭘로 만들어야 될까요? 아궁이를 나무로 만들면, 아궁이가 타버리겠지요? 깨끗한 음식을 더러운 요강으로 만들면, 못 먹겠지요? 요강은 더러운 것을 담고, 쓰레기는 쓰레기 통에 담고, 음식은 깨끗한 그릇에 담고. 불 붙이는 아궁이는, 쇠라든지, 흙으로 만들어서 타지를 않아야 되는 것처럼. 옳고 바른 진리를 비추는 교회라는 것은, 등대라는 것은, 세상 학문으로 교회를 유지할까요? 과학 기술로, 교회가 세상에게 빛이 될까요? 우리는 돈이 없어서, 흉내도 못내는데. 시내 좋은 예배당, 경제력이 있고, 교인들 훌륭한 분들이 많은 예배당은, 교회 1층에 도서관을 만들어, ‘성경 말고, 아무 책이나 책이 없어서 못 보는 사람들은, 도서관 1층이 있으니, 무료로 오시라’ 도서관을 만들고, 이게 세상의 빛이랍니다. 그것은, 국립 도서관도 합니다. 예배당 3층에 목욕탕 만들어놓고, ‘돈 없는 사람 누구든지 와서 씻고, 누구든지 공짜로 가십시오. 교회에 오니까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그것은, 목욕탕이 더 잘합니다. 이게 빛이랍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예배당마다 목욕탕 공짜, 커피집 공짜, 그 다음 책방 공짜, 공부방 공짜라고 해놓으면, 그 예배당 옆에 사는 빵집은 뭐 먹고 살지요? 예배당 옆에 목욕탕은 장사 어떻게 하지요? 예배당에서 커피를 공짜로 풀어대면, 빛이 되나요? 커피집들 다 데모할껄요? 그것은, 세상에 맡기고. 교회가 복음, 교회가 진리, 진리의 빛 외에 교회가 손을대면, 우선은 좋은 것 같은데, 뒤에 탈이 납니다. 탈이 하나가 아니라, 하나 잘하고 나면, 탈이 둘이 나고, 셋이 나고, 넷이 납니다. 한다고 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의 사명은 아닙니다. 백년 전에 선교사들이 미개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에, 학교도 만들고, 병원도 만들고, 유치원도 만들고, 이래서 복음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 하고, 이제 조금 전도가 되면은, 그런 것은 안 믿는 세상, 사회에 맡기고, 교회는 복음만 전해야 되는데, 미개한 나라에 선교사들이 와서, 유치원 학교를 하다가, 학교가 잘되니까 점점 길러서, ‘연희학교’가 ‘연희 전문학교’가 되고, ‘연희 전문학교’가 ‘연희 전문대학’이 되고, ‘연희 전문대학’이 뭐가 됐지요? ‘연세 대학’이 되고, 우리 나라 손 꼽는 연세 대학이 되고 나니까, 지금은 불신자들이 거기에서 다 불신 세상만 가르칩니다.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이사’였는데, 몇 년 전에 법이 바뀌어가지고, 지금은 다, 목사 아닌 사람들이 다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운동이 아닌 것이라,

[정금 한달란트로 만들되]
‘교회는 진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라.’ 진리의 빛을 비추려다보니까, 재료는 뭘로 해야 된다고요? ‘정금으로 하거라.’ ‘정금 한 달란트로 하거라.’ 달란트는, 성경에 제일 큰 단위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전부를 다하여’ 안 팎, 과거, 현재, 미래. 네 신앙 생활, 세상 생활 전부를 다 모아, 한 덩어리에 정금을 쳐서 만들어, 밑판을 만들고, 일곱 가지를 만들고, 일곱 등잔을 만들고, 영광의 꽃을 만들고, 영광의 꽃을 위하여, 수고하고 보이지 않는 밑받침의 ‘헌신’의 종들이 되어지라.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번의 ‘모양’입니다. 꽃은 어떤 꽃인가? ‘살구꽃 형상’의 잔 셋. 잔 셋 밑에는, 꽃받침 셋. 그 밑에 꽃, 꽃받침에 꽃이 있게 하고. 등대 가운데 줄기에서 양쪽 옆으로 ‘여섯가지’를 꽃받침이 있게 하라.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 가운데는 잔이 네 개입니다.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라’ ‘양쪽으로 나가는 두 가지 밑에마다 꽃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줄기와 연결이 되어져야 된다.’ 제일 위에 꼭대기에는, ‘등잔 일곱이 앞을 비추게 하라.’ 앞을 비추게 하라.

[밑판]
밑판은, 34페이지로 가서. 밑판이란, 교회가 진리로 세상을 밝히고, 교회가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우리 믿어가는 길에, 옳고 바른 진리의 빛을 비추게 하는 ‘저력’을 말합니다. 밑에서 받쳐줘야, 위에서 빛을 비추지, 무엇으로 받쳐주나요? ‘증거궤의 말씀을 모신 생활’, ‘말씀을 먹어 양식으로 삼은 힘!’ 말씀 모신 ‘증거궤’, 말씀으로 먹어 양식 삼은 ‘떡상’이 저력이 되고, ‘밑받침’이 될 때에 빛이 비추어진다! 성경은 잘 몰라도, 세상 공부를 잘해 주일학교 아이들 공부를 잘 가르쳐주니까, 공부 배우려는 아이들이 교회로 많이 오면, 이게 빛인가? 그것은 빛이 되려고, 전도를 하려고 지금, 시도를 하는 것이고, 지금 기회를 잡는 것이지, 그 자체는 ‘빛’이 아닙니다 그건. 학교가 더 잘 가르칩니다. 학원이 더 잘 가르칩니다. EBS가 훨씬 더 잘 가르칩니다. 목사보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떡 하나를 주고, 연필 하나를 주고, 영어를 가르치고, 그 다음, 아이를 봐주는 것은, 빛이 될 준비의, 이 아이를 가르칠 기회를 잡기 위해, 전도의 기회까지는 되어지지만, 그 자체는 빛이 아니라! 말씀 모신 증거궤, 그 말씀으로 살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말씀으로 살아본 그 행위! 이게 결과적으로 보일 때에 그게, 바로 ‘등대’를 받쳐주는 ‘밑판’이 되어 집니다. 밝혀주는 ‘저력’!

[등대 7줄기]
여기에서 등대 줄기가 하나 나오고, 양쪽으로 가지고 3개씩 나와서, 총 7가지가 나오는, 줄기는 무엇을 ‘줄기’라고 했을까? 작은 것이 자라가며, 이어가며 뻗어나오는, 그런 이어지는 연결을 ‘가지’라고 그럽니다. 예배당 개척할 때에, 목회자가 가장 마음 속에서 욕심나는 것은, 옆에 큰 교회의 기둥되는 집사님 둘 모셔오고, 저쪽 감리교 장로님 둘 모셔오고, ‘이렇게 모셔오면, 얼마나 교회가 좋아질까?’ 이것 욕심내고, 시도하지 않는 교회 없을 겁니다. 이것 저것 모아다가 쌓아가면 돌 무더기는 될지라도, 생명이 자라가는 자기 성장은 없습니다. 부부 둘 목회하면, 아이 하나 낳아 주일학생 하나. 이게 학교 다니며 전도하면, 주일학생 둘. 이게 졸업하면, 중간반 하나 더해서 셋. 그 집 아이의 엄마가 나오면, 장년반 하나 붙어, 장년반 셋, 주일학생 하나, 주일학생 둘. 그러다가 중간반이, 우리처럼 20살에 결혼하면, 부부 한쌍이 함께 하면, 교회의 교인이 넷. 아이를 낳으니까, 또 주일학생이 다섯, 여섯. ‘어느 세월에 그래가지고, 대 교회를 만들고, 부흥이 될까?’ 그것은 토막 공사하는, ‘종합식’ ‘종합건설’이고, 교회는 ‘생명’. 생명은 하나로 출발하여 둘. 둘이 자라서 아이가 학생되고, 청년되고, 10년이 걸려야 되고, 20년이 걸려야 되고, 30년이 걸려야 되고, ‘언제 그래가지고 교회 부흥하게요?’ 주님이 모아주면 받지만은, 내가 가서 사냥하고, 낚시하지는 아니합니다.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자라, 점점 커지는 것이지. 증거궤와 떡상의 밑판을 쳐서, 늘여서 늘여서 줄기가 나오고, 줄기 양 옆으로, 가지가 하나 둘 뻗어 나와서, 7가지가 되어지게 해라. 이어가는 연결로, 자라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리고, 제일 꼭대기에는, ‘비추는’, ‘비추어 주는’ 곳이라. 잔은 비추는 곳. ‘교회의 사명’입니다. 하나면 되지, 왜 일곱잔인가요? 많아서 좋으면, 10개, 100개를 하지, 왜 하필 7잔인가요? 계시록 1, 2, 3장에 보니까, ‘일곱 교회’ 하나님의 교회 전부. 성경을 읽다가, 7이 나오면, ‘이것은 하나님이 지나가신 것이로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이로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로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전부로구나’ ‘하나님의 전 노력’ ‘하나님의 전부’ ‘하나님의 총력’ 이런 것을 줄여서 말을 할 때에, 숫자로는 얼마를 표시한다고요? 7을 말합니다. ‘일곱, 일곱잔이라.’

가정에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으면, 좋습니다. 좋지요? 야단은 누가 치고요? 아빠가 좀 치고, 달래는 것은 뒤에서 누가 다 공작을 하고요? 엄마가 하고. 둘을 모으면, 아이 하나를 완전하게 기릅니다. 이게 7입니다. 부모가 일곱이라야 되는 것 아닙니다. 엄마 아빠 둘이 역할을 잘하면, 둘이 합해서 일곱 잔입니다. 할머니도 있고 부부가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 다 합해서, 또 아이 하나를 잘 기르면, 셋이 7도 되고, 넷이 7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에는 일곱이라 했으면, 일곱을 맞춰야 되고, 맞추면, ‘왜 하필 7일까?’ ‘엿새에 창조하고, 안식일을 쉬시며, 세상을 만들 때부터 일곱으로 토막을 내놨구나. 일곱을 다 합하면, 하나님의 역사의 전부구나.’ ‘알기 쉽게, 우리에게 일곱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 은혜 전부, 그 뜻을 7이라는 숫자에 담아주셨구나.’ 일곱 등잔이라, 하나님의 완전을 말하는구나.

[살구꽃 형상의]
왜 하필 살구꽃? 등대의 꽃을 많이 표시를 해놨는데, 전부 ‘살구꽃’입니다. 왜 하필 살구꽃인가요? 일반적으로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을 ‘살구꽃’이라고 그럽니다. ‘살구꽃보다 매화꽃은 더 일찍 피던데?’ ‘아예 동백꽃은 겨울에 피던데?’ 이런 아이디어, 이런 생각이 척척 나오면, 머리가 좋은 인간이 아니라, 망할 놈의 생각의 망할 인간입니다. 이게 인간 속에는 악령이, 잘 배워나가는데, 옆으로 이리저리 빼고 더합니다. 성경에, 살구꽃을 기록함은, ‘일찍 피는 꽃’. 혹독한 한 겨울 석 달에, 나무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이게 소망이 있을까? 이게 꽃을 피우고, 이게 다시 이파리를 맺을 수 있을까?’ 혹독한 삼겹을, 고난을 보니, 요셉의 13년 종 노릇하다가, 교도소 가서 희망 없는 꼴을 보니, 요셉의 뒷날에 꽃이 필까, 잎이 날까? 열매가 과연 맺어질까? 아무리 봐도, 요셉은 희망이 없는 듯합니다. 그 고난의 시기가 다 지나고 나면, 제일 먼저 피는 꽃. 다같이 무슨 꽃요? ‘살구 꽃’. 시련을 거친, 시련을 거친 아름다운 깨달음. 꽃이니까, 아름답지요? 영광이지요? 보기가 좋지요? ‘시련을 거쳐’, ‘고난을 거쳐’ 아이 10달 고생하고 그게 울고 나오지, 한 달 만에 뚝딱해놓으면,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마지막 9달, 10달 죽을 고생을 하지만은, 다 채우고 나와야 인간이 되지, 한달 빨리나오면, 다 같이 뭐라고 그러나요? ‘팔푼이’ 됩니다. 고생스러우니까, ‘한달 빨리 나오고, 한달 많이 먹이면 될꺼 아니냐?’ 아무리 먹여도, 일찍 나온 것은 죽는 날까지 팔푼이는 팔푼이입니다. 채우고 나와야지. 시련을 거친, 이런 살구꽃을 등대에 딱 표시를 해놓고, ‘말씀 모시려면, 고생 많이 한다.’ ‘말씀 양식 삼아 살다보면, 고난, 시련 많이 당하는 법이다.’ ‘네 생각에 이만큼 하면 되겠지가 아니라, 이만큼 두 배도 간다. 두 배가 아니라, 두 배의 덤을 더하고 있어야지 아니면, 요셉처럼 마지막에 실패할 뻔 할 수 있다. 아니면 요셉처럼 마지막에 실패할 뻔 할 수 있다. 노아처럼 아예 실패하는 사람도 된다. ‘살구꽃을’

[꽃받침과]
그 다음, 그 살구꽃 밑을 보니까, 뭐가 있더라고요? 꽃 밑에는 ‘꽃받침’이 있습니다. 여기 십대 이쁜 사람들, 저 좀 볼까요? 10대, 꽃다운 10 뒤에 할마씨가 되어가는, 어머니의 고생이 꽃받침이 되어 있는 겁니다. 태어나는 아이가 이뻐 갈수록, 이쁜 엄마는, 늙어지고 추해지고, 쭈그리 밤씨가 되어야 됩니다. 안되려면은 어떻게 하면 되지요? 미장원 가서, 부지런히 씻고 닦고 발라서 그냥, 딸이 언니인지? 엄마가 언니인지? 모를만큼 하고 다니는 것이, 요즘 잘나가는 젊은 분들인가요?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 백말의 영화의 면류관이라. 머리만 희면요? 세월 지나, 세월 속에 말씀 붙들고, 말씀으로 살다보니, 여기 패이고, 저기 패이고, 주름도 들어가고, 고운 새댁이, 아이 셋, 넷 기르다보면, 늙어야 정상인데. 아무리 낳고, 아무리 길러도 늙지 않으니, 이게 인간인가요? 영생인가요? 불변인가요? 주님이 좀 늙으라면, 늙을줄도 알아야 되고, 어른이 되라면, 어른 자리에 앉을 줄도 알아야 되고, 전부 아이가 못되어서 생 난리가 난 세상에. 세월 지나가면, 어른도 됩시다. 늙으라면, 늙기도 하십시다.

꽃받침이란, 아름다운 꽃을 위하여 ‘숨은 희생’. 지금 예배보는 이 자리에, 저는 ‘꽃’입니다. 이렇게 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꽃받침은 누가 했는지 아십니까? 조례교회 조사님이, 지금 5년-6년 차 지금, 꽃받침으로 늘 여기에 와서 정신도 없습니다. 고마운 것은, 한번도 웃음을 잃어 본적이 없습니다. 예전의 분은 훨씬 일을 잘합니다. 그런데, 일을 많이 해놓고, 막 그냥 이렇습니다. 꾸중 들을까봐서 그냥, 저도 눈치보고, 전부들 눈치 많이 보셨지요. 조례 조사님은, 모덕 목사님만큼 일하는 것은 약간 한 단위 낮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치 않고 웃습니다. 더하고 싶어, 감사합니다. 꽃이 있으면, 꽃 밑에는 꽃받침이 있습니다.

꽃도,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꽃을 하고. 꽃은 그냥 꽃이 되나요? 시련을 거쳐야 꽃이 되지. 그 시련 밑에는 꽃받침이 받쳐주고, 올려주고 수고한 희생이 있으니. 성공한 아들 밑에, 희생한 부모가 있지? 지 놈이 하늘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와서, 잘되고 그런 사람 보셨나요? 지가 뭔 공수 부대라고? 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이라고? 태어나기까지 10달. 그것 업어 기르느니라고 5년. 요새 것들은 한 30년 길러야, 인간 될까말까 이런 희생, 헌신, 숨은 것이 다 밑거름이 되고, 그 다음 ‘꽃 하나’가 돋아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이 아름다움을 위하여, 고생하고, 수고하고, 자기 아름다움을 다 희생한 부모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5계명입니다! 5계명 알아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5계명이 부모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부모 감사도 모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감사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이게 5계명의 핵심입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거짓말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라. 너 위하여, 너 인생을 다 바친, 네 부모에 대한 감사, 은혜가 없는 것이, ‘내가 부모 감사는 없어도, 부모 말은 듣지 않아도, 하늘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인데!’ 그래요? 제가 효자 출신이면은, 이 설교를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못합니다. 효자 출신이 아니니까, 개망나니니까, 효도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게 회개입니다. 그리고 함께 그러지 말자고 촉구하는 겁니다. 꽃이 있으면, 꽃받침이 있습니다. 이 꽃받침.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그 다음, 꽃을 받쳐주는 수고. 마지막에, 37절에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등대 위에서 앞을 비취게 하며’ 금 한 달란트, 밑판, 그 다음 가지, 살구꽃, 꽃받침, 맨 위에 등잔. 그 위에 등이, 불을 환하게 밝히는데. 38절, 뭐가 따라가야 된다고요? 불집게는 있어야 됩니다. 밥은 먹고, 양치질 하기는 싫어하는 아이들. 등잔에 등이 비취고 나면, 등잔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뭐가 필요하다고요? 불집게가 필요합니다. 불을 옮겨야 되니까. 그리고, 불이 불 노릇을 하고 나면, 무엇이 남지요? 따라합시다. ‘불집게’ ‘불똥’. 밥은 잘 먹고, 설거지는 누가 하고요? ‘남편이 돈 잘 버니까, 식모가 하면 되지’ 그런가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맞벌이는 좀 다르겠지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버는 남편을 위해, 설거지는 아내가 하는 것이, 아내다운 겁니다.

‘불집게’란 불을 옮기는 겁니다. ‘불똥 그릇’은, 불을 켜서 빛을 비춘 ‘뒷처리’를 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시대의 ‘의인’이었고, 그 의인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또 백영희 목사님으로 이어졌으면, 무엇이 이어놨지요? 불집게입니다. 또 한분이 더 생겼으면은, 불집게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일곱 등잔으로 온 천하를 환히 비춘 것까지만 여기 다 아시지요? 그 뒤에 뭐가 떨어졌지요? 불똥은 떨어지는 겁니다. 초도 초를 켜면, 촛불은 좋은데, 초 밑에 눌러 떨어지는 물이 들어서 징그럽습니다. 일곱 등잔의 빛은 비췄는데, 그 빛을 천하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데, 그 안에는, 그 손양원 목사님의 아이들은, 자녀들은, 막내들은! 불을 비추고 나면, ‘불똥’이 떨어져 추한 겁니다.

제가 업무적으로, 출옥성도들, 순교자들 가족처럼 지내는 가정이 참 많습니다. 이인제 목사님 가정, 주남선 목사님 가정, 손양원 목사님 가정, 이렇게 알고 지내는 가족들이 많은데, 이인제 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백영희 목사님은, 일곱 등잔의 빛을, 천하에 비춘 것이 맞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이게 빛이 되기 위하여, 뒤를 살펴보면, 밑을 살펴보면, 부인은 상처 받고, 큰 아들은 난리나고, 막내딸은 엉망이 되고, 그런 겁니다. 사무엘은 천하를 비췄지만은, 사무엘이 비추는 그 등잔 불 밑에 보니까, 아들 두 놈은 개 망나니입니다. 이럴 때에, ‘사무엘도 별 것 없네, 자식 동사는 굳혔네’ 하면, 사무엘의 은혜를 받은 ‘배은’이 됩니다. ‘시대를 비추는 사무엘이 되고자, 아들 둘에 집중했더라면, 얼마나 귀하게 만들었을터인데! 나와 시대를 비추고, 남을 비추느니라고, 자기 아들 둘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 아들 두 놈은, 천하의 개망나니가 되었네.’ 뭐가 되었지요? ‘불똥’이 되었습니다. 누가 치우지요? 우리가 치워야지.

목사는 모시

Comments

- 2020.06.09 21:54
목사는 모시고, 목사한테는 은혜 받고, 사택에 뭐 같은 인간 태어나면, 손가락질 하면, 문제가 좀 있습니다. 불똥도 치워야 됩니다. 훌륭하냐? 훌륭한 사람 둘을 만들고, 셋을 만들고, 넷을 만들어 자꾸 불을 비추어, 등대를 살려나가거라. 그 등대가 비추고 나면, 거기에는 떨어지는 불똥이 있느니라. 연탄에 하룻 저녁에 뜨뜻하게 고맙게, 좋게 지내고, 연탄재는 옆집에 던져버리고, 그런 사람 보셨나요? 옛날에 그래보셨나요? 70년대 80년대 주일학교 심방가면, 새벽 5시, 6시에 자기 연탄 치마 밑에 감춰가지고, 옆집 대문 앞에 버리는 사람, 참 많이 봤습니다. 불은 내가 떼고, 연탄재는 니가 치우고. 우리 사택 주변에도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손님 굉장히 많습니다. 손님 다 받고, 쓰레기는 다 사택으로, 담 넘어 다 던져버립니다. 그것은 니가 치우고. 학생이 공부해서, ‘출세는 내가 하고, 학비는 부모가 대고’ 아이 나면, 또 기르는 것은 외갓집에 가고, 친가집에 가고. 기르고 나면 또 가져가고. 부모는 불똥이라, 추한 것 던져 버리고.

일곱 등잔의 일곱 빛이, 천하를 밝히려면, 그 밑에는 떨어지는 불똥이 있고, 불똥 처리까지 다 감당을 해야 됩니다. 순교자 가정, 출옥 성도, 의인들의 가정, 자녀들 식구들하고 하도 많이 접하다보니까, 다른 분들은 기 막힌 일, 한번 두 번, 세 번 당하면 전부 욕을 해버리고 돌아서지만은, 저는 힘 있는데까지 계속 합니다. 이 불똥! 이 연탄재! 이것이 우리를 밝히고 뜨뜻하고, 한국 교회를 살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을 하셨나? 그 받은 은혜를 알면! 밤새도록, 연탄불의 뜨뜻한 것을 알면, 연탄재 하나 버리는 것은, 그렇게 원망하고, 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이어가려면 한도 없고, 등대까지. 떡상, 등대, 둘을 오전에 마쳤습니다.

■ 불똥이 떨어져 추해진다 해도, 말씀만 모시고, 말씀을 먹고, 진리만 비추는 빛의 생활로

① 말씀을 모시고, 말씀을 먹고, 빛된 생활에서
‘말씀을 모시거라’ 뭐라고요? 증거궤입니다. ‘말씀을 모시고 가지고만 다니지 말고, 그 말씀으로 힘을 삼고, 살아가거라’ 뭐라고요? 떡상입니다. 그리고 나면, 저절로 뭐가 된다고요? 옳고 바른 빛은 비추어집니다.

② 불집게와 불똥 그릇의 책임까지
돌아서서 어떻게요? 불집게와 불똥이 문제입니다. 하나를 밝혔으면, 하나를 둘로, 둘을 셋으로 이어가고, 넓혀가는, 복음 운동이 자라가야지, 나만 비췄으니까 나만 먹고, 입 싹 닦아버리고. 이 좋은 설교, 이 좋은 내용, 남이 알면, 인기 떨어질까봐, 나만 가지고, 나만 설교하고, 전부 비번 걸고, 돈 받아 남들은 마음대로 못 가지게 하고, 불집게는 던져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밝혀 좋은 것은, 너도 밝히고, 너도 밝히고, 너도 밝히고, 천하 만민들아! 이 불빛으로 환하게 비추어가자! 그 뒤에는, 고난, 추함, 어지러움, 참 보기 딱한 것이, 많이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것까지 정리하고, 이것까지 책임을 져야, ‘등대 생활’의 ‘마무리’가 되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
증거궤의 말씀 모시고, 떡상으로 말씀으로 살고, 등대로 빛의 생활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지면, 이제 이만하면 가질 것은 다 가졌습니다. 나머지는 가속도로 만들어가면 됩니다. 성막의 진도도 그렇고, 실제 살아보면, 이것만 붙들면 이제는 나머지는 힘 있게 달려가면 되는 앞날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이위 성자 하나님. 사람되어 우리의 영원한 지옥의 형벌, 우리의 영원한 부끄러운 수치를, 신인양성 일위로 사활대속하사, 영광의 하늘의 빛나는 보석으로, 영원한 하늘의 별로, 아예 주님을 대신할 하나님의 자녀, 영계와 우주의 만물의 주인공 주님을 대신하는 주인을 만들기 위하여, 금번에도 집회 허락하시고, 5월 집회에 배운 천지 창조, 새로운 시대를 열때마다 주시는 은혜를 살펴보게 하시고, 새로 열어주는 새로운 시대, 새 사명, 새 현실을 걸어갈 때에, 주님 모시는, 주와 동행하는, 주로 사는 주의 것! 빛이 되고, 모두들 따라 올 수 있도록까지, 우리를 만들며, 우리를 고쳐야 되겠사오니, 배우는 은혜 주시고, 고치는 은혜 주시고, 자라가는 은혜를 주사, 능력으로 세상을 이 길에서 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어린 아이 하나까지 붙들어 주옵소서. 예배 전에 귀한 아이의 걸음을 봤습니다. 이 아이의 출발은 보배인데, 이 아이의 남은 인생은 세상 속에 묻히지 않을지, 변질되지 않을지, 고난 속에도 그 깨끗함을 지켜낼 수가 있는지가 문제나이다. 주님 귀한 길 우리에게 주셨으니, 잘 배우고, 이어지는 실의 연결로, 불변의 금으로, 깨끗한 은의 신앙을, 놋의 영광으로 지켜내며, 빛내는 우리가 되도록, 집회 내내 함께 하시고,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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