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후19.5.8 출22:1 경제법, 소와 소의 접촉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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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후19.5.8 출22:1 경제법, 소와 소의 접촉과 처리

교인 1 179 2020.06.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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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① 신분법 (자유) : 원함으로 오직 진리와 영감에 순종하는 자유
② 신분법 (주종) : 종을 통해 다시 신앙의 자유로 나아가라
③ 생명법 (고살) : 필벌은 남의 고통을 알게하여 십자가를 가르침
④ 생명법 (오살) : 판단에 늘 사람의 행위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
⑤ 생명법 (하극상,인신범) :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 그 근본과 연결을 바르게
⑥ 상해법 (사람 상해, 종 상해, 낙태)
  - 타인의 사명, 기능 요소를 조금도 손상케 말고
⑦ 재산법 (소) : 받은 장점의 활동을 철저하게 제어하여, 자타 구원에 유익만
⑧ 재산법 (구덩이)
  - 필요한 조직, 체계를 적절히 관리하여, 구원만 되도록 보존
⑨ 재산법 (상호관리책임, 도적, 방목)
 - 서로의 장점을 새겨 배우고, 남의 신앙의 분깃과 범위는 철저히 계산


1905월 집회 9 (수후)

제목 : 경제법, 소와 소의 접촉과 처리 

본문 : 출애굽기 21장 35절 -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분하려니와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기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귀한 길, 귀한 줄 알면, 귀하게 걸어갈 수밖에 없는데, 무한의 은혜라 받은 것을 척량할 수 없어, 감을 잡을 수 없으니 감사가 나오지 아니했고, 끌려, 밀려 살아온 저들에게 다시 한번 받은 은혜, 구원의 깊은 내막과 내용을 잘 살펴, 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망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금번의 자세를 돌아보는 이번 집회되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전함이 약하오니, 각자 속에 성령이 깨어, 일깨워 나아가 실행의 능력을 받게 하시고, 주님과의 연결, 생명의 역사가 각자에게 준 자기 요소, 자기 기능을 귀하게 아름답게,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귀한 선물로 잘 쓰게 하시고, 이 가치, 이 소중함을 알지 못할 때,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생명은 생명으로까지 대신하게 함으로, 기초를 바로 세우고, 바로 알아,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출애굽기 21장의 실행으로 촉구해주시니, 이제는 주신 자본, 나의 가진 소유 하나까지, 잘 복되게 사용하여, 주신 주님은 더욱 더할 수가 있고, 우리는 받아 주님 기뻐하시는데 쓸 수가 있는데까지, 이러는 이 오후 예배에 말씀의 능력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전 예배 마지막에, 구덩이를 파서, 다른 사람의 구원의 재료, 구원의 기회를 손해 보이게 되면, 손해 본 그의 입장에 서서 잘 조처하라. 피해자에게 다시 그 소로 건설할 신앙의 기회를 주라. 그리고, 자기는 마지막 정리를 맡는 것이 잘 ‘처리’하는 것입니다.

84페이지. 그런데, 소가 소끼리 들에서 만나, 싸우다가 하나가 죽어 버렸습니다. ‘소가 소끼리 부딫힐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근본 자세가 ‘자유성’. 그런 사람이 주님과 연결되어 하나되는 것이 생명의 역사, 그에게 신앙의 기능과 구원의 요소들이 자기 신앙을 건설하는 소중한 자기의 일부, 자기의 건설의 과제인데, 이렇게 중심이 바로되고, 하나님께 연결이 되고 자기 사명, 자기 위치를 감당하는 이런 사람에게 ‘돈’이라는 것은, 그런 사람에게 ‘소’라는 것은, 그의 신앙의 복음, 그의 신앙의 자기 건설의 성화 운동에, 얼마나 귀하게 사용이 되는지 모릅니다.

선한 목적의 사람이, 주님 인도를 따라 사도 바울이 로마까지 전도하러 갈 터인데, 사도 바울의 깨달음과, 사도 바울의 전도 할 수 있는 모든 실력은, 열두 제자 중에 탁월하게 하나님께 받은 자기 요소, 자기 기능인데, 배 타고 가려면 말하자면 몇 주가 걸릴지? 몇 달이 걸린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 때의 사도 바울에게 자가용 비행기를 하나 붙여 놓았다면, 1시간이면 가서 로마에 전도하고, 1주일이면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아시아, 헬라 나라, 로마 나라 세계를 다니며 외쳐대었으면, 그 활동으로 인한 복음운동이 얼마나 굉장했겠습니까? 이것을 오늘에 가져오면, 백 목사님이 오늘도 살아 계셨더라면, 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 은혜도 더 했을 것이고, 인터넷 방송으로, 무료로, 세계에 번져졌더라면, 아마 세계가 불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노아 홍수 때에, 노아 하나와 여덟 식구 가 구원 받았다면, 노아 당시에 인터넷 방송이 무료로, 천하를 전하고 외쳤다면, 굉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노아 하나로 8명만 구원해야 될 필요가 있어, 그때는 그런 교통, 그런 통신, 그런 녹음, 그런 인터넷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500년 좀 전에, 독일 사람이 ‘인쇄기’를 발명을 했는데, 그 전까지는 성경을 1절 받아 적어야 가지고 다녔고, 또 이걸 받아 적는 것도 천주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화형을 시키니 난리가 났고, 특수계층 신부들만 라틴어라는, 이상한 자기들끼리의 암호를 가지고만 예배를 인도 하니까, 모든 교인들은 무식해서 ‘눈 멍 망아지 워낭소리 따라간다’고 교황 따라가는 신부들, 알아듣지 못하는, 염불 같은 라틴어로 주문을 외우고 예배를 인도하니까, 말을 못 알아 듣지만은 그냥 눈치 보고, 일어섰다 앉았다, 일어섰다가 천년이 그렇게 지나가니까, 초대 교회가 서양 불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루터가 얼마나 괘씸했던지? 목숨 걸고, 천주교를 깨뜨릴 때, 천주교가 왜 틀렸는지 95가지를 조목 조목 성경을 보고 적었는데, 아무리 외쳐봐야, 독일 어느 골짝 하나, 소리 지르는 루터를 잠재우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루트가 종교개혁 하기 직전에, 인쇄기가 발명 되어가지고, 서양 나라들은 전부 알파벳을 쓰니까, 인쇄기가 발명 되니까, 유럽에 전부 인쇄기가 퍼져버렸고, 그 인쇄기 가지고, 천주교 천국 가는 티켓, 입장료 ‘면죄부’ 찍어대면서 이것으로 돈을 버는 바람에, 인쇄기가 많이 퍼졌는데, ‘천 년간 천주교에 잘못된 것이 무엇이냐?’ 95가지를 조목 조목 적은 이 한 장을 보고, 인쇄기로 잡아 돌려버리니까, 몇 천 장, 몇 만 장, 몇 십만장이 동시에 뿌려져 버리니까, 똑똑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양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속을 수가 있나?’ 해서 벌컥 일어난 것이, 기독교 세계 서양 전부를 뒤집어, 오늘까지 우리가 믿고 가는 신앙의 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인쇄기가 얼마나 큰 소입니까? 사도바울 시대의 인쇄기가 있었더라면, 복음이 얼마나 크게 외쳐져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는 작게, 좋게 길러야 될 때라, 하나님께서 그 때는 인쇄기술을 주지 않았습니다. 성경 하나 받아 적으려면, 여기 강단만큼, 될만큼. 청년 두 사람이 지고 다녀야 될 만큼 이렇게 어려웠고 비쌌고. 그러다 보니까, 읽는 사람 적었고, 성경 혼자 가진 사람이 끄는대로, 나머지는 그냥 중 염불하는데 따라가는 불교인들처럼, 걸어가는 사람 뒷꼭지 보고 걸어가고, 뒷꼭지 보고 걸어가는 그 사람의 뒷꼭지 보고 줄줄 따라가다가 이게 천국인지? 지옥인지도? 모르고, 1천년 걸어간 중세 천주교 시대를 인쇄기라는 하나가 들어서, 좋은 소가 일을 해버리니까, 사람이 개간할 수 없고, 농사 짓고, 움직일 수 없는 일들을 다 해내버린 것처럼,

소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잘 쓰면 복입니다. 만약에 그때에 그 인쇄기로 가지고, 죄를 짓는 나쁜 만화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런 진화론, 이런 지식을 퍼뜨려 버렸더라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인간적으로는 교회가 다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중심이 옳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받은 은혜, 받은 요소, 받은 장점이 특별해도! 그에게 복음 운동을 위하여, 좋은 일꾼, 좋은 은혜의 수단을 주십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글과 영어가 자유로우면, 한글과 영어가 자유로운 그 기술이라는 것은, 설교록 이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고, 세계에 전하는데 굉장한 소와 같은 일꾼이 될 겁니다. 저는 더듬거리다 보니까, 우리말로는 설교를 해도, 영어로는 그리 못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소입니다. 귀한 일꾼입니다. 그런데, 내게 준 ‘장점’과, 저 사람에게 준 ‘장점’이, 한 곳에 모여지면, 소 한 마리보다는 소 두 마리가, 소 두 마리보다 소 열 마리가, 더 큰 일을 하고, 더 좋게 일을 해야 되는데, 이게 소라. 소끼리 부딫히다가 싸워버려서, 이 소가 저 소를 쳐서 죽여버리면, 그런 경우가 없는가요?

공회 우리 빼고는, 순복음 교회는 1970년대에 다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지옥갈 사람이라’고 다 그랬습니다. 지금은 다 따라가지만은, 그때는 그랬습니다. 우리는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알기 때문에, ‘순복음 교회의 열심의 방향에 문제는 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들이 열심을 내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긴 그들의 사명, 전도와 열심은 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틀린 것은 틀렸고, 옳은 것은 옳다고 했습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모르니까, ‘이상한 소리 하는 교회는 이단이고, 이단은 지옥 간다.’ 이래 가지고, 모든 한국의 교회들이, ‘순복음교회는 지옥갈 이단, 통일교와 같다.’ 그러했었습니다. 순복음교회의 열심, 충성, 기쁨은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그들이 교리가 어두운 것은, 우리가 좀 알려주면 도움은 되지만은, 또 선생하겠다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내적으로, 순복음 교회의 기도의 열심, 전도의 열심, 충성과 감사와 열심히 믿으려는 운동은 하나님께서 조용기 목사님과 순복음에 주신 큰 ‘소’입니다.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교리 중심의 고신, 합동의 장로교회들은, 기도의 열심도 없지, 충성도 없지, 그러니 고신 교단에는 또 황소가 없는가요? 그들에게는 역사, 전통을 이어오는 순교의 신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라는, 몇 백년 된 옳고 바른 좋은 ‘진리’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장로교의 ‘교리’가 이게 보통 큰 소가 아닙니다. 순복음 교회의 ‘열심’이 보통 큰 소가 아닙니다. 그런데, 두 소를 겨리해서, 한 곳에 모아 놓으니까, 고신과 합동의 한국교회 대세가 되는 큰 소가 이제 막 일어나는 순복음 교회 소를, 떠 받아서 죽여버렸습니다. 이단이라고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그거 성급했고, 좋지 않은 겁니다. 또 순복음 교회에서는, ‘예배당 가면 잠이나 자고 있고, 숨소리도 안 나는 그들이, 잘 배우고 깊이 배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열심이 없고, 죽은 신앙이라, 잠든 신앙이라, 이것들을 전도해서 순복음 교회에 데려다 놔야 믿는 사람이 된다.’ 방언이니, 뭐니 해가지고, 또 장로교 비판을 하고, 고신 비판을 해서, 교인들을 많이 끌어가버렸습니다. 고신의 장점도 있는데, 순복음 장점도 있는데, 이 집의 소도 있고, 저 집의 소도 있는데, 함께 겨리해서 잘 쓰면 더 큰 일을 할터인데, 안 싸울 일을 공연히 싸워버렸습니다.

‘이단!’ 이런 것은, 돌을 들고 쳐 버리는게 되는 겁니다. 주먹질을 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소와 소는 부려먹는 좋은 도구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큰 일을 하게끔 하는, 큰 수고입니다. 그런데, 소와 소가 서로 부딪쳐, 이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버렸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관리 책임이 이 사람에게도 있고, 저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오전에 ‘구덩이는 내가 팠는데, 내가 뚜껑을 덮지 않으므로 다른 집 소가 와서 빠져 죽으면, 물려 줘라!’ 구덩이는 움직이고 돌아다니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소는 이 소도 주인이 잘 다스려야 되고, 저 소도 저 주인이 잘 부려야 되는데, 양쪽의 주인이 다 관리를 잘 못하고, 오해를 해 가지고 이 소와 저 소가 잘못 엉켜, 한쪽이 치고, 한쪽이 약한 것이 받혀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84페이지, 교재 위에, ‘관리 책임이 함께 있는 경우’ 소가 소를 받아 죽이는 경우는, 여기도 저기도, 받은 소도, 받힌 소도 관리 책임자가 각각 있는데, 하나가 저쪽을 죽인 경우는, 그 다음 ‘살아 있는 소를 팔아라’ 요즘 소 값이 한 500만 원 되나요? ‘살아있는 소를 팔아라, 500만원. 그리고, 250만원씩 나눠 버려라.’ 소가 두 마리인데, 두 주인이 잘못되었는데, 강한 쪽에서 약한 쪽을 쳐서 죽었으면, ‘좋은 소 장점도 둘이 나누거라.’

순복음 교회가 고신을 쳐서, 고신의 많은 교인들을 데려가면서, 그 중에 안 데리고 갈 교인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일으킨 복음운동의 상은, 순복음 교회, 혼자 다 가져가지 못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반반 나누라.’ 그 다음, ‘죽은 것도 반반 나누거라’ 그 두 소가 싸우고, 그 중에 하나가 죽고, 그 두 소의 임자에게 관리 책임, 지도의 책임, 인도의 책임이 있는데, 받혀 죽은 소의 주인도 무능했고, 잘못했고, 받아 죽인 소의 주인도 고삐를 잘 못 풀었고, 둘 다 책임이 있으니, ‘둘 다 자기 단점 중에 버릴 단점, 잘못된 단점은 회개하라. 끊어 내버려라.’, ‘자기 옛 사람은 포기하고, 살아있는 소, 좋은 점 장점도, 반씩 나누거라.’  예를 들 때에는, 교단으로 예를 드는게 편리해서 그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천주교 개혁 500년 기독교 역사에, 교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황 시키는대로 하면 천국 가느냐?’, ‘교황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죄가 되어 지옥가느냐?’ 천주교는 천년간 그리 믿었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이 500년 전에, ‘천년간 천주교가 그리 가르치는 것은 틀렸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무조건 천국간다. 교황말 듣는다고, 안 듣는다고 천국과 지옥이 교황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 창조 전, 예정 전, 천국 갈 택자로 정해 놨으면, 무조건 천국이다. 하나님이 지옥갈 사람으로 예정한 사람은 무조건 지옥간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택함에 달려 있지, 인간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게 루터가 주장했고, 칼빈이 잘 정리하여, 천주교 1천년의 교리의 잘못의 막을 내려 버렸습니다. 이것을 제일 잘 오늘까지 간수하고 온 교단을 ‘장로교회’라고 그럽니다. 장로교회가 다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교회 문제가 보통 많은게 아닙니다. 한국만 장로교가 많다 보니까,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대세인 줄 알고, 잘 믿는 줄 아는데 미국에 가 놓으면, 장로교인들 다 천대 받습니다. ‘뭔 믿어도 저렇게 더럽게 믿느냐?’ 다 욕을 얻어먹는 것이 다 장로교인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도 한국 교인이 모이면, 장로교가 많고, 장로교가 큰소리 치는데, 미국 전체 교회로서는 장로교는 소수입니다. 그냥 소수가 아니라, ‘뭔 더럽게 저렇게 믿나?’ 욕 얻어 먹습니다.

원래 장로교는, ‘교황 말에 따라 천국가고, 지옥간다.’ 이것을 무너뜨려버리고, ‘하나님이 아들로 택한 백성은 때가 되면 세상에 보내고, 그 사람은 무조건 천국 간다. 천국갈 사람은 예정되어 바뀌지 않는다.’ 절대 주권, 절대 예정. 천국과 지옥을 가르친 것이 장로교의 장점입니다. 이것 하나가 특별한 장점이고, 그 외에 장로교는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귀족 정치’를 합니다. ‘헌법 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강의가 많습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의 뒤를 보면, 특이하게 한국교회에서만 장로교가 반성하지, 한국 빼놓고는 세계적으로 장로교는 뭐 인정을 받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장로교의 장점, 단점인데. 

감리교라는 데는, 오늘 찬송가 오전 102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280여 년 전, 영국의 누구지요 그 사람? ‘웨슬리’라는 목사님이 지은 찬송입니다. 그 분이, ‘열심히 믿자. 어쨌든 열심히 믿어야, 이게 믿는 사람이지 않겠느냐?’ 이래서, 조용한 영국교회, 조용한 미국 교회가 조용하게 연구하고, 잘 믿으려다가 슬금슬금 오후예배가 되니까, 잠이 오고 전부 다 자다보니까 다 식어져 버리고, 죽어져 버렸습니다. 이래서 웨슬리 목사님이 마구 두들겨서, ‘일어나라!’ 외치다보니까, 영국과 미국이 불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교단의 이름이 ‘감리교’입니다. 장로교는, 칼빈 이후의 500년. ‘천국 갈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영원 전에 정해 놓아버렸다. 교황 말 듣고 안 듣는데 상관없다. 무조건 천국간다. 감사하라. 기뻐해라.’ 감리교 웨슬리 목사님은, 칼빈이 그리 가르쳐놓으니까, 천국가게 되었으니 왜 충성하지요? 왜 연보하지요? 왜 열심을 내지요? 천국 갈 사람인데? 뭐 그냥 세상 대충 살고 복 받다가, 천국은 틀림없이 간다니까, 저절로 천국 가는 장점, 천국 가는 확신을 한 다음에는, 신앙이 저절로 그거 거실거실 다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학교 가면, 무조건 취직된다’ 하면, 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열심을 내는데, 들어가고 나면 공부하나요? ‘공무원되면 죽을 때까지 횡재한다.’ 공무원 시험은 100대 1이라, 하늘의 별따기인데, 일단 들어가고 나면, 헌법의 공무원 신분 보장이 되기 때문에, ‘나는 죽는 날까지 해결 됐다’니까 공무원 이름 붙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놀고 먹기지. 그거 인간 될 리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장로교의 장점은 ‘하나님의 자녀는 택한 백성이다. 천지를 만들기 전에 결정됐다. 교황 말에 협박 당하지 말아라.’ 이렇게 천주교의 잘못된 것을 고치고, 달래고, 안심을 시켜주니까, ‘천국은 무조건 가게 되었으면, 이제 열심히 충성을 해야 되겠구나.’ 이래야 될 것인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뭐 개겨도 되겠네?’ 그래서, 장로교는 저절로 그냥 슬금슬금 다 잠든 신앙이 되니까, 이 꼴을 보고 있던 웨슬리 목사님이, ‘이거 이래서 안 되겠다. 이게 말이 되느냐? 하나님하고 나하고 같이 노력을 해야 천국을 가지, 어떻게 공짜로 천국을 가느냐?’ 이래가지고, 천국가기 위해서 막 열심을 내다보니까 감리교는 불덩어리가 되어가지고, 한국에 제일 불덩어리 ‘성결교’가 감리교에서 나왔고, 한국의 제일 불덩어리 ‘성결교’ 다음에 나온  순복음 교회도 감리교 쪽에서 다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감리교이고, 그 밑의 아들이 성결교이고, 그 밑의 아들이 순복음 교회라, 감리교와 성결교와 순복음 교회는 마구 펄펄 끓어야 믿는 사람입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내다 뺑 돌아서 천주교 밑으로 절반 들어가 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열심도 큰 소입니다. 장로교의 예정교리도 큰 소입니다. 한국 교회의 두 소가 함께 일을 해서, ‘천국 가게 되었으니’ 장로교의 소가 끌고! ‘천국 가는 것은 안심하고 이제는 죽도록 충성하자.’ 감리교의 소가 끌어주고, 두 소가 함께 끌어주면, 기본구원의 감사와 건설구원의 충성이 함께 어울리면 기가 막힌 교회가 될 터인데, 감리교가 17세기, 한 백년 뒤에 나오는데, ‘웨슬리’보다 좀 일찍 나옵니다. 감리교의 조상이 ‘알미니우스’인데, 그 사람이 시작을 하니까, 장로교에서 ‘저 놈 이단이라’고 죽인다고 난리가 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감리교와 장로교라는 것은, 체질적으로 남한과 북한 같아서, ‘네가 죽어야 내가 잘 된다’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런데 공회는, ‘남한도 장점이 있고, 북한도 장점이 있고, 두 장점을 함께 만들어 놓으면, 이 나라가 얼마나 좋을까?’ 이게 공회입니다. 아름답지요? 우리는 우익도 아니고, 좌익도 아니고, 남한 편도 아니고 북한 편도 아닙니다. 북한에 도입하고, 북한에서 가져오면 좋을게 뭐가 있나요? 북한은 옳은 말을 안 들으면, 처형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옳은 말 무조건 듣습니다. 질서? 북한 아직까지도 남녀 연애하면 당장에 잡아간다 그러지요? 경찰들이? 우리는 옛날에 그랬는데, 지금은 마음대로지요? 북한은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그래요. 남녀이성, 질서, 아래 위를 아는 것, 국방. 이런 것이야 북한에서 가져오면 좋겠지요. 경제? 창조? 개인의 발전? 이것이야 남한이 좋겠지요. 양쪽을 잘 갖다만 놓으면, 뭐 세계 한 두 손가락 당장 꼽을껄요? 일본 앞서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남한, 북한의 좋은 소 두마리가 오해를 해서 둘이 맨날 쳐 박고 앉았으니까, 이게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소 둘이 싸우고 있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리’가 싸우고 있습니다. 장로교와 순복음 교회의 열심과 교리가 싸우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숫자가 많으냐?’ 70년대, 80년대에는 장로교 숫자로 훨씬 많으니까, 장로교에서 순복음 교회를 ‘이단!’ 쳐 받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러든지 말든지 순복음 교회 자꾸 숫자가 많아져서, 서울 바닥에 80만명이 순복음 교회 교인이 되니까, 장로교 목사님들이 ‘순복음 흉내내고, 순복음 제도를 도입 안 하고는 이대로 있다가는 다 빼앗기겠다’ 싶으니까, 과거에는 순복음을 이단이라 했던 이유가, ‘할렐루야. 아멘 한다’고 이단이라 그랬다가, ‘이것을 설교시간에 써먹어야 교인이 오겠구나.’ 싶으니까, 장로교도 ‘할렐루야, 아멘.’ 다 해서, 지금은 장로교나 순복음이나 같아져버렸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알면, ‘그 말을 한다고 이단 정죄를 한 장로교는 회개를 해라!’ 이래야 되는데, ‘그거 뭐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좋은게 좋지.’ 그 꼴로 잘 믿을리가 있겠습니까? 왜 순복음 교회는 이단이냐? 방언을 하니까. 한국교회 방언은, 역사적으로 오래됐지만은, 한국 전부를 방언으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은, 조용기 목사님의 순복음 교회입니다. 방언한다고 장로교 교세가 쎌 때는, 전부 이단으로 해놨는데, 욕을 하든지 말든지, 방언을 하니까, 한 잔 먹고 뭐 노래 부르는 것처럼, 개운한 것처럼, 해장국 먹은 것처럼, 사우나 갖다 온 것처럼, 개운하고 시원하고 그냥, 밥 먹고 김치 않으면 이상한데 김치 먹고 나니까 밥을 먹은 것처럼 이리 되니까, 교리적으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장로교에서도 순복음 따라 방언, 방언 이러다가, 지금은 장로교 중에 방언 안하는 장로교 없습니다. 우리만 안 하고 있으니까, 방언 안한다고 또 이단이라고 이럽니다. 그것 참 역사도 그렇게까지 모르는가? 이런 무식한 것들하고 같이 어울려, 한국교회 안에서 복음 운동을 하려니까, 그리고 우리는 돌을 못 들지, 우리 소가 작지, 이래 놓으니까 뭐 맨날 두드려 맞아서 우리는 당하는 쪽이지만은, 진리 운동, 하나님이 지켜보는 고요한 성경의 세계에서 보면, 뭐 비교할 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믿는 순복음 교회의 ‘열정’은, 장로교에서 배워와야 됩니다. 우리도 배워야 됩니다. 장로교회의 ‘교리’는 순복음 교회에서 배워가야 됩니다. 그런데 안 싸울 것으로 이리 싸우고, 저리 싸우고, 이단이라고 그러니까 공회는, ‘열심 잘못냈다고, 방언 잘못했다고, 교리 약하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장로교가 맞다. 기본구원 받은 사람이, 열심을 내는 것은 감리교, 순복음 교회가 옳다.’ 우리 말이 좋지요? 어디에 대놓고 말을 해도, 좀 말귀 알아듣는 신학자들, 학문을 많이 한 목사들한테는, ‘공회가 뭡니까?’ 할 때에, 이 말을 내면은 전부 그냥 입을 딱 닫아버립니다. 안 닫을 수 있나요? 제가 하는 말입니까? 저도 배워서 가르치지. 논리가 맞고, 이치가 맞고, 성경이 맞고, 생각 할 것도 없이 그게 맞을 수밖에 없는데, 2천년 동안에 왜 그런 간단한 세계를 몰랐을까? 천년간 천주교는 왜 불교가 되었을까? 그거나, 그거나 원리는 같습니다. 깨닫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열어주지 않으면 그렇게도 어려워 교회 옆에 살면서, 평생 교회 안 나가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이게, 작년 5월 집회에 창세기 1장과, 내려오는 신앙의 계통을 연구한 역대상 1장에서 9장 공부였습니다.

지금 소와 소가 함께 일하다가, 함께 있다가, 함께 부딫히다가, 이 소가 저 소를 받아 죽여버렸습니다. 장로교 ‘소’가, 장로교회의 ‘교리’는, 장로교회 귀한 ‘예정 교리’는 소인데, 순복음 교회를 이단으로 떠 받아 죽였으면, 살아 있는 장로교 구원교리는 순복음에서 반반 나눠가야 됩니다. 그리고, 순복음 교회가 이단으로 정죄된 받혀 죽은 ‘방언’ 이런 것은 장로교회에서 ‘그건 잘못된 것이다.’ 반반 나누어서 따라가면 아니 되는데. 죽은 소를 가져와서, 부활을 시켜서 장로교가 방언 교회가 되고, 그게 장로교회인 줄 알아버리는데까지 나갔으니, 이 말씀 하나만 바로 알았어도, “산 소를 팔아서 반분하라.” 둘 다 관리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소 중에, 옳은 소, 좋은 소, ‘살아 아직도 복음 운동에 쓸 수 있는 것은, 이쪽 저쪽 둘 다 잘못했으니까 둘 다 나누어 함께 잘 살거라.’, ‘둘 다 버려야 될 죽은 소는, 둘 다 반반 나누어 처리하거라’

그런데, 맨 밑입니다. 84페이지, “한쪽 소가 받는 버릇이 있어” 착한 소가 묵묵하게 착한 일만 하고, 복음 운동만 하는데, 이건 불량한 소라, 그 소를 떠받아 죽여버렸습니다. ‘받는 버릇이 아는데도 그것을 제제하지 않았으면, 떠 받아 죽인 소 임자는, 죽은 소 가져가라!’ 그리고 ‘당하여 피해본 죽은 소의 임자는 떠받아 죽인 가해자에게서 다른 소를, 산 소를 받아가라.’ 이게 계산입니다.

그 다음 넘겨서, 22장 1절입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아먹거나 팔아서 돈으로 바꿔 버리면, 소 한 마리 훔쳐서 들키면 “소 다섯 마리로” 갚아라. 양 하나는 훔쳐갔다가  갖다가 들키면, “양 네 마리로 갚아라” 세상은 큰 도둑질하면, 처벌이 약합니다. 작은 도둑질하면 처벌이 강합니다. 혹시 아십니까? 남의 돈 1억을 사기치면, 예를 들어 징역 1년이라면, 남의 돈 100억을 사기치면, 100년을 때려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1억 사기친 사람이 징역 1년이면, 100억 사기친 사람은, 한 4-5년 받습니다. 천억을 해 먹은 사람은, 천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20년 정도 때립니다. 그래서, 죄인은, 세상은, 죄는 크게 크게 지어야 처벌이 적습니다. 그래서, 머리 돌아가는 사람은 줄 것, 받을 것을 계산해 보니까, 해 먹을 바에는 크게 해먹어야, 나중에 남는 장사 되는 겁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하며, 뭐 그냥 재벌 회장들 요즘 다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는데, 한 1-2년, 3-4년 갔다 나왔지요? 그 분들, 1억, 5억 때문에 들어간 거 아닙니다. 천 억, 5천억, 8천억, 2조, 3조 때문에 들어갔는데 몇 년입니다. 좀 도둑은 천만원에 뭐 그냥 1년 살고, 5천만원에 2년도 살고 그렇습니다. 어떡합니까? 세상인데. 그런 말이 있지요? 한 명 죽이면 살인자. 그 다음, 몇 백명 죽여버리면 훈장을 주면서, 영웅. 그 다음, 한 백 천만 명을 죽여 버리면, 정권을 잡아 그 다음 ‘황제’가 됩니다. 틀렸지요? 그러니, 세상은 희망이 없는 겁니다. 당한 편 들면 또 당해야 되고, 죽이고 황제가 되고 나면 뒤에 또 당합니다. 끝이 없기 때문에, 그 교회는 야당 편도 안들고, 여당 편도 안 들고, 자본주의 편도 들지 않고, 공산주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를 하면 우선은 먹고 살고 좋아지는데, 썩어 나가 자빠집니다. ‘소돔’이 되어버립니다. 그 다음, 공산주의를 하면, 우선은 나눠 먹으니까 웃고 행복했는데, 그 다음은 다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교인은, ‘우선은 자본주의가 옳다. 우선은 굶어야 되니까 먹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자본주의 하면 영원 무궁 해결이 되느냐? ‘나중에 전부 소돔과 고모라가 되고, 바벨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결국은 주님 밖에 없다! 먹으면 먹는대로, 굶으면 굶는대로이지, 많이 주면 복음 위하여 쓸 연구를 하고, 안 주면 기도할 연구하고, 금식 기도할 연구를 하지. 무조건 기독교는 이 편 들고, 저 편 들지 않습니다. 모르는 기독교가 뭣 모르고 사회주의도 하고, 모르는 교회가 뭣 모르고 자본주의 앞장 서지.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소 한 마리 훔쳐가면 ‘다섯 배’. 양은, 한 마리에 몇 배요? ‘네 배’입니다. “소는 하나 훔쳐가면 다섯으로, 양은 하나 훔쳐가면 넷으로 갚을찌니라.” 왜 그런가? 교재 86페이지 위를 보십시다. ‘왜 소나, 양을 말했는가?’ 이스라엘 목축하는 나라니까, 소나 양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논, 밭이 되겠지요?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논, 밭을 가지고 사는 농경국가가 아니고, 소나 양을 치는 목축국가로, 하나님이 만들었을까? ‘어린 양 치라고’, ‘어린 교인을 길러, 소와 같은 훌륭한 인재를 만들라고’. 또 ‘내 속의 악, 내 속의 부패성, 내 속의 욕심, 내 속의 별의별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그 속에 양을 길러서 자꾸 양 목장이 좋아지고, 그 중에도 일하는 소가 많아져서, 일꾼이 되라고.’ 자기 속을 목회하고, 가정을 목회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인도하고 지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양과 소를 만들라고 이스라엘 나라는 목축국가가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목축하는 나라의 대표적인 짐승이, 소와 양입니다. 오늘로 말을 하면, 교회의 교인이 소와 양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 교인의 신앙이 소와 양입니다.

소? ‘말 없이’, 소? ‘일은 다 해버리는’, 소?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엎어져 죽는 날, 꼴깍 가버리면, ‘어 가버렸구나.’ 소는 엄살이 없습니다. 말 없이 끝까지 일은 다 해버립니다. 그런 소 같은 충성의 교인이 하나 있다면, 그 교회는 그냥 복은 다 받아버렸습니다. 짓는, 물어뜯는 강아지 같은 교인들은 많고, 염소처럼 떠받아버리는 교인들은 많고, 말 없이 교회 모든 일은 다 해치우는 소 같은 교인은 적고, 주님의 말씀이면 순종하여 양 털로 드리고, 가죽으로 드리고, 고기로 드리고, ‘주인이 좋게 된다면 나는 바칠 수 있다’면 ‘양’입니다. 교회의 양이 많고, 소가 많으면 얼마나 좋은 교회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생전의 애양원 교회는 소와 양이 가득했었습니다. 집사 시절에 백 목사님이 거창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순천으로, 순천에서 기차타고 신풍으로 가서 애양원 교회를 한바퀴 딱 둘러 보고, 그 때는 고름이 나오는 양성환자 시절이라, 냄새가, 생 사람의 썩어 나오는 몸에서 나오는 고름 냄새가 뭐 말도 못할 때인데, 성령의 사람이 1,500명 애양원을 한바퀴 삥 둘러보니까, ‘이곳이 낙원이라. 아예 이곳에서 그냥 살아버렸으면 좋겠다.’ 해서, 그 쓰신 일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천국이! 이런 향기로운 동산이!’ 요즘 나환자는 30년, 40년 전에 나아서 흉터만 남아 있지 우리와 똑같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에 갔던 애양원 1,500명은 양성환자가 대부분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 몸에 약이 없으니, 살아 있는 몸이 썩어서 나오는 냄새. 그곳이 향기로워, 그곳이 은혜로워, 이곳이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좋은 양, 좋은 소들이 가득해서. 손양원 목사님 한 몇 년 목회하고나니까, 불과 한 2-3년 목회하니까 그리 되었습니다. 신풍교회는 양이 몇 마리인가요? 염소가 몇 마리인가요? 소가 몇 마리인가요? 개가 몇 마리인가요? 교인이 강단을 보면, 설교하는 말, 표현 표현을 보면, ‘저 친구 옛날에 강아지 출신 아닐까?’ 뭐 그럴만 할껄요? 2년 목회하고 1,500명 나환자, 극단적인 수용소를 전부 지상낙원으로 만들고 소와 양떼를 가득 만들어 놓았고. 그 분 가시고 나니까 1년도 안되고, 몇 달만에 전부 다 표범, 이리, 멧돼지, 호랑이 떼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통합 교단인데, 통합 교단 총회장 어른, 노회장 할 것 없이, 애양원 교회는 손도 못댑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목사 가르쳐버리니까. 노회 목사 대표 10명 모아 놓고, 앵야원 교회 장로님 한 둘 나가면, 가서 가르쳐 버리고, 성경으로 이겨버리니까. 말로만 이긴 것이 아니고, 신앙으로 이겼다면, 기도로 이겼다면, 감동으로 이겼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만은, 양이 염소 되고, 염소가 양이 되고, 소가 받는 소 되고, 소가 받혀 죽어도 자기 일을 하는 이것은, 동물은 바꿀 수 없으나, 내 속의 옛사람, 내 속의 장점, 내 속의 단점, 내 속의 욕심, 내 속의 오기, 내 속의 자존심은, 잘 다스려, 잘 먹여, 잘 기르면 ‘양’도 되고, ‘소’도 되고. 양도 되고, 소도 되고, 천사였는데, 목회자 바뀌고, 내 신앙 시험들면, 천사 같은 이 마음이, 이 충성이, 이 성결이 순식간에 뭐 물어뜯는 개가 되는 것은, 뭐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몇 일이면 그리 되어버립니다. ‘소 하나에 소는 다섯이다.’

제일 밑에, ‘범죄가 크면’ 양 도둑놈보다 소 도둑놈이 훨씬 큰 도둑놈입니다. 범죄가 크면, 세상을 처벌이 가벼워지나, 신앙은 처벌이 무거워집니다. ‘큰 소, 귀한 신앙의 요소를 손댔느냐? 다섯배 갚아라!’, ‘그것보다 좀 작은 것을 손댔느냐? 그것은 네 배로 갚아라!’ 레위기 4장이지요? ‘속죄제.’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수송아지도 해결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죄를 지을 때에, 수 송아지로 해결합니다. ‘제사장’ 한 명은, 이스라엘 온 백성이 짓는 죄와 같이 엄하게 처벌을 합니다. 그러나, ‘족장’ 하나가 죄를 지으면 제물도 낮아집니다. 그리고, 평민, 일반인이 죄를 지으면 똑같은 죄인데, 비둘기 한 마리로 가지고도 해결되도록까지 열어 놓으셨습니다. 목사, 집사, 주일학교 반사, 셋이서 술집에 가서 한 잔씩 하고 오면, 목사는 노회 징계위원회에서 ‘증인이 없다. 사진이 없다. 무죄!’ 집사는, ‘그 사람 그 언제도 술 먹던데? 집사 3년 정직.’ 주일학교 반사? ‘그것은 내 쫓아’ 실제 대부분 교단이 그리가고 있습니다. 한 몇 년 됐는데, 고신교단 노회장, 뭔 노회 총회, 굉장한 간부들이 일본에 대여섯명 관강을 갔다가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떠드는 바람에 들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처벌을 하자, 말자’ 이야기가 오니까, 무슨 말이 나오냐면 ‘일본에 갔다가 관광하다가 울컥해서 한 잔 했는데, 뭐 그것을 그렇게까지 처벌 할게 있느냐?’ 이러니까, 고발하는 사람이 고발을 하기를, ‘한국에서부터 술을 사서 가가지고 마셨기 때문에 이 인간들은 봐줄 수 있는가?’ 그래봐야 목사들이 재판장이니까, 이리저리 다 슬금슬금 그냥 묻어버린 것이, 교회도 긴장하지 않으면, 제일 위에, 제일 엄한 죄는 전부 다 무마하고, 밑의 피라미나 전부들 징계한다고 난리가 되어집니다.

우리 공회의 현재도, 우리 공회의 앞날도, 목회의 잘못은 기침만 해도 죽을 죄처럼. 중간쯤 교인의 죄는 그럴 수 있으나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좀 제재하고, 어린 교인의 죄는 ‘누구든지 어릴 때 그럴 수 있으니, 한 번은 봐 주고, 그 다음은 좀 그러지 않도록 권면하고 지켜보자.’ 감춰줄 수 있고, 그러면 교회다울 것이고, 이게 반대가 되면, 그때는 뭐 공회 이 말하거나, 저 말하거나 이미 세상이 되어져버렸습니다. 계급이 올라가고, 신앙이 높아질수록 작은 죄가 큰 처벌로 가는 것이 ‘성경’입니다. 신앙이 없고, 어리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사랑하고, 봐주고, 기다리는 것이 성경입니다. ‘소를 팔면 다섯 배’, ‘양을 팔면 깎아줘서 네 배입니다’. 그러니, 양 도둑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신앙의 책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간섭하는 간섭이 크다는 말입니다. 아가씨가 걸어가다가 넘어지면, 혼자 다칩니다. 아가씨가 아이 하나를 업고 가다 넘어지면, 둘이 다칩니다. 아줌마가 업고, 지고, 뱃 속에 하나 가지고 가다가 넘어지면, 셋이 다칩니다. 넷이 다칩니다. 그래서, 혼자일 때와, 그래서 높아질 때 와 그래서, 책임자가 될수록 더 엄하게, 더 엄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한테 모두들 연락 와가지고, ‘목사님들이 실수한 것은 좀 봐 줘야 되지 않냐?’ 뭐 봐 준다고 누가 봐줍니까? 우리 공회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말은 해야지요? 목회자의 실수는 봐주고 나면, 교인의 실수는요? 돈까지 주면서, ‘더 잘 지어라’ 그래야 되겠지. ‘아무리 못 믿고,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그렇게까지 그럴수는 없어야,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교역자회 교역자끼리 모이면, 다른 교단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고, 다른 공회에서는 그건 뭐 흠이 될 수도 없는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염려하고, 끙끙 앓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원리가 그러니까! 그런데, 이게 이해가 안되니까, ‘막 마구 그냥 우겨대고, 쥐어박아대니까 그냥 떠 받아대서 나는 받혀 죽는다’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요? 목사 자기는, 목사들끼리 친 인척 되고, 고향이 같고, 동지들이니까 슬금슬금 봐주고, 교인들의 죄는 마구 강당에서 두들겨 쳐요? 받는 소를 길러요? 그리 할 수가 없어서, 할 말은 아니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들이 보면 싸웠다는데, 싸우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으로 애걸복걸을 한 것인지? 언젠가는 다 드러나겠습니다만은, 여기의 원리가 ‘소는 한 마리에 다섯’, ‘양은 한 마리에 넷’입니다. 귀할수록, 하나님의 책임이 무거워집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가운데에, 소나 양을 ‘도적질’을 했습니다. 도적질이라는 것은, ‘수고는 다른 사람이 하고, 다른 사람의 수고를 나는 가져오면’, 이것을 ‘도적질’이라고 그럽니다. 저 사람이 장사해서, 저 사람이 벌었는데, 나는 밤에 가서 슬쩍 가져 왔습니다. 그게 도적질이지요? 일은 부모가 하고, 돈은 부모가 벌고, 쓰는 것은 아이가 쓰고, 그 아이 도둑놈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라는 것은, 그래서 자녀라는 것은, 부모에게 도둑놈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둑놈이 되지 않는 방법은, ‘지금은 어려서 하나님께서 돈 벌 기회를 주지 않으셨고, 지금은 부모라 나를 책임져야 될 위치를 맡겼으니, 부모는 땀과 시간을 들여 돈을 벌고, 나는 돈을 쓰기만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자라게 되면, 그 돈을 제가 갚을 겁니다.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돌려 드릴 겁니다.’ 마음을 이렇게 가지면, 부모에게 ‘외상’으로 빌려 온 겁니다. 성경에 빌려오는 것은 빌려 갈 수 있습니다. 도적질이 금지이지. ‘부모니까 나를 책임져야지? 부모 것을 내가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아예 부모 것이 자기 것인줄 압니다. 이 도둑놈들이! 하나님께서 길러가는 방법으로 남자와 여자와 아이를, 부모와 자녀로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부모 잘 믿으면 아이는 안 믿고도, 부모 덕에 천국 갑니까? 부모가 불택자라 지옥 간다면, 자녀는 잘 믿어도 지옥 따라갑니까? “노아, 욥, 다니엘이 세 사람이 있을찌라도” 그들의 의로 그들만 구원받지, 그들의 자녀는 따라가지는 못 합니다. 그래서, 구원, 신앙은 마지막으로는 ‘개별 구원’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중요한 것은, 믿음의 부모 밑에 밥 먹고, 함께 자라다보면, 믿음의 물이 들고, 그 기도로 돌아설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좋은 부모, 신앙의 부모가 귀한 것이지. ‘신앙의 부모 때문에, 나는 놀고도 저절로 천국간다’는 이런 단체구원은 없습니다.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남의 소입니다. 남의 양입니다. 남이 길렀고, 남이 수고했고, 남이 꼴을 먹였고, 남이 그 소와 양 때문에 돈 주고 사온 것입니다. 왜 부모 돈이 자식 돈입니까? 어릴 때, 젖 먹이면, ‘애야, 내가 먹은 것 너한테 준다.’ 그리고 외상 장부에다가대고, ‘2019년 5월 8일 수요일 오후, 모유 50cc.’ 적어놔야 나중에 청구서를 내지요? 안 적어놓고 나중에, ‘내가 너를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러니까, 애 쓴 엄마는 미쳐 그냥 정신이 없는데, 애들은 ‘증거 봅시다. 청구서 봅시다. 영수증 봅시다. 세금 계산서 봅시다.’ 그러니까, 말 못하는 부모들이 복장이 터져 그냥, 주먹질을 하면 이번에는 경찰이 개입이 되지요. 사랑은 사랑이고, 하나님의 자녀를 맡겼으니 충성은 충성이고, 돈 계산은 명확하게 돈 계산을 해야지요? 천하없이 제일 귀한 자기 자식을 갖다가, 도둑놈을 만들어요? 외상장부 자꾸 적으셔야 됩니다. 이거 적다가 돈 못 벌고, 이거 적다가 성경은 못 읽을 정도 같으면, 줄여서 대표적인 것을 요약하고 메모하지만은, 최대한 적어 놨다가, ‘난 널 위해서 이랬다. 저랬다.’ 이런 총론적인 말, 겉도는 말 하지 말고, ‘몇 월, 몇 일, 몇시, 네 놈에게 들어간, 책값, 밥값 등록금, 옷 값, 네가 친구하고 싸움 받고 왔을 때에 내 아픈 가슴은 그때 한 2백만원 어치였다. 가서 그 집 부모하고 멱살 잡느니라고 시비 벌어지고, 돈 못 번 것은 50만원이었다.’ 자꾸 적어대야 나중에 책으로 한 권 내놓고 ‘네 놈 하나 기르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들어갔다.’ 증거를 내놔야, 이 무식한 것들, 이 물질주의들, 봐야 아는 이 도마 같은 신앙의 사람들에게, 도마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니까,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넣어보고, 못 자국이 있어야 내 주님인지, 부활인지 알지, 어떻게 말만 듣고 믿어요?’, ‘다른 제자들이 보고,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 말을 믿어요? 옛날에 같이 의심하고 다닌 동지들인데. 봐야지 알지 뭐.’, ‘창 찔린 옆구리에 팔 뚝을 넣어놓고, 못 박힌 손바닥에 손가락을 넣어 봐야 알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도마라는 순교자도, 주님 부활 후에도 신앙이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의 신앙이 도마보다 나을 리가 있나요? 우리 신앙도 그 정도가 안되는데. 자꾸 적다보니까, 성경 못 읽고, 자꾸 의심하다 보니까 교회 운영이 안되서 그냥 공회는 ‘주님 바라보고 믿고, 서로 가자’ 하다보니까, 불문법이 되고, 영수증도 없고, 서류가 없어서 7년간 서류가 없어서, 참 뭐 애를 얼마나 먹는지 모릅니다만은, 교회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교회 운영이 아니라, 하나 낳아놓고 하나 기르는 엄마는, 이 아이를 옳고 바르게 감사하게, 부모를 치는 자,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만들지 않고, 부모를 아껴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복이 쏟아지게 할 수 있다면! 모세를 만들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 이 제일 큰 기본적인 약속이 되어 있으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 머리 쓰고, 노력을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부끼리는 적어가며, 이혼할 때에 재산을 나누는 이런 야비한 짓을 다 하면서 말이지. 부부 싸움하다가 깨져보지요 뭐? ‘언제 돈 번 것, 언제 친정가서 돈 가져온 것’ 줄줄이 나오는데, 이것은 죽는 날까지 다 나오는데 왜 아이에게는 이런 청구를 못합니까? 모르니까 아이들이 막가는 것이지, ‘뭐 해줬는데?’ 엄마한테 ‘뭐 해줬는데?’ 애비한테 ‘뭐해줬는데?’ 그 말이 나오기까지 부모는 지난 날에 뭐 했던고? 남녀 중에 엄마라는 인간은 그 시간에 뭐 했던고? 동창회에 나가서, 나도 직장 잡아서, 잘나가는 여자라는 자랑하려고, 사회생활 하다보니까, 그 아이 하나를 두고 그 얘기를 못했지. 그 교육이 시시한 교육인가요? 보육원에 가서 되는 교육인가요? 고액 과외로 해결이 되는 과외인가요? 그게? 친 엄마와 자녀 사이가 아니고, 사랑이 아니고, 이 아이의 앞날을 두고 인간을 만들려는 그 의지가 없이는, 이것은 못 하는 일입니다.

여자 대통령을 시켜준다고 해도, ‘나는 내 아이 하나에 대한, 모세로 교육하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이럴 수 있을 때 “모세는 애굽의 바로 왕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바로 왕궁의 모든 영광을 차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즐거워 하였더라” 마지 못해서 끌려가고, 마지 못해서 출애굽을 하는 그 짐을 맡은 것이 아니라, 바로의 바로 왕궁의 40년의 영광을 내버리고, “자기 백성과 고난 받기를 즐거워 하였더라” 행복해 했더라. 좋아서 깜빡 죽어버렸더라. 그 모세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요게벳이 유모로, 몰래 슬금 슬금, ‘너는 애굽나라 바로왕 공주의 아들이다. 왕궁의 구조상, 너는 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너는 족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약속의 민족의 모세다! 너를 하나님께서, 물에서 이렇게 건졌을 때에는 너 하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너를 통해 온 민족을 구원할, 소망의 주님을 대신할 모세로 기를지 모른다! 애굽을 다 주고, 천하를 다 줘도, 그까짓것 그냥 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바로 공주 돈 받아가며, 젖 먹여 가며, 세상에 살며, 세상 혜택, 세상 모든 제도 가운데에 있으며, 그 속에서 복음으로 모세를 전도했고, 심방했고, 주일학생으로 길렀고, 중간반으로 길러, 어디 던져놔도 얼마가 있어도, 마음은 콩팥이라고, 모세 마음은 가나안에 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를 했는데, 수고를 가져오면 ‘도적질’입니다. 부모 돈도 자녀가 쓰면 도둑질입니다! 여기에 있는 전부, 저까지 우리 도둑놈, 도둑년 아닌가요? 모르면 그리 될 수 밖에 없지요.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미 부모는 돌아가셨으니까, 이걸 어떻게 갚지요? 자녀들에게 ‘나는 천하에 제일 귀한 나를 위해서 목숨 바친 부모에게 나는 도둑놈이었다. 발 한번 씻겨드릴 기회도 없었다. 이 찢어지는 가슴, 이 찢어지는 고통이 대를 이어 내려가서는 안되겠다.’ 절감하지 않으면, 아비 죄는, 아들에게로 3대, 4대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유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니까, 저절로 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목숨걸고 바꿔도 될까말까 한데, 이 속에 옛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6천년 내려오고, 내 평생에 들어가 있는 이 악성, 악습이 얼마나 무서운데?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데, ‘공부하는데, 시간 없는데 그런 말을 해가지고, 애들한테 부담을 줘가지고, 학원비 낼 때에 부담이 되어가지고, 갈까 말까 그러면, 이 경쟁 사회 어떻게 이겨? 막 훔쳐왔으면서도 그냥 부모가 실력이 있어서 쌓아놨으니까 마음껏 쓰라고 밀어줘야, 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공부에 집중해야 남을 짓밟고 일어서지’ 남만 짓밟나요? 부모도 짓밟을 것인데. 부모가 짓밟혀 자녀가 잘되면 좋기는 좋겠지만은, 부모를 짓밟고 성공한 그 자녀의 성공 뒤에 다 폭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못난 부모를, 부모로 대접하라,’ 이렇게 가르치면 ‘보수’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캐캐묵은 ‘적폐’라고 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오해를 하든지 말든지, 어떻게 합니까? 성경이 그런데? 성경대로 가르쳐야지? 아니면 절에 가든지. 

다른 사람의 수고를 가져오면, 도둑놈입니다! 그런데 아이라 부모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부모는 아이에게 ‘이거 내 것이다. 내가 먹은 것이다. 내 피와 살이다. 그런데 이게 젖으로 돌아, 네 입으로 돌아간다. 외상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거라. 나는 심부름한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젖 먹은 이 값을, 네가 평생에 감사하거라! 그리고 기회가 있거든 갚는데에 열심을 내거라. 그게 너 잘되는 길이다.’,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 생명은 오래 사는 수명만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모든 은혜성이 넘치게 가리라!’ 7일 중에 하루를 안식일로 제쳤는데, 왜 유대인들은 돈은 다 벌고 있나요? 7일의 7일, 다 돈 버는 우리와 7일의 하루를 안식일로 수 천년 짤라버린 그들이 왜 돈은 다 쥐고 있나요? 왜 기독교가 들어가면, 주일이라 7일에 하루를 공부를 안하는데, 왜 기독교 국가는 전부 다 문명국이 되어 있고, 선진국이 되어 있나요? 10 벌어서 10을 다 투자해야, 사업에 성공을 하는데 10 벌어서 십일조 떼어버렸으면, 십분의 일, 10프로 손해를 보면 사업에 뒤지는데, 왜 유대인들은 십일조하고 다 부자가 되었나요? 왜 십일조하는 기독교들은 전부 다 땅에서 복을 받고 있습니까? 인간 계산으로는 손해인데, 하나님께서 하나님 순종하는 그를 보며, 위에서 더해지는 복이 넘쳐버리기 때문에 인간의 계명 순종하다가 손해 본 손해를 갚고도 넘쳐버리니까, “쌓을 곳이 없도록 주지 아니하나 보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할 수 없이 못난 부모이지만은, 부모 수고를 가르쳐야 되고, 인식 시켜야 되고, 영수증 제시해야 되고, 영수증을 안 보고는 도무지 모르니까, 돈 벌어다주고, 여자가 살림을 살면, 한 2-3년 갔다가 남자가, ‘2-3년 갔다줬으니까, 몇 천만원 적금을 보자’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아이, 옛날에 기르다가 2-3년 몇 천만원 갔다줬는데, ‘적금한 것을 보자’고 그럴 때에, ‘이거 여기에 썼지, 살림에 썼지. 어디에 썼지.’ 별의별 살림에 썼는데, 돈도 적게 갔다 줬기 때문에, 여자는 자기대로 고생을 했는데, 남자가 몇 년 돈 갔다 줬다가, 어느날 갑자기 ‘적금 몇 천원 했지?’ 그럴 때에, ‘네가 살림 살아봐라 한번. 네 번 돈을 가지고 네가 부엌가고, 네가 애들 교육 시켜봐라. 그 돈이 남는가? 아니면 그 돈이 모자라는가?’ 남자가 돈은 벌어 왔는데, 살림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갖다가 준 돈이 다 적금이 된 줄 압니다, 꼴랑 그 돈 갖다주고. ‘네가 살림을 살아보거라! 네 돈 가지고 될 인간이 되는가? 친정 돈 갖다가, 다 뼈대가 여기에 있어서 갚아서 겨우 먹고 살았는데.’ 이 말이 나오는데, 왜 부부 싸움하면 부부 싸움이 되어지지요? 귀찮아도 남자가 변심하고, 엉뚱한 말을 할 때를 생각해서, 꼬박 꼬박 적어놓았다면, 그리고 ‘돈 내놓으라’고 그러면 ‘장부 봐라. 장부 봐라! 숫자는 좀 틀려도 거의 맞을 것이다. 네가 갔다 준 돈 가지고, 이 아이를 갖다가 둘 기르고, 셋 기르고, 돈이 남는가? 아니면, 친청에 가서 애걸복걸하고 돈 빼다가 갖다가 여기에다가 대고 줬는지? 한번 돈 계산을 해봐라’ 장부가 있어야 그 사람을 해결을 하지요? 오랫동안 많은 부부들, 소리 없은 전쟁통에 겪어보고 하는 말입니다. 겪어보고. 좋아서 살아놓고, 몇 년 지나니까, 남자가 엉뚱한게 ‘적금 얼마 했느냐?’ 그리고 이제 부부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럴 때에 제가 가장 간단하게, ‘도둑질을 좀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 이제 오늘부터 살림을 살아보십시오. 그리고, 맡겨 놓고 ‘잘 배우겠습니다.’ 저는 그리 시킵니다. 남자는 계산할 줄도 모르고, 귀찮아서라도 도로 맡기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계산해보며 ‘내 돈 가지고 이 여자가 붙어 산 것만 해도 참 고맙다.’ 그렇게 좀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면 좋겠는데, 이 바쁜! 이 오토바이 같은! 이 따발총 같은 성격들이 대뜸 싸우고 끝장을 내버리니까. ‘도적질하여’ 남의 수고를 가져오면, 도적질. 부모 자녀 사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가장 큰 도둑놈은 뒤집어 보면 대개는 목사입니다. 전성수 목사님이, ‘이 교회에서 밥 값은 내가 해야 되는데, 밥값은 못해서 되겠는가?’ 늘 그 양심에 자기를 몰아세운 그 분과 저를 계산해보면, 그 분은 밥값이 아니라, 밥값을 넘치게 했고, 그 분의 고민을 제가 생각해 보면, ‘나는 신풍교회에 밥값을 못한 참 거지며 도둑놈이 맞다.’ 이리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만난 것이 좋은 것이, 전성수 목사님을 생각해보면, ‘충성이 아니라, 너무 불충하고 게을러서 참 양심의 가책이 된다.’ 이렇습니다. 그리고, ‘밥값은 했나?’ 늘 연구가 그리 돌아갑니다.

‘어느 교회는 자가용 사줬더다더라.’, ‘어느 교회는 뭐 교인들이 이거 해 줬다. 저거 해줬더다러라. 자녀들 해외 유학 보내줬더다더라’  그 소리만 듣고 보면, 그 목사, 그 교회에 도둑놈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인이 목사를 그리 가르치려고 들면, 탈이 나지만은, 말은 맞아도 탈이 생기지만은, 목사끼리는 이렇게 서로 챙기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공회의 목회자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자기 교회의 도둑놈은 되지 말자’ 이게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적어도 우리 공회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도둑놈은 아닐 겁니다. 밥값은 얼마나 했는지 몰라도, 어느 정도는 했지 싶습니다. 이런 낮은 수준의 목회자인들, 찾아 보기는 어려울 껄요? 그리고 이 관계를 가정으로 가져가서, 엄마다운 엄마 계십니까? 아버지도 아빠가 여기 계십니까? ‘요즘 것들은 선배, 어른을 무시한다’는데, 선배님 노릇은 해 보셨습니까? 어른이 맞기는 맞습니까? 애들 보는데, 찬 물 마시다가 애들이 탈 날까 조심을 해봤어야 어른이지, 선배지. 믿음의 아이를 길러놓고, 나중에 보니까 세상 아이가 되어 버렸는데.

바로 왕궁의 왕자를 젖 먹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 빼돌렸는데, 요게벳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자와 공주를 맡겨 놓으니까, 애굽나라 종으로 만들었고, 바벨론 나라 문지기를 만들었고, LG공장 수위를 만들었고, ‘LG공장 수위인데, 주일을 지켜?’, ‘LG공장 정직원인데, 장로 안 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을 대 기업의 종으로 만들었고, 공무원의 일부를 만들었고, 요게벳은 애굽나라 왕자를 세뇌 교육시켜, 애굽 나라 왕이 될 모세를, “자기 백성과 고난 당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더라” 자원하고, 자원한 자유성의 모세가 되어,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모세에게 준 그 요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때에 큰 역할을 했고, 그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은 큰 소가 되어, 그 백성들을 인도하는데 얼마나 귀하게 되니까, 여호수아, 갈렙같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그 정도가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모양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내 모양이 이 정도이니, 우리 가정이 먹고 사는 세상에, 먹고는 살지만 은, 좋은 세상에 좋은 세상을 좋게 살기는 하지만은, 하나님 앞에 갈 날을 생각하니, 참 부끄럽다! 어떻게, 지금부터라도 다시 재 출발을 해 볼까?’ 고민을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에게 맡긴 신앙은 손대지 말아야 됩니다. 가운데, ‘도적질하여’ 다른 사람의 수고를 가져오면 도적질인데, ‘남에게 맡긴 신앙은 손을 대지 말 것’ 다른 교회 충성하는 교인은 목회자들이 데려오고 싶어 발버둥을 치게 되어 있는데, 세상은 인재를 빼 와야 되지만은,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낳아, 내가 길러,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옳고, 남이 길러, 남이 쓰는 일꾼을 빼 오면, 하나님은 ‘너 양 도둑놈이다!’ 큰 일꾼 가져오면, ‘너 소 도둑놈이다!’ 그럽니다. 다섯 배로 갚아야 되는데, 다섯 배로 갚기는커녕, 자꾸 끌어 모으고 앉았으면, 하나 데리고 올 때에, 5배. 10명 데리고 왔으니까 50배. 하나님은 외상값을 계속 올리고 있는데도, ‘그러든지 말든지, 남의 교인 많이 데려다 놓으면 연보 많아질 것이고, 목회자 영광 될 것이고, 교회 좋아지면, 나중에 내 아이 취직도 어려운데, 직장 하나 마련할 것이고.’ 우리는 세습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부러워하지. 목사 아들이, 그 교회 목사가 되면은 우리는 부러워합니다. 목사다운 목사가, 목사 아버지를 닮아서 그 교회 목사가 되면 우리는 부러워합니다. 목사 되지 않고, 목사될 리도 없는데, 아들이라고 무조건 세우는 이것을 욕하는 겁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겁니다.

현재 조례교회는 목사님 아들이, 목사님을 이어 목회자가 되면 참 좋겠다. 이리 싶습니다. 신풍교회와 동천교회 아드님들은, 아버지 목사를 이어서 목사될만큼 충성과 실력과 은혜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이 안 주는데 어떻게 합니까?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드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도둑질한 도둑놈이 되지! 양 한 마리에 양이 넷이고, 소 한 마리에 소가 다섯배인데, 100명 교회를 아들한테 빼돌리면, 하나님은, ‘100마리의 양을 훔쳐? 너 500마리 내놔라. 그 중에 소가 섞여 있으면 그건 다섯 배다!’ 계산을 알면, 하라고 데모가 나도 도망을 가지, 수를 쓰고, 작전을 쓰고, 표 운동을 할리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 중요하고, 그래서 성경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지식’과 ‘성경 깨달음’이 바로 박히면, 알고는 죽을 짓을 하라고 해도, 힘이 되는대로는 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니까 하지. 목사 자녀가 목사를 이어서 그 교회 충성하고 희생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으면, 그 교회 교인들은 횡재한 겁니다. 그런 경우는 희귀하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위대한 종이나,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 넷 중에서는 그리되는 아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백 목사님도 자녀가 아들이 넷인데, 하나도 없어서 지금 이어가지를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면 기준이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이 교회, 목사’ 내걸었을 때에, ‘그런 지옥을 가? 그런 십자가를? 그런 못을 박혀? 그렇게 들볶여?’ 이렇게 목사 직책, 월급, 조건을 만들어놓고, 그 다음 지원자 받아보면 압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사람?’ 제가 못 박히겠습니다. 그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아들이 지원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세상 직장 가기는 어려운 것이, 복음의 일꾼이라고 앞에 내걸고, 뒤로는 뭐 설교 잠깐 하면 노는 시간 많으니까, 요즘 지성인들이라 연보는 하고 자기 생활 바쁘니까, 교회 간섭 안 하니까, 남 보기는 희생이라 하는데, 뒤로 보니까 알짜배기 직장이 교회 목사직이 되어가지고, 옛날 고생하던 목사 아들들은, 목사 될까봐 전부 도망을 가고 가출을 했는데, 그래서 옛날 목사님 자녀들은 대개는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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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22
그래서 옛날 목사님 자녀들은 대개는 보면, 개판입니다. 안 봐도 대개 그렇습니다. 고생하고 목회하니까 전부 교회 등지고 도망을 갔는데, 시대가 바뀌어서 목사 같은 직장, 좋은 조건이 없다보니까, 다른데 세끼 밥 먹기도 어려운 것들을, 부모는 밀어놓고 자녀는 빽으로 들어가가지고 문제가 생긴 겁니다. 공회는 목사 아들이 목사 되는 것을 반대 안합니다! 부러워하지. 목사 못할 놈의 인간이, 빽으로 가고, 그 다음 양 잡아 먹으러, 양 도둑놈이 되어 들어가니까, 이리떼가 되니까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지. 세상과 다른 교단은 무조건 목사 아들이 목사 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공회와 다른 교단의 차이를 잘 기억하셔서, 텔레비에 뭐 주변에 하도 이런 소식이 많으니까, ‘어느 교회 목사 아들이, 또 목사를 이어 세습을 했단다.’ 안 믿는 세상 언론에서도 자꾸 귀신 소리를 하는데, 그 아들이 목사다운 목사냐? 십자가를 진 목사냐? 그 반대냐? 우리는 그거 구별하지 무조건 욕 안합니다.

넘겨서, 88페이지. 도둑질해서 팔아먹고, 도둑질해서 죽여버렸습니다. 끝장이 나버렸으면 다섯배, 네 배인데. 도둑질을 하고 간 것이 아직 그 도둑놈 손에 있는데, 들켰습니다. 그때에는 ‘두 배’만 갚으면 됩니다. 왜 그렇지요? 가져간 것이 끝장이 나지 않고, 살아있어 회개와 복구와 새 출발의 기회가 있으면, 그러면 새 출발 하면 되지요. 그런데 그냥 두면, 또 그런 짓을 할테니까, ‘두 배’로 ‘갑절’로 배상을 한 겁니다. 맞습니까? 내가 내 아들 기를 때, 열 고생이 들어간다면, 내가 남의 아들 데려다가, 내 아들처럼 잘 기르려면 열 수고하면, 팥쥐 엄마라는 욕 많이 얻어 먹습니다. 내 아들 열 수고로 기른다면, 남의 아이 입양하고, 남의 아이를 지도하려면, 두 배는 수고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러고도 될까 말까 그렇습니다. 베푼 나는 잘했다고 그러는데, 문제는 상대방은 그리 생각을 안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남의 교회 교인 전도해서, 우리 교회 갖다 놓는 것, 다른 데는 다 그게 유행이고, 그게 부러워, 왜 예배당 잘 짓지요? 예배당을 좋아야 다른 교회 교인이 넘어오니까, 예전에는 교인이 하나 서면, ‘불신자를 전도 하느라고 얼마나 십자가 지고, 애를 먹었을까?’ 이랬는데, 지금은 시내에 큰 교회가 하나 들어서면, 개척 교회가 들어서면,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을 빼돌렸을까?’

분당에 한 20년 전, 분당에 제일 잘 나가는 교회, 지금도 한국에 몇 손가락 꼽는 교회, 제가 한번 강의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막 교인이 쏟아진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물어봤지요. ‘다른 교회에서 이 교회가 좋아서 온 교인과 새 전도가 몇 프로쯤 되지요?’, ‘열에 하나도 안됩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훌륭하신 분이, 예배당을 잘 지어놓으니 뭐,  거기 가면 저절로 은혜되지, 파트별로 다 전문가 갖다놨지, 시설은 그냥 으리번쩍 하지, 이 교회 양, 저 교회 소, 저 교회 외동아들 쭉쭉 몰려서, ‘어느 교회가 갑자기 대 성장했습니다.’하면, 하나님은 ‘이 도둑놈들아! 이 양 도둑놈들아! 이 소도둑놈들아! 남의 교인 데리고 가서 네 교인 만들려면, 2배는 더 노력을 해야 되는 법인데, 거머쥐어다가만 놓으면 내것이 된다는 이 심보로 네가 복음? 너를 바쳐서 주님 앞에 갖다 놓는 것이 제단 위의 제물인데’ 대개는 옮기면 죽습니다. 나무를 옮기면 환경이 바뀌면서, 나무는 종자가 바뀌지 못하니까, 대개는 잘 죽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식목을 옮기고도 살려내는데, 옛날에는 왠만해도 나무 옮기면 다 죽습니다. 동물은 간사해서 ‘적응’을 합니다. 어떻게 적응을 했지요? 요 눈치보고, 요리가서 저 말하고, 저리 가서 저 말 하고. 장로교 교인이 순복음 교회에 가서 막 방언을 하면서 원래 방언이 옳은 것처럼 이렇게 변절을 해서 잘 살아남았겠지. 옳고 바른 것을 배워서 깨닫고 회개를 하고 돌아섰느냐? 아니면 적응을 해서 변절이 되었느냐? 변질이 되었느냐? 변질 되어져 버렸으면 죽었고 팔아버린 겁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장로교인이 순복음 교회에 갔는데 뭔가 어색하고, ‘그래도 장로교회의 장점이 아직도 있는데, 순복음 교회의 장점이 있는데’ 이렇게 오락가락 할 때는, 팔아먹지 않고, 잡아먹지 않고, 아직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는 돌려 보내라. 그냥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갔던 것 제자리 와서, 제대로 기르려면 두 배의 노력이 든다. 두 배의 노력이 된다.” 계산하면, 함부로 그렇게 못 하는 겁니다.

88페이지. ‘도둑질한 것이 손에 있으면’ 아직도 죽지 않고, 그 부분이 끝나지 않아 살릴 수 있고, 재 출발할 수 있으면, 2배의 노력이 든다는 것 알고 있어야 됩니다. ‘도적이 들어옴을 보고’ 몇 절이지요? 2절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도둑놈을 살인하면, 과잉 진압, 과잉 방어라고 해서 살인죄가 됩니다. 그런데 원래 정상적인 도둑놈은 야밤에 들어와야 됩니다. 밤에 들어오니, 강도인지 도둑인지, 원수인지 모르니까, 도둑을 쳐 죽여도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둑놈 중에서도 게으른 도둑놈들은 한 밤 중에 안가고, 남들 다 도둑질하고 바로 늦게 가가지고, 해가 멀금이 뜨니까 얼굴이 보입니다. 얼굴이 보이니, 도둑놈이 갖다가 그냥 나오지를 못해서, 증거를 없애려고 ‘강도’로 바뀌는 겁니다. ‘새벽 호랑이’라는 말이 있지요? 젊은 호랑이는 밤에 돌아다니면서 다 잡아먹고, 해 뜨기 전에 가서 누워 자는데, 늙은 호랑이 힘이 없으니, 밤새도록 사냥도 못 하다가, 새벽에 어슬렁어슬렁 배는 고프지, 먹기는 해야 되지, 이래서 새벽 호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놈도 게으른 도둑놈들은 새벽 도둑놈이 되어 가지고, 도둑질하러 갔다가 강도로 바뀝니다. 도둑놈도 정상인 도둑놈은, 부지런하고 치밀하고 절제하고 훈련하고 눈치가 있어서 안 잡혀야 됩니다. 그 도둑놈이 회개를 하면 예수도 잘 믿지만은, 게으른 도둑놈? 남의 도둑질 한 것을 터는 도둑놈의 도둑놈? 무능한 도둑놈? 그 도둑놈은 회개를 해서 예수를 믿어도, 평생 믿어봐야 발전이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공회는 그렇게 가르쳐 놨기 때문에, 이것을 또 잘못 들은 사람은 ‘도둑질을 해도 공회는 책망하지 않더라. 부지런하고 근면성실하다고 칭찬하더라’해서 더 큰 도둑놈이 되어버립니다. 이거 어떻게 가르칠까요? 복이 있는 귀가 되고, 복이 있는 마음이 되어야 됩니다. 도둑놈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의 근면, 성실, 부지런함을 칭찬하는 겁니다. 도둑질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8계명으로 무섭습니다. 이게 바뀌기만 바뀌어 놓으면, 그러면 그 장점이 얼마나 복음 운동에 귀한 일꾼이 될 터인데! 게으른 의인보다, 도둑놈 죄인이 오늘은 못하나, 앞날에 소망을 두면, 소망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도둑이 들어오는데, 도둑을 보고 쳤는데, 오는 도둑을 쳐서 죽여도 피 흘린 값이 없으나, 그런데, “해 돋은 후면” 도둑놈이 도둑질하러 왔으면, 도둑놈 맞아야 되는데, 도둑놈을 보고 도둑 이상의 사람을 잡아버리면, 그건 하나님께서 계산을 합니다.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피 흘린 죄는, 갚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갚는 것은 나중에 ‘돈 계산’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갚는 것은 나중에 돈 계산이 됩니다. 그러나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상대방을 알면, 절차를 밟는 겁니다. 도적을 쳐 죽이면, 신앙은 ‘방어주의’라, 정당 방어! 밤에 들어온 도둑을 친 것은 무죄이지만은, 해가 돋은 후면, 상대방을 알면 절차를 밟아야 되는데, 도둑이라고 도둑으로 상대하지 않고, 감정이 격하여 살인자로 보고, 강도로 보고 쳐 죽이면, 피 값을 내야 됩니다.

상대방이 뭔지 모르면, 소리 지르면 되지요? 그래서 잡으면 되는 겁니다. 교회의 교인이 교회 주차장을 잘못 써서, 주창 습관이 잘못되었으면, 주차 습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주차 습관 가지고만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주차 습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 다음에 주먹질이 나가면 어떻게 되지요? 교인이 인사성이 없어, 인사 잘못하는 것이 단점이면, 그것만 가르치면 되고, 그것만 가지고 지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데, 그 이상의 다른 문제로 싸움이 번져버리면, 도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치면, 그 다음에 피의 값이 따라갑니다. “해가 돋은 후면 피 흘린 값이 있으리라” 피 흘린 값은, 살인죄를 살펴보면 되어집니다.

간단하게 조금 더 하십시다. 90페이지. ‘방목’입니다. 22장 5절로 넘어가면, 도둑놈 말고, 훔쳐온 도둑놈 말고, 5절! 사람이 소, 양, 염소, 나귀를 남의 밭에, 남의 포도원에 풀어가지고, 소는 내 소인데, 내 밭에 풀어먹지 않고, 내 밭의 곡식을 먹지 않고, 옆집 밭의 곡식을 다 먹고 오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보셨지요? 그렇게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소한테 가라고 명령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우리 밭에 소를 풀 때에, 어느 쪽에 풀면서 ‘울타리가 어찌 되면 알아서 건너가서 먹고 오겠지. 소가 먹었는데 뭔 내가 시켰나?’ 그 중심, 심보를 주님은 들여다보면서 ‘소가 먹었는데, 네 놈이 도둑놈이다!’, “사람에 밭에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짐승을 풀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짐승은 짐승이니까 이것 먹고, 저것 먹는데, 내 밭 속에 어려워도 뜯어 먹습니까? 좋은 것 뜯어먹다가 쉬운 풀, 좋은 풀이 옆집에 있으면 건너가 버리지. 그렇게 내 짐승이 옆집 밭에 가서 먹고 오면, “네 밭의 제일 좋은 것과 네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 할지니라” 이게 ‘방목.’ 아이들을, 친구 집에 아이들을, 좋은 집에 아이들, 여기저기 섞다보면 ‘방목’이 되어집니다. 그러다가 일이 많이 생깁니다.

교재를 보십시다. ‘밭에서 포도원에서 남의 경작물을 먹으면’, 자기 마음 밭을 갈아야 되고, 자기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이게 정상인데, ’남이 회개하고, 남이 맺은 열매로 내가 유익을 보면. 너는 방목한 사람이다!’,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해라” 네가 그 짐승을! 네가 네 교인을! 네가 네 자녀를! 네 범위 안에서 네가 노력해서 잘 기를 수 있었는데, 그건 귀찮고, 부모가 부모의 자기 범위가 있고, 자기 책임이 있는데 귀찮으니까 슬쩍 경계를 헐어버리고, 이 어린 것은, 이 교인은, 남의 경계로 가서 잘 먹고, 좋은 것 먹고 왔습니다. ‘마지막에는, 내 것이 좋아졌으니까 됐지’ 그러고, 주님은 ‘네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갚아라.’

이런 계산까지를 하고, ‘실화’는 저녁에 이어야 되는데, ‘네가 불을 놓고’ 너희 집에 부부싸움을 했는데, 불이 났는데 왜 옆집으로 건너갑니까? 그게 ‘실화’입니다. 집사님 부부가 가정에서 둘이 밥 먹다가 싸웠는데, 왜? 예배당에 와서 목사한테 야단을 치지요? 분명히 남자 여자 둘이서 이쁘니 마니, 밥이 식었니 마니, 맞벌이를 하니까 너도 설거지 하라 마라, 이렇게 싸워놓고, 신앙 없는 쪽이 신앙 있는 쪽을 이기려고 들 때에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목사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공회 교인들은, ‘공회가 그 모양이냐?’ 왜 공회를 칩니까? 그거, 왜 교회를 칩니까? 왜 하나님을 칩니까? 신풍에는 오씨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씨 교인도 많습니다. 동네 안 믿는 옆집 교인들이, ‘그 교회의 오집사 왜 그러냐?’ 그러면, 저는 ‘예. 신풍 오씨 집안이 다 그런가보지요. 그 오집사님이 대한민국 사람일 겁니다. 조선들이 다 그렇습니다!’ 조선의 족보가 가르쳤고, 오씨 마을이 가르쳤고, 차씨 마을이 가르쳤지. 교회야 옳고 바른 것을 가르쳤는데, 가르친 사람이 부족하고, 배우는 사람이 부족하다보니까, 점수가 낮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점수가 낮으면 재수하고, 또 복습하고 과외를 해서 점수를 올려가면 되는데, 왜 부부 둘을 싸우다가 교회를 걸고 넘어집니까? 저는 그러지 않는 사람 못 봤습니다. 백 목사님 제자 중에, 목회를 하다가 목회가 안되면, 왜 공회를 칩니까? ‘공회가 이 모양, 이 꼴이니 목회가 되느냐?’ 찬송가 다르지, 주기도문 다르지, 놀러도 못 가게 하지, 이러니 목회가 안된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서부교회가 제일 목회가 안되어야 되지요. ‘길은 좋은데, 제가 부족해서’ 그러면 소망이 있겠는데, 똑같은 성적으로 일류 학교에 가면 꼴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류 학교로 바꾸면 1등합니다. 순천의 매상고등학교가 둘째인데, ‘매상고등학교 수석하는 학생들이 숭고를 가면, 대개 600명 중에 600등, 550등 한다’고 그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류와 이류. 일류 ‘일류 고등학교 600명 중에 550등이면, 내가 학교만 바꾸면 1등일 것인데, 장학금도 받을 것인데, 학교가 좋아 그러니, 이 학교에서 성적 좋은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열심히 하다보면 도움이 되겠지. 이렇게 하면 될 것인데, 550등 성적표가 나오니까, 국어 선생 욕하고, 교장 선생 욕하고, 학교 욕을 하면, 그 학생이 희망이 있겠습니까? 공회의 노선과 교리와 목회자의 목회의 방향이 틀렸으면, 책임을 묻겠지만은! 교회의 방향과 교훈은 맞는데, 교인이 세상생활 실행을 하다보면 부족해서, 이런 실수, 저런 실수가 있는 것이지, 신앙 있는 가정에, 신앙이 앞선 사람과, 그 가족 중에, 신앙 없는 사람 분쟁이 생기면, 교회 걸고, 성경 걸고, 하나님 걸고, 목사 걸고 나오는데, 그거 ’자멸‘ 중의 자멸입니다. 아예 그런 자살 행위는 안하는게 좋습니다.

‘교회는 똑바로 가르쳤는데, 목회자의 실력이 없다보니까, 아직까지 변화가 늦는다보다.’ 그러면, ‘변화가 늦는데, 다른 사람은 변화가 되는데, 이 인간이 조금 더 무지막지하니까 좀 시간이 더 가는가보다. 그러니 내가 더 애를 써야 되겠구나!’ 이러면 이 사람은 바로 ‘지도자’가 됩니다. “불이 나서” 불을 놓은 사람, 일을 만든 사람을 말합니다. “가시나무에 미쳐” 남의 울타리까지 가서, 남이 막아놓은 담까지 넘어가버렸습니다. 이거 다 계산해야 됩니다.

11번 중에 9번까지가, 지금 ‘자유성’에서 ‘재산’까지 나왔습니다. 저녁과 내일 아침 2시간은 원래 제일 처음에 총론부터 시작을 하려고 하다가, 좀 집중을 잘 하시면 총론을 배우고, ‘각론’을 배우면 굉장히 수월한데, 총론은 좀 전체를 말하다보니까 맥을 잡지 못할까봐서, 본론의 ‘자유선’, ‘생명’, ‘상해’, ‘재산’까지를 했습니다. 이제 순서를 바꿔, 저녁부터는 ‘총론’, ‘서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런 자유성, 이런 상해, 이런 소와 소의 문제, 이런 구덩이 덮느냐? 마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 말씀을 지키면 어떤 복을 받느냐?’, ‘왜 지켜야 되느냐?’, ‘어떻게 지켜야 되느냐?’를 처음부터 시작을 합니다.

(기도)
기도 드리겠습니다. 받은 은혜는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어 영원무궁토록 죄송하고, 감사할 것 밖에 없는데,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이니, 출애굽기 20장으로 주신 진리의 말씀을 21장 실행할 때에, 낱낱이 실행할 수 있는 방법과 힘과 지식과 길을 주셨으니, 노력하여 하나씩 배우고, 고치고, 안 되는 것은 또 연습하고 고쳐, 애쓰는 우리를 보며, 주님이 우리의 힘으로 자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 세우기까지, 주님 충성하고, 복 있는 마음을 가져, 가정도, 직장도, 사회생활도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 모든 교회, 공회생활도, 좋은 복음 받아, 탁월한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시고, 좋은 복음 받아 잘못되면 배나 심판이 많아짐을 깨달아, 무거운 과제, 마음 속에 깊이 생각하며 옳은 실행, 바른 생활에 나서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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