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후19.8.6 레2:1 자기 결실을 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주관을 없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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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후19.8.6 레2:1 자기 결실을 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주관을 없애는

교인 2 167 2020.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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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화후 (5대 제사 집회 5)

제목 : 자기 결실을 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주관을 없애는

본문 : 레위기 2장 1절 -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기도 드립니다

(기도)
우리 죄, 우리의 영원한 지옥의 고난 대신하여, 소처럼 해결하사, 대속의 공로로 완전 해소해주신 주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어디든지 끝까지 순종함으로, 영생의 소망에 이르는 모든 순종, 믿음을 다 해결해주신 주님. 성령의 비둘기 같은 화친의 역사, 성결의 역사, 앞서 다 해결하사, 기본 구원으로 구원한 이 은혜를 깨닫고, 구약은 소망으로, 신약의 오늘 우리들은 말씀으로 자기를 잡으며, 주의 대속 감사하여, 주의 원하는 일 소처럼 끝까지, 양처럼 끝까지, 비둘기의 성령의, 성결의 역사로, 우리 마음과 우리 몸 속에 남아있는 악성과 악습을 회개 시키며, 주님 앞에 끌어다가, 온전히 드릴 수 있는 헌신의 생활, 이름만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과 행동만 달라, 생활 속에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깊은 모든 인격과 행위와, 말 하나 생활까지가 성결하여, 하나님 아버지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금번 집회도 레위기 5제사를 살펴볼 기회를 주신 주님. 할 일 많고, 갈 곳 많은 8월 첫 주간에, 다시 한번 내계로 불러 부족한 저들에게, 살아온 날을 심각하게 돌아보며, 소리없이 앞 날을 뜨겁게 각오하게,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앞서 가신 주님 그대로 가도록, 은혜와 기회를 허락해 주셨으니, 이 시간도 말씀으로 함께 하실 때에, 말씀이 나를 잡는 제사되게 하시고, 제사되는 나를 보며, 기뻐, 소리 없는 찬송이 나오게 하시며, 구하며, 주님 앞에 주의 인도를 바라는, 기도의 말씀, 찬송의 말씀, 나를 잡아 불로 사르는 귀한 제사의 예배 시간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장과 지금까지의 4번 말씀은, 짐승을 잡아 죄를 해결하고, 죄가 없어지면 하나님의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서 쏟아지는, 그런 신앙의 생활을 ‘짐승 잡아 드리는 제사’로 살펴 봤습니다. 짐승 잡아들이는 면으로 한 가지 살펴보면서, 2장에서는 농사 지으면, 여러가지 종류의 곡식이 나오는데, 곡식을 ‘가루로 갈아’ 이것을 밥으로 먹습니다. 이스라엘은 떡으로 먹습니다. 고기 잡아 먹고, 또 가루로 떡을 해 먹는 것이, 크게 두 가지의 ‘양식’입니다. 소를 잡아 양식 삼고, 신앙의 힘을 삼고,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먹어, 천국을 향하여 걸어가는 양식을 삼는데, 고기를 잡아 드리는 것이, 주님의 ‘대속의 피’를 말씀하기 때문에, 이게 제사의 기본이고, 우리에게 보조로, 보충으로 함께 가르친 것이 ‘가루를 갈아’ 드리는 ‘소제’의 제사입니다.

2장은 소제의 제사입니다. 1절. “누구든지” 믿는 우리만 해당됩니다.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교재 30페이지입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따라하십시다. “고운 가루로” 소제라는 것은 곡식의 제사입니다. 소제 말고는 짐승의 제사입니다. 짐승은 산 채로는 못 드립니다. 반드시 죽여야 됩니다. 반대로 곡식은, 반드시 갈아서 드려야 됩니다. 이게 콩인지? 쌀인지? 밀인지? 어느 것인지 모르도록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는 것이 ‘고운 가루’로 드리는 곡식의 제사. 곡식을 갈아서 드리는 제사, ‘소제’입니다. 소제의 ‘소’는, 산소, 수소, 질소 이런 걸 ‘원소’라고 그러지요? 더 이상은 쪼갤 수 없는 상태를 ‘요소’라고 그럽니다. 그 ‘소’ 자입니다. ‘완전히 갈아버리는 일’, 좋게 말하면 ‘고운 가루’로. 고운 가루로. 나를 드려야 되겠는데, 내가 짐승이라면, 내가 벌 망아지처럼 내 멋대로 사는 나는 잡아서 드려야 되고, 하나님 앞에 다 죽지를 않아서, 내 소리 나오고, 집안 소리 나오고, 돈 소리 나오고, 자기 고향 소리 나오고. 그러지 못하도록, 완전 잡아 드리는, 내가 짐승이면, 잡아드리는 것이 번제. 내가 주님 앞에 열심히 살아, 맺은게 있고, 얻은 것이 있다면, 초등학교 6학년 공부하면, 무슨 곡식, 알맹이를 주나요? 초등학교 졸업장. 3년 더 공부하면, 중학교 졸업장. 졸업장 한 장이지만은, 3년의 시간, 3년의 땀, 3년의 고생이 졸업장 하나로 열매가 맺혀집니다. 의사 면허증 한 장은, 한 장이지만은, 그 알맹이가 보통 따글따글한 귀하고 비싼 알맹이 아닙니까? 모든 종류의 졸업장, 모든 종류의 면허증, 결혼하여 아이가 하나, 둘, 셋 태어날 때마다, ‘그 하나 때문에, 둘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시간이 갔을까? 애가 터졌을까?’ 모든 땀방울, 모든 노력, 모든 수고, 밭으로 가면 곡식 알맹이가 되고, 돌아다니는 나를 짐승으로 본다면, 짐승은 잡아야 되고, 번제. 모든 나의 노력, 결실은 곡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결실을, 노력을, 수고를 하면, 꼭 값을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했다면, 졸업한만큼 아는 척하고, 대학을 나왔으면 대학을 나왔으니까, 학사 자격이 있다고, 이 소리, 저 소리 하고. 석사는 그 소리 더 하고, 박사는 그 소리 더 하고. 많은 곡식, 많은 알맹이가 다 좋지만은,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갈아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소제는 곡식의 제사인데, 그 곡식 알맹이는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의 노력, 자기의 결실을 가루로 드려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이게 소제입니다.

“고운 가루” 고운이라니요? ‘알갱이가 없도록’. 듣고 있나요? 알갱이가 없도록 그러면, 무슨 말이 되지요? ‘고운 가루’입니다. 알갱이가 없도록, 엉어리가 없도록, 앙금이 없도록. 병원에 가면 만져보면서, ‘딱딱한게 잡히는데요? 배 안에 딱딱한게 잡히는데요? 가슴에 딱딱한게 잡히는데요? 멍울이 있는데요?’ 잡히면 뭐지요? 옛날에는 그냥 멍울이라 넘어갔는데, 어디든지 잡았는데 단단한게 잡히면, 앙금. 엉어리가 잡히면, 의사 선생님 뭐라 하지요? 암! 엉어리는 푸는게 자기 건강에도 좋습니다. 꽁 하고 앉았으면, 마음에도 엉어리, 앙금이 남습니다. 이게 1년, 5년, 10년 계쏙 가면, 몸 속의 위장이든, 간이든, 대장이든, 가슴이든, 이게 살이 단단해져서, 뭉쳐지면, 그것을 종양, 암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께서 다리 불편을 왜 만드셨을까요? ‘벌 대로 돌아다니지 말아라!’ 눈이 불편할 때는, 뭘 깨달으라고요? 안과 가서 안경도 쓰고, 치료도 하지만은, ‘뭘 잘못 봤나?’ 저처럼 위장에 탈이 생겨, 음식을 조심할 때마다, ‘먹을 것을 꼭꼭 앂어, 바로 먹었느냐?’ 그냥 급하게 마구 그냥, 먹어야 될 때 굶다가, 한 목에 먹을 때는 많이 먹다가, 울컥 울컥 이렇게 살다보면 위장이 절단이 납니다. 왜 절단이 나게 만들었을까요? 고장이 나야 사람이 고쳐지지. 고장이 나야, ‘말씀을 먹을 때 먹고, 말씀을 그냥 삼키지 말고, 꼭꼭 생각하고, 따져보고, 그렇게 말씀을 들어야 되겠구나’ 그러다 보면, 위장도 좋아지고, 신앙도 탈 나지 않고 좋아집니다. 걸어가다가 발을 다쳤을 때, ‘잘못된 길을 걸어갔나?’ 그렇게 회개하라고. 몸 안의 살갗이 딱딱하게 잡히면, 암이라고 그럽니다. 이거 풀지 않으면, 큰일 나지요? 내 신앙의, 내 성격의, 내 인격의, 하나님 앞에 엉어리가 없도록, 앙금이 없도록, 몽우리가 없도록. 말씀으로 자기 주관, 자기 소원, 자기 식을 완전히 갈아엎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신앙의 암이 되어, 자기를 삼켜버립니다. 가장 쉽게 교회 다니면서, ‘저 인간 때문에!’ 그러다 보면, 속에 맺히는게 있습니다. 없을 수가 있나요? 있지. 강당을 향하여 맺힌 사람이 제일 많을 것이고, 교인을 쳐다보는 목사는 그러면 엉어리가 안 생기겠습니까? ‘아이 좀 이해하고 따라오지, 저렇게 해?’ 설교하는 목사 속에도 엉어리가 남아 있고, 강당 쳐다보는 교인 마음에도 엉어리가 남아 있고, 그 정도니. 교인과 교인끼리는 가정에서 살아가면서, 교회 활동하면서, 심지어 이렇게 집회에 와서도, ‘우리 교회만 청소 다 하네?’ 또, ‘왜 우리교회는 하필 화장실 청소만 하지?’ 이게 뭐라고요? 자기, 자기 입장, 자기 생각, 두 번 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그게 뭉쳐집니다. 그럴 때에, 따뜻한 물로, 손 바닥으로 살살 마사지를 해서 풀어주면, 건강에도 좋고, 신앙에도 좋은데. 꽁 하고 앉았으면 뭉쳐지고, 뭉쳐진 것이 따끌따끌해지면은 그거 하나님 앞에 못 씁니다. ‘갈아엎어 버려라!’ 어디에다대고 갈아 버릴까요? 

교재 가운데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1절, “두 여자가” 따라하십시다. “매를 갈고 있으매” 성경의 여자는 신앙의 사람을 유혹하는 세상을 말할 때도 있고, 안 좋을 때 말하면 여자입니다. 좋은 면으로 성경의 여자라고 할 때에는 주님의 짝, 주님만 쳐다보고 살아야 될 신세, 교회의 교인을 여자로 많이 가르쳤습니다. “두 여자가” 구약 교회, 신약 교회. 이런 교인, 저런 교인.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맷돌을 ‘매’라고 그럽니다. 줄이면. 오전에 비둘기로 제사를 드릴 때, 무엇을 뗴어 버리라고요? “멱통을” 멱통의 ‘멱’은 목이라고 그랬습니다. 여기 맷돌은 ‘매’라고 그럽니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우리나라는 혼자 매를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성경의 맷돌은 아래 짝, 윗 짝이 있어서,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 간답니다. “두 여자가” 신앙의 사람들이, 교회가, “매를 갈고 있으매” 교회를 맷돌로 가르쳤습니다. 교회는 부자도 와야 되고, 실패한 가난한 사람도 와야 되고, 남반도 와야 되고, 여반도 와야 되고, 별의 별 곡식, 별의 별 엉어리, 옹알이, 멍울, 한을 다 맷돌에 집어넣으면, 맷돌짝이 돌아가면서 다 갈아붙여서, 부자의 교만도 갈아 엎어, 교회와서 하나님 앞에는 부자의 교만이 표시가 나지 않아야 신앙생활을 바로 했고, 옳은 교회입니다. ‘부자이니, 큰 연보로 교회가 신세를 졌습니다.’ 자꾸 강조를 하다보니까, 세상에 돈 빨이 먹히듯이, 교회도 돈 빨이 먹히기를, 이게 좀 이상하게 계속 먹혀가면, 맷돌 짝에 들어온 곡식이, 맷돌이 가는데 갈리지 않고 버티고 앉았으면, 고운 가루로 떡을 만들어, 주님이 만족하게 드실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세상 살면서, 게을러서 가난해놓고, 잘못 살아 망해놓고, 세상이 잘못되어서 자기가 거지가 된 것처럼, 부자 욕을 바락 바락하고 사는 것이, 실패자,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점인데, 제가 부자의 단점을 먼저 말했습니다. 가진 사람, 잘난 사람 부자들은, 교만 벗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운가? “약대가” 말보다 큰 낙타가, “바늘 귓구멍에 들어갈찌라도 부자는 하늘나라 들어가지 못한다” 부자 자체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졌으니 교만하고 건방져서, 하나님 앞에 가려 하지를 않습니다. 맷돌을 갈아도, 안 걸려 버립니다. 이게 부자의 단점. 가난한 사람들의 단점은, ‘내가 저 소득인데, 나는 소외 계층인데, 나는 흙 수저인데, 부자 저 놈의 인간들이! 저것들 때문에 내가 망했다’고 악을 바락바락 씁니다. 자기 떄문에 자기가 망했지, 뭔 부자 때문에 자기가 망했으리라고. 가난한 사람을 연구해보면, 게으른 것이 공통입니다. 또 도박성이 있어서 실패한 그런 경력이 많습니다. 지식이 삐둘어져서 오판한 것이 많고, 그것을 고치면 저절로 먹고 살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지혜롭고 판단이 바르면, 어느 정도 부자는 되게 되어 있는데, 이 부자의 장점은 교만해서 하나님 앞에 못 쓰고, 가난한 사람들은 남 욕하다가 하나님 앞에 못 씁니다. 부자는 교회에 오면, 교회의 복음의 말씀의 맷돌로 갈아서, ‘돈이 일만 악의 뿌리구나. 조심해야 되겠다. 하나님이 주면 부자이지만은, 가져가면 별 것 없겠구나.’ 가난한 사람은 ‘돈이 있으면 돈의 종, 하룻밤 인생 허송할까봐, 하나님께서 뺴앗아갔으니, 열심히 성경 읽고, 게으른 것은 고치는게 좋겠다.’ 거지 나사로가 잘 믿으니까, 하늘나라 그 부자 아브라함 품에 안겼더라. 세상에서는 아브라함이 천하의 부자, 거지 나사로는 천하의 거지였는데, 하늘나라 가보니까, 하필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 품에 앉혀놨습니다. 주신 형편은 달라도, 신앙은 같았고 충성은 같았습니다. 둘은 동급이다. 하나다. 이래서, 교회의 말씀을 배워, 자기의 실패, 자기의 가난을 연구를 해보니, 남 욕할 것이 아니라, ‘내가 게을렀고, 내가 오판했고, 내가 도박성이 있고, 내 속에 잘못이 있고, 내 그릇이 그 모양이라, 하나님이 맡기지 않았더라.’ 이렇게 자기를 갈아버리면, 멍울이 없으면 암도 안 생길 것이고, 암 거쳐간 분들, 다리 아프면 ‘잘못 걸어다녔나?’ 이것을 회개하듯이, 눈에 고장이 생기면, ‘뭘 잘못 봤을까?’ 이것을 회개하듯이, 암이라는 것이 슬쩍 거쳐가면, ‘하나님 앞에 뭔가 대놓지 않고, 갈지 않은 것이 있었나?’ 이렇게 회개를 하면, 어지간히 회개가 되어질 겁니다. 저처럼 뇌로 올라가는 혈관이 막히면 뭘 회개하지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느 부분이 막혀 버렸나?’ 그러면, 좋을 걸. ‘아니, 이렇게 충성하는데 막아? 그냥 절로 가버릴까?’ 한 개 더 막아버리지. 하나님 앞에는 대들고, 요나처럼 억지를 부리고, 그런 못된 심사를 가지고 버티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는 싹싹하고 곱게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처럼, 소처럼. 내가 노력한 자기, 내가 땀을 흘려 가진 월급, 나의 위치, 그 모든 것이 곡식인데, 그 귀한 곡식인데, ‘그대로는 안된다! 말씀으로 갈아버려라’ 어느 정도 갈 것이냐? ‘고운 가루가 되도록’ 고운 가루라는 말은 뭐가 없도록? ‘알맹이’가 없도록, ‘앙금’이 없도록, ‘응어리’가 없도록. ‘다니다 보니까 공회 교회를 다녔지만은, 기회만 있으면 다른 교회 갈란다!’ 저도 많은 세월 그런게 있었습니다. ‘아 옆의 교회는 뭐 주고 뭐 주고, 좋은 것 하고, 연애도 하고 뭐도 하고, 좋은게 꽉 찼는데, 학교에 가보면. 이 교회는 남반 여반 나눠 앉히지, 집에서 연보 받아가지고, 52주 연보 받아가지고 다 드리는데, 목사 아들은 1등 상 주고, 저한테는 연필 한 자루 주고 말이지.’ 그럴 때마다, ‘그냥 옆에 거창 교회 가버릴란다.’ 이런게 응어리입니다. 그거 갈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끼리 응어리가 제일 많이 생길걸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에게 섭섭한게 많을 걸요? 부모님은 그러면, 자녀한테 그냥 100프로 늘 고맙습니까? 마찬가지지요. 가까운 사람끼리 부딪치며 응어리가 생기는데, 그거 갈으라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해 놓은 겁니다. ‘그 아들놈이라야 네가 회개하지! 그런 부모라야 네가 배우고 고치지!’ 그런 여자가 들어 붙어놨으니, 롯이 회개를 해야지, 회개 안하니까 모압과 암몬 족속이 튀어나와버렸습니다. 역사의, 교회의 암 덩어리, 모압과 암몬 족속. 롯의 처가 신앙이 없으면, 롯의 처를 보면서 롯이 자기 속의 응어리 없도록, 철저하게 갈아야 될텐데, 둘이 똘똘 뭉쳐, 같은 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둘이니까 모압, 암몬 2개나 나와버렸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처음부터 둘이 좋은 사이였던가요? 애굽에 내려갈 떄에, 여자 인물 걸고, 돈 받고 재산을 챙기는 것을 보니까, 아브라함 이 인간도, 여자 팔아서 돈을 챙길, 인간 같지 않은 사람으로 출발은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며, 자라가며, 서로 고치며 그러다가, 고운 가루로 다 갈아 엎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루라는 것은, 교재 ‘갈아버린 곡식’

“그 가루를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예물은 선물이라 그랬습니다. 예물, 선물, 제물. 다 같은 말입니다. 속에는 감사가 들어 있고, 밖에는 정성을 쌀 때에 예물입니다. “만약에 곡식 가루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를 예물로 삼는데, 기본인데, 그 위에 무엇을 부으라고요? “기름을 붓고” 기름은 성령의 역사를 기름이라 그럽니다. 물은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게 하는 것.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 말씀을 자꾸 생각해보면, 더러운 옷을 물에 자꾸 헹구는 것처럼, 그렇게 자꾸 더러운 것이 빠져나가고, 말씀으로 때를 깨끗게 합니다. 그래서, 말씀은 더러운 것을 세탁하는, 그런 ‘정화’의 진리의 역사를 말하고, 성령은 그 말씀 속에 내 양심을 감화 감동하여, 남은 모르는데 자기는 알 수 있도록, ‘은밀’하게, ‘고요’하게 역사하는 이 면을 가르쳐서, ‘기름’이라고 그럽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 한번 따라해보십시다.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주님 믿고, 주님으로 받은 기름 부음이 있다? 뭘까? 믿는 사람은 전부 기름 부음이 있다. 뭘까? 그랬는데, 그 뒤에 붙이기를,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가르치리라” 아, 성령이 가르친다는 말이구나. 예수님이 오셨으니, 이위 성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하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시면서, “내가 가르친 것을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하리라.” 그리고,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라” 했으니까, ‘아, 성령을 기름부음이라 했구나. 왜 기름이라 했을까?’ 기름은 은밀하게, 고요하게, 부드럽게 나가니까. 보통 물이 부드러운줄 알지만은, 물로 자꾸 씻어보면, 연한 살이 헐어버립니다. 그럴 때에 기름으로 바르면, 부드럽게 그게 해결이 되어지지요. 말씀은, 더러운 것을 씻을 떄에는 물입니다. 말씀은 내 속의 잘못된 것을 짤라낼 때에는 칼입니다. 말씀은 좀 억셉니다. 칼!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물! 내 양심에 찾아오셔서, 나를 감화 감동하는 양심 속의 영감의 역사는 혼자만 알지요? 양심의 가책, 다 있지요? 믿는 사람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남들은 성자라고 칭송을 하는데, 남들은 배운다고 난리인데, 자기는 정작, 자기 양심 속에 성령이 감화와 감동을 줄 때에, 그거 머리 숙여 죄송할 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름은 성경에 ‘성령의 역사’. 1장은 번제였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잡습니다. 소, 양의 짐승을 잡아, 그 안의 기름은 ‘귀한 것’이다. 동물성 기름, ‘지방’을 말합니다. 그것은. 소제의 기름은, 소나 양의 기름덩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성 기름. 그냥 식용유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식용유. 구체적으로 요즘 다 건강에 좋다는 올리브 유 있지요? 그 올리브유가 성경의 ‘감람유’입니다. 이것은 불을 켜서 불도 밝히고, 치료도 하고, 소제의 기름으로도 쓰고, 바르기도 하고, 제사장을 삼을 때에도 바르는. 부드러운 식물성 기름, 식용유. “가루를 예물로 드리거든 기름을 부어라” 첫째는 “가루를 만들고, 가루 위에다대고 기름을 부어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된다. 성령의 역사 없이 자기를 부인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싶어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부인하지 않으면. 인도 사람은 자기 부인을 잘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불교가 나왔고, 거기에서 모든 종류의 요가니, 자기 절제는 전부 인도에서 나오는데, 그 인도 사람들은 자기를 잘 부인하는 종교성이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것이라, 아무리 부인해봐야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흔히 기독교는 뭐 용서니, 사랑이니, 자꾸 그러다보니까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돌려대라고 그러니까, 인도의 간디식의 무저항 주의인줄 아는데, 기독교는 무저항 주의가 아닙니다. 칼빈은 500년 전에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 그랬다 그랬지요? ‘전투 교회라’ 그러면, 교회가 칼 들고, 총을 쏴야 될 것인가? 육체의 싸움, 혈육의 전쟁 말고,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와 싸우는, 신령한 전쟁. 좋은게 좋으니, 다 내주고 히죽거리고 웃으면, 절에 가야 됩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무조건 자기를 괴롭히고, 자기만 부인하면 된다면, 인도에 가서 요가를 하든지, 불교를 믿어야 되고. 기독교는, 말씀 앞에, 말씀으로, 말씀에 맞서는 자기와의 전쟁! 기름은 ‘성령의 역사’

기그 다음,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1절을 다 같이 보고 계십니까? 성경 본문. 2장은 소재라 그랬습니다. 소제를 드리는 방법은, “곡식을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는다. 기본입니다. 그 위에 무엇을 붓고? “기름을 붓고” 성령의 역사로 들이부어, 기름부음이 너희 속에 있었니, 너를 부인할 때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너를 부인해라. “그 위에 유향을 놓아라” 향은, 계시록 5장에 가니까, 계시록 5장 8절에 가니까, “이 향은 성도의 기도라” 향을 ‘기도’라고 그랬습니다. 또 한번 기억해보십시다. “이 향은 성도의 기도라” 향이라는 것은 더러운데, 냄새가 나는데, 더러운 냄새를 깨끗하게 정화를 시키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을 향이라고 그럽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데, 안 보이는데 계시지만은, ‘그 어찌 내계집회 모이는 사람들의 심사는, 그 집회의 내용은, 그 교인들의 모든 마음가짐이나 모든 활동은, 서로 이해적이다. 그거 말씀적이다. 그거 감사적이다. 싸우는 것은 자기와 싸우는구나. 남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기다릴줄 아는구나.’ 그리 되면, 볼 수 없는 하나님, 멀리 계신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맡으시고, ‘세상에 제일 악한 것, 독한 것, 막가는 것들이 한 골짝에 다 모여놓으니, 그것 참 정화조 통 같구나. 아주 뒷 골목 잡상인 같구나.’ 이래놓으면, 소리없이 멀리계신 주님이 ‘그 어디서 이런 냄새가 나나?’ 이게 향기로운 냄새, 이렇게 말씀을 비교했기 때문에, 기도는 바로 ‘향’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마음 속의 향, 믿는 사람의 마음 속의 기도에, 그 기도가 하나님을 향할 때에,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받기 때문에, 유향은 ‘기도의 역사’입니다.

교재를 한 페이지 넘겨서, 32페이지입니다. 한번 또 다시 성경 레위기 2장을 보십니다. 1절은 금방 했습니다. 곡식의 가루에, 무엇을 더하지요? “기름을 붓고” 그 위에는요? “유향을 놓은 상태” 불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유향을 놓은 상태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소제로 가지고 온 것중에 한 줌만 쥡니다. 그리고 “제일 위에 올린 유향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를” 모든 유향. 가루와 기름을 섞은 기름 가루는 한줌만 들고, 그 위에 놓은 유향은 전부를 다 놓아서, “그대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이것은 가루를 단 위에, 가루 그대로 불 살라 버리는 겁니다.

4절을 보실까요?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화덕은 불 구둑을 말합니다. 아궁이를 말합니다. 피자집에 피자 그대로 굽는, 진흙으로 이렇게 화덕을 만들어놓고, 불판을 그대로 넣어버리는 그런 화덕.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곡식을 가루로 만들고, 성령의 감화, 기름으로 버무리는 것은 기본인데, 한 줌을 그대로 단 위에 드리면 그대로 제사. 4절에는 이것을 집에서 화덕에 구워서 오면, 구운 가루, 구운 제사. 5절에 보면, “번철에 부친 것으로” 번철은 후라이 팬 같은 것을 말합니다. 번철에 불을 붙이고, 번철에 지져서 부친 것으로 드리려거든, ‘부친 소제’입니다. 그 다음에, 7절에 가면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앞에 저를 보시고, 몇 가지 종류가 지금 나왔지요? 4가지입니다. 가루에서 기름에 섞어 그대로, 가루 그대로 가지고 오는 방법 하나. 집에서 화덕에 구워서 오는 방법 하나, 둘. 번철에 부쳐서 지져오는 방법, 하나. 마지막에 4번째는요? 가루를 솥에 삶아서, 그 다음 가져오는 방법, 그대로 가져오는 제사. 화덕에 구운 빵으로 가져오는 제사. 번철에 지져서 파전처럼 그렇게 가지고 오는 제사, 소제. 그 다음 물이 있는 솥에다대고 삶아서, 삶아서 가지고 오는 제사. 넷! 네가지가 있고, 마지막 5번째는, 14절입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농사를 지어 첫 이삭이 나오거든, 그것도 하나님께 드리는데, 그 첫 이삭은 반드시 가지고 올 때에, “볶은 상태에서” 이삭을 볶아서 찧으면 고운 가루가 되지요. 그것을 소제로 삼아라. 그러면 총 5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소제의 종류, 5가지. 교재 32페이지 위입니다. 가루는 그대로 ‘제사’입니다. 그대로. 구워, 어디에? ‘화덕’에. 부쳐, 어디에요? ‘번철’에. 삶아, 어디에? ‘솥에’. 볶아, 볶는 것은, 찧어가지고 와야 됩니다. 찧어드리는 5가지 방법으로, 너의 열매, 너의 곡식, 너의 수고, 너의 땀, 너의 결실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너라. ‘따끌따끌한 알맹이 그대로는 안된다! 직장에서 가진 열매, 가정에서 맺은 수고, 1년마다 올라가는 진급,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수고, 열매, 결실들이, 하나님 앞에 주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할 때에는 전부 맷돌로 갈아버려라. 세상 것 그대로는, 하나님 앞에 가져가지 못한다. 갈아서 가져오너라!’ 말씀으로 갈고. ‘네가 짐승이 되어 몹쓸 짓을 했거든, 네 멋대로 돌아다니던 벌 망아지 같은 너를 하늘나라 그대로 가져가지는 못한다. 뛰고 싶으면 뛰고, 짓고 싶으면 짓고, 떠들고 싶으면 떠들고, 일어서고 싶으면 벌떡 일어서고. 모두 앉아 있는데 드러 눕고 싶으면 드러눕고, 네 멋대로! 네 주관, 그런 삶아 있는 짐승은 죽여,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완전 너 자신을 죽여라!’ 1장의 번제의 짐승을 잡아라, 2장에 너의 결실, 너의 수고 귀한 것인데, 그것을 먹고 사는 것인데, 월급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졸업장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면, 나중에 노년에는 아이들 덕에 먹고 살지 않습니까? ‘보리, 콩, 옥수수, 여러 가지 열매처럼, 알고보면 이런 저런 자기의 수고가 결실이 되고, 열매가 되어 이것으로 먹고 사는데, 하나님 앞에 가지고 올 때는 완전히 갈아, 가루로 가지고 오너라!’ 5가지입니다.

그러면, 32페이지 중간에, 5가지 제사 중에, 제 1번. 요리를 하지 않고, 불을 쓰지 아니하고, 집에서 가루 위에 기름을 섞어서, 그대로 바치는 ‘가루 소제’. 두 번째는, 구워 드리는 ‘구운 소제.’ 세 번째는, 지져서 드리는 ‘부친 소제’. 네 번째는, ‘삶은 소제.’ 다섯 번째는, ‘볶은 것을 찧은 소제’. 5가지 중에 그냥 갈기만 갈아서 바치는 제사를 ‘가루 제사’라고 그럽니다. 본문 2장 2절. 교재 가운데입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는데, 그렇게 섞은 고운 기름 가루는, 얼마만큼 가져오라고요? ‘한 줌’. 그 위에 올려놓은 유향은 얼마만큼 가져오라고요? ‘모든 유향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는 것’이 가루 소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겁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께로 다 가야 됩니다. 곡식은, 자기가 맺은 수고와 열매와 가진 결실은, 내가 그것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먹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라. 한 줌을 떼어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습니다. ‘주님이 만족하시고’, ‘주의 만족대로 인간도 만족하고’. 주님도 드시고, 우리도 먹고. 주님도 가지고, 우리도 가지고. 번제는 다 태워드리고. 소제와 화목제 2가지는,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나눕니다. 첫 번째로, 가루 소제를 드리고 싶은 백성은, 제사자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싶은 제사자 백성은, “고운 가루에” 자기를 완전 부인하라. “기름을 붓고” 성령에 붙들려, “유향을 놓아” 기도의 사람이 되어지거라. 이게 기본적인 소제의 근본입니다. 이걸 기본으로 하고.

34페이지, 이렇게 하고. “그것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하나님 앞에 가져와라. 하나님 앞에. 그 중에 기념물로 가루 ‘한 줌’만 들어, 단 위에 태웁니다. 화목제와 소제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적게’ 드립니다. 십일조처럼. ‘1년 수고하여 번 돈, 한 달 수고하여 번 돈, 이것으로 먹고 살아야 되는데, 그것 없이 어떻게 먹고 삽니까?’ 그러면 불신자이고. 믿는 사람은, 월급 받아 다 연보하고 굶고 삽니까? 똑같이 일을 해서 월급을 받은 다음, 10분의 1을 떼서 하나님께 드리며, 왜 하나님은 10분의 1이고, 우리는 10분의 9인가요? 하나님과 우리가 1대 9로 나눠 먹으면, 우리가 더 많이 먹는데? 우리가 하나님보다 9배나 더 중요합니까? 그게 아니라, 이 땅 위에 할 일, 이 땅 위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혜를 주셨는데, 그냥 놔두면 하나님을 잊어 버리니까!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하나 두시는 것처럼, ‘에덴동산이 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그 표시로, 에덴동산을 다 주시면서, 중앙에 선악과를 하나 심어놓고, ‘이것은 손대지 말아라! 먹지 말아라!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주인이다. 주인을 알고 살아라.’ 그 뜻입니다. 그것처럼, 한 달 수고하여, 한 달의 월급을 받으면, ‘이 한 달 주님이 주신 태양 아래,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주님이 주신 기회에, 주님이 주신 직장에서 한 달의 월급을 받았으니, 이것 전부 주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내가 먹고 살아야 되니까, 전부는 주의 것인데, 전부가 주의 것이라는 뜻으로, 표시로, 10분의 1은 주께 드립니다.’ 수고도 안한 하나님, 내가 직장 다닐 때에 주님이 나를 업고 다니셨나요? 내가 다녔지. 그런데, 10분의 1을 뗄 때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었습니다. 시간의 주인, 생명의 주인, 건강의 주인, 이 나라 전쟁 없고, 이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소리 없이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번 전부는 다 주의 것입니다. 농사 짓는 사람은, ‘하늘의 태양을 주셨고, 땅을 주셨고, 비를 주셨으니, 이 곡식 전부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먹고 살아야 되니까, 10분의 1을 떼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수고가 10분의 1이라는 말이 아니고, 전부는 하나님의 것인데, 그 표시로 10분의 1을 떼고, 10분의 9로 내가 그것을 은혜 삼아, 그것을 양식 삼아서 삽니다. 소제라는 것도 가루에 기름을 섞어, 그 다음 한 줌만 하나님 앞에 단에 불사릅니다. ‘이 가루, 이 곡식, 이 제사, 이 생활 전부는 주의 것입니다. 주의 은혜입니다.’ 한 줌은,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습니다. 내가 먹지? 왜 제사장을 주나요? 이스라엘은 12지파 중에, 레위 지파 하나를 따로 떼어가지고, 레위 지파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관계만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12지파 중에, 다른 지파가 십일조를 드리면, 제사를 드리면, 이것으로만 레위 지파는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레위지파를 떼어 내버리면 더 부자가 될 것 같은데요? 10프로나 투자가 많아지고, 적금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네 몸의 주먹만한 심장을 떼서 내버리면, 얼마나 가뿐하게 잘 달리겠느냐? 그래봐라.’ 자동차가 가벼워지면 빨리 달립니다. 하나를 떼 내면서, 연료통을 떼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보통 우리나라 승용차가 50리터 들어가면, 50리터이면 대개 50킬로일 것인데, 50킬로를 들고 다니려니까 얼마나 차가 무겁습니까? 기름통 50통 떼어내 보지요? 아예 엔진을 떼어내면 더 무거우니까, 더 빨리 갈까요? ‘기름통과 엔진이 차를 데리고 다니는 힘이다! 생명이다! 네 심장이 네 60킬로, 80킬로 몸을 평생 움직이는 그게 원동력이다! 그것을 떼나니?’ 하나님의 백성, 12지파의 심장이, 하나님의 백성 12지파의 연료통이 그게 레위지파다! 그래서, 다른 지파가 레위 지파를 책임을 지고, 레위 지파는 그 중에 아론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직접 책임을 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레위 지파를 책임을 지고, 레위 지파를 먹여 살리는 것이 바로 ‘자기를 먹여 살리는 일’입니다. 내 심장을 관리하는 것이, 나 몸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되는 것처럼. 엔진과 연료통을 잘 관리하는 것이, 차 전체가 힘이 있는 차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가루의 소제의 한 줌은 십일조처럼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로 가는데, 이 가루의 제사장에게 가는 소제가, 제사장 가족들의 식사가 됩니다. 그 레위 지파를 소제로 먹이는 것이 바로, 내가 신령한 양식을 먹는 일입니다.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가루 한 줌. 하나님께는 한 줌만 ‘최소’로 드리고. 화목제와 소제는 사람이 먹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유향은 다 드립니다. 기도는 전부 하나님을 상대로 해야 기도입니다. 밤새도록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은 관심도 없고, 중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내일 시험에 합격해야 됩니다. 합격해야 됩니다.’ 그 소리만 밤새도록 반복하면, 그걸 ‘주문’이라 그럽니다. 주문 종교를 ‘미신’이라 그럽니다. 천주교까지 주문으로 나가다 보니까, 천주교하고 불교는, 동양의 천주교는 불교, 서양의 불교는 천주교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기도문을 적어 놓고 녹음기처럼 1번, 2번, 10번, 몇 천년 그것만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번 생각도 안 해 보고! 나 하고 싶은, 내 소리만 하고 앉았습니다. 기도 잘못된 겁니다. 기도는 누구를 향하여요? ‘하나님을 향하여 다 드리고.’

그리고, 한 줌을 단 위에 올립니다. ‘단 위에’. 2절 뒤편에 “고운 가루 한 줌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모두입니다. “모든 유향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번제의 모든 제물들처럼, 단 위의 어떤 제사도 하나님 앞에, “불사를지니” 완전히 없애는 것이 제사입니다. 짐승이든, 가루든 재가 되어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 “이는 화제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타는 연기를 하나님이 맡으시고, 기뻐하시니, “향기로운 냄새니라” 향기로운 내새, 두 글자로 줄이면, ‘향내’라고 그러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스라엘 나라의 국방은, 이스라엘 나라의 행복은 하나님이 기뻐하면 전부 해결! 아무리 다윗과 솔로몬의 강대한 나라를 만들어 놔도, 솔로몬 때는 은이 길에 돌처럼 흔했더라, 길바닥의 백향목이 뽕나무처럼 흔했더라. 전부가 뭐 그냥, 행복해서 요즘 우리들처럼 차고 넘쳤지만은, 하나님이 기뻐하면 만국의 약소국 이스라엘 위에 국방과 영육의 넘치는 은혜를 주셔서 만방이 두려워하고, 만방이 배우러 오지만은, 하나님이 ‘이것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하나님이 섭섭하시면, 그 다음부터는 만국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마구, 맹수, 이리, 사자 떼가 소리를 지르듯이, 짐승, 맹수의 소리 지르는 소리가 날아갑니다.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동양 이쪽 끝에 우리나라하고, 저쪽 우리나라 반대쪽에 이스라엘 나라는, 양쪽 나라는 약소국, 나라는 조그만한데, 위에도 강대국, 밑에도 강대국, 옆에도 강대국, 이스라엘 나라가 토끼라면, 로마, 알렉산더의 그 무서운 그리스, 앗수르, 바벨론 밑에는 3-4천년 전에 잘 나가던, 애굽 나라. 세계 열강들이 뺑 둘러 싼 곳에 구약의 이스라엘을 두셨습니다. 신약의 한국 땅은 옆에 13억의 세계 제일 조폭 하나 떡 버티고 있지, 5천만 그 속에 다 들어가도, 흔적도 안 나옵니다. 또 오른쪽에는, 세계 제일의 칼을 가진 사무라이, 섬 나라가 미국을 한 때 한번 잡으려고 했던, 이런 세계적으로 특이한 일본이라는 강대국,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세계 속에 못 하는 것은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일본 옆에 제일 가까운데 사는게 우리나라니까, 옆에 이웃은 항상 좀 조심을 해야 되는데, 저게 세면 내가 당하니까, 세계는 일본을 강대국으로 보는데, 깡패 나라 옆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만 일본을 쪽바리라고 우습게 압니다. 이게 불행입니다. 도둑질하러 들어오는 도둑놈이, 칼을 가졌을까봐. 맨손으로 들어오다가 들키면, 급하면 부엌칵을 쥘까봐, 도둑이 부스럭 거려도, ‘강도가 아닌가?’ 이래야 가정을 지킬 것 아닌가요? 강도가 돈 뜯으러 칼 들고 들어오지만은, 실수로 죽일까봐, 살인자일까 봐 두려워야 해야 이게 가정을 지키는 지혜이고, 이게 상식인데, 살인마다 죽인다고 생 난리를 하는데, ‘에이 설마? 말 한번 해봤겠지.’ 이게 제 정신인지? 이게 미개한 저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그럴 일인지? 머리는 세계 제일 똑똑하고, 약삭 빠르고, 뭐 그냥 오만 것은 다 갖췄다는데, 미국이 한 때 죽었다가 살았다할 만큼 식겁한 일본, 미국은 지금도 일본을 겁을 내가지고 틀어쥐고 앉았는데, 일본이 화나면 우리는 임진왜란처럼 하루 아침에 그냥 끝나는데, 한국 사람만 왜놈들을 쪽발이인줄 알고 시시하게 생각을 합니다. 세계는 겁을 내는데. 이거 바꿔야 세상을 삽니다. 왜 세상 이야기를 하지요? 세상이 흔들리면 교회가 추워집니다. 울타리가 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 운동하러 나가지는 못하지만은, 알고는 계셔야 됩니다. 5천년 우리가 노예 생활하던 중국, 이쪽에 있지요? 반대 쪽에는 미국이 속으로는 겁 내는 일본이, 조폭처럼 사시미 칼을 들고 옆에 찌르지요. 이쪽에는 러시아 북극곰, 한 때 미국과 50년을 싸웠던 러시아 있지요? 겉으로는 점잖지만은, 속으로는 웃어가면서 세계를 다 집어먹는 제일 무서운 미국이 남쪽에서 들어와 있지요? 사방의 조폭, 사방의 강대국, 사방의 맹수 속에 한국 교회를 두심은,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이 말씀과 다를까요? 그 말씀 우리를 위해서 주지 않았을까요? 구약의 이스라엘이 그렇고, 신약의 한국교회가 입장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약소국중의 약소국. 군대도 가지지 못했던 이스라엘이 다윗 때에 세계를 제패하는 대왕 다윗이 되었고, 만국이 와서 배우는 솔로몬이 되었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이쁘게 보면, 어디에서 무엇을 갖다 오든지, 이렇게 치켜 올려버리고. 하나님께서 섭섭하고 진노하시면, 어디에서 밀려왔는지, 천하에. 그 원래 바벨론, 앗수르 같은 나라가 원래 강대국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매 맞을 짓을 하면, 매를 쓰기 위하여 아무 것도 아닌 바벨론을 제국 바벨론으로 만들어서 불러 들입니다. 한국 교회를 하나님께서 혼을 내시려고 들면, 뭣도 아닌 북한이 핵을 가지고 난리고. 다 굶어 죽다가 겨우 살아난 러시아가 또 다시 또 저렇게 나오고. 몇 천만명이 굶어 죽던 중국이 저렇게 나와 버리고. 별의 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데. 국가적으로 불신자들은, 하나님 없이 세상을 살 때에는, 큰 것한테 붙어야 살까요? 작은 것한테 붙어야 살까요? 서울에서 제일 센 조폭들은 광주에서 올라갔고, 광주 조폭들은 여수, 순천 어깨들이 올라갔습니다. 순천 시민파 조폭들은 유명한 조폭들인데. 힘 없는 내가 살아 가려면, 1등 조폭 밑에 굽히고 사는게 좋을까요? 3등, 4등 밑에 세금 내고, 거기 붙어 사는게 좋을까요? 맞아 죽습니다. 내가 1등이면 좋지만, 내가 1등 못 하면 큰데 갔다 붙어야, 세상은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니까, 누가 제일 크지요? 하나님. 영원 불변의 하나님이 제일 크니,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붙어야, 그게 원리적으로 맞습니다. 안 믿는 대한민국은 세계 1등 하는 나라에 빌붙어 살아야 앞 날이 있고, 강대국한테 안 까부는게 좋고, 이런 걸 보면서, 믿는 우리는 ‘그래 보나, 저래 보나 마찬가지라’ 로마 제국은 망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의 미국보다 2천년 전의 로마제국은, ‘이 나라는 망할 리가 없다. 다른 나라와 격차가 너무 차이가 나 버리니까.’ 그 로마제국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야만족에게 망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없는 세상은 억센 놈, 강한 놈, 센 놈이 제일이다. 네가 약하면 센 데에 붙어라. 그런데 그렇게 센 것들도 하나님께서 뒤집어버리면, 하루 아침에 또 불쌍한 신세가 된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영생은 없다. 영원 불변은 없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 세상은 소망이 없다. 그러면서, 믿는 우리에게 ‘믿는 사람은, 죽으나 사나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저 가정은 좀 챙겨봐야 되겠다.’ 이러면, 어디에서 왔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모여서, 넘치게 되어지고, ‘이제 우리 잘 믿어 복이 많으니까, 하나님은 좀 뒤에 계셔도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빠져나가면서, 하나님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모래 바닥에 물 빠져나가듯이,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이 그리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미신이니, 맹신이니 뭐니, 말을 하든지 말든지, ‘죽어도 하나님! 살아도 하나님! 잘못 되도 하나님! 잘 되도 하나님!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면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섭섭하시면 어떤 것도 해결은 없다!’ 이걸 다 담아서, 짐승을 잡아 번제로 태우는 냄새를 하늘에 올라가는데, 그 냄새가 하늘이 올라가봐야 100m 가겠습니까? 1,000m 올라가겠습니다? 우리는 태우니까 태운 연기가 올라가고, 우리 눈에서 보이지 않으니까, ‘위로 올라갔겠지’ 하지만은, 영계의 하나님이 그 향기를 맡으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말씀을 따라 너를 잡아, 너를 완전히 부인을 했구나!’ 이것을 시공을 초월하여, ‘그 이쁜 것, 내 말을 듣느니라고 애썼다.’ 그 가정의 앞 날이 풀리는 겁니다. 그 사람의 앞 날이 풀리는 겁니다. 대기업 수위실의 수위 완장만 차도, 요즘은 결혼 잘합니다. 공무원들께는 좀 죄송하지만은, 옛날에 9급 공무원 시청 청소부 누가 했나요? 그거? 벌써, 10년, 15년 더 된 일인데, 서울의 구청에서 청소부를 구하니까,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막 몰려대더니만은, 좀 더 지나가니까 이제 100% 대학생인데, 대학원생들도 들어가더니만은, 몇 년 전에는 박사까지 신청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 기업의 수위만 해도 어깨에 힘을 넣고, 결혼에 떵떵거리며, 자랑하며 값을 올리는데, 대기업 회장님이 전화 와서, ‘네가 누구 아들이냐? 내가 누구다.’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면, 뭐 벼락 출세한다고 난리가 나겠지요. 하늘의 하나님이 미신이 아니고! 돌 부처가 아니고! 정말로 하나님이라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며, ‘그 공부하느니라고 바쁠 것인데, 집회 가느니라고, 그 산 속에 가서 쭈그러치고 앉았냐? 그것 참 애쓴다. 선물 주는 것도 아니고, 찬송 부르고 뭐 율동하고 기분 푸는데도 아니고,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성경 전체 중에서 제일 어려운 창세기 1장, 그 다음으로 어려운 출애굽기 25장, 성막 공부. 역대상 1장에서 9장 복잡한 족보. 이번에는 레위기 1장에서 5장. 읽고 또 쳐다보면 다 잊고. 읽고 또 보면 또 헷갈리고.’ 이런 것을 붙들고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며, ‘참 수고한다. 이쁘다. 놀러간 것도 아니고, 연애하러 간 것도 아니고, 갈데가 없어 그런데를 갔을까? 하나님 때문에 갔느냐? 말씀 때문에 갔느냐?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은혜가 귀하다고 앉았느냐? 모르고 가도 앉았느냐?’ 알든 모르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나머지는 해결이 된다!’ 그러면, 종교고, 신앙이고 믿음이 될 것이고. 말은 그래놓고, 속의 중심은, 속의 가치관은 전부 세상으로 옮겨놓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의 칼로 도려내고, 그거 다 갈아 엎어버리라!’ 그러실 겁니다.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따라 하십시다. ‘향기로운 냄새’, ‘하나님께서 기뻐하심’ 중요한 말입니다. 기뻐하면 되고, 안 기뻐하면 끝나고. 이 나라 최고의 재벌 두 가정 결혼했는데, 서로 기뻐하지 않으니까, 갈라선 이야기 아시지요? 미원 재벌 딸, 삼성 재벌 아들. 우리 공회 핵심 교인과 다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이라, 그 가정 사정을 좀 압니다. 엄마들끼리, 유치원 때부터 동기가 되어 가지고, 어릴 때부터 자라는 것을 보고, ‘너희 딸 주라’, ‘너희 아들 주라’ 이래서 두 재벌 결혼할 때, 겉모습만 보니까, 천하에 제일 행복한 듯 보였습니다. 뭐 탤런들 결혼이야 더 드라마 같을 것이고, 겉보기에는 그렇게 좋게만 보입니다. 속은 어떨까요? 돈 벌어주는 동업자는, 미워도 돈 벌어 주니까 함께 가겠는데, 결혼 생활을 밉상인데, 우리처럼 먹고 살게 없으면 밉상이라도 할 수 없이 같이 살 것인데, 많아서 넘치는 사람이, 밉상을 데리고 뭐하려고 살 겁니까? 나눠 살아야지. 하나님이 뭐가 부족해서, 우리한테 아쉬운 소리, 기뻐하면 다 되고, 섭섭하면 끝장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입니다. 그래서, 제사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만드는 방법! 그 방법을 우리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네 속의 짐승을 잡아, 완전히 그냥 태워버리거라! 그러면, 화제라, 하나님이 향기롭게 기뻐하마’ 약속을 했으니, 약속에 따라 나를 잡아 하나님께 태워버리고, 나의 결실, 나의 땀, 나의 수고를 갈아 엎어,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로 하나님께 드리며, ‘제 속의 주관을, 제 속의 오기를, 자존심을, 내 속에 남 몰래 이건 양보 못 한다고 잡고 있던 이런 저런 것을, 주의 말씀 따라 갈아 엎었습니다. 한 줌, 단 위에 올려 살랐습니다. 나머지는 날 위하여 수고하는 제사장의 몫이라, 결국에는 내가 이걸로 힘 있게 먹어, 주님을 기쁘시게 살겠습니다.’ 할 때에, ‘그거 레위기 1장, 2장의 말씀을, 옛날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신다 보고, 하나님은 전능이라고 보고, 그렇게 애를 쓰니’ 그 소제의 향기를 맡으시고 ‘애 썼다.’ 하나님이 기쁜 마음, 하나님이 기쁜 자세로 돌아서면, 30년 고시 공부보다 나을 것이고, 50년 평생 직장보다 나을 것이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이 의료체계보다 나을 것이고, 내 건강을 위해서. 사고 날까봐 차에다대고 뭐 별의 별 장치가 다 있어, ABS 뭔 브레이크라고 그럽니까? 또 터지면 뭐라고 그러지요? 에어백이라고 그러는가요? 에어백 있지, ABS 브레이크 잡아주지, 차량 보험 들어갔지, 기도 안하고 하나님 없어도, ‘이 좋은 차로 여행가는데 사고가 나?’ 그러고 앉았으면, ‘네 놈한테는 보험이 안되는 사고를 줄께!’ 이러면 어떡할 겁니까?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 우리가 발견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레위기 1장 2장을 기록해주며, ‘이리하면 내가 기뻐하마. 하나님이 기뻐하면 다 된다.’ 이것으로 우리 학생들이 소망을 삼읍시다. 이것으로, 부모님들은 자녀 교육의 소망과 힘으로 삼읍시다!

34페이지 마지막, ‘분배’입니다. 가루로 드리는 제사는, “남은 것은” 2장 3절. “남은 것은” 그 소재 한 줌, 한 줌만 불살랐습니다.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소제는 전부 사람이 먹습니다. 주님은 나의 충성을 보고 ‘만족히 먹었다’ 기뻐하시고, 주님을 기뻐하시는 그 기쁜 일을 하며, 우리는 또 기쁨을 가지고 만족하고. 이 서로 좋은 길이 있는데.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리는 겁니다. 하나님께 받친 한 줌, “그건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가루 한 줌이 뭐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순종한 순종이 믿음이고,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이건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믿는 너의 행복, 너의 생명, 너의 영원한 영생,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 전부를 다 만들어버릴 수 있는 재료니라!

그 다음, 35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자, 다같이 한번 정리하고 기억 좀 해 보시지요. 구약은 하나님 앞에 제사, 신약은요? 예배. 구약의 제사는 짐승 잡아 죽이는 것이 기본입니다. 신약은 말씀으로 누구를 잡아요? 나를 잡는 것이 예배입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내 이 성깔 좀 잡아야 되겠다.’ 이게 예배입니다. 예배. 예배! ‘만유 주 앞에, 거룩하게 엎드려’ 보통 신학교의 예배학이라는 학문의 첫 말이 그리 시작합니다. 좀 구약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성경의 말씀으로, 내 속에 좀 죽여 버릴 나쁜 성질, 말씀으로 내 속의 나쁜 요소를 죽이는 것’이 그게 구약의 제사고, 신약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말씀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을 우리는 예배라고 생각을 합니다. 찬송은 언제 하는게 찬송이지요? ‘말씀으로 잡을 나를 발견하니, 잡아보니, 하나님이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에 곡을 붙였을 때에, 찬송입니다. 노랫방의 노래와 다릅니다. 유행가와 다릅니다. 학생들 좋아하는 이런 종류, 저런 종류의 그런 노래와 찬송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곡이 있고, 부르면 신나는데 같지 않은가요?’ 말씀으로 나를 잡아보니 기쁘고, 좋으면 찬송이고, 노래는 못 불러도 찬송이고. 세상 노래는, 죄악의 낙을 흥분을 시켜, 좋아서 펄쩍 펄쩍 뛰면 그것을 노래라고 그럽니다. 술 한잔 먹으니까 노래가 더 좋아지고, 마약을 먹으니까 더 좋아지고. 왜? 예술하고, 음악 아는 사람은 왜 모두 술을 좋아하지요? 술도 건강에 안 좋은데, 왜 술에 그치지 않고 마약까지 왜 나가지요? 누구, 누구, 누구, 누구, 옛날에 노래, 뭔 영화 뭐 예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마약에 다 걸려 있지요? 버릴 자기의 죄, 자기의 악, 죄악의 낙을 즐겁게, 즐겁게 하려니까, 술이 더 좋고, 마약이 더 좋아서, 지 죽을 줄도 모르고, 간이 부어서 죽을 사람이 술 한 잔 먹으니까 또 편해집니다. 마약하는 사람이 마약을 더 센 것을 치니까, 더 기뻐집니다. 죽어가는데, 혼자만 좋답니다. 죽을 재미, 썩을 재미, 망할 재미, 이것을 더 재밌게, 재밌게 하는 것이 세상의 예술이고, 세상의 노래이고, 교회의 찬송은, 네 속의 썩을 재미, 죽을 취미를 꺽어버리고! 말씀의 칼로 잡아버리고, 날 구원하신 예수를, 그 소가 되어, 대속의 공로 다 하시고, 그 양의 순종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으시고, 그렇게 구원 했으니,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다 해결해주셨으니, 날 구원하신 예수를, 그 한마디에 또 찬송하고, 또 찬송하다보니까, 우리 공회 찬송 60장에 ‘날 구원하신 예수를’ 그 곡 왼쪽 위에 보면 연도가 있는데, 90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근 1,000년이 다 되어갑니다. 1,000년을 불러도 좋은 찬송, 1,000년을 불러도 더 부르고 싶은 찬송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생명샘의 찬송이고, 세상 제일 좋은 노래, 몇 년 가던가요? 이미자 유행가, 요즘도 애들 좋아하던가요? 조용필이 좋아하는 노래, 요즘 아이들도 좋아하던가요? 군 생활 할 때, 마지막 쯤 되어가지고, 조용필이 감옥에서 나온다고, 모두들 막 온 부대 몇 백명이 좋아서 모두 환장을 하는데, ‘조용필이 누군데?’ 그랬더니만, ‘너 간첩이야?’ 그럽니다. 1978년 2월 11일 날 군대를 가니까, 제주도 노래, 혜은이를 모르는 사람이 몇 천명 하나도 없는데, ‘혜은이 누군데?’ 그랬더니만은, ‘뭔 이런 놈이 다 있어?’ 이럽니다. 그 혜은이 노래 요즘도 부르나요? 제주도 노래? 마약했다가 교도소 갔다 나온 조용필 노래, 요즘 젊은 사람 좋아하시나요? 유행가라 철 지나면 그만! 고운 10대의 인물도, 한 1-2년 지나면 다 찌들어집니다. 일찍 결혼하십시오. 좋을 때, 좋을 때 하시면 값 올라갈 겁니다. 인물도, 학벌도, 월급도, 건강도, 권세도, 유행가도!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 믿으니까 좋고, 10년 더 믿어보니까 ‘아 이렇게까지 밖에 못 믿었나?’ 더 좋고, 날 구원하신 은혜를 천년을 불러보니까 더 좋고! 찬송 중에 우리 공회 찬송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은, 한 1,200년짜리가 있습니다. ‘1,200년 똑같은 찬송을 불러? 캐캐 묵은 것?’ 어떡합니까? 제일 좋으니까 1,200년을 갖다가 부르고 있는데. 가면 갈수록,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새로워지고, 영생의 하늘나라는 그렇습니다. 천국에 제일 처음 들어간 날이, 세상과 비교하면 제일 좋은 날인데, 하늘나라 안에서 비교하면, 천국 들어간 날이 기쁨이 제일 작고, 말하자면 하늘나라가 천년이 가면, 그 기쁨이 더 커지고, 만년이 가면 더 커지고, 더 커지고, 무한히 커지는 나라가 영계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결혼의 기쁨을, 옛날에 석 달 그랬습니다. 오래가면, 3년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보통 석달. 이발의 기쁨은 3일이라던가요? 목욕의 기쁨은, 하루라 그러던가요? 말 타는 재미는, 제일 오래간답니다. 그래봐야, 몇 년 가겠습니까? 세상 것은 맛있는 것 처음 먹어보면, 그 날이 제일 맛있고, 두 번 먹어보면 맛이 뚝 떨어져 버리고, 세 번 먹으면 시시해지고, 그래서 또 새로운 음식 찾아가고. 새로운 요리 처음 먹으면 그렇게 꿀 맛인데, 두 번, 세 번 먹으면, 또 입맛이 달아서 그 다음 가야 되고. 남녀의 사랑의 애정의 맛도 그러하고, 음식의 맛도 그러하고, 아파트 처음 들어 간 날이 아파트의 기쁨도 그러하고, 대학 입학 처음 들어간 날, 세상을 다 얻은 기쁨도, 몇 달 다니고 나면 시시해지고. 안 그런 것 있나요? 이게 죄악의 저주의 값이라, 세상 것은 아무리 좋아도, 세월이 흘러가면 낡아지고, 흐려집니다. 줄어듭니다. 이것을 낡아지지 않게, 되살리려니까 술이 들어가고, 담배가 들어가고, 마약이 들어가고, 죽을 죄가 들어가니까, 뒤에 탈은 더 많이 생겨버립니다. 하늘의 기쁨은, 모를 때 멋 모르고 믿어 기뻤는데, 믿어보니 더 기쁘고, 믿어 보니 더 기뻐서, 50년 전에 처음 믿은 날보다, 50년 전 뒤의 오늘이 10배가 더 기쁘고, 만 배가 더 기쁘면, 바로 믿은 것이고. 오래 믿은 분들 죄송합니다. 처음 믿어 은혜 받아 펄펄뛰면, 교회 오래 믿은 집사님이 불러다가, ‘나도 너만할 때에, 그렇게 믿어봤다.’ 이래가지고 성령의 불 바다를 갖다가, 소방대가 되어가지고 물로 다 꺼버립니다. ‘부럽다. 나도 처음 믿고 너처럼 그렇게 미치게 좋았는데, 그 불바다를 살리지 못해서 나는 이렇게 됐다. 너는! 누가 뭐라 하든지, 받은 이 은혜를 불살라, 자꾸만 자라가라!’ 이렇게 격려를 해야 될 텐데, 믿어보면 다 경험이 있지 않나요? ‘연보한다고 까불어봐라. 나중에 보면 다 돌고 돌아서, 목사 뭐 이러고 저러고, 교회다 그렇고’ 이래서, 안 뜰 눈을 딱 뜨니까. 연보만 그렇습니까? 충성만 그렇습니까? 목회 처음 나가는 사람은, 새 마음에, 새 결심에 죽도록 충성한다고 나갔는데, 20년, 30년 목회 선배들이 불러다가, ‘교회충성 해봐야, 교인들은 나중에 배신한다. 뒷 돈 챙겨놓고, 적당하게 해야지. 죽을동, 살동 모르고 교회 충성하다가, 나중에 교인의 마음은 철 지나면 변심해버리는데, 그때 꿩 떨어진 매 꼴난다.’ 이런 걸 비법이라고 가르치고, 하나는 또 비법을 배웠다고 또 선생님이라고 그러고 앉았고, 안 망할리가 있습니까? 다른 교단 말하는 것 아닙니다. 백 목사님 생전의 공회, 우리 교단을 말합니다. ‘백 목사님처럼 위대한 분이야, 뭐 죽는 날까지 그렇지만은, 그런 모든 역사에 몇 없고, 우리들은 앞으로는 충성한다고 하고, 뒤에 슬금슬금 좀 모아놔야 훗날에 후회 안한다’ 공회 목회자가 이 유혹 버리기가 어려웠다면, 일반 교계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있는 우리 일반 교인들이, 첫 은혜받아, 여기 지금 번제의 불! 소제의 불! 성령의 불이 불 살라 다 태워버려야 되는데, ‘죽던지 말던지, 훗날에 실수를 하든지, 후회를 하든지, 저는 이 불을 받아 주님 앞에 달려가겠습니다!’ 이럴 때에, ‘그 성령의 불을 꺼지지 말아라. 마구 누가 뭐라하든지, 무식하게 달려가거라!’ 이래야 될 터인데, ‘나는 신앙이 노련해서, 나 정도 되면 신앙의 폭이 넓어서’ 그거 안좋은 겁니다. 

“화덕에 구워” 화덕에 굽다니요? 성령의 불을 말합니다. 화덕이라는 것은 불을 그냥 질러버리면, 불이 사방 천지로 나가니까, ‘불을 모아 주는 아궁이’를 화덕이라고 그럽니다. 성령의 불 받고, 잘못 사방으로 나가면, 이단되고, 가정 파탄나고, 교회 다 흩어지고, 자기 인생 실수합니다. 산 속의 기도원의 특색들이, 남반보다 여반이 감성적이라 은혜 받고, 은혜 받고 나니까 물 불 안 가리고, 성령의 은혜 받았다고 펄떡펄떡 뛰고, 산 속에 기도원 만들었다가 ‘내가 기도하니까 다 나았다. 다 낫는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면, 여자 무당 되는 꼴 많습니다, 산 속의 기도원 치고, 남자 기도원 원장하는 곳과 여자 기도원 원장하는 곳과 비교를 해보셨습니까? 거의 여자입니다. 가끔 남자가 기도원 원장 하는데도 있는데, 이름만 남자이지, 그 분 사모님을 보면, 성령의 불은 다 붙이고 앉았습니다. 성령의 불인지? 진리의 말씀으로 화덕을 만들지 않고, 성령의 불 받았다고 뛰어 돌아다니면, 온 집을 다 불태우고, 자기 인생을 다 불태우고, 신앙을 불 지르기 똑 좋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은 반드시 관리를 해야 됩니다. “화덕에 구워라” 뒤에 보면 ‘번철에 굽고’, ‘솥에 물을 넣어 삶는데’ 성령의 불을 솥에 넣어, 삶아라. 솥에 물을 데우면, 물이 음식을 삶는 것이 삶는 겁니다. ‘성령의 뜨거운 물의 감화 감동이 있어도, 진리의 말씀으로 따져보고 살펴보거라!’ 이게 솥에 삶는 것입니다. 우리 여기 공회 집회가 1998년, 21년 전에 완대 초등학교에서 처음 할 때, 크게 사업하는 분이 완전 망해 가지고, 부도가 났는데, 그 당시에 한 달에 50만원 벌기가 어려웠는데, 연보를 3천만원인가 했던가요? 기억 나는가요? 한 달에 50만원도 못 벌고, 지하, 반 지하의 어려운 분인데, 2천만원인가? 3천만원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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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10
3천만원 약속 연보를 했어요. 그 집회 때에 은혜 받고, 아무 돈도 없는 분이, 그때 2-3천만원이면, 요즘 몇 억일 것인데, 얼른 그 교회 목사님께, ‘그 성령의 불을 화덕으로 잘 가두어, 솥의 물로 삶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 분의 좋은 신앙, 그 가정, 그 교회, 우리 공회 다 불타 죽겠습니다. 2-3천만원 연보하겠다는 그 제일 가난한 사람의 뜻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지만은, 진리의 말씀으로 살펴볼 때, 가정 책임, 자기의 실력, 형편, 환경을 고루고루 살펴볼 때, 한 20만 원이면 어떠할지요?’ 다른 교단 같으면, 들 쑤셔서 2-3천만원 연보하는 사람에게 동그라미 하나 더 쳐서, 2-3억 거둬내려고 그러겠지요. 그러면, 교회는 모금 단체가 됩니다. 성령의 불이, 내 주관의 마음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이게 성령의 감동인지? 내 주관인지? 섞일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 내 생각에서 나오면 전부 성령을 갖다 팔아버리는데, 진리의 말씀 떠난 성령은 없습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성령을 화덕으로 관리를 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낱낱이 살펴, ‘내 경제, 내 환경이면 2만원이면 똑 맞겠다. 2만 원. 나 정도 직장이면, 20만 원이라도 되겠다.’ 집회의 감동, 말씀의 은혜, 교회 예배당을 짓는다니까, 집 팔아서 한다? 말은 다 좋은데, 그런데, 내게 준 형편과 환경을 잘 생각하는 것이, 솥에 물을 넣고 삶는 겁니다. 고루고루. 그런데, 이 화덕이라는 것은 불에 바깥은 아궁이로 막지만은, 안에는 불바다입니다. 여기에 음식이 들어가면, 불 받는 대로 타버립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에,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쏟아지니까, 방언이 튀어나오고,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전부 나눠가지고 함께 살았습니다. 화덕에 구워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관리를 하지 않으니까, 사도행전 6장쯤 가면, 벌써 내부에서 ‘왜 헬라파 노인들은 밥 먹을 때 뒷자리에 보내고, 왜 유다파 본토인들은 앞 순서에 주느냐?’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싸움이 벌써 일어납니다. 이게, ‘화덕에 구워’, ‘번철에 구워,’ 그 다음에 ‘솥에 삶아’. 3차례로 성령의 감화와 감동은 조절이 필요합니다. 죽을등, 살등 모르고, 정말로 달려 나가는 화덕에 구운 것으로, 드려야 될 때도 있습니다. 번철이라는 것은 불은 밑에서 마구 타오르는데, 후라이 팬이라는 쇠가 열을 고르게 분산해서, 음식을 고루고루 익히는 것이, 번철에 부쳐, 지져 드리는 겁니다. 밑에서 성령의 불은 마구 타오르는데, 솥이 물을 데워서, 그 안에 있는 음식을 안 팎을 고루 고루 삶아 들어가는 것이 세 번째입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기름으로 그대로’ 드리는 것, 일. 화덕의 불에 바로 닿아, 첫 은혜받아, 왠지도 모르게 기쁘고, 왠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시도때도 없이 전도하고 싶어 미친놈처럼 뛰어 돌아다니는 것은 화덕으로 관리하고, 일반적으로는 번철에 고루고루, 하루 종일 성경 보고 싶으나, 나는 아이가 젖 달라고 울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될까요? 성령을 들고 읽어도 되는데, 젖 달라는 아이 때문에 이 아이를 젖 먹이며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번철’입니다. 고루 고루 분산입니다. ‘애야 울던지 말던지, 남편은 밥상을 날리던지 말던지, 나는 성경본다!’ 그러고 앉았으면, 번철에 지져 드릴 것을, 화덕에 태워드리는 꼴이 되어집니다. 화덕의 신앙도 필요하고, 번철의 신앙도 필요하고, 솥에 삶는 신앙은, 따져보고, 살펴보고, 적어보고, 비교해보며, 깍고, 더해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성경 석장은 읽는 것이, 나에게는 맞겠다.’, ‘내가 굶어 죽어도 5분 기도는 하는 것이 맞겠다.’, ‘이것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이것은 참는 것이 맞겠다.’ 말씀으로 자기 현실을 따져보며, 남편 신앙, 우리 경제, 아이들의 입장, 교회의 환경, 내 건강 고루고루 잘 살피면, 솥에 삶아 드리는 소제. 불을 번철에 고루 퍼지면, 이것은 지져서 부치는 소제. 화덕에 가둬놓고 타는대로 그대로 드리면, 이것은 화덕에 구원 드리는 소제. 첫 은혜받아,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주를 위하여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생기지 않을 때가 화덕입니다. 철저하게 따져보고, 세밀하게 회계사가 경제를 뒤지듯이 하는 것이 솥에 삶는 겁니다. 그 가운데가 번철입니다. 그대로 드리기도 하고, 삶기도 하고, 번철에 드릴 때도 있고, 구원 드릴 때도 있고, 모든 것 위에 “볶은 곡식”, ‘처음 것은, 첫 소산은 볶아서’ 이것은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로, 주의 것을 만들어서 드리고. 시간이 없어서, 5가지를 그냥 그만 간추렸습니다. 한번 그냥 받아만 적어주시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살펴보십시오.

36페이지, 가루는 ‘자기 부인’입니다. 기름은, ‘영감’입니다. 영감이라는 말은 ‘성령의 감화 감동’. 절차의 화덕이라는 것은 ‘불에 직접 닿도록’, 가루에 기름을 섞는다는 말은, ‘자기를 부인할 때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을 말하고, ‘무교병’이라는 말은, ‘불목 금지’, ‘전병’이라는 것은 무교병을 엷게 펼쳐서, 쉽게 가지도록, 화목을 쉽게 가지도록 하는 것이 전병입니다. 38페이지, 번철에 부쳐, 가운데입니다. 절차. 번철이라는 말은 성령의 불이 소제에, 내 재료에, 내 신앙에 직접 닿는 것이 아니라, ‘간접’으로 닿도록. 왜 조각을 나누느냐? ‘먹기 좋도록’, ‘가지기 좋도록’ 그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쉽도록하는 말입니다. 40페이지. 솥에 삶아라, 불이 솥에 무엇을 통해서 닿도록? ‘물을 통해서’ 닿도록, 철저하게 층층이 고루고루 삶도록, 가운데에 삶을 것. ‘성령의 불이 진리를 통해, 우리 내면을 전부 떡이 되도록 만들어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나는 하늘로써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의 보낸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러면, 5가지 결론. 단이란? 단 불에 직접, 화덕이라는 것은 불을 돕는 주변 이용이 되고, 번철이라는 것은 불과 떨어지도록 철판, 철판을 이용하는겁니다. 솥이란, 불과 제일 멀리 떨어지도록, 솥의 물을 이용하는 겁니다. 볶는 것은, 물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 5가지는, 불이 직접 닿느냐? 간접으로 닿느냐? 간간접으로 닿느냐는 차이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자기 주관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자기 주관,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섞어버리기가 쉬워서 여기 다섯 가지로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다 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 많은 은혜, 우리에게 맡긴 모든 것을 열매로 삼아, 가루를 만들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름으로 버무려, 그대로 드리며, 주의 인도를 기다리는 기도의 제사, 그대로 태워 드리는, 구워, 성령의 붙들리는 역사. 번철로 고르게 바르게 펼쳐나가는 균형 있는 진리 복음의 역사. 섞인 것이 없도록, 철저하게 삶아, 성령의 역사가 전달되게, 전부가 낱낱이 구석구석, 빈틈없이 역사하도록. 다섯 번째, 주의 주신 모든 것, 성령의 것으로 볶아, 가루를 만들어, 주의 것으로 삶는 5대 소제의 제사의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 우리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고, 내 속에 짐승 같은 나를 살펴, 주님 앞에 옳고 바르게만 살아가는 집회의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이 밤에 고르지 않은 일기가 예보되어 있으나, 이 산 속을 지켜주시고, 말씀으로 연단 받으며, 어려워도 주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초타 : khr
교인 2020.06.09 17:10
설교요약



① 월후 : 레위기 5대 제사

 -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신앙생활과의 관계

 - 소와 양의 제사로, 대속의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나타냄

 

② 월밤 : 제사 제물

 - 형편에 따라 (소, 양 염소, 비둘기),  예물이 되어 (흠 없는, 수컷으로)



③ 화새 : 번제 1

 - 소의 번제 (즉시 죽여, 무언의 순종으로 끝까지 충성)



④ 화전 : 번제 2

 - 양, 염소의 번제 (환란에서 거역을 꺽고, 낱낱이 쪼개어 바친 온전한 순종)
 
 - 새의 번제 (변덕의 더러움을 끊고, 찢고, 폐기한 성결의 소망 )

 - 가죽  (완전히 벗겨진 잘못된 행실, 제사장에 의해 생명으로 재 사용)



⑤ 화후 : 소제

 - 가루 소제 (나를 완전 부인하고, 성령에 붙들려, 오직 기도로 주님만 향한)

 - 4가지 방법 (화덕-첫 은혜 직결, 번철-골고루 분산, 삶아-진리로 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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