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19.8.8 창29:18 하나님께 충성할 야곱이 세상을 향한 문제, 세상 어느 것도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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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새19.8.8 창29:18 하나님께 충성할 야곱이 세상을 향한 문제, 세상 어느 것도 마음에

교인 1 280 2020.06.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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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8 목새 (5대 제사 집회 11)

제목 : 하나님께 충성할 야곱이 세상을 향한 문제, 세상 어느 것도 마음에 

본문 : 창세기 29장 18절 -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춘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면면이 부족한 저들을, 오늘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지식과, 실행과, 인격의 변화로, 천국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가르치며, 길러 가시며, 거쳐 가기 위하여, 이곳을 주시고, 이 기회를 허락하시되, 새 출발의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통해, 매 순간, 매일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를 알려 주시고, 출발한 우리가 홀로이 독행하지 않도록,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는, 조각목으로 된 성막을 만들고, 모든 금과 은과 보석을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불변의 우리를 만들어 주시고, 금번 올해 이스라엘의 생활법을 통하여, 실제 살아가는 실행 속에, 자원함으로 하나님과의 연결의 생명과, 주신 모든 기능이 상해되지 않도록, 또 모든 주신 은혜와 자본이 바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나 하나 손꼽아, 우리를 한 걸음씩 인도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주로 출발하고, 주로 동행하고, 주로 더불어 사는 어떤 현실, 어떤 세상 속에서도, 하늘을 향한 변치 않는 이런 저희들, 내면까지 그리 되어 있는지, 레위기 다섯 장의 제사를 통해, 주님 먼저 죽음으로 우리 위하여 다 바치셨고, 인성을 완전히 부인한 소제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것을,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화목케 하시고,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가 향하는 모든 현실의 어떤 사람과 만물에게까지,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가 넘칠 수 있는 영생의 화목, 영원한 교회의 완전함을 향하게 하시고, 이 일에 우리 심심 안에 막힌 곳, 어지러워진 것을 낱낱이 정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셨으니, 주님. 여기서 살펴본 모든 말씀이, 우리의 생활 속에 그대로 진행이 될는지, 해 봐야 알겠고, 하면서 느낄 것이며, 또 실행함으로 더 필요하고 더 알아야 될 말씀으로, 한 걸음 배우고, 한 걸음 실행하며, 앞을 향하여 나가는 여기 우리 주일학생 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설 날이 가까운 노년의 종들의 마지막이 되게 하시고, 요양 중, 병환 중, 수술 후, 또는 해외와 출타와 여러 형편에 두신 우리 모든 이들에게, 소망 속에 늘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생활이 되어지도록, 이 아침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에, 야곱을 앞세우며, 요셉을 살펴, 우리가 야곱의 실수하지 않도록, 요셉의 충성된 걸음이 되도록, 밝혀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깨어, 따라가는 이 시간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5대 제사를 살펴 봤습니다. ‘헌신’, 몸 바쳐 자신을 다 바치는 충성의 생활을 번제라고 그럽니다. 야곱은, 평생에 어디에 자신을 다 바쳤던가?

여기, 야곱은 라헬을 연애함으로 7년을 봉사했고, 그 다음 외삼촌 라반이 라헬에 붙들려 있는 야곱에게 7년을 더 일 시키기 위해서, 레아를 먼저 줌으로, 14년을 야곱으로부터 수고를 받았습니다. 야곱의 7년은, 라헬 7년, 레아 7년, 14년을 지내, 그 다음에 6년 나머지를 채운 야곱의 실적을 보니까, 외삼촌 라반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댔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도망 오던 첫 날, 야곱을 보니까, 용맹하지요. 지혜롭지요. 결단력이 있지요. 데리고 있어 보니까, 이건 돈 덩어리, 돈다발입니다. 그래서, 말로는 조카이지만은, 속으로 장사꾼의 계산을 해보니, 이건 돈 덩어리라. 그런데 라헬에게 빠져 있으니까, 라헬을 이름 걸고 7년, 레아를 바꿔놓고, 또 7년. 14년. 14년의 수고를, “라반에게” 여기 “봉사 하였더라” 무료로 수고를 하고, 뒤에 6년 자기를 위해서 일했는데, 그 6년 일한 것이, 라반, 고향의 모든 재산 14년 일한 것을 넘어섭니다. 그 라반이 지혜로운 사람이라, ‘야곱은 붙들면, 이건 뭐 말도 못하는 돈이라!’ 그렇게 붙든 겁니다. 외삼촌은 야곱을 보기를 돈으로 봤고, 그 다음 야곱은 외삼촌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라헬을 사랑하여 7년 수고가 수일처럼 지나가더라” 전적 헌신 했으니까, 야곱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 때문에, 형에게 쫓기는 몸이 되고, 망명까지 했지만은, 정작 20년을 헌신하는 이 충성을 보니까, 땅의 것을 향했습니다. 번제가 잘못된 겁니다. 주님 원하시는, 주님 소원에 전적 다 기울여야 되는데, 라헬 때문에, 라헬과 가져진 가정 때문에, 야곱의 모든 헌신은 ‘어떻게 하면 외삼촌에게서 라헬을 붙들어내고, 라헬 때문에 가진 이 가정, 이 아이들을 건설하고, 이들을 위해서 자기 세상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어버렸습니다. 헌신, 충성. 야곱의 번제의 생활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까 자기를 위한 ‘자기 헌신’이었습니다.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다녀도 돈 때문에 다니지, 마음 속에 ‘자기 부정’ 전념하기는 어려운데, 여기 “라헬을 위하여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처럼 여겼더라” 하는 것을 보니까, 라헬을 위한 헌신의 내면을 보니까, 이건 원하고 원하고 원함으로, 철저하게 ‘자기 부정’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는 자기를 다 부인해도, 이 땅 위에 사업이든, 사랑이든, 명예든, 국가든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자기 속의 내면을 다 내놓고 할 일은, 믿는 사람에게는 없어야 되는데. 믿음의 조상, 이스라엘 12지파를 건설한 이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은 속을 다 내놨고, 다 부인했고, 오로지 라헬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라헬을 위한 7년, 7년. 나머지 6년도 라헬을, 또 그 아이를 위하여, 좋은 가정을 위하여 노력했으니, 헌신했고, 그 헌신하는 모든 것이, 마지못해서 나, 결혼을 하고 보니까, 할 수 없이 의무와 책임 때문에가 아니라, 진정 좋아서, 자기 속을 다 털털 털어버렸습니다. 완전한 야곱 자기의 부정.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번제와 하나님 앞에 자기 부정의 소제가 이게 귀한 것인데, 사랑의 라헬을 위한 전적 봉사, 완전 자기를 다 부정하고, 자기를 없애버리는 이런 마음이,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야곱은 없습니다. 이삭도 없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벧엘의 약속도 없고. 외부의 충성, 내부의 철저한 자기 부정, 번제 소제를 하나님이 아니라, 라헬로 돌려버렸습니다. 세상에 목표한 자기 전문직의 목표를 위하여, 자기의 성취를 위한, 사회적인 성공을 위하여, 심지어, 자기 취미 생활을 위하여, 사랑이든, 가족이든, 그 어떤 것을 위한 우리의 수고나, 자기 부인도, 하나님 때문에 그리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과는 끊어져 버렸고, 두고 갈 땅 위에, 하나의 이렇게 헌신과, 자기부정의 철저히 이루어져 버렸고. 그리되니, 외삼촌 좋아하지, 아내 좋아하지, 아이들 좋아하지. 주변이 부러워 하는데, 여기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다 보니까, 번제와 소제와 충성과 자기 부정에 다 쏟는 생활이 진행이 되다 보니까, 처음은 외삼촌이 좋았는데, 20년쯤 되어 이 장사꾼 외삼촌이 계산을 해 보니까, 옛날에는 처자식이 소유처럼, 자기 재산처럼 그랬는데, 딸 줘서, 야곱의 지혜와 돈벌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야곱에게 아이들 다 줬지, 자기 재산 다 넘어갔지, 마지막에 결산을 해 보니까, 이게 손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과 외사촌들이, 야곱, 이것이 하나 굴러와서, 박힌 돌을 빼 내고 전부 자기가 다 가진 걸 보니까, 이제 배가 아프고 시기가 나니까, 죽이려고 기회를 찾습니다. 결국은 세상을 향한 충성과, 세상을 향한 자기 희생은, 해 봐야 마지막에는 분쟁이지. 그게 화목으로 돌아오지는 아니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속에서 낳은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야곱의 실패는, 요셉에 의하여 그대로 반대가 되어집니다. 첫 번째, 요셉은, 억울하게 팔려갔는데, 노예로 팔려간 그 요셉이, 열 형을 원망하려면 한도 없을 것이고, 형 열에게 속아, 자기를 잊어버린 아버지가 섭섭하려면 한도 없을터인데, 팔려간 보디발 집에, 남의 나라, 남의 주인, 여기에 일하는 것은 손해니까, 매 맞지 않을 정도로, 밥 얻어먹고 살만큼 해야지. 거기서 잘해봐야, 누구 것 됩니까? 주인 것 되지. 그런데, 보디발 집에 충성이, 얼마나 충성을 했던지? 보디발은, 애굽의 바로 왕의 목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금 평양으로 말하면, 평양에 김 씨의 목을 지키는 사람보다, 더 실력있고 더 충성스러운 사람은 없을 거 아닙니까? 애굽의 바로왕이, 고대 사회의 황제인데, 죽지만 않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그 바로왕이, 자기의 목을 맡긴게, 보디발 대장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눈치있지, 충직하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인데, 보디발이 “먹는 음식과 아내 외에는” 모든 것을 다 맡겨버렸습니다. ‘내가 관리하는 것보다는, 네가 관리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더 낫다.’ 이게 요셉의 ‘헌신’을 말합니다. 요셉은 팔려 간 그 상황! 고향이 아니라, 자기 사업이 아니라, 원수의 보디발 밑에, 노예 생활하는 이 억울함에도, 인간적으로는 노예라 억울하지만은, 이렇게 형편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 번제의 충성과 헌신을, 눈 앞에 있는 보디발에게 다 바쳤습니다. 원수 보디발이 요셉에게 다 맡긴 것을 보니까, 또 하나님이 위에서 주는 복을 보니까, 하나님 앞에 충성이었고, 보디발이 봐도 충성이었고, 요셉의 생활은 팔려간 노예 생활이었지만은, 하나님과 만 인간 앞에, ‘요셉은 충성, 헌신의 사람이다.’ 이렇게 인정이 되어졌습니다. 오늘 어떤 회사를 다니시던, 어떤 가정 생활을 하던, 어떤 환경이 되든, 형에게 팔려가, 팔려 먹고, 노예 생활 하는 요셉의 직장과 형편보다는, 우리가 더 나을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현실이니, 하나님 때문에 구약의 번제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다 바치는 그 충성을, 보디발에게 다 바쳤습니다. 그럼, 보디발보다는 우리 남편들이 더 낫지 않을까요? 보디발과 요셉의 신세보다는, 아내가 그래도 더 낫지 않을까요? 어떤 착취한다는 직장이라도, 보디발 집에 간 요셉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 요셉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그 환경에 충성할 때, 보디빌도 인정하고, 하나님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직장의 윗 사람이 이러니, 형편이 이러니, 가정이 이러니, 나라가 이러니’ 분석은 하고, 참고는 하고, 연구는 해도.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번제에 충성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있는 힘 다하여, 소처럼 무언의 충성으로. 양처럼 그 어떤 것이든지 죄 되지 않으면,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맞고. 보디발 집에 충성하는 요셉이, 자기 속에 억울한게 나올 때는 염소라, 꺽어버리며, 그렇게 번제 생활을 했고. 그 다음, 보디발 아내가 유혹하다가, 안되니까. ‘당했다’ 뒤집어 씌워버렸습니다. 충성은 했으나, 이렇게 억울할 때는. ‘아니, 주인을 위하여 노예가 아니라, 종업원이 아니라, 그 집 아들 이상의 충성을 다 했는데, 나를 이렇게 내치다니? 뒤집어씌우다니?’ 요셉 속에 자기라는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으면, 응어리가 있고, 억울함이 있고, 분함이 있고, 섭섭함이 알갱이로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저 사모님 짓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그냥 밝혀 버렸을 것인데, 주님에 대한 충성의 마음씨까지. 하나님이 주신 주인이 원한다면, 이 가정을 위해서는 하나님 때문에는 억울하다 말 하나도 하지 않고, 자기를 다 갈아 고운 가루가 되어, 보디발 아내가 뒤집어 씌운, 이 죽을 위기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요셉은 자기 입장 하나도, 내 놓지를 않았습니다. 생명이 달린 경각인데. 왜? 17세에 팔려 오기 전, 소년 시절에, 두 번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두 번의 하늘의 계획을 먼저 계시로 보여주셨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한 번이라도 되지만은, 두 번이라는 것은 의심 많아 요동할 요셉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두 번을 못을 박았습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까지, 네 모든 형들까지 엎드려, 경배할 네가 되어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믿음의 계통의,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고, 출발인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 야곱이, 형들과 함께 땅에 엎드려 절하게 될! 이런 하나님의 계시의, 구원의 목적. 완전의 목적,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온전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 목적 때문에, 이 목적에는 틀림없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게 있기 때문에, 보디발의 형편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주셨다. 눈 앞에서는 팔아먹은 형 열이 밉고, 삣고 편애함으로 이런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가 섭섭하고, 또 사 갔다고 노예라고 부려먹는 보디발 주인이 원망스럽지만은. 거기다대고 죄를 뒤집어 씌운, 그 아내가 한량없이 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인간과의 관계이지만은, 인간 위의 인간, 부모 위의 인간, 형들 위의 인간, 보디발과 그 아내 위에,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는 일에, 한 계단, 계단일 것이라’ 하나님 때문에 헌신했고, 위기 가운데, 100% 자기를 소제로, 부인함으로, 아내의 모함에, 어떤 원망도, 섭섭함도 없이, 그냥 입 닫고, 처분대로 감옥에 가버렸습니다. 그동안의 충성은 번제, 그 순간에 보니까 마지막에 요셉은 보디발 앞에 자기를 완전히 갈아, 소제로 충성을 했습니다. 보디발이 다 알고 있습니다. 몰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 되니까, 바로 왕의 목을 지키는 겁니다. 칼만 쓰는 우직한 군인에게 맡겼다가는, 왕이 제 목숨을 못 지킵니다. 지혜로운데, 칼이 없으면 힘이 없어 못 지킵니다. 지식과 힘을 함께 갖춘 보디발이기 때문에 ‘시위대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을 벌써 겪어봤기 때문에, 아내의 잘못인 줄 알지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요셉을, 아무 소리 않고, 정말 죄가 있었으면 죽여 버렸겠지요. 아니기 때문에, 감옥에 보내버렸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충성과 자기 부정을, 보이는 보디발 앞에 충성하고, 자기 부인을 했기 때문에, 보디발도 속으로는 압니다. 하나님은 두말할 것 없이, 지켜보며, 목표를 향해서 길러갔고. 그 다음, 요셉이 ‘자기 부인’을 다 한 줄 알았습니다. 충성은 했는데, 어디까지 충성이냐? 교도소 소장이, 죄수로 들어온 요셉에게 교도소를 다 맡기는 걸 보니까, 요셉의 충성과 자기 부정은 100점인 줄 알았는데, 떡 맡은 관원장, 술 맡은 관원장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위하여 바로 왕에게 보고 할 말을 보고하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 그 나가는 술 맡은 관장에게, 요셉이 ‘청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확정이 되었는데, 두 번의 계시에 의하여, 마지막까지 끝까지 기다렸으면, 100% 자기 부정이 되었을 터인데, 마지막 순간에 기다리지를 못하여, 나가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내 사연, 내 형편을 부탁을 했습니다. 그때 나왔더라면, 살아서 부모에게는 돌아가겠지만은, 아버지에게로는 돌아가겠지만은, 하나님의 목적은 야곱의 품 속에 응석받이로 잘 살다가 죽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이 땅 위를 하나님 대신에 통치할 만왕의 왕, 구주가 되고. 이 땅에서 해결한 이 열쇠로, 영생의 하늘이 열리는, 하늘의 영원한 요셉을 만드는 것이, 이게 하나님의 목표인데. 고향 땅 돌아가는, 땅 위의 이것이, 이것으로 끝날 뻔 했습니다. 남아 있는 작은 의심, 작은 미진한 것까지도 완전히 갈아 엎었을때, 그 다음 총리가 되어, 보디발은 적지 않았습니다. 적을 필요가 없지요. 왕이, 요셉을 아버지처럼 모셨으니, 원수의 나라, 세상 나라와도 화목. 화목은, 어떤 화목이냐? 신앙을 내준 화목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든 충성의, 요셉을 아버지처럼 모시는 애굽으로 만들어버렸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요셉이, 고향에 있는 아버지 야곱의 약점, 단점, 잘못된 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어가는 야곱인데,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족 단위였고, 야곱이 되면, 이제 국가를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 영생의 나라의 12기둥과 제대로 된 모든 것을 갖출 야곱인데, 이 야곱 안에는 라헬 하나 밖에 없었는데, 이 라헬에 대한 번제와 소제적인 충성과 애정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이게 아버지를 살리고, 아버지는 뿌리인데, 아버지 뿌리가 바로 되어야, 요셉도 바로 되기 때문에. 총리가 된 다음, 아버지를 고치려고, 어머니 라헬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던 이 야곱에게 ‘하나님만 하나님이지! 어머니 라헬은 하나님이 아니라!’ 순서가 잘못된 것을, 쫓겨간, 팔려간 없어진 요셉이, 애굽 땅에서 기도하고, 계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을 통해서, 고향에 있는 130살에 이르는 이 나이에, 세 살 버릇 팔십을 간다는데 130년 굳어진 아버지를 고친다는게 이게, 하나님과 진리로 가능하지, 요셉의 꾀로, 충성으로, 요셉의 이런 저런 기술로 아버지를 바꾼다고, 그게 바꿔지겠습니까? 80세 할아버지의 세 살 손주를 못 바꾸는데, 세 살 손주가 80된 할아버지의 사상과 인생을 바꾼다? 130살이 된 야곱은, 원래 꾀쟁이 야곱입니다. 어떤 인간도 다 속이고, 자기 원하는 목표를 다 이루는, 이 야곱의 130년을 뒤집어 회개키셔, 라헬을 향한 130살의 야곱에게, 라헬을 빼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넣어,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번제에 아버지가 되고, 완전히 130에 굳어진 악성과 악습을 갈아 엎어, 소제의 자기 부인하는 야곱을 만들고. 이게, 요셉이 나이 30살이 넘어가면서부터 계산해서, 결국은 돌려놓는 과정입니다.

여기, 이 모든 과정을 살피기 위해서, 교재 88페이지를 보시겠습니다. 야곱은 이삭이 60살에 낳아놓은 아이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 하나만 생각하다가, 하란으로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게 되었을 때, 야곱의 나이가 약 71세 입니다. 청년이 아닙니다. 요셉이 출생한 것이 91세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 다음 요셉이 애굽으로 갈 때, 야곱의 나이가 벌써 108세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17세에 팔려 갔다가, 총리가 될 때 30인데, 그때가 121살이 되어집니다. 야곱의 나이. 그리고, 요셉이 불러, 야곱으로,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바로 왕에게 설 때, ‘내 나그네 인생이 130년이니이다.’ 130살이었고, 그리고, 17년 바로 사고, 147살에 야곱이 죽습니다. 맨 밑입니다. “도망갈 때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난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가나안에 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준 가나안 땅,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는, 이 땅 위에서 가나안은 하늘을 준비하고 만드는 곳이고, 야곱이 도망간 외삼촌 집 하란은, 이방입니다. 세상 나라입니다. 일이 있어서 출근은 하지만은, 직장은 하란입니다. 심지어 결혼 생활을 해도, 부부와 결혼 생활도 하란입니다. 학생 공부하러 가는 것도, 하란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도, 우리에게는 하늘을 준비하는 가나안은 아닙니다. 임시 피난 생활하는 하란 땅이지.

89페이지입니다. 하란에 가서, 외삼촌 집에 가고보니까, 우리도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이었지요? 야곱을 낳은 리브가 어머니의 고향이 ‘하란’입니다. 또, 원래 이삭이, 아버지 이삭이, 아브라함 시절, 하란을 거쳐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이라는 것은 나그네 생활을 했다가, 출애굽을 한 애굽이듯이, 여기 야곱이 찾아간 하란이라는 곳은, 아버지의 고향, 어머니의 고향. 우리가 믿기 전 세상입니다. 오늘도 믿어, 내게 골짝에 예배를 드리고 있으나, 우리가 돌아갈 우리의 가정들, 우리의 직장, 우리의 학교, 우리의 사회, 이 땅, 이 사회 생활 전부는, 믿는 우리에게는 믿기 전, 지금도 늘 하란 땅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다보니까 주어진 세상 현실이지, 자기 직장, 자기 가정, 자기 생애라는 것은 영생으로 살아갈 하늘나라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란으로 갔고, 그 하란에서 라헬을 만났습니다. 89페이지 제일 위에, “야곱이 라헬을 연애함으로” 모두들 ‘직장이 어렵다. 어렵다. 하늘의 별 따기라’ 그러는데,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을 잡아 버렸습니다. 직장을 연애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까? 나이가 되어 결혼하게 하면 결혼하는 것이고, 하나님 때문에! 여자가 좋아 사랑함으로 결혼은 하지만은, 하나님 그런 애정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결혼을 해야 되기 때문에, 결혼하여 사랑함으로, 자기가 있는 힘껏 가족을 책임은 지지만은, 어디가지나 뿌리와 원인은 하나님 때문이라야 되는데! 가다 보니까 외삼촌 집, 여기 하란이고. 또 하나님이 주신 결혼이 라헬과 추진이 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이쁘니까 결혼했고, 마음에 드니까 붙들었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인데, 아예 속이 하나님 대신에, 라헬이 대신 들이 차고 앉아버렸습니다.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직장도 잡고, 학교도 가야 되는데, 그렇게 소원하던 학교, 합격증을 잡아버렸을 때에, ‘이런 좋은 학교를 잡았으니, 하나님이 또 하시는 일이 있는가보다.’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그 학교 공부를 해야 되는데, 그 학교가 너무 좋은 학교고, 마음에 목표하던 학교가 되다보니까, 합격증을 쥐는 순간, 하나님과 학교를 바꿔 버렸습니다. 라헬이 너무 예쁘고, 애정이 쏟아지다 보니까, 하나님 때문에 왔고, 하나님의 복 때문에 결혼을 해야 될 사람이, 라헬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혀버렸고,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서 쫓겨나버렸습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은 좋은 직장이 눈 앞에 닥쳤고, 합격증을 잡았을 때, 하나님과 그 직장을 바꾸기 쉽고, 좋은 학교와 바꾸기 쉽고, 10년, 20년 모아 목표한 아파트를 사는 날, 아파트가 하나님 자리에 들어 앉아 버리고,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밀려나기 좋을 수 있습니다. ‘죽어도 엄마 밖에 없다’는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더니만은, 엄마는 자기 자리에서 내려앉고, 결혼한 아이를, 여자를, 남자를 자리에 앉혀 버리듯이, 주인이 바뀌어버렸습니다. 1등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제일은 하나님! 중심은 하나님! 최고는 하나님! 하나님이 전부고, 전부인 하나님 때문에 직장도 있고, 결혼도 있고, 학교도 있고, 생활도 있어야 되는데. 일반적인 생활이 아니라, 너무 목표했고, 너무 바라보던 목표가 달성이 되다보니까, 라헬을 하나님 자리, 제 1의 자리, 전부의 자리, 중심에 앉혔고. 그러다 보니까, 야곱의 중심인 하나님은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 나버렸습니다. 1등이 아니라, 하나님은 2등이 되었고. 요셉 뒤에 3등이 되었고, 슬금슬금 밀려가더니만은,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 중심에서 몇 등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야곱이라 라헬을 연애함으로” 내가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 뭐라고요? 여기 7년 뭐라고요? “봉사하리라” 댓가 없이, 헌신 하리라. 이것은 번제입니다. 세상에 자원봉사를 가도, 주의 인도, ‘주님 때문에, 이런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자원봉사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해서, 봉사는 할 수 있습니다. 속은 하나님께 봉사, 충성이고. 겉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라는 외면, 행동도 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속으로 들어가면, 1등도 하나님, 전부도 하나님, 중심도 하나님인데. 하나님 때문에 봉사도 하고, 돈도 벌고, 이러고 저러고 해야 되는데, 라헬을 보는 순간! 하나님은 밀려 갔고, 라헬이 야곱 속에 1등이 되었고, 중심이 되었고,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야곱의 종교는, 라헬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있는 청년들, 직장이 옛날에는 흔했습니다. 모두가 욕을 하던, 독재, 미개했던 때는, 왠만한 직장은 왠만한 사람은 다 들어갔었습니다. 민주화니, 뭐니 실컷 몇 십년 떠들고 보니까, 옛날에 평범한 직장이 요즘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습니다. ‘저 직장만 들어간다면!’ 그러다 보니까, 어느 날 그 직장을 들어가는 순간, 직장은 1등이 되고, 하나님은 2등이 되고. 이게 1년, 5년, 10년 가다 보니까, 그 직장은 계속 1등이 되고, 하나님은 3등, 5등, 10등으로 밀려가버립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이쁜 아이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마음 속에 계획한, 자기 성취, 자기 인생의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이건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을 준비하는 하나의 사닥다리가 되고, 밟고 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되는데, 종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종으로 밀려가는 이 모습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연애함으로, 외삼촌에게 칠년” 칠년? 7이 나오면 무슨 숫자이지요? 하나님 앞에 바칠 완전히 숫자를, ‘라헬을 위하여 봉사하리이다.’ 이건 보니까, 번제의 충성의 헌신이, 하나님을 향한 방법의 라헬이 아니라, 라헬을 위한  야곱이 되어버렸고, 하나님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라헬이 중심된 모습을, 경험 있는, 장사꾼 라반이 눈치 채고, ‘둘째를 더 좋아하는데 첫째를 집어넣으면, 둘째 때문에 7년을 이것이 더 봉사 하겠구나!’ 7년이란, 하나님의 완전 수인데, 하나님께 바칠 그 모든 기간을 한 번도 아니고, 라헬을 위해서는 두 번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다 바치고, 또 다 바치고, 또 죽고, 또 죽어야 되는 이런 중심의 우리가, 라헬을 위해서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인생을, 또 인생을! 정몽주라고 하던가요? 그 충신, 고려 충신. ‘임금님을 위하여, 이 몸은 일백번 고쳐 죽어도 변치 않겠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100번 태어나, 100번 죽어도, 101번 또 하나님이다!’ 그 노래를 부르지만은, 뭔 세상에 임금을 위해서 일백 번이나 고쳐 죽겠다고? 불신자, 자기 나라 등신 같은 왕을 향해서도, 충신이라면 ‘일백 번 다시 죽어도, 백 한번째 또 충성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데, 열 몇 살에 나쁜 짓 하고 도망간 이몽룡이 그 나쁜 놈, 여자는 꼬셔서 남의 인생을 망치고, 서울로 도망간 그 놈을 향해서도, 열 몇 살 춘향이, 죽어가면서도 변치 않겠다는 이게 불신자들의 ‘정절의 충성’입니다. 임금을 향한 충성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그런대다고, 죽고, 또 죽고, 또 죽는 이런 불변의 ‘사랑’과 ‘헌신’을 바치지만은, 믿는 사람은 믿고 보니까, 주님을 위해서는 죽고 또 죽고, ‘10번 주시면, 생명을 10번 바치겠나이다’ 이게 해당이 되지만은, 이 땅 위에 두고 갈 사랑을 위하여, 직장을 위하여, 자기 인생 목표를 위해서는, 주님 위한 신앙생활에 벌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믿는 사람은 세상과 다른 데를 향해서는, 그러는 것이 아닌데. 이 지금 야곱은 라헬을 위해서는 7년의, 29장 27절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7년을 봉사하였더라” 죽고 또 죽어, 라헬 밖에 없는 이런 땅 위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나이 때문에 포기했을 것이고, 지난날 생각하면 그런 목표가 다 있었겠지요? 여기 우리 청년, 학생들 ‘저것만 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그 목표는, 어느날 라헬처럼 자기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밀어냅니다. 마음에 소원하던 그 목표도 이루시고, 기도도 하시되, 끝까지 이것은 내가 쓸 재료며, 이용물이지. 그게 내 속에 중심이 되고, 전부가 되면 안됩니다! 부모도 자기 속의 전부가 되면 안되고, 자녀도 부모 속에 전부는 되면 안되고, 남편도 아내가 자기의 전부가 되면 안 되고, 아내도 그 어떤 남편이라도, 잘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밀어내고, 중심 되고, 전부 되고, 일등에 올려놓으면, 제 1계명을 어기는 겁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다른 중심이 되면 ‘악’이 되어버립니다. 믿는 사람은 골 백번 죽어도, 하나님이 1등이며, 전부며, 중심이고. 하나님 때문에 목숨 바칠 부모를 위하여, 목숨도 바칠 수 있고, 아내를 위하여 목숨도 바칠 수 있고, 자녀를 위하여 평생을 갈아엎을 수도 있지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때문에라는 이 주권, 이 원인, 이 목표는 변치 않아야 되는데. 야곱이 하나님을 향하여 목숨을 걸었다가, 라헬을 보는 순간, 이 라헬이라는 땅 위의 목표, 땅 위의 애정, 땅 위에 좋아 보이는데 그만 7년, 7년, 두 번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라헬이, 어느 정도의 라헬이길래 그랬을까?’ 뭐 요즘 말로 말을 하면, 쉽게 말을 하면, ‘삼성전자 정도면, 요즘 10대, 20대들에게는 라헬 정도 되지 않을까?’, 9급 공무원이 아니라, 7급 공무원 정도 된다면, 요즘 청년들에게는 뭐라도 다 걸 수 있지 않을까요? 행정고시 5급은 너무 어려우니까 놔두고, 9급은 우리 주변에 한 두 사람 들어가니까, 그것도 놔두고, 7급 공무원, 시청 계장 자리가 되는 7급 공무원을, 스물 다섯, 스물 일곱 살에 쥘 수 있다면, 요즘 대학생들, 청년들에게는 이것을 위해서는 20년 공부할 수 있고, 이걸 위해서는 부모와 원수 될 수도 있고, 이걸 위해서는 친구의 우정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 해외 사업 특판부에 팀장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면? 7급 공무원, 재경직 제의가 들어온다면? 내가 마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면? 이 정도가 된다면? 주일정도는 우습고, 뭐 집회 정도야 아예 눈에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종교도 바꿔 줄 수 있지 않을까? 뭐 종교까지 어렵다면, 교단이나 바꿔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정도가 되면, 이미 라헬 절반이 되었는데, 이 라헬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인데,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레아는 안력이 부족했더라.”,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더라” 결혼의 나이가 지나가버렸는데, 곱고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과 바꿔치기가 된 겁니다. 취직을 해야 되는데 취직을 못 하고, 자꾸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 점점 더 이뻐지고, 더 고와집니다. 먹어야 되는데 못 먹으면, 음식은 맛있게 되어 있는 겁니다. 맛없는 요리도. 결혼을 해야 되는데, 결혼이 늦어지면, 못난 것도 이쁘게 보이는 겁니다. 취업을 해야 되는데, 나이가 늦어지면 그때는 직장이, 보통 직장이 아니라, 곱고 아리따운 직장으로 자꾸 더 귀하게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속을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이렇게 굶었으니, 음식이 얼마나 맛있겠느냐? 결혼이 늦어졌으니, 얼마나 남자가 그리웠겠느냐? 직장을 잡아야 되는데, 자꾸 시간이 늦어져 이제는 막차를 타야 되나는데, 아슬아슬 하게 되는 순간, 그 직장이 보통 직장이 아니면, 너에게는 그게 하나님 자리를 꿰차고, 대신 들어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젊은 나이에 건강해야 되는데, 의사 선생님이 ‘6개월 이상 살기 어렵습니다.’ 사형선고를 탁 내리면, ‘이 때는 일단 살아남아야 되지 않겠느냐? 생존을 위해서는 절박하다 보면, 하나님과 바꿔치기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흐려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이 든 야곱에게, 절박한데, 객지인데, 라헬이 더 곱고 아리답게 보이므로, “야곱이라 라헬을 연애함으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 봉사하리이다” 그 말하는 순간, ‘야곱, 이 놈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복 때문에 쫓겨왔고, 죽을 뻔했다고 그러더니만은, 너는 내 딸 라헬한테 이미 하나님만큼 바뀌어버렸구나!’ 그것을 라반이 읽으면서, 7년이 아니라, 벌써 14년 계산 다 들어갔습니다. ‘이 정도 미쳤으면, 레아를 집어넣으면, 레아도 이 실력 있는 남자한테 보내고, 목표는 라헬이니까, 칠년을 더할 것이고’ 야곱이 라헬을 향한 그 중심, 마음을 딱 보이는 순간, 장사꾼 라반은, 라헬을 두 번 팔아 먹는 이런 도둑놈 심보, 조카한테대고. 돈 되면, 안 하는 짓 있나요?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백 목사님 생전에 결혼 중매설 때마다, 아버지가 좋다는 결혼은 딸한테다대고 하지 말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왜? 아버지 사업, 아버지 사회생활에 자기 딸을 갖다가 결혼 시키면, 아버지 사업에 유리하고, 아버지 진급에 유리하면, 딸은 전략 결혼, 정략 결혼 할 수 있으니까. 젊은분들 뭔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딸한테, 엄마가 좋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딸 결혼에, 아버지가이 남자 좋다고 소개하는 것은 믿지 말아라. 그 아버지가 사업하고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딸을 결혼 시켜서라도, 자기 사회, 자기 생활에 유리하도록 딸을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딸에 대한 아버지 사랑은, 옛날에 믿지 말라 그랬습니다. 여기 라반이 라헬을 야곱에게 두 번 팔아 먹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이면, 저는 에서에게 맞아 죽을 짓을 해서라도, 이렇게 했습니다.’ 와서 그 말을 하니까, 라반은, ‘그래? 그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 목숨 걸만큼,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은 좋은 거야?’ 그런데, 라헬을 향한 눈치를 보니까, ‘네 놈 속에는 말이 하나님이지, 라헬이 들어 있네? 세상을 향한 야망이 네 속에 들어 있네?’ 그리고 레아를 집어넣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칠년을 더 봉사하리이다’ 번제의 생활도, 소제의 생활도, 그리고 화목까지도 전부 하나님은 빠져버리고, 야곱 속에 이렇게 주인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이제 주제입니다. 제일 밑에, 29장 31절,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여자니까, 인물이 있어야 되고, 남자가 좋아서 따라다녀야 되는 것이 여자의 총인데, 이게 여자의 자랑인데, 레아에게는 야곱이 관심이 없습니다. 야곱은 라헬만 관심 있습니다. 레아는 하나 따라온 덤입니다.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레아에게 장점이 없음을 보시고, 라헬에게 준 장점이 레아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의 하나님, 형평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곱고 아리따운, 남다른 장점을 라헬에게 주셨기 때문에, 라헬에게는 그만큼 다른 것 하나를 빼버립니다. 레아는 남편이 사랑하는 애정을 끌 수 있는, 곱고 아리따움이 없으니까, 아이를 대신 주셨습니다. 돈 많은 부자를 주시면, 무식하든지, 가정에 불화가 있든지 뭔지 하나는 빼버립니다.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삼성의 회장님이 이혼을 하셨다고요? 가정의 행복은 없단 말이지요. 그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부자 아버지 밑에 아들이니, 좋은 집에 태어났지. 어려서 유학 했지. 당대 이쁜, 집안 좋은 아내 만났지, 좋은 아들 낳았지, 사업 잘 되지. 불편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나 뭘 빼 버렸지요? 건강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지금은 침대 신세입니다. 그 어떤 몇으로든지, 하나님은 좋은 것을 많이 주시면, 그 좋은 것만큼 다른 걸 빼고, 하나님은 붙드십니다. 다 가지지를 못 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고, 믿는 우리를 인도해가는 방법입니다. 좋아 보이는게 있으면, 반드시 좋아 보이는 이 면에 좋지 않은 것이 끼어 있는데, 함께 보고, 이건 장점이고, 이건 단점인데, 장단점을 계산해도, 하나님의 인도가 그러니, 장점은 감사하고, 단점은 조심하면 좋은데. 좋은 것만 보고, 좋다고 빠져버리면, 끼워놓은 단점에 반드시 걸려 넘어집니다.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아이를 주셨습니다. 라헬은 남편 사랑이 다 쏟아지니까, 아이를 주지 않아 버렸습니다.

야곱이 평생 아내 노래를 불렀는데,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사랑은 잠깐이고, 이어지는 것은 아이인데, 교재를 넘깁니다. 90페이지. 야곱의 사랑, 야곱의 관심이 없던 레아에게 준 아들을 보십시다. 첫 번째 아들이 누구지요? 자, 잠도 계시고, 크게. 첫 번째 아들이요? 르우벤입니다. 르우벤 이름이 보통 르우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1번, 장남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어떤 실력으로도 바꾸지 못합니다. 학교 1등은, 공부하면 뺏을 수 있는데, 태어나는 장 남은 돈 많다고 빼앗아지는 것이 아니고, 뇌물을 쓴다고 이게 뒤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12기둥,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첫 돌이, 르우벤입니다. 레아에게 주셨나요? 라헬에게 주셨나요? 레아에게 줬습니다. 이게 장점이고, 이게 강점이고, 이게 훌륭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 하나를 빼 버립니다. 야곱 속에 하나님이 라헬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인생을 다 바친 라헬이 되었습니다. 여자로서는 뭐,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대신에, 아들에 대한 장점은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남편의 사랑에 2등이 되었는데, 그 대신 르우벤을 챙겼습니다. 둘째 아들은 누구인가요? 다같이? 시므온. 이 시므온이 장남은 아니고, 레위나 유다 지파는 아니지만은, 유다 지파와 함께 살게 되어집니다. 그냥 2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말로 2등이 되어집니다. 세 번째는 누군가요? 레위입니다. 레위.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입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만 끝까지 맡겨, 예수님 올 때까지 이어진, 아론과 아론의 제사장, 아론의 직계는 전부 대제사장입니다. 못나면 제사장이고, 잘나면 대 제사장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자자손손, 계속 해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오시고부터는, 예수님이 유다지파에서 대제사장이 되고, 그 다음 사도들로 이어지지만은, 신령한 이름은 레위지파는 변치를 않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도 하나님과 죄 문제, 하나님과의 화목 문제는 전부 레위 지파가 다 가집니다. 르우벤의 장남의 외면, 시므온의 차남에게 받쳐 주는데다대고, 그 안에다대고 레아에게 3번째 레위를 주셨습니다. 그 레위 지파가 출애굽할 때에는 모세가 바로 레위 지파의 모세입니다. 이게 보통 일입니까? 이게? 아버지가, 왜 시청 청소하고, 아버지가 왜 남의 회사 수위하고 고생을 합니까? 고생하면 이 돈을 가지고, 아들이 공부하고, 아들이 나중에 나보다 더 잘 되어, 사회에 떳떳하라고, 부모는 희생을 합니다. 레아의 헌신, 레아의 남편 사랑 손해 본 이 헌신 대신, 하나님이 르우벤 줬지, 시므온 줬지, 레위 줬지, 유다 지파는 누군가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유다 지파에서 나옵니다. 구원의 지파입니다. 왕통!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 영원한 지도자, 영원한 머리가 유다지파입니다. 레아가 낳아놓은 네 번째 아들입니다. 레위는요? 문제가 생긴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 선지자는 지파에 상관없이 주십니다. 왕은, 유다지파에게만 주십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에게만 주십니다. 이건 ‘혈통’을 못 벗어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아들 로호보암이 3대 못 간다고 죄를 저질러, 이스라엘이 찢어지고 나뉘어졌지만은, 르호보암이 죄를 지었으니나, 르호보암 때문에 나간 열 지파는 다 청소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계통은 벗어나지 말라!’ 그 말입니다. 구원의 계통을 말합니다. 첫 번째 아들, 두 번째 아들, 세 번째 아들, 네 번째 아들이 12아들 중에 1, 2, 3, 4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구원의 계통의, 모든 복은 전부 다 가져 버렸습니다. 단과 납달리도 보통 아들들이 아닙니다. 이 지파들이, 단 지파. 우선은 라헬이고, 라헬이 낳아놓은 요셉과 베냐민이 이어서 야곱의 총애를 받고, 앞장을 섰지만은, 애굽의 400년 종 살이할 때를 보니까, 요셉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고, 출애굽 할 때 보니까 레위지파의 모세, 그 다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보니까, 그때부터는 아론의 제사장 제사장 계통, 그 다음에 사사시대가 지나가고 나니까, 그 다음 다윗이 나와, 주님 오실 때까지. 오늘은, 야곱의 눈에 라헬이었으나, 내일은 세상 끝날까지는, 영원한 천국의 모든 영광과 구원과,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다 레아 계통으로 쏟아졌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반들한테 좀 여쭤볼까요? ‘레아 되고 싶습니까? 라헬 되고 싶습니까?’ 오늘 이 남자가 나한테 폭 빠져서, ‘오늘은 좋다’ 이 여자 하고 싶습니까? 아들이 자자손손 영원 천국에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라! 전부 내 밑에서 나오는 이런 세계를 원하십니까? 여성이 엄마되기 귀찮아서, 직장여성 되어, 계장 되고, 과장 되어, 시청 국장까지 여성이 되었으면, 성공한 여자가 되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법무부 장관까지 한 여자 분 아시나요? 결혼은 못 했고, 아이는 못 낳았는데. 인물로 보니까 최고, 공부도 사시 최고, 법무부 장관까지 된 그분 성씨가 강 씨인데, 강금실이던가요? 지금 요즘 여자들 다 강금실처럼 여자인데, 사시 합격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되었고, 이 나라 2천명 검사가 밑에 있으면, 다 그거 바라보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보니까, 강금실 밑에는 아이는 없습니다. 자기는 이 땅 위에 최고의 여자가 되었는데, 아들은 없습니다. 지금쯤 아마, 법무부 장관을 한 강금실이라는 사람은, 아들 손주 안고, 아들이 출세하고 손주가 더 성공한 그 동창생이 부럽지 않을까? 우리가 개인적으론 좋아하지만은, 교도소에 가 있는 박근혜는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여자로써, 그 이상 올라갈 수 있습니까? 자기는 대통령까지 했지만은, 울어 대는 손주를 업어 본 적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소망하고 나보다 더 잘 되었으면, 하는 아들은 없을 겁니다. ‘나는 얻어 먹어도, 아들은 떳떳한 직장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원하고, 부모들이 헌신하는 것 아닙니까? ‘떳떳한 직장을 가진 아들이, 떳떳한 직장 때문에, 손주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걸 다 바라보는 것 아닙니까?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잘 나가다가, 독일에서 600만명이 죽고, 겨우겨우 몇 명 살아서 도망온 데가 미국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인데 미국에 오니까, 말 모르지, 글 모르지, 아는 사람 없지. 그래서 유럽에서 도망 나온 미국의 유대인들이 세탁소, 청과물, 수산물 전부 험한 일을 했습니다. 왜 험한 일을 했을까요? 쫓겨서 살아서, 겨우 온 미국에서 ‘기회의 땅이니, 부모 둘이 죽자고 일해서 이 아이 공부시켜 놓으면 이게 성공하지 않겠느냐?’ 해서, 이민 온 유대인 1세대들은, 새벽 장사해야 되는 청과물, 수산물 아니면 전부 흑인 동에 작은 구멍가게, 목숨 걸고 돈 벌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켜 놓으니까, 이것들이 하버드 들어가고, 예일 대학 들어가서, 금융인이 되고, 법조인이 되고, 정치인이 되어 가지고, 미국 사회를 다 잡아버렸습니다. 그 부모들이, ‘이놈들은 성공했지만, 나는 고생했다.’ 후회하겠습니까? 아니면, ‘자랑스런 미국의 주류를 다 우리 자손들이 잡았으니, 우리는 노가다했고, 우리는 험한 흑인 동네에서 가게 장사했고, 그렇게 수고한 날이 자랑스럽다!’ 그렇습니까? 지금 우리의 심정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레아는 구박받고, 무시 당하고, 남편 사랑이 벗어났습니다. 신세, 꼬라지 하나님 앞에 욕을 갖다가 했을 레아일 것인데, 어떡합니까? 인물을 주지 않았는데. 2등 시민으로, 2등 여자로, 못난 여자로 레아는 살았습니다. 그 대신에, 아들을 보니까, 유대인보다 나은 르우벤, 법조인 보다 나은 시므온, 미국의 주류 사회를 다 쥐고 있는 학자들보다 나은 레위, 미국의 대통령보다 나은 다윗의 자손 유다가 전부 레아 밑에서 소복하게 다 쏟아집니다. 이만하면, 엄마가 좀 고생해도 되지 않을까요? 여자의 청춘의 사랑도 갖고 싶지만은, 그 사랑을 불태우고, 자손들은 전부 쭈구리 밤씨처럼 그리 되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남편의 사랑을 좀 덜 받고, 내가 여성으로서 사회활동을 좀 손해 보더라도, 르우벤 같은 장남, 시므온 같은 2등, 레위 같은 하늘의 별, 다윗 같은 하늘의 영원한 만왕의 왕이 내 자손, 내 자녀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십니까? 교회의 개척은 어려운데, 개척에 10년, 20년 수고 했는데, 수고한 끝에 이 교회가 100명 되고, 1,000명이 되어, 자랑스런 대형교회가 된다면, 개척 교회 수고한 그 날들이 다 보람되고,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두 개척교회 시절을 힘들어도, 뒷날을 보고 고생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고생을 해도, 아이는 나보다 나을 것이라. 그 아이는 보통이지만, 손주는 더 나을 것이라’ 이 소망이 들어서, 자랑스럽게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는 훌륭한데, 아들은 등신이고, 손주는 영 그냥 없어져버리는 이걸 원하십니까? 라헬은 훌륭합니다. 아버지가 봐도. 야곱은 인생을 다 바치기를 하나님 대신, 라헬을 하나님 삼았습니다. 뭐 여자로써야 이만큼 실력있는 남자가, 약속의 남자가, 하나님 대신에, 자기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놨으니, 공주가 됐고, 왕비가 되었으니, 젊은 여자 아가씨로서는 하늘의 별을 따 버렸지요. 모든 여성들이, 바라보는 자리가 그 자리입니까? 그 뒤가 어찌 되었습니까? 아이 열 둘 중에, 라헬은 열 한 번째, 열 두 번 째, 순서로도 애 터지는 일을 다 하셨고, 요셉 지파가 나중에 보면, 이스라엘 쪼개지고 갈라질 때에 나쁜 짓은 전부 요셉의 손주, 손 손주들이 다 합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북쪽 망하는 나라의 다 중심입니다. 오늘 고생하고, 갈수록 좋아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레아의 길을 원하시면 됩니다. 오늘 좋고, 내일 망하고, 오늘 웃고, 내일 울기를 원하시면 라헬 하십시오.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어떤 직장을 가지겠습니까? 이게 세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룻밤 세상에 주님 때문에 수고하고, 영원한 끝없는 무궁한 날에, 영광스럽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공회의 신앙식으로 세상 살기는 어렵고, 믿기는 어려워도 우리 식으로 믿는 것이 좋습니다. ‘천국은 어찌 될지 모르겠고, 오늘 기쁘고, 오늘 즐겁게 믿으려면’ 공회교회 아닌 교회 가시는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만은, ‘하룻밤 나그네의 즐겁고, 좋고, 영원한 천국이 어찌되는가?’ 이것을 계산해 보면, ‘영원한, 끝없는 나라의 영생의 영광을 위하여, 하룻밤 수고란, 달게 할 수 있다!’ 계산이 그리 나오지 않을까요? 요즘 30살에, 목표한 직장에 진입하는 것이 평균 나이가 되어 있습니다. 9급 공무원 평균 합격 나이를 보면 30살입니다. 30살에 9급 공무원 하기 위하여, 30년 태아교육, 유아교육, 아동 교육, 대학교 4년에 마칠 것을, 3년, 4년 늦춰가면서, 30살에 9급 공무원 확실히 들어가면, 요즘 괜찮은 축입니다. 몇 년 근무하지요? 30년 근무하고, 60살이 되면, 정확하게 퇴직 시킵니다. 30년, 괜찮은 직장을 위하여, 30년 투자를 하고도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러면, 하룻밤 나그네 투자하고, 영원을 가진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요? 사업적으로 봐도, 수학적으로 봐도. 대기업 30년은, 연금이 곤란하지만은, 공무원 30년은 마지막 월급의 60%인가요? 80%인가요? 죽는 날까지 연금 또 나옵니다. 이것까지 계산하니까, 계산을 해보니까 30년 수고하고도, 공무원 30년 하고 나면, 죽는 날까지 30년을 더 노령연금 받는 계산까지 하니까, ‘이거 제일 괜찮은 직장이라’ 전부 도서관에서 10년씩 공부하고, 총 합하면 30년을 노력하는데! 30년 투자하고, 끝까지 죽는 날까지 계산하니까 60년 덕 보려고, 30년 희생하는데, 하룻밤 나그네 손해 좀 보시고, 영원한 나라의 영생이 정말이라면, 아낌없이 투자 할 만하지 않습니까? 이민 간 유대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천대받고, 고생하고, 흑인 사이에서 돈 번다고 생고생을 다 한 부모 1세대의 20년 수고 끝에, 그 20년의 수고 때문에, 유대인들의 아들들은 전부 좋은 직장 잡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직장 잡은 아들들이 다시 투자해서, 3대로 가면, 미국 나라 최고는, 거의 다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랑하고, 우리는 그게 부러워서, 서점에 가서 무슨 책을 모두 사다 보지요? 탈무드인가요? 탈무드 읽는다고 유대인 흉내나 내나요? 유대인 찌그러기 하나도 주워 먹기 어려운데, 그래도 유대인들의 걸어간 그 걸음이 부러워서, 탈무드 읽어가며, ‘나도 어떻게 해 볼까?’ 이러고 앉았습니다.

우리에게, 라헬의 길이 앞에 있고, 레아의 길이 앞에 있습니다. 내가 먼저 레아되고, 라헬 될 수는 없지만은, 내 마음은 땅의 것 받고, 우선 좋고, 뒤에 손해 보는 것보다는. 우선 수고해도, 뒤에 복 받은 레아의 걸음이 부럽다. 이렇게 좀 성경을 바꿔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여자치고 창세기 읽으라면, 다 라헬 되기를 원하지, 레아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사무엘로 가면, 사무엘의 엄마의 이름이, 다 같이 누구지요? ‘한나’입니다. 그 옆에 여자 이름은 누군가요? 브닌나입니다. 한나의 그 애터지는 그 세월과 심령과 기도를 가지고, 뒤에 준 것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보통 이름입니까? 사무엘입니다. ‘우선 좋고, 뒤에 울래? 젊어서 좋고, 늙어 죽도록 땅을 치고 한탄할래?’, ‘젊어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훗날에 갈수록 좋고, 갈수록 더 좋은 길을 택할래?’ 30년 수고하고, 60년 출세하겠다고, 전부들 나서는게 세상인데,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면서, ‘세상 80년, 100년 길어봐야 하룻밤 나그네이다! 하룻밤 나그네, 웃을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너 좋은 거 다 할 수 있다. 아낌없이 번제로, 소제로 희생하면, 영생의 하늘의 영광을’ 여기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라헬 계통과 레아 계통을 보이시면서, ‘전부 라헬하고 싶지? 남자가 너를 보면 폭 빠져, 정신없는 여자 되고 싶지?’ 남자로 말하면, ‘네 실력이 모든 여자가, 나를 향해서 돌진하고 싶은 남자되고 싶지?’ 재벌집 아들 되면 그리 되는 거 아닌가요? 재벌집 아들은 아니나, 실력 게, 자신 있게 자기를 건설하면, 그리되지 않습니까? ‘그리 되고, 라헬 자자손손으로 내려 갈래?’ 아니면, ‘오늘은 못 났고, 오늘은 보는 사람 없고, 오늘은 좀 아쉬운게 많아 보여도, 레아의 훗날, 자자손손의 영생의 걸음을 걸을래?’ 이렇게 둘을 놓고, 우리에게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5대 제사의 희생, 헌신, 어려운 길을 그렇게 조심하고, 그렇게 조심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어렵게 살래?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 제도만 없으면, 5대 제사만 잊을 수 있다면, 마음대로 즐겁게, 마음대로 오만 짓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번제 때문에, 소제 때문에, 화목제 때문에, 속죄제 때문에, 심지어, 속건제 때문에, 늘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걷는 사람처럼 조심조심, 이스라엘 백성은 5대 제사가 들어 늘 조심해야 되고, 마음껏 세상을 누리고 즐기지 못했지만은, 이 5대 제사가 들어, 이 땅 위의 살아가는 것은 레아처럼, 다른 사람이 볼 때 좀 못났지만은, 그 대신에 하나님의 모든 복은 다 끌어왔습니다.

5대 제사가, 오늘은 ‘예배 생활’입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나를 고치고, 말씀을 중심으로 나를 기르고, 말씀을 중심으로 나를 살아가는 것이, 나를 잡는 제사며, 충성이며, 자기 부정이며,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꼭 고칠 속죄제, 나도 모르게 사소하게 실수하는 속건제를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까, 제물, 소도 잡아야 되지, 양도 잡아야 되지, 가루도 갈아 바쳐야 되지, ‘서울대 다니는 아이들이 등록금 아까워서, 학교 때려치웠다’는 말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서울대 4년 합격해서 공부하느라고, 4년 등록금 내느라고 억울해서, 서울대 욕을 해버리고, 너희들은 들어가지 말라!’ 그 말 들어보셨습니까? 은행가서, 서울대 등록금 끊으러 갈 때에, 아마 자랑스러울걸요? 서울대 등록금 은행에 들이밀면서, 서울대 합격증, 등록름 합격 하는 이 모두 수업료내는 영수증 내면서, 돈 주면서 자랑스러울걸요? 이게 5대 제사에, 재물을 드리는 복된 심정입니다. ‘뭔 제사도 이렇게 많담? 뭔 하나님이 이렇게 착취를 한담?’ 궁시렁 거리면서 제사를 드려도 됩니다. 궁시렁 거리면서 ‘또 주일이야? 또 밤 예배야? 또 성경 읽으라 그래? 아, 연말이라고 또 암송까지 하라고 그래? 휴가철에, 집회까지 오라고 그래?’, ‘뭔 제사가 이리 많아? 종류가? 소? 없으면 뭐 가루까지 가져와? 새라도 잡아와?’ 제사를 무겁게 생각하다보면, 하나님 앞에 욕 할 일이 그냥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고, ‘서울대 1학기 등록금 내십시오’ 돈 번 아버지가 이 등록금 되면서는, 자랑스러울 걸요. ‘이 놈이 1학기를 잘 마쳤구나. 2학기 또 등록금내라는 것을 보니까 낙제는 안 했구나.’, ‘이번에는 여섯 번째 등록금 내라고 통지서가 오네? 그러면, 3학년을 다 마쳤다는 말인데, 이게 내년에 졸업을 하겠구나.’ 이게 부모가 씨가 빠지게 돈 벌어서, 서울대 등록금 내면서 자랑스러워할까요? 아니면, ‘이 놈의 짓을 또 해? 등록금 영수증 또 나왔어?’ 그럴까요? ‘박사 등록금 내라고?’ 욕을 할까요? 아니면, 사방천지 자랑을 할까요? 플랜카드 다 뭐라고 갖다가 붙입니까? ‘어느 학교 합격, 고시 합격’ 두고 갈 하룻밤의 낙을 위하여 투자한 것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영생의 나라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든 걸 펼쳐놓으며, ‘등록금 내라. 소제. 수업료 내라, 번제. 기숙사비 내라,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자부심 있게, 감사하게, 예배와 모든 신앙의 헌신 생활을 하는 또 앞날이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라헬이 야곱 속에 하나님이 되었듯이, 두고 갈 땅 위의 사람이, 두고 갈 땅 위의 직장이, 두고 갈 땅 위의 취미가, 두고 갈 땅 위의 이런저런 우리의 목표가,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 되어, 여기에 번제, 소재, 화목제, 이 일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속죄제, 속건제, 전부 다 바치느니라고, 우리 인생의 전부는 세상에 다 털어 넣어 버렸고, 하나님 앞에는 찌끄러기나 가져와, 성의 표시하며 살아온 우리의 지난 날이 아닌가? 자문자답 해 볼 때,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야곱 흉내내며, 야곱 따라가는 우리들이지. 레아에게 주신 이 복된 걸음을 우리는 우습게 여겼지,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아온 날들이 많았던 저들입니다. 인생관을 바꾸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고, 살아가는 모든 지식과 사상과 체질을 다 완전히 바꾸어, 잘못된 것은 소제로부터, 번제, 화목제, 전부 다 태워버려 재를 만들어 버리고, 우리 속에 귀한 것, 성령의 감화감동, 이런 내장에 덮인 기름, 콩팥 기름,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바쳐, 이제는 살아온 지난날의 사고방식, 가치관 전부를 완전히 바꾸어, 세상이 보면 정신 없는 사람이라 오해 할 만하고, 우리는 속으로 감사하며, 자부심 있게, 원하고 원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찬송하며 걸을 수 있는, 이런 우리가 되고, 이런 앞날이 되도록, 어린 아이들, 청년들, 살 날이 많아보이는 이들에게 앞 날이 복되게 하시고, 잘못 살아온 날들이 많아, 나이가 많아졌고, 연세가 많은 우리 교인들은, 지난날을 땅을 치며 후회하며, 자기 생애를 잡아 하나님께 태워버리고, 앞날에는 복된 날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흩어져 각 교회 충성할 때, 각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을 성실하게 충성할 때, 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이 소원, 이 말씀을 붙든 저들에게, 이 땅 위에 먹을 것, 입을 것, 살아갈 땅의 것은 알아서 조절 하시고, 그 조절한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가는 길 끝까지 안전케 하시고,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날, 건강 주심으로, 지혜 총명을 주심으로, 세상이 아니라, 주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초타 : k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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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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