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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0.5.6 계9:1 일곱 인과 나팔은 다급한 주님의 인도, 특히 사욕의 황충을 성령의 소욕으로 꼭 막을 것
1. 사욕이 한 번 열리면 너무 고통을 받고 너무 많은 생명을 잃어 버리게 되니 자기 중심의 욕심을 특별히 돌아 볼 것
설교요약
① 재림 : 매 현실은 한 번뿐인 말세이니 구원 기회로 삼아
② 일곱 교회 : 일곱교회의 장 단점을 내 안에서 찾고
③ 영계 : 매 현실을 긴장과 준비로 하늘의 세계와 연결되어
④ 일곱 인 : 말씀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재앙 속에 복을 발견
⑤ 1-4 나팔 : 과학 > 도덕 > 신앙 > 하늘 세계의 급격한 변화와
⑥ (수새) 5-6 나팔
-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과 같은 사욕의 고통과
- 유브라데의 신앙 경계가 무너진 침략의 세상은
- 매 순간마다 돌아서라는 사랑의 징계인 나팔 재앙
200506 집회 7 (수새)
제목 : 일곱 인과 나팔은 다급한 주님의 인도, 특히 사욕의 황충을 성령의 소욕으로 꼭 막을 것
본문 : 요한계시록 10장 1절 - 3절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마지막 세상을 저희에게 환경으로 주시고 또한 매일의 현실을 새로 만든 창조인데 단번으로 주셔 모든 현실이 우리에게 종말적인 말세가 되어 65권을 종합한 결론을 맺은 계시록의 모든 말씀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바로 알게 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섭리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을 다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미리 알리시고 인도해주시니 계시로 주신 말씀 보고, 계시로 모든 만물 모든 현실을 읽어내며, 내 속에 성령의 음성을 들어, 반드시 매 현실이 기름준비 잘 됨으로 모두는 건설구원의 기능으로 영원한 하늘에 닿아 인격이 되고 실력이 되도록 이 시간도 저희들의 마음을 감동하사 현재 우리들에게 펼쳐지고 있는 안팎의 모든 상황을 복되게 받아 백마 운동의 전진만 있는 저희들 되도록 깨어 듣고 능력을 받아 실상을 이루는 이 시간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그동안 절반을 공부했는데 계시록 마씀은 한 장 가지고 한번 집회 제대로 하기가 어려울 만큼 양이 많습니다. 65권을 모두 줄여 요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평소에 교회에서 계시록의 한 부분, 몇 절을 가지고 모두들 깊이 다 공부를 했을 겁니다. 다른 성경은 전체의 흐름만은 읽어볼 수가 있는데, 계시록은 요약된 것이 많아 읽어 내려가기조차 어려워, 금번 집회는 자세히 들어가는 것보다 22장 전체의 흐름, 전체의 연결을 살피고, 각 말씀 속에 깊이 들어가야 되는 것은 다른 집회나 다른 말씀을 통해 하기를 원합니다.
집회 교재 제일 앞에 전체를 위해서. 6페이지를 살펴보시겠습니다. 6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제일 오른쪽에 큰 제목들을 적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불신자도 보도록 보면 역사는 그대로 끝이 나버립니다. 누가 뭐래든지. 그 재림을 흔들지 말고, 그 재림을 명확하게 붙든 다음. 우리는 매일의 현실이 한번만 주셨고 지나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매일의 현실이 전부가 다 예수님의 보이지 않는 재림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볼 수가 없고, 믿는 우리는 봐야 하는데, 매일의 현실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못 보고 그 현실이 지나가면 계시록의 말씀과 자기 종말은 헛일합니다. 현실 하나씩이 실패 되면 그게 모여져 인생 실패가 되어지고 그 총량의 총점이 하늘나라 건설 구원의 우리의 실력이 되어집니다. 불신자도 보면 아는 주님의 재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마지막의 종말이니까 그 종말이 오기 전에 매 현실에 주님을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집시다.
그러도록 주님이 하늘나라를 보여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영계의 하나님의 오른 손에 붙들린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게 순서를 따라 이 땅 위에서 전개가 되어지는데, 영계 하나님의 뜻을 계시록을 통해 1장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고 계시니, 하늘을 보고 그대로 전개될 땅을 보면 우리에게 매 현실이 읽혀져야 되고 보이면 잘 살아야 되는 것이 맞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 현실마다 봅시다. 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1장에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은 봤고 우리도 매일 그 주님을 봐야 됩니다.
그 주님과 우리 교회를, 그 주님과 나를 비교해보면,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의 종류가 되어집니다. 장점 단점이 섞여 있고 여러 가지로 보여지는데. 간단하게 장점은 길러가고 단점은 고쳐가면 되어집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 하늘에서 직접 보여주셨고, 다시 오시는 완전의 주님과 나를, 주님과 자기 교회를 비교해보니까 일곱 종류가 있는 것이 두 번째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열어주시고 하늘을 보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24장로, 네 생물의 역사와 신앙의 실체들이 우리가 이루어 갈 목표치이고 또 그 세계가 오늘을 향해 성경을 통하여 펼쳐 가시는데. 예수님의 재림, 일곱 종류의 교회, 하늘나라의 실상의 모습, 오른손에 붙들린 능력의 말씀이 주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 펼쳐지기 위하여. 5장에서는 성경을 주시는데 어린양 주의 대속으로 받았고.
6장에 그 성경 말씀이 전개가 되는데 백마의 성결 운동, 성결 운동의 복음이 지나가는 곳마다 분쟁이 나고, 배고픔이 생기고, 절망이 되어지고, 이런 과정을 보며 호소하는 영원의 호소가 있고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로 하늘도 땅도 전부가 다 천지가 진동이 되는 역사가 성경 말씀의 전개와 함께 가는 것은 내 내면도 그리 되어야 되고, 우리 주변도 그리 되고, 그리 되지 않고 버텨도 마지막에 역사정리는 이렇게 해버립니다. 보좌에 앉으신 말씀, 하나님의 뜻이 5장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6장 복음으로 펼쳐지고. 펼쳐지는 이 복음 운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부는 다 12지파로 표시한 모든 택한 백성들의 그 계통과 그 승리를 말씀한 것이 7장입니다.
그리고 어제 공부한 8장, 일곱 인으로 하나씩 말씀의 내용이 이 땅 위에 전개가 되어지는데 마지막에 일곱째 인이 펼쳐지니까 일곱째 인 안에는 다급한 일곱의 나팔 재앙들이 펼쳐집니다. 신앙이 없으면 재앙이고 복된 사람에게는 그 재앙이 전부 하나님의 부탁이며, 하나님의 재촉이며, 이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갑니다. 복될 것 밖에 없도록 주셨으니. 그저 믿는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이 되니까. 어제 배운 데로. 첫 번째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더라.” 물질의 문제, 물질의 문제라니? 없어 문제라고들 그러는데 너무 많고 너무 발달이 되어서 문제. 물질과 기술이 지나치면 안되도록 거머쥐어야 되고 조절해야만 되어집니다. 내 내면에도 물질로 과학으로 너무 지나치게 가고자 하는 마음을 좀 자제를 시켜야 됩니다.
서울 갈 길이 있다. 걸어가는 것은 너무 심하고 자전거 타고 가는 것도 좀 지나치고 대중교통 자동차 자가용 가지고 가는 정도는 무난할 것 같고 그것도 조심해야 되는데 돈 된다고 바쁘다고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를 타야 될 정말 급한 일정도 있지만은 예사로 알면, 그 비행기는 어느 날 떨어져서 초상도 못 치르는 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비행기 타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빨리 가야 했는가? 조금 시간 일정 조절하여 안전한 ktx로 가는 것이 조금 더 낫고 ktx도 너무 빠르기 때문에 만에 하나 고장 나면 큰일납니다. 조금 자제하며, 가야 되는 것도 줄이고 빠른 것, 좋은 것, 넘치는 것도 좀 조절해가면 하늘의 자연의 물질의 일반 은혜로 준 것이 재앙으로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모든 물질생활, 모든 기술, 모든 과학의 큰 면도 보시고 자기 내면도 보시고.
두 번째.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준, 불신자가 봐도 누가 봐도 우리는 우리 속에 좋은 면들이 있습니다. 그 좋은 면을 잘 관리하면 좋은데 이것을 죄악 바다에 던져버리면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고 하나님의 생명 역사를 해야 되는 것이 절단 나버립니다. 좋은 성격, 좋은 장점, 복되게 잘 관리하시되, 지나쳐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까지는 없도록 우리가 교회의 운영도 그리하시고 자기 생애도 그렇게 인도하시고 자녀들 중에 세상으로 장점이 많으면 그 장점을 복되게 좋게 잘 관리하는 것이 좋지 지나쳐 죄악 바다 속에 밀어 던져놓으면 무슨 잠수함처럼 물속에 들어가서 잘 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 가진 생명의 요소들 삼분의 일을 절단을 내는 이런 시작이 되어집니다.
삼분의 일이 절단 날 때에 얼른 회개하고 돌아서면 좋은데 아직도 2/3는 남았으니까. 아이의 20세까지는 공부하느라고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주일도 없지만은 직장 잡고 나면 남은 인생 2/3는 주님 앞에 믿고 잘 살겠지. 그게 속은 겁니다. 그 귀신의 꼬임에 넘어가 버린 겁니다. 전반 삼분의 일을 뺏긴 사람이 후반 삼분의 이를 믿음으로 잘 산다? 그거 그리 잘 되기가 어렵다. 잘 믿어 살아도 될까 말까한데. 삼분의 일이라는 것은 항상 소망의 숫자입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나팔은 다급하게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고. ‘정신차려라 큰 일 난다.’ 이런 애걸복걸의 부모의 말을 젊은 아이들이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계시록의 경고로 나팔을 불어 우리에게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 보이거든”, 교계에 텔레비에 인기강사가 나와 전국의 교인들을 들었다 놨다 그럴 때에. 저 분이 몇 십 년 기도하고, 몇 십 년 자기 옛사람을 꺾어 숨어 살던 것을 하나님이 드러냈는가? 코미디언 말 재주를 타고나, 성경은 모르고 말재주로 웃겼다 울렸다 웃겼다 울렸다 하니까 내 마음 속이 다 기울어지고 모든 사람이 기울어지니까 인기가 치솟고 불신 세계에서도 유명하신 분이라고 초청할 정도가 되면 이것은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라.” 갑자기 타는 일어나는 큰 불은 갑자기 식어버립니다. 역사에 그런 위대한 강사들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특별히 20,21세기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일시의 인기로 일시의 기술로, 일시의 빈틈 시장을 공략하여 갑자기 일어서는 것은 생명이 자라가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낳은 아이는 10달 고생해야 빛을 보고, 20년 지나야 이것이 20살 되지. 아이가 분명히 없는 집인데 갑자기 10살짜리 아이가 그 집에 나타났으면 그 고아원에 가가지고 데려온 아입니다. 자기 아이는 아닙니다. 그 집에 여자는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30살이 나타나면 시집을 왔든지, 데리고 온 것이고, 스카웃을 한 것이지, 낳아서 핏덩어리를 길러 자라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갑자기 위에서 은혜를 주실지라도,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자세는 씨를 심어 때를 기다리고 싹이 나면 물을 주고, 보호하고, 1년 되면 1년, 10년 되면 10년으로 점점 자라가는 신앙, 성격 급한 우리 민족이 성격이 급해도 대단히 급한 사람들만 모인 교회가 공회 교회들인데 저부터 성격 급하기를 가까이 접해본 사람들은 말도 못하게 급하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 급하고 급한 성격들이 뚝딱하고 뭘 하루아침에 횡재하고 싶은데, 그게 도둑 심보고 땀 흘리기 싫고 갑자기 뭘 가지고 싶은 게 도박신앙이고 모험신앙이고 노름신앙이고 이건 알고 보면 남의 것을 가져놓고 옮겨놓는 절도며 강도며 불한당이지 이것은 귀신이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데도 물질의 요소를 먼저 만드시고, 다음날 빛과 어두움을 분화 시키시고, 그 다음 하늘과 땅을, 땅을 땅과 바다로 6일의 순서에 따라 하나씩 둘씩 순서를 따라 분화하며, 앞의 걸 길러 앞의 걸 붙들어 두 번째 걸 낳고 두 번째 걸 먹여 세 번째 걸 이어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루가 천년 같으신 데도 그렇게까지 순서와 절차를 꼬박 꼬박 따지는 것은. 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실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이치로 보면 생명이란 시간이고 단계를 넘어가야 되는 이유가 있어 그렇습니다.
“횃불과 같이 타는 큰 별이라.”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 요즘은 이런 식으로 저런 교회로 저런 교단으로 이런 운동으로 이런 쪽으로 모두들 휩쓸릴 때에 비록 그것이 하늘의 큰 별이라 성경을 가지고 복음운동을 해도 쏠려가고 밀려갈 때에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광화문 이쪽에서 백만 명, 저쪽에서 백만 명. 양쪽에서 세 대결을 할 때에 그 속에 생명이 있나? 생명이 자라가는 진실이 있나? 오천만을 들볶아서 마구 휘잡아서 내일 어찌 될 값에 오늘 나를 위하여 모아놓으면 되는 이런 운동인가? 그러면 세상은 당연히 그렇고 교회까지도 그리 되어야 되겠는가? 가정도 그리 되어야 되겠는가?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오고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데려오면서 선볼 때, 연애할 때에 마구 이말 저말 막 어음 수표 남발을 해서 부도가 나든지 말든지 비단에 깔아 비행기를 태울 것이며 세계 여행을 할 것이며 돈은 마음껏 쓰도록 명품으로 쳐 바를 것이며 이말 저말 한 쪽에서는 해대고 한쪽에서는 혹해서 따라가고. 뭐 뒤는 안 봐도 알지 않습니까? 1년 12달 열심히 일어나겠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벌어오겠습니다. 많이 벌지는 못해도 애는 써보겠습니다. 이런 진실 이런 인내 이런 실상을 말을 하면 숨이 막혀서 어느 여자가 따라오고 어느 남자 혹하겠습니까? 타고난 인물은 미장원 성형 병원을 갔다 오니까 뚝딱 이쁘게 만들어버리니까 여자는 갑자기 횃불같이 타는 미인을 만들어버리고. 그의 조상 때부터 내력이 있고, 어려서부터 건강하게 맑게 복되게 마음씨를 곱게 먹고 고운 마음씨와 절제된 생활이 얼굴에 이쁘게 나타나야 그게 고운 것인데 성경에 사라의 인물은 순종하면서 세월 속에 점점 이뻐지다 보니까 늙어지는데 이건 점점 더 이뻐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자연의 신앙의 하늘이 주는 용모도 있는데. 성질은 팥쥐 엄마처럼 팥쥐처럼 못된 것만 속에 버글버글 가지고 그냥 있으면 얼굴에 악으로 독으로 피어 날 테니까 화장으로 성형으로 미장원에 가서 이쁘게 가면을 해가지고 남의 집 귀한 남자 호리는 여시가 되어가지고 이런 것이 횃불처럼 타는 큰 불빛입니다. 전부 그게 좋다고 다 우러러 보고 쭉쭉 몰려 데고 텔레비만 켜면 어느 탤런트 얼굴 보느라 정신도 없고 옷에다 그림을 그리고 수첩에 사진을 넣고 쳐다보고 앉았는데. 그런 남자들의 그런 인심을 민심을 끌어들이는 그 심보도 참 하나님 앞에 악령의 모든 나쁜 요소는 다 가졌고, 남자는 주신 건강 가지고 땀 흘려 건실하게 하루에 하나, 1년에 1년 치 모으고 아끼고 이렇게 제가 열심히 하는 데로 해보겟습니다. 이게 인격인데. 이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인데. 이게 하나님이 어느 날 치켜 세워줄 것인데 이것은 마음에 차지 않고. 막 참기름 발라서 착착 이 말 저 말을 끌어다가 이 여자 마음을 일단 휘어잡고 그냥 애만 낳으면 내 것 된다고 이렇게 돌진하는 그 남자들의 심보도 횃불처럼 타는 불입니다. 확 일어났다가 돌아서면 꺼져버리면 참 허무합니다. 땅의 것은 그럴지라도 복음을 든 하나님의 종들이 하늘에 있어 하늘의 불빛 하늘의 진리로 변치 않고 비추어야 될 터인데. 자기 위치 자기 사명을 진리와 영감으로 시대가 변해도 꼬박 꼬박 전하여 자기 위치 자기 불빛을 비추어야 될 것인데.
이런 책, 저런 좋은 소식, 이런 말투, 저런 언변술, 별의별 기술, 경영술, 목회 운영 기술을 배워서 히트를 치면 예배당 모습이 좋아 시내 모든 교인이 끌리는 교회, 프로그램이 좋아서 끌리는 교회, 목회자 말재주가 좋아서 끌리는 교회. 한때 서울의 소망 교회는 거기 가면 장관이 70명? 장관급이 뭐 100명? 그쪽에 장로님이 되면 청와대에서 부른다고 모두들 몰려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말하자면 그런 것은 다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라. 어느 날 이권 맞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다 없어져 버리는 겁니다. 여의도에 백만 명씩 모이는 성도들의 대 부흥 모임 지금 어디로 갔지요? 한강 백사장에 70년 전에 10만 명이면 요즘 1000만 명이 되지는 못해도 100만 명은 넘을 건데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가 하루아침에 다 흩어져버리는. 그런 흔들리는 세상에 흔들리지 말고, 이거 어느 교파 어느 유명한 분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런 요소들이 있습니다. 솔깃. 귀가 여리다 그럽니까? 귀가 얕다고 그럽니까?
뭔 말이 들리면 솔깃해서 내 마음이 전부다 쏠려가는 이런 내가 바로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 될 수 있는 단점입니다. 이것은 꺾어야 되고. 이건 고쳐버려야 되고. 한 말씀 붙들고 오늘도 한 말씀 붙들고 일년도. 한 말씀 붙들고 죽는 날까지 계속 간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받고 아니면 만다. 뭐 열 몇 살 춘향이 이도령이라는 그런 못된 놈한테도 마음 한번 주고는 죽어도 고문을 받아도 끝까지 간다고 그러는데 변치 않는 진리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일거에 땅에 두고 갈 무엇을 찾아 이리저리 쏠리는 것은 신앙은 아닙니다. 이런 마음, 이런 요소, 이런 데에 휩쓸리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이 다급하게 나팔을 불어 정신을 차려라 그 길은 아니다. 그건 고쳐라. 돌아서라. 마구 나팔을 불어대는 것이 세 번째이고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도 달도 낮도 별도 밤도 천지가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더라. 한 80년대와 비교하면 교계는 삼분의 일은 어두워졌다고 봐야 됩니다. 100년 전 무디 선생님이 미국과 유럽을 복음으로 외칠 때와 비교하면 시대적으로 20세기는 삼분의 일은 더 어두워졌다 봐야 됩니다. 초대교회와 비교하면 삼분의 일씩 한번 두 번 세 번이 어두워져 지금은 새까맣다 라고 생각 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시대가 어두워져도 엘리야는 밝았고, 시대가 백 프로 새까매도 세례요한은 밝게 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를 수 있고 교회적으로도 다를 수 있지만 시대적으로는 삼분의 일, 삼분의 일 다 어두워져서 이제는 불 다끄고 주님이 오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기 우리 몇 명 내계에서 이런 어려운 말씀, 이런 시대와 안 맞는 말씀을 또 한 번 읽는데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어린 아이까지 모이는 것은 그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삼분의 일은 어두워졌을 찌라도 삼분의 이의 소망은 주님이 허락하고 있는 듯합니다. 다 어두워졌는데 우리는 그래도 아직 좀 밝으니까 이래 생각하면 내일 바로 불은 다 꺼집니다. 삼분의 일이나 어두워졌으니 이 어린 신앙, 이 여린 신앙 어떻게 할건가? 다시 정신차리자. 바짝 정신 차려 공회적으로 1/3이 어두워져도, 우리 가정이 삼분의 일 후퇴를 해도, 내 신앙이 지금 삼분의 일 삼분의 이 후퇴를 해도 이 말씀 때문에 정신차려 9장 1절에 가니까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어떤 것이든지 처음이 어렵지 가면 좀 덜한 것인데 뭐 IMF라 전부 죽는다 해도 1-2년 지나다 보니까 적응을 하는건데 아무리 다리 밑의 거지가 되어도 1주일 얻어먹고 한 달 얻어먹고 살다보면 이 속에서도 얻어먹고 살 희망이 있겠구나 뭔가 좀 나아지는데, 변치 않는 하나님이 작정하고 손을 대면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부모는 화가 나면 아이를 잡을 듯이 막 난리를 해도 한번 야단치고 두 번 야단치면 슬슬 뒤로 갈수록 줄어듭니다. 애들이 그런 걸 읽고 한번 꾸지름 들으면 뭐 내일은 좀 나을테니까. 이런식으로. 나라의 법도 시대의 환란도, 부모의 혼내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그 날과 초상 치르는 삼일째가 되면 마음이 많이 진정이 됩니다. 그러면서 적응이 되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데. 이 땅 위에 다른 것이 그렇다고 하나님이 손대는 것을 버티면 뭐 어떻게 되겠지? 그랬다가는 가면 갈수록 더 커집니다. 이게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일곱인 보다 일곱 나팔 재앙이 더 다급합니다. 일곱인 재앙은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잡아가는데 일곱 나팔 재앙이 오면 삼분의 일이라고 딱딱 짤라서 도마 위에 생선 토막 내듯이 도마 위에 무 토막 토막 내듯이 삼분의 일 삼분의 일 삼분의 일을 또박 또박 적고 있습니다.
일곱 인 재앙에서는 흐려지고 어두워지고 쪼아가는 전반적인 분위기만 말씀했고 이때 정신 차리면 모든 것은 100프로 살려 내는데. 나팔재앙으로 넘어오면 일곱째 인이 되면, 삼분의 일씩 떼어서 내버립니다. 이것은 손 못댄다. 이건 접어라. 여기에서 한 번 더 버티면 일곱 나팔 재앙의 마지막 일곱째는 일곱 접시 대접 재앙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접시라는 것은 담아놓은 것을 엎어버리면 일부 나가고 그 다음 나가고 그 다음 나가고 순서가 있고 삼분의 일씩이 잘리는 것이 아니라 대접은 엎어버리면 순간적으로 탈탈 털어서 다 엎어져버립니다. 끝장이 나버립니다. 끝장이 날 때에 주님 갑자기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러는데. 기억해봐라 갑자기 그러는가? 만세 전에 구약을 통해 신약을 통해 선지사도를 통해 선배를 통해 믿는 첫날부터 지난날 나는 너희 가정에 수도 없이 말을 했다. 양심껏 지난날을 돌아보면 믿는 가정은 그 가정에 대하여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고 많이 많이 사정을 많이 했습니다. 제발 그리하지 말라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더 이상 놔두면 더 큰 불행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의사가 칼을 들고 맹장 잘라버린 것은, 제 맹장 수술할 때 잘라 놓은 맹장 버리려는 것을 일부러 좀 보자 했습니다. 어찌 생겼는고. 아까운 내 인체인데 공짜로 넘길 수가 없어. 똑 손가락 마디 손가락 하나 정도됩니다. 한 마디가 아니라 손가락. 그것 잘라버리지 않으면 온 창자가 다 썩고 온 배가 다 썩고 대굴대굴 구르다가 비참하게 죽어야 됩니다. 조심하는게 좋은데 약으로 다스리고 좋게 좋게 해야 되는데 맹장염이 의사가 볼 때에 이것은 뒀다가는 사람 잡겠다 싶으면 사정 없이 칼을 대고 잘라버리는 겁니다. 왜 칼을 댑니까? 왜 잘라냅니까? 안 자르면 어떻게 할건데? 나팔재앙의 삼분의 일은 말하자면 맹장수술이라 그렇게 생각하십시다. 이걸 잘라버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작은 수술 한번 해보고 평생토록 건강 관리 잘하면 얼마나 복이 될 것인데 미련하게 맹장 수술 정도야 10번도 받겠다 그러면 하나님은 10번 해주십니다. 끝을 보고 회개를 요구하지 건드리다가 후퇴하는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어제 마지막 부분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사탄이 이게 원래 천사였는데 우리 속에 있는 욕심, 성령의 욕심이 아니라, 사욕의 자기중심의 욕심의 문을 여니까 부모야 죽든지 말든지 주변이야 발을 구르든지 말든지 그러면 안 된다고 온 사람들이 난리를 하든지 말든지 그 좁고 좁디, 그 아무것도 아닌 자기의 생각하나 그 중심을 채우고자 끝까지 밀어붙이면 그 사람의 인생 전부 주변의 모든 불행을 한도 없이 다 생 지옥을 만들어버립니다. 끝도 없이. 믿는 사람도 우리 속에 자기중심의 사욕은 있습니다. 그것은 덮어 놓는 것이지 그것을 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게 죽는 날까지 우리 옆에서 문 열어달라고 난립니다. 한번 열어주면 자기중심의 욕심은 열어 놓으면 연기가 나옵니다.
연기가 처음 나올 때에는 슬슬 안개처럼 나오는 듯한데 어느 틈에 뭉텅뭉텅 연기가 시커멓게 나옵니다. 그것을 옹기연기같다 그럽니다. 그러면 시야가 흐려지고 심령이 어두워지고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그럴 정도는 아닐 건데 그렇게까지 그리 되었나? 연기가 흐려지니까 그 다음 그 속에 생명의 황충이라는 생명의 역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살아 움직이는데 좋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시대를 삼킬 유물주의 같은 것, 황금 만능주의 같은 것, 이 시대에 잘못된 인본주의 사상 같은 것, 이게 곱게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징그러운 황충이 같은 징그러운 벌레입니다. 이것이 요엘 1장 4절에 보면 메뚜기가 먹고 남긴 푸른 것을 다 먹어치우는 생명의 요소들, 생명의 모든 희망 있는 것들, 이걸 다 먹어치우는 것이 메뚜기며 메뚜기가 먹고 못 먹은 거 남겨 놓은 것을 마지막에 끝장내는 것이 황충이라 독한 것인데 내 속에 이 독한 요소들이 중생이 된 우리에게도 옛사람의 악령과 악성과 악습 때문에 늘 남아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내 마음 내 생활 속에는 나를 삼키고 내 주변을 다 삼키고도 남을 이런 자기중심의 사욕이라는 것이 있는데, 성령의 사람은 어쨌든 주님 좋은 데로 성령의 소욕 이쪽으로 노력하고 이쪽으로 달려가면 자기중심의 사욕은 열 기회가 없는데 성령의 소욕 성령으로 사는 이 열심 그 마음이 흐려지고 후퇴를 하고 중단이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귀신이 슬쩍 들어와 자기중심의 눈을 띄워줍니다.
200506 집회 7-2 (수새)
아이들이 책에 미치고 공부에 미치고 1등 하려고 정신이 없으면 건강 문제도 있고 눈도 안 좋아지니까 부모가 안쓰럽지만은, 차라리 공부에 미치면 이게 그거 하다 마는데 공부 열심 하던 애가 공부를 슬금슬금 줄이면 공부 열심히 하던 시간을 줄인 만큼 건강 돌보고 부모 알아보고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 아니라, 책 읽고 공부에 매진하던 애가 공부를 멈추고 슬슬슬 줄이면 그 줄여진 시간에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사귈 친구 안 뜰 눈을 슬금슬금 뜹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공부야 뭐 중간해도 되고 말아도 되지만은 거기 열심 내던 것이 그걸 줄이면서 줄이는 만큼 옳은 대로 가느냐? 그러면 복인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다행인데 하던 걸 중단하고 줄이는 만큼 평생에 후회할 걸 손을 댑니다. 그리고 거기 붙들려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안 믿는 가정으로 말하면 차라리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낫고 남자가 돈 번다고 정신도 없이 그냥 파김치 되는 것이 낫지, 남자가 돈 벌러 나가가지고 적당하게 번다고 건강 조심한다고 돈 절반 벌면 정말로 건강을 조율하며 가정 행복으로 돌아오느냐? 돈 벌 시간 절반 줄이고 그 절반 어디 가서 놀음하고 앉았는가? 어디 가서 벌 짓 하고 앉았는가? 자타 후회할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게 문제입니다.
성령의 소욕에 붙들려 지나치게 교회 다니고 지나치게 성경 읽고 너무 지나치게 믿는 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너무 열심히 믿는 것은 과격하지 않느냐고 신앙의 열심 내는 아들을, 신앙의 열심 내는 가족을 식혀놓으면 절제를 시켜놓으면 정상적으로 딱 돌아오면 좋은데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듯 하면서 빈틈에 자기를 돌아보며 그렇게 다른 교인들을 위해서 뭐 충성해봐야 알아주는 사람 없고 욕만 돌아오더라. 적당하게 그냥 내 가정 나 하나 잘 믿으면 되지 정말로 자기 하나 자기 가족만 잘 믿을 것 같으면 그거는 좋은 겁니다. 남들을 위해서 다른 교인 위해서 까지 너무 열심을 내다가 너무 피곤하고 너무 비판을 받으니까 좀 줄이자 적당하게 줄이고 끝나면 좋은데 후퇴를 하다가 어디까지 후퇴를 하느냐? 나도 나를 좀 돌아보자 나도 내 가족을 좀 더 돌아보자 그러다가 살짝 자기중심의 문이 열려버리면 이건 그동안 믿은 것과 앞날을 전부 다 삼키고도 부족함이 없는 무저갱 지옥문을 열고 들어가는 겁니다. 지옥문은 전 인류가 다 들어가고 영원무궁토록 불을 떼도 꺼지지를 아니합니다. 가면 갈수록 더 타오르는 것이지. 이런 자기중심의 눈을 뜨고 자기중심의 욕심을 가지게 되면 그게 황충이 뒤따라 나오는데 흐려지니까 그 속에 이제 슬금슬금 조직이 나오고 그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나오는데 이게 하나님께 연결된 산 것이 나올리는 없고 반대로 사탄에게 붙들려 사탄의 앞잡이가 된 에덴동산의 뱀처럼 이게 인본주의 사상, 만인 평화주의, 진보적 가치니 뭔 평화주의니 한마디로 말하면 유물주의, 인본주의 겉은 예쁜데 속은 흉악한 것. 믿는 우리의 영안으로 보면 안도 겉도 시커먼 이런 더러운 흉측한 황충이가 기어 올라옵니다.
황충이 안에는 사탄이 들어앉았습니다. 겉은 뱀이요. 속은 악령이라. 겉은 황충이요. 속은 사탄이라. 이것이 나오게 되면 요엘서에 말하고 계시록 아닌데에 적은 황충이는 생명의 신앙의 푸른 것을 먹어 치워 끝장을 내버리는 그 면만 말하는 것이 황충이입니다. 그런데 메뚜기나 황충이는 사람 손가락처럼 덩치가 작습니다. 먹어봐야 몇 평이나 먹겠습니까? 얼마나 먹겠습니까? 그런데 이 황충이나 이런 메뚜기는 한 마리가 문제가 아니라 떼로 몰려다니며 한 들판을 한 나라를 전부 초토화를 시켜버립니다. 메뚜기 떼 지나간 자리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 메뚜기 떼가 지나간 곳을 마지막에 대청소해버리는 것이 황충이입니다. 얼마나 지독한지. 생명의 신앙의 소망에 속한 여지는 전부 다 끝을 내버린다. 이게 황충인데, 그 황충을 앞세워놓고 속에는 사탄이 자기중심의 사욕으로 9장 3절 황충이 연기 가운데 드디어 등장을 하는데 이게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쏘는 독화살 가지고 나왔습니다. 원래 황충이는 앞의 있는 이발로 가지고 푸른 걸 살금살금 갉아 먹는 것이 황충인데, 메뚜기가 먹고 못 먹고 남겨둔 것까지 갉아 먹는 지독한 입인데 떼거리이니까 이게 문제인데 계시록 9장에 나오는 말세의 현실의 우리 속에 사욕 속에서 나오는 황충이는 이빨로 갉아 먹는 문제가 아니라 지나간 뒤에 꼬리를 보니까 이것이 독화살이라 전갈과 같아서 걸렸다 하면 쏘아대는데 그 고통이 죽을 고통인데 죽진 않고 계속 고통이니 더 고통이더라.
4절에 특별히 이 황충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원래 황충이는 땅에 있는 푸른 것, 풀, 각종 수목의 푸른 생명을 먹어치우는 것이 황충인데 사욕의 욕심이 발동을 해서 말세의 우리 현실 속에 기어 나올 때에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의 황충은 구약에 나오고, 다른 성경에 나오는 이런 생명체를 갉아먹는 그 기능을 중단 시켜놓고 그 일보다 더 급한 일, 하나님 인 맞지 아니하면,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소욕에 붙들린 사람이 아닌, 남들이 볼 때에 뭐 그만큼 믿는다. 잘 믿는다. 이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볼 때에 성령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려 그 욕심도 그 진심도 그 모든 마음에 있는 전부가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잘 믿어볼까? 어떻게 해야 성령으로 살아볼까? 이것이 아니라 나도 나를 좀 챙겨야 되겠다. 나도 내 인생 좀 여유 있게 살아야 되겠다. 처음에 이렇게 멋있게 좋게 시작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속이 뒤집어지며 사람이 아무리 자기중심으로 산다 해도 저렇게 해서야 되겠느냐? 이렇게까지 나와 버리는 사람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 우리 속에 그런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은 잘 다스리는데 이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 감성, 이성은 다스리는데 양심을 놓쳐버린 사람, 학생이 국어, 수학, 영어는 잘하는데 체육은 빵점, 그런 학생도 있습니다. 체육, 음악, 미술하면 백점. 수학은 빵점. 그런 학생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 속에도 별의별 요소가 다 있는데 자기중심의 사욕이 발동을 하고 성령의 소욕은 어디 갔는지 흔적이 없는 교회 출석을 보나, 충성을 보나, 믿음을 보나, 목회를 보나, 모든 면을 봐도 무난한데, 잘 믿는데 깊은 속에 자기중심의 욕심이 강한, 성령이 볼 때에는 이거는 인정할 수가 없는 이게 인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고통을 주거라.
한 마디로 자기중심의 사욕은 자기 속에 신앙화 성화 말씀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바꿔놓지 않은 부분은 전부 다 요절 내버립니다. 좋을 때에 그만 돌아서는 것이 좋습니다. 좋을 때. 피에 상처 날 때에 과산화수소가? 소독제를 부어보면 상처 안 난 맨살에는 부어보면 그냥 시원합니다. 여름에 그냥 시원하게 그냥 지나갑니다. 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상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부분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따갑게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이 무저갱의, 무저갱을 열어 나오는 내 속의 자기중심의 사욕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바뀌어 신앙의 사람 예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말씀으로 살려고 고쳐놓고 주의 뜻대로 살려고 고쳐놓고, 주와 동행으로 살려고 만들어놓은 그 부분 아닌 쪽은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안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도 세상을 살면서 별의별 고통을 다 당하는데 차라리 믿느라고 고통당하는 것이 주의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고 능력으로 초월하고 사는데, 잘 믿을 사람이 잘 믿는 것이 고통이 많고 손해가 많다고 후퇴를 해버리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면 성령의 인 맞고 성령의 것이 되지 않은 부분은 또는 그런 사람, 그런 교회는 해하라 하더라.
코로나 전염병 2달에 천하를 흔들어 보니깐, 이 나라를 흔들어 보니깐,교회들 마다 문 닫느라고 교회 못 믿는다고 교회 못 간다고 난리인데 이런 것 초월한 교회야 그러든지 말든지, 위생 조심은 위생 조심대로 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나가고 다 문 닫는데 혼자 문 여니까 더 재밌고 감사하지, 전부 다 죽을까봐 미리 떨고 다 죽어버렸는데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주님을 모셔 놓았으니 주님이 오라면 가는 것이고 주님이 건강 주시면 뭐 당연히 건강한 것이고 홀로이 걸어가는 걸음이 더 복이 있지요. 금번 집회는 공회 집회들이 수십 년 다 함께 개최하다가 이번엔 다른 공회들 문 다 닫았습니다. 5월 첫 주일에 이리 될련지, 저리 될련지 뭔 전쟁이라 뭔 눈이 그렇게 밝아 몇 달 전에 미리 문을 닫을 겁니까? 이런 전염병이란, 하루아침에 생기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생긴 급성 병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도 하는 건데, 그러니 유행인데 유행이란 갑자기 휩쓸어버리고 또 갑자기 그냥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이 갑자기 나왔다가 갑자기 없어지는데 어떻게 몇 달 전에 미리 문을 닫습니까? 이대로 가면 할 수는 없다. 그런데 5월 첫 주 돼봐야 아니까 4월 마지막 주까지는 지켜보자 세상 돈 벌 때에는 그러지 않습니까? 세상살이 할 때는 다 그렇게 버텨보지 않습니까? 미리 포기합니까? 그래도 될까봐 마지막 순간까지는 마음 졸여가며 기다리고 기대하고 어떻게 좀 되지 않겠느냐? 되지 않겠느냐?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되면 횡재고, 끝가지 안 되면 마는 것인데. 5월 집회가 5월 첫 주이면 4월 마지막 주까지는 지켜보다가 아무리 봐도 4월 마지막 주 하루 전까지 지켜봐도 현재 상황에 집회하는 것은 나 은혜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남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문제이니까 남을 밟으며 가는 교회는 아닙니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에 예배당은 좋은 곳이니까 남의 집 밟아가고 남의 문을 부수고 가고 그러지는 못합니다. 길이 있으면 길을 이용해 가고, 길이 없으면 길 있는데 예배당을 짓지, 길 없는데 예배당 지어놓고 예배당 가는 길이니깐 불도저로 밀고 간다. 그러지는 못합니다. 내 집을 미는 것은 밀어도 됩니다. 나 죽는 것은 죽어도 됩니다. 죽기 싫은 사람을 밀고, 밟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모였고 흩어졌고 우리 때문에 우리가 싫은 사람, 예배가 싫은 사람, 집회가 싫은 사람, 교회가 싫은 사람, 기독교가 싫은 사람한테 감기를 흩뿌려가면서 오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날 모든 일을 금지시켰으나 제사장이 칼을 들고 양을 잡는 도축 그 일은 주일날 일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로 허락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주일날 양 잡고 소 잡는게 얼마나 큰일인데 그건 해도 된다. 원래부터 허락을 해놓았습니다. 또 한 가지, 양이나 짐승이 구덩이에 빠지면 이스라엘은 양이 몇 천 마리, 몇 만 마리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양이 몇 만 마리이니까 한 마리쯤이야 죽어도 상관없다 그러지 말아라 그거 생명이다 그래서 병원에 응급수술 병원에 긴급 치료는 주일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준비해서 건강 검진 정기 건강검진 준비해서 월요일가도 되고 토요일 가도 되는데 그걸 하필이면 주일날 예약해서 가는 것은 똑같이 병원 가서 피 빼고 검사하는데 그건 죄입니다. 정기 건강 검진은 미리 조절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주일날 들어가면 병원에 가도 죄가 됩니다. 주일날 복통이 났는데 그 사람의 신앙이 복통을 견딜 수 없으면 예배 보다가 병원갈 수 있습니다. 생명에 관한 것. 생존에 관한 것은 일이 아닙니다. 갈 수 있습니다. 돈 쓸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기다려보다가 집회를 인도하는 저부터 머리가 좋지 않아서 뇌경색에 조짐이 좋지 않다면 동천 목사님께 부탁하고 저는 월요일 집회 오다가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근데 몇 달 후에 어찌 될지도 모르고 미리 안한다고 발표부터하고 결정부터 해가지고 막아버리는 것은 그건 신앙 아닙니다. 그거는 세상도 아닙니다. 자기 돈 벌 때에는 그리 안 벌껄요? 자기 밥 먹을 갈 때는 끝까지 가면서. 예정해놨다가 마지막에 열게 해주시면 이렇게 안 잡고 마지막에 결국 기회 주지 않으면 아쉽게도 저희가 받을 복이 부족하여 이번에는 집회 못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에도 공회가 10년에 한 두 번은 집회 안했습니다. 뒤에 믿어 뭣 모르는 사람들이 집회는 절대 안 빠진다고 밀어붙이는데 아닙니다. 82년 8월 집회 안했습니다. 10년 1번, 2번은 안했습니다. 안 할 수 있는 겁니다. 주일 예배도 마찬가지. 공산당이 집회하면 죽인다고 그럴 때에 내가 죽어도 좋을 때 나만 가는 겁니다. 죽기 싫은 사람 붙들고 같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수에 인민군들이 한 달 전부터 지금 대전 왔다 전주 왔다 드디어 구례까지 왔다 쯤 되었을 때 주변에 친구들이 배를 가져와서 손목사 애양원에 바닷가에 배만 타면 인민군들은 배가 없으니 피난가자 그럴 때에 다른 목사님이 가자 그럴 때에 그 마지막 순간에 손 목사님이 교인들이 여기에 있으니 교인들 놓고 혼자갈 순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네도 여기 같이 있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가야될 정도의 신앙은 가야 되고 있어도 되는 신앙은 있는 것이고 내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십자가이지 남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살인입니다. 죽고 싶은 사람만 죽는 것이 십자가고 죽기가 싫든지 죽는 게 두려운 분은 아직까지 준비가 덜 됐으니 이번 환란에는 피난가라 그리고 준비를 잘 해서 다음 환란에는 나처럼 이기면 좋겠다. 이러는 겁니다. 뭐 우리처럼 준비 된 사람은 집회하는 거고 또 집회 안하는 공회들은 이번에 우리를 곁눈질 해가면서 뭐 별일 없이 하면 되는데 너무 성급했구나. 눈치가 있을 것 아닙니까? 또 다음에 이제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분들도 눈치가 있으니까 미리부터 안한다고 발표하고 결정하고 대못을 박진 않겠지요? 우리 공회는 제일 작지 않습니까? 제일 못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제일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신앙도 나쁘지, 못났지, 적지, 별 것도 없는 것들도 편안하게 이렇게 집회를 하는데 그 위대한 공회들이백 개 교회되는 훌륭한 공회들이 왜 안합니까? 다음부터는 결정을 좀 밀어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 좀 보다가 우리의 역량 우리의 은혜 우리의 실력으로는 이거는 갈 만큼 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미루면 되는 것이고 미리 죽을까봐 죽지도 않는데 다치지도 않는데 감기도 안 걸리는데 미리 죽어버리면 어떡할 겁니까?
나를 위해서 원수가 잘 되어야 됩니다. 내가 더 잘되기 위해서 내 주변 미운 인간들도 복을 받고 회개하고 올라가는 게 좋습니다. 이 원리 때문에 아무리 신앙 있는 사람이라도 혼자 예배 볼 때 은혜와 다섯 명이 모여 가정예배를 볼 때와 백 명이 모여 예배 볼 때와 , 만 명이 모여 예배 볼 때의 은혜는 이상하게 모이는 은혜, 모이는 은혜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립니다. 순복음교회는 80만 명이 모였다. 그 교회 목사님 그 교인 한명 한명을 두고는 실력이 열이라도 10만 명, 100만 명이 모여지면 원래 한 명의 신앙은 10인데 많이 모여지면 기본적으로 깔아주고 열을 주시기 때문에 몇 십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모이는 은혜를 교회라고 그럽니다. 교회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별의별 사람이 있어서 이 가정보고 시험 들고 저 인간보고 시험 들고 그래서 차라리 혼자 믿지 교회를 굳이 나가야 되느냐? 교회의 속속들이를 다 알고 보면 시험 드는 일이 많은데도 하나님이 알고도 교회를 세운 이유는 그래도 교회로 모여 놓으면 별별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인 교회 안에 기본적으로 깔아주는 은혜가 있고 100명모인 교회 별별 인간들 때문에 시험 들어 우리 다섯 명만 가정에서 따로 보자 우리는 신앙도 있고 우리는 마음 맞으니까 우리끼리 이렇게 또래끼리 끼리끼리 딱 따로 있으면 계산적으로는 분명히 나아져야 되는데 하나님이 위에서 깔아주시는 기본 은혜가 확 줄어버립니다. 5천 만 명 여당 야당 별별 사람들이 별별 소리 하니까 나라가 좀 잘 될 뻔하는데 늘 어중간하다 그래서 우리 도만 우리 시만 우리 마음 맞는 몇몇만 섬 하나 사서 거기서 그림 같은 마을을 만들어보자 해서 강원도에 50명 100명씩 중산층들이 지성들이 따로 마을을 만들어 공동체라고 우리 의사들만 20명 우리 문인들만 50명 우리 중산층 모든 마음을 터놓고 살 수 있는 우리 동호인들만 100명이 완전히 산 속에 마을을 이루어 우리끼리 천국을 만들어보자고 90년대부터 그런 시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1년 뒤 소식을 들어보시고 5년 뒤 소식을 들어보십시오, 서울 천 만 명 한 가운데 살 때 별의별 모순 별의별 죄가 그걸 피하기 위해서 딱 떼서 산 속에 갔는데 처음에 갈 때는 마음 맞는 사람들만 갔으니까 처음에는 천국인데 1달 지나고 1년 지나면 그 속에 없던 도둑 생기고 그 속에 없던 별의별 것이 다 생겨 서울 한복판에 있을 때나 숲속에 따로 가서 산 거기나 똑같아집니다. 오히려 더 못해집니다. 문화시설 편의시설이 따라가지 못하니까. 그래서 기독교는 그래서 우리 공회는 우리끼리 따로 어디 가서 똘똘 뭉치자 그런 격리를 피합니다. 격리해서 가봐야 목회자 5만 딱 어디 가서 살면 목회자들끼리야 얼마나 마음이 맞겠냐? 그 다섯 안에도 5대륙만큼 별의별 것이 다 생깁니다. 그거 차라리 별의별 사람 있는데서 책임을 져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수고한다. 처음부터 깔아주시는 기본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써라. 모여 놓으면 별별 것이 있는 줄을 몰라서 그 말씀 한 것이 아니라 모이기를 힘써라 별의별 것이 모여야 그 속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면서 너를 고치지 네가 고쳐지면 별의별 사람 다 있어도 천국이다. 널 고치지 못하고 가면 네 속에 있는 황충이 부부 둘 사는 데서도 기어 나와 가지고 둘 속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2차세계대전 속으로 들어가도 내 속의 황충이를 잡고 들어가면 주의 방탄의 은혜가 원폭 속에서도 살아나온 사람, 우리 신풍교회 관계된 손아림 목사님, 박찬호 목사님 이분들은 원폭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믿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환경 탓, 마음 드는 사람끼리 딱 모여서 우리 편? 노력하는 거는 좋으나 아무리 촐촐 고르고 골라 내 마음에 100프로 맞는 사람들만 이상적으로 모아놓아도 돌아서면 내나 죄악 세상은 똑같아진다는 걸 기억해서, 사람을 바꾸고 이사를 가고 직장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환경을 바꿔서 해결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를 마십시다. 내 속의 무저갱의 모이고 무저갱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 떼고 가는 수는 없습니다.
지난 저녁 시간에 9장이 좀 부족해서 다시 살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 속에는 무저갱이 들어 앉아 있습니다. 천하 인간의 죄악 전부를 다 합한 것보다 나를 더 크게 삼키고도 남을 생지옥 무저갱의 그 생지옥이 남 속에 있고 일본에 있고,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앉아 있습니다. 눈만 열면 그 다음 옹기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고 그 연기 속에 황충이가 따라 나오는데 이게, 이게 믿음 없는 내 요소, 세상을 좋아하는 내 속의 요소를 마구 고통 주기 위하여 주님이 특별이 만들어놓은 선물입니다. 대단한 황충이 입니다.
교정 : OHJ, K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