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후20.5.5 계7:1 일곱 인은 복음 역사, 일곱째 인으로 나팔 재앙이 시작 되는데 다급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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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후20.5.5 계7:1 일곱 인은 복음 역사, 일곱째 인으로 나팔 재앙이 시작 되는데 다급한 문제

교인 2 321 2020.05.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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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후20.5.5 계7:1 일곱 인은 복음 역사, 일곱째 인으로 나팔 재앙이 시작 되는데 다급한 문제




* 일곱 인의 첫째부터 여섯째까지의 성격과 내용은 아이가 자라가며 겪는 모든 소란 어려움 난제와 같으며

* 일곱 째 인은 7 나팔로 다급하게 경고 되는 진행이니 기회가 없는 말세적 현실에서 시급하게 살필 일



설교요약

① 월후 : 재림
- 매 현실은 한 번뿐인 말세이니 구원 기회로 매 순간을

② 월밤 : 일곱 교회
 - 일곱교회의 장 단점을 내 안에서 찾아 말세의 성공을
 
③ 화새 : 영계
 - 현실을 말세와 일곱교회의 준비로 하늘의 세계와 연결되어

④ 화전 : 일곱 인
 - 말씀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일곱 인의 재앙 속에 복을 발견

⑤ 화후 : 일곱 나팔
 - 매 현실에 말씀에 따라 전개되는 일곱 인의 역사에 이어
 - 시급하게 붙들어야 하는 급박함의 순간을 일곱나팔로 알림



200505 집회 5 (화후)

제목 : 일곱 인은 복음 역사, 일곱째 인으로 나팔 재앙이 시작 되는데 다급한 문제

본문 : 요한계시록 7장 1절 -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말세 마지막의 환경을 저희 현실로 만들어 주시고 매 현실도 종말이며 역사의 종말도 피할 수 없는 임박한 이 때에 계시록의 말씀을 기본구원으로만 받지 않고 건설구원으로 더 세밀히 살필 수 있는 이 길 이 교훈 복된 길의 저희를 세워주심은 저희가 더욱 부족하여 더 밝은 진리가 필요해서 그러하오니, 깨달을 때마다 겸손히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 내 속의 현실마다 단번으로 지나가는 종말이 하늘로 올리워가는 복된 기능들이 되게 하시고 이 기능들이 모여져 개별적으로 불러 가시든 세상이 끝나든 주님 앞에 세울 우리가 넘칠 수 있도록 계시록의 1장의 말씀에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로 2장과 3장의 일곱의 신앙의 형태를 우리 각자 먼저 자기를 살피고 시대를 보며 하늘의 하나님의 능력이 성경의 말씀을 통해 이 땅에 펼쳐질 때에 복된 여섯 인의 순서를 따라 일곱째 나팔 재앙까지가 다 복이 되도록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살펴 밝혀 주시고 저희들은 다하여 들으며 읽으며 순종하기를 각오하는 이 시간 되게 해 주옵소서. 복잡한 세상 중에 어렵게 이곳까지 왔사오니 어린 심령 많은 근심과 많은 바쁜 일을 가진 우리 모든 교인들에게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 잊지 아니하는 복음의 백마 운동의 성결로만 나아가는 앞날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계시록에 “이 일후에” 라는 말씀이 읽힐 때마다 먼저 순서가 있었으니 그 순서를 통하여 이 단계에 나아갑니다. 앞에 6장에서는 일곱 인중에 6개의 인을 떼며 진행되던 이 땅 위의 복음 운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 붙들린 말씀, 이게 그냥 그대로 내려오면 심판인데 어린양의 대속의 피 공로로 이 말씀이 복음으로 열려 복음으로 이 땅에 전개되며 진행이 되어 집니다.

첫 번째 흰말, 백마 운동이었습니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면 그 말씀과 다른 것을 씻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자율로 살던 불의의 내 속을 정리해버리고 하나님 없이도 살아왔던 나를 정리하며 예수님의 4가지 구원으로 나를 깨끗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3가지 면으로 내가 깨끗해지며 자라가며 흰 말을 탄자가 활을 가졌더라. 화살은 출발하면 목표에 지향, 도착하고야 중단하지 그전에는 쉬지 않고 돌아가지 않습니다. 말씀의, 깨끗의 역사는 나를 하나씩 씻어가고 주변에 가족과 교인과 내게 주신 식구들을 자꾸만 씻어가는 복음의 백마 운동이라. 생명의 성결의 이 운동이 지나가면서

화평이 없어지고 전쟁이 불편이 분쟁이 생기는 홍마, 붉은 말의 운동도 따라갑니다. 따로따로 떨어져가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실은 같이 갑니다. 햇빛 안에는 따뜻한 온기도 있고 밝히는 불도 있는 것처럼 떼놓지를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 위에 전개가 되면 전해지면 주님 오실 때가지 진행하며 누구에게 가든지, 어느 생활에 가든지, 어느 교회로 가든지, 어느 국가에 가든지 계속해서 말씀으로 씻어 나아갑니다. 씻어 나아가는 뒷면 앞면 바로 옆면을 보면 분쟁이 생깁니다. 온 가족이 안 믿었는데 하나가 믿으니 종교 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믿고 나가면 흑마. 배가 고픈 어려운 현실도 닥치는 겁니다. 배고프기 싫으면 복음과 천국을 버리면 되고 복음과 천국을 버릴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는 분쟁도 배고픔도 청황색의 공포에 질리는 이런 질색의 현실도 각오는 해야 됩니다. 땅의 공부도, 땅의 사업도, 땅의 국가도 이 땅 위에 심지어 도둑들까지도 목표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따르는 법인데 유독 복음만 지목하여 복음의 가는 데는 소란이 없어야 된다고 그러니 이게 참 고민입니다. 복음 가는 곳에는 배가 불러야 된다니? 그게 과연 복음일까? 복음이 가는 곳에는 불신자까지 모두 좋아할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5번째 제단 아래 영혼들이 말씀으로 깨끗하게 걸어갈려 다 보니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내 속의 한 요소를 끊어 바쳐야 될 때도 있고, 말씀으로 나를 희생하고 말씀으로 실제로 죽는 상황이 생기면 하루가 천년 같은 마음이 들어 주님 앞에 자비를 호소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원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깨끗 운동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고 깨끗한 복음 운동을 박해한 원수를 보복해달라는 복수심이 아니고 말씀으로 나를 꺾고 말씀으로 목숨 바쳐 걸어가는 복음의 길에 따라오는 희생이 너무나 그 마음이 동정으로 하루가 천년 같은 주님의 긍휼의 심정으로 때를 단축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신앙의 본능이고 긍휼이며 자비입니다. 그래도 주님은 형제 숫자가 차기까지는 아니 된다. 절대 복음의 기간은 지나가야 되고 우리의 심정은 하루의 고난이 천년 같은 마음으로 어린 신앙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6장 마지막에 여섯 번째 인을 떼실 때 이 땅 위에 변동될 리가 없어보였던 천하가 지진이 나며 뒤 흔들어 변동이 생기며 해가 총담 같이 까매지고, 총담은 검은 말 털로 만든 새카만 그런 천을 말합니다. 총담 같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빛을 발해야 되는 교회가 달인데 달이 피의 살육 운동 교회가 복음 운동에 반대의 길도 걸어가고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마구 땅에 엎드러져 이 땅 위에 뒹굴어 버리고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하나님의 종인지, 이제 믿는 새 교인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돼어질 때에 하늘 자체가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더라. 높은 철학 높은 가치 모든 면으로 가치 있고 평가적으로 높은 것들이 전부다 떨어지고 떠나가고 말려들고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며 존경하며 유명한 좋은 인재들이 또 저 섬에 떨어져서 혼자 잘난 사람들이 어지럽게 떠나가고 옮겨지며 여러 가지 땅의 종류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알고 보니까 깨어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고개 들 수가 없어 산과 바위에게 떨어져 이 얼굴을 가려 달라 이런 바늘방석처럼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스럽게 한 방울의 은혜를 갈급하던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오전의 말씀의 요약입니다. 그리고 7장 1절 이런 일이 진행 된 후에, 전체적으로 보면 보좌로부터 시작된 어린양의 대속의 생명의 운동이 진행되면서 생긴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을 진행할 때에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섰습니다. 네 천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맡은 전부, 이 면 저면 사방을 말합니다.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이 땅 위의 모든 곳을 하나님의 천사 역사가 장악을 하고 땅의 사방의 바람을, 동 풍, 남 풍, 북 풍, 서 풍 또 사방의 바람이지만은 바람이라는 것은 불면 다 날려버리는 쓸어 가버리는 제거의 역사입니다. 이 땅위에 제거하는 모든 제거의 역사를 천사들이 붙들기도 하고 바람을 불어버리면 날려버리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들어 사람이 살만하고 인정할만한 땅 든든한 도덕의 세계나, 인간이 봐도 좀 곤란한 바다의 죄악의 세계에, 또는 유명한 인물 훌륭한 신앙의 사람들 어떤 인물이든,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6개의 환란이 지나가고 있는데 복음 운동을 박해하는 여러 가지 방해자들을 교회를 박해하는 정권을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상을 교회 다니는 나를 눈치 주는 회사를 그런 법과 제도를 그만 없애버리면 종교 자유가 오겠는데 언제 그런 자유를 줄 것인가? 언제 줄 것인가?

3절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사람들 이마에 사상에, 됐다. 하나님이 인을 쳐 인정하기까지. 땅에도 바다에도 나무에도 해하지 말아라. 이 땅 위의 모든 역사 모든 운동이 전부 믿는 우리의 신앙을 박해할 찌라도 아직은 그냥 두라. 언제까지? 그 수가 차기까지. 주님이 인정할 때까지는 이 땅 위의 우리를 들볶는 어려움 여러 가지 환란, 불편, 분쟁, 전쟁, 질병, 별의별 일들이 우리를 연단하고 만들어가기 때문에 기다려라.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 머리에 사상에 생각에 이것은 변치 않겠다, 합격! 이렇게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하나님 앞에 완전 포기하고 완전 순종할 각오로 바뀌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환란은 없어집니다.

살고자 하니까 죽음의 협박이 순간도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내 생각 중에 박혀 버리면 흔들리지 않고 이 생각의 완전히 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인간이 죽는다는 죽음은 천국 들어가는 환영이요. 살아생전 만들어놓은 의의 기능은 아예 죽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 이렇게 완전히 변경이 돼버리면 환란이 와도 환란이 되지 않고 그런 사람은 환란으로 시험을 하지도 않는다.

4절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사선을 통과하고 이 땅 위에 가난도, 분쟁도, 전쟁도, 질병도, 어려움도 다 초월해버린 백마 운동의 떠난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직진으로 지향하며 중단 없이 각오된 신앙의 사람, 입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이스라엘이라 그럽니다. 택한 백성 그 전부를 지파별로, 계통별로, 교단별로, 시대별로, 종류별로 다 헤아려보니 14만 4천이더라.

5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구원의 계통으로 앞세운 유다지파 중에 인정받은 사람이 1만 2천이요., 순서대로 태어나 장남인데 잘못된 행동하다가 밀려버린 르우벤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갓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5절까지 유다, 르우벤, 갓, 아셀 까지를 헤아리면 전부가 레아의 아들들 입니다. 레아 계통입니다. 레아를 통해 주신. 믿음의 조상 야곱은 라헬이 예뻐 라헬에게 1백 30년 동안 빠져 살았습니다. 예쁜 라헬을 위해서는 7년을 수일같이 지냈더라. 또 다시 7년도 수일같이 지냈더라. 라헬 하나 쳐다보고 허송한 세월에 유다, 르우벤, 갓, 아셀은 라헬을 통해 준 아이들이 아닙니다. 내가 볼 때에 이것은 예쁘다, 이것은 될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의 눈에 못나서 보고 싶지 않은데 끼어 들어온 따라 들어온 떼내 버리면 싶은 이 혹과 같은 레아를 통해 1번 유다 2번 르우벤 3번 갓, 4번 아셀. 내 생각, 내 주관, 내 감정, 내 눈에 예쁜 걸주님도 예쁘다 그럴 런지 주님은 아니라 그럴는지, 이런 불편, 이런 착오로 평생 허송하지 맙시다.

결혼 앞둔 젊은 분들. 내 눈에 좋은 거 붙들고 살면 네 인생 대부분은 허송하겠다. 싫든 좋든 주님이 주는 인도가 어딘가, 이걸 곱게, 이걸 예쁘게, 이걸 하늘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구언의 계통으로, 미리 구원의 계통으로 이렇게 바꾸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몇 년 지나면 맛이 바뀔 건데, 몇 번 쳐다보면 물릴 건데, 지겨울 건데, 마음이 바뀔 건데 한때 한번 눈에 좋다고 불철 주여 밀어 붙이면 그 세월, 그 인생, 그 기회, 현실은 한번이고 한번이기 때문에 종말인데 이 현실 끝, 저 현실 끝 주시는 종말 주시는 계시록 주시는 매 현실에 담아주신 구원은 전부 지옥에 다 내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열두 지파를 손꼽아 주셨는데 열둘을 구약의 전부, 열두 사도는 신약의 전부. 열둘이란 하나님이 맡긴 전부인데 열둘의 무한한 헤아릴 수 없는 일하는 숫자를 붙이면 천입니다. 지금 천이야 유치원 아이들도 예사로 천원으로 가지고 다니지만은 성경을 기록하던 고대 미계사의 1천이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라는 뜻 입니다. 계통으로는 하나님이 정해놓은 12계 통 안에 있는데 그 안에 몇 명인지는 우리가 모르나 하나님이 정해놓은 택자 전부. 하늘의 여기에 쓸 택자, 저기에 쓸 성도, 이런 일을 맡길 성도, 저런 일을 맡길 교단이 다 다릅니다. 그게 하나일지, 백 개일지, 만 개일지 모르겠지 만은 12지파로 딱 추려서 하나님이 계획하는 계통 전부. 각 계통에 하나님이 모아놓고 보내놓은 성도 전부를 12지파에 만 2천 명씩 합하면 14만 4천명이라. 이렇게 상징으로 준걸 선착순 14만 4천명 까지만 천국 가는 티켓을 발부한다 안 믿어도 그런 말은 믿어질 것 같지 않은데 세상 돈에는 세상 죄지을 때는 천재고 박사들이 성경을 가지고 미혹하면 그렇게 멍청해져가지고 갑자기 바보처럼 줄줄 따라가니 망해도 싸다고 말하기는 미안하고. 달리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있냐? 나는 하나님 어머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줄줄 따라가니 100년 전도 아니고, 1000년 전도 아니고 2020년대에 지성인들 전부 대학을 나오는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 기록한 성경도 의심하고 안 믿는 인간들이 하나님 아버지만 있냐? 하나님 어머니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 며느리도 있냐? 딸도 있냐? 말도 안 될 소리를 믿는다고 멀쩡한 청년들이 지성인들이 줄줄 따라가니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으니, 때려서 데리고 오겠습니까? 쥐어박겠습니까? 할 수 없이 그냥 자유성을 주셨으니 망하든지 말든지. 마지막 결론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14만 4천이라, 12지파인데? 1,000명이라. 아 천천이요, 만만이라. 무수한 숫자였구나. 허다한 요마를 붙여서 천천이요 만만이요 했으니까, 인간이 알고 헤아릴 수가 없는 숫자. 그 숫자를 헤아리려고 들었으니 이것은 사기이지. 12지파는 하나님 구원의 계통인데 그 구원의 계통은 하나님만 아시는데 택함과 불 택함은 인간에게 알려준 적이 없는데, 심지어 중생의 순간도 바람과 같아서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을 이름 붙여 숫자로 헤아려 선착순을 세우고 있으니 우리보다 열심히 잘 믿으려는 노력은 좋으나 길은 잘못 잡았구나. 그렇게 좀 살피며 믿어야 됩니다.

여기 7장 오늘 오후의 공부는 여섯 인의 말씀이 펼쳐지며 말씀이 진행이 되며 깨끗한 백마의 성결의 운동이 말씀으로 진행되고 그 말씀의 운동에는 반드시 시끄러운 분쟁의 불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배고픈 일도 생기는 것이고 저건 안 되겠는데 낙마의 공포도 생기는 법이고, 이 일 4가지를 겪어본 사람은 복음은 생명이라 따라오는 고난이 많아 주여 하루가 천년 같은 이 고난의 복음을 얼른 해결해달라는 긍휼의 마음은 생기는데 아무리 그래도 때가 있고 기한이 있고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한 것이니 아들도 천사도 모른다.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한 달란트 주면 한 달란트 그만큼 능력과 기회를 많이 준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간을 통해 기다리다가 7장에 오면 복음의 복된 운동을 괴롭히는 세상 내 안팎의 옛사람. 가정 속에 해결 안 되는 복음의 그런 걸림돌, 교회에 고라 같은 애먹이는 사람들,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우리 마음 같아서는 앓던 이를 빼면 좋겠으나, 주님은 그 중에서도 고쳐 쓸 사도바울도 있고 1등교인 같은데 끝가지 교회를 연단 하는데만 쓸 그런 이세벨도 있고, 하나님이 주권으로 알아서 때와 기간을 정해놓았으니 우리는 때와 기한은 맡겨놓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하신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으로 서머나 교회의 10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데려가면 안디바 되고, 안디바 데려가면 안디바의 교인 되어 소망하고 살았다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내용의 신앙이 되기를 노력하며 적은 능력으로 주님 인도를 따라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 말씀으로 나아가다보면 백마 운동만 복음 운동이 아니라 흑마도, 복음 청황색 말도 복음의 요긴한 하나님의 선물이라. 보좌 앞에 네 생물, 하나님께 연결된 생명의 운동이 불러 풀어놓은 운동들이 6장에서 진행되며 7장에서는 말씀이 복음운동으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거쳐 주님이 그만할 때까지는 환란은 분쟁은 어려움은 배고픔은 따라가는 것이니까 그것은 맡겨놓고 신경 쓰지 말아라. 그것을 초월해버려야 끝이 난다. 그런 구원의 계통 숫자까지 한명 빠지지 않고 다 주님이 보고 계시니 든든하게 맡겨 놓자는게 7장입니다.

6장의 소망이며, 6장의 모든 내용이 7장이다. 오전에 공부한 6장. 백마는 성결의 운동이고 그 탄자가 화살을 가지고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 면류관을 섰더라. 그건 좋은거고, 나머지는 좋지 않은 것인데 그게 왜 복음 운동이냐? 한 집에 아이 없는 세상에 3아이가 태어나면 정상적이면 이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자라게 돼있고 학원 보내지 않아도 걸음마 배우고, 어학원 보내도 말을 잘해서 탈이고 이게 점점 자라가며 성인이 되어갑니다. 이게 백마 운동이면 예를 든 겁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깨끗한 가정, 조용한 부부가 깔끔하게 사는데 아이 태어나면 울음소리는 낮도 밤도 없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 둘이 조용하게 깔끔하게 남들에게 모범되도록 좋게 살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는 생명이라 자라게 되는데 생명이란 자라면서 울어도 보고 떠들어도 보고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예배시간까지 돌아다니고 떠드는게 아이입니다. 그게 조용하면 장애자 되고 큰일 날 일이지요. 아이보고 떠들어라 깨라 그럴 수는 없지만은 할 수 없지만 생명이란 자라가면서 떠드는 것이라. 아이가 출생하면 그 집은 이제 조용한 꼴은 다 끝났습니다. 이거 조용할 때 쯤, 되면 둘째, 셋째, 넷째가 계속 따라 붙는데? 이제 막내다 조용하다 싶으면 큰게 결혼해서 또 하나 낳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를 1개면에 10년 동안 없었더라, 소식도 듣는 때이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아이 우는 소리가 좋은 소리가 되기까지 되어졌습니다. 옛날 아이가 많을 때는 내 집 아이든, 예쁜 아이든 애만 보면 시끄럽지, 떠들지, 엉망하지, 가난하지, 더럽지 그거 기르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까? 그런데 아이를 조절할 줄 모르니까 집안 마다 동네마다 아이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한 집의 아이가 6-7, 10이 쏟아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그때는 그 복을 몰라보고. 사니까 생기니 어쩔 수 없고 낳아놓으니 떠드니까 어쩔 수 없고, 이걸 먹여 살리니까 가난하게 어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고. 그랬는데 이제 말세가 되니까 이런 것 까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정상적인 가정은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좋은 거다, 행복이다 부러운 거다. 1개면 1개 군인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 뉴스에 나오는 때가 됐다. 그 아이를 보고 입 닥쳐라 했다가는 요즘 복지부에서 감옥 집어넣는다, 그럴 만큼 이런 때가 되었습니다. 복음 운동이라는 것이 미신 있던 나라에 들어오면 복음 운동은 생명의 말씀으로 전해지지만은 복음이 가는 동네마다 제사를 드리냐, 마는냐 시비가 나고 사이좋은 가족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생명이 지나가는 좋은 흔적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좋은 이 나라에 예수교가 들어오고 나서 가정 마다 불화가 생기고 사회 갈등이 생겼다 그러는데, 불신자들이야 지옥 갈 거니까 그런 말을 하지 많은 믿는 우리들은 태국과 같은 불교의 나라의 기독교가 왕궁에 들어갔단다. 그러면 저 나라가 드디어 이제 생명의 싹이 이제 피기 시작 하는구나. 그 대신에 왕궁에 기독교인이 하나 생겼으면 왕국이 이제 시끄러워지겠구나. 언론이 떠들겠구나. 그 나라가 복잡해지다 보니까 수출 안돼서 굶는다는 말도 섬기겠구나, 그러다가 실수로 사람 죽어나가는 일도 생기겠구나. 대국적으로 보면 복음이 들어갔으니 이러나, 저러나 굴러가도 엎어져도 생명이 자라가는 좋은 길이라, 고 할 수가 있는거고, 그 나라 안에 불신자들이 죽겠다, 말겠다, 시끄럽다 그러는 겁니다.

젊은 나이에 둘이 결혼을 하면 첫날부터 행복하게만 사나? 젊은 나이에 둘이 결혼을 하면 첫날부터 십 년 백 년 웃고 행복게만 삽니까? 이 집에서 20년 살았지, 저 집에서 20년 살았지. 사상이 다르지 음식이 다르지 체질이 다르지 부모에게 듣고 본 것이 다르지, 다른 둘이 한 집에서 한 몸이 되었으니 그게 좋을 리가 있습니까? 첫 사랑의 멋모를 때에 몇일은 좋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음식이 틀려서 부딫히고 돈 쓰는게 틀려서 부딫히고 말버릇이 틀려서 부딫히고 일정이 틀려서 부딫히고 기준과 사상 모든 것이 다 틀리니 두 사람이 만났으면 모르던 두 사람이 만나 말씀으로 고치며 배우며 싸우면서 배우지 안 싸우고 어떻게 배울까? 서로 속의 것을 다 내놔야 배우고 이제 알고 저런 놈의 세상도 있구나. 저런 가정도 있구나. 그렇게 둘을 달리 만드시고 한 사람으로 묶어놓은 것은 둘이 해실해실 웃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왜 안 맞을까?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할까? 저 친정은 어떻게 이렇게 가르쳤을까? 이 시댁이란 구조가 어떻게 되었길래 저런 말을 하고 이런 인간이 있을까? 전부가 하나님이 제출하신 문제입니다. 시험 문제, 연구하고 풀어보고 고장은 고치고 좋은 것은 닮고 그러다보면 둘이 안 맞는게 만나서 하나로 살다 보니까 과한 것도 좀 줄어들고 모자란 것도 좀 고치고 넓은 세계 이해도 하면서 결혼은 좋은 것입니다. 좋은 것이니 하나님이 만들어놓았지 좋으라고 만들어 놨습니다. 일부러 남자와 여자로.               

하나님은 전능자라 세상을 남자만 만들어놓을 수 있는데 절반은 여자로 만들어 놨습니다. 전능자가 전지의 지혜로 딱 필요해서 그리고 둘을 붙여놓으면 맞지 않아서 엉망진창이 될 줄 알면서 짜매 놓은 것입니다. 안 맞으니까 그냥 맨 정신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 이성의 사랑이라는 묘한 술에 취해서 마약에 취해서 눈에 씌워서 멋모르고 둘이 하나가 되었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차 헛짚었구나. 그때에는 아이가 생겨버렸지 물릴 수도 없지. 그리고 둘이 앉아서 연구를 하다보니까 남자가 옳다는 것도 알고 보니까 좀 과한 것도 있고 여자가 자기 옳다고 박박 씌운 것도 너무 과한 것도 있어 아이 때문에 살아가다가 남 때문에 이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과정, 그러다가 이제 많이 살다보니까 이 여자 아니면 나는 영 나쁜 인간이 되었겠구나. 편협한 사람이 되었게구나. 하나님 모르고 큰소리치다가 영원히 후회하고 실패했을 뻔했구나. 안 맞는 여자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남자 때문에 익어져 가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결혼은 생명의 운동이다. 그 생명의 운동 끝에 좋은 열매를 맺기까지는 깨지는 소리도 나야 되고 마음도 복잡해야져야 되고 결혼하고 나니까 돈 모으기도 어렵고 그게 흑마 운동입니다. 이런 결혼을 또 해야 되겠는가? 절망이 되는 것이 청황색의 공포의 그런 비극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에 우리의 피를 우리의 이 억울함을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언제까지? 나는 이제 어찌 어찌 알았는데 아이들을 또다시 결혼 시키려니까 멋모르고 하나 되었다가 그 다음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을 눈에 잘 보이니까 그만 혼자 살지 뭐 그렇게 결혼을 해야 되겠나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자녀 못 살아라, 나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살아보니 기가 막혀서 그런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 그 생명이 자라는 과정에 전체적으로 태어났으니까 성인은 되겠지만 생명이 자라겠지만 그 과정에 집은 우느라고 깨느라고 애 때문에 부부가 싸우느라고 이거 공부시키려니까 또 학비 때문에 가난해지고 이게 흉년의 흑마 운동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넓게 보면 전부가 축복이다. 귀한 아이를 주셨으니 아이가 시끄러워야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 것인데 그 아이 먹여 살리고 학비가 있으니 돈이 없는 게 당연하지. 자기 아이가 서울대 다니라고 한 달에 50만원씩 붙이면 그 50만원이 자랑스럽냐? 억울하냐? 그 아이가 공부 잘해서 유학가면서 한 달 200-500만원씩인데 그 놈이 억울하냐? 자랑스럽냐? 생명이란 나면 자라 가는데, 죄악 세상이라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 세상을 죄악 세상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자라가기 위해서 분쟁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절망도 있고 아이고 이런 짓 두 번 다시 “못했다”라는 말도 하지만은 마지막에 보니까 하늘도 땅도 별들도 세상에 지진이 나서 이런 꼴을 어찌 하겠느냐 참담한 말도 나오지만은 다 정리해야 해야 될 것을 정리하고 없애야 될 것을 없애가는 과정입니다. 아이가 자라가는 과정도 그렇고. 다 압니다. 결혼한 부부가 원만한 가정이 되어 노인이 되고 지난 날 돌아보며 처음 만날 때 멋모르고 설쳤지 그때가 미쳤지 그리고 제정신 차리니까 안 맞아서 한 5년 20년 죽을 지경이었지 그러다가 중년에 접어들며 당신도 철들고 나도 알아서 서로 고마워했지 우리가 알고 보니까 자라나는 저것들 어떻게 이런 과정을 거칠까

고생을 생각하니 결혼 안 시키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은 결혼 안하고 아이 없고 교회개척 안하고 복음 운동 안하면 우선은 조용하고 돈 들일 없고 싸울 일은 없는데 결혼을 미루고 안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고 낳아도 성의 표시로 하나 낳을까 말까 그러니 이제 이 모든 것이 쌓여지니까 안 믿는 세상 복지부에서 민족이 없어지겠다고 이런 재앙이 없다고 난리가 나고 아이 하나에 1천만 2천만 준다. 아이 하나의 혜택이 20가지입니까? 50가지입니까? 다 찾아 먹지도 못할 만큼 복지 혜택이 막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 세상, 자연계시 자연의 복과 그런 자연의 생태계를 통해 신앙의 생명 복음 운동을 낱낱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몇 백 명 교회면 경제고 안정적이니까 그냥 우리끼리 잘 살면 되는데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개척해내려면 목사는 양심껏 개척하기 괜찮다 하면소 추천을 하면 장로님은 자기 사후 안 해준다고 시비 붙고 저쪽 동네 목사 저쪽 편든다고 이제 의심하지. 말하자면 뭐 얽히고 섥혀서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그 소리 하든지 말든지 하나 개척하여서 셋 교회가 다시 한 번 출발하면 얼마나 좋은데 점잔한 사람은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말이 많고 수준 낮은 사람들은 말도 어찌나 많은지 결론적으로 중견 교회되면 그렇지 개척하면 교회 시끄러워집니다. 교회 시끄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개척하지 말지? 너는 결혼해서 애도 낳지 말지. 너는 애 낳으면서 교회는 개척 안 한다 그래도 주시면 낳아야 되겠더라  뒤에 그럴 꺼면서. 한 아이의 출생의 성장과정도 두 부부가 새 교회 가정 교회 철들어가며 하늘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또 지역적으로 한 교회가 다른 선교사 다른 앞선 교회 때문에 출발하고 성인이 되면 몇 십 명 되고  또 한 교회가 개척하고 교회 자립을 하면 또 한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 이런 것이 다 백마 운동이다 그런 운동을 하려다보면 별의별 말, 희한한 말. 저게 등신같이 다른데 에서는 말도 못 하는 게 교회 와서 귀신 소리할 때에는 말도 묘하지 아름답지 그 말 들으면 모든 사람이 다 그냥 설득이 되지. 또 그것을 앉아서 말을 다 따지고 앉았다가는 함께 주저앉겠지. 그래서 구약에 소를 제물로 드리라는 말은 인간 볼 때 말고 주님 앞에 입 닥치고 복음 운동만 무조건 하거라. 하고나면 다 그 소 칭찬합니다. 소는 마지막에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푹 꼬구라지면 그때서야 주인이 어? 죽었네. 죽어도 죽는 그 날까지 그 시간까지 일하다가 가버립니다. 그런 주님이 여기 목사 저희들을 보며 너희들부터 그래라. 그런데 목회자들이 뭐 이 말 저 말을 안 하나? 목사들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습니까? 목회자들로 시끄럽지. 교인들도 섞어놓으니 더하지. 가정에 만만한 여자가 바가지 긁으니 여자 때문에만 시끄럽습니까? 살아 보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도록 남자가 원인 제공을 하니 시끄럽지. 그 시끄러운 모든 평화를 없애는 화평을 없애는 것은 붉은 말입니다. 시끄러움이 저주가 아닌가? 화가 아닌가? 시끄러움은 지옥이 아닌가 하지 말고 생명이 자라 가는데 당연히 죄악 세상에서 이런 것은 따르는 것이라. 믿는 사람이 환란을 피하면 말씀 때문에 환란 당한다는데 너희 세상 동무들도 똑같은 환란을 당한다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며 겪는 불리 겪는 불편함을 안 믿는 사람은 말씀 없이 평안할까?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 나름대로 또 불편을 맡깁니다. 고봉으로 얹어버립니다. 그래도 말씀 때문에 당하고 겪는 소란 배고픔이 행복한 고민이지. 아이 낳아 기르는 수고가 행복한 것이지 아이 없이 둘이 그냥 귀찮은 게 없으니 편하다? 나중에 둘이 깨질 때에는 더 큰 소리 나고 대책도 없고 해결도 안 되는 소리. 주님이 주신 사명. 그 길을 따라가며 백마도 백마 운동이고 모든 6, 7째 나팔 재앙까지도 화도 복이고 재앙도 축복길도 좋은 것도 좋고 주님이 대속의 피로 구원해놓은 믿는 사람은 굴러가도 엎어져도 말씀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마지막에 계산해보면 좋은 것 밖에 없습니다. 

팔려가는 요셉의 신세가 억울하고 분하고 절망인데 뒤에 보고 넓게 보니까 공짜 애굽 유학입니다. 돈을 주고 애굽에 가면 그렇게 좋은 유학일까? 형이 파니 애굽에 가니 공짜로 그런 좋은 유학 갔지. 애굽 나라 정치범 모은 교도소에서 장차 총리가 되었을 때에 애굽 나라 원수 반역자 왕과 관계된 제일 고등 죄인들만 모아놓은 교도소에 요셉이 들어가서 그 사람들하고 비비고 나니까 훗날 총리가 되었을 때에 애굽 나라 머리 좋은 고위 관리들이 어떻게 빼먹고 어떤 오해를 받는지 그때 섭렵을 다 해버렸습니다. 노예 생활 머슴 생활 해봤고 총리 생활 교도소 소장 노릇 해봤고 그 곳에 애굽 나라 최고의 유명한 사람들 다 거쳐보고 요셉이 총리가 되니까 부자에게 좋은 정책을 펼치면 가난한 사람 데모가 일어나는 것이고 요즘 정권처럼 가난한 사람한테 돈을 퍼대면 부자들은 곳간을 그렇게 헐어대면 나중에 굶는 날 올 것인데 말은 못해도 속으로 다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남자 좋게 하면 여자 죽고 여자 좋게 하면 남자가 죽을 판인데 인간의 정치는 다 좋게 하는 방법 없는데 요셉은 하나님께 인도 받아서 백마의 복음의 운동을 묵묵히 걷다보니까 꿈에 보여준 두 번의 계시가 하늘의 열린 성경 말씀의 복음의 전개였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까 요셉이 110세까지 전부 성공이었으나 요셉의 가는 곳마다 형들의 잡음, 팔려가는 억울함, 교도소에 들어가서 절망의 공포의 청황색 말이 들이 닥쳐 13년 간 잿빛의 공포에 희망 없는 그런 기회도 지났지만은 알고 보니까 그 단계 단계가 성공을 위한 발전을 위한 하나님의 좋은 복이었습니다. 요셉에게 금반지 주고 다이아 반지 주고 워싱턴 유학 보내고 장관 시켜서 올렸다면 형 10이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대들었을 것이라. 팔아 놓아 놓으니 형들은 형들대로 좋고 팔려간 요셉은 애굽 밑바닥부터 위까지 다 겪어보며 총리가 되었을 때 요셉의 정치와 인도에는 노예도 평민도 좋습니다. 고관 대작들도 왕까지도 네가 왕해라. 나는 이름만 왕한다. 본국도 외국도 이것은 인간 세상에는 없는 하늘의 보좌 앞에 하나님의 일곱인이 그대로 땅에 내려앉아버린 것입니다.

떠들어도 교회 개척은 해야 되고 개척할 실력도 안 되는 명예위해서 사업 확장을 위해서 한다면 두아디라 사업주의 교회되고 교회의 연륜도 사명도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애 낳아봐야 좋다는 말 못 듣고 칭찬 못 듣고 이것밖에 안 도와줘? 이런 말을 듣니 아야 치워버려라. 원동의 피동은 원동과 같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할 일은 하고 떠들어도 할 일은 하고 기회주지 않으면 기다리고 복음 운동은 백마로 가면서 모든 옆에 주변에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전체를 주님의 주권과 목적 안에서 보니까 하늘에서 일곱인이 열렸기 때문에 어린양의 대속의 피의 공로로 열렸기 때문에 또 쏟아질 때에는 이 땅 위에 복음운동이 복으로 오기 때문에 내 눈 보기에 안 좋은 게 있지 주님 볼 때에는 좋은 것 밖에 없는 이 순간을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두 달에 방역문제로 전염 문제로 천하가 들썩거리는 것도 하늘에서 예정된 그런 순서 이였고 그것도 넓게 보니까 교인들이 돈 번다고 직장만 다니고 학교만 머리를 보고 앉아 있고 형편 좋으면 놀러 다니고 그 두 달이 지나가다 보니까 전부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성경 공부 할 기회 되고 기도 할 기회 되고 그것도 그리 생각하니까 감사하고  교회도 개인도 가정도 돈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는데 전부 다 다 묶어버리니까 다이어트 하여서 그나마 좋고 또 세상은 질기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공기에 대접을 쏳아버리면 이렇게까지 인류 75억이 다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땅에 정 붙이는 사람들에게 정도 떼시고 좋지 않은 사람은 이래도 원망 저래도 원망. 복된 사람에게는 복도 복이고 저주도 감사고 환란도 감사고 감사도 감사. 당신은 알아서 하시고 저는 따라만 가겠나이다. 이게 6장 7장입니다. 8장으로 넘어갑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앞에 6째 인까지는 설명했다. 일곱째 인은 마지막이니까 이게 이제 더 쎈 것인데 일곱째 인을 떼니까 일곱째 인 하나 속에 일곱 나팔 재앙이 쏟아져 나온다. 피할 수 없고 숨을 수 없도록 마구 부어대는 나팔이라는 말은 일어나라 경계해라 조심해라 정신 차려라 전쟁의 나팔처럼 다급한 환란 다급한 문제 다급한 현실이 있을 때에 정신 차리라는 경고입니다. 일곱 인은 조용하게 떨어집니다. 조용하지만 하나님이 하늘에서 펼친 대로 이 땅 위에 모든 것이 돌아갑니다. 여섯 가지는 알았는데 요셉을 봐도 그렇고 아이가 자라가는 것을 봐도 그렇고 결혼으로 온전한 가정이 되는 것도 그렇고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내 마음을 하나씩 잡아가는 것도 그러한데 마지막 일곱째 인을 딱 떼니까 “반 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 큰일을 앞두고 다급한 일을 두고 주님은 잠깐 기도하고 준비할 시간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대기하고 일곱 나팔을 받아 불려고 하더라. 

나팔이라, 일곱 나팔이라. 일곱째 인이라 백마부터 여섯 번째까지 순서를 보고 일곱 번째를 보니까 안 봐도 이것은 더 큰 일일 것입니다. 큰일을 두고 다급한 일을 두고, 3절에 먼저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은 주님이 피 흘려 구원하신 복음의 희생 구원의 헌신 희생이 제단입니다. 사활의 대속 여기에 기도가 쏟아지며 변치 않는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로를 받았으니 주님 피 흘려 사죄를 주셨으니 이 사죄의 운동에 도와주소서 내 자율 불의를 꺽고 칭의로 살아가는 이 일에 능력을 주소서 길을 열어주소서 저 가정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많은 향을 받았으니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하나님 앞으로 올려가더라” 금단은 향을 피우는 곳입니다. 이 땅 위의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가지고 그 다음 5절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금단 위 천국의 불을 담아다가 이 땅 위에 쏟아버리니까, 하나님은 전능자라 알아서 해도 되는 이 땅 위에 대속의 피공로에 붙들려 대속의 핏공로를 전하기 위하여 이 일에 필요한 기도를 쥐고 이 땅 위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모든 진노 뇌성의 역사 자비의 음성의 역사 성령의 모든 감화와 감동의 번개의 역사, 이 땅 위에 일어나는 모든 변동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해도 되는데 먼저 믿고 앞서 믿은 우리가 예수의 계시 그리스도의 계시 사활의 대속의 이 구원을 위하여 구원 때문에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붙들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 가진 천사의 나팔이 예비되고 7절부터 한 나팔씩 나가더라. 그러면, 이 나팔은 예수의 대속에 붙들린 성도의 기도를 붙들고 필요하면 자비를 필요하면 진노를 필요하면 지진을 필요하면 성령의 역사가 전개되는 나팔재앙이기 때문에 재앙이라는 것은 신앙 없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 재앙이라 했지만 믿는 사람 복음의 사람은 알고보면 재앙은 전부가 다 복입니다. 

다리 분질러지면 다 싫어합니다. 재앙입니다. 그런데 다리 분질러서 기도 안하는 교인은 없습니다. 두 다리가 죽는 날까지 튼튼하면 기도하는 교인도 없습니다. 두 다리가 튼튼하고 죽을 때까지 고장 한번 안 나면 두 다리로 안 갈 데를 가지 안갈 곳을 조심하기는 어렵다.  잘 믿든 말든 다리가 부질러져 놓으면 안 갈 데를 갔나, 그 건강할 때에 주님이 건강주셨는데 감사를 몰랐구나. 안 가르쳐줘도 집회 안 해도 예배당에 안 가도 설교 안 들어도 다리만 분질러 놓으면 막 그냥 통성 기도가 나오고 회개가 나오고 저절로 다 됩니다. 부부 둘 중에 하나 암 걸려놓으면 통성 기도 안하나. 잘 먹고 잘살면 기도 안할 것인데? 예배당에도 안나올 것인데? 교만해서 하나님하고 눈을 맞추면서 싸울 것인데? 지옥 가는 인간 홍포 입은 인간의 심보를 보면 죄를 지어도 잘 먹고 조용하고 죄를 지어도 무병장수하고 이런 것을 복입니다라고 그러고 주님은 하룻밤이다 죽든지 말든지 잘되든지 말든지, 하늘나라 소망 사활의 대속 예수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원만 생각하고 여기에 도움이 되면 좋은 것입니다. 복과 재앙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는 이렇게 재앙을 복으로 보는 눈을 바꾸셔야 됩니다.

1장의 모든 현실은 1번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실은 단 번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실은 늘 종말이다 두 번은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교회의 원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2-3장에 일곱 신앙에 고장이 있고 형태가 있고 장점이 있으니 항상 일곱 가지로 잘 살펴서 보좌에 앉으신 4장의 하나님이 5장의 말씀을 이 땅 위에 풀어놓고 전개가 될 때, 백마 운동이 벌어질 때에 에베소 교회처럼 사활의 대속의 감사 잊지 않도록 하라. 홍마의 운동이 벌어져 소음이 나고 시끄러워지고 분쟁 싸움 박재기가 나올 때에 믿었는데 잘 믿으려고 그러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지냐 그러지 말고 “십 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니” 서머나 교회처럼 죽도록 충성하라. 잘못된 것을 고쳐도 잘못된 것이 아니면 가는 데까지 가거라. 일곱 교회의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매 현실마다 나를 예수로 만들고 그리스도로 만드는 주님을 흰말의 복음 운동으로 시끄러운 붉은 말의 운동으로 배고픈 검은 말의 운동으로, 이래 가지고 살겠나? 이런 일이 계속 되어가지고는 도무지 안 되겠다. 절망이 될 때에도 복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거라. 아이 하나 낳으니까 돈 들지 부부 둘이 정신도 없이 엉망이지 아이 하나 낳고 둘 낳지 말아라. 그게 다섯 번째 “제단 아래 영혼들이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않기를 언제까지 하겠나이까?” 하나 낳아 길러놓으니 둘 낳을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로 그냥 종 쳐주시지요. 너는 하나가 전부냐? 네가 천국 와서 왜 둘 주지 않느냐고 데모할 인간이다 죽어 하나님 앞에 데모한 인간? 그 사람 이름이 누구지요? 하나님 앞에 쫑알쫑알 세상에서 했던 말 다 하면서 아니 그때 좀 선지자 좀 보내시고 전도인 좀 보내시고 우리 가정에 와서 전도지 좀 주시지.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종들이 모세다 나사로 살려 나사로 살려 따로 보낼 것도 없습니다. 너희 집에 오늘도 거지를 통해 가족을 통해 친구를 통해 교회 전도사님을 통해 또 오고 또 문을 두드리는 그게 모세다. 그때는 마다하더니만 하늘나라 와서 보니까 그게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세상에 두고 온 다섯 동생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나를 닮아서 또 자기 집에 오는 전도인들을 갖다가 구박할 것이니 모세를 보내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보내야 듣지 않겠나이까? 모세가 가봐라 죽은 나사로가 가봐라 예수님이 직접 가봐라 그 인간들이 예수님이라고 두려워하고 복음을 받는가? 실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잖습니까? 예수님 전도 받는 사람 보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렸지 귀찮다고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그 집에 전도하러 가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이다 나사로가 가서 해결 되면 얼마든지 시켜주지. 자유성이란 이 정도입니다. 이게 자유성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보배며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하늘의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들린 능력의 말씀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복음으로 전개가 되는데, 흰말 운동은 복음 같다, 떠들고 시끄러운 이런 분쟁, 붉은 말도 복음일까? 배가 고픈 흉년의 검은 말도 하나님의 복음일까, 절망스러운 이런 네 번째의 청황색 말도 이게 복음 일 수 있고 이게 주의 은혜일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뭐 가정마다 만나면 다 깨져 싸니 이런데도 중매를 서겠는가, 저는 또 중매 섭니다. 욕을 하든지 말든지. 신천지 같은 이단이라고 욕을 하든지 말든지, 20살 결혼이 제일 아름다울걸요! 스무 살 에서 일 년 늦으면 일 년 후회할 것이고 오년 늦으면 오년 땅을 칠 걸요! 저는 스물 결혼이라는 것을 가장 이 시대에 절묘한 하나님의 하늘의 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만큼 믿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이! 뭐 결혼하는 족족 다 아이 잘 낳고 돈 잘 벌고 신앙생활 잘하고 집회 다 앉았고 보는 사람마다 행복하게 보이면 누가 안 하겠습니까 다 하지. 이 소리 저 소리 깨지는 소리, 긁는 소리, 죄도 없는 공회를 갖다가 타작을 하면서 공회는 이래서 틀렸다 왜 틀렸냐, 결혼을 일찍 시켜서 틀렸다 이런 소리까지 제가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번역을 합니다 통역을 합니다 ‘공회가 좋다고 축복을 하는구나 너 때문에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또 다시 또 재수해서 삼수하고 사수를 해서라도 내가 시험 합격하고 말겠다’ 강제는 못하지만은 자유성이 있어 권하는 것은 합니다. 누가 뭐라든지 말든지 소처럼 입 닫고 묵묵하게 해 부치면되지! 하늘나라 가보지 않아도 복지부에서는 우리 공회를 알면 표창장 내려올걸요? 여수 시장님과 전라남도 교육청장까지는 칭찬하더란 말을 듣고 있습니다. 불신자가 그 정도가 되었으면 이런 제도에 이런 좋은 분위기를 준 교회에 얹혀서 그냥 좀 모두들 가시면 좋지 않을까! 이건 예화니까 좀 옆으로 제쳐놓고,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 복음의 말씀이 붙들렸는데 예수님의 대속 아니고는 이게 복음으로 오지를 못합니다. 이걸 열어 버린 것이 예수님 피 흘려 구원하신 대속입니다.  그리고 첫째 둘째 여섯째 인 일곱 째 인까지가 풀어졌고 이 땅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의 모든 역사는 일곱 인의 역사고 믿는 우리 대속의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거 밖에 없습니다. 누워가든 굴러가든 가난해서 굶어죽어도 순교고 잘 먹어 복음을 잘 전해도 “모세는 백 이십 살까지 눈이 흐려지지 아니 하였더라” 그래도 복이고. 안될 사람은 오래 사니까 죄를 더 많이 짓고 일찍 가니까 많은 사람을 시험 들게 하고, 여섯 인이 갔는데 일곱째 인은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곱 천사가 나팔을 들고” 일곱 나팔 재앙을 인제 외쳐댑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8장 7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하늘에서 땅에 쏟아지더라” 우박은 뭔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이 얼면 얼음이 됩니다. 우박입니다. 비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자연 은총인데 이게 얼어서 얼음으로 떨어지면 그때는 깨버리는 파괴가 됩니다. 이게 뭘까? 하늘에서 오면 다 좋은 것이라야 하는데 피 섞인, 살육 살해 살인의 재앙이 돼버렸습니다. 뭔가,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더라“ 우리가 믿고 살아가야 되는 우리의 생활 우리의 터전 우리의 인생 우리의 활동 무대의 삼분의 일이 파괴 되더라. 그 중에 우뚝 우뚝 솟은 인재들이 수목인데 수목의 삼분의 일도 절단 나버리더라. 거 우리처럼 별 것 없는 “푸른 풀들도 타서 사위더라” 재앙은 재앙인데 파괴는 파괴인데 부서지는 일번의 첫째 나팔을 보니까 좀 혼돈이 되고 뭔지 감 잡기가 어려운데 8절에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산이 바다에 던지우더라 아, 산은 이 땅 위에 좋은 건데 불붙는 산이니까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큰 인재들인데 도덕의 산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좋은 든든한 우뚝 솟은 좋은 것들이 ”죄악의 바다에 던지우더라“

세 번째 천사는 횃불같이 타는 하늘의 큰 별 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인데 별은 하나님의 종들이라 했으니까 하늘인데, 이게 떨어져 “강과 물 샘에 떨어져 쑥이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더라” 세 번째 재앙은 교회의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이고 두 번째는 세상의 좋은 이런 도덕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의 파괴니까 그러면 첫 번 째는 그 시작이니까 요건 물질에 요건 과학에 요건 일반 자연 환경에 고장이구나. 우로를 주셔서 비를 주시면 농사가 잘되고 농사가 잘되면 만물이 좋아지는데 이게 자연의 은혜고 이게 깔려서 여기에 세상도 신앙도 있는 건데 자연의 은혜가 우박이 되어 피 섞인 우박 불까지 섞여 이 땅 위에 쏟아져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절단을 내버립니다.

주신 자연의 과학의 은총이 왜 탈이 생길까 하고 세상 자연 물질의 발전과 발달과 진행을 보니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리어카를 만들어 편리한 것 까지는 발달입니다. 바퀴 두 개를 만들어 연습을 하니까 자전거가 되니까 발전입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이 준 자연을 둥글게 만들어 이용하는 활용이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이게 이제 자동차까지 나왔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준 자연이 발달을 하여 좋은 건가, 자동차 가는 것을 보니까 이게 발달이라 좋은 건가, 이게 발달이 아니라  인간을 쳐서 죽여 버리는 살인의 무기가 되는가 이제 좀 헷갈립니다. 더 발전을 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댕기니 저게 발전인가, 저게 득이 많은가 아니면 저게 화가 많은가! 전염병 한번 돌고나니까 이게 이렇게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 된 것은 비행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걸어 다닐 때는 이 동네 감기 걸려도 저 동네 까지 가려면 한 나절 걸렸습니다. 서울의 전염병이 부산까지 오려면 십일 걸렸습니다. 미국까지는 태평양이 있어서 못갑니다. 자동차가 나오고 보니까 반나절이면 이 나라를 다 전염시킵니다. 비행기가 나오니까 아침에 미국에 들어간 감기가 저녁에 한국까지 와 버립니다. 많으면 좋은가, 많아 좋은 것도 있는데 많은 걸 받아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신앙으로 잘 쓸 수 있는 범위 안에 많은 것은 복이나, 내가 통제하고 내가 관리하여 하나님 앞에 옳고 바르게 쓸 수 없는 이상으로 많으면 그때부터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에나 쏟아지면 피하면 되지만은 내 마음 내 생활 속에 쏟아지면 어디 갈겁니까!

여자 인물도 내가 그 인물을 관리할 만큼 적당하게 예쁘면 좋은데 가난한 집에 빽 도 없는 사람이 인물이 너무 좋아서 전국에 이름이 나 놓으면 전국에 깡패들이 다 들어옵니다. 이건희 딸은 아무리 예뻐도 이건희 회장님이 깡패를 열 명 호위를 줘서 지켜 주지마는 대통령 딸은 아무리 예뻐도 경호대가 따라 댕기기 때문에 지켜주지만은 내계 골짝에 인물이 나 놓으면 거창깡패는 다 올 건데 누가 지킵니까? 건강도 내게 맞침, 인물도 내게 맞침 맞게. 머리도 내가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맞게, 결혼도 내게 맞게. 모든 것도 하나님 믿고 백마 운동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 하고 말지. 언변에 실력 있다고 대리점 두 개 내고 실력 있다고 네 개 내고, 대리점 열개가 되니까 복 받았다고 전부 난리고 사장이라 그러는데 네가 대리점 열 개를 돌아 댕기면서 관리하려면 성경 읽을 시간이 없을 건데? 대리점 열개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이 이슬과 같이 너 주변의 풀과 나무를 복 되게 도와주는 자연 은총이 아니라 그거 단단하게 뭉쳐져 우박이 되어 얼음 덩어리가 되어 그게 지금 너 신앙과 교회 출석과 성경읽기와 가정의 행복을 절단 내버리는 거 아닐까!  그로 인하여 그 결과가 신앙의 생명이 파탄 나는 피 섞인 신앙의 생명이 죽는 일이 되지는 아니할까! 초등학교나 나와서 농사 지어도 요즘은 먹고 사는데 초등학교만 나와서 시골에서 노가다만 해도 돈이 많아서 체중 조절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박사가 되었으니까 이제 박사 써먹으려고 돌아 댕기고 돌아 댕기려니까 또 남들하고 맞춰야 되고, 그러다보니까 성경 읽을 시간 없고 모 교회 자기 교회 주일날 앉을 시간이 없고 학회 세계를 돌아 댕겨야 되니까 그 공부가 너에게 자연의 은총을 준 그런 비일까, 이슬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일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단단하게 뭉쳐져 얼음 덩어리가 되면 이 게 머리를 치면 박이 깨지고 이게 비닐하우스를 치면 농사를 망가트리고 이걸 차를 치면 차 유리가 깨지고 아이가 맞으면 아이가 장애자 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하늘에서 났더라” 이 땅 위의 땅도 자연도 과학도 물질도 직장도 우리가 쉬운 한글을 배워 쉬운 성경을 읽게 된 것도 다 자연의 은총입니다. 한글 하나만 읽었어도 성경 다 믿지도 못하는데 영어까지 배워 성경을 한글로 읽고 영어로 읽으니까 더 잘 깨닫는 거 같지마는 한글로 다 읽고 영어로 다 읽고 언제? 영어보다 어려운 헬라어 알고 히브리 알고 한자씩 써 먹으려니까 한글 하나만 가지고도 외우기 어려운데 네 개 언어로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깊이 들어 간 거 같은데 실은 깨닫는 거 하나도 없이 어지러워 놓으니까 너의 어학 너의 외국어 너의 공부한 학력이 들어, 한글 하나만 알게 되면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라, 신앙생활에 좋고 자연 세상 생활에 좋고 좋은 게 많은데 외국어가 하나 되고 둘되고 원어가 하나 되고 둘되니까 이게 단단히 뭉쳐가지고 위에서 내리 꽂는 파괴의 다 폭탄이 되어버렸다! 어떤 신학자들은 여기 우박을 갖다가 2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의 폭탄이라 그럽니다. 막 하늘에서 불바다가 쏟아지니까 이게 바로 이거 아닌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핵폭탄이 나오니까 이게 핵폭탄이 아닐까, 핵폭탄은 한 번 맞으면 두 번은 없지만은,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는데 그 다음 해에 쑥이 나오더랍니다. 일 년 뒤에. 쑥 이게 얼마나 독한지, 핵폭탄은 맞아도 그 다음 해에 쑥은 나오더라. 십년 이십년 지나니까 다 복구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의 은총을 과도하게 쓰면 너무 지나치게 뿌려대면 가정이 파탄 나고 자기 인격이 깨어지고 자기 신앙이 요절이 날 건데 이건 지옥의 유황불이 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홍포 입은 부자의 절규의 물 한 방울 노래 부르는 꼴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첫째 나팔입니다. 이 나팔을 불어대며 ‘이런 꼴 당하지 말아라’ 그럽니다. 좋은 차 바꾸려고 연구하신 분들 요즘 차는 중고차도 좋으니까 좋은 차 바꾸느라고 애쓰지 마시고 구약에 말들 좋은 말 사느라고 애굽에 가지 말아라 애굽에 좋은 말 사러 갔다가 애굽에 물이 들라. 요즘은 말이 뭐지요? 차가 말입니다. 그만 출퇴근하고 안전하면 됐지, 더 좋게 더 좋게 더 멋지게 더 편리하게, 편리하게 나가다보면 애굽에 말 사러 갔다가 애굽에 물들어 버린다. 그 애굽에서 출애굽 한 믿는 사람이, 집도 그만하면 됐고 차도 그만하면 됐고 옷도 떨어지지 않아서 지겨워서 바꾸지 않습니까, 십만 원짜리 기성품이 십년 입어도 떨어집니까? 지겨워서 내버리지. 사회생활 하는데 남들을 너무 피곤케 하는 거는 문제라 사회생활에 지장되게는 하지 마시되 신앙생활에 땅 위의 물질 땅 위의 문명 땅위의 모든 과학 기술에 붙들려 너무 깊이 너무 깊이 너무 깊이 빠지시면 이게 바로 불 섞인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지매 믿는 사람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이 내 속에 희망 있는 좋은 신앙의 장점들이 수목의 삼분의 일이 내 속에 믿는 기본적인 양심들이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더라”

왜 삼분의 일입니까? 한 몫에 다 쓸어버리고 싶으나 삼분의 일로 표시하며 남은 삼분의 이로 새 출발해라. 소망으로 주신 삼분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삼분의 일을 손대면 얼른 회개하고 돌아올 설 일이지, 뭐 대리점 하나는 나갔지만은 두 개가 버티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더 해본다 또 삼분의 일 들어오지 삼분의 일이 두 개 되면 삼분의 이가 되고  삼분의 일이 세 번 되면 전부 절단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발병 하나 주시면 죽었다 살아나온 사람처럼 눈물로 회개하면 더 이상 화도 없고 건강하게 잘 살면 되는데 한번 줘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두 번하고 하나님이 지십니까, 하나님하고 끝까지 갈 겁니까? 그게 삼분의 일의 숫자입니다. 너무 적게 치면 쳐다도 안 볼까봐, 절반이 넘으면 절망할까봐, 이게 성경에 몇분의 몇이라고요? 삼분의 일의 해석입니다. 소망은 주면서 절망은 피하면서 쉽게 생각하고 만홀히 여기지 아니하도록, 무겁게 하나님 앞에 조심하도록!

그런데 모든 현실은 한번으로 지나가는 재림의 현실이니 다급하게 나팔을 불고 첫째 천사의 나팔,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좋아 보이는 것이 삼분의 일 절단 날 때, 세 번 째는 “횃불같이 타는 큰 불이” 횃불은 갑자기 치켜 올라오는 불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갑자기 영웅이 되었지만은 오랜 세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오늘도 내일도 일 년도 이년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자가 나타나나 이리가 나타나나 또박 또박 거룩과 진실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 또박 또박 하나님 앞에 수를 채웠고 그릇을 채웠고 때가 되매 골리앗을 통해서 치켜 들었습니다.
다윗은 횃불같이 타는 큰 불이 아닙니다.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란 믿지도 않았던 것이 어제 전도 받고 어제 밤에 계시 받아 오늘부터 방언을 하니까 ‘아이쿠 위대한 종이 태어났구나’ 그 좀 지켜봐야 됩니다. 성령인지 주관인지, 귀신의 악령인지 참 성신의 감동인지, 다단계 잘하는 사람들이 전도하면 전도 잘 할걸요, 학습지 외판하던 분들 전도하면 전도 잘 할걸요? 하나 전도하기 위해서 일 년 기도했고 이년 봉사했고 삼년 울었고 사년 째 겨우 하나 나왔고 둘 나왔고 셋 나왔고 믿음은 겨자씨 한 알처럼 세월 속에 요렇게 자기 속에 전쟁과 분쟁을 통해 길러가고 자라가는 겁니다. 횃불이라는 것은 불붙이면 갑자기 확 일어납니다. ‘아이쿠 유명한 저 교회’ 어느 날 테레비에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인기를 끄니까 교인 갑자기 만 명! 어디서 만 명을 모았는고? 주변 다른 사람 다 옮겨 놓은 만 명!

Comments

" 2020.05.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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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2020.06.13 23:18
손양원 목사님처럼, 백 목사님처럼 오랜 세월 주와 동행하고 깨달은 진리의 역사가 이제 드러나는 것인지, 인간 말장난 인기에 편승하여 세상의 재주와 땅 위에 있는 인간의 결집력으로 가지고 영업하듯이 회사 만들 듯이 정치 지도자 되듯이 어느 날 뚝딱 사람들을 갖다가 관심을 받고 그 사람들을 살짝 흔들어가지고 우뚝 솟은 그런 것은 아닌지, 교회도 교단도 하나님의 종도 일반 교인 중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도 인간이 몰라 그렇지 그 사람의 뒷날과 배경을 살펴보면 주와 동행의 사죄의 오늘, 나의 불의를 꺾고 주의 뜻을 찾는 지난 한 해의 결심, 주와 동행하는 어릴 때의 그 노력이 이어지며 쌓여지며 겨자씨처럼 생명이란 하나가 둘되고 둘이 셋 되면서 자라가는 겁니다. 이거저거 확 모아서 그냥 집채만큼 갑자기 뚝딱 쌓아 올리는 것은 정치라 그럽니다. 세상이라 그럽니다. 고런 걸 사기라 그럽니다. 기독교는 반대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나팔이 이어지며, 그 다음 네 번째는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이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가 가려지고 교회가 교회로서 할 일의 삼분의 일이 가려지고, 하늘의 별들이 돼야 되는 하나님의 종들과 우리 잘 믿는 교인들이 삼분의 일이 해를 받아 침을 받아 침략을 받아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진리의 낮의 운동의 삼분의 일과 밤을 비춰야 되는 이런 빛이 삼분의 일이 요절나더라.


내 심령을 스스로 들여다보십시다. ‘전염병 때문에 두 달 교회 조심을 하자’ 그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다른 죄 지으러가는 것은 전부 하면서 돈 되는 것은 전부 어떻게 해서라도 하면서 예배당 가는 것만 갑자기 그냥 조심을 했는데, 뭐 그래도 조심은 조심이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두 달 교회 출입이 뜸하고 5월 첫 주에 교회를 가려다보니까 이상하게 발도 무거워졌고 성경은 들고 가는데 이전보다 성경이 삼분의 일이나 무거워지고 성경을 찾는데 이게 옛날에는 빨리 찾아 졌는데 삼분의 일 속도가 느려졌고 기도를 하는데 주님의 응답이 삼분의 일이 늦어지지는 않았는지요?

다른 사람 피해 끼칠까봐 나 때문에 교회 신문에 날까봐 두 달 간 교회를 나오지 않았지만은 나오지 않고 보니까 아, 발로 걸어가는 교회가 이렇게 좋은데 몰랐구나, 두 달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서 교회의 사모가 열배 더 할 수도 있고 걸어가는 교회의 이때가 얼마나 복인데 몰랐구나 이렇게 더 간증이 넘치는 사람은 두 달 교회 안 나오고  두 달 만에 교회를 처으음 나오는 날 날라 오며 은혜 받고 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핑계 대고 두 달 드러 누웠는데 영 그냥 식어 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신앙되고 잠든 신앙으로 돌아가는 교단도 있을 것이고 교회도 있을 것이고 그런 개인도 있을 건데 그건 펴놓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의 속을 모르니까! 본인들은 알겁니다. 두 달 동안 천하가 뒤집어지고 천하가 난리가 나는 통에, 교회 출입을 조심하다 보니까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듣고 가정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평소에 목사 은혜 안 된다고 그냥 속에서 원망을 했는데 교회 목사 설교 은혜 안 된다고 속으로 욕을 했는데 설교 시간에 ‘아이 그만 좀 일찍 마치지’ 그랬는데 식구 몇 데리고 자기가  가정예배 인도를 해 보니까 ‘아이 목사가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나 보다는 열배 낫구나 뭐 월급 한두 배 올려줘도 월급 값은 되겠구나’ 고리 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고 ‘이참에 교회 영 뭐 그냥 교회 졸업을 해버리자‘ 이렇게까지 나갈 수 도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똑같은 인이 떨어지고 똑 같은 일곱째 인의 나팔 재앙이 하나 둘 셋 전개가 될 때마다 더 복되게 더 천국으로 더 대속으로 더 주님을 사모하는 복된 사람도 있고.

어릴 때에는 어려서 철없어 교회 안 다니고 젊어서는 바빠서 안 다니고 나이 많아서는 손주 보느라고 교회 못 나오는 인간도 있고. 어릴 때는 철없으니 교회 가서 놀지 뭐, 젊을 때에 요즘 공부해봐야 취직 안 되니까 교회나 가서 그냥 성경 읽고 봉사하지. 나이 많아서 손주 업어줘 봐야 좋다는 말 듣지 못하니 예배당에서 가서 성경이나 읽지, 똑같은 나이 똑같은 형편 똑같은 환경을 맞이하고도 복 있는 사람은 전부 복으로 바꾸고 복 없는 인간은 복을 줘도 전부 다 화로 바꿔버리니 이 자유성은 주님도 손을 안댑니다. 알아서 하라고. 죽을 라면 죽어라! 지옥의 행보를 만들려면 마음껏 만들어라!
우리는 이방인인데 이방인이 전도 받고 이렇게 이방인도 복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방인이니까 더 열심히, 늦었으니까. 어떤 이방인들은 기독교는 유대인들 이스라엘 제품이라더라 너것 들이나 해라 나는 조선 유교나 믿을란다 이방인이라서 복이 없는데 이방인이라서 오기 반발로 더 복이 없는 인간도 되는데. 이건 달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은품 준다고 되는 것 아니고 빈다고 되는 거 아니고 그만 우리 할 만큼 하고 그렇게까지 복 없이 나가는 사람들은 자유성으로 결정했으니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우리 길 가는 겁니다. 

계시록 8장 까지 살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 하시겠습니다.

금번에 계시록 공부는 종말의 공부입니다. 알고 보니 매 현실이 말세였습니다. 이제는 역사 말세가 정말로 들이 닥치려고 하나님이 천하를 움직이며 ‘이제 멀지 않다’ 이렇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 대는데도 잠 들어있으면 길은 없습니다. 내가 나를 깨웁시다!




교정 : CK, MYU, 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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