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밤19.5.7 출21:18 샹해법 타인 사명 기능 요소를 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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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0 98 2020.06.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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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월 집회 6

제목 : 상해법 타인 사명 기능 요소를 손상 

본문 : 출애굽기 21장 18절 -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되게 할지니라

(기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죄와 마귀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켜, 신인양성 일위의 무한하신 자본 인하여, 옳은 길, 말씀의 길, 주의 뜻 찾아 주와 동행하는 길, 영생의 소망 한 길을 향하여, 그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변화된 우리들, 세상의 죄악의 낙 대신에, 하늘의 영광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걸어가는, 좁은길이 아니라, 좁은길을 시온의 대로로 알고 감사할 수 있는 자유의 신앙, 생명의 참 자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자원함에 순종으로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신 주님. 주님께 붙들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생명이 자라가는데 필요한 요소와 기능 구원의 상해가 되지 않도록, 이 밤도 잘 살피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20장은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진리. 21장은 주신 구약과 신약, 가정마다 개인마다, 20장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기 생활의 이치는 변치 아니하고, 형편은 달라지기 때문에 변치 않는 진리를 오늘 21장의 말씀으로 다시 살피고 있습니다.

[복습]

1. 신분법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걸음에 기계처럼 맹종하지 말고, 억지로 따라가는 복종도 하지 말고, 더욱 자라서 깨닫고 좋아서 소원하며 걸어가는 순종. 순종의 자유의 신앙이 되어져라. 신앙의 근본 방향과 자세를 ‘신분법’에서 1절부터 말씀하셨습니다. ‘매여서 신앙생활 하지 말아라! 매여서 억지로 신앙생활하는 ‘복종’도 죄 짓는 것보다는 좋지만은 하나님께 붙들려서 유기적으로, 자원함으로 신앙의 근본 방향 자세를 돌려 세우라.’ 1절입니다. 

2. 생명법
그 다음, 12절에 ‘사람을 쳐 죽이면 살인이 된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끊으면 아니된다.’ 구약에는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사람을 죽여버리면, 더 이상 이 사람에게 구원의 앞 날은 없습니다. ‘죽인 자를 죽여버려라’ 그리고 이스라엘 전부에게 ‘남을 살인한 그 살해가 자기에게 돌아올 때에, 어떠함을 모두에게 알게하라.’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 동시에, 집단 구원의 때입니다.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 개별 구원이기 때문에, ‘육체는 손대지 말아라. 그러나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지 말아라. 상대방과 하나님 사이를 끊어버리면, 하나님도 너를 끊어버린다.’, ‘네가 하나님께 연결되었다는 것은 네 말이고, 하나님은 너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생명법은 ‘하나님과의 연결’, ‘생사관계’입니다.

3. 상해법
신앙의 방향, ‘신분, 자유.’ ‘신앙의 방향이 바로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생명의 신앙으로 이어져라.’ 그 다음, 오늘 64페이지의 ‘상해법’이라는 것은, 죽이지는 않았는데, 상대방의 팔을 못 쓰게 만들던지, 눈을 못 쓰게 만들던지, 걸어갈 수 없는 발 병.신을 만들어버렸던지, 그 사람의 기능, 그 사람의 요소라는 것은, 그 사람이 자유의 신앙으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그 사람이 가진 사명, 위치에서 자라가고, 고쳐가야 되는, 그 사람에게 맡겨진 신앙의 분담이 있는데! ‘신앙의 방향은 아니고, 하나님과의 연결은 아니되, 그에게 준 사명, 그의 기능을 망쳐버려서, 못 쓰게 만들면’ 이게 구약에는 신체, 인체 상처가 되어지고, 신약으로 오면, ‘기능 구원’ 하나님 앞에 자기가 가져가야 되는 요소 문제가 되어집니다.

4. 사회법
그 다음 ‘상해법’ 뒤에는 ‘재산법’이 나옵니다. ‘남의 재산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재산에 손해를 보이거든 반드시 갚아라.’ 재산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신앙 생활에 써야 하는 나의 도구입니다. 나의 재료입니다. 멀쩡하지만은, 서울까지 걸어가는데 돈이 있어서 비행기로 가는 것과, 돈이 없어서 걸어가는 것과, 그 신앙의 발전과 그 신앙의 자기 분담에는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그것은 재산법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다섯째는, 신앙의 자유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연결이 되어, 자기 기능, 자기 요소를 감당하면서, 그 자기 요소, 자기 기능으로 건설해나가는 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재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바로 쓰면, 이 물질, 이 재료가 얼마나 복음 운동, 자기 신앙의 자타에 도움이 되는데, 여기까지가 자기 혼자의 범위인데, 그 사람, 이 사람, 여러 사람이 사회로 묶여, 엮어, 가정을 이루고, 교회를 이루고 살 때에, 인인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이것은 사회법에서 다섯 번째로 가르쳤습니다.


[상해법]

오늘밤에는 ‘상해법’입니다. ‘신앙의 방향을, 자세를 원하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산 생명의 역사를 하라!’ 그리고, 출애굽기 21장 18절,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진정으로 좋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연결이 되어, 순복음 교회가 순복음 교회 운동을 하고, 감리교가 감리교 복음 운동을 하고, 공회는 공회 신앙 노선으로 걸어갑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 구원의 감사를 가지고, 그들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붙들려, 그들의 걸음을 감당하고 가는데, 한국교회와 미국교회가, 감리교회와 순복음교회가 공회교회와 고신교단이 각자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맡아야 될 자기들의 ‘사명’이 따로 있는데, 따로 있으니 따로 살면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 둘을 한번씩 섞어가며 부딫히게 해가며, 그 다음 ‘상해법’을 가르칩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왜 싸우지요? 신앙의 길과 생각이 다르면, ‘적수’가 되어집니다. 적이니까 쳤지요. 서로 싸우는 것은 필연입니다. 무식한 인간들은, ‘다같은 하나님, 다같은 성경을 가지고 왜 싸우느냐?’ 그렇게 말하는 불신자, 교회를 조롱하는 인간들한테는 ‘남북한은 같은 인간인데 왜 싸우냐?’, ‘너는 평생에 싸우지 않느냐? 너는 왜 싸우냐? 너는 개하고 싸웠냐? 인간끼리 싸우지.’ 같으니까 더 싸우지요. 아프리카 나라와 우리가 싸울 일이 있습니까? 호주하고 우리하고 싸울 일이 있습니까? 먼데? 붙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연관’을 시켜, 배우며, 고치며, 협조하며 가야 되는 ‘짝’으로 가까이 만들어뒀는데,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방향이 맞고, 하나님께 붙들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은, 그것은 주관이고! 객관적으로보면 나에게도 문제가 있고, 너에게도 문제가 있어. 서로 부딫히는 것은 필연입니다.

작정하고 믿기 싫은 사람과 부딫히는 것 말고! 좋아서 믿는 사람, 서로가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옳고 바르게 살려고, 주님 동행을 애쓰는 사람. 그들끼리는 분쟁이 없습니까? 같은 성경을 읽고 교리가 달라지고, 같은 성경과 같은 교리를 가지고도, 강조가 다를 수 있고, 선후가 다를 수가 있어. 이렇게 신앙의 길과, 생각이 서로 다르게 되면, 다르면 적수이고, 적수면 서로 싸우는 것은 ‘필연’입니다. 알고보면 인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 다른 적수가 없는데, 철이 없을 떄에는 나와 다르다고 싸웠고, 불평을 했지만은, 알고보면 내 부족을 채워주는 고마운 분이라, 서로 절하면서 ‘감사’해야 되는데, 잘한다는 것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인간이 부족하고 어린 것을 길러가는 과정에, 제일 가까운 한 몸 속에 분쟁은 생기는데, 분쟁이 생길 때에 ‘이게 뭔가? 너도 하나님 중심, 너도 하나님과 동행, 나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 동행은 둘 다 틀림이 없다고 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서로 가는 길이 다르고, 서로 생각이 달라, 서로 부딫히느냐?’

‘이제 예배당을 구입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리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이며, 즐거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그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과도한 경제문제가 될 때에, 경제 문제로 무너지고 주저앉는 어린 교인이 생기면, ‘이 한 사람을 위하여 주님은 죽으셨는데, 이 아까운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까? 하나님 팽개치고, 인간 생각합니까? ‘예배당 마련하자’는 생각도 하나님 중심, 그 다음 하나님과 연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 연결의 신앙은 바로 되었는데, 서로의 출신이 다르고, 서로의 아는 것이 다르고, 서로의 걸어가는 길이 서로 다르다보면, 신 김치가 맛있다는 사람, 묵은 김치가 맛있다는 사람을 두고는 칼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조절을 해야 될까?’ 뭐 경제가 좋으면, 2가지로 담궈서, 신 김치 좋아하는 사람은 신 김치 먹고, 새 김치 좋아하는 사람은 새 김치 먹으면 되지만은, 나누지 못하는 하나된 사이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때에는, 네 생각대로도 해보고, 내 생각대로도 해보고, 연구도 해보고, 그 다음 평가도 해보면서, ‘너도 부족하고, 나도 부족하니까 연구하고 살펴보면, 서로 연구가 되고, 발전이 되고, 그러므로 깨달아지고, 상대방의 그 말을 가지고 나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둘이 하나가 되어 아담과 하와가 하나되는 것처럼, 머리가 몸의 하나가 되어, 에베소 5장의 결혼의 주례를 설 때마다 우리가 읽어보는 말씀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깨끗하여 흠 없는 한 신앙을 만들라’고 하는 것인데, 다르면 연구를 할 일이고, 다르면 ‘맡긴 분담이 다른가?’ 찾을 일이지,다르면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내다 질러버리고 뒤집어 엎어버리고, 여기 무엇을 가지고 쳐버린다고요?

[돌을 들고 적수를 쳤으나]

18절 “돌을 들고 적수를 쳤으나” 왜 돌을 들고 치지요? 부부가 ‘논 사자, 밭 사자, 아파트 사자, 적금들자, 주식하자’ 이것은 손바닥으로 그려가며, 비교해가며, ‘이것이 이자가 낫지 않겠냐? 그런데 물가 계산을 하니까 이건 위험하지 않느냐?’ 이렇게 연구할 일이고, 무식하고 어리고, 내일 일을 모르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로 배워가며 연구를 할 일인데, 가정 잘되자고 함께 노력하는 두 사람끼리, 손바닥이 아니라, 펜으로 적는 것이 아니라, 왜 주먹질을 하지요? 남자가 성질 급하고 주먹이 쎄니까 주먹이 나오면, 여자는 뭘 들까요? 돌 들고 막아야지. 서로가 다르면 신앙끼리인데도 길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면, 적수가 아니라, 서로 연구하고 보완하고, 서로 협력하여 하나가 되어야 되는데, 우리가 부족하여 자기중심으로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적이 아닌데, 적으로 돌려세웁니다. 내 한 몸인데, 내 가족인데, 그것은 나의 눈이고, 나의 발인데.

발하고 눈이 싸우다가, 손하고 눈이 싸우다가, 손이 눈을 쥐어박아서, 눈이 앞을 못 보게 되면, 주먹이 이겼습니다. 이겼습니까? 앞으로는 못 보게 되는데, 주먹으로 때리려다가 가시가 들어갔습니다. 눈이 가시를 빼는 것을 안 봐줘버립니다. ‘손가락 너 아프지, 눈 내가 아프냐?’ 신경이 하나이고, 생사고락이 하나인데, 이렇게까지 자기중심이 되어,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계산을 하다보니까, 계산의 시간도 좁아지고, 종류도 좁아지고, 사건의 평가도 좁아져서, 바늘 끝 같은 사람이 되어놓으니, 바늘 둘이 만났으니 서로 찌르기를 하지, ‘이게 맞는가? 저게 맞는가?’ 연구하여 함께 가는 건설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세계 200개 나라 중에 우리나라가 아주 특이하답니다. 이 나라 안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좀 더 심하답니다. 500개가 넘는 한국의 교단 중에 공회 출신들은 또 더 심하답니다. 남들은 그 중에 제일 심한 곳이 이곳이라고 그럴껄요? 좁지 않아도 되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소리내지 않아도 되고, 비교하며, 살펴보며, 더 옳고 나은 것을 들어보고, 발전을 하려는데, 상대방이 전쟁을 일으키면, 피해야 되지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되면, 막아야지요. 멀리서 쳐다보며 ‘둘이 같이 싸우니까, 똑같네?’ 그러면 그 사람들 말 듣지 않으려고, 때리는 것을 다 맞아줘요? 맞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맞아 ‘기능 상실’이 되면, 그 부분으로 할 일을 못하는데? 이 정도면 요즘 일어나는 7년간의 모든 일에 대한 ‘해석’이 다 되었습니까? 공회의 결정과 대처 방법이 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싸우다가.” 사업하면서는, 저 놈의 회사가 망해야 우리 회사가 잘 법니다. 옆집 옷가게가 문을 닫아야 이쪽 옷가게가 그래도 먹고 살기가 낫습니다. 이게 세상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신앙의 걸음은, ‘손과 발이, 눈이, 입이 서로 도와가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라’ 목소리를 키우고 해야 될 일은, 별로이 없습니다. 아이가 부두막에 뛰어 들어가니까 얼른 소리를 내고, 건져내지, 일반적으로는 물어보고, 비교하교, 기도하고, 그 다음에 만나서 또 살펴보면 대부분은 다 하나의 길로 맞아지고, 백의 하나 둘, 아무리 봐도 도무지 맞아지지 않는 것은, 세월의 심판에 맡겨놓으면 열매로 나무를 아는 하나님의 심판법이, ‘너는, 감나무다. 나는, 사과나무다.’ 나무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묘목을 보고 싸우다가, ‘떡 잎을 봐라, 색깔을 봐라.’ 무식한 둘이 싸우다가 안되면, 또 하나는 아는데, 하나는 모르는데 빡빡 씌워대면, ‘그것을 좀 심어놓고 기다려보시지요.’ 그리고 열매가 맺을 때쯤이 되면, 그때는 누가봐도 사과나무, 감나무 판별이 날터이니, 교회를 두고, 공회를 두고, 신앙을 두고, 가정을 두고, 믿어가는 길을 두고는 악을 쓸 일이 없어야 되고, 욕설이 나올 일이 없어야 되고, 주먹질이 나갈 일이 없는 것이 상식인데, 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습니다.

주먹이라는 것은, 강팍한 자기 쥐어박으라고 주먹을 주셨지. 어린 것, 힘 약한 것을 쥐어박으라고 주먹을 주지 않았는데, 주먹을 쥐어버렸습니다. 주먹은 내 안에 있는 무기입니다. 돌은 내 밖에 있는 무기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칠 무기는 사용하지 말 것.’ 밑의 줄입니다. 돌이나 주먹으로 쳐버렸습니다. 신앙생활에 다칠 무기는 드는게 아닙니다. 내 밖에 있는 무기를 들었습니다. 경찰에 ‘고소’하는 것이 돌을 드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공회에서는 ‘제명’을 시켜버리면, 이것은 내게 있는, 내게 속한 주먹이 되겠지요. 자기 발로 나가는 것은 할 수 없어도, 내가 주먹쥐고 쥐어박아서 내쫓는 제명은, 원칙적으로 못합니다. 돌을 가지고 쳐버렸습니다. 그러니, 나하고 의견이 다른 저 입을 쥐어박고 이겨버렸습니다. 우선은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돌은 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가나안에 살며, 신앙의 건설로 나가는 이 일에는, 하나님이 배후에서 지켜보시고 최종 심판하실 것이고, 우선 적어주신 말씀의 법도가 있으니, 읽어보면 거의 나올 것이고, 그리고 신앙양심으로 따져보면 거의 알게될 것이나, 말씀은 분명하나 해석은 다르고, 양심은 좋으나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기 양심, 내 양심이 다 다르니 부딫히고, 부딫히면 싸우기 쉬우나, 신앙의 생활에는 싸움이라는 것은 남들이 오해를 했고, 같은 줄 알지만은 바로 믿는 사람은 상대방과 싸운 일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적어도 지난 30년 간, 저는 싸워본 일이 없다고 하면 안 믿을 사람이 99%가 넘을껄요? 좀 더 확대를 해서, 우리 공회 여기에 있는 공회는 지난 30년간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괜히 백태영 목사님이 저희들을 제명했지, 제명 당하니까 거기에 붙어서 살겠다고, 거기에 구원이라고 붙들 수가 없어서 제명해주니까 혼자 나왔지. 그들은 싸웠으나, 우리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둘도 똑같다.’하지만은 저희들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싸웠으면은, 백태영 목사님 잠실동 교회는 우리가 이겼을껄요? 그 다음 1년, 2년, 3년이 지나니까, 서부교회가 중심이 된 부산공회에서 저희들을 또 제명을 합니다. ‘그 고소하는 것 틀렸다’고 양성원에서 발표를 했더니만은, 바로 제명이 들어왔습니다. 교리 때문에 제명당하는데, ‘그게 아니면 못 살겠다’고, ‘부산 동대신동 1동 381번지에 구원이 있다’고 붙들고 늘어질 겁니까? 그만큼 말했고, 그만큼 외쳤는데도, 제명시키면, 그 다음을 또 걸어가야 되겠지요? 남들이 보면, ‘총공회도 싸워서 대구공회, 부산공회 나눠지대? 부산공회 안에서 또 싸워서 또 나눠지대? 똑같은 것들 아니냐?’ 옆에서 말하기는 좋은데, 저희들은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당해봤지. 상대방이 돌을 들 때에, 이 쪽에서도 ‘돌’을 들지 않았습니다. 같이 돌을 들었으면은, 서부교회를 우리가 30년 전에는 이겼을껄요? 그때는 여기에 있는 적은 우리들이 같은 돌을 들면, 우리가 이기는 정도였습니다. 통째로 내어줬지.

함께 믿으며, 진정으로 이 길이 옳고, 하나님께 붙들려 동행한다는 사람이 둘, 셋 모여지면 서로의 수준차이와 지식의 차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른 것이 나오고, 다른 것이 나올 때에, 다르면 비교해서 연구해서 구별하고 옳은 것을 찾으면 발전이 되고 학습이 되는데, 다르면 쥐어 박고 봅니다. 뭘 들고요? ‘돌을 들고’. 써서는 안되는 세상 전법이 ‘돌’입니다. 교회가 회사입니까? 정권 싸움입니까? 남북 6.25 전쟁입니까? 세상 싸움은 돌을 들고, 창을 들고, 그것은 전법입니다. 육체의 전쟁의 전법은 돌! 신앙의 생활에 다를 때에는 전쟁이 아닙니다. ‘연구의 대상’이지. 아무리 연구해도 해결이 안되면, 세월에 맡겨놓으면 열매로 하나님이 판단을 해주십니다. 조금 더 세월이 더 지나가보면, 그래도 짤라낸 고신이 실수 했고, 그래도 쫓겨난 공회가 옳다는 것은 이제는 아무도 입에 달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한 쪽이 치면 그때는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둘 다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똑같은 것들끼리 똑같이 싸우면 똑같이 회개를 해야 되고, 나는 싸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싸우면 남들이 볼 때에, 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가 돌을 들면, 나도 돌을 들까요? 저쪽이 칼을 들면, 나는 총을 들까요? ‘세상 전법은 쓸 수 있어도 쓰지 말아라. 돌을 들지 말아라.’ 그러면, 주먹질하면 되느냐? ‘네 손이라는 것은 넘어진 사람 일으켜 세울 때에 쓰는 것이다. 네 발은 진리의 길, 순종할 때에 걸어가라고 준 것이다.’ 그 발로 너를 이고, 메고, 말씀의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라는 발로, 그 발로 널 이고 매고, 말씀의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라고 준 발로, 옆차기를 해서 상대방 옆구리를 부스러뜨리면, 세상이 볼 때에는 ‘이겼네’ 그러고, 하나님이 볼 때에는, ‘주먹으로 쳐버렸구나.’ 돌이나, 주먹으로 쳤습니다.

넘겨서. 66페이지. “만약에 죽었으면” 12절에 있는 생명법에 걸려, “반드시 죽일찌니라” 하나님과의 연결의 생명은, 그 어떤 누구도 끊어놓지 못합니다. 그런데, 돌로 쳤고, 주먹질을 했는데, 상대방이 장애자만 되었지, 죽지는 아니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죽지 않았으면, 형벌은 면한다. 그게 17절, 18절이지요.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을 면한다.” 회개할 기회는 있습니다. 나간 둘째가 밉지만은, 나간 둘째가 죽었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나간 둘째가 돌아올 쪽으로 대문은 열어 놓고 기다리는 것이,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신앙에 논쟁이 있고, 길이 다르고, 서로 부딪칠 때는, 돌에 맞는 것은 몰라도, 돌로 치고 같이 싸우지는 못합니다. 주먹질도 못 합니다.

‘죽지 않았으면, 형벌은 면한다’ 그러면 뭘로요? ‘돈으로 책임을 지울 것’ 돈으로. 19절입니다.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을 면한다.” 그러나, “그 불편한 기간, 장애가 있던 기간의 손해는 배상해라.” 쳤으니 돈을 내놔라. 돈이라니요? 돈을 벌려면 시간이 들어가야 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말을 하면은 작은 생명입니다. 90살에 죽는 분은, 90년짜리 시간을 가졌습니다. 90살에 죽는 분을, 45년간 헛 일하게 만들었으면, 그 사람의 생명 절반을 죽인 자가 되어집니다. 그 45년에 벌 돈을 가지고, 그가 나머지 45년에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하여, 그 돈을 잘 사용하면, 돈이 들어 시간을 엄청 아껴주고, 그 생명을 생명력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돈을 우습게 알면 불교됩니다. 돈을 더럽다고 하면, ‘물질개악설’이라고 이단이 됩니다. 바로 된 기독교는, 잘못된 돈, 잘못 번 돈, 잘못 쓴 돈, 잘못 보관한 돈을 정죄하지! 돈 자체는, 건강 자체는, 결혼 자체는, 그 인간 자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지, ‘그 자체가 죄다’ 그러지는 아니합니다. 해방 전에 신사참배 한 교회를, 해방 후에 교도소에서 나온 재건교회 교인들이, 예배당을 두들겨 부셔 버리고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이 건물 안에서, 귀신을 섬겼으니, 건물 안에서 귀신을 섬긴 목사가 문제입니까? 건물이 죄인입니까? 예배당을 두들겨 부수고 나니까 속이 개운하고, 자기들은 잘 믿는 것으로 착각이 되다보니까 신이 나서 이제는 절에 가서, 종을 깨뜨리고, 불상을 도끼로 쪼개고, ‘우리는 신사참배의, 승리의 신앙으로, 우리는 이렇게 산다.’ 신사참배 환란을 이긴 것까지는 성공이고 귀했는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신명기 5장의 말씀을 깜빡 잊어, 이기고 나서 넘쳐, 그 다음 재건교회는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모자라서 탈. 넘쳐서 탈. 양쪽의 위험한 길이 똑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을 돌을 들고, 주먹을 쳐서 상하게 했느냐?’ 죽었으면, 두 번째 ‘생명법’. 죽지 않았으면, 세 번째 ‘상해법’. 하나님이 그의 생명에게 맡긴 그의 요소가 있고, 그의 기능이 있는데! 각자에게 준 그 요소, 그 기능으로 그가 신앙의 건설을 해야 되는데, ‘그걸 막아 버렸고, 시간은 지나가 버렸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돈으로 주라. 신앙과 돈을 바꿉니까? 인체와 돈을 바꿉니까? 유물주의 아닌가요? 그 사람이 그 돈을 받아 그 돈을 잘 쓰면, 그동안에 손해봤던 것을 그 돈을 가지고 잘 쓰면, 얼마나 신앙생활 건설에 도움이 되는데, 돈을 잘 못 쓰고, 돈의 종이 되니까 책망을 하는 것이지, 돈의 주인이 되어, 돈을 잘 부려먹고 돈을 잘 활용를 하면, 신앙 생활에 돈이 들어 얼마나 귀한데? 내가 선교는 못 가지만은, 선교 갈 신앙의 사람들을 마구 후원을 해서 선교사를 뿌려버리면, 그들의 선교에, 고난에 동참의 복을 받는데, 돈을 우습게 알다니요? 무시하다니요? 돈을 시시하게 생각하고, 쥐어 박으면, 나이 많아 돈한테 두들겨 맞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형벌은 면한다. 대신 돈으로 책임을 져라. 배상을 해라.’ 이것을 2,000년 이상, 수천년 서양 교인들은 상식이 되어, 돈을 법원에 내고, 죄인을 데리고 나오는 ‘보석금 제도’가 굉장히 발달을 해 있습니다. 선진국은 보석금 제도가 활발하다. 미개국은, 가난한 것이, 돈한테 쥐어 박히는 것이 또 큰 소리를 쳐서, ‘나는 그 인간 교도소 가는 꼴을 보지, 돈 받고 해결을 안한다’고 또 그럽니다. 이게 미개한 것이, 미개해서 미개한 것이 아니라, 미개한 짓을 하니까 발전할 희망조차 없는 겁니다. 합리적으로 좀 보셔야 됩니다. 세상 합리가 아니라, 출애굽기 21장에서 통해서, 죽었으면 ‘생사법’으로 처리하는데, 죽지 않았으면 그에게 맡긴 요소가, 그의 기능이 신앙의 건설을 해야 되는데, 그 기회를 놓쳤으니 그 기회를 보상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길은, 다른 것은 없다! 그 사람 대신에 예배 봐드린다고, 그 사람의 예배가 됩니까? 그 사람 대신에 전도한다고 그 사람 전도가 됩니까? 내 전도가 되지. ‘돈으로 줘라’ 그러면, 그 사람이 그 돈을 가지고, 걸어서 5집 전도갈 때에 자가용 타고 전도 가니까, 50집 전도를 하면, 지난날에 너로 인하여 그 사람의 기능과 그 사람의 사명이 중단이 된 것을 뭐 간접적으로라도 보상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래서, 기독교가 국교가 되다시피한 서양 선진국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왠만한 죄를 짓고, 죽을 죄 비슷한 걸 지어도, 큰 돈을 맡기면 일단 풀어줍니다. 그 사람들 돈의 종이 되어서 그런게 아닙니다. 계산해보니 돈이라는 것은, 보통 돈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돈이 뭔지도 모르니까 돈 욕하고, 돈 밑에 돈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가지고, 남이 보면 뭐 깨끗한 것처럼, 깨끗하다고 떠드는 인간들 뒷조사 해 놓으면, 더럽긴 더 더럽습니다. 그거 더 더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양심을 조사해보면, 장사꾼 양심이 그래도 안 맞는 직업 중에 제일 나은 직업이고, 양심 속에, 양심 중에, 제일 더러운 양심이 종교인 양심이고, 도적을 말하고, 철학을 말하고, 학문을 말하는 양심은 대개 깊이 들어가 보면, 썩어서 냄새가 나서 들여다 볼 것도 없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장사의 양심은, 그래도 드러난 양심입니다. 그것까지는. 그래서, 보석금 제도 같은 것, 공회 교인은 텔레비 아나운서 나불거리는 소리 듣고, ‘말이지. 저런 죄인을 돈 맡기고 풀어 주다니 그럴 수가 있나?’ 울컥하고 촛불 들고 돌아다니는데, 가면은 가시는 거야 가시지만은, ‘이 복음의 신앙생활은 보나 안보나 너는 빵점일 것이다.’ 거의 빵점일 겁니다. 세계 제일 좋은 대학, 하버드, 예일 대학에, 부자가 돈 많이 갖다 주면, 합격시켜버립니다. 우리는, 10원짜리 하나 갖다 줬다고, 그냥 ‘뭔 뇌물을 줬네’ 해 가지고, 언론에서 매장을 해가지고 몹쓸 놈을 만듭니다. 그러니 이 모양이지! 그 나라가 돈 갖다 주고, 일류대학 공짜로 그냥, 돈 받고 그냥 덧덧하게 넣어 주는게, 그게 썩어서 그 나라가 망했으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왜 그러지요? 부시 아버지 재벌인데, 말하자면 학교 못 들어갈 아들 하나 합격시켜 백억을 준다니까, 예일대학 법대에서는 100억을 받아, 그 다음 돈 있으면 그 학교를 졸업할 것인데, 돈 없어 그 학교 졸업 못할, 한 50명을 갖다가 그 돈으로 졸업생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돈 없어서 못할 공부를, 부시 아들 넣어주려고, 아버지가 백억을 주니까 천 억을 주니까, ‘그 덕을 내가 봤으니 참 고맙다.’ 그게 양심이 아닌가요? 뒤로는 할 짓 다 하면서 말이지, 양심, 민주, 인권, 법치를 말하는 인간들, 뒤로는 똑같은 죄 다 지으면서! 돈에 굶었을 때에는 돈에 깨끗하다고 큰소리 치다가, 돈에 환장을 해서 시작을 해 보니까, ‘벽에다 비름박에 빈대도 넘기지 않더라’는 바로 그 원리입니다. 입학 시켜 주고, 그 다음 졸업은 시험쳐서 자격이 안 되면, 떨어 뜨려버립니다. 그거 알고 돈 갖다 줍니다. 왠만하면 넣어 놓으면, 왠만하면 공부합니다. 모자라면 발동을 해서라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안되는 것이 세상이라, 하나가 옳다,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원리만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돌을 우습게 알기 쉬운데, 하나님, 진리, 인간, 일, 돈. 5번째 순서에, 5번째 순서라, 돈이 순서로써는 밑이지만은, 그 돈을 우습게 알면 돈만도 못한 인간이 됩니다. 자본주의, 유물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공회는 옛날부터 다른 교회들 전부 다 매미채 가지고 돈 걷을 때, 우리는 그때 굶어 죽어도, 연보궤 가지고 옛날 어려울 때에도 버텨 나왔습니다. 물질에 대해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소중한 가치를 외치는 겁니다.

‘남을 손해 보였느냐? 돈으로 갚아라.’ 돈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좋게 쓰면, 이렇게까지 기가막힌 돈이 없습니다. 잘 못 쓰니까, 그 돈을 들여서 돈이 망하고, 자기 망하지. 100만 원 아끼려고 부모 못 모시지 않습니까? 돈 벌어서 한 달 100만원 주면, 심청이보다 더 나은 요양사가 일해줄 껄요? 100만원 가지고 안됩니까? 200만원 주면 되지요. 200만원 가지고 안됩니까? 500만원 주면 되지요. 500을 줘도 안합니까? 1,000만원 주면 하겠지. 공회 학생 하나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 아는 분께 어렵게 부탁해서, ‘미국의 노인 요양 시설 중에, 제일 고급 쪽을 하나 구경 좀 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한 달에 얼마쯤 들어갔더라? 천 몇백만원인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한 달에, 천 몇 백만원 넣어놓으니까, 심청이가 심 봉사를 섬기는 것보다 더 잘 섬기더랍니다. 돈이 나빠요? 돈 좋은 겁니다. 돈과 인간을 바꾸고, 돈과 신앙을 바꾸고, 돈의 종이 되니까 그 다음 성경이 비판하는 것이지, 돈 자체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믿음의, 신앙 생활에 복음 운동에 필요한 재료입니다. 자본입니다.

‘사람을 쳤느냐? 돈으로 갚아라.’, ‘돈이 아까우냐? 그러면 치지를 말아라.’ 그래서 받을 돈을 철저히 받아내야 그 인간이 다음에는 그런 짓을 안합니다. 때린 것을 용서해 주니까, 간이 커서 그 다음에는 더욱 큰 일을 저지릅니다. 너의 용서가, 너의 배상 거절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둘째 아들처럼 돌아서서, 좋은 사람으로 돌아오는 길에 희생이 되었으면, 연보가 된다. ‘너의 배려, 너의 용서가, 작은 죄인을 큰 죄인으로 만들었으면, 하나님 앞에 너 책임져야 된다! 공범이다! 네가 배후범이다!’ 이래서, 죽지 않았으면, 돈으로 책임을 지었습니다. 선진국의 보석금 제도, 기여 입학제도 함부로 비판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겁니다. 이런 걸로 세상에 나가면, 세상 중에 하나가 될까봐, 밖에 활동은 안 하지마는, 세상을 지켜보고 판단하는 진리는 우리가 알아야 되고, 지혜는 있어야 됩니다. 꼭 미개한 사람들이, 기어코 죽는 꼴을 보고, 망하는 꼴을 보고, 상대방이 아파서 못 견디는 그 보복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신체를 응징하는데 철저합니다. 그거 회개해야 됩니다. 가운데 ‘모든 손해를 배상하라.’ 박스 안에는, 그냥 상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상대방을 처서 교통사고 등으로 피해를 입혔을 때, 차, 물건은 ‘대물 피해’로 해결합니다. 사람 자체가 다치면, 치료비 ‘대인 피해’로 피해를 보상해 줍니다. 그런데, 한 달간 입원했고, 1년간 입원해서 돈을 못 벌었으면, 미래에 벌 돈을 손해봤으니, 그것은 ‘일실 수입’이라고 계산해 줍니다. 그리고, 물질이나, 상한 치료비 주고, 못번 돈 갚았으면 다 되었느냐? 그 사람의 마음이 아팠으니, 마음 아픈 것은 ‘위자료’로 쳐줍니다. 그런데, 그 위자료가 20년 전 기준으로, 그 위자료가, 이건희 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교통사고 나서 죽어도, 위자료는 5천만원이었습니다. 요청하면 한 8천만원까지 올라갔다고 그래요. 미개해서 그렇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그 사람 마음 아픈 위자료는, 이건 백 억이 떨어질지, 천 억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안 믿는 사람도 손해를 두고, 계산을 하고, 책임을 지고, 서로 상대를 해보니까, 이런 계산이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 회개할 자인 우리들이, 알지 못하심이 없는 공평의 모든 전지의 하나님 앞에 설 우리들이, 대충대충 넘어가는데, 알고 보니까 대충 대충도, 너한테도 대충, 나한테도 대충이 아니라, 나한테의 것은 내 중심으로 철저하고, 상대방에게는 갚을 것은 두리 뭉실로 슬쩍 넘어가버리고, 그러다가 전체가 미개한 것은, 우리 인식을 바꾸어서 좀 개발되고, 발전이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3번째, 제일 밑입니다. ‘다쳤느냐? 죽지는 않았느냐?’, “그로 전치되게 할찌니라” 전치라는 말 흔히 들어보셨습니까? 전치 3주, 전치 5주, 이빨 빠지면, 전치사 4주입니다. 일반적으로 뼈 부러지면, 전치 4주라 그럽니다. 우리나라 전치 제도가 어디에서 들어온 거 같습니까? 다 서양에서 들어왔습니다. 다 이 성경에서 원리가 흘러나온 겁니다. ‘다쳤느냐? 그 사람으로 완전 치료되게 할찌니라.’ 그로 하여금, 네가 든 돌, 네가 쥔 주먹으로 제명 시켰고, 고소했고,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인데, 세상의 전법으로 그 사람의 신앙의 기회를 끊어 버렸고, 분질러 버렸으면,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 자기 사명, 감당 할 수 있는 희망의 요소와, 신앙의 기능으로 새 출발하기까지, 필요한 책임은 네가 져라! 책임까지를 계산을 잘 하고 나면, ‘아이쿠 조심해야 되겠다.’ 그리 됩니다. CCTV가 별로 없을 때는, 도둑놈들이 극성스러웠는데, 뭐 어느날 CCTV가 하도 많아 놓으니까, 요즘은 도둑놈도, 어떻게 도둑질을 해봐야, 어디에 지켜본 카메라에 들켜, 살인범 나오지, 도둑놈 나오지, 은행 현금 인출기 들어간 것 다 잡아내지. 수도 없는 CCTV 때문에, 보이는 도둑놈들은 거의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뭐 뻔히 들켜버리니까. 도둑질하고 당할걸 당해보고, 계산해 보면, 그래도 조심을 하는데, 계산이 없고 느낌이 없으니, 작은 도둑을 큰 도둑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 ‘남을 돌로 쳤느냐? 주먹질 했느냐? 다쳤느냐?’, ‘돈으로 전치 시켜라.’ 성의 표시로 찔금이 아니라! 그가 다시 그 요소, 그 신앙의 기능을 회복하여, 너와 싸우기 전, 다치기 이전, 하나님 앞에 자기 분담, 자기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너가 모든 것을 다하여 책임져라. ‘상대방에 자유성을 찾아 주라.’, ‘자기가 그 책임을 져라.’, ‘하나님이 주신 원래 그 사람을 상태와 그 사람의 관계를 복구시켜 놓아라.’ 이렇게 만들어 놓고나면, 그 다음에는 화난다고, 다음에는 쉽게 돌 들고, 주먹질 하지를 아니합니다. 큰 죄인을 작은 죄인으로 줄여주고, 작은 죄인을 죄 안 짓는 사람으로 만들고, 죄 안 짓는 사람을 길러, 의를 위하여 작은 희생을 하게 만들고, ‘꿀 맛을 본 꿀벌처럼, 작은 의를 위하여 작은 수고해 보고, 재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경해 본 다음, 큰 의를 위하여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즐거이 순교길에 나서는 그 분들까지 되어지는 못 해도, 시작의 방향은 그리 틀어 앞으로는 그리 되도록 소망을 가지게 하라!’ 이게 ‘상해법’입니다. 넘겨서 68페이지.

하나님의 백성과 백성, 교인과 교인, 교회와 교인끼리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데리고 있는 종을 쳤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 20절입니다. “사람이 매로 남종이나 여종을” 쳐버렸습니다.왜 쳤지요? 노예니까. 왜 쳤습니까? 나는 힘이 있으니까, 그는 약하니까 ‘매질’을 해 버렸습니다. 화가 나서. 그러면, 심판 받습니다. 종은 왜 종이지요? 신분법에서 살펴 봤습니다.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복 받고 주인으로, 자유인으로 원하고 원함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잘못 살고, 잘못 깨닫고, 잘못된 곁길을 걷다가, 이제는 주인에게 와서, 종으로 배워야 될 사람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나와 종과의 사이는, 샀으니 부려 먹는 종이 아니라, 그 사람은 그러라고 왔고, 남들은 그래도 된다고 하지만은, 하나님 앞에 나는, 내게 종으로 팔려온 사람을, 형제처럼. 이 사람을 전도하여 믿는 사람 만들고, 믿는 사람이면 이 사람으로 하여금 나처럼 바로 믿고, 나처럼 하나님께 은혜받아, 주인되어 다른 사람을 돕고 기른 선생이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나를 교사로, 그 종은 내 밑에 학생으로 하나님께서 맡겨 놨습니다. 선생님들이 화가 나면, 두들겨 패 놓고 무슨 매라고 그러던가요? 사랑의 매? 네 놈을 패놓고 사랑의 매라고 그랬을 때에, 너는 그것을 사랑의 매라고 그랬냐? 너도 화났지 않느냐? 사랑의 매인지 아닌지 남의 속을 들어가 보기가 어려워서 알기는 어렵지만은, 서로가 때리는 그 인간도, 맞는 그 인간도 느낌이 다 있습니다.

여기 주인과 종 사이는, 하나님이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너에게 팔려 종이 들어왔다. 어떻게 할래?’, ‘그는 몸을 팔아 종으로 왔지만, 저는 이 사람에게 6년 동안 잘 가르치고, 돕고, 잘 훈련시켜 6년이 지나 7번째는 이 사람을 내놓으면, 다시는 종으로 돌이오지 않고, 나와 똑같은 자유인, 주님 앞에 훌륭한 교인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 6년 과정에, 여반들 뭐가 필요하다고요? 뭐 남반들이야 잘 하고 계시겠지요. 6년 가르치려다 보면, 뭐가 필요하다고요? ‘매’도 필요합니다. ‘가르칠 때 필요하면, 매 들어라!’ 감싸주고 비벼대고, 마사지만 해대면 다 낫느냐? 맞아서 뭉친 멍은, 마사지를 해야, 부드럽게 해야 이게 풀립니다. 강팍한 나귀는, 발람같은 죽을 길 가는 인간은 천사가 칼을 들고 ‘죽을래? 살래?’ 그래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인이 종을 가르칠 때, 주인이 종을 훈련시킬 때, 주인이 종을 주인답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려고 하면, 사랑도 필요하지만은 혼낼 때도 있는 겁니다. 싫은 일을 시켜야 될 때도 있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들어야 될 ‘구원의 매’도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다.” 매 없는 하나님의 사생아, 지옥갈 홍포입은 부자가 되겠습니까? 싫지만은, 매를 맞고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고쳐 돌아서고, 하나님의 귀한 다윗의 훗날이 되겠습니까? 밧세바의 실수가 한 번인데, 하나님께서 ‘그냥 그때 뭐 그럴 수 있지 뭐, 왕인데 그까짓 것 부인이 한 둘이냐? 왕인데. 솔로몬은 일천 아내가 있었는데? 뭐 까짓것’ 그렇게 하고 넘어갔다면, 다윗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님의 혈통에 올라서는 다윗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사울은 더 큰 죄를 지어도, 슬슬 봐주시고, 기회를 주시더니만은, 달래고 설득을 하시더니만은, 다윗은 목숨을 걸고 유명한 일, 충성의 일, 복된 일을 하도 없이 했는데, 눈 한번 딱 돌아가니까 그대로 매를 들고 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7일만에 죽어버렸습니다. 쎈 매를 들었습니다. 사울을 원하십니까? 다윗을 원하십니까? 뒤에 잘된 것을 보니까 다윗을 하고 싶고, 우선 매가 싫으니 사울을 하고 싶은가요? 매는 사울처럼 피하고, 뒤는 다윗처럼 잘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생아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로 보셔서 외아들 주님 주시고, 그리고 구원을 해 놨으니, 믿는 사람은 10억, 100억이라도 한 명 한 명이, 하나님 앞에 있는 외동아들입니다. 외동아들 주고 구해낸 한 아들이 바로 나입니다. 역사 70억에, 역사 6천년에 나 같이 생긴 인간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함께 사는 75억의 당대의 나 같은 사람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각자 하나님 앞에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입니다. 대체가 안 됩니다. 바퀴 4개로 가다가, 한 개 펑크나면 한 개 갈아끼우면 되기 때문에, 요즘은 119 부르면 뭐 5분이면 되기 때문에, 쓰면 좋고 펑크나면 내 버리면 되지만은, 하나 밖에 없는 이것은 이거 마음 안든다고 내버리고, 다른 걸로 끼워 넣지를 못 하는 다윗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 하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잘못되면 매를 들어서라도 고쳐 놓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목적의 세계이고, 이게 우리에게 주신 ‘일생’입니다. 다행스럽게, 그 일생이 우리에게는 긴 것 같고, 매 맞을 때는 세월이 더 긴 거 같아, 하루가 천년같지만은,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매 맞아 어려움은, 내 주관의 오판이지, 실제 알고보면 천년을 맞아야 될 걸 하루로 줄여 주셨으니, ‘하루가 천 년 같고’가 아니라, ‘천 년이 하루 같이’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주시고, 이렇게 만든 우리를 영원한 나라의 영원 고정불변으로, 주님이 불러들이실 것이니. 매는 안 좋은 것이나, 매 맞는 교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셉도, 술 맡은 관원장 교도소 출옥할 때 청탁 한 번 했다가, 만 2년 더 출옥이 늦어졌습니다. 그건 매가 아닌가요? 매 열 대 맞고, 빨리 나오겠습니까? 열대 맞기 싫어, 옛날식 감옥 속에 2년, 만 2년 더 속에 있겠습니까? 천년 갚을 매를 하루로 줄여, 아까우니까 주님이 그렇게, 이 매를 더 이상 줄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줄일 수가 없어 최소화로 시킨게, 주님의 사랑의 매, 징계입니다. 그 매조차도 싫으면, 매 맞을 짓을 안하면 됩니다. 무슨 짓을 안하면 된다고요? 돌 들지 않으면 됩니다. 주먹질 하지 않으면 됩니다. 말씀을 했는데, 이렇게 법으로 세웠는데도 울컥하고, 돌을 들었으면 이 인간은 그냥 두면 나중에 더 기회가 없고, 자타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돌 들지 않도록, 주먹쥐지 아니하도록 갚으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은 종과 주인의 관계입니다. 내게 온 종업원은, 내가 사장이고 내 밑에 출근하는 직원은, 내가 교사고, 내 밑에 가방 들고 배우러 온 학생은, 내가 남편이고, 옛날에 내게 시집오는 사람은, 요즘은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아내인데, 남자가 나한테 기고 들어오거든, 주인과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잘 길러, 값 나가는 오늘의 여자처럼, 그 남자를 실력있게 하나님께 은혜 받아, 능력의 사람 만드셔야 됩니다. ‘내 눈 한번 꽂히면, 뭐 벌벌 떨 건데?’ 그러고 과시하지 마시고, 남자들이 수천년 여자들을 쥐어박아대다가 지금 그 값을 재림 전에 받느니라고 뒤집어져서 지금은 뭐, 역사 이후에 여자가 이렇게까지 높은 여황들이 되고, 남자들이 이렇게 추접하게, 이렇게까지 참 처참하게 된 때는 이런 단기간이 이렇게 바뀐 경우는 없었지요? 과거 남자들이 시집오는 여자들을, ‘하나님의 귀한 딸인데, 이 못난 것한테 훌륭한 사람을 맡겼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잘 세우나?’ 기도하고 하나님께 배워서, 알리고, 연구하고 하는 대로 하다보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머리되는 남편 때문에, 몸된 아내가 남편의 인도를 받아, 신앙으로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라고 기회를 줘 놨더니만은, 종이라고 전부 부려나 먹고, 사랑의 매라고 쳐놨는데, 알고 보니까 감정의 매고, 복수의 매고, 화풀이의 매니까, 이걸 묶어 놨다가 주님 오시기 직전, 지금 뒤집어 가지고, 주님 오시고 나면 안 되니까, ‘그 이전에 값을 다 받아라’ 해서, 지난날의 남자들이 잘못 된 남자, 남자 행세한 값을 지금 오늘의 남자들이 다 갚고 있습니다. 고생 많지요?

죄는 사울이 지었는데, 기브온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데, 사울이 오판으로, 잘못된 허영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사울 이 인간은 하나님의 손댈 인간이 아니라, 사생아니까 버려뒀지만은, 다윗이 왕이 되니까, 사울이 왕으로 죽인 기브온 사람을, 그 피값을, 다윗에게 ‘네가 갚아라!’ 억울하지 않습니까? 선대 사울 왕이 지은 죄인데, 그 아들도 아닌 왜 다윗이 그 값을 내야 되는가요? 하나님의 나라니까. 사울이 잘못 살다가 두고 간 그 나라도 다윗의 나라니까, 그리고 오실 예수님의 계통에 서야 되니까, 자기 잘못이 아니라, 사울의 잘못까지, 선배의 잘못까지 다윗이 다 갚고야, 하나님 앞에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68페이지 중간에, “당장 죽으면” 생명은 구원의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형벌을 받아야 됩니다. 종이지만은, 6년 지나면 그도 너와 같은 자유의 주인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죽여버렸으니, 이 사람은 종으로 죽었고, 다시는 자유의 기회를 갖지를 못했습니다. ‘형벌을 받아라’ 하루 이후에 죽으면, 요즘 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교통사고에 즉사를 하면, 무조건 교도소로 가는데, 차로 쳤는데 그 사람이 응급실에 가서, 이틀 삼일 후에 죽으면, 교통사고 사망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상으로 봤는데, 중상 끝에 죽은 걸로 보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근거가 되었나요? 바로 죽으면, ‘즉사’입니다. ‘형벌을 받고’. 하루 지나 죽으면, 살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상해’로 봅니다. “종은 주인의 금전이니라” 그러나, 네게 온 종은 종으로 보지 말고, 네게 온 종업원은 종업원으로 보지 말고, 네게 온 식모는 식모로 보지 말고, 식모는 식모로 갔으면, 그런데 믿는 사람이 주인이면, ‘내나 믿는 사람이니 더 식모 노릇을 잘 하거라! 덕 보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니까.’ 이건 주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네가 주인이냐? 네가 가르쳐, 네가 길러, 6년 지나 7년째는 너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라.’ 종업원들이 이 말 듣고, 장로님 사장한테 가서, ‘성경에 보니까 그렇던데요? 앞으로 사장님하고 나하고, 너네 둘이 같이 놀고 지내야 되지 않을까요?’ 그 인간 한테는, 주인과 종, 주인과 종업원 월급 주는 사람과 월급 받는 사람을 야물게 가르쳐서, 구약의 기본의, 공평의 출발을 바로 가르친 다음에, ‘아! 사장돈 그 돈이 귀한 돈이구나. 피 같은 돈이구나. 그런데 수고함으로 혜택 보는 것이 사장이니, 믿는 사람이 사장일 때이는, 내가 더 충성을 해야 되겠구나!’ 이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그러면서, 6년이 지나 나와 같은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즉사하지 않으면’ 형벌은 면합니다. 종은 주인의 금전이니까. 계산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때려야, 즉각 죽지 않고 이틀, 삼일 후에 죽어, 나는 책임을 면하고, 돈도 나는 책임을 면할까?’ 그 연구하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사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이 인간을 사람을 만들려면?’ 하나님은 그 연구를 하십니다. 그러다가 죽어도 가장 비참하게 죽은 왕의 이름이 다같이 뭐지요? 하나님이, ‘이 인간은 그냥 죽일 수 없고’ 이것은 하늘의 회의를 해서, 귀신, 천사를 다 끌어모아 ‘저 인간을 어떻게 할꼬?’,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저 인간을 길르앗 라봇으로 꾀어다가, 제가 그 인간 피값을 받아내겠나이다.’ 아합의 죽음도 처참했지만은, 아합이 뿌려놓고, 아합으로 자라가는 70인을 한 바위 위에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즉시 죽으면 형벌 받는다.’, ‘하루 지나 죽으면, 형벌은 면한다.’ 돈은 많으니까, 저것을 죽이고 싶으니까, ‘어떻게 쳐야 이게 하루 지나 죽지?’ 연구하고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옳다. 네 놈을 회개 시키고, 너한테 인간을  가르치려니까 하나님은 하늘에 회의를 하게 됩니다. 아예 하나님 앞에는 수를 쓰고 들어갈 것이 아니라, 진실로 상대하는 것이 복입니다. 종이 죽었습니다. 돈 주고 산 종입니다. 즉사하면 안 되지만은, 가르치려다가 내가 부족하여 죽었습니다. 내가 돈 손해 봤으니, 그것으로 계산은 끝입니다.

그런데, 당장 죽어 형벌 받는 것도 아니고, 하루 뒤에 죽어 돈 손해보고 끝나는 것도 아니라, ‘때렸는데 눈을 때려, 눈이 상했습니다.’ 몇 절이지요? 26절로 갑니다. 사람이 그 남종의 매로 때렸는데, 가르치려다가, 좋게 만들려다가, 훈련을 시키다가, 그만 그 종의 눈 하나라를 쳐버렸습니다.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라” 너는 그 사람 기르고, 그 사람 고치고, 그 사람 바로 자격은 없다. 기회는 지나갔다. 눈을 잃어 버렸으니, 그가 네게 보는 것은 배울 수는 없다. 자유인이 되어서도, 그는 끝까지 보는 면은, 다시는 기회가 없다. 실력이 없으면, 놔줘야지요. ‘내 것이니까, 죽어도 내 것, 썩어도 내 것, 못 먹어도 내 손에서 썩어 내버리지, 남을 줘? 내가 못 먹는 호박 말뚝이나 박아서 썩어, 저 인간 먹는 꼴 못 보도록.’ 이게 타락한 자기 중심의 악의 우리들의 그런 ‘부패성’입니다. 없는 사람 없습니다. 없는 척해도 깊이 들어가면, 없는 사람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능, 본질적으로 그렇습니다. ‘눈이 없으면 일할 수 없다.’

또, 26절 그 사람을 쳤는데  그 남종의 이가 빠져버렸습니다. 이가 빠져 버렸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신앙의 양식을 삼아 힘 있게 충성하는 이 면에 장애가 생겼습니다. ‘너는 그 사람 가르치고, 기를 실력은 없다. 기회는 지나갔다. 놔 주거라.’ 7년 되기 전인데, 남을 맡았다고 무조건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넘겨서 70페이지, ‘낙태’입니다. 간단하니까, 잠깐 하고. 사람 대 사람 ‘상해법’ 첫째. 사람이 종을 쳤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가진 아이가, 그만 싸우다가 ‘낙태’를 해버렸습니다. 여인 밴 여인이라니요? 아이를 기르는 것은 ‘여자’입니다. 정확하게 ‘아내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저 사람을 전도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이를 가졌습니다. 교회를 나오면 아이가, 이제 태어난 겁니다. 저 경제생활이 엉망인데, 다 좋은데 경제 생활이 엉망인데, 그래서 저 인간이 신앙생활도, 경제생활도 엉망인데, 이제 겨우 가르쳐 이게 경제를 알고, 연보를 알고, 물질 개념을 알아, 이제는 바로 될 찰나 이렇게 길러 가는데, 가진 아이입니다. 그런데, 둘이 싸우다가 그 사람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신앙을 끊어버렸습니다. “남편의 청구대로”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니까, 아이는 아내가 기르나, 아이의 임자, 주인은 남자입니다. 억울하시면 남자 되십시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것입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달라 이삭은 구원의 계통에 섰습니다. 그렇다고 이삭이, 어머니 사라의 것은 아닙니다. 남편 씨입니다. 남편이 혈통입니다. 구원의 계통이 있고, 구원의 계통에 하나님의 생명을 길러가는 아내에게는 ‘양육의 권리’와 ‘사명’을 맡겼습니다.

‘둘이 함께 길러가는 것인데, 새 생명의 소망을 끊어 버렸느냐?’ 그 아이가 아내로 길러 가지만은, 임자는 남자니까 ‘남자가 청구하는 대로 돈을 내놔라.’ 왜 이렇게 좀 애매한, 그때는 이해가 되는데, 오늘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런 법을 만들었을까? 신앙의 사람을 기르는 것은 우리입니다. 남녀를 떠나. 기르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에 중생의 씨는 누구 것이지요?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인데! 내가 내 아내를 전도하지만, 내가 내 아이를 전도하지만, 내가 이웃을 전도하지만, 그를 전도하여 기르는 것은 아이를 배고 낳고, 기르는 것은 믿는 우리가 하지만, 중생의 그 사람의 신앙, 중생의 그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신성, 신적 요소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다른 사람 신앙에, 손해 보이면 누구 청구대로 갚아야 된다고요? 하나님이 청구서를 내댑니다. ‘나는 내 백성, 나는 그 양, 나는 그 교회, 나는 그 개척교회, 나는 그 신앙의 사람을 기르기 위하여 이렇게 애 썼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이 내놓을 청구서를 미리보며, 이 땅 위에서 갚으면 해결이 되는데, 깎고, 없다고 하고, 빼돌리고 세월 지나가면, 그 나라에서는 영원토록 물 한 방울의 자유 없이, 부끄러운 구원으로 갚아야 됩니다. 이 땅 위에서 갚는 방법은 비교적 쉽습니다. 1만 달란트 빚이 졌는데,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청구서를 몇 데나리온 적어 주셨지요? 100데나리온. 1달란트 준 사람에게는 1달란트, 10달란트 준 사람에게는 10달란트, 하나님과 인간의 죄 관계는 1만 달란트. 인간과 인간의 계산은 100데나리온.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청구를 미리 보고,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결심하고, 돌아서는 것이, 한량 없는 빚을 갚는 방법입니다.

‘벌금은 재판장의 판결을 쫓아라’ 구약이니까, 모든 일이 벌어지면 재판장이 판결을 합니다. 누구 대신에 하지요? 판결은 재판장이 하지만, 판결 뒤에는 하나님이 대신 판결하십니다. ‘상대방을 쳤느냐?’, ‘종을 쳤느냐?’, ‘아이를 쳐 낙태가 되었느냐?’ 치면은, 반드시 책임을 지라! 그래야,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재판장은 재판할 때에 하나님 앞에 공의로 판단하라!’ 판사되었으니까, 내 판단대로 간다? 판단하는대로 하나님의 진노가 따라갑니다. 그래서 세상의 권리는, 세상의 권세는, 세상의 결정권이라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쏙 빠지는 것이 지혜롭고, 대표 준다고, 이사장 준다고, 판사 시킨다고, 검사 시킨다고, 경찰서장 하란다고, 덜렁 올라가가지고 척척 도장 찍고, 판단하고, 시원스럽게 인심 쓰고, 한 인생 끝나고 나면, 하나님 앞에 설 때, 영원토록 갚지 못할 청구서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매가 두려워, 할 수 없이 밀려 올라가면 갈까? 스스로 올라간다고 바둥바둥 기어가며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은, 믿는 사람의 성질, 믿는 사람의 발전법은 아닙니다. 요셉을 불러대니까, 총무를 했고, 요셉을 불러대니까 총리를 했지, ‘제가 총무하겠습니다.’ 손 들고, ‘제가 총리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원서내지 않았습니다.’ 밀려갔고, 떠밀려 거절할 수 없이 올라간 자리이지. 일단은 판결이 내려지면, 하나님의 판결입니다.

한 페이지 넘겨, 제일 위에 ‘하나님의 재판’, 모든 재판은 하나님 앞에 재판하라. ‘사건’ 어떤 종류의 재판이든지, 대제사장 제사장 앞에 재판을 하러 형제들이 오면, ‘송사를 들을 때 재판장은 양쪽을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맞나요? 며느리하고 딸하고 부딪히니까, 시어머니가 공정한 판단이 나오던가요? 아 그랬으면 뭐, 주님 오실 것도 없지요. ‘공평’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신명기 1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재판장 인간을 앞 세워 놨는데, ‘재판장아! 재판은 하나님 것이다. 네가 재판한다. 잘못하면, 너는 하나님 앞에 횡령이다. 큰일난다.’ 그래서 외모로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덮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재판을 네가 대신 한다’ 그 다음, 이것 때문에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 하기는 하지만은, 아무리 계산해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결정내기가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다 질러버려요? ‘하나님게 돌리거라, 하나님께 맡기거라. 하나님이 듣고 하나님이 해결해주마’ 가정의 아이 둘이 싸울 때도, 부모의 판단. 교회 안에 여러가지 불편이 있을 때, 구역장님이, 신앙의 선배가, 목회자가, 공회의 이런 저런 일이 있을 때에, 공회의 결정의 교역자회의 판단도 다 그렇습니다. 목회자만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신앙은 원함으로 하기까지 배우고, 연구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건 좋아서 하는 것이 맞다.’ 이때부터가 신앙입니다. 이제 하나님게 붙들려 생명의 신앙으로 나아갈 때에, 상대방에게 맡긴 신앙의 사명, 그 교단에 맡겨놓은 그 교단의 장점, 저 가정에게 주신 저 가정의 귀한 사명을 ‘돌로 치지 말아라, 주먹질 하지 말아라, 했으면 책임지라.’ 네가 책임질 종이면 어찌 되느냐? 남의 아이는 어떻게 되느냐? 그 동안 살아온 만사를 되돌아보며, 모르고 운전했으니, 모르고 살았으니 뭐 엉망진창의 이 말씀에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죄인을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고, ‘실수 했으니, 재수해서 다음에는 100점 맞아라.’ 소망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사람에게는 싸울 일이 없습니다. 연구할 일은 있어도. 신앙의 사람은 돌 들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게 맡길 일이지.




초타 :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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