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19.5.8 출21:32 재산법2, 소가 종을 받은 경우, 구덩이 사고 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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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19.5.8 출21:32 재산법2, 소가 종을 받은 경우, 구덩이 사고 여종

교인 2 185 2020.06.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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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① 신분법 (자유) : 원하고 원함으로 오직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는 자유
② 신분법 (주종) : 종을 통해 다시 신앙의 자유로 나아가라
③ 생명법 (고살) : 필벌은 남의 고통을 알게함으로 십자가를 가르침
④ 생명법 (오살) : 판단에는 늘 사람의 행위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
⑤ 생명법 (하극상,인신범) :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그 근본과 연결을 바르게
⑥ 상해법 (사람 상해, 종 상해, 낙태)
  - 타인의 사명, 기능 요소를 조금도 손상케 말고
⑦ 재산법 (소)
  - 받은 장점의 활동을 철저하게 제어하여, 자타 구원에 유익만
⑧ 재산법 (구덩이)
  - 필요한 조직, 체계를 적절히 관리하여, 구원만 되도록 보존



1905월 집회 8 (수전)

제목 : 재산법2, 소가 종을 받은 경우, 구덩이 사고 여종

본문 : 출애굽기 21장 31절 -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함으로 소나 나귀가 거기 빠지면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기도)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자유의 율법을 주사, 주신 율법의 기초를 기본으로 삼고, 세상 죄악으로 나아가던 죄악성을 제어해놓은 다음, 사랑의 주님의 크신 은혜 받은 대속의 사람으로, 앞서 가신 주님 따라, 내 속을 주의 것 만들고, 주변을 주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이 일이, 영광의 길, 감사의 길, 찬송하며 걸어가는 길이 되도록, 금번에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을 통해, 지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내 생각, 내 주관, 걸어온 길을 다시 한번 살펴, 끝없이 걸어가다가, 이 길에서 당하고 손해보고, 이 길에서 죽는 것을 기뻐할 수 있기까지, 나를 만들어, 주님과 하나된 생명이 주신 기능과 심신의 요소를 잘 건설하고, 더 하여 주신 우리 각자에게 기둥같은, 또는 소와 같이 복음을 위하여 큰 일을 할, 소중한 선물을, 그 은혜와 그 장점과 특기를 관리하여, 다른 사람 위하여 충성할지언정 폐 끼치는 일 없도록, 먼저 돌아보고, 주신 은혜 살리고 기르고, 주를 위한 이 길에 역군들 되어, 말세에 빛이 되며, 귀한 이 길을 받은 저희들이 하나가 하나를 살리며, 하나가 열을 살릴 수 있는 출발이 되어, 남 핑계, 지도자 없는 시대를 탄식하는데에서 일어나, 오늘 여기 우리가 앞날의 지도자 되고, 빛이 되기까지 먼저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돌아보며, 자기 속 깊은 진심을 점검하여, 주님이 기뻐하시고, 은혜 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이 시간도 밝혀 주시고, 인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자신을 살펴 그리 만들고, 그리고 걸어가는 순간 순간 하나님께 연결된 생명의 신앙이 되어져야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께 붙들린 자기에게는 자기 위치, 자기 사명에 따라 남다른 장점을 주셨고, 남다른 기능과 요소를 주셨기 때문에,

예배 보는 이 자리에 찬송, 인도의 은혜를 받은 그런 요소, 그런 기능의 사람도 있고, 세끼 밥을 잘 먹어, 육의 양식으로 신령한 양식을 받게 하는 식사 면에 특별하신 기능과 그런 요소를 받은 분도 계시고, 또 화장실 시설을 이용하는 이 일을 두고, 남들은 다 궃은 일이다라고 하나, 냄새나서 깨끗하게 쓰지, 피하고 싶은데, 맨 손으로 그냥 닦는 것이 즐거운 그런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이것을 불신자들은 ‘천하다’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 어지러운 것을 다 훔쳐 씻어 버리는 걸레를, 인간은 걸레를 더럽다고 하나,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교인, 교회의 온갖 더러운 오물들은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걸 다 씻어,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걸레되어 자기를 내다버린, 누더기 된 그 사람을, 주님은 ‘날 닮은 대속의 희생물이라’고 보시지, 빛나는 영광의 사람은 귀하게 보고, 그를 영광의 귀한 사람으로 가꾸어낸 아기 엄마는, 설겆이한 가정주부는, 그 일에 쓰인 행주와 걸레는, 주님은 더럽다 하지 않고, 대속의 앞길 간 주님을 따라가는 대속의 귀한 어린양으로 볼 겁니다. 그래서, 세상과 신앙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기쁘게 하고, ‘어떻게 주님이 우리 죄를 다 씻어 가신 그 걸레되신 주님. 당신의 육체를 버린 그 주님. 나도 그 자리에, 그 반열에 좀 설 수가 있나?’ 감사함으로 그런 신앙이 되어진 사람이, 그 일을 하는데 주님과 연결되어 순종하는 그 연결의 생명이 살려지고 커져가면, 그러면 그 사람의 그런 기능, 그런 역할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인데, 그 사람의 그런 면을 쳐서 상하게 하면, ‘상해법’이 되어집니다.

‘거지 같이 말이지, 온 집회에 모두 은혜 받는데,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가지고’ 목사인지 청소부인지 몰라가지고, 목회자 한 사람이 밭에 시설을 다 관리하며, 비 오는데 다 엉망이 되어가지고, 일당 받고 일하는 노무자인지? 아닌지도 모를만큼 수고를 하니까, 지나가는 교인들이 ‘아저씨!’ 이랬단 말이지요. 이래놓으니까 집회 20년 수고한 훌륭하신 목사님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뒤집어엎어 버렸지요. ‘누가 그런 훌륭한 목회자를 그렇게 시험들게 했는가?’ 말 한마디 던진 것이 주먹질이 되어가지고, 상하다 보니까, 지금 저렇게까지 막 그냥 큰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족한 우리를 위해서 20년 집회를 뒤 닦고, 희생하고 노무자가 되어, 우리는 고요히 좋게 은혜받는데, 혼자 나가서 걸레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그렇게 모든 집회에 필요한 깨끗한 은혜의 식사가 되고, 진행이 되도록 수고한 그 수고에 말 한마디 던진 것이 주먹질이 되었고, 그는 주먹을 맞아 상처가 났으니’ 상처가 나면 아프니까, 고함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뭐 이런 고함 소리, 저런 고함 소리가 들릴 때에, 그 귀한 사람, 귀한 기능을 귀하게 가꾸지 못해서, 저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기도로, 또 우리는 그분들이 돌아와서, 다시 옛날처럼 우리 집회 은혜 받도록, 온 집회 장소를 다 관리하고, 수위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걸레가 되대, 이번에는 ‘이런 일에 나를 써 주시다니, 참 감사하다.’ 사회 보느니라고, 모든 사람들이 좋게 보는, 앞에 있는 사람은 영광은 이 땅 위에서 많이 받고, 하나님 앞에 자기가 알지 못하게 많은 사람을 상처 준 것은 계산할게 많고, 이 땅 위에 남들이 시시하게 봤으나, 하나님 앞에 귀하게, 일꾼되어, 소가 되어, 많은 주의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한 그 일꾼의 영광이 많을 터이니, ‘이런 일에 나를 써주는 것이 참 감사하다.’

이래서 주님과 연결되어, 자기 기능, 그 요소를 살려 간다면, 그러면 현재 공회의 모든 일들은 다 해석이 되겠지요. 그게 ‘자유법’, 그게 ‘생명법’, 그게 ‘상해법’. 그 다음 4번째로 넘어오며, 오늘은 지금 소로 준 귀한 복음의 일꾼들, 내 속에 나를 하나님 앞에 귀하게 끌어가는, 나의 특별한 장점,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을 ‘소’로 두고, ‘소 관리 잘하거라.’ 열 명이 할 일, 백 명이 할 일을, 말 없이 죽는 날까지 또박 또박 걸어가는 황소의 그 일! 그 소의 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착하고 말 없고,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이것과 부딪치면, 약한 것은 나가 떨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약해도, 주님이 피 흘려 구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고, 그 면으로 하나님이 길러갈 하나님의 귀한, 다 일꾼들인데, 큰 일을 하는 큰 일꾼, 소처럼 귀한 교회의 기둥이, 우리 가정의 신앙의 기둥이, 내 속에 남달리 나의 신앙을 이고가고 지고가고, 말없이 버티고 가는 내 속의 장점이, 내 속의 신앙의 다른점과 잘못 부딫혀버리면, 길러가야 되는 신앙을 죽일 수 있으니, 죽여대면, 이 소는 소로써는 할 일이 끝났습니다. ‘죽여라. 그 고기도 먹지 말아라’ 그런 요소가 되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지도 말아라.

그런데, ‘만약에 그 소가 받는 버릇이 있는 줄 알았으면’ 코를 고삐로 꾀어, 틀어쥐고, 코뚜레를 틀어쥐고, 일꾼은 일꾼인데, 이 일꾼이 잘못 움직이면 그 만큼 손해도 크게 끼치니,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기르다가, 그 중에 머리가 아주 좋은 아이, 그 중에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는 반드시 부모가 코를 꿰어 틀어쥐지 아니하면, 머리 좋고, 실력이 있는만큼 가정의 기둥은 되지만은, 어느날 가정을 다 엎어버립니다. 등신 같은 아들이 속은 썩여도, 집에 큰 일은 내지 않는데, 똑똑하고 탁월한 놈들이 이게 삐끗 잘못 해 놓으면, 다 뒤집어 엎어버립니다. 자기 인생! 교회! 가정! 따라붙어 있는 처 자식의 신앙까지를. 남 달리 실력이 있는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코를 꿰어 고삐를 틀어쥐어, 이게 10배, 100배의 큰 일을 하지만은, 잘못 움직이면 옆에 있는 것들이 나가 떨어지니, 소야 코를 꿰면 되지만은 딸을 코를 꿰서 끌고 다니겠습니까? 이것은 기도로, 이것은 어릴 때부터 관심 있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일꾼인데, 이게 머리 한번, 이게 몸 한번 잘못 움직이면, 주변에 접촉되는 것들이 낭떠러지에, 아니면 뿔에 받혀, 소의 뿔은 힘을 말하는데, 이 소의 특별한 그 힘이 잘못 부딫히면 죽어나가는 일이 있으니, 어릴 때에, 탁월하게 공부 잘한다고 흐뭇하게 할 것이 아니라, ‘내 소는 큰 소가 되겠다. 그 대신에 많이 받아, 많은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 머리 좋은 아이가 발견되면, 부모는 골이 띵 해서, 정신이 아찔해야 되는데, ‘아이 뭐 다른 아이들보다 벌써 1년 앞서고, 3년 앞서버리니, 이게 1등 할 것이고, 취직할 것이고, 훌륭해질 것이고.’ 흐뭇하게 방심하고 앉았으니, 이 주인과 이 소의 관계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모르겠습니다. ‘실력은 없는 주인인데, 큰 소를 주셨으니, 큰 장점을 주셨으니’ 18살 고등학교 졸업하고, 벤츠 차를 선물로 받았으니, 이게 이 차를 타고 그냥 밟는 날에는, 차 상하고, 자기 죽고, 남 죽이고 어떻게 될 일입니까? 오토바이만 사줘도 큰 데, 자전거만 사줘도 위험한데, 타고난 머리, 타고난 재능을, 그것을 깎아 버릴 수도 없고, 묻어버릴 수도 없고, 남다른 특징, 남다른 장점, 남다른 실력이라는 것은, 큰 일을 하지만은 주변을 쳐 버리면, 많은 사람을 상처를 주니, 딸이 태어났는데 이쁘면, 엄마는 ‘이 인물이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을 할는지? 에스더와 같이,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나라, 전멸될 위기에 구해낼 왕비가 될 수도 있고.’, 이 인물이 인물값을 하느라고 발버둥을 쳐서, 수도 없는 남자 아이들 마음들을 상처 주고, 수도 없는 남자 부딫히며 그들의 인생 파탄을 내고. 인물 좋은 애 하나 교회 하나에 나타나놓으면, 온 교회 7계명의 죄는 넘실넘실 넘칠껄요? 눈에 딱 띄는 것이 이쁜 것이 딸로 태어나면, 엄마는 ‘이거 어떻게 관리하나?’ 뭐 영 반 죽어버려야 되겠는데, 이것을 더 잘 가꿔가지고 자랑하느니라고 정신도 없으니, 이 엄마의 주인과 그 소같은 특별한 장점을 가진 그 딸하고 둘이 그 인생, 그 교회, 그 앞날이 주변의 신앙으로 도움이 될 것인가? 남자 아이의 장점, 여자 아이의 장점, 남녀를 불문하고, 내 속에, 교회 속에, 특별한 은혜, 특별한 장점을 가진 것이 ‘소’입니다. 코를 꿰어, 잘 철저하게 관리해야 됩니다.

‘이게 다른 사람을 떠받는데, 죽으면’ 아무리 큰 장점이라도 딱 잘라, ‘제명 처분’해버려야 됩니다. 제명이라니요? 무엇으로 비교해야,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없을까요? 뭐 서울시장님이 우리공회 청년 중에 나와버렸습니다. 서울 시장님이 마음 먹으면 뭐, 서울 바닥에 공회교회 100개는 소리 없이 만들고, 도와줄 수 있겠지요? 큰 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신앙, 이 분 행위 하나 잘못되면 수도 없는 사람 나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잘 한다는 것이 그만, 신앙을 한번 절단 내 버리면, 불러다가 ‘시장 사표, 써 버리시지요.’ 이게 소를 잡아버린 것입니다. 공회에 황길태 장로님이라고, 30대에 아마 군수 되셨을 걸요? 경남의 울주군수, 남해군수, 굉장히 고위 관직으로 계속 올라갔었습니다. 그 분의 군수, 그분의 시장직, 그분의 도지사 직은, 끝까지 그 사모님이 남편 코를 꿰어 딱 틀어쥐고, 어쨌든지 이 고위 직책이 자기의 신앙에, 교회에 흐러지지 않도록, 얼마나 철저하게 잘 했는지, 뭐 100점이야 없겠지만은, 거의 참 잘하셨습니다. 남해 군수로 70년대에 가셨는데, 남해에는 공회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남해군수에 장로님이 갑니다. 그러면, 교역자들이 청탁을 해서 막 공무원들을 들이 넣고 난리가 날 것인데, 남해군수 파견 갈 때, 장로님을 불러다가, ‘공회 목사, 공회 교회, 공회 교인 청탁이 들어오거든, 딱 짤라버려야 됩니다. 만약에 도와줬다가는, 공회 교회와 군수가 한 덩어리가 되어 세상과 교회가 뒤섞여 놓으면, 나중에 장로님 잘못, 행정하다가 잘못되어놓으면 교회에 욕 얻어먹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 일납니다.’ 엄중하게 경고하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어쨌든지 막아서, 장로님이 남해군수에 계실 때, 교인이 아니라 군수로 잘 근무하셨고, 늘 집회 참석하느니라고 늘 애 먹고 그랬습니다만은, 철저했습니다. 또 교회 목회자들 한테는, ‘공회 중심 교인이 군수로 오셨으니’ 남해 시골 촌에 공회 작은 교회들, ‘이제 군수 덕 한번 봐보겠다.’ 요즘은 남들의 눈이 있어서 잘 그러지를 못하지만은 그때는 군수가 대통령처럼 남해군은 마음대로 다 해도, 모를 때입니다. 목회자들에게 군수 장로님에게 부탁을 해서, 남들이 볼 때 ‘공회 교회와 군정과 연결이 있구나. 이게 뒷 돈이 오고가고, 봐주고 뭐 이런 편파가 있구나,’ 이래 놓으면, ‘장로님 실수 있으면 공회 교회에 그대로 쏟아져 버리고, 공회 교회 교인들의 문제가 생기면, 장로님이 지지 않을 책임, 공연한 짐을 집니다.’ 이래서 직장과 교회, 공회와 남해군을 딱 짤라서, 군수와 교회 목회자들한테 경계를 이렇게 구분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고현교회 이만기 목사님은 일제 때부터 공무원했던 분이라, 그런 쪽이 굉장히 능한 분입니다. 겉은 어스룩해 보여도. 목사님이 그렇게 금지해놨는데도, 밤에 찾아가서, 낮에 찾아가서, ‘우리교인 중에 가정이 이렇고, 저래서 이 사람은 청소부 하나라도 어떻게 좀 해주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 가지고, 아마 그 고현 시골교회에 남해군청 직원, 한 10명인가 만들었을 걸요? 목사님이 단속하고 보냈지만은, 100점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로 엄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어떤 군수, 그 어떤 교회가 그렇게까지 서로 구별하고 조심한 적은 없습니다. 100점은 아니더라도. 또 그 청탁한 이만기 목사님은, 교인 생활 하나가 바로 되면 신앙이 바로 되고, 가정이 바로되면, 이왕이면 공회 복음 바로 되라고 그랬지, 뭐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2년마다 목회자들이 바뀌거든요? 그 자기가 그 교회에, 돌아가실 때까지 목회하는데 도움이 되려고 그랬따면, 목회자가 경제나 다른 더러운 일을 탐했다고 오해를 받겠지만은, 2년마다 떠나면 그만인데도 불구하고, 교인 사랑이 넘치니까 목사님께서 그렇게 금하는데도, 한 10명 공무원 만들어버렸습니다. 또 다른 교회들은 부탁하지 않았고, 지켰습니다.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으니까 이게 교회답고, 우리 수준이 그렇지요. 또 장로님은, 목사님이 금지 해 놨기 때문에 금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의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는 목회자에게, 표 없이, 소리 없이. 그래서 나중에 뒷말 나오지 않도록 조심 조심했기 때문에, 잘 계셨다가 왔습니다. 목사님의 지도와 공회 방침이 그러지 않았으면, 남해 군청에 아마 공무원 한 100명 만들었을 겁니다. ‘한 명도 넣지 말아야 되는데, 열 명은 들어갔지 않느냐?’ 그래서 다른 교단보다는 훨씬 나은 거지요. 그리고, 100점은 안 되는 것이고. 그 모자라는만큼 우리는 배우고, 실력을 갖추는 것이고.

이렇게 보면, 두루두루 배울게 많고, 은혜 되는 것이 많고, 아쉬운 것은 또 다음에 더 잘 고치면 되고, 소 한 마리 군수로 갔으니, 이 소 한 마리가 잘 하면, 많은 일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 한 마리가 잘못 관리하여, 잘못 처리 해 놓으면, 1970년대에 거창군 수로 오신 강상영 장로님의 형이 되는 분인데, 한 살 위의 형이 되는 분이 군수로 왔습니다. 강판영 군수라고. 거창읍 교회에서는 뭐, 군수가 와 놓았으니 장로님 세우고 난리가 났지? 목사님처럼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놓으니까, 군수한테 한껏 부탁했고, 군수님은 교회를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도와줬고, 그리고 그 분이 가고나니까, 어떤 일이 결과적으로 생겼느냐? 남해군수에 간 황 장로님과, 거창군수로 온 고신의 강 장로님과, 우리는 금지했고, 막았고, 그런데도 부탁한 사람은 있었고, 이쪽에서는 마음껏 부탁했고, 마음껏 밀어줬고, 그리고 그 뒤에 그 분 양쪽 교회의 영향을 볼 때, 남해군의 공회교회는 ‘참 큰 소가 큰 일을 하고 가셔서, 세끼 먹고 살기도 어려운 분들에게 신앙 생활의 근거를 마련해주셔서 참 고맙다.’ 70년대에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저도 교인 중에 ‘소’가 되어 많은 사람을 위하여 일할 분들에게는 금지할 선은 드리면서, 그러나 소리 없이 살피는 일은 하도록 부탁을 합니다. 잘 하면 소리없이 큰 일을 하는 것이고, 큰 일을 하다가 실수로 잘못 접촉하고, 말 한마디 잘못 해 놓으면, 나도 모르게 한 사람 굴러 떨어집니다. ‘코를 꿰어, 잘 관리하여, 건설의 일은 힘 있게 하고, 만에 하나라도 실수 없도록 네가 책임을 지라!’ 이 정도면, 교회 운영과 가정 운영과 신앙생활의 실제 생활 속에 모든 일들이 다 해석이 되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소가 ‘받는 버릇’이 있습니다. 일을 시켜 보니까, 그 분은 그러지 않았는데, 황 장로님이 남해 갔을 때에도 한 10명 직원 시켜주고, 울주군 갔을 때에도 그러고, 여기 가서도 그러고, 저기 가서도 그러고, 받는 버릇이 이제 생겼는데, 그래서 탈이 생겼는데. 다른 교단 사람들이 ‘편파다.’, 불신자들이 ‘종교 편향이다’라는 말이 공회로 들어오느넫, 그 다음에도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지도한 백 목사님이 황 장로님의 교인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직접 져야 됩니다. 공회에 준 그 인물 때문에, 소리 없이 큰 일 하는, 말 없이 큰 일하는 소를, ‘군수 사표내게 해라. 더 이상은 공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 그리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분 경북 지사 쪽으로 마지막까지 충성했고, 여기 우리 집회하는 우리 위하여, 그 사모님이 ‘초기에 어려울 때, 연보도 안할 것이고 모두들 욕을 할 터인데, 돈은 많이 들터인데.’해서, 그 장로님 월급에서 큰 돈을 빼다가 저 한테 맡겨서, 참 돈 잘 썼었습니다. 그 분도 소리없이 우리 이 집회의 첫 출발의 공로자입니다.

그런데, ‘실수했다, 받는 버릇이 있다.’ 잘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더욱 철저하게 책임지고, 잘못되면 관리의 책임이 있는 네가 소와 함께 죽어라.’ 다만 돈을 내면, ‘면제’해 줍니다. 30절에, 관리를 해야 되는데 관리를 못 해서, 또 사고가 생기면, “소는 돌로 쳐 죽여라” 그리고 “그 사람도, 임자도 죽일 것이며”, 다만 소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그런 일이 생겼을 때에, 죽이든지, “주인이 만약에 돈을 내면, 용서하라.” 돈 내고 죽을 사람이 살아나오는 것을 뭐라고 그런다고요? 30절에, ‘속죄금’이라고 그럽니다. 돈 낸다고 무조건 죽을 사람을 살려 주지는 않습니다. “부모를 저주한 자는, 부모를 친 자는” 돈 받지 말고, 무조건 죽는 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소를 관리 잘 못 해 가지고, 소 때문에 주인이 죽을 일이 생길 때는, ‘죽을래? 돈 내고 해결할래?’ 돈이라는 것은, 내 생명을 대신 할 수 있는, 생명에 갖다 놓을 귀한 물질입니다. 세상이 여론으로, 돈 많은 부자들 쥐어 박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부화뇌동하면, 성경 모르는 사람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는 시간이 들어갔고, 그 시간은 그 사람의 ‘생명’입니다. 남의 돈 100만원 손해 보였으면, 남의 돈 100만원 벌 그 시간의 생명을 손해 보인 겁니다. 반대로, 내가 죽어야 되는데, 소 때문에 죽을 때는, 내 돈을 주면 내 생명이 살아나옵니다. ‘돈 많은 사람은, 함부로 죽여도 되겠네?’ 뭐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러니까, 그런데 부모를 치는 자는 아무리 재벌이라도 돈으로 해결 못합니다. 네가 죽어야 되지, 뿌리를 짤랐으니까. 그런데, 일하는 소를 관리하다가, 관리를 못해서 고삐를 잠깐 놓는 바람에 이 소가 남을 쳐 죽였을 때에는, ‘돈으로 책임을 지라.’ 그로 인하여, 손해 본 사람들을 네가 뒤에 잘 살펴, 다시 신앙이 복구 되도록 해라.

그리고, 31절에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인데” 32절, “만약에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은 30세겔이다.” 은 30세겔이라는 말은, 교재 78페이지 가운데입니다. 남종과 여종의 ‘종’이라는 말은, ‘자유성이 없는’ 사람이라. 자유성은 없는데, 주인이 결정을 하는데, 앞으로 길러 가르쳐, 주인처럼 자유성의 신앙을 만들어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종이라는 것은 ‘주체성’, ‘책임성’, ‘지도성’은 없어, 늘 순종으로 가야 되는 이런 교인도 있고, 그런 은혜도 있고,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종속적 신앙’을 말합니다. 그런데, 소가 남종, 여종을 받았으면 어떻게 하느냐? “은 30세겔이다.” 레위기 27장 3절에 보면, 사람을 성전의 돈 ‘세겔’로 가지고 값을 매길 때에, 남자가 20살에서 60살까지, 20살에서 60살이 정상적인 한 남자가 힘있게 일할 정상적인 때입니다. 남자 한 명에 ‘50세겔’을 값으로 붙여놨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20살에서 60살이면, ‘30세겔’입니다. “소가 남종과 여종을 받으면” 종은 재산이므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교재 78페이지 가운데, ‘종은 재산이므로’ 앞으로는 이 종을 자기처럼 만들어야 되지만은, 현재는 내가 쥐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재산’입니다. 내 ‘책임’입니다. 나의 ‘일부’입니다. “남종과 여종을 받으면 돈으로 해결해라.” 얼마로? “30세겔로” 자유성을 가진 남자는 50세겔, 그 남자에게 딸려 있는 아내는 30세겔. 그래서 남종과 여자는 은 30세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결하기 위하여 네가 번 네 돈을 기울이라. 

공짜가 없습니다. 성경에 공짜가 없습니다!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잘못 읽어서 그렇고, 도둑놈들이 거지들이 오해를 하고, 자기 중심으로 변질을 시켜서 읽으니까 공짜가 있지, 성경에 공짜 없습니다. 하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고, 천국으로 옮겨놓는 이것은! 이것은 댓가가 없고, 댓가를 낼래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전적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전적 은혜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임과 그 다음 공평의 원리고 반드시 ‘계산’을 철저하게 합니다. 먼저 계산을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서, ‘내가 남의 이를 쳤는데, 그 이 하나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불편한지?’ 생생하게 알고나면, 남의 이를 장난삼아 치지 않고, 빼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뺐다면, 그 이 하나로 인한 불편을 내가 반드시 갚게 되어 있지. 그리고 나서, ‘주님은 그러면 나를 위하여 어떤 고난을 당하셨나?’ 그래야, 그 은혜를 감사하지요. 은혜를 모르니까, 돈 버는 땀을 모르니까, 고생을 모르니까, 남의 소중한 걸 알지 못하고 느끼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 날 대신에 죽었는데도, 우리가 감사를 모르지 않습니까? 남의 돈 만 원을 벌려면, 1시간 노동을 해야 됩니다. 주인에게 200만원, 300만원 월급을 가져오려면, 한 달간 눈치 보고, 시키는 대로 연극이라도 해야 됩니다. 돈을 벌어 본 아이는, 돈을 벌어보니까 내 대학 등록금 500만 원을 벌려면, 500만원 어치 주인에게 기어야 되고, 연극해야 되고, 속이 썩어야 되고, 장사를 하려면 손님한테 절절 매야 됩니다. 내 1학기 등록의 500만 원이라는 것이, 남의 돈에서 벌어오는데 자기가 노력해보고, 눈물 흘려보고 속을 썩여보고, 땀을 흘려봐 놓았으면, 그러면 부모가 주는 주는 1학기 등록금이, 이게 500만원이 얼마짜리 부모의 눈물이며, 수고며, 사랑인 줄 알 것인데, ‘돈!’ 하면 척, ‘돈!’ 하면 척, 척척 입금시키며 아이들 등록금 받을 때 걱정할까 봐, 걱정하면 아이들의 마음이 무거울까봐,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물 퍼듯이, 찍어내듯이 번 돈처럼 아이들이 학교 갑니다. ‘돈!’ 하면 척척 주어놓으니까, 이것들이 부모 감사를 모르고, 부모 감사를 모르니까, 부모를 함부로 저주하는 말이 쉽게 나오고, 덩치 크면 부모 쥐어박고, 하나님 앞에서는 죽을 죄인을 만들기를, 부모가 만든 겁니다. 죄악 세상의 마음의 상처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덜 받게 하려면, 부모가 자기 자녀를 어릴 때부터, ‘밥 한 그릇 이거 그냥 들어온 것 아니다. 네가 나와서 밥 해봐라.’, ‘밥 먹고 점심에 새 그릇 또 나온 것 아니다. 설거지 해야 된다. 불편한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작은 연습, 작은 불편, 작은 고통을 줘서, ‘죄 아래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가르쳐 놓아야, 큰 죄를 짓지를 않아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데. 예방주사 하나 찌르는데, ‘이 바늘이, 아이에게 들어가면, 얼마나 아플까?’ 예방주사 놓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요? 장애자 되지요? 아니면, 죽어버립니다. 전염병을 피할 수가 없으니!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죄악 세상이라 할 수 없이, 예방주사 맞아라!’ 애가 울어도 갖다가 찔러버려야, 소아마비 수자를 찔려버려야, 천연두 주사를 찍어버려야, 아이는 울고 그 병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아이가 복되게, 행복하게, 끝까지 즐겁게 살면 좋은데, 어린 시절을 즐겁게 살면, 나중에 사회생활하면서 그만큼 상처는 크게 받습니다. 차라리 상처 받고 살고, 치고 박고 사는 죄악 아래 세상이니, 사랑하는 부모가 이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미리 주는게 낫지요. ‘너 동생 쥐어 박은 것 그냥 못 넘어간다. 너도 맞아봐라. 당해봐라.’, ‘너 동생이라고, 함부로 한 것, 그거 형에게 그냥 못 넘어간다. 계산해라.’ 이래서 형제끼리 계산하고, 부모가 사랑으로 조절하고 훈련을 시켜, 이게 인생이며, 이게 죄악 세상의 살아가는 이치라, 이렇게 잘 가르쳐 놓으면, 험악한 세상을 살며, 가정 안에서 외교도 해봤고, 전쟁도 해봤고, 평화도 해봤고, 돈도 물어내 봤고, 억울해도 봤고, 사과도 받아보며, 부모 아래 자녀들이 사랑의 세계에서, 이 땅 위에 생길 일을 다 겪고나면, 그러면 약소국 되어 식민지 된다든지, 강대국이 되어 쥐어박다가 욕 얻어먹는다든지, 사업하다가 망해서 돌아올 길이 없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아니하겠지요.

‘남종과 여종의 은 30을 반드시 내게 하라.’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철저하게 계산하고, 따집니다. 안되면, 네 목숨이 죽어라! ‘이를 뺐느냐?’ 네 이빨도 빼보고 한번 아픔을 느껴보라. 그리고, 다시 한번 계산해 봐라. “돈은 돈으로,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종의 임자에게 줍니다. 여종은 ‘종속 신앙’을 책임진 ‘지도 신앙’에게 주는 겁니다. ‘다른 교회 교인, 마음 상하게 하여, 신앙생활 하는데 어렵게 만들었느냐?’ 하나님 앞에 책임 다 따라갑니다. ‘우리교회만 따뜻하면, 우리교회만 은혜받으면 됐지 뭐 다른교회 싸우든지 말든지, 공회 엉망이 되든지 말든지, 우리교회 따뜻하게, 이번 예배 은혜로 복받고, 그 다음 한 주간 평안하면 됐지.’ 그걸로 끝이 나나요? 주인이 있고, 남종이 있고, 여종이 있는데.

“소는 맞아 죽을찌니라” 종은 주인에게는 재산이나, 종도 소에게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떠받은 소는 죽일찌니라.” 종은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재산이니 소가 떠받아도 괜찮은가? 종이란 주인에게는 종입니다. 재산입니다. 소에게는 주인도 사람이고, 종도 사람입니다. ‘남종 여종 떠받았느냐? 소 너는 사람을 떠받았으니, 그것은 두면 또 다른 사람을 떠받을 것입니다. 이런 행위, 이런 육체, 이런 신앙은 더 이상 아니된다.’ 막아놓은 것이 “소를 죽일찌니라” 넘어갑니다.

80페이지. 본문에 33절을 살펴봅니다.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있는 구덩이입니다. 우리 집회장소 들어오는데 큰 냇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판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냇가에 다리 옆에, 아이들이 놀다가 빠지기 좋을만큼 ‘난간’이 없습니다. 보면 알 만한데, 있는 구덩이를 덮지 않았습니다. 또는 내가 필요하여, 구덩이를 하나 팠습니다. 그리고, 덮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나 나귀가 빠지게 되면, ‘구덩이 판 주인, 구덩이를 덮어야 될 주인, 너는 잘 처리해라. 남의 짐승, 소나 나귀나, 손해 받고 죽었으니, 돈으로 해결해라.’ 네가 시간들여 번 네 돈으로 해결해라. 돈이 나가서 해결할 때에 돈이 나가서 해결한다고 생각마셔야 합니다. 그 돈을 번 내 시간이 가서 해결하는 겁니다. 그 시간은 나의 생명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돈이 나의 생명의 일부라는 것을 절감하고 체감했으면, 남의 돈 함부로 손대지를 못하는 겁니다. 내 돈이 내 생명이고! 내 돈이 내 생활이고! 내 돈이 아까우면, 그것을 느껴보면, 느끼고 나면 그리 되는데, 부모가 아이들을 기를때, 돈? 돈 달라면 척 주고, 돈 달라면 척 주는데, 이 아이에게 돈은 그것은 휴지조각처럼, 그것은 장난처럼, 그것은 우스운 것처럼, 그건 사랑의 세계에 넘치는 빗물처럼 퍼부어 댈 수 있는 걸로 3살 때에 교육을 시켜놓으니까 여든이 되도록 생각이 안 바뀌어서, 내 돈이든 남의 돈이든 함부로 손을 대지요? 성경은 돈을 손대면 목숨으로 갚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이 들어가고, 그 시간은 그 사람의 생명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사랑이 넘쳐도, 아이들에게 10원짜리 하나라도 잘 붙들고 애써 가르쳐, 인식을 시켜, 반복, 반복 훈련을 시켜 놓으셔야 됩니다. 영재교육, 뱃 속에서부터 영어 테이프 들어, 외국어 유창하게 되는 것도 하십시오. 하면 좋은 겁니다. 죄되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그 보다는 더 급한 것이, 부모의 고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심어야 됩니다. 더 앞서서. 부모의 땀을 흘린 그 시간, 땀 흘린 그 수고가 돈이 되고, 그게 밥이 되고, 아이에게 간식이 되고, 그게 아이에게 장난감이 된 것은 ‘인식’을 시켜 놓으셔야 됩니다. 천 원짜리 장난감 사 주니까, 한번 가지고 놀고 휙 던지고, 만 원짜리! 그 아이 마음 상할까봐, 생일이라고 웃겨 하려고 만 원짜리? 만 원짜리 이틀 가지고 놀다가, 휙 던지고 10만원짜리! 친구들은 10만원짜리인데, 나한테는 100만원짜리! 그러면서, 이 아이에게 돈이 가고, 아이가 웃는 모습에 부모가 행복한 이 작은 의미의 행복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 속에는 지금 ‘돈? 그까짓 것? 돈? 울면 되는데? 돈? 땡깡 부리면 되는데? 돈? 문 닫아놓고 부모하고 한 3일만 버티면 휴대폰 또 바꿔주는데? 멀쩡한 옷 두고 또 사 줄 건데? 등록금?’ 삐진 듯이, 어디 뛰어 내릴 것처럼 쓸쩍 흘리면 뭐 그냥 지방 국립대라도 넘칠 것인데, 1학기 한 500만원, 700만원씩 하나요? 좋은 학교는? 부모 쇠가 빠지게 번 부모 생명의 절반, 부모의 인생을 갖다가 송금을 할 것인데, 그게 가서 그 아이의 더 좋은 앞날이 되고, 그게 부모 노후로 돌아오면야 투자가 되지만은, 이게 세 살 때부터 자라기를, 인식이 되기를 ‘돈? 그까짓 것 울면 오는데?’ 이게 쉽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한 이것이 인간될리는 없다는 것이 세상의 통계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공회 우리 교인들, 여기 집회에 참석한 우리 여반들, 여반이 나가서 돈 버는 것도 필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만은, 한달에 나가서 그 돈을 버는 것보다, 세 살 아이의 세상의 인식과 세 살의 사고방식을 바꾸되 ‘부모란 소중한 것이다. 네 입에 들어가는 야쿠르트 100원짜리 하나가, 이게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소는 하루종일 풀을 뜯어먹어야 되고, 그 우유 짜느라 곧 죽을 고생 다 했고, 그것을 저어서 야쿠르트 만들고 우유 만드느니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부모의 돈이 있어 우유, 야쿠르트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붓고 장난칠 경제는 되지만은, 이것을 만들고, 이것을 가져오는데까지 들어간 그 포장, 인쇄, 장사들의 눈물, 애터지는 마음을’ 조금씩, 이슬비 젖어 들어가듯이 아이에게 한꺼번에 다 쏟아 놓으면,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지요. 그 엄마가 아이를 붙들고, 하루는 놀며 한 가지. 일주일에 두 가지. 슬슬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르게, 젖어 들어가, 어릴 때부터 아끼는 마음, 돈이 그게 중요한 것! 그러나, 그 돈이 살아 생전이며, 해결은 되지 않는다는 것, 그 위에 영생의 복을 가졌다는 것. 요게벳이 모세를 기른 석 달이, 애굽의 장관으로 출근하는 그 자리하고, 모세 석달 젖 먹이며, 귀에다 대고 속삭거린 그 석달이, 요즘 여기 우리 20대 여반들, 청와대에서 교통부 장관 하시라고 부르면, ‘뭐 결혼쯤이야? 뒤에 해도 됩니다. 아이 낳는 것 뒤에 해도 됩니다. 이 아이 가르치는 것, 보육원 돈 많이 주면 더 잘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실는지? ‘청와대 대통령 하라고 해 보십시오. 내 아이 하나 석달 가르쳐 모세 만드는 것이 나에게는 더 급합니다. 가치 평가적으로 이게 훨씬 낫습니다!’ 그럴 수 있을는지? 장관은커녕 9급 공무원 하라고 해도, 뭐 주일 아니라, 공회 노선, 부모 전당포에 잡히고도, 가고 싶을 걸요? 실력이 없어, 안 돼서 그렇지, 가능만 하다면야 부모 은행에 잡히고라도 7급 고위직 가능하면 할껄요? 가치의 지식의 판단이 있어야, 그래도 가다가 될까 말까 하는데, 가치 평가가 없으면 다 넘어집니다.

여기 지금은 ‘구덩이’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직접 관리를 했던지’ 아니면, ‘종을 통해 간접으로 관리를 했던지’ 하여튼 내가 판 내 구덩이는 내가 뚜껑을 덮어두어야 됩니다. 필요해서 구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빠지면 남이 다칩니다. 다치지 않도록 덮어야 됩니다. 남이 만들어놓고, 부모가 만들어놓은 구덩인데 내가 그 구덩이를 관리해야 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구덩이 잘 덮고, 보존하거라.’ 무엇을 가르치려고, 구덩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구덩이라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안전해보여서 뚜껑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고 보니까 위험할 수도 있는 ‘시설’입니다. 교회의 ‘조직’을 말합니다. 교회의 ‘제도’를 말합니다. 교회의 ‘규정’을 하나의 예를 들어, 구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졸업하면, 목사 자격증 준다.’라는 제도가 장로교회는 다 있습니다. 그게 있어야 그게 장로교입니다. 우리처럼 신학교 없이 목회자 되는 교단은, 우리가 이름은 ‘예수교 장로회’라고 붙여 놨는데, 그 장로교 아닙니다. 정식 장로교는, 의사가 의과대학 가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서, 비로소 의사가 되는 것처럼, 목사도 신학교 졸업하고, 인턴, 교육 전도사 하고, 강도사, 레지던트 지내서 목사 합니다. 미국의 의사 제도가, 우리나라 들어와서 병원 의사 제도 그대로 되었고, 미국의 의사 밑에 간호사 제도가, 우리나라 들어와서 목사님 밑에 여 전도사 제도가 된 겁니다. 미국의 목사 만드는 방법이, 미국의 의사 만드는 것과 꼭 같이, 여기는 의과대학, 여기는 신학교. 우리나라도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장로교는 정식으로, 신학과정을 거쳐서 시험 쳐서, 그 다음 견습을 해서, 그 다음에 목사가 되도록 해 놨습니다. ‘의과대학만 나오고, 의사 면허증만 나오고 개업만 하면, 전부 수술 잘해서 환자들을 위한, 이 땅 위의 선한 그런 의료인이 되는가?’ 성적 좋은 애들이, 왜 의과대학에 가지요? 돈 벌려고 가나요? 남한테 봉사하려고 가나요? 서울대 법대, 법학과 학생들이, 법대 졸업하고 사법고시 합격에서, 1등하면 판사를 지망하는데, 판사 지망하면 나오는 월급이, 초등학교 교사 월급하고 같습니다. 시청 청소부 9급 공무원하고, 월급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왜 전국에 손꼽는 1등이 왜 판사를 하지요? 그 월급 때문에? 택도 없는 소리! 우리가 서로 다 알고 있지요. 이유가 뭔지. 목사의 제도도, 겉으로는 ‘고등교육을 받은 교인도 있으니, 고등 교육 위에 대학원 신학교 과정을 거쳐야, 고등교육 받은 교인을 가르치지 않겠느냐?’ 일반 세상이 초등학교가 있을 때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등 과정을 거치면 목사를 줬습니다. 세상이 중 고등학교가 많아지니까, 대학교 과정을 거쳐야 신학과정을 했습니다. 세상이 대학이 많아지니까 대학생 교인이 있을 때 가르치라고, 신학교는 대학 졸업한 위에, 대학원 과정이 신학교가 되었습니다. 이거 뭐 하는 짓이지요? 세상의 법조인, 세상의 의료인을 만드는 체계로 만드는 것은, 세상이야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그리하지만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도하고 위하여 목자되는 사람도, 세상의 법조인처럼, 의료인처럼 그리 만드니, 그 제도가 ‘구덩이’가 되었습니다. 원래 필요해서 만든 구덩이입니다. 필요해서!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파 놓고 만들었습니다.

공회가 고신에서 출발했습니다. 호주 선교부의 경남 지역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호주, 오스트레일리라. 크게 말하면 미국 장로교 제도하에서 선교 받고, 그래서 그 고신 속에서 백 목사님이 있고, 공회가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 출발을 하고 보니까, ‘목사가 있습니다.’ ‘아, 예.’, ‘전도사가 있습니다.’ ‘예.’, ‘집사도 있습니다.’ ‘예’, ‘세례도 있습니다.’ ‘예.’ 그리고 나는 처음 나왔으니, 세례받은 교인은 천사 같고, 집사나 전도사님이 되면 하나님처럼 이렇게 존경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신사참배가 턱 오고 보니까, 위에서 썩어 나가자빠지기를 귀신 섬기는 뭐 정신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이 외에는 없는 것이로구나!’ 그걸 몰라서, 목사 제도, 집사 제도, 세례 제도를 만들겠습니까? 루터와 칼빈이 천주교에서 처음 출발하면서, 천년 간의 교회 제도 전부를 다 엎어놓고, 백지의 새로 출발을 하려고 생각을 해봐도, ‘목사는 필요는 하다.’, ‘집사도 필요하다.’, ‘세례도 필요하다’ 해서 좋은 뜻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덩이를 판 겁니다. 루터와 칼빈, 특별히 칼빈이 오늘 우리의 신앙의 방향을 다 잡아놓은 설계자인데, 그 칼빈이 세상 간판이 좋고, 세상 제도가 좋아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천년의 천주교의 부패와 잘못된 것을 연구하고, 파악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교회라는 것은, 앞선 지도자라는 것은 있기는 있어야 된다. 여러 가지 불편과 모순도 있겠지만은, 그래도 목사는 있어야 된다. 장로님도 있는 것이 맞다. 집사도 필요하다. 세례는 문답하고 살펴본 다음 주는 것이 맞다.’ 그래서 장로교의 출발은, 천주교에서 출발할 때에 제일 좋은 것만 촐촐 추리고, 필요 없는 깊은 우물 이런 것은 다 메워버렸습니다. 공연히 쓸모가 없는데 파는데 헛 일, 빠져 죽는 것 같은 것은 다 막아버렸습니다. 교황제도, 무슨 절기, 별의별 수도 제도, 구덩이 전부 다 메워버리고, 목사 구덩이, 신학교 구덩이, 집사 구덩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집사님이라는 것이, 교회에 필요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려오다가 공회가 신앙 출발을 하다보니까, 그때 쯤은 집사 구덩이, 목사 구덩이에 빠져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집사 구덩이의 뚜껑을 닫아버렸습니다. 신풍교회 30년 목회에, 제가 마음 먹고 집사 임명한 것은 10명이 안 됩니다. 지금도 교회 집사님이 한 25명 정도 되는데, 한 15분은 ‘집사 안주면 옆 교회 간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합니까? 다른 교회 가면, 권사님이 될 만한데. 그래서, 협박으로 드린 분, 뇌물로 드린 분, 달래서 드린 분, 또 어떤 분은 젊은 사람인데 도망갈까봐 집사 목줄로 메어놔야, 이제 잡혀 있고, 잡혀 있다보면은, 나중에 스스로 이제 끊어도 될테니까, 이건 교리가 아니고, 이것은 목회입니다. 교리와 목회는 다릅니다. 신풍교회 집사님 자격, 뭐 위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그래도 공회집사 정도가 아니겠느냐? 5명 되기가 어려운 걸요? 그러면, 집사님들이 목사들한테 ‘너는 목사감이냐?’ 하면, 저는 목사감은 못됩니다. 전도사 정도는 모르겠습니다. 공회의 조사 중에서는 중간쯤 될 것 같습니다. 공회의 어떤 목사님은 ‘이 땅 위에 백 목사님만 목사지, 백 목사님 외에 목사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 인간들은 전부 다 두들겨 버리겠다.’ 이런 분들도 계십니다. 정식으로 말을 하면 목사의 수준은 높습니다. 그런데도, 목사의 이름을 가져야, 또 필요한 일이 있어서 가지는 것처럼, 집사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원래 집사의 제도라는 것은, 500년 전에 천주교에서 새롭게 출발하면서, 목사, 장로, 집사. 세 가지만 구덩이를 팠습니다. 물을 담아야 되니까, 그 물을 떠 마셔야 되니까. 그 물로 소와 양을 먹여야 되니까. 빨래도 해야 되니까. 그 외의 굉장한 터널, 굉장한 구덩이가 많았는데, 그것은 위험해서 전부 다 닫아버렸습니다. 지금도 천주교는 인간이 들어가면 무저갱으로 빠져 죽을 제도, 구덩이가 한도없이 많습니다. 삼팔선의 지레밭 같습니다. 그거 다 치우고, 목사, 장로, 집사 구덩이만 있습니다. 그런데, 공회에 눈으로 보니까, ‘목사가 너무 쉬워 빠져 죽는 사람이 많지, 목사 구덩이에 물 퍼, 양들이 먹어, 감사하는 경우는 너무 적다.’ 그래서, 성경 백독 뚜껑을 닫아 버렸습니다. 성경 백독 뚜껑을 닫아서, 그거 읽으면 목사 된다는 말은 아니고, ‘적어도 이것은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빠져 죽지는 않아야 되지 않겠느냐?’ 장로님은 교회에 일 생기면, ‘내가 대신 교도소 갈 겁니다.’ 그 정도 될 사람, 떠 밀려 마지못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기회를 제가 기다렸습니다.’ 그럴 만한 분. 집사라는 사람은 ‘어떻게 기회만 주시면, 제 재산을 다 팔아 예배당 짓겠습니다.’ 그런데 공회는 예배당을 잘 짓지를 않지 않습니까? 빚 내지 않지 않습니까? 연보할 기회도 잘 드리지 않지 않습니까? 다른 데는 연보하라고 집사를 쫙 뿌려버립니다. 100명 주일 오전 출석 교회에 집사가 80명에서, 100명입니다. 권사가 20명에서 30명입니다. 장로가 3-4명 됩니다. 공회는 ‘100명 교회 기준으로, 집사 다섯이면 넘치지 않을까? 장로님은 하나 있을까? 없을까? 그렇지 않을까’ 뚜껑을 이렇게 닫아놓습니다. 구덩이가 있습니다. 내가 덮으면 됩니다. ‘덮으면 되는데 덮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여기 빠져 죽으면, 구덩이 판 네가 책임을 져라!, 그 구덩이에 빠진 다친 값은 네가 다 내거라!’ 그러면,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를 덮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꼭 필요한 구덩이냐? 꼭 필요한 제도냐? 꼭 필요한 이것은 방식이냐?’ 그러면 파고, 그 대신에 뚜껑을 잘 닫아둡니다. 내가 판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이 판 것을 내가 물려받았을 때도 그렇습니다.

‘열어 두거나’. ‘덮지 아니하므로’ 교재 밑입니다. ‘열어 두거나’ 있는 뚜껑을 내가 열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보통 ‘작위’라고 그럽니다. 쉽게 말을 하면은 ‘했다’ 그말입니다. ‘부작위’라는 것은 ‘안했다’ 그말입니다. 교통경찰이 양쪽에서 차가 쭉 오는 걸 보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차 두 대가 박치기를 했습니다. ‘내가 뭐 박치기 하라고 그랬나?’ 그런 짓을 ‘부작위’라고 그럽니다. 해야 될 일을 안 해서, 박치기 시킨 것. 또 아예, ‘이 차, 저 차 오라’고 해가지고, 중앙에서 충돌하도록 유도를 해버렸습니다. 신호를 조절해가지고, 그것을 ‘작위’라고 그럽니다. 구덩이를 파고, 있는 뚜껑을 열어 버렸습니다. 열린 뚜껑을, 열린 구멍을 그냥 두고 덮지 않으면 일이 생기겠는데, 닫지 않았습니다. 둘 다 책임입니다.

“소나 나귀가 빠지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82페이지 넘겨서, ‘구덩이를 소유한 자’, ‘구덩이를 판 자’, ‘구덩이를 관리하는 자’, ‘구덩이 임자 주인은’ 그 구덩이에 빠진 것은 다 책임을 져라! ‘남의 소가 가다가 지가 빠졌는데, 내가 책임을 져요?’, ‘네 구덩이 아니냐? 네 제도가 아니냐?’ 부부제도는 구덩이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부부제도를 괜히 만들었습니까? 필요해서 구덩이를 만들어 놨습니다. 결혼해서 부부 구덩이에 빠져 본 사람들, ‘아이고 저 구덩이에 또 들어가?’ 싶지요? 50대 이혼이 많아집니까? 60대 이혼이 막 늘어난다고 그럽니다. 멋 모르고 좋게 결혼했다가, 얼떨결에 했다가, 해보니까 할 수 없이 살았다가, 이제 50, 60대 되어서 애들도 결혼했고, 인생을 제 정신 차리고, 그 남자를 다시 또 쳐다보니까, ‘이런 놈하고 다시 살아?’ 이게 꽉 차여져 있는데, 남자가 일을 턱 벌이니까 잘 됐다고 잘라버립니다. ‘아이고, 속 시원한 것’ 앓던 이 빠지듯이. 부부제도도 구덩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부제도를 만들어 두었지,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부제도라는 구덩이에 닫아, 관리를 하여, 부부가 됨으로 상대방이 이 구덩이에 빠져, 다치고 죽는 일 없도록 하라.’ 그랬다면, 뭣 모르고 결혼 했을지라도, 살아가면서 뚜껑 관리를 잘 했더라면 50이 되고, 60이 된 다음, 결혼할 때는 멋 모르고 부부라는 결혼이란 그 구덩이에 빠져 죽으려고 기어 들어갔는데, 뭣도 모르고. 살아가면서 뚜껑 관리를 잘 하고 보니, ‘하나님이 주신 부부라는 구덩이, 이 제도는 필요했다. 뚜껑을 관리 안 해서 거기 빠져 죽는 사람이 많고, 다치는 사람이 많았지.’ 그래서 20대 결혼은 멋 모르고 했을지라도,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면, 옆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여자하고 살아? 그런 남자하고 살아? 그러고도 부부로 살아? 요즘 쉬우니까 그냥 갈라져.’ 그래도, ‘아니요. 그때는 그랬고, 살아생전에 몰랐는데 지금 철이 들고 보니까, 저 양반 때문에 내가 기도하게 되었고, 저 여자 때문에 그래도 내가 책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게 되어, 부부라는 제도 자체는 귀한 것이고, 뚜껑, 덮개 관리가 잘못되어 가지고, 모두들 거기에 문제가 생겼던 겁니다.’

며느리라는 제도, 시어머니라는 제도, 부부라는 제도, 결혼이라는 제도, 교회로 오면 목사의 제도, 집사의 제도, 구약장의 제도, 반사의 제도, 집회의 숙소 담당자의 제도, 전부가 제도입니다. 내가 파지 아니하고, 다니다 보니까, 살다 보니까, 그런 제도가 있고, 피할 수 없으면, 구덩이가 있으면. 그런데, 뚜껑을 네가 닫을 수 있으면, ‘뚜껑 관리 잘하거라!’ 필요 없는 구덩이면 메꾸면 됩니다. 이 구덩이가 저장고이며, 이 구덩이가 물을 담는 귀한 보급의 창고입니다.

귀하고 필요하여 있는데, ‘관리를 잘못하면 큰일 난다.’ 앞에서 말한 ‘소’와 같습니다. 소는 움직이는 소입니다. 구덩이는 한번 만들어놓으면 움직이지 않는 ‘제도’입니다. 소는 ‘인재’이고, ‘일꾼’이고 이것은 활동을 합니다. 구덩이는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제도’입니다. 소 한 마리가 얼마나 귀한데? 얼마나 큰 일을 하는데? 내가 할 일을 얼마나 많이 해주는데? 그런데 ‘이게 착하고 말없이 충성을 하나, 덩치가 있어 부딪치는 날에는, 상하는 사람이 있으니, 잘 관리하거라!’ 일은 시켜야 되겠는데, 이게 습관이 잘못 들었으면 ‘코를 꿰어 틀어쥐고, 이 소를 주신 원래 목적대로, 일하는 소, 좋은 소로 부려 먹어라. 좋은 일꾼을 쥐어박는 그런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라.’ 착한 여자가 귀하게 살아, 남의 집에 귀한 아내로 요게벳처럼 살 수가 있는데 남자가 들볶아대니까, 버티다가 착한 여자가 부부 싸움하고, 생활에 찌들게 되니까, 원망하고, 나중에 목소리가 앙칼지더니만은, 영 그냥 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맹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남자에게 책임이 클껄요? 좋은 여자, 좋은 남자 함께 사는데, 이 남자가 원래 착하게 살아, 마음도 선하고 착한 사람인데, 여자가 돈 안 벌어온다고 계속 들볶아대니까, 친구들과 비교할 때 못 났다고 계속 들볶아대니까, 이게 무리를 하다가 이게 탈을 생기다가 무리하고 탈을 내서 잘되려고 하다가 보니까 악해지고 독해져서,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 사람이 그만 아주 몹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귀한 소로 주셨는데, 이거는 움직이는 동물의 이야기입니다. 구덩이는, 부부제도와 같은, 교회의 제도와 같은, 필요해서 만들어놨는데, 뚜껑을 덮어야 되는데, 덮지 않으면, ‘네가 덮지 않았으니 원인은 너다!’ 원인이 너면, 가운데, ‘잘 조처해라’ 네가 덮을 것을 네가 덮지않고, 네가 덮지 않음으로 남이 상했다. 어떻게 해야 잘 조처하는 것이지요? 내 중심으로 짜게, 내 중심으로 잘한다고 하는데, 옆에서 보고 남이 볼 때는, ‘참 짜게’ 옛날엔 식모 제도가 있었습니다. 밥 세끼 먹여 주고, 나중에 시집보낼 때 약간 챙겨 주는 것으로 데리고 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집보낼 때 뭐 몇 가지 챙겨 주는데 보니까, 누더기 이것저것 얻어다가 그냥 딱 하는 걸 보니까, 갖추기는 갖췄다는데, ‘처 삼촌 벌초하듯이 쥐어 뜯어가지고, 어디에서 이런 것을 주어다가 갖다줬는고?’ 싶을 만큼. 주님이 보시면서, ‘내가 너를 위하여 다 바친게 억울하다! 신인양성 일위가 다 바쳐서 너를 살렸는데, 너는 네게 맡긴 사람 그 모양 그 꼴이냐?’ 그렇게 한 것만큼, 심은 것만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너의 하늘나라는 반쪽이다! 10분의 1이다. 너의 천국의, 너의 영광의 옷은 누더기일 것이라.’ 하나님이 맡겼다고 그렇게 애 쓰게, 알뜰하게, 너무 과해도 탈나고, 너무 적어도 안되고, ‘딱 적절하게 그렇게 알뜰하게 그렇게 피 흘려 구원하신 주님의 양이라, 주님 생각하고 그렇게까지 주님 대신에 알뜰하게 잘했느냐?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땅 위에 한 사람, 이 땅 위에 몇 사람 상대하는 너를 보니, 하늘나라는 다 네 하늘나라가 되고, 너한테 다 맡겨버려야 되겠다.’ 그 나라를 생각함으로 내가 판 구덩이, 내가 관리할 구덩이에 잘못되어 상한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나 중심으로 내가 볼 때에, ‘선처했다. 잘했다’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처리해야 적어도 중간은 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당한 사람, 양이나 소가 다친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이 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여기까지 발전해나가야 됩니다.

지금 ‘직책’, ‘제도’를 많이 말씀 드렸습니다. 일반 교회의 직책의 구덩이가 위험하여, 뚜껑을 우린 닫았습니다. 목사는, 성경 백독. 공회 집사는 조건이 몇 개 붙는지 혹시 아십니까? 공회 집사는 자격 조건이 몇 개인지 혹시 아십니까? 이치영 목사님 혹시 기억하시나요? 13가지입니다. 그 13가지 다 하면, 그 교회 목사도 집사 못됩니다. 저 정도 되면, 될까 말까? 모르겠는데, 그 13가지 중에는, 저도 안 되는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덕이 안되면 집사 안됨’ 그게 있습니다. 제가 덕이 되나요? 공회 안에서도 절반이 ‘물러 내라’고 난리인데, 신풍교회 시무투표하면, 95% 나옵니다. 그 5%가 5%만 반대 했나요? ‘인간 같아서는 그냥 반대를 절반을 하고 싶은데 박봉에 고생한다고 차마 그냥, 어디 갈데도 없어 그냥 저기 길가에 가놓으면 어디 갈데도 없으니까, 인간적으로 딱해서 그냥 봐준 것이지.’ 그럴껄요 아마? 정말 양심적으로 표 없이 하라면, 신풍교회 시무투표, 제가 50% 받기가 어려울 걸요? 30%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나머지 30%는, 반반이지 않을까? 나머지 30%는 확실하게 반대가 아닐까? 저는 속으로 그렇게 계산합니다. 이게 덕이 되나요? 공회 집사 자격이 13가지입니다. 그 중에 ‘부덕스러우면’ 안됩니다. 목사도 집사가 못되는, 이런 뚜껑을 닫아 놨습니다. 그래서, 빠져 죽지 않도록 잘 닫아놨는데, 잘 닫아놓으니, 집사라는 제도 때문에 신앙의 힘을 얻고, 신앙을 열심을 내어 살아가는 운동이 또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법적으로 13가지를 다 진행하지 아니하고, 13가지를 목표로 삼아, 어떤 것은 빼 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더할 때도 있고,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또 이걸 보고 한 쪽에서는 ‘목사 집에 뭐 그냥 식용유 들고 자주 가니까 되더라. 덜 가지고 가니까 안 시켜주더라.’ 또 이런 사람도 생깁니다.

그게 출애굽기 20장이 아니고, 그게 출애굽기 21장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은 ‘타협’이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것은 절대입니다. 21장에 나오면 ‘구덩이 조사해봐라.’ 교계와 한국교회의 잘못된 구덩이는 닫았습니다. 그 다음 공회가 필요한 구덩이는 새로 팠습니다. 그리고, 열고 닫고, 열고 닫음으로, 양떼가 먹고 마시고, 위험하지 않도록 해야 되는데, 우리가 완벽하게 했습니까? 우리가 완벽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잘하는 걸로 받는 복은 당연히 복을 받을 것이고, 우리가 실수하고 서툴러서 빠지고 다친 것은, 우리가 다 배상을 해야 됩니다. 여기 함께해야 되는 우리 식구들 중에, 함께 하지 않는 식구가 뚜껑 관리가 잘못되어 다쳐서 못 왔다면, 여기서 받은 은혜 중에 일부를, 또는 대부분을, 그 분들이 앞으로 참석할 수 있기까지 우리는 ‘배상’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사람 있다가 절반 나갔으니, 우리 몫이 많아져서 좋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이 유물주의자들아! 이 주식회사 주주자들아!’ 그러겠지요. 한 5년 전에, ‘앞으로 대구공회, 부산공회 전국의 많은 교회들이 다 여기 와서 함께 예배 봤으면.’ 해 가지고, ‘한 200개 교회가 와도, 천막 칠 자리, 숙소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해 가지고 제안을 해 봤습니다. 2만평 내계 바닥은, 백 목사님 생전에 대구 노곡동 집회 장소보다 넓습니다. 거창 집회 장소와 거의 같습니다. 이곳은. 실제로는, 더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이런 데를 부공3 우리 10교회가 앉아 예배 드리고 있으니까, 이것은 바늘방석이다. 만약에 오게 된다면 200개 교회가 다와도, 우리가 모셔야 되지 않을까? 집 나간 둘째 아들 돌아올 방향을 향하여 대문 열어 놓자’ 그렇게 제안을 해봤더니만, 뭐 얼마나 쌩 난리가 나는지, 뚜껑을 닫으려다가 결국은 못 닫았습니다. 뚜껑을 열어 두고, ‘함께 이렇게 먹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여기 생수의 우물, 생수의 물을 마시도록 연구를 해봤다가, 뚜껑 문제로 오히려 빠져 다친 분들이 더 많다싶을만큼, 다 우리 앞날의 숙제입니다.

맨 밑에, ‘너의 관리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 생기면, 네 차지하거라’ 이게 성경입니다. 솔로몬이 재판할 때에, 두 여자가 아이를 낳았느넫, 이게 막 낳아놓은 것이라, 누구 것인지 구별이 잘 안됩니다. 얼굴을 보고. 몇 달 지나면, 어느 쪽인지 알 것인데, 몇 년 지나면 뭐 누가 봐도 알 것인데, 막 낳아놨는데, 아직까지 얼굴 구별이 안 되는데, 하나가 깔아 죽였습니다. 솔로몬이, ‘산 것도 쪼개고, 죽은 것도 쪼개고, 둘 다 나눠버려라’ 그 생명의 본능이, ‘산 것을 주고, 죽은 것이 내 것입니다’ 하고 나서는 것을 보니까, 이것은 애미입니다. 이것은 생모입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예. 둘 다 쪼개 주십시오’ 하는 것을 보니까, 이놈의 인간이 지 아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 산 것을 주면 또 죽일 겁니다. 내가 판 구덩이, 내가 책임져야 되는데, 성경 백독이라고, 목사 뚜껑은 닫아서 빠져 죽지 않게 되었는데, 빠져 죽지 않는 구덩이로는 되었는데, 조례교회 조사님, 벌써 목사가 되어야 되는데, 아직도 목사가 되지 못함으로, 조례교회에 생기는 불편, ‘뭔 조사라는게 목회를 해? 이단 아니야?’ 이렇게 해서 또 빠져 죽는 사람들은 백 독으로 막아두고, 지금 이 구덩이 뚜껑 관리를 못한 공회가 또 책임을 져야 됩니다. 좋기는 제가 목사 안수 받지 않았으면, 그런 문제는 없겠지요. 그 대신에 교회 전체가 목사 없는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겠지요. 하나 되고, 둘 되고, 다섯명이 되다보니까, ‘이제 성경 백독은 공회에서 사라졌다. 역사의 박물관에 두고, 아무나 목사 다 된다. 성경 꼭 필요하냐?’ 또 이 운동이 벌어져서, 젊고 일어나는 청년들에게, 성경 백독의 중요성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또 뚜껑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뚜껑을 달기를 갖다가, 조례교회 조사님한테다 대고 뚜껑을 닫아 놓으니까, 앞에 목사님들은 백독 안 하고도 목사되고, 조례 조사님부터는 성경 백독에 걸려가지고 지금 25년 조사님으로 계시니까, ‘조사가 책임져라? 그거 이상한데 아니야?’ 그러고 소리 없이 올 교인이 안 오고, 온 교인 중에 빠진 교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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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33
그러고 소리 없이 올 교인이 안 오고, 온 교인 중에 빠진 교인도 있게 되면, 우리의 부족 때문에 파 놓은 구덩이, 우리가 새로 판 구덩이, 우리가 관리하는 교회의 뚜껑의 관리에 대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조례교회의 그런 교인 때문에, 목사 아니라고 해서 시험든 교인이 있어서 빠진다면, 제가 조사님한테, ‘목회를 좀 잘하지, 그따위로 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해야 될까요? 아니면, ‘구덩이를 만들어 뚜껑을 만든 공회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조례 교인들에게. 공예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야 될까요? LA교회는 미국의 잘나가는 지방이라, 마음대로 사는 동네인데, 공회 노선을 소개하고 공회 말씀을 접하다보니까 우리와 함께 믿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대고 몇 개의 구덩이는 덮을 것이며, 몇 개 구덩이는 팔 것인가? 파 놓은 구덩이에 어떻게 덮을 것인가? 그 교회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 ‘아이 기도하시라. 충성하시라’ 말이야 쉽지요. 공회가 필요하여 만든 제도, 덮은 제도, 열어놓은 구덩이, 여기에 신앙에 고장이 생길 때마다, 1차 그 분들은 그분들의 자기 회개, 자기 노력을 하겠지만은,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아프리카 선교보다, LA 교회가 더 어려운 시대가 되어졌습니다. 지금 필리핀 가서 100명 교회 선교해서 세우는 것보다, 지금 서울 강남 분당에 가서 10명 교회하는 것이 훨씬 어려울껄요? 때가 그런 때가 되어버렸습니다. 옛날의 뭐 미국 선교, 일본 선교는 가짜배기들이고, 놀러가며, 도망가는 사람들이, 선교사 이름을 걸고, 고등 교만의 죄를 지었고. 지금 선진국 교회 목회는, 300년, 500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어려운 때가 되어 버렸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고 서울 강남도 그렇습니다. 수도권도 그렇습니다. 이럴 때에는 공회의 많은 구덩이 중에, 이쪽 뚜껑, 이쪽 뚜껑은 닫아두고, 이것은 열어두고 이렇게 자라가는 과정에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 가니까, 집사주고, 저 교회 가니까 집사 떼어버리고. 이 사람 목사되고, 이 사람 안되고, 저 사람은 세례 주고, 저 사람은 안줘버리고. 저 사람은 술 담배 하는데도 반사시키고, 저 사람은 술 담배 끊은지 1년이 안 된다고 반사 떼어버리고. 그 중심이 자기 중심이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교회가 아닐 것이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옳고 바르게 자라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도, 돌아다니는 소의 관리가 필요하고, 가만히 있는 제도의 뚜껑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회 행정을 두고, 많이 말씀을 드린 거 같지요? 근데,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 가정의 아이들을 놓고 ‘지금 이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 지금 연구해보셨습니까? 내 아이를 두고, 나는 부모로써, 이 아이의 교육과, 이 아이의 신앙과 이 아이의 앞 날의 생활을 두고, 어떤 제도를 이 아이에게 요구를 하고, 이것은 면제를 해주고 이것은 덮었는지 기억하십니까? ‘휴대폰은 못 사 준다! 천하의 죄가 이 쪽으로 다 온다. 이것은 소돔 고모라로 가는 직빵이다. 못 사준다.’ 뚜껑을 닫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중학생이 시내로, 오고가다 보니까 급할 때에 연락이 안 되면, ‘이 딸 아이 열 댓살짜리, 시내 갔다가 만약에 긴급 연락이 안되면 이건 뭐 교통사고에 죽었나, 납치가 되었나? 어디 갔나? 기본 연락은 되어야 되겠다.’, ‘휴대폰을 새로 사주며’, 구덩이를 판 겁니다. ‘가지고 있는 휴대폰 끊어 버리고’, 있던 구덩이 덮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몇 년 가다가 이게 시내를 가고, 서울로 공부를 하러 가니까, 안되겠다. 휴대폰을 새로 하나 개통을 시켜줍니다. 내가 판 구덩이입니다. 필요해서 사 주고 안 돌아보면, 그 구덩이에 자기 소, 자기 양이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식이 빠져 죽을 판입니다. 그러면, 휴대폰을 내 주면서, 게임기능, 오락기능, 죄 짓는 기능은 딱 딱 막고, 긴급 연락. 그러면 뚜껑 관리가 되는가요? 그러면, ‘이게 비상 119, 휴대폰, 무전기 기능만 있어가지고, 될 일인가?’ 아무래도 이 속에 여러 가지 더 학습에 필요한 기능도 있는 것이 합리적이다. 할 수 없이 다 풀어줍니다. 다 풀어주고, 다시 뚜껑을 갖다 덮으려면, 어떤 뚜껑을 덮으면 되는가요? 이영수 선생님이 아실란가요? 백두진 선생님이 그런데에는 제일 최고일까요? 19살, 대학교 1학년 여학생 혼자 서울로 공부하러 가는데, 휴대폰을 사 줘야 공부가 되겠고, 학습이 되겠고, 돈이 되겠고, 이것은 모든 것으로 100% 필요해서, 무제한으로 쓰도록 주면서, 여기에다대고 어느 뚜껑으로 딱 닫아버리면, 뚜껑이 될까요? 그 휴대폰을 내가 볼 수 있도록, 그런 기능이 있을 걸요? ‘마음껏 써라! 그 대신에 마음껏 쓴 네 모든 이 정보, 이 열람이 내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해라’ 그러면 ‘집에 있는 부모가 함께 본다고 생각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마음껏 봐라! 이건 부모가 보면 안되고, 연락 하면 안되는데, 그건 빠져 죽는 구덩이겠지.’ 이렇게 구덩이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아동 교육, 부부 관계, 교회, 공회 신앙 노선, 모든 것이 구덩이로 다 해석이 될 수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82페이지 끝에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네가 해라.” 네가 판 구덩이, 그 구덩이에 다쳤고, 그 구덩이에 빠져 죽은 그 실패는, 구덩이 임자 네 실패다! 네 실패다! 네 신앙 성적이다! ‘휴대폰에 빠져, 지 인생 지가 망쳤는데 뭔 나는 하나님 앞에 잘 믿어서 성공했는데?’ 주님은, ‘맡겨 놓은 양은 어디갔냐? 네가 뚜껑을 덮었으면 그 뚜껑에 빠져 죽지는 않지. 네가 사준 컴퓨터가, 무저갱이 되어’ 옛날에는 납치를 당해야 되고, 구덩이에 맨홀에 빠져서 발목이 부러졌는데, 지금은 휴대폰에, 컴퓨터에 빠져, 언제 죽었는지, 얼마까지 죽을런지 예상도 못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휴대폰, 컴퓨터 없애 버리면, 깨끗해지는가? 미국에 어느 교파지요? 아미쉬 교파라는데가 우리하고 비슷합니다. ‘전기! 그놈이 들어오니까, 인간들이 게을러지고 나빠지더라.’ 전기 끊어 버리고, ‘자동차! 이놈이 들어오니까, 죄 지으려고 시내를 다니니까 자동차 없애 버리고.’ 또, ‘전화! 그놈이 들어오니까 별의별 짓을 다하고, 전화로 심방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적고, 전부 죄나 지으니까 전화 다 끊어 버리고.’ 그래서, 전화 없고, 전기 없고, 자동차 없고, 400년 전 생활을 하니까, 사진을 찍어 보면 멋있기는 멋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전도를 안 합니다. 아미쉬 교단 좋아서 본받고자 난리들인데, 그 교단은 전도를 안합니다. 뭐 그러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지요? 전기 끊고, 전화 끊고, 자동차 없애 버렸으니, 아미쉬 동네의 신앙의 양심은 깨끗할까? 뉴욕의, 한국의, 오늘 우리의 생활을 사진 찍고, 그들을 사진을 찍어 보면 건전한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텔레비 없고, 전기 없고, 전화 없고, 컴퓨터만 없으면, 그 인격이 깨끗해질까? 애굽의 바로 왕궁에 40년 데려다 넣은 모세를 끄집어 내보니까, 애굽나라 바로 왕궁의 세계 모든 더러운 흔적은, 검불 하나 묻은 데가 없습니다. 깨끗하게 그대로 나왔지. 그래서 있는 컴퓨터 깨버릴 것은 아니고, 없는 컴퓨터 사 준다고 발광할 것은 아니고, 그만하면 충분한데 친구들 따라 휴대폰도 또 바꾸고 또 바꾸고, 그것도 큰 일이 있고, 휴대폰만 깨뜨리면 아이는 지켜진다. 이것도 곤란하고. 그러면, 우리는 이 쪽도 좋고, 저쪽도 좋고, 이쪽도 틀렸고, 저쪽도 틀렸고 우리는 가운데에서 좋은 말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뭐 좋지 않습니까? ‘양비론’, ‘양시론’이라고 그럽니까? ‘남쪽도 틀렸다. 북쪽도 틀렸다. 너만 옳다는 말인데, 네 놈이 그러면 해봐라’ 그런 반론까지 계산하고, 컴퓨터는 있어야 되겠고, 이 속에 하나님이 주신 시대에, 은혜는 잘 활용해야 되겠고, 그래서, 우리가 연구소 사이트로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그런데, 컴퓨터에 따라오는 말 못할 무저갱의 이 죄악은 뚜껑을 닫아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뚜껑을 닫을까?’

그래서, 우리 공회 연구소 사이트는 그림이 없습니다. 사진이 없습니다. 사진 하나를 내놓으면, 제일 처음에는 건전한 사진, 은혜되는 사진을 내놓습니다. 여기에서 그치면, 그림도, 사진도 은혜가 되는데, 그림, 사진을 내놓고 은혜를 받고 나면, ‘그것 참 많은 설교보다, 그 사진 하나에 은혜가 되더라.’ 그러면, 이제 귀신이 그 다음에는 조금만 더 옮겨서, 이런 목가적인, 이런 추상적인, 그 다음에는 좀 더, 그리고 좀 더, 그리고 저기 뒷골목에 가서, 영 쓰레기를 만들어버립니다. 복음성가 금지하다시피 안 부르는 이유가, 은혜가 안 되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200곡 안에도 은혜 되는 찬송 하나만 가지고도 죽는 날까지 불러도, 더 새롭고, 더 은혜로운데! 200곡 안에서도 넓은 찬송으로 나가다가, 그 다음 200곡 밖에 있는 찬송 중에 은혜로운 찬송 나가다가, 200곡 안에 있는 찬송보다, 200곡 안에 들어오지 않는 찬송이 더 은혜로운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리 나가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살짝 살짝 살짝 나가다보니까, 일 하느니라고 필요해서 바지를 입었고, 더워서 칠보 바지로 짤랐고, 막 그냥 운동을 하는 선수라서 무릎팍까지 짤랐고, 그건 짜를 수 있습니다. 몇 센치 짤라야 죄인가요? 선은 없습니다. 교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는 방향을 보니까 훌떡 벗고 발광을 할 것이, 핑계를 대고 슬금슬금 물러가는데, 이게 지금 귀신 붙들고 어디까지 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에는 ‘이슬람 교도들처럼, 조선시대처럼 도자기로 뒤집어서 써라!’ 이래야 될 뚜껑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래 놓으면, 인권 위원회에서 당장 쫓아올껄요? 경찰에서 인권 탄압이라고 쫓아올껄요? 중학교 어느 교과서에, ‘네가 딸인데 엄마가 너한테만 설거지를 자꾸 시키거든, 경찰에 고소를 해라, 고소할 때에는 이리 하면 된다.’고 교과서에 가르쳐 놨답니다. ‘딸이라고 지금, 여자 천대하니까, 성 차별이니까 너 부모 고소하라’고 이렇게 가르쳐놨답니다.

어디까지가 옳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틀렸는지? 제도적으로, 외부적으로 ‘기준’은 못 잡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법’이 없습니다. ‘네 멋대로 살으라’는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봐야 구 덩이가 되어, 처음 만들 때는 생수의 구덩이인데, 나중에 가다보니까 빠져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그래서 법을, 규정을 명문을 무조건 만들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 양심에 ‘알아서 해라. 알아서 해라. 작업이 필요하여 반바지가 필요하냐? 얼마든지 입어라.’ 그런데, 지금 반바지가 아니라, 훌떡 벗으려고 지금 연구를 하는데, 싸우는 작전이 1보, 1보, 1보 후퇴, 2보 전진을 위해서 지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느냐? ‘너는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살아라!’ 이렇게 뚜껑을 닫아야 될 사람도 있습니다. 84년에 미국 갈 때, 미국에 가기 전에 외국인이 저를 보면서, ‘와이셔츠 하나를 푸시든지, 두 개를 풀어야 됩니다.’ 와이셔츠를 평소에도 늘 여기가지, 넥타이 말고, 평소에 와이셔츠 단추 이만큼(끝까지) 달고 있었거든요? 그게 그렇게 이상해 보였던건가 봐요. 영어 교수인데, ‘가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하니까, 첫 마디가 ‘이거 단추 한 두 개를 푸십시오’ 왜 그러지요? ‘단추를 이렇게까지 잠그고 다니면 상대방이 갑갑해서 폐쇄적이라서, 숨이 콱 막혀서, 그 나라 가서는 당신 적응을 못 할 겁니다.’ 이 뜻을 담았습니다. ‘하든지 말든지’ 이거 다 잠그고 살다가 왔습니다만은, 이게 ‘잠그는 것이 뭐 교리냐? 푸는게 교리냐?’, ‘어디까지가 그러냐? 이거냐 저거냐?’ 그것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너의 중심에 그 구덩이 빠져 다치는 사람이 있거든 영원무궁토록 책임져라! 그리고 알아서 뚜껑 관리해라!’ 딸들 뚜껑 관리하셔야 됩니다. 아들놈들 뚜껑 관리 안 해놓으면, 깡패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인들은 목사에게다대고 어떤 뚜껑을 지금 공회는 닫아놨지요? 2년 시무투표입니다. 은혜롭고 충성한다고 섬겨놓으면,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이 되어가지고, 교황 흉내를 낼테니까 1970년에, 백 목사님께서 공회 출발하는, 몇 년 되지 않은 시초의 목사들 심보를 보니까, 죽도록 충성할 목회자들이 더 많았지만은, 그 중에는 슬금슬금 시작할 목회자들도 있어서, 할 수 없이 불편이 많지만은, 2년마다 한 번씩 교인들에게 시무 투표를 시킨 것도, 목사제도의 공회 뚜껑입니다. 이 뚜껑을 닫아놨더니만은, 그래서 목사 교만을 막아놨더니만은, 충성하라고 했더니만은, 2년 시무투표의 권리를 교인들이 가지고, ‘마음 안들면, 보내?’ 또 이 구덩이로 또 써먹고 앉았습니다. ‘2년만 참아라. 그 다음에는 보낸다.’ 전국의 공회교회들 중에, 어느 공회, 어느 교회, 어느 주동 집사님 눈 밖에 나면, 그 다음 시무투표에서 사정없이 쫓아보낸다. 다 있습니다. 덮어놓은 뚜껑을 다시 열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새 구덩이를 더 많이 파놓은 겁니다. 계산하다보면은 끝도 없겠지요?

각자 알아서 필요하여 판 구덩이를 잘 관리하되, ‘뭐 필요했고 있으니까 잘 있겠지.’, ‘소니까 묵묵하게 일하고 나를 위하여 충성하겠지.’ 움직이는 소, 움직이지 않는 제도, 양쪽을 철철하게 순간 순간 현실마다 주님 앞에 조심하고 관리하여, 신앙의 좋은 일꾼도 기르고, 너 속의 그런 장점을 더 큰 장점으로 길러, 일이라는 일은 전부 소가 하듯이, 너 속의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가, 너의 신앙의 평생에,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할 만큼 되게 하라. 그리고, 너의 교회와 너의 가정의 이런 제도, 저런 규정도 잘 연구해서, ‘이제 그동안 용돈을 금지했는데, 이제 네가 알아서 써라.’ 부모가 20살 되도록, 30살 되도록 용돈 관리를 다 해주고, 뚜껑을 닫아놓으면 헛 돈은 쓰지 않겠지만은 이거 인간이 되겠는가요? 구덩이에서 퍼 마실 물을 어떻게 하나요? ‘몇 살까지는 내가 관리했다. 앞으로 몇 년 간은 공동 관리하자.’, ‘그리고 이제 안심할 만하다. 앞으로는 필요한 돈 줄테니까, 총액 줄테니까,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구덩이도 계속 파야 됩니다. 뚜껑도 있어야 됩니다. 열어도 두고, 쓰기도 해야 됩니다. 닫아서 상하지 않게도 해야 됩니다. 일일이 설명하자면, 밤새도록 설명해도 부족하겠지요?

이정도의 예시와 해석과, 교리와 평소에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을 가지고 나는 하나님이 내게 준 소, 하나님은 나에게 준, 나의 특별한 이런 은혜, 제도와 나의 장점. 내가 선 노선, 내가 가진 가정, 내가 소속한 나의 모든 관계는 구덩이 쪽입니다. 그리고 움직이는 모든 쪽은 소 쪽입니다. 소도, 구덩이도, 전부 복된 복음으로만 쓰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초타 : khr
교인 2020.06.09 17:33
<b>방송담당:</b> 실시간 참석 수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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