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밤19.8.6 레3:1 소의 화목제, 내장의 기름들, 내면의 성령 인도로 만들어 진 귀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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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밤19.8.6 레3:1 소의 화목제, 내장의 기름들, 내면의 성령 인도로 만들어 진 귀한 것으로

교인 3 187 2020.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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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화밤 (5대 제사 집회 6)

제목 : 소의 화목제, 내장의 기름들, 내면의 성령 인도로 만들어 진 귀한 것으로 

본문 : 레위기 3장 1절 -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생명 바쳐, 구원의 모든 것을 완성하신 주님. 번제로, 우리의 죄, 우리의 의, 우리의 영생을 한량없이 바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심을 감사하오며,  우리도 소처럼 원하실 때 아낌없이 충성하고, 어떤 순종이든 끝까지 양처럼 하며, 내 속에 염소 같은 나를 잡아, 비둘기의 성령의 깨끗하고 성결한 화목의 이 걸음을 걸음으로, 번제의 주님, 우리의 오늘의 구원의 능력이 되며, 실상이 되게 해 주시니, 번제를 통해, 감사한 마음, 평생에 변치 않는 자들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 자신의 피와 살을 우리 구원 위하여 주시되, 당신의 모든 인성을 완전히 갈아, 어떤 자율도, 주관도 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걸어, 내 살은 생명을 주는 떡이라, 영생의 떡이라 하시며, 성찬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양식 먹고 힘을 얻어, 우리도 자율과 주관을 완전 부인하고, 주의 구원에 감사함으로, 끝까지 어느 현실에서든지, 다 바쳐 충성하는 주의 만족의 떡이 되게 해주옵소서. 번제와 소제를 거쳐,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사람과 하나되어, 하나님을 둔 이 생명의 화목, 자라가는 화목만 우리에게 넘치도록, 저녁 예배의 화목의 도리를 깨닫게 해주시며, 여러 곳에 흩어져 배운 말씀으로 재독하는 학생들에게, 시대를 맞서면, 빛으로 초월할 수 있는 성령의 인도를 주사,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노선, 이 진리의 이어진 계통을 허락하사, 등불을 끄지 말아주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첫째가, 번제. 다 바쳐 드리는 번제. 넓게 보면, 죄도 포함, 사죄. 칭의의 충성도 포함, 전부를 포함했습니다. 그런데 좀 좁게 말하면, 4장의 속죄제, 5장의 속건제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죄’. 그 다음, 번제는 바쳐 충성하는 ‘칭의’의 세계를 말했고, 그리고, 화목제는 사죄, 칭의 위에 ‘화목’으로 나아갑니다. 그 화목 안에는 영생의 ‘소망’을 다 담았습니다. 화목제는 잠깐 읽어도, 앞에 나온 번제와 비슷할겁니다. 차이가 있다면, 번제는 수컷으로만, 주님의 대속의 책임 면을 말했는데, 화목제는 “흠 없는 것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구원의 운동이, 남자로, 여자로 만물까지 뻗쳐 가며, 영생까지 나가는 세계라. 번제보다, 속죄제나 속건제 보다 화목제가 되면, 범위가 넓어집니다.

들어가기 전에, 소제에 대해서 1시간 만에 오후에 마쳐서, 잠깐 40페이지 교재를 보시겠습니다. 40페이지 중간에, 요한복음 6장 48절,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주님이 오셔서 이 말씀을 하고 보니까, ‘아, 구약의 소제는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주신 말씀 이구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그 인성을, 신성 하나님 앞에 완전히 갈아, 인성도 완전자인데, 죄 없는 인성이지만은, 주님의 인성이 자기 자율, 자기 주관, 자기 주장 전혀 하지 아니했으니, 그 몸을! 그 순종을! 우리 신앙의 힘으로, 마치 육체의 몸은 밥을 먹어야, 서양 사람들은 빵을 먹어야, 성경에는 ‘가루’로 만들어 ‘떡’을 먹어야, 몸이 힘을 얻는 것처럼, 주의 몸, 주의 인성, 주관없이, 자율 없이 전적 순종함으로,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구원하셨으니, 구약의 ‘가루를 갈아라’ 네 노력의 결정, 너 수고의 결실, 어떤 것이든지, 너의 수고에는 너라는 주관, 너라는 주장이 들어 있기 쉬운데, 그 수고, 결실은 좋은 것이나, 은혜이지만은, 그 속에 섞여 있는 자기, 자기 중심, 주관, 자율은 악이라, 이것은 완전히 갈아버려라. 하나님 중심으로 돌려버려라! 이것을 ‘가루’. 그대로 드리면, 그대로 제사. 이것을 화덕에 넣고 구운 빵, 구운 빵이 되면, 구운 화덕. 이것을 번철에 올려놓으면 부친 떡, 그 다음 이것을 솥에 삶아 드리면, 삶아 드리는 것이 되고, 첫 곡식은 미리 볶아서 빻아버려라. 완전히 성령의, 주의 것을 만들어라! 가루를 가지고, 다섯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 바치게 했는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니까, ‘예’ 하면서, 하나님 앞에 소제를 드릴 때는, 늘 곡식을 가루를 내서 떡을 만들어, 한 줌은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이게 뭘까? 이게 뭘까?’ 했는데, 주님이 오셔서 “내 살이 참된 떡이다. 생명의 떡이다. 영생하는 떡이 바로 내 살이다!” 이러니까, 유대인들이 ‘자기 살을 뜯어 먹으라고? 식인종인가? 그게 무슨 말인고?’ 예수님이 ‘내 살이 참된 양식이다’ 이러니까, ‘살을 뜯어 먹다니?’ 이렇게까지 어두웠습니다. 몇 천년, 구약의 소제의 율법에 따라, 가루로 만들어, 성전의 성막의 소제로 빵을, 떡을 바치면서도, 그 떡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곡식을 갈아, 그대로, 볶아, 구워, 삶아, 찢어, 빵만 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거지인가? 하나님이 떡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신 그런 인간 수준의 귀신인가? 미신인가?’ 어려서, 처음에는 곡식을 갈아라 하면, 곡식을 갈아서 드리지만은, 드리면서 ‘이 먹지도 않는 떡을, 왜 하나님이 소제로 요구를 하셨을까?’ 생각해보고, 생각해보고, 따져보고, 연구를 해도, 밝혀 주지 않으시면, “주지 않는 것은 받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마음만 있으면 원하는대로 드리라. 있는 것을 받지, 없는 것을 받지는 아니하시리라” 그래서, 가루로 만들어 떡을, 성전에 진설병으로, 소제로, 화목제에도 고기가 들어가면서, 떡이 함께 들어갑니다. ‘왜 가루를 갈라고 했을까? 가루로 갈면은, 떡이 되는 것인데, 왜 떡을 하나님이 드시겠다고 그랬는가? 드시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어느날 밝아지고 깨달아지면서, ‘육체의 몸은 떡을 먹지만은, 오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죄 없는 인성, 죄 없는 예수님이 자기 주관을 완전히 갈아, 전적 순종함으로, 그 순종이 대속이 되고, 그 대속을 우리의 신앙의 힘으로 삼는다는, 그런 면을 말했구나!’ 그래서, 소제는 떡이며, 떡은 오실 주님의 몸, 우리를 구원하실, 수고하실 그 몸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소제는 신약에 오면 ‘성찬의 떡’이 되는 겁니다. 흘리신 피는, 제단에 짐승을 잡을 때에, 붉은 피를 흘리니, 그게 포도주고. 그래서 ‘성찬의 떡과 포도주’라. 생명 바쳐, 그 인성의 몸이 평생에 수고하여, 자기를 한번도 인식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는 전적 순종! 이게 번제의 피, 그 다음 소제의 가루였고, 신약의 주님이 성찬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주님 오실때까지 ‘늘 나를 기념하라’ 하나님이 사람되어, 죄 짓지 않으려고 죽으셨고. 죄와 싸워 이기려고 죽으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다가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 하게 하는데, 끝까지 행하다가 죽었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목으로 죽었고, 화목을 끊어 놓으려고 할 때, 끊지 않으려다가 죽었고. 그 몸이! 그 평생이! 단 한번도, 순간도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이게 소제의 ‘가루’입니다. 번제의 짐승은, 피 흘려 바친 면을 신약의 포도주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예배라는 것은 예배의 시작과, 예배의 출발과 예배의 본질이 ‘성찬’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조심 하느라고, 1년에 한 번 정도나. 열심히 믿고, 평소에 자기 관리가 되는 교회들은, 주일예배 만날 때마다 성찬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도의 신앙이, 예배 드릴 때마다 성찬을 하게 되면, 돈 벌다가 화 내고, 부부싸움 하다가 미운 마음을 가지고 와서, 회개도 못 하고, 응어리진 것을 삭히지도 못 하고 성찬을 먹으면, 피와 살을 더럽게 한 죄는, 하나님께서 데려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살아갈 날, 신앙의 수준이 어리기 때문에, 공회는 성찬을 1년에 1번씩 하는데, 신령한 성찬, 말씀으로 신령한 떡과, 그 다음 피로 대속을 감사하고, 새기는 기념은, 매 주일, 모든 예배가 항상 성찬입니다. 구약의 제사, 신약의 성찬, 예배, 말씀, 찬송, 기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교재 40페이지, 중간에 다시 한번 중요하니까, 같이 읽어봅니다. 요한복음 6장 48절, 시작.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6장으로 51절입니다. 다같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에 생명을 위한 내 살리로라 하시니라” 예. ‘왜 몸을 입고 오셨던가?’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 몸을, 우리가 음식을 먹지 않는데, 왜 그 몸을 양식이라 했는가? 왜 생명의 양식이라 했는가?’ 그 몸이 갈아 없어지기까지, 자기 주관은 한 번도 나타내지 아니하고, 전적 순종함으로 드렸기 때문에, 이것을 소제로 가르친 겁니다.

그리고, 화목제로 넘어옵니다. 교재 46페이지입니다. 5대 제사의 첫 번째는, ‘번제.’ 두 번째는, ‘소제’. 그리고 세 번째는 ‘화목제’입니다. 레위기 3장 1절로부터 살피는 말씀입니다. 3장 1절,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예물로 드리되 “소로 예물을 드리려거든” 번제는, 수컷입니다. 화목제는, 번제로 주님 앞에 충성 했고, 하나된 이 세계가, 이제는 남자의 책임을 넘어 서서, 맡은 식구, 어디든지 뻗쳐야 하기 때문에, 범위가 넓어집니다. 수컷도 되고, 암컷도 됩니다. 흠 없는 것이면 되어집니다. 죄 없는 화목이 화목이지. 죄를 지어가며, 타협해가는 화목은, 성경의 화목이 아닙니다. ‘죄를 짓자는 사람과 함께 죄를 지으니까, 분쟁이 생기지 않을 때 화목이 아니냐?’ 아닙니다. 죄 안 짓는 것을 기준으로, 하나되는 만큼만 화목입니다. 교재 46페이지 위에, 레위기 3장 16절에 보면 “이 모든 화목제는, 이것도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화목제에는 다른 절차는 거의 비슷한데, 내장의 이야기와 기름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화제는 ‘태워서 드리는’. 2번, 식물이요. ‘하나님의 양식이요’.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하나님께서 갈급했다가, 우리가 번제로, 소제로, 이제는 화목제로 나가면, 하나님이 만족하여, ‘됐다! 맞다! 이 일을 위하여 목적을 정하고, 창조했고, 죄를 짓게 했고, 구원했고, 구원 받은 너희가 하나님께 바쳐 번제로, 자기를 부인하는 소제로,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 모신 너희가 되어, 누구든지 하나가 되는 이 화목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식물이다. 하나님의 양식이다. 하나님이 이것을 기쁘게 받으신다!’ 요한복음 4장 34절입니다. “나의 양식은” 오신 주님이, 내가 먹고 배부른 나의 만족은 무엇인가?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죄인의 죄를 해결하라, 그래서 해결했고. 죄인의 죄를 해결할 뿐이 아니라, 죄인이 의로 살아야 되는 칭의를 대신하라, 칭의로 걸어갔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아라, 영생의 소망을 가져라, 이 뜻을 다 행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 오신 주님의 양식이었습니다. 이게 주님이 배불리 먹는, 주님의 음식이었습니다. 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도 우리에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원하는 것을 예수님이 하시고, 그걸 예수님의 양식으로 삼고, 그 다음 예수님이 하신 그 일, 그 소원을 우리가 함으로, 우리의 양식 삼고. 그것이 주님의 양식이 되어지고. 그 다음, 3번째는 ‘모든 기름’은 하나님만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고기에, 비게, 지방, 기름 쪽을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의사들이 많다보니까, 의료적으로 볼 때, ‘지방 부분은 성인병 뭐 이런데 좋지 않더라.’ 이래가지고 모두들 난리이지만은, 구약은 그렇습니다. 이걸로 표시해서, 신약의 ‘제일 좋은 것은!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피와 기름은 먹지 말라!’ 생명은 하나님의 것.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생명과 제일 귀한 것을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으면, 손해 아닌가요? 온 몸의 피를, 머리와 심장이 제일 많이 쓰는가 봅니다. 머리에서 쓰는 피가 3분의 1쯤 된답니다. 뭐, 돈도 못 버는 머리가 그렇게 피를 많이 쓰는가? 머리에 피를 안 올려주면 어찌 되나요? 송장됩니다. 심장이 피를 많이 쓴다고, 심장에게 피를 안 주면 어찌 되나요? 엔진 없는 차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의 연결과 제일 것을 하나님께 바쳐놓고, 그 다음 하나님께 연결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위에서 공급하심으로, 십일조 떼고, 생명 떼고, 제일 귀한 기름 떼고 먹어도 복을 받아서 탈이지, 못 살아 탈은 없습니다.

화목제의 가운데 ‘목적’입니다. 이것은 7장 15절에 나오는데, 잠깐 7장 15절을 직접 좀 살펴 볼까요? 몇 장 넘겨서, 레위기 7장 15절,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아, 화목제가 감사해서 드리는 화목제가 있구나. ‘감사’. 감사란 은혜의 표시를 감사라고 그럽니다. 감사는, 100만 원짜리 냉장고를 배달해 주니까, 100만 원짜리 수표를 주면, 이것은 ‘거래’라고 그러지, 감사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100만 원짜리를 받았는데, 공짜로 받았을 때 그게 100만원 어치 감사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을 때, 내가 수고했다고 돈을 100만 원을 드렸으면, 낳아준 돈의 100만원 빼고 감사입니다. 낳아준 수고가 100만원인데, 부자라서 200만원 줬으면, 부모님이 아이 낳아주고, 200 받았으니,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는 은혜의 표시라. ‘드릴 수가 없어, 은혜의 표시로 감사하는, 그런 화목제가 있구나!’ 7장 15절에 보니까,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가 있습니다. 그 다음 16절에 보니까, “그 화목제의 희생, 그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아 화목제는 ‘감사로 드리는 화목제’도 있고, 그 다음 ‘서원, 약속의 그런 각오의 화목제’도 있구나. ‘자원하는 화목제’도 있구나. 그래서, 화목제는 목적에 따라서 3가지로 나뉘어집니다. 감사란, ‘은혜의 표시’. 서원은 어떤 서원인가요? ‘충성의 각오’. 어떤 충성이든지, 충성의 각오가 서원. 그 다음 자원의 화목제는,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뭐든지 화목제는, ‘하나님과 내가 하나’, 두 번째로는 ‘인간과 인간이 하나’ 보통 그렇게 말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내가 그 다음 인간과 하나될 때만이 화목’입니다. 발전소의 전기가, 집 옆에 전봇대까지 이어지고, 그 전선을 끌고 와야, 이렇게 불이 밝아집니다. 발전소 하고 전봇대 사이는 태풍에 끊어졌는데, 아무 전봇대에 전기 연결만 하면, 전기가 오는가요? 발전소에서 전봇대까지 이어지고, 여기서 끌고 들어와야 전기가 전기 노릇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나, 하나님을 모신 내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 된 사람과의 화목만, 화목입니다. 믿는 사람이 술 친구 사귀면, ‘전도하려고 술 먹었지, 화목이 중요하지’ 아니요? 화목 같은데, 그것은 하나님께 떼어놓은 화목이라,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 붙든, 하나님 모신, 하나님과 연결된 내가 잡으면, 잡는대로 전부 다 참 화목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되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가 쏟아지겠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하나 되는 화목 제사를 드릴 수가 있겠는가?’ 첫째, 소가 있습니다. ‘네가 실력 있냐? 능력이 있냐? 충성이 있냐? 남보다 받은 은혜가 넘치느냐? 그러면 소로 정성을 바쳐라.’ 네가 받은 은혜가 그 정도가 안 되면, 그 다음 뭘로요? ‘양이라도 된다. 염소라도 된다’ 그래서, 화목제는 소, 양, 염소로 드립니다. 화목제는 단위가 큽니다. 뒤에 속죄제를 보면, 소로 드리는 속죄제도 있고, 돈이 없으면 양으로 드려도 되는데, 없으면 가루 한 줌이라도 됩니다. 죄는 지었는데, 해결을 해야 되지만은, 못 났을 때. 화목의 제사는 가장 범위가 넓고, 마지막 단계라. 제사의 제물도 수준이 높습니다. 제물의 종류. 1번은, 소. 많이 공부해서 알겠지요? 2번의 양. 양이란 순종 하니까 양입니다. 양보할 수 있으니까, 양입니다. 새사람, 옛사람. 옛사람은 염소고, 새사람은 양입니다. 양과 염소를 나란히 비교해놨씁니다. 양은 순종. 내 속에 거역의 마음이 나오면, 그게 염소입니다. 순종과 거역. ‘나도 먹어야 되지만은, 다른 사람도 있을터인데. 나도 자야 되지만은, 자지 못하는 이웃도 있는데.’ 이것을 생각하고 조심하면 양이고, 염소는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나만 끌어대면 됩니다. ‘탐욕’. 새 속의 새사람은 양, 옛사람은 염소. 어쨌든 불량하면 염소입니다. 불량하면 염소. 세상은 불량해서 떠 받고 살아야 됩니다. 삼성전자가 LG도 떠 받고, 대우전자도 떠 받고, 현대전자도 떠 받아서, 다 눌러버려야 그 다음 세계적인 삼성이 됩니다. 미국과 일본의 전자 회사들이 따라오려면, 전부 짓 밟아야 됩니다. 그것을 세상이라 그럽니다. 세상은 질투로, 억세게, 짓밟아, 불량하게 이기고 보는 것이 세상이고, 믿는 백성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이게 문제니까,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으니까, 불량하게 이길 수 있어도, 조심하다보니까, 남들이 볼 때에는 ‘저거 저렇게 순해 빠져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란가?’ 하나님 없는 사람이 순해빠지면, 세상의 밥이 됩니다. 억울하고 비참한겁니다. 좋은 거 아닙니다. 진 사람은 세상조차 불쌍합니다. 지기만 하면 천국 가는가요? 가난하기만 하면 천국 가는가요? 가난해서 세상에서도 좋은 꼴을 못 보고, 지옥가야 됩니다. 세상은 지는 것이 억울하고, 장애자가 억울하고, 못난게 억울하고, 주님 앞에서, 주님 때문에 못났고, 주님 때문에 양보하고, 주님 때문에 지는 것은, 주님이 ‘나 때문에 져줘? 나 때문에 참아? 나 때문에 순해빠졌다고, 바보같은 말을 들어?’ 그만큼 주님이, ‘그건 내가 채우마!’ 1대 1로 채우겠습니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붓지 아니하나 보라, 쌓을 곳이 없도록 하지 아니하나 보라” 그러니 하나님이고, 이것을 믿으니까 믿음이고, 이 믿음이 있으니까, 세상 방법으로 이길수 있는데도, 하나님 때문에 세상을 쓰지 못할 때에는, 뻔하게 이길 수 있는데도, 하나님 때문에 할 수 없이 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실력주지 않아서 질 때도 있고, 이길 수 있는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기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할 수 없이 당할 때도 있고, ‘이러나 저러나 하나님 때문에’. 이것을 양이라고 그럽니다. 이러니, 이 양을 잡아, 하나님과 하나 될 수밖에 없지요? 염소는, 왜 염소를 잡아야 하나님과 하나가 될까요? 이 속에 들어있는 염소를 뽑아내야, 하나님이 오시지요. 불량하지, 억세지, 질투심 많지, 가는 곳마다 분쟁하지. 가는 곳마다 다 떠받아버리지, 이건 죽여야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고, 화목이 되고, 내 속의 양은 잡아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래서, 화목제의 제물은 3가지입니다. 다 같이, 첫째는요? 소. 둘째는? 양. 세 번째는? 염소.

세 가지 중에 48페이지로 넘겨서, 먼저 소를 살펴보겠습니다. 3장 1절에 보니까, “사람이 만일” 세 번째 화목제를 드리는데 “화목제의 짐승을 잡아야 되는 희생을 감사해서 예물로 드리되” 그게 양이 아니라, 그게 염소가 아니라, 넉넉하고 하나님께 받은게 많으면 “소로 드릴 수 있다” 소도 환영한다. 얼마든지 있으면, 하나님이 주신 재료가 있으면, 소로 바치거라! 준비, 소를 준비하다니요? ‘무언의 일꾼’ 무언의 일꾼. 요즘은 한 집 안에 식구가 2-3명 밖에 안되니까 좀 드물겠지만은, 10명씩 살던 옛날 대 가족들 중에, 말 없이 일하고, 말 없이 심부름하고, 말 없이 궃은 일 다하고, 10명 식구 중에 묵묵하게, 무언의 용사로, 일꾼이 되어, 아버지가 그러면, 나머지 식구들이 먹고 살기 좋을 것이고. 어머니가 고생하면, 남편과 자녀들이 좋을 것이고. 어쨌든 교회도, 가정도, 무언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 한번 해 놓으면, 알아 달라고 홍보를 10배나 해버리니, 그 사람 한 번 수고하고, 교회가 10번 칭찬을 해야 되니, 10-1은 학생들 몇이 되나요? 9. 자기는 교회를 위해서 수고를 한번 했다는데, 알아달라고 10번을 요구하니, 교회로 봐서는 10-1, 아홉 손해를 봤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계산하고 앉았습니다. ‘너는 교회에서 하나 수고했다. 받은 월급은 10배다. 받은 영광은 100배다.’ 이게 교인에게 주로 해당되는 심판이겠습니까? 주로 목사에게 해당되는 계산이겠씁니까? ‘너는 복음을 위하여, 선교사가 되었다는데, 취직할 데가 없어서, 솔직히 해외로 튀어나간 낙오자냐? 선교사 이름을 걸어야, 모금 운동하기 좋으니까. 솔직히 네 심보가 그러냐?’ 하나님은 아시고, 계산합니다. ‘처 자식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주의 인도를 따라, 온 가족의 평화를, 온 가족의 행복을 제단 위에 불사르고, 아프리카로 선교를 갔느냐?’ 선교, 해외선교의 숫자가, 숫자로만 보면 미국이 1등, 우리나라가 2등이랍니다. 그런데, 미국의 인구가 3억 몇 천입니다. 우리보다 7배 정도 됩니다. 그걸로 계산하면, 세계 선교사 파송은 대한민국이 1등입니다. 미국이 한 뭐 2-3만명, 우리도 한 2-3만명,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해외 선교는 여기에 있는 우리는 부족하고 못 나서, 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해외에서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그건 잘하는데. 하나님은 속을 들여다보면서, ‘너 직장 없고, 너 주변 이웃들한테 인심 다 잃었고, 온 가족도 너 꼴 보기 싫다고 쥐어 박아대니까, 주변에서 있을 자리 없어, 선교사 이름 걸고, 혹시 해외 여행간거 아니야?’ 선교사 100명을 놓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찍어 물어볼 때, 담대하게 ‘제가 못났지만은, 주의 인도를 따라 헌신했습니다.’ 그럴 사람, 100명에 둘이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우리 공회, 30년 만에 선교 연보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선교사라고. 그 분은, 미국에서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자녀들도, 하버드 대학 들어갔고. 회사도, 최고의 회사고. 그런데, 어느날 주님이 오셔서 보여주는 영감의 계시와, 자기를 초청하는 분의 서로 모르는 사람인데, 두 기도의 응답을 맞춰 보니까, 정확하게 맞아서 볼리비아 선교를 간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접해보니까, 그것 참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역사를 느낄 수가 있어서, 우리 공회는 30년 만에 선교 연보 딱 한번 했습니다. 왜 안 하는가? 아까운 돈 연보하니까, 그거 들고 그냥 캄보디아 놀러 가는 사람, 필리핀으로 뭐 선교 여행 갔는데, 아무리 봐도 일정을 보니까 놀러갔습니다. 선교만 갖다붙이면 선교인가요? 인간 눈에도 보이는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눈에는 어떠할까? 그럼, 선교사는 그렇고, 목사는 안 그런가요? ‘네가 취업이 있는데, 네가 직장이 있는데, 네가 할 일이 많은데! 세상을 향하여 달려갈 길이 참 많은데, 주님이 부르시니 할 수 없이 처 자식에게는 미안하지만은, 복음의 수고를 하려고 나섰느냐?’ 이게 그렇게 쉽지를 않기 때문에, 그래서 공회는 부모 주는 돈 가지고 고등학교 공부하고, 대학교 신학하고, 대학원 나와서 자격증 들고, 목사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잘 벌든지, 못 벌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교인들  중에 어렵게 돈 버는 노가다도 해 보고, 막 장사 해 보고 나서! ‘이렇게 아까운 돈을 벌어 보니까, 연보 할 마음이 생기지 않더냐? 그러면 목사하지 말아라!’ 자기는 돈 아까우면서, 왜 교인들한테 모금 운동합니까? ‘실력은 없지만은, 어렵게 돈 벌어 봐도, 정말 어렵게 번 몇 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기쁘더라!’ 그러면, 목사해서 그렇게 말하거라. 또 ‘실력이 있어서, 세상의 경제가 좋고, 세상에 할 일이 많은데. 아무래도 이 교회에 너 아니면 안되겠으니, 네가 나가서 수고를 해주라.’ 이럴 때에, 출발을 시킵니다. 여기 소! ‘무언의 일꾼’ 정말로 주님 앞에 일꾼인가? 수고는 하나 해놓고, 교회의 청구가 5이 되고, 10이 되면, 주님은, ‘너 일 시켜 먹고, 나 손해 봤다.’ 그러십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복음의 사신이라! 복음의 운동이라! 하나님의 사자라! 하나님의 종이라’ 대접은 실컷 해놨는데, 하나님은, ‘너 외상 계속 올라간다! 네 천국은 전부 부도다.’ 그 날이 두려워서, 할 수 없이 공회는 목사 월급을 좀 낮춰버립니다. 어떡합니까? 천국에 가서 전부 계산을 다 해야 되니, 미리 깍아 놓는 것이 지혜롭지요. 은행에 돈 빌리러 가면, 돈 빌려주는데, 돈 빌린대로 나중에 이자까지 갚아야 되니까, 될 수 있으면 대출은 적게 하는 것이 지혜롭지, 이자 싸고, 대출을 막 해 준다니까 ‘갖다가 써라?’ 도둑놈들이지요. ‘도둑놈은 되지 말자. 조금 더 자라서, 소처럼 무언의 일꾼이 되자!’ 수컷이나, 암컷이나 다 됩니다. 화목제는. 제사 제물의 제한이 적습니다. 속죄제, 속건제, 번제, 소제, 이런 제사는 제한이 많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하나된 죄를 해결하고, 번제를 통과한 사람이, 신앙 없는 사람을 하나 둘 거두어 드리며, 넓혀나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다음 제사의 절차. 제사를 드리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께 화목하여, 하나님께 은혜 받고자 하는 자는, “회막 문에서” 3절. 2절입니까? 2절. “소로 화목제 제물을 드리고 싶거든,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번제도, 소는 끌고오면 하나님 앞에서, 회막 앞에서 바로 안수하고 잡아버립니다. 양과 염소는 ‘회막문 안’으로 들어와서, 북쪽으로 데리고 가가지고, 북쪽에서 해결합니다. 소는 문 앞에서 바로 잡아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수고는 단번에 하라! 단행하라! 즉각하라! 미루지를 말아라.’ 세상의 투자는, 전공의 선택은, 주택 구입은, 이사의 결정은, 돌 다리도 두드려보고, 돌다리 두드려본 돌다리를 또 두드려보고, 자꾸자꾸 조심하는 것이 낫지만은,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 앞에 충성이라는 것은 ‘해야 된다 단정이 되면, 단번에 그냥 충성해버리거라! 뒤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그러면 믿음일 것이고, ‘주님 수고하라는데, 수고했다가 뒷 총 맞을라. 뒤에 욕 얻어먹을라’ 가리고 앉았으면, 널 위하여 목숨 바친 주님이, 네 뒷꼭지를 보면서 ‘너 같은 놈을 위해서, 내가 단번에 죽어?’ 구원을 했으니 천국은 가지만은, 그 사람에게 역사적인 은혜는 하나도 가지를 않습니다. 애들이 부모한테 제일 나쁜 말, ‘나를 낳았느냐?’ 욕을 할 때에, 부모는 속으로, ‘네 놈을 낳고, 내가 미역국을 다 먹다니!’ 이렇게 분하지만은, 그 어린 것하고 싸울 수가 없으니까, 이제 묵묵하게 듣고, 바보가 되어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그렇습니다. ‘아, 절 믿는 친구들은 복 받았던데요? 통일교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일본 사람하고 결혼 했던데요?’ 이 소리, 저 소리 할 때, 하나님께서 ‘제 놈을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라 사람 되어 죽어, 구원은 했지만은, 그런 말 버릇, 그런 말투,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수고를 해야 되지만은, 앞 뒤 재고, 뒤에 손해 볼까봐, 가정의 욕 얻어 먹을까봐, 자녀 앞날 막힐까봐, 물 샐 틈 없이 계산하고 앉았으면, 주님은 ‘널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뛰어간 내가 바보지!’ 후회는 하지 않으시지만은, ‘너에게 발전적으로, 미래적으로, 향상적으로 줄 은혜는, 네가 끊었으니 더 이상 없다.’ 천국 가는 기본 구원은 주님 욕을 해도 끌어다가, 구원 시켜 천국에 들여놓지만은, 역사적인 은혜, 동행적인 은혜, 기능적인 은혜, 하나님이 맡길 영광과 실력이라는 것은, 심보가 잘못되고 어긋나면, 바로 딱 끊어 버립니다. 우리처럼, 사업하다가 실패한 아이에게 돈 또 대주고, 3번 부도난 아들에게 또 어찌 잘못될까봐, 돈을 빌려다가 4번 밀어주고, 5번 밀어주고, 우리의 구별 없는 천한 사랑은 그렇습니다만은,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 되어 죽는 사랑과 동시에, 먼 훗날을 계산해서 ‘손해 볼 그런 은혜’는 딱 잘라버립니다. ‘너한테 주면, 너한테 더 손해 본다. 안 된다.’ 하나님은 계산 철저 하십니다. 소는, 회막문에서 잡습니다. 무언의 일꾼, 교회를 위한 충성은, 잘 계산해보고 ‘맞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맞다. 이건 죽어도 맞다.’ 싶으면, 그 다음 회막문에서 단번에 드립니다. 주인도 단번에 드리셨고. 그 다음, ‘안수하라’ 내가 지은 죄, 소 머리에 얹어, 나의 죄를 소에다가 다 얹어놓고, 이 소가 죄인이니, 바로 잡아버립니다. 번제도, 소를 잡습니다. 화목제도 소를 잡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내가 자기 중심이 되어, 선악과 먹고 떨어졌습니다. 그 짓을 한 죄인! 그 죄인 자기를 잡아버립니다. 수천 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의 소를 잡아, 수도 없이 번제를 드렸고, 화목제를 드렸는데, 소 잡는 전문가가 되어, 도살장에 소 잡는 기술자가 되어, 눈 감고도 소는 턱턱 잡아댔는데, 소만 잡았지, 자기를 잡지 않았습니다. 남은 잡았고, 자기는 잡지 않았고, 소는 잡았고, 자기 속의 죄는 잡지 않고! 세월만 자꾸자꾸 흘러가다 보니까! 처음에 ‘성막 제도’가 나오고, ‘제사 제도’가 나왔을 때, 아론이 1대 첫 대제사장이고, 아들이 넷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의 큰 아들, 둘째 아들이 심부름하다가, 법이 많다보니까, 실수로 그만 다른 불을 드리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출발은 서툴고 어리지만은,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이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뭐 위임제, 눈 감고 제사를 척척 척척 잘 드리는데, 어느날 예배 인도하는 기술자는 됐고, 설교하는 전문가는 되었고, 30살 첫 의사들이, 의료사고를 뭐 많이 내겠지요. 말은 안해도. 그런데 이제, 40이 되고 50이 되니까, 완전히 눈 감고도 수술할 만큼 전문가가 되니까, 졸면서도 수술하고, 담배 피우면서 수술하고, 그러는 것처럼. 목사도 설교를 1년하고, 5년 하고, 10년 하다 보니까, 성경도 많이 알겠고, 말 빨도 늘었고, 이것저것 주워다가 줄줄줄 하다 보니까, 모든 목사들이 다 설교의 전문가는 되었는데, 목회의 기술자는 되었는데, 교인들을 조직해서 이리저리 돌아 다니고, 뭐 그냥 달래고, 다 윽박 지르고 해 가지고, 훌륭한 목회자도 되고 다 그러는데, 이것을 구약에 옮겨놓으면, 구약의 제사장들이 번제, 소제, 화목제. 소, 양, 비둘기 종류에 따라 척척 잡아 되는데, 이 소가! 이 비둘기가! 이 곡식을 왜 가는지? 생각을 안 하고, 자꾸만 반복을 하다 보니까, 잡는 기술이 늘어나가지고, 다같이, 나중에 누구를 잡아버렸지요? 예수까지 잡아버렸습니다. 소 한번 잡다가, 10번 잡다가, 할아버지도 제사장, 아들도 제사장, 손주, 손손주, 제사장 제사장, 생각 없이 잡고, 잡고 잡다가, 예수가 걸리니까 예수를 턱 잡아 죽이는데, 대제사장들이 두목이 되어 가지고, 백성들을 선동해가지고, 빌라도의 손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을 해버리는데 보니까, 완벽하게 완전 범죄를 해버립니다. 1,400-1,500년 계속된 율법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이 복이! 이 복이! ‘왜 소를 잡으라는가? 내 속에 주를 위하여 일해야 되는 이 일꾼이 되어야 되는데, 죽어도 죽기까지 잡아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구나.’ 자기를 잡아야 되는데, 자기를 자꾸 잡다가, 예수님이 오시면 ‘날 대신 이 분이 죽어, 내가 나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분이 나의 구세주라!’ 알아 봤을 터인데.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들어 보지도 아니하고, 기도 중에 들은 음성으로, 그 다음 오신 주님을 알아본 사람. 다같이, 누구지요? 친구 빌립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친구 나다나엘에게, ‘여기에 구원의 주님이 오셨다. 얼른 오라’ 그러니까, ‘어디 출신인데?’, ‘갈릴리에서 오신 분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생활하던 나다나엘이, ‘갈릴리 예수? 갈릴리? 갈릴리에서는 천한 것들이, 이방인 것들이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오시지, 갈릴리? 거기에서는 구주가 올 리가 없는데.’ 갈릴리 출신이라 하니까, 나다나엘이 거부를 해버렸습니다. 성경에 ‘갈릴리에서는 구주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에, 주님이 나다나엘에게 ‘내가 너를 봤다. 무화과 나무 밑에서 기도할 때, 내가 너를 봤다.’ 주님이 몸으로 오기 전에, 하나님으로 계실 때.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했던 그 하나님이 몸을 입고, 예수님이 되어 둘이 마주쳤습니다. 기도할 때 들어본 그 음성, 들어보니까 딱 맞습니다. 그래서, 출발한 것이 나다나엘입니다. 그래서, 그 나다나엘의 이름은 ‘참 이스라엘이라’ 참 이스라엘이라. ‘회막문에서 소의 머리에 안수를 해서’ 내 죄를 소에게 다 씌우고. 그 다음, 소를 잡아 버립니다. 소를 잡으면서, ‘나는 죄 짓고, 너는 소니까 죽어라’ 그건 잔인한 짓입니다. 나는 죄 짓고, 소를 대신 죄인이라고 죽입니다. 소가 많으니까, 다음날 또 소를 죽입니다. 다음날에는 양을 죽입니다. 자꾸 잡다보니까, 죄에 대한 감각은 떨어지고, 주님의 대속은 생각도 없고. ‘소가 많고, 양이 많으니, 아직도 뭐 죄 여러 번 지어도 되는구나.’ 젊은 분들! ‘80을 살고, 100살을 사는 시대니, 20대 한 10년 놀다가, 30살쯤 되어서 교회 다녀도 되지 않겠느냐?’ 그 심보입니다. ‘젊어서 돈 벌고, 노인당 가서 성경 보고, 60대에서 출발해도 되지 않겠느냐?’ 양을 잡고, 소를 잡으며,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값은 사망이니까 죄 지은 내가 나를 죽여야 되는데,’ 양을 죽임으로 구원을 주신다 했으니, 양을 죽이며, 소를 죽이며,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은, 내가 죽을 죄를 지었는데, 네가 날 대신 죽는구나. 미안하다! 너도 생명인데, 미안하다! 나도 만물인데, 내가 잘 믿어 너도 찬송하고 복 받는 에덴동산의 짐승이 되야 되는데, 원죄로 너를 저주케 만들었고, 본죄로 죄를 지어, 나 대신에 네가 죽는구나. 미안하다!’ 이 마음으로 소를 잡으면, 한 번 잡고, 두 번 잡을 때마다, ‘소한테 미안해서라도, 죄를 덜 지어야 되겠다.’ 이런 사람이 되어지고, 그런 사람이 되면, ‘그런데, 이 소가 뭐지? 소가 뭐라서, 내 죄를 해결하지? 오실 구주를 내가 죽이고 있구나. 내가 죽어도, 죄는 지어서는 아니되겠다.’ 이리 될터인데! 부자라, 소 떼가 많으니 뭐 소 10마리 잡아다가 10번 죄 짓고, 그 다음 10번 더 죄 짓고, 또 소 10마리 갖다대면 되니까. 그러다가 예수님을 잡아버렸습니다. ‘소를 직접 죽일 것’, 잡을 때마다, 나를 잡아야 되고, 날 대신 죽는 주님을 잡아야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 죽였다고, 서양의 기독교인들, 세계의 믿는 사람들이 자꾸 유대인들을 욕을 해대는데, 2천년 전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죽였으나, 오늘의 예수님은 누가 죽이고 앉았지요? 예수님이 있어야 죽지요? 예수님이 부활하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헛 말입니까? 말하자면 그렇단 말입니까? 승천하시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눈으로 보이는 주님은 승천함으로 다시는 보이지 않는데, 승천했다 성화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주님으로 오늘도 이 자리에, 오늘도 우리 생활 속에, 우리의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데, 유대인은 오신 예수님의 육체를 죽였으면, 우리는 신인양성 일위의 부활하신 주님을 하루에 한 번, 두 번, 10번, 수도 없이 잡아대면서, 유대인만 욕하다니요? 유대인이 천국에서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향해서 호소할 겁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한 희생입니다. 죽어야 하나님과 하나 됩니다. 무엇이 죽어야? 내 주관이 죽어야, 내 자율이 죽어야, 주를 위하여 충성하다가 죽어야, 죽을 각오로 충성해야. 그래야 주님과 하나가 되고.

그 다음, 제사장은 제단 사면에 ‘피’를 쏟습니다. ‘생명을 모두 쏟을 것.’ 앞에서 많이 했습니다. 3번이나. 그러면, 화목제를 드리러 온 백성이 제사자인데, 제사장 말고 제사자. 제사자들이 이제 화목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 3장 3절을 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조금 다릅니다. 제사 지낼 사람은 소나 양을 데리고 와라, 소는 회막문에서 잡는다. 단 위에 피를 뿌린다. 각을 뜬다. 여기까지는 순서가 같은데, 화목제의 소를 3장 3절에 보면, “화목제를 위하여 가지고 온 소를 드릴찌니” 드리는데, 한번 헤아려 보십시다. “내장에 덮인 기름, 내장에 붙은 기름, 콩팥 둘, 콩팥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 다섯 가지입니다. 번제의 소는 ‘각을 떠라’ 8절에 보면 조금 더 나눠서, ‘머리와 기름을 나누어라’. 내장, 정강이 정도였습니다. 여기 화목제에 오니까, 암컷까지도 된다, 흠이 없으면 넓혀,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불러들이고 나가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적으로는 더 자세하게 되어집니다. 머리 자르고, 정강이 이런 것은 기본이고!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이라니요? 자기 안에 든 사람. 속아지 다 있지요? 속아지 없는 사람 있습니까? ‘내장에 덮인 기름이라’ 기름은, 무슨 기름요? ‘성령의 역사’. 2장의 가루를 가는데 섞는 식용 기름은, 식물성 기름은, 여기에 있는 동물성 기름과 다릅니다. 식물성 기름은 성령의 인도, 감화와 감동. 동물성 기름은, ‘귀한 것’,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내장에 든 기름이라. 덮인 기름이라’ 성령에 붙들린 사람, 성령에 붙들린 소중한 것. 귀한 것을 말합니다. “붙은 기름이라” 성령에 따라 인도되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그 다음 50페이지로 넘어가서, “두 콩팥과” 콩팥이 하는 일은 뭐지요? 온 몸의 더러운 찌꺼기를 다 걸러버리는 ‘필터’입니다. 콩팥 자체는 더러운 것입니다. 정화조 노릇을 하다 보니까. 그 바람에, 온몸이 깨끗합니다. “두 콩팥과” 깨끗게 하는 것과. 돌아가시는 분들 여러 가지 종류를 많이 뵈었는데, 가장 보기에 안된 것은 콩팥이 안되어 놓으면, 먹은 것이 대소변으로 이게 정리가 안되니까, 대소변으로 안 나가면 온 몸, 피부 얼굴로 이게 대소변의 독소들이 빠져나갑니다. 본인도 괴롭고, 지켜보는 사람도 참 못 견딥니다. 그럴 때에, ‘이 콩팥이 수고 하는구나.’ 집에 청소할 때, 콩팥은 뭔가요? 걸레입니다. 걸레가, 원래는 수건입니다. 나도 수건 때에, 거리에 떡 하니 내려다보며 ‘더러운 것 안 닦아!’ 그러면, 주인의 바닥, 마루, 현관, 전부가 엉망진창이 됩니다. 깨끗한 수건을 물로 깨끗하게 빨아서, 현관, 마루, 방, 문턱, 닦아대면, 온 집은 깨끗해지고, 이 수건은, 깨끗한 수건은 어떻게 되지요? 똥 걸레가 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한 콩팥입니다. ‘콩팥을 하나님께 드려라’ 그 콩팥 위에 깨끗게 하는 영감의 역사, 깨끗게 하기 위하여 인도하는 영감의 역사가 콩팥이고, “그 위의 기름”, 그 소중한 것, 그 성령의 인도를 따라 고생한, 그 모든 것을 “콩팥 위에 기름 곧 허리 기름” 허리는, 힘을 쓰는데 필요한 것을 허리라합니다. 실행에 필요한, 힘이 되는 영감의 역사. 그 다음 “간에 덮인 꺼풀이라” 간 꺼풀을 말합니다. 간이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깊이 들어갈 것 없이, 어느 나라든지, 건강을 모를 때도 ‘간 크네?’ 무슨 말이지요? ‘죽으려고 용을 쓴다’ 간이 부었으니, 곧 죽을 사람이 뭐 겁나는게 있나요? 쥐가 많아서 쥐약으로 쥐를 잡던 시절에 그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고 고양이를 부릅니다. ‘너 나와! 나 쥐약 먹었어’ 그러면, 고양이가 갚겠습니까? 그거? 이게 간입니다. 간이 잘못되어 놓으면, 사람이 견딜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콩팥은 ‘몸을 깨끗게 하는 수고’, 간은 ‘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 자기 속에 가장 중요한 요소. 이것 전부를 하나님 앞에 드려라. 지금, 소를 두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싶으냐?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화목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살고 싶느냐?’ 주님이 기뻐하는 복음의 일을 하라! 주님이 앞서 수고한 그 대속의 공로에 너도 동참하라! 그렇게 하되, 네 속의 내장을, 3절에 “내장을” 다시 살펴, 앞의 번제는 내장을 그냥 씻어서 올리면 됩니다. 태우면 되는데. 화목제는, 화목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하여, 내장 속을, 속 사람을, 속 인격을 들여다봐서, “내장에 덮인 기름” 나도 속에 억매인 것, 얽힌 것, 억울한 것, 다 내 놓으면 되지만은, 남자가 돈 벌어왔다고 뭐, 직장가서 윗사람에게 시달린 것, 손님한테 물건 파느라고 괴로웠던 것, 내가 처 자식 먹여 살린다고, 얼마나 한 달간 월급 버느라고 수고를 했데, 속에든 것을 다 펼쳐 놓으면, 부부 사이가 하나 되나요? 아니면, 하나 된 부부도 깨져버리는가요?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교인 때문에 속 썩은 이야기, 하나, 둘, 셋을 풀어 놓으면, 교회 교인과 목회자를 하나 되겠습니까? 아니면, 깨져 버리겠습니까? 안 할 수 없어 해야 될 때도 있기는 있지만은, 근본적으로 말을 하면, 속에 든 사람, 속에 든 인격, 속에 상한 것 전부를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달래어, ‘주님 때문에’. 이게 “내장을 덮은 기름”입니다. 이게 들어, 말 조심하고, 참고, 자기를 잡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과 나하고도 하나가 되고, 내가 다른 사람과도 하나가 되어집니다. “내장에 덮인 기름” 성령에 붙들린 자기 속 마음, 자기 사정, 자기 사연. 남자가 돈 벌어오느니라고 한 달간 애쓴 이야기를 전부 미주알 고주알 퍼부어대면, 또 여자는 할 말 없는가요? ‘네 애 기르느니라고! 널 닮아 뭐 같은 네 애 기르느니라고! 나 속 썩은 것도 다 내놔보지요?’ 둘이 번쩍 깨져버리지. ‘돈 벌어오는 나도 고생 했겠지만은, 애들 데리고 하루 종일 시달리며, 밖에 못 나가본, 너도 얼마나 고생을 했겠느냐?’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해를 하고, 주의 대속으로 감화의 나를 만들고, 내 속에 염소 같은 것 죽여버리고, 순종의, 양손의, 겸손의 마음으로 살살 달래는, 성령의 역사가 “내장에 덮은 기름”. 그렇게, 성령이 인도하는 그 사람이, “내장에 붙은 기름”. 다 귀하고 귀한 성령의 소중한 것입니다. 너도 내 놓고, 나도 내 놓고, 남편 내 놓고, 아내 내 놓고, 밥상의 아이도, 큰 아이 내 놓고, 막내 내 놓고, 처갓집 붙고, 시댁 붙고, 옆집 붙고, 난장판 구라파 전쟁이 일어나 버리면, 깨지는 것은 화목이 깨지고, 전쟁입니다. 주님이, 죄 지은 날 구원 하려니, 얼마나 속이 뒤집어졌겠습니까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때문에 오신 주님이, 모든 것 하나님 아버지 기뻐하심을 따라, 그냥 대신 죽고, 우리를 구원해놓으시며, ‘너도, 너 중심의 속아지, 하나님 없는 네 주관의 잘못된 것, 그것은 죽여라. 그것은 달래라.’ 이렇게 성령이 살살 우리를 달래시는데, 그 달랠 때에 ‘예’, ‘예’ 하면, 내장에 기름이 붙어, 보기에 번들 번들 좋아보입니다. 이게 “내장에 덮은 기름”, “내장에 붙은 기름” 

그 다음, 50페이지로 아까 넘어갔지요? “두 콩팥도” 콩팥이라니요? 여기 더러운 것, 여기 잘못된 것, 이 사람의 악, 저 사람의 오판, 전부가 내게 오면, 다 걸러져버립니다. 언제 한번 예를 들었던가요? 한 20 몇 년 전에, 어디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실화입니다. 시골에 목회자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전도사님 한 분이 왔는데,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옆에 사는 장로님한테 딱 걸려버렸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교인들 발견하면 어떻게 할까요? 마을 방송을 해 버리고 싶겠지요. 아니면, ‘아이 뭐, 나도 뭐 담배 못 끊었는데, 너도 나도 함께 피우지’ 또 한 쪽에서는 그럴 건가요? 떠들고, 광고 할 수도 없고. 함께 담배 피우자고, 죄 짓는 것을 봐줄 수도 없고. 그 장로님이 옳고 바른 방법을 낸 것이, 제직회로 모여서 ‘우리 전도사님 담배 피우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이러니까, 전부 다 ‘쫓아 내버려야 되겠는데’ 이 말이 나오니까, 장로님이 ‘여기서 담배 피운 저 전도사 쫓아 놓으면, 다른 교회 가서는 이제 안 들키고 담배 계속 피우겠지. 그러다가 암 걸리겠지. 그 교회가 교회 되겠느냐? 이제 내가 봤으니까, 우리끼리 알고, 집사들이 함께 단결해서, 저 전도사 담배를 끊게 같이 감독을 하자, 그래서, 끊고 나면 그 다음 보내자. 그러면, 그 다음 교회 가가지고는, 나쁜 짓 안 하겠지.’ 그래서, 전도사님을 불러다가, ‘장로 내가 봤습니다. 집사들이 다 압니다. 앞으로 다 지켜볼 겁니다.’ 이래 놓으니, 이제 숨어 피우던 이 담배를, 이 전도사님이 할 수 없이 끊었습니다. 그 정도가 되어 놓으니.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 다음, 장로님이 제직회를 다시 열어서, ‘약속대로 보냅시다.’ 하니까, ‘예. 보냅시다.’ 결론이 그렇게 나왔을까요? ‘아니, 담배까지 끊었는데, 그 어려운 것을 끊었는데, 아 세상에 자존심도 다 꺽고, 그냥 그랬는데. 담배 끊은 것을 보니까 굉장한데, 깨끗해졌으니까 모시고 그냥, 우리가 목회자로 끝까지 데리고 있습시다’ 이렇게 결론을 봤습니다. 죄와 타협도 아니지요? 떠들어, 방송도 아니지요? 떠들어 방송을 해 놨으면, 얼마나 창피해서 소문이 나서, 쫓겨 가면서 속으로 그 교회 평생 이를 갈았겠습니까? 그게 하나님한테 저주로 와 가지고, 좋을게 있겠습니까? ‘아니, 뭐 너도 죄 짓고, 나도 죄 짓고, 같이 봐주면서 믿지’ 그러면 교회 자체가 죄악 구덩이가 되겠지. ‘죄는 죄입니다! 함께 끊읍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그 바람에 끊고 나니까, 끊는다고 애 쓰고 나니까, 그 다음, 전도사님의 은혜와 목회 실력이 넘쳐서, 그 전도사님 모신 것이 얼마나 잘되었는고, 이게 생명을 살려가는 화목의 운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속에 있는 것을, 달랬고, 눌렀고, 깨달았고, 대화를 한 그 속에 모든 것이, ‘내장을 덮은 기름’입니다. 이게 인도되어가는 집사님들은 ‘내장에 붙은 기름’입니다. 그러느니라고, 이 전도사님 담배를 끊느니라고 지켜보는 과정에, 애 터지고, 그 다음 기도했던 모든 것이 ‘콩팥’입니다. 더러운 것을 다 정화시키는, 정수기의 필터처럼. 진공 청소기가 가면, 그림처럼 청소가 되는데, 진공 청소기 안에는 모든 먼지가 똘똘 뭉칩니다. 걸레가 가는 곳마다 깨끗한데, 걸레는 더러워집니다. 이게 콩팥입니다. ‘너도 한 잔 먹고, 나도 한 잔 먹고, 십일조 회계도 돈 좀 빼먹고, 발견한 목사도 좀 나눠 먹고,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총회도, 노회도, 교회도, 간부도,’ 다 함께 썩어가는 길도 있고. 떠들어서, 바짝 깨 버리는 산산조각내는 방법도 있고. 모든 것, 이 한 몸에 다 거쳐서, 그리고 보니까 주님이 오셔서, 죄 잘 지으라고 용서해 준 적 없고, 어떤 죄든지 죄는 다 깨 부셨고, 그러면서 대신 죽어,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만들었고, 주님의 하시는 일이 ‘콩팥’이었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 우리의 지저분한 것은 전부 다 당신이 안고, 해결을 했으니까, 이사야 53장, 예수님의 사진, 모습을 그려봤는데, 어떻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음이라.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을 미남으로 모두 만들었대는데, 이사야가 보니까 오실 예수님은, 못난 예수님, 더러운 예수님, 우리 죄를 다 닦고 보니까, 예수님이 똥걸레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가정을 위하여, 한 가정의 죄를 씻는다고 기도하고, 한 가정의 죄를 씻는 것이, 쫓아버리고 정리하면 쉽지만은, 살리면서 이걸 고치려니까 속이 녹아나지요. 이런 고통,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더러운 것은 다 콩팥이 거머쥐고, 소변으로 빼내면, 온 몸이 늘 건강합니다.

“콩팥도”, 자기 속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간도”. 이런 전부를 다. 4절 “두 콩팥과 그 위에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의 교훈의 계통은 “그것을 단 위 불 위에 올려 놓고, 그 위에 나무를 벌려놓고, 나무 위에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엉망진창의 한 가정에, 신앙의 한 신부가 결혼해서, 화목의 이런 짐을 다 지고, ‘내장에 덮은 기름’, ‘내장에 붙은 기름’, 콩팥의 역할, 간의 역할을 다 하고나니까, 불량한 남편도 아내 따라, 이제 교회도 다니고, 막가던 딸도 이제는 좀 성경도 읽고. 그 모습을 보며, 시부모가, 자기 아들이 나쁜 줄 뻔히 알면서, 시어머니라는 사고방식은, 일단 딸을 잡아봅니다. ‘네가 좀 이해하고! 네가 잘하면 남자가 그러겠냐?’ 그래 놓고, 훗날 10년, 20년,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 을 보니까, 마지막에 지켜보며 ‘애썼다. 내 아들은 내가 봐도 부끄럽다. 네 신앙이다. 너 가는 교회, 나도 따라 나갈란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자기 잘못 다 해결하고, 하나님이 주신 식구들 다 하나님 앞에 바로 거두다보니까,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는, 옛날부터 조선에서는 원수인데, 시부모가, ‘유교 접으마! 제사는 치워버리마! 우리 집안은 너 하는대로 해라. 아무래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이 가정이 잘되는 길이다.’ 이렇게 가는 수고를 소의 화목제라 합니다. 여반들, 이게 여자가 억울해지는 건가요? 여자가 비참해지는 건가요? 하나님 앞에 귀한 여자를 갔다가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면, 여반에게 천하를 맡기고, 영생을 맡기는 영광의 직책인가요? 한 지저분한 교회에, 소의 화목 제물을 바로 드린 교인 하나가 있으면, ‘아이 그런 교회가 진리를 알겠는가? 그런 교회가 화목이 있겠는가? 그런 교회가 복음 운동을 하겠는가?’ 그런 교회가 손양원 목사님이 가고 나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여수 애양원에 갈때에, 여수 애양원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몸도 환자이지만은, 인격도 환자, 생활도 환자. 손 목사님이 1939년에 애양원에 가셨는데, 1년 만에 교도소에 가서 6년 만에 나왔습니다. 그 다음 6년 만에 나온 다음, 전국 사경회를 다니느니라고, 애양원에 별로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애양원에 오셨다가, 한 1년쯤 지났을 때, 백 목사님이, 집회 장소 저 넘어 건너편이 ‘계명’입니다. 집사 시절에, 거창 함양 그 다음 합천, 3개군 교회 대표로, 남원으로, 순천으로, 신풍으로, 애양원으로 가가지고, 손양원 목사님에게 ‘거창 3개군 사경회의 강사로 와 주십시오.’ 부탁하러 가었습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 손 목사님은 없고, 1,500명의 나환자가 진동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살 썩은 냄새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백영희 집사님이 애양원을 방문해보니까, 여기도 향기, 저기도 향기, 여기도 진리, 저기도 기도, 저기도 복음 운동, 저기도 순종, 여기도 화목제, 여기는 번제. 반나절 구경하고 나서, ‘그냥 여기 눌러 살면 싶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보사부’, 요즘 복지부의 법이, ‘양성 환자가 있어서, 허락받고 잠깐 구경은 해도, 여기 있지는 못합니다.’ 해서, 나간 일지가 있습니다. 일기. 손 목사님 돌아가시고, 백 목사님이 사경회 강사로 다시 가보니까, 냄새, 냄새 더러워서 그냥, 그때는 DDS라는 약이 들어서, 사람을 치료할 때입니다. 첫 번째 갈 때는, 약이 없어 살 썩는 냄새, 1,500명 진동을 했는데, ‘에덴동산이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향기, 이 사람도 미, 저 사람도 아름다운 천사, 살고 싶어 주저 앉으려고 그랬는데, 손양원 목사님 가고 나서, 애양원을 다시 들어가 보니까, 이제는 의사가 많고, 치료약이 있어서, 환자들이 흉터만 있지, 병이 나아가는데도, 욕심 더럽지, 성질이 보통이 아니지, 잘났다고 뭐 치고 박고 싸우지. 그 하나님의 종, 손양원 목사님 화목제의, 소의 그런 걸음 걸음 하나에, 그 손양원 목사님의 내장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간, 그 간 꺼풀, 그 콩팥, 그 속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달래기도 하고, 심방도 하고, 야단도 쳤을 것이고, 그냥 기록으로는 나오지 않는데, 애양원 안에서 지금 70년 내려오는, 자기들끼리만 하는 비밀이라면서, ‘손 목사님이 사생애를 하나 낳았다. 딱 손 목사님을 닮았다.’ 이건 애양원 안에, 오래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니까, 손 목사님을 따르는 제일 전도사 같은 여자 분이, 겁탈을 당했습니다.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냥 두면, 이 여자 갈 데도 없고 큰일 나겠습니다. 그냥, 손 목사님 아들이라고 말이 도니까, 손 목사님이 아무 말씀 안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애양원 안에 오래된 사람, 뭔 비밀을 안다는 사람들끼리, 수근 수근 ‘다른 사람은, 손양원 목사님을 존경 하나, 나는 비밀을 안다’고 궁시렁 거리는데, 그 궁시렁 거리는 소리 중에 제일 악한 소리 중에 하나가, ‘사생아를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군의관인가 모르겠습니다. 그 의사로 온 사람. 그런 접촉이 있었습니다. 남이 낳은 아이를, ‘내 것이 아닌데?’ 한 마디 하면, 이 여자는 가버립니다. 멀쩡한 사람을 갈 때가 있지만은, 나환자들은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욕 다 얻어먹고, 입 닫고, 그냥 가셨습니다. “내장에 덮은 기름”, “내장에 붙은 기름” 이게 “콩팥”이며, 이게 “간”입니다.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의 유명한 것은 적고, 바른 것이고, 엉뚱한 것이고, 정말 신앙의 값진 것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 종이 화목제의 소가 되어 걸어감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맺어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손 목사님은 신풍교회 설립자이고, 우리는 공회니까, 백 목사님의 이런 이야기를 두고 말하려면, 한 100년은 제가 이야기 할만큼, 이야기가 그리 많습니다. 저 가정 때문에, 저 교회 때문에, 저 목사 때문에, 저 교인 때문에, 옆집 때문에, 뒷집 때문에, 아들 때문에, 딸 때문에, 별의 별 오해, 별의별 분란, 말도 못하는 그 평생의 모든 것을 다 당신이 정리하고, 씻고, 입 닫고 그렇게 걸어감으로, 그리고, 서부 교회, 그리고 공회 하나가, 이 노선이 나온겁니다. ‘아니 뭐 손양원 목사님이나, 백 목사님은 너무 위대해서 그렇겠지.’ 그 분들 뒷 조사해보면, 그 분들이나 우리나 별로 차이가 나지를 않습니다. 백 목사님 돌아가시고, 한 오랫동안 제가 전기 때문에 조사를 했는데, 조사한 이유, 제일 제 마음에 절박한 것은, ‘백 목사님은 타고나기를 천사라서 저리 됐는가?’ 그러면 나한테는 그림의 떡입니다. 훌륭한 분이 훌륭한데 제가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그래서, 집안, 족보, 백 목사님의 자녀들의 학교 성적표, 생활 기록부 전부 다 뒤져 가지고, 집안 조사를 하니까, 집 안에서 뭔 폭로하려고 그러는가보다 해서, 모두들 난리가 났습니다만은, 끝까지 다 뒤져 보니까, ‘아니 뭐, 그 집 안이나, 우리 집 안이나 비슷하네.’ 여기 저희 집안 다 아시지요? 저 앞에 와가지고 악 쓰는 인간. 제가 슬쩍 잘못되면, 저는 한 10배는 더 할껄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 주변에 나쁜 사람보다 몇 배 원래 나쁜 인간으로, 다 알고 계십니다. ‘저거 인간이 될까?’ 다 그랬습니다. 그 악 쓰는 사람, 하나님이 녹을 해다가 악을 쓸 때에, ‘나는 저 인간보다 더 했지. 지금도 홱가닥하면, 몇 배는 더 하겠지.’ 백 목사님 뒷조사, 집안 조사, 손양원 목사님은 신풍교인하고 관계가 있어서, 집안 족보를 다 조사해 보니까, ‘우리 집안도 손양원 목사님 집안보다는 뭐 나을 수 있겠네?’ 백 목사님 자녀, 집안, 손주 다 조사해보니까, 그만하면 일반 집안이지, 하늘에서 천사가 나서, 하늘에서 천사를 데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위대하면 그림의 떡이지요. 공부도 안 했는데, 뭐 서울대 법대 수석해서 들어갔다면, 그거 흉내내서 되겠습니까? 우리하고는? 천재인데. 아무리 공부해도 될까 말까, 그러는 사람이 합격을 하면, ‘나도 열심히 하면 합격하지 않겠나?’ 소망이 생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 목사님 위에 할아버지 뭐 사촌, 5촌, 조카, 샅샅히 다 뒤져보니까, 도둑놈 있고, 열대 여섯 살짜리가 벌써, 온 집안을 다 팔아먹은 그런 인간도 있고, 배신자도 있고, 온 거창군이 다 알아주는 처갓집 말아 먹은 조카도 있고,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또 백 목사님 성적이고 뭐고 조사를 해보니까, 시골의 학교에 똑똑하지, 군에 똑똑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본받을 점은, 들으면, 맞는지? 안 맞는지? 조사해보고 따라가지, ‘그렇다더라’ 하고 따라가지는 절대 않습니다. ‘아, 이것 하나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구나! 그러면, 나도 어떤 말이 들려도, 따져보고, 확인해보고, 생각해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면, 뭐 10분의 1, 절반을 따라가지 않겠느냐?’ 소망이 생겨서 이 설교합니다. 소망이 생겨서 목회합니다. 타고나기를 위대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됐는데, 우리가 그림의 떡이지, 그걸 뭐하려고 배울 겁니까? ‘사도 바울이나 되어야 적는 성경, 손양원, 백영희나 되어야 실행하는 말씀. 우리야 뭐 이러나 저러나 소망도 없는데, 치워버리지. 기본 구원은 있으니까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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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09
치워버리지. 기본 구원은 있으니까 천국은 갈 것인데’ 알고보니,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사람에게도 단점을 그만큼 주셨고, 못난 사람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셔서, 결국 따져보면 하후하박이 없다. 공평의 하나님이라. 좋으면 좋은 것만큼 단점도 있고, 단점이 있으면 기회도 있고, 그러니 남 탓 할 것 없이, 말씀 붙들고 배운 말씀으로 한 걸음, 두 걸음, 화목제 생각해보고, 소 생각해보고, 왜 콩팥인가 생각해보고, 왜 내장에 덮은 기름인가 생각해보고, ‘나는 내 속아지를 어떻게 썼는가? 나는 염소 같이 살았는가? 양처럼 살았는가?’ 그리고, 하나 배우고 하나 실행해 보고, 하나 배우고, 하나 실행해보다 보니까, 어느덧 남들이 볼 때는, ‘아니 뭐 당신이야 원래부터 믿는 집안에서, 잘 믿었으니까 신풍교회 목사 하지 않겠느냐?’ 신풍 교인들이 그렇게 오해할까봐, 거창에 있는 식구 하나를 갔다가 신풍교회 앞에 데려다가, 목에 이만큼 ‘이영인이 도둑놈, 전과자’ 그러고, 지금 집집마다 심방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안 믿는 집집마다. 그 인간 볼 때, ‘내가 저 놈이다. 나는 저 인간보다 몇 배 더한 인간이다!’ 신풍 교인들에게, ‘신풍의 일반 교인보다 몇 배 나쁜 인간이 목사하고 있습니다. 말씀 따라가면 목사할 것이고, 말씀에서 이탈되면, 일반 교인보다 못할 인간입니다.’ 이게 성경 아닌가요? 이게 화목제 아닌가요? 이게 화목제의 소가 아닌가요? 이게 화목제의 소 안에 “내장에 붙은 기름”, “콩팥”, “간”을 ‘하나님께 불 살라’라는 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리 생각하면, 몇 되지 않은 우리 공회, 여기에 있는 우리 집회 장소의 우리 교인들, 한명만 걸어가도 주변이 환할 텐데, 10명 교인이면 1,000명 교회가 환할 텐데, 몇 백명 모인 집회에, 우리가 이 말씀 하나 바로잡으면, 한국 교회를 살릴 수 있지도 않겠는가? 나 하나 그리되면, 그리 되는데. ‘저 교회, 이 교회, 이 사람 다 뭐하는고?’ 욕하면서, 자기는 어두움 속에 숨어, 몰래 몰래 죄 짓고 앉았으면, 소망이 없는 이 말씀을, 화목제 소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목, 하나님과 하나 된 내가 하나된 화목. 하나님이 주재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려면, 하나님 앞에 해야 될 일을 할 때에 소처럼 하거라. 소를 각을 뜨거라. 번제도 각을 떴습니다. 화목제는, 속을 뒤집어 보거라. 속아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간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콩팥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성령이 붙들어 역사하는 귀한 그런 인격, 그런 요소가 생겼는가? 아니 생겼는가?
교인 2020.06.09 17:09
설교요약

 ① 월후 : 레위기 5대 제사
  - 소와 양의 제사로, 대속의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나타냄
 
 ② 월밤 : 제사 제물 (소, 양 염소, 비둘기)
  - 우리 형편에 따라 예물이 되어 복이 되려면
 
 ③ 화새 : 번제 1
  - 번제의 소의 충성, 소와 양의 비교. 내장 정갱이의 더러움을 씻고    
 
 ④ 화전 : 번제 2
  - 번제의 양의 순종 염소의 거역, 새의 변덕 더러움을 정결하게
 
 ⑤ 화후 : 소제
  - 자기 결실을 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기 주관을 없애는

 ⑥ 화밤 : 화목제
  - 소의 화목제, 내장의 기름들,  내면의 성령 인도로 만들어 진 귀한 것으로
교인 2020.06.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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