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후19.8.5 레1:1 소와 양이 기본인 구약 제사는 신약의 대속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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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후19.8.5 레1:1 소와 양이 기본인 구약 제사는 신약의 대속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가르침

교인 3 178 2020.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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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5 월후 (5대 제사 집회 1)

제목 : 소와 양이 기본인 구약 제사는 신약의 대속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가르침

본문 : 레위기 1장 1절 -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영육의 넘치는 때를 마지막 시대에 주심은, 세상을 마음껏 즐기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전 자존의 목적의 달성을 위한, 마지막의 충성과 제물됨을 원하시는 뜻인 줄 알고, 또는 알지 못해도, 아는 이들을 따라, 매년 주시는 5월과 8월의 집회를, 또 다시 받게 되었사오니, 의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부족하여 한 번 더, 우리를 향한 사랑인 줄 알고, 말씀을 따라 귀 기울이며, 어린 심령 하나도, 양심 속에 인도하는 자기 영감의 역사에 붙들려, 말씀에 고칠 것, 배울 것, 자랄 것, 연단시켜, 하나님의 자녀의 완전의, 영원에 이를 능력의 시간 되도록, 여러 곳에 함께 드리는 집회마다 함께 하시되, 가장 부족하여 이 곳에 모인 저희들에게, 긍휼을 더욱 베풀어 주시고, 레위기 5장의 5대 제사를 통해, 오늘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며, 하늘의 은혜를 구하는 이 시간 되게 해 주옵소서. 개최와 진행과 마무리까지 수고하는 종들에게 함께 하시고, 자연과 만물과 덕유산 산 속의 악한 짐승,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지극히 작은 모래알, 공기 입자 하나까지 주권 섭리하여, 배우며, 연단하며, 주를 따르는 모든 은혜 되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깨어, 말씀을 쫓는 이 시간 되게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표지’를 다 같이 봐 주십시다. 레위기의 ‘5대 제사’를 한 주간 공부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세 번째 성경입니다. 한 장에 한 제사씩. 다섯 장에 걸쳐, 5대 제사의 기본을 살피면, 구약의 복잡한 모든 제사를 살필 수 있고, 구약의 제사를 살피면, 신약과 오늘 우리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어, 금번 8월 집회의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휴가철 산 속에 이곳에 모임은, 우리가 신앙이 있어서 모인 것이 아니고, 신앙이 있는 사람은 주일 오전예배 한 번이면, 일주일이 넘치고, 평생이 넘칩니다. 부족하니까, 주일 오후에, 또 저녁 예배, 새벽 예배까지. 또, 더 부족해서 이렇게 산 속에 한 주간 모인 우리는, 오지 않는 교인에 비하여 신앙이 있다가 아니라, ‘부족하다’ 잊지를 마십시다. ‘산 속까지 온 신앙 있는 교인들을 보니까 별 것 없네?’ 그렇게 시험에 드는 사람을 구해 줄 ‘진리’는 없습니다. 주일 예배면 되는데, 교회에서 배워 충분한데, 부족해서 한번 더 모였으니, 이곳은 병원이라! 병원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모이나요? 아니면, 병든 사람이 모이나요? 병원 가서, ‘왜 병.신만 있느냐?’ 투털대면, 그거 영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불편해서 온 곳이 병원입니다. 부족해서 여기 모였으니까, 서로를 볼 때 ‘부족하니 오셨구나.’ 그래서 뭐든지 이해하시고, 혹시 신앙 있는 좋은 행위를 보면, ‘아! 저것은 본 받고 배워야 되겠다.’ 자세가 이리되면 유혹할 귀신은 다 도망가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을 수가 없는, 집회의 자세 하나, ‘표지’에서 배우고 넘어 갑니다. 서문입니다.

하나 넘겨서, 우리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이름이 ‘공회’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교단은 ‘장로교’입니다. 또 여러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공회라는 교회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1957년부터 30년간, 우리를 가르친 백영희 목사님의 지도와 설교로 진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0년 정도. 89년에 가셨는데, 그 설교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들어 알 수가 없어, 약 30년을 ‘복습’했습니다. 복습 30년을 한 그런 설교, 그런 교재가 있는지 한번, 학교든 종교든, 또는 교회 내의 상식을 살펴봐 보십시오. 한 번 들으면 충분하고, 몇 번 들으면 넘치는데, 30년을 복습해도, 할 때마다 더 배우고, 더 감사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주님 오실 때까지 스스로는 일어서지 못할까봐, 우리 스스로 일어 서서 이제는 걸어가도록, 작년부터 30년, 30년을 지나, 새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연필을 드시고, 중요한 것은 줄을 그으시고, 이 교재는 교과서가 아니라, ‘연습장’입니다. 틀린데도 있을 것이고, 줄도 그으시고, 또 기억도 하시고.

여기 강단 설교를 맡은 제가 부족합니다. 앞에 인도하는 모든 목회자들이 부족합니다. 그럴 때는, 줄을 그어보시지요. ‘집중’과 ‘기도’. 둘이면 하나님이 다 채워주십니다. 사도 바울을 오늘까지 살려주지 않으셔도, 역사의 교회는 발전했습니다. 부족하니 집중하고, 모자라는 기도하는, ‘집중’과 ‘기도’가 있으면, 광야 마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큰 은혜 쏟아지고, 오신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도, 엉뚱한데 쳐다 본 사람, 집중하지 않았고. 주님 은혜를 기도하지 않은 사람, 예수님 따라 다니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치워 버렸습니다. 반대로 오늘의 부족을, 부족하니 집중하고, 기도하면. 오늘의 필요한 우리 은혜는 주님이 주십니다.

이번 집회의 교재는, 서문의 중간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의, 따라해 보실까요. ‘5대 제사’ 꼭 기억해놓으십시다. 구약은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우리의 ‘예배’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교회가는 사람, 예배 시간 됐다’ 그 예배인데, 그 예배 속에 평생의 신앙과 평생의 생활을 다 ‘종자’로, 자본으로 담아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오늘 배우는 것은, 신약 오늘의 ‘예배’를 알기 위해, 예배를 알면 평생의 신앙과 생활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됩니다.

지금, 이번 집회도 11번 집회 기간에, 교재 없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 안 믿는 집에서 출석하는 학생들, 어린 학생들 때문에, 예배 집중 때문에 교재를 마련했습니다. 교재대로 하려고 노력해도, 이 시간의 인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까, 적어가며, 내 마음 속에 주님이 뭘 원하시는지, 같이 한번 따라 가보십시다.

또 한 장을 넘깁니다. 목차입니다. ‘제사 제도’입니다. 크게. 한번 기억하시지요. ‘번제’, ‘소제’ 학생들만, 두 가지 시작. 번제, 소제. 보고 읽었나요? 둘 정도는 외우고 계시나요? 계속 반복하면서 외웠는지, 여쭤 봅니다. 다시, ‘번제,’ ‘소제,’ ‘화목제’. 저를 보시고,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다 같이 한번 해 볼까요? 시작.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반복’을 하다 보면 집중이 되고, ‘집중’이 되다 보면, 진리의 말씀이 자기 머리 속에서 자기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불신자 교육은 단답식, 반복식으로 유치원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신앙의 교육은 밖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내 마음과 내 머리에 깔아, 말씀이 나를 인도하도록 따라하고 반복 하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나한테다대고, 뭔 초등학교 1학년처럼 가르치느냐?’ 그러시면, 하늘나라가 멀어집니다. 저와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의 마음이면, 좋습니다. 제사가 몇 가지요? 5대 제사. 예배가 몇 가지라고요? 5가지. 첫째는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다섯가지를 먼저 파악하면, 부록과 뒤에는 참고가 될 것이고, 배우기 전에 먼저 보시면, 복잡해서 곤란하니까.

그 다음 한 장을 또 다시 남깁니다. 6페이지. 괄호 있는 부분은 적으시고, 괄호 없는 부분이라도 중요한 것, 메모할 부분 자꾸 줄을 그어가며 따라합니다. 이번 집회는 작년 5월부터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작년 5월, 2018년 5월에는, 본문을 기억하십니까? 성경 제일 처음이 창세기, 첫 장이 1장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전체를 한 자로 줄이면, ‘창조’. ‘6천년 전에 세상을 만든 창조가, 오늘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믿는 사람의 매일, 믿는 사람이 평생은 항상 새 출발로 출발을 합니다. 6천년 전의 창조는 1번이었으나, 오늘도 하나님은 내계의 이 오늘 하루를 새로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일의 직장은, 역사에 없는 첫 직장입니다. 내년의 1월 1일은, 역사에 한 번도 없는 새 창조로 주십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역사에 늘 새로운 출발, 우리의 매일의 출발, 이번 집회 첫 시간의 출발. 새 출발을 할 때마다 창세기 몇 장을 기억하시라고요? 1장. ‘오늘도 모든 출발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나?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떤지?’를 작년 5월에 배웠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출애굽기 몇 장을 공부했던가요? 25장. 광야를 출발한 이스라엘의 ‘성막’을 공부했습니다. ‘성막은 어떻게 생겼는가?’ 울타리, 또 성소, 지성소, 떡상, 등대, 널판을 가지고 만들어놨는데, 그 널판의 재료는 나무 중에, 무슨 나무였지요? ‘조각목’이었습니다. 천하의 좋고 많은 나무 중에, 제일 몹쓸 나무, 제일 못난 나무. 불 떼기도 불편한 나무. 나무 중에 가장 못난 나무를 ‘조각목’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나무하고 비슷하다고 그랬지요? ‘아카시아’하고 비슷합니다. 그 조각목이 누구라고요? 여기에 있는 저입니다. 목사만 조각목인가요? 사도 바울도, 역사의 위대한 어거스틴도, 오늘 모인 우리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알고 보면, 참 몹쓸 아카시아 같은 조각목이라. 그런 몹쓸, 못난 조각목을 가지고, 하나님이 성막을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이런 내용을, 지난 8월 ‘성막’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왜? 성막을 배웠는가? 새 창조로 출발은 했는데, 출발하는 사람이 혼자 걸어가면 어찌 되나요? 광야는 죽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하나님 모신 동행’,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교회가 되자고, 작년 5월은 ‘창조’, 작년 8월은 성막을 통해 ‘동행’.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출발한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을 했는데,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살아가면서 생활 속의 실천을 하는가?’ 말씀은 좋은데, 성경은 좋은 말 밖에 없는데, 천국을 간다는데,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빠져, 하나님의 잊어버리고, 자꾸 엉뚱한 일을 하니까, 출발이 바로 되고, ‘창세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막이 되고, ‘성막 공부’. 출발하고,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생활 속의 실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구약생활, ‘이스라엘의 생활법’을 배웠습니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의 생활법을 크게 기억하십니까? 첫째가 신분법. ‘너는 자유인이다!’ 남이야 싫다고 하든지 내 멋대로 하는 그 방종! 그건 자유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원하고, 원하고, 원하여 걸어가는 자유. 이게 믿는 사람의 신분입니다. 2번째는, 하나님과 연결의 생명, ‘생명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죽여라’ 살인자를 찾아, 처단을 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은 생명이다. 목숨 걸고 지켜라.’ 신분, 생명. 3번째는, ‘다치게 하지 말아라.’ 눈을 다치면 눈으로, 이를 빼면, 이를 빼서 갚아라. 남한테 보복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원하고 원함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유의 신앙의 사람,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을 가지고, 믿어 갈 때. 그 사람의 신앙을 상처 주고, 그 가정의 신앙을 꺾으면, 아니된다!’ 그 다음 4번째는, 재산법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소나 양을 다치게 했으면, 반드시 물려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우리의 재산은, 세상에 죄 짓는데 쓰라고, 나 즐겁게 쓰라고 준 재산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신앙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본’입니다. 5번째 무엇이었지요? 신분법, ‘자유성의 신앙이 되라!’. 생명법, ‘하나님과 연결에 목숨 바쳐라!’, 상해법, ‘다른 사람의 신앙을 상처 주지 말아라. 그 사람의 신앙을 길러가라!’ 4번째, ‘자타의 하나님의 맡긴 은혜를 보관하라, 길러가라!’ 5번째, 그런 신앙의 사람,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이면 사회입니다. 그래서, 사회법까지 지난 5월 집회 때에 살펴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8월 집회는 이제 자연스럽게 순서를 따라, 레위기 1장부터 ‘5대 제사’. 제사란,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바칠 때 제사라고 합니다. 주님이 자기를 죽여 우리를 살렸고, 구원받은 우리는, ‘나를 죽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제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사는 줄여서 기억해 볼까요? ‘헌신’. 내 몸을 바칠 때, 헌신이라 그럽니다. 내 몸은 못 바치겠고, 돈만 바치면, ‘헌금’이라고 그럽니다. 나를 바칠 때, ‘헌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를 바치겠는가?’ 몇 가지 종류로 바치라고요? 5가지 종류로 바칠 길을 주셨습니다. 그 5가지 길로, 하나님께 바칠 때에, 어떤 방법으로 받치는지, 내용을 살펴 주신 겁니다. 여기까지 6페이지입니다.

집회 순서를 원래 이렇게 놓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이번 집회는 계시록을 생각했다가, ‘워낙 시대가 혼란스러워, 주님 오실 날이 그렇게 멀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너무 급하고, ‘주님 오신다, 오신다’ 하고 2천년입니다. 그런데, 뭔 또 주님 오실 때가 가깝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깝지 않아도, 나 죽으면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건 재림이 아닌가요? 멀쩡한데 주님 오셔도 재림이고, 2천년간 주님이 오지 않았으나, 어제 죽은 사람은 어제가 재림. 주님 두번째 만나야 됩니다. 이 시간 제가 죽으면, 저는 혼자 주님 만나러 갑니다. 2천년 전에 오신 주님을 ‘초림’, 가신 주님을 한번 더 만나면 ‘재림’. 주님이 와서 만나는 것은, ‘우주적인 종말’. 나 하나 죽어, 주님 만나러 가는 것은 ‘개인적인 종말’. 그렇다면, 종말은 먼 것이 아닙니다. 작년, 올해 사이 응급실에 3번 실려 갔습니다. 여기가 막혀서 그냥 5분 안에 간답니다. 3 번이나 재림을 맞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60년 넘도록 주님도 안 오시데, 무슨 재림이 그렇게 바빠?’, ‘너 오늘 저녁에 와 볼래? 너 이 시간에 와 볼래?’ 그러고 보니까, ‘계시록의 종말은 멀지 않구나.’ 거기다대고, 뉴스를 보시고, 세상을 보시고, 국제를 보시고, 안 팎을 보시면, ‘이거 뭐 이대로 세상이 그냥 가지 않겠다’ 싶을 만한 환경이 이렇게 밀려 들어오는데, 천지의 출발은 ‘창세기’, 마지막에 마무리는 ‘계시록’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새 출발과, 매일매일이 새로운 마지막으로 이어갑니다. 계시록을 공부하려다가, 창세기 1장의 ‘창조, 출발’. 출애굽기 25장 ‘성막의 하나님 동행’, 출애굽기 21장의 ‘이스라엘의 생활법’을 통해 공부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를 살펴보니까, 이번에는 레위기의 ‘헌신’으로, ‘주님으로 출발했고, 주님과 동행했고, 말씀으로 산다고 살았는데, 내 속을 들여다 볼 때, 나는 얼마나, 몇 프로나 주님께 드리고 살았는가?’ 결혼을 했는데, 남남처럼 따로 사는 부부도 있고. 50% 하나되어 뜨겁게 사는 부부도 있고. 출장을 가고, 주말 부부를 하는데, 마음 속에는 100% 똘똘 뭉친 부부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 속을 몇 프로나 주님께 맡기고, 드리고 살았는가?’ 월급 받고, 교회 생활하는 목사들도, 자기 속을 들여다보면, 주님 없이 산 적이 많은데. 험악한 바쁜 경쟁의 세상 속에 사는 여러분들께서, 믿는다는 이름은 이마에 붙였으나, ‘내 생활, 내 정성, 내 사상을 다 주님께 드리고 살았다?’ 꿈도 꾸지 마시고. 레위기 1장부터 살핍니다.

또 1장을 넘깁니다. 7페이지인가요? 페이지가 틀릴 때에는 말씀하십시오. 제가 교재가 달라서. 구약은 ‘제사’. 신약은 뭐라고 했던가요? ‘예배’. 왼쪽의 구약, 오른쪽의 신약을 비교해봅니다. 제사란, 첫째, 무얼 잡는다고요? ‘짐승을 잡아야’ 제사이지, 짐승이 없는 제사는 제사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 짐승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가루 한 줌이라도’ 길을 주셨습니다. 원칙은 ‘짐승’입니다. ‘짐승을 잡아’. 여름에 나들이 가면, 가족 회식입니다.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바칠 때’ 두 가지입니다. ‘짐승을 잡아’ 잡는 것은, 손에 쥐는게 아니고, ‘죽여’.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바칠 때. 두가지를 합하면, 구약의 제사라고 합니다.

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태워, 이렇게 드리라고 그러느냐?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너를 잡아라! 너를 좀 잡아라!’ 좋은 식당, 공공장소에 어른들이 모였는데, 내 아이가 이쁘긴 이쁘지만은, 이게 고함 지르고, 던지고 돌아다니면, 서로가 좋지 않은 겁니다. 조용한 자리, 점잖은 자리에 회의를 하는데, 어린아이 하나가 악을 쓰고 돌아다니면, 그 엄마, 그 할머니는 흐뭇하게 쳐다봅니다. 그런데! 다른 집 아이가 그러면, 단번에 ‘애들을 왜 이렇게 잡지 않고, 이렇게 해놓았느냐?’ 펄쩍 뜁니다. 안 좋은 것은, 잡아야 됩니다. ‘나든, 너든,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라!’ 구약의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사의 5가지로 보여주시면서, 신약의 우리들에게는 ‘너를 좀 잡아라. 나쁜 너! 죄 짓는 너! 하나님도, 천사도, 만물도, 남들이 전부 다 손가락질하는 그런 너를 좀 잡아라!’

어떻게 잡을까요? 짐승이야, 칼로 잡아버리면 되는데, 불로 태워버리면 되는데, 내가 나를 잡아 버리면, 자살 아닙니까? 남의 집 아이를 내가 잡으면, 살인 아닙니까? 그건 안됩니다.  신약에 ‘잡아라’ 뭘 잡을 것이냐? 5가지 종류로 가르치면서, ‘말씀의 칼로 잡아라’ 구약의 ‘소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라.’ 그건 칼로 잡습니다. 신약의 내 인격, 내 가정의 단점, 우리 교회에 잘못된 것은, 활로 잡나요? 수류탄으로 잡나요? 총으로 잡나요? 칼로 잡나요? 다 같이 뭘로 잡는다고요? 말씀. ‘말씀으로 잡아라’ 그래서, 신약의 예배는 말씀이 ‘중심’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왜 성경을 읽지요? 왜 성경으로 설교하지요? 왜 교재로, 이렇게 또 한 번 더 배우지요? ‘말씀을 배우고’. 배우는 이유는요? ‘말씀으로 너를 좀 잡아라.’ 두 번째는요? 찬송. ‘말씀으로 나를 잡아보니까, 아 참 감사하구나.’ 말씀을 두고 자기를 죽여보고, 자기가 감사해 볼 때 나오는 감사를 ‘찬송’이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찬송’, ‘기도’. 셋을 합하면, ‘예배’.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면, 제사. 구약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면서, 신약 오늘 우리에게는 ‘말씀을 배워, 말씀과 다른 너를 잡고, 말씀으로 자기를 회개 시키고, 자기를 바꿔본 감사’가 나오면 ‘찬송’이 되고. ‘그렇게 해 달라’고 간구할 때 그걸 ‘기도’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말씀, 찬송, 기도. 셋을 합하면 ‘예배’가 됩니다. 구약에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부’. 외부에서 출발해 가지고, 짐승 잡아 제사, 짐승 잡아 제사를 자꾸 하다 보니까, 외부에서 출발해 가지고, 인격 ‘내면’까지 깨끗하게 되어지고. 신약은, 말씀으로 나를 깨끗하게 자꾸 살피다 보니까, 내면에서 시작해 가지고, 믿는 우리의 생활까지, 외부까지 깨끗하게 되는 이 면을 가르친 것이, ‘제사’와 ‘예배’입니다.

그 다음 밑입니다. 지금 5대 제사를 배운다 했는데, 제사의 종류. 다 같이 첫 번째는요? 번제. ‘태워 드릴 때’ 번제라고 그럽니다. ‘번’. 요즘은 영어가 다 한글처럼 익숙해 있나요? ‘번’ 조금 길게 빼면, 영어로도 ‘태운다’는 뜻입니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지금 번제의 ‘번’은, 옛날과 달리 ‘번철’처럼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영어에 ‘번’ 자는 상식이 되었고, 한글의 ‘번’ 자는 쓰지 않는 ‘번’ 자가 됐는데, 본제의 ‘번’은 ‘태운다’는 뜻입니다. ‘짐승을 잡아, 짐승 속을 다 태워버리면’ 번제라고 그럽니다. 나 전부를, 내 전부를 주님께, 신약에 바치는게 번제입니다. 두 번째, 제사. 소제입니다. 소제의 ‘소’ 자는 원소, 산소, 수소, 원소 할 때의 ‘소’. 이런 요소, 저런 요소 할 때의 ‘소’ 자입니다.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알갱이, 갈아버린 ‘소제’입니다. 곡식을, 쌀, 보리, 밀. 쌀, 보리, 밀, 옥수수를 완전히 갈아서, 뭐가 뭔지 모르도록 갈아버리는 것을 ‘소제’라 그럽니다.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서 드리면, 구약의 소제. ‘신약의 우리에게 예배,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내 속에 이런 성격, 저런 습관, 이런저런 별별 것이 우리 속에 다 들어있는데, ‘말씀으로 네 속에 들어 있는 이런저런 알갱이, 옹알이, 엉어리, 감정 전부 다 갈아버려라!’ 그게 소재입니다. ‘자신의 내면 전부를 부인하라.’ 번제는 ‘태워’ 드립니다. 신약에는, ‘전부를 바쳐라’. 구약의 소제는 가루로 드려라. 신약의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요? ‘자신을 완전 부인! 너를 완전 부인하라.’ 3 번째 화목제, 화목은 평화, 화평의 화목입니다. 원수와 원수 사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사람이 원수가 되었는데, 화목 제사라는 제사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듯이. 오늘 신약에, ‘하나님과 하나되어, 동행하라!’ 구약에는,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함께하는 화목’. 오늘은, ‘하나님과 하나되어 동행.’  그 다음, 4번째는 속죄제입니다. 지은 죄가 있어,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데, 지은 죄를 해결할 때, 짐승을 잡아, ‘죄악을 사죄’. 죄를 해결하는 것을 속죄제라 그럽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지은, 자기가 지은 죄를 해결하는 제사.’ 그 다음, 속건제는, ‘허물 건’, 앞에 속죄제는 큰 죄. 말하자면, 누구든지 아는 큰 죄. 속건제의 ‘허물’이란 것은, 알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누구든지 간단히,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허물들. 속건제는 짐승을 잡아, 실수를 사죄하고, 오늘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해결하는 것을, 5번째 속건제라고 그럽니다.

한 장 넘깁니다. 교재 8페이지, ‘제사 제도’입니다, 레위기 1장, 본문을 먼저 보겠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항상 ‘약속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오면 항상 ‘약속’을 기억해 놓으십시오. 약속 중에서도, ‘절대로 잊으면 안 되고, 어기면 안 된다’고, 약속을 강조하면. 집을 사고 팔 때, 뭐라고 그러나요? ‘계약’이라고 그럽니다. ‘약속’, ‘계약’. 다 같은 말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가 나오면 약속, 계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약속의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회막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오늘 바쁜 세상 중에 주일날 교회를 갈 때,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오늘은 주일이 아닌데, 예배로, 집회로 여기 말씀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이 자리가 회막이 됩니다. 알고 보면, 학교 갈 때도 하나님 모시고, 가정에서도 하나님 모시고,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만나는 곳이 ‘회막’입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구약이니까, 출애굽기 25장 성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구약의 지도자는 모세. 신약의 지도자는 누군가요? 목사. 가정의 목사는 누구인가요? 아버지. 어머니 신앙이 앞서가면, 아버지가 ‘나와’ 그래야 되는가요?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이 우리 가족 목사입니다.’ 그래야 되나요? 내 마음에 드는 대통령은, 각하. 내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은, 욕을 해 버리는가요? 신사들은, 문화인들은, 멀리 보는 사람들은, 내 마음에 안 맞아도, 내 마음에 맞는 사람도 있어야 되고. 나라의 머리는 하나이니까,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심하는 것이, 서로가 좋은 겁니다. 안 맞을 때. 내 편 아닐 때는 욕을 바락바락 5년 해 놓고, 우리 편이 대통령이 되면 ‘그래도, 나라의 어른인데?’ 그런 걸 ‘비 양심’이라 그럽니다. 가정에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목사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니까, 어머니 신앙이 앞서면, ‘하나님 앞에 목사는 아버지다. 지금은 당신이 하나님 앞에 아버지 노릇을 하니’ 신앙으로는 어머니가 목사 될 수도 있습니다. 안 믿는 가정에 주일학교 1학년이 교회를 가면, 그 교회 목사 누구인가요? 그 가정에? 초등학교 1학년도, 목사 노릇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세는 신앙의 지도자인데, 오늘의 신앙의 지도자는 누구인가? 여기서는 저처럼 보입니다만은, 장내를 정리하는 책임자는 따로 있지요? 찬송 책임자, 따로 있지요? 식당에 가면 모세가 따로 있지요? 가정마다, 모세가 따로 있지요? 그 가정에 신앙으로 10년 앞서 가다가, 화난다고 시험 들 수 있고, 10년 지켜보다가 ‘아! 저렇게 믿는 것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면, 그 시간에 그 사람은 모세가 됩니다. 구약의 모세는 정해 놓은 모세이고, 신약의 모세는 누가, 언제, 어떻게 모세가 될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현실의 모세입니다.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교재 8페이지 위입니다. “너희 중에”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은. “여호와께” 아까 어느 하나님을 여호와라 그랬던가요? ‘약속의 하나님’ 약속을 강조하면, 어떤 하나님이요? ‘계약의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면” 예물을 드리려면,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계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예물을 드리면, 보통 받고 끝나지요? 하나님은 하나 드리면, 열이 옵니다. 열이 가면, 백이 옵니다. 그래서, 모를 때는 ‘예물은 내가 손해 보는데’ 싶은데, 하나님께 예물은 이것은 천 배, 만 배, 영생입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예물은 ‘선물’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선물 중에 제일 대표적이고, 제일 좋은 선물을 ‘제물’이라 그럽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서, ‘예물’, ‘선물’, ‘재물’, 신약의 ‘연보’. 내 몸, 내 인생을 바치는 ‘헌신’. 다 같은 말입니다.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이게 제사의 기본입니다. “생축 중에서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이 제사의 기본. ‘소나 양이 없고,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2장에 가서, ‘가루라도 한 줌 가지고 와라’ 길은 마련해놨습니다.

“생축 중에서” 요즘은 생축을 잘 안 씁니다. 쉽게, ‘가축 중에서’, ‘기르는 짐승 중에서’. 생축, 다른 말로요? 가축. 생축, 가축? 생축, 가축? ‘기르는 짐승 중에서’ 산에 가서, 사냥해서 하나님께 바쳐라? 아닙니다. 바다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오너라? 아닙니다. 어렵지 않게, 멀지 않게, 까다롭지 않게, 비싸지 않게. ‘기르는 짐승 중에서’ 그 다음, ‘소나 양으로’ 소라니요? 양이라니요? 우리에게 알기 쉽게 가르치려고, 소와 양이라는 것은 모든 종류의 동물 중에서, 사람과 제일 가까운데. 사람과 제일 가까운 동물 중에서, 이쁘다고 잘못 만지면 발톱으로 할퀴어 버리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고양이는 빼고! 주인한테는 잘 따르는데, 옆 집 가서 물어 버리는 개 말고! 우리는 맛있어 삼겹살 먹는 돼지이지만은, 돼지는 더러우니까 말고! 무엇과 무엇을요? “소와 양으로” 소와 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기본으로 삼아라. 소와 양은, 이스라엘은 목축 국가라, 우리나라에서는 소와 양이 멀리 있지만은, 이스라엘 나라 안에는 목축 국가라서, 어느 집이든지 전부 소와 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아지처럼. 이스라엘 백성,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기르는 짐승 중에서’, ‘네 손에 있는 것 중에서’, ‘네가 손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쉽다는 말입니다. 가깝다는 말입니다. 어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 못 하는 것, 멀리 있는 것은 시키지를 않으십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법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는, 기억해보실까요? ‘보편성’, ‘일반성’.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것. 아것을 잘못 이해하면, ‘교회는 아무나 따나, 그냥 성의없이 집어 던지면 되는가?’ 그건 아닙니다. 정성은 드리되, 생활 속에 있는 것,

“생축 중에서” 첫째는 ‘소’. 여러가지 종류의 짐승 중에서도, 기르는 가축 중에서는 소는 순종의 동물입니다. 양도 순종의 동물입니다. 우리나라는 양이 거의 없습니다. 추운데만 삽니다. 우리나라에 소는 많았습니다. 지금은 도시 아파트에서, 소도 양도 생활 속에 볼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발전을 했는데, 성경을 공부하는 데는 굉장히 지금은 불리합니다. 학교는 가지 않았으나, 농사지어 본 분들은 성경 깨닫기가 유리하고, 경제가 좋고 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도시의, 문명의 발전된 사회에서는, 성경 배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드리라”고 하는 걸 보니까, 아! 소나 양이라, 이것은 순종의 짐승입니다. 강아지는 나한테는 순종을 잘하는데, 남한테는 안 그렇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물어버립니다. 고양이는 담이고, 지붕이고 별의 별 곳을 다 다니고, 쥐 잡느니라고 정신도 없습니다. 말은 뛰었다 하면, 어디 갔는지 구경도 못 하겠습니다. 잘못 탔다가는 주인도 떨어져 죽습니다. ‘소나 양’은 ‘무언의 순종’, ‘말 없는 순종’. 그러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다. ‘닭을 잡아와라, 고양이를 잡아와라, 말을 잡아와라, 쥐를 잡아와라, 사자를 사냥해 와라, 잘 숨고, 잘 도망가는 여우를 잡아와라.’ 어려운 것, 복잡한 것 전부를 다 물리치고, ‘소나 양이면 하나님이 기뻐하겠다. 기르는 짐승 중에서, 소나 양이면, 하나님이 어떤 죄이든 용서하고, 어떤 헌신이든 다 그걸로 만족하겠다. 필요한 모든 복을 다 주실 수 있다.’ “생축 중에서” 너 생활 속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동물 중에, 말 잘 듣고, 순종 잘하는 소나 양으로 드리라. 다같이, 소나 양은 무슨 뜻이라고요? ‘무언의 순종’ 말 없는 순종. 누구 사람 좀 시켜 보셨습니까? 뭔 말이 그리 많은지. 그냥 ‘예’ 한 사람이, 시켜 본 사람은 이쁘지요? ‘비가 옵니다. 이렇습니다. 돈이 듭니다. 뭐 힘듭니다.’ 무슨 소리가 그리 많은지? 사람끼리는 그리 살지만은, 하나님 앞에는 ‘무언의 순종’. 묵묵하게, 주의 말씀이면 ‘예’. 이것을 소나 양이라고 그럽니다. 교회의 말 없는 충성, 교회의 소리 없는 충성. 회사에 가서는 사장님을 위해서 하나 잘하면, 열이나 잘한 것처럼 광고를 해야 안 짤리지요. 학생은 선생님한테, 하나 잘 해가면, 막 알아 달라고 그래야 점수가 올라가지요? 학교든 직장이든 면접을 보러 가가지고, 선전을 해야 될까요? 아니면, 입을 닫아야 될까요? 경쟁의 사회에서는 떠들어야 되고, 홍보를 해야 되는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는 무얼 원하신다고요? ‘말 없는, 무언의 순종’ 그거 가져 오너라! 소나 양은 살아서는, 소는 일을 합니다. 일로 주인을 위해서 ‘충성’하고. 양은 살아생전 할 수 있는 것은, 먹으면 감당 못 하게, 우리 머리카락처럼 이렇게 나오는 것이 ‘양의 털’입니다. 양은 털을 깎아, 주인에게 드리고. 가게 없던 시절, 옷 만드는 공장 없던 시절. 이스라엘 나라의 실, 천, 옷, 지붕, 모든 생활은 다 양털로 가지고, 양모 이불, 양털 모직, 옷, 뭐든지 양털로 살아갑니다. 주인을 따뜻하게 덮어 드리는, 주인을 따뜻하게 감싸 드리는, 양이란 먹고 살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양털만 냅니다. 살아생전 양털을 깍아 주인에게 드리고, 소는요? 묵묵하게 일을 해서 주인을 위해서 사는 것이 소입니다. 소는 살아서 일하고, 양은 살아 생전 털로 드리고. 일하다가 소가 죽으면, 어찌 되나요? 그 다음은, ‘가죽’. 속에 있는 ‘고기’, 전부를 주인에게 다 바치고. 양도 마찬가지.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싶으냐? 하나님께 복 받고 싶으냐?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고 싶으냐?’ 네 생활 속에, 네 마음 속에, 너 범위 안에! 해외까지 갈 것 없다. 남의 집 담 넘어, 울타리 안의 것을 사올 것 없다. 가져올 것 없다. 목축하는 나라의 생활, 네가 기르는 소와 양이 있지 않느냐?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라.’ 주님 명령 하시면, 무언의 순종으로. 살아생전 털로 드리는 양, 주님 따뜻하게. 주님 입은 옷을 벗겨, 내가 입는 사람. 내가 따뜻하게 살려고, 내 양털인데, 깎아 주님을 덮어 드리는 사람. 사회생활 하다가 실수를 하면, 당황스러우니까 그렇겠지만은, ‘교회에서 시키던데요?’ 교회 옷을 벗겨, 자기가 입는 사람입니다. ‘너 그 모양이 뭐야? 너희 교회는 왜 그래?’. ‘아, 제가 충성하지 못해, 제가 실수했습니다. 목사 제 책임입니다.’ 교인은요? ‘저희들이 부족해 그렇습니다.’ 내 털을 깎아, 주님을 따뜻하게, 교회를 보호할때에 ‘양털’입니다, 교회가 필요하고, 주님과 복음이 원할 때, 묵묵하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소입니다. 그런 소나, 그런 양의 자세는 ‘무언의 순종’. 살아서는 일하고, 털로 주님을 따뜻하게. 죽어서는, 평생에 가진 것, 자기 고기와 자기 겉에 있는 가죽을 드리는, 이런 너! 그런 인격! 그런 신앙! 그런 생활! 그런 언행! 그런 이력! 그런 경력을, 주님이 ‘가져오너라.’ 그걸 번제로, 모든 종류의 제사로 쓰기 위해서, “드릴지니라”. “생축 중에서 양이나 소나 양으로 드릴지니라”

“드릴지니라” 성격은, 하나님께 ‘선물’입니다, 선물! 선물은 다른 말로 ‘예물’이라 그랬습니다. 선물, 예물. 속에는 ‘감사’가 들어 있고, 속에 감사가 없는 선물은, 아무리 선물 보따리 가져가도 선물 아닙니다! 선물 포장이 아무리 비싸도, 속에 감사가 들어있지 않으면, 선물은 안 됩니다. 진급을 하려는데, 진급이 안되니까 진급시켜 줄 상관한테 비싼 산삼을 사가면서, ‘이 인간이 좀 나를 진급시켜 주면 좋겠는데’ 감사가 있나요? 억울이 있고, 분노가 있는데, 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산삼, 보약 사 들고 들어가는 것은, 눈 먼 인간은 예물, 선물이라 그러는데, 속에는 욕, 분노, 억울함이 가득 찼습니다. 주님은 우리 속을 알기 때문에, ‘적은 것은 상관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선물은 속에 무엇을 담아야 된다고요? ‘감사’가 들어 있어야 ‘예물’입니다. 선생님, 사장님, 위에 상관, 부모님, 인간은 겉 밖에 모르기 때문에, 겉 좋은 것을 선물로 받아 줍니다. 하나님은, ‘나는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라.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소나 양을 끌어, 제사로, 예물로, 선물로 드리러 갔는데, 끌고 온 소, 끌고 온 양, 그 속에 ‘감사’가 들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제물이구나! 이건 예물이구나! 이건 선물이구나! 가난한 인간이, 못난 인간이, 어려운 중에서 예물을 가져왔구나!’ 인간은 받아먹고 계산해서 주고받지만은, 주고 받는게 비슷하면 ‘물물 교환’이라 그럽니다. 주는 것보다 받는게 많으면 ‘장사를 했다’고 그럽니다. 많이 줬는데, 적게 돌아오면 ‘손해 봤다’ 그럽니다. 장사. 예물이라는 것은,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 감사를 하나님이 받아 놓고, 어느 정도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실까? 온 것보다 적게 주시면, 장사꾼 하나님. 온만큼 주시면 물물 교환 하나님. 받아 놓고 10%, 20% 얹어 주면, 고객 관리 하는 조금 좋은, 귀신! 미신! 하나님께는, 하나 드리면 ‘애썼다. 그 속에 감사가 들어 있구나.’ 그 하나 가지고 뭘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너 정성, 너 감사를 보고 싶었다. 하나님이 감사하냐? 오냐! 내가 네 아버지다.’ 쏟아 부을 때는, 얼마만큼 쏟아 붓겠습니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받을 그릇이 없어서 못 주시지, 받을 수만 있으면 있는대로 주고 싶은 것을 부모라고 그러지 않나요? 우리 10대 학생들은 이해가 안되나요? 다섯 살 동생한테, 다이아몬드 천만 원짜리 끼워 놓으면, 그게 끼어져 있나요? 옛날, 돈 없을 때는 뺀찌로 짤라, 안되면 손가락을 잘라버립니다. 가질 수 없어 못 주지, 가질 수만 있으면, 있는 대로 주는 것. 이걸 ‘부모’라 그럽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니, 너희가 1학년이라, 너희가 5학년이라, 너희가 받을 그릇과 수준이 되지 않아, 더 못 주지. ‘양이나 소로 감사를 표시하려고 이렇게 애써서 가져 왔느냐?’ 그 신앙! 그 감사! 그 감사를 느낀 정성! 그 내용, 그 중심, 그 지식, 그 행위를 보시고, 가지고 온 감사를 보니까, 감사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이만큼 자랐구나’ 자란만큼 넘치게 주시지, 모자라게 주지 않는 주님이니까, 주님께 예물은 ‘받는 방법’입니다.

“생축 중에서 드릴찌니라” 그래서, 구약의 제사 5가지, 우선 내가 드리는데, 보이기에는 내가 드리지만은, 이것은 성격이 하나님께 ‘선물’입니다. 받으신 하나님이 선물로 받은 이상,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는대로 다 쏟아주십니다. 두 번째, 성격은 ‘선물’인데, 제사의 내용은 무엇이냐? ‘짐승을 잡아 바쳐야’ 이게 ‘예물’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하필이면 가장 기본은, “생축 중에서 양이나 소로 가지고 오너라”, “짐승을 잡아라” 왜 하필 짐승인가? ‘너를 가지고 오너라’ 시골에서 공부 시켜 서울에서 성공한 사장님이,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게 ‘바빠서 못 갑니다.’ 택배로, 명절마다 사과 한 상자 보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다음, 온라인으로 한 달에 10만 원씩 용돈을 보내는 것도, 예물이며 방법입니다. 그것 보다는 종업원은 시켜, ‘바빠 못 가니, 가서 말씀 좀 잘 드려라.’ 사람 손에 들려 보내면, 훨씬 정성이 들어 있겠지요? ‘내가 회사 문을 닫아도, 직접 가겠습니다.’ 그 정성이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할 때, “짐승을 바쳐라” 이스라엘은 소나 양이 뭐 100마리, 200마리가 흔하고, 천 마리, 몇 천 마리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 양 한 마리 보내면 됩니다. ‘많은 양 중에, 양 한 마리 보내라’ 오늘 우리에게 뭘 요구하시나요? ‘너를 내놔라. 네 속에 순종을 바쳐라’ 하나님 앞에 이해할 수도 있고, 질문할 수도 있고, 항의 할 수도 있고, 데모 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욕을 할 수도 있고. 믿어 보면 그러지 않았나요? ‘열심히 주일 지키고, 열심히 반사하고, 열심히 1년 동안 새벽 기도 참석하고, 기말 고사를 봤으니, 100점 아니겠느냐? 합격 아니겠느냐?’ 하고 딱 떨어져버리면, ‘이런 놈의 하나님!’ 하고 화난 마음은 들지 않겠는가요? 하나님께 분노를 드릴 수도 있고, 섭섭을 드릴 수도 있고, 억울함을 드릴 수도 있고, 항의를 할 수도 있고, 따질 수도 있고, 여러가지 마음 중에 어떤 마음을요? “소나 양을 가져오너라” 주님을 위해서 무언의 충성을. 주님의 말씀이면 ‘예’ 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양순한 양의 순종. 내 마음속에 이런 무언의 순종. ‘어떻게 해야, 나는 추워도 주님을 좀 따뜻하게 할까?’ 양은 털이 많아서, 추위를 견딥니다. 양은 아프리카에 안 삽니다. 양은 털이, ‘양모’ 양털이라, 추운 곳에서 살아 버팁니다. 이 양털로 나를 따뜻하게, 나를 보호하는데, 이 털을 깎아 주님 양모 이불로. ‘나는 추워도, 주님이 좀 따뜻했으면’, ‘내가 욕을 얻어먹지, 주님 욕 얻어먹게 해서는 아니 되겠다.’ 이게 양입니다. ‘그 마음씨를 가져 오너라. 그 자세를 가지고 오너라. 그 말을 가지고 오너라. 그 말을.’ 부억에서 지금 스피커로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녁 식사가 좀 서툴다. ‘나는 요리의 달인인데, 교회들이 뭐 그냥 회비도 적지, 산이라 뜨겁지, 길도 멀지, 이래놓으니까, 뭐 밥하는데, 이 밥맛이 이럴 수밖에 없다.’ 이러면, 자기를 보호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옷을 벗겨 버리는 사람, 회비도 안내는 사람. 밥 투정하는 사람. 별의 별 사람. 이 내계 골짜기에, 식자재 수송도 어렵고 다 불리한데, 누구도 못 할만큼 열심히 해서, 맛있는 식사를 차려 놓고. 그런데, 이렇게 몇 백명이 되다보면, 뭐 또 벌 소리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맛이 이래?’ 그럴 때에, ‘아이고 제가 정성이 없어,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좀 그만 생각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기 털을 깍아, 주님의 양, 주님의 식구, 주님을 아름답게, 따뜻하게 하는 사람. 그걸 뭐라고요? 그것을 ‘양’이라고 그럽니다. 우리 학생들 저하고 얼굴 좀 봐볼까요? 13살에서 19살을 10대라고 그럽니다. 10대들만 저하고 눈을 좀 맞춰 볼까요? 공부를 왜 못 하지요? ‘집에 시끄럽지, 부모님 싸우지, 뭐 학원도 안 보내주지. 하고 싶어도 이게 뭐 어디 길이 있나?’ 부모 옷을 홀딱 벗겨, 자기가 입는 사람. 그 정도 머리에, 그 정도 가정에서, 30명 중에 20등 하기도 어려운데, 2등을 했다치고, 왜 1등 못했지? ‘아! 제가 좀 더 노력할 걸’ 부모가 장사한다고 집에 한 번도 안 들어오는데, 뭐 그거 2등 해도 잘한거 아니야? ‘아니요! 부모님이 장사하고 집에 안 들어와도,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 주셨고, 모든 걸 다 하셔서, 부모님은 할만큼 했고, 넘치게 했습니다.’ 그러면, 학교가 뭣 같지? ‘아니요! 요즘같은 학교가 뭐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좋지. 100대 1 시험 치고, 교사 자격증 딴 분들이 가르쳐주는데, 이만하면 학교도 너무 우수하고, 선생님들도 너무 수고했고, 부모님들도 너무 좋고, 시대도 좋고, 교과서도 좋고, 인터넷 강의도 좋고, 제가 그냥 공부하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이렇게, ‘자기 책임’을 지는 사람. 그런 학생. ‘세상이 험하지, 경쟁회사가 저렇지, 정권이 이렇지, 알아주지 않지’ 남의 옷 벗겨서 자기가 입는 사람. 자기 털을 깎아, 주님을 보호하는 사람. 예수 안 믿고 세상 살 때는 남의 걸 벗겨서 가지고 오는 것이 성공이고, 우수한 사람입니다. 주님 앞에는요? 내가 수고하고, 내가 먹고, 내가 기른 나의 털을 깎아, 주님 따뜻하게! 주님 부드럽게! 주님 보기 좋게! 요즘은 양모 이불도 많은가 보지요? ‘양모 이불. 양털로, 내 수고, 내 결과, 나의 노력의 성공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좀 주님이 더 좋으실까?’ 집으로 가면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더 낫게 될까?’ 이러면 양입니다. ‘부모가 그러니, 내가 이 모양이지.’ 부모 수고한 것을 홀딱 벗겨서, 자기가 입는 사람, ‘교회가 이 모양이니, 내가 예수 믿을 마음이 나겠어? 이게?’ 교회를 벗겨 자기가 입는 사람. ‘절에 가면 복도 받는데, 교회를 다녀 놓으니까 주일이니 뭐니 말이 많아 가지고 세상 살기 어렵지.’ 예수님 입은 옷을 홀딱 벗겨, 자기가 입는 사람, 그런 공격성, 그런 침략성, 그런 육식 고기는, 레위기 11장에서 “먹지 말아라. 까마귀, 독수리, 매, 개, 사자, 호랑이.” 레위기 11장에 가면, “이런 것은 믿는 사람이 먹지 말라”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짐승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른 것을 잡아먹는 짐승은 먹지 말아라. 맹수는 먹지 말아라.’ 맹수 누구라고요? 타락한 인간이 다 맹수 아닌가요? 남자를 누가 잡아 먹지요? 시부모한테 물어보십시오. ‘며느리, 그 년이 아들을 잡아 먹었다’고 그러지. 친정 부모한테 물어보지요? ‘뭐 같은 것이 우리 귀한 딸을, 우리 딸 인생을.’ 다 그러지. 아이들은요? ‘부모가 이러니 뭐, 금 수저가 아니라 나는 흙 수저인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 이런 세상에?’ 부모는요? ‘이만큼 해줬는데, 우리 어릴 때는 책도 없었는데 학교도 못 가는데, 요즘 같은 이런 세상에 공부 못한 네가 못 해서 그렇지!’ 상대방의 수고, 상대방의 결실을 벗겼다가 내가 먹어야 되는게 ‘침략’입니다. 이게 ‘육식성’입니다. 이게 독수리, 까마귀, 매, 사자, 호랑이, 늑대, 여우, 레위기 11장에, ‘이런 것은 먹지 말아라’. 오늘 우리는 음식으로 먹으면 됩니다. 구약에는 이런 것을 먹지 말아라. 왜 먹지 말라고요?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라’ 그리고, 여기 제사 제도에서는, “소나 양으로 하나님께 바쳐라” 요즘 돈 많은데 뭐, 50만원이면 양이나 소나 얼마든지 끌고 오는데, 그거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가져오라고요? 네 속의 분노, 억울, 섭섭, 순종, 별의 별 것이 다 있는게 인간의 마음인데, ‘네 마음 속에 주님 앞에 순종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그 마음을 끌고 와서, 주님 앞에 드리거라.’ 그러면, 신앙생활은 잘 하게 되겠지요? 뭔 회사냐고, 일반적인 회사입니다. 돈 주고, 종업원들 선발에 놨더니만은, ‘보너스가 얼마입니까? 휴가가 얼마입니까? 뭔 노조법이 뭡니까?’ 오만 소리, 돈 가져갈 소리만 졸졸 하는 사람들은 맹수들입니다. 회사 될 것도 안 될 겁니다. 사장님 말씀 하시면 그냥, 새벽에도 오고, 휴일에도 오고, 휴가도 반납하고, 보너스 없어도 좋고, 그러면 양일 겁니다. 내가 사장이면, 종업원은 다 맹수가 아니라, 소나 양 같은 종업원 쓰고 싶을걸요? 내가 사장이면? 우리 아들이 회사를 차리면, 우리 아들 회사에는 전부 양 같은 종업원, 소 같은 직원들만 있으면 좋을 걸요? 내가 교장이면, ‘우리 학교 교사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전부 양 같고, 소 같으면 좋겠다.’ 그럴걸요? 그래 놓고는, 내 윗사람한테는 이거 저거 찔러대고. 이게 바로 우리들이지요. 타락한 인간 속에는 악과 죄 밖에 없는데. 중생된 우리 속에는, 중생으로 말미암아 순종, 소망, 사랑, 믿음이 함께 들어와 있습니다. ‘너의 지난 날, 너의 마음! 너의 인격! 너의 말투! 너의 눈빛! 너의 손길! 중에, 양이나 소로 바칠지니라.’ 왜 양이나, 소지요? 무언의 순종. ‘어떻게 하면 좀 주님이 기뻐하실까?’ 무조건 좋은 교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교인 사이 가운데 들어가 있는 목사가, 주님 것은 받아 와야 되겠고, 교인들 한테는 자세해야 되겠고, 이러면 최악이 되어버리겠지요? ‘부족하여, 주님께 받은 은혜가 적으니, 이 설교 듣는 교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울까?’ 그러니, 예배 시간에 자꾸 일어서지. 은혜로우면, 뭐 일어 서겠습니까? ‘아니, 이 좋은 설교를 하는데 나가?’ 이건 강아지, 이건 호랑이, 이건 여우. ‘주님 앞에 기도 부족하지, 이 부족한 기도에, 이 부족한 준비에, 그래도 은혜를 사모하고 앉았다가 발이 아파, 한번 몸을 비트니 오죽하겠느냐’ 그러면, 이건 뭐지요? 그러면 양이 되겠지요. 속의 양과 소를 추려서, 자꾸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은혜 주시고, 그러면 점점 자라 갈 것이고. “소나 양을 드릴지니라”, “짐승을 잡아”.

그 다음, 왜 이렇게 ‘짐승을 잡아 드리라’는 구약의 불편한 일을, 하나님이 제사 제도로 만들었는가? 오실 예수님. 주님이 오시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 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교재. 시작,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구약에 ‘양을 가져 오너라. 양을 잡아라.’ 그랬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지은 죄, 그 죄를 해결하실 주님이 어린양으로 오실 건데, 오실 주님을 미리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양, 양 중에서도 ‘어린 양’이 더 착하지 않습니까? 순수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가시고, 나를 대속하실 주님. 그 주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어린양! 그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번에는 우리에게 부탁을 하는 겁니다. ‘너는 천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 주님 앞에, 어린’ 무엇이 되라고요? ‘양이 되라!’ 어린 강아지가 되라? 이거 크면 얼마나 짖고 돌아다니겠습니까? 어린 여우가 되라? 천하를 다 삼키게요? 어린 맹수가 되라? 어린 양이 되라! 어리다니요? 이 소리, 저 소리, 지 소리, 다 치우고, 여기 저기 들은 경험, 경력 다 치우고, 오로지 품 안의 아이가 엄마만 쳐다보듯이, 그런데 이것이 양이니까, 원래 순종하는 그 순종이 어린 순종, 순수한 순종.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나의 죄, 지옥 갈 나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순종하는 어린양, 구원의 예수님을 보라” 아! 구약의 양이나 소를 잡으라는 말은, 예수님이 앞으로 오셔서, 날 대신 죽어, 구원한다는 말이구나! 구원의 주님을 잡으라는 말이구나! 구원의 주님은 잡아 놓고, 나는 안 잡고요? 죄는 내가 지어 놓고, 죗값으로 예수님은 죽여 놓고, 그 다음 나는 살아서 펄펄 뛰어 돌아다니고요? ‘내가 죄 지었으니 내가 죽어야 되는데, 내가 죽고 지옥을 가야 되는데, 주님이 대신 오셔서 날 대신 죽어 천국 가게 되었으니, 그 주님이 우리의 구원이라, 우리의 소망이라. 그래서 어린 양을 잡으며, 그 주님으로 구원받은 내가, 주님에게는 어린양 되어 순종해야 되겠구나.’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 10페이지로 넘어갑니다. 10페이지. 구약의 제사 제도. 10페이지만 간단하게 하고 마칩니다. 구약에는 ‘제사 제도’, 신약에는 ‘신앙 생활’. 로마서 12장 1절에 보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아! 구약의 제사의 양을 잡으라는 말이, 나를 잡으라는 말이었구나! 로마서 12장 1절, 다 같이 한번 크게 따라해 볼까요? “너희 몸을 제사로 드리라. 영적 예배니라.” 그렇게 다 적으셨나요? “너희 몸을” 구약 백성들이 양을 잡아라 그래서 잡았는데, ‘이 순진한, 순종 잘 하는 착한 것을 잡아라? 무슨 뜻일고?’ 잘 몰랐는데, 신약의 우리들에게 로마서 12장 1절에, “너희 몸을 제사로 드려라” 자살하는 말인가요? ‘죽지는 말고, 몸은 살려두고, 네 마음, 네 인격, 네 속에 있는 것을 잡아라!’ 그래서,
‘산 제사’입니다.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신약의 예배가 바로 구약의 제사였구나!

왜 이런 제도를 내셨느냐? 아담이 첫 죄를 지어버렸습니다. 그걸 ‘원죄’라 그럽니다. 한번 해 보시지요. 원죄, 본죄. 아담이 지은 첫 죄를 뭐라고 한다고요? ‘원죄’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담이 지은 첫 죄는 뭐라고 그러나요? ‘원죄’라 합니다. 원죄가 되는 첫 죄는 누가 지었지요? 아담이 지었지요. 말을 이렇게 돌려보면 결론이 쉽게 나옵니다. 에덴동산 아담이 죄은 첫 번째 죄. 이게 원죄가 되어, 원죄가 되어, 아담만 죽은 것이 아니라, 아담이 첫째 원죄를 지을 때에, 오늘 우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동참죄’를 지었습니다. 따라합시다. ‘동참죄’. ‘아버지 죄 지은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세상은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담이 우리의 대표였습니다. 대표. 한국의 축구 대표가 중국에게 지면, ‘대표가 졌지? 내가 져?’ 한국이 진게 됩니다. 한국의 대표가 중국과의 대표에서 이기면, 나는 게임을 안했는데도, 한국이 이겼고 내가 이긴게 됩니다. 이런 것을 ‘대표’라고 그럽니다. 아담이 대표가 되어 죄를 지을 때에, 우리는 거기에 시공을 초월하여 동참죄가 되었습니다. 이 죄 값은 사망입니다. 중요하니까 기억하시지요. ‘죄 값은 사망.’ 그 죄 값의 사망을 해결 하려면, 해결을 어렵게 말하면 ‘대속’이라 그럽니다. 대속. 아들이 마트에 가서 라면 한 개를 가져왔는데, 돈을 안 줬습니다. 그러면 빚쟁이입니다. 도둑놈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가서, 라면값을 대신 주고 오면, 주인이 돈 받으러 안 오지요? 이것을 ‘대속’이라고 그럽니다. 대속의 ‘속’ 자는 ‘돈을 주고 해결했다. 값을 주고 해결했다.’ 말로 해결이 안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우리는 지옥을 가야 되는데, 이 죄를 해결하여 천국 가도록 돌려 놓을 때, 하나님이 말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오셔서, 죄 값 사망의 죄 값을 주고, 해결했습니다. 그 해결을 뭐라고요? ‘대속’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대속이라는 말은, 단어 해석을 하면, ‘대신 죽음’ 대신의 ‘대’, 돈 주고 해결하는 것을 ‘속’이라 그랬지요? 대신 죽음. 그게 대신 값을 낸 겁니다. 100원짜리 과자를 아이가 그냥 가져왔으면, 100원 빚쟁이, 100원 도둑입니다. 어머니가 가서 100원 주고 왔으면, 해결이 되었습니다. ‘돈을 내고, 해결해라! 값을 내고 해결해라!’ 죄를 지어 죽었으면, 죽어야 죄가 해결됩니다. 이걸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구약은 죄 없는 양을 죽였고, 그 죄 없는 양을 죽인 그 양이 오실 예수님이었고, 그래서 구약에 죄 없는 양을 죽이며,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는구나. 참 죄송하구나. 참 감사하구나.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내가 예수님에게는 죽어도 순종해야 되겠구나. 나를 잡아서라도, 무언의 순종을 해야 되겠구나.’ 구약의 제사 제도, 제사를 지내면서, 소망은 ‘메시야’였습니다. 메시야. 메시야를 우리말로 바꾸면 ‘구주’입니다. 구주. 구세주. 구세주를 줄이면, 구주. 다른 말로 바꾸면 ‘구원’. 이것을 원래 말로 말하면 ‘메시야’라고 말합니다. 메시야, 구세주, 구주, 같은 단어입니다.

왜 제사를 지내느냐?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소망함으로! 소망함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는 알고 보니까, ‘순종’이었습니다. 순종. 믿음! 순종! ‘양, 소를 제사로 드려라.’ 양과 소의 특징은 뭐라고요? 순종. 순종을 교리적으로 바꾸면 ‘믿음’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소와 양을 잡음으로 대속! 소와 양을 잡음으로 대속, 그것을 ‘제사 제도’라 그러는데, 제사 제도라는 것은, 소와 양의 순종하는, 순종, 믿음 때문에,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메시아가 소망이라, 구약에 이렇게 하셨고. 이게 신약으로 오면, 구약의 제사의 ‘실상’이 예수님. 소와 양은 순종이라 그랬는데, 순종을 교리적으로 바꾸면 무슨 말이라고요? 믿음이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은 두 가지. 첫째는, 인정. 인정없이 덜렁덜렁 따라 나서면, 믿음이라고 안 합니다. 두번째는 순종. 인정하고 순종할 때, 한마디로 말하면, 다같이 기억합시다. 뭐라고요? 믿음! ‘아, 구약의 소와 양과 잡아 제사드리라는 말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구원받고, 이제는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구나!’ 그래서, 앞서 주님이 자기를 잡아 십자가에 죽었고, 그 구원 받은 우리도, 이제는 학교에서도,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집회도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도, 미운 원수 앞에서도, 그들 속에서도, 누구에게 순종이요? 윗사람에게 순종 아닙니다! 누구에게 순종? 주님께 순종. 주님이 부모로 주셨으니, 주님 때문에 부모 순종은, 주님 순종입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순종하는 이유가 성적 때문에 순종하면, 좋은 학생입니다. 주님 때문에 순종하면, 믿음입니다. 대통령이 마음에 영 안 드는데, 주님이 세운 이 나라의 대통령이니, 죄 되지 않으면 순종 할 때는, 하나님은 이걸 믿음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제대로 믿으면, 가정, 학교, 국가, 세계, 이웃 할 것 없이. ‘아이고 참 믿는 것은 뭔가 알송달송하지만은, 믿는 것은 좋아 보인다. 말이 맞다. 좋겠다. 믿어지지는 않지만은, 믿음이라는 것은 대단하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약의 양을 잡아드리는 제사였고, 오늘 신약의 말씀으로 나를 잡아, 나를 순종시켜, 주님 앞에 헌신하고, 걸어가는 이것을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 다섯 가지를 가르쳤고, 오늘 첫 시간에 서론으로 살폈습니다.

다같이, 잠깐 기도 드리겠습니다.

교재를 살펴 배울 때, 구약은 제사, 신약은 예배. 그러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야, 말씀의 칼로 자기를 잡는겁니다. 구약은 소나 양을 잡고. 이게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는 내 속의 소와 양이 어찌 되었나? 순종의 내가 되어, 순종으로 나를 잡아, 주님 앞에 헌신하고 살아야 되겠구나. 주여, 저는 소로 살지 못했습니다.’ 이걸 기도라 그럽니다. ‘주님, 이제는 양이 되어, 주님을 좋게 하기 위하여,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그 자세로 살겠습니다.’ 이런 것이 들어갈 때, 기도라 그럽니다. ‘무조건 합격하게 해 달라, 돈 벌게 해 달라, 병 낫게 해달라.’ 고함지르는 것은 불교에도 있고, 세상에도 있습니다. 또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집회 정도가 될 때는, 제사. 양과 소, 무언의 순종의 양과 소, 주님이 죄 값으로 앞서 자신을 못 박았고, 그러면 믿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정말로 말씀 앞에 나를 좀 잡아! 순종해 봐야 되겠다. 언제 나는 그러지 못했는가?’ 이걸 회개라고 그럽니다. ‘이제는 좀 잡아 살아 봐야 되겠다!’ 이게 각오, 결심의 기도입니다. 내가 나를 순종 시켜보고 나니까, 기쁩니다. 이게 찬송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잡아, 순종의 나! 주의 일로 실행하는 나! 그 기쁨의 찬송, 그 각오와 간구의 기도.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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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 ‘말씀의 칼로 자기를 잡아, 순종의 소와 양이 되자’는 말씀을, 마음 속에 새겨보며, 교재를 살펴보며, 집회 식사, 잠자리, 예배, 또 여러 가지 맡은 일을 하며, 서로 접촉할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이 있으면, 내 속의 자신을 살피며, 그렇게 순종의, 실행의 첫 시간이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면면이 부족한 저들을, 저희 속의 맹수성, 공격성, 별별 죄와 악의 어지럽고 더러운 요소들을, 말??

Comments

교인 2020.06.09 17:14
(기도)
면면이 부족한 저들을, 저희 속의 맹수성, 공격성, 별별 죄와 악의 어지럽고 더러운 요소들을, 말씀의 검으로 잡아, 순종의 소와 양이 되고. 우리 죄 값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 앞 서 어린양이 되신 주님.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의 양과 소를 잡는 제사를 통해, 이제는 주님 앞에 나를 소와 양으로 드려, 주님 보실 때에, 귀하고 귀한 예물로 받아, 무엇을 맡기고, 어떻게 복을 주셔도, 순종이 변치 않고 충성이 그치지 않는, 귀한 우리를 만드는 첫 말씀을 붙들고, 쉬는 시간, 여러 가지 움직이는 활동 속에, 말씀과 찬송과 기도의 예배가 이 골짝을 넘치게 하고, 집회 때에 받은 각오와 결심과 변화의 능력이 또 다음 집회,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신앙의 생활이 말과 이론에 그치지 아니하고, 참으로 자기가 자기를 바로 잡아, 바로 바치는 제물 생활, 바른 예배 생활이 되게 해주옵소서. 어린 학생들, 또 젊은 모든 이들, 활동 하나, 눈빛 하나 조심시켜, 은혜 지장됨이 없게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쉬는 시간에 교재도 살펴보시고, 또 받은 말씀으로 새겨보는 것이 이게 예배입니다. 나는 소인가? 양인가? 나는 맹수인가? 주님 날 위하여 어떻게 하셨는가? 할 일을 하시면서, 마음 속으로는 말씀이 자기를 살펴보고, 구별하는 것이 집회입니다.
 초타 : khr
교인 2020.06.09 17:14
설교요약 – 제사 제도



예배는

1.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 순종을 배우는

2. 원함(①인정 ②순종)으로

          ①말씀 배우고 ②찬송과 ③기도해야 예배

3. 따라서 말씀의 칼로 자기를 잡아야



구약의 소와 양은 순종의 제물, 대속의 예수님을 예표
교인 2020.06.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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