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19.8.7 레5:1 생활 속에 피하기 어려운 실수를 해결하는 속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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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19.8.7 레5:1 생활 속에 피하기 어려운 실수를 해결하는 속건제

교인 2 160 2020.06.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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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7 수밤 (5대 제사 집회 10)

제목 : 생활 속에 피하기 어려운 실수를 해결하는 속건제 

본문 : 레위기 5장 1절 -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이 시간까지 주님의 피 흘려, 구원받은 복된 생활의 저희가, 받은 복을 알지 못하여, 세상을 중심으로, 보이는 것을 성패로 살다 보니, 땅의 복음 되고, 땅의 신앙 되고, 두고 갈 땅에 목표를 두고 살아온 저희들에게, 영생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번제의 길을 열어 주시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며, 주와 동행, 이 길을 소제로 열어 주심도 감사하나이다. 번제와 소제를 통해 하나된 주님과의 동행, 연결의 이 생명이 영원히 자라가는, 이 일을 막아서는 죄, 이 일에 걸림이 되어 있는 모든 허물들을, 이 시간은 모두 낱낱이 살펴, 큰 죄는 크게, 작은 죄는 세밀하게 청소하여, 주의 은혜, 주의 동행 거리낌이 없도록,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시고, 흩어져 여러 곳에서 복습하는, 또 말씀으로 새기는 우리 모든 학생들, 같은 은혜로 시공을 초월하여, 어두운 시대, 복잡한 세상에 진리의 빛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교재 66 페이지를 보겠습니다. 앞자리에 복잡했던 학생들은 지금, 그동안 배운 복습을 하느니라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예배 집중이 더 잘 될테니까, 속건제 좀 복잡한 것, 마무리 합니다.

먼저 번제라, 저수지와 가정집 사이의 수도관을 건설하는 일이라. 저수지를 만들고, 수도관을 설치하는, 이 일을 번제의 수고라고 본다면, 저수지의 물이, 또 내려오는 관 속의 찌꺼기가 없도록, 깨끗하게 시공 과정에 묻은, 모든 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해 버리는 것이 ‘소제’입니다. 저수지가 마련되고, 또 관로가 연결이 되고, 그 수고가 번제라면. 그 과정에 별의별 찌꺼기가 있는데, 이것을 깨끗하게 청소해버리는 내면의 청소가 ‘소제’라면, 이제 저수지의 물이 깨끗하게 가정 수돗물로, 콸콸 쏟아지는 그 생수가, 하나님과의 연결되어 ‘화목제’의 복이 가정의 곳곳에 뻗혀나갑니다. 그런데, 이 관로에 주먹만한 돌이 막아 선다면, 또 수문을 열고 닫는데 고장이 나버린다면, 저수지가 있고, 관로가 깨끗하고, 수도꼭지, 모든 샤워 시설이 잘 되어 있어도, 막힌 것을 뚫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그게 속죄제라면, 마지막에 속건제는, 큰 돌이 막고 그 정도는 아닌데, 저수지와 수도관을 운영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오염이 된다든지, 또 장마철에 별별 일이 생기는, 이런 것들을, 정결케 해결하는 것을 속건제라. 관로가 막힌 정도면, 큰 죄, 큰 장애, 속죄제. 관로가 막힌 정도는 아닌데, 이게 오염이 되고, 여러가지 찌꺼기가 많아서, 식수로 곤란해지는 것은, 정결하게 만들어야 되는 ‘속건제’입니다.

오후 시간에, 잠깐 속죄제와 속건제를 비교했습니다. 큰 죄, 큰 문제는 속죄제. 사소하게 시시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냥 두면 안 되는 작은 죄는, 속건제. 큰, 중요한 명령, 계명을 어기는 것이, 이게 속죄제인데, 큰 죄, 큰 계명은 모른다 해도, 모를 수는 없는 겁니다. 모르는 척 했고, 그냥 긴장을 하지 않아서, 모르기는 몰랐으나, 알고 보면 모를 수가 없는 죄. 그래서, 속죄제에 대한 것은, ‘모르고 지었다. 모르고 지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알고 지은, ‘고범죄’의 중한 죄가 되어집니다. 그 다음 ‘속건제’는 사소한 죄, 벌레 하나, 쥐 한 마리를 잘못 만진 이런 죄라. 살아가다보면, 더러운 것을 묻힐 수 있고, 접할 수 있는데, 이건 알고 조심을 해도, 늘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속건제입니다. 한번 제일 66페이지 밑을 보겠습니다. 본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7절-48절로 보니까,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중은 많이 맞을 것이요” 틀림이 없습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속죄제라는 것은, ‘살인하면 죄 되는 줄 몰랐는데요?’ 몰라? ‘부모한테 대드는 것은, 뭐 생활 속에 그냥 깜빡해 버렸는데,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요?’ 따져보면 알 수 밖에 없고, 모른다 할 수가 없는데, 그게 우리 인간이라, 그만 그렇게 쉽게 죄를 짓는 수가 있습니다. 이게 속죄제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배운 것이 많고, 타고난 성품이 좋고, 살아가는 주변 환경이 좋으면, 모두들 부러워하는데. 외상값을 달라는 주님의 요구는 커집니다. 남 보기에 살아가는 것이 박하고, 선천적으로 불리하고, 형편이 여러 가지 곤란한게 많으면, ‘좀 더 달라고, 잘 살게 해달라’고 우리는 애 터지게 기도하지만은, 하나님께서는 ‘많이 주면, 많이 찾는다. 너는 아껴서 그릇이 작아, 작게 줬으니 그만하면 만족하고 살아라’ 하나님의 절제된, 전지의 조절하는 조정의 이 은혜도 큰 은혜인 줄 알고, 남쪽 불리한데 사는 사람은, ‘세상은 불리하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을 알고, 남쪽, 부산, 여수, 순천, 세상은 ‘중앙과 멀기 때문에 불편하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족함으로 적게 받았으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를 지극히 큰 충성된 자와 같이 보시는’ 이 원리 때문에, 감사하고. 대한민국의 새 수도 세종에 사는, 우리 대동교인들, 학생들. 또 수도권 천 만, 주변에 경기까지 2천만이 모여 사는 서인교회. 우리가 다 가보고 싶은 수도권 쪽에 사는 분들도, ‘문화, 경제, 교통 세계가 부럽지 않은 좋은데 산다’ 큰소리 치지 마시고, 매일매일 하루 살고 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청구서를 많이 요구하실 겁니다. 이 땅 위에 그렇게 좋은 강남에 사는데, 강남보다 더 좋은 분당에 사는데, 분당보다 더 좋은, 위성도시 더 좋은데 사는데, 세상은 살면 살지만은, 하나님께서는 준 대로 반드시 계산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요” 남달리 그 무엇인가 받은 사람은, 짐이 무거워야 됩니다. 남달리 좀 적게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좀 가뿐하게 충성하시면 됩니다. 맨 밑에, 시편 19편 11-13절을 보니까, “알고 있는 짓는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알고 짓는 죄는 분명히 큽니다. 전체적으로 속죄제. 속건제도 알고 짓는 죄가 적지 않습니다. 읽어보면, 나중에. 그런데, 그것은 알아도, 알면서도 당하는 죄. 그래서, 넓은 범위로는 속건제는 ‘모르고 짓는 죄’처럼, ‘허물’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살펴 주십니다.

교재 68페이지로 넘겨 봅니다. 속죄제는 만인, 모든 사람이 다 아는 ‘큰 계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 저것 낱낱이 적지를 않았습니다. ‘안 적어도, 전부가 아는 죄’. 속건제는 일일이 손 꼽지 않으면, ‘이것도 죄인가?’ 싶을 만한 이런 것이라서, 속건제의 특징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크게 속건제는, 4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범과’ 실수하는 죄를 말합니다. ‘아 쉽게 실수하는 죄라고 그러지, 뭐 범과라고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쓰셨나요?’ 이럴 때, 남이 잘 모르는 ‘범과’라는 어려운 단어 하나 외워놓으면, 두뇌활동이 좋아, 치매 예방도 되고, 학생, 청년, 세상 살아가는 분들은, 남 모르는 전문용어, 문자 하나 들어 놓으면, 지성인 되는데도 이거 좋은 겁니다. 다 배운 사람, 무식한 걸 누를 때는, 전문가들끼리 안 쓰는 단어를 척척 내놓으면, 나머지는 바보되고 그렇습니다. 세상 것은 그냥 그리되고. 성경에 적었은까, 따라 하십시다. ‘실수는 범과.’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는 제사 제물, 번제, 소제,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이것을 깜빡 실수를 해 버리면, ‘범성죄’라고 그럽니다. ‘거룩을 버린 죄.’ 예를 들면, 번제는, 흠 없는 수송아지, 흠 없는 양, 흠 없는 염소. ‘흠 없는 것을 가져 오라’ 그랬는데, 분명히 살펴서 흠 없는 수소를 가지고 왔는데, 오다가 이게 긁혀서, 나도 모르게 그만 흠이 생겨버렸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이것을 가지고 왔는데, 알고보니까 이게 실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세하게 살폈어야 됐는데. 또 소제의 여러 가지 순서, 절차가 복잡한데 깜빡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탁한, 명령한 것을 ‘거룩’이라고 그러는데, ‘하나님과 관련되는 제물의 거룩한 면을 실수한 죄’, ‘범성죄’라고 그럽니다. 일반적인 실수는 ‘범과’,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물에 관련되는 것은 ‘범성’. 집에서 실수하면 ‘범과’, 예배 시간에 실수하면 ‘범성죄’가 됩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또렷하게 말씀하신 것을, 어겨 버렸습니다. 이것을 ‘범령’이라고 그럽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성실하지 못한 죄, ‘불신실의 죄’도 죄입니다. 이런 4가지는 좀 더 자세하게 나오는데, 이것은 읽고, 알고, 조심을 하려고 했는데도, 깜빡깜빡 실수할 수 있어서, 이런 것은 속건제로 자세하게 살펴 주십니다.

속건제는, 크게 몇 가지가 있다고요? 4가지 첫 번째는요? 실수하는 ‘범과’의 죄가 있습니다. 그러면, 68페이지의 큰 제목, ‘범과’입니다. 5장 1절을 한번 손꼽아 봐보십시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 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도둑질하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맹세를 시킵니다. ‘정직하게 말하기로’ 그래 놓고도 말했다가는, 그 사람하고 원수가 될라, 불리해질라 해서, 분명히 봤는데, 아는데, 말하지 아니하면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형사재판에, 살인자를 세우려는데, 증인 서기 싫어서 도망가면, 판사가 잡아다가도 세웁니다. 또 거짓말 하면 처벌 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내려오는, 그런 법제의 흐름입니다. 여기는 그런 세상의 잡범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한번 살펴 볼까요? 68페이지 가운데입니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맹세를 했나요? 그 밑에, 사도행전 1장 8절을 한번 읽어 봅니다. 시작.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네가 예수님을 봤지? 믿었지? 예수님을 믿어 보니, 좋지? 그런데, 왜 네 친구한테 전도를 안 해? 네가 예수님 믿고 천국 가게 되어 좋다면서? 왜 아내는 절에 다니도록 그냥 놔 둬? 너 남편 교회 다니든지 말든지, 지옥을 가든지 말든지, 돈만 벌어 주면 되지, 그래? 네가 믿어서, 네가 주님을 봤고, 구원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믿은 첫날, 주님에게 오른손 들고, 선서 하셨나요? 법정 선서처럼 손 들고 선서하지는 아니했고, 대통령 취임식처럼, 손 들고 선서 하지는 않았는데, 주님 피 흘려 구원하시고, 우리를 중생 시킬 때에, 소리없이 이 맹세는 미리 되어져 있습니다. ‘나 널 위해 죽을테니, 너 다른 사람 신앙 위하여, 이 복음을 전하라!’ 그래서, 믿는 사람은 믿는 순간, 믿어 보고 좋으면, 반드시 가까운 사람, 가족, 친한 사람, 귀한 사람에게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감기 걸려 나는 나아보고, 사촌 이웃들은 감기 걸려, 독감, 폐렴으로 가서 다 죽어버리도록, 입 닫아 버리면, 하나님께서 ‘너 혼자 건강해서 1등 하니까, 잘했다’ 그러겠습니까? ‘그것 참 괘씸하다. 너는 낫고, 이웃을 내버려두고’ 이게 “맹세를 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하고 약속하고 도장 찍고, 맹세 확인서 안 적었는데요? ‘그런 것은, 세상 도둑들하고나 그런 맹세를 시키고, 하나님 앞에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복을 받고, 믿음의 길이 좋거든,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선재 약속’이 되어 있다. ‘선약’이 되어 있다. 하나님 사람되어 널 대신 죽었으니, 너도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 소개하거라!’ 요즘은, 배가 불러 맛있는 맛집 찾는다고 다 그러지요? 몰래 자기 맛집은 솔솔 다니고, 부부 둘이, 부모님 같이 가면 불편하니까, 좋은 맛집, 부모님한테는 알리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솔솔 돌아다니면, 이런 것 부부, 부모, 자녀 맹세 서약하지 않았지만, 그거 다 ‘맹세’에 들어가는 겁니다. 부모는 좋은 것 있으면 자녀들에게, 목이 찢어지라 애터지게 소개했지 않았습니까? ‘그 부탁, 그 교훈, 그 양육, 그 잔소리를 듣고, 오늘의 네가 되었다면, 너도 너 좋은게 있으면 부모에게 알려야지? 너가 귀한 것처럼, 부모가 너 말고 귀한 다른 형제에게도, 네가 알려야지?’ 마땅하지 않습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이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다. 너희들을 가르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했고, 부활 후 40일을 가르치고, 마지막 올라가는 장면까지 보여주시면서, ‘봤냐? 알았냐? 들었느냐? 그리고, 전하거라’ 그때서야 12제자가 그 다음 정신 차리고, 그 다음부터는 주님 가신 뒤부터 제 정신 차리고, 천하 만방을 다니면서, ‘내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생전에 그렇게 속을 썩였습니다. 십자가, 날 위하여 죽을 때는 저 배신했습니다. 부활 한 걸 보고도, 저는 믿지도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창자국에 팔뚝을 넣어봐야 알지!’ 이렇게까지 의심많은 도마가, 승천하는 주님이 ‘이제 다 봤느냐? 다 알았느냐? 죽기까지 전하거라’ 그 부탁을 듣고, 그 맹세 때문에 도마는 죽는 날까지 주님을 소개했고, 인도에 가서 소개하고 그러다가 곤봉에 맞아 죽었다는, 교회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그 도마가, 그 베드로가, 그 사도 바울이,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본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전했고, 그들은 죽었고, 그 뒤에 제자들이 들었고, 이게 1천년, 1,200년 전해지면서, 영국까지 들어갔고, 그리고 그 영국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그 다음 세계에다대고 전하는 바람에, 한국의 우리도 예수님을 본 사람,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그래도 예수님이 천국입니다. 구원입니다.’ 선교사들이 애 터지게 100년, 130년 전에 수고를 해서, 오늘 이 나라에 우리까지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좋은 복음, 좋은 신앙의 좋은 길 다 들어놓고, 입 싹 닫고, ‘나 혼자 잘 믿어 천국 가면 되지’ 그러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보면서, ‘넌 너 중심이구나! 널 위하여 피 흘려 죽은 피의 효력은 천국가는데까지만 있지, 그 이상은 없다!’ 그리 되어집니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복음의 좋은 것, 정말 좋은 것. 정말로 위험해서 피해야 되는 것을 안다면, 신앙을 두고는 전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장사가, 자기만 아는 좋은 거래처가 있는데, 이걸 공개 버리면, 내 수입이 떨어지는, 세상 돈벌이를 두고는 영업의 비밀을 지켜도 됩니다. 그거 공개하는 말은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이, 자기만의 비법이 있어 손님이 몰리는데, 이 비법을 공개해 버리면, 영업이 안 될 것 같으면, 그런 영업의 비밀은 알아서 지키시고. 학원강사의 교육의 방법도 지켜도 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또, 자기 통장의 비밀번호는 남이 알까봐 꼭꼭 숨겨둬도, 그건 여기에 상관이 없습니다. ‘복음을 알고도! 주님의 구원을 보고도! 입을 닫아? 그것은 주님이 널 위하여 죽을 때 벌써 맹세가 되어 있다, 선약이 되어 있으니까. 복음을 전하거라! 복된 소식은 외치거라! 외치다가, 쥐어 박혀도 외치거라!’ 이게 우리가 마땅히 아는 일이고, 할 일인데. 먹고 살기 바쁘다 보면, 학생이 공부하기 바쁘다 보면, 그만 깜빡 잊고, 공부하는데 정신을 팔아서, 친구에게 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걸 때려 죽일 큰 살인죄만큼, 속죄제로 해결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 알면서도 깜빡 실수했으니, 이것은 실수의 범과로 하나님께서 속건제로 분류하여, ‘증언 거부’는 속건제입니다. “맹세 소리를 듣고” 교재 68페이지 밑으로, 누가복음 9장 60절.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분명히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이것을 아는 것으로 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목사에게, ‘설교 빼 먹지 말라’ 그 말인가? 그 말도 되고. 밥 하는 어머니가 밥을 해서, 온 식구들 아침밥을 밥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육의 양식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도 먹고, 직장도 가시고, 직장 가서 주님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아침밥을 차려 드리는, 부인의 그 아침밥에, 남편에 대한 말씀 증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유치원 가는 손주에게, 아이에게 ‘차 조심해라. 일찍 죽으면, 성경 말씀 배우지도 못하고, 천국 가면 부끄럽게 된다.’ 똑같은 차 조심 시키면서, 여기다대고 자연스럽게 말씀을 끼워 넣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것도 설교입니다. 그것도 복음 운동입니다. 그것도 선교입니다. 선교사는 되지 못하고, 목사는 되지 못하고, 집회 강사는 못 할지라도, 그건 어렵다 칠지라도, 아침밥 먹고 흩어지는 식구들에게, 말씀 한 마디, 새겨 줄 수는 있지 않느냐? 점심시간 휴대폰 좋으니까, 문자 하나 날려서 ‘오전에 별일 없었는지요? 바쁘다가 주님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부부끼리, 아 이런 한 자가 오가면, 이게 바로 ‘증언’입니다. 보고, 아는 복된 소리를 좀 전하지. ‘아직도 날 사랑하냐? 잊지 않았냐?’ 이 짓 하고 앉아 있으면, 그거 오래가지도 못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침 출근하면서, ‘사랑한다’ 한 마디하고, 가다가 또 변심 했는가, 또 물어 보고, 점심 때 또 물어 보고, 저녁때 와서 또 안고 뒹굴고 난리를 부리고 이러대니까, 가정마다 다 깨지지. 요즘 뭐 드라마고, 어디고 그냥 길을 가도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러는데, 한글 아닙니다 그거. 한글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말 안 해도 그건, 평생 목숨 걸고 다 변치 않고 사랑을 했으니까. 서양 애들은 깨질 가정이니까, 돌아서면 변심할 것이니까, ‘사랑하냐? 사랑하냐? 사랑하냐?’ 사랑 확인을 많이 하니까, 사랑이 불 타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위태위태한 가정입니다. 얼굴 안 보고 결혼 했는데,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살았는데, 남자는 처자식 10명 먹여 살리느라고 뼈골 접었고, 여자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살림 사느라고 파김치가 되고. 평생 살아도 둘이 한 번도 다른데에 눈 팔지 않았는데, 사랑확인은 결혼식 때도 안 해봤고, 죽는 날까지 한 번도 안 해봐도, 가정 파탄이 없었던 때가 우리나라에도 한 50년, 100년 전에는 흔했습니다. 텔레비가 들어서, 서양의 더러운 것을 가르쳐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자꾸 해대니까, ‘믿냐? 믿냐?’ 하면, 그거 벌써 안 믿는 사람입니다. 남북이 만나서, ‘평화, 평화’ 그러면, 벌써 지금, 뒤로는 칼을 준비하는 인간들이지. “증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마음 바뀌면 또 가정의 문제가 되니까, 세상 평균적인 사랑 이야기는 마음대로 하시고, 해봐야 그것은 약효가 오래 가지는 못하고. 말씀 한마디 안부 전하고, 말씀 한마디 안부 오고가고, 이것 다 보고, 들은 복음을 전하는 ‘증언’입니다. 이게 5장 1절,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우리는 다 증인입니다. 믿는 사람은. “맹세”되어졌습니다. 맹세가 언제 되어 졌나요? 구약, 신약. 구약, 신약. 같은 글자가 하나씩 들어갔습니다. 뭐가 들어갔나요? 우리 엄재헌? 엄재헌, 구약, 신약. 한 글자가 같은게 있지요? ‘약’ 자가 들어갔지요. 옛날 약속, 구약. 새로운 약속, 신약. 그게 바로 ‘계약’입니다. 그게 바로 ‘맹세’입니다. 구약 성경에 적는 순간,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 구약 모든 말씀, 맹세 받아 놨습니다. ‘안 했는데?’ 안 해요? 예전에는 학교를 입학하면, 학교 학칙, 여러 장을 줍니다. 프린트해서. 이 학칙을 읽었습니다. 지키겠습니다. 사인을 했습니다. 읽기나 읽나요? 그냥 사인해버리지. 읽었던지, 사인을 했던지 말았던지, 학생이 되는 순간, 그 학교의 학칙은 지키는게 ‘맹세’가 되어 있습니다. 싫으면 치우고. 믿는 순간, 신 구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약속’, 우리는 ‘맹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깜빡깜빡 잊어버립니다. 직장의 윗사람에게 입장이 그래서, 믿으라는 말은 하지를 아니해도, 주일 열심히 지키고, 주님 때문에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윗사람이 ‘저게 교회를 다니니까 뭔가 다르구나.’ 소리 없는, 벌써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네가 듣고 네가 아는 것은 전하라!’ 그러지 않았으면, 뭐가 된다고요? 1절에, “죄가 되나니” 죄입니다. 그런데 이 죄는 속죄제로 때려 죽일 큰 죄는 아니고, 이것은 늘 씻고, 늘 새롭게 결심을 해도, 또 실수, 또 실수를 하는 것이니까, ‘허물’이라 그랬습니다. 허물이라.

그 다음 2번째, 2절입니다. 70페이지로 넘겨서, 첫 번째는 ‘증언 거부’입니다. 복음으로 할 말을 안 하면, 증언 거부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부정 접촉’. 부정 접촉. 2절을 읽어볼까요. “누구든지 부정한” 부정한 들짐승이 있습니다. 짐승이 부정한 들짐승이 있는데, “그 짐승이 죽었는데 그만 그 시체를 만져버렸습니다.” 부정한 짐승이라, 예를 들면, “박쥐는 부정하니 먹지 말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어둠 속에 날아다니며 사냥 하는 것이, 박쥐입니다. 남들은 아침 해 뜨면 출근했다가, 저녁 해지면 집에 돌아오는데. 불 꺼진 저녁이 되면 차려입고 출근했다가, 새벽 4시, 5시에 들어오는, 3교대 말고. 술 장사, 노래방 장사. 말하자면 이런 것은, 제가 그 직업을 가져도, 저희 식구가 그 직업을 가져도, 그건 박쥐이지, 빛의 생활을 하는 소나 양은 아닙니다. “박쥐는 먹지 말라” 어둠 속에 활동하며, 먹고 삽니다. ‘야간 작업, 3교대를 하지 말라.’ 그 말이 아니라, ‘어둠 속에, 말씀 없는 어둠 속에, 죄악으로 버는 돈, 활동하는 그런 것은 하지 말아라. 박쥐다.’ 직업의 깡패, 직업의 도둑질, 직업의 사기꾼, 직업의 술 장사, 이런 것은 아무리 돈이 많이 벌려도, ‘성경에 박쥐구나. 박쥐는 더러우니 먹지 말아라, 아 그런 생활을 하지 말라는 말이구나.’ 박쥐 금지입니다. “뱀도 부정하니 먹지 말아라.” 이건 더러운 땅 바닥을 기어다니고, 구멍마다 들어가는 것이 이게 뱀입니다. ‘세상은, 죄악 세상이다. 깨끗해도 도덕의 세상도 알고보면 더러운 세상이다. 더러운 세상에 뒹굴며 버는 돈은, 그런 활동은 믿는 사람으로서는 아니된다. 믿는 사람은 땅을 두 발로 저벅저벅 밟고 걸어가라. 땅을 밟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나, 밟고 살지, 땅에 뒹굴며 흙구덩이가 되어 지렁이처럼 살지는 말아라!’ 그래서, ‘지렁이, 뱀, 박쥐, 생쥐, 까마귀, 이런 것들은, 그 짐승 자체가 부정하니, 깨끗하지를 못하니, 먹지 말아라!’ 요즘은 약으로 먹고, 음식으로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구약은 안 됩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육체적으로 음식으로 먹으면 안 되는데, 오늘 우리는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뱀도 잡아 드시고, 배고프면 쥐도 잡아 드시되, ‘왜 구약에 이런 것을 부정하다 먹지 말라고 했겠느냐?’ 뱀? 땅을 기어다니는, 세상에 뒹굴고 사는 짓을 하지 말아라! 어두운 밤, 말씀을 떠난 그런 죄악으로 활동하지 말아라! 생쥐라, 기웃거리며 몰래 몰래, 그렇게 들춰 먹는 짓 하지 말아라! ‘그러면, 뭘 먹고 언제 먹고요?’ 좀 덜 먹어도 주님 믿고, 양처럼 살고, 소처럼 살아라. 그래서, ‘양과 소는 깨끗하다. 먹을 수 있다.’ 돼지, 개 등등은 부정하니, 먹지 말아라. 오늘은 음식으로 먹으면서, 그 뜻을 생각하고, ‘내가 그런 인격, 그런 생활을 하면 안 되겠다.’ 그런데, 이 부정한 쥐, 이런 동물이 죽었는데, 죽은 동물을 모르고, 손을 대버렸습니다. ‘그러면, 너는 부정한 사람이 됐다.’ 부정한 생활은 손도 대지 말아라! 접촉도 하지 말아라! 친구로 삼지도 말아라! ‘먹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접촉도 하지 말아라.’ 죽음이라니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을 죽음이라 그럽니다. 부정하게 살아 움직이는데, 죽음이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는데, ‘여기에 접촉하여, 그런 인간, 그런 생활, 그런 행위를 하지 말아라!’ 그래서, 부정한 짐승의 시체, 사체를 닿으면, 이건 속건제입니다.

교재 70페이지, 위에서부터 괄호를 볼까요? 부정이란, 성경 말씀에 깨끗지 않은, 그러면 전부 ‘부정’입니다. 말씀에는 맞는데, 말씀 속에 들어가니, 주님의 뜻에 틀리면 그것도 부정입니다. 사죄, 칭의이지요? 그 다음, 말씀에도 맞고, 주의 뜻에도 맞는데,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그것도 부정입니다. 그 다음, 말씀 지켰고, 주의 뜻대로 살았고, 주님과 동행도 했는데, 그 마지막에 목표가 세상을 향하면, 세상만 바라보는 이것이 되면, 신약의 우리에게는 부정입니다. 구약에는 ‘이런저런 짐승을 먹지 말아라. 그 주검에 접촉도 하지 말아라.’ 오늘 신약 우리에게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요나 선지에게, ‘니느웨로 가라’ 이건 명령입니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 것을 죄라고 그럽니다. 더러운 것이지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려주십시오’ 하고 살아나오니까, 이제는 니느웨로 가라니까, 니느웨로 갔습니다. 왜 가야 되지요? ‘가는게 문제가 아니라, 가서 회개를 외치거라!’ 그래서, 가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러면, 죄를 해결했고, 하나님의 뜻까지 실행을 했는데, 니느웨에 회개를 외치니까, 니느웨의 사람들이 회개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니느웨에 벌을 주시기로 했다가,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취소를 하니까, 이 선지자, 요나 심보가, 니느웨는 이스라엘 하고 원수인데, 원수 나라로 가라니까 도망갔다가 붙들려 와서, 죽을까봐 할 수 없이 이제 말씀을 전했고, 회개하라 했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를 하니까 주의 뜻에 맞는데, 니느웨가 망하지 않으니까, 이제 심보가 뒤틀려서, 니느웨가 보이는 산 위에 올라가 초막을 짓고, ‘하나님이 언제 이것을 불로 때리나?’ 하고 심보가 이렇게 쳐다보고 앉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은 떨어져버렸습니다. 가라는 말씀, 어긴 죄. 회개를 시키라는데 회개를 안 시키면, 그 뜻을 어긴 죄. 이것 두가지를 해결하고, 니느웨로 갔고 회개를 외쳐서, 회개하는 뜻까지는 해결을 했는데, 회개하고 나니까 하나님은, 니느웨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회개하니까 불을 주지 않고, 멸망을 시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걸음인데, 요나는 언제나 하려나, 불로 불바다를 만드는지 구경하고 싶어, 버티고 기다리고 앉았습니다. 하나님하고 동행이 딴 데로 가버렸습니다. 그거 다 ‘부정’입니다. 구약의 부정은 “짐승 사체를, 죽은 사체를 손대지 말라.” 손 대면 ‘부정 접촉’에 속건제의 죄가 되는 겁니다. 훤한 것이지요?

그 다음 “부정한 가축의 사체도 손대지 말아라” 성경 본문에, 5장 1절 증인, 2절 부정한 들짐승. 집에서 내가 가축으로 기르지 않는, 들짐승 중에 부정한 짐승. 또, 그 다음 세 번째는, 내가 기르는 가축 중에도, 부정한 짐승이 있습니다. 낙타 같은 것. 낙타는 집에서 필요하여, 가축으로 기르기는 기르지만은, 먹지는 못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덩치 큰 낙타가 죽었는데, 죽은 줄 모르고 만지면, 그게 속건제가 되어집니다. ‘자기가 관리를 하는데, 자기가 관리하는 모든 활동인데, 하나님과 끊어진 것은 아니된다’ 그 바로 위에, ‘짐승’이라는 말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활동’을 짐승이라 그럽니다. 사체, 시체라는 말은, 하나님과 끊어진 활동은, 전부 시체가 되어집니다. ‘그 전부가 부정한 것이다’. 첫째는, 할 말을 안 하면 속건제의 첫째 실수, 죄. 더러운 짐승이 죽었는데, 만지면 죄. 더러운 짐승의 종류는, 첫 번째는 부정한 짐승, ‘들짐승’. 집에 기르는 부정한 ‘가축’, 세 번째는, 곤충 중에서도, 부정한 ‘곤충’이 있습니다.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 같이 날개가 있고, 뛰는 다리가 있어,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곤충은 먹어도 된다. 땅에 살기는 살지만, 땅에 뒹굴지 아니하고, 땅을 초월하여 뛰어다니고, 땅을 위로 날아다니는, 땅을 초월한 곤충은 먹어도 된다.’ 이렇게, 뒷다리로 뛰는 메뚜기 종류가 아니라, ‘굼벵이처럼, 굼벵이처럼. 곤충은 곤충인데, 이게 바퀴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것은 더러우니까 먹지 말아라! 더러운 죄악 세상을 다 묻히고, 다 비비고 다니는 것은 아니된다.’ 그런데, “이게 죽었는데 만지면,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진게 됩니다.” 곤충이란 말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시시한 활동, 하찮은 활동’ 짐승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활동’, 곤충은 ‘시시한, 하찮은 그런 활동’ 그 다음에 네 번째, 부정이 닥친 사람, 부정이 닥친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부정이 닥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정이 닥친 사람을 손을 대버렸습니다. 피부병이 걸렸던지, 또는 나병에 걸렸는데, 나병에 걸린 줄 모르고, 그 사람을 만졌던지, 피부병. 또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낳느니라고 수고는 했는데, 그 과정에 온 몸이 더러워졌습니다. 출산, 피부병. 또 몸에서 밖으로 나가는 유출병. 이게 레위기 12장부터 15장에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왜 출산을 더럽다 했는가?’ 원래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아담을 떼어 하와를 만들었고, ‘분식법’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으면, 부부 관계없고, 임신 없고, 애 낳는다고 그런 고통 없이, 하나님께서 자고 나면 딱 딱 만들어, 필요한 인간을 만들어 갔을 것인데, 선악과 먹고 죄를 지어놓으니까, 죄 지은 인간한테, ‘죄로 고생해 봐라! 그리고, 너도 아이를 길러 봐라!’ 그래야 누구 마음 알지요? 아이를 낳아 길러본 분들, 애를 낳아 길러 보니까, 그때서야 누구 마음을 알지요? 부모님, 날 향한 마음을 비로소 알지요. 아이가 10대가 되어봐야, 내가 10대 때 부모가 날 향한 마음을 알지. 그건 책으로 안다고 아는게 아닙니다. 아무리 알아봐야 그것은 겪어 봐야 아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부탁을, 아담 하와가 선악과 먹고, 쉽게 던져 버리니까, 벌로 준 것이 아니라, 이게 복을, 이게 생명을, 에덴동산을 모르니까 죄를 지었으니, 이걸 되돌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둘이 사랑하거라. 둘이 사랑하니까, 살다가 아이를 낳거라. 아이한테 실컷 당해보거라.’ 죄 값으로 말하면, 너 하나님 아버지 어긴 죄 값을 당해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그게 죄의 값이 아니라, ‘널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구원의 중심을 알기 위해서는, 너도 아이 낳아, 그 아이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길러가는 과정에 고통하고 수고한 과정을 다 겪어 봐라’ 그래서, 결혼 일찍 하시고, 아이를 하나, 둘 많이 낳아 보시고, 아이를 기르면서, 죽을 고생을 다 해보고 그냥, 그냥 이제 그래봐야 그 다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비로소 합니다.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는’ 이것이 목적입니다. 부모 고생하는 것 알아봐야, 부모는 이미 죽어 버렸는데. 철 들자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이미 늙어서 뭐 어떻게 효도할 길도 없는데. 그걸 땅 위에 가르치려고 했다면, 땅의 복음입니다. 아이를 통해 부모의 심정을, 비로소 아는 사람 될 때. 이걸로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 아담의 첫 죄, 나의 하나님 모르고 돌아다닌 죄를, 정말로 실감있게 느끼고, 이렇게 느낄 때에 비로소, 아이를 낳아 고생한, 가정적인 고생으로 여자는 구원을 얻고. 타락한 하와에게 준 복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의 고생으로 너는 사람이 되거라.’ 아담에게, ‘네가 하나님 아버지 대신에 처자식 먹여 살려 봐라.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그래서, 죄 지은 아담에게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산다” 또, 하와에게는 “출산, 잉태의 수고를 더 하여” 그게 죄 값이 아니라, 불신자에게, 불택자에게는, 죄의 값, 응징이지만은, 택자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복이며, 빛입니다. 선물입니다. 500년 전에 칼빈이 천주교 천년 시절을 개혁하며, 주장한 내용 몇 가지 중에, 사회 사람, 세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노래 부르는 것이, ‘칼빈은 노동을 중요하다고 했다.’ 그건, 불신자들 교과서에도 다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사람, 스위스 사람들이 루터, 칼빈의 후손들인데, 그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려수고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라도 뭐 같이, 굶어죽는 한국에서는 뭐 선비가 이러니, 땀 흘리면 천대를 하고 그러는데, 벌써 서양은 500년 전에 루터, 칼빈의 독일과 그 다음 스위스를 중심으로, 그 다음 이 복음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독일, 스위스, 영국, 미국 쪽의 개신교의 교회 기독교 선진사회에서는, ‘땀 흘려 일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너에게 대한 복이다.’ 타락한 아담에게 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복 받는다는 그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이걸 교회에서 교리로 가르쳤는데, 믿는 사람이 서양에는 많다 보니까, 불신 사회조차도 ‘노동은 좋은 것이라. 노동자는 값어치 있는 것이라. 왕은 왕 노릇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복, 노동자는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복. 하나님께서 맡기신 위치와 사명에 따라 각각 다르다.’ 이게 교리적인 내용이, 사회 직업으로 나간 것이, 노동에 대한 가치입니다. 청교도, 미국 사람들은 땀 흘리는 노동을, 아주 귀하게, 존중합니다. ‘땀 흘려 돈 벌었느냐? 얼마든지 벌어도, 하나님의 복이다.’ 부정이 닥친 사람, 출산, 범죄한 하와에게 잉태의 수고를 주셨습니다. 그게 죄의 값이기 때문에, 부정합니다. 고생들 많이 하시지요? 그러면서, 깨끗을 배우고, 깨끗을 사모하여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피부’라는 것은, 피부병을. 타락한 세상을 접촉하는 것이, 우리의 피부인데, ‘접촉하다가 생기는 병’, ‘문둥병’을 여기 피부병이라고 그럽니다. 레위기의 피부병은, 전부 다 문둥병으로 통칭해놨습니다. 요즘 우리가 아는 문둥병과, 레위기에 말하는 문둥병은 좀 다릅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문둥병도 레위기의 문둥병이고, 레위기의 문둥병은, ‘독한 피부병 전체’를 ‘문둥병’이라 그럽니다. ‘유출’이란 것은, 여반들이 몸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가 버리는 것.’ 이런 종류를 주로 말하는 데.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죄악, 깨끗하지 못한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씨도 나가고, 깨끗지 못한 말투도 나가고, 깨끗하지 못한 눈빛도 나가고,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총칭해서, ‘유출병’으로 통칭해놓은 겁니다.

자, 다시 한번 크게, 5대 제사 중에 큰 죄는 ‘속죄제’고, 알고도 실수할 수 밖에 없는 생활 속의 많은 죄를, ‘속건제’로 모아놓고, 속건제의 제 1번이 실수하는 ‘범과’의 죄입니다. 어떤 실수냐? 1번이, 해야 할 말, 전할 말을 하지 않는 ‘증언 거부’도 죄입니다. 두 번째는, 손을 대면 안 되는, 죽은 부정한 ‘짐승’, 죽은 부정한 ‘가축’, 죽은 부정한 ‘곤충’. 또, 부정에 닥친 ‘사람’. ‘4종류의 부정에 손대지 말아라’ 왜 손대지 마느냐? 부정한 곤충이 죽었으니, 생명이 없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사소한 활동, 깨끗지 않는 활동, 하나님 없는 그 활동에 손대지 말아라. 네가 기르는 짐승이라, 그걸 짐을 지우고, 그걸 낙타로 타고 돌아다녀도, 그게 죽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손대지 말아라!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라! 심지어, 사람도 그 사람이, 더러운 상태, 깨끗지 못한 상태일 때, 구약은 몸 자체가 더러울 때 손을 대면, 손 댄 사람은 모르고 손을 대도, 그것은 실수의 죄입니다. 속건제의 대상입니다. 오늘 위생적으로, 신체적으로, ‘유출’은 성경적인 유출병이 아닙니다. 내게로부터 나도 모르게, 스며 나가버린 것. 여기 교사들 많지요? 열심히 가르쳤는데, 열심히 가르치려고 가르쳤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가르치다가, 안 할 말이 나가지 않는가요? 그러니까, 사람이지요. 목사 설교 하면서도, 표현이 잘못됐다던지, 비유가 잘못됐다든지, 잘못 말하는 말이 있는데.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물건을 팔기 위해서 슬쩍 안 할 말을 해 버렸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이 나갔는데, 깨끗지 않은 것이 나가버렸습니다. 물건을 파는 장사가 붙여 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영업 활동입니다. 영업 활동은, 성경이 건강하게 보장하는 장사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속여서 팔았다든지, 이건 팔아서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덩치는 큰데, 딱 보니까 15살쯤 되어 보이는데, 이게 술을 사러 왔는데, 이걸 팔면 돈이 많이 남겠어서, ‘술인 줄 모르고 팔았다’ 그러고, ‘20살 안 되는 줄 모르고 팔았다’고 그러는데, 하나님은 ‘네 속으로 다 알면서!’ 돈 벌기에 급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직장, 어떤 공부, 어떤 가정 생활, 심지어 신앙생활 하는 과정에서도, 나도 모르게 잘한다는 것이, 나에게서 스며 나갔는데, 이게 그만 실수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한 20년 늘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제가 ‘저것은 참 내 유출병이다.’ 이렇게 회개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 가정에 부모님들이 키가 크기 때문에, 어릴 때는 아무리 작아도, 자라다 보면 키가 크게 되어 있는데,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 영 크지 않을 것처럼, 아주 작아 보이는 아이가 있는데, ‘뒤에는, 크겠지’ 그런데, 하도 작아서 이쁘다고 표현하는게, 이게 이제 출신이 그렇다 보니까, 뭐라고 제가 말을 했냐하면, ‘아이고, 그거 돌콩 같이.’ 그렇게 해 버렸습니다. 아 이뻐서, 돌콩이라 그랬는데, 그걸 내 자식을 그렇게 말했으면, 남이 뭐라고 그렇겠습니까만은, 남의 집 귀한 딸한테 그 말을 해 놨으니, 말을 해 놓고 나니까, 이거 어린 아이한테 사과한다고 알아듣겠습니까? 그런데, 뒤에 보니까, 이제 다행스럽게 쭉 쭉 커서, 전봇대만큼 되어버렸습니다. ‘돌콩처럼이 아니라, 전봇대처럼 커서 참 고맙다’ 이게 정말로 키가 작아놨으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목사가 축복을 하고 돌아다녀도 모자랄 판에, 아이 말 중에 ‘좀 작아 보인다’도 아니고, ‘돌콩’ 같은 말을 써놨으니, 그래도 그 가정의 식구들이 양반이 돼서, 지금까지도 교회 다니시지, 저 절반만 되어 놨으면, ‘이런 놈의 교회를 다녀?’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내 속에 든 것이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나갔고, 밑으로 나갔고, 옆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것을 ‘유출병’이라 그럽니다. 여반들은 잘 모르지만은, 여반들은 몸에서 새어나가는, 여러가지 불편한 것 때문에, 조심하고 늘 애 먹지요? 그럴 때마다, ‘아담, 남편을 꼬아서, 죄 짓게한 값이다. 그래서 이 값을 깨끗하면서, 늘 신앙이 깨끗해져야 된다.’ 그러면서, 여자는 참새처럼 재잘재잘 하고 살아야, 아이를 기르는데. 그러다 보니까, 모여서 안 할 말이 자기도 모르게 많이 나갈 겁니다. 그거 다 ‘유출병’입니다. 구약은 ‘육체의 유출병이 있을 때는, 조심해라. 건강에 좋지 않다. 위생적으로 좋지 않다.’ 신약은, 우리가 그 말을 듣고, ‘내 속에 있는 사상, 내 속에 있는 생각, 내 속에 들어있는 잘못된 것이 통제되지 아니하고,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 되겠다.’ 좋은 말 아닌가요? 휘발유통, 가스통, 기름통 가정 생활에 다 중요한 건데, 잘 잠그지를 않아서, 빵꾸가 나서 기름이 슬슬 새어 나가고, 가스가 슬슬 새어나가면 그 다음 어떻게 되나요? 이게? ‘새어 나갈 수 있지!’ 그럽니까? 폭발하면 어떡하려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또 잠그고, 또 보고, 또 살펴야 되지. 남반보다는, 여반 쪽에 유출병이 많습니다. 아, 이유야 없이, 여반들은 내 속에든 것, 여기저기 스며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새벽에 살폈던가요? 모세의 어머니, 아론의 어머니, 미리암 선지의 어머니. 삼남매를 낳아놨는데, 삼남매가 역사의 선지자이며, 역사의 하나님 나라의 기둥들이었습니다. 그 삼남매를 기른 요게벳의 어머니의 생활은, 실패한 여성이 아니었고, 부엌에 매인, 자기 야망을 희생한 어머니 아니었고,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부엌에, 남편의 아이에게 포로된 불쌍한 여인이 아니었고, 역사를 초월한, 모세 위에, 아론 위에 인물이 요게벳입니다. 그 요게벳이, 여자로서 불편할 때마다, ‘아담을 꼬셔서 죄 짓게했으니, 나는 평생 하나님께 받은 여러가지 장점으로’ 여자의 장점 뭐지요? 남자 꼬시는 것. 뭐 타고나면서, 어릴때부터 하는 짓이 벌써 이건 뭐 그냥, 여우도 그런 여우가 없지요? 딸을 길러 보시면. 그 유혹! 그 남을 홀그는 그 몸, 표정, 말투, 심성을 가지고, 돈 버느라고 바쁘고, 세상에 바쁜남자 죄 짓지 않도록, 끌어대라고 주셨는데, 자기 남자는 놔두고, 남의 남자 사냥하러 다니면, 그 인물! 그 말투! 전부가 하나님 앞에 하와의 죄에 죄를 더해버립니다. 여반들은 마음껏 꾸미시고, 아름답게 하시고 하시되, 자기 남자 하나를 향하면, 하나님께서 ‘귀하다’ 그러십니다. 자기 남자 아닌 쪽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더럽다’ 그러십니다. 그래서, 여반에게 주신 아름다움, 여반에게 주신 말의 그런 감미로움, 오만 것은 전부 다 남편 하나님 앞에 끌어다놓고, 아이들 잘 기르라고 주는 하나님의 ‘장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기에 여러 가지 ‘유출’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없는 죄로 이렇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이 장점이 되어, 나는 인간을 기르는 우리 가정의 목자다.’ 그러시면, 좋은 여반 되어집니다. 남반이 부러울 성공한 여반들 되어집니다. 이게 유출병입니다. 이런데 그만, 유출이 있는 상태의 아내를 손을 대는 순간, 구약에는 ‘너! 부정한 사람이다.’ 부부 살아가면서, 그거 어떻게 다 검사를 하고, 다 피하나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는데? 이것은 알아도, 조심해도, 이것은 피할 수가 없는 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속건제로 돌려 놓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겁니다. ‘부정 접촉’.

그 다음, 크게 세 번째. ‘거짓 맹세’. 4절입니다. 5장 4절. “혹 누구든지 무심 중에”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엉겁결에 말을 했는데,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심지어 선을 하리라 맹세하면, 그 사람의 무심 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뒤에 깨닫고 내가 맹세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허물이 있을 것이라” 한 마디로 간단하게, ‘좋은 말, 나쁜 말 상관 없이 맹세는 하지 말라!’ 성경을 열심히 믿는 저 아미쉬 쪽의 사람들, 그쪽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맹세도 안 해버립니다. 군인은 입대하면, 군인으로 맹세가 있고, 공무원은 공무원의 맹세가 있고, 학생은 학생 맹세가 있는데, ‘어떤 맹세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맹세 안 한다’ 버텨버리는, 그런 종파들도 있습니다. 잘 믿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공무원되면, 공무원 맹세, 선서도 하고. 군인 되면, 군인 선서도 하고. 학생대표로 앞에 나가라면, ‘선서’ 얼마든지 맹세합니다. 맹세는 할 수 있는데, 왜 맹세를, 여기 금지했지요? 맹세란, ‘미래에 대한 자신’입니다. 1초 뒤라도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지, 그 인간도, 내일과 다음 순간은 제멋대로 자신 못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맹세 할 때, 맹세 시키는 사람도 ‘맹세대로 안 할테니까, 맹세하라’고 족치고. 또 맹세하는 나도, ‘그리 잘 안되겠지만은, 해보려고’ 맹세를 하면서, 서로서로 인간이 맹세하는데, ‘맹세 해봐야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 알면서, 서로가 조심하기 위해서’ 결혼 맹세도 하고, 목사 선서도 하고, 목사 선서도 하고. 우리는 그런 것 잘 안 시키는데, 다른 교단은 교회를 처음 다니고, 몇 달 다니고, 교육 받고 나면, ‘입교 선서’라는 걸 받습니다. 그때까지는 교인 취급을 안 하고, 투표권을 안 줍니다. 어떤 교회는 6개월, 어떤 교회는 1년, 2년 출석하면서, 심사를 해서 ‘이제, 너 우리 교회 교인 시켜 줄게, 일어나. 선서, 일. 교회 예배 시간을 지킬 것이며, 목사 말 잘 들을 것이며, 성경 말씀대로 잘 살 것이며’ 이렇게 맹세를 해야, 비로소 교인 자격을 주고, 그 다음 투표권도 주고, 그러는 것이, 공회 교회 말고는 다 일반적입니다. 맹세 시키면 되나요? 우리는 안 하지만은, 다른 교회가 맹세 시키는 것을 우리는 이해를 해 줍니다. 잘 해보라고 맹세를 서로 하는 겁니다. 맹세한다고 되나요? 안 되지. 구약은, ‘맹세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어떤 맹세도, 맹세는 하면 안 됩니다. 하면, 속건제로 해결을 해야 됩니다. 신약 우리에게, 왜 맹세를 하지 못하겠느냐? 말로는 맹세를 해도, 내 마음 속에는 ‘나도 나를 자신 못합니다. 내일 일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미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겁니다.’ 내가 이 남자를 책임지겠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책임지겠습니다. 내가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하겠습니다라는 맹세를 마음에, 소원으로만 가지면, 맹세가 아닙니다. 말로는 ‘맹세합니다.’ 했는데, ‘주여, 이 맹세를 지키고 싶습니다.’ 소원적인 맹세는 소원이지 맹세가 아닙니다. 그런데, 말로는 소원적으로 쉽게 하면서, ‘예. 제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했으면 좋겠다하면, 나는 하고야 맙니다. 의지가 있으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가 내일 죽을런지, 살런지 어찌 아는데? 네 멋대로 입에서 맹세를 하느냐? 내일 일은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주권은 손대지 말아라’ 그게 ‘맹세 하지 말아라’는 말인데, 살다보니 명세할 일이 한 번입니까? 두 번입니까? 한도 없이 많지. 성경에 신앙의 선지 사도들도 맹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맹세는 ‘전부 다 주여, 주의 주권이 허락하시면, 하고 싶습니다.’ 소원적인 맹세만 했지, 맹세적인 맹세나, 맹세적인 그 어떤 언행도 이것은 죄가 됩니다. 아이를 막 낳은, 우리 뒤에 있는 아기 엄마들이, 아기를 보면서, ‘애야, 내 목숨 바쳐, 너를 이 땅 위에서 지켜줄게’ 다 맹세 한번씩 했겠지요? 하나님이라야 그 약속을 지키지. 내일 죽일지? 내 마음이 변할지? 어찌 압니까? ‘이 아이를 목숨 바쳐 잘 지키고 싶은 이 마음이 끝까지 가면 좋겠습니다.’ 맹세지만은, 속으로는 소원만 엄하게 구별을 해서 가져야 되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세상 살면서 의욕이 지나치고, 책임감이 지나쳐서, 단정적인 맹세는 하나님 자리를 위협하고, 하나님이 되는 큰 죄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생활 속에 아무리 살펴도, 흔히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 ‘거짓 맹세’ 는 속건제로 넣어 놨습니다. “무심 중에 맹세라” 맹세는 미래에 대한 단정, 안 되는 겁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이니, 소망만 하고. 소망은 할 수 있습니다. 확정하면, 안 됩니다. ‘내가 너를 다시는 보나 보라!’, ‘예. 지금으로서는 내 마음은 그렇다. 그러나, 또 어찌될지 모르겠다.’ 이 마음을 담고, ‘너 죽어도 안봐’ 그 말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점잖은 사람들은 ‘내가 당신 다시 보기 어려울 걸요’ 쉽게 말했는데, 속으로는 꽁 해가지고, ‘죽어도 내가 너를 다시 보나?’ 이게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네가 주권자 하나님이구나!’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미래에 대한 단정적, 확정적인 결심, 행동은 하면 안됩니다.

70페이지 넘겨서, 72페이지로 갑니다. 이런 종류의 죄는 죄인데, 이런 죄들은 실수의 죄이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그런 일을 다음에 줄일 수 있고, 막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범과하였노라” 그만 제가 맹세해 버렸습니다. 제가 멋모르고 그만 미래를 단정해 버렸습니다. 너무 성급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제가 복음의 할 말을 그만 실수로 못 해 버렸습니다. 돈 벌기 바빠, 공부하기 바빠. 부부 둘이 한참 다투다보니까, 이기려고 별의 별소리를 하다 보니까, 주님이 전하라는 복음의 은혜 되는 말은, 다 빼 먹었습니다. 인간 대 인간이 싸우다 보면 그렇지 않은가요? 화를 돋궈놨는데, 입에서 안 나가는 말이 있는가요? 이기기 위해서 감정의 뭐 오만 말이 다 나가지. 그런데도, 그 과정에, ‘이 말이 상대방은 격한 말 같고, 싸우는 말 같지만은, 이런 말이 가야만 저 사람이 죄를 짓는데 좀 주저하지 않을까? 그래도, 또 훗날 또 되돌아보면, 그 사람이 다시 되돌아서는데 좋지 않을까?’ 이 소원, 그 뜻을 담고, 육두문자, 욕도 할 수 있고, 비느하스처럼 창을 들고, 음행하는 두 남녀를 찔러버릴 수도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은 창을 들고 그럴 수는 없지만은, 부모님들이 흔한 표현, ‘나가 뒤져 버려라.’ 나가거라, 죽어라는 소리인가요? 그게? ‘제발 좀 하지 말아라.’ 부모가 엎드려 그냥, 싹싹 비는데, 달리 표현 할 말이 없으니까, 나가 죽으라는 말입니다, 그게. 그런데, 이것을 타이핑을 쳐서, ‘나가라? 죽으라? 오냐, 나가서 죽을께’ 그런 인간은 그냥,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마셔야 되지. 말리러 가면 진짜 뛰어내려 버립니다. 우리나라 표현 중에 ‘문 닫고 들어오십시오’ 저도 사무실에 노크하면, ‘문 닫고 들어오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러면, 열린 문을 닫고,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는 소리인가요? 문 닫고 들어오라 했으니까, ‘문을 여시고, 들어오셔서 문 닫으십시오.’ 손님들한테 그러는가요? 노크하면, ‘예. 문 닫고 들어오십시오.’ 겨울에, 문은 닫혔으니까, 문을 깨고 들어오라는 말인가? 이게 억지이지요. 이게 억지. “맹세하지 말라” 좀 넓혀 보면 그런 말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런 일인데 실수입니다. 대신에, 이런 실수들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리고, 인정하고. 작아도 죄는 죄입니다. 그래서, 성격은 ‘속죄제’입니다. 그래서, 암컷 어린양이나, 염소로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은 다 앞에서 다 설명을 했고, 그 다음, 여기에 속건제의 아주 특별한 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다. ‘새’를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산비둘기’ 두 마리거나, ‘집비둘기’ 새끼로 두 마리입니다. 번제에서는 한 마리였는데, 여기에서는 두 마리입니다. 왜 두 마리인가? 속건제라는 것은 작은 죄, 속건제라는 것은, 생활 중에 흔한 실수인데, 왜 새로 줄이는 것은 줄여놓고, 그 다음에 왜 두 마리인가? 하나는 번제용이요. 하나는 속죄용입니다. 생활 속의 죄는 어떻게 하다가 지었지요? 면밀하게 살피면 피할 수 있는데, 면밀하게 열심히, 근실하게 노력하지 않다가 그만, 지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번제의 충성으로 열심히 살펴, 다음에는 죄 짓지 말아라.’ 속죄는, 죄는 되니까 당연하고. 그 다음 ‘가루’로 드리는 것은 다음에 하고.

그 다음 교재를 넘겨서, 74페이지입니다. 앞에 4가지의 큰 종류의 실수들. 74페이지에는 제사에 관련되는, 성물에 관련되는 죄가 있을 때는, 반드시 속건제로 해결해야 됩니다. 그 다음 넘깁니다. 76페이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럴 때도, ‘허물’이라. 그것도, 속건제에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78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신실치 못한 것’도 죄는 죄입니다. 그런데, 신실치 못한 것이 우리들 아닌가요? 그러니 교회를 다니지요. 그러니, 우리의 모양이 이 모양, 이 꼴이지요. 이런 이 모양, 이 꼴로 그냥 두지 않고, 천사를 만들고, 하나님의 자녀는 만들기 위하여, 다섯 번째 속건제의 네 번째 마지막 죄가, ‘신실치 못하면 죄는 죄다!’ 그리고, 예를 들었습니다. “남의 물건을 맡거나” 그거 안 됩니다. 남의 물건은 맡는게 아닙니다! 도둑질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 물건을 맡았을 때는, 잃어버렸거나, 미안한 일이 생기면 ‘실수인데요?’ 그러지 말고, 갚을 요량을 하고 받아야 됩니다. ‘남의 물건을 맡지 말라니요?’ 급한데, 병원 가면서 아이를 맡기지 못합니까? 급한데, 전화 걸면서, 내 가방을 친구한테 맡기지를 못합니까? “맡기지 말라” 못질 책임은지지 말아라. 지지 못할 책임은 맡지 말아라. 남을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 적극적인 사람들의 흔한 죄 중에 하나가, 맡아서 아니되는 책임을 자꾸 모아서, 많이 걸머쥐다가 나중에는 치어 죽습니다. ‘남의 짐을 맡아 해결하고, 남의 짐을 맡아 해결해서,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긴 책임이 있는데, 책임을 벗어나서 맡지는 말아라!’, ‘이건 내가 맡을 것이 맞다’하면, 맡아도 됩니다. ‘이건 내가 맡아서는 아니된다’ 하면 그때는 맡아서는 아니됩니다. “남의 물건” 남의 물건. 그 친구가 손가방을 내게 잠깐 맡기는데, ‘이건 친구지만은 이건 큰 나, 대 아, 넓은 범위의 이건 나다.’ 그때는 내 것이니까 맡아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잃어버려도, 내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내것처럼 챙길 것이고, 잃어버려도 내 것이라는 감정이 있고, 책임감이 있을 때에는 맡을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라도, ‘그것은 내가 맡기 어렵다. 맡기 싫다. 맡을 능력을 하나님이 주지 않았다.’ 할 때는, 미안하지만은 못 맡습니다. 부부면 다 하나인가요? 옛날에는 부부가 되는 순간, 통장이고 비번이고, 전부 하나가 되었는데. 요즘은 부부가 되어도, 통장 따로, 비번 따로. 스마트폰 비번 다 공유하고 계시나요? 그거 다 오픈하면, 정말 부부고. 카톡에, 이메일에, 몇 가지는 비번 공개 못하면, 그 면으로는 남이지요? 하나님께는 다 드리고, 다 맡길 수 있지만은, 남자한테 다 맡겨요? 도둑놈한테? 남편들은, 여자라고 다 맡깁니다? 이 도둑년한테? 맡기만 하면 다 맡기지만은, 맡겼다가 이것은 큰일이 날 것 같으면, 적절하게 맡겨야지요? 무식하게 결혼한 옛날은 정말 부부였고, 유식하게 지성인으로 만나는 오늘의 부부는, 절반짜리 부부, 삼분의 일짜리 부부, 다 그렇습니다. 저도 결혼시킬 때에, 예전에 상담을 많이 할 때는, ‘절대로 네 과거 비밀을 말하지 말아라, 좋은 것만 말하거라. 죽는 날까지 지키거라!’ 이러지, 첫날밤에 흥분해서 뭐 좋아 놓으면 그냥 이 소리, 저 소리 다하면 그날 깨져버립니다. 상대방이 그만큼 주님처럼 이해를 합니까? ‘천사인 줄 알고, 데려왔는데. 왕자인줄 알고 데려 왔는데, 그거 끝까지 연극하고. 그래가지고 ‘이제 완전히 우리 편이 됐다’ 싶을 때에, 딱 꺼내면, 그날에 깨진다. 죽는 날까지 지킬 것은 지켜라.’ 주님은 다 맡겨도 되지만은, 인간은 나도, 너도, 그 어느 누구한테든지 믿고, 다 맡길 인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를 위해서도 맡겨야 되겠고, 이것은 맡기는 것이 서로 좋겠다’ 싶을 때에는, 그건 그 면으로 하나이기 떄문에 맡기는 겁니다. 그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니까! 아무리 부부라도 ‘이건 맡겨서 곤란하겠다. 저 사람이 맡을 실력이 없다.’ 싶을 때는, 맡겨도 안 되고, 맡아도 아니됩니다. 저는 저를 믿습니까? 제 기억은 제가 못 믿습니다. 그래서 자꾸 메모하는 겁니다. 친구끼리 돈 주고 받을 때, 떼어 먹을까 싶어서 적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까운 친구인데, 돈을 빌려줬는데 나중에 갚았는데, 이상하게 빌려준 쪽에서는 ‘그때 받았던가?’ 그러고 나면, 안 받은 듯합니다.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나면, ‘그렇지. 안 받았지. 친구라도, 이건 받을건 받아야지.’ 이렇게 심리가 바뀝니다. 또, 돈 빌려 간 사람은, 안 줬는데 ‘줬던가?’ 이게 욕심이라는 놈이, 슬쩍 이렇게 찌릅니다. 그러면, 양심은 한발 뒤로 빠져 주고, 그 다음 욕심이 두 번째, ‘줬지 아마? 줬을걸?’ 그러면, 내 마음 속의 온갖 심리가 회의를 해가지고, 준 것으로 만장일치 통과하고 이제 줬다고 그럽니다. 서로 친한 친구, 둘도 없는 가족인데도, 돈 주고 받았다가 나중에 ‘줬니, 안 줬니’ 그래 가지고 지금 제가 지금 한 몇 백건 당하고 있는 꼴 보고 계시지요? 둘도 없는 가깝고, 평생에 30년, 저를 위해서 수고한 사람이 ‘내놔!’ 그러는데, 그때 지장을 받아놨더라면, 그 소리를 안했을 것인데. 저도 저를 못 믿습니다. 제 기억은! 저도 저를 못 믿습니다. 내일의 나는! 하물며, 남의 것을 맡다니요? 하나님인가요? 무한하신 하나님은 무한히 맡아 무한히 줄 수 있지만은, 우리는 유한입니다. 기억도 유한입니다. 자기 중심이라, 기억도 뒤집어버립니다. 그래서, 믿고 살고, 일하기 위해서 살고, 신앙 생활 중심으로 살지만은, ‘이것은 뒤에 기억에 문제가 생기면, 돈보다 더 큰 의가 상하겠다’ 싶은 것은, 메모해놓는 것이 좋은 겁니다. 서로가, 자신을 못 믿으니까. 자기를 단속하기 위해서. 어떤 경우는, 중요해서 확인서 도장까지 받아 놔도, ‘안 적었는데요?’ 그러고 대듭니다. 어떡합니까? 싸워 이길 것 같으면 싸워 이기지만은, 싸워 못 이길 것 같으면, 받아놓고도 여기에서 그만,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있는 겁니다. 남의 것, 함부로 맡는 것 아닙니다! 내 것은 맡습니다. “전당 잡지 말아라” 받지 말아야 할 보증물을 받지 말아라. “강도질 하지 말아라” 강도질 하지 말아라, 주인이 아는데 가져?

Comments

교인 2020.06.09 17:04
주인이 아는데 가져오면 도둑이라 그럽니다. 아, 다시, 주인이 모를 때 가져가면 도적이라고 그럽니다. 주님 눈 알고 가져가는 도둑은, 도둑이라고 그러지 않고, 강도라고 그럽니다. 무슨 말씀 드릴런지 아실란가요? 모르고 가져가면, 도둑놈입니다. 옆집에서 훔쳐 가는 것은, 대개는 도둑놈입니다. 주인 알고, 보는데서 가져가면, 그것은 ‘강도’입니다. 강도가 누구지요? 자식 놈들이 제일 센 강도놈들이지. 여자 인생 다 들고 가는 남자가 강도지. 남자의 인생 다 들어 먹은 여자가, 요즘은 다 날강도들이지. 알고도 당하는 겁니다. 어떡합니까? 가정을 유지해야 되다 보니까. “강도질 아니 된다!” 뉴스에 나오는 그 칼 강도, 권총 강도 말하는 거 아닙니다. 그것도 당연하고. 그런 죄는 ‘속죄제’에서 해결해야 됩니다. 교인끼리, 가족끼리, 부부끼리, 친구끼리, 동지끼리, 제일 가까운 쪽이, 알고 보면 ‘도둑’이 아니라, ‘강도’가 되는 수가 참 많다. 강도 되지 않기가 참 어렵습니다. “늑봉”이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일반적으로 뺏은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갈취’입니다. 잃은 물건을 주워 놓고, 모든 것은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맡긴게 있는데, 이 사람에게 맡긴게 있고, 저 사람에게 맡긴 다른 시간이 있고, 저 사람에게 맡긴, 그 사람의 해야 될 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잃은 것인 줄 알면서 챙기면, 곤란해집니다. 여기까지만 일단, 시간 때문에 그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몇 가지만 살폈습니다. 큰 죄, ‘속죄제’는 어떤 죄, 어떤 죄라고 적지 않았습니다. 적을 것도 없는 죄! 모든 사람이 아는 죄! 나중에, ‘몰랐습니다’ 해도, 아니되는 큰 계명의 죄는 속죄제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속죄제를 해결하는 방법만 있고, 구체적으로 어느 죄, 어느 죄라고 적지를 않았습니다. 속건제는, 알면서도 당하고, 알면서도 또 실수하고, 죽는 날까지 씻고, 씻고, 씻어야 되는 이런 생활 속의 사소한 죄들인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딱 딱 찍어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랬습니다.

금번 전체적으로 교재가, 학생들이 진도가 안 나가니까 좀 집중에 어렵다고, 5월에 설문이 많이 들어와 가지고, 이번에는 5월은 조금 깊이 나가느라고 ‘반복’이 있고, 진도가 좀 덜 나갔다면. 이번에는, 진도가 조금 빨리 나가느라고, 너무 가벼운 듯 하지만은, 이 교재로 각 교회에서 필요한 부분들은, 얼마든지 다시 깊이 살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하시고. 그리고, 오늘 우선 들어온 설문 간단하게 두 가지입니다. 여기 앞자리 앉는 쪽은 다 학생들인 데, 밤에는 지금 숙소별로, 학생 선생님별로, 복습 때문에 다른데서 지금 재독을 합니다. 그런데, 오전 오후에는 자리가 너무 좁아서, 순서 때문에 모두들 교회별로 항의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교회 별로 의논하셔서, 앉는대로 앉으시고, 그 다음 문제가 생기면, 목회자를 통해서 조절을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오늘 오후의 연보는 현금 1619만원, 약속 259만원, 총 18,783,600원이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10번째 시간, 속건제. 알아도 알며 당하고, 조심한다고 했는데, 또 돌아보며 그만 안할 말, 그만 안할 확신, 그만 손대서는 안되는 것을 닿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수도관이 막히는 것처럼 큰 문제이니까, 속죄제는 목숨 걸고 싸우듯이 이렇게 지키고 해결을 해야 되고, 속건제는 시시해보이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또 쓸고, 또 쓸고, 그러다 보면 생활이 깨끗해지고, 신앙이 깨끗해지면, 깨끗해지는만큼, 위에서 부어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초타 : khr
교인 2020.06.0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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