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19.8.6 레1:10 번제의 소의 충성, 소와 양의 비교. 내장 정갱이의 더러움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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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19.8.6 레1:10 번제의 소의 충성, 소와 양의 비교. 내장 정갱이의 더러움을 씻고

교인 3 208 2020.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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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화새 (5대 제사 집회 3)

제목 : 번제의 소의 충성, 소와 양의 비교. 내장 정갱이의 더러움을 씻고

본문 : 레위기 1장 3절 -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이 아침도 주님의 구원, 이 아침도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 부활함으로 죄의 값, 사망의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다 해결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 모든 자본, 모든 사활의 대속을 베푸신 그 피, 그 길을 내신 진리, 인도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부족하고 잘못된 안 팎의 모든 면을 낱낱이 밝혀 정리해 주시고, 배우면 자라며, 끝없이 달려갈 소망의 이 한 길에 얻고 미래의 소망을 실상으로 미리 가질 수 있도록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흠 없는 수컷이라” 제사라는 것은, 죄 지은 우리의 ‘죄의 해결’입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죄 값을 주님이 대신 내고,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제사인데, 죄 지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려면, 주님이 먼저 죄가 없어야 됩니다. 내가 빚을 져서 도망 다니는 신세인데, 빚진 사람, 다른 사람 돈을 갚는다면, 도둑질이든지, 아니면 함께 붙들려 가야 될 일입니다. 죄 지은 죄의 값, 죄로 죽을 우리의 죄를 해결하는 주님은, 죄 없는 주님이라야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죄 없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구약에 가르치기를, ‘죄를 해결 하려면 제사를 지내라’ 제사는 ‘소나 양을 가져와서 잡아드려라’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없는 양을 죽입니다. 죄 없는 소를 죽여 버립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죄 없는 생명이 하나 대신 죽는구나. 누굴까? 죄는 내가 짓고 내가 죽는데, 나 죽을 나의 죄를 지고, 대신 죽는 저 동물, 저 생명 고맙구나. 그런데 미안하구나. 그런데, 이게 누굴까? 이게 무슨 뜻일까?’, ‘짐승을 잡아 죄가 해결될 것 같으면, 짐승을 죽여 지옥에 갈 영원한 죄가 해결이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횡재며, 이런 복은 없는데, 이게 뭘까?’ 그리고, 레위기에 말씀하신대로,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천년간 짐승을 잡아 죽이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무슨 뜻일까?’ 일찍 깨달은 사람은, ‘죄 지은 나의 죄를 해결하려면, 죄 없는 사람이 대신 해야 되는데, 소의 죄는 소가, 양으로 잘못된 것은 양으로, 사람이 잘못된 것은 사람이 대신 해야 되는데, 죄 지은 날 대신 하려면, 죄 없는 사람이라야 되는데, 죄는 없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죄 없는 사람을 따로 보내 겠구나. 그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죄 없는 구세주가 오시겠구나. 그래서 그 뜻을 생각하라고, 그 소망을 가지라고, 죄 없는 짐승을 잡아 죽이는 제사 제도를 주셨구나!’ 어두워 알지 못 하는 사람은, 죄 지을 때마다 양 한 마리 죽이면 됩니다. 깨닫는 사람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죄 없는 어느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는 말이구나. 그 분이 누굴까?’ 눈이 더 밝은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인데, 날 대신 하려면 하나님이 사람되어 날 대신 하겠구나.’ 여기까지 깨닫고 나아간 사람은, ‘나의 죄는 해결은 되는데, 나의 이 죄의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다 대신 받는구나.’ 정신이 번쩍 들며, 죄를 짓지 아니하게 되지, ‘죄 지을 때마다 양 한 마리 잡으면 해결이 된단다. 나는 양이 많으니까,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되는구나.’ 이렇게 복 없게 거꾸로 가지를 아니합니다.

이 뜻을 담아, 3절에 소. 그 다음 10절에 가면, 양 또는 염소. 그 조차 없으면, 14절에 비둘기, 새 한 마리라도 된다. 없는 것은 요구하지는 않으신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후서 8장 12절을 요절처럼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나의 죄를 때문에, 죄 없는 분이 대신 죽는다. 그 분이 하나님인데, 사람되어 날 대신 죽는다. 죄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데, 나의 죄 하나하나 전부의 값을 이렇게 갚는다. 양을 잡아 제사 지낼 때, 또 경제가 좋으면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낼 때마다, 소를 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잡으며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이제는 죄와 싸워 이기겠나이다.’ 마음의 심리가 이렇게 돌아가야, 그게 인간입니다. 좋다고 웃고, 슬프다고 울고, 울고 웃는 것이 전부지, 왜 울며? 왜 웃게 되었는지? 배경을 알지 못하는 것은, 생각없는, 이성없는 짐승과 같다. 또 우리 학생들 생일로 돌아가 볼까요? ‘내가 이 땅 위에 태어났으니까 얼마나 기쁜 날이냐?’ 그거 기쁜 날이지요. ‘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본 날. 생일을 축하하라.’ 난리들인데, 나 생일로 태어난 날, 나의 엄마는 날 위하여 죽다 살아났습니다. 나의 생일은 기쁘지만은, 목숨을 걸고 출산했고, 자기 생명 다 바친, 어머니의 고생이 생일이 된 걸 생각하면,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배경을 알고, 나의 기쁨을 알아야, 이게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내 생일, 친구들만큼 잔치 하라고, 돈! 옛날에는 국 한그릇인데, 요즘은 100만원 잔치인가요? 50만원 잔치인가요? 또, 돈 내놓으라고 부모한테 가서 싸우고, 목소리를 높이니, ‘태어난 너의 생일은 축하를 하지만은, 이 생일을 위해서 목숨 걸고 고생한 희생은 어디 갔느냐?’ 이 관계를 알면, 우리 여기에 있는 학생들은 자기 생일이 되면, ‘저의 이 기쁜 날 어머니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면 인간일 것이고, ‘내 생일, 돈 이것 밖에 안 줘?’ 그건 강아지하고 비슷하지, 그건 뭐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 사람 욕할 때에 개를 갖다 붙이면 욕이라 그럽니다. 개들이 말할 줄 알면, ‘저게 나하고 같으냐? 저게? 나보다 못하지’ 개도 어떤 개는 주인을 평생에 안 바꾸는 개도 있습니다. 인간 100명 모아놓고, ‘나 정도 되는 인간이, 옛날에는 그래도 많았는데, 요즘은 개 정도 되는 인간 몇 명이야?’ 난리가 날 겁니다. 이게 벌 말이 아니라, 주님 오시고 신천신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천년왕국으로 새롭게 되면, 돌도, 하늘도, 나무도, 산도, 강아지 한 마리도 발언권을 가집니다. 지금은 죄로 저주를 받아, 인간은 죄의 말을 하고, 짐승은 생존을 위하여 정보 소통만 하지만은, 주님 오시고 우리가 부활이 되어, 귀가 열리고, 눈이 떨어지게 되면, 나뭇가지에서 나를 지켜본 새가, ‘너 그때 죄 지었지?’ 방송할 겁니다. 우리 집의 강아지가, 하나님 앞에 ‘저 인간, 나만도 못합니다.’ 떠들겁니다. 짖을 겁니다. 알아 듣도록. 이게 ‘만물 심판’입니다. 불신자는 남 안보는데 죄 짓고, 흐뭇하지만은, 믿는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 이 벽이, 저 나무가, 저 강아지가 나를 지켜보며, 하나님 앞에 증언대에 서서, 마구 외쳐댈 그 날을 생각하면, 죄와 싸우려고 하고, 이기려고 하지. ‘아무도 안 보니까, CCTV가 없으니까, 심지어 각서 써 준 도장이 없으니까’ 이 말 해놓고, 저 말을 갖다가 마구 해대고 그럴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태어난 나의 좋은 날, 그 이상으로 고생한 분을 함께 묶어서 생각하면, 이성 있는 사람이고, ‘계산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건 모르겠고, 나는 좋으니까 웃고, 나는 슬프니까 악을 쓰고’ 이성 없는 짐승은 잡혀 먹을 짐승이라 그랬습니다. 짐승은 잡아 먹기라도 하지, 인간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을 모두 모두어 영원한 지옥불에, 꺼지지 않는 영원한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흠 없는 수컷으로 하라”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죄 없는 분이 대신 하겠구나. 이걸 ‘메시야’라고 그럽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해석을 하면, ‘구세주’라 그럽니다. 구세주를 두 글자로 줄이면, ‘구주’. 바로 주님이십니다. 구약에 소를 잡고, 돈이 없으면 양을 잡고, 돈이 없으면 비둘기를 잡으며,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죽어, 영원한 지옥에 불타야 됩니다. 구세주, 메시야 주님이 대신 죽으러 오실 겁니다.’ 미래의 오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제사를 지내면, 계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의 법에 따라,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짐승을 잡을 마다, 한없이 죄송해야 됩니다. 학생들의 생일날마다,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죄송해야 되고. 그래야 그것이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요. “흠 없는” 왜 하필 수컷입니까? ‘가정을 책임지니까’ 예전에 남자는, 힘 있다고 쥐어 박아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면 내리 눌렀습니다. 그런 나쁜 의미 말고, 바로 된 남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의 짐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남자란 ‘수고하는 사람’이라, ‘고생할 사람’이라, 이걸 예수님의 수고, 예수님의 고생은 ‘공로’라고 그럽니다. 한번도 또 기억하시지요. ‘예수님의 공로’, ‘대속의 공로’ 우리 대신 죽고, 우리 대신 고생하셨다. 수고하셨다. 이 수고다, 이 고생이다. 인간이 다 수고 고생하니까, 단어를 좀 달리해야 되겠다 해서, ‘예수님의 수고, 예수님의 공로, 이것은 대속의 공로다.’ 욕은 해도, 남자가 힘은 쎄지요? 그 쎈 힘을 하나님이 주신 이유는, 가족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고. 그래서, 오실 예수님을 여기 “흠 없는 수컷으로 하라”, ‘왜? 예수님을 남자로 표시를 해서, 여자를 비하를 했느냐? 무시를 했느냐?’ 세상이 이렇게까지 지저분하고, 이렇게까지 막 갈 때에, 교회는! 적어도 믿는 사람은, ‘완전자 하나님이 날 여자로 만들었을 때는 이유가 있었겠지? 공연히 여자를 만들어, 인류의 절반을 무시하려고 만들었겠는가?’ 그리고 다시 연구해 보시면, 앞에는 모게가 구원하고, 인도하고. 소리 없이, 모세를 인도자로, 구원자로 만든 것은, 어머니 요게벳입니다. 앞에 나서서 막 그냥 인도자가 되고, 지도자가 되면,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죽을 영광에 속은 사람들이고, ‘저 앞에 모세가 이스라엘 구원하는데, 저 모세는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천사인가 누군가? 나면 다 하수에 집어던지던, 많은 아이 중에 하나인데, 그 아이를 저렇게 지켰고, 길렀구나!’ 남자의 수고인가요? 여자의 수고인가요? 그것을 가지고, 그걸 낳고, 그걸 젖 먹이여, 그걸 애 터지게 비비며 살던, 여자에게 주신, 엄마에게 주신, 성자는 남자이나, 성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반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하는 일이 없다고요? 밥 하면서 아이들 젖 먹이고, 업고 돌아다니는 그게 시시한 일이라고요? 강에다 던진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의 모세를 만드는 일이 시시하다? 여자를 갖다가 순 뭐 그냥 비하를 했다? 보통 정신빠진 소리가 아니지요? 세상은 몰라도 교회는, 우리는, 남자에게 주신 업무, 여자에게 주신 업무, 업무가 다를 뿐이지, 앞선다, 뒷선다 할 수가 없다. 특별히 구약의 “흠 없는 수컷이라” 수컷을 말한 것은,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을 감당하려니까 힘이 들고, 수고를 한다.’ 그래서 힘 있는 수컷으로 가지고, 하나님께서 가져오너라. 이게 ‘준비’입니다.

제사는 크게 소, 없으면 양, 없으면 새, 비둘기라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첫 번째가, 준비물은 소를 가지고 오는 준비물이 있을 때에는 “흠 없는 수컷으로 하라” 누가 가지고 오나요? 죄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의 경제가 있으면 소. 경제가 없으면, 10절의 양이라도 가지고 오너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대로 받으신다.” 그러니, 소망 중에 소를 가지고 올 사람은 소를 가지고 옵니다. 백성이라. 백성이라 했는데, 제사를 드리는 사람, ‘제사자’를 말합니다.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은 제사자이고, 제사를 드리러 오는 제사자, 백성들을 책임지고 진행하는 사람은, ‘제사장’. 제사장, 백성은 제사자. 어디로 가지고 올 것이냐?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 집에 있는 소를, 집에 있는 양을, 여리고에서, 갈릴리에서, 벧엘에서, 예루살렘까지 끌고 옵니다. 그 다음에, 성전에서, 구약 출애굽 때는 성막에서. 왜? 성전, 성막을 ‘회막’이라 그랬는가? 세상과 다르다고 할 때에는 ‘성막’. 여기는 세상과 다른 천국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 뜻은 성막이고. 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 이것을 강조할 때에는 ‘회막’입니다. ‘죄를 지었느냐? 소를 가지고 오너라.’ 어디로 가지고 올 것이냐? 집에서? 또는, 식당에서? 또는, 들판에서? 왕궁에서? ‘왕이라도 회막으로, 백성이라도 회막으로, 멀어도 회막으로. 하나님 앞에 와서 해결을 하자.’ 돈 문제 생긴 사람은 은행에 가야 해결이 됩니다. 또 교도사 갈 문제가 있는 사람은 판사한테 가서 뭔가 해결을 해야 됩니다. 취직을 하고 싶으면, 인사과 계장님하고 뭔가 식사를 하든지, 뭔 눈치를 봐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소나 양을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하나님 앞에. 그래서, 회막은 ‘하나님 앞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오면, 여기서부터 이제 드리면, 자기 것이 안 됩니다. 대구 바로 옆에 청도, 한 40년 전의 일입니다. 몇 명 안되는 시골 읍 교회인데, 양복점을 하는 집사님 한 분의 십일조 연보로 가지고, 교회가 꾸려 나갑니다. 목회자 먹고 사는데, 연보를 예배 시작하기 전에, 강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날 설교 들어 보고, 오늘 설교가 마음에 안 들면, 설교 마치고 기도할 때 와서, 연보 찾아 가버립니다. ‘돈 값도 못하는 것이?’ 이런 사람을 염소라 그러나요? 그래서 우리 공회 목사님들 중에 성격 강한 분이 그냥, 주일날 ‘연보했으면 하나님 것인데, 왜 찾아가?’ 멱살 잡고 싸우다가 처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양이면,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될까요? ‘헌신한 사람인데, 애써 번 돈을 연보한 사람이 오죽 화가 나면 찾아가겠나?’ 그리고, 자기를 잡아 ‘다음에는 돈이 아니라, 은혜 받는 사람이 되도록, 내가 하나님 앞에 나를 더 잡아야 되겠다.’ 이러면, 복 받는 사람입니다. 찾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고. 하나님 앞에, ‘회막에서’ 일단 드려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찾아간 사람은 문제입니다. 찾아간 사람을, 신약에 싸우는 것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구약은, 제사장 주변에는 칼과 창을 든 수비대가 지키고 있습니다. 문지기가. 법에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립니다. 근처,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구약은 이렇게 보이는 싸움이고. 신약은, 소리 없는 전쟁이고. “회막 문에서” 하나님 앞에. 소를 가지고 왔습니다. 소는 주의 일, 복음의 일, 교회의 일을 해내는 일꾼입니다. 수고자, 공로자입니다. 수고란, 하나님 앞에 ‘단번에’, ‘즉각’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소를 끌고 왔는데, 아까운데, 넘겨 줄까? 말까? 문 안에까지 들어올까?’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가지고 와야, 예물이라 그랬지요? 정성을 따라, 소든, 양이든, 비둘기로 나눠질 수는 있습니다. “예물이라” 예물이 제물이라, 속에 감사가 들어 있다가, ‘내가 죄를 지었는데, 죄 없는 주님이 대신 해결하시겠다 하니, 참 감사하다. 어떻게, 빨리 드려서, 이 죄에서 벗어나야 되겠는데,’ 그리고 소를 가지고 왔으니, 회막 앞에서 ‘이 소가 제물입니다.’ 드릴 때에는, 단번에, 즉각 바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회막 문에서”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장소입니다.

이제 회막문 앞에까지 왔으면, ‘즉각’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직은 살아있는데, 이제부터는 내 것이 아닙니다. “이 소에게 안수하라” 안수하라. 4절. 본문 4절입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안수할지니, 안수는 손을 머리 위에 얹는다 했습니다. 왜 머리인가? 머리는 그 밑에 온 몸이 있으니까, 머리란 ‘전체’를 말합니다. 사람은 서서 다닙니다. 머리는 위에 있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은, ‘그 밑의 전부를’. 소나 양은 네 발로 걸어다닙니다. 머리가 제일 ‘앞으로’ 걸어갑니다. 그 머리에, 뒤따라오는 몸 전부를. 그래서, 머리에는 ‘전체’를 표시하고, 안수라는 것은 ‘책임을 떠 넘기는 것’입니다. 소가 죄를 지었나요? 소를 끌고 온 내가 죄를 지었나요? 죄는 내가 지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평생 우리의 죄를 짓습니다. 이 죄는 어떤 죄라도, 죄 하나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목표로,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죄 없는 천국,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목적인데, 왜 죄와 지옥을 만들었을까요? 간단하게, 배부른 아이에게 음식이 들어가면, 그 밥이 그 밥인데, 좋은 줄을 모릅니다. 밥 투정할 때에, 반찬 투정을 할 때에, 더 좋은 반찬, 더 좋은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면, 죽을 때까지 끝 없는 고생이고. 한 끼 굶겨버리면, 다이어트가 되니까 좋지요? 한 끼 굶겨버리면, 그게 반찬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넘쳐, 그러지를 못하지요? 일부러 아이들 반찬투정을 못하도록, 한 끼 굶겨 보신 분 계실까요? 거기 없을걸요? 부부 싸움에 화가 나서 한 끼를 굶겼는지는 모르겠지만은,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은 우리와 비교 못할 만큼 넘치지만은, 모든 택한 백성의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전부 다 걸머지시고, 당한, 사랑은 넘치는 하나님이지만은, 하나님의 사랑은 지혜와 절제가 있어서, ‘이거 굶기지 않고는 모르겠다’ 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은 가차 없이 굶겨버립니다. 인간에게 죄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복인데, 이 복을 하나님 없는 때에, 하나님 없는 고생을 해본 사람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다워지고, 죄 없는, 하나님 없는 세상을 모르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일반의 하나님이지, 좋은 하나님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만드셨고, 죄와 타락을 우리에게 먼저 주셨고, 그리고 능력의 하나님이라 해결하셨고, 하나님 없는 세계와 하나님 있는 세계, 죄를 지어, 죄의 고난을 겪어본 사람과 구원 받은 이 둘을 비교해가면서, 어두움 속에 고생을 해보니, 빛이 좋지 않습니까? 전기 없던 때를 생각해보니, 전기만 봐도 천국이 아닌가요? 전화기 없다가 휴대폰을 쥐어보니까, 휴대폰만 가져도 지상 낙원이 아닌가요? 걸어서 열흘 서울 가다가, ktx 버스를 타고 4시간 만에, 2시간 만에 서울에 가보니까, 똑같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참 천국이다! 이런 천국에 사나?’ 나이 많은 사람은 그러고 감사하고, 애들은, ‘옆에는 벤츠인데 말이지, 우리 차는 10년된 고물차고’ 걸어서 서울을 가본 사람은, 고물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런 천국에! 이런 감사할 내가! 참 세상이 좋다.’ 좋아서 난리이고, ‘이것도 차야?’ 한 쪽은 지옥을 만들고,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주시고, 구원을 주셨습니다.

“머리에 안수하여” 나의 죄를 이 소에 다 떠 넘깁니다. 책임을 다 떠넘깁니다. ‘죄’를 다 떠넘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3절, 4절 본문을 다시 볼까요? “그 예물이” 감사해서 가지고 와야 예물입니다. 그 예물이, 그 선물이, 경제가 좋아서 소를 가져왔으면 잘한겁니다. 소를 태워 드리는 “소의 번제이면”, 소라고 소는 아니다. “흠 없는 수컷으로” 가지고 오너라. 오실 주님이 죄 없는 주님으로, 널 위하여 33년 고난, 대속의 공로를 다 베풀 것이고, 끝 없는 고생을 하실 것이다. 이것을 마음 속에 소망하며, “흠 없는 수컷으로 가지고 오너라” 어디로?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오너라” 문 앞에서? “회막문에서” 가져왔거든, 즉각 드려라! 주님 앞에 충성과 수고는 ‘단번’, ‘즉각’입니다. 월부, 보험, 할부, 적금은 쪼개내고, 나눠내고, 누가 좋아서 내겠습니까? 내야 좋으니까 내기는 내지만은, 잘라서, 쪼개서, 카드도 할부, 차도 할부, 등록금도 할부, 아파트도 할부. 요즘 결혼도 할부하고 그러나요? ‘귀한 이 몸을 그냥 바쳐? 봐가면서 하나씩 둘씩 단계를 거치지’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지요. 인간끼리는 조심하고, 지혜롭게 쪼개고, 나누고, 미루고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 충성은 즉각! 주를 향해서는 단번에! 주님도 단번에 드렸고, 우리도 주님 앞에는 단번에 드리라. 드려놓고, “그 머리에 안수를 해라” 나의 책임을, 나의 죄를 전부 이 소에 옮겨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열납이 된다” 따라하십시다. 열납. ‘기쁘게 받으심’ 그걸 열납이라고 그럽니다. 기쁘게 받으심. 감사해서.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죄는 네가 지었는데, 이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단번에 바치니, 너의 모든 죄를 이 머리에 얹어 버렸으니, ‘오늘은 소가 너를 책임지고, 내일은 오실 주님이 영원한 너의 죄를 다 책임을 지마!’ 책임을 지마, 책임을 지니, 이제는 죄인은 내가 아니라, 나의 죄를 옮겨 받은, 넘겨 받은, 소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은 어떻게 하라고요? 5절 “소를 가지고 온 백성” 제사자입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라” 왜? 죄를 지었으니까, 죄 값은 사망이니까. 나의 죄는 내가 죽어야 되는데, 이 죄를 소에게 옮겼고, 그 다음 소를 단번에 잡아버려라. “잡을 것이요” 죽일 것. 누가 죽여요?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가 가져온 소를 네가 잡아라’ 그러면,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죽였습니다. 나는 안 죽였나요? 신약 2천년, 서양 역사 중에 중요한 역사는, 유대인만 보이면 천주교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구박하고, 많이 죽였습니다. ‘우리 예수님 죽인 원수라고’ 유대인이 십자가 못 박았지요.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나요? 부모 애 먹인 것은 장남이라, 장남만 애 먹였고, 차남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뛰어 내렸나요? 첫째도 부모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둘째도 십자가에 못 박았고, 10명 낳았으면, 열째 막내도 그랬고. 자기 것을 생각을 해야 자기 죄가 해결이 되는데, 자기 것은 쏙 빼놓고, 장녀들하고 대화를 해보면, 장녀는 ‘부모의 고생 절반했다. 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이럽니다. 차녀한테 물어봐놓으면, ‘먼저 태어나 좋은 것 다 먹고’ 또 이럽니다. ‘우리는 입던 것 이어 받고’ 이것처럼! ‘유대인, 이것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다니 말이지’ 죄는 누구 죄인가요? 저는 제 죄 때문에 예수님 못 박혔습니다. 제 죄 때문에 예수님이 못 박혔지, 유대인 죄 때문에 예수님 못 박혔으면, 나는 예수님의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없으면 지옥입니다. 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날 구원하신 예수를 찬송 할 때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죽었다.’ 이것만 생각해야지, ‘저 죄인들 때문에 많이 고통을 당하셨고, 나야 뭐 조금만 애 먹였고’ 이거 계산법이 거꾸로 된 인간입니다. ‘내 죄 하나 때문에, 하나님이 온전히 사람되어 못 박혀 죽었다.’ 이 죄, 이 책임, 이 감사, 이것만 갖는 것이, 여기에 소를 가지고 온 사람이, 머리에 소 안수하여, 나의 죄를 이 소에게 옮겨놓고, 그 다음 바로 잡아버립니다. ‘죄는 사망이다! 다시는 죽어도, 죄는 짓지 말아라.’ 말 못하는 소를 잡아다가 죽이고, 내가 깨끗해지는 것 같으면, 소 열 마리면 열 번 죄 짓고, 소가 천마리 정도 되면, 천번을 죄를 지어도 되지만은, 잡는 소가 오늘은 소인데, 오실 누구인가요? 이게 메시야며, 이게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나를 구원하실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한번 지을 때마다, 짐승을 가지고 와서 자기 손으로 잡아야 됩니다. 소를 잡으며 주님을 잡은 분은, 한번 잡아보고는 ‘두 번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나이다.’ 그래서, 다윗은 범죄 한번하고 난 다음, “눈물로 침상을 띄웠나이다” 눈물로 침상을 띄웠나이다. ‘나의 한 번의 죄로 주님을 내가 잡다니?’ 그래서 다윗은 다윗이 되었고, 사울은, 왕이니까 뭐 소도 많고, 양도 많으니까, 죄 짓고 또 끌어다가 또 죽이면 되고, 또 죽이면 되고, 사울은 죽는 날까지, 짐승 잡은 도살장의 주인이고. 다윗은 짐승을 잡을 때마다, 주님을 잡았습니다. ‘죄는 내가 짓고, 주님을 잡았나이다.’ 이게 들어서, 죄와 싸워 이기는 만왕의 왕이 되어, 오시는 주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 순종의 출발, 아브라함의 믿음의 계통에, 가운데 다윗의 이름을 넣은 것은 죄와 싸워 피 흘려 죽기까지, 만방의 죄와 싸워 다 이겨버리는, 그 다윗이 된 것이, 죄 한번 지었을 때에 눈물로 침상을 띄운, 그 죄에 대한 회개, 그 죄에 대한 아픔, 그 죄에 대한 실감이 있기 때문에, 다윗이 다윗된 겁니다. 다윗은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위의 형들은 왕에게 보내고, 좋은 그런 출세의 길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희망이 있겠나?’ 싶어, 이것은 빼서, 막내 8째니까, 양이나 먹이라고 갖다가 그냥, 어디 갖다 버리다시피 했습니다. 그 다윗의 자세 하나가, 다윗을 다윗 만들었다는 것. ‘도살’

“흠 없는 소를 안수하여”, 그 다음 “잡을 것이요.” 죽일 것. 두 번째는, 죽였습니다. “가죽을 벗겨라” 가죽을 벗겨라. 한번 볼까요? 5절.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하나 빠졌습니다. “잡을 것이요” 그 다음, 잡은 다음 “아론의 제사장들은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에 있는 제단 이면, 저면, 사면에 뿌릴 것이요” 순서는 안수하고, 가지고 온 백성이 소를 죽이고 ‘내 죄는 죽습니다.’ 죽여버리고, 죽이면 바로 피를 제사장이 받아서 뿌리는데, 제사장의 할 일이고, 소를 가지고 온 백성, 제사자가 할 일은 안수한 다음에는 도살하고, 잡고 난 다음에는 가죽을 벗깁니다. 가죽은 밖의 것이지요? 속에 든 것은 고기, 밖에 든 것은 가죽. ‘행위’를 말합니다. ‘죄의 행위를 버리고’ 그 다음에는, “각을 뜰 것이라” 5절 뒤에, 6절. “그는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각이라는 것은 조각 조각. 부분 부분 쪼개는 것을 말합니다. 머리를 쪼개며, ‘이것은 머리로 지은 죄, 이것은 손으로 지은 죄. 이것은 안 갈데를 돌아다닌 발로 지은 죄, 이것은 잘못된 심장으로 지은 죄, 가슴. 이것은 속에 든 배, 못된 마음 죄.’ 부분 부분 똑똑 쪼개야 됩니다.

한번 다시 순서를 보겠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21페이지를 보실까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는, 준비는? “흠 없는 수송아지로 하라” 양이 될 때에는 “흠 없는 또 양으로 하라” 흠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절차는 “준비한 송아지를 가지고 온 백성” 제사자입니다. 장소는 어디라고요? 다 같이 “회막문” 회막문이라니요? 하나님 앞에. 두 번째 가지고 왔으면 어떻게요? “손으로 머리에 올립니다. 안수” 책임 전가입니다. 내 죄를 다 옮겨버립니다. 세 번째는요? “잡아 버림”입니다. 죄 값으로 잡고, 나를 잡고, 주님을 잡고, 그 다음 잡았으니 피가 나오는데, “제사장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그러면, 가지고 온 제사자, 백성은 피를 빼버린 그 소를 구분합니다. 먼저 “가죽을 벗기고”, 그리고 “각 부분, 각 부분을 쪼깨”버립니다. 이걸 조각낸다고 “각을 뜨고” 그리고, “다리와 내장은 씻어야” 됩니다. 뒤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사장은 가죽을 벗기고, 부분 부분 쪼갠 고기를 주면, 제사장은, “단 위에 나무, 나무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다대고 “머리, 소의 기름, 소의 내장, 4번째 소의 정강이를 올려놓고 태우면”,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가르치셨는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22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아론의 자손들은, 5절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가지고 온 제사자 백성이 잡으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왜 하필 제사장 아론의 자손인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계통을 따라’ 아론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 말입니다. 자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계통을 따라’ 그 다음, “피를 뿌릴 것” 생명을 모두 쏟을 것. 그런데 피를 뿌릴 때를 보니까, 5절 뒤입니다.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제단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성막 때 배웠지요? “단 사면에 피를 뿌려라” 소를 잡았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죄의 값은 완전 사망이지, 덜 죽고 일부 살고 그런 것 없습니다. “피를 단 사면에 뿌리라” 여기에도 뿌려라, 저기에도 뿌려라, 이 면에서도 죽고, 저 면으로 죽었고, 오늘도 죽었고, 내일도 죽었고. 어떤 면으로든지, 죄는 ‘사면으로’ 전부 완전 죽어야 됩니다. 결혼의 서약을 받을 때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거나 강건할 때에 변치 않고 사랑하겠느냐?’ 이런 4가지를 물어봅니다. 사면이지요? 기쁠 때는 열심히 믿고, 슬플 때는 죄를 지어 버리고, 그럴 수 있습니다. 돈이 잘 벌리고, 가정이 평안하고, 나라가 편안할 때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이 좋고, 가정이 좋고, 건강하면, 교회 올 틈이 없어 돌아 다니느라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환란이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또 반대로, 어렵다고 짜증 내고 죄 짓던 사람이, 경제가 풀리고, 건강이 좋아지고, 가정이 좋아지면 ‘이거 복을 받았는가보다.’ 싶어서 또 열심히 믿는 사람도 있고. 좋을 때 잘 믿는 사람도 있고, 병원에 입원을 해야 잘 믿는 사람도 있고, 돈이 잘 벌려야 충성하고 뭐,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도 있고. 또 망해서 어려워야 정신 차리는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 다 있는데, 단은 사각형입니다. 정사각형. 네모가 반듯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 때나, 과거나, 미래나, 어릴 때나, 장성할 때나, 혼자 살 때나, 식구가 딸렸을 때나, 이렇게 믿는 사람이 몇 백명 모인 내계 골짝 안에서 생활을 할 때나, 불신자 속에 장사를 할 때나, 착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내들. 할머니, 할아버지, 요즘은 가정마다 아이 하나 태어나면, 할머니 5명, 할아버지 5명 뭐 어른들이 10명 20명이 되어서 전부 하나를 들여다보니까 이거 막 나가는 아이도 될 수도 있고, 복 있는 아이는 여기에서 가르쳐주고, 저기서 막아주니까 어른이 많고, 식구가 많아서 곱게 잘 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단 사면에 피를 뿌려라” 죄의 값은 사망이라. 이럴 때나 저럴 때나, 어떤 때에라도 죄는 다시는 짓지 않겠나이다! 취업이 되면 직장을 따라 죄를 지을 수도 있는데, 직장까지 주셨으니, 직장으로 죄 짓지 않겠나이다. 직장이 좋을 때에는, 열심히 자랑스럽게 충성하다가, 직장 떨어지니까 좌절해서 죄 짓는 사람도 있고, 직장을 떨어지니까 직장 다니느니라고, 성경 못 읽고, 새벽 기도 빠졌는데, 이제 직장 없으니, 이럴 때에 마음껏 새벽예배 보고, 기도하고, 집회 오고, 성경도 실컷 읽어보자! 복 있는 사람은, 돈을 벌어서 돈이 있어서 더 잘 믿고, 돈 없고 직장 없으니까 시간 많으니까 더 잘 믿고, 결혼 못 하고 혼자 사니, 주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충성을 다하고. 가족을 주니, 가족까지 다 데리고 더 충성할 수도 있습니다. 단은 ‘사면’입니다. 사면이라는 것은 ‘전부’라는 뜻입니다. ‘모든 면으로’ 희로애락, 남녀노소, 춘하추동,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거나, 강건할 때에. 이게 자기에게 잘 맞을 때는 잘 하다가, 안 맞는 것이 오면 넘어집니다. 서로 생각하면서. “단 사면에” 전면적으로, ‘이 면, 저 면 여러 면으로, 어떤 면, 어떤 세월, 어떤 형편을 주시더라도, 죄는 사망이다! 다시는 죄는 생명 바쳐 짓지 않겠다!’ 이런 각오를 하라. 그래서, 단 사면의 피를 뿌리게 했습니다.

그러고나면, 다시 5절 “여호와 앞에 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3절과 5절을 좀 비교해 보실까요? 3절에는 그냥 소. 소는 소인데, 5절에 오니까 어떤 소라고요? “그 송아지” 왜 수송아질를 말하는구나. 왜 송아지일까? 계시록 5장에 보니까, “주님이 보이는데, 그 주님을 보니까 일찍 죽임을 당하셨더라”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를 부모로 모신 세월이 30년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나이를 33년으로 표시한 곳은 없습니다. “30년 부모를 섬겼더라”는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 출발을 한 뒤에, 유월절. 유월절은 우리나라의 1월 1일과 같은데, 1월 정월과 같은데, 예수님이 출발한 다음에 유월절을 3번 지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나서 가실 때까지를 자세하게 적었는데, 30년 가정 생활. 3년은 복음 생활을 했는데, 유월절이 3번인 걸 봐서, 3년. 그래서, 33년 쯤, 이 정도가 맞습니다. 정확하게 하면 곤란합니다. 아직 돌아가실 나이가 아니지요? 자라가는 소년은 벗어났습니다. 이제 한참 일할 때입니다. 그래서, “일찍 죽임을 당하신 주님” 아! 나를 대신 죽을 주님은 제명대로 살지를 못하겠구나. 그 뜻으로,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요” 죄의 값, 죄와 더불어 싸우는 생명 바친 투쟁은, 어떤 면, 항상 그렇게 되어야 되겠구나!

6절입니다. “그는 또” 잡아놓은 그 소,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죄의 행위,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가죽은 벗겨버리고, 그 다음 부분 부분, 머리 부분, 가슴 부분, 배, 다리, 앞 다리, 뒷 다리, 하나 하나를 전부 딱딱 조각을 내는 것을, ‘구분’이라고 그럽니다. ‘제물을 구분하라’, ‘각을 뜨라’ 구분입니다. 왜 하필 “머리”냐? 머리도 떼야 되는데, 머리라는 것은 ‘지식’. 왜 죄를 지었지요? 지식의 잘못. 왜 죄를 지었지요? 지식이 가니까 뒤따라 갔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이 머리, 이 생각, 이 지식부터 떼어놓고. 그 다음 소 안에 있는 “기름”을 뗍니다. 8절을 볼까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앞에서 ‘각을 떴다’고 그랬는데,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 하나 전부 조각을 냈구나. 소는 덩치가 크니까, 크게 표현을 했고, 뒤에 양과 염소를 가면, 이제 하나하나 전부 다 ‘표시’를 합니다. ‘머리를 떼고’ 죄를 지었을 때는, 어떻게 하다가 죄를 지었나? 내 사상, 내 지식, 내 사고방식이 어찌 되었길래, 죄를 지었나? 그 뜻으로 머리를 잘라버립니다. 소 머리를. 징그럽지요? 보기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요? 어떡합니까? 지식이 잘못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 죄는 모조리 짓게 되어 있습니다. 남북을 비교하면, 북쪽이 춥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합니다. 춥고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투쟁력이 있고, 생존력이 있고, 그래서, 남쪽 사람들보다는 북쪽 사람들이 많은 면으로 우수합니다. 그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 가는 것보다, 나눠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 나눠먹기 생각 하다가 퍼뜩 들어갔는데, 그 생각 하나가 들어서 지금 70년 저 고생을 사서 합니다. 몇 백만명 굶어 죽었을 때, 남쪽보다 춥고, 추운 지방에 살다보니까 부지런하고, 강하고, 중국과 버티며 싸우다 보니까, 모든 면으로 발전이 된 나라인데, 예전에 지금은 다 세월이 지나서 모르시겠지만은, 30년 전, 40년 전, 50년 전, 남한의 지도자들 대부분, 출신들이 북쪽이었습니다. 서너에 따라 갈리지만은, 김구 북쪽 사람입니다, 이승만 북쪽 사람입니다, 6.25에 나라 지킨 백선엽 뭐 할 것 없이, 다 북쪽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군인 역사 60년의 최고의 장군이란 채명신 장군, 평양 사람입니다. 총리들까지 들어가면 한도 없고. 한 나라 안에서도 춥고, 어려우니까, 훌륭한 경쟁력 있는 우수한 사람들이, 북쪽에 다 몰려 있는데, 이성계도 북쪽 사람 아닙니까? ‘나눠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 생각 하나 들어가고 나니까, 그 다음 북쪽의 수십 년의 불행, 수십 년의 죄는 전부 거기서 다 쏟아집니다. 그 머리를 그냥 둬야 될까요? 이 머리 짤라버리고! 남의 머리를 짤라요? 이 사상, 이 생각, 생각 하나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의 많은 죄는 뒤져보고, 알고보면 전부 사고방식, 생각, 사상, 지식 하나에서, 나머지 몸은 지식 하나에 뒤따라가는 이것은 다 종들이고, 그래서 징그럽지만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은 모든 제사는 죽이고, 피를 쏟고나서 바로 머리를 잘라버립니다. 이 머리! 이 머리! 똑같은 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이렇게까지 틀린데, 뭐가 그렇게 틀린가요? 아이의 생각이 다르니까! 손주의 생각이 다르니까! 가르치는 지식이 다르니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르니까! 그래서, “머리를 잘라 버리고” 지식입니다.

그리고, 이 소 안에 들어 있는 ‘기름’은 다 정확하게 구분해서, 다 도려냅니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지금은 ‘기름’. 기름을 영어로 fat이라 그러지요? 지방. 없어서 빼빼 말라서 다 마른 수수깡처럼 다닐 때, 그때 고기를 먹으면 기름이 깔려서, 얼굴도 번들 번들, 몸도 이렇게 살이 찌면, 전부 ‘아이고 사장이네’ 그랬습니다. 덩치 좋으면, ‘아이고 사장이네’ 부러워서. 못 먹어 죽던 시절, 영양실조로 전부 다 비실비실하던 시절. 먹어서 번들번들 살이 찌면, 전부 좋던 때의 기름은 좋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름은 뭐라고요? 귀한 것. 성경의 기름은 귀한 것을 ‘기름’이라 그럽니다. 크게 기름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식물성 기름, 하나는 동물성 기름. 소나 양을 잡을 때 나오는 그 기름은 ‘귀한 것’. 그 다음, 감람나무의 감람 열매를 찧어서 빼내는 우리나라 들기름처럼, 참기름처럼, 이스라엘 나라는 들기름 대신에, 감람유를 씁니다. 식물성 기름은, ‘은밀하게, 부드럽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 성경을 읽으시다가 기름이 나오면, 이게 동물 기름인가? 식물 기름인가? 보셔서, 소나 양의 동물의 기름이면 어떤 것이요? 귀한 것. 요즘은 암에 안 좋다고, 건강, 성인병에 안 좋다고, 기름은 다 일부러 떼어내는데, 그거 정상적인 세상은 아닙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생긴겁니다. 원래 성경의 짐승의 기름은 ‘좋은 것’. 짐승이 고생해서, 소와 양 풀을 먹고, 하루 종일 풀을 먹고 소화 시켜서, 전부 먹고 좋은 연료는, 영양분은, 전부 기름으로 배에 여기저기 사방에 깔아 놓습니다. 여수 부산에서, 서울까지 출발하는 차가, 냉난방 되지, 빠르지, 안전하지, 음악 틀어 주지, 호텔 같지, 그 모든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요? 연료, 휘발유에서 나옵니다. 그 휘발유 탱크가 든든하면, 든든하게 안심하게 가는 겁니다. 사람의 몸은 피부도 있고, 눈도 있고, 손 발도 있고, 다 활동을 하는데,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손발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연료통, 휘발유 통이 어디 있나요? 이것을 온 몸에, 주로 배에다대고 주로 기름을 깔아 놓습니다. 그래서, 제사의 소와 양의 기름은, ‘귀한 것’, ‘소중한 것’. 뒤에, 지난번에 성막에 읽을 때의 기름은 ‘감람유’. 이것은 은밀하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기름.

그 다음, “기름을” 9절 “그 내장과” 각을 쪼개고 잡았으니까, 머리 짤라 냈습니다. 이것 저것 부분을 다 짤라냈습니다. “이것 전부를 올려놓을 것이요.” 9절,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을 것이라”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으라니요? 내장이란, 속에 든 것! 네 속에 들어 있는 것. 어떤가요? 피부, 가죽으로 덮었고, 좋은 옷으로 입혀 놓으니까, 전부 좋게 보입니다. 요즘은 다 곱게 보입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들은 응급실에 오면, 맹장 수술 하느라고 배를 갈아서, 속을 들여다 봅니다. 여기에 간호사 선생님들, 병원 관계 되는 분들, 이 고운 배를 잘라서 속을 들여다보면, 피 투성이에, 내장에, 징그러워서 못 보겠지요? 지금 이렇게 소를 잡고 있습니다. ‘내장은 씻혀라. 더러우니까’ 속에든 마음, 생각, 다 깨끗하신 가요? 속아지가 다 고우신가요? 옆에서 옆구리 한번 찔러보면, 속아지가 어떤지 나오겠지? 발을 밟아 보면, 나오겠지? 속에 분함, 억울함, 별의 별 것이 다 있어서, 한번 성경 마태복음 15장으로, 한번 잠깐 찾아 보십시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5장 11절입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와 양이 입으로 먹으니까, 속에 소화가 되느니라고 내장이 더러운 겁니다. 그런데 신약의 주님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15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무슨 비유인지요? 설명하여 주옵소서.” 1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17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눈으로 보기에는 더럽습니다. 그런데 배로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버립니다.” 소를 잡을 때에 내장이 더러우니까 씻어라. 눈으로 보기에 더럽습니다. 18절,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게 속에 들어 있는 내장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나니” 마음을 뒤져보니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헤아려보니까,” 따라하십시다. “악한 생각, 미움,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거, 훼방이니”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느니라고 더럽습니다. 그리고 뒤로 대 소변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소를 잡을 때에 ‘각’을 쪼개고, ‘내장’은 꼭 씻혀서 깨끗하게 제단 위에 올려놔야 됩니다. ‘소와 양은 잡아라. 부분 부분 잡아라. 잡아서, 내장을 보면 더럽다. 깨끗하게 씻혀서 올려놓거라’ 이게 무슨 뜻일까? 왜 소와 양은 이렇게 내장이 더러울까? 이것을 보면서, ‘내 속에 들어있는, 여기 19절에, 내속에 들어 있는 악한 생각이 더럽구나.’ 자기 중심의 악한 생각은 씻지도 않고, 소의 내장만 깨끗하게 씻혀다가 올려놓은 사람은 평생 소로 제사 드리고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 내장을 씻을 때마다, ‘이 속에 든 것은 참 더럽구나. 내 속에 악한 생각이 더러운 것이로구나.’ 소의 내장을 씻으면서, 자기의 악한 생각을 씻고. 두 번째는,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아, 옛날에는 미개해서 사람도 죽였지만은, 요즘 사람 죽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뉴스에 나올 일이지. 그런데,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하루에도 몇 번인데? 부부가 화나 놓으면, 하루에 10번이 아니라, 몇 백번 미운 마음이 생길걸요? 하나님은 그거 전부다 살인죄로 헤아리고 계십니다. 아프리카 흑인하고 싸워서, 미워서 살인하는 마음이 생깁디까? 가까운 사람하고 생기지. 이러니 속이 끓지. ‘소와 양을 잡아, 내장을 씻혀라’ 씻을 때마다, 네 속의 속아지 좀 씻혀라! 자기 중심의 악, 그거 씻혀야 된다. ‘어떻게 좀 구원을 해볼까?’ 이것이 생명의 역사인데, 미워하는 자는 살인한 자니, 미움이 되면 구원이 안되고, 구원만 멀어지면 이것은 더러운 것이다. 이것은 씻혀버려라! 아무리 싸워도, 싸우는 것은 싸워도, 미움까지 가면 곤란합니다. 미워하다니요? 미워하다니요? 저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애 터지고, 애 터지다보니까 목소리가 나가고, 밥 그릇이 날아가는 것은 미움이 아닙니다. 호소이지. 점잖아서, 지성인이라, 그냥 속으로 눌러버리고, 입 닫고 웃고 나가버린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사람 같은데, “하나님은 중심을 보느니라” 너는 더 무서운 증오의 살인마구나! 교회 가자고 밥 그릇이 날아가고, 집회 간다고 옛날에는 밥상이 날아가고 그랬는데, 이게 왜 그러냐? ‘어떻게 하면 좀 잘 믿어 볼까?’ 그 과정에 호소하느니라고, 깨지는 소리, 큰 소리, 심지어 우리가 부족하기 떄문에 주먹이 오고갈 수 있지만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이 큰 죄를 좀 작은 죄로 바꿔볼까? 저 작은 죄를 막아 볼까? 그리고 죄를 바꾸어 의로 출발을 시켜볼까?’ 이 심정이 가득 찼는데, 서툴러서, 이게 다듬어지지 않고, 교양이 없어서, 입에서 험한 말이 나가고, 손 발이 나가고, 밥 그릇이 뛰어 돌아다니는 것은, 남들이 볼 때는 미움이라, 살인이라, 증오라 그래도, 하나님이 볼 때에, ‘그것은 열심이다!’ 비느하스의 창은 하나님이 살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죄에 대한 증오! 이 죄로 수도 없는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죄를 미워서 창으로 찔렀지, 사람이 미워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육체의 죄를 보이는 창으로 한 목에 찔렀고, 오늘 우리는 죄 짓는다고 창을 들고, 칼을 드나요? 말씀에 삐뚤어진, 하나님 없는 내 인격, 내 마음, 이걸 말씀의 검으로, 말씀의 창으로 찔러버리는, 죽여버리는 이 일은 구원 운동입니다. ‘어떻게 해야 좀 죄를 덜 짓게 할까? 막아 볼까? 옳은 길로 돌려볼까?’ 그 과정에 목소리가 클 수도 있는 것이고, 손바닥으로 막아낼 수도 있는 것이고, 뭣 모르는 사람은 ‘둘이 똑같아서 싸우네?’ 너는 육체의 사람이라, 겉만 보는구나, 외식이구나! 속에 들어 있는 중심이 뭔지 봐라! 집집마다 불을 질러서, 집집마다 방화, 살인사건이 나는데, 이 인간을 경찰이 묶어다가, 교도소에 좀 집어넣어 놔야, 이 사람도 죄를 덜 짓고, 이 사람 때문에 억울하게 죄 짓는 사람이 줄어들텐데 이 사람 수갑 채워서, 감옥에 집어넣으면, 우리나라 서울 강남에, 그 운동하는 한 삐딱한 사람들 있지요? ‘감옥 없애라’고, ‘사형제도 없애라’고. 사형제도 없앤 그 살인마들을, 그 데모하는 그 인간들 집 앞에다대고 모조리 다 내놓고, 사랑해라? 자기 집 대문은 왜 닫지요? 자기 집 대문에 왜 열쇠는 걸어 잠그지요? 한 사람이 10을 죽였는데, 습관에 의해서. 한 사람을 그냥 두면, 100명을 죽이겠는데, 이 사람을 교도소에 집어 넣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라? 더 많이 죽이라고? 이것을 잡느니라고, 경찰차가 뒤돌아 다니고, 형사들 몇 명이 가서 비틀어서, 피 흘려가면서 묶어다가 교도소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사랑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 놈의 인간들이 사랑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이 하나가 수도 없는 사람을 죽이니, 수도 없는 죄와, 수도 없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묶고, 그럴 때는, ‘그런데 그 속에 있는 중심이 죄와 멀어지고, 죄를 씻는 행위인가?’ 이것을 좀 보셔야 됩니다. “사람 마음 속에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어떤 것인가? 입에서 나오는데 보니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마음을 살펴보니까, ‘악한 생각’, 다른 사람의 구원을 절단내는 ‘살인’, 세상이 좋아서 천국을 잊어버리는 것을 ‘간음’이라고 그럽니다. 세상과 짝이 되어, 주님은 마음 속에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점잖게 아니라,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앉았으면 ‘음란’이 됩니다. 땀은 남이 흘리고, 나는 먹고, ‘도적질’입니다. ‘거짓 증거’는, 진리의 말씀이 아니고, 구원에 도움 안 되는 말은, 있는 것을 있다고 해도 거짓 증거입니다. ‘훼방이니’ 복음 운동의 앞선 자리를 전부 막아서는 것.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이라.” 구약의 소나 양을 잡을 때, 내장을 씻어야 됩니다. 내 속아지를 씻어야 됩니다. ‘내 마음 속에 잘못된 것, 더러운 것, 하나님이 보실 때에 부끄러운 것을 씻어라.’ 내장입니다. 속에 넣어둔 것.

그 다음 “정갱이도 씻어라” 정갱이는 뭐지요? 소가 걸어가는 이 뼈를 ‘정갱이’라고 그럽니다. 발 뼈. 정강이. ‘실행한 것.’ 네 속에 든 것이 내장이고. 더럽지요? 속에 들어 있는 생각대로 걸어갔겠지요? 걸어간 걸음 걸음, 실행한 그 모든 걸음은 더러운 겁니다. ‘더러운 생각으로, 더러운 세상을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 그 생각도 끊어버리고, 씻어버리고, 지난 날의 잘못, 돌아다닌 그 걸음도 전부 다 씻어서 단 위에 올려놓거라.’ 씻지 않고 그냥 올려 놓으면, ‘범성죄’가 되어, 하나님 앞에 진노 받습니다. 성막 안에서의 죄는 하나님께서 대개는 즉사 시켜버립니다. 용납할 수 없다고.

이렇게, 이제 다 잡아서, 그 다음 제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7절 보실까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잡은 소를, 쪼갠 부분들을 전부 불 위에 올려놓거라” 먼저 불을 놓고, 불 위에 나무를 태우고, 나무를 벌여놓아 나무를 태우고. 그 나무 위에 앞에서 잡아놓은 머리, 각, 기름, 씻은 내장, 정강이를 전부 다 올려놓고, 불 질러 태워버리거라. “단 위의 불을”, 태우는 불. 불이라니요?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이 평생을 따라다녀도 배운 것이 없었는데, 세상의 욕망, 자기 출세, 세상에 더러운 것만 가득 가졌는데, 예수님을 평생에 따라다녀도, 더러운 걸음으로만 걸었는데, 예수님이 승천하고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불의 혀같이”, 성령이 불의 역사로 제자들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제자들의 몸을 태운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태웠고, 제자들 속에 더러운 생각과 지식과 모든 미움과 훼방을 태워버렸고. 1차로 태운 것은 ‘진리의 불’이 태웁니다. 속속들이 있는 대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은, ‘성령의 은혜’로 깨달아야 그 다음 다 태우게 되어 있습니다. 단위의 불이라니요? ‘성령의 불이’ 성령의 불을 말합니다.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아라.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잡아놓은 소를 올려놓아라” 예수님이 달린 것이 요즘 같으면 ‘철제 십자가’겠지만은, 그때는 ‘나무로 된 십자가’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주님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모양은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재료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단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장작 나무를 벌여 놓고, 오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벌여놓고, 죄 값으로 완전히 태워버리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을 ‘짐승 잡아, 제단 위에 씻은 고기 올려 놓고, 그 다음 불을 태워 재를 만들어 버리는 것’ 자기 전부를 태울 것. ‘불 위의 나무’는 십자가로 인도하는 겁니다. 나무를 벌여놓고, 주님을 십자가에 벌여놓고, 이렇게 못 박아두고, 그 나무의 제물, ‘자기 전부를 태울 것.’ 죄는 내가 지었는데, 소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오실 주님이, 이 소처럼 나를 대신해서 죽을 겁니다. 그 주님의 대속으로 나는, 구원받은 나는, 이제는 내가 나를 잡아야 됩니다. 순서가 잡힙니까?  생활 속의 죄는 내가 짓고, 죄를 해결하려면, 소를 주님 앞으로, 성전으로 가져가고, 내 죄를 소에게 다 씌우고, 소를 잡아버립니다. 오실 주님이 나의 죄를 기본적으로 해결을 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해결을 해서, 믿는 나, 죄 없는 나를 만들고 나면, 그 다음 뻘대로 돌아다닐 것인가? ‘이제는 구원 받은 내가, 내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죄, 걸어가는 모든 걸음 걸음의 죄. 그 다음 내 행위로 밖으로 드러난 모든 죄를 벗겨버리고, 쪼개 버리고, 씻어 버리고, 오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불살라 나를 구원했으니, 나도 나를 쪼개고, 나를 불살라, 나의 더러운 것을 씻어, 이제는 성령의 불로 태워, 죄 없는 깨끗한 나의 심신으로 살겠나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을 9절 끝에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더러운 소 끌고 왔지. 소를 잡았으니, 소가 죽는다고 난리났지. 피를 단 사면에 뿌렸지, 피 바다가 됐지, 피 비린내가 나지. 가죽을 벗겼으니, 처참하지, 징그럽지. 이것을 팔, 다리, 머리, 내장 기름을 조각 조각내고, 도축을 해놨으니, 뭐 엉망이지. 부엌에 꽁치 한 마리도, 생 꽁치를 잡으면, 비린내 엉망인데. 집에 기르는 닭 한 마리를 잡아도, 그게 얼마나 부엌이 엉망인데. 소 한 마리를 잡았으니 더럽지, 냄새나지, 뭐 피 바다가 되지. 얼마나 징그럽지. 이게 다 죄의 값입니다. 뒤집어 놓고 이렇게 옷을 입고 있으니까, 모두 신사 숙녀들이 되고, 어린아이들은 공주 왕자가 되어, 이렇게 아름답게 몇 백명 모여 있지만은, 가죽을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엉망진창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쪼개고, 구분하고, 씻고, 마지막에 다 불로 태워버리면, 소 한 마리를 갖다가 전부 다 불로 태워놨으니, 그 냄새가 진동을 할 것인데, 하늘의 하나님은, ‘이제 향기롭구나.’ 아니, 이 전쟁터에? 이 피 비린내에? 이 징그럽고 무서운 일에? 하나님은 이것을 내려다보며 ‘이제 향기롭구나’ 흠향하신다 했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됐다. 무엇을 가르칩니까? ‘죄는 안되는 거다. 죄는 더러운 것이다. 죄는 피 비린내다. 네 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전부 다 더러운 내장이다. 걸어간 걸음 걸음 전부 다 씻어버릴 정강이의 그 더러운 것이었다. 완전히 태워서 재를 만들어라! 죄라는 것은 재를 만들어, 흔적도 없게, 다음에는 쓰지도 못하게 만들어라!’ 놀음에 습관이 든 사람이, 화투장을 못 끊으니까, 나중에는 손을 짤라버렸답니다. 손목을. 그러니까, 이제는 노름을 안 할줄 알았는데, 젓가락에 고무줄로 묶어서 또 하더랍니다. 잘라서 죄를 짓지 않을 바에야, 자를 마음도 가져야 되겠지만은, 아 죽어서 해결이 될 것 같으면 자살이라도 하겠지만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 죄며, 잘라도 없어지지 않는 이 악성, 악습, 악령을 어떻게 할까요? ‘몸은 살려 놓고, 속에 들어 있는 이 마음, 생각, 행위, 죄의 잘못된 것과 더불어, 죽는 날까지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 그 제사의 모양을 가지고 소리 없는 전쟁을 하라!’ 구약의 이스라엘은 소를 잡는, 보이는 전쟁. 신약의 우리는 말갛게 겉은 두고, 속에 들어 있는, 집회 오기 전까지 지난날의 내 생각, 내 생활, 내 마음, 내 자세, 내 말투. 나의 지난날의 벌어온 돈의 그 형성과정, 그 돈을 쓴, 돈 쓴 구석구석을 다 조사해 보면, 주님이 ‘참 죄와 멀리, 의롭게 쓰느니라고 고생했다.’ 이렇게 향기롭게 나를 받으실까? 그렇게 되었다면, 안 쓸 돈을 쓰고 싶은데, 쓰고 싶은 그 생각을 잘라버렸고, 태워버렸고, 싸우느니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 죄와의 투쟁을 보며, 그 죄를 태워버리는 냄새를 주님이 맡으시며, ‘죄악의 세상에서 죄와 싸우느니라고 고생한다.’ 이것을 아름답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절 믿는 사람은, 고요한 절 속에 바위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나무 막대기처럼 앉아 있으면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지만은, 기독교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죄악과 싸워서, 피 칠을 하며, 엉망이 되면서, 이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이사야 53장, 오신 주님을 보니까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그러면, 예수님이라고 그려 놓은 사진, 그림은 다 틀린 겁니다. 이사야 54장에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려 놨습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천주교를 중심으로 예수님을 그리면, 멋진, 매꼼한 미남을 그려놓습니다. 마리아는 미녀를 그려놓고. ‘네 죄악 속에 음란으로 그린, 잘못된 예수다! 잘못된 마리아다!’ 예수 기르느니라고 예쁜 마리아가, 그 얼굴이 곱게 있었겠습니까? 험악했겠지. 예수님은, 이사야 53장에 초상화, 사진을 그려놨습니다. 첫 번째 말씀이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의 사진은 못났고, 더럽고, 험악해서 꼴보기도 싫은 그 사진이 예수님의 사진인데, 그런 사진 보셨습니까? 그러면 돈이 안되는데, 그림과 사진을 사가지 않는데. 죄인이 죄악의 눈으로 보니까 미녀, 미남을 그려놓고. 안 됐지만은, 실상은 반대입니다. 왜 그런가? 죄 지은 모든 택자의 죄를 싸워 다 죽이고, 끊고, 거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당신을 다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주님은 ‘그것 참 향기로운 냄새니라’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은 명동 성당처럼 기독교 교회들은 깨끗한 집에, 멋있고 우아한 건물 속에, 아름다운 선남 선녀, 미남 미녀들이, 신사 숙녀들이, 멋있게 예배를 보고 가는 모습을 보고, ‘아! 은혜롭다. 저런데 가서 믿어야 되겠다.’ 기독교 잘못 알았습니다. 세상을 만들어놓고, 아담의 죄를 주시고, 세상을 전쟁터로 만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500년 전의 칼빈은, ‘교회는’ 그 말은, ‘신앙은’ 그 말은, ‘믿는 사람의 평생은, 전투 교회’이다. 죄악 세상이 놔 둡니까? 부부 잘 믿고, 성경 들고, 배불리 찬송하며, 고요하게 예배보고 좋은 말씀 듣고, 좋게 좋게 살아가도록 귀신이 놔둡니까? 남한이 발전하도록 북한에서 그냥 둡니까? 입장을 바꿔서 나 같으면은 그냥 두겠습니까? 원수의 나라 들 쑤시지. 한 나라가 바로 되려고 해도, 안에서 별의 별 짓, 밖에서 별의 별 일이 다 오는데, 싸워가면서 건설하는 겁니다. 남녀 둘이 부부가 되면, 뭐 그날부터 다 천사같이 삽니까? 둘 다 개별적으로는 좋아도, 한 곳에 살려니까 안 맞아서 많은 것이 전부가 다 양보고, 그 양보 속에는 억울함이 있고 분함이 있고, 참음이 있고, 속 터짐이 있는 것을 눌러가면서, 겨우 겨우 하나가 되는데. 교회는? 죄악 세상을 거머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이, 6천년 죄로, 천하 모든 문화와 과학과 지식과 모든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악령, 악성, 악습을 총 동원해가지고 옳게 믿??

Comments

교인 2020.06.09 17:12
악습을 총 동원해가지고 옳게 믿는 신앙 하나를 볶아 먹으려고, 잡아 먹으려고, 짓눌러버리려고, 총 난리가 났는데! 좋은 말, 문화인의 말, 지성인의 멋있는 그런 선진국의 예절 바른 모습으로 교회가 운영이 되리라고 생각하면, 그 교회는 천주교 아니면, 절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싸우면 아름다운 교회인가요? 그 싸운 이유가 그 소리가 나는 것이 둘 다 똑같이 갈라먹기로 세상에 밥그릇 싸움을 하면, 그 인간들은 또 생 지옥이겠지요.

한 사람이 바로 믿어보려고, 한 교회가 바른 길을 찾아보려고, 말세인데 주님을 따라 제단 위에 제물이 되어, 꿋꿋하게 변치 않게 소처럼, 양처럼 걸어가려면, ‘잡아야’ 됩니다. ‘가죽을 벗겨야’ 됩니다. 아무리 더러운 인간도 뒤집어놓으면 깨끗합니다. 아무리 깨끗한 인간도 가죽을 다 벗겨놓으면, 징그러워서 어떻게 봅니까? 그 속을 쪼개보니까, 간, 콩팥, 장.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이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를 읽어보면, 그리고 그림을 그려보면, 실제 그것을 눈으로 보면, 참담해서, 이것은 도살장입니다. 이것은. 백정들의 도살장의 피 바다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것을 갖다가 “향기로운 냄새니라.” 잘한다. 고생한다. 네 속에 죄와 싸우려면 소리가 나는 것이다. 네가 잘 믿어보려면, 네 안의 마음에서도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네가 네 마음을 다 잡으면, 가족과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네 가족이 전부 잘 믿으면, 교회의 다른, 신앙이 다른 다른 가족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그 갈등이 생길 때에 세상식으로 싸우면 세상이고. 모르는 사람은 세상식으로 난리인데, 너는 진리를 알고 말씀을 아니, 양보할 수는 없고, 옳은 것을 지키자니 안 들을 이런 말도 듣고, 안 볼, 저런 이상한 꼴도 보지만은, 그러나 그 속에 자기 중심의 악은 버려라!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의 구원을 잊어버리는 것은 살인이다! 마태복음 몇 장요? 15장 17-19절에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을 하나 하나 손 꼽았습니다. ‘이것을 전부 불태우라.’

여기까지가 ‘소에 대한 번제’입니다. 이제 소에 대한 번제까지가 ‘기본’이 되고, ‘표준’이 되어가지고, 나중에 오전 예배 10절부터, 양이나 이제 염소가 되면 같은 부분은 반복이 되니까 생략하고 넘어가면 좀 속도가 빠를 듯합니다. 오늘 아침에 소의 번제 하나 기억하십시다. 나의 죄 해결하느니라고 고생하신 고난의 주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소를 잡아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머리부터 잘라내거라!’ 생각 하나가 들어, 수도 없는 죄를 짓게 하느니라, ‘내장은 깨끗이 씻어 태워버리거라!’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태워 버릴 자기의 마음, 자기의 생각, 자기 생활 속을 들여다 봅시다. ‘정갱이도 씻어서 태우거라!’ 걸어온 지난 날의 나의 걸음 걸음, 어떻게 걸어왔는가? 우리 다 더럽게, 부끄러운 것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바칠 귀한 기름, 성령의 역사는 따로 모아 하나님께 바치거라!’, ‘행위로 더러운 가죽은 다 벗겨 버리거라!’ 소의 제사.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초타 : khr
교인 2020.06.09 17:12
설교요약



 ① 월후 : 레위기 5대 제사

  - 창조 (출발) – 성막 (동행) – 생활법 (실행) – 제사 (헌신)

  -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신앙생활과의 관계

  - 소와 양의 제사로, 대속의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나타냄

 

 ② 월밤 : 제사 제물

  - 형편에 따라    (소, 양 염소, 비둘기)

  - 예물이 되어    (흠 없는, 수컷으로)

  - 법대로            (준비, 절차, 분배)



 ③ 화새 : 번제 1

  - 소의 번제 (자기를 죽여, 무언의 지사 충성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짐)

  - 절차 (감사 준비, 즉시 드림, 피 흘리고 태워져서, 완전 속죄된 향기)
교인 2020.06.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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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경님이 입장하셨습니다.

gyu111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엄동환-질서속 성장 강동주교님이 입장하셨습니다.  [08/07-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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