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19.8.7 레3:6 양의 순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꼬리의 기름 그 끝까지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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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19.8.7 레3:6 양의 순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꼬리의 기름 그 끝까지 순종

교인 2 166 2020.06.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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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6 수새 (5대 제사 집회 7)

제목 : 양의 순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꼬리의 기름 그 끝까지 순종 

본문 : 레위기 3장 6절 -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우리의 범죄까지 우리의 영생에 사용하여, 하나님 없는 세상, 나 혼자서는 죄악의 어둠이 어떤지를 겪게 하시고, 비교 시켜 중생하면, 과거와 미래를 나란히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답게, 끝없이 감사하도록, 예물의 생활로, 영광의 나라 주님을 머리로 삼고, 만물을 발 아래 두며, 주께 받은 은혜, 만물과 영원, 영생에 이르도록 충만 시키는 이런 영광스러운 교회로 기르기 위하여, 구약의, 제사의 여러 제도를 주시고, 신약의 저희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도록, 이 아침도 화목의 제사를 살피고자 하오니, 소처럼 무언의 용사로, 주님 소원하는 어떤 일이든지 끝까지, 맡아 나가는 종들 되게 하시고, 화목제의 양이 되어, 순종 하나로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된 저희들로 인하여, 만물과 하나 되며, 영원한 나라의 영광의 실상을 오늘부터, 또 집회 기간 이런 생활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도록, 빛된 우리, 빛이 되는 이런 지식의 우리가 되도록, 능력으로 우리의 사상과 사고방식을 바꾸어 주옵소서. 이 시간도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52페이지입니다. “만일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양을 잡아드리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희생의 양은 수컷이나, 암컷이나 상관이 없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그러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레위기 22장,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눈 먼 것은 아니된다. 세상에 눈이 멀어, 정신 없는 그것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다. 상한 것은 아니된다. 세상 속에 세상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이리저리 상처난 것은 아니된다. 잘린 것도 아니된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흠 없는 것이면 된다.

그런데, 7절에 보면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암 컷도 되고, 수 컷도 되고, 어린 것도 되고, 그런데 만약에 어린 것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어린 양이면, ‘끌어 올 것’. 좀 크면, 주인이 앞서가면 따라오기가 쉽지만은, 어린 양이면, 길을 잃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첫 신앙, 여린 신앙, 순수한 것은 좋으나, 어디로 가야 될런지? 방향 감각을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어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은 끌어 오너라, 인도해 오너라.’ 양은 순종이 양입니다. 특별히 순종이 양인데, 좋게 말을 하면, 순수하지만은, 순수한 것은 뒤집어서 보면, 어리석어서 어디에 설는지, 어디를 따라가야 될런지를 모르고, 강단에서 끌고 가면 통일교도 가고, 강단에서 끌고 가면 신천지도 가고, 아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이라는데, 누가 그 말이 싫겠습니까 만은, 신천지 간판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지, 옛 하늘, 옛 땅에서 많은 거짓이 있었고, 속음이 있었는데, 간판을 또 들고 나오니까, 또 따라가는지? ‘박 천지 놀음’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사람인데, 바가지 탈 이것을 쓰면 양반, 저것을 쓰면 상놈. 해 아래 새 것이 없는데, 이 말 하면 따라가고, 따라가다가 속아 보면, 귀신이 그 다음에는 간판을 바꾸고, 하는 행동을 바꾸고, 요즘 말로 ‘로고’만 바꾸면, 또 따라갑니다. 속에 든 본질이 무엇인지를 좀 살펴야 되는데. 양은 순종이라, 순종은 믿음이라, 이건 신앙의 능력이고, 복인데. 어린양의 ‘어림’이 ‘어리석음’이 되어, 앞에서 끌면 어디든지 따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끌면 따라가고, 진리면 따라가지만은, 하나님과 진리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다윗이 인도를 해도 살펴보다가, ‘역시 하나님께 붙들린 다윗이 인도하는 길이라’ 하면, 따라가면 순종이고. 다윗이 인도하는 길이라도, ‘이 순간 이 분은 아니라’ 하면, 그때는 아니라 할 수 있어야, 이게 자유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데. 끌면 누구든지 따라가니까, 너도 선지자, 나도 선지자, 선지자 이름만 걸면, 따라 가보는 이것도 탈입니다. “어린양이라, 끌어 오너라, 인도해 오너라” 이거 인도하지 않으면, 어디로 흩어질는지, 어디로 따라갈는지 모른다. 

여기, 6절에는 “양이면” 그 다음 본문의 12절에 보면, “만일  화목제의 예물이” 화목제는 앞에서 나왔으니까, 생략입니다. “만일 예물이” 화목제의 예물이 “염소라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염소가 따라옵니까? 어린 양은, 빗 길, 곁 길을 잘 가니까, 살살 인도하는, 끌어 오는 것이라면, 염소는 거역 잘 하지요? 억세지요? 나름대로 잘 나서, 또 주관이 있지요? 이것은 멱살을 잡아다가, 이것은 좀 힘으로 끌어와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끌어다가” 6절에, “화목제의 희생이 수컷이나 암컷이나” 암 수는 상관이 없다. “양이면 그냥 드릴찌며” 해놓고, “만일 어린 양이면 끌어다가” 12절에서는 “염소면” 이건 뭐 암 수 가릴 것 없이, “염소는 좀 붙들어다가 끌어다 오너라” 내 속의 요소별로, 신앙별로, 상황별로, 설명해서 되는 것도 있고. 대화로 되는 것도 있고. 앞서 가면 따라오는 것도 있고. 회초리 들고, 목을 끌어다가 좀 힘으로 가져와야 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습니다.

교재 51페이지에, 지금 양과 염소가 계속해서 나올 겁니다. 너무 중요해서, 또 복습 차 인쇄를 좀 해놨습니다. ‘순종’하면, 양. 염소는 반대로 ‘거역’하면 염소. 평생에 하나님 앞에, 순종과 거역의 내 두 마음을 가지고, 달력에 주일이 가까울 때, ‘은혜의 안식일이 또 오는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이 바로 내 속의 양입니다. ‘한 주간이 뭔 이렇게 빨리 와서, 또 주일이 닥쳐?’ 이렇게 내 속에 거부, 거역감이, 움틀 버리면 ‘이놈이 바로 내 속의 염소로구나!’ 분쟁하면 염소, 어쨌든 양은 화목입니다. ‘밉지만, 행동은 밉지만, 하나님의 피 흘려 구원한,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좀 모두어 볼까? 기다려 볼까? 그래도 끌어다가 예배당에 앉혀 볼까?’ 전도 좀 해 보셨습니까? 전도를 했는데, 마음 먹는 ‘저 사람은 꼭 모셔야 되겠다.’ 했는데 오는 사람은 희귀하고, 평소 다른 문제로는 그렇게 좋고, 괜찮은데 교회 말만 나오면, 갑자기 이렇게 영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다. 그럴 때, 내 속의 성격대로 ‘안 오려면 말지?’ 이게 분쟁입니다. 하나님 앞에 깨지고, 갈라지는 것. ‘나도 믿을 때, 저러겠지’ 저처럼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멋 모르고 갔습니다. 그러면, 제 위에 처음 믿은 부모님, 그 위에 처음 믿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좋아서 교회 다녔겠습니까? 위로 올라가면, 이 나라 130년 전 첫 선교 할 때, 선교사를 원숭이 보듯이 봤고, 괴물 보듯이 봤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봤고, 나라에서 보이는 대로 다 죽이라고 했고, 반 만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 나라 우리 조상들이, ‘예수교가 뭐냐? 교회가 뭐냐?’ 민족적으로 저항하고, 전부 죽인다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그 당시, 이미 선진국이 되어, 오늘 우리처럼 잘 살던 선교사들이, 그 격차가 극심한, 자기의 편의, 자기의 모든 좋은 생활 다 뿌리치고, 현재 우리나라 사람이 아프리카 가는 것보다, 몇 배 어렵고, 불편한 이 나라에 와서, ‘어떻게 이 민족도 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볼까?’ 그 연구, 그 누력, 그 꿇어 하나님 앞에 앉히고 싶은 화목의 그 생각이, 선교사 그 분들은 양이었고. 우리는 희망 없는 민족, 가난한 민족, 굶어 죽는 나라, 일본의 식민지 되는 그 신세는 생각도 안 하고, 나름대로 잘 낫고 고집이 있어, ‘우리는 유교다. 불교다. 서양 귀신 싫다.’ 별의 별 일을 다 했었습니다.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우리는 ‘염소’였습니다. 이 염소 같은 복음의, 못된 이 민족, 이 나라가, 지금은 뭐 헌법에서는 국교가 없지만은, 거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다시피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런 조상, 그런 역사, 그런 우리를 생각하면, 기독교가 국교가 되다시피 한 이런 세상에, 아직도 옆 집에, 아직도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붙든 하나님, 하나님께 붙들린 화목의 내가, ‘어떻게 좀 저 사람도 마음을 돌려, 교회에 앉혀 볼까?’ 이런 마음이 양입니다. ‘안 나오려면, 말지? 가기 싫으면, 치워 버리지? 이렇게 열심히 전도하는데도 지가 교회를 안 나와?’ 이런 실망, 이런 낙망이 들면, 그 다음 ‘염소’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화목의 양, 분쟁의 염소. 다른 사람 생각하는 그 생각이, ‘왼손은 하는 일도 없지만은, 왼손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여기까지 생각하여, 먹기는 오른손이 먹고, 양분과 피와 살은 나누어 가지는. 이런 양보, 이런 배려, 그런 양순, 그런 겸손, 그런 사랑이 양이고. ‘왼팔이야야 죽든지 말든지, 오른팔만 잘되면 되지?’ 오른팔 안에서도 다섯 손가락이, ‘나 하나면 되지 뭐, 다른 것이야 아프든지 말든지’ 이런 탐욕, 그런 억셈, 그런 교만, 그런 질투만 촐촐 추려놓은 것이 염소라. 양과 염소를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데, 길러 보고, 접촉해보면, 내용적으로는 정 반대가 되도록 해놓으시고, 한 사람 마음 안에 같은 것 같은데 분석해보면, 양과 염소가 되도록, 이렇게 해 놓은 다음, 화목제에 먼저 ‘양’을 원하셨습니다. 어제 밤에는 ‘소’, 오늘 새벽에는 ‘양’.

절차는 소와 꼭 같습니다.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6절, 번제의 3가지도 마찬가지. 번제의 절차도 마찬가지. 화목제의 1절부터 나오는 소도 마찬가지. 6절입니다.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는” 예물이라, ‘속에 감사가 들었고, 밖에는 정성을 입혔구나.’ 화목제의 희생, 희생은 잡아 죽여야 희생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목제를 위하여, 하나가 죽어야 그 다음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런 화목제의 ‘희생’이 나오는 겁니다. 만약에 형편이 양이라면, 화목제는 하나되어, 그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이니까,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이면 된다” 번제는 ‘수컷’만 되었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바쳐, 수고하는 일! 책임! 일을 해 내는 ‘헌신’이기 때문에, 여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컷을 제물로 표시하며, ‘남자도 충성하라! 여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늘나라에서는 남녀 없으니, 헌신하라!’ 남녀의 구별과 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성’, 일을 해내는 ‘성취’를 두고,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 앞에 각오하라.’ 그 뜻으로, 번제는 ‘수컷만’이라 하셨는데, 화목은 ‘구별하지 말라, 약한 것도 붙들고 가라. 단, 흠은 없어야 된다.’ 7절, “어린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절입니다. 번제의 소도, 번제의 양과 염소도, 그리고 화목제의 소도, 그리고 화목제의 양도, 8절. “예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라” 손을 얹으면, 뭐가 되나요? ‘안수’가 됩니다. 나의 죄, 나의 못난 것 전부를 이 머리에 얹어, 이 양에게 다 뒤집어 씌우고, 옮겨 놓고, ‘이제는 이 양이 바로 접니다.’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번제의 소는 회막 앞에서 잡고, 양과 염소는 단 북편으로 가지고 갔는데,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화목의 이 양일 때에는, ‘바로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하나되는 좋은 분위기에 주저주저 하다가, 기회 놓치기 쉽습니다. “번제의 소를 회막 앞에서 잡아라”는 말은, ‘하나님께 충성은 즉각! 단번에 하라!’, ‘하나님 앞에 헌신의 길은, 어려울 때도 끝까지 가라. 그 속에 염소의 거역이 있는지, 어려워봐야 안다.’ 이런 면으로 북편을 말을 했으면, 화목제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수컷이 아니라, 암컷도 된다. 어린 것도 된다.’ 넉넉하여, 자꾸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다 보면,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화목제의 양은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아론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통의 사람이, 구원의 계통의 나의 신앙이 되어, 그 구원의 계통으로 내려오는 신앙의 노선, 신앙의 그 계통에서 잡으라! “아론의 자손은 잡은 그 희생의 양, 양의 피를” 피는 생명이라 했습니다.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잡기는 잡았는데, 잡은 줄 알았더니만, 단 위에 올려놓은 양이 이게 앞다리 뒷다리가 움직이면, 하나님 앞에는 아니됩니다. 무식하게 봤던 옛날의 교육에 ‘부모 앞에서는 입 닫고’ 부모 앞에서는 입 닫고, 나가서는 경찰서장도 하고, 판사도 하고, 선생도 하고, 시장도 하고, 밖에 나가서는 깡패도 하고. 부모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어, 예. ‘이게 부모와 자녀로서는 옳지 않을까?’ 그랬습니다. 맞지요? 나를 대학 보내느라고, 부모는 초등학교도 안 나왔는데, 무식한 부모 앞에서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다른데 가서는, 이기고 가르치고 선생 노릇을 해도, 부모 앞에서는 ‘예’. 그게 부모와 자녀의 바른 관계입니다. 세상에 다른데 가서는 지도자도 되고, 주관도 있고, 뭐 아이디어도 내고, 인도자도 되고, 지도자도 되고 다 해도. 만유주 하나님, 전지전능 완전자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가운데 나를 만드신 하나님! 죄 지어 지옥갈 것을 구원하신 주님!’ 하나님 앞에서는, 여기에서는 입 닫고, 목사도 하나님 앞에서는 ‘예’, 교인도 ‘예’, 오래 믿은 교인도 ‘예’, 처음 믿은 교인도 ‘예’. ‘교인은 ‘예’하고 듣고, 목사 혼자 말하던데요?’ 목사의 말하는 그 말이, 하나님 앞에 ‘예’하고 들은 말씀을 전하면, 바로 배달을 한 것이고, 하나님이야 이러시든, 저러시든, 내 주관으로 이걸 가르치고, 이리 말하고, 저리 말하면, 이거 제단 위의 제물이 아니라, 제단 위에 잡아 놓은 줄 알고 올려놨더니만은, 이게 단 위에서 버둥거리면, 이게 뛰어 돌아다니면, 이건 ‘범성죄’로 죄 중의 죄, 제일 큰 죄가 됩니다. ‘완전히 잡아 버려라! 하나님 앞에서만은’ 부부간의 갈등이 있다가, 남편이 옳은데, 남편이 신앙이 있으면, 아내 쪽에서는 교회를 쥐어 박으면, 남편이 약점 잡힌 사람처럼 숙여 들어옵니다. 아내가 신앙 있을 때는, 아 부부끼리 뭐 일반적인 얘기하고 싸움 하다가, 목사 욕하고, 교회 욕하고, 여기 있는 우리는 공회 욕을 하면, 약점이 있듯이 잡혀 버립니다. 다른 싸움 다하고, 다른 말을 다 해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볼모로 잡고, 인질 잡고 상대방을 치는 것이라. 이것은 뭐 죄 중에 보통 죄가 아닙니다. 남편이 공무원이면, 직업이 공무원이지, 가정의 부부생활 하면서도 공무원인가요? ‘시청 과장이 이 모양이냐?’ 시청 과장이 아내하고 가정생활 밥상에서 과장인가요? 이걸 약점잡고, 이렇게 말하는 말투. ‘학교에서 애들 가르칠 때는 그렇더니만은?’ 아 애들 가르칠 때에는 직업이 교사니까 조심을 해야지, 집에 와서 여자한테도 교사 노릇을 할까요? 서로의 약점을 잡다가 힘이 있으면 누르는데, 힘이 없으면 상대방 족보, 친정, 부모, 시댁 조상을 쥐고 흔들어 대는 것은, 그거 비겁한 일이고, 인질 잡는 일입니다. 한 쪽이 잘 믿을 때, 흔히들 신앙 없는 사람이 ‘예수쟁이들이 이래? 대통령도 그거 장로라며? 장로가 이래?’ 모르니까 그렇지만은, 믿는 사람은 입에 그런 말 올리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질을 잡아, 돈 뜯는 일이요. 세상 자기의 야욕을 달성하는 일입니다. 불교인이 대통령이 되어도, ‘대통령이 잘못된 것은 이것은 이래서 틀렸고, 저것은 저래서 틀렸고’ 그 정도에서 하고 말아야 되지. ‘부처가 가르치더냐? 석가가 그 따위로 시키더냐?’ 그것은 불교를 인질 잡는 것인데, 이 나라가 불교 국가입니까? 이런 것을 오바를 한다고 그러지요. 논리적으로 ‘비약’이라고 그럽니다. 불교가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종교가 다르다고 석가가 뇌물을 먹고, 백성들을 짓 밟으라고 했겠습니까? 바로 가르치라고 했겠지. 종교적으로는 불교가 하나님을 잘못 찾았지만은, 상대방이 불교냐? 기독교나? 상대방이 출신이 어디냐? 살펴서, 그 뒤를 흔드는 것이 인질을 잡는 일이라, 정당하지를 못합니다.

여기 ‘양’과 ‘염소’를 두고, 먼저 양이면 “잡아서 단 위에 올려 놓으라”. “그 전에 먼저 잡아서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이 양은 죽었습니다. 이 양은 확실히 죽였습니다. 단 위에 올려놓을 때, 비틀거리던지, 돌아다니던 제 멋대로 뛰어 다니지 못합니다. 그러면, 강단이라는 것은, 설교라는 것은, 교회 찬송 인도하는 분이 찬송을 드릴 때에도, 나이 많은 이들은 속도 느린 ‘타령 찬송’을 부르고, 젊은 사람이 찬송을 부르면, 똑같은 찬송가 안에서도 씩씩하고 바쁜 것을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모이는 예배당은, 이게 뭐 입술만 나불거리는 뭔 그런 또 노래 좋아하고, 나이 많은 이들은 구식 찬송 좋아하고, 젊은 사람은 신식 찬송 좋아하고, 단 위에 잡아 올려 놓은 것이 아니라, 피가 다 흐르지도 않아서, 아직까지 죽지를 않아서 그렇습니다. 동양의 찬송, 서양의 찬송, 도시의 찬송, 시골의 찬송. 80대 노인당의 찬송, 다섯 살, 열 살 주일학교의 찬송이 다르면 곤란합니다. 신앙이 어려, 몰라서 신앙 없는 찬송을 드리다가, 신앙이 점점 자라게 되면, 신앙이 깊어져서 깊은 찬송 하는 것은 자기 주관을 버린겁니다. 그래서 공회 찬송가는, 주일학교용 찬송가가 따로 없습니다. 주일 학생용 찬송, 주일 학생용 성경. 하나님 앞에서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어린이식 예배, 어른식 찬송, 인간의 본질, 죽지 않은 것이 단 위에서 아직까지 자기 소리를 하니까 그렇습니다. 잡아 올려 놓으면, 똑같아져야 됩니다. 하나님만 있고, 진리만 있고, 인간은 남녀노소 전부 피를 쏟아, 없어져야 됩니다. 서울 출신 목사라, 서울식 신식 바람이 들어간 교훈이 되어지면, 강단 위의 설교가 죽어 피를 쏟지 않고, 이게 지금 옛날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겁니다. 이건 제물로 쓰지를 못 합니다. ‘네가 서울 출신이냐? 배운 사람이냐?’ 서울 출신과 세상에서 배운 것을 죽여, 피를 다 쏟아, 단 위에 올렸을 떄에는, 하나님 앞에 말씀의 순종만 올리고! 이게 참 어렵고, 이게 안되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우리가 노력하는데, 좌파 출신 사람이 목사가 되면, 이 설교하든, 저 설교하든 뱅뱅 돌아, 마지막에는 ‘나눠 먹읍시다.’ 그 소리가 나오, 보수 우파 출신 사람이 목사가 되면, 이 소리하든, 저 소리하든, 마지막에는 보수파, 친미파, 재벌을 위해서 뭔 설교를 하고, 공회 설교는 잘 못 들으면, 극단적인 보수 우파 소리 밖에 없습니다. 잘못 들으면. 그런데, 타이핑 쳐서 잘 읽어보시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만약에 제가 여기 거창 사람이라, 경상도 사람이라, 몇 천년 보수 우파적인, 믿지 않을 때의 사상이 여기에 번져 나오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죽지 않았고, 피를 다 쏟지 않은 겁니다. 설교를 들으실 때에, ‘저 사람 출신이 저래서,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그게 정말 조사하고, 확실하면, ‘그 부분은 아직까지 다 죽이지 않았구나. 저건 아직까지도 죽여야 될 요소다’ 듣는 쪽에서, 죽여 놓고 듣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 전남 쪽의 강단은, 설교만 하면 어쨌든지 김영삼이 욕을 합니다. 1,600개 되던 시절에, 1,600개 교회만 도장 받고 다니던, 평민당의 1,600개의 전남, 광주교회 반 정부 도장 받고 다니던 분이, 신풍교회 교인입니다. 그 분이 저한테 와 가지고, ‘신풍교회는 손양원 목사님부터 경상도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 가지고, 이런 도장은 잘 안 찍으시겠지만은, 제가 이 교회 개척 교인이라 잘 알지만은’ 그러고, 말을 시작합니다. 제가 그 분에게 ‘전남에 우리의 지도자 김대중 선생님이 계시면, 부산 경남은 김영삼 선생님이 계실 것인데. 그 김영삼씨 우리 서부교회 본부 교인입니다. 우리 도장 한번도 찍어 준 적 없습니다. 광고 한번 해 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삣거서 서울 충현교회 합동측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풍교회 본부가 부산 서부교회인데, 서부 교회에 김영삼 부부가 학생 때부터 다녔지만은, 평생에 도장 한번 찍어 준 적 없고, 광고 한번 해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전남 여수에 있는 신풍교회에는, 김대중 선생님 지지하는 도장 못 찍어줍니다.’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교회는 주로 경상도에 있으니까. 김영삼 씨는 슬금슬금 밀어주고. 그 다음 지교회가 신풍에 있으니까, 이 말 저 말 돌려서 슬슬 김대중 씨는 밀어내면, 이거 양을 잡아 피를 다 쏟지않아, 이게 아직까지 꿈틀거리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를 해도, 공회의 역사와 내용을 면밀하게 조사해 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예수 밖에 없고, 하나님 밖에 없고, 실수는 할지라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고, 섣불리 한 마디 잘못 듣거나, 자기의 선입관 때문에, 똑같은 말 중에 한 마디를 크게 듣고, 깊이 새긴 사람들은,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러지만은 그것이 아닌 것이, 양을 잡아, 피를 사면에 다 쏟아버린 겁니다. ‘고향 면에서도 완전 떠나라, 친척도 완전히 떠나라, 직업의 평생도 떠나라, 너 인질도 떠나라’ 이 면, 저 면 사면 전부 피를 다 흘려서,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본토, 친척, 아비집, 주님을 만나고, 진리를 알기 전의 세상은 모조리 다 100% 죽여 버려라!’ 그래야, 여기 화목제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절차를 밟을 수가 있습니다.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9절에, “그는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태워 드리는 화제를 드릴지니” 태워 드리는 화제를 드릴지니, 완전히 태워서 재가 되어 버리면, 과거의 모습이 완전히 없어져야 되고, 과거의 없어진 모습을 되살려, 재활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려라! 완전히 제거입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

그 다음부터가 이제 새로 나옵니다. 한번 볼까요? “화제로 드릴지니”, “그 기름” 앞에서도 기름은 나왔는데, “그 기름” 번제에서도 기름이 나왔는데, 번제에서는 “기름”으로만 기록하셨고, 화목제에서는 “기름, 그 기름 곧 미려골” 미려골은 꼬리뼈입니다. 꼬리곰탕이라고 하면 잘 아시겠지요? “미려골, 꼬리 뼈에서 베어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 앞에서 소에서 나왔습니다.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두 콩팥” 학생들 몇가지까지 헤아렸나요? 지금? 재석인가요? “콩팥과” 그 다음, “그 위의 기름”, “콩팥 위에 붙은 기름” 콩팥 위에 붙은 기름은 밖에서 보면 ‘허리 근방’입니다. 허리는, 힘을 쓴다. 성경에 허리가 나오면, ‘힘을 쓰는’, ‘힘을 맡은’ 그 말입니다.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그 기름과”, “간을 덮고 있는 간꺼풀과”, “이 모든 것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교재의 51페이지 중간을 보십니다. 어린양을 끌어 오너라. 절차는, 번제와 앞에 있는 소와 같습니다. 쭉 같아지는데, 내장, 콩팥, 허리 기름, 간. 이렇게 하나 하나씩 나누어가면서, 화목제의 양, 이 양이 특별한 점은 9절에서, “그 미려골” 9절이지요?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양의 기름진 꼬리! 미려골 쪽의 기름. 꼬리뼈라 그랬습니다. 양의 기름진 꼬리. 꼬리라니요? 사람은 머리가 위에 있고, 몸이 밑에 있습니다. 아래 위로 결정하고, 밑에서 실행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 말고, 양, 소, 염소, 동물은, 네 발로 걸어 다니기 때문에, 머리가 앞에 가면 몸은 뒤따라갑니다. 머리는 앞에가는 지식, 몸통이 있고, 꼬리는 제일 끝입니다. 짐승이니까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제일 마지막. ‘움직이는 마지막’이 ‘꼬리’입니다. 머리는 머리대로 중요하고. 머리가 가는 대로, 동물은 몸통이 따라가고, 꼬리는 아무리 흔들어도 머리가 가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움직인 마지막이 ‘꼬리’입니다. “꼬리까지도” 마지막까지도! 양은 순종인데, 순종의 끝, 끝까지 순종. 마지막 결산할 때, 그 결산 끝이 좋아야, 이게 화목제의 양 제물의 보배로운 면입니다. 번제에서는 꼬리 쪽의 기름이 없었습니다. 이게, 양에게만 나오는 겁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북편에서 잡아라, 어려울 떄에 순종해야 그게 순종이다. 순종이란, 순서로 보면 첫날의 순종, 중간의 순종도 순종이나, 당연히 좋은 순종이나, 마지막 끝의 순종! 마지막 결산 끝이 좋아야, 그게 바른 순종이라. 이래서, 양은 순종인데, 순종은 ‘끝까지’. 처음 믿을 때, 중생의 경험. 믿음의 첫 믿음이 생길 때에는 누구든지 열심입니다. 첫 날, 첫 은혜받고, 잘 믿어보겠다는 은혜받은 첫 날만큼 믿으면 성자되지 않을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석 달 가기가 어렵다 그럽니다. 공회가 만 2년, 햇수로 3년마다 목사들을 시무투표 하는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천하 없이, 목사의 결심도 3년 가면 바뀐다’ 그래서, 햇 수로 3년마다, 시무 투표를 다시 해서, 목사되는 첫 날, 교회 온 첫 날은, 첫 결심에 열심히 하고! 한 해 지나고, 2년 지나 3년차 되니까, 이제 늘 보던 교인, 그 교인이고 알만하고 그러니까 퍼질러 앉아버립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책임진 목회자의 열심이 늘 새 출발한 것처럼 가라’ 그래서, 햇수로 3년 시무투표를 하는 것은, 달리는 말이 게을러질까봐, 채찍을 드는 겁니다. 교인들이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이 ‘우리가 스스로 먼저 이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해서, 만든 제도입니다. 교회 목사 3년 마다 투표하니까 재미있지요? 신기하지요? 할만하지요? 그런데, 교인에게 여쭤봅니다. 가정에서 시무투표 해봅니까? 세계적으로, 우리들처럼 3년마다 목사 시무투표해서, 4분의 1 반대 나오면, 조건 없이 내보내는 곳은 없습니다. 들어볼 때에, ‘그것 아이디어 좋다. 아, 그래야 목사들을 좀 챙기겠구나. 교인들의 억울한 것이 너무 오래가지 않도록, 참 지혜롭고.’ 인간들이라 불편도 있고, 착오도 있고, 분쟁도 있지만은, 전체적으로 보면, 매 2년마다 임기를 줘서 투표를 하니까 그래도 좋을 겁니다. 공무원들을 2년마다 투표해서 떨어버린다면은, 아마 한 2-3배를 열심히 할 걸요? 교사들을 2년마다 한번씩, 학부모하고, 학생들이 투표를 해서 4분의 1이 반대하면 퇴직시켜 버린다면, 교사들의 기본 실력이 이 나라 최고의 실력가들이기 때문에, 학원 강사보다 더 잘 가르칠 걸요? 남의 일은 이렇게 양심적으로, ‘어 그게 좋겠는데, 그 이익집단이 되어 가지고 버티고 있는게 그게 문제다!’ 이래 놓고, 가정의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시무투표를 해보라, 그러십니까? ‘2년 믿어주라, 열심히 벌어 가정을 일으키겠다.’ 결혼 때의, 선 볼 때의 남편의 약속! 그 다음, 3년차 될 때에, ‘아내가 75점이라고 하면 합격, 74점을 주면 보따리 싸서 나가’ 이리되면 뭐 남편들이 선 볼 때의 큰 소리, 각오, 결심이 2년마다 한 번씩 아내의 시무투표로 이혼 당하느냐? 마느냐 하면, 열심히 하겠지요. 훌륭하고 자신만만한 남편이, 아내 데려오면서, ‘계약 결혼 2년이다. 2년 후에 점수를 내서, 75점 이상이면 또 2년 결혼 생활 지속하고, 74점 밑이면, 우리 서로 헤어지는 것이다.’ 재벌 남편이, 아내 데려오면서 ‘우리 2년 단위로 시무투표한다.’ 그러면, 긴장할 걸요? 첫 신부때의 각오, 결심, 조심, 있는 정성을 다할걸요? 남자도, 여자도 그렇지요? 왜 교회 와서 목사는 시무 투표하고, 집에 가서는 시무 투표 안 합니까? 비 양심 아닌가요? ‘아이 낳고 기르면서, 이것을 시무투표를 해서 그냥, 부부 이혼을 했다가는 가정이 어찌 되겠느냐?’ 그러면, 교회는 시무 투표를 해서 목사 보내고, 깨져도 상관이 없는가요? ‘그렇게까지, 교회에 혼돈과 혼란을 각오하고서라도! 단 위에 올려놓은 제물이 완전 죽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순종이 아니라, 목사 자기 소리하고, 옛날 소리하고, 목회자의 인간의 감정이 나오고, 사적 인간, 집 안의 여러 소리가 나오면 교회가 안 되겠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목회자 하나 시무 투표로 잡아버리는 겁니다. 그 교회를 줄여서, 가정으로 가져가면, 가정교회입니다. 남편이 뭐 바람을 피웠니, 요즘은 돈도 덜 갖다 주니 투덜거리는 부인들 많지만은, 정성껏 남편한테 했습니까? 결혼의 첫 날처럼 열심히 가꾸고, 있는 정성 다 했나요? ‘아이를 낳아놨으니까, 지가 뭐 도망가랴?’ 백 목사님이 1970년 때까지는, 이렇게 집회 때에, 전국의 교인들 있는데서, 그때는 남편은 거의 교회를 안 다녔고, 부인들만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여반들 중심의 집회 때, 여반들한테, 저는 중학교 다니고, 고등학교 다닐 때라서, ‘뭔 설교 시간에 저런 소리를 하나?’ 싶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꼭 하는 말! ‘아침에 일어나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남편이 보게하지 말고, 먼저 일어나서 단정하게 머리 단속하고, 남편 얼굴을 봐라’ 뭔 소리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실수로 남자가 먼저 일어나거든, 흐트러진 머리카락 보이지 말고, 이불 속에 머리를 처 박고, 단정하게 하고 보이거라’ 그리고 이제 목회하면서, 여반들 상담하다보면, ‘남자가 요즘은 무심해졌습니다. 다른 여자 보고 돌아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그 남자 밀어낸 것이 너겠지! 처음에 눈 맞아 결혼할 때에는 좋아서 했는데, 그 남자가 왜 너를 안 쳐다봐? 잡아놓은 닭이 도망가랴? 남자 파자마 입고, 남자 추리닝 입고, 동네를 뛰어 돌아다니면서, 애 셋을 낳은 아줌마를 누가 이겨? 시아버지도 나를 이겨?’ 이렇게 흐트러졌지, 방만했지, 만만했지, 그 사이에 남편이 그 아내의 예쁜 것을 보고 결혼을 했다가, 계속 매일 만나는 그 여자 얼굴, 그 여자인데, 이것이 이제 슬슬 애를 낳았다고, 만만하다고, 단정하지 않지, 자기 조심하지 않지, 그런데 직장에 가니까, 세상에 가니까 예쁜 것 많지. 눈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다른 여자 봤다고 쥐어박기 전에, 다른 여자 관심 있도록 밀어낸 그 인간은 누구인가? 그것은 생각 안해보셨습니까? 남편도 아내 생각해보고, 아내도 남편 생각해보고, 부모도 자녀 입장이 되어보고 이래보면, ‘참 이해가 된다. 내가 부족하니까, 그렇지.’ 그러면, 더 좋을 일인데. 머리 끄댕이 꺽고, 싸움을 하니까 더 꼴보기 싫어지지요. 안 그래도 미운데, 핑계거리까지 생겨버리지요. 성경의 모든 원리는, ‘너를 잡아라!’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칼을 들고, 소을 잡고, 양을 잡지만은, 신약은 ‘너의 게으름을 잡아라! 너의 나태함을 잡아라! 너의 방종함을 잡아라!’ 부부의 남편 밖으로 돌 때에, 여자분들에게 하는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새로 온 교회에 부임하면, ‘교인들이 나를 잘 볼까? 설교에 은혜를 받을까?’ 기도하고, 조심하고, 열심히 충성하다가, 교회가 좀 되어지고, 부흥이 되고, 이제 교인들이 나를 좀 존경한다 싶으면, 3년, 4년 가면 놀아가며, 요령 부려가며, 사택에 처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교인 희생시켜 가며, 이렇게 이제 슬슬 나가니까, 교인들이 보는 눈이 있는데, 신앙은 목사만 못해도, 목사를 평가하는 눈은, 목사만 못 하겠습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 ‘가, 나, 다’를 학교 선생님에게 배우지만은, ‘1반 선생님은 사람이 좋더라. 2반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이더라.’ 이것은 어린 아이도 다 구별합니다. ‘우리 선생님은 매는 들지만은, 우리 공부하라고 매를 들더라’ 1학년도 눈치가 다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집에서 싸우고 나면, 학교 와서 애들을 두들겨 잡더라. 감정으로 매를 들었지, 사랑의 매 아니더라’ 초등학교 1학년이면, 다 구별합니다. 지식적으로는 선생님한테 배우는 어린 학생이나, 그게 생명이 있고, 본능이 있어서 ‘눈치’는 다 있습니다. 세 살 먹은 아이가 부부싸움 하면, 어느 쪽이 옳은지, 다 알걸요? 먹고 살기 위해서, 엄마 편을 들지. 젖을 먹어야 되니까. 세 살짜리가 엄마 편 드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거기 갖다 붙는 것이지, 속으로 모를까요? 그래 놓으니까, 아이들이 10살 되고 20살 되면, 엄마들은 아이들이 다 자기 편 줄 알았지. 그런데, 이게 열 몇 살되고, 스물 몇 살이 되면, 어느날 ‘엄마, 엄마 어렵게 산 것은 아는데, 엄마도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니야?’ 이럴 때, ‘이 놈의 자식을 위해서 내가 희생해서 살았는데, 이게 제 아버지 편을 들어? 애비 편을 들어? 성씨가 그쪽이라고?’ 그러지만은, 그 아이가 엄마나 아빠나 똑같은 부모인데, 왜 아빠 편을 들겠습니까? 어려도, 눈치가 있는데. 생존을 위해서 어릴 때에 엄마 편을 들었지. 교인이 보는 목회자, 아내가 보는 남편, 아이가 보는 부모. 5천만 중에 제일 똑똑한 것을 대통령에 세워놨으니, 5천만 중에 제일 잘난 사람이지만은, 무식해도 ‘아, 저것도 대통령이 되니까 결국 싸고 돌고, 결국 자기 편 드는구나. 옛날에는 그렇게 고함을 지르더니만!’ 그 정도면 다 알지 않습니까? 이게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생명의 인간의 본능이라, 이런 것은 설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교도소 보낸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막지를 못합니다. “단 위에 양을 올릴 때에, 잡아라!” 잡은 다음, 올리기 전에 “피를 완전히 단 사면에 다 쏟아버려라.” 100프로 죽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소리 못하도록! 벌 소리 못하도록! 단 위에 올려놓은 것이 이게 돌아다니면,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도, 인간이니까 그렇게 너무 잡아서 되겠느냐?’ 그러면, 종교를 하지를 말아야 됩니다. 아예 목사를 하지를 말아야 되고. 실수를 할 망정! 흠은 있을망정! 자기로서는 잡아, 피를 다 쏟은 줄 알고, 다 쏟았는데도 이게 펄떡거리니, 또 잡고, 또 잡고, 평생 잡아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시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화목, 하나님을 모시려거든, 하나님이 기뻐하려거든,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뻗쳐나가려거든, ‘잡아라!’ 어느 정도로 잡을 것이냐? ‘잡아서 피를 단 사면을 다 뿌려 버려라.’ 피는 생명인데, 생명을 완전히 뿌려 버렸으니까, 100프로 잡아서, 100프로 죽일 때 이것이 ‘화목제 희생’이 되어집니다.

양은 ‘순종’이었습니다. 화목제 양의 특별한 점은 ‘꼬리’였습니다. 꼬리의 기름. 순종의 머리, 순종하는 몸통, 어디까지를 보자고요? 제일 끝에, 마지막의 꼬리까지가 ‘기름진 꼬리’라, 끝까지, 마지막까지 성령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이 면으로, 하나님께서 드려야 됩니다. 그 다음 교재를 54페이지로 넘깁니다. 이번에는 ‘염소’입니다. 13절, 12절입니다.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염소가 못 났지만은, 자기대로는 잘났습니다. 나름대로는 뭐 교만합니다. 우리 속에 다 있습니다. “그 놈 끌어다가” 하나님 없을 때는 염소를 하든, 남을 떠 받든,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 된다. “끌어다가” 염소를 끌어다가. 절차는 꼭 같습니다. 마지막에,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잡아 놓은 염소를 드시겠답니다. 염소탕 드시고, 양 구이 드시고, 뭔 사람인가? 미개할 때에 우리들에게 소 잡아 드리고, 양 잡아 드리고, 염소 잡아드리는 모습을 보이며, ‘그 소를, 그 양을, 그 염소를 하나님이 드시더냐?’ 태워 없앴습니다. ‘하나님은 충성을 원하시는구나. 충성으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구나. 순종으로 기뻐하시고 만족 하시는구나!’, ‘내 속의 염소의 잘못된 것을 꺽어 드릴 때에, 하나님은 됐다. 기쁘다. 배부르다. 흡족해 하시는구나!’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요. 이것이 향기로운 냄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다 해결이 되어집니다.

그 다음 55페이지, 옆으로. 화목제의 소, 양, 염소. 세 가지를 나란히 살펴봤습니다. 소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하나님이 하나되고. 양처럼 순종할 때, 하나되고. 거역의 염소를 잡을 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되어, 화목하게 된 내가, 한 사람, 두 사람을 자꾸 자꾸 잡아 드려야 되는데, “흠이 없어야 된다” 기본입니다. 번제는 수컷인데, 번제는 하나님 앞에 ‘헌신’, ‘충성’이라, 수컷으로 일부러 ‘힘 있게 충성하라’고, 수컷만 가져와라 했는데, 화목제는 어린 것도, 암컷도, 있는대로 전부 다 모두어, 거두어 ‘하나 되라’ 그래서, 흠없는 암수입니다. 소는, 소가 나오다가 자꾸 송아지가 되는 것은, 계시록 5장에 “주님을 보니 일찍 죽임을 당하신 것 같더라”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충성하고 살다가, 33살에 죽었습니다. 더 살아도 되는데, 딱 33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세상 더 누리고, 더 살 수 있지만은, 33년.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공회 제일 충성한 목회자가 홍순철 목사님인데, 35에 가셨습니다. 무리하다가 갔는가? 있는 힘 다하고 가다보니까, 35. 서영준 목사님이, 39입니다. 전성수 목사님이 47인가? 어딘가 가셨습니다. 가르치던 스승되는 목사님이, ‘충성의 종들은 있는 대로 충성하다 일찍 가고, 게으른 것들, 요령 있는 것들은, 개 잡아 먹고, 살살 오만짓 다하다가 건강보전을 하다보니까 살기는 오래 사는데, 오래 살다 보니까 철이 들어서 뒤에 회개를 하니, 게으른 것이 오래 살다가 뒤에 회개하는 것이 좋을는지? 젊어서 일찍 죽어버리니까, 일꾼들이 없어서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번 한탄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의도 지나치면 일찍 죽는다” 과충은 죄입니다. 지나친 충성도 죄입니다. 적절하게 충성하고, 하나님이 불러 가는 것은 좋은데. 주관이 들어, 더 열심히 하다가 일찍 죽는 것은, “의도 지나치면 기한 전에 죽는다” 충성하는 분들은, 늘 조절해야 되고. 요령 부리고, 재주 부리고, 알뜰살뜰 세상 것을 챙기는 분은, 잡아놓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제단 위에 제물은 되지 않습니다. 송아지라, 어린 양이라, 염소라.

그 다음, 이 소든지, 이 양이든지, 이 염소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하여, 주신 형편에 따라, 자기대로는 소를 가지고 오는 사람, 자기로서는 양을 가져와야 되는 사람, 어떤 때는 염소를 가지고 와야 되는 사람. 공통적으로, “회막문에서” 회막문에서. 화목제의 소는 읽지 않아도 회막입니다. 양도 회막이었습니다. 13절에, 염소를 가져와도 “그 염소를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번제의 충성은 “북편”에서 잡아라. 어려워도 힘들어도. 화목제는 긴장이 풀어지고 느슨해질 수 있으니, 회막 앞에서 바로 잡아 버려라! 공통적으로, ‘회막 앞에’. 그 다음, “머리에 안수하여” 내 잘못, 나의 모든 문제, 나의 책임을 다 얹고, 그 다음 내가 잡습니다. “내가 잡을 것” 설교하는 사람은, 설교하는 그 설교가 ‘여러분들은 이 말 들으십시오.’ 아니라, 이 말씀으로 자기를 잡아가며 설교하고. 듣는 분들은 ‘목사 자기부터 하지?’ 그러지 말고, 한 말씀을 전하고 한 말씀을 듣지만은, 전하는 저는 이 말씀으로 저를 잡고, 제 속을 살펴보고, 듣는 분들 ‘목사가 자기를 잡고, 그 다음 교인에게 잡으십시오 하면, 더 좋고. 목사 자기는 연보도 안하는 것이, 게으른 것이, 제 고집은 꺽지도 않는 것이, 교인들한테 고집 꺽으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럴 때에, 너부터 해봐라!’ 그러지 마시고, 그 말씀으로 나를 잡으면, 내가 복입니다. 마태복음 23장, 신약의 목사들, 구약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모세의 자리에 앉혀놨다. 모세가 옳게 바르게 앞서가면, 교인이 따라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모세 자리에 앉은 바리새인이 자기는 율법의 짐을 지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어놓을 때에, 바리새인 욕하다가 끝나지 말고,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 말은 들어라. 순종해라.” 잘못 가르친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따로 알아서 처리한다. 이게 원칙입니다. ‘직접 잡을 것’ 설교를 하는 저는, 말씀으로 저를 잡고. 교인들은 제가 저를 잡든지 말든지 상관 없이 이 말씀으로 자기를 잡으면, ‘도살’이 되는 겁니다. ‘단 사면에 피를 완전히 뿌려’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라는 자기는 100프로 잡아놓아야, 그 다음 하나님 앞에 드릴 “내장의 기름, 콩팥, 허리의 기름, 간 꺼풀”. 간은 어떤 면을 강조했다고 그랬지요? ‘중요한 것’. 콩팥은, 모든 더러운 것을 정결케하는, 이런 걸레와 같은 것. 걸레는 더럽습니다. 더러운 걸레가 있어야, 온 집이 깨끗합니다. 행주는 부엌에서 유일하게 더럽습니다. 부엌은 더러우면, 안 되지 않습니까? 다 그릇도 깨끗하고, 음식도 깨끗하고, 부업은 다 깨끗해야 깨끗한 음식을 먹는데, 부엌이 깨끗하고, 음식이 깨끗하려다보니까, 할수 없이 행주 하나는 제일 더러워야 됩니다. 걸레가 더러워야 온 집이 깨끗하고, 걸레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게, 새 각시처럼 폼 잡고 앉았으면, 온 집은 더러워야 됩니다. 죄송하지만 은, 하나님께서 여반을 만들어 놓을 때에, 엄마는 맡기기를 걸레로 만드셨습니까? 문패로 만드셨습니까? 남자는 대문 앞에 문패로 만들었습니다. 부인은, 신부는, 여기에 있는 아가씨들은, 총각보다야, 아가씨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정결하게, 자기를 준비하겠지요? 결혼해서 계속 그러면, 공주로 살런지요? 공주병 걸리고, 끝까지 안 고치고, 왕비병 걸려 놓으니까 지금 교도소 들어가 앉았지요? 실력으로는 일찍 본 게 있고, 타고난 머리가 있고, 선천 후천의 장점이 많아서, 5천만을 지도할만한 대통령이라 대통령이 됐는데, 딱 하나 단점이 있으면, 공주병은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공주병. 공주병 욕하지 말고, 결혼을 앞두고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 아가씨들은,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조심. 눈썹의 올 하나까지도 전부 돈 들여서 정성, 단장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결혼한 다음에 계속 공주로 계시면, 애는 어느 품에 안길까요? 결혼하고 애가 젖을 먹는데, 아가씨 때처럼 말곰하면, 애가 어디 얹힐데가 있습니까? 업힐 때가 있습니까? 젖을 빨데가 있습니까? 남자를 붙들기 위해서, 남자를 잡아 드리기 위해서, 남자가 정신 팔리도록 꾸며 놓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고 나면, 이 아이를 위해서 아가씨가 아줌마가 되어, 이 아이가 품 속에서 노닥거려야, 이게 아이가 제대로 자랄 것인데, 아이를 셋을 낳은 아줌마인가? 아가씨인지? 아이를 다섯을 낳았는데, 아가씨인지? 60이 되었는데도 아가씨인지? 80이 되어가지고도 아가씨처럼 꾸미니까, 결혼 못한 남자가 술 먹고, 여자 없어서 정신이 빠지니까, 아가씨냐고 그냥 손을 댔는데, 80 할머니가 당했더라. 그런 뉴스를 볼 때에, 80 할머니 손을 댄 남자가 미쳤습니까? 그러도록 남자를 미치게 만든 여자들은 책임이 없습니까? 공회처럼 20살에 결혼을 다 해 버리면, 지 여자 쳐다보느라고 남의 여자 쳐다 볼 시간도 없을 것인데. 16, 18에 결혼하던 시대가, 더 잘 먹고, 더 잘 꾸미고, 이제는 10살인지, 15살인지가, 이게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도 모르게 됐지. 결혼은 30에 하지, 40에 하지, 50에 해놓으니, 여자들이 전부 이래 버리니까, 남자들은 여자를 못 만나 놓으니, 탈이 나야지요? 건강한데, 남자인데, 탈을 내야 그게 정상이지, 그게 탈을 안 내면전부 다 고장이 났는데, 맞는가요? 죄 짓는 죄인을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죄 짓는 죄인을 죄를 짓도록 한 원인은 그러면 책임이 없을까요? 남자를 쥐기 위해서는 가꾸고, 남자를 잡았으면 아이가 생기는 것이고, 이 아이를 위해서 그 다음, 이 이쁜, 이 고운 아가씨가 이제 아줌마가 되는 것인데, 아줌마가 되어야 애가 젖도 빠르고, 거기서 구르고 똥, 오줌도 싸고 그래야, 이게 엄마의 품 속에서 아이가 모세가 되지, 모세를 하나 만든 요게벳이, 직장 여성이 안되서 실패했습니까? 사회 생활을 못해서, 요게벳에 천해진 여자가 되었는가요? 모세 하나 만들어놓으니까, 모세가 걸어간 모든 걸음에는, ‘모세는 어느 공장 출신인고?’ 차를 타보니까, 참 좋을 때 ‘그 현대차가 참 좋구나.’ 옛날 현대, 기아가 합하기 전의 기아차는 이상하게 싼데, 타보면 1년, 2년 가보면 자꾸 잔 고장이 많습니다. ‘이거 기아차구나.’ 지금 현대, 기아가 합해놓으니까 현대차, 기아차 어느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둘 다 좋아서. 차를 쓰면서, ‘어느 공장에서 만들었는고?’ 현대차가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볼 것 없다.’ 삼성전자가 만든 가전제품입니다. ‘아이 뭐 그러면, 조사해 볼 것 없다.’ 그래서, 메이커, 메이커 소리를 하는 겁니다. 모세는 모세인데, 모세는 어느 메이커인고? 어느 제품인고? 요게벳 제품입니다. 요게벳이 길러놓은 큰 아이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내려온 누구지요? ‘아론’ 대제사장입니다. 둘째가 모세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지도자. 모세 위의 누나가 ‘미리암’입니다. 역사의 여선지, 미리암. 요게벳 아줌마 하나가, 남편 만나서 아이 셋을 기르느니라고, 사회생활 해 보지 못했고, 동창 모임 가보지 못했고, 레스토랑 앉아서 폼 잡아 보지 못했지만은, 미리암, 아론, 모세. 셋을 기르느니라고, 아줌마가 되고 파김치가 됐는데, 그 요게벳의 사진을 찍어 놓으면, 펑퍼짐한 아줌마일겁니다. 늙은 할머니일겁니다. 그런데, 요게벳 하나 밑에서, 아론, 미리암, 모세가 나왔으니, 역사의 모든 남자를 다 합해놓아도, 아론, 미리암, 요게벳을 만들어놓은 이 요게벳 공장! 요게벳 이 제품 이상이 있겠습니까? 천하 최고의 명품입니다. 여반들은, 모세 엄마 요게벳이 되시면, 인생 실패한 것 아닙니다! 여성 자기 성취를 포기한 것 아닙니다! 엄청 출세한 것이지. 남자가 아무리 유명해지려고 노력한다고, 모세만큼 가겠습니까? 아론의 대제사장 근처라도, 우리가 가겠습니까? 남자가 있는 힘 다해도, 모세, 그 다음 아론이 되기가 어려우나, 요게벳은 아론과 모세를 만든 사람입니다. 굉장한 요게벳입니다. 그런 요게벳. ‘순종’은 머리도 중요하고, 중간도 중요하고, 꼬리의 제일 마지막도 중요하다.

그 다음, 이걸 다 가져오면, 번제단,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름’을 다 가지고 가십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 피는 생명이라,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라, 손댈 수 없습니다. 피! 그 다음에는, 제사의 ‘모든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다 ‘성령에 붙들려, 성령의 것이 된’ 이 귀한 것 이것만 소중한 겁니다. 하나님이 가지시고. 이 제사장은, 화목제 제사는 번제와 달라서, 번제는 가죽은 벗기고, 속은 전부 다 태워 버리는데,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름, 앞에 말한 이것은 드리고, 가슴은, 가슴살. 소, 양, 염소의 가슴살. 이것은 제사장이 가지고 갑니다. ‘요제’라는 말은 흔든다는 말인데, 가슴살을 단 위의 제사장이 들고, 흔듭니다. ‘주님께 드리고, 드린 은혜로 내가 받고’ 연보는 하나님께 바친다고만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 바쳐진 연보가 돌아온 은혜는 얼마일까?’ 그것은 분명히 크지, 적지 않습니다. ‘드리고 받고, 드리고 받고.’ 가슴을. 우리의 가슴, 우리의 중심, 우리의 뜨거운 열심! 주께 바쳐드리고, 드린 것을 우리가 받고. 가슴은 ‘드리고 받고’. 우편 뒷다리는 제사를 드린 그 제사장, 책임진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우편 뒷다리라. 뒷다리는 특별히 ‘힘’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말을 하면, 섰을 때의 다리가 뒷다리입니다. 그 중에, 오른발은 ‘힘 있는’ 그 뜻입니다. 양이나 소는 네 발로 가니까, 앞 다리는 넘어지지 않게 하고, 뒷 다리는 힘을 뻗쳐 앞으로 밀고 가는 엔진입니다. 그 중에 오른 뒷다리는 제사를 맡은 제사장이 가지고 가도록. 그리고 화목제 제사를 드리러 온 백성, 그 제사자, 그 사람은, 기름과 다섯가지 종류는 하나님께 태워드리고, 가슴과 오른편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가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를 드리러 온 그 백성이 가족과 친지와 함께 먹습니다. 하나님도 드시고, 수고한 제사장도 먹고, 그 다음 하나님 앞에 화목제 제사를 드리러 온 교인도, 우리도 먹고.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먹는. 번제로 충성하고, 나를 부정한 소제로, 속죄제, 속건제로 죄를 해결하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어 함께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이게 화목제의 특별한 점입니다. 그런데, 이 화목제의 특별한 점 중에 하나, “기름과 피는 결코 먹지 말라” 특별히 좀 막아놓았습니다. 특별히 막아 놓았습니다.

새벽 예배, ‘화목제’까지만 했습니다. 오전 예배는 속죄제로 넘어갑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꼬리의 기름이라, 주님과 하나되는 순종의 걸음은, 마지막까지! 끝까지! 끝이 좋아야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목제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양은, 마지막에 꼬리의 기름은 여기 밖에 없습니다. 양에게만! 순종하는 양에게만.

말씀으로 남을 평가하지 말고, 말씀으로 나를 평가하라. 말씀으로 남을 평가해야 되는 이유는, 나를 평가하기 위하여. 남을 보면 내가 아니까, 나를 잡기 위해서 남을 보는 것이지. 나는 잡지 않고, 남만 잡으면, 하나님이 앉은 심판 자리에 앉은 죄가 됩니다. 



초타 :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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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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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요약

 ① 레위기 5대 제사 : 신약의 대속의 은혜와 믿음의 세계
 
 ② 제사 제물 : 소, 양 염소, 비둘기
 
 ③ 번제 1 (전부 태워) : 소의 충성
 
 ④ 번제 2 (전부 태워) : 양의 순종, 염소의 거역, 새의 변덕
 
 ⑤ 소제 (갈아) : 성령의 인도 따라 자기 주관을 없애는

 ⑥ 화목제 1 (동행) : 소의 화목제, 성령으로 만들어진 내면

 ⑦ 화목제 2 (동행) : 양의 순종, 꼬리의 기름 끝까지 순종
교인 2020.06.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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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김정민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장신경님이 입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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